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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선 구일 역의 역사

수도권 전철 1호선에 있는 구일 역은 구로 역에서 분기한 경인선 철도가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역이다.
이 역은 1995년에 개통되어 경인선 2복선화 공사 과정의 복잡한 사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특이한 역이다.
다만, 경인선에는 구일보다도 나중에 생긴 역도 있다. 2001년에 개통한 도화 역이 막내이며, 이게 아마 경인선 최후의 신설역으로 남을 것이다. 경인선은 이제 전구간이 거의 지하철 수준으로 역이 많아져 있기 때문에.

구일 역은 위치부터가 심하게 특이하다. 역이 잘 알다시피 안양천을 건너는 철교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신대방, 구로디지털단지, 대림 3개역이야 도림천을 따라 복개 고가로 건설되어 물위에 역이 있다지만, 강을 수직으로 횡단하면서 그 길목에 역이 있는 경우는 구일 역이 유일하다. 그 위치가 개봉과 구로의 정중앙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2호선의 경우, 아무리 선상역이라고 해도 구일 역처럼 선로 아래로 강물이 출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거나 하지는 않다. -_-;;)

경인선 자체가 처음부터 복선으로 건설된 철도가 아니고 1965년에야 복선화가 된 만큼, 안양천 철교 역시 단선 교량이 새로 놓이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두 교량 사이에 공간이 넉넉했는지, 구일 역은 처음에 섬식 승강장으로 만들어졌다. 기존 선로에 신설되는 역이 섬식 승강장인 것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마치 섬식 승강장을 확장하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개통 당시에 구일 역의 구조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를 선로, ■를 승강장이라고 생각하라.

인천 방면(서쪽)
..┃■┃..
서울 방면(동쪽)

그런데 이것만 있었느냐? 그렇지 않았다. 구일 역이 생기던 시점에는 이미 경인선의 2복선 선로가 딱 개봉 역 직전까지 진행되어 있었다. 서울-구로는 3복선까지 생겼고 말이다. 즉 실제 선로는

인천 방면(서쪽)
│┃■┃│
서울 방면(동쪽)

로, 양 옆에 또다른 복선 선로가 있었다. 2복선 공사를 왜 해야 했는지는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구로 이북의 경부선 서울 시내 구간은 선로별 복복선이 되어 새로운 전동차 선로가 기존 선로의 최북단에 깔려서 ┃┃││처럼 된 반면, 경인선은 방향별 복복선이 되어 새로운 선로가 남쪽과 북쪽에 하나씩 추가된 것이다.
경부선이 경인선처럼 일관성 있게 방향별 복복선이 되지 못한 이유는, 두말 할 나위도 없이 선로를 그렇게 추가할 부지가 없어서라고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더구나 남쪽에는 일반열차 선로까지 이미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선로별 복복선이던 선로가 방향별 복복선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한 선로가 다른 선로를 필연적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입체 교차로가 생겼다. 특히 인천 방면 선로는 인접한 경부선 선로를 모두 타넘고 남쪽 끝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고가 위로 붕 떠 있었으며, 이는 안양천을 건너는 구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이유로 인해 구일 역의 인천 방면 신규 선로는 다른 세 선로보다 높이가 높다.

경인선의 2복선 신규 선로가 개봉까지만 있던 시절에는 철도청에서 오늘날 경인선 급행 전동차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영등포-주안 반복 열차라는 열차를 운행했다. 구일 이북부터는 그냥 다시 기존 복선 선로를 이용해서 달리고 영등포-구일까지만 신선으로 다니는 그런 열차였다. 경인선 완행 전동차의 일부 선로 용량을 빼내서 거기다 투입시켰던 것 같다. 지금은 영등포-광명 셔틀 전동차가 있지만, 그때는 영등포 역이 그런 부류의 전동차의 시종착 취급도 했다는 게 신기하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경인선도 그렇고 경부선 구로 이북도 그렇고, 전동차 선로는 지금의 급행 전동차가 다니는 선로가 먼저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완행 전동차는 지금의 급행 전동차 선로로 다녔다. 그래서 경인선 전동차는 구일 역에 그대로 정차했으며, 그 반면 바깥쪽 선로를 다니던 '영등포-주안 반복 열차'는 아직 승강장이 없었기 때문에 구일 역을 무정차 통과했다. 구일 역을 통과한다는 점만 빼면 영등포-주안 열차의 정차역은 다른 경인선 전동차의 그것과 완전히 동일했다. 아직은 2복선 구간 자체가 너무 짧았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1999년, 경인선 2복선이 부평까지 개통했다. 이제 철도청은 새로운 전동차의 운행 계통을 기존 완행의 계통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했다. 영등포-주안 반복 열차를 없애고, 더 북쪽인 용산에서 출발하되 남쪽으로는 주안이 아니라 2복선이 존재하는 부평까지만 가고, 별도의 선로에서 정차역 수도 줄인 열차를 도입했다. 그때 철도청은 이 열차를 '직통열차'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코레일 민영화 후에야 용어가 급행으로 바로잡힌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으니, 바로 이때부터 내선과 외선의 용도가 바뀌었다. 기존 완행은 새로 추가된 외선으로 들어가고, 급행이 기존 내선으로 들어가서 이 관행이 오늘날까지 이른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물론, 일반열차가 내선을 쓰고 전동차가 외선을 쓰는 경부선처럼, 경인선도 빠른 열차가 내선을 이용하게 일관성 있게 바꾼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용산에서 먼저 회차하는 급행 전동차를 내선에다 배치함으로써, 청량리와 의정부 방면으로 가는 1호선 풀코스 전동차와의 평면 교차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은 게 어차피 서울 시내 구간은 방향별 복복선도 아니고 선로별 복복선이다. 게다가 노량진부터는 일반열차의 선로가 남쪽에 있다가 북쪽으로 꽈배기굴을 통해 위치를 바꾼다. 경부선 3복선 공사와 관련된 더 복잡한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해서까지는 본인은 아직 잘 모르겠으며, 이에 대한 설명이 있는 자료도 아직까지 접하지 못했다.

이렇게 내선과 외선이 교환됨으로써 구일 역 1층의 중앙 섬식 승강장은 완행이 아닌 급행 전동차가 지나가게 되었고, 구일 역은 급행 무정차 통과역이 되었다. 따라서 그 승강장은 잉여로 전락했다.;;
그 대신 외선에 승강장이 설치되어 완행 전동차는 거기에 정차하게 되었다.

■│┃□┃│■

결과적으로 구일 역은 섬식 승강장의 양 옆에 승강장이 하나씩 더 설치됨으로써 쌍상대식 승강장 형태가 되었는데, 특별히 인천 방면 승강장은 위에 따로 단선 승강장처럼 설치된 특이한 형태가 되었다.

이 글이 이해가 잘 안 되시더라도 구글에서 구일 역 승강장 사진을 찾아 보거나, 이 글을 프린트해서 구일 역을 답사해 보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참고로 구일 역은 출입구가 동쪽 서울 방면에 하나만 있다. 그래서 강 건너 부천 방면에서 구일 역을 이용하는 사람은 건너편까지 가서 우회를 좀 해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1/09/10 08:17 2011/09/10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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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철도: 단선 비전철이 다수였다. 그래서 길 좌우로 철도와 관련된 시설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전망 하나는 좋았다.
현대의 철도: 자동차 도로와 경쟁을 해야 하는 마당에 장난하나? 복선 전철은 필수이며, 수요가 없어서 당장은 단선으로 만들더라도 최소한 복선 노반은 깔아 놓고 공사를 한다.

과거의 철도: 기름으로 달리는 차량이 주류였다. 전철은 통근형 전동차가 다니는 수도권이나 아예 영동· 태백선 같은 산악 철도에서나 볼 수 있었다.
현대의 철도: 전기로 달리는 차량이 주류이다. 우리나라에 기름으로 달리는 차가 도입된 건 1990년대 말의 CDC가 마지막인 반면, 전기 차량은...;

과거의 철도: 한 차량만으로 여객과 화물 등 다양한 객차를 끌 수 있고 편성도 유연하게 할 수 있는 기관차+객차 형태가 주류였다.
현대의 철도: 가감속력이 뛰어나고, 전후 대칭이어서 기동성이 좋은 동차가 각광받고 있다.

과거의 철도: 나무 침목과 자갈 노반은 철도의 상징이었다.
현대의 철도: 나무는 부패하기 쉬우며 자갈은 부서지고 수시로 갈아 줘야 하기 때문에, 요즘은 처음에 비용이 좀 많이 들더라도 튼튼한 콘크리트 침목+노반으로 물갈이되었다.

과거의 철도: 덜컹덜컹 소리 역시 철도의 상징이었다. 더운 여름엔 쇠가 늘어나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레일에 일정 간격으로 이음매를 일부러 만들어 놓는다고 과학 시간에 배운다.
현대의 철도: 장대레일이 필수이다. 쇠가 늘어나더라도, 레일이 휘는 걸 방지하는 특수 장치 덕분에, 긴 장대레일의 양 끝만 늘어나거나 줄어든다고 함.

과거의 철도: 통표 폐색 장치 -_- (정말 옛날) 우리나라에 마지막까지 존재하던 통표 사용 구간이 전라선 어디였다고 하던데.
현대의 철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단위 시간당 취급 가능 열차 throughput을 올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선로수만 늘리는 게 아니라 발달된 신호 시스템이 필수이다. (철도는 충돌을 피할 길이 없고 심지어 선로 전환조차도 외부에서 해 줘야만 가능한 1차원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하긴, 운영체제의 스레드 동기화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세마포어(semaphore)를 통표에다 비유한 교수님이 계셨다.

과거의 철도: 건널목이 많았다.
현대의 철도: 무조건 고가+터널. 요즘 새로 건설되는 철도에 건널목이 있는 경우는 없ㅋ다ㅋ.

