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중부에서 동쪽 북부까지 늘어선 산들을 살펴보면 북악산 - 북한산 - 도봉산의 순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쯤만 해도 본인은 북악산과 북한산의 차이도 몰랐는데 등산 많이 하면서 서울 지리 지식이 참 많이 늘었다. 북한산과 도봉산의 사이에 있는 것이 '우이령 고갯길'이며 본인은 거기도 갔다 와 봤다.

북한산은 서울 주변의 여러 산들과 비교했을 때 워낙 거대하고 등산로가 많은 산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난번에 갔던 정릉-백운대-우이동보다 더 서쪽으로 가서 형제봉· 문수봉 일대를 오른 뒤, 평창· 구기동 일대로 하산하는 경로를 짜서 북한산을 올랐다.

본인은 예전에 북악산을 북동쪽으로 종단해서 국민 대학교 방면으로 하산한 적이 있었다. 계속해서 북한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근처에 존재한다는 것까지는 그 당시 확인했지만, 시간과 체력 문제 때문에 더 진행하지 않고 귀가했었다.
그때 더 가지 못했던 길을 이제야 다시 찾아가서 개척하게 됐다. 지하철 길음 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국민 대학교로 러쉬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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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가 대중적으로는 홍대만큼이나 미대가 유명한 걸로 본인은 알고 있다. 뭐, 주변에 애들 놀 곳이 차고 넘치는 홍대에 비해, 북악산과 북한산 사이의 산기슭에 자리잡은 국민대는 위치와 분위기 차이가 많이 나긴 한다. 국민대는 놀기 좋은 위치가 아니라 등산 가기 참 좋은 위치에 있다.

그리고 본인 개인에게 국민대의 인지도는 강 승식 교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어 형태소 분석기를 연구· 개발하고 있는 컴퓨터공학과 교수여서 말이다. 아,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만나 보고 아는 사이는 아님.
2010년대부터는 U-tagger라는 걸출한 작품 때문에 울산대가 국어 정보처리 경진대회에서 상을 연달아 휩쓸기도 하면서 이 바닥의 막강한 경쟁자로 등극해 있긴 하다. 거기는 주 개발자인 박사 출신 학생은 들어 봤지만 교수님은 누군지 잘 모르겠다.

이런 잡생각을 하다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온다. 국민대 정문을 지나서 더 북쪽으로 가면 사진과 같은 터널이 보이며, 사진 기준 오른쪽에 공터와 함께 등산로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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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몇 차례 언급했듯, 북한산은 평범한 산이 아니라 국립공원이다. 그래서 입구에 이런 간단한 초소가 있고 밤에 '통금'도 존재한다. 하지만 저 초소는 안이 잠겨 있고 근무자는 없었다.

국민대 근처에 있는 등산로 출입구의 명칭은 '북악공원 지킴터'이다. 여느 등산로 입구처럼 '탐방 지원 센터'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는 않다. 아마 '탐방 지원 센터'보다는 더 간소화된(?) 시설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바로 옆에 대학교가 있다 보니..;; 네임드급 산의 등산로 출입구라고 해서 식당과 등산용품 매점이 즐비하다거나 하지는 않은 것도 이색적이었다.

아, 등산 당시의 개인 근황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을 지금까지 얘기를 안 했구나.
본인은 지금까지 거의 모든 등산을 꼭두새벽이나 그에 준하는 매우 이른 아침에 해 왔다. 조금이라도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등산은 점심 시간이 지난 오후 2시 무렵에 시작했다. 그 이유는 이 등산은 평범한 정규 스케줄에 근거해서 진행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4년 반이 넘게 아무 탈 없이 잘 썼던 맥북이 아무 징후도 없다가 하드디스크 케이블의 노후화로 인한 인식 + 부팅 불가라는 중대한 기능 고장을 최초로 일으켰다. 교체 부품을 주문해서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당일 즉시 수리는 안 되었으며, 컴을 얄짤없이 며칠 맡겨야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애플 공인 서비스센터는 무슨 삼성이나 LG전자 서비스센터처럼 곳곳에 많이 있지 않다. 회사와 가까운 분당 소재의 센터들은 아이폰만 취급하지 컴퓨터의 수리는 되지 않아서 서울 센터들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며칠간 날개셋 코딩은 어차피 못 할 텐데, 맥북 없이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그 동안 몰아서 미리 처리하는 쪽으로 개인 스케줄을 재조정했다. 그래서 오전에 서비스센터를 들렀던 당일의 오후에 등산을 급히 가게 된 것이다. 본인은 노트북 PC의 고장에 대비해서 이런 식으로 시간 손실을 최소화하는 Plan B 전략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이 날은 낮 기온도 10도가 안 될 정도로 매우 추웠던 덕분에 한낮에도 무더위 걱정 없이 높은 산의 등산이 가능했다. 단지, 낮이 매우 짧아져 있어서 등산 시간에 제약이 심했던 게 아쉽다. 오후 2시도 정말 아슬아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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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공원 지킴터'의 등산로는 이런 모양으로 시작되었다. 오르막이 계속됐다.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마지막으로 등산을 갔을 때보다 단풍은 더욱 진행돼 있었다.
나중에 갈림길이 몇 번 나왔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북악산이나 정릉 탐방 지원 센터 방면으로 빠지지 않게 주의했다. 나의 목표는 '형제봉 + 대성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기에는 심곡사· 영불사라는 절을 찾아가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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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특유의 울타리 쳐진 흙길과 문명화(?)의 흔적은 영불사까지가 끝이었다. 그 뒤부터는 여느 산처럼 숲이 우거지고 비좁고 가파른 산길 산행이 시작됐다. 해발 287m에, 대성문까지 약 2.5km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난 지 얼마 안 됐다.

여기서 능선에 도달할 때까지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었다. 전망대나 계곡이나 특이한 자연· 인공물 같은 거 없고, 묵묵히 산을 오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중간에 형제봉에 근접했으며 거기로 가는 갈림길도 있었지만 본인이 못 보고 그냥 지나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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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일말의 전망대 비슷한 바위가 나왔다. 여기서는 전망이 훤히 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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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울타리 쳐진 흙길이 나왔다. 여기는 벤치 하나 없고 전망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공간이 굉장히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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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더 올라간 뒤에야.. 드디어 첫 목적지인 북한산성 대성문에 잘 도달했다.
예전에 정릉에서 북한산을 올랐을 때는 보국문에 도달한 뒤 동쪽의 대동문 쪽으로 갔다. 이번에는 보국문의 서쪽인 대성문에 도달한 뒤, 또 서쪽의 대남문으로 갔다. 여기 고도는 이미 620m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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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대동과는 달리 대성-대남은 거리가 무척 짧은 편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잠시 하강만 하면 곧 대남문이며, 성곽 전방의 저 봉우리는 그 이름도 유명한 문수봉 정상이다.
허나, 등산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시간상의 한계(이미 오후 3시가 다 돼 감), 그리고 어차피 성곽을 따라 그대로 오르지도 못한다는 이유(안전상의 문제로 우회 등산로 이용) 때문에 본인은 문수봉은 가지 않았다. 그냥 이 사진만으로 만족한 뒤, 대남문에서 하산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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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대남문이다. 벌써부터 태양의 고도가 극도로 낮아지는(= 날이 저묾) 게 티가 난다. 이러면 찍은 사진의 색감과 명도· 채도도 별로 안 좋고 특히 역광은 감당할 수가 없어서 풍경 사진 남기는 데는 큰 악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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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문에서 구기동 방면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저기까지도 대략 2.5km 정도라고 한다. 처음에는 통나무 계단이 있었지만 그게 끝난 뒤부터는 흙길이 아니라 돌길이 굉장히 길게 지겹도록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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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길은 언제부턴가 계곡으로 바뀌었다(구기 계곡). 산 중턱에는 계곡을 건너는 다리도 몇 개 있었지만 물은 바짝 말랐거나 고인 웅덩이 형태로만 있었다. 하지만 아래로 계속 내려가자 그래도 나름 흐르는 맑은 물이 몇 군데 있었다.
해수욕장뿐만 아니라 이런 계곡에서 물놀이 하는 것도 좋다. 물론 국립공원들은 계곡이 죄다 민간인 출입 금지이기 때문에 저것들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추워서 콧물이 나고 손이 시려운 지경인데도 본인은 물놀이 생각을 하면서 산을 내려갔다. 몸은 별로 안 추운데 손가락 같은 말단은 어쩔 수 없이 추위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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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 탐방 지원 센터를 지나서 드디어 하산을 마쳤다. 서울 종로구 산기슭 그린벨트 지대에 이렇게 땅밟기를 하게 됐다. 여기엔 정치인들이 많이 산다는데...

버스가 다닐 정도의 큰길에 도달하니 '현대'라는 이름이 붙은 아파트도 아니고 3층짜리 벽돌 빌라가 있었다. 이건 물론 고도 제한 때문에 건물을 저렇게 지은 것이지 싶다.
지도를 보니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이북 5도청'이 여기서 불과 몇백 m, 버스 한두 정거장 남짓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5km가 넘는 산길을 다니고 와서 다리에 근육통을 호소하는 상태에서 선뜻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또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풍경 사진을 찍기에는 이미 날이 많이 춥고 어두워져 있었다.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귀가했다. 이북 5도청을 일부러 안 찾아가고 하산길에 자연스럽게 구경하려면 구기보다 더 서쪽의 비봉 탐방 지원 센터 방면으로 하산했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구기 터널과도 꽤 가까이 있었다. 거기를 지나면 이미 지하철 3호선과 6호선이 나오는 은평구가 나온다.

