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들의 잉여질

* 오~ 굉장히 오랜만에 천문 분야에 짤막한 글을 하나 올리게 됐다.

1. 지구의 자전을 따라가며 관측한 최장시간 개기 일식 (콩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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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6월 30일, 로스 앨러모스 국립 연구소 소속의 과학자들은 그 당시 최첨단 기술의 산물이요, 운임도 상상을 초월하게 비쌌던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를 전세 냈다. 그리고 그걸 타고 공중에서 개기 일식을 관측했다. (공교롭게도 과학자들의 국적이 미· 영· 프여서 콩코드 개발사의 국적과도 일치했었음)

콩코드는 극심한 공기 저항을 뚫고 무리하게 고속을 추구하느라 연료 소모가 너무 심했으며, 비행 후에 기체의 유지보수 비용도 많이 들었다. 그런 주제에 승객은 100여 명 남짓밖에 못 태웠으니, 1인당 운임은 기존 아음속 여객기의 1등석 이상으로 비싸질 수밖에 없었다.

낮은 연비로 인해 항속거리도 짧은지라, 콩코드는 대서양은 건너도 태평양은 직항으로 횡단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콩코드가 취항했다면, 1990년대 이전처럼 끽해야 괌 내지 앵커리지 정도나 가지, 뉴욕이나 LA까지 곧장 갈 수 없었다. (콩코드 여객기가 마케팅 홍보 차원에서 지난 1976년 11월 9~10일엔 우리나라도 방문해서 김포 공항에 착륙한 적이 있었음.. ㄲㄲ)

허나, 마하 2라는 속도는 압도적인 매력이기도 했다. 전투기의 속도로 비행하는 여객기라니.. 얘는 적도에서의 지구 자전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날 수 있었다. 자전 방향을 거슬러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날아가면, 서쪽으로 넘어가던 해가 도로 거슬러 올라오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천문학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지표면에서는 지구의 자전 때문에 개기일식을 겨우 몇 분 동안밖에 볼 수 없는 반면, 저 콩코드 여객기 안에서 우리도 지구의 자전을 거슬러서 계속 같은(?) 지점에 있으면 일식을 더 오래 관측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콩코드 여객기를 빌려서 각종 관측 장비들을 실었다. 이 콩코드는 무슨 관광버스.. 아니, 관광기 노릇을 하면서 평소에 여객용으로 전혀 다니지 않던 적도 부근의 인도양-아프리카-대서양 구간을 날았다. 과학자들은 콩코드 특유의 그 자그마한 창문을 통해 개기일식을 무려 74분 동안 관측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는 석유 파동이 아직 발생하기 전이고 기름값이 아주 쌌기 때문에 이런 덕질 돈지랄도 할 수 있었다.

2. 태양계 밖에서 지구를 바라본 모습 (보이저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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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태양계 외행성 탐사선인 보이저 1호가 무려 해왕성을 통과하고도 1년이 더 지났던 1990년 2월 14일에 찍은 사진이다.
인류가 만든 물건 중에서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놈이 바로 보이저 1호인데, 얘는 그에 걸맞게 세상 만물 중에 지구를 가장 멀리서 보고 찍은 사진을 전해 준 것이다.

1969년, 아폴로 8호가 지구를 찍은 “Earthrise(지구돋이)”라는 사진이 매우 유명하듯, 보이저 1호가 찍은 저 사진은 “The Pale Blue Dot(희미하고 푸르스름한 점)”이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탔다.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터전도 우주라는 거시세계에서는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한지를 일깨우는 매우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이 사진은 NASA의 보이저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던 유명 천문학자 겸 과학 저술가인 ‘칼 세이건’의 적극적인 제안 덕분에 찍힐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지구와 보이저 호는 이미 60억 km가량이나 떨어져 있었으며, 신호를 보내는 데만 5시간이 넘는 상태였다. 지상 기지에서 실시간으로 카메라 영상을 확인하고 렌즈의 위치를 바꾸는 기동 따위는 가능하지 않았다. 사용 가능한 자원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으니, 그 어떤 지시를 내리더라도 절대적으로 신중해야 했다.

그 와중에 미지의 세계인 태양계의 바깥을 하나라도 더 촬영해도 모자랄 판에, 반대로 지구가 있는 뒤쪽을 촬영하는 건 리스크가 컸다. 태양 쪽을 향해서 카메라를 잘못 구동하다가 기기를 망가뜨릴 수도 있었다. 이건 한가로운 덕질 잉여질처럼 비쳐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저 사진은 별 문제 없이 찍힐 수 있었다. 칼 세이건의 제안 덕분에 인류는 지구를 저렇게 멀리서 찍은 진귀한 사진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도 보이저 2호가 전해 준 천왕성이나 해왕성 사진 만만찮게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그리고 칼 세이건은 마냥 비현실 감상적 낭만적인 과학 덕후인 건 아니었다. 과학 분야의 행정가로서 국민 세금 아까운 줄도 알았으며, 무리한 유인 달 탐사의 반복에 대해서는 오히려 반대 소신이었다. 유인 달 탐사를 한 번 할 비용으로 무인 달 탐사는 n번씩 하면서 더 많은 발견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이저 1호에 장착되었던 카메라는 저 사진의 촬영을 끝으로 영구봉인되었다고 한다.
사실, 얘는 발사된 지 무려 40년이 넘었고, 이제 언제 교신이 끊기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노인학대 상태이긴 하다. 그나마 이렇게 오래 교신이 가능한 건 태양광이 아니라 물질 그 자체로부터 초월적인 에너지를 내는 원자력 전지 덕분이다.

3. 텅 빈 우주 공간에 찍힌 은하들의 모습 (허블 우주 망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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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 우주 망원경’이라고.. 인공위성 형태인데 여느 첩보· 통신 위성들처럼 지구 쪽을 촬영하는 게 아니라, 우주를 촬영해서 영상을 보내 주는 ‘이동식 천문대’가 있다.
얘는 1990년 4월 말에야 발사돼서 활동을 시작했으니, 아까 그 보이저의 지구 사진과 등장 시기가 비슷하다.

지구에서 우주를 관측하는 건 낮과 밤, 구름과 날씨, 대기에 의한 산란, 주변의 각종 불빛 때문에 애로사항이 매우 많다. 오죽하면 도시에서는 이제 별도 거의 볼 수 없는 지경이 됐을 정도이다. 천문대를 도심과 최대한 떨어진 오지의 산꼭대기에다 건설해 보지만, 이것도 사진의 품질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보통 이공계에서 공기가 방해물로 작용하는 건 십중팔구 운동하는 물체에 대한 ‘공기의 저항’이다. 극한의 고속을 다루는 항공 우주 공학에서는 열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저항이 극심해진다. 그런데 천체 관측은 물체의 운동과는 전혀 무관하면서 지구 대기의 방해를 받는 영역이라는 것이 참 흥미롭다.

하긴, 물은 아무리 티없이 맑고 투명하더라도 일정 깊이 이상이 되면 빛조차 전혀 들어오지 않게 되니.. 유체는 빛의 진행 속도를 느리게 하고 진행 방향을 바꾸고, 더 나아가 빛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긴 해 보인다.

그런데 아예 지구 대기권의 밖에서.. 우주에서 우주를 관측하면 저런 한계를 전혀 받지 않으면서 지구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품질의 관측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그 반면, 단점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

이거 뭐 일반 야구장과 ‘돔 구장’의 차이가 문득 떠오른다. 후자도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야구 경기가 안정적으로 열리게 해 주지만, 건설과 유지보수 비용이 정말 살인적이라는 점에서 약간 비슷한 관계인 것 같다.

허블 우주 망원경은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수천억~조 단위의 예산이 투입되어 개발되고 발사됐다. 하지만 얘는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 워낙 압도적이고 탁월하기 때문에 전세계의 천문학자들이 한 번쯤 사용해 보고 싶어하는 로망의 대상이 됐다. NASA에서는 세계로부터 들어온 관측 신청서들을 검토한 뒤, 1년 단위로 망원경 운영 스케줄을 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 1995년에 ‘로버트 윌리엄스’라는 천문학자는 예약이 꽉 찬 그 비싸고 귀한 허블 우주 망원경을 이용해서 특정 천체나 은하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우주 공간을 쭉 zoom 당겨서 찍어 보면 어떨지 제안했다.

이건 아무 성과 없이 망원경의 막대한 운영 비용만 날리는 돈지랄로 끝날 수도 있는 도박 모험이었다. 더구나 극도로 어두운 우주에서의 촬영은 무슨 지구에서 셀카 찍듯이 찰칵 한 번으로 금방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최하 며칠 이상씩 노출을 하며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이 제안은 가성비가 거센 찬반 논쟁의 대상이 됐지만.. 그래도 끝내는 승인되어 촬영이 시행되었다. 그런데 결과물을 들여다보니, 성경에 나오는 “깊은 데로 그물을 던져라” 같은 이변이 벌어졌다.
사진에는 무려 3천 개에 달하는 은하들의 모습이 담겼다~! 이 사진은 “Hubble Deep Field”라는 이름이 붙어서 세계의 천문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우주라는 건 저기뿐만 아니라 아무 데나 대고 촬영해도 별, 아니 은하들이 우리가 차마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깔린 거시세계였던 것이다.
저 사진은 인류가 까마득히 가장 먼 지점을 관측한 결과물이라는 기록을 수립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31 08:36 2021/12/3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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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후 사진

19세기에 카메라와 사진이라는 물건은 정말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비록 흑백이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인물이나 풍경을 보이는 그대로 화가보다 훨씬 더 신속 정확하게 종이에 담아서 영구적인 기록으로 남겨 줬으니 말이다.

사진을 번쩍 찍히면 자기 혼이 빠져나가는 줄로 알고 무서워한 사람도 있었다.
자기 원래 모습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데 하물며 X선을 발견해서 자기 손의 생뼈 사진을 인류 최초로 관찰한 물리학자 뢴트겐은 어떤 심정이었을지.. 이런 생각도 같이 하게 된다.

그리고 혼이 빠져나갈까 봐 두렵다면.. 발상을 전환하여 이미 혼이 빠져나가 있는 사람, 다시 말해 시체의 사진을 찍는 건 어떨까?
지금으로서는 정말 믿거나 수긍하기 어렵지만,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 사이.. 유식한 용어로 '빅토리아 여왕' 시절 / 벨 에포크 시절엔 유럽과 미국 일대에서 가족의 ‘사후 사진’이라는 걸 찍어서 남기는 게 유행이었다.

천수를 누리고 죽은 사람 말고, 병이나 사건· 사고로 일찍 죽은 가족의 모습을 사진으로라도 찍어서 남기는 것이다. 특히 아기 말이다. 이거 무슨 영정 사진도 아니고 참..;;
그나마도 예전에는 화가를 불러서 초상화를 그리던 것이 사진으로 더 간편하게 바뀐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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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시신이 부패하기 전에 최대한 어서 찍어야 했다.
시신에다가는 최대한 멋지고 근사한 옷을 입혔으며, 곤히 잠들었거나 의자에 앉아 쉬는 포즈를 만들었다. 아니면 시신의 사지를 붙드는 장치를 연결해서 억지로라도 기립해 있는 모습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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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눈은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자는 포즈가 아닌 사진이라면 사진사나 화가가 사진에다가 떠진 눈을 인위로 그려 넣었다.;; 그 시절엔 컴퓨터나 포토샵 같은 도구가 없었으니, 이건 물감과 붓을 동원한 수작업이었다. 그나마 사진이 흑백이니까 이런 장난질이 그리 어렵지 않게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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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너무 노골적으로 시체 느낌이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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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의 맨 뒤(왼쪽), 선 채로 눈을 감고 있는 저 막내 꼬마 여자아이는 귀신...이 아니라 죽은 상태이다. 언니 오빠들은 시체와 나란히 줄 서서 몇 분간 부동자세로 가족 사진을 찍었다. (☞ 더 많은 사례들)

2. 시체 공시소

역시 비슷한 시기인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프랑스에서는 ‘시체 공시소’라는 걸 운영했다.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시신을 공개적으로 진열해 놓고, 이 사람의 연고자 내지 유족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러니 이건 행방불명자의 유족에게 시신이라도 찾아 준다는 좋은 목적과 선한 의도로 만들어진 시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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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나 드나들면서 생판 모르는 사람의 시체들을 열람할 수 있다 보니, 여기는 엄근진한 곳이 아니라 무슨 ‘인체의 신비전’ 같은 엽기 관광 명소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친인척 중에 실종자가 딱히 없는 사람들도 어중이떠중이가 다 저기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시신에게 이상한 옷을 입혀 분장도 시켜서 구경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누구나 무료 관람 가능하던 곳이 나중에는 입장료까지 징수하게 됐다.

