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신자들의 글모음 (책 출간)

막간을 이용한 광고.

<성경 신자들의 글모음> -- 킹제임스 흠정역과 삶의 이야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라는 책에 제가 공동 저자 10인 중 1인으로 참여하여, 제가 옛날에 인터넷으로 공개한 신앙 쪽 칼럼과 간증들이 같이 실렸습니다. 저자들 중 저의 비중은(제 글이 차지하는 분량) 김 문수, 김 재욱 형제님에 이어 그래도 랭킹 3위 정도는 됩니다. 이 달 초에 갓 출간된 따끈한 책입니다.

책이 나온 곳은 킹 제임스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킹제임스 흠정역>을 낸 <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사입니다.
공중파 TV 출연에 이어, 제 글이 어떤 형태로든 공중파 출판사를 통해 publish된 건 이게 난생 처음이네요.

제 글은 저의 트레이드마크-_-인 <음란한 성경은 가라> 부터 시작해,
<킬로그램 원기>
<성경을 안 덕분에, 예수님을 믿은 덕분에>

같은 것들이 수록되었으며,
이외에도 다른 분의 글 중에도 주옥 같은 성경 비평, 칼럼, 간증이 많습니다.
다들 keepbible.com 의 게시판에서 개념글 인증을 받은 글들을 다듬고 재정비한 것입니다.

yes24 http://www.yes24.com/24/goods/4330581?scode=032&srank=1
갓피플몰 http://mall.godpeople.com/?G=9788992485210
생명의말씀사 http://www.lifebook.co.kr/final/bookjumun.asp?gs_product=aa01070079788&detail=yes

책이 팔림으로써 제게 돌아가는 이익은 사실상 전혀 없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차피 글들 자체가 제가 좋아서 혼자 끄적인 것이지 영리를 목적으로 돈 받고 글 쓴 것도 아니었고,
많이 팔리는 장르의 책도 아닌 데다, 참여한 저자도 워낙 많으니. ㅎㅎ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더 널리 전파되기를 기도합니다.
인터넷 상에 수많은 개독안티 사이트가 있으면, 한 곳 정도는 제 홈페이지 같은 곳도 있어야 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서 KJV가 이단이라고 하는 사이트가 있으면, KJV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 사이트도 좀 있어야 균형이 맞지 않겠나요?

대학원 다니면서 독자적인 책을 하나 쓰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게 몇 년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주제는 <Introduction to 철덕>이 되겠고,
철덕 입문을 원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대학교에서 한 학기 강의할 분량 정도 되는 교재 컨셉으로,
철도와 교통 공학, 도시 공학 개론부터 시작해 우리나라 철도의 변천사, 수도권 지하철 노선별 분석, 차량 계보 등등.

인문계는 역사와 지리, 이공계는 기계와 전자 공학, 예체능은 음악을 두루 아우르면서
이 책 한 권이면 철덕의 머리 구조를 다 파악할 수 있게. 음, 한 학기 강의만으로 다 되려나?

연습 문제로는 "다음 사진은 우리나라 어느 철도 어느 구간의 모습인가?"
"다음과 같은 지형과 행정구역이 주어졌을 때, 지하철 노선을 설계해 보시오."
"다음과 같은 배선을 지닌 선로에서 완급 결합 열차 다이아를 작성하시오."

그보다 먼저 Looking for you 악보를 피아노 양손 연주곡으로 편곡하고,
Looking for you의 각 소절별 화음· 음정 분석과 감상 포인트 해설을 집필하고 싶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현실은 시궁창.
저 <성도들의 글모음> 책에서도 저는 철덕이라고 소개가 당당히 나갔습니다. ^__________^
(정확히는 철도 동호인이라고.. -_-)

아놔 기독교 서적 소개하다가 말고 옆길로 많이 샜네요.
아무튼, 이상입니다.

Posted by 사무엘

2010/11/06 09:03 2010/11/0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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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의사신 2010/11/06 09:27 # M/D Reply Permalink

    출간을 축하 드립니다.

    더욱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사무엘 2010/11/07 00:56 # M/D Permalink

      감사합니다. ^^

      아울러, 김 재욱 형제님은 지난 9월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라는 일종의 기독교 변증서도 집필하셨는데,
      부담 없는 분량에 탁월한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네티즌들로부터 반응도 굉장히 좋다고 하네요.
      읽어 보면 저 같은 골수에게야 교리적으로 다 아는 평범한 내용이지만, 그걸 불신자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친절하고 일목요연하게 책으로 정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요즘 시대에 전도용으로는 이런 스타일의 책이 필요한데 전략적으로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http://mall.godpeople.com/?G=9788904101115

      저는 많이 타락-_-한 나머지 철도 책이나 집필할까 생각 중인 반면, 저런 분은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ㅋㅋㅋ

  2. 다물 2010/11/08 10:27 # M/D Reply Permalink

    다양한 분야로 나가시는군요 축하드려요 ^^

    1. 사무엘 2010/11/08 19:01 # M/D Permalink

      이 분야-_-는 그래도 개척한 지 오래 됐죠. 감사합니다. ^^

  3. 이지브 2010/11/10 04:13 # M/D Reply Permalink

    저도 기독교 신자라 김용묵님의 기독교관련 글에 관심이 많았는데 묶여진 형태의 글로 김용묵님의 글을 볼수 있다니 즐거워지네요. (일부라 해도 말이죠) 한권 사읽어봐야겠습니다.

    1. 사무엘 2010/11/10 11:52 # M/D Permalink

      반갑고 고맙습니다. ^^ 저 책엔 제 글보다 더 훌륭한 글도 많이 수록돼 있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4. 소범준 2011/06/01 14:49 # M/D Reply Permalink

    호호 역시 형님은 못말리시는 철덕이시네요 ㅎㅎ

    1. 사무엘 2011/06/01 22:48 # M/D Permalink

      형제님도 KJV 다음으로 철도에 입문해 보시면 어떨까요? ㅋㅋ

    2. 소범준 2011/06/04 12:56 # M/D Permalink

      ㅎㅎ 철도... 음... 저도 좋지만요...
      사실 철도쪽도 입문해 보고 싶지마는 저는 도로 토목쪽으로 많이 쏠리는 경향이 있어서 도.덕. 밉문이 더 낳을 것 같네요..ㅎ;;

      (그래도 지하철 덕후 실력은 중초급 정도(이건 제 추정치인데)라서 형제님 홈피에서 더 공부했네요..
      철도 전반은 좀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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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난 2006년 2월, <음란한 성경은 가라>라는 글을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성경 역본 이슈에 대해서 인터넷을 돌아다녀 찾아보고 지인과 메신저로 교제하다가, 불현듯 소재가 떠올라서 서너 시간 끄적여서 완성한 글이었는데...
이 글은 자랑이 아니고 진짜로, KJV 독립 침례 교회 목사님들로부터는 가히 '형제가 지금까지 쓴 글들 중 최고로 뛰어난 명문'이라는 격찬을 아낌없이 받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4년 반만에..
어느 안티 KJV 진영이 그 글을 정면으로 난도질한 꽤 강경한 반박문을 올린 걸 우연히 발견했다.
글 올라온 날짜도 비교적 최근이다.

http://truthnlove.tistory.com/entry/%EC%9D%8C%EB%9E%80%ED%95%9C-%EC%A7%84%EC%A7%9C-%EC%84%B1%EA%B2%BD-%EC%88%AD%EB%B0%B0  (음란한-진짜-성경-숭배)

글쓴이는 김 삼(김 풍도 아니고. -_-)이라는 분인데 처음 본다.
프로필을 보니, 딱 우리나라 정통 신학 코스를 밟은 후 장로교 목사 안수를 받았고 미국에 목회 중이다. 나이도 나보다야 많겠지만, 그래도 글투를 보면 그렇게 나이 지긋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신학 공부 전혀 안 하고 히브리어· 그리스어 나부랭이는 하나도 모르는 풋 사과의 글을 현직 목사가 친히 반박을 해 주다니 감개무량하다. 체급이 서로 게임이 안 되는 수준인데... ㅋㅋㅋㅋㅋㅋ
KJV를 반대하는 대다수 목사들의 사상과 가치관을 글로써 잘 대변해 주었다.

