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에 장난끼가 농후하던 <디 인터뷰>보다야 훨씬 더 고퀄이고 진지하고 고증 잘 됐고, 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외국 영화가 하나 만들어져 나왔다. 감독은 러시아 사람임. 본인은 바로 극장에 가서 관람했다. 이런 진귀한 영상은 돈 주고 볼 가치가 있다.
제목이 태양 아래(under the sun)라니, 영락없이 전도서의 표현에서 모티브를 딴 건지는 모르겠다.
얼마 전엔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가 그야말로 국내외로 초대박을 쳤는데, 한편으로 뭔가 반인륜 범죄를 폭로하는 영상물에도 '태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경우가 있다. 국내에 마루타라고 소개되었던 1988년작 고어 영화 <흑태양 731>도 영어 제목은 the men BEHIND the sun이다. 물론, 이제 와서 북괴는 잔학함(함수의 특정 지점 최대값)과 지속 기간(함수의 구간 적분값)이 둘 모두 과거 일제를 능가하고 있긴 하다만 말이다.
<태양 아래>는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이지만 딱히 스릴 넘치게 싸우고 죽이는 장면 같은 건 전혀 없다. 이건 탈북자나 북한 지하 교회, 국경의 버려진 꽃제비나 정치범 수용소를 다루는 영화가 아니며, 오히려 완전히 반대다.
북한이 외국인에게 어느 정도 촬영해도 좋다고 허가를 했을 정도로, 평양에서 핵심계층으로 최상위급으로 잘사는 어느 집안의 애가 2014년도 김 일성 탄신일(태양절) 행사를 앞두고 소년단에 가입하고 행사 준비에 어떻게 투입되는지를 굉장히 잘 묘사해 놓은 일종의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그러니 잘 조작되고 각본대로 돌아가고, 북이 찍어도 좋다고 OK 한 장면 위주로 영화를 만든 건데 애초에 그런 위기나 돌발상황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런 장면에다가 감독이 위험을 무릅쓰고 추가로 몰래 찍은 북한의 민낯 폭로 장면이 들어갔을 뿐이다.
영화에서 먼저 인상적으로 와 닿았던 건 언어와 말투다.
이 영화에는 북한 사람들의 라이브 실황이 담겨 있다. 남한 사람이나 다른 외국인, 재외 교포가 북한 사람을 어설프게 연기한 게 아니다.
먼 옛날, 초등학교 사회/도덕 시간에 교과서에서 "남과 북은 언어도 차츰 이질감이 생기고 있다"의 예로 딱 한 번 들은 걸로 기억하는 북한말 '마사지다'(못 쓰도록 망가지다)를 현지인이 구사하는 걸 난생 처음 봤다. 저 영화 중에 나온다.
" '입빠이'는 일본어 잔재이니 쓰지 맙시다" 이런 말은 여러 번 들었지만, 일본 사람이 직접 저 말을 쓰는 걸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에서 봤을 때 신기하게 느낀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평양 사람들이 대놓고 "일정이 급하지비. 날래 하라우. 내레 죽겠시요." 이렇게 사투리를 구사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신이 보낸 사람>에서는 남한의 배우가 종결어미만 저렇게 어설프게 북한 말 흉내를 내면서 북한 사람 연기를 했지만, 현실적으로 진짜로 어색하고 북한말처럼 느껴지는 요소는 내가 이 자리에서 차마 흉내내기 어려운 고유한 억양이더라.
학교에서는 한복을 입은 여선생이 김 일성 수령님의 리즈 시절 행적을 설파한다. 사악한 왜놈과 지주놈들을 방법했으며, 1950년에 원쑤 미국놈들이 백두조선을 침략했을 때 전투기를 무슨 척 노리스처럼 빵~ 하고 떨어뜨리면서 무용담을 남겼다고 가르친다.
애들이 언제부터 세뇌 받았는지 "동방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뜨는 고운 나라래서 이름도 '조선'이래요. 아~ 세상에 부러울 것 없어라" 이런 오글거리는 노래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부른다. 여기가 정녕 2016년에 서울에서 불과 200km쯤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말인가... 연기가 아니라 라이브 실황??
수령님의 탄신일이 다가오니 평양의 어린이들은 다들 온갖 매스게임에 동원된다. 체제 선전 내지 외화벌이용으로. 저것들 정말 얼마나 연습해서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2012년쯤이던가, 이 명박 대통령이 이 태양절 행사를 겨냥해서 "그런 쓸데없는 짓거리에 돈지랄 안 하면 인민이 얼마든지 더 먹고 살 수 있다"라는 요지로 살짝 쿠사리를 먹였더니.. (말 표현을 대놓고 저렇게 한 건 당연히 아니지만, 뜻은 통하게)
북에서는 발끈 해서 "우리의 최고존엄을 모독한 불구대천의 원쑤 쥐명박 역적패당 무리를 죽탕치자!!"라는 구호로 또 인민들을 끌어들이며 더 지X을 해 댔다. 이에 대해 더 자세한 사항은 옛날 글을 참고할 것.
그런 식의 인민 동원이 내부적으로 어떻게 이뤄지고 각본이 어떻게 짜여지는지, 저거 연기를 하다가 어떤 NG가 나기도 하는지를 저 영화를 보면 얼추 알 수 있다.
그렇게 밤낮으로 안무 공연 연습을 하던 중, 여자애 하나가 발목이 삐어서 병원 입원 신세를 지게 됐다.
