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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속도로 개통 관련 에피소드

중부내륙 고속도로(45)가 주요 구간이 개통해서 서울-경주 갈 때 대전을 경유할 필요가 없어진 게 10몇 년 전 일인데..
2017년 6월 말엔 상주-영천 고속도로(301)가 추가로 개통한 덕분에 이제는 서울-경주 갈 때 대구· 구미를 들를 필요마저도 없어졌다.
사실, 거의 같은 시기에 저 301뿐만 아니라 제2경부 고속도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세종-포천 고속도로(29)도 포천-구리 구간이 개통했다! 이 좁은 땅에 알게 모르게 고속도로가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

하지만 저때 언론의 관심은 오로지 서울-양양 고속도로(60)의 전구간 개통에만 몰려 있었다. 그래서 29와 301은 존재감 없이 진짜 깔끔하게 묻힌 것 같다. 뭐, 저건 우리나라 최북단 고속도로인 데다 서울· 수도권 주민들의 휴가철 교통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니 임팩트가 더 클 수밖에 없긴 하다.

나 같은 자동차· 지리· 교통덕에게는 새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것이 무슨 새로 생긴 맛집을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다.
어느 지방에 무슨 맛집이나 카페가 생겼다고 하면 여자분들은 초점은 그 목적지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본인은 목적지를 찾아가는 중간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으음.. 뜬금없는 사실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인 경인 고속도로(120)가 서울-인천간의 주요 구간이 개통한 건 1968년 12월 21일이다. 하지만 서쪽 끝의 가좌동에서 인천항까지 6km 남짓한 구간이 마저 100% 완공된 건 이듬해(69년) 7월 21일이었는데..
이건 일개 고속도로 개통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구급 경축 이벤트와 날짜가 정확하게 겹쳤다는 걸 지금까지 전혀 생각 못 했다.
바로 아폴로 11호, 인간 최초의 달 착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날을 아예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서 학교와 관공서가 놀았다.

한국은 인제 군사정권 하에서 산업화 찔끔 하고 짤막한 고속도로 '하나' 만들어서 좋아라 하고 있었지만 천조국은 이미 그로부터 거의 3, 40년 전부터 전국에 하이웨이가 거미줄처럼 깔렸으며 진작부터 마이카 시대가 시작돼 있었다. 그리고 1960년대엔 비행기를 넘어 아예 우주선을 만들고 인간을 달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공산주의 진영과 싸우는 스케일이 가히 넘사벽이었던 셈이다.
이때 국내 신문들은 호외를 발행했으며, 이튿날 1면은 큼지막한 제목이 전부 '인간 달 착륙, 우주 시대 개막' 이랬었다. 그러니 경인 고속도로 전구간 완공 소식 따위는 그냥 싹 묻혔고 찾을 수 없었다.

2. 용인-서울 고속도로

2009년에 개통한 용인-서울 고속도로(171)는 위상이 꽤 독특한 물건이다.
얘는 2017년 현재, 전국의 고속도로들 중 유일하게 전구간이 다른 어떤 고속도로와도 직통하지 않고 고립돼 있다. 양 말단이 연결된 것이 없고, 중간에 타 고속도로로 갈아탈 수 있지도 않다. 얘는 무슨 바다를 건넌다거나 경북의 BYC처럼 지금까지 고속도로가 전무하던 오지를 개척한 게 아니며, 나름 수도권에 다른 고속도로들과 교차하거나 근처를 지나는 게 있는데도 말이다. (뭐 수도권에서도 상대적으로 오지에 속하는 그린벨트 지대 위주로 지나기는 하지만..)

얘는 안 그래도 민자이기까지 하니 뭔가 고속도로계의 유아독존 같은 느낌이 들며, 바다처럼 매우 넓긴 하지만 세계 다른 대양들과 통하지 않는 '카스피 해' 같은 호수를 보는 느낌이다. 하긴, '민자 고속도로'라는 개념도 영종도 다리를 경유하는 공항 고속도로 이후로 2000년대 중반에 대구-부산, 그리고 논산-천안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슬금슬금 도입된 개념이다.

용인-서울 고속도로가 혼자만 뻗어 있는 게 좋지 않았는지(창 2:18), 현재는 경부 고속도로와 교차하지만 분기점 없이 그냥 지나치던 곳에 '성남 JC'라고 일종의 '환승 통로'(?)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판교 JC와 대왕판교 IC보다 약간 더 북쪽 지점이다. 이곳을 이용하면 번거롭게 헌릉까지 안 가고 경부 고속도로 라인에서 용인-서울 고속도로에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단, 얘는 사통팔달이 아니라 반쪽짜리로만 만들어진다. 용인(171)에서 서울(1) 방면으로(북쪽), 아니면 서울(1)에서 용인(171) 방면으로(남쪽) 동일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는 것만 가능하지, 용인에서 다시 대전으로 가거나 대전에서 방향을 꺾어서 다시 용인으로 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아울러, 얘는 북쪽 서울 방면은 그렇다 쳐도 남쪽은 왜 기존 고속도로와의 연결을 못 시킨 걸까? 동탄이나 오산 정도에서 경부 고속도로와의 분기점을 만들면 연계 효과가 더 커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거기까지는 아마 시간과 비용 문제 때문에 신경을 못 쓴 것이지 싶다. 저기는 안 그래도 휴게소도 전무한데 거대한 입체 교차로를 만드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그 대신, 하이패스도 있겠다, 앞으로는 이거 뭐 고속도로도 간접· 소프트 환승이란 게 도입될 것 같다.

3. 남해 고속도로, 고속도로의 지선

지난 추석 때 본인은 가족 여행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해 고속도로 일대를 운전할 일이 있었다. 서울· 수도권이 전혀 아닌 곳에 종축도 아닌 횡축으로 8~10차선급의 넓은 고속도로가 있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뭐 부산을 포함해 그 일대의 창원· 마산도 수도권에 준하는 대도시이니 수긍이 갔다.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함안-마산 구간은 길이 정말 많이 막히고 정체가 심했다. 알고 보니 여기는 원래 아주 악명 높은 구간이라고 한다. 교통 수요에 비해 길이 마땅찮아서 차들이 전부 여기로만 몰리기 때문이다.
그 안습한 철도라는 경전선도 동부 한정으로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며, KTX가 지나고 그것도 승객 수요가 아주 많아서 장사가 잘 된다니 말이다. 슬금슬금 복선 전철화 공사도 진행 중이다.

요즘 고속도로도 전국 곳곳에 내가 모르는 새로운 번호들이 많이 등장하고, 특히 지선을 나타내는 세 자리 번호가 많이 눈에 띈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지선인 151처럼 말이다.
철도가 경전철이 트렌드가 되었듯, 이 좁은 땅에 고속도로도 굵직한 간선은 다 건설되고 이제는 촘촘한 지선을 만드는 게 트렌드가 된 듯하다. 그리고 남해 고속도로는 그 짧은 구간에 그런 지선이 많은 게 인상적이었다.

철도에 동일 구간을 서로 다른 길로 진행하는 태백선과 함백선이 있듯, 고속도로 중에는 중부 고속도로의 경기도 구간(35)과 제2중부 고속도로(37) 쌍이 있다.
그런데 남해 고속도로에도 마산 시내를 경유하는 제1지선(102)과, 마산 외곽을 더 짧은 거리로 지나는 본선(10)이 이렇게 잠시 분기했다가 다시 만난다. 원래는 지금의 지선이(시내 경유) 먼저 남해 고속도로 구간으로 건설돼 있었지만, 그게 지선으로 바뀌고 나중에 건설된 외곽 지름길이 본선으로 편입된 것이다.

남해 고속도로의 제2지선(104)은 부산 서쪽 외곽의 김해 공항으로 빠진다. 그리고 제3지선(105)은 항구로 빠지기 때문에 일반 민간인이 여행 목적으로 이용할 일은 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2중부 고속도로도 지금 같은 37이 아닌 351이라는 지선 번호가 붙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맥락으로, 서해안 고속도로(15) 주변도 어느 건 둘째 자리수만 변화시킨 17이고 어느 건 아예 지선 번호를 붙인 153인지 좀 헷갈릴 지경이다.

4. 고속도로의 통행료 부과 방식

경부 고속도로의 경우, 가장 북쪽의 서울 시내 구간에 속하는 한남-반포-서초-양재 IC 사이는 엄밀히 말하면 경부 고속도로가 아니다. 입체 교차로와 방음벽이 쳐져 있고 도로 표지판에도 고속도로를 뜻하는 붉은 왕관 모양과 함께 고속국도 1호선이라고 안내는 돼 있지만, 거기는 그냥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 같은 서울의 여러 시내 자동차 전용 도로 중 하나일 뿐이다. 정식 명칭은 '경부 간선 도로'이다. 고속도로가 아니므로 여기만 통행하는 것은 아무 제약 없이 무료이다.

진짜로 경부 고속도로가 시작되는 곳은 양재 IC 이남부터이다. 달래내고개 일대의 그린벨트를 지나고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교차하게 되는데, 여기는 일명 '개방식' 구간이다. 특정 구간이나 IC를 통과할 때만 고정된 액수의 통행료가 부과된다. 주변의 경인 고속도로, 외곽순환 고속도로는 IC가 조밀한 간격으로 굉장히 많이 있기 때문에 일정 간격의 구간별로 톨게이트가 있다(전자).

그러나 경부 고속도로는 폐쇄식 거리 비례제로 요금제가 바뀌는 서울 톨게이트가 따로 있기 때문에 위와 갈은 형태의 톨게이트는 없다. 다만, 서울 톨게이트의 이북이고 그렇다고 무료 서울 시내 구간에도 속하지 않은 대왕판교 IC와 판교 IC는 서울 방면으로부터 진출할 때에 한해서 소액의 고정 통행료를 징수한다.

부산 방면으로부터 와서 판교로 나가는 거라면, 이미 서울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낸 상태이기 때문에 판교 IC에서 또 통행료를 징수하지 않는다. 또한 판교 IC를 통해 부산 방면으로 진입하는 거라면 역시 서울 톨게이트를 곧 통과하게 될 것이므로 통행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판교 IC의 통행료 징수는 전적으로 서울-판교 단거리 왕래를 대상으로만 적용되는 셈이다.

판교 IC 말고 판교 JC는 외곽순환 고속도로와 경부 고속도로가 만나는 분기점이다. 얘를 통해서 외곽순환 고속도로에서도 판교 IC로 나갈 수가 있는데, 이때는 비록 부산이 아닌 서울 방면으로부터의 진출이지만 청계나 성남 톨게이트처럼 인근의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냈다는 영수증을 제시하면 판교 IC에서 돈을 또 내지 않고 나갈 수 있다.
이건 대중교통으로 치면 일종의 환승 할인이나 마찬가지인 개념이다. 복잡한 규칙이지만 이것도 하이패스만 달고 있으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나가든 다 알아서 자동 처리된다.

판교 JC 역시 사통팔달 뚫린 길이 아니다. 외곽순환 고속도로에서는 경부 고속도로의 부산 방면으로만 나갈 수 있지, 서울 방면(양재, 한남)으로 나갈 수는 없다. 그리고 경부 고속도로도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한 서울 방면 차량만 외곽순환으로 나갈 수 있지, 서울에서 부산 방면으로 향하던 차량이 외곽순환으로 갈아탈 수는 없다. 이런 구조 때문에 판교 IC도 외곽순환으로부터 유입되는 것만 가능할 뿐, 판교 IC에서 외곽순환 고속도로로 갈 수는 없다. 서울(여기서 통행료 내고) 또는 부산으로 경부 고속도로만 탈 수 있을 뿐.
저기 일대는 굳이 사통팔달 안 뚫어도 차들로 넘쳐나는 곳이니, 서울 일대에서 외곽순환이나 잠깐 타는 차들은 경부 말고 다른 대체 도로를 이용하라고 저렇게 막아 놓은 것 같다.

요렇게 개방식 요금제 구간에서 반쪽짜리 톨게이트를 굴리는 고속도로 나들목이 경부 고속도로의 판교 IC(서울 톨게이트 이전) 말고도 중부 고속도로의 하남 IC(동서울 톨게이트), 그리고 서울-양양 고속도로의 덕소삼패 IC(남양주 톨게이트)가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에는 그런 특이한 IC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고 나면 하이패스가 없는 차량은 통행권을 받으며, 진출하는 IC에서 통행권을 반납함과 동시에 이용 거리에 비례한 통행료를 낸다. 모든 차량이 하이패스가 장착되고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 진출입로가 실시간으로 차량의 흐름을 파악하고 거리 비례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다면 골치 아픈 개방식· 폐쇄식 같은 구분이 사라지고 통행권 발급과 현금 취급 같은 번거로운 일도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넓은 톨게이트 부지도 필요 없어지니 거기는 공원이나 휴게소 같은 다른 용도로 활용이 가능해질 것이다.

(下에서 계속됨)

Posted by 사무엘

2018/01/25 08:29 2018/01/2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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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언어유희 관찰

1. '아' 다르고 '어' 다름

  • 이건 번역이 아니라 반역이다.
  • 이건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다.
  • 저놈들은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소탕의 대상일 뿐.

음운 하나만 바꾸니 긍정· 중립적인 심상이 확 부정적인 심상으로 바뀜.
이런 맛깔나는 개드립을 만들 수 있는 예가 또 뭐가 있나 궁금하다.

ㅐ와 ㅔ도 '한대', '한데', '한 데' 모두 다름.
'매다'와 '메다', '결제'와 '결재' 의외로 구분하기 아주 어렵다.
"사랑해 보고 싶다", "사랑해. 보고 싶다"가 다른 것만큼이나...!!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2. I sawed the demons

Doom 1 게임의 배경 음악 중에 제목이 "I sawed the demons"인 곡이 있는 걸 보고는 표현의 기발함에 빵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국산 영화 중에 "악마를 보았다"가 있는데.. saw가 아니라 sawed이다. 핑키데몬 패거리를 훌륭한 대화수단인 전기톱으로 쓱싹쓱싹 썰어 죽였는가 보다.

이런 식의 말장난들을 수집하면 자료가 잔뜩 모이지 싶다. 하긴, 레밍즈의 레벨 이름 중에도 "No problemmings!" 같은 게 있었고 말이다.

3. 중의성

난 벡터의 외적이라고 하면 당연히 3차원에서만 정의되고 결과값으로 역시 벡터가 나오는 그 연산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키백과를 보니.. 내적이 행벡터(한 줄짜리..)와 열벡터(한 칸짜리)의 곱으로서 스칼라이듯이, 외적은 반대로 열벡터와 행벡터의 곱으로서 행렬이 나오는 연산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 내가 원래 아는 그 외적은 '벡터곱'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하더라.

자동차 기계에서 '로터리 엔진'도 이와 비슷한 중의성과 혼동의 여지가 있는 단어이다. 모든 행정이 피스톤의 상하 왕복 없이 태생적으로 곧장 회전으로 바뀌는 엔진을 뜻하지만, 한편으로 실린더가 불가사리 팔처럼 달려 있는 '성형'(별 모양 같은.. 星形) 엔진도 로터리라고 불리는가 보다. 내가 아는 로터리 엔진은 제작자의 이름을 따서 '반켈' 엔진이라고 부른다.

'반켈'을 자음 역행 동화까지 반영해서 '방켈'이라고 적는 건 내가 알기로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허용돼 있지 않다. 그래도 이런 음운 변화가 한국어에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영어로도 같은 접두사가 correct의 반의어는 in-correct이지만, possible의 반의어는 im-possible이다~!

