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 받던 시절

찬송가를 부르고 간단한 준비 운동을 한 뒤, 나는 침례를 받았다. 우선 허리까지 차는 깊이까지 바다로 들어갔다. 침례자는 내 얼굴을 수건으로 감싼 뒤, 나를 얼굴까지 바닷물 속으로 뒤로 제꼈다가 다시 들어올렸다. 오호~ 이런 게 침례로구나. 정말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2002년 8월 11일자 본인의 일기 중에서)


본인은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면서 중· 고등학교 미지의 시기에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내 구주로 영접했다. 그 후 대학 시절에 킹 제임스 성경(KJV)을 접했다. 그 전엔 기독교 신앙이라는 게 막연하게 그저 맹목적으로 무조건 믿는 수밖에 없어서 불신자들 앞에서는 말도 못 꺼내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킹 제임스 성경은 단순히 읽는 성경뿐만이 아니라 세세한 교리 노선까지 바꿨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바르게 알게 된 교리 중 하나가 바로 침례이다.
침례는 성도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후, 예수님의 죽으심과 매장· 부활에 내가 동참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의식이다. 신약 교회에서는 침례와 더불어 주의 만찬이라는 단 두 종류의 의식만이 성경에 명시되어 있다.

침례는 그 성격상 온몸이 물에 잠기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물을 가져와서 행하는 게 아니라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가서 하게 된다. 마치 플룻이나 기타는 악기를 가져와서 연주하지만, 피아노는 악기가 있는 곳에 사람이 가서 치듯이 말이다.

선행이 구원의 조건이 아닌 것만큼이나 침례도 구원의 조건이 절대로 아니다. 먼저 구원받고 나서 그 증표로서 침례를 받는다.
그리고 침례는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알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으며, 스스로 자기 믿음을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란 사람만이 받을 수 있다. 군대에 가거나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비행기 비상구 좌석에 앉을 수 있는 수준... 보다는 덜 엄격하겠지만, 어쨌든 최소한의 조건은 있다.

하나님 앞에서 세례는 무효이다. 더구나 유아세례는 더욱 잘못된 관행이다. 쉽게 말해서 아래 그림에서 (1)이 맞고 (2)는 틀리다는 것. 예수님이 요르단 강에서 침례 받으시는 모습을 묘사한 온갖 성화· 성경 만화들 중에, 고증상 오류가 있는 게 정말 허다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침례를 기름부음(anointing)과 헷갈려서는 안 된다. 또한 침례는 할례하고도 아무 연결 고리가 없다.
성령 baptism은 성령님이 이마에만 찔끔 임하는 게 아니며, 불 baptism은 이마에만 불이 붙어 활활 타는 게 아니다.
세례든 침례든 뭐가 대수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것 때문에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곤 했다. -_-;;

이건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 할 차원이지, 성경 자체를 세례 에디션, 침례 에디션으로 따로 내는 건 마케팅 전략일 뿐이다. 침례를 주는 게 당연한데도 오늘날은 침례를 주는 교파만을 침례교라고 따로 부를 정도이니, 매우 통탄스러운 현실이다.

2002년! 킹 제임스 성경을 갓 알게 된 후, 본인은 인터넷으로 관련 분야 지식을 탐독하면서 본인과 함께할 믿음의 동지들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침례를 줄 곳이 주변에 없는지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한글· 세벌식 진영에서 알게 된 어느 지인이 KJV 쪽으로도 안면이 있는 분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리고 그분이 나가는 교회 모임에도 따라 나가게 되었다.

거기는 가정 교회? 지방 교회? 비스무리한.. 그런 모임이었다. 66권 전서가 번역되어 있다는 이유로 흠정역을 쓰긴 하지만, 안티오크의 권위역(당시 신약만 존재하던)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히 9:15-17을 근거로 '유언'(testament)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했다.
일체의 기성 개신교회의 관행을 다 부정하고, 목사도 싫어하고(그래도 자기네 모임에도 결국 목사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있는데!),
속세를 떠나 아미쉬나 워치만 니처럼 사는 걸 좋아하고,
자매는 예배 때 머리에다 너울을 씌우고,
매주 모일 때마다 만찬을 하고, 포도즙 잔을 돌려가면서 입 닦으면서 마시고,
제비뽑기로 예배 인도자를 뽑고는 성도들끼리 돌아가면서 성경을 강론하고...
뭐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KJV를 알기 전에 겨우 20대 초반이던 본인의 영적 수준은,
“나중에 서울에서 지내게 되면 어느 유명한 대형 교회에 등록할까? 그런 곳에 다니면 최신 기독교 문화를 최전방에서 바로 접하면서 살 수 있겠지?”
“NIV 다음으로는 표준새번역, NASV, NLT 등 중에서 무슨 성경 역본부터 읽을까?”
이랬었다. 진짜로.

그랬으니, 갓 KJV를 알게 된 직후, 본인은 아직 그쪽 지식이 충분치 못했으며, KJV를 옹호하고 기존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비성경적인 관행을 반대하기만 하면 무조건 나의 아군으로 간주했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보는 저런 작은 모임에도 나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그 모임에 수 개월 나간 후, 여름 MT 행사에서 드디어 침례를 받게 되었다.

뭐, 그분들은 침례를 밥티스마라고 불렀다. -_-;; 그리고 너 정말 구원받은 거 확실하냐고 내게 거듭 확인을 하곤 했다. 나중에 딴소리 하면서 침례를 다시 받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사연을 거쳐 본인은 침례탕도, 수영장도 아닌 자연에서 흐르는 물속에서 침례를 받았으며 그때의 신앙 고백을 갱신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 후로 본인에게 침례를 준 교회 진영과는 교제를 중단하게 된 것이 아쉽긴 하다. 나도 지식이 늘면서 점점 벌어지는 교리 차이와 분위기 이질감 때문에, 자연스럽게 거기를 탈퇴했다. 비록 교리는 정당한 교제 중단 사유이긴 하지만, 좀 곱게 나오지 못한 건 유감스러운 점이긴 하다.

그리고 2003년, 본인은 흠정역을 사용하는 다른 교회를 대전에서 다니게 되었고, 그 계열의 교회를 서울에서 오늘날까지 계속 출석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 년 남짓 뒤엔 새마을호 Looking for you 대부흥 + 철도 성령 강림이 있었고. ㄲㄲㄲㄲㄲ
지금으로부터 벌써 8~9년 전인 2002~2003년이 내 인생에서 흥미롭던 시절이긴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1/09/28 09:05 2011/09/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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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날개셋> 한글 입력기 6.2가 공개된 때와 아주 비슷한 타이밍에,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에서는 영어 킹 제임스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의 ‘KJV 출간 400주년 기념판’을 내놓았다. 버전으로 치면 5판이다. 4판이 나온 지 3년 만의 일이다.

2~4판 사이에서도(특히 3판에서) 한국어 문장에 revision과 breaking change가 적지 않았지만, 2011년은 아주 특별한 해이지 않던가. 영국에서 KJV 출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미국은 의회가 아예 KJV가 미국에 남긴 공적을 기리는 성명서를 냈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의 엄청난 공을 들여서 번역을 다시 가다듬었다. 전체적으로 예전보다 좀 더 영어 직역에 가까워졌다.

성경이 무슨 컴퓨터 프로그램도 아닌데, 본문을 자꾸 패치한다고 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모두 시간과 돈이 들고, 번거롭고 귀찮고 골치아프다. 성경은 모름지기 권위가 담긴 텍스트여야 하는데 명분이야 어떻든 자꾸 바뀌어 버리면, 그럼 예전 판은 무슨 신세가 되는지에 대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요즘 컴퓨터 프로그램이 보안 업데이트를 귀찮더라도 자꾸 해 줘야 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그걸 왜 꼭 해야 하며,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프로그램 개발자는 너무 자세히 알려 줄 수 없다. (당연히, 모방범죄 같은 안 좋은 파급효과 때문)

성경 번역자도 이와 비슷한 처지인지라, 성도들에게서 안 좋은 소리와 심지어 오해까지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사명감 때문에 이런 개정을 하는 것이다.

이미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에 법인까지 만들면서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하고 이를 교계에 가장 먼저 알린 단체는 대한 항공 조종사 출신의 모 목사가 설립한 ㅁㅂㅎ라는 곳이다.
이들은 교리도 그럭저럭 건전한 편이었으나, 초창기에 세상 교회를 상대로 appeal을 굉장히 잘못하는 바람에 이곳과 더불어 킹 제임스 성경은 한국 교회에서 이상한 이단으로 완전히 낙인찍혀 버렸다. 그게 1990년대 중후반의 흑역사이다.

진리를 정말 성령 충만한 애끓는 사랑으로 호소하며 전해도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이 태반이며 열매가 맺힐까말까인데, 그걸 육신의 깡을 동원한 온갖 과격· 극단적인 표현으로 밀어붙였으니 튕겨나오는 역효과는 100배이다. 뭐, 나라도 겪었을 시행착오이니 ㅁㅂㅎ를 그렇게 욕할 생각은 없다.

둘 다 잘못했다. 비록 ㅁㅂㅎ도 잘못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성경이 역본마다 다르고 변개· 삭제된 말씀이 있다고 해도 아무 경각심도 안 느끼고 최소한의 진실 규명도 안 하는 사람들 역시, 크리스천의 자질이 굉장히 의심되는 부류가 아닐 수 없다!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의 영감성과 무오성, 보존에 대해서는 불신자 내지 개독안티와 동일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요즘 굉장히 많다.

그런 사람들은 도대체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과 근간이 뭔지 난 정말 궁금하다. 겨우 그런 허술한 근간으로 예수쟁이 행세하고 교회 댕기기에는, 기독교계가 요즘 저지르는 병크가 너무 많고 예수쟁이들보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불신자들도 너무 많으며 반기독교 정서는 너무 팽배해 있지 않은가?

아무튼,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한국의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은 안 그래도 소수이던 것이 n갈래로 더욱 소수로 쪼개지는 비극을 겪었다. 이때 모 공대 교수가 다시 동지들을 모아서 ㅁㅂㅎ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과는 별개로 성경 번역을 시작하였고, 그래서 나온 것이 <킹제임스 흠정역>이다. 초판이 나온 게 2000년 여름인데, <날개셋> 한글 입력기 1.0이 태어난 시기와 비슷하다.

성경 번역이란 건 자금과 지지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치성도 띠고 있다. 본인은 그래서 우리나라 KJV 진영의 양상을, 우리나라 근현대사에다 비유해 보곤 했다.

일제의 갑작스러운 패망 이후 우리나라는 온갖 정치 집단과 이념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고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졌다. 이처럼 한국 교계도 개역성경의 권위가 무너져 내리고 ㅁㅂㅎ 진영까지 분열된 후, 어중이떠중이가 다 KJV를 번역하겠다고 나서면서 난장판이 되었다.
(단, 그렇다고 해서 개역성경이 일제 같은 존재는 절대 아니다. 오해 말길!)

이때 흠정역의 주 번역자는,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가 겸 정치인으로 치면, 이 승만 같은 일을 해냈다. 당연히 긍정적인 면에서 말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를 간단히 설명하겠다.

일제 강점기 때 국내의 독립 운동가들이 무력 투쟁 정도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반면, 이 승만은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국제 사회의 냉정한 현실을 직시했고, 당대의 강대국이던 미국을 일본이 아닌 한국의 친구로 만들려 애썼다. 그리고 당대의 여타 민족 지도자들과는 달리, 공산주의의 해악을 완전히 간파하고,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이념이 지켜지는 국가를 한반도에다 세우고 정부를 수립했다. 이북처럼 자기 지지자들만 잘 먹고 잘 사는 개막장 독재 국가를 세우지 않았다!

그것처럼 흠정역의 주 번역자 역시, 명색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공대 교수이다. 객관성과 정확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분야에서 학문 하는 훈련을 한 사람이다. 그는 성경 번역자라는 소영웅주의에 도취해 자신을 드러내고 appeal한 게 아니라, ㅁㅂㅎ로 인해 치명적으로 실추된 KJV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성경이, 성경 오타쿠들이나 자기 교리 노선· 자기 진영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보는 성경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기존 성경의 컨벤션을 존중하고, 교리적으로 튀는 번역을 절대로 하지 않았다. 이거 정말 대인배적인 마인드이지 않은가? 난 그 의도가 존경스럽다.