저 사람은 프로필에 신앙 고백이 아예 대놓고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온전한 보존을 믿지 않는다. 그러니 <음란한 성경은 가라> 같은 글을 보고 있으면 도저히 배알이 뒤틀려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 정세나 이단 교리 판단한 다른 주제의 글은 그럭저럭 건전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성경관에 관한 한은 본인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믿음의 소유자이다.
 
  성경은 최초의 원문 그대로가 곧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자들을 활용해 기록하신 절대 완전/정확/무오한 말씀이며..현재의 원문은 여러 사본들이 합해지고 조화되고 종합된 결과로 원본에 거의 가깝다고 믿습니다.
(일부 주장자들의 말과는 달리, 절대/완전하게 보존된 사본은 없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원본만이 오직 완전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본을 모두 종합/조화시킨 현재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모자란다"는 뜻은 아닙니다. 완전에 가깝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들의 해석과 번역 탓입니다.)

내가 KJV 숭배자라면 저런 사람은 아무리 봐도 원어 숭배자로밖에 안 보인다. 내가 KJV가 최종 권위인 것만큼이나 저 사람은 세속 학자들의 그리스어 히브리어 사전이 최종 권위이다.
저 사람들의 머릿속엔  "킹 제임스 성경 = 이 송오 & 럭크만 추종자 = 성경 역본의 맹신과 우상화" 밖에 없다. 본인은 이 송오 & 럭크만 추종자가 전혀 아닐 뿐더러, 예수쟁이가 신앙의 근간인 성경의 온전한 보존과 그 실체를 믿는다는데 어떻게 거기에 맹신, 우상화라는 딱지가 붙을 수 있단 말인가!
 
KJV와 외경 사이의 논란, 그리고 초창기 인쇄본의 철자법 얘기는(그리스도 예수안에 발행 흠정역의 부록에도 실려 있는 반박문)
이미 진실을 아는 사람들한텐 면역이 다 돼 있는 주제인데 언제까지 뻔한 레퍼토리를 상대해 줘야 하나 모르겠다.
 
반박문을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본질적인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생략하고 넘긴 KJV 출간 당시의 교회사라든가,
중요하게 다루지 않은 원어 해석 몇몇 개만 갖고 계속 끝도 없이 꼬투리 잡고 있다. 반박하는 게 다 저런 식이다. 그 사람이 추종하는 그리스어 사전대로라면(변개된 성경에 맞춰진) KJV는 당연히 오역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일말의 반카톨릭 성향은 있는지 외경 나쁜 줄은 알아서, KJV가 1611년 초창기에 외경이 같이(본문으로 포함되어 나온 게 전혀 아니었는데도) 들어갔다고 이런 식으로 공격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는 게 통탄스럽다.

저 사람은 KJV도 어차피 온갖 카톨릭스러운 컨벤션이 잔뜩 들어있다고 KJV를 폄하하는데, 뭐 그 말이 일부 맞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 문화권 교회의 컨벤션이 원래 그랬으니까...;; The translators to the readers 같은 서문을 읽어봐도 성 어거스틴이 어떻고, 무슨 교부가 어떻고 하는 천주교스러운 문체가 물씬 풍긴다 "카더라".
그러나 저런 사람은 천주교가 KJV의 출간을 결사적으로 막고 방해했으며, 첩자를 보내 gunpowder 사건 같은 걸 꾸며서 제임스 왕과 성경 번역자들을 암살하려 한 KJV의 안티 카톨릭 역사에 대해서는 절대 침묵하고 있다.

KJV에도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몇몇 바리에이션이 생겼고 인쇄 과정에서 오탈자가 있었으며 몇 차례 에디션이 나온 것 정도는 나도 다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 갖고 "KJV의 여러 에디션 중에 어느 게 당신의 최종 권위입니까?" 같은 불순한 말장난 정도에는 다 대비가 돼 있다. 같은 크리스천끼리 그런 찌질한 짓은 좀 그만 하는 게 어떨까 싶다.

글쓴이는 본인의 글의 본질적인 주제인, 현대 역본들의 음란한 표현에 대해서는 정작 한 마디도 반론이나 해명이 없다. 하다못해, NIV처럼 "거시기를 짤라 버린다는 게 맞는 표현이고" KJV의 "끊어지기를 원하노라"는 오역이라고 떳떳하게 지적한 것도 없다. 반박문을 시리즈로 쓸 기세이니 앞으로 다루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반박을 어떻게 할지는 본인 눈에도 훤히 보이고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한 마디로 말해 일일이 상대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영양가가 없다.

본인은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지금 내 방식대로 믿고 아니면 아예 때려치우고 말지,
저 사람처럼은 못 믿겠다.
아직도 성경보다 원어 사전에 더 믿음이 간다면, 김 문수 형제님의 다음 글들을 한번쯤 묵상해 보기 바란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3596 <원어 성경의 유혹>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4474 <노새 이야기는 빼 놓고 왜 온천 타령을?> -- KJV와 non-KJV가 대표적으로 다르게 번역된 구절 중 하나이다.
http://keepbible.com/bbs/board.html?board_table=free&write_id=4230 <이삭이 리브가를 애무했다고?> -- 본인의 글 <음란한 성경은 가라>와 비슷한 주제이며, 본인 글을 언급도 하고 있음. ㅎㅎ

Posted by 사무엘

2010/09/01 08:35 2010/09/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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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각형 2010/09/01 18:00 # M/D Reply Permalink

    저거 반박문인가요? 별 대꾸할 가치 없는 글 같은데, 무식이 철철 넘치면서 감정적으로 그냥 마음에 안들어서 말 몇마디 꼬투리 잡고 있지 글의 핵심 주제인 '음란한 성경' 에 관한 이야기는 없군요.

    반박 하려면 NIV는 음란하지 않다는걸 증명해야 할 터인데.

    저 팀 이단성 있는 글도 많이 보이고 하여간 KJV 진영과 정 반대 사상이군요. 좋아할 수가 없지요.

  2. 부르심 2010/09/01 17:47 # M/D Reply Permalink

    어이없는 반박글.-_-; 반박 방향이 잘못 되었네...

  3. 사무엘 2010/09/01 23:39 # M/D Reply Permalink

    성경이 먼저 굳건하게 정착해 있는 뒤에야 신학도 있고 그걸 가르치는 목사도 있을 수 있죠.
    자신의 권위와 밥벌이를 위해서 성경은 좀 오류도 있고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지 말아야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면(목사, 신학자, 원어 사전 편집자 등-_-) 정말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도, 기독안티도 아니고 하나님 이름 팔아서 먹고 산다는 사람이!

    말투만 강경하게 적어 놨을 뿐 내용에 알멩이는 전혀 없죠.
    더 깊게 파들어가면 결국 자기의 진짜 신앙관, 성경관의 정체가 다 탄로날 겁니다.
    저 글쓴이는 다른 이단이나 세상 정세 판단하는 글은 그럭저럭 잘 쓰는 거 같던데, 제 글까지 건드리지는 않는 게 훨씬 더 나을 뻔했습니다.

  4. 스페르치 2010/09/08 22:45 # M/D Reply Permalink

    하하, 제가 차단 대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저도 저곳을 안 가기로 했습니다만, 음란한 '진짜 성경' 숭배 시리즈가 나올 예정이라니 관심이 가긴 합니다.
    김용묵씨는 KJV의 여러 에디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5. 스페르치 2010/09/09 00:19 # M/D Reply Permalink

    언급하신 흠정역의 부록을 보니, Jesus가 Iefus가 되었다고 적혀 있네요. 고딕체 j가 i로 보이는 게 아니라 i는 i인 것 같은데요? 예수님의 이름도 Jesus가 아니라 Iesus가 바른 표기입니다.

