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노선도!

지금 각종 SNS와 구글, 네이버 등 검색엔진에서 '성경 노선도'라는 이름으로 떠돌고 있는 아래 그림은 원저자가 본인이다. 김 용묵, 내가 고안한 것임을 이 자리를 통해 밝힌다.

너무 남사스러운 거 같아서 그림에다 딱히 저작권 표시를 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자기가 만들지 않은 작품을 자기 것이라고 사칭하는 일은 막기 위해서 최소한의 출처는 알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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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철도와 성경이라는 두 분야를 서로 융합해서 표현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끝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품을 최초로 만든 건 2006년경이다. 다음은 2006년임을 인증하는 최초의 그림 링크이다.

그러다가 본인은 내 혼자서 발로 그린 노선도를 디자인 일을 하시는 교회의 모 자매님에게 부탁하여 깔끔한 그림으로 만든 뒤, 청지기 카페와 킵바이블에다가 공개했다.
그랬는데 역시 킵바이블의 인지도 덕분인지 이 노선도는 인터넷에서 크리스천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누가 만든 건지도 모르는 채로.. ㅎㅎㅎ

주황과 분홍 같은 붉은 계열은 신구약 성경의 배경 지식이 되는 기초에 속한다. 구약에서는 모세오경, 신약에서는 복음서이다.

파란색은 역사서이다. 구약에서는 역사서가 모세오경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에스더기 구간이 저런 선형을 하고 있는 이유는 시간적으로 느헤미야보다 이전이기 때문이다.
신약에서는 역사서가 사도행전이 전부이며, 사복음서 중 당연히 누가복음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자주색은 소위 대언서로, 신약에서는 계시록이 유일하다.
구약에서 위쪽은 major prophets이고 아래쪽 호세아부터는 minor prophets이다.

사무엘하~열왕기하, 그리고 역대기상~역대기하는 병렬로 배열되어 있고, 이를 대언서가 수직으로 관통한다. 왼쪽은 다윗 이전이고, 오른쪽은 다윗 이후이다.
그리고 에스라와 그 오른쪽의 책들은 바빌론 포로 귀환 이후의 시간대이다.

다음, 연두색은 문학서이다. 욥기는 창세기 시대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룻기는 역사적으로는 사사기 중간에 속하지만 결말이 다윗의 계보로 끝나는 점을 감안하여 그림과 같이 분류했다.
문학서는 위쪽을 차지하면서 예레미야서와 교차하여 예레미야애가로 끝나게 배치한 것이 특징.

신약을 보면, 사도행전 중간부터 바울이 활동하기 시작하므로 바울 서신서의 노선은 그림과 같이 분기되어 나온다.
시기적으로 사도행전 28장까지 다 끝난 뒤에(로마 감금 내지 그 이후 4차 전도 여행) 기록된 것은 사도행전보다 오른쪽에 놓인다.
데살로니가 서신은 바울 서신들 중 상당히 초기에 기록된 서신임을 알 수 있다.

히브리서는 바울 서신과 일반 서신의 경계에 있는 독특한 책이므로 응당 저렇게 배치된다.

즉, 이 노선도는
성경 각 책의 성격, 책이 다루는 연대나 기록된 연대, 그 책이 성경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적당히 시각적으로 나타내면서 책의 66권 배열 순서도 크게 안 흐뜨리려 했다.

사소한 고증 오류가 있을 수는 있으나, 취지는 충분히 설명되었으므로 그런 부분만 약간 고치면 성경에 대한 시청각 교육에 꽤 유용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쪼록 우리 인류에게 성경을 남겨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한국 철도에게 영광 돌리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10/08 08:31 2013/10/0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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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일 리플링거(Gail Riplinger). 1947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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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벌식 글자판 운동에다 비유하자면, 거의 킹 제임스계의 송 현 선생님 같은 분.
여성이지만 변개된 역본들을 까는 전투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만렙이다. 변개된 성경 옹호자 내지 원어· 원문를 빠는 사람들의 천적, 나이트메어이며, 킬러요 저격수이다. 나 같은 사람은 감히 범접할 수조차 없는 세계적인 전문가이다. 다만, 그 덕분에 주변에 적도 엄청 많다.

구글에서 사진을 검색해 보면 일반 사진보다는, TV에 노출된 장면이 캡처된 게 더 많이 걸려 나온다. 예쁘장한 전형적인 미국 아줌마 인상이라나? 단, 그런 것들은 대개 최소한 20세기 시절의 굉장한 옛날 사진이다.

이분은 New Age Bible Version(국내엔 <뉴에이지 성경 역본>이라고 소개됨), In Awe of Thy Word, Hazardous Materials 같은 전설적인 책들을 썼는데, 다들 수백~천몇백 페이지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거작이다.
그냥 성경간의 차이를 대조하는 수준이 아니라, KJV를 공격하는 데 쓰이는 알량한 히브리/그리스어 원어 사전이나 원문부터가 완전히 헛점투성이이고 싸그리 잘못된 이유를 다 밝혀 낸다. 그리고 그 바닥 학계가 얼마나 허접하고 더러운지를 까발린다. 종교적이 아니라 학술적으로 말이다.

그렇게 적을 상대로는 디버프를 시켜 놓고, KJV에 대해서는 버프 그 자체다. 언어 차원에서 성경의 영어 번역은 KJV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 없음을 논증하고, KJV의 영어는 매 단어 하나 하나가 거의 뜻글자나 마찬가지라는 수준으로 의미 부여를 시켜 준다. 가령, do의 3인칭 단수가 왜 굳이 doth(더쓰)와 doeth(두이쓰)로 달리 존재하는지 같은 것까지 다 아무렇게나 번역된 게 아니라는 거다.

과장 좀 보태면, 400여 년 전의 KJV 번역자들보다 KJV를 더 잘 알 것 같기도 한 사람이다.

본인은 이분의 저서 Hazardous Materials의 일부를 번역하는 일에 투입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chapter 1만 봐도 이건 뭐..
다음과 같은 기상천외한 비유가 들어간 문장들을 생각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이분밖에 없다. ㅋㅋㅋㅋㅋㅋ 번역하면서 내가 다 놀랐다.
나부터가 글을 좀 호전· 도발· 공격적으로 쓰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그런 스타일의 글을 번역할 때도 동질감이 느껴진다.

1. 신학교 교수가 강의실에서 포르노를 보여주고는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 보라. “이브의 ‘원판’(original)은 원래 이렇게 생겼지요. 그러니 여러분의 와이프라는 ‘판본’(version)은 원본보다 열등합니다.” 원어 어휘집은 우리의 신앙에 이와 동일한 맥락의 악영향을 끼치니, 정말 기독교계의 포르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이런 체계 하에서 성경학도들은 끝없이 배우지만 진리의 지식에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소프트웨어와 서적들을 모으면서 “지혜로워지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신들처럼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이미 뱀의 편이 되고 말았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더냐?” (Yea, hath God said?)

3. 에이즈(AIDS)라는 질병은 원래는 GRID(게이와 관련된 면역 체계 이상증세)라고 불렸다. 그런데 오늘날은 또 다른 GRID(그리스어와 관련된 면역 체계 이상증세)가 학생들을 물들이고 있다. 영적 면역력을 파괴하여 이단으로 빠지게 하는 것이다.