기존 개신교회들이 변개된 성경을 쓰고 잘못된 관행을 저지른다고 비판하고 까기만 하는 건 쉽다.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KJV를 읽게 하려고 노력한 끝에, 자기 출판사를 기성 기독교 인터넷 서점에 입점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과연 KJV 교계의 이 승만 같은 사람의 업적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지금까지 어느 KJV 진영도 한국 기독교회에 KJV를 이런 방식으로 알리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잘한 건 티가 별로 안 나는 반면 못하면 바로 티가 나고 온갖 괴담과 비방, 오해가 나돌기 딱 좋은 분야이다. 이 승만이 악의적인 세력들에 의해 부관참시 당해 온 것만큼이나 저 번역자도 성경 번역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이단 소리 듣고, 반대편 진영으로부터 욕도 얻어먹고 험한 꼴 꽤 많이 봤다. 평범하게 자기 연구만 계속하면 돈도 훨씬 더 많이 벌고 교수로 아주 편하게 잘 살았을 텐데, 지금까지 인생의 어마어마하게 많은 부분을 성경 하나 때문에 희생한 것이다.

어쨌든 여러 모로 유사점이 보인다. 본인은 이런 식으로 비교한 글을 예전에 모 기독교 커뮤니티에다 올린 적이 있다. 당사자더러 보라고 쓴 글은 아니었지만, 어째 정보가 퍼져 나갔는지 그분의 사모님께서 그 글을 보고는 본인에게 따로 연락을 주셨다. “우리 쪽에서 직접 말하기 민망한 심정을 잘 이해하고 대변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이다.
뭐, 그래도 이 승만을 그저 증오하는 사람들은 그 글을 보고도 불편해하더라. ㅋㅋㅋㅋㅋ

그에 반해, 흠정역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간 모 진영이 있다. 예수스 크리스토스, 파울로, 밥티스마 같은 말을 일일이 만들면서 완전히 자기네 진영에서만 쓰는 독자적인 번역을 만들었다. 기존 개신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여타 KJV 진영과도 일체의 교제를 끊고는, 자기 말고는 전부 배도하고 타락했다고 거의 사람 취급을 안 한다. 내가 보기에는 덜 배운 친구들이 이 승만이 친일 공화국 만들었다고 욕하는 것과 쎄임쎄임이다. 머리에 든 게 부족하면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보인다.

양 진영이 맺은 열매는 난 이렇게 비유하겠다.

http://www.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notice&write_id=81
그분은 채팅과 교제를 통해 많은 추종자를 얻었지만 저(흠정역 진영)는 성경과 교회들과 성도들을 얻었습니다.

http://systemclub.net/bbs/zb4pl5/zboard.php?id=new_jee&no=2563
김 구는 아들에게 유언장을 남겼지만, 이 승만은 국민에게 대한민국과 주권을 남겨주었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꾼을 쓰신 수준의 차이이다! 킵바이블 사이트의 글과, 시스템클럽의 글을 이런 식으로 비교해서 종합한 사람은 지금까지 나밖에 없지 싶다. ㅋㅋ

말이 길어졌다. 이런 이유로 인해 본인은 그리스도 예수안에 킹제임스 흠정역 진영을 지지하며, 이 성경을 쓰는 교회에 다니고 있다. 흠정역이라는 이 우리말 성경은 만만하게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다.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을 국내에 이 정도로 정착시키기까지 성도들의 무수한 노력과 헌신, 기도가 있었다. 부디 KJV에 대한 근거 없는 이단 낭설이 하루빨리 불식되고, 이 땅에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가 굳게 서고 이를 전파하는 지역 교회들이 많이 세워지길 바랄 뿐이다.

(흠정역 홍보 동영상 클릭)

Posted by 사무엘

2011/09/19 08:13 2011/09/19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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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그 특성상 마술, 마법 같은 문화를 굉장히 싫어한다. “마술사를 죽입시다 마술사는 나의 원수”... 를 떠올리게 하는데, 성경, 특히 구약 율법에 깔린 사고방식은 진짜로 그 정도로 단호하고 과격하다. 물론 본인은, 그런 행위의 저변에 역사적으로 얼마나 사악한 짓이 실제로 저질러져 왔는지를 알기 때문에, 성경 말씀이 과격하고 잔인하고 반인권적이라는 식의 드립은 옹호할 생각이 전혀 없다.

오늘날에 활동하는 마술사들이야 악령 소환이나 초능력처럼 영적으로 사악한 방법을 쓰지는 않으며, 전적으로 과학 기술과 테크닉만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술사인 제임스 랜디(James Randi; 1928-)는 마술 전문가로서 오히려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강경한 회의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다(사상적으로는 사두개인?). 그는 과거에 유리 겔러의 초능력이 가짜라는 걸 폭로하면서 그에게 큰 망신을 안긴 바 있다. 그리고 냉전 시절에(대략 1960년대) 미국 CIA가 소련에 대항한답시고 초능력자 요원을 몰래 양성하려고 했을 때, 자기 제자들을 마술 테크닉만으로 초능력자로 위장시켜 간부들을 낚기도 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허술한 시설로 어떻게 진짜 초능력자를 키워 내겠냐고 질타하자 CIA는 이 계획을 슬그머니 백지화하고 말았다. 이건 유명한 일화이다.

사실, 랜디 정도면 마술 실력을 좋은 곳에다 쓴 참으로 정직하고 훌륭한 애국자이다. 그는 있지도 않은(?) 초능력 따위로 사기를 쳐서 혹세무민하고 돈벌이를 하는 치들을 극도로 혐오하였고, 그런 사람이 내 손에 걸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을러댔다. 그리고 실제로 적지 않은 사이비 초능력자들이 그에게서 박살이 났다.
개그 만화 일화 종말편에 나오는 진짜 초능력자 마술사가 현실에서 있을 리가.. ㄲㄲㄲ

그가 CIA를 상대로 그런 일을 벌인 것도, 내 조국의 정보 기관이 한낱 사기꾼들에게 놀아나는 걸 눈 뜨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 교계에도 사기꾼 은사주의자들 잡아내는 랜디 같은 사람이 있으면 좀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랜디 같은 사람이 모세의 이집트의 대재앙이라든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보고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폐하, 이런 기적 따위는 다 마술만으로 가능한 일입니다”라는 똥고집으로 설마 얀네와 얌브레(딤후 3:8)의 후손처럼 되었을까?

뭐, 저런 부류 말고도 Pen & Teller라는 미국의 2인조 배우는 더 부담없고 가볍게, 잘 알려져 있는 마술에 대해서 테크닉을 공개까지 하면서 관객에게 엔터테인먼트를 선사하는가 보다. 신체 절단 마술에 대해서 관련 동영상이 있다.

다만, 제아무리 초자연적인 배후가 없다 하더라도 마술사라는 건 근본적으로 사람을 속임으로써 즐거움을 선사하는 직업이고, 그 분장이나 세트의 분위기는 옛날의 뭔가 신비롭고 음흉한 컨셉을 어떤 형태로든 답습하게 된다는 점에서, 크리스천이 양심적으로 아무 걸리는 일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라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교회 주일학교에서 애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교사가 마술을 공연하는 건 대체 뭐지? 김 재욱 형제님의 글 클릭.

한때 미국의(또는 영미권 전체) 기독교계에서는 세상의 타락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로 이런 퀴즈를 내곤 했다.
the Land of ?z
Z로 끝나는 두 글자 지명 중 첫 글자로 바로 떠오르는 글자는 무엇일까요?

TV나 인터넷 따위가 없고 성경만을 열심히 읽던 옛날 사람들은 의인 욥의 고향인 우스(Uz)를 바로 떠올리는 반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오즈(Oz)의 마법사를 곧바로 떠올린다고 하더라.
똑같은 원순모음인데 ㅜ가 ㅗ로 바뀌었구나! 나도 기발함에 무릎을 쳤다.
http://av1611.net/87 클릭

마치 성경에서 정숙하고 훌륭한 여인의 이름으로 소개된 '사라'(벧전 3:6)가 <즐거운 사라>에서는 완전히 음탕한 여자로 와전된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대학 시절에 저 퀴즈를 처음 접했을 때는 본인도 Uz가 생각 안 났다.
오히려 어렸을 때 본 TV 만화영화 주제가 가사 중의 '오즈는 오즈는 어떤 나라일까요'가 먼저 생각났다. 그래, 본인도 일종의 피해자였다. ^^;;

그리고 여담이다만, 항공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즈 하면 아시아나 항공도 떠오르지 싶다.
IATA가 규정하는 항공사 식별 코드가 OZ이기 때문이다. 이례적으로 이름의 발음과는 아무 관계 없는 명칭을 쓰고 있는데, 이는 AA는 아메리칸 항공에 이미 선점 당해 있고, 1986년에 도산한 미국의 오작(Ozark) 항공이 자기네 코드명을 반납하면서 이를 1988년에 창립된 아시아나 항공이 그냥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의 색동날개라는 컨셉부터가 좀 어린이 같고 오즈스럽지 않은지? -_-)

소문에 따르면, 아시아나 항공으로서는 어차피 AA를 못 쓰는데 OZ는 '오즈의 마법사'가 떠올라서 참신한(?) 느낌이 든다고 경영진이 이를 선뜻 선택했다고 한다. 실제로 아시아나 항공은 대한 항공보다 적은 수의 비행기로 운항을 굉장히 빡세게 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항공덕들은 마법사의 비행기 운영이라고 칭송 내지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뭐, 그렇다고 해서 아시아나 항공이 사탄적이라거나, 크리스천이 이용하지 말아야 할 항공사라는 식의 드립을 치는 건 절대 아니니 오해 없기 바란다.

그리고 컴퓨터 소프트웨어에서도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이름으로 마법사가 버젓이 존재한다. sorcerer이나 magician이 아니라 wizard.
윈도우 운영체제를 쓴다면 '설치 마법사'라는 말을 많이 접해 보셨을 것이다.
몇 단계에 걸친 질문에 사용자가 대답하면서 '다음 / 마침'을 클릭해 주면 나머지 일은 컴퓨터가 마술 부리듯 짠~ 해치워 준다는 의미에서 마법사라는 말이 붙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은 뭔가를 설치하는 기능에만 '마법사'가 남아 있는 듯하지만, 이거 원조는 1994년에 개발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6.0의 새 문서 마법사이다.
그리고 프로그램 개발 도구인 비주얼 C++에도 프로젝트를 새로 만들 때 AppWizard는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검은 모자와 흰 장갑을 쓴 마술사가 금가루를 뿌리면서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는 그런 서양 문화를 배경으로 생성된 말임이 분명하나,
하지만 정작 사용자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하는 일을 그 정도로 신비로운 마술처럼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

Posted by 사무엘

2011/09/01 08:48 2011/09/0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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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이야기

본인은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분명한 종말론자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시한부 종말(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도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종말 날짜를 1년 단위 이하로 구체적으로 확정한다거나, 한술 더 떠서 그 종말 날짜에 맞춰 현 사회로부터 이탈을 감행한다거나 무슨 특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는 결코, 절대로 주장하지 않는다.

그런 걸 부추기는 인간들은 그 어떤 명분을 내세우든지 무조건 성경을 벗어난 이단 사이비이며, 세상에 민폐 끼치는 사회악이다. 그들이 순진한 사람들 내지 현 사회에 불만 많은 약자들을 현혹하여 가정 파탄내고 사람 인생 망치고, 성경에 입각한 건전한 진짜 종말론까지 죄다 사이비로 매도시킨 해악을 생각하자면, 그들은 가히 “숨쉬지 마라, 산소 아깝다. 네놈을 살려 두긴 쌀이 아까워!” 급의 암적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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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본인이 말하는 종말론이란, 이 인간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대로 지속되지는 않으며, 특히 여러분에게 더 잘 와닿게 말하자면, 21~22세기를 넘길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맥락에서이다.