    1. 사무엘 2010/09/09 01:03 # M/D Permalink

      반갑습니다.
      어떻게 해서 김 삼 목사 사이트와 여기를 둘 다 알게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
      또한, 님께서 어떤 신앙 배경과 구원 간증이 있으며 어떤 성경관을 지닌 분이신지도 궁금합니다.
      하지만 님의 댓글에 달린 거기 운영자의 댓글을 보니, 거기는 어차피 저와 같은 골수 KJV 옹호론자가 아니더라도 별로 들를 가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에디션: 흠정역 부록까지 보셨다면 이미 답변이 됐을 텐데요. 인쇄상의 오류와 철자법 변화로 인해서 동일한 1611년판 컨텐츠에 대한 교정일 뿐이었습니다. 마지막 에디션이 1769에 나왔죠. 프로그램 소스 코드로 비유하자면, 컴파일 에러를 잡거나 플랫폼이 바뀌어서 재컴파일을 한 것일 뿐이지 로직을 수정하거나 심지어 코드를 리팩터링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 말고 캠브리지 판이나 옥스퍼드 판 같은 바리에이션도 있긴 한데, 어른들의 사정 때문에 생긴 변종이겠죠. 캠브리지 판이 맞습니다.

      J, I: 저는 그런 표기법에 대한 지식은 없습니다. 그냥 KJV의 컨벤션을 존중할 뿐이고 님의 의견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없이 no comment로 답변합니다.

    2. 스페르치 2010/09/10 00:18 # M/D Permalink

      반갑습니다. 김용묵 형제님의 이름은 KeepBible에서 보았으나, 블로그를 안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진리와 사랑' 은 프리메이슨을 검색하던 중에 알게 된 곳입니다. 자료가 방대하고 또 운영자인 김삼씨가 음악을 전공하였다고 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와 의견이 다른 부분은 있었으나 유용한 곳이라고 생각되어 종종 들렀는데 저를 차단하고자 하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KeepBible을 알기 전에 말씀보존학회를 먼저 접하게 되었습니다. 관련 카페인 '성경대로믿는사람들의 칼럼' 에도 가입하였는데, 그곳의 주장을 반박한 탓에 강제 탈퇴되었습니다.

      저도 KJV를 존중하나, 단지 후대의 판본들이 발행되는 과정에서 외부 세력의 개입이 염려될 뿐입니다.

    3. 스페르치 2010/09/10 00:43 # M/D Permalink

      생각해볼수록 I가 J로 변모한 점은 의심스럽습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에는 J에 해당하는 알파벳이 없죠. 1611 KJV의 영어도 마찬가지구요. J 발음이 생겨나서 J라는 알파벳이 필요했을 수는 있어도, 멀쩡한 고유명사의 발음까지 J로 변할 이유가 딱히 있었을까요?
      Iesus, Iohn, Iudas, Erusalem 또는 Hierusalem에 왜 J를 앞에 넣어서 발음하게 된 걸까요?
      물론 고유명사의 이름이 변질된 역본이라 해도 다른 내용상에 큰 하자가 없으면 굳이 문제 삼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차 탐구해보겠습니다.

    4. 사무엘 2010/09/10 01:50 # M/D Permalink

      흠... 굉장히 특이한 주장을 펴지 않고서야 pro-KJV와 anti-KJV 진영에서 모두 차단당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요;;
      크리스천에게 유익이 되는 정보를 새로 알게 되면 제게도 나눠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이곳 글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저는 말보회를 거치지 않고 순수하게 흠정역 진영을 통해서 KJV를 알게 된 사람입니다.

    5. 백성 2011/12/11 00:36 # M/D Permalink

      스페르치님께 및 I, J 관련 :

      i와 j가 구분이 안 되는 것은 공감이 가는 사람도 있고, 안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KJV가 비난을 받아선 안 되겠지요.

      영어가 언문일치가 개떡이 된 건 누군가가 변개해 놔서 그런 게 절대 아니고, 바뀌는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수단인 문자가 언어의 대격변에 적응하지 못해서 이러고 있는 상황입니다.

      초기에는 j가 반모음 자리에 나는 i 발음으로 쓰였으며(모양도 비슷하잖아요!), 예루살렘을 Jerusalem이라 표기한 건 합당한 처사입니다.
      히브리어는 아시다시피 자음만 표기하고 모음은 3세기경 되어서야 밑에 적혔습니다. 그중에 '요드' 라는 글자가 있는데, ?로 나타내어지며, 이것의 음은 Y입니다. 즉 일찍이 히브리인들은 반모음이란 것을 깨닫고 그것을 하나의 자음으로 분류했으며, 유럽 계열에서는 히브리 문자 덕분에 반모음을 모음으로 분류하여 야곱을 Iacob(그냥 읽으면 이아콥) 으로 쓰는 등의 관행을 버리고 지금처럼 Jacob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물론 야곱이라고 읽었지요.
      나중에 국제음성기호가 발명될 때도 그것에서 착안하여 i처럼 소리나는 경구개 접근음을 j로 디자인했습니다.

      헌데 활자가 개발되고 문서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정작 언어는 너무 빨리 바뀌어서(이 때 모음 역시 음가가 대부분 바뀌었는데, Vowel Shift라 부릅니다.) 기존에 반모음으로 쓰던 j의 상당수를 ?(George의 g 현대 발음)발음으로 내게 되면서, 이에 맞추어 성경의 인명과 지명의 모든 j도 ?로 발음하게 된 것입니다.

      자꾸 이런 걸 꼬투리 잡고 무슨 1769년 에디션의 변개니, 4차례 개정이니 같은 비난을 일삼는 자들은, 진짜 쌀이 아깝습니다. 딴 거는 충분히 잘 반박할 수 있어도, 이것만은 논쟁의 가치가 참으로 없지요.

      예전에 김ㅅㅇ 씨라는 분도 계시는데, 그 분은 계속 Jesus는 변개되었고 Iesus가 맞다는 주장을 하지만 정작 1611년판에는 James가 아니고 Iames였는데도 '킹 예임스 역본' 이라 하지 않고 '킹 제임스 역본' 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아이러니이지요.
      =======================================
      고유명사의 변개 관련 :

      사실 고유명사는 JHVH 외에는 전혀 하나님 안중에 없다는 게 저의 주장입니다. '예슈아'가 당시 정확한 히브리식 표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예수'라 부르든, 그리스에서 '예수스' 라 하든, 영어권에서 '지저스' 라 부르든, 이슬람권에서 '이싸' 라 부르든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애초에 이 논쟁은 의미가 없습니다. '예슈아 마쉬아흐' 님은 승천하시고 사도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의 피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바울이 전파한 복음은 '예수스 크리스토스'의 속죄 였습니다. 고유명사까지 그대로 전달되어야 한다면, 이건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낼 수 있는 결론은, '인명과 지명은, 심지어 그리스도의 존함이라 할지라도, 중간중간에 바뀌어도 변개가 아니며 하나님께서는 표기의 다양성을 인정하신다' 입니다.
      단, 너무 심하게 바꿔치기하면 안 될 테고, 최소한 그 나라의 음운 한도 내에서 바꿀 수 있겠지요.

      그래서 킹 제임스 성경에도 하란을 Haran과 Charran으로, 시온을 Zion과 Sion으로 원문 그대로 번역해 놓고 읽는 사람이 이거이거 두 개가 같은 지명이다 라는 식으로 도출해 낼 수 있게 했습니다.

      괜히 그런 식으로 꼬투리잡는 사람들도 항상 Iesus님을 예수라고 불러요. 그러니 그 문제는 신경 끕시다.

  6. 스페르치 2010/09/15 19:38 # M/D Reply Permalink

    김삼씨는 이미 2006년에 KJV 비판을 했습니다.
    http://www.usaamen.net/news/board.php?board=writeold&page=2&search=%B1%E8%BB%EF&shwhere=name&command=body&no=2278&PHPSESSID=c2ed45c12b5189d3d43ab4af8ed7f70a
    아래 댓글 단 김성엽씨는 KJV 1611 초판만이 완벽한 판본이라고 믿고 번역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http://blog.naver.com/botomm

    1. 사무엘 2010/09/16 08:13 # M/D Permalink

      아.. 저 유명한(?) 안티글까지 김 삼 씨가 쓴 것이었군요. 신경 끕시다. Let it be! (자기 믿음대로 될지어다)

      거기에 댓글 단 다른 김 씨는 KJV 옹호론자이긴 하지만, KJV와 상관없는 이상한 주장을 그와 곁들여서 많이 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굉장한 고집불통이어서 KJV 진영 내부의 다른 성도들과 교제가 안 되고 있는 분입니다. 좀 뭐라 말하기가 뭣한 케이스이죠. 저만 이런 소리 하는 것 절대 아님.