4. 하다못해 주변에 마약이나 포르노에 대한 유혹이 있다면, 성령의 검인 성경이 신자를 지켜서 그런 것들이 얼씬도 못 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마귀가 그 검을 빼앗아 버리면, 검을 빼앗긴 사람은 앞으로 어떤 공격도 막을 수 없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5. 필자는 자라나는 대학생들로 인한 마음의 부담 때문에 매일 이렇게 기도한다. 그들에게 거짓을 가르치는 자들은 어서 회개하고, 만약 회개를 거부한다면 그들의 거짓말이 강제로라도 잠잠해지기를 말이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합법적으로 거짓말을 해도 되고 거짓말이 최소한 ‘영적인’ 해악을 끼치지는 않는 직업을 선택하면 얼마나 좋을까? 중고차 판매 영업사원이 적절할 것 같다. 주님은 여러 위험한 교수들과 성경 의심쟁이들을 본업에서 끌어내셨으며, 일부를 진짜로 중고차 판매업계로 보내 버리신 적이 있다.


사실, 영어로 the original이라고 하면 원어도 되고 원문도 된다. 성경 번역의 품질은 얼마나 정확한 원문을 바탕으로 얼마나 정확한 언어 지식을 동원하여 번역하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킹 제임스 진영에서 기존 성경들이 다 변개되었다고 주장하는 건 대부분이 '원문' 문제이고 <뉴에이지 성경 역본> 같은 책도 다루는 분야가 이쪽이다. 오리겐 같은 사람이 변개한 부패한 원문을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같은 학자가 본문 비평이라는 정신승리 궤변을 들고서 다시 끄집어내어, 성경의 주류로 끌어올려 놓은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거대하고 치밀한 음모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리플링거 박사의 관심사는 원문을 넘어서서 이제 '원어'로 넘어갔다.
변개된 성경에 대해서는 경각심이 생긴 사람들의 마음을 도저히 고칠 수가 없으니, 악의 무리들은 이제는 본문은 KJV 그대로 놔 두더라도 단어의 뜻이 이게 아니고 원어로는 이렇다는 식으로 사기를 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로는 아가페 사랑과 에로스 사랑을 구분해서 표현할 수 없다거나, 하나님의 이름은 히브리어 사자음어 때문에 음가를 영원히 알 수 없다는 식의 괴담 말이다.

그래서 새로 나온 책은 변개된 역본이나 본문에 이어 원어 어휘집, 사전을 신랄하게 까고 있다.
요즘은 사전을 만들 때 편찬자의 주관이 아니라 다량의 말뭉치 분석을 통해서, 거기에 드러난 어휘의 용례를 바탕으로 뜻풀이를 추출하는 게 대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원어 어휘집들의 밑천은 이집트나 그리스 이교도들이 남긴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은 문헌이라는 점이다.

그런 엉뚱한 걸 갖다대고는 단어의 의미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면 KJV의 오역이라고 트집 잡고 넘기고, 심하면 KJV의 단어의 의미를 세속· 인본주의적인 뜻으로 완전히 왜곡해 버린다. 특히 지옥, 대속, 기도, 은혜 같은 단어가 그런 식으로 왜곡되면 이건 뭐 기독교의 근간이 다 무너지지 않겠는가?

단적인 예로 virgin이 사실 원어에 따르면 굳이 처녀가 아니라 '젊은 여성'도 된다. 이런 식으로 원어드립을 치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도 얼마든지 공격하고 부정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이 주제로는 할 말이 무척 많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글을 맺겠다. 요컨대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서는

1. 변개되지 않은 바른 본문에서 번역되었으며,
2. 모든 바른 필사본들을 온전히 집대성했다.
3. 원문을 그 누구보다도 탁월한 실력으로 번역했고,
4. 원문을 교리적으로 바른 사상으로 번역했다.


이렇게 알면 정확할 것이다.
1은 무슨 뜻인지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겠지만, 2는 세상의 그 어떤 성경 필사본도 단일 필사본에 성경 66권 전서가 다 담겨 있지는 않기 때문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2가 불안하면 마가복음 16장의 마지막 열두 구절이라든가 요한일서 5:7 삼위일체 문제에서 걸려 넘어지게 된다.
1과 2는 원문 계층이고 3과 4는 원어 계층이다. 3은 KJV의 이스터(행 12:4) 같은 우수한 번역을 뒷받침하며,
4는 KJV가 동성애· 여자 목사 옹호, 지옥 부정 같은 불온사상에 물들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성경 역본 논쟁은 확실히 창조-진화 논쟁 바닥과 비슷한 양상이다. 원숭이와 사람 사이의 중간 화석이 없는 것만큼이나 원어· 원문의 막연한 환상도 허상일 뿐 그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창조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 그 뒤의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 재림 같은 것도 결코 믿을 수 없게 되듯, 성경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 성경에 기록된 그 어떤 말씀도 믿을 수 없게 된다.

KJV 신자의 믿음은 이런 성경 구절 패러디로도 요약될 것 같다. 매우 적절한 비유이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 (요 14:9)
킹 제임스 성경을 본 자는 이미 original(원어+원문)을 보았거늘, 어찌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original을 보여 주소서, 하느냐?


한글-한자 논쟁으로 비유하자면, 리플링거 박사는 수천 년 전의 한중일 한문 고전을 죄다 술술 읽고 해석해 내는 한문 전문가뻘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계몽을 위한 한글 전용을 적극 지지하고 한자 기득권 속에 숨은 위선자 헛똑똑이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의로운 일을 하는 셈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언어 가지고 말장난을 하시지 않는다. 언어 장벽은 인간의 동반 타락을 막기 위해 허락하신 것일 뿐, 이것이 성경 말씀에 대한 접근성 제약을 의도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아무쪼록 리플링거의 책의 번역문이 어서 출판되어 나와서 국내의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성경에 대한 바른 믿음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Posted by 사무엘

2013/10/02 08:37 2013/10/02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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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 국회 기도문

대한민국이 기도로 시작한 나라라는 걸 정치적으로 좀 우파 성향인 크리스천이라면 어렴풋이 들어서 알 것이다.
본인은 수 년 전, 우리나라 초대 겸 건국 대통령인 이 승만 박사의 옛 저서 Japan Inside Out의 번역판인 <일본 그 가면의 실체>가 국내에 출간됐을 때, 그 책을 통해서 저 기도문을 처음으로 접했다.

잠시 역사 배경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대한민국의 제1대 국회인 대한민국 제헌국회는 대한민국 헌법을 첫 제정한 국회이며 1948년 5월 31일 구성되고 1950년 5월 30일까지 활동하였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을 구성원으로 한 최초의 국회이다. (한국어 위키백과 설명)

그 당시는 우리나라에 국회 의사당 건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서울 광화문 근처의 옛 중앙청 홀--김 영삼 정권 때 헐린 그 튼튼한 건물--에서 국회의원들이 모였다.
국회의원들은 정확히 세 주 전에 열린 5· 10 총선거 때 선출된 사람들이다. 남한만 단독으로 총선거를 해 버려서 남북 분단이 고착화되었다는 우려도 받았으나, 북한은 어차피 그 전에 이미 조선로동당 대회를 자체적으로 치렀으니 통일은 애초에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자, 그래서 1948년 5월 31일 아침 10시경이 되었다.

* 임시 의장 이 승만

대한민국 독립 민주국 제 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 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 이 윤영 의원 기도 (일동 기립)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성시하신 것으로 저희들은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풀어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 땅에 오지 않을 수밖에 없을 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컨대 우리 조선 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우리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여 저희들은 성스럽게 택함을 입어가지고 글자 그대로 민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우리들의 책임이 중차대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고 우리 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할 때 지와 인과 용과 모든 덕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요소를 저희들이 간구하나이다.

