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및

우리말 순화 운동가 중에는 ‘및’을 싫어하는 분이 계신다.
우리말답지 못하고 어원이 또 무슨 번역투이고 등등~ 근거가 여럿 있는 걸로 본인은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및’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역할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만만하게 없앨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및’을 안 쓰고 이 성경 구절을 번역해 보라.

And the king, and all Israel with him, offered sacrifice before the LORD. (왕상 8:62)

뭔가 느껴지는 게 없는가?
그렇다. 우리말의 조사 ‘-와/과’라든가 어미 ‘-고’는 and라는 뜻만 있는 게 아니라 with라는 뜻까지 교묘하게 포함되어 있다. 이거 구분이 안 되는 게, 번역할 때 의외로 굉장히 불편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적잖게 발생한다! (한국어 말고도 이런 특성을 지닌 언어가 좀 더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접속부사 ‘및’은 정확하게 and의 뜻만 지니기 때문에 중의성의 해소에 도움이 된다.

물론 한국어는 부사를 무척 좋아한다는 특성상, 공동번역처럼 “왕은 온 백성과 함께 .... 했다”라고 문장 구조를 완전히 바꿔 번역하는 방법도 없지는 않다.

2. 어법에 어긋난 축약

알아듣는 데는 아무 지장 없는데 여기서는 쓰이고 저기서는 통용되지 않고.. 음운이나 형태론적으로 온전한 근거를 갖추지 못해 어법상 허용되지 않는 축약이 있다. 한국어에서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스러운'(O), '-스런'(X): 국기에 대한 경례마저 '자랑스런'에서 '자랑스러운'으로 고쳐졌다. 그냥 축약을 허용해도 되지 않겠나 생각을 했었는데... '아름다운'을 '아름단'이라고 적지는 않잖아..! ㅂ이 탈락하는 것도 모자라서 음절 전체가 탈락하는 건 대략 보기 좋지 않다.

- '밤을 새우다, 담배를 피우다'(O), '밤을 새다, 담배를 피다'(X): '우'도 만만하게 보이는지 자꾸 탈락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는 명백한 변별 요소로, 이게 빠지면 '물이 새다', '꽃이 피다' 같은 완전히 다른 단어가 되고 만다. 그러고 보니 타동사와 자동사로 각 용언이 격이 다르다 보니, 경계가 마음놓고 문란해지는 건가? -_-;;

- '바뀌었다'(O), '바꼈다'(X): 이런 식으로.. 현대 한글이 규정하는 한글 모음의 범위를 벗어나는 축약을 시도하다 보니, 음운 탈락을 감수하면서 말을 줄이는 경우가 있다. 물론 구어체에서나 통용될 뿐 표기를 이렇게 하는 건 물론 잘못이다.

이런 축약은 꼭 음절수를 맞춰야 하는 노래 가사나 시 같은 데서나 제한적으로 묵인되는 듯하다. 이름하여 시적 허용. 그런 건 영어에도 있으니까..;; 만약 한국어를 로마자로 표기하고 있었다면 이런 축약 사이에는 분명 어퍼스트로피가 들어갔을 것이다.

3. 아리까리한 영단어

영어도 만능이 아니다. 중의적인 어휘가 생각해 보니 꽤 있다. 비슷하지만, 그래도 구분 가능한 게 더 좋겠다 싶은 것들 말이다.

- good: 좋다 vs 선하다. 웬지 '선한 사마리아인'과 '좋은 사마리아인'은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 free: 자유 vs 공짜. 이게 영어권에서 은근히 혼동이 심해서인지, 오픈소스 진영의 문서에는 “자유 소프트웨어란 무료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친절한 부연 설명이 들어가 있다.
- life: 생명 vs 삶(인생/생애/한살이). 그래서 한국어로는 life after death를 좀 더 깔끔하게 번역 가능하다. 내세에 대해 설명할 때 나오는 단어임.

- little: 작은, 어린, 거의 없는...;; 이거 은근히 중의성이 짙어서 헷갈릴 때가 있다. 이게 빈도부사의 역할까지 하니, 마치 more이 다중 품사 역할을 해서 헷갈리는 것과 비슷한 차원이 된다.
- great: 거대하다, 위대하다. 뭔가 크고 아름답다는 뜻인데, 어떻게 아름다운지가 중의적이다.
- child: 그냥 어린이 vs 계통상의 자녀
- mind: 생각 vs 마음

- egg, milk: 영어는 참 특이한 게 이런 단어들이 각각 달걀과 우유라는 특정 동물의 알과 젖을 뜻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이것 자체가 범용적인 알과 젖을 뜻하기도 한다. 마치 기름이 석유도 뜻하고 그냥 물과 섞이지 않는 가연성 액체의 총칭이기도 하듯이 말이다.

- day: 낮 vs 날. 문맥에 night가 대조되면 전자의 의미가 되고, month나 year 같은 단어가 오면 후자의 의미가 된다.
- earth: 육지(land), 흙 (dust), 태양계의 행성 지구(the earth)...;; 의 의미를 두루 지닌다.

- man: '사람, 사나이(남자), 성인'의 의미를 두루 지닌다. 성경에서도 고전 13:11에 나오는 “but when I became a man”은.. 무슨 단군 신화처럼 동물이 인간으로 변했다거나, 성전환을 해서 여자가 남자로 바뀌었다는 게 아니라.. 자라서 어른이 됐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

영어는 잘 알다시피, 혈통상 2촌 관계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나이 서열대로 부르는 호칭이 없다. 가령, brother이라고만 하면 형인지 남동생인지 알 수 없다. 그 문화권은 근본적으로 '나이가 깡패' 같은 사고방식이 없는 게 틀림없다.
그런데 그 반면 한국어에는 형제 자매들을 싸잡아 부르는 명칭이 없는 듯하다. 쉽게 말해 성별에 구애되지 않고 sibling에 대응하는 한 단어가 없다는 뜻. 그래서 맨날 가족 관계를 물을때 “형(언니)이나 동생 있어요?”라고 번거롭게 말을 풀어서 한다.

4. '들'이 의존명사라니!

나는 '들'이 field를 뜻하는 명사, 그리고 복수형을 의미하는 접미사 정도로나 알고 있었다. 특히 후자 용법은 단복수를 무진장 엄격하게 따지는 영어의 여파 때문에 한국인들 머리에 뼛속까지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건 뭔가?

【의존명사】 두 개 이상의 사물을 벌여 말할 때 맨 끝에 쓰이어, 그 여러 사물을 모두 가리키거나 또 그 밖에 같은 종류의 사물이 더 있음을 뜻하는 말. 등.
¶ 전차·버스·택시 ∼.