4. 마술사와 마법사

magician sorcerer wizard. 마술사 요술쟁이 마법사.
다~ 그 말이 그 말 같다.
심지어 성경에서도 셋 다 등장하며, 별다른 구분이 없이 공평하게 다소 부정적인 심상으로 쓰였다. 출 7:11, 단 2:2처럼.

오늘날의 용례를 따라 좀 구분하자면, M은 영국 신사 검은 모자 검은 정장 차림으로 흰 장갑을 끼고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는 그 사람을 가리킨다. 즉, 전적으로 기술과 트릭만으로 마술 쇼를 선보이는 직업 엔터테이너이다.
유럽에서는 단두대를 작동시키는 사형 집행관이 경찰· 군인 제복 차림이 아니라 저런 마술사 같은 정장 차림이기도 했다. 나름 전문직임을 표방하고 사형수에게 최후의 순간까지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S는 마법사 중에서도 좀 사악한 마법사.. 과학자로 치면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가까운 느낌이 난다. 똑같은 뱀도 snake 대신 serpent, 돼지를 pig 대신 swine이라고 부르는 듯한 그 느낌이다.
각종 동화와 게임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마법사는 전부 이 칭호가 붙는다. 알라딘과 페르시아 왕자에 나오는 Jafar처럼 말이다.

W는 소매가 치렁치렁 내려오는 군청색 계열 robe 차림에다 비슷한 색깔의 고깔도 쓴 백발 할아버지 마법사를 가리킨다. 우리에게 딱 이렇게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
참고로 위저드의 여성 버전이 바로 witch(마녀..!)이다. 얘는 옷차림은 남자와 비슷한데 코가 툭 튀어나왔으며,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세계를 통틀어 wizard라는 단어의 용례를 크게 바꿔 버린 이력이 있다. 자기 컴퓨터 프로그램 UI 요소 이름을 '마법사'라고 붙였기 때문이다. '다음', '다음' 누르면서 몇 가지 선택만 하면 나머지 작업은 마치 컴퓨터가 마술을 부리듯이 짠 알아서 해 준다고..;;
그거 원조가 1994년 Word 6.0에서 도입된 문서 작성 마법사(정확히는 문서· 양식마당 같은 기능)이다. Visual C++에서도 초기 프로젝트를 세팅해 주는 기능의 이름이 AppWizard이다.

5. 토마토와 감자

개인적으로 유튜브에서 즐겨 보는 Doom 2 플레이 동영상 시리즈 채널이 있다. 중계를 하는 아저씨가 말을 참 찰지게 잘했다. replenish the ammo (탄약을 보충) 이런 말도 하길래 지금까지 성경에서 문어체로만 보던 replenish가 현대에도 구어에서 저렇게 쓰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양반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시뻘건 둥근 몬스터 Cacodemon을 토마토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big red tomato랜다.. ㅋㅋ 카코데몬이 토마토라니.. 완전 창의적인 발상이다.
그리고는 비슷한 계열의 갈색 몬스터인 Pain Elemental을 감자라고.. potato라고 불렀다. 한국어 내지 한글 표기로는 전혀 느낄 수 없지만, 영어로는 감자와 토마토가 묘하게 롸임이 잘 맞는 단어들이다. =_=;; 유전공학에서도 괜히 pomato라는 말을 만든 게 아니다.

하긴, 스타크래프트에도 비슷한 예가 있으니, 바로 템플러 두 기가 합체한 아콘이다. 빨간 공(다크 아콘), 파란 공(그냥 아콘) 둘을 싸잡아서 전구 러쉬라고도 하는데 꼭 리버처럼 특정 동물이나 벌레를 닮지 않은 아닌 유닛도 이렇게 애칭이 존재하는가 보다.

6. 어휘 병렬

난 초월번역 때문에 퍼진 이런 유행어들을 좋아한다. '찢고 죽인다'(rip and tear), '크고 아름다운', '힘세고 강한'(mighty fine...??)..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는 딱히 초월번역은 아닌 것 같다.
awe는 성경에서도 fear와 비슷하지만 좀 더 놀라움과 존경(대단하게 여김)의 뉘앙스가 가미된 '두려움'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또한, 유의어를 대구· 병렬해서 의미를 강조하는 것 자체도 성경에서 문학서 위주로 즐겨 쓰이는 수사 기법이다.
우리말에서는 기도할 때 많이 쓰이는 '고맙고 감사하신 하나님' 이것도 비슷한 용례일 수 있겠다. 엄밀히 말해 주술 호응이 어법상 좀 안 맞긴 하지만 말이다.

병렬과 대구는 유의어로 할 수도 있고 반의어로 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수학을 좋아하는데, 그 다음으로 수학을 도구로 사용하는 과학 계열 과목을 덩달아 좋아하고 잘한다면 그건 뭐 뼛속까지 이공계 적성일 것이다. 이런 건 일종의 유의어 병렬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인이 영국, 캐나다 같은 나라의 복수 국적도 덩달아 갖고 있는 격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수학을 좋아하는데 극도의 추상적인 것만 추구하다 보니 그 다음으로 철학이나 신학(...)으로 빠져드는 사람도 있다. 파스칼은 대표적인 예이며, 아이작 뉴턴도 물리뿐만 아니라 저 바닥으로도 사상이 장난 아니게 심오하고 책도 많이 쓴 사람이었다.
이런 건 반의어 병렬인 걸까? 미국인이 호주나 일본 같은 나라의 복수 국적을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7. 영화 대사

(1) 범죄도시 영화에 나오는 '진실의 방'과 '전 변호사'
이말년 씨리즈에 나오는 '존대말 학습기'
가혹행위 고문 도구일 뿐인데 쓸데없이 병맛 고퀄의 이름을 붙여 놓은 예가 또 뭐가 있을까?
이런 거 나오면 재미있다. 범죄도시에 나오는 '휘발유와 경유'는 둘리에서 '핵폭탄과 유도탄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배우는 언어 예절은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

  • When someone says 'hi,' it's usually polite to say 'hi' back. (테이큰.. 끝날 때 다 돼서)
  • You forgot to say 'please'. (터미네이터 2 첫부분..)

정말 기가 막히게 대사를 쓴 것 같다.. ^_^
특히 후자의 경우, 그 마초 아저씨는 자기에게 대뜸 "오토바이, 재킷, 구두 좀 내놔"라고 요구하는 벌거벗은 청년에게 담배빵까지 선사하면서 참교육을 시도하지만, 상대는 터미네이터인지라 교육이 통하지 않고 자기가 쳐발렸다..;; (아 그나저나 벌거벗은 남자에게 담배빵이면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종말편과 비슷한 장면이네..!! ㅋㅋㅋ)

(3) 내가 타이타닉 호 내지 영화 타이타닉 얘기를 하면서도 지금까지 이걸 언급한 적이 없었구나. 칼의 집사이며 흥신소 탐정 출신의 '러브조이'는 악역인데 왜 이름을 하필 성경적인 심상이 굉장히 강한 '러브조이'라는 이름으로 지었는지 궁금하다.
갈 5:22가 말하는 '성령의 열매' 중 첫째와 둘째가 바로 사랑, 기쁨(love, joy)이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peace, longsuffering 등이 이어진다.

영화를 본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본인은 오로지 칼만이 속물 나쁜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말 원리 원칙대로라면 타이타닉은 음행을 자유로운 사랑이라고 정당화· 미화하는 색채가 짙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칼은 싫지만 칼의 다이아몬드 선물은 싫지 않았던 로즈의 행동도 역시 비판받을 점이다. -_-;; "과속 칼치기 vs 차로 안 지키기"만큼이나 내가 나이가 들면서 생각과 관점이 약간 바뀌었다.

8. 나머지..

  • '자급자족'과 '자업자득'은 용도와 뉘앙스가 굉장히 다른 사자성어이긴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의외로 구분이 쉽지 않은 게 느껴진다...;;
  • 망치와 마치, 갯벌과 개펄.. 이렇게 원래는 발음이 미묘하게 다르고 뜻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구분이 없어져 버린 말의 예가 더 있을까? 돌과 돐도 비슷한 경우이겠다.
  • 동물 중에도 이리와 늑대(wolf), 부엉이와 올빼미(owl) 같은 건 구분이 꽤 애매하다.
  • 서울랜드는 '서울 대공원'의 안에 있는 놀이공원이고, 반대로 롯데월드는 놀이공원인 '롯데월드 어드벤처'를 포함한 복합 시설의 총칭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둘을 섞어서 아무 명칭이나 놀이공원을 가리키는 용도로 쓰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22 08:31 2018/01/2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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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서울 밖으로 등산 갈 때는 성남, 하남, 구리 등 동쪽을 다니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서쪽의 광명으로 원정을 갔다.
광명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도덕산, 구름산, 가학산, 서독산이 자그마한 산맥을 이룬다. 산들의 높이 자체는 200m대에 지나지 않지만 수평 거리가 긴 편이어서 산책하기 좋다. KTX 광명 역은 최남단에 있는 서독산의 동쪽에 있으며, 광명 시내보다는 안양과 더 가까이 있다.

본인은 광명시 보건소 근처에서 구름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구름산과 가학산의 정상을 보고, 거기서 곧장 하산했다. 그리고 광명시에서 대대적으로 밀고 있는 관광 명소인 '광명 동굴'을 구경하고 왔다. 즉, 맨 위와 맨 아래의 두 산은 건너뛰고 중앙의 두 산을 올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는 어째 공원처럼 등산로가 넓고 울타리가 둘러져 있고 벤치와 정자도 많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는 그렇잖아도 '구름산 도시 자연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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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구름산과 가학산을 통틀어서 산 속의 정자들은 이렇게.. 나무 기둥이 수직이 아니라 아래로 쩍 벌어진 스타일이었다. 이런 정자는 처음 봤다.

공원 구간을 벗어난 뒤부터 등산로는 여느 산길처럼 울타리 없는 좁은 흙길로 바뀌었다. 중간에 산을 관통하는 구름산 터널을 타넘었다. 여기는 전반적으로 흙산이지만 바위도 종종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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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관악산 방면을 바라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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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앞두고 여느 정자보다 좀 높은 2층 정자가 나타났다. 산불 감시 초소라고 하는데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등산객용 전망대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장대비가 쏟아지는 산 속에서 이런 정자를 찾아가서 비를 피하고 야영을 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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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동쪽 아래는 빽빽한 시가지인 반면, 서쪽 아래는 비교적 한적한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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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에는 커다란 표지석이 있고, 붉은 기둥의 정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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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산 정상에서 가학산으로 가려면 능선만 타는 게 아니라 고개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했다. 능선에는 군부대가 있고 철조망이 쳐져 있어서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꼭대기에 있지만 공군은 아니고 육군 부대였던 걸로 본인은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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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이다. 등산로가 군부대 철책보다 아래에 있다.
그리고 어디서부턴가 이 길은 '광명 누리길'이라는 팻말이 나타났다. 각 도시들이 자기 관할인 산들에 등산로· 산책로를 개척해 놓고 이름을 붙이는 건 유행이라도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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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드디어 가학산의 정상에도 도달했다. 표지석은 앞면과 뒷면에 한글과 한자 표기가 모두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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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얘기했듯이, 가학산 정상에서 계속 남쪽으로 진행해서 서독산으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은 그러지 않고 서쪽의 광명 동굴 방면으로 하산했다. 여기는 보다시피 그냥 절벽이기 때문에 굉장히 급격한 계단을 따라 잠깐 내려가야 했다.

산 아래에 분홍색으로 칠해진 저 건물은 '광명 자원 회수 시설'이라고 한다. 굴뚝이 정말 크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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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동굴이란 자연 동굴이 아니라 가학산의 기슭과 아래에 꽤 방대하게 뚫려 있던 광산이 원조이다. 강원도가 아니라 서울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그리고 그냥 평범한 동네 뒷산 같은 이런 산의 아래에 광산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꼭대기는 군부대이고 땅 속은 광산이라니 으음..
석탄은 아니고 여러 종류의 중금속들이 그럭저럭 채굴돼 나왔다고 한다. 구리, 아연뿐만 아니라 금과 은도 약간이나마 나왔다.

이 광산은 일제 강점기이던 1912년에 처음 개척되었고 해방 후에도 수십 년간 광부들의 일터 역할을 했으나, 그로부터 딱 60년 뒤인 1972년에 환경 오염 문제(그리고 아마 채산성도 감소)로 인해 폐광하게 됐다.
그 뒤 이 부지는 몇십 년 동안 버려져 있었는데, 2010년대에 들어서 광명시에서 약 빤 모험을 시작했다. 폐광을 테마파크 관광지로 마개조한 것이다.

이건 온통 산이고 광산도 제일 많은(그래서 철도도 산업선이 제일 먼저 깔린..) 강원도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일이었다. 강원도는 광업이 망하면서 지역 경제가 싹 죽자 호텔· 콘도 짓고 올림픽 유치하고 강원랜드 같은 카지노만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과정을 거쳐서 구 가학 광산은 2011년에 처음으로 일부 구간만 민간에 개방되었다가 몇 년 뒤엔 별별 물고기· 식물 전시관, 좀비 체험(!)관, 그리고 와인 갤러리 등이 추가되고 이름도 '광명 동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료 입장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높은 천장에 거대한 계단을 타고 밖으로 나가던 홀(?) 비슷한 장소는 공연장으로 바뀌었으며, 그쪽으로 나가지는 않게 동선도 바뀌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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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 갱도라는 게 대체로 그렇듯이, 출입구는 평지보다 높은 곳에 있지만 채굴을 계속할수록 엄청나게 낮고 깊어진다. 가학 광산도 원래 지하 9층까지 있었지만 광명 동굴은 두 층만 사용하며, 지금도 민간에 개방된 공간은 극히 일부뿐이다. 물론 그 두 층이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건물 두 층 높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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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답게 나름 이렇게 보물 코스프레를 해 놓은 곳도 있다. "알리바바와 40명의 도둑"에서 '열려라 참깨' 동굴 안 모습이 이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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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전시관 구경을 다 하고 올라온 뒤에는 광산 역사관과 와인 갤러리를 둘러본 뒤 퇴장하게 돼 있었다. 저런 모형도 있고, 방 중앙에는 아래의 광부들이 탄 리프트를 끌어올리는 엘리베이터 기계실처럼 생긴 물건도 전시돼 있었다.
공교롭게도 Doom 2의 레벨 26 The abandoned mines가 딱 이런 구조물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맵이다.

세상엔 여러 극한 직업들이 있지만 광부는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3D 극한 직업이지 싶다. 뭐, 농부· 어부에 비해서 날씨는 별로 타지 않는 직업일 것 같지만, 날씨보다 더 위험한 요소가 널려 있다. 오죽했으면 미성년자는 물론이고 여성은 소수의 부득이한 상황을 제외하면, 갱내 근로가 아예 대놓고 "금지"돼 있으며(근로기준법 제72조), 우리나라에서 옛날에 어떻게든 외화 벌려고 그 먼 독일까지 괜히 광부(+간호사)를 보낸 게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시절엔 가정과 나라가 얼마나 가난했으면, 거기에라도 가려고 대졸자들이 바글바글 몰렸으며, 너도 나도 손에 일부러 연탄 가루까지 묻히면서 면접관에게 "꼭 가고 싶습니다!"라고 외쳤었다. 돈을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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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전등갓조차도 와인 잔을 엎어 놓은 형태이더라.
하긴, 포도주는 생각보다 종류가 굉장히 많고 와인 잔도 종류가 다양했다.
포도를 재배하지도, 포도주를 생산하지도 않는 웬 수도권의 어느 도시가 전국 최대의 포도주 판매· 유통처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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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등산과 동굴 구경을 마치고 나왔다.
차 없이는 다니기 힘들어 보이는 오지이지만 유일하게 17번 버스가 광명 동굴을 찾은 뚜벅이들의 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나가니 KTX 광명 역이 나왔다. 난 광명 역의 주변 지상에서는 철길을 전혀 볼 수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또한, 역 주변으로는 어마어마한 높이과 크기의 아파트인지 주상복합인지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호반베르디움??)
본인은 여기서 오랜만에 광명 셔틀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광명에는 저렇게 폐광을 창의적으로 활용한 동굴이 있고 고속철 역이 있고 경륜 경기장도 있고(광명 스피돔. 하남에는 미사리 카누 경기장), 이케아도 있다(하남에는 스타필드?).
나름 광명 시장이 시의 인지도를 올리려고 유치해 낸 거라고 하니, 그 사람이 참 유능한 인물인 것 같다.