과거의 철도: 서울 지하철 2호선과 청량리 역의 경우, 플랩식 전광판이 2000년대 말까지 마지막까지 남아 있기도 했지만...
현대의 철도: 최하 스펙이 청색 없는 저해상도 LED이고, 요즘은 다 올컬러 LCD 전광판이 대세.

- 오래 전에 바뀐 것이긴 하다만,
과거의 철도: 열차가 정차 중일 때는 화장실에 갈 수 없었다.
현대의 철도: 그거 도대체 어느 시절 얘기를..? (정화조는 필수)

- 이건 지하철 한정이다만,
과거의 철도: 선로 투신 자살이 가능했다.
현대의 철도: 스크린도어는 무조건 필수!

이렇듯, 기술이 발달하면서 요즘 철도는 어제의 철도가 아니다.
장대 레일과 콘크리트 노반, 고가와 터널처럼 고속철이 한국 철도의 전반적인 스펙을 끌어올린 것도 적지 않거니와
지하철에서나 보편적으로 쓰이던 기술이 일반 철도로 옮겨진 것도 많다. 지하철은 표정속도만 느릴 뿐 상당한 최첨단 기술이 결집된 철도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철도와 현재의 철도의 차이가 이러하다면, 미래의 철도는 과연 어떤 양상으로 변할까?
경직된 기관차+객차 내지 “버스 아니면 지하철” 모델을 탈피하여, 미래의 철도는 더 작아지거나(경전철), 더욱 빨라지는(고속철)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종전의 바퀴식 철도는 고속선에서는 그야말로 바퀴식 철도의 한계인 시속 400km대까지 빨라질 것이고, 아니면 기존선에서 더욱 빨리 달릴 수 있는 틸팅 열차가 도입될 것이다.
그리고 아예 바퀴를 굴리지 않아서 매질과의 마찰이 없는, 자기 부상 열차가 개발될 것이다. 자기 부상 열차야말로 도시형 경전철 아니면 초고속 장거리 고속철의 두 극단적인 양상으로 딱 나뉘어 연구 개발이 한창이다.

본인이 나중에 글로 또 쓰겠지만, 컴퓨터는 과거에 메인프레임-단말기 모델이던 것이 기술이 발달하면서 PC 모델로 바뀌었고, 지금은 다시 클라우드 컴퓨팅이 대세가 되고 있다. 그런 것처럼 육상 교통수단 역시 과거에는 철도가 주류(메인프레임-단말기)이던 것이 지금은 자가용이 대세가 되었고(PC), 그러다 자가용의 비효율성과 위험성으로 인해 앞으로는 다시 중앙 집권화가 잘 된 똑똑한 궤도 교통수단(ㅋㅋ)이 각광받는 날이 도래하는 중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8/30 08:24 2011/08/30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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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철 경원선(중앙선)의 모든 것

서울 강북에는 예전부터 '국철'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전철 노선이 있었다.
경인선이나 경부선과는 달리, 이 전철은 나름 서울 중심부 구간에서 한강을 따라 미려한 경치를 선사하면서 지상으로 달렸다. 딱히 이름도 없이 그냥 국철이었고, 배차 간격이 12~15분대로 다른 지하철보다 꽤 길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 국철의 명목상 노선색은 군청색으로, 마치 1호선의 지선처럼 취급되었다. 그런데 지선은 본선에서 뻗어나가서 제 갈 길을 가는 형태가 보통인 반면, 얘는 용산에서 분기하여 한남, 옥수 따위를 지난 뒤에 다시 청량리에서 합류하여 일종의 고리를 형성했다. 여러 모로 특이한 노선이 아닐 수 없었다. 정식 명칭도 없는 이 국철의 정체에 대해 본인은 어릴 때부터 굉장한 호기심을 품어 왔다.

이것은 오늘날 '수도권 전철 중앙선'이라고 불리는 코레일 광역전철 노선의 옛날 모습이었다.
물론 용산-한남-옥수-청량리 구간 자체는 원래 경원선이라고 하여 일제 강점기 초창기인 무려 1911년부터 있던 철도이다. 그 경원선이 청량리와 성북과 그 이북으로 올라가서 신탄리까지 가고 북한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남북이 분단되면서 경원선은 경의선과 더불어 반쪽짜리 노선이 되었다.

수도권 전철이 개통하기 전에 경인선과 경부선(수원 이북)이 그랬던 것처럼, 경원선에는 용산에서 신탄리까지 디젤 동차가 다녔다(아마 비둘기호급?). 1974년의 광복절에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하고 경부선· 경인선과 심지어 경원선의 일부 구간이(성북까지) 1호선에 편입되어 전동차가 직결 운행하기 시작했지만, 그때 경원선에는 아직 변화가 없었다. 다시 말해 회기-성북은 1호선 전동차와 기존 경원선 디젤 동차가 선로를 공용했다.

오히려 경원선은 철거당할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1969년, 박통 시절에 서울의 유명한 자동차 도로인 강변북로가 건설되었는데, 경원선을 그냥 철거해 버리고 그 부지를 이용해 도로를 손쉽게 건설하자는 제안이 채택될 뻔했던 것이다. 그렇잖아도 경원선 서울 시내 구간은 도시 개발에 방해가 되고 잉여력만 펄펄 넘쳐 보였으니 말이다. 그 당시엔 용산과 청량리 사이에 어차피 역도 거의 없다시피했다.

그러나 이때 사명감 있는 철도 관계자들은 경원선을 절대로 철거해서는 안 된다고 그 의견에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우리나라 철도 건설사의 산 증인인 정 진우 박사의 저서 <평생 인연 철도 건설>을 보면 그 일화에 대해 잘 소개돼 있다. 저분은 경원선을 살렸을 뿐만 아니라 <경부 고속철 건설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쓰고 우리나라에 고속철의 필요성을 적극 역설한 고속철 전도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저 책은 철덕들에게 강추인 아주 유익하고 귀한 문헌이니, 일독을 권한다.

저런 분들 덕분에 경원선은 철거와는 반대의 운명을 갔으며, 1978년 12월, 서울 지하철 1호선에 이어 별도의 복선 전철 노선으로 거듭났다.
비록 1974년 8월만치 유명한 날짜는 아니지만 철덕이라면 저 날짜도 잊지 말자. 이를 계기로 성북 역은 지하철 1호선과 국철의 동시 종점이 되었으며, 그 이남은 두 노선이 공히 디젤 동차가 완전히 퇴출되었다. 그리고 강변북로는 철길을 건드리지 않고 강변과 더 가까이로 건설되었다.

경원선 용산-이촌 사이에는 절연 구간(사구간; dead section)이 있다. 직류· 교류가 바뀐다거나 변전소가 바뀌어서 그런 건 아니다. 철길 위로 지나는 어느 노후한 교량의 높이가 너무 낮아서 전차선을 설치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잠시 전력 공급이 중단된다. 그런데 거기는 그렇잖아도 급커브 때문에 열차가 굉장히 천천히 달려야 하는데, 관성으로 무동력 운행까지 해야 하니 좀 불안하다.

서빙고 역 근처에는 아예 평면교차 건널목이 있고 열차가 지나가기 전에 차단기가 내려온다. 덜덜~ 전동차가 지나는 길목에 건널목이라니. 1호선도 북쪽 어느 구간에 딱 하나 아직 입체화가 되지 않은 건널목이 있다. 건널목 있지, 일반열차도 가끔씩 취급하지, 1호선과 공용하는 선로가 있지...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국철 경원선은 지하철 수준의 증차가 곤란하다.

게다가 경원선 국철은 옛날엔 사람과의 평면교차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용산 이남으로는 어차피 운행을 안 하니까 별 문제될 게 없는 반면, 청량리-회기에서는 1호선과 합류해서 같이 성북으로까지 가야 하는데 여기에도 평면교차가 존재했다. 용산에서 출발한 경원선 전동차가 1호선의 상행(=원래 경원선인) 선로로 합류하기 위해서는 1호선 하행의 선로를 필연적으로 침범해야 했다.

예전에 성북, 의정부 방면으로 가는 1호선 상행 전동차들이 청량리-회기 구간에서 심심하면 정체· 서행을 반복했던 주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 말이다.
과거엔 1호선의 남쪽 끝인 수원 역에도 전동차가 아예 일반열차 선로를 침범하여 회차하느라 평면교차 장애가 있기도 했으니... 1호선은 이렇듯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병목 지점들이 존재했다. 덧붙이자면, 인천 역은 평면교차 지장은 없지만 인상선도 없는 열악한 두단식 승강장이어서 회차 성능이 영 안습이었고.

그러다 국철 경원선에 봄이 찾아온 것은 2005년, 덕소 역까지 수도권 전철 중앙선이 개통하고부터이다. 이 국철은 운행 계통상 경원선이 아닌 중앙선으로 편입되었고, 청량리-성북 구간에 더부살이를 하지 않는 별개의 노선으로 독립해 나갔다. 평면교차 장애가 없어진 것은 보너스. 과거에 안산선이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경부선 지선처럼 운행되기도 하다가 결국은 4호선으로 운행 계통이 완전히 분리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중앙선은 고유 노선색(옥색)까지 부여받았다! 더는 이름 없는 국철이 아니다.
옛날에는 이 노선에 이름도 없어서 안내방송조차 “옥수· 청량리 행 열차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였는데 이제는 다 지나간 얘기. 이미 수 년 전부터 '중앙선'이라는 당당한 이름이 생겼다.

