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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통 이래로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으리라 추정되는 서울 2기 지하철, 즉 SMRT(도철) 관할 5~8호선 역들의 승강장 안내 방송이 슬슬 개정되고 있는 듯하다.

역시,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덕분에 열차의 진입이 승객에게 전혀 위험을 끼치지 않게 된 것이.. 방송에도 반영되었다.
‘때르르릉~’(상행), ‘땡땡땡땡’(하행) 경보음이 사라진 건 무척 충격적이다.
그리고 서울 메트로에 이어 SMRT도 드디어 “손님 여러분께서는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멘트를 없앴다.

서울 메트로는 물러서라는 멘트가 그냥 “안전하게 승차하시기 바랍니다”로 대체된 반면,
도철은 “하차 승객부터 모두 내린 후에 승차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현재 9호선의 도착 안내 방송과 비슷한 레퍼토리를 도입했다.

또한, 한국어와 영어 공히 예전보다 더 고운 목소리로 바뀌었다. 성우가 누군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0/06/02 16:44 2010/06/0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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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도어

지금까지 전문 지하철 회사들에 비해 스크린도어 설치에 인색한 편이던 코레일도,
올해부터 전철 승강장 -- 그것도 분당선이나 과천선 같은 곳이 아닌 지상 승강장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용산과 가산디지털단지 역에 설치 중인 걸 확인했고, 경인선은 역시 이용객이 많아서인지 송내 등 상당수의 역이 이미 공사가 시작되어 있다.

앞으로 이런 지상 국철 구간 승강장에서 일반열차가 주행하는 걸 촬영하기도 더욱 힘들어질 것 같다.
지하 구간인 분당선· 과천선· 일산선엔 저런 거 언제 들어오려나?

일본은 전동차 운전실 모습까지 유리창으로 보여준다. 대부분의 역에 스크린도어 같은 건 없다. 누가 승강장 투신 자살이라도 하면, 사회에 민폐 끼친 책임을 지라고 유족에게 되려 벌금을 매긴다. 이런 일본과 한국은 철도 인프라도 다르지만 그 문화 내지 정서도 상당히 다르다. ^^;; (일본이 운임도 더 비싸고 승객을 더 자비심 없이 대하고 더 짐짝 취급한다. 단지 철도로 갈 수 있는 곳이 더 많고 정시성이 더 뛰어난 정도?)

스크린도어 관련 추가 잡설:
- 가까운 미래에 개통을 앞두고 있는 용인 경전철은 이례적으로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는다. 어차피 차량이 레일 위를 달리는 1량짜리 버스 수준에 불과한지라 선로 추락 사고가 나도 차를 급정거로 세우기 쉬운 편이며, 그런 사고라도 나면 무인 통제실에서 신속하게 대처가 되기 때문이라 한다.

- 아무리 그래도 차량 기지 임시역에까지 값비싼 스크린도어를 설치해 주지는 않는다. (7호선 장암, 9호선 개화) 그런데 광주 지하철 1호선의 녹동 역은 현재 국내에서 유일한 로프 셔터(?)가 설치되어 있다. 평소에는 이게 마치 상가의 셔터처럼 내려와서 승객과 선로 사이를 차단하고 있다가 열차 문이 열리면 그게 스르륵 위로 올라간다. 그러므로 선로와 승강장 사이에 공기는 통하기 때문에 열차풍 차단 효과는 없지만, 어쨌든 선로 투신은 확실하게 방지 가능하며, 로프 사이에다 카메라를 집어넣어서 선로를 촬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꽤 저렴하고 실속 있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 중국· 일본어 안내방송

최소한 2009년쯤부터 SMRT 도철 5~8호선의 안내 방송에 묘한 변화가 생겼다.
잘 알다시피 환승역이나 비환승이더라도 이용객이 많은 주요역에는 중국· 일본어 방송이 추가됐다.
그리고 시종착역 뿐만 아니라 환승역 방송 후에도 일부 노선은 '5678 서울 도시철도' CM송이 끝에 추가됐다. 이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본인이 예전에도 비슷한 글을 블로그에 남긴 적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모든 노선에서 그러고 있지는 않다는 것.

(거의) 모든 환승역에서 중국어와 일본어 안내방송을 덩달아 하는 곳: 6, 7호선
5호선도 종로3가, 공덕, 광화문 등 주요역에서는 중국어와 일본어 방송을 하지만 왕십리 이후의 동쪽이나 여의도 이후의 서쪽에서는 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에도 안 하며, 8호선에은 유일하게 그런 방송이 전혀 없다.

환승역 방송 후 "5678 서울 도시철도" 로고송이 나오는 곳: 7, 8호선
거 참 신기하지 않은지? 오로지 저 두 노선에서만 하고 있다.

따라서 이 두 방송을 모두 적극 실시하는 7호선이 안내방송 러닝 타임이 제일 길어져 있다.
본인은 시도 때도 없이 서는 지하철에서 일일이 4개 국어 방송이 다 나가는 거 별로 찬성은 안 한다. 역 안내 방송은 언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역명이라는 고유명사--특정 언어와 별 관계가 없는--가 더 중요한데 굳이 일일이 외국어 번역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차라리 공항 철도가 4개 국어를 다 방송하는 건 말이 된다. 거기는 음성뿐만 아니라 LED 화면 자막까지 4개 국어로 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역 간격도 일반 지하철보다는 훨씬 길기 때문에, 4개 국어 방송을 내보낼 시간적 여유도 되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4/28 18:26 2010/04/2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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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매니아 사무엘 님이 정리한 서울 지하철 인터페이스의 역사!
전적으로 기억에 의지해서 나열한 것이므로 세세한 배열 순서는 오류가 있을 수 있음.

1999~2000년: 서울 지하철 모든 역명판에 한자가 병기되고 로마자 표기도 2000년에 개정된 표기 체계대로 바뀜.
2000년: 1호선은 지하철과 국철의 구분 없이 군청색으로 노선색 통일. 굉장히 큰 변화였음
2001년: 6호선까지 전구간 개통하면서 서울 2기 지하철까지 완전 개통.

