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인천 공항이 그야말로 나라를 대표하는 넘사벽 킹왕짱 대표 '중추' 공항으로 등극해 있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의 우두머리 중에서 서울 시장, 여러 국립대들 중에서 서울대, 여러 교육대학교들 중에서 교원대의 총장이 더 예우를 받는 것처럼(차관급이 아니라 유일하게 장관급), 국내 공항들 중에서는 인천이 유아독존이다.
얘는 운영 주체부터가 '인천 공항 공사'로 따로 있을 정도이다. 한국 공항 공사의 관할이 아니다.

이런 인천 제1군의 다음으로, 그나마 수요가 많고 흑자를 내고 있는 제2군 '거점' 공항은 다음과 같다.

(1) 김포: 수도권에 제일 가까이 있기 때문에 입지와 수요가 압도적이다. 다만, 근처의 인천 공항의 영향으로 인해 국제선이 막 활성되지는 않았다. 그냥 국내선(특히 제주)에다 중국(+대만)· 일본 단거리 수요로 먹고 산다. 정확히는.. 김포는 규정상 반경 2000km 이내 노선만 취항한댄다.

(2) 김해: 전국 모든 공항을 통틀어, 인천 "다음으로" 장거리 국제선이 가장 많이 활성화돼 있다. 쉽게 말해 인천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유럽· 미주 노선이 있는 유일한 국제공항이다.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대도시라는 입지 덕분이다. 게다가 그 경남· 부산권에서 미국으로 가는데 인천 공항부터 가는 건 방향도 안 맞으니..

참고로 김포는 인천 공항의 개항 직후부터 약 2년 반 동안은 100% 국내선 전용 공항으로 격하됐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2003년 11월 말에 하네다 행부터 재취항하면서 단거리 노선 한정으로 국제선 간판을 다시 달았다.
2003년 10월 말엔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가 완전히 퇴역했는데, 그로부터 1달쯤 뒤의 일이었다.

김포에 국제선이 다시 생긴 것처럼, 지금은 반대로 인천에서도 제주 국내선을 야금야금 뚫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과연 성사될지 모르겠다. 철도에다 비유하자면 "영등포 역, 대구 역에도 KTX 정차"와 비슷한 떡밥이지 싶다.

(3) 제주: 대도시는 아니지만 섬, 그것도 가장 큰 섬이라는 독보적인 특징이 있다. 여기와 본토 사이엔 육상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에 비행기 100% 독점이다. 국내선 때문에 승객이 엄청나게 많고 바쁘며, 국제선도 중국· 일본을 넘어 동남아 정도는 있다.

김포-제주는 시내버스 급의 간격으로 비행기가 다니는 엄청난 트래픽을 자랑한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항로라고 세계 항덕들과 항공업계 차원에서도 익히 유명하다. 오죽했으면 철도도 아닌 주제에 항로가 복선화됐을 정도이다.

"그렇게도 수요가 많고 비행기표를 못 구해서 난리이면 B747/A380 같은 대형 광동체기를 팍팍 집어넣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고 이는 매우 설득력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제주 공항이 그 정도로 거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물론 제주 공항의 활주로도 스펙상으로 법적으로, 대형기가 이착륙을 하라면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거 한 대 받는 동안 737급 기체 네댓 대가 꼼짝달싹 못 하고 존버해야 된댄다. 공항이 마비돼 버리니 단위 시간 동안 처리 가능한 승객 수가 오히려 감소하며, 수지타산도 떨어진다.

(제주 공항에는 활주로가 X자 모양으로 2개 있긴 하지만.. 다른 하나는 2km도 안 될 정도로 너무 짧아서 실용적으로 쓸 게 못 된다. 그래서 사실상 원래 것 하나밖에 안 쓰이는 상황이다.
원래는 한쪽 바람으로 바람이 너무 심할 때 다른쪽 활주로를 쓰라는 취지로 활주로가 평행이 아닌 수직교차형으로 만들어졌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서귀포 공항을 어정쩡한 크기로 새로 지을 게 아니라 제주 공항을 어떻게든 확장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것도 공항 바로 근처까지 건물이 다닥다닥 늘어선 현 상황에서는 매우 난감해져 있다. 여러 모로 답이 없군;;

다음으로, 김포-김해는 김포-제주보다는 덜 혼잡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요가 많고 수지타산이 맞는다.
육지에서 그 많은 고속버스와 고속철도들이 수요를 엄청나게 흡수하고 있는데도 항공 수요가 여전히 그만큼 또 있다는 게 대단한 지경이다.
이렇게 김포, 김해, 제주 다음으로는 청주, 대구, 무안도 일단 지방 거점 공항이라고 한다.