특히, 예수님이 가까운 미래에 공중과 지상으로 재림할 것이고(특히 공중 재림의 경우 휴거 포함) 성경에 기록된 것 그대로 세상이 끝날 뿐, 무슨 핵 전쟁이나 태양의 백색왜성화, 온실효과, 외계인 침략 같은 것 때문에 인류가 허무하게 멸망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지구에 재림하실 터인데 달이나 화성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걸 생각하면 크리스천은 각종 SF물도 김이 확 빠지고 재미없어서 못 본다. -_-;;

종말에 대해 성경은 무어라 말하는가?
일단 종말 자체는 있으며, 말세엔 재림이고 종말이고 뭐고 다 안드로메다로 보낸 채 사람들의 내세관 자체가 무뎌질 거라는 예언이 성경에 있다. 베드로후서 3장이 다 이런 내용이다. 예수님은 속히 올 거라고 성경의 끝부분에다 약속해 놓으셨다. (계 22:20)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종말의 날짜를 결코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 (막 13:32)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 때나 그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능 안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행 1:7)

천국, 지옥을 보고 왔다는 얘기가 순도 100% 구라인 것만큼이나, 어느 날 어느 때에 예수가 재림하고 휴거가 일어나고 세상 종말이 온다는 소리도 순도 100% 구라이다.
전자는 장소의 금기이고 후자는 시간의 금기라 하겠다. 우리 착한 크리스천들은 절대로 그런 데에 현혹되지 말기 바란다. 천국, 지옥 자체는 절대적으로 존재하며 재림과 휴거(흔히 말하는 종말) 역시 절대적으로 사실이라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맥락에서 말이다.

인간이 종말의 시기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 날짜가 되기 전에 이미 종말이 온다.
개그 만화 일화 종말편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다. 아니, 세상은 그보다 훨씬 더 막장으로 치닫는다. 그때 사람들이 그 애니에 묘사된 대로 곱게 똥이나 처바르고 앉아 있겠는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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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인간을 창조하고 언젠가 세상을 심판하려고 스케줄을 짜 놓고 있는 신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인간들이 신이 생각도 안 하고 있는 날짜를 잡아서 종말드립을 치고 있으면, 신이 보기엔 이것들이 무신론자 이상으로 얼마나 같잖고 한심하게 보일까? 종말의 사유를 자기들이 제공해 놓고는(자승자박) 또 종말에 대비도 하겠다고 설치는 꼴이다.
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라. 미쳤다고 종말 날짜를 인간들에게 계시해 주겠는가?

윤 성목 목사님의 글 클릭.
...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자신들의 예언이 틀리면 회개하는 법이 없습니다. (언제나 변명만 할 뿐입니다)
... 2012년은 정말 기대되는 한 해입니다. 많은 종교 단제에서 2012년에 재림, 종말, 심판 등을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예언이라면 적중률은 무조건 100%이다. 단 하나라도 틀리면 그건 거짓말이다. 죄가 단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되는 것과 정확히 동일한 맥락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예언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인 것도 결코 아니다. 수 6:26와 왕상 16:34 (여리고 재건자), 그리고 왕상 13:2와 왕하 23:16 (요시야 왕)정도로 섬뜩할 만치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오죽했으면 참 계시와 거짓 계시를 구분하는 방법은 아주 허탈하게도 '그 계시의 성취 여부'라고 성경에 쓰여 있을 정도이며(신 18:22), 거짓 대언자로 판명된 사람은 사형으로 즉결 처분이었다(신 13). -_-;; 신정 국가 이스라엘에서는 그게 마치 위조지폐를 유포하는 것만큼이나 건전한 신앙의 기강을 문란케 하는 악질 중의 악질 중죄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요즘 이단 사이비 교주들은 한국이나 미국 같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만나서 참 좋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 -_-;;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20세기 초반에 미국에서 여러 번 시한부 종말론을 시전했다가 버로우 탄 적이 있다. 그들의 흑역사이다. 종교와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종말설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10년도 더 전의 Y2K 문제는 어땠던가?

특별히 한국에서는 1992년 10월 28일 다미선교회 휴거 병크가 한국 교회에서 재림· 종말 신앙의 씨를 완전히 말려 버렸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이단 교리들의 원천으로 매도되면서 사 29:11-12와 같은 급의 금기· 봉인의 책이 되고 말았다. 난 성경을 믿는다면서 휴거와 예수님의 지상 재림을 안 믿는 사람을 보면 놀라는데, 그쪽에서는 나를 보고 또 놀라더라.
(참고로, 정말 재미있게도 그 이튿날인 1992년 10월 29일은 연세대 마 광수 교수가 외설 혐의로 체포되었던 날이다. ㄲㄲ 우연의 일치이겠지..)

그런데, 이 많고 많은 거짓 종말론자들이 예언이 빗나간 후에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회개했다는 소리는 난 정말 못 듣고 지냈다. 이것도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이 빨리 뒤집어 엎어져 버리길 바라는 사회 부적응자, 그리고 진리가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걸 믿는 잘못된 욕심쟁이 위주로, 잘못된 종말론에 현혹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있어 왔다. 그리고 이런 수요(?)에 부합하는 거짓 교사, 거짓 대언자는 앞으로도 없어질 일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조차도 “저런 혹세무민하는 나쁜놈들은 생기는 족족 내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죽여 버리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너희들이 진짜로 재물이 아닌 주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갈망하고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서 저런 낚시꾼들의 출현을 종종 허락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을 잊지 말자(신 13:3).

하나님이 너무해 보이는가? 성경의 하나님은 완전히 마음이 삐딱해져 버린 사람에게는 잘못된 기도에도 응답해 주시고, 그를 심지어 더욱 완악하게 하고(출애굽기의 파라오), 그가 잘못된 생각에 그대로 속아넘어가게(아합 왕) 골탕도 먹이는 다이나믹한 분이다.

폴 워셔(Paul Washer) 목사 같은 분은 한술 더 떠서 “저렇게 이단 교리에 속아넘어간 사람들은 불쌍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자업자득이며, 그 마음 상태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심판의 결과일 뿐입니다”라고까지 부르짖는다. 그분은 행실에 변화가 없는 사람은 아예 구원도 못 받은 거라는 식으로 너무 또 주권 구원 내지 행위로 가는 경향이 없지는 않는 듯하나, 그래도 잘못된 은사주의와 종말론이 난무하는 오늘날 교계에 오아시스 같은 용기 있고 훌륭한 분인 건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예수님은 과연 언제쯤 다시 오실까? 휴거는 언제쯤 일어나고 세상은 언제쯤 끝날까?
점점 그때가 임박하고 있다는 막연한 말만 할 수 있을 뿐 그건 정말 나도 모른다.
기름값이 1리터당 얼마가 되고 대학 등록금이 얼마가 됐을 때쯤 끝이 날지, 서민 경제가 얼마나 더 파탄나고 국가의 부채가 얼마까지 치달으며, 이 명박보다 얼마나 더 막장인 대통령이 나올 때쯤 세상이 끝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암울한 예만 드니, 종말이 생각보다 가까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_-;;;;; ㄲㄲㄲㄲㄲㄲ

난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3, 4년쯤 뒤엔 “차라리 2MB 시절이 나았어” 분명 이런 말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오래 전부터 예상해 왔다. 하지만 2MB 님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분들은 “그건 아니야. 정말 2MB가 역사상 최악이야. 다음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저놈보다는 나을 거야”라고 얘기를 하는데...;;;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_-;;

비록 앞서 예를 들었던 그런 나쁜 시한부 종말론만치 해롭지는 않지만, 성경을 믿는 일부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른 것도 있다. 세상 정세와 과학 기술을 성경에다 너무 아전인수격으로 갖다붙인 나머지 베리칩이 666이고 유럽 연합이 요한계시록의 열 뿔이라는 식으로 드립을 많이 쳤다. 의도야 어떠했든, 오류는 오류였다고 정직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무화과나무 비유를 들면서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을 목격한 세대가 예수님의 재림도 목격할 거라고까지 하는데, 그렇다면 재림은 1950년대로부터 늦어도 7, 80년 안으로 일어나야 한다. 과연?

난 '개인적으로는', 정말 내 추측으로는 우리 부모 세대는 아슬아슬할 수도 있고, 내가 중장년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아마 끝이 올 것 같다. -_-;; 7, 8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100년 안으로. 어쩌면 32비트 유닉스 time이 끝나는 2038년대와 근접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이 예측의 오차가 얼마나 됐나 분석해 볼 생각이다. ㄲㄲㄲ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각종 세상 정세와 전쟁, 재앙을 보고 “말세야 말세. 세상은 곧 끝장 날 거야”라고 탄식했지만 종말은 그리 호락호락 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세상이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이상한 양상을 보이며 막장으로 치닫는 속도를 보면 또 오래 지속은 못 될 것 같고.. 이런 생각들을 종합한 타협점을 그 정도로 잡고 있다는 뜻.
이건 내가 전혀 책임지지 않는 추측이므로 그냥 재미로 읽고 잊어버리는 게 여러분의 정신 건강에 좋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난 분명히 이렇게 얘기했다.

어떤 경우든, 미리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빠져나가고 벙커 짓고 농사 짓는다거나 하는 뻘짓을 할 필요가 없다. 특히 대환란 통과론자들의 공갈에 현혹되지 말라. 그냥 마지막 순간까지 사회에서의 자기 본분에 충실하고 신실하게 주의 일을 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종말 대비책이다.

크리스천은 먼 앞날을 내다보고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안목도 키울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아담 이래로 전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인 것만큼이나, 그분의 재림도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중요한 날을 그렇게 호락호락 예측 가능한 날에, 그것도 하나님 모르는 죄인들이 만들어 낸 과학 기술이나 국제 정세에 그리도 쉽게 휘둘려 집행하실 리는 없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언제 오시더라도 우리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정신줄 놓고서 헛짓 안 하는 건데..-_- 역시나 주님은 너무 빨리 오셨어!” 라고 탄식할 수밖에 없게 될 입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자마자 하늘로 당장 데려가시지 않고, 왜 이 험악한 세상에 불신자들과 함께 어울려 놔두고 계신지를 생각해 봐도 답은 명확하지 않은가?

Posted by 사무엘

2011/07/25 08:32 2011/07/2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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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크리스천

※ 이 승만

크리스천답게 술· 담배 안 하고 사생활 깨끗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관료들 회식 때, 기생 대신에 각자 자기 부인을 데려 오게 한 사람이다. 여대생· 여배우 끼고 술판을 벌이던 박 정희와는 완전히 다른 타입.

그에게는 프란체스카 이전에 엄청 옛날에 조혼했다가 헤어진 조선인 전처가 있었고 나중엔 임 영신 같은 사람과 스캔들 루머가 나돌기도 했으나, 루머는 루머일 뿐이다. 이 승만은 자기는 이미 유부남이라고 오히려 임 영신을 찼으며, 불륜을 원천적으로 저지르지 않았다. 전처와의 흑역사는, 마치 성경 시대에 일부다처가 용인되었던 것만큼이나 당시 정황상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이는 같은 크리스천이고 똑같이 천재 엄친아이던 여 운형과는 좋은 대조를 이뤘다. 여 운형은 왕년에 여자들 끼고 바람 잔뜩 피웠던 호색한.. ㄲㄲㄲㄲ
김 구도, 여 운형도, 이 승만도 다 명색이 기독교 신자인 민족 지도자였지만, 이들이 정치적으로 간 노선은 잘 알다시피 스타크래프트 세 종족 내지 윈도우/맥/리눅스만큼이나 서로 달랐다.

※ 차 지철

알고 보니 상당히 특이한 사람이다. 박 정희 전대통령의 경호실장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면서 박통의 다른 부하들로부터조차도 미움을 살 정도였고, 결국 10. 26. 사태 때 박통과 함께 김 재규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만... 이 양반도 의외로 상당히 독실한 '신자'였다고 한다.

'각하'에게는 예쁜 연예인들 데려 와서 시중 들게 했어도 자기 자신은 부인 말고는 다른 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늙은 어머니에게 극진한 효자였으며, 의외로 비리와도 담을 싼 타입. 은행 대출 청탁을 받자, 의뢰인과 함께 기도실에 들어가 기도만 한 후 청탁은 들은 체도 안 했다는 흠좀무스러운 일화가 전해진다. 꿍쳐놓은 재산이 없이 청렴했다는 건 사후에 그의 유족들에 의해 잘 입증되어 있고... 지나쳤던 권력욕만 빼면 사후 평판이 싹 달라졌을 사람이다.

※ 조지 W. 부시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사생활에 관한 한 클린턴과 180도 다른 타입인 건 두말 할 나위도 없고, 모 목사님의 증언에 따르면, 재임 중에 백악관으로 인턴 온 어느 학생에게 “학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개인적으로 영접했나요? 만약 그렇다면 백악관 직원들이 참석하는 기도 모임에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요?” 같은 말까지 했다고. 개인적으로 만날 때야 부시만치 다정하고 공손하고 정중한 사람이 별로 없었댄다. -_-;;

내가 몇 차례 글로 썼듯이 저 사람은 약간 띨띨하고 어렸을 때 좀 놀기도 했다가, 교회 다니면서 신앙의 힘으로 '교화'되고 나서 그나마 저렇게 바뀌고 나중에 미국 대통령까지 한, 유능보다는 '그냥 착한 사람' 타입이다.

