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우 비스타/7에서는 아래아한글의 키매크로가 지원되지 않는다는 걸 며칠 전에야 처음으로 확인했다. 메뉴가 흐려져 있고 아예 선택이 되지 않더라. XP를 졸업한 지 2년이 넘었는데 몇 년째 이 사실을 왜 모른 채 지냈는지 모르겠다. 키매크로는 도스용 1.x 시절 이래로 아래아한글 고급 사용자의 최강의 애용 기능이었는데도 말이다.

아니 그럼 도움말에다가 언급이라도 해 놓지 왜 아무 설명도 없이 메뉴 접근만 막아 놨는지? 그 이유는 인터넷을 검색한 뒤에야 알 수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말이다.
(아래아한글 2005는 비스타/7에서는 수 차례의 패치를 안 받으면 에러가 나고 아예 동작을 하지 않으며, 2007도 패치를 받아야 Aero가 적용된 운영체제 표준 모양 스킨을 쓸 수 있다. 비스타에서 키매크로 메뉴를 막은 것도 2005의 패치부터 그렇게 된 거라 함.)

비스타 이상부터는, 아래아한글이 키매크로를 구현할 때 쓰이는 기능 내지 테크닉이 운영체제의 보안에 영향을 끼친다고 간주되어 그걸 운영체제 차원에서 막아 버린 모양이다. UAC 끄고 관리자 모드로 실행해도 별 소용 없다.

사실, 도스가 아닌 윈도우 같은 이벤트 위주 환경에서 키매크로 같은 걸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 도스처럼 한 프로그램이 모든 하드웨어 자원을 장악하고 독점하고 일괄 처리를 하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래아한글이 윈도우용으로 처음으로 포팅되었던 3.0B 시절에는 기능은 분명 화려해졌다. 드디어 아래아한글에다가 윈도우용 TTF에다가 여타 프로그램의 OLE 개체를 집어넣는 게 가능해졌다니.. 그리고 도스용 아래아한글과 정보 손실 없이 파일 공유까지 가능하다니!

하지만 윈도우용에 매크로 기능은 응당 포팅이 안 돼 있었다.
Win32s에, 95에, NT까지 다 신경써야 하던 시절에 그렇게 하드웨어에 민감한 고급 기능을 넣기는 현실적으로 곤란했을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96까지도 아직 없었다.
그러다가 97에 와서야 프로그램이 Win32s를 제낀 체제로 개편되고 매크로 기능도 다시 생겼다.

그랬는데 한 가지 굉장히 신기한 것은, 매크로를 기록하는 파일 포맷이 9x 계열과 NT 계열이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아래아한글 사용 안내문에서 분명히 본 문장이다. 즉, 똑같은 97을 쓰는데, 윈도우 9x에서 녹화하여 저장한 매크로 파일을 NT4에 설치된 97에다 가져와서 쓸 수는 없으며 동일한 매크로를 해당 플랫폼에서 다시 만들어야 했다는 뜻이다.

도대체 무슨 데이터를 저장하기에 똑같은 x86 계열 컴퓨터에서 저장한 매크로 파일이 왜 서로 호환이 안 됐을까? 단순한 키 시퀀스를 저장한 게 아니라 아래아한글의 매크로 구현 방식이 아주 특이했을 거라는 짐작만을 해 볼 뿐이다.
본인은 나름 한컴사전의 노클릭 단어 인식 기능도 어떻게 구현했을지 대략 짐작할 정도이지만, 매크로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쏭달쏭 갸우뚱이다. 노클릭 단어 인식도 훅 DLL이 9x과 NT 계열이 서로 별도로 존재하며, 심지어 16비트 프로그램용 훅 DLL까지 들어있다.

그렇게 아래아한글은 윈도우에서도 키매크로를 살려 내기는 했지만, 도스 시절 같은 빠른 속도까지 회복하지는 못했다. 전광석화처럼 화면이 깜빡이며 돌아가는 도스 매크로에 비해 윈도우는...;;
그냥 화면에 그림만 그리는 도스 시절의 대화상자와, 수십/수백 개의 개체로 이뤄진 윈도우 대화상자가 뜨는 오버헤드는... 서로 비교가 안 될 것이다.
게다가 Alt+L, K, T, A, D (블록으로 잡은 텍스트의 한글 서체를 궁서로 바꾸기) 같은 궁극의 단축키 신공도 느릿느릿 마우스 위주인 윈도우에서는 그대로 재현할 수 없게 됐다.