-- 아마 이 시기에 지하철 내부의 영어 안내방송도 원어민 성우로 바뀜 --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계기로, 지하철 전동차 좌석을 전부 불연재로 교체 시작. 상당한 대공사였기 때문에 거의 2005~06년이 돼서야 작업이 모두 끝날 수 있었다. SMRT는 이때 행해진 전동차 리모델링을 빌미로, 현 전동차들의 수명을 25년에서 40년으로 늘려 잡았다.
(한편, 1호선 국철 신길역. 이때 국내 최초로 스크린도어 시범 설치)

2004~2005년: 선로 안쪽 기둥에 프로젝터 스크린을 설치하여 광고를 보여주기 시작. SMRT가 가장 적극적이었는데, 하지만 스크린도어의 등장으로 인해 이런 설비는 이내 무용지물이 됨. 경마, 복권 광고가 얼마나 많이 나왔나 모른다. -_-;; 한전 <빛으로 만드는 세상> CF도 2006년에 지하철 역에서 엄청 자주 봤었다.

2005년: 서울 지하철 역사상 의미심장한 변화가 굉장히 많던 해였다.
사당 역과 김포공항 역에 스크린도어 시범 설치.
서지공 대신 서메로 사명 변경.
2호선 신형 전동차 첫 도입!
서메 구간에 1호선 동묘앞과 2호선 용두 역 개통. 승강장에 최초로 LED가 아닌 천연색 LCD 전광판 도입. 서메가 혁신적인 변신을 시작한 해이다.

2006년: SMRT가 5, 7, 8호선 역 승강장의 전광판을 모두 교체하여 꼬마열차 표시기를 추가함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출입문 닫습니다"뿐만 아니라 "출입문 열립니다" 방송도 매번 나오기 시작. 영문 안내방송에서 The exit doors for this stop ...에 있던 exit가 삭제됨. 콩글리시라는 지적이라도 있었는지?

2007년: 아마 이 무렵이지 싶다. SMRT가 5678 행복미소 마케팅 시작! 시종착 때 나오던 음악도 비발디 사계+하이든 트럼펫 협주곡이던 것이 SMRT CM송으로 교체.
5호선 답십리와 장한평 역을 지날 때는 "SMRT는 n번 출구 근처에 있습니다" 멘트와 함께 SMRT 로고송이 나온 적까지 있었는데 곧 삭제됨.

2008년: 에스컬레이터에서 걷지 말아 달라고 전국적인 캠페인.
5호선 마곡 역 개통. 급격히 늘어 가는 스크린도어. 그리고 스크린도어를 벽보 삼아서 온갖 지하철 상식과 명랑한 읽을거리로 이미지 마케팅 시작. 노조의 살벌한 포스터를 이제 더 볼 수 없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지금은 서메도 따라하는 중임)
서메, 환승역 진입 음향을 차임벨에서 "얼씨구나" 퓨전 국악으로 교체
지하철 방송에서도 이제 주요역에선 가끔 중국어, 일본어 멘트가 나오기 시작

2009년: 3호선에도 신형 전동차 도입
서메도 1234 행복열차 마케팅 적극 시작
우측 통행 트렌드. 에스컬레이터 방향 급변경
기존 지하철 역에도 9호선 컨셉 디자인 리모델링이 속속 등장 (서울남산체 등)
안전을 빌미로 인공 암반 인테리어이던 역들도 리모델링. 버티고개, 옥수 같은 역도 스크린도어로 경관이 다 가로막히게 됨

2009년 말~현재: 이제 2호선과 3호선에 구형 전동차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됨
서울 지하철 구간 전역에 스크린도어 설치 완료

SMRT 전동차에서 가끔씩 "마이크를 들고 스위치를 누르면 기관사와 통화가 가능하오니 비상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이 멘트가 흘러나오는데,
한 3, 4년 전엔 분명 남자 목소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여자 목소리로 바뀌어 있음.

Posted by 사무엘

2010/02/25 18:11 2010/02/2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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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역의 흑역사

1905년, 경부선이 개통한 당시부터 영업을 시작한 수원 역은 가히 경기도 남부의 교통 허브 역할을 맡고 있다. 지금은 새마을호 이하 모든 열차가 정차하며 백화점이 인근에 있는 민자 역사이다. 구로와 수원은 애경 백화점(AK 플라자)이, 영등포, 안양, 청량리는 롯데 백화점이 접수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덧붙이자면 서울 역은 갤러리아 백화점이다.

수원 역은 한때는 수인선과 수려선이 만나서 수직인 경부선뿐만 아니라 수평의 철도까지 교차하는 지점으로, 즉 경부 고속도로로 치면 신갈 분기점 같은 환승역이기도 했다. 비록 지금은 그 철도는 없어졌지만 걱정 마시라. 분당선이 다시 수원으로 연장되는 중이고, 수인선은 복선 전철로 재건될 예정이기 때문에 옛날의 영광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수원은 대전과 마찬가지로 경부선 덕분에 급성장한 도시이다. 비록 인천만치 터져 나가지는 않지만 인구도 100만 명을 돌파하고 광역시급 덩치가 됐다. 단순 철도뿐만 아니라 1974년에 수도권 전철이 개통한 것이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한 선로 위의 동일한 역에서 과금 체계가 다른 두 종류의 열차를 취급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예 선로별 복복선인 서울 시내 구간은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영등포, 용산, 서울, 청량리 같은 역은 여기에 속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하 모든 그림에서 파란 선은 일반열차를, 빨간 선은 전동차를 의미함)

하지만 방향별 복복선 구간에서 열차를 정차 내지 대피시킬 공간마저 충분하지 않은 역은 일반열차 승객과 전철 승객을 분리시키기 위해 머리를 좀 써야 한다. 지금의 수원과 평택 같은 역을 생각해 보면 된다. 수원 같은 경우, 전철 승객은 지하도를 통해 지하로 나가고, 일반열차 승객은 계단을 통해 윗층으로 나가고 있다. 광명 역은 이런 시설이 없기 때문에, 셔틀 전동차 이용객은 개집표기를 통과하지 않고 반대편 승강장으로 갈 수없다.

