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의 건설과 개통 내력

서울 지하철의 건설 형태는
"1 / 2 / 3,4 / 5,6,7,8 / 9 (,10,11,12)"호선.. 이렇게 나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1.
1960년대 말, 서울시의 높으신 분들은 이렇게 서울시가 팽창하고 인구가 증가하다가는 시내의 교통은 체증 때문에 완전히 끝장이 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래서 선택한 돌파구는 지하철.. 우리도 외국의 대도시들처럼 땅 아래로 길을 파서 지하철을 건설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까지 서울 시내에는 노면전차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경영 수지가 안 좋아 적자가 쌓여 가고, 차량과 시설의 노후화도 심한 노답 상태였다. 얘는 지하철 건설을 위한 시범타로 완전히 폐선· 퇴출되었다.
전차가 없어진 종로 도로를 파헤쳐서 몇 년 동안 극심한 버스 혼잡과 교통 체증을 감내한 끝에, 서울 최초의 지하철 1호선은 철도청 광역전철 경인(인천)/경부(수원)/경원선(성북)과 직결된 독특한 형태로 건설되고 개통됐다. 차량 운행을 철도청(현 코레일)과 서울 지하철 공사(서울 교통 공사)라는 두 주체가 공동으로 하기 시작했다.

차량은 그 당시 유행이던 중문 달린 식빵 모양 '초저항'(초기 저항 제어 방식 전동차) 차량을 일본으로부터 수입해 와서 굴렸다. 철도청은 차량에 파란 도색을, 서지공은 빨간 도색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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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일본의 신칸센 0계 전동차만큼이나 우리나라 철도 역사의 상징인 매우 귀중한 차량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레일과 서교공 모두 자기네 초저항 차량을 내구연한 경과로 인해 퇴역한 뒤에도 한 량씩 자기 방식으로 도색해서 정태보존 중이다. (각각 철도 박물관, 신정 차량기지 내부)

저런 식빵 모양의 디자인은 비슷한 시기에 일본 현지에서 다닌 도쿄 지하철 5000계 전동차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단지, 차폭은 일본 내수인 1067 협궤가 아니라 1435 표준궤로 커진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초저항 전동차는 일본의 철덕들에게도 관심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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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항 전동차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전방 중앙에 출입문이 있다는 것이다. 필요한 경우, 전동차를 그대로 중련 편성해서 기관사가 아니라 승객이 객차 사이를 지나다닐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

지하철 1호선이 첫 개통한 날엔 대통령까지 참석하는 성대한 개통식을 치를 예정이었지만.. 하필 개통식 당일의 이전 행사에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가 괴한에게 피격 당하는 바람에 지하철 개통식은 대통령 없이 아주 우울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치러지게 됐다. 그리고 서울 시장도 경질되고(양 택식 → 구 자춘) 향후의 지하철 건설 계획까지 확 바뀌게 됐다.

2.
서울 지하철 2호선은 1980년부터 84년까지 점진적으로 개통하면서 거대한 순환선으로 만들어졌다. 이때 굉장히 큰 변화가 생겼다.

  • 고유 노선색 패턴 (2호선은 초록색)
  • 저항 제어보다 조금 더 발전한 초퍼 제어 방식 전동차 (MELCO). 국영 공작창이 아닌 민간 기업 중심으로 차량 생산 시작
  • 매큔-라이샤워 로마자 표기법
  • 노인 무임승차(!!!)
  • 지금과 같은 지하철체
  • 최초의 우측통행 (조금 뻘짓 같지만), 최초의 지하철간 환승역 (신설동)
  • 8량 증결 (처음엔 6량 1편성이었음.. 역들의 건설만 10량 기준으로 해 놓고)

이 정도면 서울 지하철의 실질적인 기틀은 2호선 때 완전히 잡혔다고 봐도 되겠다.
용답 역 근처에 있는 군자 차량기지는 서울에서 중심부에 가장 가까이 있는 지하철 차량기지이다. 그러면서도 창동이나 구로 기지와 달리 이전 계획도 없고, 오히려 여기 주변에 서울 교통 공사 본사와 종합 관제센터까지 들어서 있다.