    2. 소범준 2011/09/14 14:02 # M/D Permalink

      일전에 저도 김성엽 씨의 그 블로그에 갔던 적이 있죠. 참 대단한 분이더군요..쩝.

  7. 평안하게요 2011/04/10 10:17 # M/D Reply Permalink

    김용욱님의 글 '음란한 성경은 가라' 잘 읽었습니다.

    공감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가 있습니다.

    'effeminate' 인데요. 제 사전에는 이 단어가 김용묵님께서 말하는 것- 하리수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천성을 버리고 여자가 되어 버린 남자에 대한 부분인데요. 이 단어의 뜻이 성전환이라는 내용이 되어 있지를 않아서 그 단어가 김용묵님의 글처럼 표현된 곳이 있는가 싶어 질문합니다. 태클거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쓰는 사전은 아이리버 전자사전입니다.
    이 내용에는
    [경멸적](남자가) 사내답지 못한, 연약한, 여자같은
    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사영한사전입니다.

    이해못함을 양해하시고 좋은 답변을 기대합니다.

    1. 사무엘 2011/04/10 23:53 # M/D Permalink

      반갑습니다.
      모든 effeminate가 성 전환자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예 대놓고 여자로 성전환을 했을 정도라면 반드시 effeminate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차원이며, 제 글의 표현에는 문제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성경에 직접적으로 성전환자라는 어휘는 물론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건 차마 입에 꺼낼 수조차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답변 되셨으면 합니다. ^^

  8. 평안하게요 2011/04/11 20:57 # M/D Reply Permalink

    감사합니다. 저는 문제제기를 한 것이 라니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려면 잘 알아야 해서요. 감사합니다.

  9. 에베소 2011/06/06 18:45 # M/D Reply Permalink

    저같이 머리 나쁜 사람은 TLT에서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
    글이란 짜임새 있고 규칙성 있어서 독자가 읽을 때 오해의 소지가 없게 써야 하는데, 김삼 목사는 자기만의 독특한 문체(?)로 혼란만 가중시킵니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음역된 지명이나 인명을 원어에 가깝게 쓰는 거지요.

    김삼 목사의 가장 문제점은 영언론입니다. 그 글 읽을 때마다 피씩하며 웃습니다.

    1. 사무엘 2011/06/07 17:00 # M/D Permalink

      반갑습니다.
      글이란 게 읽는 사람에게 잘 읽혀 들어가야 하는데 그 점에서는 저도 반성할 점이 있습니다.
      다루고 싶은 내용은 많은데 시간은 부족하면... 막 이것저것 잡설 형태로 두서없이 구겨넣는 형태가 돼 버리죠.

      김 삼 목사의 글의 외래어 표기법은 제가 보기에도 이질적입니다. 딱히 국어학· 언어학을 논하는 자리도 아닌데 굳이 그래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분이 성경론 말고 다른 곳에 교리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저는 알지 못하며 별로 관심이 가지도 않네요. ^^

  10. 소범준 2011/09/13 15:07 # M/D Reply Permalink

    형제님의 글과 김삼 목사의 글 둘 다 잘 보았습니다.
    김삼 목사가 최근에 쓴 글이든, 2006년도에 올렸다는 글이든
    다 그게 그거네요.. -_-; (정말 저런 사람도 있어...)

    이럴 때일수록 끝까지 알려고 하지 않는 자는 내버려 두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알지 못하거든 알지 못하게 둘지니라.(고전14:38)

    하나님의 판결을 믿고 그저 우리만 - 각자만 - 잘 하면 되겠죠.
    저런 사람들과 일일이 키.배 뜨는 것.. 참 귀찮습니다..
    여담이지만 김삼 목사와 한 번 키배할까 하다가 위의 말씀때문에 그냥 놔두고 왔던 적도 있었죠..

    스페르치 : 스페르치님 반갑습니다.^^
    1611년도 초판의 킹 제임스 성경에서 사용된 알파벳인 I, J 문제에 관해서는
    그 당시 활자체에 대해서 이해하시면 쉽게 해결되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그 당시에 로마체가 처음으로 등장하여서 성경 활자체로 사용하려다가
    대다수 사람들이 계속 고딕체를 고수하는 바람에 초판에는 고딕체가 그대로 쓰였는데
    그런 과정으로 인해 현재의 철자법과는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결코 단어는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죠.
    (참고로 이러한 과정의 결과물로는, w(더블유)가 왜 더블브이가 아니고 더블유라고 불리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아실 수 있습니다.)
    부족한 답변 드립니다. 그저 참고만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샬롬!

    1. 사무엘 2011/09/14 11:22 # M/D Permalink

      잘 참으셨습니다.
      김 목사의 성경관은 성경을 그냥 적당히 그럭저럭 전수되어 온 고문서 정도로 받아들이고, 단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아이디어· 중심 생각만 보존되면 된다는 식의 아주 전형적인 견해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그와 다르다는 게 문제일 뿐입니다만.

  11. 백성 2011/12/10 23:45 # M/D Reply Permalink

    김삼 목사가 쓴 어느 글 (유진 피터슨 및 관상기도에 대한 글)중의 내용인데요, 이런 망발을 하고 계시더군요.
    저기 '에베소' 라는 분도 같은 지적을 하시는데, 필요는 당연히 전혀 없겠지만, 그래도 이 블로그 들르는 사람들 지나가다가 보라고 인용해 봅니다.

    “필자에게 보여주신 성령님의 슬기에 따르면, 관상 기도는 모두 한결같이 프쉬케(psyche) 차원의 기도다. 관상기도를 강조해온 멀튼/나우웬/포스터/윌러드 등은 모두 심리학자 또는 심리학에 밝은 사람들이란 점은 흥미롭다. 그리고 관상기도에 열을 올리는 저술가들 대부분이 심리학자 칼 융을 인용한다는 것도 흥미롭다. 융은 한마디로 심리학계의 마법사/요귀 같은 인물이다.

    반면 성경 시편 등에 나타난 찬양기도, 파울 서신에 방언기도 등은 그와 달리 프뉴마(pneuma) 차원의 기도다. 그러므로 심적 차원의 관상기도는 더이상의 영적 차원을 추구하다가 악령을 접하기가 매우 쉬운 것이다! 뉴에이지적인 심적 차원의 기도로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도 합일할 수도 없다.

    기독교의 기도 중 가장 고차원적인 기도가 뭔지 아는가? 관상기도가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대로 방언기도다. 파울이 말한 대로 하나님께 나의 심령 속의 사연을 아뢰는 직접적/비밀적인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프쉬케 차원의 기도와 달리 악령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관상기도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방언기도를 모르든가 이차적으로 따돌리든가 배척하는 성향을 보인다. 필자는 단언한다. 수도사적 관상기도를 방언기도보다 높이는 사람들은 십중팔구는 이단, 뉴에이저, 또는 무식자이기 쉽다. 카톨릭은 물론 이단이다! 이에 관한 필자의 글들을 참조하라. ”

    방언 기도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겠지요?

    1. 소범준 2011/12/11 10:02 # M/D Permalink

      ㅋㅋ 김삼 목사... 참 알수 없는 인물이군요.-_-
      명색이 골수 장로교 목사라고 가지가지 하는군..
      그리고 '방언 기도가 악령들이 알아듣지 못함'이라는 대목은 어디서 떼어 왔는지 ㄲㄲ 별꼴이네요.

      ㅍㅅ 웃다 맙니다. 어차피 그런 사람들 반박하다간 끝도 없어요. 백성군.