이제 이로부터 국회가 성립이 되어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되는, 모든 세계만방이 주시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며 또한 이로부터 우리의 완전 자주독립이 이 땅에 오며 자손만대에 빛나고 푸르른 역사를, 저희들이 정하는 이 사업을 완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회의를 사회하시는 의장으로부터 모든 우리 의원 일동에게 건강을 주시옵고 또한 이겨서 양심의 정의와 위신을 가지고 이 업무를 완수하게 도와 주시옵기를 기도하나이다.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환희와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이 기도문은 이 윤영 목사가 원고를 미리 써 와서 읽은 게 아니라는 걸 유의하자.
이 승만 의장이 현장에서 갑작스럽게 즉흥으로 요청을 해서 기도가 시작된 것이다. 즉, 이건 애드립이다. 텍스트는 속기사가 받아 적어서 만들어졌다.
이런 건 좀 공신력 있는 사이트에 문헌으로 좀 기재되어 있어야 할 텐데 국회 홈페이지나 위키문헌엔 없나?
<날개셋> 타자연습에는 저 글이 연습글로 수록되어 있다.

뭔가, 아폴로 8호 승무원의 창세기 낭독 사건 같은 걸 보는 느낌이지 않은가.
이런 거 읽을 때만큼은 제발 후천년주의니 정교일치니 그딴 삐딱한 시선은 잠시 집어치우고, 일단 감격하고 감사할 줄 좀 알자.
누군 뭐 국가나 정치와 관련된 성경적 입장을 모르는 줄 아나..?

한쪽에서는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 오늘 같은 날을 있게 하신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속히 오기를 축원하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이러면서 나라를 세웠다.

이 국회를 통해 1948년 7월 17일에 대한민국의 첫 헌법이 공표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공휴일에서 빠진 국경일 제헌절이 이 날로 제정된 것이다.

그 반면, 반대편에서 비슷한 시기에 벌인 북조선 로동당 2차 대회(1948년 3월 27일~30일)는 분위기가 아마 어땠을까? -_-;;
그때는 워낙 초창기이기 때문에 북한도 내부에 여러 파당이 있었으며 노골적인 김씨 우상화는 지금보다 덜했었다.
하지만 이미 인간성 말살이 시작되고 반대파 '반동'들을 비판하고 숙청하고, “동무들, 인민 해방을 위한 과업을 어서 완수하시오” “소련으로부터 지원 받아서 미 제국주의 남조선 원쑤들 다 쓸어버립시다” 이런 권모술수와 추악한 음모가 진행 중이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북한이 태극기 대신 자체적인 인공기를 제정해서 쓴 게 1948년 초쯤부터이고, 애국가도 자기네 애국가를 1947년 하반기부터 채택했으니, 이미 남북 영구 분단 고착은 그 무렵부터 예고된 귀결이었다. 쟤들은 소련의 군사· 경제력을 등에 업고 시민들은 공산주의 지상락원으로 선동하고, 서로 비판하고 감시하고 못 믿게 만들고 팀웍을 해체시키는 방법으로 권력을 꽉 장악해 갔을 것이다.

난 이걸 생각하면 소름이 확 돋는다.
어디 누가 누굴 보고 대한민국이 처음부터 더럽게 시작되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정체성을 부정하고 앉았는가? 괘씸한 놈들!

난 우리나라가 건국 이래로 예수 믿고 교회 댕기고 예배드리고 심지어 거리설교까지 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던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자유는 정말 넘치도록 잘 보장되어 있었고, 극소수 있었던 부조리와 제약은 종북 불순분자 빨갱이들 빼고는 하나도 걸릴 게 없었다는 생각이 변함없다.

이 승만 전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건국 대통령으로 충분히 예우받고 존경받아야 한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잘못한 것들은 잘한 것에 비하면 정말 사소하고 불가피하고 최소한 악의는 없었던 것들이다. 특히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친일파 드립은 내 눈에 띄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다 조직적으로 반박해 줄 것이며, 앞으로 기회가 되면 이 주제만으로 또 블로그에다 글을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무에게나 정말 양심에,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물어 보고 싶다. 종북 빨갱이들조차 적으로 안 보이고 혁명가 투사로 보일 정도로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그렇게도 엿같고 개판이고 다 갈아엎어야 하고, 국민들에게 해 준 게 없는 나라인가?

Posted by 사무엘

2013/09/29 08:36 2013/09/2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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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관련 짧은 생각 둘

1.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은 기독교 교리를 딱 함축적으로 요약해 놓음과 동시에,
요즘 같은 인본주의 다원주의 상대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정말 꺼내기가 거북하고 과격한 구호이다.
또한 이것은 논리적으로 굉장히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명제이기도 하다.

책임이라는 게, 굳이 크리스천이 세상을 상대로 꼭 좋은 행실을 보여야 하고 모범생, 일류, 리더 행세를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선행이 아니다.

그보더 더 원론적으로...
예수쟁이들은 남에게 잘 보이기 전에 자기네끼리부터라도 잘 지내야 한다!

자기 깡으로 아무리 착하고 의롭게 살아도 예수 안 믿으면 죽어서 자기 죄 가운데 죽고 지옥 간다고 경고했는데..
그럼 역으로 예수 믿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는 서로 어떻게 지내야겠는가?
좋은 간증 지키는 방법이 다른 먼 곳에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불신자 부부는 조금만 틀어지고 자기 이익이 침해받는다 싶으면 싸우고 이혼할지라도, 크리스천 부부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믿을 수 없으니 법이나 시스템의 힘으로 분쟁을 해결한다 해도 크리스천 내부의 문제는 가능한 한 더 선하고 훈훈한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교회엔 공통된 신앙 빼고는 지역색이 다르고 정치 성향이 다르고 취미와 성격과 성장 배경과 가치관이 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래도 성도들간에는 교리 문제나 반역 문제가 아닌 이상은 이해와 사랑, 희생과 헌신, 섬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만치 거짓 교리, 불순분자에 대한 에러 복구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사람의 구원 여부를 가시적인 방법으로 확인할 수가 없는 이상, 이 능력은 교회 성도에게 필수이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세상적인 다른 소재를 두고 끼리끼리 갈라지고 친목질에 심지어 팀킬을 벌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바알세붑 팀킬 가설은 마태-마가-누가복음에 3콤보로 기록되어 있다)
그 대신 공통의 목표와 공통의 믿음을 대외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활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이건 거리 설교의 큰 유익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신약 시대에 기독교 정부, 기독교 국가, 기독교 기업, 기독교 학교를 만드신 게 아니라 그냥 간단히 지역 교회를 세우셨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게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다.
성경은 그리 호락호락 만만한 책이 아니다.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가르치지만 그걸로 끝이 절대로 아니며 그 뒤부터 교회를 중심으로 아주 판타스틱한 일생 여정을 가르치고 있다.

2.

세월이 흐를수록 성경 말씀이 그다지 믿어지지 않고 최소한 내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이런 것에 몰두해 봤자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래, 구원받은 것까지는 좋다 치는데, 그래서 어쨌다고?”라는 생각이 들고,
내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별로 느껴지지 않고, 주변에 복음을 전하려는 의욕이 식어 가고
성경대로 살면 오로지 호구 되고 바보 되고 손해만 본다는 생각이 들고,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아련한 옛날 추억 같은 생각이 든다면..

그건 그 사람이 연륜이 쌓이고 이치를 깨달은 게 전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첫사랑이 식어 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크리스천의 생명력이 소멸하고, 영적으로 배도하고 타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른바 '구원받은 불신자' 상태이다.