아, 그리고 1호선이 지상 광역전철과 직통 운행하는 지하철을 선보였다면, 2호선은 유의미한 구간을 계속해서 지상 고가로 달리는 지하철? 도시철도?를 최초로 선보였다. 타 노선들은 한강을 건널 때 내지 외곽 종점 차량기지에 다 왔을 때에만 잠시 지상에 나온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강변-뚝섬이라든가 신대방-대림 지상 구간은 서울 시내에서 보기 드문 형태이다.

3-4.
3호선과 4호선은..

  • 최초로 Y자형 분기(1호선)나 O자형 순환(2호선)이 아닌, 단순한 I자 선형..;;
  • 서울 올림픽에 대비하여 자금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최초로 두 노선이 동시에 건설· 개통되어 서울 중심부를 X자로 관통했다. 충무로 역은 최초로 2개 노선이 동시에 건설된 환승역이다.
  • 일본물이 아닌 유럽물을 먹은 광폭형 GEC 초퍼 전동차가 이때 도입돼 들어왔다.
  • 올림픽을 염두에 둬서 그런지 인테리어를 1· 2호선보다 더 신경쓴 역들이 제법 등장했다. 경복궁, 교대, 동대문운동장처럼..
  • 신호 시스템이 ATS보다 더 정교하고 발전된 ATC로 바뀌었다.
  • 얘들이 등장한 시기부터 전동차들이 드디어 10량으로 증결됐다.
  • 얘들은 일산, 분당, 과천 이렇게 새로 건설된 광역전철들과 직통 운행을 시작했다.

참고로 80년대 중반 올림픽 준비의 산물들로 다른 분야로는: 올림픽대로, 현대 그랜저, 유선형 새마을호 열차가 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지만 과거에는 2호선에도 1호선의 초저항 전동차, 또는 3-4호선의 GEC 초퍼 전동차가 잠시 다닌 적이 있다. 그 반면, 2호선의 MELCO 초퍼는 2호선 외의 타 노선을 다닌 적이 없다.

5-8.
이제 1990년대에 서울 2기 지하철 노선 4개가 한꺼번에 계획되고 건설됐다. 세부적으로는 이것도 95~96년 사이(5호선 전체, 7호선 강북 구간, 8호선 남쪽 구간)와 99~01년 사이(6호선 전체, 7· 8호선 나머지 구간)의 두 타이밍으로 나뉜다만..
얘는 지난 15년간의 지하철 건설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변화가 생겼다.

  • 1기 시절보다는 환승거리를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역들이 만들어졌으며, 심지어 더 미래에 건설할 3기 지하철까지 염두에 두고 환승 통로와 노반을 미리 만들어 놓았다! (5-9 여의도역처럼)
  • 전동차 외형의 표준화
  • 자갈 대신 콘크리트 노반
  • 재래식 삼발이 대신 깔끔한 개집표기, 무려 하저터널,
  • 롤지 대신 LED 전광판
  • 저항/초퍼보다 더 발전된 VVVF 제어: 자동차 내연기관으로 치면 가변 밸브 개폐량/개방 시간(VVL/VVT) 같은 기술을 떠올리면 되겠다.
  • ATS/ATC보다 더 발전된 ATO 신호 시스템. 차장을 생략한 1인 승무

