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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5/20 미국 관련 여러 이야기들 by 사무엘

미국 관련 여러 이야기들

1. 천조국 군대의 기상

미군은 무슨 중국이나 북괴처럼 대규모 거위걸음 열병식이나 매스게임, 특수부대 차력쇼를 벌이면서 자국의 군사력을 과시하지 않는다. 독립기념일이나 대통령 취임식 때 옛날 군대 코스프레 퍼레이드 정도나 하지..
이건 서울대나 육사가 "취업률 xx%" 이러면서 학교 홍보하고 지하철역 안에다가 광고를 붙이지는 않는 것과 정확하게 같은 이치이다.

지금이야 중공과 러시아가 많이 성장해서 미국 패권을 위협 중이긴 하다. 그러나 미국은 단순 국력 물량이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과 자유 민주주의 인권 이념을 바탕으로 세계를 석권하고 세계 질서를 확립한 나라이다. 저 사회주의 독재 국가--겉으로 법은 자유 민주주의 표방이지만, 여전히 옛날물이 많이 묻어 있는 경우도 포함--들이 미국의 이런 진정한 저력을 흉내 내지는 못할 것이다.

2. 한국과 일본과 미국의 과거

1980년대: 우리나라로서는 5공 시절이요, 일본은 쇼와 말기요,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이었다. 이때는 세계적으로 경제가 안정되고 오일 쇼크도 끝나고, 엄청난 호황기였다고 회자된다.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 정보화 시대, 과학 기술에 대한 장밋빛 희망, 우주나 사이보그를 소재로 한 온갖 기발한 SF물들.. 우리나라의 경우 마이카 시대, 일본은 특유의 버블 경제.. 이런 걸 생각해 보자~!

1960년대: 한국은 이때 ‘경부’라는 간선 고속도로 하나를 겨우 간신히 만들었다.
일본은 이때 시속 200km짜리 고속철도 신칸센을 세계 최초로 자체 기술로 개발했다.
미국은 거의 같은 시기에 로켓을 쏴서 인간을 달로 보냈다.;;

(1940년대: 바로 다음에 올라올 글에서 이 시대를 좀 다룰 것이다. ㄲㄲㄲㄲ)

그런데 더 옛날,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전간기이던 1920년대도 이와 비슷하게 세계적으로 좋은 추억이 남겨진 시기였다.
우선 한반도는 3· 1 운동 이후에 문화 통치가 시작됐다. 이때는 그 전의 무단 통치나 그 이후의 민족 말살 통치에 비해서는 훨씬 더 살 만했던 때였다. 항일 독립 운동만 아니면 여러 다양한 사회 활동이 허용되고 온갖 신문물도 들어왔다.

본거지인 일본도 정치판의 분위기가 아직 군국주의로 폭주하기 전이었고 그나마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분위기가 살아 있었다.
하물며 천조국은..?? 라디오 방송과 할리우드 영화, 뉴욕에 초고층 마천루, 포드 T 자동차 마이카.. 전부 얼추 이 시기에 등장했다. 또 국제 연맹도 세계 곳곳에서 마이너한 국가들의 분쟁은 잘 중재하면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좋은 시절은 대공황과 함께 완전히 끝났으며, 이를 계기로 1930년대부터는 세계는 다시 분위기가 슬슬 험악해진다. 국제 연맹은 2차 세계 대전이 터지는 걸 막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정확하게 이 험난한 기간 동안 통치했었다.

3.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징집 관련 일화

미국 남북전쟁은 밀덕의 관점에서 보면 최초로 철도를 통한 보급, 후장식 총기와 저격수, 초보적인 단계의 기관총과 철갑선, 잠수함이 등장한 첨단 과학 기술 전쟁이었다. (풍경 사진과 종군기자는 남북전쟁보다 미묘하게 전인 유럽의 크림 전쟁 때 최초로 등장했고..)