이북 5도청을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한국 고전 번역원은 버스 차창 밖으로 잠시 구경했다. 조선 왕조 실록은 전산화와 번역이 완료됐지만 그보다 분량이 더 방대하고 디테일한 승정원 일기는 여전히 완역이 요원한 상태라고 한다.
한편, 북한산은 비록 서울 북부의 확장을 가로막는 지형 장애물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나름 군사· 안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또 시민들에게 굉장히 좋은 휴식처 역할도 한다는 게 느껴졌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 (, 그리고 낙산)에 있던 성곽은 한양도성이다. 그러나 북한산에 있는 성곽은 북한산성이며 성남 쪽의 산엔 잘 알다시피 남한산성도 있다.
남한산성 일대는 6· 25 때 부산이 그랬고 고려 시대 때 강화도가 그랬던 것처럼 유사시에 임시 수도 역할을 할 수 있게 행궁이 있다. 저긴 워낙 천혜의 요새이기 때문에... 실제로 병자호란이 치러졌으며 지금은 도로가 닦여서 안에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고 심지어 마을버스까지 다닌다.

그 반면 북한산성은 발로 힘들게 등산을 하지 않으면 접근할 방법이 없으며, 군사 목적으로 건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여기서 전쟁을 치른 내력이 없다.
그러니 북한산성은 접근성이 좋은 한양도성과, 역사 내력과 유적이 풍부한 남한산성에 밀려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없는 것 같다. 남한산성과 비교했을 때 마치 북극과 남극, 그리고 지구형 행성과 가스형 행성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또한, 남한산성은 거기 유적지 일대만 도립공원인 반면, 북한산성은 그냥 산 전체가 통째로 국립공원이니 격이 차이가 있다. 뭐, 유적지 때문이 아니라 자연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2/12 08:36 2017/02/1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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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도봉산

지금까지 서울 북부의 산행은 지난번의 북한산, 그리고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락산· 불암산 정도가 전부였던 것 같다. 북악산은 북부라고 치기에는 생각보다 '덜' 북쪽이고.
수락산은 지하철 접근성이 좋으며 나름 두 번이나 다녀온 적이 있지만(각각 수락산, 당고개에서 출발), 그때는 산들의 특성 내지 등산 계획 수립 요령에 대해 지금 같은 지식과 노하우를 갖추지 못한 초창기였다. 그래서 정상까지는 안/못 가고 모두 중턱에서 내려왔다. 그때는 둘레길과 등산로의 차이도 모르던 정말 초짜 시절이었다.

가을은 날씨가 안 덥고 산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시기이니 가히 등산의 계절이라 할 만하다. 매니아들 중엔 아예 날 잡아서 멀리 지리산, 설악산 등으로 원정 가는 사람도 있다. 등산이 마냥 중장년 아재들의 전유물 취미이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가끔 보면 내 또래의 젊은 사람, 심지어 여자분도 있다.
이런 와중에 본인은 삼성산 다음으로는 지금까지 의외의 미개척 상태였던 도봉산을 다녀왔다.

도봉산은 북한산의 이웃에 있는 별도의 산이지만, 여기도 여전히 북한산 국립공원의 일부이다. 그래서 북한산처럼 시설이 잘 돼 있으며 경치도 매우 아름답다. 그 대신 입산 시간대가 제한되며,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거나 허용 등산로를 이탈해서 다니다 걸리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런 점에서 도봉산은 건너편의 수락산과는 급이 좀 다르다.

도봉산이 같은 국립공원인 북한산과 다른 점으로는 성곽이나 무덤 같은 건 없고 사찰이 더 많이 있으며, 전철 접근성이 훨씬 더 좋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기는 지리적으로 서울의 북쪽 끝인 관계로 근처에 근처에 시내버스 차고지가 있음과 동시에 지하철도 잘 알다시피 7호선의 종점과 도봉 차량 기지가 있다.
도봉산 역은 강릉의 정동진과 위도가 거의 같은 걸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상 철도 2개가 평행하게 만나는 관계로 이 역은 그냥 1호선 역과 7호선 역 두 채가 나란히 놓인 형태이다.

철덕으로서 지하철 답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등산을 위해서 도봉산 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역의 동쪽에는 '서울 창포원'이라는 야외 식물원이 있다. 반대로 국도 3호선을 횡단하여 서쪽으로 1km 남짓 걸어가면 국립공원 출입구가 나오고 등산로가 시작된다.
처음에 '도봉 탐방 지원 센터'가 나오고 그 다음 '북한산 국립공원 도봉 분소'에서 길이 본격적으로 갈린다. 북한산 둘레길도 있고 도봉산 등산로도 두 군데가 존재하는데, 본인은 은석암 방면으로 등산해서 도봉 대피소+도봉 계곡 방면으로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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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길은 여느 산과 다를 바 없었다. 이렇게 한참 산을 오르다가 커다란 바위가 나오기도 하고, 하늘이 간간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 말고 하산길이 국립공원답게 훨씬 더 잘 닦여 있었다.
은석암은 말 그대로 암반이기 때문에 손으로 줄을 잡고 바위를 올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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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턱쯤에 도달하자 시야가 탁 트이고 산 아래가 그럭저럭 보이기 시작했다. 도봉산 전철역이 보이고, 저 멀리 도봉 차량 기지도 보였다. 주변의 외곽 순환 고속도로와 이웃의 수락산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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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사는 아닐 테고 아마 천축사가 아닌가 추정되는데.. 산 속 저 높은 곳에 저렇게 절이 하나 떡 놓여 있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눈에 들어온 풍경이 가히 장관이었다. 그에 반해 여백이 부족한 건.. 아니고 카메라가 시야각과 색감이 부족하다.
본인은 뺑 돌아서 한참을 더 걸은 끝에 저 절이 있는 봉우리까지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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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커다란 봉우리 등장~! 그 뒤 등산 난이도도 덩달아 올라갔다.
장갑을 안 가져갔는데 로프를 잡은 손 내지 발을 딛고 있는 신발 바닥이 미끄러지면 어떡하나 겁이 나는 상황이 몇 번 있었다. 실제로 도봉산은 가까운 과거에 인명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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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서 낮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인제 하늘이 좀 파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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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은 여러 개의 바위 봉우리들이 제각각 정상을 구성하고 있으며, 다른 산들과는 달리 봉우리 위에 딱히 정상 표지석이나 국기 같은 건 없었다. 최고봉을 등반 가능한 건 아니며, 등산객이 접근 가능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신선대였다. 군사 시설 때문이 아니라 그냥 안전 때문에 최고봉에 못 가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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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대의 바로 옆에도 이런 돌무더기가 있었는데.. 크기를 짐작케 할 만한 레퍼런스가 없다시피하구나. 옆의 나무들을 보고 짐작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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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변에도 온통 높은 산과 봉우리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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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당초 계획은 오봉도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양주나 못해도 송추· 의정부 방면으로, 산을 횡단하여 서울에서 더 먼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삼성산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정작 정상에 도달하고 나니 지도의 묘사와 지금 위치가 씽크가 되질 않았다.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어서 길이 있는 곳으로만 내려가니까 결국은 서울 방면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단풍으로 물든 숲은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여기가 내가 올랐던 길보다 단풍이 더 든 것 같았다. 그리고 산 기슭보다 중턱이 붉은색이 더 짙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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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에서 봤던 계곡이 여기에도 있었으며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정오에 근접하자 이제야 이쪽으로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이 보였다.

도봉산에 대한 종합적인 평을 하자면 등산 시설을 제외한 인공물이 매우 드물고, 북한산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산 같다. 북한산은 어느 등산로든 지하철만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워서 버스가 필요한 반면, 도봉산은 국립공원으로서는 나름 역세권이기까지 한 게 좋다. 수락산, 청량산, 아차산 등 지하철 역세권인 산들 중에서는 가히 최고의 퀄리티가 아닌가 싶다. 등산기 두 편을 글 한 편에다 묶으려고 했는데 도봉산은 분량이 길어져서 또 단독 게재를 하게 됐다.

* 여담: 국립공원 이야기

자연 보호를 목적으로 근대적인 국가 제도 하에서 도입된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은 미국의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요세미티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구나. 어쨌든 미국이 최초이긴 하다. 'national park'라는 제도가 우리나라에 첫 도입된 건 1967년이어서 올해로서 딱 반세기가 지났다고 한다.
영예의 제1호는 지리산이며, 그 뒤로 국립공원은 대부분 네임드급 산들의 독식무대였다. 설악산, 한라산, 속리산, 주왕산, 계룡산, 오대산 등.
그렇기 때문에 이쪽 사정은 산악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서울의 북한산은 1983년에 비교적 '늦게' 지정된 거라고 한다.

