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중부에서 동쪽 북부까지 늘어선 산들을 살펴보면 북악산 - 북한산 - 도봉산의 순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쯤만 해도 본인은 북악산과 북한산의 차이도 몰랐는데 등산 많이 하면서 서울 지리 지식이 참 많이 늘었다. 북한산과 도봉산의 사이에 있는 것이 '우이령 고갯길'이며 본인은 거기도 갔다 와 봤다.

북한산은 서울 주변의 여러 산들과 비교했을 때 워낙 거대하고 등산로가 많은 산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난번에 갔던 정릉-백운대-우이동보다 더 서쪽으로 가서 형제봉· 문수봉 일대를 오른 뒤, 평창· 구기동 일대로 하산하는 경로를 짜서 북한산을 올랐다.

본인은 예전에 북악산을 북동쪽으로 종단해서 국민 대학교 방면으로 하산한 적이 있었다. 계속해서 북한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근처에 존재한다는 것까지는 그 당시 확인했지만, 시간과 체력 문제 때문에 더 진행하지 않고 귀가했었다.
그때 더 가지 못했던 길을 이제야 다시 찾아가서 개척하게 됐다. 지하철 길음 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국민 대학교로 러쉬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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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가 대중적으로는 홍대만큼이나 미대가 유명한 걸로 본인은 알고 있다. 뭐, 주변에 애들 놀 곳이 차고 넘치는 홍대에 비해, 북악산과 북한산 사이의 산기슭에 자리잡은 국민대는 위치와 분위기 차이가 많이 나긴 한다. 국민대는 놀기 좋은 위치가 아니라 등산 가기 참 좋은 위치에 있다.

그리고 본인 개인에게 국민대의 인지도는 강 승식 교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어 형태소 분석기를 연구· 개발하고 있는 컴퓨터공학과 교수여서 말이다. 아,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만나 보고 아는 사이는 아님.
2010년대부터는 U-tagger라는 걸출한 작품 때문에 울산대가 국어 정보처리 경진대회에서 상을 연달아 휩쓸기도 하면서 이 바닥의 막강한 경쟁자로 등극해 있긴 하다. 거기는 주 개발자인 박사 출신 학생은 들어 봤지만 교수님은 누군지 잘 모르겠다.

이런 잡생각을 하다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온다. 국민대 정문을 지나서 더 북쪽으로 가면 사진과 같은 터널이 보이며, 사진 기준 오른쪽에 공터와 함께 등산로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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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몇 차례 언급했듯, 북한산은 평범한 산이 아니라 국립공원이다. 그래서 입구에 이런 간단한 초소가 있고 밤에 '통금'도 존재한다. 하지만 저 초소는 안이 잠겨 있고 근무자는 없었다.

국민대 근처에 있는 등산로 출입구의 명칭은 '북악공원 지킴터'이다. 여느 등산로 입구처럼 '탐방 지원 센터'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는 않다. 아마 '탐방 지원 센터'보다는 더 간소화된(?) 시설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바로 옆에 대학교가 있다 보니..;; 네임드급 산의 등산로 출입구라고 해서 식당과 등산용품 매점이 즐비하다거나 하지는 않은 것도 이색적이었다.

아, 등산 당시의 개인 근황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을 지금까지 얘기를 안 했구나.
본인은 지금까지 거의 모든 등산을 꼭두새벽이나 그에 준하는 매우 이른 아침에 해 왔다. 조금이라도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등산은 점심 시간이 지난 오후 2시 무렵에 시작했다. 그 이유는 이 등산은 평범한 정규 스케줄에 근거해서 진행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4년 반이 넘게 아무 탈 없이 잘 썼던 맥북이 아무 징후도 없다가 하드디스크 케이블의 노후화로 인한 인식 + 부팅 불가라는 중대한 기능 고장을 최초로 일으켰다. 교체 부품을 주문해서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당일 즉시 수리는 안 되었으며, 컴을 얄짤없이 며칠 맡겨야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애플 공인 서비스센터는 무슨 삼성이나 LG전자 서비스센터처럼 곳곳에 많이 있지 않다. 회사와 가까운 분당 소재의 센터들은 아이폰만 취급하지 컴퓨터의 수리는 되지 않아서 서울 센터들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며칠간 날개셋 코딩은 어차피 못 할 텐데, 맥북 없이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그 동안 몰아서 미리 처리하는 쪽으로 개인 스케줄을 재조정했다. 그래서 오전에 서비스센터를 들렀던 당일의 오후에 등산을 급히 가게 된 것이다. 본인은 노트북 PC의 고장에 대비해서 이런 식으로 시간 손실을 최소화하는 Plan B 전략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이 날은 낮 기온도 10도가 안 될 정도로 매우 추웠던 덕분에 한낮에도 무더위 걱정 없이 높은 산의 등산이 가능했다. 단지, 낮이 매우 짧아져 있어서 등산 시간에 제약이 심했던 게 아쉽다. 오후 2시도 정말 아슬아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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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공원 지킴터'의 등산로는 이런 모양으로 시작되었다. 오르막이 계속됐다.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마지막으로 등산을 갔을 때보다 단풍은 더욱 진행돼 있었다.
나중에 갈림길이 몇 번 나왔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북악산이나 정릉 탐방 지원 센터 방면으로 빠지지 않게 주의했다. 나의 목표는 '형제봉 + 대성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기에는 심곡사· 영불사라는 절을 찾아가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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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특유의 울타리 쳐진 흙길과 문명화(?)의 흔적은 영불사까지가 끝이었다. 그 뒤부터는 여느 산처럼 숲이 우거지고 비좁고 가파른 산길 산행이 시작됐다. 해발 287m에, 대성문까지 약 2.5km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난 지 얼마 안 됐다.