2000년도에 서울시에서 기존 지하철과 직통 운행을 하는 국철들은 다 지하철 호선 번호로 노선명을 통합했다. 그런데 용산-성북 국철은 지하철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면서 1호선에 또 붙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분당선만치 독립적인 노선도 아니다 보니, 꽤 오랫동안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중앙선부터 시작해 경의선, 경춘선 등 워낙 국철들이 많이 개통하다 보니 국철이라는 말은 조용히 사라지고 각 노선명을 따로따로 부르는 게 대세가 되어 있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2009년에 드디어 수도권 전철로 탈바꿈한 경의선도 옥색 노선색을 쓰고 있고,
경의선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수도권 전철로 탈바꿈한 경춘선은 마치 중앙선에서 분기하는 지선 같은 위상으로 동일한 옥색을 쓰고 있다.
옛날에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선은 빨강, 국철들은 다 회색을 쓰던 노선 배색이, 회색이 옥색으로만 탈바꿈하여 되돌아온 게 아닌가 모르겠다.

다만, 경의선과 경원선은 궁극적으로 상호 직통 운행을 하여 파주에서 양평까지 한큐에 가게 하겠다는 계획이 잡혀 있으니, 지금부터 동일한 노선색을 쓰는 게 합리적인 정책이긴 하다. 오오~ 40년 전에 철거 위기까지 맞았던 경원선이 이 정도면 가히 장족의 발전을 한 게 아닌지?

이들에 이어 다른 국철인 분당선은 왕십리까지 올라가고 수원까지 내려가서 수인선하고까지 직결이 계획되어 있다! 노랑 국철과 옥색 국철의 거대한 발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경의선과 경원선이 만날 때쯤엔 건널목도 입체화하고, 특히 용산-이촌 사이의 절연 구간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경원선상에 있는 용산과 회기 역이 6, 7년 전에 비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변했는지가 아직까지 기억에 선하다. 특히 용산은 KTX 정차역으로까지 지정되었으니, 비록 광장은 서울 역보다 좁지만 건물 덩치는 서울 역보다 더 커졌다.
왕십리와 청량리 역은 크고 아름다운 민자역사로 바뀌었고 청량리의 경우 역시나 거의 30년 만에 지하철과 국철역 사이의 환승 통로도 드디어 생겼다.

왕십리 역은 민자역사가 생기기 전에는 마치 신도림 역처럼 코레일 관할의 역사 자체가 없어서 이것도 2호선과 동시 개통한 최신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그렇지는 않다. 경원선의 이 지점에 역 자체는 이미 일제 강점기 때부터 있었기 때문에 역사가 아주 길다.
저런 메이저 역들과는 달리 응봉, 한남 같은 역은 서울 도심의 시골 간이역 같은 정취가 여전히 물씬 풍긴다. 직접 가 보면 안다. 응봉과 옥수 역은 굉장한 곡선 승강장역으로도 유명하다.

성북 역은, 경원선 국철이 없어지고 최근엔 경춘선 무궁화호도 없어지면서, 역의 규모에 비해 이제 1호선 전철만 탈 수 있는 평범한 역이 되어 버렸다. 경원선이 북한으로까지 뻗어나갔으면 가히 강북의 영등포 같은 역이 됐을 텐데 아쉬울 뿐. 그래도 국철과 경춘선으로 인해 야기되던 고질적인 평면교차는 완전히 사라졌으니 앞으로는 1호선 하나만이라도 쌩쌩 운행 잘 해 주길 기대하겠다.

중앙선이 이렇게 발전하고 있는 동안 1호선이 접수하고 있는 경원선 북쪽 구간도 전철의 세력이 커져서 지금은 무려 소요산까지 가 있다. 디젤 동차인 CDC가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짤막한 단선 비전철 구간을 생각하면 그저 안습뿐. 거기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1시간에 한 대꼴 열차보다는 차라리 20분에 한 대꼴 셔틀버스를 굴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끝으로 경원선을 접수하고 있는 용산 역하고, 우리나라 킹왕짱 역인 서울 역과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서울 역은 지금의 민자역사 말고 옛날 건물 시절부터 거의 공항 수준으로 크고 아름다웠고, 이름에 걸맞게 경부· 호남· 전라· 장항선에 심지어 경의선과 교외선까지 혼자 다 취급하던 역이었다.
그랬는데 고속철이 개통하면서 뭔가 서남쪽으로 가는 호남· 전라· 장항선 노선은 용산 역으로 이사를 갔다. 이것 때문에 지역 차별이라고 굉장히 불만을 품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행선지별로 역이 이원화하는 것은 결코 나쁜 현상이 아니다. 청량리 역이 중앙· 경춘· 영동· 태백선 열차를 취급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강원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아무 불만 없었는데. -_-
역을 이원화하는 주 이유는 두말 할 나위도 없이 회차 용량과 취급 가능한 열차수를 늘리기 위해서이다. 거의 10분 간격으로 운행 가능한 그 많은 KTX 열차들을 서울 역 부지에다가만 세워 두기엔 공간이 부족하잖아? -_-;;

더구나 용산 역은 앞으로 경의선까지 뺏어 와서 경의· 경원· 중앙선 횡축에다 1호선 종축의 연계 전철망까지 구축하게 된다. 서울 역에서 출발하는 경의선은 회송 열차 트래픽도 있고, 또 신촌 같은 역도 있다 보니 아주 없애지는 못하지만 여객 전철은 여전히 1시간에 1대꼴로 아주 뜸하게 운행된다. 경의선이 비주류인 대신 서울 역은 잘 알다시피 공항 철도를 확보해 있다.
이렇듯, 서로 일장일단이 있으니
서울· 용산 구분이 무슨 지역 차별이라는 식의 말은 없었으면 한다. 용산구도 의심의 여지 없이 서울의 중심부이다.

생각해 볼 문제:
국철을 탈 때와 지하철 1호선을 탈 때 용산-회기까지 소요 시간의 차이는 어느 정도 날까?
비슷한 문제로 공덕-청구(5, 6), 영등포구청-왕십리(2, 5), 도봉산-온수(1, 7)의 경우도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03 08:43 2011/06/0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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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 관련 여러 잡설

1. 떼제베가 도입되기까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고속철인 KTX에 대해서 적지 않은 양의 글을 썼지만,
차량으로 하필 프랑스 떼제베(TGV)가 선정된 경위에 대해서는 딱히 다룬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고속철을 만들기로 결정을 내린 때는 무려 1989년 5월. 노 태우 정권 시절이며 아래아한글 1.0이 나온 지 얼마 안 되었던 시절이다.
고속철 건설에 대한 타당성 조사는 이미 1983년에 했다. 경부선의 선로 용량 포화는 이미 그때부터 예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2년 6월 30일, 시험선 구간에 속하던 천안아산 역 건설 예정 부지에서 고속철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참고로 1992년이면 서해안 고속도로와 인천 공항도 갓 건설을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이 고속도로와 공항은 완전 개통과 개항이 2001년이었으므로, 고속철도 질질 끌지 않고 2001년에만 잘 개통했다면 21세기가 처음 시작된 2001년은 그야말로 고속도로에, 고속철에, 공항, 게다가 서울 2기 지하철(5~8호선)까지 한국 교통 혁명의 원년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인천 공항과 더불어 단군 이래 최대의 건축 사업이었던 고속철이 순조롭게 추진되기에는 역경도 너무 많았고 정치· 경제적 악재도 너무 많았다.
그나마 서울시 교통 혁명 원년이라 일컬어지는 2004년에 1단계 구간이라도 개통한 게 다행.
다른 건 몰라도 버스 개편의 결과물인 초록-파랑 버스는 이제 여타 지방에서도 유행처럼 다 따라하고 있으며, 오히려 서울 버스와 다른 형태로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는 경기도 버스만이 독자적인 도색을 여전히 쓰고 있다.

이렇게 선로부터 먼저 공사를 시작한 뒤, 도입할 차량은 1993~94년에 결정되었다. 한국이 고속철을 만들겠다고 하자 차량 납품 경쟁에 뛰어든 고속철은 잘 알다시피 일본의 신칸센 300계, 프랑스의 떼제베(TGV)-R, 그리고 독일의 이체(ICE) 이렇게 3종이었다. 이때 워낙 경쟁이 치열했고 저마다 솔루션들의 성능이 호각이었기 때문에, 어쩌다가 하필 떼제베가 선택되었는지는 협상에 관여했던 우리나라 고위 관리가 아니면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일본이 가장 먼저 탈락했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아주 가까워서 기술 지원 받기도 쉽고 이미 자국 내에서 고속철을 수십 년째 무사고로 잘 굴리고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탈락한 이유로는,
한국이 요구하는 것만치 기술 이전에 소극적이어서, 수출 경험이 없어서, 원래 차량 폭이 우리나라의 철도역 규격보다 커서, 아직 시속 300을 못 내는 차종이어서... 같은 것들이 나돌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심지어 반일 감정 루머까지도.. -_-

일본은 기존선에는 작은 협궤 열차가 다니지만 표준궤로 건설된 신칸센은 폭이 오히려 한국의 표준궤 열차보다 더 크다. 또한 당시 신칸센 300계의 영업 표준 속도는 시속 300에 약간 못 미치는 270 남짓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정도 규격상의 차이나 한계는 신칸센을 한국형으로 로컬라이즈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극복 가능할 정도로 사소한 것이기 때문에, 기술의 한계가 일본 탈락의 본질적인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가 구입한 떼제베 차량은 프랑스 내부에서도 신형은 아니고 몇 년 굴린 적이 있는 기종이었다. 그러나 무사고로 안정성이 입증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국으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 거기에다 프랑스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문화재 반환 떡밥까지 내세우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외교 로비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기술력은 세 나라가 모두 비슷하니 로비가 승부를 가른 듯하다.

