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매킨토시는 가히 꿈의 컴퓨터였다. 여기서 옛날이라 함은 대략 1990년대를 말한다.

그때 우리의 IBM 호환 PC는 아키텍처가 다 공개되어 있기도 했으니 ‘행정 전산망용’ 내지 ‘교육용’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국내 대기업이 로컬라이즈까지 해서(일본의 로컬라이즈 방식을 따라한 것이겠지만) 보급되고 있었다. 그러니 맥에 비해 희귀하다는 느낌이 덜했다. 그리고 이 기계는 그래픽 성능이 맥보다 훨씬 시원찮았다.

그에 비해 매킨토시는 희귀함과 화려함 그 자체였다. IBM PC가 겨우 도스 명령 프롬프트에서 16색, 256색 VGA를 논하는 동안 매킨토시 화면에서는 화려한 GUI 운영체제에다 천연색 사진 그래픽과 각종 전자 출판물 편집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듣자 하니 매킨토시 컴퓨터에는 텍스트 모드라는 게 아예 없다는데? (물론, PC에서도 텍스트 모드는 컴퓨터 켠 직후에나 잠깐 보이는 과거 유물 잉여가 된 지 오래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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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는 모 블로그.

기계의 모양을 봐도 모니터와 본체 일체형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도 다 무조건 자기네 순정만 쓰이는 게 고급스러움과 간지 그 자체였고, 웬지 지구인이 만든 물건 같지가 않은 티가 역력했다. 엘렉스 컴퓨터가 총판을 맡던 시절에, 매킨토시는 가격도 억소리 나게 크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딱히 전자출판· 그래픽 분야 종사자나 유학파 얼리어답터들이 아니면 쓸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물론, 그때 컴퓨터 덕질을 안 하고 그 돈 더 모아서 서울 강남에다 집을 사 놨으면, 지금쯤 떼부자가 됐을 거라고 자조 섞인 말투로 회상하는 얼리어답터도 있다고 카더라)

매킨토시 진영은 서비스 구리고 하위 호환성에 자비심 없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윈텔’ 진영과는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MS 윈도우야 API의 하위 호환성은 정말 경악스러울 정도이고, x86 아키텍처 자체도 호환성에 목숨 거느라 그 지저분함이 말도 못 할 수준이지 않던가.

그런데, 그 간지 최강 귀족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맥 OS도, X 이전의 클래식 버전은 사실 선점형 멀티스레딩도 없이 기술적으로는 윈도우 95보다도 뒤쳐진 물건이었다고 한다.
하긴, 어렸을 땐 난 시커먼 도스 프롬프트에서 그 허접한 윈도우 3.1이 시동되는 모습만 보고도, 화려한 그래픽에 동심이 매료되고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하물며 매킨토시는 어땠을까?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매킨토시 진영의 역사상 있었던 대단히 큰 사건들을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200x년대에 굵직한 일들이 많았다.

1. 엘렉스 대신 애플 코리아가 직접 한국으로 진출 (1999)
2. 맥 OS X 출시 (2001)
3. 인텔 아키텍처 기반으로 전향 (2005-2006)
4. 아이폰의 흥행 대성공(과 국내에 드디어 시판) (2007, 2009)
(5. 그리고 아마, 잡느님의 사망. 2011)

매킨토시가 옛날에 비해서는 정말 가격도 많이 떨어지고 보급도 많이 된 건 사실이지만, 서비스의 품질은 오히려 엘렉스 시절보다도 못한 면모도 있다는 성토가 여전히 나돈다.
또한 최강의 장사꾼 기질로 한글화를 꼬박꼬박 친절하게 하는 MS 윈도우 진영과는 달리, 맥 진영은 소프트웨어의 한글화도 좀 투박한 구석이 있다. 기본 제공되는 한글 서체의 품질이 저질이라고 폭풍처럼 까여 온 것 역시 그런 맥락일 테고.

맥은 하드웨어 배경이 완전히 다르다 보니 640KB 메모리 제한이라든가 16비트/32비트 썽킹 같은 흑역사는 없다.
다만, PowerPC에서 x86으로 갈아탄 것은 워낙 여파가 너무 큰 변화이기 때문에 제작사인 애플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호환 레이어를 제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CPU 에뮬레이터인 '로제타'를 만들고, 그리고 한 프로그램 바이너리에 아예 x86 코드와 PowerPC 기계어가 같이 들어있는 Universal binary라는 포맷도 제정했다.