하지만 산만 있는 건 아니어서 남해의 한려해상 국립공원도 있으며 충남 태안 역시 해안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그리고 경북 경주시는 건물 지으려고 땅만 팠다 하면 문화재가 도깨비 방망이 두들기듯이 출토되는 특수성이 감안되어, 토함산, 남산과 일대 시가지 약 137제곱km가 국립공원으로 그것도 무려 1968년부터 지정됐다.
도시형 국립공원이란 건 경주가 전국적으로 유일무이한 사례이다. 여기에 사는 경주 시민은 법적으로는 국립공원에서 사는 셈이다. 경부 고속도로에서도 경주 근처에 '경주 국립공원' 운운하는 표지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허나, 국립공원에서 산다고 실생활에서 별로 좋을 건 없다. 오히려 문화재 보호와 도시 미관 유지 명목으로 개발 제한에 고도 제한 같은 규제가 어지간한 그린벨트 이상급으로 걸리는 게 더 많기 때문이다. 지주의 입장에서는 재산권 행사에 애로사항이 꽃핀다.
미국의 워싱턴 D.C.에서는 모든 건물이 백악관보다 낮은 층수로만 지어져야 한다던데 그런 게 고도 제한이다. 그리고 작년에 지진 피해를 많이 입었던 황남동 일대는 전통 보존 운운하면서 주택은 반드시 기와집으로 올려야 한다는 게 법으로 규정돼 있었다. 그런 식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1/25 19:39 2017/01/25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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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예봉산, 삼성산

1. 예봉산

북한산 백운대 다음으로 본인이 찾아간 산은 남양주에 있는 예봉산이었다. 언젠가 한번 방문하려고 오래 전부터 점찍어 둔 산이었다.
예봉산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검단산을 마주보고 있으며, 해발 683m로 검단산과 비슷한 높이이다(검단산보다 약~간 더 높음). 그리고 예봉산은 주변에 예빈산, 운길산, 적갑산 같은 봉우리들이 있어서 산맥을 구성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반 년쯤 전에 검단산을 올랐을 때는 뿌연 안개 때문에 아래를 전혀 내려다보지 못했다. 한강이고 뭐고 하나도 안 보였다. 그래서 다음에는 강 건너편의 예봉· 예빈산 일대를 올라서 거기서 경치 구경을 다시 하려고 마음먹었으나.. 사실 이번에도 너무 이른 아침에 올라서 그런지 경치가 막 선명하게 잘 보이지는 않았다. 뭐, 그래도 한강을 내려다보겠다는 목표 자체는 그럭저럭 성취했다.

예봉산까지 무슨 교통편을 이용해서 갈지가 문제였다. 일단 산이 경의중앙선 팔당 역과 가까이 있긴 하다. 하지만 완전 가까운 건 아니고 몇백 m를 지나서 굴다리 밑으로 지난 뒤, 또 몇백 m를 걸어 올라가서 각종 마을과 유원지를 지나야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직선거리가 아닌 실제 이동 거리는 그리 가까워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등산로 근처까지 마을버스가 다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 대신 로드뷰를 통해 등산로 입구 근처에 차를 세울 만한 넓은 공터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 점을 감안하여 본인은 여기는 차를 가져가기로 마음먹었다. 차를 가져가면 알다시피 산을 편도 횡단을 할 수 없어지고 이동 경로에 큰 제약이 걸린다(차가 있는 곳으로 반드시 되돌아와야 하므로). 그걸 감수하고도 이렇게 결정을 내렸다.

서울 동부에서 저기로 가려다 보니 지난번 검단산에 갈 때처럼 하남 시내를 저절로 거쳐 가게 됐는데.. 팔당대교 진입로는 뭔지는 몰라도 굉장히 배배 꼬여 있었다. 그냥 직진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오른쪽으로 꺾었다가 P턴을 하고 뭔가 굉장히 골치아프게 돼 있었다. 그리고 양평으로 가는 국도 6호선(경강로)과, 팔당 역 경유 남양주로 가는 길(팔당로)은 같이 나란히 지나는 듯해도 서로 왕래가 불가능했다. 팔당대교에 있을 때부터 어느 길로 들어갈지를 결정하고서 빠져나가야 했다.

요컨대 팔당대교는 진입과 진출이 모두 좀 이상한 구조였다. =_=;; 뭔가 이렇게 된 사연이 있는 것 같다.
뭐 아무튼 현장에 도착은 잘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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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인터넷을 통해 미리 봐 놓은 공터이다. 본인은 등산 전날 밤에 정확하게 이곳에 미리 도착해서 차를 세워 놓고 캠핑을 했다.

밤이 되니 밖은 기온이 거의 10도 무렵까지 뚝 떨어졌다. 또한 주변은 가로등 포함 불빛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칠흑같이 어두컴컴했다.
그에 반해 차 안은 따뜻하고 아늑하기 그지없었다. 자동차 덕분에 이런 오지에서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외박을 한다는 게 참 놀랍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차 안도 온기가 언제까지나 유지되지는 못하기 때문에 드디어 싸늘해지고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미리 준비해 간 담요를 뒤집어쓰기만 하면 됐다. 이튿날 아침이 되니 온도차 때문인지 차의 창문들은 온통 성에가 껴 있었다. 밖에서 차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은폐 효과까지 덤으로 달성됐구나.

아침 7시 무렵, 해가 뜨자마자 본인은 곧장 산을 올랐다. 정상까지 갔다가 차를 세워 둔 이 마을로 돌아오긴 하되, 그래도 갈 때와 올 때의 경로 자체는 다르게 경로를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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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봉산은 직전에 갔던 북한산에 비하면 정~말로 특징 없는 마이너한 산이었다.
계곡이나 암반 같은 자연 분야로나, 보안 시설이나 묘지나 역사 유적 같은 인간 분야로나.. 특이사항이라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등산로 자체는 그럭저럭 닦여 있지만 계단이나 안내 표지판, 벤치, 난간 같은 것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보다시피 인제 여기에 난간 하나 설치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전망대도 없어서 정상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한강 경치고 나발이고 뭐 없었다. 그냥 비탈길 따라 끝없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게 전부였다. 손이 필요한 구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리 트레킹만으로 충분하다. 이 정도 높이와 규모의 산이 이 정도로 밋밋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이렇게 마이너하고 한적하고 덜 유명하니까 검단산보다도 훨씬 한산하고 주차 걱정도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공원인 북한산이었으면 저렇게 공터에 아무렇게나 차 달랑 세우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유료 주차장에다 차를 대야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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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80분 동안 낑낑댄 끝에 정상에는 별 문제 없이 도달했다. 주변엔 아무도 없는 관계로 타이머를 이용해 이렇게 내 모습을 남겼다.
아 그러고 보니 맥북을 챙기는 걸 깜빡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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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은 팔당 역 쪽으로 가긴 하지만 그래도 올라왔던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했다. 인제 슬슬 산 정상으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는 그래도 계단이 쭉 깔려 있고 중간에 한강 방면의 전망대도 딱 한 군데 있어서 등산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강 건너편의 저 높은 산이 바로 검단산이다. 또한, 팔당대교와 희고 길쭉한 팔당 역도 선명히 보인다. 나머지 울창한 숲과 나무, 등산로 계단 장면은 그렇게 특별한 게 없으므로 첨부를 생략하겠다.

하산하면서 좀 걱정은 했다만, 마을 어귀에 있는 팔당2리 마을회관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차를 세워 놓은 쪽으로 몇백 m를 걸어서 차에 무사히 잘 도달했다. 차는 4시간 가까이 주인을 기다리며 잘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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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엔 팔당 역의 바로 옆에 있는 남양주 역사 박물관을 구경했다. 남양주에 무슨 특별한 역사 유물이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산대놀이, 묘비 글씨 탁본, 기와 무늬, 바느질 무늬 같은 것들이 전시돼 있었다.

아침 시간이 되니 역 주변에는 등산객과 자전거족들이 많이 서성이는 게 보였다. 이렇게 등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2. 삼성산

2016년 한 해 동안 서울 근교에 있는 어지간히 높은 산들은 다 오른 듯하다. 점찍어 둔 산이 두어 곳 정도 더 남았는데, 지금까지 관악산 일대의 서울 남서부를 못 간 상태였다.
관악산 자체는 예전에도 몇 번 간 적이 있기 때문에 예봉산의 다음으로는 더 서쪽에 있는 '삼성산'을 선택했다.

차를 가져가지 않고 전철을 1시간을 훌쩍 넘게 타서 안양까지 이동했다. 서울 방면은 전철역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남쪽으로 또 가야 산에 접근 가능한 반면, 안양 방면은 전철역 + 국도 1호선 대로변에서 비교적 가까이에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싸한 산 입구나 한적한 시골 마을이 아니라 그냥 큰길에서 등산을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예전에 성남 남동부의 불곡산을 올랐을 때와 비슷하다. 본인은 관악 역에서 내려서 등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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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이렇게 흙길과 바위가 적절히 어우러져 있었다. 그리고 나무로 덮여서 하늘이 잘 안 보이는 곳과, 하늘이 뻥 뚫려 보이는 곳도 종종 교차되는 편이었다. 이 산에서 하늘이 중요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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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일대는 비행 항로이기 때문이다. 비행기들이 하늘 위로 정말 많이 지나갔다. 이것까지 이미 다 예측하고 비행기 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고 갔다.
비행기를 관찰하려면 엔진 소리가 나는 바로 그쪽을 봐서는 안 됨. 소리 근원지보다 소리의 진행 방향으로 한 발 더 나아간 쪽을 봐야 한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 그 이유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소리가 여기까지 전해지는 데 딜레이가 있으며, 그 동안에도 비행기는 앞으로 더 나아가기 때문이다. 굳이 비행기 자체가 초음속기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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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어느 정도 오르자 드디어 탁 트인 landscape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거 보는 게 등산의 묘미다.
주변 경치가 전반적으로 이러했다. 여기저기 봉우리가 솟아 있고, 푸른 풀숲에 부분적으로 황금빛 단풍이 물든 게 색깔 배합이 내가 보기엔 경이로움이 느껴질 정도로, "정말 아름다웠다." 직접 봐야 알 수 있다.
게다가 이 날은 등산 가기도 아주 좋은 날씨였다. 직사광선 없이 흐리고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었다. 이런 날 등산 같은 활동을 안 하는 건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을 지경이었다.

