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할 때는 절대로 남 따위와 비교하지 말고 성경과 비교하고 하나님의 법과 '절대적인 잣대로' 비교한다.
그 반면, 위의 권위와 위정자에 대해서는 “이게 그나마 불신자가 불신자를 통제하고 죄의 결과를 제어하려는 최선의 방법이구나. 비록 멍청하거나 사악하거나 혹은 둘 다일 때도 왕왕 있지만, 이거라도 없으면 세상은 더 망가질 수밖에 없으니, 내 신앙을 가로막는 것만 아니면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고 순종해야지”라는 '상대적인 잣대'로 접근하면 된다.

이 생각이 딱 정립돼 있으면 정신 건강에 여러 모로 좋다.
큰 절대악에 대해서는 절대 침묵하고서 불가피한 필요악의 작은 폐해만 자꾸 부각시키면서 없애고 뒤집어엎자고 드는 선동질, 반골 기질, 쓸데없는 세상 비관과 피해의식, 하나님보다 더 자비로운 인권 드립, 그리고 인간의 죄성상 절대로 가능하지 않은 사회 제도가 존재 가능하다고 속삭이는 속임수 등등에 넘어갈 일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저건 전부 성경과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내가 가끔 정치색 띤 글을 쓰는 건(특히 종북들 까는) 전부 이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아이템들로 한정해서이다.

2.
신약 성경에 나온 긍정적인 얘기들, 대표적으로 빌 4:13 (나를 강하게 하는 그리스도), 롬 8:28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 같은 것들은...
쉽게 말해 너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환경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예수님을 닮고 그분의 열매를 맺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얘기다. 세상적으로는 오히려 바보 되고 손해 보더라도 말이다. 빌 4장 전후 문맥을 보면 아주 쉽게 유추 가능한 얘기임. 무슨 예수 버프를 받아서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내 야망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얘기가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롬 8:28도 당신이 육신적으로 절대로 원하지 않는 중간 과정과 결말을 다 포함할 수도 있는 얘기다. 신약 성경은 단순히 “차카게 살자” 수준을 넘어서 흔한 통념보다 굉장히 영적이고 고차원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가 무엇인지, 그런 문맥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요한복음을 읽을 때쯤부터 미리 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도 “제발 복 좀 주시옵소서”에 앞서 “우리가 이미 받은 복이 얼마나 큰지부터 알 수 있는 안목을 주시옵소서” 기도부터 먼저 한 에베소서 1장의 바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신약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 이상한 은사주의 기복 신앙 같은 데에 빠질래야 빠질 수가 없다.

3.
신구약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는 인간의 구원이나 크리스천의 양육 같은 게 아니다. 겨우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기에는 성경엔 나머지 잉여스러운 내용이 분량이 너무 많고 그쪽 묘사들이 “쓸데없이 고퀄”이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초림보다 재림 예언이 더 많고, 이뤄진 예언보다 아직 안 이뤄진 예언이 더 많이 적혀 있다. 특히 이스라엘, 유대인의 문자적인 회복을 거듭해서 강조한다. 이 이스라엘과 유대인이 문자적인 이스라엘과 유대인이 아니라고 가르치거나 교회가 유대인을 대체했다거나 영적 유대인 드립 친다거나, “예수님을 죽인 나쁜 민족” 운운하면서 반유대주의를 조장한다거나, 14만 4천 명이 자기 교단이라고 가르치는 것들은 전부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 이단 교리다. 그런 데서는 당장 떠나고 나오시라.

성경 내용을 영적으로 적용하더라도,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읽히는 문자적 1차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는 하고서 “그 다음에” 내 개인에게 유익이 될 수 있는 영적 교훈을 찾아야 한다. 도대체 어느 문맥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고 어디서 “원수를 사랑하고 왼뺨 맞으면 오른뺨도 대라”가 적용되는지를 제대로 분간할 줄만 알아도 최하 95%가 넘는 이단에는 안 빠질 수 있으며, 성경 읽는 기본 자세의 반은 마스터한 게 아닐까 싶다.

4.
세상에 복음과 구원 말고 공짜란 없다. 어디 하나가 공짜라면 다른 한쪽에서는 반드시 바가지나 착취나 희생이 존재한다. 아니, 구원이라는 공짜마저도 예수님의 보혈 덕분에 가능한 것이니 거시적으로는 공짜가 아닌 셈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인이 예전에 경제관 쪽으로 글을 쓴 적이 있고 성경 교리 쪽으로도 글을 길게 쓴 적이 있다. 중요한 주제이니 관련 글을 반드시 참고하시라.

5.
크리스천의 윤리관은 그야말로 완전 보수 수구 꼴통급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역시 예전 글을 참고하시라.
그리고 역시 위의 예전 글에서 언급한 내용이다만, 크리스천은 이 세상에서 사는 게 끝이 아니라는 걸 알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 죽은 자에 대한 각종 이상한 미신(귀신 따위), 필요 이상의 신세 한탄, 트라우마, '천추의 한' 같은 게 (일단은) 없다. 이것도 사람의 멘탈을 굉장히 건전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가치관이다.