쉽게 말해서 '들'이 '등'(and so on; et cetra)과 완전히 같은 용법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뭐병...;;
한컴 사전, 네이버 사전 등을 다 찾아봐도 그런 풀이가 있다.
본인은 태어나서 '들'이 그렇게 쓰이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근처의 국문과 학생으로부터도 “뭐 이런 게 다 있어” 동의를 받았다. -_-;; 이제 교수에게서 인증받는 것만 남았다는..;;

5. 내일의 순우리말, 한자어 번역어

한국어에 어제, 모레와는 달리 'tomorrow'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이 없는 것을 본인은 굉장히 특이하게 여겨 왔다. '한국어 순우리말은 왜 blue와 green을 구분하지 않을까?'만큼이나 왜 내일이 없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소문에 따르면 '내일'의 순우리말은 '하제'라고 한다. 문헌상의 근거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게 언제부터 왜 '내일'로 대체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카이스트 학생이라면 '하제'가 아주 친숙할 것이다. 교내의 유명한 컴퓨터 동아리(게임 개발 분야)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어제와 오늘, 모레, 글피 등의 서열에서 혼자 한자어인 어중간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워낙 친근한 단어여서 중국이나 일본어 냄새가 나지는 않는다. 코레일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팔고 있는 내일로 티켓은 'rail-로'가 두음법칙에 의해 바뀐 것...이라고 한다. ㅋㅋㅋㅋ 그래도 싫어요-좋아요보다는 그럴싸한 설명.

'내일'도 이미 한자어인데 동일한 의미를 지니면서 더 탁한 느낌이 나는 한자어가 또 있다. 명일이나 익일... 이 서열대로라면 어제와 오늘도 작일, 금일로 바뀐다. 내일은 바꿀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내일조차 다른 한자어로 바뀐다니, '내일'은 순우리말도 존재하고 더 어려운 한자어 버전도 존재하는 이상한 단어라 하겠다.. 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1/02/02 21:32 2011/02/0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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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우리말/언어 관련 메모.
요즘 참 다양한 분야별로 블로그질 하는데, 방학 중에도 본인의 매일 수면 시간은 5~6시간대.. 아 피곤하다..;; 남들이 게임이나 연애 하는 동안 난 맨날 이 짓 하고 있다. 이것도 병 내지 중독이다. ㄲㄲㄲㄲㄲㄲㄲㄲ

1. 조어법

요즘 언어학의 설명에 따르면, 어휘의 조어 방식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통사적 합성이라 하고 다른 하나를 비통사적 합성이라고 하는데, 전자는 생성에 사용된 개별 형태소가 온전하고 자립 가능한 형태인 것을 말하고 후자는 그렇지 못한 걸 일컫는다.

까놓고 말해 ‘먹자골목’은 통사적 합성인 반면, 논란이 많은 ‘먹거리’는 비통사적 합성이다. 동사의 어간 ‘먹-’은 이거 하나만으로는 자립할 수 없는 의존형태소로 일컬어지며, ‘먹는, 먹자’처럼 뒤에 어미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헐 그럼 ‘먹튀’도 비통사적 합성이군?
그래서 성격 까칠한 민간 우리말 운동가 중에는 ‘먹거리’는 잘못 만든 말이기 때문에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다.

난 조어에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명사, 특히 고유명사야 겹치는 동음이의어 없이 어감상 거부 반응 안 들고 변별만 잘 되면 뭘로 지어도 나쁠 게 없지 않겠는가. 뭐, ‘나드리’처럼 표기법 바꿔서 고유명사화하는 게 한글 파괴라는 식의 개드립에는 결코 공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다양한 조어는 적극 권장해야 한다. 요즘 무섭게 쏟아지는 영어 신조어나 작명 센스들, 그리고 우리나라 인터넷 유행어들도 내가 보기엔 압도 다수가 비통사적 합성들이다.

‘쌍룡’이 표준어이건 말건 자동차 회사 ‘쌍용’은 고유명사이다. 하다못해 외래어 표기법도 아무리 Hyeondae가 원칙상 맞다 해도 현대 자동차 할 때 현대의 공식 로마자 표기는 Hyundai인 것이다. 성씨의 두음법칙 같은 문제에서도 본인은 ‘당사자가 원하는 대로 불러 주는 게 맞다’ 주의이다.
본인은 ‘다르다’와 ‘틀리다’ 구분 안 하는 것 굉장히 싫어하고, “이 제품은 성능이 아주 좋으십니다” 이런 말 들으면 손발리 오그라들긴 하지만, 조어는 아주 창의적이고 파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된 웃기는 현상이 하나 더 있다.
우리나라는 God의 표기가 천주교하고 기독교(천주교에서 개신교라고 부르는)가 서로 다른 이상한 나라이다. 하나님 vs 하느님. 참고로 천주교 말고는 여호와의 증인도 ‘하느님’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전처럼 종교색이 없는 문헌도 하느님, 더 나아가서 공동번역 성서의 컨벤션을 더 존중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설명을 보면 '하느님으로 가셈' 같은 식.

어른들의 사정이 있어서 표기가 달라진 건 어쩔 수 없다 치는데, “‘하나님’은 ‘하나(one)’이라는 숫자에다가 님이 붙은 것이어서 어법에 어긋난다”고 ‘하나님’을 까는 건 영 수긍하기 곤란하다. 실제로 국어깨나 좀 아는 어느 천주교 신자에게서 본인이 들은 적이 있는 말임. 아하, ‘하나님’도 비통사적 합성이다 이거지?

종교적인 교리나 이념은 싹 배제하고, 순수하게 국어학 관점에서 “남이사 무엇에다 님 붙여서 말 만들든 무슨 상관이심?” -_-;;; 이라고 반문해 주고 싶었다. 오히려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서양 선교사도 그 ‘하나+님’ 조어를 보고는 정말 멋진 번역이라고 감탄을 했다고도 하는데.
뭐.. 그냥 그랬다고.. ㅋㅋ 아님 말고.

2. 문법 용어

아마 내막을 아는 분도 있겠지만, 옛날에는 국어 문법 용어와 체계가 서울대 이 희승 라인과 연세대 최 현배 라인으로 갈려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울대 국문과를 가려는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울대 기준으로 맞춰진 책으로 공부를 해야 했고, 연세대 국문과를 가려는 사람은 연세대 에디션으로 공부를 해야 했다...; 그리고 나중에 입시 점수가 엇갈리게 나오더라도, 맞은편 경쟁 대학으로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거 가히 도시전설 수준의 충격과 공포인걸??

그래서 학교 문법 체계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이뤄졌는데... 이거 무슨 글자판 통일 얘기 같다(세벌식 매니아의 직업병..ㅋㅋ).
문법 용어는 한자어 위주의 서울대와, 순우리말 위주의 연세대가 땅따먹기 하는 식으로 통합되었다. ㅜ.ㅜ “난 이거 양보할 테니 저건 우리 식으로 하자” 식. -_-;;

아하, 그래서 중학교 때 배운 음운 법칙이 ‘음절 끝소리 규칙’과 ‘된소리되기’, ‘사잇소리’는 순우리말이고 ‘구개음화’, ‘자음동화’, ‘음운 축약’은 한자어로 뒤죽박죽 섞여 있었구나.
그 엄청난 내막을 알게 됐을 때 대략 정신이 멍했다. ㅋ

하지만 문법 용어 말고 다른 분야 용어는 세월이 흐르면서 상당수 한자어로 이미 바뀐 것 같다.
과학 그림책에서 본 살갗, 힘살, 작은창자, 콩팥 같은 용어는 중학교 과학 책에서 전혀 볼 수 없었고(피부, 근육, 소장, 신장 등), 한글 학회 어르신들이 접했다는 넘보랏살(자외선) 같은 단어는 전혀 접하지 못했다.

요즘 애들은 6 25가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른다는데, 저런 단어들도 안 쓰면 나중엔 애들이 진짜 못 알아들을 것 같다. 가령, 여기 오는 분들은 ‘뭍’이 육지(land)라는 뜻인 줄은 다 알려나?