1900년대 초는 아직 제국주의에 인종 차별주의와(백인 우월, 인종 박람회..) 우생학까지 쩔던 시절이지 않았던가.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중국 같은 동양인의 시체까지 수입해서 일부러 전시했다고 하는데.. 그때는 지금 같은 냉동 기술도 없었을 텐데 시체를 장시간· 장거리 운송하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은 했나 모르겠다... (검색을 해 보니 기초적인 냉장 기술은 개발됐었다고 함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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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시체 공시소가 의외의 기여를 한 분야는 범죄 수사이기도 했다고 한다.
범죄 용의자를 여기 데리고 와서 밝은 전등 아래의 피해자의 시체를 직접 대면시키고는 "이 사람 정말 니가 죽인 거 아니야?"라고 취조하면.. 어지간한 범죄자는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죄를 자백했다고 한다. 오~~ 고문이나 가혹행위도 아니고.. 꽤 괜찮은데??

이런 사례들을 보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먼저, 기술적인 배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 시절 카메라는 노출 시간이 수 분대로 길어서 피사체는 그동안 꼼짝없이 부동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흔들려서 망가진 사진을 보지 않으려면 말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오랫동안 가만히 있기가 몹시 어려운 반면, 시체는 그런 제약이 없다. 그러니 사후 사진이라는 발상을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옛날 시대상을 떠올려 보자. 전쟁, 기근, 질병, 높은 유아 사망률, 지금보다 더 잔인한 형벌(공개 처형, 부관참시 시체 훼손, 능지형), 더 폭력적인 사회 관행(툭하면 싸움질, 결투, 석전, 주취 가정 폭력, 애들한테 가혹한 체벌..)..

그러니 옛날에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흔했으며, 길거리에서 사람 시체를 구경하는 것도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무연고 거지나 '행려병자' 같은 것도 훨씬 더 쉽게 볼 수 있지 않았던가?
(행려병자라고 하니 말이 좀 어려운데, '행려'를 순서를 뒤집어서 '여행'으로 바꾸면 뜻이 바로 와 닿을 것이다.)

옛날엔 사람들이 멘탈이나 비위 같은 것도 지금 현대인보다 더 억세고 강해야만 했다. 분위기가 그랬으니 저런 관행도 존재 가능했던 것이지 싶다. 비록 후대에 전시의 특수한 상황이긴 했지만, 일본군 두개골을 군 복무 중인 남친이 여친에게 선물로 보냈던 사례도 있었음을 생각해 보자.

아울러, 그 시절에는 지금 같은 인터넷이 없고 컴퓨터 게임이 없고 여가나 유흥 시설, 볼거리들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빈약했다.
오죽했으면 19세기 말에 미국 어딘가에서는 사막 벌판에서 육중한 증기 기관차 두 대를 마주보고 정면충돌시키는 캐막장 잉여 쑈를 기획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ㄲㄲㄲㄲ (그랬는데 보일러가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금속 파편이 저 멀리 관중석까지 날아가는 바람에 인명 사고가 발생하고.. 이 쑈는 흑역사로 묻혀 버림)

이런 시대 정황까지 추가로 고려해 보면, 옛날에는 공개 사형 집행이 얼마나 흥미로운 구경거리였을지도 수긍이 간다. 하물며 능지형 정도 되면 초특급 쑈 그 자체라 하겠다.
그 시절에 컬러 카메라나 유튜브 같은 게 없었던 게 다행이다. 그런 게 있었다면 사람 공개 처형 장면 동영상은 ISIL이니 탈레반이니 하는 또라이들이나 올리는 게 아니라 영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 문명국에서도 올라오게 됐을 테니 말이다.

이 사람들은 무슨 사후 세계를 믿지 않고 시체를 아무렇게나 다루는 티베트인이 아니며, 시체 갖고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변태 야만인이 아니었다. 엄연히 기독교 배경이 있는 열강 강대국에서도 이런 관행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후 사진이나 공개 시체 공시소 같은 게 민망한 짓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1차 세계 대전을 겪은 뒤부터였다고 한다. 미개인이 아니라 유럽 백인 자기들까지 기관총 대량 학살 시체 더미의 쓴맛을 제대로 봤으니까.. 전간기와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이런 관행은 완전히 사라졌다.

뭐,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07년에 수원 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에서 이례적으로 피해자 시신의 얼굴을 공개했던 적이 있다. 피해자의 신원을 도저히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핏기없고 섬뜩한 인상인데.. 그래도 실제 피해자의 부모가 그 얼굴을 알아본 덕분에 연고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사건의 경우, 기껏 잡았던 가해자는 답정너 강압 수사로 인한 거짓 자백 정황이 드러났다. 결국은 이전 판결이 무죄로 뒤집히고 리셋돼 버렸지만 진범은 끝내 잡히지 않은 채로 수사가 씁쓸하게 종결돼 버렸다.
애초에 피해자는 껌 씹는 날라리 일진 양아치 가출 소녀가 아니었다. 정신장애가 있고 채팅에서 만난 다른 양아치들한테 낚여서 따라 나섰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는데.. 처음에 수사 방향을 잘못 잡은 채로 삽질하다 시간을 날리는 바람에 진범 잡을 기회도 놓친 것으로 보인다.

그 뒤로 이렇게 실종자 시신의 얼굴 공개 사례가 국내에서 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더 옛날에 1997년 언젠가 <경찰청 사람들> 다큐에서도 실종된 범죄 피해자를 찾는다고 무려 토막 살해 시신의 얼굴을 그대로 내보낸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이건 좀 무리수였다.

뭐 피투성이였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끔찍한 몰골은 시청자들을 OME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결정적으로 죽은 시체의 인상은 살아 생전의 모습과 차이가 커서 사람을 찾는 데 별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이 시신도 훗날 다행히 신원이 확인되긴 했지만.. 이 비주얼 단서가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서 된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옛날 사람들과 달리 생사람의 시체를 전혀에 가깝게 볼 일 없이 평화롭게 지내는 것은 여러 요인들 덕분이라 하겠다. 과학 기술의 발전, 그에 걸맞게 발달한 의료 보건 위생 여건과 치안 복지, 정치적 안정, 그리고 인권 의식의 향상까지 말이다. 일상 생활에서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의 교통사고나 대형 안전 사고를 목격하게 될 수는 있지만 그건 뭐.. 평범한 일반인에게는 로또급 확률의 이벤트일 것이다.

그러니 현대인들은 현실이 아니라 영화와 게임에서나 사람이 죽는 장면과 각종 시체들을 실컷 보며 지낸다. 이런 건 실제 사람이 죽거나 죽은 장면이 아니니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결정적으로 이런 건 비주얼이 현실의 그것만치 흉측하지도 않다.

끝으로, 미국에는 통상적인 의대 해부 실습 용도가 아니라.. 법의학 연구 목적으로 기증받은 시신들을 잔뜩 모은 ‘시체 농장’이라는 것도 있다는 걸 언급하며 글을 맺겠다. 대표적으로 테네시 대학교 인류학 연구소 말이다. 이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까지도 잘 돌아가고 있는 시설이다.

여기서는 다양한 여건 하에서 시체가 부패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시간대별로 시체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부풀어오름, 벌레 꼬임, 무슨 무슨 색깔로 변함..) 정말 꼼꼼히 기록해서 수십 년 동안 데이터로 축적했다. 그냥 벌판에 널부러진 시신, 물에 던져진 시신, 여행 가방에 밀봉된 시신, 콘크리트로 공구리 쳐진 시신 같은 이런 상태 차이도 있고, 여름과 겨울, 눈과 비 같은 날씨 차이도 있고.. 토막(;;)났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까지.. 변수가 한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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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 곳... 부지가 넓으니 시체를 꽁꽁 숨겨 놓고는 경찰견의 탐지 훈련을 실시하기도 한다.

여기서 축적된 방대한 실험 데이터 덕분에, 범죄 현장에서 피해자의 사망 시각과 사망 원인을 정확하게 알아 맞혀서 단서를 얻고 해결한 사건이 지금까지 적지 않았다.
단, 시체라는 민감하고 특수한 기자재를 잔뜩 다루는 시설인 만큼, 여기도 의대 해부 실습에 준하는 군기와 보안, 윤리 정책이 적용된다. 근무자는 시신 기증자와 당사자에 대해 감사의 묵념을 빠뜨리지 않으며, 보안 서약을 한 정직원이나 허가 받은 기자 말고 일반인은 절대로 출입 금지, 내부 사진 유출 절대 금지 정도는 기본이다.

더구나 여기는 사망 원인이 밝혀진 고인에 대해서 유족이 명시적으로 기증 의사를 밝힌 시신만을 접수한다. 그러니 신원 미상 시신을 대중에게 아무렇게나 전시하고 분장(!!)까지 시켰던 옛날 프랑스 시체 공시소와는 분위기가 180도 극과 극으로 다르다고 보면 된다.

다만, 장례 비용마저 부담되는 가난한 사람들이 무작정 여기로 시신을 보내 버리는 사례가 많아져서 여기도 시신 접수 조건을 좀 더 강화했다고 전해진다. 흠.. 그럼 그냥 의대 해부 실습용으로 시신을 기증해도 될 텐데? 거기는 시신이 언제나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시체 관련 추가적인 이야기들

(1) 오늘날 지구를 누비는 여객기에도 죽은 사람을 실은 관이 수하물로 알음알음 몰래 같이 운구되는 게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2) 1993년 서해훼리 호 침몰 당시엔 언론에서 해저에서 인양 중인 시신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내보낸 적이 있었다. (의도적인 노출보다는 별 생각 없이 카메라를 잠깐 비췄던 게 전파를 탔..)
그것도 그렇고 위의 저 사진도 그렇고, 노숙 소녀 시신 얼굴도 그렇고, 등산가 조지 맬러리의 오래된 시신 같은 것도 보면.. 시신은 부패해서 본격적으로 보기 흉해지기 전에는 핏기가 빠져서 공통적으로 정말 하얗게 변하기는 하는 것 같다.

(3) 사람이건 동물이건 시체가 생기면 시체를 뜯어먹는 동물과 곤충, 아니면 부패· 분해시키는 미생물과 세균이 앞다퉈서 그 시체를 접수해 버린다. 그런데 송장벌레는 비록 시체를 파먹을 목적이긴 하지만 그걸 땅에 파묻어서 보이지 않게 해 주기도 한다니 참 오묘한 노릇이다.
뭐, 일개 곤충이 중장비나 삽질 같은 속도와 효율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얘들은 신이 자연에다 마련해 준 시체 처리반 장의사나 다름없다.;;

(4) 죽은 시체에 옷을 인위로 입히거나 벗기는 건 생각보다 꽤 힘든 일이다~! 특히 크고 무거운 성인 남성의 시신이라면 더욱 말이다. 범죄 현장에서 정황상 사망자가 원래부터 이 옷을 입고 있었는지, 아니면 사후에 옷이 벗겨지거나 바뀌었는지도 어지간하면 판별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집어넣기 전에 샤워 드립을 괜히 쳤던 게 아니다. 피해자들이 스스로 자기 옷을 벗고 개어 놓음으로써 일 처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28 08:33 2021/12/2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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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셋 한글 입력기 10.4

2021년 하반기는.. 호박에 멧돼지에, 여친으로...
내 관심사가 너무 분산되는 바람에, 정작 직장은 그리 심하게 바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글 입력기의 개발 속도는 역대 최저를 찍었다.

그래서 반 년 만에.. 한 해의 끝을 앞두고서야 날개셋 한글 입력기 다음 버전이 나왔다. 타자연습은 변화 사항이 없으며, 바이너리 호환성도 동일하다.
지난 8월 이후로 새로 추가되거나 바뀌고 개선된 사항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Windows 11 지원

가장 먼저.. 시대가 시대이니 새 버전은 Windows 11을 정식 지원한다. 이 버전에서만 날개셋 편집기에서 발생하는 자잘한 오동작/glitch를 좀 해결했다.
그런데 11도 API를 호출해서 얻는 내부 버전 번호는 여전히 10의 연장선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레지스트리를 뒤지는 비공식 야메 방법을 동원하지 않으면 10과 11을 구분할 방법이 없다. 마소에서 버전 관리를 왜 이렇게 지저분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1) 편집기: 듀얼 모니터 환경에서 프로그램 창을 최대화 시켰다가 최소화 시키고, 이걸 taskbar의 제목을 클릭해서 다시 원상복구(= 최대화) 시켰을 때.. 가끔 최대화된 창이 모니터에 꽉 차지 않고 잘못 표시되는 문제가 있어서 해결했다.
엄밀히 따지면 내 프로그램이 특이하게 동작하는 버그가 맞긴 하지만.. 기존 로직도 Windows 10까지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이상한 노릇이다.