도스든 윈도우든 키매크로 자체를 구현할 정도라면, 매크로가 실행되는 중에 화면 업데이트를 안 하게 하는 옵션을 넣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것만 해도 매크로의 실행 속도를 무척 향상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매크로는 일반적인 워드 프로세서 사용자보다 더 전문적인 컴덕후들이 즐겨 사용하는 텍스트 에디터에서는 더욱 필수인 기능이다. 비주얼 스튜디오의 경우 긴 매크로가 실행 중일 때는 트레이에 풍선 도움말도 뜨고, 이걸 건드리면 실행 중인 매크로를 손쉽게 중단도 시킬 수 있다. 아래아한글에도 이런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

윈도우 환경에서는 도스 시절 같은 기계적인 키매크로의 의미가 여러 모로 퇴색한 만큼, 아래아한글도 최신 버전부터는 스크립트 기반 매크로를 지원하고 있다. 과거 PC 통신 에뮬인 이야기에 혼잣말 기능이 있었듯이. 키 조작이 아니라 키 조작이 의미하는 명령을 기록함으로써 좀더 똑똑하고 효율적인 매크로를 구현하고 간단한 프로그래밍 로직과 분기까지 구현한 것이다. 이 정도로 매크로가 능동적인 존재가 되고 나면, 슬슬 매크로의 보안도 따져야 할 필요가 생길 것이다.

스크립트 매크로는 키매크로와는 내부 구현 방식이 다른 듯하며, 아래아한글도 앞으로는 키매크로를 빼고 스크립트 매크로만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스크립트 매크로를 이용하여 키 입력을 녹화해 봤는데 이상한 에러와 함께 실행이 안 돼서리...;;;
급하게 매크로를 수만 번 실행해야 할 일이 있는데 결국은 VMware 아래의 윈도우 XP에다가 아래아한글을 설치해서 키매크로 뺑이를 돌려야 했다. 아놔이런....;;;;;;;;

HWP.EXE의 속성-호환성 탭을 이용해서 운영체제의 버전을 일부러 낮춰 주면 매크로 메뉴를 사용은 할 수 있게 되나, 반복 실행이 되지 않았다. Alt+번호로 개개 실행도 속도가 매우 느렸다. 앞서 말했듯이 아래아한글의 키매크로는 어떻게 구현됐는지 정말 궁금할 따름이다.

제대로 된 매크로를 응용 프로그램이나 운영체제가 지원해 준다면, 매크로를 실행 중인 프로그램은 매크로 실행 결과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하든 안 하든, 최소한 응답이 없이 죽어서 ghost 윈도우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하며, 언제든지 중단도 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프로그램에서 사용자가 키 입력을 하든 말든 자기는 자기 일만 잘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래아한글은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매크로를 돌리고 나서 한참 컴퓨터를 가만 놔뒀더니, 화면 보호기가 갑툭튀 실행된 후로 프로그램 창은 거의 ghost 윈도우처럼 아무 응답이 없고, 게다가 그때부터 키보드 입력이 엉뚱한 곳으로 갔는지 매크로가 제대로 실행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망할 화면 보호기.. -_-

요즘 사람들은 컴퓨터를 안 쓸 때도 그냥 켜 놓는 경우가 워낙 많기 때문에 컴퓨터 설계자들은 idle 상태일 때 전기를 최대한 아끼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당연지사이다.
그런데 가끔씩은 컴퓨터를 서버 용도로 쓸 때도 있고, 프레젠테이션 발표용으로 쓰기도 하고, 윗글처럼 일괄 처리를 시켜 놓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오랫동안 키보드 입력이 없다고 해서 컴퓨터가 함부로 툭 꺼져 버려서는 안 된다. 이 둘이 마치 교통수단의 이동성과 접근성처럼 동전의 양면 같은 면모가 아닐까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5/20 08:32 2010/05/2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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