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trivia

1. 21년 전, 기성 교회에서의 크리스마스 성극 추억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1997년 말, 본인은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겨울방학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때 본인이 다니던 교회 중고등부에서는 지도교사 선생님의 주도로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 때 무려.. 뮤지컬을 공연했다. 연극을 하다가 노래가 나올 때면 MR 틀어놓고 그에 맞춰 부르는 거다.

그 뮤지컬의 맨 처음 도입부에서 불렀던 노래가.. 기억에 남아 있는 가사를 검색해 보니 '마리아의 아기 예수'라는 곡이고 가사가 다음과 같다.
국내곡인 것 같지는 않은데.. 원곡의 제목과 가사는 무엇인지 정체를 알 길이 없다.

"오래 전 베들레헴에 성경 말씀 그대로
마리아의 아기 예수 오늘 탄생하셨네
천사 찬송하기를, '왕이 나셨다'
그를 믿는 모든 자는 영생을 얻으리.."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라면 이런 컨텐츠는 심의상 공연 불가일 것이다.
이 진영에서는 '아기 예수' 이런 말 별로 안 좋아한다. 산타 클로스, 크리스마스 트리, 12월 25일 예수 생일 이런 거 다 생깐다. 그런데 그걸로도 모자라서 '마리아의 아기 예수'라니! 이런 OO교스러운 심상이 담긴 용어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성도들 중에 심지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말조차 싫어하는 프로불편러도 있기 때문에, 저런 게 버젓이 공연되었다가는 곧장 클레임 들어온다.

뭐 난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성탄절이 잘못된 거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탄생 자체가 잘못된 교리는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12월 25일이라도 쉬는 나라가 안 쉬는 나라보다는 나으며, "메리 크리스마스"가 "해피 할리데이" 이딴 말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고로 본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노선을 지지한다.. =_=;;;

그 뮤지컬은.. "크리스마스 추억"이라는 주제로 그 안에서 또 세 갠가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었다.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이 평소에 짜장면을 미치도록 너무 좋아해서 크리스마스 성극을 공연하던 중에도 "손님, 짜장면은 뭘로 드시겠습니까?"라고 NG를 낸 이야기가 있었다.

성탄절의 유래고 뭐고 교리 지식 다 제끼고 동심, 감성, 추억만 생각하면 저런 게 참 훈훈한 기억이다. 그 뮤지컬 각본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좋겠다. 허나, 그런 긍정적인 심상이 어째 이교도의 전통과 혼합되어 변질되었는지를 같이 생각하면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빨간 싼타 모자 쓰고 열심히 율동 가르치는 주일학교 교사들 동영상도 검색하면 많이 나오는데.. 착잡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ㅠ.ㅠ

주일학교라는 게, 그 당시에는 꼬마들이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선생님하고 같이 노래 부르고 떠들고 놀지만, 그게 커서까지 추억으로 각인되는 효과를 노린다. 그러니 유아 교육이 유치하고 시시하고 당장 지쩍으로 드러나는 효과가 없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물론 나의 동심, 감성, 추억 분야의 결정판은.. 더 말하자면 입만 아프겠지만 2003~04년에 접한 새마을호 Looking for you이다. 요한계시록을 끝으로 신구약 성경이 완결되었듯이 Looking for you가 그냥 영원한 종지부를 찍었다.
국영 독점 교통수단에서 이런 음악이 흘러나왔다는 것은 충격 중의 충격으로 나를 철덕의 블랙홀로 빨아들이게 했다. 이걸 능가하는 충격은 내 인생에 다시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2.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얘는 성경을 소재로 하는 얼마 안 되는 찬송가 중 하나이다.
완전 동요풍인 "신구약 성경책 (The B-I-B-L-E oh that's the book for me)" 다음으로 조금 나이가 들면 주일학교에서도 접하게 된다.