그래서 아마 1998년이었지 싶다. 김 대중 정권 때 드디어 KTX 시제차인 1, 2편성이 국내로 반입되었으며, 그렇게 12편성까지는 떼제베 제작사인 알스톰 사에서 만든 차량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러다 13부터 46편성까지는 우리나라의 현대 로템이 면허를 받아 차량을 조립 생산했다. 과거에 방산 업체인 대우 정밀에서 미국의 M16 소총을 면허 생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국에 도입된 떼제베 차량은 지금까지 한국 철도에서 등장한 적이 없는 무려 20량 1편성에 맞춰져서 전동기의 출력도 더욱 증가되었다. 열차 속도만 톱클래스가 아니라 수송력도 톱클래스. 1편성의 탑승 인원수는 935명인데, 이 역시 수요 예측에 의해 산출된 크기이다. 지금의 KTX 이용객 수를 감안한다면 넉넉하게 잘 잡았다.
200x년, 고속철이 정식 개통하기 전에 이 차량은 경부선에서 간간이 시운전을 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참고로 이 차량 한 편성 전체의 가격은 거의 600억 원이 넘는다. -_-;;

46편성을 편도인 절반으로 나누면 23편성, 그리고 열차가 종점에서 종점까지 넉넉잡아 3시간이 걸린다고 잡으면, 그 회전율을 감안했을 때 열차를 대략 8분 간격으로 쉴 새 없이 투입할 수 있다. 1시간에 대략 7편성의 열차를 내보낼 수 있다는 뜻인데(경부, 호남 모두 합쳐서), 하루에 18시간 동안 이런 식으로 승객을 꽉 채워서 열차를 굴리면 이론적으로 하루에 수송 가능한 승객수는 11만 명에 달한다.

우리나라에 고속철을 도입한 위정자들은 저런 식의 계산을 한 끝에, 도입 편성수와 1편성 승객수를 지금처럼 결정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 당시 이미 새마을호에도 있던 콘센트가 고속철 객차 안에 없던 이유는 당연히... 지금처럼 전자 기기의 수요가 많지도 않았고, 서울-부산을 1시간 58분 만에 주파할 걸로 예상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편의 시설의 필요를 고려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콘센트뿐만 아니라 식당칸까지도 과감히 생략하였으나, KTX 산천에서는 다시 생겼다.

2. 가축 수송

KTX가 개통하기 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마을호 이미지 때문에, 빠른 열차일수록 호화로운 소수정예 귀족 열차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철도 선진국들의 철도 운영 방식은 전혀 그렇지 않다. 빠른 열차를 더욱 가축 수송으로 만들어 주류 교통수단으로 굴린다. 오죽했으면 2층 객차까지 만들 정도. 새마을호가 아니라 지하철처럼 운행한다.

일본의 신칸센은 아예 지하철과 동일한 동력 분산식 열차에다가 승강장까지 고상홈이다. 지정석보다는 자유석 위주의 영업을 한다. 일본의 경부고속선이라 할 수 있는 도카이도 신칸센에는 8분 정도가 아니라 아예 5분 간격으로 시속 200이 넘는 괴물이 수시로 굴러다니며, 한 편성당 900명도 아니요 1300명에 달하는 승객을 태우고서 도쿄, 나고야, 오사카를 횡단한다. 이 정도의 승객수와 배차 간격이면, 좌석 지정이 아니라 열차 지정도 무의미하지 않을까? 진짜 속도만 빨라진 지하철이나 마찬가지이다.

집값 살인적으로 비싸고 자가용 몰기 버거운 건 세계 어느 대도시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은 더욱 그렇다. 도저히 도쿄 근처에서 있을 수가 없어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지만 매일 도쿄로 출퇴근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신칸센 말고는 답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신칸센이 박리다매 덕분에 운임이 싸기라도 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고 오히려 동일 노선의 일본 국내선 비행기보다도 더 비싸다는데... 그래도 신칸센은 절찬리에 운행 중이라고 한다. 정기권 같은 할인 제도는 있지 않을까 싶다.

몇 년 뒤에 새마을호 디젤 동차가 완전히 퇴출되고 나면 우리나라의 철도 문화도 일본과 비슷하게 차츰 바뀔 것이다.

3. 독일 고속철의 대형 사고

독일은 잘 알다시피 장인 정신으로 기계를 잘 만드는 나라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U보트, 자동차 포르쉐, 폭스바겐, 벤츠 등 유명한 작품이 많으며 독일은 또 전기 철도의 메카이기도 하다. 독일의 ICE는 앞서 언급했듯이 프랑스 TGV와 끝까지 경합하던 한국 고속철 입찰 후보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98년 6월에 ICE는 세계의 고속철 역사상 최악의 사고를 내서 기술 강국 독일의 명성에 큰 오점을 남긴 바 있다. ‘에세데 사고’라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시길.

우리나라에서는 KTX가 처음 개통하던 당시, 시속 300으로 달리면서도 물컵에서 물이 쏟아지지 않을 정도로 승차감이 좋다고, 경부 고속선의 장대 레일과 KTX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홍보했다.
그런데 ICE 초창기 차량은 주행 중 소음과 진동이 매우 심했던가 보다. 승객들의 불만이 빗발치자 차량 제작 업체에서는 임시방편으로 차량의 바퀴를 교체하고 바퀴에다 외피를 씌우고 여차여차 형태를 바꿈으로써 당장은 소음과 진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패치’가 불량하여 열차의 고속 주행 중에 대형 참사를 일으켰다. 바퀴에다 씌웠던 외피가 금속 피로도를 이기지 못하고 끊어지고, 객차와 선로에다 큰 충격을 주어 이들을 파손했다. 이 여파로 객차들은 줄줄이 탈선하였고, 옆에 있던 다리와 차례로 꼬라박은-_- 후 쌓였다. 육중한 열차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다리는 붕괴.

열차는 박살이 났으며, 400여 명의 승객 중 무려 101명 사망, 88명이 중상을 입었다.
“금속 피로도의 증가로 인한 사고”라는 점에서는 1985년 8월의 JAL123기 추락 사고와 동질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열차의 탈선과 완파, 건축물과의 충돌, 100명이 넘는 사망자”라는 점에서는 일본 철도 역사의 악몽으로 기록된 2005년 4월의 JR 후쿠치야마 선 탈선 사고와 비슷한 것 같다.
하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저 사고도 철도 왕국 일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안긴 참사였다. 가혹할 정도로 정시성을 강요하는 업무 강도에 적응 못 하던 어느 젊은 초짜 기관사가, 열차 지연을 만회하려고 급커브를 과속으로 돌다가 사고를 냈고 기관사 자신도 그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기관사는 각종 사고 희생자 추모식에서도 추모 대상에서 제ㅋ외ㅋ되었다는 후문.

그래도 일본의 경우는 통근형 전동차일 뿐이고 신칸센이 사고를 일으킨 적은 없기 때문에, 고속철 사고는 독일의 저 사고가 최악의 기록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사고를 일으킨 차종은 1세대 ICE였고 독일이 한국에 제안한 차종은 아직 알파테스트 중이던 2세대 ICE였다. 만약 우리나라가 ICE를 도입해 있던 와중에 저런 사고가 났다면, 한국의 고속철 개통에도 먹구름이 끼고 애로사항이 활짝 꽃피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가 괜히 짬 많이 먹고 안정성이 검증된 차량을 선택한 게 아니다.

물론, 이건 다 지나간 일이고 지금 독일 고속철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고속철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대한 항공도 198, 90년대엔 하도 사고가 많이 나서 미국에서 공무원들에게 “한국 출장 때 대한 항공을 이용하지 마세요” 권고를 할 정도였으나... 이 역시 옛날 이야기이고 지금은 대외 이미지가 많이 개선되지 않았던가.

4. 화물 수송

빠른 교통수단이 등장하면 그 전부터 있던 느린(?) 교통수단은 화물 위주로 개편된다.
항공의 경우, 미국은 아음속기인 보잉 747 점보 여객기를 개발하면서, 미래에 초음속기가 여객기의 주류로 등극한다면 보잉 747은 대형 화물기로 개조할 계획도 세워 놓고 있었다.

철도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고속철이 그것도 별도의 고속선에서 영업을 시작하고 나면, 기존선은 단거리 통근 열차나 화물 열차 세상으로 바뀌곤 했다.
땅이 워낙 넓어서 자동차나 비행기가 발달해 있는 미국에서 철도의 주 수요는 역시 화물 수송이다. 길이가 1km가 넘고 다 지나가는 데 3분 가까이 걸리는 화물 열차들을 심심찮게 본다. -_-;;

철도에서 화물 열차는 통과 우선순위가 최하이다. 그러니 특히 단선에서는 속도가 가히 극악일 수밖에 없다. 컴퓨터 용어를 쓰자면, 정규 여객 열차 스케줄을 피해서 남은 선로 용량만으로 다니는 idle time(잉여 시간-_-) processing이다.

