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발음 넋두리 외

오늘날 영어는 세계와 소통하기 위한 필수 매개체요, 좋든 싫든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예전에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지 싶은데, 난 그나마 한국어 "보다"야 영어가 세계어가 된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언문일치가 개떡인 점, 한국어와 구조가 너무 다른 점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 어려울 뿐이지, 그나마 그 정도 굴절이나 그 정도 불규칙은 다른 언어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다.

그 반면에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는 높임법이나 다른 복잡한 요인을 차치하고라도, 언어에서 기본 중의 기본인 대명사부터가 정말 답이 안 나오는 안습한 언어이다.;;

1인칭: '날다'의 활용형(나는)과 충돌이 있어서 '날으는'이라는 기형적인 활용형이 어쩔 수 없이 쓰인다. 나/내, 너/네도 은근히 헷갈리지 싶은데, '내'/'네'는 이제 발음 구분이 안 된다. -_-;; (영어도 I와 eye가 동음이의어이긴 하지만, 문제될 상황은 거의 없다)

2인칭: you를 딱부러지게 옮기지를 못해서 님, 너님, 회원님, 고객님, 선생님 등등등등...;; 아 골치아파. (뭐, 영어는 2인칭에 단· 복수 구분이 없는 게 아주 기괴하긴 함.)

3인칭: 관형사 '그'가 3인칭 인격체 대명사처럼 굳어져 버렸다. 조사 없이 단독으로 쓰인 건 너무 어색하다. '그녀' 문제는 우리말 운동 진영에서 전형적인 떡밥이기도 하고... (반대로 영어는 he/she 성별 구분 때문에 굉장히 불편하긴 함. 그래서 단수까지도 they로 싸잡아 표현하기도 하고.)

요컨대 한국어는 1인칭과 2인칭 대명사는 불필요하게 쓸데없는 호칭만 너무 다양하고 자잘하게 발달해 버려서, 아주 neutral한 표현 하나를 콕 집어 쓰기가 어려우며,
3인칭은 관형사 '그' 말고는 어휘 자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래서 가끔은, 하나님을 가리킬 때조차도 대놓고 you라고 깔끔하게 싸잡아 부르는 언어가 부러울 때가 있다. 불경스럽다고? 하나님은 그런 불경스러운 언어를 쓰셔서 절대무오 최종 권위 성경을 만드셨다! -_-;; 통념과는 달리, 킹 제임스 성경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가리키는 대명사(You, He)에 첫 글자 대문자 처리조차도 되어 있지 않다.

물론, 글 써 놓고 보니까, 뭐 영어도 만능은 아니어서 언어적인 flaw가 있긴 하다.
그래도 한국어는 대명사의 표현이 부족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옛날 사람들은 그런 대명사 없이 글을 어떻게 쓰고 의사소통을 어떻게 불편 없이 했는지 '무척' 궁금하다. 내가 선조들의 삶의 방식은 공부 안 하고서, 그저 한국어가 영어 번역투로 잘 대응하질 않아서 찌질하게 징징대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본인처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외국 장기간 체류 경험도 없는 사람은 글을 읽으면서 새로운 단어를 종종 접하곤 한다. 이 단어가 실제로 어떻게 발음되는지는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다. 뜻만 알면 되니까 발음 기호는 보지도 않고, 이 단어는 어렴풋이 이렇게 발음되겠지 하고 넘어갔는데.. 알고 보니 낚시였던 경우가 본인은 은근히 많았다.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와 대학원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하니, 공과 대학 수업은 다들 영어 강의로 물갈이되어 있었다. 몇몇 단어는 교수님의 발음이 이상한가 싶었는데, 사전을 찾아 보니 교수님이 맞고 내 짐작이 다 틀려 있었다. -_-;; 그도 그럴 것이 공대 교수들은 거의 다 영어권 국가에서 박사 받고 온 분들이니까.

다음은 내가 생각하던 틀린 발음과, 실제 맞는 발음을 나열한 것이다. 수 년째 잘못 알고 있던 발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단어를 실제로 입 밖에 내면서 외국인과 얘기를 주고받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suffice: 서피스, 서파이스 (surface 내지 office 때문에)
merely: 멀리, 미얼리 (were 영향)
duplicate: 더플리케이트, 듀플리케이트
Reagan: 리이건, 레이건
geek: 지크, 기크 (당연히 gee 영향)
obtain: 압튼, 옵테인 (certain 영향)
adjacent: 앧저슨트, 얻제이슨트

즉, 본인은 대체로 단모음 위주로 발음을 예상한 반면, 실제 발음은 장모음인 경우가 많았다.
G 다음에 I, E, Y가 오면 거의 다 ㄱ 대신 ㅈ으로 소리가 바뀌기 때문에 생물학 용어인 '게놈'도 영어식 발음은 '지넘'이지 않던가? 그런데 사전을 찾아 보면, ge... 단어 중에도 ㄱ 발음이 적지 않다. 결국 발음을 알아맞히는 건 복불복인가 보다. -_-;;

장모음 ea는 대부분이 그냥 '이'인데, 가끔 '에'(sweat)인 경우가 있고, great나 저 대통령 이름에서처럼 '에이'가 되기도 하며, create에서는 아예 '이에이'라는 긴 발음이 된다. 그래서 프로토스 기본 유닛인 Zealot도 영어 발음은 '젤럿'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완전히 '질럿'으로 알려져 있다. ㅋㅋ

어찌 보면, 이런 판타지 같은 정서법을 끼고 사는 영어권 사람들이 참 골치아프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adjacent는 프로그램 개발 관련 기술 문서를 읽느라 중학교 시절부터 알고 있던 단어인데, 본인은 10년이 넘게 '앧저슨트'라고 마음속으로 읽어 왔다. -_-;;

그래서 다국적 컴퓨터 회사인 Asus는 '에이서스'와 '아수스' 사이에서 발음이 난립하고 있다.
data는 '데이터'라고 읽지만, 툼 레이더의 여걸 Lara Croft는 '라라 크로프트'이다. '레이러' 따위가 아니다. -_-;;
영어권에는 단어를 발음하는 큰 줄기가 단모음식 아니면 장모음식으로 갈라져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워낙 미국물을 좋아해서 영어 발음도 철저하게 아메리칸식으로 공부해 왔지만,
영국에서는 진짜로 모음+R은 해당 모음을 장음화만 하고 혀는 안 굴린다. 단모음 A를 ㅐ로 전설모음화하지 않으며, ㅏ로 있는 그대로 발음하는 걸 좋아한다. 오오..;;
무엇보다도 영국에서는 모음+T+모음 사이에서 T가 R로 안 바뀐다. water는 그대로 워터이지, 워러로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F나 TH 같은 발음은 동일하며, 억양도 동일하기 때문에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가 무슨 표준 베이징 중국어와 광동어의 차이만치 심하기라도 한 건 절대 아니다.
사실은 킹 제임스 성경을 읽으면서도, 이걸 실제로 소리내어 읽는 소리는 어떻게 날까 적지 않게 궁금했다. 이놈의 thou, thee, -eth 어미를 원어민이 실제로 읽는 걸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며, KJV가 그렇게도 운율감이 좋고 읽기 편하다고 하는데 내가 그걸 실감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던 것이다.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해서는 의문이 좀 해소되어, 덜 궁금하다.

공대는 그렇다 치고 문과대 쪽으로 가면,--난 인문계와 이공계를 두루 섭렵하는 협동 과정 소속 ㅋㅋ-- 교수님들이 본인에 대해, 공대 출신이다 보니 문과 출신만치 체계적인 글쓰기 스킬은 부족한 감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그런데 난 공대 출신 치고는 사실 문과 기질이 강하며, 정보 올림피아드 입상 실적만 아니었으면 지금과는 완전 딴판의 진로를 갔을 사람이었다...... 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래도 진짜 문과 교수님들이 보기에는 본인 같은 사람도 그냥 영락없는 공돌이인가 보다. ㄲㄲㄲㄲ

그리고 사실은 공대도 대학원에 가면 비록 성격이 문과와는 좀 다를지언정, 글쓰기가 많으며 심지어 랩미팅에 대비한 프레젠테이션도 많다. 실험을 해야 하고, 돈이 많이 든다는 특성상 펀딩을 받으려면 눈에 보이는 연구 실적이 많아야 하고, 고로 대학원생은 석사 들어가자마자 논문을 정말 미친 듯이 써 댄다. 그것도 모국어도 아니고, 이공계의 학술 공용어인 영어로 쓴다. 논문에 이름 실린 경력이 연예인으로 치면 filmography 같은 거다.

