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서울 북부의 산행은 지난번의 북한산, 그리고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락산· 불암산 정도가 전부였던 것 같다. 북악산은 북부라고 치기에는 생각보다 '덜' 북쪽이고.
수락산은 지하철 접근성이 좋으며 나름 두 번이나 다녀온 적이 있지만(각각 수락산, 당고개에서 출발), 그때는 산들의 특성 내지 등산 계획 수립 요령에 대해 지금 같은 지식과 노하우를 갖추지 못한 초창기였다. 그래서 정상까지는 안/못 가고 모두 중턱에서 내려왔다. 그때는 둘레길과 등산로의 차이도 모르던 정말 초짜 시절이었다.
가을은 날씨가 안 덥고 산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시기이니 가히 등산의 계절이라 할 만하다. 매니아들 중엔 아예 날 잡아서 멀리 지리산, 설악산 등으로 원정 가는 사람도 있다. 등산이 마냥 중장년 아재들의 전유물 취미이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가끔 보면 내 또래의 젊은 사람, 심지어 여자분도 있다.
이런 와중에 본인은 삼성산 다음으로는 지금까지 의외의 미개척 상태였던 도봉산을 다녀왔다.
도봉산은 북한산의 이웃에 있는 별도의 산이지만, 여기도 여전히 북한산 국립공원의 일부이다. 그래서 북한산처럼 시설이 잘 돼 있으며 경치도 매우 아름답다. 그 대신 입산 시간대가 제한되며,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거나 허용 등산로를 이탈해서 다니다 걸리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런 점에서 도봉산은 건너편의 수락산과는 급이 좀 다르다.
도봉산이 같은 국립공원인 북한산과 다른 점으로는 성곽이나 무덤 같은 건 없고 사찰이 더 많이 있으며, 전철 접근성이 훨씬 더 좋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기는 지리적으로 서울의 북쪽 끝인 관계로 근처에 근처에 시내버스 차고지가 있음과 동시에 지하철도 잘 알다시피 7호선의 종점과 도봉 차량 기지가 있다.
도봉산 역은 강릉의 정동진과 위도가 거의 같은 걸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상 철도 2개가 평행하게 만나는 관계로 이 역은 그냥 1호선 역과 7호선 역 두 채가 나란히 놓인 형태이다.
철덕으로서 지하철 답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등산을 위해서 도봉산 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역의 동쪽에는 '서울 창포원'이라는 야외 식물원이 있다. 반대로 국도 3호선을 횡단하여 서쪽으로 1km 남짓 걸어가면 국립공원 출입구가 나오고 등산로가 시작된다.
처음에 '도봉 탐방 지원 센터'가 나오고 그 다음 '북한산 국립공원 도봉 분소'에서 길이 본격적으로 갈린다. 북한산 둘레길도 있고 도봉산 등산로도 두 군데가 존재하는데, 본인은 은석암 방면으로 등산해서 도봉 대피소+도봉 계곡 방면으로 하산했다.
오르는 길은 여느 산과 다를 바 없었다. 이렇게 한참 산을 오르다가 커다란 바위가 나오기도 하고, 하늘이 간간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 말고 하산길이 국립공원답게 훨씬 더 잘 닦여 있었다.
은석암은 말 그대로 암반이기 때문에 손으로 줄을 잡고 바위를 올라야 했다.
중턱쯤에 도달하자 시야가 탁 트이고 산 아래가 그럭저럭 보이기 시작했다. 도봉산 전철역이 보이고, 저 멀리 도봉 차량 기지도 보였다. 주변의 외곽 순환 고속도로와 이웃의 수락산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음.
망월사는 아닐 테고 아마 천축사가 아닌가 추정되는데.. 산 속 저 높은 곳에 저렇게 절이 하나 떡 놓여 있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눈에 들어온 풍경이 가히 장관이었다. 그에 반해 여백이 부족한 건.. 아니고 카메라가 시야각과 색감이 부족하다.
본인은 뺑 돌아서 한참을 더 걸은 끝에 저 절이 있는 봉우리까지 가게 됐다.
드디어 커다란 봉우리 등장~! 그 뒤 등산 난이도도 덩달아 올라갔다.
장갑을 안 가져갔는데 로프를 잡은 손 내지 발을 딛고 있는 신발 바닥이 미끄러지면 어떡하나 겁이 나는 상황이 몇 번 있었다. 실제로 도봉산은 가까운 과거에 인명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는 산이다.