일개 내전 주제에 탱크와 비행기만 없는 1차 세계 대전 급으로 시대를 앞섰던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그런데.. 이 남북전쟁은 징집과 관련된 일화가 전해지는 게 좀 있다. 둘 다 남군과 북군 중 어느 진영의 이야기인지는 확실치 않은데, 어차피 그게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다.

(1) 전사
나라가 전시 상황이 되니 모병이 아닌 징병제가 시행됐다. 그런데 이때 부유층들은 300달러라는 돈을 내고 다른 사람을 대신 입대시키는 것으로 징병 의무를 회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는 대리 입대자도 어차피 징집 대상이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럼 어찌 되는 거지? 아무튼..

A라는 어떤 사람이 B라는 다른 사람을 대리 입대시켰는데, 그렇게 참전한 B는 전장에서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문제는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A에게 징집 영장이 또 날아왔다는 것..
이때 그는 "나는 B라는 사람의 명의로 이미 전사하고 죽은 목숨이다. 이거 뭐 한군두도 아니고, 나는 또 징집되거나 또 국방세 내고 대리인을 내세워야 할 국방의 의무가 없다"라고 항변했다. 이 논리가 인정되어 그는 두 번 다시 징집되지 않았으며, 그게 판례로 정착했다고 한다.

이건 무슨 일사부재리의 원칙처럼 들리는데.. 예수님이 인간을 위해 대신 죽으신 것, '대속'이라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기독교 쪽에서 복음 전할 때 종종 인용되는 예화라고 한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다만, 출처가 불분명하고 그렇게 막 도덕적으로 본이 될 만한 일화까지는 아닌 것이 아쉽다. 부자들은 돈으로 군대를 다 빠진다고 그 당시에도 원성이 자자했었기 때문이다. 전사자를 예우하는 연금도 당연히 A의 유족이 아니라 B의 유족에게 지급돼야 할 것이다.

(2) 포로
옛날에는 전쟁도 현재보다 명분과 체통과 원칙을 따지면서 훨씬 더 신사적이고 고지식하게(?) 하는 면모가 있었다.
미국 남군과 북군이야 비록 지금은 총 들고 싸우지만 상대방이 같은 나라 같은 언어 같은 기독교 문화권인 사람이고, 전쟁이 끝나면 다시 화해해야 할 이웃이었다.

그래서 적군을 포로로 잡았는데 당장 포로를 번거롭게 관리할 여건이 안 되면..
포로를 죽이는 게 아니라 그냥 무장만 해제하고는 풀어 주는 경우가 있었다. 단, 이런 각서를 쓰고 동의를 받게 하고 말이다.

"우리가 사정이 여의찮아서 너를 석방해 주지만 너는 여전히 법적으로 우리 측의 포로이다. 그러니 훗날 포로 교환이 이뤄질 때까지 너는 군사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장교가 적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이런 절차를 거쳐서 풀려났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전선으로 곧장 복귀하고 전투를 지휘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그는 그 각서를 제시하면서 자기는 정식으로 포로 교환을 하기 전엔 군복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군에서는 그 정황을 인정하고 그를 진짜로 내버려 뒀다고 한다.

이거 뭐, 감독 없이 시험을 쳐도 아무도 컨닝을 안 하고, 땅에다 금만 그어 놓고는 감옥이라고 해도 죄수가 거기 얌전히 앉아 있을 것 같은 샤방샤방 분위기이다.
저 때는 적이라도 약속을 지키기는 한다는 신뢰가 있으니 이런 '서류 상으로만 포로'가 가능했음이 틀림없다.

이런 분위기와 정반대였던 전쟁은 아무래도 80년 남짓 뒤의 태평양 전쟁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일본이고 미국이고 모두 상대방을 인간이 아니라 악마 괴물로 취급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다 악이 받친 나머지, 한쪽에서는 적군 포로를 말 그대로 잡아먹었으며(식인).. 다른쪽에서는 적군 시체에서 두개골을 뽑아서 아이템으로 갖고 다니는 Savage 실사판 '인외마경'이 벌어졌던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2/05/20 19:34 2022/05/2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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