(2) 편집기: 문서창의 테두리가 제대로 칠해지지 않고 지저분한 잔상이 남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 역시 XP 이래로 10까지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던 테두리 그리기 API가 11에서만 이상하게 오동작을 일으킨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를 회피하는 로직을 넣어야 했다.

(3) 외부 모듈: 제어판 고급 옵션에는 자신과 연결되는 키보드 드라이버를 변경하는 기능이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운영체제에 설치된 키보드 드라이버 목록이 뜨지 않고 있어서 조치를 취했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던 부분이 11에서만 동작이 좀 달라져 있었다.

2. 편집기: 블록 색깔 지정

텍스트와 배경의 색깔이 각각 (x, y)일 때 블록의 색깔을 (1) 시스템 색상(그 특유의 파란 바탕), (2) RGB 반전(~x, ~y), (3) 역할 반전(y, x) (4) 열은 시스템 색상 중 하나로 사용자가 customize할 수 있게 했다.
이전까지는 원래 배경이 시스템 색상(운영체제 표준)일 때는 블록 역시 ‘시스템 색상’이 강제 지정됐고, custom 색일 때는 언제나 RGB 반전이 강제 지정되곤 했다. 이를 수동 지정 가능하게 했으며, 그러면서 ‘역할 반전’도 같이 추가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 방식으로 계산된 블록 색깔이 모종의 이유로 인해 원래의 배경색과 너무 비슷할 수 있다. 특히 회색 배경은 RGB 반전을 시켜도 여전히 원래 배경과 비슷해서 구분이 안 간다. 이럴 때 ‘시스템 색상’이나 ‘역할 반전’을 선택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운영체제의 표준 에디트 컨트롤은 전통적으로 ‘시스템 색상’을 사용 중이며, 리치 에디트 컨트롤은 한동안 ‘RGB 반전’을 사용해 왔다. 한편으로 요즘은 시스템 색상을 약간 옅게 적용한 옅은 파랑이 블록 색깔로 유행이다. 이것들을 모두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간단한 작업만으로 프로그램의 첫인상과 사용 경험이 크게 달라질 수 있게 됐다.

3. 편집기: 나머지 자잘한 UI 변화

(1) 날개셋 편집기는 1.0 시절부터 지난 20여 년 동안 상태 표시줄에 "삽입/겹침"과 "글자/낱자"라는 구획이 있었다. 두 구획을 "삽입/겹침/[겹침]"이라고 하나로 통합했다.
ins 키와 마찬가지로 이 구획을 Shift+클릭하면 낱자 겹침 모드로 진입할 수 있다. 우클릭하면 아예 메뉴가 뜬다.
지난 10.x 버전부터 삽입/겹침 모드 전환 방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편집기와 외부 모듈이 모두 키보드/마우스까지 일치하게 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텍스트에서 블록을 잡으면 아시다시피 잡힌 영역의 색깔이 반전된다. 그런데 블록이 다음 줄에까지 계속 이어지는 경우, 앞줄은 텍스트의 실제 길이보다 한 칸 더 길게 반전된다. 텍스트가 없이 빈 줄이라도 블록에 속해 있음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줄이 바뀌는 게 진짜로 줄 바꿈 문자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화면으로 보기에만 wrap이 돼서 바뀐 것이라면 블록 영역이 한 칸 더 추가되지 않게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그림을 보면.. "초기화할", "선택하" 다음에는 블록도 더 잡혀 있지 않은 반면, "다." 다음에는 줄이 진짜로 바뀌기 때문에 블록도 한 칸 더 길게 잡혀 있다. 참고로 "관련", "알" 다음에는 진짜로 공백이 있기 때문에 블록도 이를 반영한 것이다.)

알고 보니.. 15년도 더 전, 2.x 버전의 편집기는 원래 '한 칸 추가'가 이렇게 조건부로 동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3.x부터는 웬일인지 '무조건 한 칸 추가'되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른 것이었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4. 한글 로마자 입력 빠른설정의 버그

(1) 현필 방식은 글쇠배열에 ㅡ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E+U로 ㅡ를 만드는 규칙이 지금까지 지정되지 않았다. 즉, 얘로는 중성 ㅡ와 ㅢ를 입력할 수 없었다. 이 문제를 개선했다.

(2) 코리언 라이터(KW)는 한글 로마자 입력법으로서는 꽤 특이하게도.. ㄲㄸㅆㅃㅉ 쌍자음들이 모두 단독 글쇠가 할당되어 있다. 단자음의 연타나 shift가 아니니 매우 수월하게 입력할 수 있다. 음절 경계 구분 같은 입력 로직을 간소화하기 위해 이런 설계를 했나 보다.
이 특성을 살려, KW 방식에서는 초성 쌍자음에 대한 연타 결합이 들어가지 않게 했다. ㄱ+ㄱ을 하지 말고 그냥 ㄲ을 바로 누르라는 뜻에서다. 단, 초성만 그렇고 종성 ㄲㅆ은 여전히 연타로도 입력 가능하다.

(3) 지난 9.5 버전에서는 공진청 방식이라는 템플릿이 추가됐는데, 얘는 shift를 쌍자음 입력 용도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템플릿을 골랐을 때 shift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걸 뒤늦게 발견하여 문제를 해결했다.
shift를 쌍자음 입력 용도로 사용하는 템플릿은 공진청 방식과 북한 방식 이렇게 둘이 있다.

(4) 북한 방식은 ㅒ와 ㅖ를 Shift 자리가 아니라 ㅣ+ㅐ, ㅣ+ㅔ로 입력하도록 규칙을 수정했다.
북한은 일반 국규 글쇠배열도 쌍자음은 Shift로 입력하는 반면, ㅒ와 ㅖ는 Shift 자리가 아니라 ㅑ+ㅣ, ㅕ+ㅣ 조합으로 입력하게 돼 있다. 자음은 초성 종성 구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Shift를 쓰지만, 모음은 일반 현대어와 로마자 방식 모두 의도적으로 no-shift를 추구한 것 같다. 그런데 현대어는 ㅣ가 말단에 등장하는데 로마자는 y를 의식해서인지 ㅣ가 앞에 등장한다는 차이가 있다.

한글 입력 방식은 용도랄까 성향, 이념에 따라 현대어 일반, 로마자, 옛한글.. 이렇게 크게 나뉘긴 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는 현대어 일반만으로 충분하겠지만, 한글 글쇠배열을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로마자가 유용할 것이고, 고전을 다루는 일부 계층에서는 옛한글도 필요할 것이다.

5. 복합 낱자 입력 로직 생성기

(1) 글쇠배열 정보가 업데이트되지 않는 버그
현대 한글밖에 지원하지 않는 입력 설정에다가 옛한글까지 포함된 대결합을 지정하고 로직을 생성해 보면.. 옛한글 대결합은 지금 입력 설정으로는 접근 가능하지 않아서 쓰이지 않았다는 안내문이 쭉 나타난다.

그런데 그 상태로 대화상자를 '취소'로 닫은 뒤, 글쇠배열을 옛한글 방식으로 바꾸고 나서 로직을 생성하면 이전에 발생했던 안내문이 사라지지 않고 또 나타난다.
이건 이 입력 설정으로부터 입력 가능한 낱자들 정보를 cache 형태로 저장해 둔 것이 갱신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였다. 이 버그를 고쳤다.

(2) 오토마타 연계 방식의 개선
이 빠른설정이 세팅해 주는 기능 중에는 허용 한글 범위 제약과 관련하여 오토마타 수식을 수정하는 것이 있다. 그냥 A, B, C 변수가 모두 0인 실패 상황일 때 단순히 0을 되돌리는 게 아니라 T==xx ? -3 어쩌구 하는 조건이 추가된다.

한글 입력 오토마타를 ‘이어치기’ 같은 단순한 걸 사용하고 있을 때는 고쳐야 할 지점이 명백하기 때문에 자동 수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 말고 더 복잡한 custom 오토마타를 사용할 때는 저런 수정이 정확하게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빠른설정은 custom 오토마타에 대해서는 수식을 직접 건드리지 않는다. “T==xx 등등 요런 조건을 현재 오토마타의 0번 상태 수식의 끝에다가 사용자가 수동으로 추가해 주세요”라고 안내만 하는 식으로 동작해 왔다.
하지만 이번 버전에서는 반쪽짜리 동작이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사용자에게 귀차니즘을 유발하지 않도록 말이다.

  • 오토마타의 0번 상태 수식이 A, B, C 변수를 모두 사용하고 있고 마지막이 ? : 0 으로 끝나면 그 0 부분에다가 새로운 조건이 언제나 자동으로 추가된다. 이미 T 변수를 참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구간이 통째로 바뀐다.
  • 단지, known/stock 오토마타가 아니라 custom 오토마타라면 수식이 이렇게 바뀌었으니까 맞는지 확인하라는 말만 표시해 준다.
  • 0번 상태 수식이 저런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하는 상태가 아니라면 오토마타를 통째로 제일 기본적인 이어치기 모드로 바꿔 버린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조건을 추가해 준다.

사실, 허용 한글 제약이 걸려 있는데 이어치기가 아닌 다른 복잡한 custom 오토마타를 사용할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빠른설정 차원에서 오토마타 자동 수정을 시도해 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이어치기로 강제 지정을 하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6. 수식 계산 기록

'수식 계산 기록' 도구에서 수식을 찍으면.. 이 수식의 문맥에서 쓰이는 대문자 변수의 의미가 화면 우측 하단에 같이 나타나게 했다.
날개셋 제어판에서 이 수식을 지정하는 입력란에 들어갔을 때 풍선 도움말로 표시되는 바로 그 문구이다. 그 도움말을 저 입력 도구에서도 상시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 로그에서 제일 많이 보게 될 수식은 글쇠배열, 한글 입력 오토마타, 자판 전환 세 종류를 크게 벗어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수식을 분석하고 변수값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알려진 문제: PowerPoint 2013(과 그 이후)에서는 입력 패드가 동작하지 않음

MS Office 제품 중에 TSF를 가장 먼저 지원한 프로그램은 아무래도 텍스트 입력에 제일 특화된 Word이었고, 그 다음으로 Outlook (Word 엔진 기반), Publisher, OneNote 같은 프로그램이 뒤를 이었다.
그랬는데 2013 버전부터는 PowerPoint도 내부의 텍스트 입력 엔진이 다시 만들어졌는지 TSF를 완벽히 지원하고 심지어 Word처럼 Ctrl+드래그로 블록을 여러 개 잡을 수도 있게 됐다.

덕분에 이제 파워포인트에서도 단어 단위 한글-한자 변환이 되고 bksp 달라붙기 같은 기능도 사용할 수 있게 됐는데..
그 대신 외부 모듈 말고 입력 패드는 동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에야 뒤늦게 발견했다. 문자표 같은 걸 꺼내서 문자 입력을 시도해도 아무 반응이 없다.

입력 패드는 TSF보다 훨씬 더 단순한 IME 방식으로 프로그램에다가 문자 입력을 전달한다.
파워포인트는 2010년대가 돼서야 TSF 인터페이스를 구현하다 보니, 구형 IME 인터페이스를 받아들이는 부분을 과감하게 다 삭제해 버렸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입력 패드는 근본적으로 편법으로 동작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이렇게 잘 동작하지 않는 프로그램 환경이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지, 혹은 여기는 동작하지 않는 환경이라는 걸 미리 감지라도 할 수 없는지.. 이런 것들을 차차 연구해 봐야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25 08:35 2021/12/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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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빡친 말투가 들어있음을 미리 양해 구한다. ㄲㄲㄲㄲㄲ

1. 기본적인 경제 원리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본인이 초딩 꼬꼬마이던 시절, 고향에서 다니던 교회에는 집이 꽤 부자이신 어느 중년 어르신이 계셨다. 짭짤한 임대 수입이 있는 건물주였다.
자녀는 일찌감치 외국 학교로 보냈으며, 자가용도 그 시절에 기아 콩코드를 굴리다가 현대 각그랜저로 바꾸기도 했다. 게다가 휴대전화라는 게 없던 시절에 굉장히 비싼 액세서리였던 카폰까지 차에 장착해 있었다. (내가 태어나서 모토롤라라는 기업명을 최초로 접한 게 그 카폰을 통해서..)