  12. 소범준 2011/12/11 10:31 # M/D Reply Permalink

    링크해 주신 블로그의 글을 더 읽어 보았습니다.
    완전 이질적인 표기에, 완전 골치 아픈 투와 배경지식..-_- 이걸 언제까지 참아줄꼬. 읭?
    김삼 목사의 논조에 의하면 대놓고 '고대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바른 성경을 보존해 준 선조들은 다 바보다?'-_- 하는 수준이죠.-_-;;

    그사람.. 더 반박할 가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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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영성 등급

A.
부모가 모두 한 교회를 안정되게 오래 다닌 타입. 아버지가 아예 목사이거나 어느 직분 하나는 맡고 있다. (단, 교회 일에 몰두하느라 가정 내팽개치는 타입이 절대 아님) 부모가 가정 예배를 꼬박꼬박 챙기고 자녀에게 기도하고 성경 읽는 모습을 늘 보여 준다. 요컨대 가정 전체가 한 교회에 안정되게 출석하고 있고, 가장이 식사 기도 같은 사소한 것까지 포함해서 가정의 영적 건강을 잘 책임지는 중이라면, 그 가정의 영성 등급은 A이다. 집에서도 출석 교회에서와 동일한 분위기로 가족과 함께 거리낌없이 찬송, 기도, 성경 읽기가 가능하고 부모에게서 신앙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나라에 A등급 가정은 정말 드물다.

그런데 이런 가정에서는 부모보다도, 저런 걸 당연하게 보면서 커 온 자녀들이 이 신앙이 값지고 귀한 줄 모르고 오히려 별 관심이 없는 경우가 있다. 혹은 교회와 가정에서 부모가 보이는 모순-_-된 모습이라든가 교회 사람들의 위선 때문에 상처를 받고 자녀가 믿음을 잃기도 한다. A라는 환경 여건이 무조건적으로 자녀에게 좋게 작용만 하는 건 아니므로 주의해야 한다.

B.
개인적인 교회 생활에는 지장이 없지만
- 가족 중 일부가 불신자이거나 혹은 교회 출석을 중단할 정도로 신앙이 식음. 어쨌든 가정에서 뭔가 영적인 결정을 내리려 할 때 딴지를 걸 사람이 가족 중에 존재
- 교리 차이 내지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부모가 서로 다른 교회에 다님
- 혹은, 부모가 한 교회에는 다니고 있지만 구원 받았는지도 모르는 단순 church goer이고, 평상시의 언행도 불신자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자녀에게 영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함

이런 정도라면 B등급이다. 이렇게만 돼도 부모의 믿음이 자녀에게로 그대로 전수되기는 굉장히 어려워진다. 자녀가 알아서 자기 신앙에 대해서 공부하고 각성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C.
가족 중에 구원받은 사람이 자녀 한둘밖에 없는 한편으로 나머지 가족 구성원은,
-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는 방관자이거나,
- "그래, 심성 수련을 위해 종교 하나 갖는 거 나쁘지는 않지. 다만, 너무 중독되고 빠지지는 마라."
- "예수쟁이 돼서 뭐 하냐?" (살짝 시니컬)
중의 한 반응이지만...
최소한 적극적으로 교회 가는 걸 막고 박해하지는 않는 경우이다.

아래의 D보다는 여건이 낫지만, 그래도 교회만 빠져나오면 맨날 집에서 불신자와(영적으로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 부대껴야 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지치기 쉽다. 가족 구원을 위한 기도가 절실해진다.

D.
가족 중에 구원받은 사람이 자녀 하나밖에 없고 그 자녀가 그것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조롱과 박해를 받으며, 교회 출석 중단을 요구받고 있는 상태. 부모 몰래 교회를 가거나, 교회에서의 내 행적을 부모에게 떳떳하게 말도 꺼낼 수 없다. 이런 D급 가정에 소속된 구원받은 사람은 가정 여건 때문에 안정된 교회 출석이나 장시간 교제, 교회 직분 수행이 곤란하다.

나머지 가족은 무신론자 기독 안티일 수도 있고, 천주교나 불교나 심지어 이슬람 같은 타 종교 골수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KJV를 싫어하는 기성교회 소속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게 차라리 깔끔한 무교보다 더 무서운 경우도 있다.
A가 드문 것만큼이나 D만치 독한 가정도 흔하지는 않다. 그런데 이런 D급 가정에서 정말 독실하게 신앙 생활을 처절하게 열심히 하는 형제 자매도 있다. D급 가정을 혼자 힘으로 선한 간증을 남겨서 C를 거쳐 B나 A로 바꿔 놓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영적 전투에서 가히 최고의 승리를 거둔 사례라 하겠다.

참고로, 본인은 B급 가정 출신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8/28 13:44 2010/08/2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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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각형 2010/08/29 20:30 # M/D Reply Permalink

    저는 B급이군요. 상위 등급은 하위 등급의 고통을 절대 모르지 싶습니다. 물론 반대도 그렇고요.

    이것도 성적하고 비슷해서 등급이 높을 수록 상위 등급으로 가기 힘들다더군요.

    D를 A로 만든다는건... 과연

    1. 주의사신 2010/08/29 15:09 # M/D Permalink

      D에서 A로 가는 사례가 드물지만 있습니다. 그런 분들 간증은 감동의 도가니라는...

    2. 사무엘 2010/08/30 14:47 # M/D Permalink

      요즘이야 갈수록 노력에 의한 신분 상승이란 게 없어지고, 부모의 경제력이 학력으로 이어지는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신앙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A급 가정에서도 아버지를 전혀 닮지 않은 불신자 자식이 나올 수 있고, D급 가정에서 걸출한 신앙 명장이 갑툭튀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균형이 맞춰지는 거지요.

  2. 소범준 2011/08/17 10:42 # M/D Reply Permalink

    음.... 저는 솔직히 B타입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란 케이스입니다.
    구원받은 어머니와 구원 안받은 불신자 아버지 여동생... 이렇게 4인 가족입니다.

    그러고보니 킵바이블의 김 문수 형제님은 D타입에서 태어나서
    A타입 가정을 일구고 계시는 케이스?^^;

    삼각형 : 참으로 맞는 말씀인 것같습니다.
    A타입만큼 영적인 것에서만큼 부드러운 가정도, D타입만큼 '고뇌 씹는(!)' 가정도 참 흔하지 않고
    각 등급별로 서로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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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66권 모두가 하나님의 영감 받은 무오류한 말씀이라고 믿는다.
(그 성경이라는 막연한 존재의 실질적인 구현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본인은 오늘날 실존하는 특정 역본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싸움 나기 엄청 좋으며 이 글의 주제는 그 분야가 아니므로 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특히 그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절대자에 의한 세상의 창조를 믿는다.
오늘날 과학에서 말하는 진화론도 워낙 분야가 다양하며 소위 창조론자라는 사람들이 진화론이 뭔지 공부도 제대로 안 하고서 무작정 무식하게 깐다는 식으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는 것, 본인 역시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무에서 우연히 창조되었으며, 내 조상의 100대, 200대.. 혹은 n대로 올라가면 유인원과 원숭이, 아메바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고 진화론이 가르친다면 본인은 그런 학설은 누가 뭐래도 당연히 거부한다.

이 외에도 본인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6일 창조는 문자적인 24시간이었다고 믿는다. 식물이 셋째 날에 먼저 창조되고 나서 그 이튿날에 해와 달이 만들어진 마당에, 그 하루가 수억 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하나님은 출 20:11 같은 곳에서 인간의 6일과 천지 창조 6일을 명백하게 동일선상에 놓으심으로써, 쓸데없이 원어라든가 영적 해석 나부랭이를 동원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놓았다.

다음으로 본인은 모든 인류의 조상은 아담이며, 인류의 역사는 그로부터 약 6천 년 남짓이라고 믿는다.
고대인은 미개인이 결코 아니었으며 불이라든가 바퀴 같은 건 거의 아담 시절부터 곧바로 만들거나 활용하기 시작했다. 농사도 바로 짓기 시작했다. 인간은 바보가 아니다. 정말 아니다.

여기까지는 창조 교리에 관한 한, 본인의 견해와 우리나라에서 '창조 과학회'라고 불리는 단체의 견해는 서로 정확하게 일치한다. 실제로 본인은 어렸을 때 창조 과학회에서 가르치는 여러 지식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이를 통해 얻은 유익은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많다.