그 바닥은 랩생활을 하기 때문에, 공동 연구의 공동 저자로 낄 기회도 많다. 그러면서 이공계 논문 잘 쓰고 발표 잘 하는 법 같은 테크닉을 랩생활 하면서, 혹은 대학원 수업을 통해 공부한다.

- 단독 저자이더라도 논문의 1인칭 주어는 We이다.
- 결론은 Conclusion이 아니라 반드시 Conclusions라고 복수형으로 쓴다.
- 세속 글쓰기와는 달리 성 구분 없는 3인칭 단수를 (s)he 처럼 쓰지 말라. 차라리 they로 대체하거나,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다른 어휘를 고르거나 아예 문장을 다른 형태로 다시 써라.

이런 식의 팁이 엄청 많다. 이런 격식 있는 글쓰기 스킬이 하루 아침에 숙달될 리가 없으니, 지도교수한테 무진장 깨지면서, 또 아마도 랩 선배한테 코치를 가장한 갈굼도 당하면서 익숙해지는 거겠지...?

그나저나, 영어는 숫자 형태로 된 날짜나 시각을 말할 때 단위를 붙이지 않고 숫자만 연달아 읽는다.
그러면 “좀 있다 40분에 나가자. (지금이 6시 20분이면)” / “졸업식은 15일이다. (이 달 15일)” 이런 말을 영어로 표현하는 방법은 없나? 주변의 영문과 출신 선배에게 물어 보니, 자기도 그 생각은 미처 안 했는데 아마 방법이 없는 듯하다고 대답했다.
그냥 무조건 “20분 뒤에 나가자” / “이번 주 금요일이다” 같은 식으로 형태를 바꿔야 하는지 궁금하다. at the n-th minute, on the n-th day 이런 표현은 안 쓰는 듯?

Posted by 사무엘

2011/09/03 08:35 2011/09/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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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1/09/03 14:46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사무엘 2011/09/04 07:52 # M/D Permalink

      그건 URL을 UTF8로 인식하느냐 예전의 2바이트 인코딩으로 인식하느냐 하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잡음입니다. 혼동의 여지를 원천봉쇄하기 위해서 그냥 앗싸리 모든 파일명은 영문과 숫자로만 쓰라고 권고하는 것이죠.
      본문과 관련이 없는 질문· 문의는 본문의 댓글보다는 제 메일이나 그냥 차라리 방명록을 이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2. 인민 2011/09/04 13:00 # M/D Reply Permalink

    1. ㅐ와 ㅔ 구분은 안습... 묻혀진 ㅐ에게 묵념. 그래서 요즘 한국에서 말 터놓을 수 있는 상대에게는 1인칭을 '네(내 의 실제발음)'로, 2인칭을 중국의 ?처럼 '니'로 발음하죠. 단지 저는 '너가' 로 발음할 뿐. 진짜로 중국탓일까요?

    2. 영어 r 발음은 접근음이기 때문에 모음처럼 발음됩니다. 비슷한 예로 영어권에서는 일찍이 깨닫고 자음으로 취급했지만 아시아 특유의 음성학 때문에 모음처럼 취급되는 w나 j가 있겠죠. (요나흐 : jonah)

    1. RC 2011/11/22 13:19 # M/D Permalink

      '네'를 '니'로 발음하는 건 서남 지방 방언의 영향입니다.

  3. 삼각형 2011/09/04 00:06 # M/D Reply Permalink

    내가 네 것을 썼니? 같이 내와 네는 문맥으로 구분하는 것 뿐이 답이 안 나옵니다. 저는 하려고 노력하지만 ㅐ와 ㅔ발음 구분을 명확하게 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지라.

    저는 '그'의 경우 '그 사람' 정도로 쓰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 여자'로 쓸 수도 없고 난감하네요.

    요즘은 사전이 발음도 나와서 발음을 모를 경우 발음기호도 참고해 가며 들어보고 있습니다. thou, thee 같은 것도 사전으로만 들었죠.

    영어의 he, she의 경우 우리나라의 은,는,이,가,을,를 처럼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은/는' 같이 's/he' 따위로 표현하는 모양이더군요. (사람이름)야, 같은 것도 (사람이름)이야로 쓸지 아닐지도 종성 여부에 따라 달라지니 컴퓨터가 자연어를 처리할 때 꽤나 골아파지는 부분입니다.

    한국어도 격식 있게 글을 쓰려면 단어 선택이나 문체에 주의해야 합니다. 나보다는 필자 따위의 표현이나 직함을 쓰고, 문장 끝도 ~ 하다는 것이 명확하다. 라던가, ~으로 밝혀졌다. 따위와 같이 괜시리 늘여주고 말입니다. 이런 건 뉴스에서 많이 써서 익숙할 것 같습니다.

  4. 사무엘 2011/09/04 07:49 # M/D Reply Permalink

    의견 감사합니다. 저도 ㅐ, ㅔ는 생각만 해도 너무 답답한 거 있죠.
    구분이 안 돼서는 안 되는 음운이고 옛날에는 분명히 달랐으니까 지금까지 다른 표기가 이어져 오는 것 아니겠어요(아래아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시절에 이미 멸ㅋ종ㅋ).

    본문에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만,

    - KJV의 영어는 현대 영어보다야 제약을 덜 받는 편입니다. 2인칭이 thou/ye 구분이 있고 굴절도 더 명확하였으며, 그때는 he라고만 써도 여자 차별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안 하던 시절이었으니.. ㅋㅋ

    - 독일어도 동일한 S/sie가 2인칭과 3인칭을 모두 받는 특이한 케이스입니다만, 마치 eye is와 I am처럼 동사가 굴절되는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대부분 구분됩니다. '네/내'만한 판타지는 아니지요.

  5. http://singleheart.myid.net/ 2011/09/04 18:37 # M/D Reply Permalink

    3인칭 대명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영어의 영향 같습니다. 우리말은 원래 중복을 그렇게 꺼리지 않았고, 사실 요즘도 '그'나 '그녀'는 글에서나 쓰지 말할 때에는 안 쓸 겁니다. 예전에는 '그 XX(분, 사람, 자 등등)'라고 했을 말을 요즘 글에서는 그냥 '그'로 쓰고 있죠.
    영어가 문법은 다른 유명한 유럽어보다 간단한데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표기법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나라나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특정 기관이 언어를 통제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표준어가 바뀌는 데 수십년씩 걸리기는 하지만, 수백년 동안 표기가 안 바뀌는 영어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1. 사무엘 2011/09/04 21:41 # M/D Permalink

      중복을 무척 싫어하고 대명사를 좋아하는 영어의 습성은 뭐랄까 포인터를 좋아하고 call by value보다는 call by reference를 좋아하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습성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ㅎㅎ 말씀하신 것처럼, '그'/'그녀'는 확실히 번역투이고 문어체에서는 그렇게 잘 쓰이지는 않는 게 사실이네요.