영적 엔진오일 부족 경고등이라도 켜져서 깜빡이고 있을 때, 인생이라는 자동차를 정비소에 보내서 수리를 받아야 한다. 아예 차가 퍼져 버리거나, 수리 수준을 넘어서 폐차 단계로 상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말이다.

당신의 영적 프로그램에서 debug assertion failure가 나 있을 때 어서 디버깅을 해야 한다. 커널 패닉이 뜨기 전에 말이다. 그냥 나일롱 신자로 만족하고 지내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이 아니며 겸손은 더욱 아니다.

또한, 예수 믿는 생활은.. 단순히 여타 종교나 이념이 틀렸기 때문이라는 소극적인 이유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A, B 중 A가 틀렸다고 해서 B가 자동으로 논리적으로 맞게 되는 건 당연히 아니기 때문이다.
B가 절대적으로 맞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니, B와 같지 않은 A나 C 같은 다른 건 자연스럽게 거부하는 적극적· 능동적인 구도로 가야 한다. 위조지폐를 판별하는 법은 진폐의 특성을 마스터하는 방식으로 해야지, 위폐만 만지면서 익히는 게 아닌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9/03 08:27 2013/09/0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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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품꾼 비유는 논조가 다소 이질적이며, 누가복음 16장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만큼이나 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도 1데나리온을 받고, 마감 한 시간 전에 와서 1시간만 달랑 일한 사람도 1데나리온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경에다 이런 불공평한 이야기를 왜 써 놓으신 걸까?

나도 하나님의 심정을 다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의 다른 부분이나 인류 역사에서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성품으로부터 짐작해 보건대, 하나님께서 그런 정책을 취하시는 것이 충분히 가능은 하다는 걸 느낀다.

저 비유는 ‘하나님의 주권’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도행전을 보면, 똑같은 예수님의 사도 중에서도 야고보는 헤롯의 칼에 곧장 순교한 반면 베드로는 천사가 와서 몇 번이고 구해 줬다. 이것은 하나님이 근본 성품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변덕쟁이 기분파여서라거나, 야고보가 베드로보다 영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또한, 세상에서 꼭 실력 좋은 사람만 1등을 하는 게 아니라는 자조적인 차원(전 9:11)의 이야기도 아니다.

욥은 현대인 같았으면 몇 번이고 멘붕을 거듭하다가 자살했을 정도의 최악의 고난과 시련을 경험했다. 이를 체험하고 욥이 하나님에 대해서 깨달은 것은 바로, 하나님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분께서 자신에게 그 어떤 일을 허락하시든지 그분은 선하고 전지전능하신 면모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욥을 죽을 때까지 그 상태로 내버려 두시든, 그리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풀무 불에서 보호하지 않고 순교하게 내버려 두시든지 말이다(단 3:17-18).

그 정도인데 그런 하나님이 하물며 비유에서처럼 일꾼을 고용하고 품삯을 주는 정책 하나조차 마음대로 결정을 못 하시겠는가?
애초에 하루 일당을 1데나리온으로 계약했으니, 그 주인은 나중에 말을 바꾸지도, 임금을 떼먹지도 않고 품꾼에게 그 약속을 정확하고 성실하게 이행했다. 이게 바로 포인트다.

나중에 다른 일꾼이 추가 투입될 수도 있고 그들은 일당을 얼마만치 받을지에 대해서는 애당초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그건 주인 사정이고 추가 일꾼의 사정이지,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내용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걸 자꾸 부각시킴으로써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신뢰를 틀어지게 만들고, 자기 처지를 불평하게 만들고 남을 탐내고 원망하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역사이다. 공산주의도 이런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생겨났다.

주인의 이런 반응에 삐쳐서 “흥, 그럼 다음부터는 나도 문 닫을 때 다 돼서 일하러 가야지” 같은 잔머리를 굴리는 건 별 의미나 영양가가 없는 짓이다. 솔로몬의 재판을 보고는 “CCTV도, 유전자 감식도 없이 무슨 이런 허접한 재판이 다 있냐? 그럼 나도 아기를 납치한 다음엔 상대방에게 아이를 주라고 생색 내면 되겠네.” 이러는 것과 똑같다.
성경을 읽고도 그 집필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숲을 보지 못한 모습이라 하겠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인간의 잔머리에 결코 조롱· 농락을 당하지 않는다는 힌트까지 알려 놓으셨다(갈 6:7).

이런 비논리적인 하나님 무조건 킹왕짱 정신승리법이 어디 있느냐고 비아냥거리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뭐, 틀린 지적은 아니다. 그게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는 기본 원칙이며, 크리스천과 불신자의 사고방식의 큰 차이 중 하나이다. 하나님 앞에서 낮추고 엎드리고 바보 되는 것 말이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낮아지셨고 킹왕짱 사랑을 베푸셨으니까!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세상 스펙이 전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사람마다 물질적인 여건이나 스펙이 불균등하게 분배된 것은 사실은 불공평이 아닌 것이다.

요컨대 마태복음 20장의 품꾼 비유에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은 일한 시간과 관계없이 1데나리온 일당을 지급한 눈에 띄는 정책 자체보다도, 그 위에 있는 하나님의 신실함과 주권이다.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 하나님은 진짜로 공평해야 하는 분야에는 정말 칼날같이 공평하며, 정말로 논리가 필요한 곳에서는 완전 철두철미한 논리 체계가 갖춰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그냥 영적으로 적용해서 모태신앙으로 나태하게 산 사람보다 뒤늦게 구원받고도, 알찬 인생을 살고 주님으로부터 상을 더 많이 받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 역시 나쁘지 않다.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될 것이다”란 교훈이 뒤에 등장하니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8/29 08:23 2013/08/2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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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바보 3유형

내가 생각하는 3대 크리스천 바보

1. 유대인을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고 정죄하거나 싫어하는 사람
2. 예수님은 믿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교회는 싫어하는 사람
3. 성경 맹신주의, 성경의 우상화.. 이런 말을 쓰는 사람

애초에 불신자야 저런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 없지만, 예수 믿는다고 하고 스스로 크리스천이라고 종교 정체성을 밝히는 사람이 저렇게 생각한다는 건 정말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음은 아이템별 간단한 해설이다. 내가 괜히 ‘바보’라는 말까지 쓰는 게 아니다.

1. 반유대주의

우리도 그들보다 하나도 나을 게 없는 죄인이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아니 그럼 예수님이 인류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안 죽으셨으면, 우리가 대신 죄 가운데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됐을 것이다. 도대체 유대인을 특별히 미워해야 할 명분이 어디 있는가?

성경의 기독교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절대로 반유대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정작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안 믿고 기독교를 매우 싫어하지만 그래도 크리스천들은 유대인들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문자적인 회복을 예언하며, 이 교리가 사실 화체설, 마리아, 연옥 만만찮게 천주교와 기독교 사이의 매우 큰 교리 차이이기도 하다.

물론 유대인들도 죄악에 빠졌을 때는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여타 민족들을 이용하여 그들을 벌하고 심판하셨다. 많은 불신자들이 간과하는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게 많은 만큼, 계약 위반시 뱉어야 할 것도 많았다. 역사적으로 쟤들이 뭔가 죽이고 학살한 게 더 많았나, 아니면 반대로 자기들이 당한 게 더 많았던가?

그 ‘여타 민족’에 크리스천이 껴야 할 필요는 전혀 없으며 그래서는 안 된다. 유대인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쓰였던 사람들이 최후가 좋았던 적은 없다.

