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1호선의 역사

* 꽤 오래 전인 블로그 개설 초창기에 썼던 글을 리메이크 한 것이다.

1. 개통식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인 8월 15일에 맞춰서 정부 수립을 했다. 그런데 이 8월 15일은 우리나라의 철도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날이다. 1974년 8월 15일은 서울 지하철 1호선 "겸" 수도권 광역전철이 같이 개통한 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의 최고급 열차이던 관광호가 새마을호로 이름을 바꿔 첫 운행을 시작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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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진을 보자. 이 둘은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겉으로는 흑백 사진이지만, 철덕이라면 전동차의 색깔이 저절로 컬러로 복원돼서 뇌에 비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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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의 동선과 스케줄을 보면, '서울 지하철 1호선'(종로선)의 개통식이 먼저 청량리 역 승강장에서 열렸다. 마침 친절하게도 당시 시각까지 사진에 담겨 있다. 아침 11시 15분경.
지하철 개통식 때는 서울 지하철 공사(현 서울 메트로) 소속의 흰 배경에 창틀 부분만 빨강 도색인 전동차가 사진에 담겼다.

이 사람들은 저 열차를 마치 자가용처럼 시승하고 다녔다. 그 당시 종합 사령실이 종로5가 역에 있었던 관계로 그 역에서 내려서 사령실도 잠시 들른 뒤, 서울 역도 지나 남쪽으로 쭈욱 내려갔다.

그렇게 지하철 개통식 팀이 도착한 뒤에야 수원, 인천, 성북 방면의 지상 '수도권 전철'의 개통식이 바로 구로 역 승강장에서 아침 11시 50분쯤에 열렸다. 이번에는 철도청 소속의 파란 배경에 창틀 부분만 흰 도색 전동차가 얼굴마담 역할을 했다. 물론 '초저항'이라고 불리는 저 식빵 모양의 일제 전동차 자체는 철도청 것이든 서지공 것이든 완전히 동일하다.

서울에서 수원이나 인천을 가려면 예전에는 털털거리는 디젤 동차를 타야 했는데 그게 모두 깔끔한 전철로 바뀌었고, 그 전철이 서울 종로에 있는 지하철 구간과 직통 운행까지 한다는 것이 이 지하철· 전철 개통의 의의였다.

가끔 코레일이나 서울 메트로 전동차를 타고서 안에서 철도의 역사 관련 동영상이 나오는 걸 살펴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자기 회사에 해당하는 얘기만 한다. 서울 메트로에서는 지하철 개통 얘기만 하고, 코레일에서는 수도권 광역전철 개통 얘기만 한다. 우리는 두 사건이 모두 순차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알면 되겠다.

지하철· 전철 직통 시스템의 개통식은 원래는 대통령도 참석하고 아주 웅장· 성대하게 치러졌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알다시피... 아침 10시부터 장충동 국립 극장에서 대통령 내외가 참석한 광복절 기념식이 있었는데 거기서 영부인인 육 영수 여사가 괴한에게 총격을 당했기 때문이다(10시 23분).

지하철 개통식 사진에 찍힌 11시 15분은 그 대형 사고가 터진 지 50분 남짓밖에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그러니 저 사진에 나온 사람들은 마냥 기쁜 표정만 지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은 그 당시 양 택식 서울 시장이 아주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과업이었으며, 원래대로라면 개통식은 그의 인생 최고의 날이 돼야만 했다. 하지만 하필 그 날 대통령의 영부인이 세상을 떠나는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그는 사건의 책임을 지고 시장 자리에서 경질되고 말았다.

그의 후임인 구 자춘 시장은 양 택식의 지하철 건설 계획을 거의 다 갈아엎었다. 하지만 저 사람도 선임 뺨치는 불도저였으며, 다음 노선인 2호선이 거대한 순환선으로 만들어진 건 그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2. 발전 내력

서울 지하철 1호선 겸 수도권 전철은 처음에는 한 편성당 6량으로 개통했지만 이미 1980년 12월에 8량으로 증설되었고, 1984년에는 10량으로 증설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 당시 열차를 타고 있는 동안은 "객실에서는 금연입니다. 출입문은 30초 동안 열려 있습니다(일반열차보다 훨씬 더 빨리 닫히고 금방 출발하므로). 지하철 전동차 안에는 화장실이 없습니다."라고, 난생 처음으로 일반열차가 아닌 지하철을 타는 사람을 대상으로 초보적인 안내 방송도 일일이 육성으로 흘러나왔다고 한다. 경부 고속도로가 처음 개통했을 때 "이 도로에는 사람이나 손수레, 자전거 따위는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라고 한참 홍보를 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1974년 첫 개통 당시의 운행 계통과 운행 시격은 다음과 같았다.

  • 청량리-성북(지금의 광운대 역): 40분
  • 서울역-청량리: 10분 (R/H 땐 5분)
  • 서울-구로: 10분
  • 구로-인천: 20분
  • 구로-수원: 40분

즉 남쪽으로는 10분 간격으로 구로, 인천, 수원, 인천 행이 번갈아가며 왔다고 생각하면 되고 북쪽으로는 4대 중 1대 꼴로 성북 행이고 나머지는 청량리까지만 간 셈이다.
인천까지 가는 전철이 급행도 없고 배차간격이 지금의 중앙선과 비슷한 수준이요, 수원 가는 전철은 지금의 소요산 행 열차보다 배차간격이 더 길었다는 얘기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경부, 경인선 모두 그냥 복선이었고 특히 경부선 전동차는 지금 급행 전동차가 그런 것처럼 일반열차의 틈새를 이용해서 운행되었으니, 열차를 많이 투입할 수 없었음이 자명하다.
1981년 12월 23일에는 경부선 수원-영등포 구간이 2복선으로 확장되면서 경부선 전동차를 더욱 증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일반열차 눈치 볼 필요 없이 전동차만의 선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때 상대식 승강장을 하고 있던 역은 자연스레 쌍섬식 승강장이 됐다.