"나의 사랑하는 책"은 영어로 가사 첫 줄은 There's a dear and precious book..이고 원제는 My mother's bible이다.
"비록 해어졌으나"를 "비록 헤어졌으나"라고 ㅐ를 ㅔ로 잘못 기재한 책이나 사이트가 의외로 굉장히 많다. 구글 같은 검색엔진들에서 자동 완성이 '헤어졌으나'라고 제시될 정도다.
영어 가사가 Tho' it's WORN and faded now이니, 우리말로도 worn out을 뜻하는 '해지다'가 맞다. 어머님의 성경책이 다 낡은 채로 남아 있기라도 하냐, 아니면 영영 잃어버렸거나 심지어 빼앗겼냐의 차이이다. 후자라면 작사자는 젊었을 때 신앙을 잃었다가 탕자의 아들처럼 되돌아온 것일 수도 있게 된다..;;

한편, 이 찬양은 3절 가사가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즉, 우리말로는 어머님이 우셨다고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원래 가사는.. "Then she dried my flowing tear with her kisses as ..."
"내가 울었고" 어머니께서 내 눈물을 닦아 주셨다는 뜻이다..;;
물론 단위 음절당 들어갈 수 있는 정보량이 한국어와 영어가 서로 쨉이 안 되니, 이런 보정은 오역이나 변개는 아니다. 단지 다르다는 것이다.

2절 가사도.. 우리말은 다니엘, 다윗, 엘리야가 언급돼 있지만 원래 가사는 엘리야가 아니라.. '요셉'이 언급돼 있다. 뭐, 요셉보다는 엘리야가 더 포스가 있는 인물인 건 인정한다만..
엘리야가 "병거를 타고" 무슨 은하철도 999처럼 하늘에 올라갔다는 가사는 약간 고증 오류이다.

왕하 2:11을 보면, 불길에 활활 타는 모양의 병거가 나타났다고만 했지, 엘리야가 그 행렬에 직접 합류하거나 병거를 타고 승천했다는 말은 없다. 그냥 혼자 몸뚱이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승천했다.
영어 가사는 애초에 엘리야를 언급하지 않으니 이런 오류도 존재하지 않는다.

3. 나는 인생의 산과 들 방황하며

위의 제목으로 오랫동안 방황하며 인생을 허비하다가 뒤늦게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된 기쁨을 노래한 찬송가가 있다.
얘는 작사· 작곡자가 따로 전해지는 외국곡인데, 원곡은 애초에 찬송가가 아니었다. 그냥 "그대를 향한 사랑 영원할 것이오"라는 내용의 일반 노래이다. 우리말 가사는 영어 가사와는 무관하며 완전히 새로운 창작이다.

그러니 이 곡은 찬송가로서는 Believe me if all those endearing young charms 같은 원제를 기재해 줄 필요가 없다.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곡에다가 "존 브라운의 시체" 영어 가사를 병기할 필요가 없듯이 말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인생의 산과 들 방황하며"의 마지막 2절 가사 끝부분은 "시냇물 흘러 바다에 돌아가듯 나는 주 안에 잠겨지네"이다.
이 찬송을 부르면서 본인은 늘 궁금했다. 가사를 쓴 사람이 졸업식 노래를 참고하기라도 했는지 말이다.

졸업식 노래의 3절 끝부분은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인데..
찬송가 가사에 저런 냇물-바다 비유가 들어갈 일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주 안에 잠겨지네.."는 침례도 아니고 도대체 어떤 심상을 의도한 것일까? 누가 무슨 동기를 받아서 이런 가사를 썼는지가 무척 궁금해진다.

4.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라는 찬송가가 있다. 가사의 특성상 간증 집회나 연말 송구영신 때, 혹은 교회 창립 기념 예배 때 두루 부르기 좋다. 극동 방송 발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 조사에서 당당히 2등을 차지했다고 한다.

얘는 "복의 근원 강림하사"와 동일한 외국곡 멜로디가 붙어 있는데, 그것 말고 박 재훈 작곡의 민요풍 멜로디 버전도 있다. 이 작곡자에 대해서는 "어서 돌아오오"의 작곡자라고 얘기해 주면 한국인이라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둘 다 3박자 계열인 건 동일하며, 우리나라 찬송가에는 두 곡이 모두 실려 있다.
한국곡 멜로디는 "부름 받아 나선 이 몸"과 분위기가 꽤 비슷하게 느껴진다만.. 그래도 "부름 받아..."의 작곡자는 다른 인물이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의 멜로디 말고 가사의 출처를 살펴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본인도 굉장히 최근에 알게 된 건데.. 얘는 한국인 작사는 당연히 아니고 그렇다고 찬송가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 유럽 계열도 아니다.