아, 위의 사진의 중앙 우측에 있는 건물들은 안양 예술 공원이라는 유원지이다. 내가 나중에 저쪽으로 하산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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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이 사진은 호락호락 쉽게 찍은 사진이 아니다.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한 바위에다 카메라를 최대한 바른 구도로 놓은 뒤, 타이머 셔터를 눌러 놓고 허겁지겁 저 포즈를 취해서 혼자 찍은 것이기 때문이다. 저 땐 바람도 꽤 세게 불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카메라가 균형을 잃고 바위 아래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삼각대가 필요한 듯.
그래서 그런지 내가 그렇게 밝은 표정으로 찍히지는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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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 교육 대학교가 내려다보였고, 저 멀리 KTX 광명 역도 보였다~! 등산 가서 고속철 철도역을 볼 줄이야.. 땡잡았다.
역 주위로도 온통 고층 아파트가 지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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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것들은 국내 인터넷 지도로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물건일 것이다. 저 거대한 둥근 원판은 군사 시설이기라도 한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서울 강남 서남부에 무슨 성곽이 있을 리는 만무한데 저 봉우리는 왜 철책이 둘러져서 반토막이 나 있는 걸까? 저기는 산의 과반이 예비군 훈련장 등 군사 시설로 싹 봉인돼 있는 박달산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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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산의 사실상의 정상이라 일컬어지는 국기봉에 잘 도달했다. 이름에 걸맞게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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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봉 정상 근처에서는 삼막사라는 절이 내려다 보였으며, 여기에서 몇백 m 정도 떨어진 곳엔 삼성산의 실제 정상이 보였다. 실제 정상에는 건물과 철탑이 있으며, 아무래도 일반인에게 개방된 것 같지는 않았다.
저기가 국기봉보다 약간 더 높긴 하지만 그래도 몇 미터 차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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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도달한 뒤 내 의도는 북서쪽으로 진행해서 호암산 쪽으로 하산하는 것이었다. 안양 방면과 관악산 방면을 모두 등지고 하산하려 했으나.. 산에 실제로 있어 보면 방향 감각을 거의 유지할 수 없더라..;; 결국은 삼성산과 관악산 사이의 계곡으로 들어섰고 서울대 수목원과 안양 유원지(예술 공원)로 착지하게 됐다. 삼성산의 서울 방향에 무슨 천주교 묘지 공원도 있다고 들었으나 그런 건 전혀 구경 못 했다.

여기도 경치가 아주 아름다워서 온 보람은 있었다. 단지 하산 후에도 버스 정류장까지 엄청난 거리를 걸어야 했을 뿐.;;
흐음 어쩌다 보니 삼성산 사진이 예봉산 사진보다 훨씬 많아져 버렸다. 높이는 예봉산이 더 높은데 아무래도 삼성산이 특이사항이 더 많아서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6/11/24 08:38 2016/11/2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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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동안은 등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100~200m짜리 언덕 산책에만 머물렀고 8월 동안은 그마저도 아예 포기하고 지냈다가..
폭염이 물러나고 가을이 되자 지금까지 올랐던 어느 산들보다도 더 높고 험한 산으로 과감하게 달려갔다. 오랫동안 마음에만 품어 놓고 있었던 산, 바로 북한산이다.

여기는 동네 뒷산 같은 듣보잡 산이 아니라 국립공원이다. 네임드급 산이고 또 괜히 그렇게 지정된 게 아니다. 등산로를 벗어나거나 출입 금지된 계곡 같은 데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걸리면 과태료를 먹는다. 그 대신 네임드급 산답게 등산로는 아주 잘 닦여 있으며 각종 위치 안내 시설도 잘 돼 있다. 공중 화장실도 꽤 높은 지점까지 설치돼 있다.
이런 거대한 산 때문에 서울이 북쪽으로 더 확장을 못 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휴양지가 서울과 가까이 있다는 건 또 다른 면에서는 축복이다. 주말마다 수많은 등산객들이 북한산을 찾는다.

역시 높고 험하고 길어서 오르내리는 시간도 왕복으로 6시간 가까이 꽤 오래 걸렸다.
마지막 분기점에서 백운대 정상까지 딱 300m라고 쓰여 있었는데, 저 거리의 낚시에 낚이지 말 것. 산책 하듯 설렁설렁 비탈길이나 계단을 오르는 300미터가 아니다. 발뿐만 아니라 손도 써야 하는 왕창 힘든 암벽 등반으로 300미터다.

그래도 (1) 남한산성과 같은 성곽(북한산성), (2) 우이령 같은 고갯길, (3) 아차산 같은 아래 전망, (4) 커다란 암벽, (5)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 (6) 용마-망우산 같은 애국지사 묘역 등..
여기는 지금까지 산에서 경험했던 여러 복합적인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좋은 산이었다.
본인은 정릉 탐방지원 센터 - 보국문 - 대동문 - 용암문 - 백운대 정상 - 백운 탐방지원 센터 - 우이동 분소의 순으로 올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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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은 일일이 등산객의 수와 신원을 파악하고 통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입산 가능 시간대가 정해져 있다. 산에서 무단으로 짱박혀서 외박· 야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
탐방지원 센터 근처에는 유료 주차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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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예전에 갔던 우이령길처럼 울타리가 쳐진 흙길 형태로 등산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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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중간 마주치는 계곡은 물이 참 맑고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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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등산로는 가파른 돌계단으로 바뀌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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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구간에 진입하여 보국문이 나왔다. 여기가 이미 해발 500m대에 달한다.
예전에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을 올랐던 생각이 났다. 거기는 분지 지형이어서 성곽 아래의 옴푹 패인 곳에 거의 마을 하나가 조성돼 있는 반면, 북한산은 그렇지는 않다.

여기서 서쪽 대성문 쪽으로 가면 평창동 방면으로 하산 가능하다. 본인은 하산은 그쪽으로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일단 정상으로 가고 싶어서 동쪽 대동문 방면으로 발길을 돌렸다. 북한산의 서쪽은 다음 기회에 방문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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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길을 한참을 걸었다. 이제 산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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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에는 어째 넓은 공터가 있어서 많은 등산객들이 쉬고 있었다. 하지만 정상으로 가려면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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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문까지 지나고 백운대가 점점 가까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래 전망은 더욱 좋아졌다. 그러나 암벽을 타는 진짜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슬금슬금 오르던 고갯길과 성곽길도 다 지나고, 등산의 양상이 확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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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발만 써서는 안 되고 손으로 로프를 꽉 붙잡아야 진행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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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저기가 백운대이다. 저렇게 보니까 정상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저 사진에서 사람이 어느 크기인지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_=;; 저 육중한 바윗덩어리를 올라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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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아예 저렇게 암반을 타는 사람도 있었다. 저게 진정한 의미의 클라이밍이다. 고전 게임 레밍즈에서 '클라이머'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냥 설렁설렁 발만 써서 비탈길을 오르는 등산은 하이킹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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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는 온통 이런 봉우리들을 볼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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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창 고생한 끝에 어쨌든 정상에 도달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긴 했지만 이 정도면 햇볕도 안 나고 등산 가기에 그럭저럭 괜찮은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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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인명 사고라도 났는지 119 헬리콥터가 떴다. 살다 살다 헬리콥터가 내 발 밑으로 날아다니는 건 처음 본다. 여기가 어지간히도 고도가 높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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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주변의 암반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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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하산은 어째 계곡을 따라서 했다.
백운대 탐방 지원 센터는 산중턱에 있었으며, 자동차 도로가 닦여 있었다. 자동차 도로는 경사는 아주 완만하지만 사람의 입장에서는 걸어야 하는 거리가 왕창 길다는 단점도 있다.

한참을 걸어서 다 내려와 보니 결국 예전에 우이령 고개를 갈 때 들렀던 그 분기 지점에 도달했다. 하긴, 거기는 우이령길, 북한산 등산로, 북한산 둘레길 등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다.
4· 19 묘지라든가 손 병희· 여 운형· 조 병옥 등 유명인사들의 묘소는 등산로가 아니라 둘레길 영역에 있는 듯하다. 동북쪽으로 하산한다면 그쪽으로라도 들를 수 있지 않나 생각했지만 그쪽 구경은 못 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6/10/23 08:27 2016/10/2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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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천장산, 낙산

컴퓨터도 더 작은 모바일로 바뀌고, 철도도 더 작은 경전철로 바뀌는 게 트렌드인지..
지금까지 산책삼아 다녀 온 작은 언덕들의 주요 탐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도록 하겠다.