이에 덧붙여, 드물지만 바로 역의 앞뒤로 전철 승강장과 일반열차 승강장을 분리하는 경우도 있다. 좌우 공간이 충분하지 못한 역이 쓰는 방식인데 경부선 안양과 중앙선 덕소 역이 이에 속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럼, 전철 개통 당시 수원 역의 배선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열악했다. 사실 1호선의 또 다른 종점인 인천 역도 아직까지 인상 선로조차 없는 열악한 역이긴 마찬가지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수원에서 운행을 마친 전동차는, 부산까지 가는 경부선 일반열차보다 먼저 방향을 바꾸고 반대편 방향으로 ‘회차’를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원 역은 중앙에 전동차 승강장이 섬식으로 있고 양 끝에 일반열차 승강장이 존재하는 형태였다. 위의 그림에서 아래쪽이 부산 방면이요, 위쪽은 서울 방면이다.

그림을 보노라면, 당시 수원 역의 배선 구조는 문제가 많았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전동차를 증차하기 위해 경부선 수원 이북 구간은 이미 1980년대 초에 2복선으로 확장되었다. 그래서 전동차는 새로 생긴 외선으로, 일반열차는 기존 내선으로 방향별 복복선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원 역에서는 전동차가 회차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열차--정확하게 말하면 수원에서 정차하는 열차--가 외선으로, 그리고 전동차가 내선으로 자리를 바꿨다. 철도에서 만악의 근원인 평면교차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것 말고도 진정한 재앙은 따로 있었다. 그렇게 내선과 외선을 바꿔치기한 후에, 수원 역의 전동차 승강장의 선로는 그럼 전동차만의 전용 공간이기라도 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외선은 일반열차 중에서 수원 역에 정차하는 열차만이 이용했고 무정차 통과하는 열차는 여전히 그대로 내선을 통과했다. 전동차 승강장을 스쳐 지나가면서 말이다. 그렇다. 그 선로는 경부 본선이었다. 흠좀무.

이 때문에 전동차는 화서에서 수원으로 진입하기 전에(X자형 교차 지점) 늘 일반열차 눈치를 봐야 했고, 심지어 회차선에서 전동차 승강장으로 진입할 때도 일반열차 눈치를 봐야 했다. 마음 편하게 지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경부선 선로를 2복선으로 확장한 뒤에도 이것 때문에 전동차를 도무지 충분히 증차할 수 없었다.

이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새마을호였다. 이때 새마을호는 오늘날의 KTX의 위상을 능가하는 호화 귀족 열차였고, 모 사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트로트 가사에 정확하게 맞춰 신나게 질주하던 괴물이었다. 수원 역 플랫폼쯤은 최고 시속 140km로 통과해 버렸다. 전철을 타는 승강장이니 완전히 막아 버릴 수도 없고.. “전동차 승강장으로 열차가 통과할 예정이오니 부디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경부선 수도권 전철 구간이 여전히 복선이던 1970년대에나 들을 수 있을 법한 희귀한 경고 방송이 세 번째 반복되는 순간, 쌩....! 했다.

수원 역에서는 전동차 기관사의 고충도 더 컸다. 수원에서 하행 전동차가 운행을 마치면 회차선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상행 방면 선로로 진입한 뒤부터 승객이 타야 되는데, 수원에서 상행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차에 빨리 타서 앉아 가겠다는 심보로, 이제 종착해서 회차선으로 들어갈 예정인 전동차에도 무자비하게 타 댔다(섬식인 덕분에 상하행 승객이 동일 플랫폼 사용!). 용산에서 종착한 급행 전동차도 지금까지 비슷한 이유로 인해 골치를 썩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회차선에 들어가 있는 동안 직원이 차량을 청소도 하고 특히 기관사와 차장은 200m에 가까운(10량 편성 기준) 거리를 걸어 반대쪽으로 위치 교대도 해야 한다. 그런데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승객이 많이 타 버리면 이들은 부득이 차 밖으로 내려서 옆 선로로 걸어가야 했다. 바로 경부 본선으로 말이다! 그런데 거기로 새마을호가 통과해 버리면? 이건 그야말로 기관사를 죽음으로 내모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이렇듯, 수원 역은 위상에 걸맞지 않게 열악한 회차 구조 때문에 문제가 많았고 실제로 2002년엔가 03년에는 선로 작업 차량이 대기 중이던 지하철 전동차를 추돌하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이 모든 일들은 이제 옛날의 추억이 되어 있다. 회차 시설은 입체 교차 시설이 잘 갖춰진 병점 역으로 옮겨지고 이제 수원 역은 종착역이 아닌 단순 통과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2005년에 수도권 전철이 천안까지 연장 개통하기에 앞서, 2년 전에 중간 지점인 평택도 아니고 병점까지만 서둘러 연장 개통한 것은 그만큼 수원 역의 평면교차 문제 해소가 시급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2/20 18:28 2010/02/2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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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 밤차의 추억

서울과 부산을 잇는 철도 노선으로 경부선(경부 고속선 포함)만을 떠올리기 쉬우나, 사실은 중앙선과 동해남부선도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에 청량리 역이 있다면 부산에는 부전 역이 그 역할을 한다. 경부선 이외의 다른 마이너 노선을 주로 취급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경부선은 선형도 좋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주요 대도시를 경유하는 매우 중요한 노선으로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일찌감치 복선화가 되었고, 1970년대에 이미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수도권 광역전철이 개통하기도 했다. 물론 서울과 부산을 직선으로만 잇는다면 용인, 상주를 경유하여 지금의 중부내륙 고속도로와 비슷한 노선이 거리가 더 짧으나, 험준한 지형을 피하기 위해 대전과 수원을 경유하는 노선이 결정된 것이다. (사실, 경부선 덕분에 가장 극적으로 급발전한 도시는 단연 대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부선과는 달리 중앙선은 경부선과 비슷한 위상의 장거리 간선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정지해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낙후해 있다. 건설부터가 경부선보다 35년 가까이 늦었고, 경부선은 이미 복선화 작업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물자가 열악하던 2차 세계 대전에 그것도 경부선보다 훨씬 더 험준한 오지를 경유하여, 애초에 여객보다 화물에 더 비중을 두고 졸속으로 만든 노선이니 경부선보다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경부선은 지금은 시속 140까지 달리는 구간도 있는 반면, 중앙선은 여전히 6~70대에 머물러 있다.