이 곡의 작사자는 보통 T. Sasao라고 소개돼 있는 편인데, 일본인이다. '사사오 데쓰사부로'(笹尾鐵三郞 1868-1914)라고 메이지 시대를 주로 살았던 성결교 목사이다. 데쓰(tetsu)는 '철'의 일본어 음일 뿐이며 death하고는 당연히 무관하다.
영어 가사가 멀쩡히 기재돼 있어서 일본인 작사가 아닌 것 같지만 이것 역시 일본어로부터 나중에 번역된 것이다.

이 곡의 진짜 원어 가사는 이렇다. きょうまで守られ
일본어를 모르는 본인이 보기에도.. 1절 지금(今日)까지 지내 온 것, 2절 몸과 맘도 연약하나(か弱き者を), 3절 주님 다시 뵈올 날이(主の日) 등 우리말과 일본어가 앞부분이 얼추 일치하는 것 같다.

사사오 데쓰사부로가 작사한 다른 대표적인 찬송가로는 "우리들의 싸울 것은 혈기 아니요"가 전해진다. March we onward 이렇게 시작하는 영어 가사가 있지만, 외국 사이트에서 검색이 잘 되지 않을 것이다. 어쩐지 옛날 가사는 '일심'도 그렇고 약간 일본어스러운 표현이 있더라. 그래도 저 사람은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의 작사자로 훨씬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듯하다.

다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나 위하여 십자가에 중한 고통 받으사.."이다.
"My life flows on in endless song; (...) How can I keep from singing?"이라고 Robert Lowry 작사의 가사가 분명히 전해지는데..
우리나라 찬송가에는 동일 멜로디에 "My life flows rich in love and grace (...) How can I keep from singing?"이라는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가사와 함께 T. Sasao가 기재돼 있다. 작사자가 잘못 기재된 것 같은데 제2의 영어 가사는 정체가 뭔지 궁금해진다.

이런 식으로 오늘날 교회에서 불리는 찬송가들의 출처와 계보, 탄생 배경들을 연구해 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다. 성경으로 치면 주석을 같이 보는 것과 같다. 계보가 의외로 복잡하고 배배 꼬인 것, 전혀 찬송가가 아닌 멜로디에다가 번역이 아닌 창작 수준의 가사가 붙은 게 많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곡들의 출처를 구글 검색 한 번으로 바로 알 수 있지 않고, 또 저작권에 대한 개념도 정립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12/24 08:35 2018/12/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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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다니는 교회에서는 교계에 통상적으로 알려져 있는 성탄절과 부활절이 이교도(pagan) 절기와 섞여서 교리적으로 많이 변질된 비성경적인 절기라고 간주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지키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성육신 탄생 내지 부활 자체를 안 믿는 건 아니다. 단지 예수님의 생일이 12월 25일이라고 가르치지 않으며 크리스마스 트리와 산타 할아버지, 부활절 달걀과 토끼 같은 걸 만들거나 시행하지 않을 뿐이다. 또한, 성경에 예수님의 탄생보다 훨씬 더 분명하고 중요하게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더 중요하게 기념할 뿐이다(일명 성찬식이라고 불리는 주의 만찬).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종교 음악/노래들을 살펴보자.

  • I. 그나마 찬송가 축에 들고 성경 고증대로 예수님의 탄생만을 다루고 있는 <천사들의 노래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 같은 건 종교 텍스트로 치면 진짜로 영감 받은 66권 성경 정도의 퀄리티일 것이고..
  • II. 가사가 성경적인 배경이긴 하지만 크게 교리 측면의 영양가가 없고 찬양으로서의 가치도 별로 없는 노래는 외경 정도의 등급일 것 같다. 어떤 예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니 이 자리에서 밝히지 않겠다.
  • III. 그것보다 더 나아가서 아예 눈썰매, 크리스마스 트리나 산타 할아버지만 나오는 수준의 캐롤은.. 딱히 기독교와 교리적인 관계가 있다고는 볼 수 없고 위경에 가까운 레벨이라고 간주해야 할 것이다.

물론 외경, 위경급이라고 해서 그게 일고의 가치가 없는 쓰레기이고 배척하자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노래 들으면서 연말연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크리스마스가 아무리 세속화했다고 해도 아예 대놓고 드루이드 교의 마귀적인 의식에 기원을 둔 할로윈보다는 낫지 않은가.
다만, 즐기더라도 오늘날의 크리스마스가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와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있지는 않다는 건 알고서 즐길 필요는 있다. 고증상 예수님의 실제 탄생일은 유대인 절기 중의 장막절에 속하는 가을, 우리로 치면 오히려 추석과 더 가깝다.