3. 형태소 분석기를 엿먹이는 문장

한국어: 가가 가가가? (걔가 가씨 집안이냐?) -_-
영어: I think that that that that that boy wrote on the blackboard is wrong.
(접속사, 지시형용사, 명사, 관계대명사, 지시형용사) ㅋㅋㅋㅋ

4. 흠좀무스러운 다의어와 동음이의어

동사 table
- 영국: (의안 등을) 상정하다
- 미국: (의안을) 묵살[무기연기]하다.
뭐 어쩌라고.. -_-;;

학원을 끊다
- 전화를 끊다: 학원을 그만두다
- 승차권을 끊다: 학원에 등록하다
뭐 어쩌라고.. -_-

진돗개 1호가 풀렸다
- 5만원권이 전국에 풀렸다: 경보가 내려지다
- 통금이 풀렸다: 경보가 해제되다
release와 비슷한 의미의 중의성을 지닌 듯.

1977년의 테네리페 여객기 참사의 원인 중 하나도, 교신 중에 이런 식으로 중의적인 표현이 조종사와 관제탑 사이에 오해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구제역 / 해충 구제 / 빈민 구제
물론 한자는 서로 완전히 다 다르지만, 어째 어감이 이상하다. “구제역 병균을 구제해서 불쌍한 소들을 구제해야지”라고 써도 될 것 같다.. ㄲㄲㄲㄲ

5. 부사를 겸하는 명사

‘오늘’, ‘내일’ 같은 시간이 명사도 되고 ‘부사’도 되는 건 한국어나 영어나 똑같다.
“나 내일/오늘 집에 가”라고 영어로 말할 때 today나 tomorrow 앞에 전치사를 붙이질 않으며, 한국어로도 ‘내일에, 오늘에’ 같은 식으로 조사를 붙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는 그런 게 더 발달해서 home이나 downtown 같은 장소를 가리키는 명사도 부사로 통용되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6. 흠좀무스러운 발음

아래의 두 단어 쌍은 영어 발음이 완전히 동일하다!

Colonel (육군 대령) / kernel (커널)
Pilate (성경에 나오는 본디오 빌라도-_-) / pilot (파일럿)

'컬라널'이 아니었군.. ㅜ.ㅜ 영어가 워낙 다양한 어원에서 유래된 단어가 많아서 어쩔 수 없다. 그 중 gh가 제일 판타지 같은 음운이라는 건 알 만한 분들은 알 것이다.
만약 한글이 세계 문자가 된다면, 같은 한글 단어도 중국어를 표기한 단어에서는 ㅐ를 ‘ㅏㅣ’로 풀어서 읽는다거나 하는 그런 예외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김밥, 비빔밥, 볶음밥, 자장밥에서 ‘밥’과 ‘빱’ 소리가 갈리는 원칙을 설명할 수 있으신 분??
‘김빱’이 아니라 ‘김밥’이라고 그대로 소리내는 게 맞다고 말은 하는데 왜 그렇게 되는지 난 모르겠다. 아무 원칙이 없이 랜덤이라면 본인은 아까 조어와 마찬가지로 무슨 발음이든 다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김밥, 효과를 다 김빱, 효꽈라고 발음한다.

해님도 ‘햇님’이라고 자꾸 쓰기 쉬운데, 원래 ㅅ을 붙일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한다. 사잇소리는 정말 너무 어렵다.

7. 영어 번역투

영어는 A must be followed by B 같은 표현조차 가능한 언어이다. 수동태와 피동형 남발은 민간 차원에서도 하도 많이 까여 왔고, 좀 각성하자는 움직임도 적지 않은데.. 본인은 전형적인 영어 번역투로 그 외에도 아래의 사항도 지적한다.

- 명사형 관형어로 죽어라고 ‘-는 것’만 너무 남발하는 것 (to 부정사와 동명사의 번역. -음, -기 도 때때로 좀 써 주세요!)
- ‘가지다’를 너무 남발하는 것 (have 번역. 품다, 지니다 등도 좀 쓰세요!)
- 영문법 책에서 본 듯한 뭔가 장황하고 최적화(optimized)되지 않은 문장. 한국어 표현을 추적해 보면 원래 영어 원문이 무엇이었을지 디스어셈블리(?) 가능한 문장.

한국어는 단· 복수나 성별 구분은 거의 안 하는데 주체가 인격체냐 그렇지 않냐는 꽤 엄격하게 구분한다. 비인격체가 주어로 오는 걸 싫어하는데, 영어는 오히려 그걸 전혀 따지지 않으니 그게 문제이다.
“이 열쇠가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같은 식.

세상에 영어로 유입되는 지식과 정보가 너무 많다 보니, 영어가 한국어에 끼치는 영향도 방대하다. 영어를 무작정 배척할 수는 없으나,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지킬 건 지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영한사전이 제대로 돼야 국어가 산다는 지론을 오래 전부터 펴 왔다.

본인의 모국어인 한국어는 대명사가 극악인 언어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영어의 간결한 대명사 체계에 대해서는 가끔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영어도 2인칭이 단· 복수 구분이 없다는 기괴한 약점이 있기는 마찬가지. 차라리 킹 제임스 영어는 그 구분이 있는데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1/12 07:43 2011/01/12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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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와 '감사하다'

영어의 '땡큐', 중국어의 '씨에 셰', 일본어의 '아리가토', 독일어의 '당케' 에 해당하는 한국어는 아쉽게도 딱 하나로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사과하는 표현으로 '미안'과 '죄송'이 공존하듯이 '고맙습니다'라는 순우리말과 '감사합니다'라는 한자어 계열이 공존하는데, 인간의 자연어라는 건 “그럼 이 둘을 마음대로 섞어 쓰면 된다는 뜻이에요?”를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은 미묘한 상황 차이에 따라 둘의 용법이 구분되게 마련인데, 그 원칙이라는 게 엿장수 마음대로 식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미치고 펄쩍 뛰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은 엄밀한 방법이 아니라 그냥 말뭉치 기반으로 수학으로 치면 numerical하게 해를 구할 수밖에 ㄲㄲㄲ

그럼 '고맙다'와 '감사하다'에 대해서 살펴보자.
'고맙다'는 be grateful/thankful에 가까운 형용사이다.
'감사하다'는 give thank, 또는 그냥 thank, 다시 말해 '고마워하다'에 해당하는 동사이다.
"네가 고마워서 난 네게 감사한다" 정도 된다.

다시 말해 둘은 일단 품사가 서로 다른 단어이다.
비록 관용구 감탄사에 가까운 Thank you에 대한 번역이야 둘 다 가능하다 할지라도, 각 단어가 원래 완전한 문장에서 무엇이 생략된 형태인지 정도는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보통 '감사합니다'는 '고맙습니다'보다는 문어적이고 격식 있는 말투로 통용되는 것 같다. 마치 영어로도 Thank you so much가 very much보다는 여성적이고 구어적인 것처럼 말이다.
뭐 이런 것도 '한국에 만연한 토박이말 천시 풍조'의 일례이고 '감사'는 일본식 한자어라고 열폭하는 분이 있는데, 그렇게까지 피해 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뉴스 끝날 때나 교통수단 내부에서의 각종 안내방송 멘트를 들어 보면, 요즘은 오히려 '고맙습니다'가 더 즐겨 쓰이는 듯하기도 하다.