      영어는 come(코움?), do(도우?), have(헤이브?) 등 영어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 단어들부터가 철자 따로 발음 따로 제멋대로입니다. =_=;;;

  6. 소범준 2011/09/05 18:49 # M/D Reply Permalink

    1. 솔직히 킹제임스 성경의 영어가 현대 영어보다 더 쉬운 게 2인칭의 단수 복수 구분 때문이랄까요.
    솔직히 지금 영어는 '여기까ㅎ지ㅎ' 수준으로 발전을 멈춘 듯 싶네요. 그래서 저는 정말 킹제임스 성경의 영어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2. 저의 대학 영어 발음 교재를 보니 '지금의 발음 습관이 후에는 고치기 어렵게 된다.'고 하거든요.
    저도 영단어의 발음을 정확히 몰랐을 땐 제 식대로(!) 했는데 나중에 정확한 발음을 알면 글에 쓰신 것처럼
    대박 안ㅠ습ㅠ;;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는 대명사 면에서 볼 때 정말 한국어에 비하면 효율적인 언어죠. 다만 지금의 경우 2인칭 구분이 안되는 것만 빼고요.

    1. 사무엘 2011/09/06 09:28 # M/D Permalink

      영어와 관련해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셨군요. ^^

      킹 제임스 영어는 현대 영어보다 더 활발한 동사의 굴절이 한국어로 치면 마치 조사 같은 역할을 해 줘서 더욱 자유로운 도치도 가능하게 해 줍니다. Ye/thou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3인칭 단수 동사 활용(-th)과 명사의 복수형(-s)도 구분이 되죠.

  7. 특백 2011/09/11 10:51 # M/D Reply Permalink

    thou 자체가 원래 존칭을 갖고 있지 않나요. 그때는 보면 '서문을 대심하여 예임스[Iames ㄲㄲ]왕께 바치는 헌사'에서도 다 you로 썼는데 성경의 존엄성을 위해 고어를 살려서 (영국식 어투로 읽는 맛도 있으니까 KJB 좋죠 ㄲㄲ)

    다만 몇가지는 S+V+O 말고 V+S+O 같은 구절 몇개도 있어서 처음 이해하기에 조금 어렵다...
    가 있지만 뭐 저야 '처음' 이 아니니까

    1. 사무엘 2011/09/12 00:26 # M/D Permalink

      무슨 말인지 저도 바로 알겠습니다. KJV에는 좀 아리까리한 도치도 좀 있어요.
      그래도 주격도 되고 목적격도 되는 한국어의 보조사의(은/는/도 같은 것) 아리까리함보다 더하겠습니까.

      C/C++ 언어를 컴파일할 때 < > 토큰이나 () 토큰의 의미를 까려면 결국 문맥을 알아야 (context free grammar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법) 하듯,
      저런 것들은 결국 문법이 아니라 어휘와 화용 계층으로 가야 제대로 분석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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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진지한 우리말 관련 글.

여러분은 중국이나 일본의 고유명사 한자음을 어떤 식으로 표기하는 걸 선호하는가?
예를 들어 타이 / 태국, 타이완 / 대만, 베이징 / 북경 같은 것.

a. 우수한 표음문자인 한글 뒀다 뭘 하나. 여타 유럽 언어와 마찬가지로, 너무 힘들지 않은 한도 내에서 최대한 현지음에 가깝게 읽어야 한다. 그게 속 편하고 일관성도 있다.
b. 엄연히 한국식 한자 독음법이 있는데 왜 그런 헛짓을 하나? 우리식으로 읽어야 한다.

우리말은 a와 b 표기가 굉~장히 문란한 상태이다. 이런 난잡한 실태를 한국어 학습자 외국인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걔네들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난감할 지경. 다만, 영어에도 '씨저'와 '캐자르'(카이사르)가 공존하듯이, 비슷한 맥락의 표기 바리에이션이 없지는 않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본인이 어렸을 때 보던 각종 백과사전류의 책에는 “신해혁명 이전의 중국 인명· 지명은 b대로 표기하고, 그 이후의 것들은 a로, 다시 말해 현지음으로 표기한다.” 같은 황당한 절충안(?)까지 명시되어 있었다.

본인은 a안을 선호한다. 걍, 장 제스, 쑨 원, 루 쉰, 마오 쩌둥, 덩 샤오핑이라고 쓰면 편하겠는데. -_-
이상하게 배우 이름은 현대인이라고 해도 전부 b안이 굳어져 버렸으니 원..;; 이연걸, 성룡처럼.
똑같이 라틴 알파벳으로 쓰인 유럽 인명이라고 해서 그걸 죄다 영어식으로 읽는 건 실례이고 무식한 짓 아닌가? (적당한 예가 당장 생각이 잘 안 나네) 본인은 한자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한다.

또한 중국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의 인명과 지명은 똑같이 한자인데 우리식으로 읽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KJV가 출간되기도 전 시대를 산 엄청난 옛날 인물이지만 중국의 '서태후'와는 달리 언제나 현지음 표기로 통용된다.
일본인 중에서 우리식 표기가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은 내 기억으론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밖에 없다. 일왕 히로히토? 데라우치(일제 강점기 총독)? 우리식 한자를 내가 알 게 뭐야. ㅋ

일본은 지명도 비슷한 상황이어서, 동경(도쿄)과 대마도(쓰시마) 말고 우리식 한자음이 널리 통용되는 곳은 거의 없다. 대판이라고 적으면 오사카라고 알아들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물론, 일본어는 훈독이라는 복병 때문에 애시당초 현지음 표기가 더 보편화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처럼 한자 문화권이라고 해도 현지음 표기는 그냥 익숙해지기 나름일 뿐이다. 유럽, 프랑스, 이탈리아를 놔두고 굳이 구라파, 불란서, 이태리를 고집할 필요가 뭐가 있나? 중국에 대해서도 그렇게 현지음으로 부르면 된다.

그리고 어느 나라 인명이든 현지음으로 적다 보면 성과 이름은 저절로 서로 띄어서 적게 되고, 그 관행에도 더욱 쉽게 익숙해진다. 난 솔직히 그걸 원한다. (덧붙이자면, 현재 한국의 인명 체계 자체도, 성씨 수가 너무 적고 글자수가 짧아서 동명이인이 너무 많은 등, 무척 기형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여기서 본인의 경험 하나.
본인은 어릴적 영어의 음운 구조에 대해 배우면서 은사님으로부터 이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들리는 말을 한글로 절대로 적지 마라. 한글은 무조건 잊어버려라. 소리를 소리 그대로 익혀라”

그래서 한글을 너무 사랑하는 분들 중엔, 저 말에 발끈하여, 한글을 변형· 개량해서 외국어 발음을 받아적는 기호를 만들고 그걸 퍼뜨리고 다니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런 노력이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본인은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의 도움 없이 영어를 공부했다. 한글을 배제해야만, 영어를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는 “한국어 음운 구조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한글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다.

그런 것처럼, 중국어를 공부할 때도 어줍짢은 한국의 한자/한자어 지식일랑은 잊어버리고 그 말소리를 익히는 게 중요하다. 게다가 걔네들은 옛날 스타일의 번체자는 쓰지도 않는다. 현지음 표기는 그런 사고방식의 맥락에서도 더욱 바람직할 거라고 본인은 생각한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 본인과는 견해가 극단적으로 다른 분도 있다.
한글 찬양 진영(?)과는 반대로 한자 매니아들 중 일부는.. 중국의 인명· 지명을 중국 현지음으로 적는 걸 몸서리치게 혐오한다. 줏대 없는 짓, 미친 짓, 정신나간 짓, 사대주의 등 온갖 악담을 갖다붙이기까지 한다. 진짜로.. ㄷㄷㄷ;;

난 현지음 표기를 그 정도로 강경하게 고집하거나, 우리식 표기를 저 정도로 극단적으로 나쁘다고 매도하지는 않음. 절대적으로 옳은 게 없이 그냥 정하기 나름인 것에 너무 목숨 걸지는 않는다. 다만 어지간하면 현지음 표기 쪽을 대원칙으로 삼으면 좋겠다.

다음은 추가 잡설들.

1. 성 이름 표기 순서를 갖고도 열폭하는 분들이 있다. 이에 대해 본인은 한국식 이름의 로마자 표기랑, 아예 영어식 이름이라는 두 개념을 구분하자는 주의이다.
전자의 경우는 Kim Yongmook이라고 언제나 일관되게 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Samuel Kim이라고 쓴다.
일본은 로마자로 표기만 하는 순간에 성과 이름 순서를 알아서 싹 교환하는 반면, 중국과 한국은 그렇지 않다.