뭐, 그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서양에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우리로 치면 꽤 중요한 공휴일이다. 한중일 중에서는 대한민국 우리나라만이 유일하게 정부 수립 극초반부터 이례적으로 공휴일로 지정됐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고 초대 대통령이 기독교인이었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11월에 공휴일이 전혀 없는 관계로, 10월 9일 한글날 이후의 공휴일은 거의 70여 일 뒤인 성탄절이다. 12월 25일은 학교에서는 대개 겨울방학이기 때문에 성탄절은 근로자의 날과 더불어, 학교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존재감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양대 공휴일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오늘은 캐롤 얘기를 계속하겠다.
캐롤은 우리나라에 가사가 번역되어 소개된 <징글 벨>, <울면 안 돼>, <루돌프 사슴코> 같은 게 있는데 그냥 초등학교 음악 책에나 나오는 쉬운 동요 수준으로나 알려져 있다.
뭐, <탄일종>은 크리스마스 컨셉을 꽤 우회적으로 표현한 국산 동요이고, <성탄제> 같은 시도 있으니 국산 컨텐츠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외국에서는 우리나라 정서와는 사뭇 다른 크리스마스 노래가 많이 있으며, 그리고 비교적 최근까지도 신곡이 나오고 있다. 짤막한 동요보다야 더 큰 스케일로 말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실버 벨> 같은 것들은 다 1940~1950년대에 발표된 곡이다. 세상에 알려진 지 10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곡으로 내가 아는 것만 열거해 봐도 Do you hear what I hear라든가, 프랑스의 Chants De Noel, The Christmas Song이 있다. 특히 The Christmas Song의 경우 어렸을 때 경험했던 크리스마스 파티에 대한 추억을 굉장히 서정적으로 묘사했다. 첫 단락만 대충 의역 스타일로 옮겨 보면...

매서운 추위 때문에 코까지 빨갛게 시리던 그 날
길거리의 사람들은 에스키모 같은 두툼한 옷차림으로 종종걸음을 했다.
장작불 위로는 밤이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고
성가대가 부르는 캐롤이 울려 퍼졌다.


중간엔 “Everybody knows a turkey and some mistletoe”(칠면조 요리와 겨우살이풀. 다들 잘 알지요) 라는 대사가 있어서 본인은 mistletoe라는 단어를 여기서 처음으로 접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용으로 이 식물이 이런 식으로 쓰이는가 보다. 우리나라 정서상으로는 everybody knows라고 할 수는 없을 듯. 참고로, 아래 그림에서 딸랑딸랑 소리 나는 종이 말 그대로 jingle bell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도 나중에 Enya의 White is in the winter night이라는 캐롤 스타일의 노래를 들으니 저 캐롤이 같이 떠올랐다.

Have you seen the mistletoe? It fills the night with kisses.
Have you seen the bright new star? It fills your heart with wishes.
(...)
Green is in the mistletoe and red is in the holly,
Silver in the stars above that shine on everybody.


위의 그림을 같이 보시라. 풀잎은 green이고 holly(열매)는 빨갛다. 저 문화권에서는 겨우살이풀에 저런 심상이 담겨 있는가 보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성탄제)가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뭐, 종교적인 면을 빼고 생각하자면, 연말을 앞두고 이렇게 촛불 켜고 칠면조구이를 먹고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명절이 있다는 것 자체는 본인 역시 좋고 훈훈하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성경 운운하면서 교리적으로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일체의 관행 자체를 계 11:10의 부정적인 장면과 연관 시키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게까지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을 듯.
마치 성경에서 생일이 부정적으로 나온다고 해서 친구들끼리 일체의 생일 잔치까지 괜히 나쁘다고 매도할 필요는 없듯이 말이다. 그건 그저 사람마다 받아들이기 나름인 재량의 영역이 아닐까 한다.

(창세기 파라오의 생일, 복음서 헤롯의 생일. 다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이며, 그 생일 잔치에 하필이면 사람이 죽는다. 각각 빵 굽는 시종장과 침례자 요한. 보통 왕의 생일 정도면 국가적으로 아주 경사스러운 잔칫날이며, 사형 집행은커녕 죄수들을 사면하고 풀어 주는 날인데 저건 굉장히 이례적이고 이상한 사건이다)

어쨌든, 방문자 여러분께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드리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4/12/25 08:24 2014/12/2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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