교회 예배의 대표 기도에서 자주 듣는 표현으로 “고맙고 감사하신 하나님”이 있다. 이건 제아무리 한자어가 토박이말보다 품위-_- 있고 고상한 표현이라고 해도 어법에 어긋난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지, 하나님이 또 무슨 대상으로부터 은혜라도 입어서 거기에다 감사한단 말인가? '고맙다'와 '감사하다'는 뉘앙스의 차이에 앞서 근본적으로 품사가 다른 단어임을 잊지 말자. 그냥 '고마우신 하나님', '한량없이 고마우신 하나님'이라고만 하면 된다.

'고맙다'는 마치 '좋다', '밉다', '무섭다'처럼 일종의 심리형용사의 기능을 한다.
'좋은 사람'은 그 사람이 좋다는 뜻이지만, “나는 그 사람이 좋다/싫다”고 하면 그 사람의 실제 성품과는 무관하게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느끼는 심리를 표현하는 말이 된다.
심리형용사는 1인칭이라는 주어 선택 제약이 존재하며, 영어로 정확하게 번역되지도 않는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싫어한다”처럼 동사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마운 사람', '나는 그가 참 고맙다'도 그와 동일한 맥락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고맙다'는 골수 왕자병이 아닌 이상, 나 자신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 형용사이다. “세상에 나보다 더 겸손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_-;;; 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쓰임이 딱 정해져 있다 보니, 어법상으로는 남이 고마운 게 아니라 내가 고마운 존재가 되는 식으로 좀 어정쩡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고맙다/감사하다가 뒤섞여서 자연어에서 통용되어 온 것 같다.

요약: 아무쪼록, 배은망덕은 어느 문화권을 가더라도 인간말종 천하의 개쌍놈짓으로 취급받는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자. 성경에서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는 thank for everything이 아니라, thank in/under everything이다. 무슨 로봇이나 변태처럼 “앗싸, 불행을 내려 주셔서 ㄱㅅㄱㅅ!”가 아니요, “그래도 내가 북한이나 소말리아 애들보다는 처지가 낫지” 식으로 남과 비교하는 바리새인 버전 감사도 아니다. 내가 지금 당장은 나쁜 여건에 처했지만 그 나쁜 여건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고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고서 낙담하고 좌절할 필요가 없으며, 그분이 나의 모든 것이니 ㄱㅅ라는 정말 수준 높은 감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12/18 19:26 2010/12/1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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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높임법

높임법은 한국어의 주된 특징인 한편으로 쓰임이 까다롭고 외국인에게 배우기 몹시 어려우며, 심지어 자국민끼리도 그 용법이 차츰 문란해지고 있는 존재이다.
높임법의 적용 여부와 그 수준을 결정하는 변수는 크게 다음과 같다.

나이: 한국 사회는 나이가 깡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회생활에서 일단 한 살이라도 차이가 나면 존댓말과 반말이 갈린다.
계급이나 어떤 조직 내에서의 짬: 이것도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다만 나이와 계급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친밀도: 존댓말을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을 높인다는 의도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당신과는 가까워지지 않고 그냥 사무적으로만 정중하게 대하겠다는 뉘앙스도 있다. 사회에서 만나는 선후배와는 달리, 친형제 사이엔 나이 차이가 나더라도 반말로 일관하는 것 역시, 이 친밀도와 관련이 있다 하겠다.

그런데 이 세 변수를 모두 고려하여 가장 적절한 solution을 찾는 게 상당히 어렵다!
닥치고 계급이 짱인 군대에서도 나이와 계급이 엇갈려서 생기는 웃지 못할 사례가 있다.
갓 임관한 소위가, 아버지뻘 나이인 행보관에게 “자네가 행보관이구만.” 운운하며 반말을 찍찍 쳐 갈겼다는 루머. ㄲㄲㄲㄲㄲㄲ
이건 장교라 할지라도 꼴통으로 찍히게 만들고 자기 남은 군 생활에 애로사항을 꽃피우는 무모한 짓이다.

이런 높임법과 관련하여 본인이 떠올리는 언어 현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게 있다.

1. “교장 선생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라는 멘트는 무려 중학교 국어 수업 시절부터 어법에 어긋난 표현이라고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그런데 요즘도 그런 잘못된 표현이 쓰이고 있나? 본인이 단언하건대 한국어에서 말씀이 ‘계실 수 있는’ 문맥은 요한복음 1:1 정도밖에 없다. ㅋㅋ

2. 그런데 요즘은 1번 정도는 약과. 각종 서비스 업종에서 직원들 교육을 대놓고 잘못 시키는 바람에, 더욱 듣기 민망한 잘못된 높임법이 범람하는 중이다.
“고객님, 지금 상담 요청 전화가 너무 많으시네요.”
“음악을 좋아한다는 건 아주 좋은 취미이십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제품이 고객보다 더 높다. 도대체 지금 누굴 높이고 있는 거야? ㄲㄲㄲㄲ ‘시’가 주체를 높이는 게 아니라 청자를 높이는 효과를 낼 거라고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저 불편한 멘트를 견디다 못해 본인의 학교 국문과의 모 학생은, 투철한 직업 정신을 발휘하여 고객 불만 사항에다가 잘못된 높임법을 신고까지 했다. ㄷㄷㄷ;; 그런데, 거기서 연락이 뭐라고 왔냐 하면, “고객님, 저희 직원이 실례를 범하셨다는 불만 사항이 잘 접수되셨습니다.” ㅠ.ㅠ
이 정도면 날 두 번 능멸한 거라고 그 친구는 쓴웃음을 지으며 회상하더라. ㅋㅋㅋㅋㅋ

3. 한국어 맞춤법의 복병은 단연 압존법이다.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는 할아버지가 아버지보다 더 높으므로 아버지를 반말로 표현하는 게 맞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또 문란해져서... 회사에서 대리가 “부장님, 김 과장은 외근 나갔습니다” 이러면 상사의 언어 감각에 따라서는 “넌 김 과장하고 친구 사이냐?” 이런 갈굼이 되돌아오기도 한다나? 본인은 병특 시절에 압존법을 적용 안 했다가 혼난 적은 있다(청자보다 낮은 직급인 사람을 언급하면서 높임법을 써서).

KBS 한국어 능력 시험 공부하면서도, 압존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이거 정말 써도 문제이고 안 써도 문제이고..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난감한 경우인 것 같다.

4. 그나저나 본인은 아무런 높임도, 낮춤도 없이 간단하게 2인칭을 지칭할 수 있는 you가 한국어에 없는 것에 굉장한 불편을 느낀다. 그래서 특히 소프트웨어의 UI를 보면 you는 사용자, 회원님, 고객님으로 어정쩡하게 우회 번역되고, 바깥 사회에서는 선생님이나 사장님으로, 심지어 채팅 같은 곳에서는 그냥 ‘님’으로 바뀐다.

한자가 일본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만큼이나 본인은 저런 난잡한 용법도 한국어의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기계화와 정보화를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냥 간단하게 ‘당신’이라고 쓰자고 의식 전환 운동이라도 벌이면 안 될까? 웬 3인칭 ‘당신’은 잘 쓰지도 않는데 그냥 없애 버리고 말이다!
하나님까지 대놓고 you라고 일컫는 것까지는 무리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거야말로 번역투랍시고 대안도 없이 배척만 하지 말고 한국어가 받아들여야 할 면모가 아닐까 한다.