6.
끝으로..
요즘 같은 세상에서 성경대로 살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신이 대체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구심이 드는가?
예수 믿느라 나 혼자만 잔뜩 손해 보고 생존 경쟁에서 뒤쳐지고 부당한 일,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한다는 생각이 드는가? 도대체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고 어떻게 살라는 건지 감이 안 오는가?
내가 인간적인 논리를 동원해서 그 질문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을 줄 수는 없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마냥 동네북, 호구처럼 로봇처럼 살라는 말도 당연히 절대 아니다. 다만 난 이런 말은 해 줄 수 있다.

먼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정말로 필요한 구원 조건, 하나님을 찾는 통로로.. 인간의 다른 그 어떤 스펙이나 외모, 능력도 모조리 제끼고.. 제일 하찮고 나약하고 바보 같아 보이는 '믿음'이라는 것만을 남겨 놓았다는 것이다. 이걸 기회로 삼아야 한다.

왜 하나님이 세상을 그런 원리로 만들어 놓았는지 제대로 이해는 못 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로 공평해야 하는 것은 진짜 공평하게 돌아가게 해 놓으셨다.
그게 아니라면, 당신보다 더 잘났고 더 똑똑하고 더 부유한 사람들이 진작에 하나님을 당신보다 먼저 만났을 것이며 게임 다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데 필요한 그 수단을 인간에게 너무 불공평하게 배분해 놓으신 하나님이 불공평하고 잘못된 꼴이 된다. 다른 능력자들이 다 안 믿을 때 당신이 믿어야 인생의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부당한 일, 억울한 일이라고?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악한 카인을 벌을 내려 일찌감치 죽여 버린 게 아니라 반대로 의인 아벨이 카인에게 살해당하는 걸 허락하실 때부터.. 애초에 그 시절부터 불공평하기 시작했다. 저건 전혀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예수님의 죽으심 사건도 얼마나 추악하고 황당무계한 비리와 부조리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는지 역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조차 그 악한 시스템을 한시적으로나마 인정하고 그 시스템을 역이용하여 자기 구원의 사역을 수행하셨으니 우리 역시 너무 피해의식 갖지 말자.

또한 우리의 모든 마음속 생각과 일거수일투족이 다 훗날 심판석 앞에서 회계보고가 될 텐데, 정산되지 않고 숨겨진 죄가 드러나서 하나님 앞에서 쪽팔림을 당하는 것만큼이나.. 그렇게 의로운 행실 때문에 손해 보고 부당함과 고난을 당한 것도 “똑같은 맥락으로” 그때 다 드러나서 보상받는 날이 온다는 걸 생각해 보자. 그거.. 영구적인 손해가 절대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란 건 아Q 같은 근자감 정신승리법이 아니다. 영적 배후가 걸린 각종 문제들은.. 그 문제 자체가 물리적으로 제거됨으로써 해결되기보다는
내가 문제를 바라보는 발상을 바꾸고 안목을 바꿔서 성경이 약속한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평강(빌 4:7)을 얻음으로써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욥기만 봐도 하나님은 욥의 고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안 하셨지만 욥이 알아서 데꿀멍하게 된 것이다.

또한 악한 마귀의 통치하에 있는 현 세상은.. 사람이 그 믿음을 행사를 못 하게 시스템을 착착 만들어 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령 충만한 크리스천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이상한 사람들, 잘못 믿고 성경을 잘못 적용하는 사람들의 바보짓, 병크를 잔뜩 부각시키면서 이래서 종교에는 너무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영적으로 연약한 사람들의 믿음을 파괴한다. 하나님의 뜻을 오· 남용하는 것, 교회와 유대인을 구분 못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
이러니 바른 성경 원천을 토대로 바른 믿음을 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게 오늘날의 모습이다.

“저런 사람이 믿는 예수라면 나도 한번 믿어 보고 싶다” 정도의 엄청난 선한 간증이 있는 크리스천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런 평판은 나조차도 감당 못 하며 기대 안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괴감 가질 필요도 없고,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내 힘으로 이를 악물고 뭔가 엄청난 극기과 선행과 고행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더욱 없다.

난 딱 하나가 목표이다. 오로지 교리만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전해서, 누가 그걸 안 믿고 반대하더라도 뭐가 기독교인지 정확하게 알긴 하고서 제대로 반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안 믿을 권리는 있어도, 기독교가 아닌 걸 기독교라고 주장할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굳이 긍정적인 변화가 아니더라도 부정적인 편견을 막는 것도 인정받는 것 맞다.

나일롱 신자인 건 하나님 앞에서 겸손도 아니고 자랑도 아니다. 교회사에 등장하는 순교자나 각종 '성인'(?)들의 행적이 자기와는 완전 별개 딴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성경이 압수되고 성도들이 화형을 당하던 시대에 치러지던 영적 전쟁이 있고, 성경이라 불리는 물건이 넘쳐나지만 그게 죄다 변개되는 오늘날 같은 시대에 치러지는 영적 전쟁도 따로 있다. 난 그걸 추구하며 지낸다.

Posted by 사무엘

2014/06/18 08:33 2014/06/1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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