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가 벌써 중후반기로 들어섰다.
세상은 3, 40년 전의 SF물들이 전망했던 것처럼 인간이 무슨 달과 화성에 식민지를 개척하는 식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초음속기와 우주 왕복선은 퇴역했고, 컴퓨터에서 싱글코어 무어의 법칙은 유효기간이 끝났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닌 다른 쪽으로는 과학 기술이 여전히 꾸준히 발달해 왔다. 제품의 외형은 크게 변화가 없을지 몰라도 그 내부는 이곳 저곳이 발전했다.

대외적으로는 1년 남짓 전부터는 기름값이 웬일로 다시 2000년대 초 수준으로 내렸고, 대학가에서 2000년대에 잠시 주춤했던 컴퓨터/전산학 지망자가 다시 늘고 있다. 컴퓨터 얘기를 좀 더 늘어놓자면 2000년대에 한창 닷넷에 밀려 C++이 죽었네 마네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닷넷이 시들시들하고 C++ 언어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1999년, 2012년 등 각종 시한부 종말 예언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적중하지 않고 불발탄으로 끝났다. 북한은 새끼 돼지 휘하에서 예나 지금이나 체제가 잘-_- 유지되고 있다. 중동에는 소말리아 해적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웬 이상한 또라이 이슬람 막장 국가가 태동하여 2차 세계 대전 이래로 국제 세계를 하나로 단결시키고 있다. 이 과학 기술 내지 국제 정세라는 건, 한국어의 종결어미와도 같아서 정말 그때가 돼 보지 않고서는 스토리를 정녕 알 수 없는가 보다.

컴퓨터 CPU의 집적도와 코어 수가 올라가고, 저장 매체의 용량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만큼이나 이 시대는 디스플레이 내지 조명 장치가 눈부시게 발달한 것의 혜택을 크게 입고 있다. 아무리 기가 막힌 저전력 고성능 초소형 CPU가 발명됐어도, 전자식이 아니라 기계식인 하드디스크는 근본적으로 진동과 충격에 약하기 때문에 걸어 다니는 사람의 주머니 속에서 동작하기는 영 무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디스플레이 장비가 브라운관밖에 없거나, 액정이라고 해 봤자 계산기의 흑백 액정 같은 것밖에 없었어도 지금과 같은 스마트폰이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토머스 에디슨이 살아 생전에 발명을 그렇게도 많이 했다지만, 그의 대표적인 발명은 축음기와 백열등 전구라는 양대 산맥으로 요약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 백열등은 가히 세상을 바꿔 놨다. 성경이 말하는 "빛과 소금" 중에서 '빛'에 해당하는 발명이다. 전등은 깜깜한 밤에 빛을 얻기 위해 굳이 연료를 태워서 불을 피울 필요를 없게 만들어 줬다.

그에 반해 등잔, 양초, 등유 램프 같은 건 연기가 남고 화재의 위험이 있으며, 결정적으로 빛이 그렇게 밝지도 않다. 어느 못사는 집에서 전기료가 밀려 단전되는 바람에, 촛불을 켜고 자다가 촛불이 넘어지고 집에 불이 나서 일가족이 죽었다는 뉴스.. 21세기에도 가끔은 흘러나온다.
이 얼마나 불편했는가? 그에 비해 전등의 빛은 그 당시로서는 얼마나 우아하게 보였을까? 오죽했으면 에디슨이 죽었을 때 미국 전역에서 1분간 전등을 소등했을 정도였다.

다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백열등은 전기로 빛을 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지만, 한편으로 증기 기관차만큼이나 가장 무식하고 비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어느 분야이든 전기를 에너지를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끌어 쓰는 방법은 V=IR 법칙에 의거하여 물리적인 저항을 만드는 것이다. 졸졸 흐르는 강물 내부에다 물레방아라는 저항을 설치해서 동력을 얻듯이. 전동차는 저항 제어 방식이 가장 먼저 등장했으며, 백열등 역시 근본 원리는 가느다란 필라멘트를 저향열로 달궈서 빛이 덤으로 나게 하는 것이다.

연료와는 달리 대놓고 아주 태워 버리는 게 아니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에디슨은 필라멘트로 쓰기에 가장 좋은 재료를 찾기 위해서 수백~수천 번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근성을 발휘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가장 무식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의 전등조차도 그냥 쉽게 만들어진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 시절엔 동그란 곡면인 전구 모양의 유리조차도 사람이 입으로 불어서 힘들게 만들어야 했다.

단순 저항으로 전기를 활용하는 모든 방식의 문제는 열이다. 전기 에너지 중 일부만이 빛이나 동력 같은 인간에게 유익한 형태로 쓰이고, 나머지는 열로 다 빠져나간다. 대놓고 전열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면 저건 좀 개선돼야 할 점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켜 놓은 전구는 사람이 만지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워진다. 그리고 과거의 저항 제어 전동차 역시 회생 제동조차 없던 시절엔 열로 손실되는 에너지 때문에 객실 내부까지 찜통으로 변하고 비효율과 고충이 장난이 아니었다.

나중에 발명된 형광등은 내부적으로 형광 물질을 사용하고 내부 구조도 백열등보다 더 복잡하다. 필라멘트가 있긴 하지만 그거 자체가 시뻘겋게 달궈져서 빛을 내는 형태는 아니기 때문에 열이 덜 난다. 등의 모양이 왠지 백열등보다 더 길쭉하고, 같은 전기를 쓸 때 광량도 더 많고 수명도 더 길다. 쉽게 말해 더 효율적이고 모든 면에서 백열등보다 더 나았다.