2. 중국의 사상가인 '공자'와 '맹자'는,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서양에서 라틴어 어미가 붙어서 Confucius와 Mencius라는 간지나는 영어 이름이 지어진 걸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거야말로 오늘날 한국어로 치면 부카니스탄, 귀차니즘, 오노스럽다.. 이런 것과 동일한 맥락의 작명법이지 않은지? ㅎㅎ

3. 오늘날은 한국어에서 한자나 한자어를 이용한 조어 자체가 사멸하다시피했다.
스키를 배우는데 강사가 말하길, 다리를 A자 모양으로 모으랜다. 옛날 같았으면 팔(八)자 모양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십자가처럼 말이다. (아니, 그러고 보니 걍 시옷자 모양이 더 편하겠네.)
아마 기독교가 21세기에 전래되었으면 십자가, 유월절, 휴거 같은 말이 생길 리가 없었으리라... 다 크로스, 패스오버, 랩처라고... 휴거를 뜻하는 랩처(rapture)는 유명한 컴퓨터 용어인 캡처(capture)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7/31 08:35 2011/07/3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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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의사신 2011/07/31 15:18 # M/D Reply Permalink

    중국의 자국어 사랑은 엄청나서, 그 많은 외래어를 다 새로 익혀야 합니다.

    가끔은 반반씩 섞어 놓은것도 있어서 그냥 소리나는 대로 읽어도 감이 안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星巴克 가 있는데요. (씽빠커라고 읽습니다.) 앞의 星은 별, 뒤의 巴克는 벅스의 음역입니다. 스타 벅스이지요...

    1. 사무엘 2011/08/01 10:48 # M/D Permalink

      훈독과 음독이 섞인 정서법은 난이도가 헬게이트 수준으로 치솟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대 문학에 존재하는 이두· 향찰이라든가, 일본어도 그렇고..;;
      중국은 자국어 사랑이라기보다는 한자 때문에 저렇게 안 할 수가 없는 처지이죠.
      저는 뜻글자는 로마 숫자 같은 접근이고, 소리글자는 아라비아 숫자 같은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2. 소범준 2011/08/22 09:20 # M/D Permalink

      아... 이걸 보니 우리 나라 고대 국어의 '향찰'이 생각나는군요.
      음.. 어떤 것은 뜻을 빌려오는 훈차로, 또 어떤 것은 음차로 하는 것이 비슷하군요.

  2. 인민 2011/07/31 23:04 # M/D Reply Permalink

    1. 전 b안을 선호... 하지만 b안은 대부분 중국 이야기고 일본부터는 섞어서 씁니다. 부모님이 한양대 중어중문학과 나오셔서 전직 중국어+한자선생을 하신 덕에 b안이 편해요. (그러나 France를 아직도 법국法國이라고 하는 특이한 사람 중의 하나가 저)

    2.외국어 음을 표기하기에는 너무 “한글”이 부족하기 때문에(그 위대한 훈민정음 28자를 만들었음에도 듕귁용으로 ?????? 여섯 글자나 만들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현재 가지고 있는 한글의 범위 내에서 생각한다면 어떻게 개량해도 “한국어” 내에는 많은 도움을 주겠지만 절대 실용화될 수 없기에 전 현재 아예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Neo-한글 프로젝트를 생각중입니다.

    <그러나 인민이 어떤 말을 하든 그냥 씹어주셔도 문제될 것 없습니다>

    1. 사무엘 2011/08/01 10:48 # M/D Permalink

      한글의 표음 능력을 좋아하는 사람은 보통 현지음(a안)을 선호하는 편인데.. 의외네요.
      하지만 한문 전공하신 분은 아무래도 b안에 더 편하겠죠.

      프랑스를 의미하는 한자는 불(佛)이 통용되는데 법은 생소합니다.
      프랑스가 법국이면 독일은 덕-_-국이겠네요. (오덕의 나라 ㄲㄲㄲㄲ)
      프랑스의 佛은 미국의 美만큼이나 의미는 아무 관계 없는 음차이죠.
      하지만 달러를 나타내는 弗은 그냥 모양이 비슷한 한자를 갖다 쓴 것입니다.

    2. 인민 2011/08/01 19:02 # M/D Permalink

      글쎄요, 날개셋 한글입력기 도움말에도 언급되어졌지만 현재 문제는 strike를 1음절로 표시할 도리가 없는 것이고(스트라이크라고 표시하면 필요없는 ㅡ가 3개나 붙는다는) 특히 한자의 경우 鄧小平은 음운학적으로도 글자적으로도 3글자인데도 한글은 덩샤오핑이라고 써야 되는 불운을 겪고 있달까요. 결론은 네오(新)한글 프로젝트로 귀결

      듕귁에서는 아직도 실용적으로는 fa(1) guo(3) 즉 법국이라고 합니다.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말할때는 법국이라고 계속 해요. 중국에서 프랑스를 불란서라고 하는 건 아직까지 못들어봤고요. 그나저나 德국인가요?

    3. 사무엘 2011/08/01 21:56 # M/D Permalink

      흠, 그럼 불란서는 정체불명의 음차인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오덕 할 때 덕은 아무래도 德이겠죠.

    4. 인민 2011/08/02 11:50 # M/D Permalink

      주의사신)?을 ran이라고 읽나요? lan이라고 읽는 경우는 흔했는데 처음들어봐서.

    5. 주의사신 2011/08/02 13:02 # M/D Permalink

      인민님// lan3이 맞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6. 주의사신 2011/08/02 13:03 # M/D Permalink

      1. 프랑스는 중국에서 법란서가 공식 명칭이긴 합니다.

      http://baike.baidu.com/view/54509.htm 에 가 보시면 중간 쯤에 中文名?: 法?西共和? 라고 중문 명칭은 법란서공화국이라고 되어 있지요.(fa(3)lan(3)xi(1)라고 읽습니다.)

      다만 위에 얘기했던 싱빠커처럼, 중국 사람들은 자기네 말 섞은 다음에 약어를 만들어버리는 이상한 작명법이 있어서 faguo가 된 것입니다.

      적고 보니 저 역시 왜 불이 쓰이는지 조금 궁금해지네요.

      2. 덕국(德國)의 경우, 독일이 덕이 많은 나라라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니라, 역시 中文名?: 德意志?邦共和? 도이치라는 것을 음차로 바꾸면서 德意志가 되었습니다. de2yi4zhi4로 읽습니다.

      법국과 같은 이유로 덕국이 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http://baike.baidu.com/view/3762.htm 확인하시면 됩니다.

      이 글은 인민님 글 위에 있었는데 댓글을 수정하니 위치가 이상해졌네요...

  3. France 2011/08/02 17:33 # M/D Reply Permalink

    불란서(佛蘭西)는 일본에서 ?蘭西라고 쓰고 후란스라고 읽는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 같아요. ?逸라고 쓰고 도이츠라고 읽는 것을 그대로 가져와서 독일(獨逸)이라는 이상한 발음이 된 것 처럼요.

    1. 인민 2011/08/03 00:39 # M/D Permalink

      하긴요.
      자본 공산 민주 이런단어가 다 일본어에서 왔으니 그렇게 되는 것도 무리는 없을듯. 가깝게는 사물함이 있겠죠

      그런데 왜 중국은 혼자 법란서일까요

  4. 소범준 2011/08/10 01:00 # M/D Reply Permalink

    저는 선택의 여지없이 a쪽입니다.^^

  5. 겨울하늘 2011/08/21 22:38 # M/D Reply Permalink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중국어의 한글표기를 가르는 것은 어느 백과사전의 황당한 절충안이 아니라, 문교부고시인 현행 공식 외래어표기법의 입장으로서 현재까지도 교과서나 각종 보도의 기준입니다.
    저는 B안을 지지하긴 하는데 김 용묵 님이 말씀하신 그 B안은 아니고 중국어에 한해서만 B안입니다.
    타이, 프랑스는 당연히 그렇게 적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독일까지도 도이칠란트로 적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하지만 중국어는 중국사 전체를 통틀어 표기법을 현대어 발음으로 통일할 수 없다면 우리식 한자음대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이상한 기준 때문에 중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엔 같은 페이지의 같은 지도 안에 “장안”('서안'으로 바뀌어서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지명이므로 우리식 한자음으로 표기함)과 “뤄양”(낙양. 현재도 쓰는 지명이기 때문에 현대 북경어 발음으로 표기함)이 공존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건 문제가 있지요.