서버가 아닌 클라이언트 컴퓨터라면 아무래도 사용자가 내리는 반응에 즉각 반응하는 게 최고로 중요하다. 철도로 치면 여객 열차의 속도와 우선순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윈도우 운영체제의 경우, 탐색기 explorer와 작업 관리자 taskman은 최상급(real time priority)까지는 아니어도 스레드 우선순위가 상급(high)으로 설정되어 있다. 사용자의 동작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쉘이다 보니, explorer의 반응성이 곧 시스템 전체의 반응성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또한, 컴퓨터 상태가 아무리 막장이더라도 Ctrl+ESC를 눌렀을 때 시작 메뉴는 떠야 하고, 먹통이 된 프로세스를 작업 관리자로 죽일 수 있으려면 작업 관리자 자체도 우선순위가 여느 프로세스들보다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선순위가 높다고 해서 언제나 이들 프로세스가 CPU 시간을 늘 잡아먹기만 하고 지내는 건 아니다.
서버용 운영체제는 그렇게 쉘보다는 background 프로세스나 서비스에 CPU가 더 우선적으로 배당될 것이다. 철도로 치면 여객 영업을 하지 않는 화물 전용 철도와 비슷한 위상인 걸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1/02/16 08:28 2011/02/16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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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서울 지하철 609 편성

서울 지하철 6호선 하면 2기 지하철 중에서 전구간이 가장 늦게, 21세기가 돼서야 개통한 지하철인 동시에 전대미문의 튀는 전동차 구동음으로 유명한 노선이다. 2000년대 초· 중반에 서울 지하철 5, 6호선의 신비로운 구동음은 내 삶의 낙이었다. 5, 6호선 모두 현대 정공이 차량을 제작했는데 어째 인버터 부품은 서로 다른 회사 것이다(5: 스웨덴 ABB, 6호선: 일본 미쓰비시). 그래서 구동음도 제각각임.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철도 차량의 핵심 기술은 일본, 유럽 등 외제 기술의 각축장이었다. 현대는 일본과 거래하고 대우는 유럽과 거래하는 식으로.. 차체 정도야 우리나라 기술로 만들기 시작했지만, 차량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전동기라든가 동력비 조절 인버터는 여전히 외제. 마치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의 차이처럼 말이다.

그런 와중에 전동차의 인버터를 국산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시범적으로 탑재된 차량이 바로 서울 지하철 6호선의 609 편성이었다. 제작사는 현대 정공(로템 법인 출범 전). 이 연구는 한국형 고속철 개발과도 관련이 있을 텐데 뭔가 협동 연구가 이뤄지지는 않았나 모르겠다.

국산 VVVF-GTO 소자를 탑재한 이 609 편성은 6호선 초기 전동차 중 하나로 바로 도입되어 시범 운행을 시작했다. 승객 수가 적고 배차가 길어서 만만했는지 6호선이 시범적으로 선택된 듯하다. (6호선은 역당 승차 인원으로 치면 그 짧은 8호선보다도 이용객 수가 적다.)

그러나 609 편성은 이내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기술 미숙 때문이었는지 인버터의 회생 제동 효율이 시원찮고 고장도 잦았다.
그래서 현업에서의 운행 빈도는 차츰 낮아졌으며, 결국 2005년에는 완전히 퇴역하고 인버터가 다시 다른 6호선 전동차와 동일한 외제 VVVF-IGBT로 교체되어 버렸다.

그 당시에 선구자적인 철도 동호인이 레어템인 609 편성 전동차의 구동음을 녹음해 놓은 덕분에 그 자료가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철도 음향 분석의 전문가인 사무엘 님은 자체 감정을 한 결과, 이 609 편성의 구동음과 가장 유사한 구동음을 내는 지하철은 대전 지하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도 구동음의 음높이가 둘이 굉장히 비슷하다. F#~G 사이인데 G에 더 가깝다.

http://blog.naver.com/sj10913/50072280911
http://blog.naver.com/sj10913/50014134335

이 블로그 운영자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음향 연구에 관심이 있는 분 같다. 위의 음향에서는 두 전동차 구동음의 음높이가 좀 차이가 있어서 609의 음높이가 살짝 더 높지만, 본인이 다른 경로로 입수한 609 구동음 중에는 음높이가 대전 지하철의 그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도 있다.
둘의 음향은 굉장히 비슷하게 들리지만 둘은 기술적인 디테일도 다르고 제작사도 서로 다르다. 그래서 더욱 신기하다.

이런 609 편성의 흑역사를 간직하고 있어서였을까?
서울 도시철도 공사(SMRT)는 서울에서는 제일 어리고 파릇파릇한 지하철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회사와는 달리 전동차 부품의 국산화와 심지어 전동차 자체 개발에 남다른 관심과 의욕을 보여 왔다.

한때는 여러 병크들 때문에 도철의 음 사장님이 굉장히 많이 까였으나, 병크가 해소되고 또 스크린도어 기술의 국산화를 잘 이끌어 내면서 나름 능력도 인정받았다.
작년 12월 말에는 SMRT에서 드디어 코드명 SR-001이라는 자체 전동차 시제품을 선보이기까지 했는데(한국형 고속철의 코드명이 HSR-350이었던 것처럼), 사장이 직접 나서서 열정적으로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http://blog.naver.com/ianhan/120121006513

마침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연장을 앞두고 전동차가 더 필요해지기도 한지라, 양산형 차량은 7호선 3차 도입분 차량으로 곧바로 투입될 것이다.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는 6호선이 아닌 7호선이 혜택을 입을 예정.

역사가 워낙 짧아서 21세기 이래로 단 한 번도 신형 차량이 들어온 적이 없었고 전동차의 내구연한 연장으로 인해 더욱 그럴 가능성이 낮아진 서울 2기 지하철에, 새로운 바람이 예상된다. 사실 큼직한 통유리에 조용한 VVVF-IGBT 소자라는 오늘날 신형 전동차의 큰 트렌드는 서울 지하철 7·8호선 2차 도입분 전동차에서야 드디어 정착한 셈이다.

아니나다를까 저 행사가 열렸던 장암 차량 기지 한켠에는 SR-001과 나란히 과거의 609 편성 전동차도 함께 전시되어 눈길을 끌었다.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보인다.

경부 고속철의 경우, 2차 개통을 계기로 일단 KTX가 예전보다 워낙 증편되다 보니 신형 차량인 KTX 산천도 더욱 많이 투입되었다. 산천은 잘 알다시피 프랑스 떼제베가 아닌 국산화 차량인데, 시설은 좋은 반면 아직도 이따금씩 고장을 심심찮게 일으킨다고 들었다.
기술이 살 길이다. 과거 나로 호의 실패도 그렇고 첫술에 배부를 수가 없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한국 철도 기술도 점차 성숙해 갈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이 나라에 이공계 엔지니어가 더욱 대접받는 풍토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_-;;

Posted by 사무엘

2011/01/15 19:28 2011/01/1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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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등형 동차 DEC, EEC 쌍둥이

요즘 철도계엔 계속해서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12월부터 서울-부산 무정차 KTX가 하루 1차례 시범 운행을 시작한 데(6년 만의 부활. 서울-부산 2시간 8분. 그것도 최신형 산천 차량으로!) 이어, 지난 15일엔 마산으로 가는 경전선 KTX가 등장했다. 게다가 KTX 2차 개통으로 인해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새마을호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청량리-안동의 중앙선 노선에 새마을호가 4년 만에 부활했다!
사실 지금 중앙선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복선 전철화와 선형 개량이 진행되면서, 30여 년 전에 경부선이 그랬던 것처럼 전동차가 운행되고 운행 시간이 단축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오늘은 또 옛날 철도 얘기를 좀 하겠다.
여러분은 옛~날 사진이나 그림책에서 이렇게 생긴 철도 차량을 본 기억이 있는가? 이건 물론 한국에서 현역으로 운행된 적이 있으며, 본인이 철덕으로 빠져들기 훨씬 더 전에 이미 은퇴하여 자취를 감춘 열차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앞부분은 뭔가 선박 같은 느낌이 든다. 운전석 창문이 마치 2층이나 되는 듯이 좀 높다.
비슷한 디자인으로는 비행기 중에서 보잉 747 같은 기종이 있다. 이건 크기도 크거니와, 화물기 개조를 염두에 두고 전면부 뚜껑을 화물 적재를 위해 완전히 개방할 수 있게 하려고 조종석이 2층으로 올라간 형태로 설계되었다.
이렇듯, DEC, EEC의 모습을 보니까 선박 생각도 나고 비행기 생각도 난다. 일본의 신칸센 역시 앞부분의 디자인이 초창기인 0계부터 비행기(단, 여객기가 아닌 전투기-_-) 컨셉이었으니 나름 설득력 있는 추론인 듯하다. 어쨌든...

EC로 끝나는 이 두 종류의 차량은 비슷하게 1979~80년 사이에 도입되었다가 2001년 초에 모두 은퇴하였으나, 기관차-객차 일색이던 20세기 당시의 우리나라 철도계에서 아주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 신선한 차량이었다. 그때는 기관차가 아닌 동차 자체가 동력원을 불문하고 상당한 레어템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핵심 기술인 엔진이나 전동기는 수입이지만 어쨌든 이들 차량의 생산 주역은 대우 중공업이었다.

DEC와 EEC 모두 앞부분은 비슷하게 저렇게 생겼다. 차이가 나는 부분은 동력원으로, D는 기름으로 달리고 E는 전기로 달린다. 위의 사진은 EEC이다. EEC는 앞부분 끝에 운전석이 차지하는 공간이 마치 지하철 차량만큼이나 아주 작은 반면, DEC는 엔진이 차지하는 부분이 지금의 새마을호 디젤 동차 정도의 길이는 된다. 즉, 동력차 안에 딸린 공간은 DEC가 EEC보다 더 작다는 뜻. 이뿐만이 아니라 열차 한 편성의 차량 수(=수송력)도 10량 편성 EEC가 5량 고정 편성인 DEC를 훨씬 더 능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청이 EEC와 함께 DEC를 도입한 것은 일단 그때에는 한국 철도에 비전철화 구간이 월등히 더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전철화 여부를 넘어서 도입 목적 자체가 둘이 근본적으로 서로 달랐다. DEC는 새마을호 등급을 염두에 두고 역시 경부선, 전라선, 장항선 등에서 활약한 반면, EEC는 태백· 영동선 같은 전철화 구간에서 기존 전기 기관차의 느린 속도를 개선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활약하던 지금의 8000호대 전기 기관차는 견인력이 무식하게 세서 화물용으로는 좋지만, 시속 80 남짓밖에 못 내는 느림보여서 속도를 중요시해야 하는 여객용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열차 이름을 구성하는 영어 이니셜에서, 첫째 글자는 상술했듯이 이 차량의 동력원을 의미하고, 다음으로 둘째 글자 E는 우등(excellent)을 의미한다. 물론 30년 전의 관점에서 우등이었을 뿐이지, 화장실이 비산식이고(오물이 선로 밖으로 그대로 배출..;;) 편의 시설은 지금의 누리로 비해서도 훨씬 더 열악한 건 여전했다.