2. 교회 무용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그러나 당신이 사랑하는 예수님이, 당신이 싫어하는 교회의 머리이기까지 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님은 크리스천들을 위해 기독교 국가, 기독교 기업, 기독교 학교가 아니라 교회라는 별도의 조직을 창립하신 것이다.

예수님을 기쁘게 하고 싶고 훗날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떳떳하게 회계 보고를 하고 싶다면, 당신은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주변에 도저히 마땅한 교회가 없다거나), 성경대로 믿고 행하는 지역 교회에 소속되어 교회를 신실하게 섬기면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

세상에 어차피 완벽한 교회란 없고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만 이뤄진 교회도 없다. 한 치의 허물도 없는 완벽한 교회가 있다면 당신이 거기에 가입하는 순간 그 무결성은 깨진다.
대형 교회는 부패하고 돈만 밝힌다고 싫고, 작은 근본주의 교회는 교조주의적이고 ‘가오’가 안 난다고 싫다면 그건 뭐 무슨 상황이든 싫다는 변명일 뿐이다(마 11:18-19).

3. 성경(말씀) 무용론

이건 도대체 기독교의 믿음의 근간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극심한 무지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 대해서 어떤 지위를 부여하시는지를 기록해 놓았다. ‘하나님’이 들어가야 할 곳에 성경이 들어가는가 하면(요 7:38,42; 롬 9:17, 11:2; 갈 3:8,22 등) 시 138:2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자신의 모든 이름보다 크게 높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이름도 이미 얼마나 높은 존재인지는 빌 2:9 같은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그 높은 성경을 안 믿으면 무엇을 믿겠으며, 아무리 굳건히 믿어도 시원찮을 성경이 어찌하여 ‘맹신과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난 비슷한 맥락에서, 일부 행실이 바르지 못한 크리스천, 육신적인 신자를 빌미로 성경을 폄하하고 특히 킹 제임스 성경 탓을 하는 주장을 매우 싫어하고 경계한다. 문제의 본질을 완전히 잘못 짚은 발상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논증은 윤 성목 목사님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참고로 바보 크리스천 말고, 바보 불신자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성경에서 시 14:1이나 눅 12:20에서 다루고 있다. 이 역시 누구나 간과해서는 안 될 사항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3/06/18 08:31 2013/06/1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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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씀 보존 학회와 한글 킹 제임스 성경

1994년, 말씀 보존 학회(이하 말보회)라는 단체가 그 이름도 유명한 “한글 킹 제임스 성경”이라는 역본을 내놓으면서, 한반도에 한국어라는 언어와 한글이라는 문자를 매개로 명목상 '없음'이 없고 변개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사실 그 전부터도 '새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신약이 먼저 나와 있었으나, 방대한 분량의 신구약 성경전서가 최초로 완역된 게 저 때이다.

한킹이 처음 나왔을 때는 한국 교회가 말보회에 대해 그렇게까지 적대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KJV라고 하면 그래도 신학깨나 했다는 사람들한테서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인지도가 있는 성경이었고, 어차피 기존 개역 성경도 허접한 구석이 있다는 걸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모 대형 교회에서는 한킹을 정식으로 받아들여 쓸 의향을 밝히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말보회는 이 좋은 기회를 얼마 못 가 스스로 차 버렸다. “개역 성경은 사탄 마귀의 성경이기 때문에 그걸 읽어서는 구원도 못 받는다 / 우리 성경 침례 교회 이전에 대한민국엔 진정한 신약 교회라는 게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식으로 심한 병크를 저질렀고, 대표의 싸이코 같은 모습이 부각되면서 한국 교회는 마음을 완전히 닫아 버렸다.

배교의 결정판 NIV
스스로 성경이기를 포기한 현대어 성경
오리겐도 울고 갈 변개 실력
현대어 성경으로 한국 교회를 뜨겁게 할 유일한 방법은 땔감으로 쓰는 것밖에 없다 (레알 불쏘시개 인증)


이런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은 당시 말보회가 광고로 퍼뜨리던 문구였다.
왠지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니” 짤방이 생각난다... “개역성경은 성경의 쓰레기이고 NIV는 성경이라 불릴 수 없는 저질 족속이며 공동번역은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저질 성경이다. 그러나 ...” ㅋㅋㅋ

비록 말보회의 주장 중에 일리가 있는 말도 있었고 한국 기성 교계가 각종 비성경적인 관행들을 답습하고 있는 게 한둘이 아닌 건 사실이지만, 말을 저 따위로 해서는 진심이 어떻게 전달되겠나. 말보회는 1998년에는 모 교계 총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이단 판정까지 받음으로써 확인 사살을 당했다. 말씀 보존 학회가 아니라 “말썽 보존 학회”로 찍혔다.

이로써 한국 교회는 변개되지 않은 올바른 성경을 통한 영적 부흥 따위는 아주 안드로메다로 가 버리고, '킹 제임스'의 '킹' 자만 꺼내도 “거기 이단 아냐?”란 반응이 나오는 영적 무지가 판을 치는 암흑기로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변개된 성경이 삭제한 게 아니라 “KJV의 구절이 후대에 근거 없이 추가된 것이다”는 식으로, 변개된 역본 및 본문을 옹호하는 신학자들의 잘못된 궤변이 교계에서 더욱 힘이 실리는 계기가 마련되어 버렸다.

2. 킹 제임스 흠정역

그러던 1990년대 중· 후반엔, 말보회 내부에서도 성경의 편집 방침에 대한 대립이 심해졌고 대표 되시는 분의 막무가내 식 독단과 횡포를 견디지 못해 내부 인원이 일부 이탈했다. 이런 식으로 말보회의 밖에 있는 국내 킹 제임스 맨들이 여럿 이를 악물고 의기투합한 끝에 자기네만의 성경 역본을 2000년 여름에 처음으로 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킹 제임스 흠정역”이다. KJV는 왕이 공인한 성경이라 하여 이를 한자어로 표기하면 '흠정역'이 되는데, 그 단어를 고유명사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가 정보 올림피아드 출품용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이 완성된 것과 매우 비슷한 건 우연이다. ㄲㄲ

말보회 측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좋아할 리가 없었으니 당연히 크게 반발했다. 흠정역은 한킹을 베껴서 쉽게 만들어진 거라고 엄청 중상모략과 악담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둘을 펴서 대조해 보면 이런 모함은 설득력을 잃는다. 한킹은 몇몇 센세이셔널한 구절을 제외하면 흠정역보다 품질이 훨씬 더 열악했으며, KJV가 아니라 실은 공인 본문(TR)을 번역한 이역도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킹을 베끼는 식으로는 흠정역 같은 성경이 결코 나올 수가 없음이 자명하다.

시대를 풍미하면서 좋든 싫든 대한민국 땅에 KJV를 대대적으로 이슈화했던 말보회는 21세기 이래로 어찌 지내고 있는지 난 잘 알지 못한다. 과거의 너무 지나쳤던 병크에 대해서 말보회 내부에서도 “심했다, 그땐 좀 유감이다” 같은 자정의 목소리가 없지는 않다고 난 들었다.

이제 이 글의 초점은 한킹에서 흠정역으로 바뀐다. 흠정역의 주 번역자는 잘 알다시피 정 동수 교수(인하대 기계공학과..;)인데.. 자기 입으로 민망하게 떠벌리지를 않을 뿐이지, 한국에 바른 성경을 보급하고 바른 교회를 세우려는 열망과 부담감을 주체하지 못해 몸서리쳤던 분이다. 그래서 생업을 제외하고 40대를 전후한 인생을 죄다 그 일에 바쳤다.