그분도 자동차에 관심이 많던 날 귀여워해 주시고 차를 태우고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 주셨다.
콩코드는 계기판이 디지털인 것, 그리고 그랜저는 굉장히 정숙하고 편안해서 우리집 차라면 시속 60km 정도로 달리는 수준의 소음과 진동인데 저기서는 이미 시속 100을 훌쩍 넘은 상태였다는 게 기억이 남아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뒷좌석에도 파워윈도우와 3점식 안전벨트가 있는 것, 특히 뒷좌석 중앙의 팔걸이,
핸들에 오디오 조작 스위치가 있는 것, 시속 20km 정도 넘어서면 모든 문이 자동으로 잠기는 것, ABS 브레이크..
이런 건 그 시절 본인 집의 차에는 없던 문물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나 2010년대쯤 되니.. 저것들은 당연히 모두 다 이뤄졌다.
지금은 내가 굴리는 평범한 국산 양산차, 길거리의 택시로 굴러다니는 차들이 20~30년 전의 그랜저보다 모든 면에서 더 좋은 차다. 엔진 출력도 더 뛰어나다.
단지, 이제는 1990년대의 그랜저 차주처럼 소수만 그 기술의 혜택을 입는 게 아니다. 그리고 지금의 그랜저야 성능과 스펙이 당연히 더 올라가서 격차가 벌어져 있을 뿐이다.

자.. 이게 바로 인간 사회와 문물· 문명이 발전해 온 방식이다.
모든 인간에게 사리사욕이 있음을 인정하고, 능력의 격차와 생산성의 격차, 빈부 격차를 인정해서 돈이 돈을 벌고 부자가 왕창 더 부자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동기 부여가 계속 주어져야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혁신적인 제품이 나오고 식량과 생필품의 생산이 늘어서 단가가 내려간다. 그리 돼야만 극빈자도 가난을 탈출하고 기본적인 생존이 가능해지고 최소한 중산층이라도 될 수 있게 된다.
정부의 개입은 치안 유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생존과 복지 보장, 책임감이 분산되어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지만 사회 질서를 위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치킨 레이스가 되고 공멸할 여지가 있는 경쟁에 대한 중재 같은 곳에만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한다.

인간의 그런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욕망을 더 고차원적으로 다스리는 건 종교를 통해 개인적으로 담당하게 해야 한다.
"탐욕은 우상 숭배",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 것으로 만족하라", "세상 재물 다 얻어도 니 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성경을 믿고 예수 믿고 구원받아서 성령 안에 걸으면서 개인이 자기 마음 안에서 이뤄야 하는 것들이다.

정말 FM대로 이상적인 경우라면.. 그 부자들이 역으로 당신을 보고는 "너는 별로 풍족해 보이지도 않는데 뭐가 그리 만족스럽고 고맙고 표정이 밝냐? 도대체 돈을 초월해서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지 궁금하다"라고 물을 지경이 돼야 한다! 그게 신앙의 힘이다.

이런 건 인간의 본성으로, 세상 정부 세속 시스템으로는 절대로 이룰 수 있지 않다.
세상 정치인이 저딴 걸 갖고 훈계질 선비질 하고 자기가 그걸 다 통제하고 이루겠다고 지랄하는 건 극악한 거짓 위선이요, 하나님보다 더 자비로운 짓거리이며 선의로 포장된 지옥일 뿐이다.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위선의 극치를 경험하면서 분노하곤 했다.

"꼭 강남에서 살 필요 없다, 개천에서 굳이 바득바득 용 나지 않아도 된다, 월세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기억하시는가?
그놈들이 이딴 소리를 "지 자식새끼"한테도 똑같이 진지하게 하겠는가? X발, 국민을 얼마나 미개한 개 돼지로 얕잡아 봤으면 저런 지랄을 하는 걸까?
이런 게 옛날에는 유교탈레반 조선의 관행이었고, 현대엔 빨갱이들의 체제전복 거짓 선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예수 믿어서 건전한 세계관이 갖춰지면 이런 것 정도는 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강남 아파트에서 포르셰 굴리는 이웃 부자를 시기 질투하고 욕해서 걔네들을 다 세금폭탄 때리고 빼앗아서 강제 분배하겠다는 정치인(사회· 공산주의자)한테 표를 준다면..
다음 세대 니 아이들은 이팝에 고깃국 먹는 이웃 부자를 시기 질투하고 욕하게 될 것이다."


아멘. 이게 현실이며 정말 뼈때리는 팩트폭격 금언이다.
십계명의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무슨 기업주 고용주 건물주한테만 적용되는 계명이 아닌 셈이다.

2. 아직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마음

이건 내가 쓴 게 아니고 인터넷 돌아댕기다가 본 글인데..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소개한다.

"불로소득으로 번 돈을 환수해서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게 무슨 잘못이냐. 환수한 돈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 없다"
"니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너무 심하게 부를 가져간 건 사실이잖아?"
이런 사람들 마음 이해합니다. 무식한 마음을요.

첫째, 불로소득 아닙니다. 당신의 양심이 이제는 말해 줄 겁니다.
당신이 한 일이라곤 고민고만한 무식한 사람끼리 술먹고 정치인들 욕한 것 빼고 별로 없습니다.
당신이 아껴쓰기 싫고 대출 갚기 싫고 위험부담 지기 싫고 깨끗하고 넓은 집 살고 싶어서 그런겁니다.

둘째, 환수할수록 가격은 오릅니다. 공급이 줄어드니까요.
이미 노 무현 문 재인 10년간 충분히 증명해 낸 우리나라 사정에 딱 맞는 진실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10년간 해 보았습니다. 부동산은 안정되었고 희망도 있었습니다.

셋째, 공정한 나라는 저 반대로 해야 이루어집니다.
일한 만큼 불로소득을 만들 수 있고, 아낀 만큼 불로소득을 만들 수 있어야 은퇴 후에 자식에게 버림받지 않고 스스로 살 수 있습니다.
앞으로 돈 없는 부모 모시고 살아줄 자녀들 거의 없습니다. 자식들이 힘들게 살아가야 하거든요. 부모 세대가 망쳐 놓은 나라에서.
다 걷어서 배급받자는 거지들이 설치는 나라가 공정한 나라가 아닙니다.

넷째, 걔들이 너무 많이 가져간 게 아니라, 국가에서 물가랑 세금을 너무 많이 올려놓은 겁니다. 물가와 같이 오른 부동산만 당신 눈에 보일 뿐.
물가를 올린 민주당 정권한테 욕을 해야죠.

다섯째, 환수한 건 거의 다 민주당 정치인과 하수인들이 먹습니다. 바랄 걸 바라십시오.
어차피 당신에게 올 부스러기는 지원금 몇십만원이 다입니다.


부가 낙수 효과가 있는 것처럼 물가와 세금도 당연히 낙수 효과가 있다.
건물이든 땅이든 부동산 소유자가 세금 폭탄을 맞으면 월세· 전세를 올려 받아서 그걸 만회하게 된다. 그 부담은 세입자 또는 그 가게의 상품을 이용하는 고객에게도 고스란히 돌아간다. "상위 몇 %만 내는 세금이니 괜찮다?" 이건 정말 유치한 궤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참고로, 난 무슨 아담 스미스 정도의 무조건적인 절대무오 시장 만능 방임주의자까지는 아니다.
공산주의는 몽땅 처절하게 실패한 실험이었으며 공산주의자는 상종을 말아야 할 흉악한 저질 부류라는 걸 늘 잊지 말아야 한다. 허나, 어느 문화권이건 산업화 초기의 방임주의 시절에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도 동일하게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때 오죽했으면 더 나쁜 길로 빠지는 공산주의가 나오고 공산당 혁명이 성공했겠는지도 이해해야 완전한 반공주의자가 될 수 있고 과거의 시행착오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

그래서 본인은 윗글에서 첫째 둘째 셋째는 한 80% 정도까지 동의한다. 하지만 넷째와 다섯째는 100%, 500% 핵공감한다.

3. 입학 취소

온갖 스펙 서류 조작으로 의전을 들어가서 온갖 봐주기 버프를 받고도 1.x대의 평점으로 간신히 졸업한 어느 금수저 여자애 말이다.
이제 와서 의대 입학을 통째로 취소하는 조치는 너무 가혹하다고 모교의 총장이 무슨 변호사라도 되는양 애를 옹호하고 나섰다.

거 참 어이가 없어서..
그년 때문에 자기 실력 갖추고도 의전에 입학을 못 한 학생이 발생한 건 너무 가혹한 거 아니고?
유급되었어야 할 저질 의사가 배출된 건 국가적으로 가혹한 일이 아니냐?

그리고 의대처럼 남 생명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서민 신분 상승 코스하고도 전혀 무관하기 때문에 서민들이 박탈감 느낄 필요도 거의 없고, 원래부터 학사관리 빡세지 않고 부자들 기여입학 비중이 훨씬 더 큰 과(말 유지 비용이 과연...???)에 들어갔던 정 유라..
걔를 단칼에 출교시켜서 싹 중졸로 리셋 운지시킨 건 별로 가혹하지 않았나 보네? X발.. 인간이 어떻게 이 정도까지 비열한 철면피 내로남불로 타락할 수 있을까?

의사 국가고시에 이미 합격했으니 공인 의사가 아니냐는 반론이 있다. 허 참, 그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잖아..
정 유라는 뭐 아시안게임 승마 금메달리스트던데..?? 남자였으면 군대도 빠질 수 있는 업적을 채웠는데.. 승마 실력이 부족해서 학교에서 짤린 거냐?

학사장교 복무 다~~ 마쳤다가 나중에 수능 부정행위나 대졸 학력위조가 들통나서 대졸 무효에 임관도 싹 무효화되고 이등병 강등됐던 애들이 있었다. 걔들도 무슨 소대장 시절의 지휘 실적이 부족해서 짤린 게 아니었다.
아니면 처분이 충분히 가혹하지 않았거나, 돈 없고 빽 없는 호구 바보여서 그렇게 된 건가 보다. 이 미개한 후조선 땅에서는 말이다.

어디 반박할 테면 반박해 봐라. 정말 제정신 박힌 좌파라면.. 저년 집안 사태는 나라도 도저히 실드 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게 정상이다.

4. 역사 인식

"해방 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공산주의자들이 무장폭동들을 일으켰기 때문이고, 박 정희와 전 두환 시절에 민주주의가 덜 성숙된 것은 맑시즘에 빠져든 운동권들이 툭하면 사회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아멘 아멘 할렐루야 빙고 따봉 absolutely definitely yes siree! 맞습니다 맞고요 그렇고말고요!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닌가?

시뻘건 북괴 무리들만 없었으면 우리나라도 무리해서 병력을 짜내는 징병제를 안 해도 됐을 것이고(실제로 건국 직후에는 그냥 모병이었음..) 사회 분위기가 그 정도로 경직된 군대 병영 문화로 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무슨 광복군이 제대로 참전만 했어도.. 이딴 걸 아쉬워할 게 아니라 "그때 대한민국 건국을 사사건건 비열하게 방해하던 악의 무리들만 없었어도~!!"를 생각하며 아쉬워해야 한다.

심지어 박 정희 전 두환도 미국 눈치를 보느라.. 머릿속에 똥만 잔뜩 들어있던 사회악 암세포 불순불온분자들을 단호하게 척결하지 못하고 너무 부드럽고 관대하게 살살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X신 같은 친일파를 청산 못 한 게 아니라 저런 것들을 다 청산 못 한 게 지금 우리나라 요 지경 개막장을 만든 화근이 됐다. 그냥 친일파인지 친일파 후손인지가 지배하는 세상이 좋으니까, 저것들 제발 헛짓 좀 안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이 나라엔 악질 친일파라는 게 "단언코 전혀" 존재하질 않는다.
지금 무슨 독도 일본땅이나 일본군 재무장을 위해서 로비하는 조선인. 일본 기업한테 삼성 현대 기밀 누설하는 산업스파이 따위 말이다.
중공· 북괴 간첩이 우리나라를 해치는 것과 동급의 짓을 일본을 위해서 하는 놈들을 말한다. 그런 게 지금 있을 리가 없잖아.. 반일 좌빨 정신병자들의 뇌내망상 말고 현실에서는 말이다.

"대통령의 공과 과를 무시하고 전 두환에게서 5.18만 존재한다면, 김 영삼은 IMF, 김 대중은 북핵, 노 무현에겐 일가족의 뇌물 혐의로 자살한 것밖에 남지 않는다."


이것도 그냥 두 말하면 잔소리..
전땅크에 대해서 명백하게 잘한 거 긍정적인 것 얘기만 하면 바로 사람을 매장시키는 이 엿같은 전체주의 파쑈 독재 분위기는 중공이나 나치 독일, 북괴 같은 데서나 존재했던 것 아닌가..?
예전부터 학살자 김돼지나 마오에 대해서 "인품 있고 훌륭한 지도자" 이랬던 빨갱이들부터 족족 매장시키고 다 잡아 쳐넣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난 정말 이런 분위기가 너무 혐오스럽고 역겹고 싫다.