한국 철도의 역사를 좀 아는 분이라면, 무궁화호와 통일호라는 명칭은 새마을호보다 나중에 등장했다는 걸 알 것이다. 새마을호라는 명칭은 ‘관광호’의 후속 명칭으로 1974년부터, 즉 EEC· DEC의 도입 이전부터 이미 있었기 때문에 훗날 DEC는 곧바로 새마을호라는 등급으로 운행되었다. 하지만 무궁화호· 통일호라는 명칭은 EEC가 도입된 뒤인 1984년부터 쓰였다. 그 전에 오늘날의 ‘무궁화호’에 해당하는 열차는 그냥 ‘우등 열차’였고 EEC의 도입 계급도 이 계급이었다. 둘째 글자 E가 이런 의미였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

요컨대 오늘날 가장 만만한 최하위 등급이 된 무궁화호가 원래는 우등이었고, 새마을호는 넘사벽 귀족 특급이었다는 뜻이다. 아울러, DEC는 외형은 좀 비슷해도 기술적으로는 EEC보다 한 수 아래였음에도 불구하고, EEC보다 더 고급 열차로 기획되었다는 것도 아이러니이다. 물론 이들은 다 세월이 흐르면서 비슷하게 무궁화호와 통일호로 강등을 거친 후 퇴역했지만 말이다.

DEC는 그냥 기름으로 달리는 열차가 아니었다. 유압 변속기를 이용하여 순수하게 디젤 엔진의 동력으로만 달리는 지금의 새마을호와는 달리, DEC는 디젤 동차이면서도 디젤 엔진으로는 전기를 생산하여 전기의 힘으로 달렸다. 기관차야 요즘의 특대형 기관차들은 다 디젤-전기 기관차이지만 동차 중에 디젤-전기 방식이 존재했던 것은 한국 철도 역사상 DEC가 유일했다.
그래서 기름으로 달리는 주제에 회생 제동 같은 전동차의 특징도 일부 갖고 있었다. 디젤 엔진은 동력 집중식으로 있고, 전동기는 동력 분산식으로 달린 아주 특이한 형태였다. 흠좀무..;; 새마을호뿐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등장한 NDC, CDC 같은 디젤 동차들은 디젤-전기 방식이 아니다.

이제 와서 뒤늦게 -EC 차량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글을 쓰니, 마치 모아(moa)라든가 여행비둘기처럼 멸종해 버린 옛날 동물을 책으로 대하는 것 같은 애환이 느껴진다.
DEC의 명목상 후손은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라는 두 계열로 나뉜다. 먼저 그 이름도 유명한 새마을호 디젤 동차이다. 유압 변속기가 특징이라고 하여 DHC라고도 불린다. DHC는 1987년에 6량 편성이 첫 선을 보인 후 8량으로 확장되었고 대우뿐만 아니라 현대와 한진 중공업에서도 1994년까지 생산했다. 이들 동차는 동력차와 객차가 거의 일심동체이고 자기네만의 인터페이스가 있기 때문에... 객차가 기관차형 새마을호의 그것과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고 한다. 둘은 규격이나 좌석이나 인테리어 같은 외형은 서로 거의 동일한데도 말이다.

과거의 새마을호 객차 중에는 훗날 무궁화호로 강등되어 ‘유선형 무궁화호’가 된 놈이 있긴 했지만, 지금 현역으로 뛰고 있는 새마을호들은 내장재가 비정상적으로 너무 좋아서 하위 열차로 강등될 수가 없다. 강등은커녕 그대로 놔두기만 해도 KTX와 경쟁하는 위치에 있게 되니 이거 원...;; 요즘은 전철이 대세여서 기름으로 달리는 차 자체가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 새마을호는 앞으로 수 년 내에 내구연한이 끝나면 바로 폐차될 것이다.

DEC를 2~4량 짤막한 무궁화호 등급으로 계승한 열차는 두말 할 나위 없이 NDC이다. 1984년에 대우 중공업에서 생산한 열차이지만 현역으로 있으면서 고장이 굉장히 잦았다고 하며, 2006년부터 은퇴와 폐차가 시작되어 2010년 초엔 한국 철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NDC를 뒤를 잇는 한국의 마지막 디젤 동차는 바로 1996~1997년에 도입된 CDC인데, CDC 역시 경의선과 경원선에서는 전철에 밀려 입지가 매우 좁아졌고 여타 지방에서는 2008년부터 개조 무궁화호 RDC로 승격되어 운행 중이다. NDC, CDC들은 모두 동력 분산식이다.

여기까지가 DEC 설명이다.
EEC와 DEC 모두 레어템임에도 불구하고 철도 동호계에서는 EEC의 가치와 희소성을 더 높게 평가한다. 20세기에 수도권 지하철 내지 광역철도가 아니면서 장거리 간선에 동력 분산식 전기 동차가 운행된 유일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철도 선진국인 일본은 1960년대에 운행한 신칸센부터가 동력 분산식 전기 동차이고, 장거리 간선에도 지하철 같은 고상홈 전동차가 일상화되어 있었는데도...

2001년에 철도청이 DEC와 EEC의 운행을 중단하고 두 차량을 모두 폐차 처분하기로 결정했을 때, 다음 카페 철도 동호회 회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DEC는 몰라도 EEC는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에 최소한 한 량 정도는 철도 박물관에 보존이라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건의를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건의가 받아들여져서 철도 박물관에 EEC 선두차 하나가 보존된 것이다.

EEC의 그 독특한 구조를 계승한 열차는 한국에 한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2006년에 도입된 공항 철도 직통 열차가 장거리 간선형(롱시트처럼 단거리 지하철 형태가 아닌) 객실을 갖춘 동력 분산식 전동차의 첫 사례이며, 지금은 2009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누리로 열차가 한국에 EEC스러운 열차로 활약을 시작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여객은 동차가 대세가 되고, 기관차는 화물 위주로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다.

21세기부터, 혹은 KTX 개통이나 코레일 출범 이후부터 우리나라의 철도 트렌드가 크게 바뀌었다. 철도는 복선 전철과 장대 레일, 고가 입체 교차는 필수가 되었다. 우리나라에 마지막으로 기름으로 달리는 열차가 도입된 게 90년대 중후반의 CDC이고, 마지막으로 단선 철도가 건설된 건 경전선 정도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관차형 무궁화호 객차가 도입된 건 2000년대 초반이다. 거기까지가 끝이고 그 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철도를 목격하고 있다.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0/12/21 15:29 2010/12/2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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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1차 개통 시절에 대한 회상

지금으로부터 6년 반 전이던 2004년 4월, KTX가 1차 개통하던 시절의 기억이 본인에겐 아직도 생생하다.
본인은 아직 대전에 있고 학부도 졸업하기 전.
지하철 기본요금이 700원이고 서울에 아직 4색 GRYB 버스가 등장하기 전.
아직 코레일이 아닌 철도청 시절이고 바로타라는 사이트가 있던 시절. (우와!)
수도권 전철은 아직 천안이 아닌 병점까지만 가던 시절.

http://info.korail.com/ROOT/news/board_view.jsp?boardType=&bbs=bbs5&seq=94
그 당시 철도청은 정말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으면서 KTX 광고를 해 댔다. 장대 레일과 관절 대차 자랑은 가히 침이 마르도록 했던 듯. 그땐 ktx.korail.go.kr 이런 사이트도 있었다.
사실, 고속철의 등장은 극도로 정체해 있던 한국 철도계에 획기적인 활력을 불어넣는 사건이긴 했다.
위의 링크는, 그때 철도청에서 제작한 홍보 동영상 중 하나인 <KTX 이젠 우리가 뜬다>로, 나름 인상적으로 봤다.
오프닝 음악이 참 역동적이지 않은가? “빰빰!”
“KTX, 이젠 우리가 뜬다. Let's speed up Korea” ㄲㄲㄲㄲㄲㄲㄲㄲ

KTX가 자기 부상 열차라는 루머가 그 당시엔 굉장히 많아 나돌았으나, 기존선을 달리는 구간이 엄청 많다는 것만 생각해 봐도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냥 재래식 바퀴식 열차이다.

그런데, 동영상의 기술 수준을 보면 KTX가 1차 개통하던 시절이 얼마나 까마득한 옛날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동영상 보기 위해 전용 ActiveX 설치해야 된다. 게다가 이 녀석은 윈도우 비스타/7의 Aero를 꺼 버린다. 이런~ ㅠ.ㅠ
참고로 저 때는 아직 유튜브도 없었고, 플래시 7이 이제 갓 flv 기술을 개발했지만 아직 그게 대중화는 못 돼 있던 시절이다.
저 동영상도 파일로 뽑아내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KTX 개통 때문에 본인은 한편으로는 심란했다.
“난 전적으로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때문에 철덕이 됐는데, 앞으로 새마을호는 몰락의 길을 가는구나.” 때문이었다.
그래도 프로게임계도 언제까지나 스타 1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듯, 우리나라 철도 역시 언제까지나 재래식으로나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철도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KTX에다 사운을 걸고 일반열차들은 KTX 연계용으로 개편해야 한다. 그런데 새마을호는 KTX의 하위 열차로 굴리기에는 내장재가 비정상적으로 너무 좋아서 오히려 KTX의 경쟁 상대가 될 여지가 있는 열차이다.

