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지질학자 클레어 패터슨 (1922-1995).
굉장히 유명한 업적을 둘 남긴 것치고는 대중적으로 굉장히 덜 알려진 사람이다. 단, 과학사 내지 과학과 사회 윤리 이런 쪽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미 이름을 들어 보셨을 것이다. 그는,

(1) 방사성 원소 측정법을 이용해서 지구의 나이가 45.n억 년임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정확도로 규명하였다. 이 연도는 오늘날까지 중등학교 과학 시간에도 가르쳐지고 있으며,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보다 더 정확한 값은 나오지 않았다. 쉽게 말해 이 분야에 끝판왕 급의 업적을 남겼다.

(2) 그리고, 자동차 유연휘발유에 첨가되는 테트라에틸납 성분이 대기 중의 납 농도를 증가시켜 사람의 건강을 치명적으로 해친다는 것을 규명하였으며, 전세계적으로 유연휘발유를 퇴출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young earth creationism을 주장하는 진영(지구의 나이가 6천 년..!)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 연구를 하던 중에 지구와 인류를 구한 업적을 이뤘다는 게 참 특이하다.

조금이라도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되는 실험 결과가 자꾸 어긋나는 게 이상해서 조사를 해 보니..
“공기 중의 미세한 납 성분이 실험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 이거 아무래도 자동차 배기가스 때문인 거 같다 → 이건 사람 건강에도 치명적이다” 순의 발견까지 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의 행적은 유연휘발유를 제조· 판매하던 당대의 업계 종사자들로부터는 미움도 많이 받았다. 당연히 “저건 일반적인 빈도를 벗어나지 않는 산업재해일 뿐이며 딱히 유연휘발유가 해로워서 그런 건 아니다” 식으로 실드를 치고 치부를 은폐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국제 추세에 맞춰 1987년 7월부터 무연 휘발유가 첫 도입되었으며, 1993년 1월부터는 유연 휘발유의 유통이 전면 금지되었다. 1987년 7월이면 민주화 항쟁에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디젤 동차 도입 같은 굵직한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그 시기에 무연 휘발유까지 등장한 거구나!

그래서 그 과도기에는 주유소에 유연 휘발유/무연 휘발유 구분이 따로 있었고, 새로 생산된 차들은 반드시 무연 휘발유만 넣어야 한다는 안내문 스티커가 붙곤 했다. 본인은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다시 패터슨 아저씨 이야기로 돌아오면,
지질학에서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6500만 년 전에 공룡이 멸종했다” 같은 식으로 맨날 'n년 전'이라는 말을 쓴다.
그때 '전'의 기준이 되는 지질학적 기준 시기는 “1950년 1월 1일”이라고 학계에서 정식으로 정했다. 방사선 원소 측정법이 정착하고 지구의 나이가 저런 식으로 규명된 때가 1950년대이기도 해서 말이다.

영어로는 before present를 줄여서 65 million years BP 이런 식으로 쓰는데, 이는 1950년으로부터 6500만 년 전이라는 뜻이다. 저 때가 컴퓨터의 유닉스 연대기의 기준인 1970년만큼이나 나름 학문적인 의미가 큰 해인 셈이다.

난 예전에도 글로 썼듯이 지구와 우주의 나이는 장구히 길고, 인류와 현존하는 생명체들의 내력만 6천여 년 남짓이라고 믿는다. 간극 하나만 설정하면 과학 얘기와 문자적인 6일 창조 성경 교리가 싹 깔끔하게 풀린다. 이건 어거지가 아니라 성경 자체가 교리적으로 그런 간극을 지지하고 있다. 6일 창조가 창조의 전부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 쪽으로든 성경 쪽으로든 젊은 우주/지구를 믿지 않는 진영에서는 창조 과학회를 굉장히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전자야 두 말할 나위도 없이 과학적인 연구 방법론도 모르는 사이비 유사과학이라고 까고, 후자 진영은 성경 말씀을 어줍잖은 과학으로 풀어서 교만한 짓거리를 한다고 깐다.

본인은 내 견해와 다르다고 해서 창조 과학회를 필요 이상으로 싫어하거나 매도하지는 않는다. 6천여 년 전에 6일 만에 모든 게 끝났다는 식으로 믿으면 뒤끝 없고 뭔가 기독교스럽고 깔끔해 보이긴 한다. 아담이 마치 성인 형태로 곧바로 창조되었듯이, 지구와 우주도 겉보기로만 오래 된 듯이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합리화를 해 버리면 뭐 답이 없다. 더 논쟁을 할 수가 없다.

단지 본인은 지구와 우주는 아담과 같은 부류는 아니라고 믿는다. 수많은 화석과 지층이 노아의 홍수만으로는 도저히 생겨날 수 없고, 지구 지형과 각종 천체가 수억~수십억 년이라는 장구한 기간 동안 생성되고 소멸된 증거가 명백히 존재하는데 하나님이 다른 것도 아니고 그걸 왜 훼이크를 칠 필요가 있는 걸까?

그런 직감에 근거하여 본인은 과학과 신앙의 관점에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걸 믿는다. 가령, 오래 전에 멸종하여 화석이 된 고생대 실러캔스는 옛 세상에서 있었던 놈이고, 오늘날 발견된 실러캔스들은 6일 창조 때 이미 있던 그 종류대로(after his kind) 다시 만들어진 놈이라는 식이다. 단지 인류는 아담이 최초이며, 소위 유인원들은 아예 원숭이이거나 아니면 실제로는 인간도 원숭이도 아닌 다른 생물인 것이다.

끝으로 여담이지만, 클레어 패터슨은 이름만 보고는 여자로 오인받기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여배우 클레어 데인즈의 철자하고는 글자 하나 차이이다. Clair / Claire 옛날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이 문득 떠오르는구나!

Posted by 사무엘

2014/09/22 19:37 2014/09/2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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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oel 2014/09/25 01:29 # M/D Reply Permalink

    제 생각도 비슷해요. 어릴 때에는 창조론에 대해 그게 참 고민스러웠었는데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꿔보니 편해졌어요.

    1. 사무엘 2014/09/25 08:12 # M/D Permalink

      과학 사실을 떠나서 성경 자체의 진술만을 따져도 물은 언제 창조되었는지, 천사들은 언제 창조됐고 사탄 마귀는 언제 타락했는지 같은 걸 따지고 들면 정말로 6천 년 전의 6일 창조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지요. :)
      창조 과학 진영에서는 그런 교리적인 설명과 더불어 지구와 우주가 젊다는 증거, 기존 연대 측정법이 잘못된 증거도 더 분명하게 제시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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