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함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회로부터 온 옛날 메일이 구석에 처박혀 있는 걸 발견했고, 거기에 역대 동문들의 근황 목록이 있는 걸 열어 봤다.
내가 다닌 학교의 특성상, 역시 선후배나 동기들이 다들 프로필이 너무 쟁쟁하고 너무 잘 돼 있고 대단했다.

  • 삼성맨이 된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생산직이든 영업부 사무직이든, 박사급 정예 연구원이든 분야 한번 참 많았다. 인터넷 신문 기사 댓글이나 SNS, 파워 블로그만 보면 삼성 욕하는 글로 넘쳐나지만, 역시 넷심은 민심과 일치하지 않는 법. 현실을 지배하는 건 돈의 힘이며, 삼성 전자는 지금도 여전히 공돌이들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직장 1위이다.
  • 좀 덜 유명하고 입결이 낮다 싶은 학교에 갔다 싶은 친구들은 그 대신 과가 전부 의대였다. 예외가 없었다. ㅋㅋ
  •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이공계의 희망이다 싶던 친구들이 공무원, 금융권, 의전으로 U턴을 생각보다 많이 해 있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전교 최고의 수학 영재로 이름을 날리던 어느 후배가 서울대 치의전에 가 있었고, 나와 대학을 같이 가고 나중에 서울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 석사까지 했던 1기 아래 후배도 다시 의전으로 진로 변경한 듯.

워낙 똑똑한 사람들이니 어딜 가도 다 제 갈 길을 잘 찾아가 있다. 그래서 이런 와중에 나는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면서 각오를 새로 하게 되었다.

어차피 저것들은 다 내 길이 아니다. 난 어차피 그런 학교도 공부 성적이 아닌 오덕질로 간 것이고, 내 진로에는 선례가 없다. 빨랑 석사 졸업하고 나서 박사 가서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다음 아이템에 목숨 거는 수밖에.
이거 덕질에 비하면, 철도 덕질은 덕질도 아니고 오히려 진짜 덕질을 은폐하기 위한 떡밥일 뿐이었음이 밝혀질 것이다.

남은 남이고 나는 나다. 오늘은 본인의 고등학교 동문 중에, 매스컴에 아마 가장 널리 알려져 있을 인물을 소개하겠다. 바로 금 나나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2년 5월, 얘가 미스코리아 진으로 뽑혔다. 나나는 본인의 바로 한 기수 아래인 후배이고, 믿어지지 않겠지만 본인은 얘를 학교 기숙사에서 마주친 적도 있다.

원래 미스코리아 대회는 1988년부터 2001년까지는 전국구 공중파 방송인 MBC가 생중계를 해 줬다. 하지만 선정성과 성 상품화 논란 때문에 미스코리아 안티까지 생긴 마당에 하필 딱 2002년부터 그 관행이 폐지되고, 미스코리아 중계는 케이블 TV로 관할이 넘어갔다.

대회는 세종 문화 회관에서 열렸다. 카이스트에서도 고등학교 선배와 동기들은 TV를 주시하였고, 몇몇 동기들은 아예 현장에서 나나를 보러 서울로 갔다. 그 시절 물가로 5만원짜리 좌석이 3층에 있고 무대에서 완전 멀리 떨어진 위치였다. 더 가깝고 좋은 자리는 당연히 돈이 훨씬 더 많이 든다.

구체적인 디테일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건, 나나는 그때 인터뷰의 질문에 말을 너무 조리 있게 지적으로 잘 했었다는 점이다. 관중석에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런 이미지에다가 특목고+의대 출신이라는 점이 더해진 덕분에, 나나는 쟁쟁한 서울 출신 경쟁자들을 모조리 제치고 결국 진을 차지했다.

TV를 보던 고등학교 동문들은 그때 동기나 선후배 가리지 않고 서로 얼싸안고 난리가 났었다고 본인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수상 소감을 말할 때 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더니 끝에 “경북 과학고 파이팅!”이라고 외쳐서 감동이 더욱 고조되었다.
마치 우리나라가 월드컵 16강 진출했을 때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간 직후이니까 모교에 대한 애교심(?)도 팔팔하던 시절이다.