KTX 개통 당시엔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2004년 4월 1일은 KTX 개통에 발맞추어 서울교외선 정기 열차가 폐지되었고 통일호가 없어졌다.
경춘선 통일호가 모두 무궁화호로 승격되었고(=비싸졌고), 특히 국내 최장시간 운행 열차이던 청량리-부전 전역정차 통일호도 없어졌다. 이로써 청량리 밤차를 제외하고는 중앙선을 전구간 직통 운행하는 열차가 없어졌다.
물론 당시 통일호 객차는 내구연한도 거의 끗발 수준이었고, 화장실 오물이 정화조 없이 곧바로 밖으로 배출될 정도로 정말 낡은 물건이었기 때문에 버릴 때가 되긴 했다.

전라선의 기관차형 새마을호에 있던 전무후무한 2:1 특실도 고속철 개통과 함께 현역에서 물러났다. 이거 기억하시는 분은 정말 철덕 인증. ㅋ (KTX 특실도 2:1이긴 하지만 KTX 특실의 좌석은 새마을호 일반실보다도 훨씬 못하다.)
또한 전객차가 특실 좌석이고 대전과 대구에만 정차하던 ‘구특전 새마을호’도 경부선에서 물러나 장항선에 대체 투입되었다. 장항선은 운행 거리가 짧아서 지금까지 카페 객차 같은 각종 일반열차 서비스들의 베타테스트가 우선적으로 적용되어 온 노선이기도 하다.

KTX 개통과 더불어 새마을호는 갑작스럽게 정차역이 무궁화호 수준으로 늘어서 서울-부산이 5시간 20분대까지 가기도 했고, 무궁화호는 과거 통일호가 정차하던 안양, 부강 같은 역까지 무차별 정차함으로써 서울-부산이 6시간대에 달했다. 게다가 일반열차의 운행 횟수 자체가 갑작스럽게 너무 줄었다. 소요시간의 증가보다도 더욱 나쁜 점이었다.
그 반면 KTX는? 내가 늘 강조하지만.. 서울-부산 무정차 직통 2시간 32분짜리 엽기 열차까지 있었다. 한국 철도 역사상 서울-부산 셔틀이 다닌 적이 2004년 저 때이다. ㅎㄷㄷㄷ;;; 서울-부산 4시간 10분 새마을호만큼이나 역사 속의 추억이며, 저 열차는 2004년 말의 1차 다이아 개편 때까지 다녔다. ㅋㅋㅋ

게다가 기술적으로 미비했던 점, 잦은 지연과 고장 때문에 KTX는 언론에 대차게 까였고, 광명 역도 3천억짜리 간이역이라고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2004년 가을이던가 그때쯤 열차 다이아가 1차 패치를 겪으면서 서울-부산 셔틀 KTX는 사라지고 새마을호도 서울-부산이 5시간은 안 넘게 일말의 개선이 이뤄졌다. KTX의 평균 정차역 수도 그때부터 야금야금 늘어 갔다. 그때는 아직 대전 통과 KTX는 있었으나, 2005년 11월 다이아 패치 때부터는 대전 통과도 없어져서 동대구나 대전은 무조건 정차하게 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이아는 점점 똑똑해졌다. KTX 이용객은 충분히 늘었고, 국민들 의식도 성숙했으며 열차를 ‘골라 가며 갈아 탄다’는 관념이 정착했다. 경춘선은 이제 곧 수도권 전철로 부활하고, 중앙선 전구간 직통 열차는 무궁화호 형태로 2008년쯤에 다시 생겼다.
그리고 2010년 11월, 우리나라 철도계는 다시 변혁을 겪을 예정이다. 6년 전보다는 더 스마트한 모습으로 국민을 맞이하길 기대한다.

* * * * * * *
크리스천이 아니거나 성경 교리에 관심 없는 분이라면 이 단락은 읽지 말고 skip하라.
본인의 철덕 기질 중에 Looking for you 연구와 더불어 전세계에서 거의 나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을 거라 추정되는 똘끼가 뭐냐 하면, 철도와 성경의 융합-_-이다.

2004년은 고속철의 초림, 2010년은 고속철의 재림에다가 비유를 해 봤다. 그 6년간은 교회 시대 되겠다. ㄲㄲㄲㄲㄲㄲㄲ

성경에서 사 61:1-3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초림하신 예수님도 훗날 그 구절을 읽으시면서 자기 입으로 그 예언이 드디어 성취된 거라고 선언을 하셨다(눅 4:16-19).
그런데 문제는 그 구절을 다 읽은 게 아니라 앞부분만 읽고 끊었다는 것. 보복하고 원수 갚는 건 초림 때 이루어진 일이 아니며 재림으로 미뤄졌다. 저 예언은 다 성취된 게 아니며, 사실 구약 성경에는 예수님의 초림 행적 덕분에 성취된 예언보다는 아직 안 이뤄진 예언이 더 많다.

사실, 구약 성경 시절에는 ‘주의 날(Lord's day)’이라는 개념만 있었지 그게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이라는 선로 분기가 이뤄질 거라는 걸 생각할 수 없었으며, 그 과도기에 존재할 교회라는 개념도 있을 리 없었다.
콤마 하나로 쭉 나열된 예언들이 어떤 건 무려 2천 년 뒤에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명되고 인간이 달에 갔다 온 뒤에야 성취될 거라는 사실이 정말 엄청나지 않은가?

성경에서 이런 간극을 아주 평이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은, 창 1:1-2 사이의 간극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재창조 간극 지지자들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에도 이용된다.

이건, 철도 예언-_-으로 치면 이렇다.
“21세기에 한국에 고속철이 건설되어 서울-대전이 50분, 대전-대구가 50분, 대구-부산이 40분 걸리는 날이 오리라.”
이렇게만 써 놨다면, 이 예언은 아직까지는 부분 성취이며, 1차와 2차 개통이라는 개념(6년간의 간극)이 들어가 있지 않은 문장이다. 1990년대에 고속철 기공식 하던 당시에는 공사 예상 기간도 실제로 걸린 것보다 훨씬 더 짧게 잡았다. 인천 공항 개항과 비슷한 시기에 서울-부산을 2시간대에 왕래하는 날이 올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게 질질 끌다가 실제로 대구-부산은 아직 미완성인 채로 1차와 2차로 나누어 개통하게 된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경륜이 무슨 인간 사업의 진척처럼 이리저리 휘둘린다는 말은 아니지만, 뭔가 비슷한 맥락의 비유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상, 헛소리 끗.
* * * * * * *

Posted by 사무엘

2010/10/30 19:57 2010/10/3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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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하반기는 여러 분야에서 굵직한 철도 개통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생각만 해도 즐겁다.

※ 경부 고속철 2차 개통(1차가 2004년)

1차 개통을 한 지 거의 6년 반 만의 일이다. G20 정상 회의 때문에 진행 속도가 좀더 붙었다.
이번 개통의 가장 큰 변화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드디어 대구-부산 구간에도 신선이 개통된다는 것이다. 서울-부산 운행 시간이 더욱 단축된다. 대전과 대구에만 정차하는 걸 기준으로 서울-부산을 1시간 56분으로 예측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2시간을 약간 넘긴 시간으로 좀 더 길어진 모양이다.

이것 때문에 항공 업계는 서울-부산 비행기가 더욱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울-대구 비행기가 이미 KTX에게 발리고 닥버-_-했듯이 말이다. 단적인 예로, 부산 김해 공항을 경유할 예정인 김해 경전철의 공항 역은 국내선을 배제하고 국제선 청사와 더 가까이 연결되게 건설된다.

앞으로 경부 고속철에는 신선뿐만이 아니라 기 개통 구간에도 김천구미와 오송 역이 신설되며, 아직 기존선을 사용하는 대전과 대구 시내 구간에도 시내를 관통하는 선로가 새로 생긴다. 사실, 대전-대구 사이에는 기존선 주행 구간이 너무 긴 게 문제이긴 했다. 대전의 경우 이미 옥천에서부터 고속선이 끝나고 기존선으로 빠지니 말이다.

대전과 대구의 시내 통과 구간을 지상으로 만드냐 지하화하냐 때문에 지금까지 말이 많았는데, 아마 모르긴 몰라도 조삼모사 식으로 일이 진행된 것 같다.

A: 고속철은 시내 구간을 지상으로 통과할 예정이다.
B: 꺅 꺅~ 소음과 진동 때문에 싫단 말야!
A: 싫으면 지하화할 사업비나 대던가.
B: 이미 지상 노반 다 확보해 놨습니다.
ㄲㄲㄲㄲㄲㄲ

※ 공항 철도 2차 개통(1차가 2007년)

김포-인천 공항 사이의 1차 구간이 3년 반쯤 전에 먼저 개통한 뒤, 이제 공항 철도도 서울 역으로 들어온다. 지하철들(1, 4호선)이 역의 동쪽에 있다면 공항 철도는 지금 경의선 전철이 있는 자리인 서쪽으로 입주하게 된다. 사실 공항 철도의 서울 강북 구간의 노선 자체도 경의선과 꽤 비슷하다. 둘 다 지하로 건설되지만 공항 철도가 경의선보다 더 깊게 건설된다.

환승역이 될 홍대입구, DMC, 공덕 같은 곳은 대략 대박. 이제 공항 철도도 이용객이 더욱 늘길 기대해 본다.

그런데 노선이 더 길어지는 것 이상으로 기대되는 떡밥이 있는데, 바로 공항 철도에 KTX 산천 차량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이미 경의선과 공항 철도 사이의 연결선의 건설도 확정된 상태. KTX를 타고 공항까지 간다니 뭔가 흥미롭지 않은가?