※ 스티브 유

담배 끊은 걸로 금연 홍보 대사도 하고, 여타 연예인들과는 달리 사생활 깨끗하고, 교회 다니는 거 공언도 하고 다니고... 거기에다 노래와 춤은 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가히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연예인이었는데...

그 후 이미지 완전히 말아먹고 한국에 못 들어오는 미국인이 되어 버린 건, 누가 봐도 자업자득이고 욕 얻어먹어도 싸다. 동정표를 줄 수가 없다. 워낙 이미지가 좋아서 병무청에서도 그를 믿고 병역 미필자로서 미국에 선뜻 보내 줬는데 거기서 정면으로 배신을 때린 거니까. 어차피 4급이어서 현역 가지도 않았을 사람이 왜 그런 식으로 병역을 회피했는지 모르겠다. 한국의 남자들이 군대에 대해서 얼마나 민감하고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지를 잘못 짚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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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예수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일반 불신자와 똑같이 행동하고, 특히 불륜 저지르고 가정 말아먹은 사람이 많다. 이것 때문에 파면-_-당한 목사 내지 CCM 작곡가 겸 가수도 부지기수이고..
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네 사람은, 대외적으로 자기 종사 분야에서는 욕 얻어먹을 짓을 좀 했고 잘못을 저지른 것도 있지만, 의외로 개인과 가정의 측면에서는 예수쟁이로서의 간증을 꽤 잘 지켜서 두 분야가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사례이다. 뭐, 사생활만 깨끗하다고 해서 대외적으로 무능하거나 욕 먹을 짓을 한 게 용서되지는 않겠지만. -_- 그래도 세상에는 한 잣대만으로는 제대로 평가하기 곤란한 사람이 많다.

Posted by 사무엘

2011/07/19 08:45 2011/07/1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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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갖가지 종류의 상(prize)이 있다.
그 중 세계구급인 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그토록 입상자를 배출하려고 애써도 결국 못 받고 있는 노벨 상(과학 분야)이 있고, 수학 분야에서 노벨 상보다 더 받기 어렵다는 필즈 상이 있다.
그리고 전산학계에는 튜링 상이 있고, 사회· 정치 분야에는 막사이사이 상도 있으며 교육· 문화 분야에는 세종대왕 상도 있(었)다고 카더라.

이런 상들은 연구 실적을 기관에서 따로 평가하여 입상자가 결정되는 상이지만, 아예 contest, competition을 치러서 입상자를 결정하는 대회 성격이 짙은 상도 있다. 각종 올림픽, 올림피아드가 그 예이며, 이런 곳은 상이 메달의 형태로 등급이 매겨져 있다.

그런데, 이런 세상의 많고 많은 상 중엔 영예(honor, pride)가 아닌 굴욕(humiliation)에 가까운 상도 있으니,
다윈 상이라고 혹시 들어 보셨는가?
이건 개그 내지 풍자 성격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수여되는 상인데...
열성 유전자를 지닌 사람이 자신의 씨를 스스로 끊음으로써 인류의 발전/진화-_-에 공헌한 경우 수상할 수 있다.
공식 홈페이지는 여기. http://www.darwinawards.com/

그래, 한 마디로 개소리이다. -_-;;;
쉽게 말해서 ㅂㅅ같은 개죽음을 맞이하거나 최소한 생식불능이 된 사람이라면 이 상을 받을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조건이 있다.

1. 수상자는 기막히고 놀라울 정도로 충분히 멍청한 짓을 하거나 어이없는 일을 당해야 한다.
2. 수상자는 그로 인해 죽거나 고자가 돼야 한다. 내가 고자라니
3. 그 행동은 의도했건 안 했건 자신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의지로 인해 야기된 것이어야 한다.
4. 당연한 말이지만, 수상자는 정상적인 지적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5. 행적에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 공신력 있는 매체에 보도되었다거나, 증언이 충분히 믿을 만하다거나.

예를 들자면,
- 공짜로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자판기를 기울이다 자판기에 깔려 죽은 사람. -_-;;; (1994년)
- 독사에게 물렸는데, 병원에 안 가고 술집에서 술이나 퍼 마시면서 깡으로 “난 독사에게 물리고도 끄떡없어”라고 자랑을 하고는 곧 죽어 버린 어느 미국인 남성 (1997년)
- 자기 집에다가 수심이 자기 키보다 얕게 수영장을 설치하고는 다이빙 후 목이 부러져 죽은 사람 (1998년)
- 광산에서 수정을 캐고 있었는데 위에 달려 있던 수정이 떨어지면서 거기에 정통으로 찔려 죽은 멕시코의 광부.. (2001년)
- 벌집을 옮기려고 온몸을 얼굴까지 보호막으로 둘러쌌는데, 작업 중에 그만 밀폐된 비닐봉지 안에서 질식사한 농부.. 숨구멍을 안 뚫었다. -_-;; (2002년)

이런 사람들이 받아 왔다. ㄲㄲㄲㄲㄲㄲㄲㄲ

이런 상이 다루는 사건들이든, 이런 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이든 모두 단순히 엽기 해외 토픽 정도로 치부될 법도 한데
이 다윈 상은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작년(2010) 여름에 우리나라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첫 다윈 상 수상자가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대전 지하철 서대전네거리 역에서 휠체어 탄 채로 추락사한 어느 장애인.. ㅠㅠㅠㅠㅠ

구체적인 스토리를 아는 분도 있겠지만...
고인은 8월 25일, 지하철 타러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아주 간발의 차이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한참 전에 먼저 탄 어느 60대 여인 혼자만을 싣고 매정하게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내가 알기로 지하철의 엘리베이터는 한번 문이 열리고 나면 닫히지 않고 굉장히 오랫동안 열려 있으며, 주행 속도도 아주 느리다. 비장애인들이 남용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또 몇 분이 그냥 날아가는지 모른다.

나라도 짜증 났겠다. 그래서 고인은 빡쳤는지,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휠체어로 쾅쾅 들이받았다. 그런데 2타 때는 약한 엘리베이터 문이 벌어졌고, 3타 때는 그가 그대로 밑으로 엘리베이터 문 아래로 추락해 버렸다.
서대전네거리 역이 얼마나 깊은 역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역이 무슨 여의나루나 만덕 같은 역이 아닌 이상, 설마 사람이 추락사할 높이였겠나 싶다. 허나, 몸이 불편했던 장애인은 충격을 최소화하는 자세를 유지하지 못했는지, 아래의 엘리베이터 상부에 휠체어에 앉은 채로 떨어져서 그대로 사망. 떨어지면서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_-;;;

여인이 탄 엘리베이터가 아래층에 막 도착하려던 찰나, 그 장애인과 휠체어가 엘리베이터 카 위로 쾅 떨어졌으며, 충격을 받은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불이 꺼지고 고장이 났다. 결국 그 여인도 엘리베이터 안에 한동안 갇혔다. -_-;;; 마른 하늘에 날벼락.
이 모든 장면은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동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졌으며, 외국에까지 소개되면서 네티즌들은 이 사람을 올해의 다윈 상 1등급 수상자로 뽑게 되었다.

듣자하니, 당시 엘리베이터에 구조적인 이상은 없었다고 한다. 무거운 휠체어로 그 속도로 저 정도로 작정하고 쾅쾅 들이받는 건 어차피 설계 기준을 초과하는 충격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관리자의 관점에서는 면책 사유가 성립한다고. 그러니 고인의 죽음은 정말 빼도 박도 못하고 자업자득인 꼴이 됐다. 완전 캐굴욕. 그저 묵념뿐이다.

다윈 상의 취지 자체가 고인드립인 건 말할 것도 없고, 한국식 정서라면 망자에 대한 명예 훼손감일 텐데. 에휴...;;
사실은 찰스 다윈조차도 그런 상의 이름에 자기 이름이 붙은 것으로 인해 통탄할지도 모르겠다. 다윈에 대한 고인드립 ㄲㄲㄲㄲㄲ
하지만 다윈 상의 발상 자체가 진화론적이니 이 역시 자업자득이다.
참고로,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나라는 한때(일제 강점기 때) 다윈의 기일을 기려서 과학의 날을 제정하기도 한 적이 있다. 왜 하필 다윈일까.;;

에어장 목사 정도면 다윈 상의 범주에 들지 궁금하다. 그런데 그건 굴욕적이긴 해도, 바보짓이라기보다는 천하의 개쌍놈짓을 하다가 자업자득으로 명을 다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은 성격이 다르다 하겠다.

다윈 상 자체에는 뭔가 노골적인 종교적 이념이 없지만, 그래도 이건 창조· 진화 논쟁을 의식해서, 더 나아가 기독교를 좀 조롱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는 뉘앙스가 전혀 없다고 말하면 그 역시 거짓말일 것 같다.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FSM 날스괴;;)처럼 말이다. 유한 상태 기계가 아니다!
FSM 의 공식 홈페이지: http://www.venganza.org/

FSM 하니까 여러 모로 라면교 교주가 떠오르던데.. 한국 버전은 라면이고 양놈들 버전은 스파게티이다. -_-;;
라면교 교주는 끓는 물에 돌아가셨다가 3분 만에 부활하셨다거나, 극악한 사탄의 무리인 비빔면과 짜파게티 무리를 조심하고 적그리스도인 뿌셔뿌셔에게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둥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패러디 수준인 반면..
FSM에는 좀 더 수위가 높은 비수가 꽂혀 있다.

FSM 신도들이 웬만하면 하지 말았으면 하는 짓
1. 웬만하면 나를 믿는다고 남들보다 성스러운 척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남이 나를 믿지 않는다고 마음 상하지 않으며, 어차피 안 믿는 자들에게 하려는 말들이 아니므로 말 돌리지 마라.
2. 웬만하면 내 존재를 남들을 괴롭히는 핑계로 사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
6. 웬만하면 내 신전을 짓는데 수억금을 낭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더 좋은 데 쓸 데가 많다.
7. 웬만하면 내가 임하여 영지를 내린다고 떠들고 다니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웃을 사랑하랬다. 좀 알아 먹어라.
뭐 이런 것들이 있다.

흔히 “종교는 나약한 사람들이나 의지하는 수단이지. 난 차라리 내 주먹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거보다 조금 온화(?)한 사람이 한다는 말은 뻔하다. “뭐, 심신 수양을 위해서 종교 하나 갖는 거 나쁘지는 않지. 하지만 너무 빠지지는 말고, 특히 네 종교만 옳다는 독단에 빠지지는 마라”

국내외의 유~명한 개독안티 석학들은 종교가 지금까지 저질러 온 온갖 폐해들, 종교 때문에 벌어진 각종 참극은 둘째치고라도 그게 사람의 이성을 얼마나 마비시키고 우민화해 왔는지를 지적한다.
그걸 직설적으로 표현 안 하고 교묘하게 sarcasm을 섞어 풍자하다 보니 FSM 같은 것도 만들어진 것이리라.
애초에, FSM교는 “어이쿠! 창조론과 지적 설계를 가르칠 정도로 학교 교육이 막장으로 치닫는다면, 아예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님을 가르쳐도 되겠네요 ㅋㅋㅋㅋㅋ” 이런 비꼼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난 그런 것에는 별로 대응할 필요를 못 느껴서 대응 안 한다.
걔네들의 말 중에서 한 20~30% 정도는 특정 문맥에서 '몇몇 가정이 성립한다는 전제 하에서' 맞는 말도 물론 있다.
마치 성경에서 “어리석은 자가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는 문장 자체는 참인 것과 같은 맥락에서 말이다.

신을 찾아 온 것도 인간이고 그 신이 필요없다고 신 없이 살자고 부르짖는 것도 인간이다. 그런데 과연 신 없이 인간이 잘 살면 얼마나 훌륭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과연 당신의 혼을 사랑하고 걱정해서 그렇게 말하는 걸까?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에게 진짜 중요하고 필요한 가치는 눈으로, 시스템으로 측정할 수 없으며 돈과 권력과 과학 기술로 얻을 수 없다.
그걸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의 입시 위주 교육 제도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고, 아무리 사회 개혁을 외쳐도 사회 구조는 여기서 저기로 쳇바퀴만 돌 뿐 바뀌지 않는 것이다. 잘 생각해 봐라.
아무리 돈을 쳐발라서 스펙 완벽한 배우자와 결혼해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상류층들이 이혼을 엄청 많이 한다. 이래도 아직 이해가 안 되겠는가?