아침에서 낮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인제 하늘이 좀 파래졌다.
도봉산은 여러 개의 바위 봉우리들이 제각각 정상을 구성하고 있으며, 다른 산들과는 달리 봉우리 위에 딱히 정상 표지석이나 국기 같은 건 없었다. 최고봉을 등반 가능한 건 아니며, 등산객이 접근 가능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신선대였다. 군사 시설 때문이 아니라 그냥 안전 때문에 최고봉에 못 가는 산이다.
신선대의 바로 옆에도 이런 돌무더기가 있었는데.. 크기를 짐작케 할 만한 레퍼런스가 없다시피하구나. 옆의 나무들을 보고 짐작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주변에도 온통 높은 산과 봉우리들이 가득했다.
나의 당초 계획은 오봉도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양주나 못해도 송추· 의정부 방면으로, 산을 횡단하여 서울에서 더 먼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삼성산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정작 정상에 도달하고 나니 지도의 묘사와 지금 위치가 씽크가 되질 않았다.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어서 길이 있는 곳으로만 내려가니까 결국은 서울 방면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단풍으로 물든 숲은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여기가 내가 올랐던 길보다 단풍이 더 든 것 같았다. 그리고 산 기슭보다 중턱이 붉은색이 더 짙어져 있었다.
북한산에서 봤던 계곡이 여기에도 있었으며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정오에 근접하자 이제야 이쪽으로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이 보였다.
도봉산에 대한 종합적인 평을 하자면 등산 시설을 제외한 인공물이 매우 드물고, 북한산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산 같다. 북한산은 어느 등산로든 지하철만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워서 버스가 필요한 반면, 도봉산은 국립공원으로서는 나름 역세권이기까지 한 게 좋다. 수락산, 청량산, 아차산 등 지하철 역세권인 산들 중에서는 가히 최고의 퀄리티가 아닌가 싶다. 등산기 두 편을 글 한 편에다 묶으려고 했는데 도봉산은 분량이 길어져서 또 단독 게재를 하게 됐다.
* 여담: 국립공원 이야기
자연 보호를 목적으로 근대적인 국가 제도 하에서 도입된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은 미국의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요세미티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구나. 어쨌든 미국이 최초이긴 하다. 'national park'라는 제도가 우리나라에 첫 도입된 건 1967년이어서 올해로서 딱 반세기가 지났다고 한다.
영예의 제1호는 지리산이며, 그 뒤로 국립공원은 대부분 네임드급 산들의 독식무대였다. 설악산, 한라산, 속리산, 주왕산, 계룡산, 오대산 등.
그렇기 때문에 이쪽 사정은 산악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서울의 북한산은 1983년에 비교적 '늦게' 지정된 거라고 한다.
하지만 산만 있는 건 아니어서 남해의 한려해상 국립공원도 있으며 충남 태안 역시 해안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그리고 경북 경주시는 건물 지으려고 땅만 팠다 하면 문화재가 도깨비 방망이 두들기듯이 출토되는 특수성이 감안되어, 토함산, 남산과 일대 시가지 약 137제곱km가 국립공원으로 그것도 무려 1968년부터 지정됐다.
도시형 국립공원이란 건 경주가 전국적으로 유일무이한 사례이다. 여기에 사는 경주 시민은 법적으로는 국립공원에서 사는 셈이다. 경부 고속도로에서도 경주 근처에 '경주 국립공원' 운운하는 표지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허나, 국립공원에서 산다고 실생활에서 별로 좋을 건 없다. 오히려 문화재 보호와 도시 미관 유지 명목으로 개발 제한에 고도 제한 같은 규제가 어지간한 그린벨트 이상급으로 걸리는 게 더 많기 때문이다. 지주의 입장에서는 재산권 행사에 애로사항이 꽃핀다.
미국의 워싱턴 D.C.에서는 모든 건물이 백악관보다 낮은 층수로만 지어져야 한다던데 그런 게 고도 제한이다. 그리고 작년에 지진 피해를 많이 입었던 황남동 일대는 전통 보존 운운하면서 주택은 반드시 기와집으로 올려야 한다는 게 법으로 규정돼 있었다. 그런 식이다.;;
Posted by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