저기는 그냥 경부선 철길에서 미묘하게 비껴 간 오지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내 생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옛날에는 "지하철 타면서 농사 짓는 이색적인 사람"라고 해서 광명의 어느 서울 근처 그린벨트에서 사는 할아버지 소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거기도 온통 개발되고 있으니 그런 사람을 볼 일이 없어질 것이다.

광명에서는 광명 동굴을 명물로 밀고 있는데, 구리시에서는 왕릉을 밀고 있다. 오죽했으면 근처의 버스 정류장을 아예 긴 명사절로 지었다. (우리나라 최대 왕릉군인 동구릉.. -_-)
다음 산행 내지 산책 때는 저기도 언젠가 가 볼 생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19 08:32 2018/01/1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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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아차산

본인은 지난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이 블로그의 여행 카테고리가 대부분이 등산 후기로 도배될 정도로.. 서울 근교의 어지간한 산들은 다 돌아다녀 봤다.
그러면 다음으로는 설악산이나 지리산, 한라산(!!)처럼 점점 더 먼 곳에 있고 더 크고 높고 유명한 산들로 원정이라도 가야겠지만 본인 여건상 그렇게는 못 하고, 일단은 예전에 이미 올랐던 산들을 다른 등산로로 다시 오르는 쪽으로 등산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특히 지금 정도로 지리 특성과 역사 배경을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사진과 여행기를 남기는 관행이 정착하기 "전", 완전 초창기나 더 옛날에 올랐던 산들이 이런 복습 대상이다.
아차산은 서울 시내에 가까이 있고 높이도 아주 낮아서 만만하고, 먼 옛날에 회사 사람들과 같이 오른 적이 있으며 2016년경에 용마산 쪽에서 혼자 답사한 적도 있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또 찾아갈 일은 없으리라 여겨졌다. 하지만 그런 편견을 깨고 다시 가 보니 예상 밖으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아차산은 도보 내지 대중교통으로는 말 그대로 서울 지하철 5호선 아차산 역에서 접근 가능하다. 단, 역은 천호대로라는 큰길에 있으며 여기서 등산로 입구까지는 또 수백 m~ 1km가량 떨어져 있는데, 등산로 코앞까지 도달하는 대중교통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산을 향해 미묘하게 오르막 형태인 긴 먹자골목과 주택, 빌라를 지나야 한다.

자동차로는 여기뿐만 아니라 ‘아차산로’라는 찻길을 통해 산기슭의 공영 주차장까지 접근할 수 있다. 아차산-광나루 사이의 고갯길을 지나다 보면 위로 차도가 고가 형태로 지나는 걸 볼 수 있는데, 바로 그 길이다. 아차산은 마치 북악산의 북악 스카이웨이처럼 막 높게는 아니어도 내부에 자동차 도로가 닦여 있으며, 이게 동쪽의 장신대와 워커힐 호텔 및 아파트 쪽으로도 간다.

아차산의 여러 등산로 중 이렇게 남쪽 공영 주차장 일대는 여느 산답지 않게 상당한 고퀄로 꾸며져 있다. 바로 근처에 외국인들이 찾는 고급 호텔이 있기 때문인지, 아차산성 같은 고대 유적이 있기 때문인지, 등산로가 서울 둘레길로 지정됐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가 법적으로 무슨 국립공원 같은 급은 절대 아니며 발굴된 삼국시대 유적이 무슨 경주 남산 같은 급으로 양과 질이 엄청난 것도 아닌데, 더구나 이웃의 용마산 등산로를 비교해 봐도 아차산 서울 구간은 뭔가 특별한 관리를 받아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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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기 전, 주차장 근처에 이런 생태 공원이 있는 걸 발견하고 들러 봤다. 공원 자체도 평지가 아니라 비탈길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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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아차산성 + 아차산 정상을 향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날은 맑고 덥지 않으며, 나뭇잎들은 아직 단풍으로 물들지 않고 초록색이 남아 있으니 이런 날이 등산 가기 아주 좋았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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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성은 주변 조사와 복원 공사가 한창이니 여기 일대에 민간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울타리· 표지판과 함께 근처만을 스치듯이 구경할 수 있었다.
사실, 산에 군사 보안 시설이 전혀 아니면서 민간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을 보는 일은 몹시 드물다. 우면산 같은 산은 아예 과거 지뢰 매설 지역이라는 경고문까지 있지 않던가?

아차산엔 군사 시설 같은 건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등산로를 벗어난 다른 어딘가에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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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가 곁들어진 흙길을 벗어난 뒤부터는 등산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흙길 대신 암반이 등장하고, 나무 없이 하늘이 뻥 뚫린 곳이 나타났다. 그리고 산 아래의 전망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본인은 옛날에 아차산을 오를 때에는 이런 흙길 대신 암반이 굉장히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산을 올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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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망대에는 무료 망원경도 비치되어 있었다. 평범한 서울 야산에서는 보기 드문 시설이다.
아차산과 그 북쪽 산맥(?)은 나름 서울과 구리시의 경계이다. 예전에 일자산이 동서로 서울과 하남시를 갈랐던 것처럼 말이다. 둘 다 서울 동부에서 서울 둘레길 경로라는 공통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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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한 언덕을 올라서 아까 전에 지나쳤던 다른 언덕을 찍은 것이다. 요게 아차산 상부의 특징이다.
여기 일대의 넓은 공터가 아마 정상은 아니고 "해맞이 광장"이었지 싶다. 여기서 풍경 사진을 여러 구도로 남기긴 했지만, 전부 게재는 시간과 지면 관계상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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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산 위의 풀밭 같은 평지를 지났다.
산 꼭대기 근처에 넓은 평지가 있으면 거기는 십중팔구 H자 모양의 헬리패드가 있을 텐데, 여기는 그렇지도 않았다.
풀밭에 돗자리 깔고 앉고 싶기도 하지만.. 길을 벗어나지 말라고 울타리가 낮게나마 계속 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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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돌무더기 위의 마지막 평지가 바로 아차산의 정상이었다. 정상 표지석 같은 건 없고 그냥 문화재 유적 설명만 있었다.
아차산 자체는 높이가 300m도 채 되지 않고 서울 남산과 비슷한 급일 뿐이다. 다만, 높이 대비 비탈이 완만하고 이동 거리는 긴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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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깔린 돌무더기는 역사 고증을 거친 건지 아니면 별 생각 없이 만든 건지는 모르겠다만, 흰색과 누런색이 어우러진 게 마치 은덩이 금덩이 같고 색깔 배색이 나름 화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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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정상의 바로 옆에는 저렇게 이웃의 용마산이 있다. 아차산 정상 이후에 그냥 이 봉우리로만 하산하는 길은 딱히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반면, 서울 둘레길은 용마산 방면으로 형성돼 있다. 거기서 용마산 정상으로 가려면 서쪽으로 더 가야 하고, 둘레길은 북쪽 망우산 방면으로 향한다.

본인은 아차산 정상을 찍은 이후에는 일단 서울 둘레길을 선택했다. 여기부터는 작년에 답사했던 구간과 중복이니 헬리패드나 보루 같은 장소를 옛날에 봤던 기억이 슬금슬금 나기 시작했다. 그때는 용마산 정상 도착 직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 반면, 이번엔 날씨가 아주 맑으니 분위기가 좋은 대조를 이뤘다.

단, 그때는 망우산 묘지 구경을 하느라 서울 북부로 빠져나가 버렸으니 이번에는 산 동쪽의 구리시 방면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깔딱고개를 오르내린 뒤 사거리가 등장했을 때, 본인은 "아치울 마을" 방면을 선택했다. 좀 충분히 많이 걷고 나서 구리시 북부에서 하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심지어 발 아래로 아차산 터널조차 넘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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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고 좁은 구리시에서도 아차산의 자기 관할 영역 내부에 나름 ‘구리 둘레길’이라는 걸 제정해서 홍보하고 있었다. 여기는 별다른 문화재 유적은 없고 그냥 울창한 숲길이 이어졌다.
처음 입산했던 서울 광진구 관할 구간에 비해 훨씬 조촐 단촐했으며 다른 등산객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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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에는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다만, 수질 검사를 언제 해서 결과가 어떻게 나왔다는 쪽지가 붙어 있지는 않았다.
아치울 마을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은 나름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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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마을이 나타났다. 등산 마치고 내려가면서 과천, 광주, 남양주, 하남, 성남 등 여러 곳의 산기슭 마을을 구경했는데, 구리시의 마을을 이렇게 구경하는 건 처음이었다.
본인은 뒷산이 병풍처럼 깔렸고 단독주택과 빌라들이 들어선 한적한 마을에 사는 것에 대한 로망이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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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차산 등산을 마치고 마을 어귀에까지 도달한 뒤, 대로(아차산로, 국도 43호선)로 나가서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바로 옆에 강변북로(거의 시점!)와 한강이 지난다.
이곳을 지나는 버스들은 대부분 광나루 역을 경유하고, 모든 버스들이 닥치고 강변 역으로 갔다. 거기가 시· 종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일대에 석유 공사의 본사일 리는 없고 철조망이 둘러진 무슨 시설이 있는 것을 차창 밖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민간 지도에는 당연히 숨겨져 있고.. 나름 아차산에도 보안 시설이 하나 있긴 하구나.
성남 석운동에는 송유관 공사가 있더니 성격이 비슷한 시설인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16 08:37 2018/01/1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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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버전 개발 근황 2

오늘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 9.3에서 팝업창 형태로 새로 추가되는 보조 입력 도구 두 가지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1.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이 입력 도구는 구동 직후에 화면에 뜨는 것이 없다. 그 대신, 사용자가 뭔가 한글 입력 같은 조합을 만들기 시작하면 짠 나타나서 지금 단계 이후에 진행 가능한 조합(왼쪽)과, 이 상태에서 변환 가능한 후보 문자열(오른쪽)들을 목록으로 쫙 표시해 준다.
사용자 정의 조합의 경우, 가령 A를 누른 뒤에 ' ` ^ -이런 것을 뭘 더 누를 수 있고, 그걸 누르면 문자가 무엇으로 바뀌며, 지금 상황에서 무슨 문자로 변환 가능한지 목록으로 미리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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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영문 쿼티에다가 글자별로 온갖 확장 부호들을 후보로 배당해 놓은 QwertyExt 예제를 불러온 뒤 =를 눌렀을 때 나타나는 목록이다. 비록 단어 단위가 아니고 글자 단위이긴 하지만, 일일이 한자 글쇠를 누를 필요 없이 곧장 후보 변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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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각각 한글과 라틴 알파벳으로 일본어 히라가나 문자를 입력할 때 나타나는 목록의 모습이다. 지금 상황에서 저런 알파벳이나 한글 자모를 누르면 저런 문자가 계속 입력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정보다 약간 옅은 회색 글자는 이 문자가 조합이 아닌 완성된 형태로 삽입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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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한글 조합은 사용자 정의 조합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테이블 기반이 아닌 '공식 기반'이니 직관적인 편이며, 조합 가능한 글자 수도 아주 많다. 그렇기 때문에 'PC+현대 한글' 같은 아주 널널한 경우라면 굳이 이런 식의 preview 기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글 입력도 옛한글을 다룬다거나 글쇠 수가 아주 적은 모바일 내지, 허용 한글 제약 기능이 있는 특수한 상황이라면 이 도구의 유용성이 크게 올라간다. ㄹ로 시작하는 옛한글 겹자음은 ㄷ으로 시작하는 옛한글 겹자음보다 훨씬 더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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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뿐만 아니라 '두'다음에 결합 가능한 옛한글 중성들도 저렇게 쫙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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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 낱자 입력 로직 생성기'를 돌려서 KS X 1001 완성형 한글만 입력 가능하게 하고, 더 결합의 여지가 없는 단계에 도달하면 조합을 곧장 끊게 오토마타를 설정했다. 그랬더니 '바'와 '파'에 대해서 이렇게 서로 다른 결과가 나왔다. '파' 다음에는 '바'와는 달리 ㄷ, ㄺ 같은 받침이 붙지 못한다. '바'는 반대로 '파'에 있는 받침 ㅆ이 존재하지 않는다.

'박'은 '밖'이 결합 가능하며 '발'은 그 뒤로 '밝, 밟'이 존재하기 때문에 쟤들 둘만 회색이 아닌 검정으로 표시되어 있다. '밟'이 저 목록에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ㄼ이 단독 글쇠로 존재하지 않는 세벌식 390 글쇠배열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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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입력 도구는 현재 사용 중인 키보드 입력 스키마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입력 기능을 갖춘 타 입력 도구를 기준으로도 잘 동작한다. 한손 입력기는 저렇게 천지인 (또는 옵션을 바꿔서 나랏글) 모음에다가 5개 자음(초성 종성 따로)을 갖췄다는 것이 목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글 조합에 대해서 진행 가능한 조합 단계는 (1) 가장 최근에 입력된 낱자에 대해서 더 적용 가능한 낱자 결합 규칙을 모두 먼저 표시한 뒤, (2) 바로 다음 입력 단계(가령, 중성 다음엔 종성)에 해당하는 글쇠들 중 글쇠배열에 있는 것을 표시하는 식으로 동작한다.
즉, 낱자 결합 규칙과 글쇠배열을 기본적으로 활용하되, 이 중에서 오토마타 수식과 한글 입력 범위 제약 검사를 통과한 것만 한정해서 가나다 순으로 출력한다.

이 도구는 오로지 현재 조합 중인 문자(열)에만 관심이 맞춰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성을 입력하고 있을 때 다음 글자의 초성이나 중성(두벌식 기준)까지 미리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사용자의 요청이 많고 그것까지 고려하는 게 충분히 유용하다면 다음 버전에서는 반영될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제외했다.

그리고 이미 제공되는 후보 변환 UI와는 달리, 숫자를 눌러서 항목을 바로 선택하는 기능도 제공되지 않는다. 얘는 후보 변환 UI보다는 개발툴의 에디터 같은 데서 제공하는 "자동 완성 목록 UI"를 표방하여 설계됐기 때문이다. 키보드를 사용하려면 설정 대화상자에서 옵션을 지정해야 하며, 이 경우 상하좌우 화살표와 Page up/down으로 선택막대를 이동시킬 수 있다. 엔터와 ESC는 덤이고.

이 도구는 '글쇠배열 이름 표시'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cursor의 바로 아래에 표시돼야 한다. 하지만 구현체의 상황에 따라서는 기술적으로 위치를 알 수 없어서 불가피하게 화면 한구석 같은 엉뚱한 곳에 표시될 수도 있다.
심지어 EditPlus 3.x는 이 도구를 띄워 놓으면 조합 문자열이 계속 같은 곳에서 덮어 써지면서 입력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후대 버전에서는 고쳐졌나 모르겠다.