중앙선은 광역전철 개통도 덩달아 경부선보다 시기적으로 30년이 늦다. 복선 선로+대피선으로 전동차와 일반열차가 다니는 지금의 중앙선은 정확하게 1970년대 경부선의 모습이다. 경부선은 시도 때도 없이 서울-부산 열차가 드나들고 고속철까지 건설된 반면, 중앙선은 전구간을 다니는 열차조차 거의 없을 정도로 한산하며, 아직 전구간이 복선이나 전철화되지도 않아 있다. 청량리-부전 전역 정차 통일호가 2004년 KTX 개통에 맞춰서 폐지된 뒤에는 중앙선을 전구간 직통 운행하는 열차는 하루 단 한 번, 밤차밖에 없었다. (2008년부터는 낮에도 한 차례 전구간 직통 열차가 생기긴 했지만) 중부내륙과 중앙 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중앙선은 더욱 몰락의 길을 가고 있다.

이 글에서는 경부선과 중앙선의 차이와 더불어, 그 중앙선 밤차의 추억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2003년 말, 서울에서 볼일을 본 후 새마을호를 타고 경주에 가려고 했는데 그 열차를 놓치고 못 타는 바람에 대신 우연히 발견하여 타게 된 열차가 바로 중앙선 밤차였다. 세상에 이런 열차가 있나 싶었다. 그 당시는 서울-경주가 무려 6시간 반이나 걸렸다. 비록 느리지만 수원, 천안, 구미, 대구처럼 늘 식상한 역명이 아니라 원주, 제천, 안동 같은 색다른 지역을 지나면서 철도 여행의 운치를 더욱 북돋워 주었다.

그 후 본인은 이 열차를 상행과 하행 할 것 없이 기회가 될 때마다 애용했다. 경부선 열차를 이용할 수 없는 시간대에 존재하는 매우 훌륭한 우회 경로였기 때문이다. 고속철이 개통한 이래로 열차 시각표가 무수히 많이 개정되었지만 중앙선 밤차만은 없어지지 않고 6년 전이나 지금이나 청량리 21:00 하행, 그리고 경주 0:06 상행은 바뀌지 않았다. 경주-서울 6시간 36분이던 소요 시간이 2005년 하반기에는 이 5시간 40분대로 좁혀지기도 했는데, 다이아가 비현실적이었는지 지금은 다시 6시간 10분 정도로 조정되어 있다.

서울 역을 출발하여 대구 역에서 대구선-동해남부선으로 빠지는 열차가 새마을호 중에는 여럿 있다. 하지만 무궁화호 중에도 밤 10시~10시 반 시간대에 서울을 출발하여 부전으로 가는 차가 하루 단 한 번 있다. 그래서 경주 역에 새벽에 도착하는 열차는 중앙선 밤차와 더불어 이 열차까지 합해 총 2회가 존재한다. 이 구도도 2003년 이래로 지금까지 전혀 바뀌지 않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사실 밤차라는 것은 엄청 장거리 내지 소요 시간이 긴 노선에 적합한 것이고 요즘은 없어지는 추세이다. 선로의 관리 측면에서 볼편하기 때문이다. 침대차만 해도 오래 전에 사라지지 않았던가. 밤에 청량리 역을 출발하여 다음 날 아침에 강릉에 도착하는 그런 노선에나 어울린다. 하지만 중앙선은 앞으로 획기적으로 열차 주행 속도가 빨라지지 않는 한, 이런 특별한 환경에 따른 수요를 충당하는 밤차가 당분간은 사라질 것 같지 않다. KTX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간선 노선! 그래서 본인 역시 이 열차에 애착을 갖고 앞으로도 더욱 자주 이용하고자 한다.

기타 잡설

1. 심야에는 중앙· 태백· 영동선과는 달리 경부선과 호남선은 전차선을 가동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인해 경부선 쪽 밤차는 언제나 디젤 기관차가 다닌다.

2. 고속철 개통 전에는 주말에만 운행하던 경주-대전 경유-광주 무궁화호가 있었다. 대전-서대전 구간을 지나가는 아주 독특한 열차였다. 본인은 고향이 경주이고 그 당시 학교는 대전이었다. 그러니 일요일 17:20에 경주를 출발하여 20:30쯤에 대전에 도착하던 이 열차는 학교로 돌아갈 때 이보다 더 적격일 수 없던 열차였다.
경주에 사는 덕분에 청량리 밤차를 비롯해 여러 독특한 열차를 이용할 기회가 있었다.

3. 경부선은 서울-대전 평지, 대전-대구 산악, 대구-부산 강과 들판이라는 세 가지 양상으로 나뉜다.
중앙선도 대략 그런 구도가 있다. 어디까지는 들판, 어디까지는 산, 안동 이남부터는 평지.. 여기에 대한 연구도 좀 해야 하는데, 맨날 밤차만 타니까 그렇게도 절경이라는 중앙선 바깥 경치를 잘 구경할 수가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0/02/16 07:32 2010/02/1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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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II

http://tvnews.media.daum.net/view.html?cateid=100000&cpid=73&newsid=20100211210932494&p=sbsi
(인터뷰에 나오는 사람들은 네이버 바이트레인 운영진임. ^^)

2004년에 KTX가 개통한 이래로 드디어 완전히 새로운 고속철 차량이 도입된다.
경부 고속철 2차 구간(대구-부산) 개통을 앞두고서 아주 뜻깊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미 40년이 넘는 짬밥을 먹은 신칸센은 어마어마한 차량 계보를 자랑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국내 기술로 개발 중인 차세대 고속철인 HSR-350(프로젝트명) 시절에는 파란 도색이 아닌 빨간 도색이었고, 차의 디자인도 지금하고는 달랐는데 좀더 날렵하게 바뀐 모양이다. 이 열차는 현존하는 KTX보다 더 빠른 시속 350으로 달리게 설계되었으나, KTX II가 도입된다고 해서 지금 당장 서울-부산 주행 시간이 단축되는 건 아니라 함, 아직까지는 기존 KTX와 동일 속력으로 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KTX II는 프랑스 떼제베의 로컬라이즈 버전 수준이던 초창기 KTX보다 굉장히 많은 면에서 발전했다.
좌석이 회전 가능하게 바뀌어서 역방향 논란이 없어졌으며, 크기와 간격도 더 넉넉해졌다. 식당차도 있다.
객차 내부를 우리 마음대로 개조할 수 없는 초창기 KTX와는 달리 우리나라 기존 열차와의 이질감이 크게 줄어든 셈이다. 국내 기술 개발이 이래서 좋다.
객실 내에서는 무선 인터넷이 되고 콘센트도 지금 새마을호처럼 객실 맨 앞과 뒤에만 존재하는 정도를 넘어, 놀랍게도 좌석마다 비치되었다.

