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경부선이 개통한 당시부터 영업을 시작한 수원 역은 가히 경기도 남부의 교통 허브 역할을 맡고 있다. 지금은 새마을호 이하 모든 열차가 정차하며 백화점이 인근에 있는 민자 역사이다. 구로와 수원은 애경 백화점(AK 플라자)이, 영등포, 안양, 청량리는 롯데 백화점이 접수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덧붙이자면 서울 역은 갤러리아 백화점이다.
수원 역은 한때는 수인선과 수려선이 만나서 수직인 경부선뿐만 아니라 수평의 철도까지 교차하는 지점으로, 즉 경부 고속도로로 치면 신갈 분기점 같은 환승역이기도 했다. 비록 지금은 그 철도는 없어졌지만 걱정 마시라. 분당선이 다시 수원으로 연장되는 중이고, 수인선은 복선 전철로 재건될 예정이기 때문에 옛날의 영광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수원은 대전과 마찬가지로 경부선 덕분에 급성장한 도시이다. 비록 인천만치 터져 나가지는 않지만 인구도 100만 명을 돌파하고 광역시급 덩치가 됐다. 단순 철도뿐만 아니라 1974년에 수도권 전철이 개통한 것이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한 선로 위의 동일한 역에서 과금 체계가 다른 두 종류의 열차를 취급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예 선로별 복복선인 서울 시내 구간은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영등포, 용산, 서울, 청량리 같은 역은 여기에 속한다.
(이하 모든 그림에서 파란 선은 일반열차를, 빨간 선은 전동차를 의미함)
하지만 방향별 복복선 구간에서 열차를 정차 내지 대피시킬 공간마저 충분하지 않은 역은 일반열차 승객과 전철 승객을 분리시키기 위해 머리를 좀 써야 한다. 지금의 수원과 평택 같은 역을 생각해 보면 된다. 수원 같은 경우, 전철 승객은 지하도를 통해 지하로 나가고, 일반열차 승객은 계단을 통해 윗층으로 나가고 있다. 광명 역은 이런 시설이 없기 때문에, 셔틀 전동차 이용객은 개집표기를 통과하지 않고 반대편 승강장으로 갈 수없다.
이에 덧붙여, 드물지만 바로 역의 앞뒤로 전철 승강장과 일반열차 승강장을 분리하는 경우도 있다. 좌우 공간이 충분하지 못한 역이 쓰는 방식인데 경부선 안양과 중앙선 덕소 역이 이에 속한다.
그럼, 전철 개통 당시 수원 역의 배선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열악했다. 사실 1호선의 또 다른 종점인 인천 역도 아직까지 인상 선로조차 없는 열악한 역이긴 마찬가지이다.
수원에서 운행을 마친 전동차는, 부산까지 가는 경부선 일반열차보다 먼저 방향을 바꾸고 반대편 방향으로 ‘회차’를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원 역은 중앙에 전동차 승강장이 섬식으로 있고 양 끝에 일반열차 승강장이 존재하는 형태였다. 위의 그림에서 아래쪽이 부산 방면이요, 위쪽은 서울 방면이다.
그림을 보노라면, 당시 수원 역의 배선 구조는 문제가 많았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전동차를 증차하기 위해 경부선 수원 이북 구간은 이미 1980년대 초에 2복선으로 확장되었다. 그래서 전동차는 새로 생긴 외선으로, 일반열차는 기존 내선으로 방향별 복복선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원 역에서는 전동차가 회차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열차--정확하게 말하면 수원에서 정차하는 열차--가 외선으로, 그리고 전동차가 내선으로 자리를 바꿨다. 철도에서 만악의 근원인 평면교차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것 말고도 진정한 재앙은 따로 있었다. 그렇게 내선과 외선을 바꿔치기한 후에, 수원 역의 전동차 승강장의 선로는 그럼 전동차만의 전용 공간이기라도 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외선은 일반열차 중에서 수원 역에 정차하는 열차만이 이용했고 무정차 통과하는 열차는 여전히 그대로 내선을 통과했다. 전동차 승강장을 스쳐 지나가면서 말이다. 그렇다. 그 선로는 경부 본선이었다. 흠좀무.
이 때문에 전동차는 화서에서 수원으로 진입하기 전에(X자형 교차 지점) 늘 일반열차 눈치를 봐야 했고, 심지어 회차선에서 전동차 승강장으로 진입할 때도 일반열차 눈치를 봐야 했다. 마음 편하게 지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경부선 선로를 2복선으로 확장한 뒤에도 이것 때문에 전동차를 도무지 충분히 증차할 수 없었다.
이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새마을호였다. 이때 새마을호는 오늘날의 KTX의 위상을 능가하는 호화 귀족 열차였고, 모 사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트로트 가사에 정확하게 맞춰 신나게 질주하던 괴물이었다. 수원 역 플랫폼쯤은 최고 시속 140km로 통과해 버렸다. 전철을 타는 승강장이니 완전히 막아 버릴 수도 없고.. “전동차 승강장으로 열차가 통과할 예정이오니 부디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경부선 수도권 전철 구간이 여전히 복선이던 1970년대에나 들을 수 있을 법한 희귀한 경고 방송이 세 번째 반복되는 순간, 쌩....! 했다.
수원 역에서는 전동차 기관사의 고충도 더 컸다. 수원에서 하행 전동차가 운행을 마치면 회차선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상행 방면 선로로 진입한 뒤부터 승객이 타야 되는데, 수원에서 상행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차에 빨리 타서 앉아 가겠다는 심보로, 이제 종착해서 회차선으로 들어갈 예정인 전동차에도 무자비하게 타 댔다(섬식인 덕분에 상하행 승객이 동일 플랫폼 사용!). 용산에서 종착한 급행 전동차도 지금까지 비슷한 이유로 인해 골치를 썩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회차선에 들어가 있는 동안 직원이 차량을 청소도 하고 특히 기관사와 차장은 200m에 가까운(10량 편성 기준) 거리를 걸어 반대쪽으로 위치 교대도 해야 한다. 그런데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승객이 많이 타 버리면 이들은 부득이 차 밖으로 내려서 옆 선로로 걸어가야 했다. 바로 경부 본선으로 말이다! 그런데 거기로 새마을호가 통과해 버리면? 이건 그야말로 기관사를 죽음으로 내모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이렇듯, 수원 역은 위상에 걸맞지 않게 열악한 회차 구조 때문에 문제가 많았고 실제로 2002년엔가 03년에는 선로 작업 차량이 대기 중이던 지하철 전동차를 추돌하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이 모든 일들은 이제 옛날의 추억이 되어 있다. 회차 시설은 입체 교차 시설이 잘 갖춰진 병점 역으로 옮겨지고 이제 수원 역은 종착역이 아닌 단순 통과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2005년에 수도권 전철이 천안까지 연장 개통하기에 앞서, 2년 전에 중간 지점인 평택도 아니고 병점까지만 서둘러 연장 개통한 것은 그만큼 수원 역의 평면교차 문제 해소가 시급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