C++에서 전처리기, 다중 상속 같은 거 뚝뚝 떼어 내고, 가비지 컬렉터 넣고, CFG 문법 체계로 개편하여 더 세련된 D나 C# 같은 언어를 만들듯, 한국어도 그렇게 좀 개조를 하고 싶다.
혼잡한 언어를 숙청하려면 강력한 독재 권력이 필요함을 또 다시 느낀다. 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0/11/20 09:19 2010/11/2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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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면서 든 생각

국어학이란 게 어떤 학문인지, 말뭉치(코퍼스) 연구라는 게 어떤 건지 슬슬 적응이 돼 간다. 또 여기가 사전 연구 전문이다 보니, 평소에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국어사전이라는 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심지어 예문은 어떻게 뽑고 예문에 들어가는 철수, 영희 같은 명칭은 어떤 원칙으로 뽑는지 같은 것도 세부 사항을 그쪽 일을 하는 친구들에게서 들으니 재미있다.
코퍼스는 한글 사용 빈도 파악과 글자판 연구에도 사용 가능할 듯?

1.
본인이 생각하는 사전 표제어 기록 (이의 제기 환영)

백과사전에서 풀이가 가장 긴 단어: 대한민국 (우리나라의 역사, 지리, 분야별 현황 등이 죄다 좌르륵~)
혹은 United States (위와 비슷한 이유로), human (인간의 모든 것 ㅋㅋㅋ)

한영사전이나 국어사전에서 풀이가 가장 긴 단어: 보다 (see, seem 등~~)
영한사전에서 풀이가 가장 긴 단어: have

2.
영어에 '모르다'를 뜻하는 한 단어짜리 동사가 없다는 건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다.
'-에 무지한' 정도에 해당하는 형용사는 있지만, "어서 불어 / 난 모른다!"를 깔끔하게 표현할 수 있는 한 단어는 없다. 기껏해야 do not know.
아마 영어는, 뭔가를 모른다는 건 마치 뭔가가 '없는 것'처럼 상태일 뿐이지 '알다'처럼 정식으로 동사가 될 자격은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다못해 forget도 아니고.. 한자에서도 '모를 X' 같은 글자는 본 기억이 없다.

사실, 영어에는 '없다'라는 깔끔한 단어도 없다. 그냥 없는 주체 앞에다가 no를 붙여서 There is no X 또는 No X exists 정도로 표현되는 게 고작. 그런데 반대로 한국어는 nothing이나 void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추상적인 명사 단어가 없다. 無는 접사에 더 가깝다.

3.
한국어에서 '뛰다'가 어째서 run도 의미하고 jump도 의미하는지는 오랫동안 본인의 의문점이었다.
마치 '푸르다'가 어째서 blue도 의미하고 green도 의미하는지 의아했던 것처럼 말이다.

단군의 후손들은 파랑과 초록도 구분 못 하는 색맹이었단 말인가? 어떻게 들판도 푸르고 하늘과 바다도 동시에 푸를 수가 있을까?
'푸르다'는 관용적으로 blue와 green을 싸잡아 일컬을 수 있게 놔 둔다 치더라도, '파랗다'는 blue로 완전히 굳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움직여도 되는 신호등 색깔은 파란불이 아니라 초록불이나 차라리 푸른불로 표현을 바꿔야 하지 않나 싶다.

어쨌든 '뛰다'도 그렇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단어이다. 물론, 달릴 때는 걸을 때와는 달리 두 다리가 동시에 공중에 떠 있는 타이밍이 있다. 그 점에서는 run이 jump와도 공통점을 지닌다.
이것도 '뛰다'는 무조건 jump로, run은 '달리다'로만 강제로 구별을 시켜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혼자 해 봤는데, 쉽지 않은 문제이다.
마치 '손뼉을 치다'와 '박수를 치다'는 뉘앙스가 서로 완전히 다른 단어인 것처럼, '달리다'가 어울리는 상황과 '뛰다'가 어울리는 상황이 좀 구분이 되는 것 같아서이다.

4.
결정적으로는,
"한 대 맞고 두 대 친다"
"햇볕도 안 들고 양지바른 곳"
"서양 갑옷이 묘하게 존재감 있는 이런 요가 교실은 싫어"

같은 명문장들에 대해서도 이건 부사어, 이건 관형어, 이건 서술절 등 문법 구조와 parse tree가 그려진다. 저런 대사가 예문으로 잔뜩 수록되어 있는 문법 책이 있다면, 저런 대사 패러디가 수록되어 있는 성경 만화만큼이나 행복할 것 같다. ㅋㅋㅋㅋㅋ

5.
우리말에서 '저지르다'는 뭔가 나쁜 일을 벌이고 사고를 친다는 뜻의 타동사이다. 저지른 대상을 목적으로 받는다.
영어로는 주로 commit에 대응한다. 다만, commit 자체는 '저지르다'보다 뜻이 훨씬 더 넓은 말이기 때문에 위임하는 것도 commit이고, 소스 코드를 저장소에다 반영하는 동작도 commit이라고 한다.

실수부터 시작해 살인, 간음, 반역, 폭력, -질, -짓, -죄, -악, 비리, 불효, 과오, 만행 등 거의 모든 나쁜 짓이 '저지르다'의 목적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자살'을 저질렀다고는 안 한다. 그냥 '자살'을 한다고만 하지. 정작 영어로는 정확하게 commit suicide라고 하는데도 한국어에는 그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표현이 없으니, 이는 특이한 면모가 아닐 수 없다. (뭐, 영어로도 suicide 자체만으로 '자살하다'라는 자동사가 될 수도 있긴 함)

내가 짐작하건대 한국어의 '저지르다'에는 "나쁜 짓을 하고도 당사자가 그 행위의 영향을 받지 않고 멀쩡하게 남아 있는 경우"라는 뉘앙스가 내포된 것 같다. 자살은 분명 나쁜 짓이지만, 당사자가 죽어 버린다는 점에서 다른 악행과는 차이가 있다.

6.
이 외에도, 한국어로는 컴퓨터 내지 인터넷에다가 바로 '하다'를 붙이지만, 영어는 do가 아닌 use가 쓰인다.
그러고 보니 한국어에는 운동 경기에다가도 '하다'를 붙이기 때문에 영어 직역투로 '축구를 논다' 이렇게 말하면 전형적인 번역투 비문이 된다. 실제로 한국어 배우는 영어권 사람이 초창기에 자주 저지르는 실수라고 함.
영어로는 산은 높다(high)고 표현하지만 건물은 마치 사람의 키처럼 tall이라고 표현한다.
open/close(열다, 닾다, 펴다, 덮다, 다물다, 감다...)라든가 wear(입다, 쓰다, 끼다, 신다...)의 표현 차이는 그야말로 판타지 수준.

같은 의미를 전달하더라도 단어와 단어가 결합하는 선호도는 언어에 따라 편차가 꽤 큼을 알 수 있다.
학부 시절엔 이런 생각은 혼자 머릿속에서나 해야 했는데, 여기 와서는 언어 현상에 대한 생각을 과 친구들이나 교수님과 마음껏 주고받을 수 있어서 참 좋다.
학부를 전산학 전공한 것도 후회 없고, 대학원으로 지금 과에 간 것도 잘 갔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28 08:52 2010/10/2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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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문맥 의존성

1.
- 나는 네가 좋다.
- 라면은 삼양이 맛있다.