(현 KTX에 콘센트가 없는 이유는? 고속철 건설과 차량 계약을 무려 1990년대 중반에 했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휴대전화나 DMB 같은 온갖 전자 기기들의 수요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당차 역시, 어차피 서울-부산을 겨우 2시간대에 주파할 건데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 만들지 않은 것임.)

그럼 기술적인 면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길이 400미터에 달하는 935명짜리 커다란 열차를 끌고 다녀야 하는 현 KTX와는 달리 편성수도 유동적으로 조절 가능하며,
그리고 언뜻 듣기로는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동력 집중식이 아닌 동력 분산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것도 정말 큰 변화인데 뉴스 중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차량의 가감속력 향상이 기대된다.

KTX가 또 전동기의 무슨 기술은 굉장히 원시적인... 직류 전동기던가? 이런 걸 쓰고 있어서 심지어 8200호대 전기 기관차보다도 비효율적인 게 있다고 한다.
듣기로는 그런 것도 개선된다고 함.
뭐 그래 봤자 지금 KTX도 한 편성이 서울-부산을 한 번 오가는 데 전기 요금이 110만원 남짓밖에 안 든다고 하니 전기가 정말 싸게 먹히긴 한다.

새로운 열차가 도입되는 건 좋은데 운임이 문제되고 있는 듯하다. 그 좁디좁은 KTX가 객차 한 칸에 지금의 새마을호와 동일한 64명을 태운다. KTX는 차체가 기존 일반열차보다 훨씬 더 홀쭉함을 알 수 있다. 차 덩치는 비슷한데 좌석 공간은 더 커지다 보니, KTX II는 한 칸에 태울 수 있는 인원이 필연적으로 감소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KTX II는 요금이 더 비싸져야 한다.
하지만 이 차도 등급상으로는 동일하게 고속열차 KTX인데 요금을 차등 부과하는 게 바람직하지 못하다. 같은 무궁화호가 구형 탕엥 객차하고 디자인리미트 신형 객차가 운임이 서로 다르던가?

무궁화호급 열차는 CDC를 개조한 RDC 무궁화호와 누리로가 등장했는데
이제 KTX급 열차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럼 새마을호급 열차는? 누리로보다 내장재가 더 좋은 전기 동차 내지 틸팅 열차가 등장할 것이다. 과거 EEC의 후예뻘 되겠다. 그리고 그 즈음 지금의 새마을호 디젤 동차는 퇴역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아무쪼록 새로운 KTX II가 대구-부산 고속신선과 대구· 대전의 시내 구간까지 쌩쌩 전속력으로 잘 달려서 서울-부산을 어서 2시간대까지 단축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Posted by 사무엘

2010/02/12 13:02 2010/02/12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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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기 지하철 이야기

1974년에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첫 개통한 이래로, 2~4호선도 서울 올림픽과 비슷한 타이밍인 1980년대 중반에 서울 시내 구간이 모두 개통함으로써 서울 1기 지하철 프로젝트가 끝났다.

하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교통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1990년대 초에 지하철 5~8호선의 추가 건설이 논의되었으니, 이른바 2기 지하철이다. 시기적으로는 인천 공항 내지 고속철 사업과 비슷하게 시작한 셈이다.
1기 지하철을 서울 메트로(구 서울 지하철 공사)가 관할한다면 2기 지하철은 서울 도시 철도 공사--SMRT가 관할하게 되었다.

2기 지하철에는 기존 1기 지하철의 연장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작과 끝이 모두 국철 광역전철인 1호선이야 더 발전의 여지가 없고 2호선도 순환선이다 보니 지선 건설 외에는 더 생각할 게 없지만, 3호선은 남쪽으로 양재-수서 구간이 추가 건설되었으며 4호선 역시 북쪽으로 당고개 역이 이 때 신설되었다.

이때 건설된 2호선 신정 지선은 딱히 지하철 연장 건설은 아니지만 2호선용 차량 기지의 추가 건설과 5호선의 차량 반입 수단으로 큰 의미가 있었다.
다만, 과천선 내지 일산선도 비슷한 시기에 3, 4호선에 붙어서 개통은 하였으나, 이는 철도청 광역전철이기 때문에 2기 지하철의 일환으로 건설된 것은 아니었다.

2기 지하철은 1기 지하철의 건설 노하우를 바탕으로 건설 당시부터 설계라든가 기술 등 여러 면모가 향상되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쵸퍼/저항보다 더 효율적인 VVVF 전동차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 롤지/플랩식 대신 LED 방식 전광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 자갈 대신 유지 보수가 용이한 콘크리트 노반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며, 3· 4호선과 마찬가지로 ATS보다 더 발달한 ATC 신호가 쓰였다.
- 전동차는 1인 승무와 자동 운전이 가능하게 만들어졌다.

- 또한 1기 지하철과의 긴 환승을 교훈 삼아 역을 가능한 한 교차로에 건설하고, 앞으로 추가로 건설될 3기 지하철과의 환승도 건설 당시부터 염두에 뒀다. 그 덕을 제대로 본 환승역이 바로 여의도 역이다.
- 종착역에서 회차 용량을 늘려 주는 2폼 3섬식 승강장도 서울 2기 지하철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다만, 서울 2기 지하철은 비용 절약을 위해, 1기 지하철과는 달리 교직류 겸용 운행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2기 지하철은 기존 철도가 거의 지나지 않는 곳을 위주로 건설되었기 때문에 차량 반입도 어려운 편이었다(특히 5, 8호선).