    1. 사무엘 2011/08/22 09:36 # M/D Permalink

      오랜만입니다.
      아.. 그게 문교부 고시에 근거한 규정이었군요. 역시 법률· 규정 쪽 전문가이시다 보니.. 코멘트 감사합니다.
      이거 아니면 저거로 확실하게 통일을 못하니 한자를 처리하는 문제는 더욱 미궁으로 치닫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 주제로 블로그 글이 올라오겠지만, 일본은 긴 현지음 표기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축약을 잘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고 구닥다리 한자음 음차나, 그냥 알파벳 이니셜로 축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도이칠란트를 그냥 '도이치'로 줄이질 않고 그냥 '독일'로 쓴다거나
      오스트레일리아를 '오스틀' 식으로 줄이지 않고 그냥 '호주'로 쓰는 식이죠.
      텔레비전은 '테레비' 대신 간단하게 TV..;;

      그 반면, 일본은... 프레스테(PlayStation), 쇼바(shock absorber) 등등...;;
      한자음과 관련해서도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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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잡설

오랜만에 전공 관련 잡설을 끄적인다.

1. 요즘 나오는 옥편이라면 각 한자들마다 글자의 유니코드 번호는 꼭 수록해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컴퓨터 시대에 저 정보는 하다못해 필순보다도 훨씬 더 필요하고 유용할 것이다.

2. 한자는 입력하고 다루는 데는 굉장히 불편하지만, 뜻글자라는 특성상 한자가 적당히만 쓰이면 형태소 분석과 의미 파악에는 굉장히 유리하다. 한-일 번역과 일-한 번역의 난이도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명백하다. 일본어는 처음에 입력하기가 느리고 불편하지만, 나중에 자연어 처리에는 다소 편할 수 있다는 뜻.
그와 반대로 한국어는 한글로 입력은 전광석화처럼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소리만으로 기계가 힘들게 유추해야 하는 정보가 많으며, 언어 자체도 구조가 미치도록 판타지 다이나믹 귀걸이 코걸이 식이다 보니 자연어 처리 입장에서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3. 카이스트에서는 100% '재수강'이라는 용어만 쓰이지만, '재이수'라는 말도 있다는 건 연세대에 가서 처음 알았다.
카이스트에서는 봄학기, 가을학기라고 학기를 구분하지만 연세대는 그냥 고등학교 이전처럼 1학기, 2학기를 쓴다.
인문계 대학원에서는 교수가 다른 교수를 일컬을 때나 강의실에서 학생이 교수를 부를 때 '선생님'이라는 말을 쓴다. 심지어는 나이 많은 학생끼리도 친해지기 전에는 서로 선생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공계 대학원에서는 여전히 '교수님'이 주도적인 것 같다.
이런 일련의 차이를 혹자는 '학교 방언'이라고 풀이하더라.

4. 이기다, 지다, 틀리다, 맞다, 모르다 같은 용언은 영어와 비교했을 때 용도에 따라 시제가 조금씩 일치하지 않는 면모가 있다.
격투 게임 같은 데서 흘러나오는 You win 같은 멘트를 '네가 이긴다'라고 번역하지는 않으며,
You are wrong도 '네가 틀리다'라고는 절대로 번역되지 않는다. wrong, incorrect를 언제나 과거 시제로 번역하다 보니 정작 현재 시제인 '틀리다'는 자꾸 '다르다'라는 뜻으로 이상하게 꼬이고 있는 것 같다.

5. 학교에서 구수한 옛한글들이 잔뜩 찍혀 있는 어느 옛날 한글 성경을 봤는데... '밥팀례'라는 희한한 단어가 있더이다. 밥티슴(baptism)과 침례의 합성어인지? 우리 선조들의 작명 겸 번역 센스에 감탄했다.
아울러, 개역성경도 '사단'이라고 적어 놓은 Satan을, 훨씬 더 옛날 성경이 '사탄'이라고 더 정확하게 표기하고 있었다.

6. 폐사: 가축이 폐사하는 것 말고 弊社 또는 ?社는 자기 회사를 겸손하게 낮춰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비즈니스 메일이나 광고에서 자주 볼 법도 한 단어 같은데.. 본인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폐사라는 단어를 본 곳은 자동차 취급 설명서가 전부이다. -_-;;; 그 업계만의 방언이기라도 한 걸까? '폐사가 보증하는 순정 부품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 주행 중 이 경고등이 갑자기 켜진다면 폐사 서비스 센터에서 정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IT 업계에서도 쓰지 말라는 법이 없을 텐데. '모 제품에 이런 버그 내지 보안 취약점이 발견되었으므로 사용자께서는 폐사가 제공하는 업데이트를 반드시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겸손한 비하라지만 졸(졸고, 졸저)도 아니고 '폐'가 들어가니까 부정적인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7. 또 자동차 취급 설명서 이야기.
요즘 차 취급 설명서에 '핸들'이 '스티어링 휠'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고 놀랐다. 호치키스가 스태플러로 바뀌듯, 국민들의 평균적인 영어 실력이 증가하면서 콩글리시도 점차 바로잡혀 가는 것 같다. ^^;;;
하지만 백미러는 그냥 실외 미러라고 표기했고, 진짜배기 영어인 리어뷰 미러라고 하지는 않은 듯하다.

8. 세월이 흐르면서 아래아한글 97이 이제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날개셋> 한글 입력기도 구닥다리 한컴 2바이트 코드에 대한 지원을 차츰 줄여서 지금은 이게 변환기 유틸에서나 볼 수 있는 존재가 돼 있다.
그런데 맨날 옛한글 말뭉치 자료를 다루는 이 바닥 사정을 들여다 보니까, 한컴 2바이트 코드가 그렇게까지 죽은 포맷은 아닌 것 같다. 한컴 2바이트 코드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형태소 분석기 같은 툴들이 아직까지 쓰이고 있어서 말이다. 현실이 그만큼 낙후해 있다는 뜻 되겠다.

본인이 다니는 이 대학원에 있으면서 좋은 점을 꼽자면 이러하다. 국어학 쪽의 진짜 전공자, 현업 종사자들의 언어학적 소견과 역사 증언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글 쪽으로는 '운동꾼'이기만 할 뿐 비전문가의 편협한 주장만을 접한 것과는 다르다. 비록 자기 전공 분야에서는 공학 박사이고 뭐 별별 업적을 남긴 분이라 하더라도 국어학 계열로는 이상한 지론에 빠져 이상한 주장을 밀어붙이는 분이 안타깝지만 꽤 있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11/05/13 08:39 2011/05/1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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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의사신 2011/05/13 09:31 # M/D Reply Permalink

    1. 이거 아시나요?

    女와 女는 다르다는 것?

    지금 보시면서 같은 글자인데 왜 달라? 하실텐데요.

    하나는 여에서 한자 키를 누르고, 하나는 녀에서 한자키를 누른 것입니다. 이 둘이 다른 유니코드가 할당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樂같은 경우에는 무려 유니코드가 4개나 할당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樂, 樂, 樂, 樂, 왼쪽부터 낙, 락, 악, 요)

    게임 회사에서 한자가 들어간 아이디를 허용해 줬더니 눈으로 보기에는 정확히 동일한 아이디들이 있어서 알게 된 정보라고 하더군요.

    여 자를 조사해 보니 여일 경우는 \uf981이고, 녀일 경우는 \u5973입니다.