흠정역 초판이 완성되었을 즈음, 정 교수는 <그리스도 예수안에>라는 기독교 자료 웹사이트를 개설하여 성경 이슈를 알리기 시작했다. 이 사이트는 게시판이 없고 딱히 양방향 의사소통 기능은 없었다. 난 대전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이 시기에 그 사이트를 통해서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편, 그분은 안식년을 이용해 미국으로 건너가서 KJV를 쓰는 펜사콜라 크리스천 대학에서 신학 석사를 받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후 곧장 귀국하여 몸소 교회를 개척하였는데...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이때의 목회는 실패하고 교회가 와해되고 말았다. 2000년대 중반이던 이 시기가 정 목사의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시기였다고 그분이 스스로 증언하며, 지금의 설교 때에도 스스로 언급한다. 뭐 비윤리적인 일이나 스캔들 때문인 건 절대 아니고, 약한 성도들을 시험에 들지 않게 세세하게 어루만진다거나 하는 심리적인 일에 서툴렀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건 성경 지식만으로 되는 게 아니며, 누가 목회를 하더라도 몹시 어려운 일이다.

3. 사랑 침례 교회

말보회가 흐려 놓는 바람에 한번 부정적으로 굳어진 KJV 이미지의 여파는 꽤 컸다. 그러나 말보회의 밖에서 바른 성경을 알리려는 분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서 수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그 상처는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했다. 흠정역 성경을 기존 기독교 매체에다 광고하고, 또 기성 기독교 출판사를 통해 시판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KJV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키고 이것도 신뢰할 수 있는 어엿한 대체 한글 성경 역본임을 알리게 되었다.

2008년경, 정 동수 목사는 개인적으로 다시 인도하던 성경 공부 모임을 기반으로 지금의 사랑 침례 교회를 다시 세웠다. 그리고 Keep Bible이라는 후속 웹사이트를 개설하여 기존 <그리스도 예수안에>를 흡수했다. Keep Bible은 예전 사이트와는 달리 커뮤니티 기능이 크게 발달해 있으며, 각 지역 교회 홈페이지별로 찢어져 있던 커뮤니티 기능을 죄다 흡수하고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KJV 신자들의 교제 공간 겸 자료 창고가 되었다. 현재 Keep Bible에 버금가는 다른 양대 산맥 커뮤니티는 청지기 카페 정도가 고작이다.

이를 통해 흠정역 성경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갔고, 사랑 침례 교회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성장했다. 2012년에는 예전보다 꽤 더 큰 건물을 구해서 인천 남부로--서울에서 가기는 더 힘들어짐-- 이사를 갔으나, 거기도 이내 꽉 차서 주일 오전 예배 때 3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온다고 한다.

첫 개척했던 교회가 실패했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상전벽해의 성공이다. 온라인 상으로 정 동수 목사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도 국내외에 굉장히 많으며 설교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좋다.

잘 생각해 보면, 지금은 시기적으로도 예전에 비해 KJV 거부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고, 기존 교계 자체도 개역 성경을 개역개정으로 바꾸려는 분위기인데 이 참에 성경 이슈에 눈을 뜬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른 성경을 기반으로 성경대로 건전하고 바르게 행하는 교회에 대한 영적 갈급함을 느끼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고무적인 현상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문제는 정 동수 목사는 전임 사역자가 아니라는 것.
대학 교수와 목사를 겸임하고 있는 엄친아라서, 머리는 듀얼코어일 수 있어도 몸이 둘이지는 않다.
주중에 수요 기도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날짜를 불금 시간대인 금요일 저녁으로 대신 잡고, 가끔은 학회 때문에 미국 출장도 가신다. 그런 상태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많은 성도들을 다 감당할 수는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정 목사는 자기는 애초에 전임도 아니니 아예 사례비를 받지 않고 목회를 했다. 그 대신 부목사를 아예 자기 사비로 사례비를 주면서 초빙하기까지 했다. 다시 말해 사랑 침례 교회는 덩치에 비해 사역자의 부족을 호소하고 있었다.

4. 김 문수 형제님

그런 와중에.. 혜성처럼 나타난 분이 바로 김 문수 형제님이었다.
2009년, Keep Bible 사이트가 개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이분은 정 목사를 빼닮은 말투로 성경의 어려운 내용들을 풀이하고 흠정역을 적극 옹호하는 글들을 시리즈로 올려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야말로 최고의 원군이 등장한 셈이었다. 이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서 사랑 침례 교회에서는 그분을 초청도 한번 했다.

그랬는데 알고 보니, 이분은 나하고도 더 옛날에 PC 통신 하이텔에서 종종 마주친 적이 있는 분이었다.
그때는 난 겨우 중학생-고등학생이었고 저분은 아마 서울대 박사 과정이 꺾였거나 이제 막 박사를 마치신 상황. 베이직 동호회 같은 프로그래밍 동호회에서 마주쳤었기 때문에 난 그분을 컴공 전공자 정도로 생각했다. 물론 컴퓨터 선교회(kcm) 같은 기독교 동호회에서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분이 독실한 크리스천인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PC 통신 시절부터도 그분은 쓰는 글의 스타일이 굉장히 자상하고 포근하고 뭔가 권위가 있어 보였고, 박학다식함이 느껴졌었다. 질문이나 잡담을 거의 안 올리고, 올리는 글은 정보나 답변밖에 없었다. 아, 그분은 1999년에 본인이 Intel ISEF에 국내 최초로 출전하게 됐을 때, 하이텔 베이직 동호회에다 해당 신문 기사 본문을 올리면서 내 축하를 해 주시기도 했다. 우와..!

그 뒤 PC 통신이 몰락하면서 그분과의 연락은 자연스럽게 끊어졌고 그분에 대한 기억은 내 머리 한쪽 구석에만 남아 있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10여 년 뒤에 그분을 킹 제임스 교회에서 정 동수 목사와 얽혀서 다시 상봉하게 될 줄이야. 세상에!

직접 만나고 보니 이분은 1960년대생으로, 정 목사하고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 분이었다. 연세가 생각보다 많으신 셈. 그리고 컴공 전공이 아니라 언론정보학 쪽의 문과 출신이었다. 헐, 그런데도 프로그래밍에도 그 정도로 관심을 보이셨나? 전공의 특성상 연설(스피치), 정보 커뮤니케이션 쪽의 전문가였으니 이건 뭐 설교자에게 이보더 더 적절할 수 없는 전공인 듯하다.
이것저것 엉뚱한 짓을 하는 걸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그분은 첫인상만 봐도 책을 무섭게 파는 걸 즐기는 학구파, 학자 기질이 얼굴에 딱 써져 있었다.

만남이 있은 후, 이분은 정 동수 목사로부터 신학 공부 제안을 받으신 듯했고, 처자식까지 있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락하여 유학길에 올랐다. 정 동수 목사가 10여 년 전에 거쳤던 동일한 학교에 입학하여 2년간 공부를 하고, 각종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한다. 그 동안 10대 초반 나이인 두 아들에게 영어를 마스터시킨 건 덤. 2010년 가을부터 2012년 가을까지, 내가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했던 기간과 동일한 기간 동안 말이다.

5. 사랑 침례 교회 부목사로 부임

이런 과정을 거친 후, 김 문수 형제님은 귀국해서는 딴 데 갈 필요도 없이 사랑 침례 교회의 부목사로 정식 부임했다. 이미 Keep Bible에 올리는 글들을 통해 사랑 교회 성도들과도 친숙한 상태였으니, 일꾼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그 교회를 위해 완전히 준비된 최적의 인물이었다. 그래서 현재 그분은 대학 강사와 목사 직분을 겸임하고 계신다.
다음은 사랑 침례 교회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김 목사의 가족 사진이다.