2.
- 나는 학생이다.
- 나는 자장면이다. (너는?)
- 물은 셀프이다. -_-;;

3.
- 영수는 철수도 못 이긴다.
- 철수는 영희도 못 이긴다. (누가 누구보다 힘이 세다는 건지?)

이런 예를 통해 알 수 있듯, 한국어는 정말로 문맥 의존적인 언어이다.
보조사 '는/은'은 주격 조사처럼도 쓰이고 목적격 조사처럼도 쓰인다. 그래서 3번 같은 모호성도 발생하게 된다.
보어도 주어와 동일한 '이/가' 주격 조사를 받는다는 것과, '와/과'가 and뿐만이 아니라 with로도 해석된다는 것도 난해한 점.

국어 문법 수업을 들으면, 국어 문법에 대해서 용법을 칼같이 정확하게 알게 되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증명을.. 듣는 게 아니라,
이런 건 학계에서도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고 답이 없고 100% 떨어지지 않는다는 식의 말만 주로 듣게 된다. ㅜ.ㅜ

결국 한국어는 형태론이나 통사론을 넘어서 화용론까지 가서 각 단어의 의미와 문맥을 파악하지 않으면
제대로 구문을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기계적인 형태소 분석으로는 대략 GG.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는 C/C++이 문맥 자유 문법이 아니라 문맥 의존 문법이어서 구문을 분석하기 다소 난해한 언어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AA bb(cc); 가 각 토큰의 의미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함수 선언도 되고 객체 선언도 되며, (A)+B에서 A가 typecasting도 되고 피연산자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영어로 치면 and, with, to 같은 전치사의 의미가 뒤에 받는 단어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의미가 뒤죽박죽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헐..
한글은 배우기 쉽고 기계화에 용이한 문자이다. 그러나 한국어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꽤 배우기 어렵고 의미를 분석하기 난해한 언어일 것 같다.

영어는 전에도 언급했듯이, 음운 체계와 어순이 완전 이질적인 것과 언문 일치가 막장이어서 처음에 철자법이 좀 까다로운 것만 빼면, 언어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언어가 아니다. 굴절도 다른 유럽 언어들만치 대책 없는 수준이 아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영어는 어떤 경우에도 모호성이 없고 만능이냐 하면 그런 것도 물론 아니지만..!
(영어의 전치사 용법도 요즘은 많이 문란해져 있긴 하다)

한국어의 문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영어 문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말:

1.
- 나는 철수를 만났다 / 나는 철수와 만났다
하나는 그냥 우연히 마주쳤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의도적으로 볼일이 있어서 약속을 잡고 만났다는 뉘앙스를 더 풍기게 되지만, 용법이 100%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다.

- 나는 연세대를 갔다 / 나는 연세대에 갔다
하나는 그냥 그 장소로 이동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이 학교에 입학했다는 뉘앙스를 더 풍기는 것 같다.

2.
"물은 셀프"를 콩글리시가 아닌 실제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하는지 아시는 분? ㄲㄲㄲㄲ
하긴, 미국은 사람이 서비스를 하는 업종을 이용할 땐 팁을 주는 게 당연시되고 있고 그게 아니면 주유조차도 운전자 자율 주유가 보편화해 있는 나라이다 보니, 저런 표현 자체가 문화 특성상 별로 필요하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리나라의 아파트나 고속도로와 100% 정확하게 대응하는 영어 표현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아울러 저런 문화적 차이 때문에, 미국은 긴 시간 동안 꼼꼼한 사람의 일대일 서비스가 필요한 이발/미용업의 이용료가 굉장히 비싸다고 들었다. 듣기로 성인 남자 기본컷이 20$가 넘는다고..;;

Posted by 사무엘

2010/10/05 10:59 2010/10/0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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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어와 영어가 서로 정반대인 관념 중에 대표적인 예로는 부정문에 대한 응답 방법이 있다.

"너 숙제 안 했지?"에 대한 대답이 한국어는 "아냐, 했단 말이야."인 반면, 영어로는 "Yes, I did"로 긍정 의문에 대한 대답과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관점에서는 거 참 희한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어에도 무조건 상대방의 말 자체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뜻하는 감탄사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Then Sarah denied, saying, I laughed not; for she was afraid. And he said, Nay; but thou didst laugh. (창 18:15) 안 웃었는데요. / 아냐, 너 아까 방금 분명히 웃었어.

킹 제임스 성경은 yes/no보다 yea/nay(예이/네이)가 훨씬 더 많이 쓰인다. 마 5:37의 "오직 너희 의사 표시는,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라."에서도 yea/nay이다.

2.
이에 덧붙여 또 중요한 차이로 '가다'와 '오다'가 있다.

"너 빨리 이리 와 봐."에 대한 대답으로 한국어는 "지금 가는 중이야"인 반면, 영어로는 "I'm coming"이다.
영어는 남이 내게 come이라고 지시를 내렸으니, 나는 거기에 순응하여 그에게 come한다고 기계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한국어의 '오다'는 오로지 나에게, 화자에게 상대방이 움직여 가까이 간다는 뜻이다. '오다'의 주체가 '나'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come이 성경 번역에서도 굉장히 어려운 요인 중 하나가 된다. 문자 그대로 죄다 '오다'라고 번역하면 우리말 어법에 어긋나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같은 영어 성경 중에서도 킹 제임스 성경은 come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걸 go나 enter로 바꿔 버린 경우가 적지 않다.

3.
이렇게 단어 자체에 '나'라는 객체가 수반된 비슷한 예로는 불완전 동사인 '달다'가 있다.
sweet나 equip 말고 give이다. '다오', '달라', '도(사투리-_-)'로만 활용되는 그 이상한 단어 말이다.
불완전 동사가 '가로다', '더불다', '달다', '데리다' 말고 또 뭐가 있더라?
이 '달다'는 '주다'와 의미상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남으로 하여금 특별히 '나에게' 뭔가를 주기를 원한다는 아주 이기적인 뉘앙스로 쓰인다. '주다'라고만 하면 내가 남에게 베푸는 뉘앙스가 풍기지 않는가?

"저 사람에게 빵을 다오"라고 하면 뭔가 이상하고 어색하다. "저 사람에게 빵을 주게/주시오/주세요"라고 하거나 아니면 "내게 빵을 다오", "우리에게 빵을 달라"라고 해야 말이 된다.

흔히 한국어는 압존법이란 게 있을 정도로 최대한 청자 위주로 언어가 구성돼 있다고들 한다..
내가 언급하는 사람이 나보다 높더라도, 청자보다는 낮은 사람이라면 반말이 허용된다.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오십니다"가 아니라, "할아버지, 아버지가 옵니다"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오다-가다'의 관계를 살펴보면, 한국어도 청자가 아닌 나 위주, 화자 위주의 사고방식이 배인 것도 분명 있다. 그래서 '달다' 같은 단어도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친분 사이가 아닌 공식 석상에서는 압존법이 꼭 적용되는 것도 아니라는데? KBS 한국어 능력 시험 공부하면서 교재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있다. 가령, 할아버지/아버지가 아니라 사장/과장이라거나(자기는 대리-_-) 할 때 말이다. 이래서 한국어는 어렵다. -_-;;

끝으로, 성경 번역에서 유명한 토착화 표현을 덧붙이며 글을 맺는다.