여기서 능선에 도달할 때까지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었다. 전망대나 계곡이나 특이한 자연· 인공물 같은 거 없고, 묵묵히 산을 오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중간에 형제봉에 근접했으며 거기로 가는 갈림길도 있었지만 본인이 못 보고 그냥 지나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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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일말의 전망대 비슷한 바위가 나왔다. 여기서는 전망이 훤히 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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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울타리 쳐진 흙길이 나왔다. 여기는 벤치 하나 없고 전망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공간이 굉장히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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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더 올라간 뒤에야.. 드디어 첫 목적지인 북한산성 대성문에 잘 도달했다.
예전에 정릉에서 북한산을 올랐을 때는 보국문에 도달한 뒤 동쪽의 대동문 쪽으로 갔다. 이번에는 보국문의 서쪽인 대성문에 도달한 뒤, 또 서쪽의 대남문으로 갔다. 여기 고도는 이미 620m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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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대동과는 달리 대성-대남은 거리가 무척 짧은 편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잠시 하강만 하면 곧 대남문이며, 성곽 전방의 저 봉우리는 그 이름도 유명한 문수봉 정상이다.
허나, 등산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시간상의 한계(이미 오후 3시가 다 돼 감), 그리고 어차피 성곽을 따라 그대로 오르지도 못한다는 이유(안전상의 문제로 우회 등산로 이용) 때문에 본인은 문수봉은 가지 않았다. 그냥 이 사진만으로 만족한 뒤, 대남문에서 하산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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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대남문이다. 벌써부터 태양의 고도가 극도로 낮아지는(= 날이 저묾) 게 티가 난다. 이러면 찍은 사진의 색감과 명도· 채도도 별로 안 좋고 특히 역광은 감당할 수가 없어서 풍경 사진 남기는 데는 큰 악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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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문에서 구기동 방면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저기까지도 대략 2.5km 정도라고 한다. 처음에는 통나무 계단이 있었지만 그게 끝난 뒤부터는 흙길이 아니라 돌길이 굉장히 길게 지겹도록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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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길은 언제부턴가 계곡으로 바뀌었다(구기 계곡). 산 중턱에는 계곡을 건너는 다리도 몇 개 있었지만 물은 바짝 말랐거나 고인 웅덩이 형태로만 있었다. 하지만 아래로 계속 내려가자 그래도 나름 흐르는 맑은 물이 몇 군데 있었다.
해수욕장뿐만 아니라 이런 계곡에서 물놀이 하는 것도 좋다. 물론 국립공원들은 계곡이 죄다 민간인 출입 금지이기 때문에 저것들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추워서 콧물이 나고 손이 시려운 지경인데도 본인은 물놀이 생각을 하면서 산을 내려갔다. 몸은 별로 안 추운데 손가락 같은 말단은 어쩔 수 없이 추위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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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 탐방 지원 센터를 지나서 드디어 하산을 마쳤다. 서울 종로구 산기슭 그린벨트 지대에 이렇게 땅밟기를 하게 됐다. 여기엔 정치인들이 많이 산다는데...

버스가 다닐 정도의 큰길에 도달하니 '현대'라는 이름이 붙은 아파트도 아니고 3층짜리 벽돌 빌라가 있었다. 이건 물론 고도 제한 때문에 건물을 저렇게 지은 것이지 싶다.
지도를 보니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이북 5도청'이 여기서 불과 몇백 m, 버스 한두 정거장 남짓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5km가 넘는 산길을 다니고 와서 다리에 근육통을 호소하는 상태에서 선뜻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또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풍경 사진을 찍기에는 이미 날이 많이 춥고 어두워져 있었다.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귀가했다. 이북 5도청을 일부러 안 찾아가고 하산길에 자연스럽게 구경하려면 구기보다 더 서쪽의 비봉 탐방 지원 센터 방면으로 하산했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구기 터널과도 꽤 가까이 있었다. 거기를 지나면 이미 지하철 3호선과 6호선이 나오는 은평구가 나온다.

이북 5도청을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한국 고전 번역원은 버스 차창 밖으로 잠시 구경했다. 조선 왕조 실록은 전산화와 번역이 완료됐지만 그보다 분량이 더 방대하고 디테일한 승정원 일기는 여전히 완역이 요원한 상태라고 한다.
한편, 북한산은 비록 서울 북부의 확장을 가로막는 지형 장애물이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나름 군사· 안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또 시민들에게 굉장히 좋은 휴식처 역할도 한다는 게 느껴졌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 (, 그리고 낙산)에 있던 성곽은 한양도성이다. 그러나 북한산에 있는 성곽은 북한산성이며 성남 쪽의 산엔 잘 알다시피 남한산성도 있다.
남한산성 일대는 6· 25 때 부산이 그랬고 고려 시대 때 강화도가 그랬던 것처럼 유사시에 임시 수도 역할을 할 수 있게 행궁이 있다. 저긴 워낙 천혜의 요새이기 때문에... 실제로 병자호란이 치러졌으며 지금은 도로가 닦여서 안에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고 심지어 마을버스까지 다닌다.

그 반면 북한산성은 발로 힘들게 등산을 하지 않으면 접근할 방법이 없으며, 군사 목적으로 건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여기서 전쟁을 치른 내력이 없다.
그러니 북한산성은 접근성이 좋은 한양도성과, 역사 내력과 유적이 풍부한 남한산성에 밀려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없는 것 같다. 남한산성과 비교했을 때 마치 북극과 남극, 그리고 지구형 행성과 가스형 행성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또한, 남한산성은 거기 유적지 일대만 도립공원인 반면, 북한산성은 그냥 산 전체가 통째로 국립공원이니 격이 차이가 있다. 뭐, 유적지 때문이 아니라 자연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7/02/12 08:36 2017/02/1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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