사실 내가 김 문수 목사님하고 과거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은 내가 정 동수 목사님하고 개인적으로 가까워지는 데에도 꽤-_- 기여를 했다. 친구의 친구 같은 명목으로? =_=;;; 난 사랑 침례 교회에 다니지 않으며, 그 교회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서울 소재의 다른 KJV 교회를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서울 진리 침례 교회).

김 문수 목사님이 유학 가 계시던 딱 그 기간 동안 마침 흠정역 제 5판(400주년 기념판)의 교열과 간행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나도 여차여차 하던 끝에 이것 저것 작업을 돕는 일에 연루되곤 했다. 김 목사님과의 이런 특별한 만남이나 계기가 없었으면, 다른 목사님들과 친분도 없고 나이도 한참 어린 본인이 그런 일에 개입될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졌을 것이다. 당사자 자신의 역량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사람을 이어 준 것만으로도 김 문수 목사는 정 동수 목사의 사역에 매우 큰 유익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킹 제임스 성경과 성경대로 행하는 교회들이 대한민국 땅에서 부흥하면 좋겠다. 그리고 비록 각자 섬기는 교회는 다르지만 믿음이 같은 지체들끼리 언제 또 만나서 교제할 날도 오길..

Posted by 사무엘

2013/05/16 08:21 2013/05/1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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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은 누구는 애초부터 지옥 가라고 창조하셨고 누구는 천당 가라고 창조하셨다.
  • 빛이 없으면 자동으로 어둠이고 어둠이 먼저 있어야 빛이 필요하듯이, 선과 악도 서로 양 날개와 같은 존재이고 상대방을 드러내기 위해서 필요하다.

이런 부류의 모든 거짓 교리들은 성경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다(저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면 당신은 복 받은 사람이다).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충족하는 성경의 하나님을 완전 잔인무도하고 무지막지한 신으로 왜곡함으로써 불신자에게는 회개하고 구원으로 이를 통로를 원천 차단하고, 안티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더욱 모함하고 조롱할 빌미를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런 교리들이 잘못되었음을 널리 알려야 한다.

내가 예정론에 대해서 무엇보다 분노를 느끼는 건, 죄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왜곡한다는 점 때문이다.

생각을 해 보라. 왜 하나님이 죄인을 지옥으로 보낼 수밖에 없나?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할 수밖에 없었나? 주위를 둘러보면 어지간히 평균적인 '교인'들보다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훌륭한 불신자들도 얼마든지 있는데도 우리가 어째서 감히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가?

죄라는 것이 얼마나 참혹하고 예수님의 보혈을 대가로 요구한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존재인데,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인을 무슨 죄인 역할극 악역 배우쯤으로 미화하는 이 무시무시한 교리는.. 마귀로부터 유래된 게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파라오와 헤롯의 유아 학살,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 일본군 731 부대 생체 실험, 지존파, 북한 정치범 수용소가 전부 연기였다는 말인가?

파라오는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곱게 내보내 줘도 어차피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으며 그게 피차 더 나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열 가지 재앙에 나라 경제를 완전히 말아먹고 험한 꼴을 다 당한 뒤에야 풀어 주게 됐다. 하나님은 파라오의 완악한 마음을 이용해서 그의 마음을 더욱 완악하게 '보호 장치'를 해제해 버리셨으며 재앙을 통해 영광을 받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영광 좀 받아야겠으니 너는 좀 이스라엘 백성 풀어 주지 말고 완강하게 버티고 있어 봐라. 나는 그 짓을 시키려고 너를 창조했다”는 절대 아니다!

하나님은 역사적으로 악역을 활용하였으며, 좀 대놓고 말하자면 그들을 조롱하며 갖고 노신 적은 있다. 허나 당사자는 악역을 자처할 필요가 전혀 없었으며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사실 어떤 경우에도 악역을 맡아서는 안 된다. (그 중 제일 해서는 안 되는 악역은 유대인을 심판하는 도구이다.) 악역은 죄이며 죄에는 심판과 형벌이 따를 뿐이기 때문이다. 악역을 자처해 봤자 삽질 잔뜩 하고, 시간· 돈 날리고 손해 보는 건 우리뿐이다.

하나님은 그 파라오인들 구원하고 싶지 않으셨겠는가? 그가 나중에라도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었다면, 유대인들을 악하게 다룬 것과는 별개로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개인의 구원에 관한 한은, 이는 히틀러, 도조 히데키, 스탈린, 심지어 오늘날의 이북의 인간 악마 인간 백정 김씨 같은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성경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운명 예정론을 결코 지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아무리 전지전능하다고 해서 자기가 무슨 아무 감정도 없는 로봇 컴퓨터이거나, 세상을 그런 기계처럼 만들어 놓은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죄악으로 인해 인간을 지은 것을 슬퍼(repent)했다는 구절마저 성경에 들어있는 것이다. 로봇, 컴퓨터는 '정지 문제' 하나도 풀 수 없는 튜링 기계일 뿐이다. 0과 1만 분간할 수 있을 뿐, 선과 악을 분간할 수는 없으며 죄에 대한 책임도 질 수 없는 물건이다.

인간은 불가항적으로 죄인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하나님 역시 불가항적인 이유만으로 사람을 결코 지옥에 보내지도 않는다. 지옥은 언제까지나 사람이 선악을 스스로 분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로 지은 자기 죄로 인해서 가는 것이며,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자발적으로 거부하여 제 발로 간다. 즉 전적으로 100% 후천적인 요인만 작용한다.

요컨대..하나님에게 미리 아심은 있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에게 이런 운명의 데스티니가 보장되었다는 예정 정도는 성경적으로 물론 있다. 허나, 인간 개개인의 구원 여부를 미리 정해 놓은 예정 따위는 없다. 미리 아심은 read-only operation일 뿐이다. 혼동하지 말자.

기독교의 구원 교리는 딱 체계가 잡혀 있고 논리가 있다. 인간의 이성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교리를 믿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낭설을 맹목적으로 떠받드는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3/05/12 08:36 2013/05/1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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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무신론자 중에서
“세상에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내세도 심판도 없다. 내 마음대로 얼마든지 상대적인 잣대로 살아도 된다. 그걸 모르고 하나님이나 찾는 무능하고 어리석은 인생들이 너무 불쌍하다. 나는 그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무신론이 진리임을 알리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고 내 생명이라도 내어 놓겠다
이렇게 말하고 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을 알고도 받아들이지 않는 구원받은 크리스천 중에서
“내게는 개역성경/NIV가 최종 권위인 하나님 말씀이다. KJV야말로 6만 구절의 단어를 변개하고 13구절을 후대에 ‘추가’하여 하나님 말씀을 뜯어고친 무시무시한 죄를 저질렀다. 나는 이 엄청난 사실을 정반대로 알고 있는 KJV 지지자들을 계몽하고, 진짜 절대무오한 다른 성경을 대안으로 내놓겠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시겠죠?
두 진영은 서로 계산 결과만 다른 게 아니라 계산 과정과 초기의 변수, 생각하는 전제 조건부터가 완전히 다릅니다.

* 평소의 내 블로그 스타일답지 않게 무지하게 짧은 글이 돼 버렸는데..
그래도 내 생각의 핵심은 다 담겨 있으니..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3/04/20 08:27 2013/04/2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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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대한 생각

우리나라 내지 이에 준하는 여타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자유는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 제2장에서 신체의 자유, 거주와 이전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등등이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르며, 남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범죄· 이적 행위· 반역을 조장하거나, 다른 자유 이념과 모순을 일으키는 자유는 자유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사회· 도덕 시간에 배운다.