난 내 입으로 좌파도 우파도 아닌 중도파니 예수파니 그딴 입에 발린 헛소리 안 한다. 그저 일본· 미국을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것과 동일한 잣대로 중공· 북괴도 같이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걸 추구한다.
늘 하는 말이지만 "광화문에서 김 일성 만세 외칠 자유"는 "금남로에서 전땅크 만세 외칠 자유"와 동급으로 다같이 보장하거나 금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형평성만 있으면 된다.

이런 사고방식이 극우라면 나는 얼마든지 극우가 될 것이고, 극우라고 찍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겨우 이런 주장도 떳떳하게 못 하고 쉬쉬하면서까지 그저 한글 입력기 개발자로만 니예니예 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22 08:35 2021/12/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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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에 일본은 한반도에서 토지 조사 같은 것만 한 게 아니다. 자기가 다스리는 조센징들이 옛날에 무슨 찬란한 문화재 유물들을 만들었는지도 아주 면밀히 조사했다.
그래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跡圖譜)라는 총 15권짜리 방대한 도감을 1915년부터 1935년까지 무려 20년에 걸쳐 편찬해 냈다.

왜, 1910년대에 돌덩이가 다 무너진 폐가 흉가 수준의 불국사와 석굴암의 모습 사진을 보신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거 출처가 이 도감이다. 일본인들이 촬영해서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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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은 제5권, 불국사는 제4권에 수록돼 있다.)

그리고 각종 역사 만화나 교과서를 보면, 북한 지역에 있는 문화재들은 마치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듯 흑백 사진인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역시 일제 시대에 일본이 촬영한 저 도감의 옛날 사진을 인용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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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990년대부터야 냉전이 끝나고 남북 민간 교류가 잦아지고 정보 통신 기술도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예전에 비해서는 북한의 현지 정보도 훨씬 더 풍부하게 얻을 수 있게 됐다(현대에 컬러로 찍은 사진도 포함..). 하지만 그 전에는 개성의 선죽교 사진조차도 일제 시대에 찍힌 흑백 사진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한민국은 말할 것도 없고 구한말 조선/대한제국의 공권력으로 이런 것들을 파악하고 기록을 남긴 게 아니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우리나라 네임드급 독립운동가들이 대대적으로 발굴되어 각종 훈장이 추서된 게 1962~63년, 원조가카의 집권 초기라면,
우리나라 네임드급 문화재들이 대대적으로 조사되고 사진이 처음으로 찍힌 건 1910년대 일제 시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저건 “식민지에 원래 이런 문화재들이 있었는데 이제 이것들도 다 우리 일본 것이 됐다. 그러니 우리가 철저히 관리해야지” 그런 정치 행정적인 차원에서 조사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걔들도 최소한 이상한 감정--심지어 조선에 대한 열등감까지!!!--을 갖고 “다 때려부숴 버려야지, 없애서 조센징들 민족 정기를 말살해 버려야지” 이러지는 않았다.

일제 시대의 초대 조선 총독인 데라우치 뭐시기 하는 그 아저씨는.. 정치 쪽은 가혹한 헌병 무단 통치 때문에 우리 쪽에서 썩 좋게 볼 수 없는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말 의외로 불상 덕후에 문화재 덕후 기질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반도의 문화재들을 보존하고, 그게 일본 본토로 무단 반출되지 않게 하는 일에 나름 애쓰기도 했다.

일례로, 그 당시의 석굴암 복원 작업은 졸속 날림으로 진행된 게 비판의 여지가 있을지언정, 최소한 악의적인 고의 훼손은 절대 아니었다. 폭탄 맞은 듯한 폐허 상태에 비하면 그 기술과 자금 하에서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든 거지, 악화시킨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석굴암이 저런 막장 상태가 되도록 수백 년째 방치한 건 숭유억불의 조선 왕조였으니 말이다.

석굴암이 옛 신라인들의 넘사벽 lost technology를 동원해서 만들어졌는데 왜놈들이 어설프게 콘크리트를 쳐발라서 망가뜨리는 바람에 습도 조절이 안 되고 내부 상태가 꼬였네 뭐네 하는 소리는 2020년대에는 좀 안 나와야 할 것이다. 걔들은 문화재를 진짜로 다 때려부순 중공 문화대혁명 홍위병이나 요즘 탈레반 집단보다는 정신 세계나 행정 시스템이 더 나은 애들이었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
조선 임금들의 초상화인 '어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 6· 25 사변 중에 소실된 것, 그리고 결정타로 부산 용두산 대화재 때 전부나 일부가 소실된 것이 대부분이다. 현재까지 원본이 제대로 보존된 게 별로 없는 지경이다.
그런데 순종을 비롯해 일부 왕의 어진은 2010년대에 그림을 다시 그려서 복원이 완료되기도 했다. 이때는 소실된 부분을 무엇을 토대로 유추해 냈을까?

바로 일제 시대에 조선총독부에서 어진을 흑백으로나마 사진을 찍어 놓은 자료가 있어서 이를 참조해서 복원했다.
일부 소실인 경우, 색깔이야 불타지 않고 남은 부분으로부터 유추가 가능하니까 흑백 사진만 있으면 전체 복원이 가능해진다.
심지어 순종의 경우, 김 은호 화백이 어진을 그리는 모습까지 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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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저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자료인지, 아니면 다른 별개의 촬영 기록인지 본인은 잘 모르겠다.

※ 여담: 문화재 관련 박물관

문화재 관리 얘기가 나왔으니, 이것들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 얘기도 같이 안 할 수가 없겠다.
박물관이야 워낙 분야가 다양하긴 하지만 무슨 국립 박물관이라 하면 일단은 상술했던 옛날 전근대 시절의 국보/보물 문화재를 전시해 놓은 곳을 말한다. 역사 박물관이라든가 아예 미술관하고는 영역이 약간 겹칠 수 있겠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일제 시대에도 한반도엔 총독부 박물관이니, 이왕가 박물관이니 하는 전시 시설이 있었다. 그러나 해방 후에는 ‘대한민국 국립 중앙 박물관’이 그 역할을 대체하게 되었다. 서울뿐만 아니라 경주, 제주, 전주 등 10여 곳에 국립 박물관 에디션이 있긴 하지만.. ‘중앙’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은 박물관은 서울 에디션이다.

엄청 옛날에는 국립 중앙 박물관이 경복궁이나 덕수궁 같은 고궁 안에 있었다. 1980년대에는 조선총독부 청사에 입주하기도 했었으나, 훗날 그게 헐리면서 지금과 같은 용산 부지에 새로 자리를 잡게 됐다. 전에는 거기가 미군 골프장이었다고 한다.

※ 여담: 과학관

다른 관련 주제를 하나만 더 열거하자면..
이런 옛날 문화재 박물관 말고 나라에서 직접 운영하면서 여러 지역에 ‘파생 에디션’까지 존재하는 또 다른 관람 시설은.. 바로 ‘과학 박물관’, 일명 과학관이다.

얘 역시 나름 일제 시대부터 전신이 존재했었다. 조선총독부가 광화문 청사로 이전하자 남산 기슭에 자리잡은 기존 건물이 ‘은사 기념 과학관’으로 바뀌었는데, 이게 해방 후에도 이름만 ‘국립 과학 박물관’으로 바뀌어서 운영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는 와룡동, 혜화 역 근처 지금의 위치에 ‘국립 서울 과학관’이 건립되었다. 하지만 부지가 너무 좁기도 하고 나중에 대전 엑스포가 개최되기도 했으니 대전에 엄청 큰 과학관이 새로 건립되면서 얘가 ‘중앙’ 타이틀을 대체하게 됐다. 즉, 국립 중앙 박물관과 달리, 국립 중앙 과학관은 대전에 있다.

지금은 수도권의 과천을 포함해 대구, 부산 같은 몇몇 대도시에 국립 과학관이 몇 곳 더 있다. 기존의 서울 과학관은 ‘어린이’ 과학관으로 리모델링 됐으며, 이와 별개로 강북에 서울 시립 과학관이 추가로 더 개관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19 19:35 2021/12/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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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엔.. "조선/대한제국이 일제에게 망하지 않고 왕정인지 입헌군주제인지가 20세기 후반까지 유지됐다면?" 같은 낭만적인 상상을 배경으로 소설이나 드라마가 만들어진 게 좀 있다.

뭐, 현실에서는 조선이 그때 일제한테 안 먹혔으면 러시안스키들한테 먹혔겠지.. 이게 훨씬 더 가능성이 높았고 상황이 여전히 암울했겠지만 말이다. 러시아 제국은 한반도에 그렇게까지 큰 욕심이 없었던 것 같지만 후신인 소련 공산당은 자비심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됐으면 이 위종이나 홍 범도 같은 애국자 독립투사가 소련으로 귀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친일 성향의 구한말 개화파들의 노선이 1900년대 이후까지 더 오래 지속됐을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솔직히 "만약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기고 일본이 졌다면?" 이건 현실적으로도 굉~~장히 설득력 있고 그럴싸한 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재로 한 대체역사물이 있다는 얘기는 난 딱히 못 들었다.

주 타겟이던 한반도가 세계적으로 별로 존재감이 없고 별로 장사가 안 되는 소재이기 때문이지 싶다. 그리고 그 당시엔 러시아가 이기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일본이 이기는 게 훨씬 더 극적이고 이례적인 일이었다. 즉, 현실이 픽션보다 더 픽션 같았으니 굳이 대체역사물이 또 나오지 않는 게 아닐까?

2차 세계 대전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에서 워낙 드라마틱한 전투 승리 내지 초인적인 인간 승리 스토리가 많이 만들어졌다. 덕분에 스토리에 창작 각색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전기/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전쟁 영화도 지금까지 한두 편 만들어진 게 아니다. 가령, 미드웨이 해전이나 진주만 같은 건, 진작에 영화가 만들어졌다가 후대에 각종 CG를 곁들여서 리메이크작이 또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인이 뻔히 다 아는 스토리만 곧이곧대로 차용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은 밀덕 역덕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가 워낙 많기 때문에 "만약 역사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면? 조금만 핀트가 어긋났다면?" 이렇게 생각할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역사로 치자면 "만약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때 전땅크 대통령이 제 시각에 도착하는 바람에 그때 현장에 있었다면? 그때 폭발에 휘말려 순직해 버렸다면 세상이 지금과는 어떻게 달라지게 됐을까..??" 이런 것 말이다.

그래서.. 발상을 달리하여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대신 추축국 진영이 승리했다면? 혹은 추축국이 일부라도 그렇게 흑화하지 않고 연합국과 잘 지냈다면?"을 상상한 대체역사물이 좀 있다. 이 글에서는 대표적인 것 일부만을 소개한다.

1. 비명(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찾아서 (1987) 복 거일 .. 독일만 망함

영어 공용화 논란 및 우파 진영 논객으로 유명세를 탔던 복 거일 씨가 소싯적에 발표한 소설이다. 나름 국내에서 만들어진 고퀄의 대체역사물이다. 얘랑 비슷한 스토리 전개로 예전에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대체역사물 영화가 한일 공동 제작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이 작품에서는 안 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실패"해서.. 이토 상은 부상만 입을 뿐, 1920년대까지 생존하며 장기 집권한다. 덕분에 일제 식민 통치나 대외 외교가 좀 더 젠틀하게 나간다.
정말 상상이 안 되지만 일본은 미국· 영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북 아시아를 무난히 접수한다. 2차 세계대전은 유럽 서부 전선 위주로만 벌어졌으며, 핵폭탄은 일본이 아니라 독일에 떨어진다. =_=;; (브레멘 & 드레스덴 ㄷㄷㄷㄷㄷ)

이로 인해 무려 국제연맹이 20세기 후반까지 존속하며, 한반도 역시 영원히 독립되지 못하고 대만이나 류쿠, 오키나와 같은 일본 식민지로 남는다.
일본은 미국, 소련에 이은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한반도에서 태어난 어느 2등 신민 조선인이 출생의 비밀을 뒤늦게 알게 되고서 어찌어찌 한다는 게 이 소설의 줄거리이다.