뭐 이런 예가 부지기수이다. 인간이 우주에 갔다 오고 핵무기를 발명하고 지구촌을 인터넷으로 연결했다 한들, 과연 저 구도가 본질적으로 바뀔 수가 있을까?
이건 내 주관적인 생각이다만, 세상에 사람들의 빈부 격차가 이토록 심하고 환경과 여건 차이가 난다고 해도 하나님이 공평하다고 하는 이유가 이런 곳에 있는 것 같다. 인간에게 진짜로 공평해야 하는 건 여전히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저렇게 영적으로 불만족스럽고 부족한 것이 존재하는 한, 무신론자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절대자를 찾는 사람(굳이 기독교가 아니어도)은 없어질 수 없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무신론자 중에 미신에 빠진 유신론자들이 너무 불쌍한 나머지 그들을 위해 대신 죽을 정도의 사랑을 그들에게 베푸는 사람이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 말이다.
세상에 저런 데에 왜 매달리는지 내 머리로 진짜 이해가 안 되는 시한부 종말론자, 도박 중독자, 이단들도 세상에 절대로 안 없어지고 있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 건전한 게 당신의 논리에 설득되어 없어질 거라고? 꿈 깨라.

끝으로..
나의 종교가 '철도'라고 말한다면 그건 맞을 가능성이 높다. ㅋㅋㅋㅋ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복음은 나에게 종교가 아니다. 편의상 여타 종교들 중 하나인 것처럼 분류하는 경우는 있지만 본인이 개인적으로 그걸 종교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도대체 기독교는 왜 이리도 교파가 많고 이단들도 많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윈도우즈에만 온통 악성 코드나 보안 이슈가 들끓고 있고 맥OS나 리눅스는 바이러스가 거의 없는 것과 비슷한--같지는 않지만-- 이유 때문입니다. 설마 그게 OS의 기술적 우열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시지는 않겠죠?

Posted by 사무엘

2011/07/02 08:15 2011/07/0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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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국적인 대한민국의 건국 정체성에 대해서는 잘 알다시피 두 개의 극단적인 평이 있다.
엄친아 이 승만의 영도력으로 그 어렵고 열악하고 위태롭던 여건하에서(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무슨 권리가 있는 전승국도 아니었다!) 중국도, 소련도 아닌 미국을 끌어들여 공산주의가 아닌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한반도에다 기적적으로 세웠으며, 더구나 초대 대통령이 크리스천이었던 덕분에 제헌 국회 때 감사 기도까지 올렸더라...;; 이건 밝은 면만 본 것이다.

이 국가의 사회 시스템에 대해 굉장한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를 굳이 여기서 또 설명하지는 않겠다. 단적인 예로 인터넷 상에 이 승만을 칭송하는 글의 양하고, 악담과 저주를 퍼붓는 글의 양의 비율이 어떻게 되던가? -_-

그런 것처럼, 미국의 태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건국 이념이 담긴 메이플라워 서약에서부터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멘”이 들어가고 지폐에 “In God We Trust”가 들어간 기독교 국가라고 자랑스러워하는 기독빠가 있는가 하면,
사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포함한 미국의 건국 공신들의 상당수는 그저 이신론(deism)을 믿었을 뿐이며 성경의 하나님을 믿은 게 아니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심지어 그들이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주장까지 있다..;;
또한, 과거의 흑인 노예라든가 인디언들 학대 문제 같은 흑역사를 들추면서 미국을 까는 사람도 있다.

뭐, 미국이 아무리 기독교 냄새가 짙다 해도 미국의 국교가 기독교로 헌법에 명시되어 있기라도 한 건 아니며, 독일처럼 목사가 아예 공무원이기라도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국은 시간이 갈수록 기독교 냄새가 옅어지고 있고, 이를 미국 내부의 크리스천들은 배도와 타락-_-이라고 표현한다.

본인은 개인 신념상의 친미와 반미 중 하나만 고르라면 명백하게 친미이다.-_-;;; 미국이 전세계를 상대로 오지랖을 떨면서 잘한 것도 있고 병크를 저지른 것도 다 있겠지만, 미국이 지금까지 세계 평화와 인류 복지에 기여하고 유익을 끼친 것이, 잘못한 것을 월등히 압도한다고 의심의 여지 없이 인정한다. 소련·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가 세계 패권 국가였다고 생각해 봐라. 미국보다 훨씬 더 나쁜 짓 많이 했겠지..
특히 다른 나라도 아니고 대한민국 같은 나라가 반미 할 자격이라고는 정말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그나마 국민 의식이 선진적인 덕분에, 저렇게 많은 자유가 있으면서도 나라가 그 정도나마 질서가 유지되고 잘 돌아간다. 부자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보다 낫고, 기부나 상속에 대한 문화도 더 낫다. 국민 대다수가 그냥 시골에서 자영업이나 농업에만 종사해도 집과 차 장만하고 심지어 호신용 총까지 장만해서 잘 산다. 그러나 소수 똘똘이 엘리트들은 그야말로 세계를 호령한다.

미국은 9· 11 테러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역사상 자국 영토가 적의 침략을 직접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한반도는 역사상 침략을 몇 번 받았다더라? -_-) 미국의 현충일인 재향 군인의 날은, 자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 나가서 남을 위해 싸운 자국 군인을 기리는 날이다.
이 뿐이던가? 미국은 건국 당시부터, 선거로 뽑힌 국가 원수가 지정된 임기 동안만 나라를 다스리는 공화정 대통령제를 시행했다. 200여 년의 역사 동안 비록 대통령의 암살은 있었을지언정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적이 없고 정권이 비교적 평화롭게 잘 교체되어 온 것도 한국의 현대사와 비교하면 정말 대단한 면모가 아닐 수 없다.

그 미국의 주요 전직 대통령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봤다. 미국 시민권 득템 시험을 통과하려면 이런 거 달달 외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 스티브 유 씨도 공부 열심히 했을 것이고. -_-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본인은 “기독교인은 무조건 기독교인 대통령을 지지해야 한다” 주의가 절대 아니다. 오해 없기 바란다. 글 중에 나오는 “미국의 크리스천들은 대체로 이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문장을 “김 용묵도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이 미국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로 확대 해석해서 받아들이지도 말기 바란다.

조지 워싱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다. 그 당시 국가 원수로서의 주변의 비교 대상이 왕밖에 없다 보니, 아직은 공식 석상에서 자신을 3인칭 '짐'-_-이라고 부르고 왕처럼 행세한 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훌륭한 본도 충분히 보였다.
그는 미국의 당시 국력에 비해서 개인적으로 이미 굉장한 부자였기 때문에, 연봉을 안 받고(요즘도 뭐 연봉 1$ CEO들이 있으니까^^) 대통령 직무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자기 이후에는 가난한 사람 중에도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선례를 남기려고 연봉을 받았다. 또한 결정적으로 그는, 후세에 독재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며 2선까지만 한 후 깨끗이 물러났다.(물론, 이 양반은 어차피 권좌에 안 있어도 워낙 잘 살았고 아쉬울 게 없던 처지이기도 했지만. ㄲㄲ)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도 애초에 부카니스탄 같은 막장 정부를 수립한 게 아니었던 이상, 딱 3선까지만 하고 스스로 물러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주위의 아부꾼들이 자꾸 부추기니까, 진짜 국민이 원하는 줄 알고, 고스톱으로 치면 스톱을 안 하고 쓰리고 포고 하다 피박 나서 딥다 바가지 썼다. -_-;;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이 단일 국가라기보다는 아직 array/set of States에 가깝고(united가 아니라!) 껀수만 생기면 얼마든지 서로 찢어질 수도 있던 시절... 남북 전쟁이라는 비극까지 벌어지던 시절에 미국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연합한 국가로서의 미국의 근간을 세운 위대한 지도자이다.
링컨 하면 노예 해방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그렇다고 해서 흑인을 백인과 완전히 동등하게 대우하고 동등한 권리를 줘야 한다고까지 주장한 박애주의자는 물론 아니었다. 그때 아직 시대가 어느 시대였는데..
또한,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링컨> 같은 기독교 서적까지 있긴 하지만, 이 사람은 평생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으며, 신앙면에서 무척 회의적으로 지냈다는 설도 전해진다. 그래서 골수 남부 백인 출신인 피터 럭크만 같은 성경학자는, 링컨 대통령이 사실 구원 받았다는 증거조차도 없다고까지 그를 깐다.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들끼리라 해도 정치 성향이 일치할 수는 없는 모양.

시어도어 루스벨트: 20세기 초에 상당히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을 발휘한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는 가쯔라-태프트 밀약을 승인한 정권의 수뇌였으니 감정이 좋을 수는 없을 듯. “미국이 보기에도 조선이라는 듣보잡 나라는 식민지로 좀 먹혀도 이상할 게 없는 미개한 나라인 반면, 러일 전쟁에서 당당히 이긴 너희 일본은 본격 선진국 강대국 인증. 일본이 조선을 갖도록 하고, 나 미국은 필리핀을 사이좋게 나눠 갖겠다.”
그 당시는 이런 합의가 힘의 균형이요 세계 평화와 국제 사회의 질서로 간주되었으며, 이런 거 중재를 잘 한 게 아예 노벨 평화상감이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샤바샤바가 몰래 되고 나니까, 이 승만 같은 사람이 나중에 뒤늦게 미국을 상대로 아무리 조선 독립을 호소하며 외교 로비를 해도, 얘기는 이미 다 끝났으니 당연히 씨알도 안 먹혔다.

우드로 윌슨: 민족 자결주의를 주장하고 국제 연맹을 창설한 저명한 대학 교수 겸 정치인.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인 이 승만에게 박사 학위를 준 지도 교수이다. 하지만 그의 지론은 정세상 조선의 독립에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이에 낙담한 이 승만이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아무리 배워 봤자 결국 세상은 법과 원칙이 아니라 강대국 꼴리는 대로만 돌아가니 아무짝에도 쓸모 없군요. 내가 낸 등록금 다시 돌려 주세요”라는 뼈 있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윌슨은 미국에서, 이 승만은 한국에서 각각 현재까지, 박사 학위를 소유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명예 박사 말고) 쉽게 말해 최고 고학력자라는 뜻.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 정책을 밀어붙인 걸로 유명한 사람이고,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12년이나 대통령을 한 합법적 독재자이다. 그때까지 미국 헌법에 중임 제한이 명시되어 있지 않긴 했지만, 통상 대통령은 많아야 2선까지만 하고 제 발로 물러났었는데, 이 사람은 덥석 4선까지 해 버린 것. 그래서 대공황과 훗날 2차 세계 대전의 진주만 폭격 사이엔 기간이 꽤 긴 것 같은데, 이례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은 동일 인물인 것이다.
그는 소아마비를 앓아서 휠체어를 탄 것으로 유명하다. 종전을 앞둔 1945년에 돌연사했다. (뇌출혈로 인해 왕하 4:19의 장면처럼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서거 후에 대통령의 중임 제한이 헌법으로 추가로 명시되었다.

해리 S. 트루먼: 부통령을 하다가 루스벨트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인해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양반. 대통령이 되자마자 194~50년대에 세계의 역사를 바꾸고 한국의 운명도 바꾸는 중요한 결정을 여러 차례 내렸다. 먼저 일본에다 원자폭탄의 투하를 승인함으로써 본격 2차 세계대전 종결자로 등극하였으며, 6· 25 때는 반대로 맥아더 장군의 과격한 행동거지를 견제하고 오히려 그를 해임하기도 했다.
이것 때문에 맥아더를 오로지 민족의 은인으로만 아는 반공 진영에서는 트루먼을 싫어하는 편이나, 맥아더도 당시에 하극상을 벌이면서 너무 무모한 작전을 강행하기도 했었다.