이런 자유들은 당연한 것 같지만 당연한 게 아니다. 선조들이 피흘려 쟁취한 소중하고 고귀한 이념이다(대표적으로 6· 25!). 또한 이것은 충분한 경제력과 심지어 과학 기술이 뒷받침 되어야만 실현 가능하다. 옛날에 먹고 살기가 어렵던 시절에는 사회 보장 제도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었으며, 뭐 하나 잘못 사고 쳤다간 집안이 쫄딱 망하고 처자식이나 자기 자신을 노예로 팔아야만 수습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 누가 무슨 짓을 할지 상대방을 믿을 수도 없는 긴급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모든 자유가 보장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나라는 명목상 미국의 사회· 정치 제도를 벤치마킹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시작했으나, 휴전선 너머 북한의 집요한 방해 공작과 비열한 해코지로 인해, 완전히 이상적인 자유를 실현하는 데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완전 폐쇄적인 선군정치 최적화 병영 국가와, 사회 시스템이 다 개방되어 있는 자유로운 국가가, 서로 인구와 경제력이 비슷하고 다른 변수가 없다면 어디에서 어디로 간첩을 침투시키고 유언비어 퍼뜨리고 심리전을 전개하기가 쉬울 것이며, 무력 충돌이 벌어졌을 때 누가 이길 가능성이 더 높을까?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북한과 관련해서는 불가피하게 기본권을 법으로 크게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 21세기에까지 국가 보안법 같은 구시대 악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21세기에까지 우리나라 체제를 부정하고 김씨 부자에게 이로운 짓을 하는 구시대 악인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며 법에 저촉되어 잡히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일이 아무리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 해도 나치 및 히틀러와 관련된 매체 표현은 무조건적으로 금지하며, 누가 길거리에서 팔 뻗쳐서 “하일 히틀러!”만 외쳐도 잡아 가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정상적인 독일 국민 중에 그걸 보고 무슨 국민 기본권 침해라고 징징대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자, 여기서 표현이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표현의 자유'라는 말이 문자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18조와 21, 22조는 개념적으로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든다고 여겨진다.

본인은 크리스천으로서 표현의 자유라는 게, 사상과 종교의 자유에 동급으로 매우 중요한 자유라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는 크리스천에게 거리 설교 같은 복음 전파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남에게 영향을 끼치고 역사하는 신앙이다. 표현의 자유를 배제하고서 사상과 종교의 자유만으로 크리스천 신앙을 다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둘을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본인은,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권의 보장이 이미 넘치도록 충분히 아주 잘 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체제에 대해 고맙게 여긴다. 지금까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으로 내가 믿는 프로파간다를 주변에 알리거나 교회에서 거리 설교를 하면서 공권력으로부터 구금· 체포의 위협을 느낀 적이 없다. 심지어 정치인들 비판도 아무 문제 없이 했다.

이 명박 정권 때부터 분야별로 온라인 검열이 강화된다면서 사람들이 굉장히 불안해했다. 그러나 난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난 일단 신앙과 관련된 자유가 침해받지 않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자유감을 느끼며, 그것만 보장해 준다면 심지어 독재 정권이라 해도 별로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가 너무 많아서 그걸 오· 남용 하는 부류들이 더 문제라고 난 생각한다.

북한 관련 표현이야 나라에서 하지 말라면 좀 참고 안 하면 되고, 음란물· 성인물이야 어차피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니.. 나라에서 그런 규제를 가하는 사정을 오히려 이해한다. 그런 규제가 무슨 북한 같은 수준의 검열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언론들이 너무 오버를 하고 네티즌들을 막 선동했다.

글쎄, 난 이런 점에서는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식의 어찌 보면 좀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난 그게 성경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난 당신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사상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도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 끝까지 같이 싸우겠습니다.”


그래서 특히 진보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이 말을 자기 블로그에다가도 많이 걸어 놓고, 많이 떠받드는 것 같다.

그런데, 난 양심적으로 저렇게는 못 하겠다.
나더러 그저 소수이고 박해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병역 거부하는 인간들, 동성애자들, 낙태 합법화, 사형 폐지론자들의 말할 권리를 위해 같이 싸우자고? 못 한다. 물론 그들은 어차피 요즘 대한민국에서 박해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고.

크리스천으로서 그런 사람들을 괴롭히고 왕따 시키고 해코지하는 것에야 물론 동참하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죄의 가시밭길을 가다가 혼자 망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그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오류를 지적하면 지적했지,
그들의 표현의 자유의 보장을 위해 싸운다거나 기도해 준다거나(?) 하는 일은 난 할 수 없다. 난 볼테르 같은 대인배가 아니다. 아니, 난 하나님보다 더 대인배여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저렇게 '행동하는 양심'의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으로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시도 유명하다.
물론, 정치적 무관심을 풍자하는 건전한 메시지가 핵심이며, 평소에 선을 많이 행해 놔야 내가 위급할 때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 정도는 나도 잘 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 사회민주당원, 노조, 유대인?
그 무엇이 됐든 아무튼 내가 신념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그룹이 먼저 쓸려 나갈 때, 내가 굳이 먼저 그들을 위해 같이 나서야 할 필요는.. 솔직히 난 못 느끼겠다.
그들이 남아 있다고 해서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의 '신앙'을 방어해 주는 데 기여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오히려 크리스천은 그런 상황에서 마 10:17-20 같은 말씀을 더 떠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글쎄, 배가 침몰한다거나 화재가 났다거나 해서 사상이고 종교고 나발이고 없이 다같이 죽게 됐을 때야 인간으로서 서로 도와야 한다. 그거야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사상과 종교 자체만이 사람을 가르는 요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자라면서 이런 내 생각이 앞으로 또 바뀌게 될지는 모르겠다. 크리스천 중에서도 교리에 명백히 어긋나지 않는 범위 하에서 세상사의 참여에 굉장히 호의적이며, 각종 사회 운동이나 심지어 파업· 데모에 대해서도 더 열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사실 집회와 결사의 자유 자체가 헌법에 있기도 하니 말이다. 이에 대한 이견과 논쟁은 이 세상이 어차피 제도적으로 성경대로 손쉽게 살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지 않은 이상,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 같다.

끝으로, 자유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미국 얘기를 좀 하고 글을 맺겠다.
한쪽에서는, 미국이 점점 법이 바뀌어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고 반기독교 성향으로 가고 있다고 엄청 걱정한다.
거리설교를 했다간 잡혀 가고, 학교에 성경의 개인적인 반입이 금지되고, 교회나 신학교계에서도 이제 동성애를 당당히 반대했다간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게 생겼다고 걱정한다. 특히 흑인 대통령이 부임하면서 그런 추세가 더욱 심해졌다고 그런다.

그러나 크리스천 중에서도 좌성향이 더 강한 다른 한쪽에서는, 저런 것보다는, 여전히 미국의 메이저 교회들이 저지르는 병크와 비리, 그리고 특히 정치 종교 결탁 행위만을 비판하느라 바쁘다. 그런 것들이 나라에서의 크리스천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빌미를 주고 있다고 말이다.

양 극단 중에서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미국은 모든 면모를 균형 있게 이해하기가 힘든 나라인 한편으로, 대형 교회들의 폐단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별 차이 없다는 걸 느낀다.

Posted by 사무엘

2013/03/25 08:38 2013/03/2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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