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나라의 인천 국제공항은 경부 고속철도 내지 서해안 고속도로와 비슷하게 1992년쯤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2001년 3월 29일에 개항했다. 외국 여행이 전면 자유화되고 나니, 기존의 김포 공항만으로는 폭증하는 항공 수요를 도저히 다 감당할 수 없겠다는 게 예측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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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에서는 서울-부산 간 육상 트래픽의 폭주를 해소하려 고속철을 만들었다. 그것처럼 나라 사이에는 항공 트래픽 폭주를 해소하려 공항을.. 둘 다 비슷한 시기에 구상하고 만들기 시작했다는 게 흥미롭다.

고속철이 대전-천안 시험선의 건설부터 시작됐다면, 공항은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를 간척하는 어마어마한 토목공사부터 시작됐다. 건물을 올리기 전에 건물을 지을 땅부터 확보해야 하니 말이다.
여객터미널과 부속 시설들의 공사는 1996년쯤부터 시작됐다. 참고로 고속철의 경우, 1998년에야 KTX 제 1호차가 처음으로 수입돼 들어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개발 과정에서 베타테스트라는 걸 하고.. 철도 노선이 새로 개통하기 전에는 몇 달에 걸쳐 시운전을 한다.
그것처럼 인천 공항도 개항을 앞두고 모든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지, 세계 각국에서 날아오는 비행기들을 잘 처리해 내는지 테스트를 꼼꼼히 했다.

2.
그리고 인천 공항의 정식 개항 하루 전이던 2001년 3월 28일, 이때 국내의 메이저 항공사이던 대한 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은 본진을 옮기는 대공사를 벌였다.
김포에서 마지막 비행기를 띄운 뒤, 미리 싸 둔 어마어마한 양의 이삿짐들을 인천 공항으로 날랐다. 김포에 주기돼 있던 비행기들 수십 대도 인천까지 초단거리 비행을 시켜서 밤 늦게까지 차곡차곡 자가비행 탁송(?)했다.

그 비행기는 김포에서 겨우 인천을 가더라도 최단거리 직선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 규정된 항로를 따라서 안양 부근을 찍고 훨씬 더 길게 우회해서 빙빙 돌면서 갔다.
이건 지하철 개통을 앞두고 거대한 전동차들 수십 량을 반입하는 것과 비슷한 절차인데.. 이때 저기 주변을 살았던 사람들은 참 진귀한 구경을 했지 싶다. 끊임없는 비행기 소음 때문에 고생했을지도..??

이들은 트럭 1000대가 넘는 분량의 이삿짐을 나르느라 공항 고속도로 톨비만 총 7천만 원 가까이 들었고, 각 회사당 이사 비용이 수십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 어지간한 정부 기관의 지방 이전 비용에 맞먹었다.
지상조업에 쓰이는 토잉카, 소방차, 발전차, 탑승교 차량 등 온갖 특수한 중장비들도 몽땅 그렇게 탁송했다. 이런 기계류들 중에는 일반적인 공도를 주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거운 것들도 있었다. 개통한 지 얼마 안 됐던 영종대교를 살금살금 조심해서 통과해야 했다.

어제까지 김포이다가 바로 다음날부터 인천..
항공사들은 업무가 단절 없이 진행돼야 했기 때문에 모든 짐을 어차피 하루아침에 몽땅 다 옮기지도 못했다. 이사는 단계적으로 진행됐으며, 이 운송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해서 일부 물자를 날릴 것에 대비한 보험도 단단히 들었었다고 한다.

옛날에 오키나와에서는 시내 도로들을 미군정 시절의 우측통행에서 일본 본토 방식인 좌측통행으로 바꾸는 7 30 조치가 취해졌었다. 1978년 7월 29일 밤 10시부터 긴급한 소방차 경찰차 구급차를 제외한 모든 차량들의 통행이 금지됐고, 이때부터 이튿날 아침 6시까지 공무원들이 모든 공도에서 우측통행 기준의 기존 표식과 신호등을 가리고, 미리 설치해 놨던 좌측통행 표식과 신호등을 꺼내 놓은 것이다.
이것도 참 역사적인 일회성 사건인데, 김포 공항에서 인천 공항으로의 이전 역시 그에 맞먹는 엄청난 사건이었던 것 같다.