이 프로그램이 근본적으로 없는 길을 트는 방식으로 동작하며, 한 프로그램에서 되게 하는 방법이 다른 프로그램에는 부작용을 일으키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EditPlus 한 프로그램에서만 부작용이 발생하는 걸 더 어찌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일단 개발 과정에서 이런 일이 있었음을 밝힌다.

2. 조합 안에 조합 생성

날개셋 한글 입력기는 말 그대로 한글을 입력하는 게 핵심인 입력기이다.
한글 IME는 조합하고 있는 한 글자만 신경 쓰면 되지 중국어나 일본어 IME처럼 단어· 문장을 통째로 조합을 잡을 필요가 없다. 길다란 조합 문자열 내부에서 또 가상의 caret을 이동한다거나 구간별로 영역을 달리하여 점선이나 실선으로 표시할 필요도 없다. 그건 내 프로그램의 관심 분야가 아니라고 도움말의 '일러두기'에다가 명시까지 해 뒀다.

개발자인 본인의 시간과 체력은 매우 한정돼 있는데, 이 와중에 관심 분야를 대책없이 이것저것 문어발처럼 뻗치다 보면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죽도 밥도 안 되는 이상한 산으로 가 버릴 위험이 있다. 더구나 편집기 같은 전용 프로그램이라면 모를까 외부 모듈이라면, 한글 IME에서는 어차피 운영체제가 조합을 그렇게 일본어· 중국어 IME처럼 표시하는 기능을 애초에 지원해 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프로그램도 기왕이면 타 언어 IME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수 있으면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본인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해 왔다. 기약 없는 먼 미래의 일이지만 장기 과제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2017년 겨울~그리고 올해 초 사이에 바로 그 꿈이 실현되는 미래가 찾아왔다.
글자 단위로 동작하는 기존 문자 생성기를 내부 버퍼에다 감싸서 단어· 문장 단위로 통째로 변환 후보를 제시하고 변환하는 기능들에 대해 공통 인터페이스를 제시하고, 이걸 '입력 도구'의 형태로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한글을 글자 단위로 곧장 내보내지 않고 묶어서 내보내는 것은..

  • 과거 도스용 아래아한글에서 잠시 제공하던 새김 단위로 한자 입력
  • TSF를 지원하지 않는 프로그램에서도 단어 단위로 한글-한자 변환. 특히 매번 한자 키 안 누르고 곧장 변환하기
  • 한글 발음으로 일본어나 중국어 입력 (당연히 단어· 문장 단위로 한꺼번에 변환)
  •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듯이, 자주 사용되는 단어의 자동 완성

이렇게 잠재적인 활용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냥 공통 인터페이스를 상속받아서 각 기능별로 후보를 제시하는 알고리즘만 달리하면 된다. 구현할 가치가 매우 높다고 판단되어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구조를 전반적으로 다 뜯어고치고 확장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만큼 보람을 느낀다.

'새나루' 입력기에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개발 방향의 컨셉· 차이로 인해 제공하지 않던 기능이 두 가지쯤 있었다. 하나는 드보락이나 콜맥 같은 임의의 영문 키보드 드라이버를 한글 IME(= 새나루 자신)와 연결하는 기능이다. 이건 내 프로그램도 지난 8.6 버전 때부터 드디어 도입됐다. 임의의 키보드 드라이버와 연계 가능하게 프로그램 구조가 싹 개선되면서 두 입력기 간의 차이가 없어졌다. 내 프로그램은 그에 덧붙여 키보드 드라이버의 동작을 보정하는 옵션까지 갖추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자 변환 관련이다. 새나루는 한글, 영문처럼 '한자'라는 입력 모드가 있어서 (1) 매번 한자 키를 누르지 않아도 한자 후보가 한글과 함께 곧장 떠서 변환할 수 있었으며, '단어 단위 조합 생성'이라는 옵션이 있어서 (2) TSF가 지원되지 않는 환경에서도 2글자 이상의 단어 단위로 한자를 변환할 수 있었다. (1)과 (2)를 동시에 사용하면 타 한글 입력기를 쓸 때보다 한자 변환을 훨씬 더 빠르고 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한자 혼용론자 진영(!!)에서는 자기들끼리 새나루의 사용을 권장할 정도였다.

그에 반해 내 프로그램의 개발 이념에 비춰 보면, 단어 단위 한자 변환은 그냥 이미 있으니까 덤으로 제공하는 보조 기능에 가깝다. 한글을 단어 단위로 조합을 잡는 것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딱히 개발자가 한글 전용 소신을 갖고 있어서 의도적으로 제공 안 하는 건 아니고, 그냥 개발 방향과 맞지 않기 때문에 지원하지 않았다. 세벌식 모아치기가 아니라 그런 기능이 필요하면 날개셋 대신 그냥 새나루 쓰라고 말이다.

그랬는데 먼 훗날, 결국 내 프로그램도 새나루에서만 제공되던 기능을 더 범용적인 형태로 수용하고 구현하게 됐다. (1)은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입력 도구를 띄워서 후보 목록만 표시하게 설정하면 된다. 그리고 (2)는 '조합 안에 조합 생성' 입력 도구를 띄워서 단어 단위 한자 변환 기능을 설정하면 된다.
지금까지는 그런 변환 기능이 날개셋 한글 입력기 내부에서 어떤 위상과 계층을 차지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구현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입력 도구'라는 이론적 근간이 마련됐기 때문에 구현됐다.

한글 말고 영문의 경우도 T9 같은 모바일용 입력 방식에서는 단어 단위 조합이 필요하다. 한 글쇠에 여러 글자가 배당되어 있고 사용자가 multi-tap 없이 각 대표 글쇠만을 눌렀을 때, 사용자가 의도한 실제 단어가 무엇인지 유추하고 자동 완성 후보를 제시하려면 변환 엔진이 단어 전체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할 테니 말이다.
이 '조합 안에 조합' 입력 도구는 '휴대전화 입력기' 내지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입력 도구와도 연계해서 사용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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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조 입력 도구의 내부에서 '조합 안에 조합'이 생성되고 있을 때는 문자 입력 기능에 기술적으로 다음과 같은 제약이 걸린다.

1. 빈 입력 스키마(호환 옵션 포함) 계열의 글자판을 사용할 수 없으며, '글쇠 누름' 계열의 날개셋문자로 문자를 입력할 수 없다. 그건 태생적으로 글쇠를 IME가 가로채지 않고 응용 프로그램 내부로 보내는 기능이기 때문에 '조합 안에 조합'을 생성하거나 건드릴 수 없다. 한글이야 애초부터 IME가 글쇠를 가로채지 않으면 입력할 수 없는 문자이기 때문에 별 문제될 게 없는 반면, 영문이나 숫자를 입력할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2. 이 상태로 또 글자 단위 후보 변환을 할 수 없다. '조합 안에 조합' 입력 도구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어 전체를 한꺼번에 다른 문자열로 변환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그 안에서 또 글자별 후보 변환을 하는 상황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외부 모듈이 원래 고유하게 갖고 있던 후보 변환 UI와, 조합 안의 조합이 요청할 수 있는 후보 변환 UI 사이의 충돌 등, 상황이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때도 굳이 한자 변환을 하고 싶다면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입력 도구를 미리 꺼내 놓고 사용하면 된다.

이런 제약은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구현체가 전용 텍스트 에디터인 '편집기'밖에 없다면 굳이 존재하지 않을 제약이다. 하지만 외부 모듈과 입력 패드에서는 내가 가로채는 글쇠뿐만 아니라 응용 프로그램이 처리하는 글쇠도 고려해야 하고, 운영체제와 통신하는 부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만능 범용성을 보장할 수 없다.

'조합 안에 조합'은 저렇게 제약과 불편한 점만 있는 게 아니며, 그 특성상 고유한 장점도 있다.
외부 모듈(대부분의 환경)이나 입력 패드는 편집기처럼 주변의 텍스트를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없기 때문에 조합이 끝난 글자를 낱자 단위로 지운다거나 다시 조합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조합 안의 조합' 입력 도구는 자기가 자체적으로 텍스트를 갖고 있으니, 구현체를 불문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동일하게 텍스트를 자유롭게 조작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 결론

이로써 날개셋 한글 입력기가 제공하는 입력 도구들은 오랫동안 4개만 있던 것이 10개로 크게 늘었다. 이들의 특성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명칭 도입 시기 동작 외형
한손 입력기 5.3 (2009) 자체 조합 입력
화면 키보드 5.3 (2009) 기존 입력 스키마
부수로 한자 입력 5.51 (2009) 자체 입력 대화상자
문자표 5.52 (2010) 자체 입력 대화상자
휴대전화 입력기 9.1 (2017) 자체 조합+기존 스키마
글쇠배열 이름 표시 9.1 (2017) 읽기전용 팝업
수식 계산 기록 9.3 (2018) 읽기전용 대화상자
내부 입력 상태 표시 9.3 (2018) 읽기전용 대화상자
조합과 후보 자동 완성 9.3 (2018) 기존 입력 스키마
팝업
조합 안에 조합 생성 9.3 (2018) 기존 입력 스키마 팝업

입력 도구의 동작은 다음과 같이 나뉜다.

  • 자체 조합 입력: 입력 도구가 자신만의 고유한 문자 생성기를 갖추고 조합 문자열을 입력시킨다. 한손 내지 휴대전화 입력기가 이 범주에 속한다.
  • 자체 입력: 굳이 문자 생성기의 조합 없이, 완성된 비조합 문자를 간단히 입력시킨다. 한자 부수 및 문자표가 이 범주에 속한다.
  • 기존 입력 스키마: 현재 사용 중인 입력 스키마와 문자 생성기를 기준으로 날개셋문자를 보낸다. 화면 키보드가 이 범주에 속한다.
  • 읽기전용: 현재 사용 중인 입력 항목의 상태를 표시만 할 뿐, 자기 자신은 아무런 입력 기능이 없다. 글쇠배열 이름 표시라든가 수식 계산 기록 같은 도구가 이 범주에 속한다.

입력 도구의 외형도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분류된다.

  • 대화상자: 제목 표시줄을 갖추고 크기 조절도 되며, 리스트 박스, 콤보 박스 같은 사무적인(?) 컨트롤들이 나타나 있다. 클래식 데스크톱 UI에 가깝다.
  • : 대화상자와 같은 형식을 갖추지 않고 큼직한 버튼 위주로만 구성돼 있다. Metro UI에 가깝다.
  • 팝업: 평소에는 화면에 보이지 않다가 글쇠 같은 특정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에만 잠시 cursor 주변에 나타난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흐르거나 조합이 종료되면 창이 도로 사라진다.

아울러 9.3 버전에서는..

  • 대화상자형 입력 도구들 중에 도움말이 제공되는 것은 제목 표시줄의 오른쪽 끝에 [X]뿐만 아니라 [?] 버튼도 추가했다.
  • 그리고 '입력 도구 선택' 대화상자의 목록에서 이미 켜 놓은 입력 도구는 앞에 *(별표)가 덧붙여져 있게 했다. 평소에 나타나 보이지 않는 '팝업형' 입력 도구도 존재한다는 것을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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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ㄹ+한자 특수문자 변환 테이블의 오류 수정

ㄹ을 입력하고서 한자를 누르면 아시다시피 여러가지 단위 기호가 나타나는데, 넷째 후보로 F가 있던 것을 °로 변경했다. 이건 다음과 같은 여러 정황상 후보 변환 테이블의 오류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 아마 화씨 온도 단위를 의도한 것 같으나, ℉는 뒤에 따로 또 있다.
  • 단순 전각 F는 ㅍ+한자에도 이미 있기 때문에 중복 등재이다. 그 반면 °은 지금까지 KS X 1001 특수문자 중 유일하게 초성+한자 어디에도 배당되어 있지 않았다.
  • 넷째 다음으로 다섯째와 여섯째에는 분, 초 ′ ″ (프라임, 더블 프라임)이 있기 때문에 도-분-초 순서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 °은 KS X 1001 2바이트 코드가 A1C6이다. F는 A3C6으로 서로 비슷하다면 비슷하기 때문에 혼동하기 쉬운 관계이다.

확인해 보니 Windows 95, 아니 3.1 이래로 MS 한글 IME는 줄곧 ㄹ+한자에 F가 있긴 했다. 참 유구한 전통이긴 하지만 오류가 명백하기에 날개셋은 F를 °로 변경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저 오류는 본인이 최초로 찾아낸 게 아니라 역시 정 재민 님의 제보가 출처이다. 도대체 이런 걸 어떻게 발견해 내는지..

하긴, Windows 98 시절엔 ㄹ 자리에 유로화 기호가 추가되었으며, Vista 타이밍엔 ㅁ 자리에 우편번호 기호가 추가되기도 했으니, 이 변환 테이블이 20년째 완벽한 고정불변도 아니긴 했다.
참고로 유로화 기호(U+20AC)는 2바이트 코드로 역변환이 가능한 반면, 우편번호 기호(U+327E)는 그렇지 않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13 08:35 2018/01/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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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 사이의 기간에 마소에서 '도움말, 튜토리얼, tour, intro, guide' 장르에 속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들을 좀 회상하고자 한다.
요즘 튜토리얼이라 하면 컴퓨터 게임에서 본게임을 수행하기 전에 기본적인 조작법을 익히는 싱글 플레이어 미션 정도를 가리킨다. 툼 레이더로 치면 Lara's home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게임 정도가 아니라 컴퓨터라는 괴상한 기계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아주 많았다. '컴맹'이라는 단어 기억하시는가? 1992년에만 해도 '키출판사'라는 곳에서는 <저는 컴퓨터를 하나도 모르는데요>라는 컴퓨터 입문서를 하나 잘 만들어서 전국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수 년간 석권하며 초대박을 쳤었다.
그런 시절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컴퓨터 입문을 도와 주는 프로그램도 나올 필요가 있었다. 특정 프로그램의 사용법뿐만 아니라 키보드 타자 내지 심지어 마우스 같은 사치품(?)을 다루는 방법도 사용자가 익혀야 했다.

마소에서는 오래 전부터 뭔가 인터랙티브한 학습/데모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에 남다른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거 학습을 잘 시켜야 컴퓨터 사용자를 늘리고 잠재적인 자기 고객도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사실은 방대한 운영체제나 Office 솔루션의 '설치 프로그램'도 단계별로 뭔가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UI 구조가 반쯤은 이런 데모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그러니 마소에서 1990년대에 '마법사'라는 UI 요소를 만들어 냈고 두 개념을 합쳐 '설치 마법사'라는 말까지 만든 것이지 싶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도입했던 '길잡이 clippy'는 너무 과잉 오버 사족으로 여겨져서 오래 못 가고 망했다만..)

아무튼.. 마소에서 지극히 초창기에 만들었던 학습 프로그램의 원조로 본인은 QuickBasic 4.5에 들어있던 (1) QuickBasic express를 기억한다. 실행 파일은 learn.com이고, qbcbt.ctx/scn/sob, 그리고 bx.pgm이라고 내부 구조를 알기 어려운 코드/데이터 복합 보조 파일을 추가로 사용한다.
이들 파일들을 다 합해 봤자 크기는 100K가 채 되지 않으며, 압축된 것도 아니어서 얼추 내부 문자열 같은 건 그대로 확인 가능하다. 그래도 프로그램을 실행해 보면 저 작은 크기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학습 컨텐츠가 많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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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은 16색 텍스트 모드에서 아스키 아트를 최대한 창의적으로 활용해서 화려하게 꾸몄다. 무려 열차를 그렸으며, 프로그램을 실제로 돌려 보면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기관차의 구동축이 움직이며 선로가 가로 스크롤을 하기 때문에 열차가 진짜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프로그램 이름에도 BASIC만 빼면 Quick, express 온통 이런 단어들이니 얼마나 스피디한 느낌이 나겠는가? 말 그대로 '퀵베이직 특급· 고속· 급행열차'인 셈이다.