이 일은 당연히 고등학교의 인지도의 변화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 당시 교내 1층 복도에는 재학 시절에 전국 규모 이상의 경시대회에서 입상한 학생들의 사진이 걸린 명예의 전당이라는 게 있었는데, 금 나나는 재학 시절에 다른 입상 경력이 없고 미스코리아 입상은 졸업 이후의 행적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추후에 추가되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인터넷에 얘 팬카페도 생겼다. 그 후 그녀는 언론에도 잘 알려졌듯이 책도 여러 권 쓰고 나중엔 하버드 대학에 편입해 들어갔다. 들어갈 때는 미스코리아 경력 버프도 많이 받아서 들어갔겠지만, 결국 졸업할 때도 역시나 성적 우수자로 졸업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미국의 다른 대학에서 생물, 영양, 보건 쪽으로 박사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듯. 뭐 이미 너무 유명인사가 돼 버렸고 앞날이 창창하니 굳이 더 근황을 궁금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과학고 동문 중에 이런 이력의 소유자가 나오는 건 분명 특이한 경우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나 역시 그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는 않은 괴팍한 분야에서 특이한 연구로 가까운 미래에 이름을 남기련다.

재작년인 2010년엔 뜻하지 않은 경로로 고등학교 후배를 만난 적이 두 번 있었다.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갔던 예비군 동미참 훈련 때, 예비군 아저씨들 중에 정말 우연히도 2기수 후배와 마주쳤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경우인데.. 정 동수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사랑 침례 교회에서 그 해 8월에 개최했던 청년부 교제 모임 때는 무려 10기수 후배를 만나기도 했다. 나는 6기이고 그 친구는 2008년에 입학한 무려 16기! 세상에, 킹 제임스 진영에서 까마득한 고등학교 후배를 만나다니!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 모르겠다. 세상이 좁다는 걸 느꼈다.

Posted by 사무엘

2012/05/13 19:34 2012/05/1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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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에는 경북 외국어 고등학교가 있다.
포항에 있는 본인의 모교인 경북 과학 고등학교도 1993년에 개교했으니 본인이 중· 고등학생 나이이던 당시에는 꽤 최근에 생긴 학교이긴 했으나, 외고는 더욱 나중에 생긴 학교였다.

경북 외고는 1995년에 설립 인가가 나고 1996년 개교로 알고 있고 있는데, 그땐 아직 기숙사나 강당 같은 건물조차 다 완공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 학교 홈페이지엔 연혁이 안 나와 있다. -_-)
1996년 개교이면 민족사관 고등학교와 생년이 동일하다. 1995년 중학교 <방학책>(초등학교의 탐구생활에 해당하는 책자?)의 뒷표지 광고에 민족사관 고등학교 1회 입학생 요강이 적혀 있던 걸 기억한다. 물론 살인적으로 까다로운 전형 절차와 우수한 성적, 요구 조건으로 말이다. 내신에 심층 면접에, 나중엔 체력장까지... 흠좀무.

어쨌든 본인은 경북 외고가 그 민사고와 동급으로 그렇게 역사가 짧은 파릇파릇한 학교인지는 그 당시에 잘 몰랐다. 하도 특목고, 특목고 하니까 내가 사는 경북에도 그런 외국어고가 으레 있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다른 과목에 비해 영어가 상대적으로 강하고, 비록 전교 열 손가락 안의 순위까지는 아니어도 평소실력(?)만으로 나름 상위권이고...
머리는 나쁘지 않-_-은 거 같은데 그닥 노력파 성실형은 아니고 자꾸 컴퓨터로 쓸데없는 짓만 하던 본인에게, 당시 중학교 선생님들의 진로 조언은 불 보듯 뻔했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공부 열심히 하고 내신 튜닝-_- 해서 외고 가라”였다.
백 번 수긍한다. 내가 선생이어도 본인 같은 학생에겐 그렇게 조언했을 것이다. 뭐 나중엔 정보 올림피아드 입상 실적 덕분에 과학고로 당첨됐지만-_- 말이다.

그러던 차에 본인이 처음이자 마지막(사실상??)으로 경북 외고와 인연을 맺은 일이 있었다. 바로 1997년 가을, 본인이 중3이던 시절에 거기서 자기네 학교 홍보를 목적으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제 1회 외국어 경시대회를 개최했던 것이다. 외국어 경시대회라고 해 봤자 사실상 영어 필기시험이었다.
이 대회의 입상자는 외고에 지원할 때 가산점을 준다는 단서도 당연히 붙었다. 그래서 본인은 그 대회에 우리 중학교에서는 혼자서 참가했다. 덕분에 대회 당일 수업은 공결로 째고, 경북 외고로 고고씽.