서울 2기 지하철과 비슷한 시기에 건설되어 비슷한 수준의 기술이 도입된 지방 지하철로는 인천 1호선, 대구 1호선, 부산 2호선 정도가 있다. 서울 1기 지하철과 시기가 비슷한 것은 부산 1호선이 유일하다.

서울 2기 지하철은 그 시기적인 특성상 차량 구동음이 가장 다채롭고 개성 넘친다. 또한 지금 7호선 부천 쪽 연장을 제외하면 딱히 노선 연장이라든가 차량 추가 도입 같은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그렇잖아도 개통한 지 15년 남짓밖에 안 됐는데 차량 내구연한도 25년에서 40년으로 연장).

그때에 비해 오늘날의 지하철이 바뀐 것은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기계로 좌석이 모두 불연재로 교체된 것, 초창기(1996년) 5, 7, 8호선 개통 구간에도 꼬마 열차 전광판이 설치된 것(2006년에), 그리고 모든 역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것(2008~09년)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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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20:33 2010/02/03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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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새마을호 (2004)

2004년 KTX가 갓 개통했을 때 열차 시각표는 참 재미있었다.
서울-동대구 내지 서울-부산 무정차 KTX가 있는가 하면,
그 대신 새마을호가 무궁화호의 정차 계보를 그대로 뒤집어 써 서울-부산 5시간을 초과하던 말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그러던 관행은 그 해 말에 다소 나아졌다. 아직 코레일(철도 공사)이 출범하기도 전의 사진 기록을 되짚어 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4년 11월 13일의 대전 역.
그렇다. 1~200까지가 옛날엔 새마을호의 운행 번호이다가 그걸 KTX가 물려받았고, 새마을호는 1001~1200, 무궁화호는 1201 이후로 밀려났다. KTX가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2"라는 번호를 주목할 것. 지금은 KTX도 1부터가 아니라 101부터 시작한다.

위를 보면 주말이어서 열차가 굉장히 자주 드나드는 걸 알 수 있다. 1001과 1039는 대전 기준으로 동일하게 하행인데 7:32에 동시에 출발하고,
1260과 1026은 동일하게 상행인데 7:43에 동시에 출발한다. 물론 진짜 동시에는 아니고 먼저 보내 주는 열차가 있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좌석 시트는 자주색이다가 2004년 무렵에 이제 막 회색으로 바뀌었다. 영상 서비스가 잘 돌아가던 시절. 그리고 그때엔 좌석 머리 덮개에는 현대 택배나 우체국 같은 광고가 많이 붙어 있었다. 지금은 그냥 '만나세요! 코레일' 이런 것만 있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걸 기억하신다면 당신은 진정한 old timer이다. 지금이야(2010) 제대로 된 영상 서비스가 나오는 열차는 KTX밖에 없지만, KTX는 종착역에 다 와서도 자기 방송만 그대로 나오지 새마을호처럼 멋진 'good bye' 영상은 나오지 않는다.
연합뉴스도 아니고 '코모넷'을 주목하기 바란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4 23:11 2010/01/1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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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전동차의 반입 경로

지하철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상식으로 알겠지만,
갓 개통한 지하철 노선에다가 수십 편성이나 되는 열차를, 그것도 버스보다도 더 거대한 놈들을 안전하게 운반하여 집어넣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나마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등장한 도시 철도들은 다 같은 표준궤를 쓰기 때문에 기존 철도 위에서 그대로 굴릴 수라도 있지, 경전철은 얄짤없이 별도로 실어서 운반해야 할 것이다. 차량 반입은 마치 "컴퓨터가 발명되던 당시에 최초로 고급 언어 컴파일러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같은 아주 원천적인 질문에 속하는 셈이다.

철도 차량은 응당 공장에서 생산되며, 생산된 차량은 경부선 같은 기존 철도에서 분기하여 공장으로 통하는 레일 위에 놓인다. 배로 치면 이게 진수식뻘 되겠다. ^^;; 공장에서 수도권까지는 디젤 기관차가 이런 지하철 차량을 끌고 가 준다.

우리나라는 로지스라 하여, 현재 지나고 있고 앞으로 운행할 예정인 모든 열차의 열차 편성과 운행 기록을 실시간으로 조회하는 서비스가 있다. 철도매니아에게 주옥 같은 정보가 아닐 수 없다. 전동차를 반입하는 화물 열차도 물론 여기에 잡히기 때문에, 이걸 보고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사진을 찍는 열성분자도 많다. 대전 지하철 반입, 서울 9호선 전동차 반입, 공항 철도 전동차 반입 등.

1호선이야 태생부터가 기존 철도와 지하철과의 직결 운행 연결이므로 차량 반입에 아무 어려움이 없다. 그럼 그 이후 지하철들은 어떻게 될까?

2호선은 1호선 신설동 역이 그 비결이다.
지하철 역에 승객이 다니는 환승 통로가 있듯이, 일부 역에는 레일상으로 인근의 노선을 연결하는 길이 있다. 이 역에서 1호선은 2호선 신설동 역 방면으로 몰래 진입하여 인근의 군자 차량 기지로 들어갈 수 있고, 성수 지선을 거쳐 2호선 본선으로도 들어갈 수 있다. 2호선은 원래 신설동에서 강남 종합운동장 역 사이가 가장 먼저 개통했다는 사실을 알면 더욱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1호선에는 가끔 신설동 직전의 동묘앞 역에서 운행을 마치는 서울 메트로 차량이 있는데, 이놈이 바로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신설동 역 지하 3층 유령 승강장을 거쳐 차량 기지로 들어간다.
(사실 1~4호선에 속하는 1기 지하철도 둘로 나누면 1~2호선과 3~4호선으로 나뉜다. 1~2호선만이 ATS 신호를 사용하고 있고 일부 구간에서는 자갈 노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지하철은 모두 ATC로 바뀌고 콘크리트 바닥으로 모두 바뀌었다.)