2. 높은 성의 사나이 (1962) 필립 K. 딕 .. 추축국이 몽땅 승리 (☞ 영화 소개)

이 장르의 거의 원조인 것 같은데.. 얘는 제일 비관적인 설정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프랭크 루스벨트 대통령이 암살 당해서 대통령이 못 되고, 뉴딜 정책이 시행되지 않고, 무기 대여법이 시행되지 않아서 2차 대전 유럽 연합국들이 빌빌대고.. 진주만 공습 때 미국의 함대가 몽땅 박살 난다.
결국 영국이 항복하고 미국도 독일· 일본의 합동 공격을 버티다 못해 조건부로 항복한다. 소련도 미국의 지원을 제대로 못 받으면서 독소 전쟁에서 패배해서 중세 시대로 되돌아간다.

유럽은 나치 독일 천지가 되고, 미국조차 서부는 일본, 동부는 독일이 접수하고 중부는 무법천지인 막장 상태로 전락한다.
전세계에 종교는 금지되고 히틀러 숭배만 허용된다. 독일의 과학력은 세계 제이이이이이이이이일!!! 이 현실이 된다.
독일과 일본이 세계를 지배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둘도 사이가 마냥 좋지는 않은 견제 관계가 된다. 마치 현실에서 중공 VS 소련처럼..??

3. 당신들의 조국 (1992) 로버트 해리스 .. 일본만 망함 (☞ 영화 소개)

이 작품에서는 나치 독일이 우연한 계기로 에니그마 암호의 해독 체계를 바꿔 버리며, 이 때문에 연합국이 더는 맵핵을 쓰지 못하게 된다. 독일은 유보트로 세계의 제해권을 장악한 뒤 영국과 소련을 봉쇄시키고, 미국에 V2니 V3이니 로켓까지 날려보낸다.

결국 미국이 독일과는 강화 조약을 맺고, 독일은 세계 최강 패권국이 된다. 이 세계관에서는 일본만 핵폭탄을 맞고 그대로 항복한다.
뭐 이런 설정 말고는 얘는 30년 전 전의 "높은 성의 사나이"와의 변별성을 잘 모르겠다.

아, 참고로, 2번 "높은 성의 사나이"의 경우 굉장히 참신한 게.. 이 소설 내부에 또 가상의 소설이 있다고 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세상이 이렇게 되지 않고 만약 연합국이 승리했다면..??" 이렇게 뇌피셜을 펼치는데,

여기서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무사히 집권한 뒤 3선 이상 연임을 하지 않고 물러나며, 히틀러는 패전 후 자살에 실패하고 체포되어 전범 재판을 받고 처형된다.
그 뒤, 미국과 소련이 전쟁을 벌여서 소련이 작살나고 영· 미에 의해 분할된다. 그런데 그 뒤엔 영국과 미국도 서로 대립하게 된다. 흠..

흥미롭지 않은가? 대체역사물도 이런 식으로 상상하고 만들기 나름인 것 같다.
옛날 독일 영화인 '롤라 런'을 보면, 주인공이 집을 뛰쳐나갈 때 누구랑 부딪히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이 나비 효과마냥 완전 극과 극으로 달라진다.

하물며 나라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전쟁터라면 그런 간발의 타이밍 차이로 전황이 달라진 사례가 한둘이 아니었지 싶다. 그러니 이미 다 지난 일이긴 하지만 그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났다면..?? 이런 걸 소재로 영화나 소설을 만드는 건 충분히 흥미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

현실에서 벌어졌던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과 한반도 광복은.. 그 자체가 굉장히 이례적이고 굳이 또 픽션으로 각색할 필요가 없는 기적적인 사건에 가깝다.
옛날에 어지간한 지식인들이 괜히 변절했던 게 아니다. 이제 항일 독립 운동이란 씨가 말라 버렸으며 일체의 희망이란 없고, 이놈의 일제가 망할 가능성이란 없다고 다들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 상태로 세대가 바뀌게 생겼으니 신세대들은 태극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지경이고.. "일제가 이렇게 갑자기 망할 줄 몰랐으니까"는 절대로 궁색한 변명이 아니었다. 이렇게 일제 시대가 1950년대 이후까지 계속됐으면, 독립 운동 대신 그냥 2등 신민 조선인의 차별 철폐, 인권 개선, 참정권 보장 따위를 요구하는 투쟁이나 벌어지게 됐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한테는 정서적으로 참 꺼림칙하겠지만, "조선이 영원히 해방되지 못했다면?" 이런 대체역사물이 "조선이 일제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에 왕정이 계속 유지됐다면?"보다는 당연히 훨씬 더 더 현실적인 대체역사물인 셈이다.
심 훈의 "그날이 오면"은 우리 민족의 염원을 표현한 시일 뿐, 무슨 대체역사 소설은 아니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17 08:34 2021/12/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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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산-마곡: 지하철의 선형을 따라 뒤늦게 형성된 시가지

어떤 도시에 건물과 길이 평범한 직사각형 바둑판이나 방사형이 아니라 부자연스러운 곡선 궤적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면..
그건 지금은 없어진 과거의 철도 폐선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 경주 성건동과 황오동 일대의 옛 중앙선 선로 주변이라든가, 서울 홍대 근처의 서교동 예술의 거리가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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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서울 지하철 5호선 발산역 인근의 건물 배치는 굉장히 흥미롭다.
얘는 폐선이 아니라.. 아래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지하철의 선로를 피해서 건물을 짓느라 형성된 궤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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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산-마곡 사이, 공항대로 북쪽의 땅은 2010년대 이전까지는 미개발 허허벌판 논밭이었다. 오죽했으면 마곡 역은 멀쩡히 건설됐던 뒤에도 2008년까지 12년을 미개통으로 봉인 당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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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경에 발산-마곡 사이의 풍경은 정말 저랬다. 그 당시에 본인이 직접 답사해서 디카로 찍었던 사진!)

그러니 여기는 고심도 땅굴을 팔 필요 없이 지면을 파헤치는 개착식으로 얕고 저렴하게 만들었으며, 애초에 공항대로라는 도로를 들쑤시지도 않았다. 그냥 옆의 공터를 대신 파헤치는 걸로 끝.. 그래서 마곡 역도 도로를 약간 비껴간 곳에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다음의 송정역부터는 다시 도로 중앙 아래로 들어간다.

그리고 발산 역 주변의 경우, 김포 공항 방면의 엄청난 급커브 때문에 회전반경을 확보하기 위해 선로가 도로 바깥의 벌판(건설 당시에)을 약간 침범하는 것도 있다.
옛날에 지하철 1호선을 처음 만들던 시절에 시청-종각의 엄청난 급커브를 구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가 같이 떠오른다. 부족한 기술과 열악한 여건 하에서 저심도로 주변의 동아일보 사옥의 지하를 건드리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광역전철 일산선(구파발-대화)도 나름 서울 지하철 5호선과 비슷한 시기에 건설되고 개통한 놈이다.
얘는 굳이 비싸게 FM대로 지하로 건설할 필요가 없는 널널한 구간은 아예 지상 고가 형태로 건설해서 약간 지상 지하 롤러코스터처럼 됐다.

그런데 5호선 마곡 역은 지상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변 땅이 워낙 널널했으니 주변 공간을 미리 점유하면서 건설비를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티를 내서 만들어졌던 셈이다.
그리고 인근의 발산 역 주변은 “지하철이 먼저 만들어지는 바람에 건물이 지하철을 피해서 건설된” 대단히 특이한 사례로 남게 됐다~!

2. 원형 시가지

우리나라에서 지도상으로 시가지가 확연하게 원형 방사형으로 만들어졌다 싶은 곳이 본인의 기억에 따르면 딱 두 곳 있다. 안산 선부동, 그리고 화성 동탄동 신도시.
전자는 정확하게는 육각형 모양이다. 원의 중앙에는 서해선 전철 선부 역이 지하로 지나며, 지상에는 선부/다이아몬드 광장이 있다.

후자는 완전한 원이 아니고 사실 반원의 크기도 안 되지만.. 그래도 선부동보다 반경이 더 큰 부드러운 원형이다. 원의 중앙에는 반석산이라는 언덕이 있으며, 원의 중심은 아니지만 근처에 경부 고속도로와 고속철 동탄 역이 있다.
저 두 곳 말고 다른 원형 시가지가 또 있는지 궁금하다.

3. 지하철역 바로 근처에 있는 보안 시설

청와대나 군부대처럼 민간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보안 시설은 아무래도 시 외곽이나 산기슭 으슥한 곳에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지하철역 바로 옆이나 근처에 그런 보안 시설이 자리잡은 경우가 아주 드물게 존재한다.

그런 경우는 보안 시설이 먼저 있었고 그게 처음 생기던 시절에는 거기가 외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거기까지 개발되고 지하철이 놓이게 된 것이다. 테란· 플토 건물의 주변에 저그 크립이 깔려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건물이 당연히 크립보다 먼저 지어진 것.. ㄲㄲㄲㄲㄲ)

  • 평촌(4과천): 4번 출구 주변에 웬 자원 재생 센터가 있다.
  • 가락시장(3/8): 그 유명한 중앙 전파 관리소가 있다. 지방으로 이전할 거라는 말이 진작부터 있었지만 2021~22년 현재 아직도 건재해 있다. 여기는 주변에 가락시장, 비닐하우스, 물류센터, 자동차 운전 학원 같은 거나 있던 외곽이었지만, 2010년대에 싹 바뀌었다.
  • 세류(1경부): 공군 부대와 바로 붙어 있다. 이 부대도 이전 떡밥만 잔뜩 무성하다.
  • 금천구청(1경부, 과거): 역시 군부대와 붙어 있다가 2000년대 말쯤에 싹 이전했다. 여기도 공군 부대였다고 한다.
  • 오금(3/5, 과거): 근처에 구치소가 있었지만 문정 법조 타운 쪽으로 이전했다.

4. 지하철 5호선의 특이한 과거

  • 천호대로(답십리-천호)는 바로 5호선 건설 공사를 하느라 파헤쳤던 것을 복구하면서 96년 초에 국내 최초로 중앙 버스 전용 차로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 마곡 역은 초기에 잠깐 영업하다가 문을 닫은 게 아니었고, 처음부터 미개통 봉인 상태였다. 초창기엔 열차가 마곡 역에 도착할 때 형식적으로라도 감속이나 잠깐 정차를 했다가 출발했지만, 몇 달 후엔 이마저도 생략하게 됐다.
  • 5호선은 1인 승무로도 모자라서 아예 전면 무인 자동 운전까지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다. 무려 96년경에 실제로 시행한 적도 있었으나, 열차가 제 위치에 제대로 못 서고 버그와 문제점이 속출하면서 도로 봉인되었다.
  • 5호선이 전구간 개통하기 전에는 열차의 출력 설정이 지금과 달랐는지.. 가속 구동음의 첫음이 지금 같은 ‘레’가 아니라 ‘솔~라b’ 사이였다고 한다. 매우 충격적이다. (☞ 1995년 6월경의 시운전 영상 기록)

첫음이 저러니 영락없이 7,8호선 1차 도입분 열차의 GEC-알스톰 구동음처럼 들린다.
스타크래프트 개발 중 베타 버전에서 시즈 탱크가 뮤탈(!!!)을 공격하는 거..
Doom의 개발 중 베타 버전에서 BFG가 빨강 초록 파이어볼을 난사하는 형태이던 거..
그런 걸 보는 느낌과 비슷하다.

지금 같은 가속 구동음은 5호선이 전구간 개통한 뒤에 설정 변경을 통해 정착한 거라고 한다. 피치를 낮춘 셈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14 19:35 2021/12/1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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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수 김 신혜 사건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에서 다리의 장애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어느 50대 남성이 차도에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
처음엔 흔한 뺑소니 교통사고로 여겨졌으나, 약간의 수사 끝에 그의 딸인 김 신혜가 보험금을 노리고 부친을 사고로 위장 살해한 용의자로 검거되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죄를 순순히 자백하는 듯했으며 모든 정황도 착착 맞아떨어졌다. 그녀는 존속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그런데 2심 이후부터는 그녀는 갑자기 말을 바꿔서 자기는 범인이 아니라며 결백을 지금까지 줄곧 주장해 왔다. 이전의 자백은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자백이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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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에 경찰이 매우 유리한 정황 속에서도 증거를 제대로 보전 못 하고 강압 수사를 한 건 명백한 병크이다. 이 때문에 지금 재심을 하면.. 저 사람은 법적으로는 증거불충분으로 진짜 무죄가 나올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저 여자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다 동의하기에는 그 전의 행적들이 의심스러운 게 너무 많다. 직업, 이성관계, 사건 당일의 동선과 알리바이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석연찮다.
개인적으로 이 블로그 글이 제법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서 링크를 소개하고자 한다. (☞ 링크)

그녀의 주장을 곰곰이 따져 보면, 제일 기본적인 자백의 동기부터도 말이 이랬다 저랬다 바뀌는 것 같다. 동생의 죄를 대신 좀 뒤집어쓰라는 친인척의 권유로 자백한 걸까, 아니면 전적으로 경찰의 강압 때문에 허위 자백한 걸까?