물론 지금은 시간이 충분히 지났기 때문에 Snow Leopard던가 Lion이던가 버전부터는 PowerPC 지원은 완전히 끊겼다. 그리고 Universal binary는 PowerPC/x86이 아니라 같은 x86 계열 안에서 32비트와 64비트 코드를 동시에 내장하기 위한 용도로 쓰이고 있다. 앞으로는 ARM과 x86(-64) 사이의 동시 지원이 필요해질 듯.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게 옛날에 MS가 윈도우 NT 시절에 제정한 Portable Executable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 아닌가 여겨진다. 당시에 윈도우 NT는 x86, PowerPC 등 다양한 CPU를 target으로 개발되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기계어 코드는 공유를 못 하더라도 동일한 헤더로 실행 파일 바이너리들을 식별하고 관리 가능하게 할 필요는 있었다. 하지만 정작 PE는 한 바이너리에 다양한 아키텍처의 기계어 코드를 한꺼번에 담는 건 지원하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지금이야 PC의 역량도 충분히 매우 발전하여, 매킨토시를 사실상 다 따라잡은 지가 오래이다. (그런 비주얼 쪽의 발전을 주도한 건 다 게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기계어까지 가상 바이트코드로 대체하려는 발칙한 시도가 가능해졌을 정도이니 컴퓨터가 얼마나 성능이 좋아진 셈인가?

그랬는데, 지금 나는 그 시절의 매킨토시보다 훨씬 더 성능이 좋은 매킨토시 노트북 PC를 아무렇지도 않게 갖고 다니며 쓰고 있고, 사실 그 기계로 맥OS보다 윈도우를 여전히 훨씬 더 많이 쓰고 지낸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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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간지 사과 무늬...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2/08/24 19:37 2012/08/2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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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yn 2012/08/24 21:50 # M/D Reply Permalink

    원래 맥은 콘솔이 딱히 없었지만....

    고 잡스옹이 복귀한 이후론 콘솔이 가장 막강한 플랫폼이 되엇죠...(베이스가 BSD 라 =_=;)


    근데 막상 쓸일이 (...)

  2. Lyn 2012/08/24 22:04 # M/D Reply Permalink

    8Mhz T.T

    계산기냐?

    1. 사무엘 2012/08/25 07:43 # M/D Permalink

      지금의 컴과 비교하면 도대체 저걸로 뭘 할 수 있겠나 싶을 정도의 말도 안 되는 구닥다리 사양인데, 가격이 20년 전 가격으로 150~200만원이면 도대체 얼마인 걸까요? (덜덜~) ^^

      그래서 오늘날은 소프트웨어들이 너무 bloat되고 컴의 자원을 활용하는 효율이 떨어졌다는 비판도 있지요.
      일리가 있는 면도 있지만, 요즘은 같은 정보를 처리해도 문자 집합의 확장으로 인해 메모리 소모가 근본적으로 늘어나기도 했고, 각종 GUI 아이콘들의 덩치도 몇 배 이상 더 커졌고, 메모리를 관리하기 위한 메모리가 많이 들기도 하기 때문에 덩치의 차이를 그냥 단순 비교만 하기는 곤란한 면이 있습니다.

  3. 주의사신 2012/08/25 09:44 # M/D Reply Permalink

    친구가 타 학과에서 받은 맥북을 들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거 보다가 "뭐야, 사과에 불도 들어와?"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1. 사무엘 2012/08/25 22:01 # M/D Permalink

      남의 맥북을 구경할 때는 완전 신기함 그 자체였는데,
      제가 큰맘 먹고 실제로 맥북을 늘 쓰기 시작하니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고, 내 노트북 PC가 원래 그랬으려니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역시 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똥 누러 갈 적 마음 다르고, 똥 누고 올 적 마음 다르듯이 정말 상대적인 것 같습니다.

  4. Lyn 2012/08/25 13:46 # M/D Reply Permalink

    이미지 차이도 컷죠...

    흑백 시절엔 1비트로 한 픽셀을 표현할수 있었지만 지금은 무려 32배가 증가한 4바이트 .. 해상도도 수십배 이상 늘었구 ...

    1. 사무엘 2012/08/25 22:01 # M/D Permalink

      그래서 이제는 아이콘도 트루컬러에서는 압축을 안 하면 용량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png 이미지의 컨테이너 역할이 추가되었지요.
      그런 것 하나하나가 운영체제나 소프트웨어의 시스템 요구사항을 크게 늘렸습니다.
      1비트에서 32비트가 되고 화면 해상도까지 올라갔으니 요즘 소프트웨어들은 같은 일을 해도 과거보다 수십/수백 배의 메모리가 더 필요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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