그런데 과거의 형광등들은 잘 알다시피 점등 딜레이가 있었기 때문에 "형광등 같다" 그러면 머리의 반응이 좀 더딘 사람을 상대로 좀 부정적인 비유에 쓰이곤 했다. 정작 만화 같은 매체에서는 아주 비효율적인 백열 전구가 뿅 켜지는 것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걸 나타내는 긍정적인 심상이었는데 참 대조적이다.

오늘날은 이런 전구에까지 반도체를 동반한 LED 방식이 대세가 돼 있다. 전력 소모와 광량에 관한 한, 형광등보다도 더 성능이 좋은 끝판왕이라고 한다. 단점은 반도체의 특성상 초기 제조 비용이 비싸고 열에 약한 것 정도가 고작이다.
생긴 건 꼬마전구마냥 자그마한데(형광등은 이 정도로 작게는 못 만들지 아마?) 거기서 백열등 전구로는 상상할 수 없는 아주 희고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발열도 별로 없다. 이게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손전등 기능도 응당 LED 기반이며, 24시간 가동되는 길거리의 신호등들도 다 LED 방식으로 교체되고 있다. 설치만 하면 얼마 못 가 설치 비용을 회수하고 이득이 나기 때문이다.

반도체라고 하면 으레 컴퓨터를 떠올리기 쉬우나, 반도체가 꼭 그런 데에만 쓰이는 물건은 아니다. 시계가 기계식 태엽을 쓰다가 건전지를 집어넣는 쿼츠 방식으로 바뀐 것도 반도체 기술이 가미된 것이다. 전자식 시계는 가격과 성능, 정확도 등 모든 면에서 기계식 시계를 처참하게 관광 태웠다.

또한 전동차가 VVVF 제어 방식으로 바뀐 것도 반도체 기술 기반이다. 동력 성능, 유지보수 난이도 등 모든 것이 종전의 저항 및 쵸퍼 방식보다 우위이다. 초기에는 시끄러운(?) 가속 구동음만이 유일한 단점으로 제기되었지만 철덕에게는 그건 아름다운 음악-_- 소리이지 단점이 전혀 아닐 뿐더러, 요즘은 소음 문제마저도 다 개선됐다. (소음이 인간의 가청 주파수 대역 이외로 금방 넘어가거나..)

형광등이나 LED등이 백열등과는 너무 압도적인 성능 차이가 나기 때문에 나라에서는 아예 백열등을 퇴출까지 시키려 할 지경이 됐다. 마치 컴퓨터계에서 IE6이나 제로보드 4를 퇴출시키려 하는 것처럼 지금 이상의 생산이나 수입, 판매를 금지한다. 백열등은 딱히 유연휘발유나 프레온 가스처럼 그 자체가 위험하거나 환경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에너지 소비량 대비 효율이 너무 안 좋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재 지구상에서 현역으로 가장 오래 뛰고 있는 백열등은 미국에 소재한 '센테니얼 전구'라고 한다. 무려 since 1901이고 한 세기가 넘게 켜져 있었다고 한다. 소등 시간은 몇십 년에 한 번 꼴로 몇 시간이 고작임. 세계 최고령 전구라고 재조명과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70년대부터였다.

허나, 지금으로부터 먼 미래에는 형광등조차도 LED보다 효율이 낮으며 수은이라는 위험물질 문제도 있는지라 퇴출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전기· 전자 공학 기술이 계속 발전하다 보면 기술 트렌드가 어찌 보면 복고풍을 탈지도 모른다. 한때는 실용성이 다른 기술에 밀려서 사장됐다가 나중에 그 한계가 극복되면서 다시 조명받는 것 말이다.

대표적인 예는 전기 자동차이다. 한때는 기름 자동차보다 가볍고 구조가 간단하고 성능도 좋다는 장점(시속 100km도 먼저 돌파) 때문에 널리 보급되었지만, 배터리 충전 시간과 항속거리에 치명적인 발목이 잡혀서 굳이 석유 회사의 로비가 없이도 슬금슬금 밀려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은 기름값과 환경 문제 때문에 전기 철도뿐만 아니라 전기 자동차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새로운 유전이 자꾸 발굴되고 채굴 기술도 눈부시게 향상되었다지만 석유가 지구에 무한히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석유는 단순히 태우는 연료뿐만 아니라 플리스틱 같은 다른 화합물을 만드는 데에도 쓰인다. 자동차의 동력원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교류 전기에 밀려 사라진 고전압 직류 송전도 그 당시에 문제되었던 한계(송전 손실, 변압)를 반도체 기술로 극복하고 다시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 솔직히 교류는 전기 공학을 우리 같은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주범이긴 한데..;; 단점만 없으면 직류 위주로 가는 게 더 간단하고 좋긴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직류 송전 기술의 배후에도 반도체 기술이 있다.

그나저나 무선 송전 기술은 정말 실용화가 가능한지 모르겠다. 이게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오면 전기 문명에도 일대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철도에는 전차선까지는 몰라도 팬터그래프가 필요 없어지고 전기 철도 시설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다.

끝으로, 전기 쪽 잡다한 자료들을 찾다가 본인은 흥미로운 동명이인 과학자 pair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를 소개하며 글을 맺겠다.

  • 독일 브라운: 로켓(새턴 V), 전기공학(브라운관)
  • 영국 플레밍: 미생물학(스코틀랜드 출신, 페니실린), 전기공학(잉글랜드 출신, 양손 법칙)

듣자하니 그 당시에 무선 통신의 선구자이던 이탈리아의 굴리엘모 마르코니는 브라운· 플레밍과도 같이 만나서 연구를 했다고 한다. 어느 브라운과 어느 플레밍인지는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테고.

Posted by 사무엘

2016/04/11 19:36 2016/04/1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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