리처드 닉슨: 풍채 좋고 업적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 양반이다만, 워터게이트 사건 하나로 이미지 다 말아먹었다. 결국 탄핵 당하기 직전에 사임했으며,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임기를 다 못 채우고 굴욕적으로 자방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았다. (본진 털리고 엘리 당하기 직전에 겨우 gg 치고 먼저 나갔다 -_-)

존 F. 케네디: 아주 유명한 대통령. 40대 초반의 상당히 젊은 대통령이고 미국 역사상 최초의 가톨릭 신자였다. 케네디의 집안은 어렸을 때부터 '대통령 배출'을 위해서 자녀들끼리 극성스러운 경쟁과 엄친아 스펙 쌓기 스파르타식 교육이 행해졌다고 한다.
가톨릭 신자는 교회 헌법상 국적이 둘이다(다른 하나는 바티칸-_-). 이 때문에 케네디는 대선 후보 시절에 “당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만약 미국의 국익과 바티칸 시국의 국익이 상충할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같은 낚시성 질문까지 주변으로부터 받았다고.
종교가 천주교라는 점, 취임 선서 때 무엄하게도(?) 성경에 손을 얹지 않은 점, 게다가 공립 학교에 비치돼 있던 십계명을 철거하고 성경 공부· 기도 시간을 없앤 점들 때문에 미국 내부의 크리스천들로부터는 나라의 기강을 싹 말아먹었다고 정말 축시의 참배급으로 가루가 되도록 폭풍처럼 까이고 있다.

잘 알다시피 케네디는 상당히 괴이하게 암살당했다. 그런데 그 암살범도 이내 암살을 당해 버려서 케네디의 죽음은 각종 음모론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무명 병사의 군대 의문사도 아니고 한 대통령의 죽음에 왜 이렇게 의혹이 많나? ㄲㄲ

로널드 레이건: Reagan이라고 적혀 있어서 '리건'이라고 낚이기 쉬운데, great처럼 이때 ea는 '레이건'이라고 발음된다. ㄲㄲ 1980년대, 우리나라의 5공 시절을 풍미했던 대통령으로, 70대의 상당한 고령으로 대통령에 취임했고 퇴임 후에도 90세가 넘게 장수했다.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해서 “우리가 처한 온갖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저 작은 책 안에 다 들어있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조지 부시: 이 사람과 관련해서는 걸프 전쟁밖에 생각 안 난다. 이 사람 자신은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 출신.
듣자 하니 대선 시절엔 경쟁 후보를 상대로 사형 제도 드립을 시전하여 지지율을 뺏어오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세상에, 자기 가족을 죽인 살인범에게도 사형 집행을 반대하겠다니, 이런 반인륜적인 불온사상의 소유자가 어찌 대통령이 될 수 있겠습니까 ㄲㄲㄲㄲㄲ” 나도 크리스천으로서 사형 제도를 적극 지지한다만 저건 말장난스럽고 좀 유치하다.. -_-;;

빌 클린턴: 스캔들 하나 때문에 탄핵 위기까지 갔던 양반. 닉슨과 마찬가지로 스캔들 자체보다도 그걸 무마하려고 거짓말을 한 게 그의 입지를 더욱 위협했었다. 문란한 사생활에다가 예수회 소속의 대학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미국의 보수-_- 기독교 진영에서는 그를 무척 싫어했지만, 대통령으로서 행적에 대한 세속 평가는 좋은 편이다.

조지 W. 부시: 젊었을 때 방황도 하고 좀 '놀기도' 했다가 나중에 기독교 신앙으로 교화되고 정신을 차린 케이스이며, 예일대도 사실 가문빨로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이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정말 친절하고 온화하며, 클린턴과는 달리 사생활도 깨끗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정치인으로서는 좀 띨띨.. -_-;; 이 양반에 대해서 뭐 전쟁광이네 어쩌네 하는 모함에는 난 별 관심이 없다만, 진짜 어눌했던 건 사실이다.
그나마 신앙빨 하나 내세워서 재선까지도 아슬아슬하게 성공함. 부자가 나란히 대통령이 된 사례로 미국 역사상 둘째라고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 사람들 말고도 미국 역사를 공부해 보면 재미있는 사람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성경의 열왕기처럼 누가 왕이 돼서 죽을 때까지 실컷 나라를 통치하다가 또 자기 아들에게 왕위 물려주는 패턴이 아니라,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해서 지정된 임기 동안만 통치를 하게 하는 나라의 내역은 색다르지 않을 수가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1/06/24 08:45 2011/06/2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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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설교 외

* 스포일러: 이 글은 잘 나가다가 뒷부분부터 삼천포로 빠지는 구조이다.

본인은 정확하게 언제 구원받았는지 모르는 예수쟁이이다. 고등학생이던 1998년 가을에 처음으로 성경을 한 번 완독했으며, 2002년 무렵에 KJV believer가 되고 세례 대신 침례를 다시 받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6년엔,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거리 설교 때 난생 처음으로 preaching을 해서 지금까지도 이를 계속하고 있다. 본인은 길거리에서 직접 설교를 하는 교회 형제들 중에서는 최연소자이다.

주변의 불신자, 개독안티, 무신론자와 얘기를 나눠 보면, 그들은 교회 댕기는 주변 사람들의 행실 때문에 실망하고 기독교에 대한 호감을 잃은 경우가 많다. 도대체 어디서 접했는지 별 희한한 교회, 예수 사칭하고 다니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사람에 의한 온갖 나쁜 기억과 응어리는 꼭 하나씩 갖고 있는 듯했다. 저런 놈들 때문에 예수 못 믿겠다고.

물론, “크리스천들의 행실은 불신자들이 보는 성경”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크리스천들은 세상을 상대로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고 본인도 당연한 말이지만 그 점에서 거의 대부분의 경우 예외가 아니다-_-. 그런 못난 것들이, 자기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고상하게 산 사람들도 다 예수 안 믿었기 때문에 죽어서 지옥 간다고 말하면 그것만치 기분 나쁘고 정 떨어지는 소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기독교는 애시당초 선행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다. 그리고 교회란, 열심히 도 닦고 인격 수련해서 구원을 받으려 애쓰는 고매한 사람들의 모임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다니는 일종의 병원 같은 곳이다. 병원에 완벽한 사람, 성한 사람이 다닐 리가 없잖아..;; 100% 완벽한 교회에 당신이 가입하고 나면 그 교회의 100% 완벽 무결성은 깨진다. -_-;;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 초청에 차별이 있던가?? 신앙생활이란 그런 마인드로 하는 거다.

그리고 기독교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불신자들의 안목이 늘 객관적이고 정확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대형 교회에 대해서는 부패하고 비리 많고 돈만 밝힌다고 욕하면서, 한편으로 진짜 성경대로 좁은 길을 고집하는 마이너 교회에 대해서는 자기밖에 모르고 편협하고 옹고집 교조주의라는 식으로 응수한다면?
교회는 어떤 노선을 가든 어차피 욕을 하게 돼 있는 불신자의 취향까지 만족시켜 줄 의무는 결코 없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마 11:18-19 같은 부류들.

난 지금까지 살면서 참 다행스럽고 고맙게 여기는 점이 하나 있는데, 신앙생활에 관한 한 사람 때문에 시험 들고 실족한 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또라이-_- 짓과 괴팍한 성격 때문에, 남들로 하여금 예수 믿는 사람이 원래 다 저렇나 식으로(ㄲㄲㄲㄲㄲㄲㄲㄲ) 시험 들게 하고 간증 망친 게 더 많을 것이며, 기독교계 전체의 관점에서는 내가 빚진 게 더 많을 것이다. -_-;;; 죄인을 받아준다는데 내가 왜 마다하며, 다른 죄인으로부터 끼친 여파에 그렇게까지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 사후 심판이 있다는 것, 인간은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으며 인간의 의는 몹시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거나 그에 반감을 품어 본 적이 없다. 신이 인간을 지옥에 보낸다는 말에 불쾌해하기에는 인간의 죄악이 너무 극심하다는 현실에 훨씬 더 공감이 갔다. 이런 발상의 차이가 불신자의 사고방식과 신자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만들어 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누구 만만찮게 나만의 인생 개똥철학에 빠져서 하나님에 대해서 굉장히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히고, 죄의 결과와 여파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열폭하고 인생이... 으, 생각도 하기 싫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고전 15:10)

길거리에서 복음을 설교하는 사람들의 메시지를 들어보면 자기만의 패턴이 있다. 그리고 나도 나만의 패턴이 있다. 나는 내가 깨달은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성경이 어떤 책인지 먼저 얘기한 뒤, 인생은 유한하고 언젠가 죽음과 심판이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얘기하고 예수님은 우리의 경제· 교육· 정치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죄 문제를 해결하러 오셨고 그게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살인· 간음을 저질러서 지옥 가는 게 아니라 예수 안 믿어서 지옥 간다.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던 것, 죽으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던 것, 절대적인 선과 악이란 없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모두 바로잡아야 한다” ... 이걸 전하려고 한다.

거리 설교라는 게 처음에 입을 떼기가 힘들다. 본인도 초창기에는 원고를 미리 써 보기도 하고 여러 방법을 찾아 봤는데, 결국은 여러 번 하고 나니까 요즘은 원고 없이도 한번 말을 하면 최하 15분은 금방 지나는 것 같다. 나 자신이 복음과 구원 메카니즘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이를 조리 있게 얘기도 곧장 할 수 있다.
내가 평소에 다른 곳에서 공개적으로 얘기를 하다가 말 더듬고 혀 꼬이고 실수하는 것에 비하면, 내가 생각해도 거리 설교는 꽤 유창하게 잘 하는 것이다. -_-

오히려 나는 인터넷 공간도 그렇고 길거리도 그렇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메시지 전파가 차라리 속 편하다.
단적인 예로, 이곳 인터넷에서는 내 인격-_-보다 내가 쓰는 글의 메시지 자체만이 비교적 쉽게 전달되기 때문에 신앙의 동지도 여럿 만나고 이끌어 올 수 있었다. ㅋㅋ 하지만, 나와는 반대 방면으로 재능이 있는 분도 있겠지.

또박또박 길거리에서 설교를 하고 나면 굉장히 기쁘고 후련한 마음이 든다. 내 신앙 노선을 이미 잘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난 체험이나 경험 같은 데에 가중치를 덜 두고 그런 것 판단은 아주 보수적이고 신중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 설교를 하고 나면 감회가 새롭다. 이런 육신의 체험은 나도 보증 가능하다. 이걸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내 안에 거주하는 성령님이 주는 기쁨”이라고 한다.

“네가 드디어 나에 대해서 공개 석상에서 당당히 증언을 할 정도로 성장했구나! 아이고 기특해라!” 정도? ㄲㄲㄲㄲ
거리 설교가 주는 유익: http://biblebaptistpublications.org/streetpreaching.html 클릭. (영어)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난 어차피 좀 덕후에 남 눈치 볼 줄 모르는 철면피 기질이 있어서.. -_-;;
하루는 거리 설교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문득 이런 선포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여러분은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나라 철도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전해 드리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어쩌구저쩌구... 중략)

이처럼 철도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습니다. 철도는 21세기의 트렌드에 어울리는 친환경 고효율 교통수단입니다. 우리나라 철도를 알면 역사와 지식을 보는 눈이 바뀝니다. 철도는 정서 수양과 교양 함양에 좋습니다. 철도를 알면 국토 사랑 정신이 생깁니다. 이렇듯 철도 덕질(?)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선한 간증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앞으로 철도에 관심을 갖고, 여행 갈 때 철도를 적극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본색이 드러났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설마 진짜로 길거리에서 이렇게 외치고 왔다면, 여기 계시는 크리스천들께서 “용묵 형제가 부디 철도를 끊고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기도라도 하셔야 할 배도(背道)-_- 단계이겠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철도를 전하는 데는 영적 전투가 필요하지 않다. 철도를 전하다가 순교? 순직?했다는 사람 얘기는 못 들었다. -_-
철도를 전하기 위해서는 죄, 죽음, 심판, 지옥 같은 유쾌하지 못한 주제를 꺼낼 필요가 없다.
“버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존중해 줘야지 왜 너만 독단적으로 구냐?” 이런 말을 들을 일도 없다.

요즘은 철도역, 시외버스 터미널, 고속버스 터미널을 통합해서 교통 허브로 건설하는 게 유행이라지만, 그게 무슨 교통수단간의 에큐메니컬 운동이랍시고 경계라도 해야 할 대상이지는 않다.

허나, 철도에는 불행히도 혼을 구원하는 능력이 없다. 하늘로부터의 보상이 있다고 약속되어 있지도 않다. 그런 인센티브가 없으니 철도 전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을 해야지 뭐, 별 수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내 안에 거주하는 성령님도 철도를 좋아한다고 굳게 믿는다. (뭐, 주변에서는 용묵 형제가 철도 덕질을 할 때마다 성령님은 탄식할 거라고 악담을 하는데... ㄲㄲㄲㄲㄲ) 새마을호 객실에서 Looking for you가 내 귀에 울려 퍼지던 그 날은 내게 정말 오순절 성령 강림절이나 마찬가지인 날이었다. 철도와 본인과의 만남은 가히 운명적이고 필연이었다.