    2. 제가 아는 한 교수님도 다른 교수님이나 자기 자신을 칭하실 때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쓰시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조금은 어색했던 기억이 나네요. 수학과 교수님이셨습니다.

    1. 아라크넹 2011/05/13 12:39 # M/D Permalink

      발음별로 같은 한자를 별도로 할당해 놓은 것은 유니코드보다는 그 문자 집합의 원천이 되는 KS X 1001에서 내려 온 것으로 봐야 합니다. 아마 정렬이나 그런 면에서 이득이 많아서 그렇게 한 게 아닐까 싶어요. (독음 분석을 해야 하는 일본어와는 달리 한국어는 한자가 섞여 있어도 단순한 collation 알고리즘으로 발음 순 정렬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유니코드 입장에서는 듣도 보도 못 한 발상이니 대표 발음을 뺀 모든 문자가 호환성 영역으로 갔습니다만.

    2. 사무엘 2011/05/13 17:16 # M/D Permalink

      사실, 유니코드 이전의 상용 한자 4888자 자체도 당연히.. 서로 완전히 다른 4888자의 한자로 구성된 집합이 아니었지요.
      BMP 이후로 유니코드에 등록되는 한자들은 어차피 과거의 2바이트 문자 체계에는 없던 레어템들일 테니 호환용 영역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실수로 중복 등록되는 한자는 있다고 하죠. -_-)

      윈도우 운영체제에 대해서 무척 이상한 건, 왜 金에서 '금'이 호환용 한자에다 배당되고, '김'이 원래의 CJK에다 들어갔냐는 것입니다. 테이블의 오류인데 윈도우 95부터 7까지 그냥 이대로 수정 없이 밀어붙이는가 봅니다. 오히려 아래아한글은 똑바로 돼 있다고 하죠.

    3. ???????????? 2011/05/13 23:57 # M/D Permalink

      ???????????? U+5973???? ????????????????... ????? ????? ?????????? ???? ?????????? ?? ???????? ?????? ??????? ????? ????? ???????? ???????????.

  2. 박상대 2011/05/14 11:16 # M/D Reply Permalink

    똑같은 글자가 여러개 있어야 하는 이유는 가나다순 정렬 때문입니다.
    가나다순 정렬을 시키면 한자는 한자음의 가나다순대로 가나다순 정렬이 되는데

    "똑같은 글자를 쓸데없이 왜 여러개 넣어?" 이런 생각을 가지고
    李(이), 李(리) 이 두 한자를 李(리)로 통일시켰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사람 이름을 가나다순 정렬할 때, 컴퓨터가 李를 "리"로 보고
    가나다순 정렬을 하게 됩니다. (북한도 아니고 ㅎㅎㅎ)

    그렇다고 해서 李(이)로 통일시킬 수도 없습니다. 李가 성씨에만 쓰이는 건 아니니까요.


    樂山樂水(요산요수), 樂器(악기), 어부
    이 세 개를 가나다순 정렬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올바르게 정렬하면 "樂器", "어부", "樂山樂水" 순으로 정렬돼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樂"을 어떤 하나로 통일시켜버리면

    "樂器", "樂山樂水", "어부" 이렇게 정렬되거나
    "어부", "樂器", "樂山樂水" 이렇게 정렬되어 버립니다.

    1. ???????????? 2011/05/15 16:15 # M/D Permalink

      ????????? ????????????????, KS X 1001???? ????? ?????? ?????????? ????? ?????? ????????????????, Unicode??????? KS X 1001????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KS X 10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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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및

우리말 순화 운동가 중에는 ‘및’을 싫어하는 분이 계신다.
우리말답지 못하고 어원이 또 무슨 번역투이고 등등~ 근거가 여럿 있는 걸로 본인은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및’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역할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만만하게 없앨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및’을 안 쓰고 이 성경 구절을 번역해 보라.

And the king, and all Israel with him, offered sacrifice before the LORD. (왕상 8:62)

뭔가 느껴지는 게 없는가?
그렇다. 우리말의 조사 ‘-와/과’라든가 어미 ‘-고’는 and라는 뜻만 있는 게 아니라 with라는 뜻까지 교묘하게 포함되어 있다. 이거 구분이 안 되는 게, 번역할 때 의외로 굉장히 불편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적잖게 발생한다! (한국어 말고도 이런 특성을 지닌 언어가 좀 더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접속부사 ‘및’은 정확하게 and의 뜻만 지니기 때문에 중의성의 해소에 도움이 된다.

물론 한국어는 부사를 무척 좋아한다는 특성상, 공동번역처럼 “왕은 온 백성과 함께 .... 했다”라고 문장 구조를 완전히 바꿔 번역하는 방법도 없지는 않다.

2. 어법에 어긋난 축약

알아듣는 데는 아무 지장 없는데 여기서는 쓰이고 저기서는 통용되지 않고.. 음운이나 형태론적으로 온전한 근거를 갖추지 못해 어법상 허용되지 않는 축약이 있다. 한국어에서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스러운'(O), '-스런'(X): 국기에 대한 경례마저 '자랑스런'에서 '자랑스러운'으로 고쳐졌다. 그냥 축약을 허용해도 되지 않겠나 생각을 했었는데... '아름다운'을 '아름단'이라고 적지는 않잖아..! ㅂ이 탈락하는 것도 모자라서 음절 전체가 탈락하는 건 대략 보기 좋지 않다.

- '밤을 새우다, 담배를 피우다'(O), '밤을 새다, 담배를 피다'(X): '우'도 만만하게 보이는지 자꾸 탈락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는 명백한 변별 요소로, 이게 빠지면 '물이 새다', '꽃이 피다' 같은 완전히 다른 단어가 되고 만다. 그러고 보니 타동사와 자동사로 각 용언이 격이 다르다 보니, 경계가 마음놓고 문란해지는 건가? -_-;;

- '바뀌었다'(O), '바꼈다'(X): 이런 식으로.. 현대 한글이 규정하는 한글 모음의 범위를 벗어나는 축약을 시도하다 보니, 음운 탈락을 감수하면서 말을 줄이는 경우가 있다. 물론 구어체에서나 통용될 뿐 표기를 이렇게 하는 건 물론 잘못이다.

이런 축약은 꼭 음절수를 맞춰야 하는 노래 가사나 시 같은 데서나 제한적으로 묵인되는 듯하다. 이름하여 시적 허용. 그런 건 영어에도 있으니까..;; 만약 한국어를 로마자로 표기하고 있었다면 이런 축약 사이에는 분명 어퍼스트로피가 들어갔을 것이다.

3. 아리까리한 영단어

영어도 만능이 아니다. 중의적인 어휘가 생각해 보니 꽤 있다. 비슷하지만, 그래도 구분 가능한 게 더 좋겠다 싶은 것들 말이다.

- good: 좋다 vs 선하다. 웬지 '선한 사마리아인'과 '좋은 사마리아인'은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 free: 자유 vs 공짜. 이게 영어권에서 은근히 혼동이 심해서인지, 오픈소스 진영의 문서에는 “자유 소프트웨어란 무료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친절한 부연 설명이 들어가 있다.
- life: 생명 vs 삶(인생/생애/한살이). 그래서 한국어로는 life after death를 좀 더 깔끔하게 번역 가능하다. 내세에 대해 설명할 때 나오는 단어임.

- little: 작은, 어린, 거의 없는...;; 이거 은근히 중의성이 짙어서 헷갈릴 때가 있다. 이게 빈도부사의 역할까지 하니, 마치 more이 다중 품사 역할을 해서 헷갈리는 것과 비슷한 차원이 된다.
- great: 거대하다, 위대하다. 뭔가 크고 아름답다는 뜻인데, 어떻게 아름다운지가 중의적이다.
- child: 그냥 어린이 vs 계통상의 자녀
- mind: 생각 vs 마음

- egg, milk: 영어는 참 특이한 게 이런 단어들이 각각 달걀과 우유라는 특정 동물의 알과 젖을 뜻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이것 자체가 범용적인 알과 젖을 뜻하기도 한다. 마치 기름이 석유도 뜻하고 그냥 물과 섞이지 않는 가연성 액체의 총칭이기도 하듯이 말이다.