자 그럼, 이제 견해가 어긋나기 시작한 분야를 털어놓도록 하겠다.

본인은 인류의 역사만 6천 년이라고 믿지, 지구와 우주의 나이까지 덩달아 그렇게 짧다고 믿지 않는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성경과 과학이 일치하기 위해서 우주의 나이가 짧아야 할 필요는 없다' 주의.
사실, 성경엔 우주의 나이가 얼마인지 나와 있지 않으며 그건 인간이 알 수 없다. 그 이상은 순전히 과학의 영역이다.

창조 과학회는 '필트다운 인 구라설' 같은 걸 파헤치면서 생물학의 진화론자하고만 싸우면 됐던걸 자기 깜냥으로 지질학, 천문학 우주론 등마저 깡그리 부정하고 그야말로 과학계에서 자기네만의 영역을 개척해야 할 지경이 됐다. 그런데 종교적 신념을 떠나서 창조 과학회에서 내놓는 대안이라는 게 학문적으로 보기에 심하게 허접한가 보다. 그래서 사이비 과학 취급 받으면서 까이고 있다. 마치 과거에 말씀 보존 학회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기성 교회들로부터 간증을 잃었듯이 말이다.

과거에는 빛의 속도가 더 빨랐다거나, 달에 쌓인 먼지 두께라거나, 지구 자기장의 반감기라든가... 지구/우주의 나이가 젊다고 내놓는 근거들은 다 과학적으로 반박되어 있다(고 한다). 창조 과학 진영에도 전문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천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사람이 어줍잖은 지식으로 우주론을 논하고 현대 생물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사람이 엔트로피 운운하면서 진화론 까는 모습이 세속 학계에서는 상당히 찌질한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는 듯.

심지어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이런 추태 때문에 창조 과학회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며, 특히 연세 대학교 천문학과 이 영욱 교수의 경우(물론 크리스천) 강연과 글을 통해 창조 과학회 안티를 공공연히 자처하고 다니는 걸로 유명하다. 빅뱅(대폭발설)은 이제 의심하고 싶어도 의심할 수 없는 100% 절대무오 확실한 정설이 맞으며, 창조 과학회가 주장하는 성년 우주설이라든가 광속 가변설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오류라고 너무 단호하게 딱 잘라 말을 하는데, 본인은 과학 지식이 없으니 그에 대해 뭐라 코멘트 할 수가 없다.

2008년 가을엔 창조 과학회 주요 간부이던 양 승훈 교수가 "나도 다시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지구와 우주 나이는 많은 것 같아" 하고 커밍아웃을 한 후 창조 과학회를 탈퇴해서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렇게 우주의 나이가 많은 쪽으로 돌아선 사람들은 결국 어디로 가는가 하면, 필연적으로 창세기 1장의 문자적 해석을 포기하는 쪽으로 빠진다. 하나님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냐? 이 day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원어로는 year가 될 수도 있고 두리뭉실 궁시렁궁시렁...;;; 나중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공격하는 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진실은 어디 있을까?

이 모순을 속 시원하게 해결하는 것이 바로 간극 이론(gap theory)이다.
창세기 1:1 (천지창조) - 2 (심판의 결과로 땅이 혼돈) 사이에 엄청나게 긴 시간이 흘렀고 그 후 3절 이후부터 6일 창조는 문자적인 24시간이요, 인류의 역사는 6천 년이라는 시나리오이다. 우주의 나이까지 6천 년으로 좁힐 필요도 없고, 무리하게 6일 창조를 늘어뜨릴 필요도 없다!

그런데 간극 이론은 기독교계 내부에서 굉장히 논란이 많은 주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게 무슨 아담 이전의 인간 조상이라든가 귀신론을 주장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오해하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으며, 간극 이론은 성경과 과학을 바르게 풀이하는 열쇠이다.

간극 이론의 핵심은 창 1:2의 without form and void를 마치 렘 4:23처럼 매우 부정적인 심상(=심판의 결과)으로 본다는 것이다. 본인은 비행기 사고로 끔살 당한 희생자 시체 중에, 새까맣게 타고 특히 이목구비가 싹 없어진 민얼굴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후덜덜;;; 그게 바로 without form and void인 얼굴이다. 정확하다.

반대로 간극을 믿지 않는 사람은 창 1:1-2를 창세기 1장 전체의 주제 문장으로 보고, 2절은 창조 중간 과정이나 준비 상태로 해석한다. 식사를 준비하기 전의 조용하고 깔끔한 부엌을 without form and void 상태라고 비유하는 글을 봤다. 심지어는 첫째 날이 "하늘과 땅도 창조하고" 빛도 창조한 날이라고 뭉뚱그리기도 하는 듯. 하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 같다. C/C++ 언어에도 등장하는 void는 공허하고 뭔가 비정상적이거나 최소한 관념적으로 텅 빈 심상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간극 이론은 인간 이전의 온 우주가 물로 멸망한 적이 있다고 가르치며, 벧후 3:6을 노아의 홍수로 보지 않는다. 간극 이론은 물과 어둠이 언제 창조되었는지를 알려 주고, 천사라든가 사탄 마귀는 언제 창조되었고 언제 타락했는지에 대해서도 딱 떨어지게 답이 나온다. 6일 창조 중 둘째 날에만 왜 하나님께서 보기 좋았다는 말을 안 하셨는지가 정확하게 설명된다는 것도 아주 큰 매력이다! 본인은 이 논리를 깨달은 뒤부터 간극 이론 매니아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젊은 우주 진영에서는 노아의 홍수만으로 지구의 모든 지질학적 격변을 다 설명해야 한다. 단적인 예로 그쪽의 주장대로라면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지구상에 화석 연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니, 인류는 창조 후 약 1600년 동안 석탄과 석유가 없이 살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사용한 역청(pitch)은 아스팔트 같은 석유 화합물이 아니라 송진이라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간극을 믿으면 굳이 그렇게 단정지을 필요가 없다. 우주와 지구의 나이가 길다는 증거는 아무 무리 없이 받아들이면 되고, 젊은 듯이 보이는 증거에 대해서는 6천여 년 전쯤에 한번 우주 물청소를 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된다. 달이나 화성 같은 여타 행성에서 과거에 물이 흐른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뉴스 보도는 간극 주장자에게 아주 유리하게 작용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여러 논쟁거리가 있으나, 이 글에서 더 다루지는 않겠다. 젊은 우주를 믿는 분들은 본인과 같은 믿음에 대해서 "과학과 신앙의 절충"이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버럭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건 절충이나 타협이 아니다. 제아무리 "선장은 배와 함께 가라앉는다"란 말이 있다고 한들, 선장도 충분히 구조될 수 있는 상황에서 선장이랍시고 굳이 똥고집 부리면서 침몰하는 배에 남아 개죽음 당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객관적으로 싸울 필요가 없는 분야에서까지 바이블 빌리버들이 세속 과학을 상대로 전투종족이 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간극만치 기독교의 여타 근간 교리(특히 마귀론!)와 예표에 잘 부합하고 현대 과학하고도 충돌 안 하는 멋진 교리는 찾을 수 없는데 왜 이렇게 간극이 오해 받고 이단시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간극 이론은 진화론과의 절충이 아니며, 아담 이외의 인류 조상을 주장하지 않고 문자적인 6일 창조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간극을 반대하더라도 제대로 알기나 하고서 반대했으면 좋겠고, 창조 과학회는 젊은 우주를 주장하더라도 좀더 업데이트된 최신 과학적 데이터로 밀어붙였으면 좋겠다.