(1) "누가 너를 데리고 오 리를 끌고 가면 십 리를 가 주어라"(마 5:41)가 영어로 원래 무엇인지가 아는가? 1 mile과 2 miles이다. 5리(약 2km)가 1 마일(약 1.6km)보다는 약간 더 긴 거리이다. ^^;;
(2) "장가 가고 시집 가기"는 영어로는 "결혼하거나 혼인 당하거나"(marry / be given in marriage / be married to)가 된다. -_-;; 성경에서 여자가 시집 가는 건 언제나 marry의 수동태로 표현되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8/10 08:37 2010/08/1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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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의 발음

본인은 ‘효과’(effect)를 ‘효꽈’가 아닌 글자 그대로 발음하는 것을 반대한다. TV에서 방송인들이 애써 ‘효과적으로’--아나운서랍시고 교육을 그렇게 받았을 테니--라고 말하는 걸 듣노라면 너무 어색하다.

마치 ‘김밥’하고 비슷한 예인 것 같다.
저걸 글자 그대로 발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부 한결같이 ‘김빱’이라고 읽는다.
왜냐고 물으면 답이 없다. ‘비빔밥’, ‘볶음밥’, ‘곰국’, ‘짜장밥’ 같은 비슷한 예와 비교해 봐도 본인의 국어 실력으로는 원칙 내지 알고리즘을 못 찾겠다.

원칙을 못 찾겠다는 말은, “이렇게 발음해야 한다”라든가 “저렇게 발음해서는 안 된다”는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는 뜻. 이렇게 그냥 정하기 나름인 규칙에 대해서는 그냥 둘 다 허용하거나, 많이 쓰이는 편을 들어 주는 게 맞다. 마치 ‘짜장면’처럼 말이다.

그럼, ‘효과’라는 단어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말에서 ‘과’가 ‘꽈’로 변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 소리나는 경우는 가장 먼저 and를 뜻하는 조사일 때이다. 이때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절대로 경음화하지 않는다. 무성음 받침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일어나는 경음화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리고 한자어의 경우, 먹는 음식을 뜻하는 果 내지 菓(과자)일 때도 변하지 않는다. 수정과, 한과, 유과 등.
그 반면, 부서나 학문 단위를 뜻하는 科나 課는 반드시 변한다. 심지어 단독으로 등장할 때도 경음화한다. 대학교 용어인 ‘과대’(과 대표), ‘과사’(학과 사무실)에서 과는 100% 꽈로 바뀐단 말이다.

또한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라 일의 결과를 뜻하는 비유적 의미의 果도 경음화하는 경향이 있다. 비록 결과라는 단어 자체는 ‘결꽈’가 되지 않지만 성과는 ‘성꽈’로 바뀐다. 본인은 효과가 ‘효꽈’로 바뀌는 것도 성과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며, 동음이의어 식별을 위해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무리하게 글자 그대로 읽는 걸 반대한다.

본인이 논리 전개 과정에서 넘겨 짚은 게 있으면, 국어 고수들로부터 지적를 환영하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12 17:53 2010/07/1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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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의 언어

http://blog.naver.com/tjddodudn/40091601772

"나의 샤아카짱은 이렇지 않다능! 나의 샤아카짱은 남편이 오면 상냥하게 웃으며 맞이해 주더라는!"
현 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일본에게 물질적· 정치적으로 지배 당하던 20세기 김 첨지가
일본에게 문화· 정신적으로 지배 당하는 21세기 오타쿠로 변모한 순간이다.
좀 오래 된 만화이긴 하지만 작가의 기발함에 정말 빵터졌다. ㅋㅋㅋㅋㅋ

'축제'는 일본식 한자어이고 불필요하게 '의'(の) 남발하는 것도 일본어 번역투이고..
본인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지식을 적지 않게 접해 왔지만, '오타쿠 말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전혀 듣지 못했다.
개나 소나 '-군', '-짱' 붙이고 "-하더라는!"이라고 끝나는 말투는 도대체 어디서 유래된 걸까? 이거 완전 오타쿠의 상징이 된 문체인데, 일본어에 저런 표현이 있나? =_=;;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본인은 그게 무척 궁금하다.

그런데, 아동 문학가이자 국어 순화 운동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특히 일본어 번역투 추방의 최전방에 계셨던 어떤 어르신의 성함이 '이 오덕'이었으니! ㅎㄷㄷㄷㄷㄷㄷ ㅠ.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은지? (2003년에 고인이 되신 분이다.)
자기 주장을 워낙 많은 곳에다 뿌렸었기 때문에 본인은 어렸을 때부터 저분 글을 중학교 방학책에서도 보고, 새마을호 기내지 레일로드에서도 보고 지냈다.

본인에게 오타쿠라고 하면, 뚱하고 못생긴 외모에 일본어만 겁나게 잘 하고, 주변의 이성으로부터는 전혀 감흥을 못 느끼는 반면 맨날 자그마한 모바일 기기로 일본 망가(manga)에 나오는 미소녀-_-들 보면서 하악하악 모에 하는 폐인이 바로 떠오른다. -_-;; 거기서 좀더 중증으로 도지면 미소녀 인형에다 코스프레까지 구해 입고...
그런데 우리나라에 실제로 저 정도인 친구가 있나? 오타쿠에 대해서도 이미지가 상당수는 희화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TV 드라마에서 사투리 쓰는 사람은 꼭 흑인만큼이나 못 배운 하류층 이미지로 설정되는 것처럼 말이다.

차라리 철도 덕후야 실존한다.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이 블로그의 주인장부터가 자타가 공인하는 골수 철도 덕후 말기이다. 하지만 일본 문물에는 별 관심이 없다. 딱 하나 개그만화만 빼면 말이다. ㅋㅋㅋㅋ
처음에는 1기 4화 종말편을 보면서 "뭐야 완전 또라이 아냐 역시 쪽바리들 문화는 저질이야" 그렇게 넘어갔는데.. 자꾸 또 보게 되고.. 중독성 하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O<-<

끝으로, 이건 오타쿠 언어라기보다는 오역이나 초월 번역에 가까운 표현이다만, '크고 아름다운', '충공깽' 같은 표현도 배짼다. 요즘 철도역 플랫폼 상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크고 무거운 짐"이 있는 승객은 에스컬레이터 대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는 방송이 주기적으로 흘러나온다. 그런데 이게 환청처럼 "크고 아름다운 짐"으로 들릴 정도.. 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0/06/05 08:39 2010/06/0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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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지간하면 이제 좀 ‘짜장면’을 표준어로 삼자

‘짜장면’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근거가 뭔지 본인은 잘 알고 있다. ‘짜장’은 원래 중국어에서 유래된 외래어이고 우리말 맞춤법은 외래어 표기를 할 때 극히 일부 듣보잡 언어를 제외하면 된소리를 쓰지 않고 있는데, 된소리로 발음된다고 다 된소리를 써 버리면 버스도 뻐스로, 게임도 께임으로 바꿔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짜장이 버스나 게임 같은 급의 생소한 외래어라고 생각하는가? 짜장이 외래이어이면 빵, 가방, 담배, 구두 같은 단어도 몽땅 외래어이다.
물론 순우리말 ‘짜장’이라는 단어는 부사로, ‘참, 과연’.. 즉 영어로 치면 yea나 indeed 같은 뜻이 별도로 있긴 하다. 쉽게 말해서 창 3:1의 Yeah, hath God said를 “하나님께서 짜장 그렇게 말씀하시더냐?” 처럼 옮겨도 된다!
하지만 이제 그 짜장과 저 짜장은 한국어에서 동음이의어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이고 오히려 후자의 뜻이 훨씬 더 영향력이 있다. 게다가 짬짜면 같은 응용(?)까지 있다.