물론, 아스키 128번 이후 문자를 이용한 아스키 아트는 2바이트 단위의 동아시아 문자 코드와는 상극이니 이런 프로그램은 한글화 따위는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니면 아스키 아트들을 2바이트 특수문자 기반으로 완전히 마개조 재창조 초월번역을 해야 할 텐데, 일본은 몰라도 그 당시 한국 마소에서 그런 용자짓을 할 여유와 능력, 재량이 있었으리라 여겨지지는 않는다.

마소에서는 이런 부류의 프로그램에 대해 내부적으로 이미 CBT(computer-based training)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뭐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컴맹 왕초보를 위해서 QuickBasic을 구동하고 프로그램을 불러오고 실행하는 것까지만 설명하는 튜토리얼을 상당한 덕력을 담아서 굉장한 고퀄로 만든 것이다.
화차 그림에 쓰인 주의사항 보이시는가? 아주 대단한 선심이라도 쓰는 듯 "주목: 이런 지식은 아무 데서나 알려주는 거 아니야!" 이런 드립까지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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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 "자, 디스크에 저장된 프로그램을 불러오는 걸 실습해 보시겠습니다."
저장: "짜잔~! 프로그램이 final.bas라는 이름으로 저장됐습니다."

문장들의 문체가 전반적으로 은근히 재치 있고 익살스럽기 때문에, 한국어의 사무적인 해요체 합쇼체로 번역하기에는 너무 무겁고 길이도 너무 길다.
저건 그야말로 디스크와 파일에 대한 개념도 아직 부족해서 하드디스크에 몇백 GB짜리 사진을 저장하면 컴퓨터의 무게가 물리적으로 증가할 것처럼 생각하는 왕초짜를 위한 설명이다..;; C언어라면 몰라도(저 때는 마소에서 아직 C++ 컴파일러를 개발하지 않았던 시절) 베이직만은 그야말로 왕초보라도 접근 가능한 대중적인 프로그래밍 툴로 만들려는 빌 게이츠의 야심이 담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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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나고 나면 이 프로그램이 가르쳐 준 lesson의 핵심 요약을 요렇게 쭉~~ 늘어놓아 준다. 잊어버릴까 봐 종이에다 프린트 명령까지 제공하는 배려를 했다.
사실, 영어권에서 뭔가 개념원리 학습 자료를 만들어 놓은 걸 보면 참 대단하고 부러움이 느껴질 때가 많다.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지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령, 컴퓨터 쪽은 아니지만 무려 1930년대에 GM사에서 영업사원들(이미 기계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들 말고) 교육용으로 변속기의 원리를 설명해 놓은 필름을 보면.. 매체의 기술 수준 말고, 강의 자체는 기본적인 물리 법칙부터 시작해서 공학적인 응용에 이르기까지.. 지금 봐도 나무랄 데 없는 고퀄이다. 저렇게 기본기와 실용주의에 충실한 교육이 쌓이고 쌓인 덕분에 미국이 과학 기술 선진국이 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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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나고 나면 다시 열차 그림과 함께 엔딩 화면이 나타나는데..
이번에는 시작 화면과는 달리 화차가 텅 비었고 아무 짐도 실려 있지 않다. 아하.. 이런 차이를 담았구나!!
난 그걸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이번에 스크린샷을 찍기 위해 프로그램을 오랜만에 다시 돌려 보면서 차이를 알게 됐다.

QuickBasic은 시대를 풍미했던 명작이고, 지금도 고전 레트로 레거시 프로그래밍 장난감으로서 외국에 매니아 커뮤니티가 있다.
그런데 QuickBasic의 인지도에 비해 이 자습서 프로그램은 존재감이 너무 묻히고 있는 것 같다. QuickBasic learn.com, Express 등 내가 생각하는 모든 관련 키워드들을 조합해서 검색해도 스크린샷 한 장 뜨는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learn.com은 어찌 된 이유인지 도스박스에서 안 돌아가고 시스템이 뻗는다(0.72 기준). 이것 때문에 더욱 접근이 어려웠다. VMware 같은 다른 가상화 유틸에서 돌려야 했다.

QuickBasic 말고 자습서로서 가장 유명한 건 아마 (2) Windows 3.1의 자습서이지 싶다. '프로그램 관리자'의 도움말 메뉴에 당당히 등재돼 있기 때문에 쉽게 접근 가능하다. PC 환경의 판도를 도스에서 Windows로 완전히 뒤바꾸기 위해서는 사용자에게 기본적인 마우스 사용법을 가르치고 Windows의 기본 UI 요소들을 다루는 일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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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습서야 검색을 해 보면 스크린샷과 동영상들이 이미 넘쳐나니 이곳에서 미주알고주알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고해상도(?) 화면에서 16색+도트 노가다로 깔끔하게 파스텔톤 그림을 그려 놓은 화풍을 개인적으로 좋아했다. 문자 때문에 고해상도가 필요했던 일본 게임들의 그림체도 이런 형태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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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열기' 명령을 내려서 기존 문서를 불러오는 실습은 QuickBasic 자습서와 Windows 자습서에 공통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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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창 제목을 마우스로 드래그 해서 창의 위치를 옮기는 것, 그리고 라디오· 체크· 콤보 등 기본 GUI 요소들을 실습하는 것도 있다.

사실은 (3) Windows 95에도 자습서가 있다.
1990년대 중후반은 컴퓨터의 기본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 대한 고려가 여전히 필요한 시기였으며, Windows 95가 3.1에 비해 UI 요소가 바뀐 것도 워낙 많았기 때문에 시작 메뉴, 작업 표시줄, 폴더 같은 것에 대한 학습이 필요했다. 이때는 Windows 95 사용 관련 컴퓨터 서적도 정말 많이 출간됐었다.

단, 95의 자습서는 모든 컴퓨터에 기본으로 깔리지 않았으며, 운영체제를 설치할 때 사용자가 수동으로 자습서를 직접 골라야 했다. 그리고 구동하는 방법도 내 기억으로 도움말 어딘가에 숨겨져 있었고 메뉴에서 바로 선택 가능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3.1의 자습서보다는 훨씬 덜 알려져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95의 자습서는 Visual Basic으로 개발되었지 싶다. 외부 링크로 소개를 대신하고자 한다.
그 당시 Windows 95의 비주얼 컨셉은 푸른 창공, 하늘과 구름이었다. 제품 패키지 박스와 부팅 스플래시 화면부터가 그렇고, 이스터 에그에 내장되었던 음악도 clouds.mid였으니.. 그러니 자습서에도 경비행기 그림이 있는 게 수긍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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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끝으로.. 이거야말로 정말 오래된 기억에만 의지해서 회상하는 것이지만..
MS Word 중에서 16비트 Windows를 지원하는 마지막 버전이었던 (4) 6.0 역시 자습서를 내장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Windows 3.1 자습서와 같은 엔진 기반으로 추정되고 비슷한 톤의 흰색 계열 화면이었다. 하지만 Windows 자습서와는 분명 다른 내용이었고, 배경 그림에 그 당시 Word 특유의 만년필 그림이 있긴 했다.

이 역시 내가 구글링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진짜로 역사 속으로 묻혀 버려서 그런지 인터넷 상으로는 자습서의 장면이나 동영상을 구할 수 없다.
16비트 시절 회상은 이 정도까지 하겠다.
사실, 도스박스로도 Windows 3.1 정도는 돌릴 수 있다. 이것도 0.6x대의 구버전에서는 안 되다가 후대 버전에서 가능해진 것이다.

도스박스는 여느 가상화 툴처럼 디스크 이미지를 별도로 만들 필요 없이, 기존 파일 시스템의 디렉터리를 곧장 mount 해서 쓰면 되는 게 참 편하다.
Windows 95까지도 돌린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부터는 아무래도 하드웨어 가상화의 도움을 받는 VMware 같은 더 정교한 가상화 프로그램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도스박스에서 Windows 3.1을 설치하면 다 좋은데, 프로그램 그룹의 수집과 생성이 왜 자동으로 되지 않는지가 의문이다. 프로그램 관리자가 기본 프로그램, 보조 프로그램 같은 그룹이 아무것도 없는 채로 시작된다.

한편, Windows 95부터는 부팅 직후에 간단한 welcome 프로그램을 실행하던 관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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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때는 '알고 계십니까' 팁을 출력했지만 98과 2000에서는 인터넷 연결, 제품 등록 같은 걸 안내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의 실행 형태가 바뀌었고, ME와 XP부터는 이런 게 없어졌다.
2000년대 ME/XP 시기에는 컴퓨터의 기본 사용법을 가르치는 클래식한 자습서는 사라졌지만, Windows의 새 기능을 소개하는 데모는 플래시 내지 HTA (HTML application) 형태로 잠시 존재했다.
특히 XP에 내장돼 있던 플래시 기반의 "새 기능 투어"는 굉장한 퀄리티였다. 비록 한글화되지 않았으며, 이런 관행 역시 Vista와 그 이후부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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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프로그래머의 직업병을 발휘하여, 이런 자습서 내지 튜토리얼 프로그램들을 만드는 과정은 어떠할까 생각해 보고 글을 맺겠다.
웹이나 플래시는 처음부터 멀티미디어 컨텐츠를 표시하는 데 최적화된 저작도구 내지 플랫폼이라 치지만, EXE 기반의 전통적인 데모 내지 자습서· CBT 프로그램은 어떤 방법론을 동원하여 만들었을까?

순차적인 절차대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이벤트 드리븐 방식으로 개조하는 건 만만찮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과거의 터보 C/파스칼에 존재하던 BGIDEMO 예제처럼 순차적으로 일괄적으로 그래픽 데모가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Windows용으로 짜는 걸 생각해 보자. 간편하게 자기가 원하는 타이밍 때 그림을 그리고 마는 게 아니라, 운영체제로부터 그림을 그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에만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러니, 지금은 어느 데모의 그래픽을 출력할 차례인지 내부적인 진행 상태를 추상화해서 잘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나 끊임없는 그리기 작업은 스레드나 타이머 같은 완전히 다른 방법론을 동원해서 해야 한다.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자습서 프로그램은 그 특성상 학습 대상 프로그램이 실행된 가상의 화면을 표시할 일이 많고 심지어 그 가상의 화면에서 사용자가 창을 조작하는 것을 흉내까지 내야 할 때가 있다.
모든 그림들을 무식하게 비트맵 이미지로 때려박는 건 공간 효율과 유지 보수(일부 컨텐츠가 수정되었을 때, 화면 해상도가 변경됐을 때 등) 관점에서 별로 좋지 못하다.

저런 건 진짜 윈도우를 생성한 뒤에 서브클래싱 같은 customization으로 내가 원하는 형태로만 동작하게 제약을 추가하는 식으로 구현할 수도 있고, 아니면 윈도우 그림만 가짜로 그린 뒤에, 창의 이동과 크기 조절, 메뉴 표시 같은 당장 학습에 필요한 이벤트에만 임기응변으로 반응하게 만들 수도 있다. Windows 자습서는 정황상 대부분의 UI는 후자 방식으로 구현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건 좀 어설프고 삽질스러워 보이는 면모가 있다.

당신이 Visual Basic의 짝퉁 개발툴을 직접 개발한다고 생각해 보자. VB의 디자인 모드에서 떡 나타나 있는 폼의 '윈도우 프로시저'는 어떻게 구현되어 있을지가 궁금하지 않은가? 평소에는 클라이언트 영역에 일정 간격으로 격자 도트가 찍혀 있을 것이고, 자신의 위치나 크기가 바뀌면 폼의 정보가 수정된다. 자기에게 놓인 차일드 컨트롤을 클릭하면 크기 조절을 위한 8개 모서리가 주변에 표시되며, 이걸 더블 클릭하면 해당 컨트롤에 대한 이벤트 핸들러 코드를 편집하는 창이 뜬다.

자습서 창 내부에서 특정 윈도우의 외형과 동작을 구현하는 일도 이런 것과 비슷한 차원일 것이다. 어떤 물건이긴 한데, 실물이 아니라 뭔가 영화 촬영용 소품과 비슷한 격의 물건을 갖다놓는 격이 된다.
'짝퉁'을 만드는 식으로 접근하는 방법론이 한계에 달했는지, 나중에 마소에서는 실제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상태에서 그때 그때 도움말이 응용 프로그램으로부터 신호를 받아 인터랙티브한 형태로 출력되는 모델을 고안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윈도우 훅 중에서도 WH_CBT라는 게 있다. 어떤 프로그램이 내부에서 창을 생성하거나 없애고, 포커스가 바뀌고 창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 자습서는 학습 대상 프로그램에서 요런 특정 동작만 감지하면서 상황에 맞는 도움말을 출력하거나 지시를 사용자에게 내릴 수 있다. 이런 간단한 용도라면 굳이 모든 메시지를 통째로 훔쳐보는 무거운 다른 훅을 설치할 필요 없이 저것만 사용하면 된다.

이런 훅을 사용한 아주 모범적인 사례가 있다. 바로 HTML 도움말인 CHM 말고, Windows XP까지 지원되었던 재래식 HLP 파일을 생성하는 (5) 오리지널 Help Workshop 툴을 보면.. 도움말 프로젝트를 생성하는 요령을 설명하는 traning card라는 자습서 세션이 있었다. 전용 자습서가 거창하게 뜨는 게 아니라, 화면 옆에 아주 자그마한 도움말 창만 추가로 뜬 뒤, 도움말이 시키는 대로 실제로 프로젝트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기능을 익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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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이야 HLP 도움말 자체가 폐기되었으며, 이런 식의 도움말 디자인 패러다임 역시 완전히 한물 가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Help Workshop에 이런 간소화판 자습서 튜토리얼이 존재했다는 것도 오늘날 인터넷에서는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10 08:33 2018/01/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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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산 전망대와 행주산성

본인은 작년에 강화도에 나들이를 다녀와서 이 블로그에다가도 여행기를 올린 바 있다.
그때 본인은 고인돌이나 마니산, 고려 행궁뿐만 아니라 북쪽에서 전망대도 보고 왔다. 남한과 북한이 첩첩산중의 육지가 아니라 거대한 강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러니 여기는 DMZ 같은 건 없으며, 강 건너편에는 의외로 북한의 마을이 곧바로 보이고(선전용으로 일부러 때깔 곱게 꾸며 놓은 것이지만..) 군인이 아닌 평범한 주민들도 보인다. 이런 광경은 한반도의 서부인 한강 하구에만 존재한다.

그러니 본인은 이렇게 강 건너편의 북한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강화도 말고 또 있는지 궁금해졌다. 지도를 찾아보니 '오두산 통일 전망대'라는 게 있다는 걸 새로 알게 됐다. 오두산은 높이가 100m 남짓한 낮은 산이며 백제 시대에 '오두산성'이라는 성곽도 만들어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가 임진강이 한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있어서 경관이 아주 좋으며, 자연스럽게 강 건너편의 북한 땅을 보기에도 좋다. 게다가 그 어느 전망대보다도 서울과 가까이 있고 자유로 도로의 바로 옆이기까지 하니 접근성도 훌륭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1992년 9월, 노 태우 정권 시절에 여기에 통일 전망대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사실은 자유로와 거의 동시에 완공된 거나 마찬가지이다. 이에 본인은 하루 날을 잡아서 차를 몰고 여기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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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산을 올라서 아래의 자유로를 내려다 본 모습이다. 반대로 자유로를 저렇게 달리는 도중에도 이 전망대가 차창 밖으로 보인다.
자가용이 없더라도 셔틀버스가 평지에서 30분 간격으로 운행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전망대를 찾아갈 수 있다. 자세한 건 해당 기관의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그런데 이 높은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온 근성의 자덕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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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의 입구 모습이다. 여기는 위도가 가장 높고 바다를 옆에 낀 강원도 고성의 통일 전망대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정반대이다.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오두산 전망대는 북한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전망대들과는 달리 "민통선 안에 있지 않다!" 여기 주변의 지형과 군사분계선의 특이한 선형 덕분에 가능한 전국 유일의 예외가 아닌가 싶다. 덕분에 이 전망대는 드나들기 위해서 신분증을 까고 차량 번호를 적고 출입 허가증을 받는 식의 난리를 칠 필요가 없다.