그러자 학교 선생과 급우들이 단체로 문병을 가는 장면도 선전용으로 취재해서 내보냈는데.. 선물에 잔뜩 둘러싸여 있는 당사자는 "저는 수령님의 은덕으로 완치 중입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복귀하겠습니다" 이러고, 선생과 급우들은 "네가 없으니 너무 가슴이 아파 연습이 안 될 지경이야. 동무야, 빨리 복귀해서 같이 자리를 빛내자" 대사를 카메라 앞에서 읊어 댄다..
다친 당사자는 속으로 얼~마나 압박을 느꼈을까..? ㅠㅠ 이거 뭐 한 번만 더 다쳐서 병원 갔다가는 나가 죽어야 하지 싶다. 사실, 북한은 자살조차 했다가는 가족에게 뒤끝 해코지가 가는 곳이긴 하다만..;;
북한은 정말 개인은 없고 오로지 집단, 당만이 존재하는 숨막히는 곳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완벽한 실사판이다.
임금님이 아주 아름다운 어의를 입고 계신다고 침이 마르도록 아부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이 벌거벗었네?" 그랬다가는 가족이 다 수용소로 끌려가는 곳. 그게 동화와 다른 점일 뿐이다.
영화는 제일 압권인 장면을 맨 마지막에 보여준다. 주인공인 북한 소녀(진미)에게 어느 기자가 "이제 소년단 가입해서 빨간 머플러 받으니 뭐가 좋을 거 같아요?"라고 슬쩍 물었는데.. 얘는 오로지 각본 대사만 읊지 자기 생각을 말을 못 하고 울먹인다.
"좀 서정적인 동시 같은 거 생각나는 거 없어요?"라는 질문에 즉시 튀어나오는 건 "나는 소년단에 가입하면서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 ..." 어쩌구저쩌구다.
이 영화를 찍은 만스키 감독은 "북한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와 삶이 얼마나 행운인지, 북한에서 반인륜적인 범죄가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래서 난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한반도 전체를 이런 생지옥으로 만들지 않고 반쪽에나마 자유를 선사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그 남조선 할배가 떠올랐다.
내치에서 잘못한 것, 병크와 과오도 많았지만 공로가 과오를 넘사벽급으로 압도한다고밖에 볼 수 없다. "ㅇㅅㅁ 없었으면 적화통일"은 "ㅂㅈㅎ 없었으면 아직도 보릿고개"보다야 훨씬 더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실이다. 그 할배에 대해서 뭐 부정선거, 야당 탄압, 다리 끊고 도망한 거(?) 그거야 결과만 보면 뭐 잘못한 거니 더 할 말이 없는데, 딴 건 몰라도 분단의 원흉이라고?? 이건 한 마디로 정신병자 급의 미친 소리다.
난 자유가 없는 곳에서 살았으면 일찌감치 미쳐 버리거나 자살했지 싶다. 내 인생 최고의 업적인 날개셋 한글 입력기도, <음란한 성경은 가라> 같은 글도 자유가 있으니 만들어질 수 있었지. 난 남조선 정도의 통제나 억압도 못 견뎌서(교육제도, 군대 문제) 옛날엔 개 깽판 난리를 쳤는데 하물며 북에서는 상상도 하기 싫다.
한편으로 ㅅㅇㅁ 같은 사악한 미국 서식 종북충들을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평양은 참 살기 좋은 도시예요" 저런 악한 인간들이 버젓이 활개를 치는데 지금이 어디 겨우 일베충 따위나 욕하고 있을 때냐?
"남이나 북이나 '똑같다' " 이러는 인간들하고도 난 정말 상종을 하고 싶지 않다. 대학 교육까지 받은 사람이라면 자기 나라가 마음에 안 들고 현 대통령이 싫고 더러운 감정을 표출할 게 있더라도, 정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면서 해야 하는 법이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이지 좌우 이념 문제가 아니다.
저런 악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서 저 무리들과 공존? 통일? 개가 웃고 소가 웃을 일이다. 저기엔 절대 침묵하면서 일본 욕만 하고 민족 팔고 통일 파는 그 어떤 짓거리들도 내 경험상 다~ 멍청하거나 사악한 수작이다. 그놈의 전쟁이 무서워서 저 체제를 무너뜨릴 수가 없다면야 차라리 영구 분단을 유지하면서 놈들을 고립시켜서 말려 죽이고 굶겨 죽이기라도 하는 게 100배 1000배 나은 전략이지.
이 문제에 관해서는 난 그 어떤 금전적인 손해나 인간 관계 단절을 감수하고라도 한 치도 뒤로 물러서고 싶지 않다. 악의 제국을 미화하면서 자국 정부과 국민을 이간질시키는 악한 무리들은 대한민국 땅에서 썩 꺼질지어다.
영화 제목에서 '태양'이란 김씨 왕조의 자칭 타이틀을 풍자하여 붙은 단어이다. 아래 성경 말씀은 굳이 북한 왕조 같은 곳이 아니어도 보편적인 세상을 염두에 두고 기록되었겠지만, 이북 저 동네는 정말 이 말씀이 절실히 적용된다고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해 아래에서(under the sun) 이루어진 모든 일을 보았는데, 보라, 모든 것이 헛되며 영을 괴롭게 하는 것이로다. (전 1:14)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