1. 천장산

서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구소들이 가득하고 남쪽에도 산림 과학원, 카이스트 경영 대학원 등이 있어서 왠지 지적인 느낌이 드는 산이다. 그런 쪽 말고도 동남쪽에는 경희 대학교가 있고 동쪽에는 의릉과 한국 예술 종합 학교(일명 한예종)이 있다.
게다가 산의 이름부터가 '하늘 아래 명당'이라는 뜻인데 이런 산을 오르는 느낌은 어떨지 궁금해서 지하철 6호선 상월곡 역에서 내려서 산책로를 올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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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아파트도, 교수 아파트도 아닌 과학자 아파트다. ㄷㄷㄷ 하긴, 과학자들은 국가를 먹여 살리는 기간 인력이지.
그런데 지금 '과학자 아파트'라는 단어로 구글링을 하면 온통 북한 소식만 검색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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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이렇게 빽빽한 나무들로 가득해서 산림욕을 즐기기 좋았다.
단, 천장산은 앞서 말했듯이 산기슭에 여러 연구소와 심지어 문화재까지 있는 관계로 접근이 통제된 곳이 아주 많았다. 사방팔방 등산로가 뚫려 있는 봉화산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일단 국립 산림 과학원이 관리하는 '홍릉숲' 영역은 전부 펜스가 쳐져서 막혀 있었다. 서쪽의 연구소 방면도 접근 불가이며 거기 있는 건물들을 구경도 할 수 없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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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41m짜리 낮은 산이니 정상에는 아주 금방 도달한다. 그런데 홍릉숲 말고 맞은편 쪽도 전부 펜스가 둘러져서 막혀 있다. 펜스 건너편은 '의릉' 쪽에서 올라와야만 갈 수 있다.
즉, 그냥 동네 뒷산 오르듯이 오르면 천장산은 거의 셰어웨어 데모 수준만 구경할 수 있었다. 갈 수 있는 경로가 단 한 곳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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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는 북서쪽을 바라보는 딱 한 곳에만 있었다. 북부 간선 도로를 넘어 가까이 있는 언덕은 북서울 꿈의 숲 내지 오패산이고,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은 그냥 북한산이다.
여기를 지난 뒤부터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냥 계단을 따라 꼭대기에서 하산하며, 산기슭 둘레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한예종의 입구에 도달하게 되었다. 의릉을 가려면 한예종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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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릉은 서울 동대문구· 성북구 주민, 제복 입은 현역 군인, 한복 착용자 등등이 무료 입장 가능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입장료 1000원을 내야 들어갈 수 있었다. 풀밭이 참 깔끔하게 닦여 있던데.. 본인은 여기서 천장산을 다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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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산의 진짜 꼭대기에 도달했다. 위의 사진에서 연두색 펜스 왼쪽이 처음 들렀던 곳이고, 지금은 의릉 쪽에서 산을 다시 올라 있다. 의릉 쪽 등산로는 정상까지 나무 판자 내지 시멘트로 마치 협궤 철길 같은 등산로가 닦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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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의릉 방면에서 산을 한 바퀴 도는 쪽으로 하산했다. 저 멀리 경희 대학교 평화의 전당이 보였지만 길이 봉인돼 있어서 그쪽으로 직접 갈 수는 없었다. 여기는 통제 구역이 많아서 산을 종단할 수 없으며, 들어왔던 의릉 입구로 되돌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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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나무들에 둘러싸인 초록색 지붕의 건물이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나중에 지도와 대조해 보니 저건 한예종 미술원 건물이었다. 본캠 건물과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있다.

한예종이 있던 이곳에는 잘 알다시피 안기부 청사가 있기도 했다. 남산 청사와 더불어 이렇게 천장산 청사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다 합쳐져서 내곡동으로 간 것이다. (의릉 근처에 있던 것이 지금은 헌릉 근처로 바뀌었다는 게 흥미롭다.) 사실 아까 그 미술원 건물도 과거에는 안기부 건물의 일부였다고 함. 그러니 그 시절엔 민간인이 이렇게 천장산에 자유롭게 접근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안기부 강당 건물은 리모델링되거나 철거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나 남아 있었다. 별로 볼 건 없이 썰렁해서 사진 첨부는 생략하지만, 그 강당에서 지난 1972년에 남북 7· 4 공동 선언이 발표됐다고 한다.

이렇게 의릉과 천장산 구경을 한 뒤, 본인은 무작정 한예종 캠퍼스를 지나서 큰길을 찾아 쪽문 밖으로 나갔다. 초행길이었지만 이렇게 나가는 게 맞았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자 이내 버스가 다니는 길이 나오고, 상월곡 역의 다음 역인 돌곶이 역이 나왔다. 이렇게 여행을 마쳤다.

2. 낙산

낙산은 안습한 높이 때문에 온통 아파트와 건물로 뒤덮인지라, 항공 사진을 봐도 산 같아 보이지가 않을 정도이다. 그래도 지형상 엄연히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는 산이며, 꼭대기에 도달하고 나면 서울의 중심부에서 번화한 대학로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다. 산이라고 하면 보통 2차원 공간이 연상되지만 낙산에서 공원에 속하는 영역은 한양 도성을 따라 길쭉한 '길'이라는 1차원적인 성격이 강하다.

동대문(흥인지문)이 있는 교차로에서 북쪽을 보면 한양 도성이 시작되고 땅의 고도가 높아진다. 평소에 여기를 종종 자동차를 몰며 지나가기도 하는데, 저 성곽 공원에는 무엇이 있을지 언젠가 한번 땅밟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지난번에 남산에서 한양 도성 구간을 지나면서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 지하철 동대문 역에서 내린 뒤, 실제로 성곽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낙산을 올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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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문은 너무 외진 곳에 있어서 존재감이 없었고, 동대문과 남대문은 왕년에 임진왜란 때 왜군이 통과하기도 한 뜻깊은(?) 곳이어서 존치. 그 반면 서대문은 다른 명분이 없어서 일제 강점기 당시에 노면 전차 복선화를 구실로 헐림...;; 뭐 이런 말이 있던데.
어쨌든 동대문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동대문의 양 옆으로는 동소문(혜화문), 그리고 남소문(광희문)이 있다. 비록 성곽은 동소문 방면 것만 남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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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오르막을 오르자 주택은 뜸해지고 고급 카페와 전망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주거지 대신 공원 티가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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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너머 건너편도 굉장한 고지대인 것 같은데 저기에도 집들이 빽빽하다.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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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정상까지 시내버스도 다니고 있었다.
예전에 교회 친구들과도 낙산 공원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남쪽의 동대문 쪽에서 안 오고 서쪽의 대학로 쪽에서 오르느라 성곽이 있는 이곳까지 올라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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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밖으로 나가니 한성 대학교가 바로 내려다 보였고, 그 밖에 경치는 대략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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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인가 제3 전망광장까지 가니 성곽이 잠시 끊어졌고, 본인은 여기서 산을 내려갔다. 요런 계단을 내려가니 또 빽빽한 빌라촌이 나왔고, 거기를 지나자 각종 극장들이 보였다. 방통대 건물이 멀리 보이길래 거기와는 90도 수직인 방향으로 이동하여 큰길을 찾았고, 이내 지하철 혜화 역에 도달하여 산책을 마쳤다.

Posted by 사무엘

2016/09/07 08:33 2016/09/0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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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봉화산

서울 중랑구에 있는 봉화산은 둘레길만 따라 산기슭을 한 바퀴 도는 거리는 4km가 좀 넘고, 정상까지 높이는 해발 160m 정도 되는 작고 낮은 산이다. 인접한 산맥 능선이 없이 혼자 불쑥 솟아 있는 일종의 '독립구릉'인지라 예로부터 지리· 지형적인 이용 가치가 높았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 지하철 6호선의 종착역이 이 산의 이름을 따서 작명되어 있다.

본인은 혹서기에는 높은 산 대신 서울 곳곳에 공원 형태로 조성돼 있는 작고 낮은 산들을 틈틈이 답사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는 봉화산 역 → 정상 → 중랑구청의 순으로 봉화산 북남 종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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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역 4번 출구로 나가서 산을 향해 계속 전진하니 일단 나무들이 무성한 공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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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지나서 계속 산의 중심부 쪽으로 비탈길을 오르자, 길은 점점 좁아지고 흙길 등산로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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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은 산의 규모에 비해 출입구와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굉장히 많이 나 있었다. 그래도 어느 걸 타도 적당히 중심부 쪽으로만 가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길 잃을 염려는 안 해도 된다.
여느 산들과 마찬가지로 산중턱에는 운동 기구들이 설치된 공터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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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송전탑과 매점(!)이 나오고, 거기를 지나자 정상이 나왔다. 정상에는 듣던 대로 봉수대가 있었다. 하긴, 산이 이름부터가 봉화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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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 전체를 통틀어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는 여기 하나뿐이었다. 곳곳에서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던 용마산과는 반대다. 봉화산은 육군 사관학교와 가까이 있기도 하지만 이 산에서 그쪽을 내려다볼 수는 있지는 않다. 보안상의 이유도 있을 것이고. 위의 풍경은 중랑천과 천장산 방면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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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지나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봉화산 도당굿 보존 위원회' (서울시 무형 문화재 제34호) 이런 건물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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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구청 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뭐 이런 식이었다. 7호선 먹골 역 방면인 서쪽으로도 갈 수 있고 길이 그야말로 사방으로 뻗은 듯했다.
중랑구청은 봉화산의 남쪽 중에서도 약간 동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있다. 본인이 이 지점을 선택한 이유는 여기도 아까 봉화산 역 방면의 북쪽과 마찬가지로 공원이 꾸며져 있으며, 여기 근처에서는 집으로 환승 없이 한 번 만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본인은 이로써 서울 지하철 4~6호선의 종점 근처에 있는 산들을 모두 가 봤다. 4호선 당고개(수락산, 불암산), 5호선 마천(청량산), 6호선 봉화산까지. 이제 7호선 도봉산만 남았다.