- day: 낮 vs 날. 문맥에 night가 대조되면 전자의 의미가 되고, month나 year 같은 단어가 오면 후자의 의미가 된다.
- earth: 육지(land), 흙 (dust), 태양계의 행성 지구(the earth)...;; 의 의미를 두루 지닌다.

- man: '사람, 사나이(남자), 성인'의 의미를 두루 지닌다. 성경에서도 고전 13:11에 나오는 “but when I became a man”은.. 무슨 단군 신화처럼 동물이 인간으로 변했다거나, 성전환을 해서 여자가 남자로 바뀌었다는 게 아니라.. 자라서 어른이 됐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

영어는 잘 알다시피, 혈통상 2촌 관계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나이 서열대로 부르는 호칭이 없다. 가령, brother이라고만 하면 형인지 남동생인지 알 수 없다. 그 문화권은 근본적으로 '나이가 깡패' 같은 사고방식이 없는 게 틀림없다.
그런데 그 반면 한국어에는 형제 자매들을 싸잡아 부르는 명칭이 없는 듯하다. 쉽게 말해 성별에 구애되지 않고 sibling에 대응하는 한 단어가 없다는 뜻. 그래서 맨날 가족 관계를 물을때 “형(언니)이나 동생 있어요?”라고 번거롭게 말을 풀어서 한다.

4. '들'이 의존명사라니!

나는 '들'이 field를 뜻하는 명사, 그리고 복수형을 의미하는 접미사 정도로나 알고 있었다. 특히 후자 용법은 단복수를 무진장 엄격하게 따지는 영어의 여파 때문에 한국인들 머리에 뼛속까지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건 뭔가?

【의존명사】 두 개 이상의 사물을 벌여 말할 때 맨 끝에 쓰이어, 그 여러 사물을 모두 가리키거나 또 그 밖에 같은 종류의 사물이 더 있음을 뜻하는 말. 등.
¶ 전차·버스·택시 ∼.

쉽게 말해서 '들'이 '등'(and so on; et cetra)과 완전히 같은 용법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뭐병...;;
한컴 사전, 네이버 사전 등을 다 찾아봐도 그런 풀이가 있다.
본인은 태어나서 '들'이 그렇게 쓰이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근처의 국문과 학생으로부터도 “뭐 이런 게 다 있어” 동의를 받았다. -_-;; 이제 교수에게서 인증받는 것만 남았다는..;;

5. 내일의 순우리말, 한자어 번역어

한국어에 어제, 모레와는 달리 'tomorrow'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이 없는 것을 본인은 굉장히 특이하게 여겨 왔다. '한국어 순우리말은 왜 blue와 green을 구분하지 않을까?'만큼이나 왜 내일이 없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소문에 따르면 '내일'의 순우리말은 '하제'라고 한다. 문헌상의 근거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게 언제부터 왜 '내일'로 대체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카이스트 학생이라면 '하제'가 아주 친숙할 것이다. 교내의 유명한 컴퓨터 동아리(게임 개발 분야)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어제와 오늘, 모레, 글피 등의 서열에서 혼자 한자어인 어중간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워낙 친근한 단어여서 중국이나 일본어 냄새가 나지는 않는다. 코레일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팔고 있는 내일로 티켓은 'rail-로'가 두음법칙에 의해 바뀐 것...이라고 한다. ㅋㅋㅋㅋ 그래도 싫어요-좋아요보다는 그럴싸한 설명.

'내일'도 이미 한자어인데 동일한 의미를 지니면서 더 탁한 느낌이 나는 한자어가 또 있다. 명일이나 익일... 이 서열대로라면 어제와 오늘도 작일, 금일로 바뀐다. 내일은 바꿀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내일조차 다른 한자어로 바뀐다니, '내일'은 순우리말도 존재하고 더 어려운 한자어 버전도 존재하는 이상한 단어라 하겠다.. 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1/02/02 21:32 2011/02/0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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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재주 2011/02/03 01:46 # M/D Reply Permalink

    영어는 관사도 중요하죠. 어떤 관사가 붙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단어들이 상당히 많으니까요.

    정작 우리나라 학교 영어교육에선 '3인칭 단수 명사에는 s가 붙는다' 이런거나 가르치지 어떤 경우에 the가 붙는지 같은 중요한 건 별로 신경을 안 쓰죠. 동사를 죄다 복수형으로 말해도 원어민들은 다 알아듣지만, 관사를 틀리면 때때로 좀 헤매기도 하던데 말입니다.

    제 생각엔 대한민국 고등학교에는 복수 명사에 the가 붙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르는 학생이 수두룩할 겁니다. =_=


    '들'은 저도 처음 보는 용법입니다. 정말 저런 식으로 쓰기도 하는 건가 허허..

  2. 주의사신 2011/02/03 09:30 # M/D Reply Permalink

    1. 제가 아는 한 교수님 중에 미국 유학 가셔서 a, the 틀리게 써서 10점인가가 그냥 날아가 버린 경험을 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판서 중 a, the를 상당히 신경써서 하십니다.

    2.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번역서를 읽을 때, "멜라니와 다른 사람들이 왔다 간 후"를 "멜라니들이 왔다 간 후"같은 문장이 있어서 "이거 무슨 문장이 이래?"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는데, 4번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이거 국어 문법에 맞는 문장인가 봅니다.

  3. 이지브 2011/02/03 16:19 # M/D Reply Permalink

    저도 병원에 있을때 옛날 소설책을 몇권 구해다 읽었는데 주의사신님처럼 XXX들이 이런식으로 써진 문장이 들어있는책이 많아서 꽤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한번읽었을땐 번역자의 자질이 의심스러웠고 또다른책에서 두세번째 볼때는 내 눈이 이상한가 싶었는데 정식문법이였네요...-_-

  4. 김재주 2011/02/03 19:43 # M/D Reply Permalink

    어떤 일행을 지칭할 때 누구누구들, 하고 말하는 건 일본어의 영향이 남은 잔재라고 봅니다. 4번에서 설명하는 용법은 조금 다른 경우고요.

  5. 사무엘 2011/02/03 20:43 # M/D Reply Permalink

    좋은 의견 잘 읽었습니다. ^^ 관사, 전치사, 단· 복수.. 이게 영어에서 정말 골때리는 요소이죠.
    유학 간 한국 학생이 그런 실수 때문에 교수에게 깨지는 건 거의 통과의례 수준으로 겪어야 하는 일입니다. =_=;;
    말하기, 듣기도 어렵지만.. 영어로 학문을 하려면 '쓰기'야말로 최강의 보스이니까요.

    4번에서 설명하는 용법이라면 '들'을 띄어야 합니다. 접사가 아니라 의존명사이기 때문이지요. 주의사신 님, 이지브 님처럼 보통명사도 아니고 고유명사 뒤에 '들'이 바로 붙어서 이어진 건 영 수긍하기 어려운 표현이네요.
    어쨌든 이건, 없애 버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은 이상한 용법입니다.