군부대 내부에 있는 전망대들은 북측 방면 사진 촬영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엄격한 통제가 걸리는 편이지만, 이 전망대는 그런 게 전혀 없이 아주 관대한 분위기였다.
아, 그렇다고 해서 이 전망대 주변에 일제의 군사 시설이 전혀 없다는 얘기는 당연히 아니다. 여기 일대는 국내의 인터넷 지도 사이트들이 항공 사진을 제공하지 않는 엄연한 전방 보안 지역이다.

전망대 안에는 실향민들을 위해 북한의 주요 도시들 내부를 3D 그래픽으로 재현해 놓은 동영상 상영관이 있고, 북한의 도발 역사와 통일의 필요성, 남과 북이 추구하는 통일 이념 같은 원론적인 얘기들이 전시돼 있었다.
남한이 서부 지방도 땅을 좀 더 많이, 송악산 정도까지만 수복했으면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고려 시대 유적이 더 많아졌을 것이고 경의선 전철이 개성까지도 뚫렸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 오두산 전망대 같은 전망대도 이곳이 아니라 송악산 정도로 더 북상하게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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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주된 풍경은 이것이다.
저~~멀리 보이는 땅은 북한 개풍군이다.
그리고 왼쪽 중간에 있는 땅은 남한 김포시 하성면이다. 북한 땅과 남한 땅 사이에 있는 물길은 임진강과 합류한 한강으로, 반쯤 이미 서해 바다이다.
김포시 하성면과 내가 있는 곳 사이에 있는 물길은 한강이다.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물길은 임진강이다. 지리 구도가 대략 이렇게 된다. 이 말이 이해가 잘 되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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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안에 들어가 보면 여기가 어디쯤인지 지도와 함께 잘 설명되어 있다. 한강 하구 정도로 가면 강폭이 거의 2km에 달한다.
여기도 나름 두 물줄기가 만나는 셈인데, 남양주 두물머리나 정선 아우라지와는 분위기가 영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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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전망대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북한의 마을과 주민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사람은 망원경으로 봐도 매우 자그마해서 식별이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논밭에서 농삿일을 하는 건 분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여기 주변에는 선전 구호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오두산 전망대가 또 아주 좋은 건 여느 전망대들과 달리 망원경이 무료라는 점이었다. 덕분에 망원경을 비교적 오랫동안 만지작거리면서 망원경으로 비치는 상을 카메라로 찍는 시도까지 할 수 있었다. 물론 원하는 각도를 맞추기란 대단히 어려웠고 색깔도 뿌옇긴 하지만, 그래도 사물 자체는 카메라의 줌에만 의존하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찍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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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남한 쪽(김포 하성면)을 보고 찍은 모습이다. 흐리던 하늘이 맑고 파래져서 경치 구경하기에 적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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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폭(=거리)이 좀 압박스럽긴 해도 수심이 막 깊어 보이지 않고 심지어 밀물 썰물까지도 있다는데.. 누가 미친척 하고 근성으로 헤엄쳐서 월북이나 탈북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긴,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기도 했다.
다대포 해수욕장이 있는 부산 낙동강 하구와는 달리, 군사적으로 완전히 봉인되어 버린 한강 하구의 안습한 현실을 이렇게 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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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산에서 남한 내륙 쪽을 둘러보니, 맞은편 언덕 위에는 웬 거대한 한옥 건물이 보였다. 저건 도대체 뭔가 궁금해서 찾아 봤더니 '고려 통일 대전'이라고 고려의 종묘뻘 되는 행사를 치르는 '고려 역사 선양회'라는 단체 소속의 사유지라고 한다. 헐... 저기서 1년에 한 번 '대제'를 지낸다고..

이렇게 본인은 오두산 통일 전망대 구경을 잘 마쳤다. 이런 걸 보면 맨날 뉴스에서 핵 만들고 미사일 쏘는 그 또라이 북괴라는 나라가 내가 사는 곳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실존한다는 걸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파주에서 데이트 코스 관광지로 알려져 있는 헤이리 예술 마을, 프로방스 마을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고 북한과도 불과 4~5km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전방이라는 것에 놀랐다. 거기도 보안 문제 때문에 국내 인터넷 지도에서 항공 사진이 제공도지 않는다.

말이 나왔으니 좀 정치적인 이슈 얘기를 하자면, 본인은 인제 와서 남북이 뭔가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으로 통일을 이룬다는 건 거의 '영어 공용어화'만큼이나 가능하지 않으며 타이밍이 물 건너 갔다고 상당히 비관적으로 생각한다. 북괴 체제를 붕괴시킬 기회를 다 놓쳐 버렸기 때문이다.

통일만 되면 한국이 인구가 7500만이 되고 탄탄한 내수 시장을 갖춘 동북아시아 강국이 되고 어쩌구 희망적으로 나불거리는 건, 북한 주민들이 굶주린 약골· 마약 중독자가 아니고 남조선 인민들에 준하는 체력과 생산성이 있으며, 김씨 정권에 세뇌되지 않은 정상적인 정치관 종교관 국가관을 갖고 있을 때에나 성립하는 얘기이다. 지금 그 전제조건이 성립하는가? 전혀, 네버..

그러니 지금은 정말 통일을 외칠 때가 아니라, 통일이 안 되고 설령 북한 땅을 다른 세력이 다스려도 좋으니 전적으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소말리아 아이티 캄보디아보다도 못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구출하고, 북괴 정권을 고립하고 압박시키고 무너뜨리는 일에 신경써야 할 때이다. 지금은 우리가 힘이 충분치 못해서 휴전선 전방에서 '북괴의 위협'만 제거하고 예방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북괴의 존재' 자체를 제거하는 것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걸 할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영구분단만 유지해도 중간은 간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북괴랑 대화하자네 퍼주자네 하는 놈들은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다 쳐죽이고 씨를 말려야 된다. 이놈들은 일제 시대 친일파 따위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나쁜 악마들이기 때문이다. 악마를 상대로는 전기톱이 훌륭한 대화수단이거늘 무슨 달러 현찰이 대화수단이란 말인가?
꼭 이런 애들이 북괴를 좋게 말할 수는 없으니 오로지 남한만 정체성을 부정하고 역사를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며, 맨날 민족 민족 들먹이지만 동족이 자유를 빼앗긴 굶주린 노예로 사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두산 전망대 다음으로 본인은 동일하게 자유로와 아주 가까이 있는 행주산성을 덤으로 들렀다. 언덕의 높이가 서로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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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이 자리잡았던 덕양산은 서울 봉화산만큼이나 산맥 없이 혼자 우뚝 솟은 독립구릉이다. 강 쪽으로는 거의 절벽이고 육지에서는 경사가 완만한 편이어서 요새화에 유리하고 군사적 가치가 높았다고 한다.
언덕의 특성상 경사의 압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정말 낮기 때문에 성인 남자의 체력 기준으로는 슬금슬금 오르면 정말 금방 정상까지 갈 수 있다. 예전에 서울 응봉산을 오르던 정도의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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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도달하니 역시 자유로+강변북로와 한강, 마곡철교(공항 철도), 방화대교 등의 다리가 내려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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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행주대첩 승전을 기념하는 기념비와 정자도 있었다.
행주산성 안에 있는 각종 건물들은 조선 시대에 있었던 오리지널이 아니라 다들 후대에 새로 건설된 것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간판이 '덕양정', '대첩비각', '충의정' 등으로 한문이 아닌 한글로 적혀 있었다.

행주대첩(권 율)은 진주성 대첩(김 시민), 한산도 대첩(이 순신)과 더불어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3대 대첩 중 하나이다. 이 순신은 임팩트가 독보적으로 너무 크고, 진주성은 그래도 2차 전투 때는 함락되어 버리기라도 했다만, 행주대첩에 대해서는 본인이 지금까지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주산성 안에는 적당히 나무 아래에서 쉴 공간이 많이 있었으며, 그 당시 전투를 기리는 기념관도 드문드문 자리잡아 있어서 휴식과 힐링용으로 좋았다. 단, 본인의 막연한 예상과는 달리 여기는 돌로 쌓은 성벽 같은 건 없었다. 토성 비스무리한 것만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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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본인은 이 정도로 서울 서부까지 온 김에 행주대교를 건넜으며, 인천 계양 역 근처의 경인 아라뱃길 공원을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여기는 정작 배의 통행은 전무하다시피하고, 오히려 양 옆 둑길이 훌륭한 자전거 라이딩 코스가 되었을 뿐이다. =_=;; 이러려고 괜히 운하를 팠나 자괴감이 충분히 들 만해 보인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07 08:29 2018/01/07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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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에서 제일 큰 주목을 받는 교통사고의 유형은 (1) 음주운전, (2) 졸음운전 대형차(버스, 트럭) 사고, 그리고 (3) 고령 운전자 사고인 것 같다. 일명 김여사 사고는 2010년대 초에 인천외고 운동장 사고와 인천대교 마티즈 사고 때 크게 논란이 일었다가 요즘은 잠잠해진 듯. 하지만 지난 2017년 여름에 발생했던 일산 백병원 차량 돌진 + 건물내 추락 사고는 오랜만에 또 발생한 김여사의 전형적인 운전 미숙 사고이다..;;

1. 음주운전

뺑소니와 더불어 죄질이 제일 나쁜 축에 들며 사람을 제일 빡치게 하는 사고이다. 이런 사고가 꼭 피해자는 차량 화재+몰살인데 가해자는 그냥 경상인 경향이 있다. 좀체 근절되지 않고 있어서 가해자 처벌을 더 강화하라는 여론이 기세등등하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우리나라는 범죄자 인권에 너무 관대한 곳이어서 별 희망이 없을 것 같다. 이 글에서 음주운전 사고 사례는 생략하고, 더 소개하지 않겠다.

굳이 단속 기준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지만, 일단 대인사고가 났다 하면 가해자를 완전 작살을 내 줘야 할 것이다. 최소한 피해자 유족 측 변호사가 "저래 봤자 가해자는 고작 몇 개월~1년이나 살다 나올 텐데 그냥 합의해서 푼돈이라도 챙기시죠?" 이딴 식으로 유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제기랄, 이게 나라냐? 오래된 생각이다.

2. 대형차 졸음운전

이건 2016년 7월의 봉평 터널 사고에 이어 작년에도 지난 7월에 경부 고속도로 상행선 양재IC 인근에서 거한 사고가 한 건 터지는 덕분에 또 이슈가 됐다.
버스와 승용차가 1차로에 엉겨 있길래 이것만 봐서는 "또 어떤 승용차가 자기 길이 막히니까 버스 전용 차선 침범하는 병신짓 하다가 뒤에서 달려오는 버스에 추돌 당했나" 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추돌 사고 자체는 2차로에서 발생했다. 오히려 버스가 웬일로 버스 전용 차선에 있지 않고 앞의 정체 구간을 못 본 채 앞의 승용차를 그대로 쾅 들이받고 타고 올라갔다. 승용차 과실 100%에서 버스 과실 100%로 원인이 완전히 반전되었다.

뒷차가 무게와 속도를 이기지 못해 앞차를 짓뭉개고 타고 올라가는 건 태생적으로 여러 객차들이 줄줄이 연결된 철도 차량의 중대한 충돌· 탈선 사고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렇게 될 정도이면 승객이 많이 죽거나 다친다.
"흰색 K5"가 졸음 운전 대형 버스에게 추돌 당해서 탑승자 전원 중상· 사망의 피해가 났다는 점은 봉평 터널 사고와 동일하다.

하루 10몇 시간씩 쉬지도 못하고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분들의 처우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방법이 없는지? 근본적으로는 물류비 교통비의 인상으로 불가피하게 귀결돼야 할지도 모른다. 가해자인 운전사도 딸을 셋이나 둔 가장이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무리하게 근무를 했다던데 말이다.

몇 시간 운전했으면 얼마 동안은 반드시 쉬라고 법으로 강제로 규정해도 현실에서는 빡빡한 운전 스케줄이 더 중요하고 제대로 지켜질 수가 없는가 보다. 운전 기사들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처럼 버그와 싸우는 건 없지만 그래도 일정에 쫓기는 건 동일한가 보다.
물론, 아예 대형차의 최대 속도를 강제로 낮춰 버리는 건 미친 짓이며 개인적으로 적극 반대다. 자꾸 새 법을 만들고 규제만 더 넣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쉬는 걸 보장하는 법'부터 제대로 시행되게 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영업용 차량을 쉴 새 없이 운전하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미친 짓을 할 리는 없으니, 음주운전은 주로 자가용 승용차가 저지르는 편이다. 그 반면, 졸음운전 사망 사고는 운전이 생업인 대형차 운전자가 내는 편이니, 가해자의 성격과 양상이 서로 다르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버스 전용 차선 침범은.. 자기 차가 제로백을 5초 만에 달성 가능한 제네시스 프라다 같은 급의 차라든가, 무슨 1분 1초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응급 환자를 수송하는 거라도 아니라면 꿈에도 시도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이건 단순히 단속에 걸리고 과태료 벌금 무는 차원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거는 도박이기 때문이다.)

3. 고령 운전자

다음으로 이건.. 자가용과 영업용 차량을 딱히 가리지 않고 고령 운전자가 순간적으로 손발 움직임 내지 판단 착오를 일으켜서 사고를 내는 빈도가 높아지는 편이다. 김여사처럼 '일부 예외적이고 운 나쁜 사례'만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2010년경이던가.. 면허를 4년 반 동안 필기 시험에서만 거의 무려 1000번 가까이 떨어진 할머니가 결국 턱걸이로 필기와 실기까지 간신히 합격했다. 이분은 전국적으로 매스컴을 탔고, 현기차에서는 축하한다고 이 어르신에게 경차를 한 대 기증도 해 줬으나..
저분은 그로부터 1년이 채 못 가 차가 반파되는 교통사고를 냈다고 한다. 그 뒤로 근황은 전해지는 게 없어서 알지 못한다.

또 다른 사례로는 2015년의 일인데.. 어느 70대 모범택시 운전기사가 서울 소공동 소재의 롯데 호텔에 차를 몰고 들어가던 중, 이거 뭐 졸음운전도 아니고 갑자기 몸이 말을 안 들었는지 화단을 들이받고 근처에 세워져 있던 고급 승용차들 4대를 연달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 보도 자료 링크)

인명 피해 없는 접촉사고 수준에 불과했지만, 문제는 피해 차량 4대 중에서 제일 저렴한 싸구려 차가 그랜저였다는 거. 나머지는 포르쉐 두 대와 에쿠스였다..;;
수리 견적이 거의 5억 가까이 나왔으나.. 기사분은 대물 한도 1억까지만 보장되는 보험에 들어 있었고, 나머지 보상비는 고스란히 개인 부담이 됐다.