이제 와서 너무나 비현실적인 단어로 전락한 ‘자장면’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자장면에다가 외래어 표기법을 갖다 붙이는 건, ‘먹거리’라는 말이 조어법에 어긋난다거나 셈씨(數詞) 뒤에다가 님 붙인 형태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틀렸고 ‘하느님’이 맞다는 식의 비약인 것 같다. 고유명사를 만드는 건데 부르기 쉽고 최소한의 어원적 근거만 있으면 됐지, 그런 것 따질 필요까지는 없다.
(사실, 고유명사 중에 쌍용도 틀린 말이다. 청룡, 황룡 할 때처럼 쌍룡이 맞다. ^^ 하지만 고유명사인데 뭔들 어떠하겠는가. 오뚝이인들 어떻고 오뚜기인들 어떠하리?)

2. ‘석/서/세’, ‘넉/너/네’ 구분하지 말고 그냥 ‘세’, ‘네’로 통일하자

‘종이 세 장’이라는 표현은 틀렸다는 걸 아는가? ‘석 장’이라고 해야 맞다.
정말 아무 쓰잘데기 없고 의미 없는 구분이다. 괜히 사람 헷갈리게 만들고 한국어를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다. ‘서너’(3 or 4) 같은 예외만 인정하고, 뒤에 단위(말, 개, 장 등등)에 따라 숫자의 표현이 바뀌는 일이 없게 하는 게 더 낫겠다.

3. ‘째’와 ‘번째’ 좀 구분해서 쓰자

‘째’는 영어로 치면 정확하게 n-th(순위, 서열)에 대응하며 (첫째, 둘째, ..., 열한째, 열두째),
‘번째’는 n-th time(반복되는 일의 횟수)에 대응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즉, 쓰임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 이 선수가 둘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2등)
- 이 선수가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두 바퀴째)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쓰임이 굉장히 문란해져서 둘 다 무조건 ‘번째’가 쓰이며, 순위인지 횟수인지는 그냥 문맥으로 대충 구분되는 중이다. ^^;;;; '째'는 명사형으로 "첫째(아이)를 낳았다" 정도에서나 쓰는 것 같다.

4. ‘기존’을 제발 오· 남용하지 말자

이 단어의 쓰임을 완전히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은 곳은 본인이 보기에 IT계이다. 하도 새로운 기술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다 보니 자꾸 옛날 것과 비교를 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기존’은 말 그대로 ‘이미 존재하는’이란 뜻이다. ‘현존’이나 ‘실존’처럼 ‘하다’를 붙여 용언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기존이 ‘이전’, ‘예전’ 같은 뜻으로 막 남발되고 있고, 오히려 ‘기존하다’라고 용언으로는 거의 안 쓴다. “기존에 있던 것은 버리세요” ㅋㅋㅋㅋ 기존이 무슨 뜻인지 안다면 저 문장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 수 있다.

5. ‘커녕’은 조사(토씨)이다

커녕은 ‘도’, ‘조차’와 동일한 조사이다. “사람커녕 쥐새끼 한 마리 없다”라고 해도 원래 맞다. 커녕을 강조하기 위해서 쓰이는 표현이 ‘는(은)커녕’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사람은 커녕 쥐새끼 한 마리 없다”라고 커녕을 거의 부사처럼 띄어서 써 주고 있다. ^^;;

6. ‘다르다’와 ‘틀리다’를 제발 구분해서 쓰자

“ ‘다르다’는 ‘틀리다’와는 의미와 쓰임이 다른 단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르다’라고 써야 할 곳에 ‘틀리다’라고 쓰는 것은 틀립니다/틀렸습니다.”

‘틀리다’는 보통 ‘틀렸습니다’라고 과거형으로 많이 쓰이다 보니, 현재형에다가 ‘다르다’라는 의미가 자꾸 들어가려는 모양이다.

7.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은 ‘더 이상’도 ‘덜 이하’가 잘못된 것만큼이나 아주 잘못된 표현이다. 김 화백의 유명한 만화 대사이기 때문에 원문 그대로 인용할 뿐, 본인 역시 내가 직접 쓰는 글에는 ‘더 이상’이라는 말을 절대 쓰지 않는다. ‘더는’, ‘더’, 또는 하다못해 ‘그 이상’라고 써야 맞다.

8. ‘김밥’의 표준 발음은 ‘김빱’이 아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할 것이다. 본인도 지금까지 김밥을 ‘김밥’이라고 그대로 발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곰국, 비빔밥은 다 국과 밥이 된소리로 변하는 반면 짜장밥, 보리밥, 볶음밥은 예사소리 그대로이다. 곰국이 곰고기로 만든 음식이 아니듯이, 재료가 아니라 조리 방법을 나타내는 단어는 된소리이고 단순 재료 합성일 때는 예사소리인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비빔밥과 볶음밥의 관계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볶음밥은 단순히 둘째 음절이 '끔' 된소리여서 셋째 음절이 예사소리로 유지된 것일 뿐이다.

즉, 된소리로 바뀌는 건 거의 랜덤인 듯하다. 이러면 사람들에게 왜 굳이 김빱이 아니라 김밥이라고 발음해야만 하는지를 설득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하나 덧붙이자면 햇님도 잘못된 말이고 해님이 맞다. 우리말에서 사이시옷은 정말 울트라 캡숑 어려운 개념이며, 단어 구분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주범이다.

9. ‘쩜’과 ‘짜’

이미 국어에서 별도의 변별 요소로 널리 쓰이고 있는 ‘짜’(특정 글자를 강조하는 접미사)와 ‘쩜’(소수점의 명칭)이 별도의 표기로 필요하다고 생각함. ‘자’는 단어의 끝에 등장하면 字보다는 者의 의미로 훨씬 더 강하게 쓰이며, ‘점’은 point보다는 score의 의미로 더 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서 님짜는 존칭을 나타내는 접미사라기보다는 완전한 단어의 일부입니다.”
“저희 어머니의 성함은 김 순짜 애짜입니다.”
“저 선수의 점수는 이십오쩜 오점입니다.”

10. ‘여덟’

8을 뜻하는 ‘여덟’은 먼 미래엔 아예 ‘여덜’로 철자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열에 여덟은” 할 때 ‘여덜븐’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있는가? 비슷한 예로 ‘돐’이라는 단어가 맞춤법이 바뀌는 과정에서 아예 ‘돌’로 퇴화가 확정된 적이 과거에 있었다.

북한에서 인명의 ‘희’를 아예 ‘히’로 바꿔 버렸듯이 말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의’를 제외하면 ㅢ를 ㅡ+ㅣ로 발음하는 경우 자체가 사실상 사라졌다. ‘띄어쓰기’만 해도 그렇다.

Posted by 사무엘

2010/05/18 07:25 2010/05/18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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