본인은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 밑으로 지하철이 깔리는 날을 꿈꾼다. 누가복음의 므나 비유에서 “열 도시를 다스리라”(눅 19:17)가 ‘10개 철도 노선(사철 ㄲㄲ)을 다스리라’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make straight in the desert a highway for our God.”(사 40:3)는 사막에서 철도가 건설되는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어디 가서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나, 지하철 시스템에 대해서 강연이라도 실컷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이상으로 철도 얘기를 담대하게 늘어놓고 싶다. ^^;;

나는 한때는, 요즘 같은 영악하고 험악한 세상에 나 같은 별종, 괴짜, 덕후가 아니면 누가 성경 따위를 믿겠는지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다. 세상의 유행 풍조하고 성경의 사고방식은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다시 말해, 철도 덕후나 KJV believer나 비슷한 수준의 geek라고 생각했....는데, 후자에 속한 분에 따르면 그건 절대로 그렇지 않으며, 그 둘을 상호 동급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그러네.. ㅋㅋㅋㅋㅋ 정말인지?? ㅠㅠ

Posted by 사무엘

2011/05/21 08:41 2011/05/2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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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매년 4월 중하순에는 어지간한 개신교회들이 부활절이라고 지키는 절기가 있다. 잘 알다시피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한다고들 한다.
부활 신앙은 창조 신앙만큼이나 신자와 불신자를 가르는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기독교 교리이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절대로 성립할 수 없다고 성경에 직접 선언되어 있다(고전 15:12-19).

일단 예수가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이었다는 건 세속 역사가들도 도저히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건 인정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백과사전이나 세계사 관련 서적을 보면, 예수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이렇게 살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까지만 서술하고 끝난다. 그 이상을 적으면 종교색을 띠는 민감한 영역이 되어 버리니까..;; 아니면 부활 승천 떡밥의 출처는 '카더라' 통신이라고만 얼버무린다. 이건 마치 “성경이 소설이냐, 비소설이냐?”와 비슷한 영역에 속하는 논쟁거리이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이 죽어서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고, 다시 말해 스스로 살아났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전말에 대해 좀 살펴보자.

각종 종교 성화나 영화들은 예수님을 무슨 리처드 스톨먼 같은 치렁치렁 장발의 나이 지긋한 도인, 교주, 심지어 록스타-_-처럼 그려 놓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좀 고증 오류가 아닌가 싶다. 더구나 한국어 성경은 예수님의 언행을 다 아주 위압적인 반말 '해라체'로 기록하고 있으니, 심리적으로 느껴지는 예수님의 연령대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생애 시절의 예수님의 육신의 나이는 30대 초중반의 청년, 기껏해야 노총각이다. 그런데 벌써 제자를 뒀을 정도면 그들은 도대체 몇 살이란 말이냐?

어쨌든, '아름다운 청년'이든 도인 교주이든, 죽은 자를 살리고 물 위를 걷고 5천 명의 군중을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이던 화제의 인물이, 어느 날 갑자기 악질 흉악범으로 몰려 그것도 민족 대명절에 너무도 무기력하게 십자가형을 당해 버렸다. 종교 지도자들에게 매수당한 사람이나, 예수가 슈퍼스타답지 않게 자신들의 정치적 육신적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않는) 것에 대해 실망한 사람들은 옳다구나 예수님을 마음껏 조롱하고 욕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히 패닉에 빠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 인맥으로 좋은 감투라도 얻으려고 제자들 내부에도 줄서기 파벌이 생길 지경이었는데(마 20:20-24 같은) 그런 꿈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난 모든 걸 버리고 오로지 그분만 따랐는데 내 주인님이 이렇게 죽어 버리시다니!”
물론 예수님은 그 전에 자신의 고난과 죽음,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수차례 예고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당시엔 말귀를 전혀 못 알아들었다.

성경은 예수님이 죽으시고서 사흘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한다. 그 시간 동안 제자들은 OTL(좌절) 모드로 있으면서 패잔병의 심정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할 채비나 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 중에 너무 상심한 나머지 자살한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다. 물론 예수님을 대놓고 배반한 가룟 유다는 제외하고.

그랬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그 부활한 주님을 처음으로 알현하는 영광을 누린 사람은 제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한 여인들이었다. 무덤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어야 할 군인들은 어디론가 달아나고 없고, 역사 기록에 따르면 황제의 봉인까지 굳게 쳐져 있었다는 무덤 입구는 뚫려서 훤히 열린 상태였다.

누가복음 24장에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부활한 예수님이 나타난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뭔 일 때문에 그렇게들 난리요?” / “헐, 요즘 예수 시체 증발 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에요. 님은 소문도 못 들었어요?”
글로바라는 사람이 예수님에게(예수님인 줄 모르는 채로), 근래에 있었던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본인은 눅 24:19-24의 기록은 정말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진술이라고 생각해 왔다. 거짓· 과장이나 왜곡이 없고, 세속 신문이나 백과사전 기사, 그리고 21세기로 치면 블로그 포스트로도 손색이 없다. 성경을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의 반응은 '오, 그래. 그 괴이한 사건에 대해 육하원칙에 의거해서 알기 쉽게 참 잘 설명했구나'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가 막힌다는 심정으로 그를 크게 나무라셨다! 이 점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오 어리석고 대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함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넌 왜 그걸 남의 일인양 꼭 불신자처럼 얘기하느냐?)”

예수님께서 친히 성경(=구약)을 펼쳐서 창세기의 이건 내 예표, 레위기의 저것도 내 이야기, 이것도 내 예언, 저것도 내 예언... 풀이를 해 주자 그제서야 제자들은 마음이 열리고, 지금 시국은 겨우 가십거리 미스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이 이뤄진 것이고 그게 바로 자기를 위한 것이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의심과 혼동의 구름이 걷히고 마음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눅 24:32). 그때 왜 예수님이 글로바를 책망하셨는지 하나님의 그 답답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크리스천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각종 성인군자들, 사이비 종교 교주들, 그리고 심지어 공산 독재 국가의 원수들은 다 무덤이 성대하게 꾸며져 있다. 특히 후자 같은 경우는 시신의 미라화와 방부 처리를 하느라 별 돈지랄까지 다 한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이고 굳이 말하자면 기독교의 교주인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자랑거리이다.
죄를 알지도 못하는 예수님이 인간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으나, 그 사망 권세가 예수님을 가둬 두지 못했으며 인간의 죄값이 2000여 년 전에 십자가에서 완전히 치러치고 청산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당당히 부활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그 어떤 조직보다도 피비린내나는 순교 행렬이 넘쳐났음에도 불구하고, 예배 때 묵념이나 추모가 없다. 그분들이 다 지금도 살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흔히 '죽다'의 높임말로 '돌아가시다'(자연으로, 흙으로 완전히 돌아갔기 때문에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심)가 통용되는 반면, 예수님에 대해서는 일회적인 죽는 동작만을 높여서 '죽으시다'가 쓰인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이 얼마나 복된 소식인가? 이 기쁨을 힘차게 잘 표현한 대표적인 찬송가가 바로 <무덤에 머물러>이다. 마치 비행기가 이륙하는 느낌이다. '무덤에 머물러...'(택싱), '원수를 다 이기고...'(엔진 throttle 시작), '사셨네'(이륙 결심 속도 돌파.. 상승-_-)

예수님의 부활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이 되었는지 모른다. 부활한 주님을 목격한 제자들은 겁쟁이에서 불과 며칠 만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자 같은 주의 용사로 180도 돌변했다. 조금 외람된 구석은 있지만, Looking for you를 듣기 전과 들은 후 본인의 철도관의 변화 추이 정도에 비유할 수 있겠다. (엥?)

흔히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죽으신 날은 금요일이 아니다. 자세한 고증 과정은 생략한다만, 예수님은 수요일 오후에 죽으셔서 진짜 말 그대로 사흘 밤낮을 무덤에 계셨다. 그러다 딱 사흘 뒤인 토요일 오후에 깨어나서 막힌 벽을 쓱 통과하든(요 20:26처럼) 군사들을 쫓아내든 무덤을 일찌감치 탈출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인 일요일 아침에 여인들이 빈 무덤을 발견한 것이다. 쉽죠?

목요일은 명절인 유월절 안식일이고, 토요일은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안식일이다. 유대교 신자인 유대인들은 안식일인 토요일에 회당에서 집회를 열지만, 기독교회의 예배 시기는 예수님의 부활 시기에 초점을 두고 일요일이 전통으로 정착하게 됐다. 요 20:1, 요 20:19, 행 20:7, 고전 16:2 등. 여기서 first day of the week는 다 일요일을 뜻한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기 위해서 “예수는 잠시 기절해 있다가 무덤에서 깨어났다. 나중에 도망쳐서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후손까지 남겼다”-_-;; 같은 엄청난 낭설을 지어내는 사람이 있는데...;; 반박할 가치도 없는 개드립이다. 오히려 당시 문헌 기록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검토하다 보니, 예수님의 부활을 도저히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 없고 부인할 수 없어서 예수님을 믿게 된 무신론자 석학도 존재한다. 부활은 기독교를 여타 종교와 근본적으로 구분하는 핵심 요소임이 틀림없다.

※ 관련 아이템 1: 예수님과 요한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과 관련지어 하나 생각해 볼 주제는 예수님과 요한과의 관계이다. 다른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이 어린 요한은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십자가로 돌아왔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육신의 모친 마리아를 맡겼다(요 19:26-27).
얼마 전 최후의 만찬에서 “너희들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폭탄 선언에, 다른 제자들은 다 “그게 혹시 저입니까?”라고 반문하였으나 요한만은 예수님 품에 스스럼없이 기대어 “주님,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이죠?”라고 물었다(요 13:21-25). 그는 그만큼 그분과 각별히 가까운 사이였다.

이런 요한은 본이 아니게 아마 순교하지 않고 제자들 중에 제일 장수할 거라는 복선을 얻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로부터 먼 훗날, 요한은 예수님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고 90대의 백발노인이 된 몸으로 파트모스(밧모)라는 섬에 귀양을 갔다.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상황이었을 텐데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요한은 성경의 마지막 대단원인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오오~~~

예수님께서 가장 비참하고 고독하게 고난을 당하고 계실 때 요한이 십자가 곁에 있었으며, 그때 그는 비록 정확한 나이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무래도 20대 청년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완전 늙었고 홀로 외로이--자기 동료들은 거의 다 순교하고 없다-- 임종을 앞두고 있었을 때, 반대로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 주신 것이다. 이때 요한이 수십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얼마나 기뻤을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가 훗날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날 사랑하느냐?”란 질문을 세 번 받았다는 일화만큼이나, 요한과 예수님 사이의 에피소드도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분의 인상은 계 1:13-16에 묘사되어 있듯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예수님과 그토록 친밀했던 요한조차도 그 위엄에 완전히 압도되어 꼼짝없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 관련 아이템 2: 부활절과 이스터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거창한 명분과는 달리, 오늘날의 기독교 문화권에 존재하는 일명 부활절은 유감스럽지만 그리 성경적인 기원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영문 명칭부터가 이스터이고, 이는 기독교를 세상적으로 공인한 로마 제국이 이교도들의 절기를 기독교 관행에다 적당히 짬뽕하면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주 유명한 논쟁거리가 있다.
킹 제임스 성경은 현존하는 성경 역본들 중 부활절의 유래를 정확하게 알려 주는 유일한 성경이다. 바로 사도행전 12:4에서 이례적으로 '이스터'(Easter)라는 튀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성경에서 그리스어 '파스카'는 행 12:4를 포함해 약 20여 회가 쓰였으며, 다른 곳에서는 유대인들의 명절 '유월절'(passover)이라고 번역하는 게 맞다. 그러나 KJV는 딱 한 군데 저기서만은 그 단어를 '이스터'라고 번역했다. 파스카는 유월절도 되고 이스터도 되는데, KJV는 그 둘을 잘 맞게 분별한 것이다.