Posted by 사무엘

2016/08/18 08:35 2016/08/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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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배봉산, 백련산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본인 역시 코딩 집중도가 올라가고 대외적으로 이것저것 바쁜 일이 생기니.. 지난 봄만치 멀리 가서 높은 산을 오르지는 못하고 있다. 날씨가 풍경 사진을 찍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이긴 하나, 본인처럼 열 많고 땀 많이 흘리고 더위에 약한 사람에게는 장거리 산행을 몹시 괴롭게 하는 날씨이다.

이럴 때는 도심에서 별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그냥 100~200m대 높이의 공원에 가까운 언덕을 산책하고 오는 걸로 만족하곤 했다. 중전철 대신 경전철, 행성 대신 왜행성 같은 느낌이랄까? 하긴, 예전에 올랐던 산 중에도 개화산이나 응봉산처럼 완전 작은 놈이 있었다.

이 글에서는 원래 가려던 산 대신 예정에 없던 엑스트라로 다녀온 곳이 두 군데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얘들은 다 외곽이 아닌 시내 중심지에 있고, 산 반대편으로 건너갔다고 해서 교외 지역이나 경기도에 도달하는 게 아닌 것치고는 지하철 접근성이 별로 좋지 않다. 이에, 본인 역시 둘 다 대중교통이 아닌 자가용으로 방문해서 다녀 왔다. 단, 한 곳은 자전거를, 다른 한 곳은 자동차를 이용했다는 차이가 있다.

1. 배봉산

정상의 높이는 108미터, 종축 횡단 거리도 1km 남짓밖에 안 되는 정말 아담한 산이다. 한때 사도세자가 죽은 후에 여기에 묻혔었다는 걸 안내 표지판을 보고 처음 알았다(나중엔 더 멀고 터 좋은 곳으로 이장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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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봉산으로 접근하는 곳이 이곳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배봉산 근린공원'은 이렇게 근사한 입구를 갖추고 있다. 바로 옆에는 야외무대라는 공터도 있다. 위치는 산의 최남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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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둘레길만 돌아다닐 수 있고 정상으로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본인은 응당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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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건물 계단 오르는 정도의 기분으로 잠깐만 수고를 하고 나니 금세 정상이 나왔다. 단, 산의 진짜 정상은 유적 발굴 공사 때문에 접근이 막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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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봉산은 전반적으로 나무들이 굉장히 조밀하게 우거져 있어서 위로나 좌우로나 경치를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나마 정상 근처에 딱 한 군데 있는 전망대도 나무들 때문에 시야가 이 정도에 불과했다. 전방에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용마산으로, 여기서 3~4km 정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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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지난 뒤부터는 능선(?)을 타고 북쪽으로 가는 길이 이런 식으로 나 있다. 산이 면적이 굉장히 작은 관계로 여기 말고 다른 길은 없는 듯하다. 아까 언급한 그 둘레길도 사실은 서울 시립대 부근에서 끊어졌다.

북쪽 끝까지 가면 '휘경 광장'이라는 공터가 나오며, 더 진행하면 휘경2동 주민센터를 보면서 하산할 수 있었다. 혹은 그냥 서울 시립대 부지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본인도 평소 같으면 당연히 그쪽으로 하산을 했겠으나, 이번엔 자전거를 세워 둔 곳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관계로 부득이 방향을 돌려서 배봉산 능선을 1왕복했다. 이렇게 하는 데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사실, 배봉산은 남쪽의 횡축 도로인 사가정로(전농동사거리 동쪽)의 남쪽으로도 계속 이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는 그렇잖아도 경사가 굉장히 급한 언덕길이다. 사가정로의 남쪽에 계속 이어지는 언덕엔 아파트도 있지만 또 '답십리 공원'이 조성돼 있다. 낮은 배봉산보다도 더욱 낮은 언덕이지만 인근 주민이 부담 없이 운동과 산책을 하기에는 아주 좋은 장소이다.

본인은 여기 일대에 있는 운동 장소로는 그냥 청계천, 중랑천, 한강 주변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물뿐만 아니라 고지대에도 애착이 간다. 이런 데에 돗자리 깔고 누워서 잠도 자고 싶은데 여름 밤에는 모기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2. 백련산

이 산은 인왕산과 안산만치 유명하지는 않으며 정상의 높이도 이들보다 낮지만, 어쨌든 이들보다 더 서쪽에 은평구와 서대문구에 걸쳐 있는 산이다.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종단하는 거리는 대략 2km 정도 된다.

지도를 보니 산기슭에는 '백련사길'이라는 도로가 있고, 그 길가엔 백련사 방문객과 백련산 등산객이 무료로 이용 가능한 주차장이 있었다. 안 그래도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힘들게 생겼던데 주차장이라니? 마이 프레셔스!
학교 갈 일이 있을 때 곧장 차를 끌고 갔다 왔다. 새벽에 여기 등산을 한 뒤 학교로 가면 동선이 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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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세워 놓은 뒤 '팔각정'이라는 정자 겸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에서 계단을 쭉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에만 팔각정이 있는 게 아니라 등산로 입구에도 있다. 계단을 다 오르자 위와 같은 능선 산책로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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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운동 시설과 웬 송전탑 같은 시설도 있었다. 그것들을 지나친 뒤, 총 약 1km 정도 걷자 '은평정'이라는 정자가 나타났다.
여기가 백련산의 실질적인 정상이지만 정상 표지석 같은 건 없다. 그런 걸 세우기에는 너무 낮은 산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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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걸 내려다볼 수 있다.
인왕산이 보이는 동쪽으로는 막 해가 뜨는 시간대여서 사진을 남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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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정을 지난 뒤에도 북동쪽으로 산행을 계속했다.
중간에 갈림길이 나타났는데, 여기서는 왼쪽이 아닌 오른쪽을 선택했다. 오른쪽은 북한산 자락으로 길이 계속 이어지는 반면, 왼쪽은 그대로 하산하면서 산행이 끝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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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도가 충분히 낮아졌는지 아파트와 시멘트로 포장된 길, 그리고 근린공원이 눈에 띄었다. 거길 지나자 지금까지 못 보던 암반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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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산은 전망대라고는 정상의 은평정밖에 없는가 싶었는데 요런 곳이 하나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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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무로 된 계단을 따라 계속 하강하자.. 결국은 서울 지하철 3호선이 지나는 '통일로' 도로에 도달했다.
녹번 역과 홍제 역의 사이(그래도 녹번에 훨씬 더 가까움), 서대문구와 은평구의 경계쯤 되는 지점에 이렇게 큰 다리가 있어서 백련산과 북한산 자락을 연결하고 있었다.

체력과 날씨, 시간이 허락한다면 저 다리를 건너서 등산을 계속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산행은 여느 때와는 달리 몸만 달랑 온 게 아니니 발 닿는 대로 계속 편도 경로로 이동할 수 없었다.
이제는 지금까지 온 길의 정확한 역순으로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차례였다. 은평정에서 여기까지도 또 1km가 넘었던 듯하니 편도 거리가 약 2.몇 km. 그래서 왕복으로 대략 5km 가까이를 걸었다. 시간은 2시간이 좀 덜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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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미션을 완수하고 출발지로 돌아왔다. 새벽에 갓 도착했을 때와는 달리 주변은 온통 주차된 차들로 가득했다.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큰일 났겠다. "일찍 움직이는 운전자가 주차 자리를 차지한다"라는 말이 진리임을 알 수 있었다.
차가 없었으면 또 세월아 네월아 마을 버스를 기다리고 근처의 지하철역에서 또 환승을 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다음 목적지인 학교로 아주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26 08:35 2016/07/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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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남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서울의 너무 중심에 있는 바람에 지금까지 등산 대상에서 아오안이었던 산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남산. 물론, 옛날 그 사대문의 안 좁디좁은 한양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남쪽이라는 얘기다.
서울 남산이라 하면 케이블카와 거대한 타워가 상징이지만, 그것 말고도 남산 일대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참 많이도 변해 왔다. 과거에 여기 일대는 한양 도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예 수련을 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는 '조선신궁'이라는 커다란 신사가 여기 기슭에 만들어졌다.