(4) 청주는 우리나라의 정중앙에 있으니 대전 같은 곳에서 이용하기 좋겠다. 게다가 통금 없는 24시간 운영이라는 이점도 있다.
하지만 좁은 우리나라에서 어정쩡한 위치로 인해 국내선은 일단 제주밖에 없으며.. 국제선도 역시 중국 일본에 일부 동남아밖에 없다. 시간 제약은 없지만 공군과 활주로를 같이 쓴다는 한계도 있다.

대구는 군위군을 합병까지 했는데 군부대 겸 공항이 그리로 이전할 것으로 보인다.
무안은 사고가 났다고 언제까지 영업을 중단하고 반영구적으로 공항을 폐쇄하려는지 모르겠다.

흑자가 나는 공항은 김포, 김해, 제주 다음으로 청주가 거의 마지노 선이라고 한다.
울산, 여수, 광주, 사천 같은 3군으로 가면 인지도가 더욱 감소한다. 어떤 공항은 아예 국제선을 취급하지 않는 국내선 전용이기도 하다.

원주 공항은 공식 명칭이 '원주(횡성)'이지만, 포항 공항은 공식 명칭이 '포항경주'로 바뀌었다. 전자는 공군과 겸용하는 공항이지만 후자는 해군과 겸용하는.. 전국 유일의 해군 소유 공항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 반면, 울산 공항은 군과의 접점이 전혀 없는 순수 민간 공항이다. 얘는 KTX 울산 역보다도 울산 시내에 더 가까이 있으며 태화강 역과의 연계도 괜찮은 편이다.

※ 공항 안팎의 관제소

비행기가 다니는 활주로나 심지어 공중에 무슨 신호등· 신호기 따위를 설치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항공에서는 교통 통제가 지상 관제 시설과의 무선 교신으로 행해진다.
항공 관제라 하면 공항 활주로의 중앙에 제일 높이 솟아 있는 관제탑이 으레 떠오른다. 거기만 해도 사진 촬영조차 금지되는 중요 보안 시설이지만, 공항 관제탑만이 관제의 전부인 건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행기가 순항 중일 때는 매우 넓은 영역에서 항로 관제(지역, area)를 받는다. 그리고 착륙을 앞두고 공항 반경 수십 km 이내에 왔을 때는 접근 관제(approach)를 받으며.. 한 공항 안에 들어왔거나 아직 거기 안에 머물러 있을 때에 공항 관제(tower / ground)를 받는다.
즉, 항로-접근-공항 순의 3단계 tier가 존재한다. 항공 관제사를 육상 선수에 비유하자면, 이들 영역은 마치 단거리 장거리처럼 세부 종목이 다른 셈이다.

항로 관제는 "현재 고도 어디 피트로 상승을 요청합니다" / "귀 항공기를 고도 어디 피트로 허가합니다" 이러는 관제를 말한다. 항공 사건사고 다큐에서 어디 고장이 발생한 비행기의 조종사가 다급하게 지상과 대화를 나누는 상대도 이쪽이다. 국제선 비행기가 남의 나라에 지불하는 영공통과료엔 이런 항로 관제를 받는 비용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 권역에서 항로 관제를 하는 곳은 '항공 교통 본부' 소속의 '인천 항공 교통 관제소'이다. 본부 사무소는 대구에 있지만 실제 관제소는 인천 공항의 동북쪽에 있는 듯.. 철도로 치면 지금 서울 구로에 있는 철도 교통 관제센터와 비슷한 위상이다.

사실, 항로와 공항의 중간에 있는 tier 2 '접근 관제소'가 대외적으로 거의 국정원 급으로 제일 베일에 싸인 것 같다. 전국 곳곳에 딱 14곳이 있는데, 인천, 김포, 서울성남 권역은 '서울 지방 항공청' 소속의 '서울 접근 관제소'에서 맡는다. 서울 접근 관제소는 인천 공항의 동북쪽에 항로 관제소의 바로 옆에 나란히 놓여 있다.

인천처럼 몰려드는 비행기가 많은 곳에서는 접근 관제소가 "너는 뺑뺑이 좀 돌다가 저 비행기 다음으로 들어가세요"라고 정리를 해 주고, 최종적으로 공항 관제탑에서 "너는 저 n번 활주로에 요 방향으로 착륙하세요"라고 허가를 내 준다.