성경 본문을 보면 악한 헤롯 왕은 기독교를 박멸하기 위해 야고보를 죽인 후, 베드로까지 잡아들였다. 성경에 따르면, 베드로가 체포된 시기는 무교절 기간이었다고 한다. 헤롯은 베드로를 감옥에 가뒀다가, 파스카라는 명절이 다 끝난 뒤에 백성들 앞에 끌어내서 그를 아마 공개 처형이라도 할 작정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무교절은 유월절이 끝난 뒤에 이어진다는 것. 레위기 23장처럼 구약 율법을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에겐 이건 상식이다. 헐, 그런데 무교절 기간에 체포된 사람을 유월절이 끝난 뒤에 끌어낸다고라? 이건 21000원짜리 밥을 사 먹고 나서 돈은 20000원 내고, 포장마차 주인에게 “잔돈으로 애새끼들 과자나 사 주라”는 계산법을 구사하는 김 성모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논리이지 않은지? -_-

그래서 KJV의 번역자는 당대의 언어와 역사· 문화 배경상, 이 파스카는 유대인의 정통 성경 명절이 아니라 이교도들의 짝퉁 명절인 이스터라는 판단을 내리고 '파스카'를 정확하게 번역해 냈다.
KJV를 헐뜯는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KJV에도 오역과 오류가 많답시고 다른 수많은 궤변을 들고 덤빌지 모르나, 우리는 다른 건 몰라도 이스터 하나는 절대로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본인은 지금까지 이스터에 대한 KJV 안티들의 재반박은 전혀 접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스터 하나만 딱 보고는 '우와!' 무릎을 탁 치고 KJV 유일주의자로 전향한 크리스천은 봤다. ^^;;

※ 관련 아이템 3: 십자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아서, 지금 당장이라도 죽으면 바로 하늘로 갈 확신이 있는 크리스천이라면...
그래서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면,
현재 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당신 앞에 바로 놓여 있는 십자가나 묵묵히 지면서 주님을 잘 따르면 된다. '나는 하나님은 믿지만 교회는 안 믿는다' 같은 소리 하지 마라. 그 고마운 예수님이 바로 교회의 머리이다.

예수님의 명령은 안 지키고는, 없는 십자가를 만들어서 질 필요 없다!
특히 주님의 고난을 몸소 체험하겠답시고 육체적으로 자학을 한다거나 그런 짓 하지 마라..;;
교회 성도가 대환란 겪을 준비를 하겠다고 뻘짓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금 세상이 그렇잖아도 성경대로 살기가 불가능에 가깝게 얼마나 힘든 시국인데, 그것도 모자라서 무슨 고난을 더 보태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07 08:49 2011/05/0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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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진화 -- 下

※ 창조 vs 진화 배틀

솔직히 본인은 논쟁을 할 정도로 충분하게 창조론이나 진화론을 공부한 적이 없으며, 별로 하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요즘 악의적인 네티즌들이 얼마나 말 꼬투리 잘 잡고 키보드 배틀 잘 뜨는지도 익히 안다. 그래서 본인은 본인의 주장을, “만약 진화론이 이런 걸 주장한다면, 나는 창조론자로서 당연히 성경 말씀과 약간의 과학적/경험적 사실에 따라 그걸 거부한다. 그 이상은 내게 묻지 말라” 정도의 선에서 끝내고자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화론을 믿는다고 해도, 최소한의 이성이 있는 과학자라면 “나의 x대 조상은 원숭이이고 y대 조상은 아메바이다. 그러니 인간도 동물과 동일한 진화선상에 있는 생물일 뿐이기 때문에, 아무런 도덕적 책임도 없고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ㅋㅋㅋ”라고 대놓고 이러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서 공부도 안 하고서, 진화론자들이 하지도 않는 주장을 지어내서는 “이런 황당한 걸 믿느니 차라리 신의 창조를 믿고 말겠다. 진화론자 비엉~신!” 이렇게 깐다고 그들을 굉장히 싫어한다. 가령, “진화론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유물론, 나치즘, 공산주의, 인종 우생학 같은 악한 사상에 영향을 끼쳤다” 같은 태클. -_-;;;

본인도 다윈이 딱히 골수 개독안티였다거나, 인종 차별주의자, 유물론자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윈이나 여타 이성적인(?) 과학자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진화론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데 본이 아니게 오· 남용되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보기에 사실이다.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인류가 지금처럼 인권 따지기 시작한 지는 정말 얼마 안 됐다. 그 옛날엔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것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마당에, 루저들은 진화가 덜 된 종자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노예로 부려먹고 죽여도 된다” 같은 사상은 너무나 잘 퍼져나갔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게 세속 과학이 말하는 관찰 결과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더라도 말이다.

“아메바보다도 멍청한 놈”이라는 욕설 역시 누가 뭐래도 진화론에서 유래된 상징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학원물인 <구타교실>(소설)에도 나오고 <말죽거리 잔혹사>(영화)에도 나온다.
평범한 들짐승이나 가축이 하는 짓이 띨띨하면 거기서 욕설이 유래될 수도 있겠지만, 아메바는 도대체 뭐냔 말이다.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자가 창조론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것만치 진화론을 신봉하지도 물론 않는다. 그들에게 진화론이란, 단지 현존 생물들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으로 현재 정설로 여겨지고 있는 이론일 뿐이다. 그런데 거기서 나온 시나리오들이 잘 알다시피 성경에 나오는 6일 창조 메카니즘과 정면으로 충돌하다 보니 끙..;;

서로 사이가 심하게 안 좋다. 서로 조작되고 잘못된 자료나 기록을 아직도 써먹는다고 상대방을 헐뜯는다(필트다운 인, 베이직 원인 vs 공룡과 인간 발자국 등).
창조론 진영에서는 어차피 진화론도 재연 가능하지 않으니 과학이 전혀 아니라고 지적하지만, 진화론에서는 창조론과 자신이 동일선상에서 취급받는 것 자체를 수치스러워한다.

창조론에서는 진화론 진영에서 창조의 과학적 증거를 고의로 외면하고 인정 안 한다고 주장하지만, 진화론 진영에서는 창조 과학을 과학계의 환단고기 급으로 완전히 사이비 취급하는 중이다. 이는 기독교에 반감을 지닌 학자일수록 더욱 심하며, 게다가 가재와 게 사이어야 할 크리스천 중에도 창조 과학회를 싫어하는 사람이 꽤 된다는 것은 심각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진화론자의 주장에 따르면, 무슨 조건에서는 종과 종을 넘나드는 대진화도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창조론자가 진화론을 반박할 때 자주 써먹는 엔트로피 법칙도 생물의 진화에다 적용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받아친다.
더 나아가 현대의 진화론이 주장하는 건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게 아니라, 인간과 짐승이 같은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도 좀 말장난 같은 게, 그럼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가 아니라면 진짜로 아메바이기라도 하냐는 것이다.

엔젤하이로 위키에는 “자잘한 발달 없이 갑자기 만들어진 복잡한 기관이 존재하는 것이 증명되거나 (...) 한다면 현대의 진화론은 붕괴하겠지만 창조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필사적인 연구에도 불구하고 발견된 일이 한 번도 없다”라고 적혀 있는데... 반대로 창조론 진영에서는 진화론자들의 필사적인 연구에도 불구하고 중간 화석 따위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반대편을 까잖아? ㄲㄲㄲ

또한 본인은 창조 과학회 글에서 다윈이 동물의 눈이 어떻게 갑자기 만들어졌을까 엄청 고민했다는 자료를 접한 적이 있다. 눈은 잘 알다시피 굉장히 정교하고 복잡한 기관이며, 진화를 통해서 서서히는 만들어질 수 없다고 말이다. 어쨌든 창조론자나 진화론자나 상대방 진영에 대해서 잘 모르기는 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ㅋㅋㅋ

※ 천동설과 지동설

생명 기원 문제 얘기를 하다 말고, 잠깐 다른 얘기.
성경은 인간 중심일 뿐만 아니라 지극히 지구 중심이기도 하다. 사실은 유전자 조작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도전하는 것만큼이나 우주 개발도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대한 도전이다. 단, 도전이 다 반역이라는 뜻은 아니므로 오해하지 말길. 과학은 가치 중립적이다. 크리스천 과학자라고 해서 게놈 프로젝트 연구 따윈 때려치거나 우주 개발 계획에 참여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하더라도 조심해서 해야 한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해와 달이라는 두 광체를 만들어서 전자는 낮을, 후자는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두 광체라는 해와 달이 실제로는 크기와 위상 면에서 서로 가히 넘사벽급의 차이가 있다. 그게 바로 성경의 진술 방식이다. 선언형 프로그래밍 언어의 코드를 절차형 프로그래밍 언어의 복잡한 알고리즘 구현으로 바꾸는 것과 같다.
성경의 묘사만 읽고서 지동설 사고방식을 생각해 내기란 매우 어렵다. 뭐, 이사야서에 지구가 둥글다는(circle of the earth) 표현이 나오고 욥기에 지구가 우주 공간에 매달려 있다는 진술이 있다는 argument까지는 있으나, 이 역시 문맥이 좀 모호하고 어거지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관심사는 인간의 그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니 성경책이 과학책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성경이 어쩌다 과학적 사실에 대해 언급한다면, 그건 당연히 과학적으로 일치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 모든 과학 법칙을 만들었으며, 성경은 그분의 절대무오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경에는 당대 사람들이 모르던 과학적 사실을 언급하고, 여타 신화나 설화와는 차원이 다르게 정확하게 진술한 부분도 여럿 존재한다. 이런 건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 창조론으로도 모자라서 천동설까지 믿는다고 하면 제대로 미친놈 취급받을지도 모르겠다. 천문 현상 중에 천동설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게 있으며, 또 잘 알다시피 갈릴레이 갈릴레오 종교 재판이 기독교계에 가히 평생까임권 급의 병크로 남아서 말이다. 그런데 여호수아기에 있는 태양 정지 사건이라든가, 정지로도 모자라서 아예 역주행까지 한 히스기야 왕 사건은 반대로 지동설 패러다임으로는 꽤 설명하기 힘들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돌던 지구가 갑자기 자전을 멈추면 관성 때문에 지표면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참고로, NASA에서 태양계 시뮬레이션을 하다가 이 시간을 찾아냈다고 하는 건 구라로 판명됐고. ㄲㄲㄲㄲㄲㄲ)

솔직히 천동설이냐 지동설이냐는, 창조냐 진화냐만치 사람의 가치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건 아니고 영적으로 덜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 하나님이 특별히 배려를 해서 지동설로도 히스기야와 여호수아의 기적을 안전하게 구현했을 거라고 믿어 버리면 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태양계의 우두머리인 태양도 뭔가를 돌고 있고 우리은하도 돌고 있고 세상에 절대적으로 멈춰 있는 기준이 뭔지도 모를 마당에, 사실 절대적으로 멈춰 있는 건 지구뿐이라고 누군가 단정지어 버린다면...? 거기까지는 내가 결론을 못 내리겠다.

아무리 아담의 생물학적 나이가 n년짜리 성인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너도 낚였음. 저 아담은 10분 전에 내가 성인으로 창조한 거임” 해 버리면 끝이다. 천동설· 지동설 문제도 그런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 맺는 말

본인은 절대자의 지적 설계를 믿으며, 무생물로부터 생물이 저절로 발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건 파스퇴르가 이미 150년 남짓 전에 입증한 사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인간이 무생물· 아메바·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말만큼이나(기원), 인간이 죽어서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된다거나 환생· 윤회한다는 말도(내세) 참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매우 해치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죽고 나면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나 버리고, 자기의 믿음과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아 하늘 아니면 지옥으로 딱 깔끔하게 떨어진다. 연옥 같은 것도 없다. 예수 믿고 나니까 무수한 거짓된 고인 드립-_-과 미신들, 소위 귀신 이야기 같은 것들에 관심이 안 가게 되어 정신 건강상으로 얼마나 많은 유익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부활에 대한 소망이 생긴 것은 보너스이다. (예수쟁이들은 부모 제사도 안 지내는 호로자식이 아니라, 살아 계신 부모님을 공경하고 제사로부터 해방되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말하는 심증을 과학이 말하는 물증으로 입증하기란 쉬운 일만은 아닐 수도 있으며, 그게 꼭 가능해야 할 필요도 없다. 본인은 기본적으로 창조 과학회의 노선을 지지하고 거기서 말하는 지식을 수용하지만, 그렇다고 다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또한 그들이 세속 과학계로부터 안 먹어도 될 욕을 필요 이상으로 먹고 좀 뻘짓을 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진실은 언제나 저 너머에 있는 걸지도..;;

Posted by 사무엘

2011/03/29 09:43 2011/03/2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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