내가 알기로 택시나 노선 버스 같은 영업용 차량은 대 "인"은 I, II 보상 모두 무한대인 보험에 의무적으로 들게 돼 있다. 하지만 대물은 아니었나 보다.
저분은 처음에는 급발진 핑계를 대며 발을 빼려 했으나, 블랙박스 영상을 판독한 결과 그렇지 않고 순수 자기 과실 100%인 게 빼박 입증됐다.

그야말로 집안 뿌리를 뽑아도 갚지 못할 액수 때문에 택시 기사는 식음을 전폐하고 그대로 주저앉았고, 거의 자살을 생각하는 지경까지 됐다. 이건 뭐 거의 빚보증 잘못 서서 인생 조진 것과 별 차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롯데 호텔 측에서 이 사정을 듣고는 보험 보상 범위를 초과하는 나머지 액수는 자기가 부담하겠다고 회장님이 초 대인배 조치를 취해 준 덕분에 구제를 받았다. (☞ 보도 자료 링크)

나름 모범 택시라는 것도 최하 5년 이상 무사고를 달성한 '모범 운전자'만 몰 수 있는 것일 텐데, 평생 쌓아 왔던 무사고 커리어를 저분은 저 사고 하나로 다 말아먹었다..;;
그러니 고령 운전자를 상대로는 적성검사를 더 자주 시키고, 일본처럼 면허 자진 반납을 유도하는 쪽으로 인센티브 주고 장려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너무 젊은 애들은 철없고 객기 부리느라 사고율이 높아서 자동차 보험료가 비싸다지만, 반대편 극단의 노인은 다른 이유로 인해 사고율이 높은 게 현실이다. 다만 교통이 너무 불편해서 정말로 차가 없으면 안 되는 곳에서는 문제를 어찌 해결하면 좋을지 궁금해진다.

아울러, 고령자는 운전자로서 내는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보행자로서 신호 무시 무단횡단 교통사고도 좀 문제이다. 노인분들은 지금처럼 차들이 넘쳐나고 교통법규 준수가 절실하던 시절에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을 보내지 않았으며, 오랜 연륜에 따른 고집도 있어서 교통법규를 꼬박꼬박 잘 지키는 편이 아니다.

무단횡단을 할 거면 측면주시 잘 해서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남들과 다르게 잽싸게 건너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들은 몸이 민첩한 것도 아니니 문제다. 애초에 무단횡단도 빨간불 기다리는 게 귀찮다기보다는 횡단보도까지 쭉 우회하는 게 귀찮고 거동이 불편해서 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 기타: 긴급 자동차 관련

출동 중인 구급차나 소방차 같은 긴급자동차는 재량껏 눈치껏 신호 무시와 과속, 중앙선 침범과 버스 전용 차선 주행이 허용되며, 막히는 길에서 양보받을 권리도 인정받는 등 여러 특례가 보장된다.
하지만 긴급자동차도 운이 나쁘면 사고를 낼 수 있고, 과실 비율에서 언제나 면책되는 건 아니다. 옛날에 모닝와이드 블랙박스로 본 세상에서 이런 사고 사례가 방영된 게 있었다.

(1) 사이렌 울리며 출동 중인 구급차가 있었는데, 교차로에서 좌우로 당장 차가 없는 걸 보고는 신호 무시하고 슬금슬금 직진했다. 하지만 그 왼쪽에서는 파란불 신호만 보고 계속 달려오던 시내버스가 있어서 결국 둘이 충돌했다.

→ 구급차는 정말 합법적인 긴급자동차였던 관계로, 드물게 우열 없는 쌍방과실 50:50이 나왔다. 자기 차량 보험사가 각각 상대방 차의 손해를 물어주면 된다. 사설 견인차가 사고를 냈으면 이런 판정은 당연히 못 받는다.

(2) 화재 신고를 받고 여러 소방차들이 대열을 지어 사이렌 울리면서 출동 중이었다. 그 행렬이 지나가는 걸 못 참고 어떤 승용차가 소방차 중 대형 물탱크차를 추월해서 그 앞에 바싹 끼어들었다.
그런데.. 교차로에서 소방차들이 좌회전을 시작했는데 하필 그 승용차 앞에서 노랑-빨강으로 신호가 끊겨 버렸다. 단속 카메라가 있었는지 승용차는 우물쭈물 하다가 정지를 선택했으나, 무거운 물탱크차는 곧장 정차할 수 없어서 승용차를 추돌했다. 승용차가 없었으면 물탱크차는 선두 소방차들을 따라 꼬리물기쯤 해도 아무 문제 없을 상황이었을 텐데.

→ 승용차의 입장에서는 하필 노란불 딜레마 때문에 참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더구나 결과적으로는 소방차가 앞차를 추돌한 것이고, 크고 무거운 소방차보다 승용차가 훨씬 더 많이 부서지기도 했다. 그러나~~ 인과관계로 볼 때 승용차가 공익을 수행하는 긴급자동차를 상대로 거의 민족 반역자 급의 너무 큰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
당연히 100:0 나왔다. 이거 방영된 동영상의 밑으로는 악플도(승용차 운전자 욕) 작살나게 많이 달렸다.

* 기타: 운전 면허 시험장에서 발생한 어이없는 사망 사고

지난 2016년 11월엔 도봉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참 어이없는 인명 사고가 났다. 시험을 치기 위해 배정받은 차량으로 가던 어떤 20대 여성이 다른 20대 남성 응시자가 탄 트럭의 앞을 슬금슬금 지나갔는데.. 이때 트럭은 출발 신호를 받고는 곧이곧대로 출발을 해 버렸다. 그래서 여성을 쳤다.

면허 시험장에서 차들이 무슨 쌩쌩 고속으로 달릴 리는 전혀 만무하다. 갓 출발하려던 상태였으니 곧장 사고를 감지하고 정지만 했으면 피해자는 기껏해야 좀 넘어지고 다치고 까지는 걸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숨지고 말았다. 가해자는 너무 놀라고 당황했거나 아니면 반대로 상황 파악을 못 했는지, 넘어진 피해자를 바퀴로 깔고 간 것 같다.

세상에 차량 급발진도 아니고, 어느 미친 음주운전자와 정면충돌을 한 것도 아니고, 대형 사고가 도무지 날 것 같지 않은 저런 곳에서도 사람이 사고로 죽다니 참 허탈하다.
아니,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동차는 총기와 맞먹는 위험한 물건이기 때문에 저런 곳도 군부대 사격장에 준하는 군기와 안전수칙이 철저히 지켜졌어야 했다.
모든 총기는 장전된 것처럼 다루고 절대로 사람을 향해 총구를 겨누지 말아야 하듯, 그와 동일하게 누구든지 차 앞을 얼쩡거리지 말았어야 했고 그러는 사람이 있으면 감독관이나 주변 직원이 철저히 제지했어야 했다.

내 발이 인도에 있다가 차도로 옮겨지는 순간이라면 반사적으로 측면을 응시해야 하며, 주차된 차들 주변을 얼쩡거릴 때는 보행자일 때든 운전자일 때든 왕창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이어폰 끼고 스마트폰 들여다보면서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심지어 무단횡단까지 하는 사람들은 안전불감증이 너무 심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멀쩡한 운전자를 인생 꼬이게 하지 말고 조심해야지. 사실 요즘은 블랙박스도 있고 해서 도를 넘는 막장 보행자는 마냥 약자라고 편드는 게 아니라 과실이 더 높게 나오기도 한다. 그래야 마땅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04 08:35 2018/01/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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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창경· 창덕궁과 종묘를 다녀오고 나서 몇 달 뒤, 다음으로는 종로가 아닌 시청, 정동 쪽으로 놓여 있는 고궁을 답사했다. 이번에는 자전거 없이 전적으로 걸어다니기만 했는데, 답사 동선의 고저차를 감안하면 궁극적으로 이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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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시청 역은 서울 시청 및 서울 광장뿐만 아니라 덕수궁과도 아주 가까이 있다. 입구의 이름은 '대한문'인데, 본인은 저 명칭을 20여 년 전에 나왔던 어린이용 비디오 한자 교재의 출판사 이름으로 먼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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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일대는 지난 2017년 3월, 반공 애국 시민들이 박 근혜 대통령의 인민재판 부당 탄핵을 반대한다고 태극기를 흔들며 목놓아 외쳤던 역사적인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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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안으로 들어간다. 정전인 중화전이다. (돌바닥에 비석 같은 신하들 자리..) 이런 것들 이름을 붙이는 방식은 어떠했는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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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에는 동서양 건축 양식이 퓨전으로 섞인 의외의 건물이 있었다. 이름은 '정관헌'이라고 하고, 구한말인 1900년에 고종이 연회장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추가로 지은 거라고 한다.
그리고 근처에는 '석조전'이라고 더 나중에 지어진 서양식 석조 건물도 있다. 덕수궁은 마냥 기와집 일색이 아니라 안에 의외로 이런 서양식 건물이 있었다. 물론 지금 있는 건물은 재건 복원된 것이고,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나머지 덕흥전, 함녕전 등의 건물도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지만 소개를 생략하겠다. 이렇게 덕수궁을 둘러본 뒤 본인은 후문 쪽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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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구세군 회관을 지났다. 옛날엔 뭔가 근대식 건물이라 하면 전부 붉은 벽돌 일색이었던 것 같다. 그게 지금으로 치면 '유리궁전' 같은 유행이었던 듯.
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도 뭔가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는지, 제복 차림의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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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로와 새문안로2길 사이에는.. 서울 도심의 최고 입지임에도 불구하고, 덕수궁 복원을 위한 문화재 발굴과 조사라는 명목으로 민간인의 접근이 봉인된 넓은 폐허(?) 공터가 있다. 다른 구간은 높은 담장 때문에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지만, 그래도 출입문이 있는 곳에서는 철문 사이에다 렌즈를 집어넣어서 내부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건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하긴, 인제 와서 서대문(돈의문)이라든가 이 일대의 한양도성도 과연 부지 확보와 복원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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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참을 찾아 헤맨 끝에, 그 이름도 유명한 구 러시아 공사관 첨탑에 도달했다. 고종 황제의 흑역사인 1896년 '아관파천'의 현장이다. '구'에서 알 수 있듯, 지금의 러시아가 아니라 공산주의 소련 이전의 '러시아 제국' 시절 얘기다. 노(魯)뿐만 아니라 아(俄)도 러시아를 가리키는 한자로 쓰인 것이 생소하게 보인다.

원래 러시아 공사관은 훨씬 더 넓고 큰 건물이었지만 그것들은 6· 25 전쟁 중에 몽땅 파괴되고 이 부분만 현재까지 남아서 전해진다. 아까 그 폐허 부지와 직선 거리상으로는 가까운 곳에 있지만, 높이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여기로 가려면 정동 공원 등 다른 곳에서 접근해야 한다.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주변 지형의 특성으로 인해, 구도는 전부 탑을 올려다보는 형태 말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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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아래의 정동 공원도 경치가 좋아서 사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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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 다음으로 나가서 새문안로를 횡단하니 경희궁의 진입로인 흥화문은 곧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희궁은 조선의 궁전 5개 중에서는 존재감이 제일 없다. 서울의 궁전들 중에서 훼손이 제일 심해서 볼 게 제일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 궁전들보다 잔디밭 마당이 유난히 넓고, 곳곳이 복원 공사가 한창이었다.

본인조차도 한글 학회 회관 근처에 '경희궁의 아침'이라는 오피스텔 단지가 있는 걸 보고는, 수 년 동안 "경복궁도 아니고 경희궁은 뭐야?"라고 생각했지, 이 도심 근처에 다른 궁전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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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은 자기 건물만 철거된 게 아니라 부지 자체도 다른 건물로 막 잠식당해 왔다. 한때는 명문 서울 고등학교가 이 자리에 있다가 그나마 강남으로 이전했으며, 서울 교육청도 여기에 떡 자리잡고 있다.
컨텐츠가 빈약하고 온통 공사판이어서 그런지, 여기는 인서울 궁전들 중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아무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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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건물 없이 땅만 덩그러니 놀고 있다. 대문인 흥화문, 그리고 정전인 숭정전이 사실상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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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구경은 뭐 이 정도로 끝..?? 주변 사진을 더 찍은 것도 있지만 블로그에다가는 여기까지만 공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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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본인은 경희궁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서울 역사 박물관을 찾아갔다. 학교에 갈 때 버스를 갈아타는 지점이며, 마당에는 노면 전차가 하나 전시되어 있기도 하니 본인은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1층은 도서관 자료실과 특별 전시관이고, 2층은 조선 시대, 일제 시대, 해방 이후의 순으로 상설 전시관이 있었다. 아, 여기 역시 관대하게도 무료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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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는 특별 전시가 두 개가 진행 중이었다. 하나는 "파독 간호사 여성들의 삶"이라고 뭔가 국제시장스러운 소재였다. 그것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른 하나로, 우당 이 회영 육형제 가문에 관한 소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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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은 조선 시대에 요즘 시세로 치면 못해도 몇백 억에 달할 땅과 재산을 소유한 플래티넘 금수저 출신이었다. 단순히 농사나 장사로 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대대로 관료였다. 얘들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묵인만 해도 원래 하던 정치인이나 법조인 한 자리나 꿰차서 전관예우를 충분히 받고 얼마든지 계속해서 떵떵거리며 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나라를 빼앗겼다는 소식에 육형제 전체가 삼국지의 도원결의보다 더 드라마틱한 결의를 했다. 그 많던 재산을 정말 헐값에 몽땅 처분하고 만주로 건너가서 '신흥 무관 학교'를 세우는 미친 짓을 했다. 그리고 지지리도 돈 안 되는 일인 무장 투쟁 노선 독립운동가의 양성과 지원에 가산을 탕진했다. 이거 무슨 독립 운동가 배출의 숨은 요람이었다는 남쪽 끝 '소안도' 섬 얘기를 듣는 느낌이다.

여섯째인 막내는 맏형에 비하면 거의 맏형의 아들 수준으로 터울이 크긴 하다만.. 이 육형제가 모두 그 부자 가문에 걸맞지 않은 힘든 가시밭길을 걷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나마 다섯째 '이 시영'만이 유일하게 해방 이후에까지 살아남아서 초대 부통령을 역임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선행을 한 독립 운동가와 그 가문이 안 중근· 윤 봉길, 유 관순, 김 구만치 진작부터 널리 알려지고 칭송받지 못한 주 이유는 이들이 일체의 진영과 파벌을 싫어하고 뭔가 신 채호처럼 이상주의 순수주의 무정부주의 독고다이 아나키즘 성향의 항일 노선을 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그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도 그리 호의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 처음엔 같이 관여하다가 감투 싸움 밥그릇 싸움에 환멸을 느끼고 뛰쳐나왔다. 기독교계로 치면 하나님은 믿되 일종의 무교회주의를 지향한 셈이다.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어디든 진영 논리 파벌 싸움이 지저분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진영과 파벌과 정치로 여러 사람을 한데 결집시키지 않고서는 뭔가 큰 일을 이룰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이분들의 행적은 2% 부족한 듯한 아쉬움과 한계가 남았다. 전근대적인 조선 봉건주의를 타파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점은 매우 훌륭하지만, 그 뒤에 현실적인 대안 역할을 할 이념을 제대로 판단하고 채택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그래도 저런 중립 노선만으로도 아예 사회주의 공산주의 좌빨 노선보다는 훨씬 더 건전하고 나았다.