이렇게 1기 지하철에 비해 정말 정말 많은 부분이 발전했다.
이때는 차량 외형은 다들 비슷해졌지만, 내부의 VVVF 인버터는 제대로 국산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조사별로 ABB, 미쓰비시, GEC 등 갖가지 개성 넘치는 전자악기 소리를 가속 구동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이게 1990년대의 로망이다. 2기는 1기와 달리, 시각 대신 청각적으로 즐길 것이 다양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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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건설이란 게 워낙 재정 등골 브레이커이다 보니 2기 지하철을 만들 때는 어떻게든 원가를 줄이려는 노력을 높으신 분들이 했는데, 그 아이디어 중 하나가 2기 지하철부터는 아예 무인 운전을 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테스트를 해 보니 자동 운전 시스템이 승강장 제 위치에 정차를 정확히 못 했다. 또한 이때는 아직 스크린도어도 없어서 완전 무인 운전을 하기엔 여러 애로사항들이 즐비했다. 이 때문에 현실에서는 2인 승무에서 차장만 뺀 1인 승무로 줄이는 수준에서 머물렀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의 최초 개통 구간이 왕십리-상일동이었으며, 천호대로 구간이 이때 파헤쳐졌다가 복구되면서 국내 최초의 시내 중앙 버스 전용 차로로 탈바꿈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응답하라 1997에서 나름 고증을 반영한답시고 지하철 노선도에서 5~8호선은 하얗게 지워 놨던데 그건 오류이다.
그 시절엔 5~8호선도 점선으로 그려 놓고 "건설 중, 개통 예정"이라고 표시해 놓는 게 올바른 고증이다. -_-;;

처음에는 5~8호선만 운영하는 '서울 도시철도 공사'라는 회사가 따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한 도시의 지하철에 사철도 아니고 공기업이 둘이나 있는 건 꽤 이례적인 경우였기 때문에 2017년부터는 두 회사가 하나로 합쳐져서 서울 교통 공사로 바뀌었다.
회사가 둘이서 따로 놀던 시절엔 한 회사 구간에서 파업이 벌어져도 다른 회사 노선은 영향이 없었는데.. 지금은 파업 발생 시에 지하철 1~8호선이 몽땅 멈춰 버릴 가능성이 생겨 있다.

9.
다음으로 서울 3기 지하철은 계획대로라면 9~12호선이 추가로 건설됐어야 했다. 하지만 외환 위기와 IMF, 이로 인한 긴축 재정 처방 때문에 지하철 건설 계획은 대부분 칼질 당했으며, 이 때문에 5~8호선 건설 때 미리 준비를 해 놨던 환승역 건설 공간과 노반도 상당수 잉여로 전락하게 됐다.;;
3호선과 7호선의 연장(오금 2010 / 부평구청 2012), 그리고 강남의 횡축 노선인 9호선만이 살아남았다. 나머지는 2010년대 이후에 서울 외곽 구간만이 광역전철(10은 신안산선, 11은 신분당선) 아니면 경전철(12는 우이신설선)로 실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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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선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 광역전철이 아닌 단순 도시철도 지하철로서는 이례적인 전구간 급행열차 운행
  • 처음 건설 때부터 모든 역에 스크린도어 시공
  • 마분지 승차권의 완전 퇴출
  • 오 세훈 시장 서울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적용된 덕분에 혼자 굉장히 이질적인 인테리어
  • 한국형 표준 전동차 규격. VVVF 인버터도 통합됐기 때문에 구동음은 대전 같은 최신 지방 지하철하고 pitch(음높이)만 다르지 음색은 같다.

그러므로 서울 지하철의 건설 계획이 대판 틀어진 계기는

  • 1기 지하철: 육 영수 여사 피격으로 인한 서울 시장 경질 (신설동 역 유령 승강장이 생긴 이유도 이 때문!)
  • 3기 지하철: IMF ...;;

라고 정리된다. 그리고 차량 운용 계획이 실현되지 않은 것은..

  • 1호선: 유동적인 열차 중련 편성 (그런 것 필요없고 지금은 언제나 10량 꽉꽉 채움..)
  • 2기 지하철: 무인 운전 (현실은 시궁창. 1인 승무만으로 감지덕지)

이렇게 정리된다.
유동적인 열차 중련 편성은 무인 운전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운용 계획이라는 게 흥미롭다. 철도 운영 이념이 세월에 따라 이렇게 바뀌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1/02/06 08:35 2021/02/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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