3.
인천 공항은 그렇게 여객터미널 하나로 개항한 뒤, 지난 20여 년 동안 차근차근 확장도 해 왔다.
2008년 7월에는 확장 탑승동이 하나 완공됐고, 여객터미널과 탑승동 사이를 오가는 지하 경전철이 생겼다.
원래는 이렇게 확장 탑승동을 여러 개, 최대 무려 3개까지 만드는 식으로 확장한다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그 계획이 엎어지고, 2018년 1월에는 아예 여객터미널이 하나 더 생겼다.
지금은 일반항공(= 자가용 비행기)의 취급에 특화된 제3 여객터미널을 더 만들 계획이 있다고 한다.

공항이라는 게 여객터미널과 활주로, 관제 시설만 덩그러니 만든다고 다가 아니고 안에서 돌아가는 시스템도 상상을 초월하게 복잡 정교하다.
특히 수하물을 비행기에서 출입국장까지 착오 없이 신속 정확하게 보내는 지하 컨베이어 네트워크의 길이는 이미 100수십 km에 달한다고 한다. 제2터미널이 생긴 지금은 더 길어졌지 싶다. 어지간한 택배 물류허브의 복잡도를 능가한다.

우리나라 인천 공항은 터미널 화장실이 깨끗하고 무선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프런트 엔드뿐만 아니라 이런 백 엔드까지도 우수하다고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4.
(1) 지금이야 다 지나간 일, 상관 없는 이야기가 돼 버렸지만.. 인천 공항이 완공이 임박했던 1999~2000년 즈음에는 한글 운동 단체들에서 새 공항의 이름을 '세종'이라고 지어 달라고 청원 민원을 넣고 난리를 쳤었다.
이 진영에서는 공문서 한자 혼용 반대, 영어 공용화 반대, 한글날의 국경일+공휴일 지정뿐만 아니라 세종대왕이나 조선어 학회 사건 투옥자들을 기리는 일에도 앞장서는 편이었다.
허나, 인천이라는 지명을 홍보하고 싶어하는 정치 논리 앞에서 세종은 설득력이 부족했다. 그 대신, '세종'이라는 이름은 잘 알다시피 새로 만들어지는 행정수도의 이름에 쓰이게 되었다.

(2) 1996년인가 마이클 잭슨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공연 장비들을 무려 An-225에다 싣고 방한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파괴된 비운의 비행기, 세계에서 가장 거대했던 6발 화물기)
이때는 이 비행기를 김포 공항이 차마 감당할 수 없어서 오산 공군 기지에 착륙했었다고 한다. 물론 저 사람 당사자야 여객기 일등석이건 전용기건 뭐든 타고 김포 공항에 내렸고, 화물기만 저리로 보냈다는 뜻이다.
지금이라면 둘 다 인천 공항에 얼마든지 착륙 가능했을 것이다.

(3)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북한의 VIP 내지 손님들은 다 인천 공항으로만 드나들어 왔다. 북한 사람들한테는 감히 성남 서울 공항을 보여주지 않는 게 우리나라의 방침이라고 한다. 보안· 안보 문제 때문에.

(4) 우리나라의 모든 공항들은 '한국 공항 공사' 관할이다. 그러나 인천 공항은 '인천 공항 공사'라는 별도의 운영사가 있다. 마치 서울이 다른 시· 도들과는 다른 취급을 받는 것, 강원랜드만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자국민이 출입 가능한 카지노인 것과 비슷한 모양새이다.
그래도 국내선 면세점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 공항에만 있다.

(5) 인천 공항이 생긴 덕분에 김포 공항의 청사 하나가 텅 비어서 놀면서 리모델링 대상이 됐다. 바로 그 낡고 빈 건물을 배경으로 영화 <튜브>(2003, 백 운학 감독) 초반부의 공항 총격전 씬이 촬영될 수 있었다.
원래 감독의 의도는 강남 테헤란로에서의 총격적이었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무리. 그 대신 공항이 선택된 것이다.
그 당시, 김포 공항 주변에서는 "여기 안에서 영화 촬영 중이니 총소리가 들리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안내를 하는 차량과 현수막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7/25 08:35 2024/07/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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