부통령 '이 시영'이라는 이름을 본인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 사람이 저런 가문 출신이었다는 점은 지금까지 미처 몰랐다. 저런 이상주의 중립 성향의 사람이.. 미국물 먹은 노련한 현실주의자요 강경한 반공 독재 스타일인 이 승만과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 그 와중에 전쟁이 나고 희대의 흑역사 병크인 보도연맹 학살 사건까지 터지자, 그는 "내가 이럴려고 정치인 됐나" 자괴감을 느꼈다. 그래서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담화를 발표한 뒤 정계를 은퇴했다. 청렴한 정치와 남북 통일까지 이루기에는 현실이 너무 급박하고 안 좋았다.

그나저나, '신흥 무관 학교'와 옆의 '경희궁'이 나란히 등장하는 건 참 절묘한 우연인 것 같다. 저 학교가 경희 대학교의 먼 전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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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구경을 한 뒤 2층으로 올라갔다. 박물관의 이름답게 서울의 역사가 조선 이 성계 시절부터 잘 전시되어 있었다. 이 순신· 세종대왕의 동상이 놓여 있는 광화문 앞의 세종대로가 옛날에는 저런 모양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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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이전에 한반도에서 통용되던 대로(큰길)들은 이런 형태였구나.
해남대로는 경부선+호남선을 얼추 합한 선형이며 오늘날의 국도 1호선과 비슷한 것 같고, 영남대로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긴 하지만 잘 알다시피 용인-이천-충주-문경을 경유하니 경부선이나 경부 고속도로와는 완전히 다른 선형이다. 그리고 부산도 우리가 지금 아는 부산항 쪽으로 가는 건 아니다.

블로그에다가는 여기까지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자료를 어떻게 입수했는지 일제 강점기 때 경성의 파노라마 사진 내지 서울 축소 지도가 있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해방 후 대한민국 시절 자료는 말할 것도 없고..
서울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은 마장동의 청계천로에 있는 '청계천 박물관'도 가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본인은 성곽이나 궁궐을 몽땅 원형대로 복원하라는 식으로 무작정 환경이나 문화재 덕후 성향은 아니다. 조선은 외세의 침략에 제대로 대처를 못 하고 굴욕적으로 망했으니 끝이 매우 좋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필요 이상으로 국뽕 불어넣고 미화할 필요는 전혀 없다. (특히 민비 미화..)
하지만 반대 극단으로 가서 무작정 조선만 인구의 과반이 노비이고 길거리에 똥덩어리가 굴러다니던 헬 중의 헬이었으며 차라리 일제 통치가 나았다는 식의 비하 역시 걸러 가며 들으려 한다.

그리고 본인은 항일 독립 운동가들을 예우하고 존경하지만, 그 사람을 띄워 주면서 의도하는 결론이 또 되도 않은 친일파 괴담 내지 분단의 원흉 이딴 식이라면 그 진영의 주장 역시 철저하게 씹을 것이다. 늘 말하지만 걔네들은 일본· 미국을 비판하는 잣대와 중국· 북괴를 비판하는 잣대가 절~대로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믿고 거르는 게 건전한 역사관이라고 본인은 믿는다.

Posted by 사무엘

2018/01/01 08:32 2018/01/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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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주께 속한 것들

  • 해석 (창 40:8)
  • 판단/심판 (잠 29:26)
  • 전쟁 (삼상 17:47)
  • 보복 (신 32,35, 시 94:1, 나 1:2, 롬 12:19, 히 10:30)

이런 거 한데 모아서 의미를 강론하면 심도 있는 설교 한 편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아, 실제로 이런 설교가 나왔다.
위의 요소들을 종합하면,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만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인간에게 어떤 역경이 닥치더라도..).

2. 믿음에 대해서

평소에 아무리 영적이고 소위 말하는 신앙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상을 살면서 정말 최소한의 세상적으로 방어적으로 생각하는 게 있으며, 그로 인해 판단을 잠시 잘못하거나 하나님의 일을 불신할 수도 있다.

그 천하의 사무엘도 처음엔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이 덩치 크고 잘생겨서 스펙 외모가 탁월한 걸 보고는 "이 사람이야말로 장군깜 대왕깜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때 기어이 하나님의 그 유명한 " '주'는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보느니라" 말씀이 나오게 됐다. (삼상 16:6-7을 꼭 보시길)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포악한 헤롯 왕에게 체포되자 교회가 정말 열심히 뜨겁게 간절히 기도했는데..
정작 기적이 일어나고 베드로가 진짜로 탈옥해서 찾아오니까 교회 사람들이 믿질 못했다. 여자애가 문을 열어 보지도 않고 달려와서 "저거 베드로 님 목소리예요!"라고 외치자 그에 대한 어른들의 반응은 "너 미쳤구나?"였다. (행 12:14-15. "아니면 (죽은) 베드로의 천사의 목소리이겠지"라는 확인사살까지 나옴..)

5천 명을 먹이는 오병이어 기적 이전에 똑똑한 제자 빌립이 계산기 뚜드리면서.. "이거 아무리 적게 잡아도 예산이 200데나리온, 1천만 원이 훌쩍 넘게 필요하겠는데요?"라고 말한 건
빌립이 특별히 믿음이 없거나 악의적이기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사무엘도, 저 초대교회 사람들도 저 상황에서 처음엔 당연히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우리가 죄나 잘못이라고 판단할 자격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다.
단지,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면 곧장 자기 생각을 유연하게 고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면 된다.

계산기 뚜드리지 말라는 얘기도 아니고(눅 14:28, 31) 세상일을 소홀히 하라는 말도 아니고, 그냥 하나님 핑계로 내 일을 방관하라는 말도 아니다. 인간은 신처럼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또한 예수쟁이들도 평소에야 병 걸리면 병원 가고 백신도 맞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고 정상이다.

그 대신 세상 돌아가는 일이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라는 여지를 늘 고려하고 믿음을 전제로 깔고 살면 된다는 것이다.

3. 내가 믿는 것에 대한 흔한 부정적 편견과, 그에 대한 반박

(1) 구원의 영원한 보장
오해: 기쁜 소식 선교회, 일명 구원파..;;
반박: 저기서 무슨 교리를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구원의 영원한 보장은 너무 당연한 얘기이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선행으로 구원을 얻은 게 아니기 때문에 자기 악행으로 구원을 잃지도 않는다. 일단 한번 예수님을 제대로 내 구원자로 영접만 했다면 말이다. 구원의 근거는 인간 쪽에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 쪽에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된 사람이라면 아주 예외적인 개막장이 아닌 이상, 죄에 대해서 결코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

(2) 왕국
오해: 여호와의 증인.. =_=;;
반박: kingdom은 지극히 평범한 성경 용어이다. 예수님이 지상 재림해서 이 땅을 다스릴 때에도 당연히 절대왕정으로 다스리지, 무슨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해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고 선거 유세할 일 따위는 없다. 개역성경에서 그냥 '나라'라고 번역한 단어들도 nation이 아닌 이상 kingdom은 '왕국'이라고 번역해야 정확하다.
멀쩡한 좋은 용어의 어감을 다 망가뜨려 놓는 집단이 공산주의자만 있는 건 아니어 보인다(인민, 동무..).

(3)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오해: 특정 성경 출판사, 특정 목사를 떠받드는 편협한 짓이다.
반박: 그건 KJV 유일주의를 반대하는 진영에다가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한 치졸한 논리이다. 그럼 그 사람들의 최종 권위는 그냥 특정 신학교 교수 내지 현대의 그리스어 히브리어 학자들일 뿐이지.

오로지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자라고 믿는 종교가, 그 종교의 근거 경전이 단 한 종류만 완벽하게 보존돼 있고 나머지는 잘못됐다고 믿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또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는 엄청난 얘기도 믿는데 말씀이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온전히 번역됐다고는 왜 못 믿는가? (저 말씀과 그 말씀이 서로 다르다는 태클은 사절)
내 신앙은 그 어느 집단이나 사람의 이익을 결코 대변하고 있지 않다.

(4) 간극 재창조
오해: 아담 이전의 인간, 귀신 따위를 가르친다.
반박: 전혀 아니다. 인간 문명만 6천 년이고 현 세상이 문자적인 6일 동안 창조되었을 뿐이지, 이전 세상은 더 오래 전부터 있었고 그걸 세속 과학이 말하는 긴 지질 시대 및 우주의 역사와 조화시키면 아무 문제 없다. 그리고 재창조는 기독교에서 당연하게 가르치는 사탄 마귀의 창조와 타락을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다. 아담은 최초로 죄를 지은 인간이지만 최초로 죄를 지은 인격체는 아니다.

(5) 세대주의
오해: 시한부 종말론을 조장한다.
반박: 세상에 끝이 있는 것 자체는 맞다. 단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미래를 알 수 없고 끝이 없는 것처럼 신실하게 살다가 죽거나 들림받는 것이 바람직할 뿐이다.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도 있고 한편으로 맹렬한 보복과 "네 어린것들을 돌에 메어치는 자가 행복하리로다"도 있는 책이다. 성경의 저자가 싸이코 정신분열 다중인격자가 아닌 이상, 세대주의는 성경을 성경으로 풀이하고 성경에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 우리에게 당장 적용되지 않는 구절들을 잘 분별해 주는 아주 건전한 성경 풀이법이다. 먼저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다음으로 영적으로 적용한다.

나로서는 계시록 20장에 거듭 반복해서 나오는 문자적인 1000년을 안 믿는 건, 창세기 1장의 문자적인 6일을 안 믿는 것하고 하나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성경에 논리·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고 일면 믿어지지 않는 게 있으면 솔직하게 안 믿으면 된다. 성경이 말하는 바 자체가 그게 아니라고 주작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이다.

4. 음모론

믿을 가치가 있는 음모:

  • 이 세상의 영적 배후에 있는.. '빛의 천사로 위장한 세상의 신' (고후 4:4. 성경에 아예 대놓고 나와 있음)
  • 북괴의 대남적화 음모. 재래식 무기로 안 되니 비대칭무기, 남조선의 법조계와 교육계 적화, 나라 정체성 부정, 역사왜곡. 작은악과 필요악 교란. 민주팔이로 사회 기강과 체제 전복.
  • 철도청의 음모. 승객을 철덕 철도 중독자로 만들기 위해 과거 철도청에서는 코모넷에 외주를 줘서 새마을호 객실에다 Looking for you 곡을 주입해 넣음

별 영양가 없는 음모

  •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배후
  • 유대인 재벌, 로스차일드 가문,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음모
  • 백신 제조 및 제약 회사들 음모

일고의 가치가 없는, 택도 없는 음모

  • 9· 11 테러는 자작극이다
  • 아폴로 계획 달 착륙은 NASA의 거짓 조작이다
  • 남북 통일을 원하지 않는 미국 일본의 음모, 친일파 음모, 뭐시기의 국정농단 음모 따위

5.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 초딩 시절에 4천~4500만이라고 배웠던 우리나라 인구는 5천 1백만을 넘어섰고, 옛날에 50억이라고 배웠던 세계 인구는 선진국들의 저출산 풍조에도 불구하고 80억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 지구 전체의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340ppm쯤 된다고 배웠던 것이 이제는 400ppm을 넘어섰다고 한다. 하지만 오존층은 파괴되는 걸 한창 걱정하던 시절과는 달리 많이 회복됐다고도 한다.
  • 언어학에서 한국어· 일본어에 대한 우랄 알타이 어족설은 부정되고 있다.
  • 한때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라고 배웠던 마리아나 해구 아래의 '비티아스 해연'(11034m)은 1957년에 행해진 러시아의 첫 탐사 이후로 재탐사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질 않아서 당시 측정의 정확도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 어렸을 때는 곰팡이를 식물의 특수한 형태라고 배웠던 반면, 요즘은 이놈은 동물도 식물도 아닌, 균계라는 독자적인 카테고리로 분류되고 있다.
  • 난 어렸을 때는 김 구가 젊은 시절에 "국모의 원쑤"를 갚으려고 민간인으로 위장한 일본 육군 장교 첩자를 때려죽였다고 배웠지만, 사실 그건 생 날조이고, 김 구가 그냥 객기로 애매한 일본인 민간인을 죽인 흑역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한때 '청산리 대첩'이라고 배웠던 항일 독립군의 전투는 비록 우리가 전술적으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과연 정말 '대첩'이라고 불릴 정도의 압도적인 교환비로 이긴 것인지는 진위가 좀 의심받고 있다. 그 정도로 일본군이 졸전· 패전을 하고 학살당했는데 당시 지휘관이 문책되거나 본토로 지원 요청이 갔거나, 많은 시신이 수습되어 야스쿠니 신사에 간 정황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일제도 자기에게 불리한 역사를 대외적으로 조작할 가능성이 있지만, 조작할 이유가 없는 내부 기록에도 증거가 없으며 한국 내부에서도 전과 기록에 대한 과장이 존재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통용돼 왔기 때문이다.

반대로 조선을 비하하는 근거로 즐겨 활용되던 지리학자 김 정호의 최후에 대해서 '주리 틀기+옥사설' 역시 21세기에 와서는 주작으로 여겨져서 부정되고 있다. 관련 증거와 기록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지도 작품이 잘만 전해져 내려오며, 지도의 제작에 관여했던 다른 관료들도 아무 처벌 없이 승승장구+자연사했기 때문이다.

뭐 이런 식으로.. 그 정의상 절대불변인 수학 공식이라든가, 우주가 뒤엎어지지 않는 한 절대불변이 보장되는 뉴턴의 법칙, 열역학 법칙 같은 게 아닌 한.. 세상 대부분의 학문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고쳐지고 보완된다. 심지어 고전 텍스트조차도 일본어· 영어를 거쳐서 중역되었던 것이 원어 직역으로 다시 나온다거나, 검열되었던 내용을 원래대로 다 넣어서 다시 출간되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추세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성경만은 그런 트렌드, 그런 연구 방법론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믿는다. 오늘날 인간의 노력으로 성경 본문이 더 나아지고 있다거나, 새로운 해석, 더 정확한 해석이 나온다고 믿지 않는다. 그런 새로운 추세로 나왔다는 대안이란 게 기껏해야, 겨우, 고작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가 아니라 갈대밭을 건넌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아니라 아담과 '스티브'였다", "가룟 유다도 사실 알고 보면 인간적으로 착한 사람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난 더욱 단호히 거부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성경이 전제로 깔고 있는 인간의 죄성과 근본 성품이라는 건 정말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만큼이나 6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없기 때문이다. 성경의 텍스트가 바뀌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죄인이 성경 말씀의 판단을 받아서 고쳐져야지, 인간이 성경을 업데이트 해야 할 필요나 이유나 당위성은 없다. 오늘날은 옛날처럼 성경을 물리적으로 파괴하고 없애지는 않지만 성경 본문이나 해석을 변조하고 왜곡하는 시대이다.

다른 모든 텍스트들은 번역을 거칠수록 마치 jpg 손실 압축처럼 원래 의미로부터 차이와 왜곡이 커질지 모르나, 영어 킹 제임스 성경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는 본인은 다른 특례나 섭리가 있었다고 믿는다.

전에도 한 적이 있는 얘기이지 싶은데.. 이 '지구 안'에서는 저 수천 m 깊이에 달하는 암흑천지 바닷속이나 극지방, 심지어 화산 근처 등 일반적인 형태의 생명체가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에서도 생명이 존재한다.
그러나 지구 밖 우주에서는 제아무리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 헤매도 생명 같은 건 코빼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증명이나 반증이 불가능한 신념의 영역이긴 하지만, 본인은 이것이 보통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무신론 회의론자라면 이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으니 지구 밖에서도 기를 쓰고 생명을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세상엔 이런 식으로 성경에 대해서든 신에 대해서든, 뭔가 우연 같아 보이지 않은 구석이 존재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7/12/29 08:34 2017/12/2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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