3호선은 딱히 기존 철도와의 인연이 없으며 연결점이라고는 충무로 역이 유일하다. 이 역은 승객만 3, 4호선을 상호 환승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열차도 상호 노선을 바꿀 수 있다. 4호선은 금정과 창동 역에서 기존 국철 경부선 및 경원선과 만나기 때문에, 3호선 차량도 4호선을 통해 들어와서 충무로까지 가는 엄청난 우회를 한 끝에 3호선 기지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5~8호선의 2기 지하철로 가면 사정이 좀 복잡해진다.
그 근본 이유는 지하철이 불연속적인 구간 순으로 개통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가령 A, B, C로 이루어진 한 노선이 A, C 구간부터 개통하고 나중에 중앙의 B 구간이 최종 개통함으로써 단일 노선이 완공되는 식이다.

그리고 어떤 불연속 구간은 기존 철도와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기도 하다. 사실, 2기 지하철의 목표는 아예 기존 광역전철과의 직결 운행을 염두에 두지도 않을 정도로 완전히 새로운 노선을 창조해 내는 것이었다. 더구나 비밀 선로라는 건 같은 기간에 건설된 노선끼리나 존재하지, 1기 지하철과 2기 지하철 사이를 연결하는 비밀 선로 같은 건 없다. 그러니 그런 단절 구간에 차량을 넣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왜 순서대로 개통을 안 하고 그런 식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
중앙은 대체로 서울 중심부이며, 2기 지하철이 1기 지하철보다 아래로 지나느라 통상 굉장히 깊고 공사하기가 힘들어지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하철은 어느 쪽이든 필연적으로 차량 기지가 있는 구간부터 개통을 할 수밖에 없으니 양쪽 외곽부터 개통하고 나서 중앙은 나중에 개통하는 것이다.

2기 지하철 시대를 개막한 5호선은 역 수가 50개에 달하는 상당한 장거리 간선인데, 개통도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했다. 가장 먼저 개통한 구간은 고덕 차량 기지를 경유하는 왕십리-상일동이다. 기존 철도가 전혀 닿지 않는 단절 구간에다가 그 당시 차량을 어떻게 집어넣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

정말 입이 벌어질 정도로 삽질을 했다. 경부선을 거쳐서 서울의 중심부인 충무로 역까지 간다. 그 후 3호선으로 갈아타서 서울 동남부의 수서까지 간다. 거기서 크레인으로 열차를 들어올린 뒤, 인근의 8호선 가락시장 역 지점까지 1.6km 거리는 트레일러로 운반했다. 그 시기엔 8호선도 건설되고 있었으므로 거기에다가 차량을 집어넣고, 1.3km 정도 떨어진 가락시장과 오금(마천 지선은 당시 아직 공사 중) 역 사이의 비밀 선로를 통해 5호선으로 집어넣었다고 한다. 1995년의 일이다.

쉽게 말해 지금 한창 연장 공사가 진행 중인 3호선 수서-오금 경로를 그대로 따랐다는 뜻이다.
지금도 8호선 가락시장과 5호선 오금 사이에는 비밀 선로 자체는 있지만, 복선일 리는 없을 테고 어차피 역을 만들려면 선로를 또 만들어야 하니 공사가 진행 중이다. 얼마 안 있으면 개통하지 싶다.
(참고로 수서 역은 3호선과 분당선의 연결 선로는 존재한다. 분당선 전동차는 이 경로로 반입되었다.)

5호선은 동쪽 구간이 먼저 개통한 후, 다음으로는 방화 차량 기지가 있는 서쪽이 까치산 역까지 개통했다. 여기는 조금만 센스가 있는 분이라면 짐작할 것이다. 바로 2호선 신도림-까치산 지선이 5호선 차량의 반입 경로였다(신설동 역을 거쳐서 2호선으로 수월하게 들어옴). 원래 양천구청까지밖에 안 가고 서울 메트로 신정 차량 기지로 통하던 그 지선이 까치산 역까지 연장된 것은, 전적으로 5호선 때문이었다! ^^

그 후 5호선은 여의도 구간이 개통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을지로, 종로 구간이 개통함으로써 전구간 개통한다. 5호선과 비슷한 시기에 개통한 8호선도 차량이 두 차례에 걸쳐 도입되었는데, 처음엔 수서-가락시장 삽질을 하다가 나중에는 까치산을 거치는 식으로 거의 같은 방법으로 들어왔다. 서울 동쪽을 달리는 노선이 서쪽 끝까지 가면서 엄청난 삽질을 한 것이다. (서울 동남부에는 국철이 없음 -_-)

7호선은 1호선 환승으로 시작해서 1호선 환승으로 끝나는 노선이다 보니 5, 8호선 정도의 삽질은 없었다. 북쪽 장암 구간은 경원선 도봉산 역에서 아주 쉽게 반입이 가능했고(장암-건대입구), 남쪽만 북쪽과 단절되어 있던 시절에(온수-신풍) 약간 고생을 했다. 경인선 오류동 역에서 인근의 천왕 차량 기지까지는 도로 위에다 임시 선로를 깔아서 전동차를 굴려 넣었던 것이다. 그때 7호선 전동차는 마치 노면 전차처럼 차량 기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 그 후 건대입구-신풍 구간이 2000년에 연결됨으로써 7호선은 전구간 개통했다.

2기 지하철 중 가장 늦게 개통한 6호선은 차량 기지가 봉화산 쪽에 하나밖에 없는 관계로 근본적으로 분산 개통을 할 수가 없었다. 반입 경로는 다 7호선의 경로를 빌렸는데, 처음엔 도봉산 역을 거쳐서 태릉입구의 연결 선로를 이용했고, 나중에 7호선이 남쪽까지 다 개통한 뒤에는 천왕 기지를 따라 쭉 올라가다 먹골 역에 있는 연결 선로를 타고 들어갔다고 한다.