해방 후에 신사는 당연히 곧장 철거됐다. 그 뒤, 이 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박통이 들어선 1961년부터는 남산에 잘 알다시피 코렁탕 시설인 중앙정보부 청사가 들어섰다. "남산에서 왔습니다."란 말만 들어도 사람들이 벌벌 떨 지경이었대나. 이북에서 온 간첩만 벌벌 떨어야 하는데 무고한 시민들까지 떨었다는 게 문제다.

여기서 잠시 설명충 기질을 발휘하자면,
남산은 바로 지금으로부터 20년쯤 전인 1995년까지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와 중앙정보부가 있던 곳이었다.
그 반면 남영동 대공분실은 치안 본부, 즉 오늘날의 경찰청 관할이다.
그리고 서빙고 대공분실은 군 소속이었다. 국군 보안 사령부, 지금의 기무 사령부 관할이다.
그러니 똑같이 코렁탕을 제조하는 곳이어도 소속이 제각기 모두 달랐다.

공 병우 박사는 세벌식 글자판을 주장하다가 정부 정책을 건방지게 비판하는 죄로 1970년대에 중정 요원에게 연행되어 남산 구경을 하고 온 적이 있다. 그것 말고도 중정과 안기부의 흑역사는 많다.
5공 시절에 김 근태, 박 종철 같은 사람이 고문을 당한 곳은 남영동 대공분실이며, 이 근안 역시 경찰 출신이니 여기서 활동했었다.
그럼 박통을 암살한 김 재규는? 10. 26 사태의 수사권이 아무래도 전땅크 아래의 보안 사령부에 있었던 관계로, 그는 서빙고로 끌려가서 자기 옛 부하들에게 고문을 당했다.

그래도 신사는 전부 공원(특히 안 중근 의사 기념관. 중앙 기준 10시 방향)으로 바뀌었으며, 과거의 중정/안기부 건물은 다 유스호스텔, 방재 센터 등 다른 평범한 건물로 개조됐다(11~12시 북쪽 방향). 남산 기슭은 그린벨트 지대인지라 이미 만들어진 건물을 철거를 하면 했지 더 증· 개축은 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김 영삼 정권 때는 조선 총독부 청사만 헐린 게 아니라 남산의 외관을 가리던 외인 아파트도 폭파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는 지금 식물원이 조성돼 있다. (5시 남쪽 방향)

그러니 지금은 과거에 비해 남산이 그나마 자연 본연의 모습을 정말 많이 되찾은 셈이다.
사실, 남산은 본격적인 산행의 대상이 되기에는 시내와 너무 가깝고, 산 높이도 너무 낮은 관계로 진작부터 관광지 내지 공원 컨셉으로 꾸며져 왔다. 그래서 타워가 있는 정상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도 전국에서 최초로 생겼다. 정상에 도달해도 "남산 무슨봉 해발 262m" 이런 표지석 같은 건 없다.
뭐, 단순 관광객들은 케이블카나 관광버스를 타고 올라가겠지만, 여기도 도보로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 코스가 없는 건 아니다.

본인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남산을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었다. 교회 친구들과 함께 주일 저녁에 남산 근처까지 차를 몰고 간 적은 있었지만 거기를 제대로 구경하지는 못했으며 케이블카도 못 타 봤다. 그래서 이 기회에 운동삼아 남산을 걸어서 올라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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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선 회현 역에서 내려서 남산 쪽을 향해 골목길을 오르니 남산 공원 입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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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공원은 경치가 좋고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공원과 산이 있다니,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공원에는 독립 운동가 김 구와 안 중근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넓은 공터는 이름부터가 '백범 광장'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쪽에는 안 중근 의사의 어록이 새겨진 바위들이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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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 시민의 숲 근처에는 윤 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더니 여기에는 안 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었다. 기념관 자체는 1970년대부터 있었지만, 지금의 세련된 건물로 새로 만들어진 건 2010년대의 일이라고 한다.

안 중근 의사는 뜻을 결의하면서 왼손 약지의 앞단을 절단한 행적이 워낙 임팩트가 강한지라, 안 중근 하면 그 "대한국인 손바닥" 그림이 상징처럼 따라다닌다. 그나마 열 손가락 중에서 제일 덜 중요한 부위이니까.
이분은 무예에만 강한 게 아니라 글씨도 잘 쓰고 사상적인 배경도 무척 심오했다. 처음부터 요인 암살 같은 과격한 방법을 선택한 게 아니라, 이거 정말 좋게 가지고는 씨알도 안 먹히고 동양의 평화가 이뤄질 수가 없어 보이니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이다.

기념관에는 안 의사의 생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던 당시의 상황, 고인이 사용한 권총 등 어지간한 자료는 다 전시돼 있다.
사소한 사실이다만, 안 의사는 교수형을 당해서 순국했다. 총살을 당한 건 윤 봉길이니 혼동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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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서울 타워(N타워?)가 보이는 쪽으로 계속 전진했다. 옆에는 가림막을 치고 성벽을 다시 만드는지 뭔 공사가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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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은 이런 식으로 쭉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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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한복판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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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계단을 오른 끝에 드디어 정상 도착. 적당한 아침에 도착하니 타워 주변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엄청 많았다.
맨 먼저 봉수대가 보이기에 등산 인증샷은 봉수대에서 저렇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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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를 가까이에서 올려다보면서 기념 촬영. 그리고 건너편 봉우리엔 정체를 알 수 없는 탑이 있어서 또 사진을 찍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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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은 동쪽으로 버스들이 내려가는 방향으로 했다. 남산은 타워가 있는 정상까지 포장된 차도가 있긴 하지만 일단 관광버스나 노선버스 전용이다. 아무나 자가용을 끌고 올라갈 수는 없다. 차라리 엔진 없는 자전거는 허용된다.
어쨌든, 이 차도에서 또 도보 등산로가 갈라져 나가는 곳이 있어서 본인은 응당 그쪽으로 경로를 바꿨다. 역시 남산에도 돌계단뿐만 아니라 더 자연 친화적인(?) 등산로가 있었다.

하산을 계속하니 등산로는 아스팔트 도로와 합류했으며, 본인은 결국 국립 극장이 있는 쪽으로 나와서 장충단로라는 큰길에 이르렀다. 그리고 길 바로 건너편에는 '한국 자유 총연맹' 본부가 있었다. 남산 공원에는 김 구 동상이 있더니, 자유 총연맹 내부에는 이 승만 동상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동대입구 지하철역까지는 좀 멀 것 같아서 버스를 타고 싶었으나.. 버스 승강장을 찾지 못해서 결국 그 거리를 다 걸어서 갔다. 3· 1 운동 기념탑, 유 관순 열사 동상, 제2 남산 터널을 몽땅 구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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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국민대, 성균관대), 안산(연세대)처럼 어째 대학교 구경과 함께 등산이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번에는 동국대 차례가 됐다.

단, 이번 산행에서는 남산을 동서 위주로 횡단하다 보니 남북으로는 상대적으로 충분히 구경하지 못했다.
남쪽의 식물원이라든가 북쪽의 남산골 공원, 타임캡슐 광장 같은 건 못 봤다.
금수저를 위한 초등학교라고 옛날부터 유명하던 '리라 초등학교'도 남산 북쪽 기슭에 있다. 대성동 초등학교만큼이나 특이한 학교인 걸로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18 19:32 2016/07/1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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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답사기: 우면산

본인이 지금까지 올랐던 산들 중에 대모산· 구룡산은 거의 유일하게 서울 강남구 지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로부터 1년 반쯤 뒤, 최근에 본인은 그보다 서쪽으로 서초구 지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우면산을 올랐다.
우면산은 왼쪽으로는 남태령 고개를 경계로 관악산을 마주 보는 형태이며, 한편으로 동쪽으로는 경부 고속도로의 건설로 인해 말단의 언덕이 살짝 둘로 쪼개져 있기도 하다. 그 쪼개진 지역에는 서울 인재 개발원과 양재 자동차 학원이 자리잡고 있다.

군사 시설 보안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대모산· 구룡산은 남쪽 건너편 기슭에 유명한 코렁 시설이 있기 때문에 남북 종단 횡단을 할 수 없다. 건너편은 철조망이 둘러져서 완전히 막혀 있다.
우면산은 그렇지는 않고 제한적으로나마 종단 등산로가 있다. 그 대신 얘는 꼭대기에 공군 부대가 있고, 남쪽에서는 공군 부대까지 올라가는 자동차 도로가 닦여 있다. 그 외에 이 산은 웬 과거 지뢰 매설 지역 출입 금지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대모산· 구룡산의 아래로는 구룡 터널이 있어서 분당-내곡 고속화도로의 일부 구간이다.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예술의 전당과 우면산의 아래로는 '우면산 터널'이 뚫려 있으며 이 도로는 과천으로 향한다. 우면산 터널은 유료 도로이다.

이들 산의 남쪽 기슭도 행정구역상으로는 아직 서울이다. 하지만 거기는 아무래도 서울 시내와는 떨어진 외곽이고 전원마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다만, 경부 고속도로에 인접해 있는 우면산의 남쪽 기슭에는 KT나 LG 같은 기업의 연구소가 있고 한국 교육 개발원(옛날에 탐구생활을 출간한 기관..;;)도 있어서 '우면동'이라 하면 왠지 지적인 냄새가 풍긴다. 게다가 지금은 거기 일대에 삼성 전자 연구소도 지어지고 있다.

