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사선. 흔히 말하는 ‘화생방’ 중에서 ‘방’은 물리적인 타격이나 화학 약품, 세균· 바이러스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방식으로 인간 신체를 파괴한다.
세포가 방사능을 잘못 맞으면 자신의 설계도인 DNA가 망가지는 바람에 회복이나 분열, 재생 능력을 상실한다. 그 세포들로 구성된 생체는 오늘만 살 수 있고 미래가 날아간 시한부 인생으로 전락한다. 총알 구멍이 뚫린 게 아니라, 그야말로 분자/원자 레벨의 구멍이 세포에 수억 개씩 숭숭 뚫려서 벌집이 된 것과 비슷하다.

인간이야 70~100년을 산다지만 인체를 구성하는 각각의 세포들은 수명이 훨씬 더 짧다. 혈액 속 적혈구는 수명이 4개월 정도밖에 안 되고, 피부 조직 세포라든가 백혈구는 한 달 남짓밖에 못 산다.
거시적으로 보면 인체에서는 1초 동안에도 수백만 개, 하루엔 수백억 개의 세포가 죽고 다시 태어난다. 끊임없이 세포 분열이 일어나서 죽은 세포를 내보내고 새 세포로 세대를 교체해야만 생체의 항상성이 유지되고 생명이 유지된다.

그런데 이게 안 되면 그 사람은 당장은 살아 있지만 이제 몸 여기저기가 탈 나고 썩으면서 고통스럽게 죽는 일만 남게 된다.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강이 아니라, 그냥 고인물 썩은물 웅덩이가 되는 것과 같다. 어떤 기계류가 지금 당장은 돌아가지만, 제조사와 서비스센터가 깡그리 망해 버려서 제품이 더 생산되지 않고 버전업도 되지 않으며, 기존 제품을 수리 받을 수도 없는 지경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섬뜩하지 않은가?

  • 그 지경이 되면 당장은 아무 병에 걸리지도 않은 것 같지만, 면역 체계가 무너지기 때문에 다른 합병증이 찾아오게 된다. 건강할 때는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을 사소한 병도 이기지 못하고 훅 가 버린다. 흠, 이건 '에이즈'와 아주 비슷하네..
  • 또한, 방사선 피폭 증세는 '암'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어느 부위건 세포가 망가져서 정신줄 놓으면 얼마든지 악성 종양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백혈병은 구조적으로 혈액의 암이라고 여겨진다.
  • 인간이 비타민의 존재라는 걸 모르던 시절에는 비타민 C의 결핍증인 괴혈병도 거의 방사선 피폭 급의 무서운 괴질로 여겨졌지 싶다. 장기 조직이 제대로 형체 유지가 안 돼서 스물스물 뭉개지고, 잇몸에 피 나고 내출혈 발생하면서 죽으니까 말이다. (물론 오늘날이야 잇몸에 피 나는 건 99.9% 치주염 때문이지, 비타민 결핍증 때문은 전혀 아님..)

2.
지난 1999년 5월 20일엔 우리나라 대구에서 어떤 6살짜리 아이가 골목길에서 어느 괴한으로부터 얼굴에 황산 용액을 뒤집어쓰는 극악무도한 테러를 당했다.
그 아이는 전신 3도 화상에다 실명이라는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딱 7주(49일) 만에 결국 패혈증이 도지면서 목숨을 잃었다. 더구나 정말 안타깝게도 이 사건은 범인을 못 잡고 영구미제 사건으로 귀결됐다. 이걸 계기로 우리나라는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되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같은 해 9월 30일, 도카이 촌의 핵연료 가공 시설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나서 현장에서 일하던 근로자 2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중 가장 심하게 피폭 당한 '오우치 히사시'는.. 처음엔 제 발로 걸어서 입원할 정도로 멀쩡했지만 이미 염색체가 형체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는 며칠 못 가 백혈구부터 싹 전멸해서 림프구가 소멸하고, 에이즈 환자처럼 면역력이란 게 없어졌다. 피부가 재생되지 않고 다 벗겨져서 이내 중화상 환자처럼 붕대를 칭칭 감아야 하게 됐다. 수건으로 피부를 문지르면 그냥 피부가 벗겨져 나왔다.;;
장기들도 형체가 유지되지 않아서 음식물 소화도 제대로 안 되고 여기저기서 탈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니 의료진들조차도 "우리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나, 차라리 깔끔하게 안락사 시켜 주는 게 더 나았으려나" 자괴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투병 83일 만에 결국 심장이 멈추고 사망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과 일본에서 벌어진 황산 테러와 방사능 피폭.. 물론 전자는 범죄에 형사 사건이고 후자는 불의의 사고라는 차이는 있지만.. 피해자의 고통의 정도는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3.
1999년의 저 두 사건· 사고는 피해 규모가 개인 단위이다. 하지만 더 옛날 1980년대에는 집단 단위의 초대형 사고가 있었다.
원자력 분야에서는 1986년 4월 26일의 전설적인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비원자력에서는 1984년 12월 2~3일, 인도에서 벌어졌던 보팔 가스 누출 사고를 꼽을 수 있겠다. 여기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다가 그냥 독가스 테러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피폭만 당하지 않았을 뿐, 정말 고통스럽게 죽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체르노빌 주변은 방사능 때문에 사람이 앞으로 반영구적으로 살 수 없는 곳이 돼 버렸는데,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는 원폭 맞고 나서도 사람들이 다시 살고 있는 이유가 뭘까?"
꽤 그럴싸한 좋은 질문이지 않은가? 마치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사진을 찍어서 볼 수는 없는가?" 질문처럼 말이다. 내가 아는 한 그 답은 이러하다.

(1) 절대적인 방사능의 유출량부터 원자력 발전소가 일본 원폭보다 훨씬 더 많았다.
원폭은 단지 그걸 순식간에 훨씬 더 빨리, 짧고 굵게 반응시켰을 뿐이다.
자동차처럼 기름 수십 리터를 자그마한 실린더에서 수 시간 동안 서서히 폭발시키고 태우느냐, (원전)
아니면 유증기가 한꺼번에 폭발해서 순식간에 건물이 다 날아가 버리냐.. 그 차이일 뿐인 거다. (원폭)

사실 원폭은 방사능 자체 때문에 위험한 것보다는, 폭탄으로서 원자력을 등에 업고 발생한 살인적인 폭압과 고열이 훨씬 더 위험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겨우 4.5톤짜리 리틀 보이가 TNT 15000톤(15킬로톤) 급의 위력을 냈다고 여겨진다.

(2) 그리고 또 결정적인 차이.
원자폭탄들은 다들 지상 500~600미터. 어지간한 서울 주변 산들의 정상에 가까운 공중에서 터졌다. 그래서 방사성 물질들이 상당수가 바람과 비를 타고 흩어져 날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원전 폭발 사고들은 완전 지상에서 일어났고, 저런 일이 일어나지 못했다.

원전과 원폭은 이런 차이가 있다.
하긴, 핵 실험을 했던 곳도 마냥 방사능 오염 황무지로 영원히 방치되는 건 아니랜다. 비키니 섬의 경우, 핵실험 후 수십 년 뒤부터는 사람이 살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난 개인적으로 원자력 발전에 적극 찬성 소신이고,
옛날 일본에 원폭도 전쟁을 빨랑 끝내기 위해 잘 터뜨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전 정권의 탈원전 쑈를 매우 혐오한다.
지금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는 애초에 우리나라 쪽으로 가는 것도 아니구만 과거의 광우뻥과 다를 바 없는 반일팔이 선동이 매우 심하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1/18 19:35 2024/01/1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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