평소에 성경을 믿지 않았거나 성경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이라면 이 글을 어떻게 받아들이려나 모르겠다. 진화론자 욕하는 내용은 없으니 부담 없이 편하게 읽으셨길 바란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본인 같은 사람(교회 진영)도 있음을 밝히는 바이다. ^^;;

* 2011년 12월 5일 추가
요약하자면, 원창조· 재창조 문제는 without form and void를 아래 그림에서 왼쪽처럼 보느냐, 오른쪽처럼 보느냐 문제와 정확히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잘 알다시피 왼쪽은 짓다가 만 미완성 건물인 반면, 오른쪽은 완공되었다가 파괴된 건물의 잔해이다.
세상에, 이걸 떠올리고는 내 머리에 내가 감탄하고 말았음.. -_-;; 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0/07/09 09:08 2010/07/0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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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무엘 2011/12/05 11:32 # M/D Reply Permalink

    원창조와 재창조 논쟁의 본질적인 관점 차이가 무엇인지를 한눈에 설명하는 짤방을 추가했다.

  2. 소범준 2011/12/05 12:09 # M/D Reply Permalink

    저도 간극 내지는 재창조를 처음 얼핏 들었을 땐 단일 창조(저는 창조과학회 등의 입장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쪽의 일방적인 의견에 낚였는데
    지금은 그걸 자세히 살펴보니 본질에 대한 이해 차이로 붉어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재창조 측이든 단일 창조 측이든 상방의 본질적 관점부터 철저히 살펴보고 나중 문제를 다뤄가는 게
    충분히 오해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샬롬~

  3. 백성 2011/12/05 13:22 # M/D Reply Permalink

    저도 주일학교 시절, '천지 창조' 인데 왜 정작 6일 창조에 하늘과 땅은 왜 안 들어갈까, (처음부터 세어서 6일이었으면 첫째날 창조가 하늘, 땅, 그리고 물, 빛과 어둠 이렇게 해야 될 텐데 빛과 어둠만 나와 있으니) 하고 의구심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간극 이론을 들으니 쉽게 해결되더군요.

    교회에서 어제 다룬 주제였고, 저도 이젠 간극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헌데, 저는 그 간극이 150억 년이라는 긴 시간이라고까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창1:2-3 사이에도 있을 수 있고, 창2장-3장 사이에도 충분히 긴 시간이 있다고(그때 아담과 이브는 안 죽는 존재였음)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창1:1-2 사이의 간극보다는 증거가 훨씬 불충분하긴 하지만요.

  4. 사무엘 2011/12/05 23:32 # M/D Reply Permalink

    소범준, 백성: 제 생각으로는, 개역성경/NIV에서 KJV를 받아들일 정도의 지각과 분별력이라면 간극-재창조 교리에 대해서도 쉽게 눈을 뜨지 않을까 싶은데, 주변에 그렇지 못한 분들이 계신 건 약간 아쉬운 점입니다. 저는 2003년에 사형 제도가 성경적이라는 것과 함께 이 교리도 받아들였습니다.

    교회에서는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 보통 창세기 쪽 설명을 먼저 듣는데, 나중에는 또 루시퍼의 타락 같은 얘기도 다른 라인을 통해 접하게 되지요. 이 둘을 매끄럽게 연결해 주는 게 바로 간극-재창조 교리입니다.

    이건 마치 나보다 먼저 태어났지만 유산되어서 죽고 없는 형이나 누나 얘기를 나중에 커서 어머니에게서 듣는 것과 같습니다. 질기고 민감하여 오해가 생길 수 있고, 그리스도인의 분리의 사유가 되는 결정적인 교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요하지도 않은 교리이지는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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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회복>

※ 요약
 
1월 17일 오전 예배 때 우리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소개 받은 독립영화 <회복>(김종철 감독)을 그 날 저녁에 청년부 명의로 단체 관람을 했다. (뭐 그래 봤자 본인 포함해 총 5인이었지만..)
 
정말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내용이었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런 기독교 컨텐츠가 외국물 번역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정말 믿어지지 않으며 대단하고 자랑스럽다.
일제 강점기 교회 수난사라든가 북한/조선족 지하 교회 이야기처럼 민족주의 정서(?)가 전혀 없이도 이렇게 감명 깊은 영상물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이스라엘의 문자적 회복을 믿고 예수님의 전천년 재림을 사모하는 바이블 빌리버라면 누구라도 볼 가치가 있음을 본인의 이름을 걸고 추천하는 바이다.
 
이 정도의 감격은, 본인이 KJV 초창기에 읽은 바 있는 <에큐메니즘의 이상과 우상>(구영재 저) 이래로 처음인 것 같다. 이것도 번역서가 아닌 국내 저서라는 게 믿기 어려운 수준인 책인데, 그 책이 다루는 분야는 유럽의 종교 역사 내지 국제 정세인 반면, 저 영화는 이스라엘이라는 점이 차이이다.
 
※ 첫인상
 
목사님께서 처음에 이 영화에 대해 언급하셨을 때 본인은,
뭐 또 할리우드에서 쉰들러리스트라든가 아니면 비슷한 급의 시사/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왔나.. 유대인 관련 음모론은 다루나.. 그 정도로 짐작만 했을 뿐, 정보가 없었다.
 
제목이 '회복'이라고 하기에, 주찬양 선교단 극렬 매니아인 본인의 머리에 바로 뜨는 인덱싱 결과는, 그저 10집 앨범 <회복>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고, 이 <회복>은 놀랍게도 국내에서 제작된 독립영화이다. 감독은 수십 회의 이스라엘 방문 경력을 지닌 이스라엘 전문가였다.
관람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크리스천들이고 교회에서 추천을 받아서 보거나 아니면 아예 단체 관람을 하는 경우였다.
할리우드 영화를 볼 때면 영화 상영 전에 거의 10~15분은 온갖 광고들이 나오는데 역시 독립 영화이다 보니 그런 게 전혀 없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본인은 예전엔 영화관의 내부 모습이 철도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항과 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상영 도중에 일부 사람들이 나가거나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정차역). 들어갈 때 사람이 표를 검사한다는 것, 처음에 비상시 대처 요령이 방송된다는 것 등이 공항 내지 비행기 여행과 매우 비슷하다. ^^ 역시 경험이 안목을 키우는 것 같다.
 
※ 영화 내용
 
예수님을 믿는 어느 유대인 가정이 괴한으로부터 폭탄 테러를 당하는 얘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런 짓은 90% 이상 이스라엘을 싫어하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소행으로 치부하기 쉬운데 놀랍게도 그렇지 않았다.
폭발 현장을 분석한 결과 이것은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군대를 전역한 사람의 소행으로 판명된 것이다.
 
잘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사방이 적국으로 둘러싸여 있다. 여자까지 군대로 징집해야 할 정도로 국방이 위태롭다.
그런데 서로 그렇게도 사이가 나쁜 이스라엘과 인근 팔레스타인 국가들은 그래도 일말의 공통분모를 공유하는 게 있다. 바로 예수님을 안 믿으며, 기독교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진정한 우군인 크리스천들에 대해서 온갖 나쁜 감정을 갖고 있고 오히려 적군과 그런 사이라니!
마치 빌라도와 헤롯이 전에는 원수였다가 예수님으로 인해 친구가 되었듯이(눅 23:12), 이들 사이의 불의한 동맹은 적그리스도에게 낚여서 그를 메시야로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대다수의 불신자들이 천주교와 기독교를 분간할 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천주교니 개신교 나부랭이 따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그저 구교 신교 할 것 없이 자신들을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고 정죄하고 괴롭히고, 십자가 내밀면서 못살게 군 코쟁이 원수일 뿐이다. 까놓고 말해 그들은 히틀러도 기독교의 교리대로 유대인들을 학살했다고 믿는다. 그러니 기독교 얼마나 싫어하겠는가?
 
이스라엘 내부에서 정통 유대교는 국교로 강제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그렇게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정통 율법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그들 중 일부가 그렇다는 거지, 이스라엘 내부에도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자유주의자 등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나라 법에 의해서 박해 내지 벌을 받는 건 아니다. 단지 왕따가 되고 그런 유대교 신봉자들로부터 사회적 배척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배척하는 짓이 너무 오버이다 싶으면 이스라엘 경찰이 출동해서 제지도 하긴 하지만.. 그들도 이런 일에서는 좀 손 떼고 싶어한다.
 