깔끔한 붉은 벽돌 건물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때는 이미 이런 특목고에 진학해 있는 외고 재학생들이 가히 하늘처럼 높게 보일 뿐이었다. 시험 치는 느낌이 어땠는지는 13년이나 지난 지금 기억이 날 리가 없고, 어쨌든 그때 본인은 장려상 하나 겨우 건져 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게 있다.
그때 본인은 동행하는 인솔 교사가 없이 혼자 기차 타고 타지에 있는 학교에 찾아가서는 시험 치고 돌아왔다! 경북 외고는 구미 역에서 900m 남짓한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타지에서 방문할 때는 철도가 딱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면 본인은 지리 하나도 모르고, 혼자서 기차 탈 줄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어떻게 갔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시험 치고 나서는 확실하게 혼자였다는 게 기억난다. 담임 선생님에게 경과 보고를 공중전화로 하고, 귀가도 다시 기차 타고 스스로 해냈다. 그때 지금처럼 일기를 써 놨으면 그 당시 철도가 어땠는지 더할 수 없이 귀중한 기록이 되었을 텐데!

사실 경북 과학고도 포항 역에서 지하철 두 정거장 남짓한 가까운 거리이다. 포항에 지하철이 있다는 소리는 물론 아니지만, 뭐 1.5km 남짓한 거리니까... 본인은 그것도 까맣게 모르고서 고등학교 시절 3년간을 철도는 전혀 이용하지 않고, 더 멀고 비싼 시외버스만으로 경주와 포항을 왕래했다. 그 정도로 지리에 문외한이었는데 그때 구미 여행은 어떻게 해냈을까?

그때 이후로 본인은 구미를 다시 찾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 경험 덕분에 ‘경북 외고는 구미 역에서 무척 가깝다’는 기억 하나는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제 본인이 글을 쓰는 전형적인 방식인, 관련 잡설들을 옴니버스 형태로 나열하는 걸로 글을 맺겠다.

1. 경북 과학고와 외고뿐만 아니라, 초등학교를 제외한 본인의 모교들은 전반적으로 역사가 짧은 편이었다. 계림 중학교는 1986년 개교로, 이는 포항 공대의 생년과 카이스트의 학부 개설 연도와 공교롭게도 일치한다. 다만, 본인은 이제 대학원은 역사가 무진장 긴 학교로 가게 된다. ^^;;

2. 그러고 보니 정보 올림피아드 경시 부문의 전신이던 PC 경진대회의 경북 지역 예선은 포항도, 구미도 아닌 안동에서 늘 개최되어 왔다. 안동은 경북 내륙의 중심지이지만 당시 고속도로 하나 없는 교통 불편한 곳이다 보니, 인솔 선생님이 꼬불꼬불한 국도로 차를 몰면서 대회장까지 학생들을 태워다 주었다.

3. 본인에게는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을 한 적이 있고 당시 같은 영어 사교육-_- 학원에서도 각종 대회에서 본인과 1, 2등을 다투는 라이벌 사이이던 여자 동창이 있다. 예쁘고 못 하는 게 없는 모범생 엄친딸이었는데, 이 친구는 결국 경북 외고에 진학했다. 저 외국어 경시대회에 참가를 안 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때 현장에서 걜 만나지는 못했다. (어머니께 고증을 의뢰하니, 어머니 왈, 걔도 그 대회에 응당 참가했고 역시 장려상 받았다고 한다)
본인은 뭐 과학고에 합격했으니, 중학교를 마칠 무렵 서로 축하 전화를 주고받았다. 본인의 어머니와 그 친구 어머니께서 서로 아는 사이여서 말이지..;;;

4. 하지만 과학고도 가 보니, 당시 외국어 경시대회에 참가했던 친구가 그래도 딱 한 명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 하면, 그때 외고에서는 모든 대회 참가자에게 학교 마크가 인쇄된 공책을 사은품으로 줬는데, 본인과 그 친구가 서로 그 공책을 갖고 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

5. 하긴, 내 기억이 맞다면, 본인이 중학교에 갓 들어간 시절인 199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의 언어 관련 교육 제도에 좀 변화가 생겼다. 논술이 처음으로 부각되고 논술 경시대회라는 게 생긴 게 그때이다. EBS에서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전국에서 동시에 영어 듣기 평가를 시행해서 그 점수 20점이 중간· 기말고사의 영어 점수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그때. 또한 나름 영어 말하기(혼자 웅변이 아니라 연극) 대회도 그때 생겼다.

세월이 흘러 어느 지식인 검색을 보니, 영어 말하기 대회 때 써먹겠다면서 개그 만화 일화 3기 3화 쇼토쿠 태자 대사를 좀 영작해 달라는 요청을 본 기억이 난다. Inside the pillow is full of tuna (베게의 속에는 참치가 가득) ㅋㅋㅋㅋㅋㅋ 이 나라의 미래는 밝다.

Posted by 사무엘

2010/08/11 08:49 2010/08/1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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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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