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다니는 교회에서는 교계에 통상적으로 알려져 있는 성탄절과 부활절이 이교도(pagan) 절기와 섞여서 교리적으로 많이 변질된 비성경적인 절기라고 간주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지키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성육신 탄생 내지 부활 자체를 안 믿는 건 아니다. 단지 예수님의 생일이 12월 25일이라고 가르치지 않으며 크리스마스 트리와 산타 할아버지, 부활절 달걀과 토끼 같은 걸 만들거나 시행하지 않을 뿐이다. 또한, 성경에 예수님의 탄생보다 훨씬 더 분명하고 중요하게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더 중요하게 기념할 뿐이다(일명 성찬식이라고 불리는 주의 만찬).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종교 음악/노래들을 살펴보자.

  • I. 그나마 찬송가 축에 들고 성경 고증대로 예수님의 탄생만을 다루고 있는 <천사들의 노래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 같은 건 종교 텍스트로 치면 진짜로 영감 받은 66권 성경 정도의 퀄리티일 것이고..
  • II. 가사가 성경적인 배경이긴 하지만 크게 교리 측면의 영양가가 없고 찬양으로서의 가치도 별로 없는 노래는 외경 정도의 등급일 것 같다. 어떤 예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니 이 자리에서 밝히지 않겠다.
  • III. 그것보다 더 나아가서 아예 눈썰매, 크리스마스 트리나 산타 할아버지만 나오는 수준의 캐롤은.. 딱히 기독교와 교리적인 관계가 있다고는 볼 수 없고 위경에 가까운 레벨이라고 간주해야 할 것이다.

물론 외경, 위경급이라고 해서 그게 일고의 가치가 없는 쓰레기이고 배척하자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노래 들으면서 연말연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크리스마스가 아무리 세속화했다고 해도 아예 대놓고 드루이드 교의 마귀적인 의식에 기원을 둔 할로윈보다는 낫지 않은가.
다만, 즐기더라도 오늘날의 크리스마스가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와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있지는 않다는 건 알고서 즐길 필요는 있다. 고증상 예수님의 실제 탄생일은 유대인 절기 중의 장막절에 속하는 가을, 우리로 치면 오히려 추석과 더 가깝다.

뭐, 그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서양에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우리로 치면 꽤 중요한 공휴일이다. 한중일 중에서는 대한민국 우리나라만이 유일하게 정부 수립 극초반부터 이례적으로 공휴일로 지정됐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고 초대 대통령이 기독교인이었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11월에 공휴일이 전혀 없는 관계로, 10월 9일 한글날 이후의 공휴일은 거의 70여 일 뒤인 성탄절이다. 12월 25일은 학교에서는 대개 겨울방학이기 때문에 성탄절은 근로자의 날과 더불어, 학교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존재감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양대 공휴일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오늘은 캐롤 얘기를 계속하겠다.
캐롤은 우리나라에 가사가 번역되어 소개된 <징글 벨>, <울면 안 돼>, <루돌프 사슴코> 같은 게 있는데 그냥 초등학교 음악 책에나 나오는 쉬운 동요 수준으로나 알려져 있다.
뭐, <탄일종>은 크리스마스 컨셉을 꽤 우회적으로 표현한 국산 동요이고, <성탄제> 같은 시도 있으니 국산 컨텐츠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외국에서는 우리나라 정서와는 사뭇 다른 크리스마스 노래가 많이 있으며, 그리고 비교적 최근까지도 신곡이 나오고 있다. 짤막한 동요보다야 더 큰 스케일로 말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실버 벨> 같은 것들은 다 1940~1950년대에 발표된 곡이다. 세상에 알려진 지 10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곡으로 내가 아는 것만 열거해 봐도 Do you hear what I hear라든가, 프랑스의 Chants De Noel, The Christmas Song이 있다. 특히 The Christmas Song의 경우 어렸을 때 경험했던 크리스마스 파티에 대한 추억을 굉장히 서정적으로 묘사했다. 첫 단락만 대충 의역 스타일로 옮겨 보면...

매서운 추위 때문에 코까지 빨갛게 시리던 그 날
길거리의 사람들은 에스키모 같은 두툼한 옷차림으로 종종걸음을 했다.
장작불 위로는 밤이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고
성가대가 부르는 캐롤이 울려 퍼졌다.


중간엔 “Everybody knows a turkey and some mistletoe”(칠면조 요리와 겨우살이풀. 다들 잘 알지요) 라는 대사가 있어서 본인은 mistletoe라는 단어를 여기서 처음으로 접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용으로 이 식물이 이런 식으로 쓰이는가 보다. 우리나라 정서상으로는 everybody knows라고 할 수는 없을 듯. 참고로, 아래 그림에서 딸랑딸랑 소리 나는 종이 말 그대로 jingle bell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도 나중에 Enya의 White is in the winter night이라는 캐롤 스타일의 노래를 들으니 저 캐롤이 같이 떠올랐다.

Have you seen the mistletoe? It fills the night with kisses.
Have you seen the bright new star? It fills your heart with wishes.
(...)
Green is in the mistletoe and red is in the holly,
Silver in the stars above that shine on everybody.


위의 그림을 같이 보시라. 풀잎은 green이고 holly(열매)는 빨갛다. 저 문화권에서는 겨우살이풀에 저런 심상이 담겨 있는가 보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성탄제)가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뭐, 종교적인 면을 빼고 생각하자면, 연말을 앞두고 이렇게 촛불 켜고 칠면조구이를 먹고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명절이 있다는 것 자체는 본인 역시 좋고 훈훈하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성경 운운하면서 교리적으로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일체의 관행 자체를 계 11:10의 부정적인 장면과 연관 시키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게까지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을 듯.
마치 성경에서 생일이 부정적으로 나온다고 해서 친구들끼리 일체의 생일 잔치까지 괜히 나쁘다고 매도할 필요는 없듯이 말이다. 그건 그저 사람마다 받아들이기 나름인 재량의 영역이 아닐까 한다.

(창세기 파라오의 생일, 복음서 헤롯의 생일. 다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이며, 그 생일 잔치에 하필이면 사람이 죽는다. 각각 빵 굽는 시종장과 침례자 요한. 보통 왕의 생일 정도면 국가적으로 아주 경사스러운 잔칫날이며, 사형 집행은커녕 죄수들을 사면하고 풀어 주는 날인데 저건 굉장히 이례적이고 이상한 사건이다)

어쨌든, 방문자 여러분께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드리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12/25 08:24 2014/12/2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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