배척을 어느 정도 받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 얼굴을 사진 찍어 간 후 전단지를 마을에다 뿌린다. 이 사람은 요주의 인물이고 '당신들을 설득하여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불순분자이니 조심하라는 내용으로 말이다. 그리고 크리스천의 집 앞에서 농성도 하고, "2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자", "당신네 종교 때문에 히틀러는 지금도 외롭지 않을 거다" 같은 폭언 악담도 한다.
심지어는 교회 앞에서 죽치고 앉아 농성을 하거나 예배 진행을 못 하게 난동을 부리고, 예배당을 드나드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려고 1인 시위, 침묵 시위 별 걸 다 하더라. 그 중에 엄청 과격한 사람들은 아까처럼 폭탄 배달까지..
 
사람이 인간의 육신을 자극하는 종교 하나에 심취하면 저렇게 된다는 걸 느꼈다.
새까만 정장과 모자에 긴 턱수염을 한 랍비 아저씨가 평소에는 그래도 일말의 멋이 있어 보였는데.. 저러는 모습을 보니까 싸이코처럼 보였다. -_-;;
유대교 회당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는데, 거기는 오히려 천주교 성당과 분위기가 비슷해 보였다. 기도문 암송하고, 남녀 할 것 없이 머리에 면사포 뒤집어쓰고..
 
그들은 진짜로 예수님에 대해서는 그냥 2천 년 전에 죽은 사람 내지, 기존 유대교 체계에 반발하여 새로운 종교를 만든 이단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자기네 나름대로 메시야의 조건을 규정해 놓고 있는데, 지금까지 몇몇 랍비는 그 조건 중의 일부만을 충족한 경우가 있으나 완전한 메시야는 아직 안 왔다는 식이다.
신약 성경도 내용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았다. 유대인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도구는 구약 성경뿐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독교와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유대교 환경에서, 그것도 2, 30년 전만 해도 전국에서 정말 몇백 명에 불과하던 "메시야닉 쥬" -- 예수님을 영접한 유대인 -- 가 지금은 1만 4천여 명 수준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로마서 11장 내용이 진짜 자기네 이야기라는 것을 아는 유대인의 인터뷰를 보게 될 줄이야! 이런 사람들의 영향으로 대환란 때 14만 4천 명의 유대인 환란 성도가 준비되지 않을까 싶다.
 
이들은 길거리에서 전도지 나눠 주고, 도로변에 현수막을 펼치면서 정말 과감하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방해도 많이 받았다. 예수님의 승천 후, 복음은 지금까지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온 거라 한다.
유럽은 이제 교회에 노인들밖에 안 남았고 오히려 아시아에서 역선교를 해 온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던 한국도 100년 전의 평양 대부흥은 이제 안드로메다로 갔고, 크리스천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러는 중에 정작 예수님을 배척했던 이스라엘이 꿈틀꿈틀 각성 중이다. 정말 이제 이방인 경륜은 끝이 얼마 안 남았다!
 
유대인의 실족과 실패만으로도 이방인들에게 얼마나 큰 유익을 끼쳤는데, 하물며 이들이 나서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으로부터 받은 복을 세상으로 나눈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밝아지고 그들은 일등 선민 노릇을 하게 될까? (롬 11:12)
메시야닉 쥬들은.. 자기 동족이 지금까지 이방인들로부터 당한 설움을 이제 자기들한테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며 동족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은 자기를 박해하는 게 신명기 13장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는 신명기 13장이 아니라 신명기 18:15가 적용된다는 걸 증명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역시 유대인들은 지금도 표적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민족인가 보다. 예수님을 좀 보여달라고 했더니 꿈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체험으로 표적을 보고 곧장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영화 중에 줄을 잇는다. 영화 앞부분에서 폭탄 테러를 당한 그 사람도 정말 기적적으로 치유를 받았다.
물론 이들이 다 바르게 믿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영화에서 언급되지는 않지만, 예수 믿고 구원은 받았는데 아직 교리적으로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여전히 사도행전 15장처럼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예수님을 배출하였으나 수천 년을 예수님 없이 지내 온 이스라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새로운 흐름!
모세오경을 골수로 암기하면서 자란 그들이 스스로 홍해가 갈라진 기적이나 여리고 성이 무너진 기적보다 더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유대인의 덕을 본 이방인 중 하나로서, 본인에게 큰 도전과 유익이 되는 다큐멘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국민 대다수가 영어 무진장 잘 한다는 건 엄청 부러웠다.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이냐 하는 말싸움까지 유창한 영어로... =_=;;
영화 중에는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내용이 계속 반복되는데, 원래 오리지널 구절은 이렇다.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하여 기도하라. 너를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시 122:6)

이상 이것으로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0/01/20 09:44 2010/01/2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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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철도사랑 2010/01/21 22:09 # M/D Reply Permalink

    용묵님 너무 멋있어요.
    님같은 분과 결혼하고 싶어요.
    용묵님같은 분이 제 이상형이랍니다.^^

    1. 사무엘 2010/01/21 22:55 # M/D Permalink

      헉 완전 부담 되는 말씀을.. +_+ (자매이신지요?)
      저같은 사람하고 결혼하면 고생문이 훤합니다. ㅋㅋㅋㅋ

  2. 인민 2011/08/05 01:51 # M/D Reply Permalink

    근데 문제는 진짜 하나님을 믿느냐, 아니면 슬쩍 은사주의적으로 빠지느냐 하는 게 문제 아닐까요?

    1. 사무엘 2011/08/05 10:44 # M/D Permalink

      일리가 있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회복> 영화에 대해서도 그런 비판의 시각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유대인들 중에서도 우리와 같은 온전한 신약 교회의 믿음이 아니라, 구약 율법을 짬뽕해서 좀 이상하게 믿는 사람도 없지는 않대요. 영화는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그런 것까지 다루지는 않았지요.

      은사주의.. 라고 보기에는 그 사람들은 우리와 처지가 약간 다르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께 대놓고 표적을 요구할 권리가 있거든요?

    2. 인민 2011/08/05 12:42 # M/D Permalink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해도 더 요구해야 할 건 없어 보입니다. 어차피 전쟁나면 아브라함을 땅에 파송하여 아랍인들 당황하게 만든다던지 하는 게 늘상 일어나니까요.

      참고로 제가 말했던 그 은사주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경과 어긋난 주제의 테마라던가, 올바른 성경 말씀을 왜곡하게 하는 그런 종류를 말합니다.

  3. 소범준 2011/10/22 19:20 # M/D Reply Permalink

    1. 이 글은 몇번 읽고 몇번 더 생각하게 하는군요.
    이것 또한 글의 묘미가 아닐런지...도 모르겠습니다.

    2. 물론 이스라엘은 여러 불신자 못지않게 교리적 차이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이방인들을 위한 은혜의 복음의 막이 점점 내려지는 것을 보면 교회의 휴거의 때도 멀지 않았음을 심심찮게 추측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어서 그나마 눈 열린 유대인 성도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보게 되면 말씀을 바르게 나누게 되는(딤후2:15) 역사도 일어나게 되겠지만요.

    3. 그럴지라도 은혜의 복음을 우리 주변에 전하는 일은 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직까지 은혜의 복음을 기다리는 영, 혼들은 우리 주변에 항상 넘쳐나 있으니까요.
    그들에게도 은혜의 복음이 확실히 들어가길 바랍니다.

    1. 사무엘 2011/10/24 01:16 # M/D Permalink

      이 영화를 접한 KJV 맨들의 반응은 처음에는 놀라움과 감격 일색이다가, 차츰 몇몇 분별력 있는 분들에 의해, 거기에 간과되었을 수 있는 교리적 오류가 덩달아 지적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뭐, 부정적인 부분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만.

      세상에서 늘 시끄럽고 문제아이긴 하지만 존재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람들.
      온몸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하는 사람들.
      이 영적 경륜의 신약 시대에도 물질적이고 실질적인 복과 저주를 달고 있는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 유대인들입니다.
      영화는 영화 특유의 드라마틱한 각색이 안 들어갈 수는 없겠죠. 영화에서 묘사된 부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길 기대해 봅니다.

      관련 글 http://moogi.new21.org/tc/428 (친이스라엘이 살 길이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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