서론이 좀 길어졌는데, 우면산은 이런 특징을 가진 산이다. 등산로는 남부터미널 역에서 내린 뒤 예술의 전당 근처에서 아주 쉽게 접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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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을 오르는 첫 구간은 느낌이 이러했다. 벌써부터 철조망이 등장하는데, 이건 서울특별시 인재 개발원과의 영역 구분을 위해 쳐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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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길엔 서초구민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돈을 후원해서 만든 계단도 있었고, 위의 사진처럼 널찍한 공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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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 역시 울창한 숲이 잘 꾸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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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객이 접근 가능한 우면산의 실질적인 정상인 소망봉 '소망탑'에 도달했다. 여기는 예술의 전당이 발밑에 딱 내려다보이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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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는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있었다. 강남에서 바라본 경치 하나는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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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을 당기니, 저 멀리 남산과 북한산까지 보인다.

소망봉에 도달한 뒤부터가 문제였다.
꼭대기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서남쪽으로, 이왕이면 선바위 역 근처의 전원마을로 하산하고 싶었으나 그 길은 이제 "과거 지뢰 매설 지대 위험"이라는 명목으로 막혀 있었다.
이제부터 서쪽으로 가려면 도로 하강하여 꼭대기와는 거리를 두고 산중턱의 능선을 따라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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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의 왼쪽을 돌아보면 가끔씩 이런 골짜기 같은 게 보였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길은 반쯤은 지뢰 때문에, 반쯤은 군부대 때문에 저렇게 몇 겹씩 철조망이 쳐진 채 막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참을 간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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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찍은 본인의 등 뒤에는 공군 군부대가 있다. 말로만 듣던 자동차 도로도 발견했다. 등산로가 이렇게 연결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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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에서 바라본 건너편 관악산. 관악산은 남산에 있던 각종 전국구 전파 송신 시설들이 모두 이전한 관계로 꼭대기에 저런 케이블들이 있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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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길을 따라 끝없이 하산을 계속했다. 차도 주변에도 도보 등산로로 빠지는 샛길이 한두 군데 정도 있는 듯했으나 본인이 현장에 있을 때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 표지판도 없는데 그런 걸 어떻게 찾아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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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내려가니 송동 마을에 도달했다. 차도의 선형의 특성상 과천 쪽으로 서쪽으로 뻗어 가지 못하고 어중간한 지점에 도달하게 됐지만, 그래도 꿩 대신 닭을 얻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산에 없는 우면산의 고유한 캐릭터는.. 5년 전에 발생한 대형 산사태의 흔적이다. 산사태 피해 복구 공사 알림 표지판과 '급경사지 붕괴 위험 지역' 표지판이 보였다.

이렇게 등산을 마친 뒤, 양재대로(국도 47호선) 큰길까지 나왔다. 거기서 선바위 역까지는 버스로 이동한 뒤 귀가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16 08:29 2016/07/1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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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부의 광진· 중랑구와 구리시 사이에는 '아차산'이라는 산이 있다. 여기는 북한산이나 청계산 계열이 아니면서 제법 규모가 있는 산이며, 적당한 암반과 숲에다 한강을 포함해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경치도 훌륭해서 등산 경험이 아주 좋았다. 산 중에는 한번 등산을 시작하면 온통 나무들에 파묻혀서 정상이나 몇몇 전망대를 빼면 아래 경치를 거의 볼 수 없는 것들도 많은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서울의 산 하면 흔히 조선 시대스러운 한양 도성만 떠올리기 쉬우나, 이 산 일대엔 고구려 시대의 유적들이 이례적으로 발견되는 것도 이 산만의 고유한 개성이다.

아차산은 5호선 아차산-광나루 역 일대에서 접근하여 남쪽으로부터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서쪽에는 살짝 더 높은 봉우리가 있어서 이건 용마산이라고 따로 불린다. 이 산은 7호선 중곡-용마산 역에서 접근 가능하다. 두 산 모두 지하철역의 이름으로 당당히 쓰이고 있다.
두 산의 정상은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꼭대기 능선은 북쪽으로 무려 국도 6호선 도로 근처까지 꽤 길게 이어지는데, 여기에 있는 해발 280m 남짓한 봉우리를 '망우산'이라고도 부른다. 망우산 일대는 온통 망우리 공동묘지로 조성되어 있다.

본인은 옛날에 회사 사람들과 함께 아차산과 용마산을 오른 적이 있다. 하지만 대원 외국어 고등학교 일대에서 하산해 버렸지 북쪽을 더 탐험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차산은 제끼고 처음부터 용마산을 오른 뒤, 더 북쪽 망우산 구간을 탐험하겠다는 생각으로 중곡 역 일대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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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는 이미 가파른 비탈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용마산로30길 주변엔 빌라들이 가득했다.
등산로 옆에는 웬일로 주차장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나 차를 가져올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고 거주자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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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숲길은 어느 산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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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를 내려다본 모습은 이러했다. 등산 당시는 이른 아침이고 아주 흐린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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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비탈길을 오르고 또 올라서 정상에 도착했다. 중간에 밧줄을 붙잡고 암반을 올라야 하는 곳이 있었으며, 정상에 도달하기 전에 정자와 전망대가 나오기도 했다.
지금 여기서는 사진 첨부를 생략하지만 정상 주변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단, 끝부분이 많이 해져서 교체할 때가 된 상태였다.
안 그래도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했는데 저 정상 인증샷을 찍자마자 정확히 그 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본인은 비를 피하러 허겁지겁 내려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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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에 있을 때는 빗방울 소리가 무척 크게 들렸지만, 정작 밖에 나가 보니 이 정도 비는 그럭저럭 맞을 만했다. 그래서 원래 가려고 하던 곳을 다 가기로 결심하고 북쪽의 망우리 공동묘지 방면으로 이동을 계속했다. 중간에 하산해서 용마 폭포 공원, 사가정 공원 같은 곳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중간에 헬리포트를 두 곳 지났다. 그나저나 이 산엔 헬리포트 말고도 고구려 시절의 흔적이라고 무슨 '보루'라는 군사 시설이 놓여 있었다. 현대에 북한군의 침략에 대비해서 만들어진 군사 시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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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로 아차산 정상이 보인다. 아차산의 정상에는 저렇게 풀밭 평지가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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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산을 처음 오를 때와는 달리 여기서부터는 서쪽 서울 방면이 아니라 동쪽 한강과 구리 방면의 경치가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비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날 혼자 산에 있으면 시원하고 운치 있고 좋긴 하지만, 그래도 산 아래의 경치 사진을 포기해야 하는 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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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서울 둘레길이 나와서 약간 넓은 시멘트길이 시작됐다. 이 길만 따라 쭈욱 가면 망우리 공원으로 가게 되는데, 본인은 망우산의 봉우리를 오르고 싶고 최대한 동쪽으로 가서 하산하고 싶었던지라, 중간에 갈림길이 나왔을 때 길을 오른쪽으로 갈아탔다. 그래서 다시 비포장 흙길이 시작됐다.
분기점은 용마 터널을 지나서 아마 서일 대학교과 비슷한 위도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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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다가는 묘지 사진은 대표로 이거 하나만 올리도록 하겠다.
망우산 제1보루를 통과하고 나니 서울 둘레길이 아닌 망우리 공동묘지 내부의 순환 도로가 나타났다. 엔진이 달린 교통수단은 못 다니고 자전거 통행까지만 가능한 1차로 정도 폭의 포장 도로이다. 그리고 그 사이엔 역시나 망우산의 깊숙한 봉우리로 더 들어서는 샛길이 있었다.

망우산이 왜 이렇게 인지도가 없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묘지의 규모가 생각보다 꽤 크다..;; 그렇다고 해서 등산로가 없다거나 일반 등산객은 출입할 수 없다거나 한 건 아니다.
또한 여기는 한 용운, 방 정환 등 20세기의 주요 인물들도 많이 묻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표지판의 설명만으로는 여기가 정확하게 어디이고 그런 분들의 묘지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본인은 순환 도로를 벗어나서 망우산 탐험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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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산에는 보루가 세 곳이 있다고 한다. 이제 북쪽으로는 충분히 이동했고, 본인은 어떻게든 망우산을 가로질러 구리 쪽으로 가 보려고 순환 도로를 이탈하여 보루 세 곳을 모두 통과했다. 중간에 이렇게 망우산 정상임을 나타내는 표식과 돌무더기가 달랑 놓여 있었다. 그 뒤로는 내리막이 이어졌다.

한참을 이동한 뒤에는 다시 묘지 내부 순환 도로가 나타났으며, 최종적으로 본인은 망우리 공동묘지 입구 + 국도 6호선 구간으로 하산했다. 동쪽 건너편 구리시의 전원마을 쪽으로 하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일단 묘지 구간에 들어서 버리자 묘지의 정식 출입구가 아닌 다른 등산로를 찾기란 대단히 어려웠다.

이렇게 그래도 순수 아차산 구간만 빼고 용마산과 망우산 일대를 몽땅 종단하는 데 성공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서울 시내와 상당히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딱히 조선 시대나 현대의 군사 안보와 관련된 느낌이 별로 안 느껴지는 산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Posted by 사무엘

2016/07/06 19:22 2016/07/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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