2복선화 공사는 그때 이미 구로 이남은 방향별 복복선으로, 서울 시내 구간은 공사가 쉽지 않아 선로별 복복선으로 정착한 것 같다. 방향별 복복선은 기존 복선 선로의 양 끝에 선로를 하나씩 추가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예전부터 있던 내선은 일반열차가 계속 쓰고 신설된 외선으로 전동차가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수원 이남으로도 계속 달리는 일반열차와는 달리, 수원에서 북쪽으로 회차해야 하는 전동차는 선로를 바꾸는 회차 과정에서 일반열차 내선을 침범하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회차할 때만은 여전히 일반열차 눈치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2복선의 선로 용량에 걸맞게 전동차를 증차하기가 어려웠다.
이 고질적인 문제는 먼 훗날인 2003년, 병점 역이 개통하고 나서야 해결되었다. 차량기지와 함께 회차 전용 입체 교차로가 신설된 것이다. 병점뿐만 아니라 천안에도 전동차 회차 및 장항선 분기가 모두 입체 교차로로 잘 구비돼 있다.

90년대에 들어서서는 경인선도 2복선화가 추진됐다. 거기는 일반열차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성, 타당성 조사는 진작에 다 통과했기 때문에 일이 성사됐다. 그리고 경부선과 경인선이 합류하는 구로-영등포 간은 아예 3복선화도 진행되었다. 1991년 11월 23일은 경인선 2복선화 기공식과 경부선 해당 구간 3복선화의 개통식이 거행된 역사적인 날이었다. 경인선 2복선화는 부평-주안-동인천의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구일 같은 역은 이를 계기로 형태가 크게 바뀌기도 했다.

사실 그 해 5월 25일에는 공사 때문에 1박 2일 남짓한 시간 동안 전동차가 잠시 단축 운행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 경부 고속철 2차 공사 구간에서 경부 고속도로 위를 타넘는 언양 고가 공사와 비슷한 맥락이라 보면 되겠다. 첨단 공법을 동원한 덕분에 공사의 대부분은 차량 통행을 막지 않고 그대로 진행할 수 있지만 아치의 기초를 놓는 한나절 남짓한 시간은 고속도로를 잠시 막아야 했다고 한다.

경인선과 더불어 경부선 수도권 전철도 수원이 아닌 무려 천안까지 남하하는 공사가 1996년부터 추진되었다. 그 시절에 경부선 일반열차를 타면서 아직 완공되지 않은 전철역 승강장이 휙휙 지나가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경부선은 이제 천안 이북은 2복선 전철이 되었지만 일반열차 때문에 경인선처럼 충분하게 급행 전동차를 운행하지는 못한다.

서울 서남쪽이 그렇게 변화를 겪고 있는 동안, 북쪽 종점인 성북 일대에서는 1호선 전동차의 병목을 야기하고 선로 용량을 깎아먹던 '평면교차' 문제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진행됐다.
1978년 12월에는 경원선 용산-성북 구간에도 전동차가 투입되어 종전의 디젤 동차를 대체하고 1호선의 지선 노릇을 하게 되었는데, 이놈은 선로 합류와 회차 과정에서 유감스럽게도 1호선 전동차와의 평면교차를 야기하고 있었다.

얘는 2005년에 광역전철 중앙선으로 분리해 나감으로써 문제가 해결됐다. 용산-성북이 아니라 용산-덕소가 됐다. 마치 안산선 열차가 처음엔 1호선 경부선의 지선으로 운행되다가 훗날 4호선으로 완전히 독립해 나간 것과 같은 방식이다.
또한 경춘선 무궁화호가 야기하던 평면교차도 경춘선 복선 전철이 다른 선로로 이설되면서 사라졌다. 다만 이런 조치로 인해 반대로 말하면 성북(지금의 광운대) 역이 그 덩치에 비해서 경춘선도 못 타고 중앙선도 못 타고 오로지 1호선 전동차밖에 못 타는 역으로 역할이 줄기도 했다.

다만, 처음에는 이 수도권 전철의 북쪽 종점은 계속해서 올라가서 한동안 의정부북부에 머물러 있다가 이제는 동두천과 양주를 거쳐 소요산까지 올라갔고, 장기적으로는 무려 연천까지 갈 거라고 한다. 경원선 자체는 아예 민통선 안의 월정리와 철원까지 복원할 계획이 잡혀 있고.. 정말 40년 동안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룬 셈이다.

그나저나 먼 옛날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의 내부 인테리어가 온통 빨강이었다는 것이 본인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로마자 표기법이 바뀐 게 반영되고 국철과 지하철 구분 없이 색깔을 남색으로 획일화한 모습만 직접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옛날 사진을 보면.. 오히려 "내가 착각을 하고 있나, 색맹이 됐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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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6/03/20 08:31 2016/03/2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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