전자라면 가족을 감싸 주려는 갸륵한(?) 마음이 중간에 왜 바뀐 것이며, 동생이 애비를 죽인 동기는 무엇인가? 그건 어떻게 입증 가능한가? 그리고 후자라면 애초에 동생을 끌어들일 이유가 전무하다.
설마 둘 다 합쳐서 동생 실드 자체가 경찰의 강압으로 인한 허위 자백이라면 이건 뭐.. 현실성과 개연성이 너무 떨어지는 소설이 된다.

안 그래도 사건 발생 당시의 동선과 알리바이가 불분명한데, 하필 비슷한 시기에 생명 보험들을 잔뜩 들어 놓은 건 도저히 우연이라고 볼 수 없고 변명들이 말이 안 된다. (보험들을 비교해 보려고 일일이 보험에 직접 가입했다는 게 헐..??) 한쪽에서는 자기가 보험잘알이라고 진술했는데 실제 행적은 보험알못이다.;;
정황이 자기에게 불리해지니 보험 가입 서류가 경찰에 의해 조작된 거라는 주장도 제기하나 본데.. 그런 주장은 좀 일찍 했어야 통하지 10수 년을 감방에 있다가 인제 들고 나오면 어떡하냐..

고인은 자살한 것도(혼자서 그 멀리까지 나갈 수 없..), 교통사고 뺑소니를 당한 것도(외상이 없음) 전혀 아니며 음독에 의한 타살 100%이다(독극물 검출).
그 상태로 시체가 차로 멀리 옮겨지기까지 했으니.. 면식이 없는 묻지 마 범죄가 이런 식으로 저질러질 가능성은 전무하다. 범인은 근처의 가까운 인물이어야 한다.

허나, 남동생이나 고모부, 숙부 등 다른 가족· 친척 중에 애비를 굳이 이런 식으로 죽일 만한 사람이 없다. 집이 잘 사는 것도 전혀 아니고 알리바이도 다 있고.. 이 사람을 통한 금전적인 이득은 정말 보험금 수령밖에 없다.

이건 무슨 외계인이 UFO를 타고 날아와서 애비를 약 먹여서 죽이고 시체를 도로에다 내팽개치고 뿅 사라진 게 아닌 한.. 현실적으로 진범은 미안하지만 저 여자일 가능성이 제일 높아 보인다.
애비가 술 마시면 개가 되어서 주변 가족이 피할 정도였다는 말도 자기 입으로 나왔구만..

2018년쯤엔가 재심이 결정됐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죄수복이 아닌 사복 차림으로 당당히 매스컴도 몇 차례 탔다.
허나, 그 뒤엔 당사자는 또 석연찮은 핑계를 대며 재판을 계속 거부하고 있으며,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한 2019년말 이후로 근황이 더 검색되는 게 없다. 이 정도면 마냥 저 여자 편만 들기가 좀 곤란한 지경이다. 애초부터 우리나라 법조계의 판단이 그렇게 무리수 억지가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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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동영상을 보니 그녀는 국가에서 자기를 감옥에 쳐넣고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 놓고는 자기더러 뭘 더 거창하게 증명하라는 거냐며 매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회의론자 역시 그녀에게 뭘 거창한 걸 요구하는 게 아니다.
앞서 제기되었던 의문들은.. 자기 언행에 거짓이 없다면 아주 기본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으며 해명하는 게 어렵지 않다.

비슷한 느낌이 드는 관련 사건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 1995년의 치과 의사 살인 사건: 결국 무죄 판결은 받았지만 범인도 없는 사건이 돼 버림. 남편의 비디오 대여 이력은 너무 너무 의심스럽긴 한데(동일한 살인 수법 묘사, 허위 진술 들통), 이것도 심증에 불과하니 원..
  • 2005년 530GP 사건: 대공 용의점 따윈 없고 그냥 김 일병인가 그 사람이 범인 맞음. 이 사람은 무기수가 아니라 사형수..
  • 옛날 영국의 A6 도로 살인 사건: 범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결백과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결국 DNA를 통해 진범으로 밝혀짐. 감성팔이 인권팔이 호소의 위험성을 일깨워 준다.

많은 사람들이 김 신혜가 국가에 의해 엔자이를 당한 억울한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고 본인도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만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허나, 이런 회의적인 관점도 "흠 그럴 수도 있겠네, 일리가 있네.. 양쪽 말을 다 들어 봐야.." 라는 범주에 드는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고 이의 제기이다.

그런데 원문에 왜 이렇게 이상한 악플들이 많이 달리고 글쓴이가 욕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이의 제기가 논리적으로 마음에 안 들면 그것도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될 것을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12 08:35 2021/12/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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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근황과 소감 -- 호박과 백신

2021년이 벌써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올해 하반기는 호박에 멧돼지에, 여친 등.. 내 관심사가 여기저기로 너무 분산돼 있었다. 그래서 정작 직장은 그리 심하게 바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날개셋 한글 입력기의 개발 속도는 역대 최저를 찍었다.
그러다 뒤늦게 허겁지겁 코딩이 진행 중이고 이 달 말쯤.. 성탄절쯤에 다음 버전 10.4를 공개하려 한다.

오늘은 그 전에 올해의 마지막 근황, 일상, 생각을 한데 모아서 남기도록 하겠다.
글을 정리해 보니 호박 얘기와 우한 괴질 백신 얘기로 주제가 요약됐다. 서로 완전 무관하고 이질적인 주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굳이 글을 분리하기는 귀찮기도 하고, 또 2021년 12월경의 내 일상이라는 일말의 공통점이 있으니 한데 남겼다.

1. 일상

겨울이 되니 개인적인 호박 농사는 완전히 끝났다. 직접 키워서 수확한 호박도 이미 다 먹어치운 지 오래다.
하지만 호박과의 만남을 잊을 수 없어서 이젠 인터넷으로 늙은 호박을 몇 개 더 구입했다. 그걸 혼자 운전할 때도 갖고 다니고, 캠핑 때도 갖고 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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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사랑스럽고 든든하다. 이 호박 한 덩어리가 내 노트북 PC보다 더 무겁다.
이렇게 한두 주 동안 갖고 다니다가 그 뒤엔 월동 몸보신용으로 죽 쑤어 먹곤 했다.

더 오래 신줏단지처럼 내 곁에 놔두고 싶지만.. 그러다 속이 언제 상할지 몰라서 한없이 오래 놔 두지는 않았다.
지금 호박 내부가 아직 멀쩡하고 더 놔둬도 되는지, 아니면 오늘 내일 하는 지경이 됐으니 당장 쪼개서 먹어야 되는지를.. 초음파나 X선 같은 장비로 비파괴 검사를 통해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 몸 속도 산 채로 들여다보는데 호박의 내부야 기술적으로는 당연히 가능하지 않겠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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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말까지 꽤 춥더니만 정작 12월 초에는 낮 기온이 10도 부근까지 올라가고 밤에도 기온이 꽤 높고 포근했다. 창문을 활짝 열어도 예전 같은 시원한 냉기가 느껴지질 않았다.
이런 밤엔 당장 텐트를 들고 바깥 아지트로 가서 심야 연구실을 꾸몄다. 아이들도 같이 데리고서.. 이렇게 세팅하니 확실히 덜 외롭다. ^^;;

2. 호박죽

드디어 멧돼지 잡는 날..;; 아.. 아니, 호박 잡는 날이 찾아왔다.
내 방, 내 텐트, 내 차에서 한동안 본인과 같이 지내던 호박이 드디어 맛있는 호박죽으로 바뀌어서 주인님의 배 속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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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어서 그동안 즐거웠단다. 속에 씨들은 고이 보관했다가 또 밭에다 뿌려 주마~~ ^^;;
새마을호, 지하철 같은 철도 이후로.. 내가 이 나이 돼서 또 이 정도로 꽂히는 게 생길 줄은 나도 미처 몰랐다.
여러분도 단호박 애호박 늙은 호박 등등.. 호박을 많이 많이 사랑하고 드셨으면 좋겠다~! ^___^

이제는 성경의 하박국서조차 다시 보게 된다. (호박국... ㅋㅋㅋㅋㅋㅋㅋ)
마침 공교롭게도 이 책은 끝부분에 자기 농사가 싹 다 망하더라도 하나님 생각하며 즐거워할 거라는 찬양도 있다.

호박죽은 불그스레 누런 게 카레처럼 생겼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침 꽃도 노랗네..
온통 초록색이다가 어쩌다가 여러 박들 중 호박만 저렇게 붉거나 누렇게 변하는지 모르겠다. 그 노란 성분이 체내에서는 비타민 A로 바뀌어 흡수된다고 한다.

단, 애호박 말고 늙은 호박은 단단한 껍질 덕분에 상온 보관성이 좋은 대신, 먹기 위한 분해 처리가 좀 손이 많이 간다. 커다란 호박의 표면에서 저렇게 일일이 껍질을 벗기는 게 생각보다 고된 일이다. 내가 앞부분에서 괜히 동물 잡는 것에다가 비유한 게 아니었다.

이 때문에 요즘은 늙은 호박보다 더 작고 부담없이 까서 먹을 수 있는 단호박이 건강 식품으로서 더 인기라고 한다. 죽도 단호박을 쑤어 먹는다. 2000년대 이후로 늙은 호박은 재배와 생산량 자체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사실, 호박을 좋아하는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늙은 호박은 뭔가 시골, 노인스러운 느낌이 많이 든다. ^^

3. 호박 2세

올해 본인에게 풍성한 수확을 안겨 준 호박을 기억하며.. 실내에서 호박씨를 몇 개 심어 봤다. 이 계절에 호박을 밖에서 키울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랬는데 역시 싹이 났다. 몇 주 놔두니 떡잎은 사라지고 본잎이 쭉쭉 돋아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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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녀린 줄기가 자라고 또 자라서 그 호박을 생성하는 덩굴이 된다는 게 참 실감이 안 간다.
실내는 따뜻하고 관리하기 쉬운 건 장점이지만.. 야생만치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없고 뿌리를 한없이 깊고 많이 낼 수 없으니 다른 단점도 많을 것이다. 이 상태로 얼마나 어디까지 자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꽃이 필 수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꽃이라도 피면 꽃가루받이는 수동으로 해 줘야 할 듯하다.

4. 백신 패스

그나저나, 우한 괴질이 전세계에 창궐한 지도 만 2년이 돼 간다. 그런데 이놈은 끊임없이 자가 변이하면서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매일 신규 확진자 수가 지난 11월 중순쯤엔가 3천 명 돌파했는데, 11월 2x일쯤엔가 4천 명을 넘어섰다.
11월 말~12월 1일엔 5천 명 돌파. 거의 1주일 간격으로 1000명씩 증가해 왔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이번 주엔 설마 6천 명을 찍으려나, 설마 더 증가할까?"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럴 수가, 이번엔 7천을 넘겨 버린 거다. 경이롭다. >_<

지난 7월에 델타 변이 때문에 낙관적인 분위기가 쏙 들어갔던 것처럼, 11월부터 슬로건으로 내걸던 'with 코로나 - 일상 회복' 이 말도 어느 샌가 쏙 들어가 버렸다.
지하철 새벽 1시 연장운행도 재개하는 거 같더니 또 버로우 탔나 보다.

이 정도면 진짜로 기약 없는 전선 고착 장기전을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100여 년 전, 1차 세계 대전 때만 해도 장병들은 "이 해(1914년)가 가기 전에 전쟁이 끝나고 우린 따뜻한 고향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랬으니 말이다. 참호전 같은 걸 상상이나 했겠냐..?

허나, 인제 와서 예전처럼 또 무식하게 다 틀어막고 교회 예배 인원 제한 이 짓을 하기엔 정치적인 부담이 너무 크고 가오도 안 설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으니 나라에서는 10대 어린애들한테도 반강제로 백신 접종을 밀어붙이고, 백신 미접종자를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차별하려는 것 같다.

1년 전쯤엔 "어서 백신이 개발되어서 질병이 종식되고 예배가 회복되길" 이게 교회에 따라서는 공동 기도 제목이기도 했었다. 기억하는 분 계신가?

본인은 백신 무용론자 반대론자가 아니다. 무슨 백신 666이니 제약회사의 음모니 따위의 소리에는 지금까지 전혀 동조한 적이 없었다.
허나, 백신을 2차까지 다 맞은 사람이 전국민의 80%에 달하고.. 사회활동 하는 사람은 사실상 거의 다 맞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부작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직도 돌파감염이니 확진자 수가 저 지경인 것은, 명백히 백신이 위력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까지 백신 안 맞은 사람을 탓하고 족칠 일이 아니어 보인다~!