그럼 9호선은 어떨까?
9호선 역시 차량 기지는 서쪽 끝의 개화 하나만 존재한다. 그리고 기존 지하철이나 국철을 연결하는 비밀 선로는 없다. 9호선 전동차는 경의선 행신 역까지 갔다가 트레일러를 통해 개화 차량 기지까지 수송되었다고 한다. 공항 철도는 경인선으로 인천 끝까지 간 후, 영종도에 있는 기지에 가기 위해 아예 배의 도움까지 받았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국철 포함 1호선은 2호선(신설동), 4호선(금정, 창동), 7호선(도봉산)과 연결돼 있다.
2호선은 5호선(까치산)과 연결돼 있다.
3호선은 4호선(충무로)과 연결돼 있다.
5호선은 8호선(가락시장)과 연결돼 있다.
6호선은 7호선(태릉입구, 먹골?)과 연결돼 있다.
9호선과 공항 철도는 딱히 다른 철도와의 연결이 없이 단절돼 있다.

종이를 꺼내서 한번 그래프를 그려 보시라. ^^;;
국철에서 1, 4, 7호선이 뻗어나가고
1-2-5-8,
4-3
7-6 이렇게 연결된 구도임을 알 수 있다.

지하철 노선의 개통을 위해서는 먼저 초대형 대량 화물인 전동차의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수송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34 2010/01/1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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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역 리모델링의 추억

저의 대학 시절 중반기에 KTX 개통과 주요 대형역들의 리모델링 공사가 행해졌습니다.
그리고 그와 거의 딱 일치하는 시기에 저는 철도 매니아가 됐습니다. 타이밍 한번 절묘하기 그지없습니다.

※ 서울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의 건축가가 서양 스타일로 지은 그 유명한 옛 역사는 역사적 가치가 워낙 높아서 사적 문화재로도 지정돼 있죠. 간이역이 아닌 대형역이 문화재로 지정받은 건 유일한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옛날 역사만 해도 공항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게이트 수도 많고 덩치가 컸습니다. 요즘이야 선상역이 대세이지만, 옛날에는 어지간한 중대형 역도 1층이 매표소이고 승강장까지는 지하도를 통과하여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그래도 서울 역은 옛 건물도 나름 선상역인지라, 탈 때는 1층의 입구로 들어가서 대합실, 매표소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가고 다시 승강장으로 계단을 이용하여 내려갔었습니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 참고)

이미 KTX 개통 전 2003년 말부터 지하철 서울 역의 출구 개조 공사가 활발히 진행됐고 역의 기능은 옆에 새로 지어진 민자역사 유리궁전으로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울 청계 고가 철거 공사와 시기적으로 비슷했습니다. 신축 건물은 서울 역이라는 문구보다 콩코스(Concos)가 더 큼직하게 보이죠.

옛날 역사는 하차 승객은 역 입구로 나오는 게 아니라, 지하도를 통해 별도의 출구로 빠져나갔습니다.
지금도 대전 역은 지하도는 아니지만 하차 승객의 통로가 별도로 분리된 형태이고, 대전은 동부 고속버스 터미널도 마치 서울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처럼 하차장이 따로 갖춰져 있는 게 인상적이랍니다.
참고로 옛날에는 청량리 역도 하차 승객 전용 지하도와 출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또 새 역사 신축하느라 그것도 다 없어지고 형태가 바뀌었지만.

※ 대전

대전 하면 우동이 유명했지요.
옛날 역사는 2층도 없는(최소한 승객이 올라갈 일은 없는) 1층짜리 자그마한 건물이었고, 역사에서 승강장까지는 또 지하도로 이동하던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2004년부터 슬슬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어 지금은 선상역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대전 역의 변화를 일일이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역전 광장도 무지막지하게 넓었습니다만, 지금은 온통 택시 진입로와 지하철 출구 공사 때문에 공간이 거의 사라지고 없습니다. 대전은 건물 통로상으로 딱 연결은 안 돼 있지만 지하철 출구로 나오면 딱 철도역 입구이기 때문에 지하철과의 연계가 서울만큼이나 잘 돼 있습니다.
다만, 대전은 1호선 치고는 철도역에 해당하는 지하철 역이 이례적으로 굉장히 깊습니다. 서울, 대구, 부산은 안 그렇거든요.

※ 동대구

과거의 구질구질하던 동대구 역도 유리궁전으로 변신하고, 언덕 위의 본 입구뿐만 아니라 언덕 아래에서도 올라가는 출입구를 신설했습니다. 사실, 선상역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서울, 대전도 반대편 출입구가 신설되어 역의 접근성이 더 향상되기도 했답니다.

동대구 역은 언덕 위에 건설되어서 언덕 아래의 승강장으로 내려간다는 특성상, 입구에 들어가서 별도로 또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습니다. 들어가면 곧바로 매표소와 대합실이 나오는 게 특이하죠. 나가면 광장은 거의 없고 고가 도로 상으로 차와 택시들만이 즐비합니다.

지하철 동대구 역하고는 서울· 대전에 비해서는 거리가 좀 먼 편입니다. 하지만 이 기회에 이 지역에 동대구 역, 지하철 역, 동대구 고속버스 터미널, 동부 시외버스 터미널이 통합한 종합 터미널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합니다. 전국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구 명물이 되겠죠. 대구는 철도역과 고속버스 터미널 모두 굉장히 특이한 형태라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니까요.

※ 부산

겉은 으리으리한 유리 궁전으로 탈바꿈하여 외형은 광주 역과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내부는 60년대 말에 건설된 옛날 형태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한 건물로 연결은 돼 있지만 서울 같은 완전한 선상역은 아니어서 대합실· 매표소 영역과 승강장 영역은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바다와 가까운 역이다 보니 이 역의 승강장 주변엔 온통 컨테이너, 화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경부선상의 다른 역과는 다른 분위기이고 마치 또다른 항구 역인 인천 역을 떠올리게 합니다.

부산 역은 제가 알고 있는 경부선 역들 중 현재 광장이 가장 넓은 역이기도 합니다. KTX 개통을 앞두고 숱한 리모델링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학교 운동장을 방불케 하는 넓은 광장이 아직 원형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지하철 역과는 그렇게 완전 가깝지는 않아서 지하철 출입구는 학교로 치면 딱 교문까지만 닿지, 대전이나 서울처럼 학교 건물 코앞에 닿아 있지는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부전동 역(부전 역)도 마찬가지.
전에도 글로 썼지만 부산은 남쪽이 철도, 북쪽 노포동 쪽에 종합 버스 터미널 이렇게 교통이 양분되어 있습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09:45 2010/01/1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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