공항뿐만 아니라 이런 관제 시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재미있다.
옛날에 찰스 린드버그 같은 사람은 그야말로 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횡단 비행을 시도한 덕분에.. 저런 복잡한 관제 절차 따위 하나도 없이 깔끔하게 날아갔으며, 남의 나라에 무단 입국도 할 수 있었다. 옛날엔 위험도 있었지만 저런 낭만도 있었다~!

※ trivia

(1) 우리나라는 땅이 좁은 걸 감안하더라도, 그 국력과 인구와 경제력을 감안하면 타 국가 대비 공항이 적은 축에 든다고 한다.
하긴, 일본은 인구 50~100만짜리 소도시에도 그냥 공항도 아니고 국제공항이 떡 있어서 우리나라 LCC 편으로 인천에서 직항을 타고 가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확실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2) 옛~날, 1996년쯤엔가 마이클 잭슨이 방한했을 때는.. 당사자야 물론 김포로 들어왔지만 거대한 공연 장비 화물들은 수송기에 따로 실려서 오산 공군 기지를 통해 반입됐다고 한다. 공간 넉넉한 인천 공항이 그때 있었다면 이렇게 두벌일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3) 나라 차원에서 의전이 필요한 외국 정상 귀빈들은 여느 민간 공항이 아니라 군 공항인 서울 공항에 다이렉트로 들어오는 편이다. 꼭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무슨 6 25 전사자 유해라도 송환한다면 역시 무조건 서울 공항행이다. 그리고 이건 착륙 후 활주로에서 의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수송 단계에서 전투기까지 보내서 호위해 준다.
허나, 북한의 고위 정상은 예외다. 무슨 회담이나 국제 스포츠 행사 때문에 북한 사람이 판문점 육로가 아니라 뱅기로 방남한다면.. 그냥 인천 공항으로 들어오게 한다. 주적에게 서울 공항의 내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게 우리 측 방침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4)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미래에 새로 만들려고 하는 공항들은..
-- 대도시: 부산 동남권 가덕도, 대구-군위, 현 서울 공항의 민간화(아직은 떡밥 수준)
-- 섬: 울릉도, 백령도, 제주 서귀포
정도인 것 같다. 공항의 분야와 성격이 서로 꽤 다르다.
여객기는 꼭 200명씩 타는 보잉 7xx급 제트기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인구 적은 섬에는 버스 한 대 체급의 붕붕 프로펠러기라도 실속 차리면서 날아다니면 좋을 것이다.

(5)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공항은 무려 1910년대 일제 시대 초기에 개항했던 여의도 공항으로 여겨진다. 그때는 합정과 노량진만 해도 조선 시대 기준으로는 사형장이나 무덤이 있었고, 20세기 기준으로 발전소가 있을 정도의 외곽 오지였다. 그러니 하물며 여의도라면 비행장을 만들고도 남는 교외였다.
그 여의도 공항 활주로가 나중에 여의도 광장으로 바뀌었고, 더 나중에 2000년대부터는 지금의 여의도 공원으로 바뀌었다.

물론 ICAO가 출범하고 현대적인 민간 항공 체계가 정립된 건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었으니 이 체계 하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공항은 두 말할 나위 없이 김포이다.
그래서 해방 이후 임시정부 요원들은 여의도 공항으로 입국한 반면, 훗날 이 승만 대통령은 하야하고 하와이로 갈 때 김포 공항에서 출국했다. 제주 공항은 더 나중인 1969년에야 국제로 승격됐다.

(6) 사람이 무슨 상가 같은 게 없이 복도만 겁나게 길게 늘어서 있는 길을 갈 일은 흔치 않다. 개인적으로 이런 곳은 코엑스 내부의 지하 복도, 지하철 7호선 청담 역 내부, 인천 공항 입국장 정도가 떠오른다.;;

(7) 대전 지하철 1호선 대전 역이 매우 깊은 이유는 고속철도의 대전 시내 구간이 지하에 만들어지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 공간을 피해서 깊게 팠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지하화되지 않음)
서해선 김포공항 역이 부산 지하철 만덕 역보다도 깊은 이유는.. 선로가 강이나 언덕 아래가 아니라 활주로 아래를 지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쪽으로 개화산과 한강 아래도 지나고.. 정말 모든 지상 지형을 쌈싸먹어 버리면서 근성으로 길을 만들었다.

Posted by 사무엘

2026/09/29 08:35 2026/09/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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