그래서 백신을 옹호하는 최후의 변명이 "(집단 면역 효과가 미미해서) 괴질에 걸리더라도 위중증으로 안 가게 하고 사망률을 낮춘다"인 걸로 난 알고 있다.
그 말이 맞다고 치자. 그건 결국은 주변 사람을 위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자기한테 좋다는 얘기잖아?
자동차 보험으로 치면 필수인 '대인 대물'이 아니라, 옵션인 '자차'의 영역이라는 거다.

그럼 자기한테 좋다고 하더라도 "부작용이 더 무서워서 난 못 맞겠다, 특히 어린 10대 애들한테는 불안해서 접종 못 시키겠다" 이런 선택도 존중해 줘야 된다는 것이다.
이건 의약학 바이오 보건 전공이 아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고 공감할 수 있는 논리라고 생각된다.

요컨대 우한 괴질 백신이라는 건 효과가 만능이 아니고 심지어 여느 백신의 개발 프로세스만치 오랫동안 충분한 실험과 검증을 거쳐서 만들어져 나온 건 아니다. 물론 사람 몸 속에 들어가는 약품이니만큼 최소한의 안전도 충족되지 않는 막장 상태도 아니긴 하지만, "100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정도로 신중하게, 모든 뒷감당을 국가가 몽땅 책임진다는 퀄리티로 접종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한 괴질이 저렇게 변모하고 있으니, 그에 대응하는 백신도 무슨 컴퓨터 소프트웨어처럼 계속해서 업데이트 받아야 하는 형태가 돼 간다.;; 백신을 여러 차례 주기적으로 맞아야 하는 질병이 우한 괴질만 있는 건 아니니 이에 대해서도 필요 이상의 불신이나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거기까지도 본인은 수긍을 한다.

하지만 우한 괴질이 이 정도로 치명적이고 위험한 병인지, 이 정도로 완성도가 2% 부족한 백신을 꼭 다 맞게 해야 할 정도로 시급한 병인지는.. 난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으로서 실감을 잘 못 하겠다. 백신 맞으라고 다그치는 방역 당국 관계자와 걔네들 가족부터 공개적으로 백신 꾸준히 맞는 걸 인증해 보이기라도 해야 의혹과 불신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09 08:35 2021/12/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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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믿음, 순종에 대해서

1. 죄

프로토스의 유닛이 실드와 체력으로 나뉘듯, 인간이 저지르는 죄라는 것을 성경적으로 판단하는 데는 (1)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 그 자체, 그리고 (2) 사람의 입장에서 남에게 나쁜 영향이나 피해를 끼치는 것이라는 두 가지 관점을 동원할 수 있다.

(2)는 가해자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과 피해자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 둘로 또 나뉜다.
전자는 (2-1) “니가 그 상황에 처했어 봐라, 닌 더했을 거면서..”라고 뭔가 친일파의 변명이라든가 “죄 없는 자부터 돌로 치라” 같은 관점을 말한다.

반대로 후자는 (2-2) “니 가족이 그런 일을 당했어 봐라, 그래도 사형 반대하겠냐” 같은 관점을 말한다.
이것도 둘 다 법리의 측면에서 중요하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람마다 둘 중 어느 것에 비중을 더 두는지가 정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성경은 크리스천들끼리 죄에 대처하는 방법(왕국 헌법 관점)과 현 세상 정부를 상대로 죄를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서로 다른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그런데 프로토스 유닛 중에 아콘처럼 실드로만 가득하고 체력의 비중이 거의 없는 놈이 있듯.. 어떤 죄는 (2)의 관점만으로는 제대로 분별할 수 없는 종교적인 영역에 속한 것도 있다.
가령, 동성애가 단순히 건강에 안 좋은 것을 넘어서 왜 죄이기까지 한지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 운운하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따지기 어렵다.

더 나아가 원초적으로 예수 안 믿는 것이 왜 지옥 가는 죄인지도 (2)만으로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어디 그 뿐이랴, “어리석은 생각은 죄”, “기도하는 것을 쉬는 건 죄”, “탐욕도 죄”, “믿음에 나지 않은 것은 죄” 이런 것까지 가면 도저히 답이 없다.

구원받고 나서도 죄 계속 지으면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굉장히 단순무식하게 생각하는 분들의 오류가 무엇이냐 하면, 죄라는 게 (2)에 속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죄 계속 지으면 구원을 잃을 수 있다면.. 이런 구원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선행으로 구원을 얻은 게 아니기 때문에 악행으로 구원을 잃지도 않는 게 얼마나 합리적이고 다행인지 모른다.

sin은 말 그대로 원초적인 죄라는 뜻이고, evil은 죄의 결과로 인해 야기되는 나쁜 악 내지 재앙을 뜻한다. ‘벌’에 가깝다. 또는 기독교적인 심상이 담긴 단어는 아니지만 액운과도 가깝다고 볼 수 있다.

fault는 evil과는 다른 관점에서 죄의 결과로 인해 남에게 물리적으로 야기된 나쁜 결과, 민폐, 잘못, 허물 정도의 뜻이다. 또는 법을 어긴 것까지 아니어도 도의적으로 사과할 만한 잘못.. “그때 바빠서 제대로 못 챙겨 준 거 미안해” 같은 것까지도 포함된다.

행 5:4에서 베드로의 말을 보면 사람에게 잘못한 것과 하나님에게 잘못한 것을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상의 성경들 중 오로지 킹 제임스 성경만이 약 5:16에서 “너희 죄를 서로 고하고”가 아니라 “너희 잘못(fault)을 서로 고하고”라고 말한다! 죄의 관점 (1)과 (2)를 생각해 보면 (2)에 포커스를 맞춘 fault가 교리적으로 얼마나 정확한 묘사인지를 알 수 있다.

2. 아들을 믿지 않는 자, 순종하지 않는 자

요 3:36은 긍정적인 조건과 부정적인 조건이 나란히 등장하는 예수님 말씀이다.
긍정적인 조건이야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라고 이견의 여지가 없는데.. 문제는 부정적인 조건이다.
킹 제임스 성경은 "아들을 믿지(believe)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음"이다.
그러나 다른 성경은 "아들을 순종(obey)하지 않는 자는..."이라고 동사가 달라져 있다.

KJV 옹호자, 유일주의자는 이 구절이 타 성경에서 행위 구원을 암시하는 쪽으로 변개됐다고 주장한다.
그 반면, KJV 유일주의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믿는 거나 순종하는 거나 그 말이 그 말이지 뭐가 그리 대수냐고 항변한다. (실제로 접한 적 있는 반박임) 이에 대한 내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먼저, 하나님의 진노라는 개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원받은 사람, 선택받은 백성도 죄를 지으면 하나님을 displease시킬 수 있고(민 11:1, 삼하 11:27 같은), 하나님을 화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신약에서 '하나님의 진노 the wrath of God'의 1차 용례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언제든지 집행될 준비가 된 진노, 복음의 전제조건인 그 진노이다.
이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요 3:36은 요 3:16만큼이나 거리 설교 등 복음을 전할 때 쓰이는 핵심 구절 중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크리스천은 그런 원초적인 하나님의 진노에서는 완전히 열외됐기 때문에 미래의 대환란도 겪지 않는 것이 교리적으로 맞다. 대환란은 개인의 인생이 아니라 세상과 민족 차원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집행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2) "믿는 거나 순종하는 거나 그 말이 그 말"도 넓게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충분히 일리가 있다.
"이것들로 인하여(앞서 언급된 온갖 나쁜 행실들)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disobedience)의 자녀들에게 임하나니..."라는 말씀도 성경에 대놓고 나온다. (엡 5:6, 골 3:6)
그런 것처럼.. 무슨 십계명이나 산상설교 말씀을 순종한 게 아니라, 그냥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동의하고 복음 선포에 '순종'해서 예수님을 믿은 것도 순종이다. 이런 관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 3장은 바울 서신서처럼 구원받은 신자의 행실, 제자의 삶을 다루는 문맥이 아니다. 그냥 사람은 거듭나야 하고 아들을 믿어야 한다고 증언하는 곳이다.
p → q 명제 다음엔 그냥 일관되게 ~p → ~q가 나오는 게 깔끔하다. 실제 의미와 범위가 뭔지 한번 더 생각을 해야 하는 '순종'보다는 '믿지 않는 자'가 ~p의 자리에 나오는 게 더 낫다. 이게 아들과 생명의 관계를 believe 대신 have로 진술하는 요일 5:12하고도 더 잘 호응한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2)

심지어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에게 임한다'라는 말조차도 KJV는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두 번 나오지만, 타 성경은 골로새서에서는 빠져서 한 번만 나온다~!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을 받았다"에서 'by his blood'도 원래 엡 1:7, 골 1:14 트윈인데.. 타 성경은 골로새서 버전은 누락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여담으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반전인데.. 정작 '공동번역 성서'엔 요 3:36이 "아들을 믿지 않는"이라고 적혀 있더라~! KJV처럼 말이다.

3. 필요악 또는 모호한 영역

이 세상에는 성경적으로 볼 때 대놓고 죄는 아니지만.. 예수쟁이로서 뭔가 좀 긴가민가하고 애매해 보이는 사항이 있다.

(1) 동물 피가 묻어 있는 순대나 아예 굳은 핏덩어리인 선지를 먹어도 괜찮을까?
(2) 거짓말, 위장, "악에는 악으로",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를 업으로 삼아야 하는 국정원 첩보기관 같은 데에 취업해도 괜찮을까?
(3) 우주로 나가려고 연구하는 공학자, 생물 유전자 조작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돼도 괜찮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나의 소신으로는 모두 "상관없다, 괜찮다"이다.

(1) 생혈이 아니기 때문에 행 15:29와는 무관하다. 그리고 생피라 하더라도, 이 구절에서 나란히 언급된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과 마찬가지로 고전 8의 적용을 받는다.
신약 교회에서 음식의 금지 사항은 믿음이 약한 지체를 배려하는 도의적인 권고이지, 구약 유대교 급의 강제적인 교리가 아니다.

(2) 애초에 적군을 죽이는 일을 하는 군대· 군인부터가 성경적으로 매우 합법적인 조직과 직업이다. 첩보기관은 방법론이 군대와 조금 다를 뿐이다.
정치질이 아니라 진짜로 마약사범이나 산업 스파이나 빨갱이만을 악랄한 방법까지 동원해서라도 잡는 거라면 애국이고 괜찮다.

군대는 전쟁터에서 직무를 위한 살인이 허용되는 곳이며, 첩보기관은 임무를 위해 "이이제이, 악을 악으로 갚는다, 목표는 수단을 정당화한다"가 허용되고 더욱 고도화된 곳이다.
종교는 특정 주제에 대해 "진영 논리와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가 허용된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3) 실험 연구를 위해서 대놓고 연구 윤리를 위반하고 사람 생체실험이라도 하는 게 아니라면 상관없다. 그런 걸 관찰하고 탐구하고 인간 생활에 응용할 방법을 찾는 것 자체만으로는 죄가 결코 절대로 아니다.

인간은 지금 같은 인프라와 기술 하에서는 어차피 지구를 떠나서 살지 못한다. 너무나 광대한 우주를 아무리 뒤져도 인간 말고 다른 지적 생명체는 나오지 않을 것이고,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복잡정교한 DNA를 인간이 좀 건드려 봤자 신의 영역을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SETI 프로젝트 같은 것도 해 봐야 별로 나오는 거 없고 괜히 희망고문밖에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시도 자체를 종교 신념에 근거해서 무식하게 물리적으로 찍어누르지는 말아아 한다. 연구할 기회 자체는 충분히 공평하게 줘야지..
그러니 뭘 하든 "상관없다, 괜찮다"인데..

다만, 저런 것들이 개인적으로 양심상 꺼려지거나 그런 적성이 아니라면 당연히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더라도 낙하산 메고 뛰어내리는 걸 무서워서 못 하겠으면 사관학교를 가지 말아야 하며,
살아 있는 동물의 배 가르는 걸 비위 상해서 못 하겠으면 의대에 가지 말아야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이건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예수쟁이들끼리 서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자기만 옳다고 싸울 일은 아니라고 본다.
구원받은 신자라면 본질적이지 않은 주제에 대해 너무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말고, 약한 지체의 믿음을 세워 주고 양심 안에서 믿음과 자유를 얻으시길 바란다.

Posted by 사무엘

2021/12/06 08:35 2021/12/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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