이건 코레일의 공항 철도 회사 인수, KTX 산천 도입, 공항 철도 2차 구간 등 여러 요인이 한데 어우러진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이미 거미줄처럼 구축된 공항 리무진 버스 인프라에 맞서, 단군의 후손들에게 “기차 타고 공항 간다”라는 인식을 심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공항과 서울 시내를 연결하는 철도 자체는 꼭 필요하다. 강남은 서울 지하철 9호선 급행으로, 강북은 공항 철도로, 이렇게 양분된 구도가 될 예정이다.

더구나 KTX 산천은 편성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굳이 한 편성에 무려 935명씩이나 태울 만한 지역이 아닌 곳에도 좀더 구석구석까지 고속철의 혜택을 줄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임률이 가장 높은, 쉽게 말해서 가장 비싼 철도는 KTX가 아니다. 명목상으로는 공항 철도 직통 열차-_-가 임률이 가장 높다. 1km당 새마을호가 93원, KTX는 기존선이 100원이고 고속선은 158원인데, 직통 열차는 무려 209원으로 잡혀 있다(일반 통근 열차는 82원). 그래서 김포에서 인천 공항까지 40km가 채 안 되는 거리를 가는 데 직통 열차는 무려 8천 원이 넘는 운임을 징수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하도 이용객이 너무 없어서 FM대로의 직통 운임 징수를 몇 년째 보류하고 있지만 말이다.

물론 공항 철도는 무슨 박리다매 출퇴근 통근 컨셉이 아니라, 어차피 돈 많이 쓰고 오는 여행객이 주 고객이 될 것이기 때문에 좀 비싸고 내장재가 호화로워도 된다. 또한 무거운 짐을 취급하는 시설이 더욱 발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KTX가 공항 철도에 투입된다면 운임이 어떻게 산정될지 흥미롭다. 공철 직통 열차는 KTX 1과 동일한 좌석을 쓰고 있고 임률이 이미 KTX보다 더 비싸기 때문이다. 2차 구간이 개통되면 이런 임률도 조금 개선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어쩌면 옛날에 임진강 라이너 새마을호가 독자적인 운임 체계를 썼듯이 공항 철도를 달리는 KTX는 좀 독자적인 운임 체계를 쓸 가능성도 있다.

공철에 KTX가 투입되고 나면 열차 운행 속도나 좀더 빨라졌으면 좋겠다. 영종 대교를 달리고 있노라면 열차가 일개 공항 리무진(딱 규정 속도대로만 달리고 과속을 절대 하지도 않는!) 버스들에게도 추월당한다. 원래 공철 자체도 시속 150 이상도 낼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좋은 선형으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또한, KTX가 공철에 투입된다 하더라도, 서울과 공항 사이만 오갈 뿐, 인천에서 바로 부산 방면으로 가기란 쉽지 않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이런 점에서는 차라리 인천 대교를 따라 철도를 건설해서 KTX를 인천 공항에서 서울 역이 아니라 차라리 광명 역으로 가게 한 후 경부 고속선으로 진입시키는 게 필요할 것이다.

※ 경춘선 복선 전철 개통(춘천 역은 2005년 10월부터 폐쇄됨)

이것도 꽤 오래 됐다. 세상이 참 많이도 바뀌어, 30년이 넘게 수도권 전철의 혜택에서 소외되어 있던 경의선마저 2009년부터 광역전철로 편입되었고 심지어 천안 이남의 장항선 구간까지 전철 1호선의 일부가 되었다. 중앙선과 경원선의 발전도 놀랍다. 이제 다음은 경춘선 차례이다!

그런데 성북은 물론이고 청량리 역까지 경춘선 취급 기능을 상실한다면 청량리 민자 역사 관계자들이 많이 섭섭해할 것 같다. 상봉이라는 웬 듣보잡 신설역이 경춘선의 시종착역으로 과연 굳어질까? 뭐, 선로 용량 부족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고는 하던데.

느리고 무거운 무궁화호가 다니던 단선 비전철 노선이 복선 전철로 바뀌고, 루머에 따르면 심지어 2층 전동차까지 투입된다고 하는데 나름 경춘 고속도로와 경쟁한답시고 대비를 많이 한 모양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9/29 08:25 2010/09/2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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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UI 변화 추이 복습

2010년 여름 현재,

- 2009년 말~2010년 초: SMRT와 서울 메트로 공히, 서울 지하철 모든 역들의 스크린도어 설치를 완료함
- 2010년 봄~여름: SMRT가 갑자기 승강장의 열차 진입 안내 방송을 전격 교체. 때르르릉~ 땡땡땡 소리까지 없앤 것이 놀랍다. "항상 5678 서울 도시 철도를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2010년 봄~여름: 서울 메트로가 천연색 전광판 안내 시스템을 다시 교체하기 시작함. 문자의 글씨체가 바뀌고 특히 다음에 오는 열차가 지금 몇 단계의 전역에 있는지까지 숫자로 표시해 준다.

- 2010년 여름: 코레일이 열차 안내 방송을 서울 메트로 스타일로 전격 교체. 환승역 안내 음향까지 '얼씨구나'로 변경했으며, 시종착 때 클래식 음악이 아닌 회사 CM송 교체 트렌드에 동참을 시작했다. "달려라 코레일, 에코(eco-)레일 푸른 내일" 나름 롸임 맞춘 건가? ㅋㅋㅋㅋㅋ
- 2010년 여름~: 스크린도어의 불모지이던 코레일도 각종 역들에 스크린도어 설치 공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시작.

- 앞으로.. SMRT도 승강장과 열차 내부의 전광판에, 청색을 표현할 수 없는 LED가 아닌 올컬러 스크린 기반 안내 시스템이 도입될 예정이다. 8호선에서 이 서비스가 시범 도입된 차를 가끔 탄 적이 있다.
또한 2호선의 트레이드마크이던 아날로그 시계+플랩식 전광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일반 철도역에서 플랩식 전광판의 최후 보루이던 청량리 역의 전광판도 역사가 리모델링되면서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이다.

코레일, 서울 메트로, 도철(SMRT) 중에서
- 코레일만이 아직 스크린도어 설치가 가장 미비하다. 사실 스크린도어 시범 설치는 1호선 신길 역에다 국내에서 제일 먼저 했으면서 말이다. (무려 2003년에!)
- 서울 메트로만이 The doors on your left/right 대신, You may exit ... 를 쓰고 있다.
- SMRT만이 '얼씨구나'가 아닌 클래식을 환승역 도착 음향으로 쓰고 있다. 환승역 도착 음향은 서울 2기 지하철에서 녹음된 성우 목소리가 방송으로 등장한 이래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안 바뀐 걸로 알고 있다.

서울 지하철 상식 페이지를 좀 업데이트해 줘야 하는데.. 할 엄두가 안 나서 일단 블로그에다가 기록으로만 남겨 둔다.
이 세 회사들의 전철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선 경쟁은 앞으로도 '현재 진행형'일 것으로 보이며, 다들 상향 평준화할 것이다.

21세기에 코레일이야 광역 전철이 워낙 많이 개통했으니 생긴 역이 많았지만 거의가 지상이다. 지하에 새로운 코레일 역 개통은 분당선이 전부이다.
서울 메트로는 5년쯤 전에 용두(2)와 동묘앞(1) 역이 개통한 적이 있고, 9호선의 개통 후에 3호선 수서-오금 연장 구간이 개통했다.
그 반면 SMRT(도철)는 21세기에 딱히 새로 문을 연 역이 아직 없다. 그 대신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이 마치 새 역처럼 완전히 리모델링되었고, 앞으로 5호선 강일, 8호선 우남(복정-산성 사이의 신역), 그리고 더 먼 미래에 7호선 온수-부평구청 연장 구간 떡밥이 남아 있을 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8/23 09:08 2010/08/2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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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에서 서울 메트로 방송이!

2010년 7월 1일. 분당선 전동차를 타고 출근하면서 본인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코레일이 안내 방송을 완전히 서울 메트로 스타일과 동일하게 고쳤기 때문이다.
성우 목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환승역 도착 음향도 수 년째 전통적으로 써 오던 클래식 대신, 서울 메트로의 퓨전 국악 ‘얼씨구나’로 바뀌어 있었다!

모란· 복정 역에서 ‘얼씨구나’를 듣다니, 이 어색함은 직접 들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분당선은 1기 지하철처럼 서울 메트로와 코레일이 직결 운행을 하는 곳도 아니고 100% 코레일 관할 구간인데 무슨 바람이 들어서 이렇게 바꿨는지는 모르겠다.
코레일은 지금 영어 방송에서 유일하게 남자 성우 목소리를 쓰는 회사이다. 이 추세라면 그 개성도 앞으로 없어질 것 같다.

그나저나 도철(SMRT)은 21세기 이래로 환승역 도착 음향은 단 한 번도 교체된 적이 없다. 멜로디가 유일하게 단조여서 좀 냉정한 느낌이 든다. 지난달엔 승강장 도착 멘트가 바뀌고 더 옛날엔 시종착역 알림 음향도 CM송으로 바뀌었는데, 앞으로 환승역 도착 음향이 바뀔 일만 남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참, 행복미소 마케팅 공세가 시작된 2008년 하반기 이래로 한동안 도철 구간 지하철 역에서는 노조의 회사 비판 포스터를 볼 수가 없었는데 역시 비슷한 시기인 이 달 초에 드디어 하나 출현했다.
한동안 음 사장은 무리한 에너지 절약 정책으로 인해 철도 동호인들로부터 가루가 되도록 까였으나, 최근엔 그런 병크가 상당수 해소되었고 또 스크린도어 기술 국산화 같은 업적이 드러나면서 안티가 다소 줄어든 추세라고 들었다. 그런데 다시 회사 정책을 비판하는 포스터를 보게 됐다.
노와 사의 관계는 마치 군대에서 병과 간부의 관계만큼이나 영원히 가까울 수가 없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10 09:19 2010/07/1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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