  6. 맑아릿다 2011/02/08 05:14 # M/D Reply Permalink

    의존명사 '-들'은 일본어의 'たち'를 직역하여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해봅니다. 실제로 일본어에서는 '철수たちと合った。' 와 같은 문장이 ' 철수와 그 친구들을 만났다'의 의미로 매우 흔히 쓰이거든요.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현대 한국어는 물론이거니와 중세,근대국어에서도 한 번도 본 일이 없습니다;; 일본어 용법이 차용되어 쓰이기 때문에 사전에 올라간 건지, 일본 사전 베끼다가 얼떨결에 올라간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후자에 한표ㅋ. '스런

  7. 맑아릿다 2011/02/08 05:24 # M/D Reply Permalink

    '스런'은 모음충돌(hiatus)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 듯해요:) 그런 건 흔한 일이에요.'바뀌어>바껴', '사귀어>사겨'가 되는 건 모음으로 끝나는 어간에 붙는 활용어미 '-아/-어'는 대부분 축약되는데 한글은 ㅜ ㅕ의 조합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과감히 어간을 바꾸어버리는ㅋㅋㅋㅋㅋㅋ것 아닌가 싶네요. 아마 휴대폰 문자메시지의 글자 수 제한이 그걸 거들었겠죠. 세월이 더 흐르면 아예 기본형이 '바끼다', '사기다'가 될지도 몰라요ㅋㅋㅋㅋㅋ 그나저나 학교 몇시에 나오시나요? 저는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밤을 새고 가게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일단 지금 자려고 시도는 해 볼 생각이에요. 점심은 열두 시가 괜찮으세요 한 시가 괜찮으세요 저는 두 시 출근입니다

  8. 맑아릿다 2011/02/08 05:27 # M/D Reply Permalink

    혹시러도 제가 약속을 놓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열한 시쯤 문자로 답을 보내주세요?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 사무엘 2011/02/08 08:26 # M/D Permalink

      반갑습니다. 언어에 이유 없는 변화는 없다는 걸 느낍니다. ^^
      축약에 대해서 저는 시적 허용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자 메시지라는 더욱 현실적인 제약도 존재하고 있었군요. 미처 생각을 못 했더랬습니다. ㅋㅋ
      더 일찍 만나는 게 당연히 더 좋겠죠? 그때쯤 연락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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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우리말/언어 관련 메모.
요즘 참 다양한 분야별로 블로그질 하는데, 방학 중에도 본인의 매일 수면 시간은 5~6시간대.. 아 피곤하다..;; 남들이 게임이나 연애 하는 동안 난 맨날 이 짓 하고 있다. 이것도 병 내지 중독이다. ㄲㄲㄲㄲㄲㄲㄲㄲ

1. 조어법

요즘 언어학의 설명에 따르면, 어휘의 조어 방식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통사적 합성이라 하고 다른 하나를 비통사적 합성이라고 하는데, 전자는 생성에 사용된 개별 형태소가 온전하고 자립 가능한 형태인 것을 말하고 후자는 그렇지 못한 걸 일컫는다.

까놓고 말해 ‘먹자골목’은 통사적 합성인 반면, 논란이 많은 ‘먹거리’는 비통사적 합성이다. 동사의 어간 ‘먹-’은 이거 하나만으로는 자립할 수 없는 의존형태소로 일컬어지며, ‘먹는, 먹자’처럼 뒤에 어미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헐 그럼 ‘먹튀’도 비통사적 합성이군?
그래서 성격 까칠한 민간 우리말 운동가 중에는 ‘먹거리’는 잘못 만든 말이기 때문에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다.

난 조어에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명사, 특히 고유명사야 겹치는 동음이의어 없이 어감상 거부 반응 안 들고 변별만 잘 되면 뭘로 지어도 나쁠 게 없지 않겠는가. 뭐, ‘나드리’처럼 표기법 바꿔서 고유명사화하는 게 한글 파괴라는 식의 개드립에는 결코 공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다양한 조어는 적극 권장해야 한다. 요즘 무섭게 쏟아지는 영어 신조어나 작명 센스들, 그리고 우리나라 인터넷 유행어들도 내가 보기엔 압도 다수가 비통사적 합성들이다.

‘쌍룡’이 표준어이건 말건 자동차 회사 ‘쌍용’은 고유명사이다. 하다못해 외래어 표기법도 아무리 Hyeondae가 원칙상 맞다 해도 현대 자동차 할 때 현대의 공식 로마자 표기는 Hyundai인 것이다. 성씨의 두음법칙 같은 문제에서도 본인은 ‘당사자가 원하는 대로 불러 주는 게 맞다’ 주의이다.
본인은 ‘다르다’와 ‘틀리다’ 구분 안 하는 것 굉장히 싫어하고, “이 제품은 성능이 아주 좋으십니다” 이런 말 들으면 손발리 오그라들긴 하지만, 조어는 아주 창의적이고 파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된 웃기는 현상이 하나 더 있다.
우리나라는 God의 표기가 천주교하고 기독교(천주교에서 개신교라고 부르는)가 서로 다른 이상한 나라이다. 하나님 vs 하느님. 참고로 천주교 말고는 여호와의 증인도 ‘하느님’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전처럼 종교색이 없는 문헌도 하느님, 더 나아가서 공동번역 성서의 컨벤션을 더 존중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설명을 보면 '하느님으로 가셈' 같은 식.

어른들의 사정이 있어서 표기가 달라진 건 어쩔 수 없다 치는데, “‘하나님’은 ‘하나(one)’이라는 숫자에다가 님이 붙은 것이어서 어법에 어긋난다”고 ‘하나님’을 까는 건 영 수긍하기 곤란하다. 실제로 국어깨나 좀 아는 어느 천주교 신자에게서 본인이 들은 적이 있는 말임. 아하, ‘하나님’도 비통사적 합성이다 이거지?

종교적인 교리나 이념은 싹 배제하고, 순수하게 국어학 관점에서 “남이사 무엇에다 님 붙여서 말 만들든 무슨 상관이심?” -_-;;; 이라고 반문해 주고 싶었다. 오히려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서양 선교사도 그 ‘하나+님’ 조어를 보고는 정말 멋진 번역이라고 감탄을 했다고도 하는데.
뭐.. 그냥 그랬다고.. ㅋㅋ 아님 말고.

2. 문법 용어

아마 내막을 아는 분도 있겠지만, 옛날에는 국어 문법 용어와 체계가 서울대 이 희승 라인과 연세대 최 현배 라인으로 갈려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울대 국문과를 가려는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울대 기준으로 맞춰진 책으로 공부를 해야 했고, 연세대 국문과를 가려는 사람은 연세대 에디션으로 공부를 해야 했다...; 그리고 나중에 입시 점수가 엇갈리게 나오더라도, 맞은편 경쟁 대학으로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거 가히 도시전설 수준의 충격과 공포인걸??

그래서 학교 문법 체계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이뤄졌는데... 이거 무슨 글자판 통일 얘기 같다(세벌식 매니아의 직업병..ㅋㅋ).
문법 용어는 한자어 위주의 서울대와, 순우리말 위주의 연세대가 땅따먹기 하는 식으로 통합되었다. ㅜ.ㅜ “난 이거 양보할 테니 저건 우리 식으로 하자” 식. -_-;;

아하, 그래서 중학교 때 배운 음운 법칙이 ‘음절 끝소리 규칙’과 ‘된소리되기’, ‘사잇소리’는 순우리말이고 ‘구개음화’, ‘자음동화’, ‘음운 축약’은 한자어로 뒤죽박죽 섞여 있었구나.
그 엄청난 내막을 알게 됐을 때 대략 정신이 멍했다. ㅋ

하지만 문법 용어 말고 다른 분야 용어는 세월이 흐르면서 상당수 한자어로 이미 바뀐 것 같다.
과학 그림책에서 본 살갗, 힘살, 작은창자, 콩팥 같은 용어는 중학교 과학 책에서 전혀 볼 수 없었고(피부, 근육, 소장, 신장 등), 한글 학회 어르신들이 접했다는 넘보랏살(자외선) 같은 단어는 전혀 접하지 못했다.

요즘 애들은 6 25가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른다는데, 저런 단어들도 안 쓰면 나중엔 애들이 진짜 못 알아들을 것 같다. 가령, 여기 오는 분들은 ‘뭍’이 육지(land)라는 뜻인 줄은 다 알려나?

3. 형태소 분석기를 엿먹이는 문장

한국어: 가가 가가가? (걔가 가씨 집안이냐?) -_-
영어: I think that that that that that boy wrote on the blackboard is wrong.
(접속사, 지시형용사, 명사, 관계대명사, 지시형용사) ㅋㅋㅋㅋ

4. 흠좀무스러운 다의어와 동음이의어

동사 table
- 영국: (의안 등을) 상정하다
- 미국: (의안을) 묵살[무기연기]하다.
뭐 어쩌라고.. -_-;;

학원을 끊다
- 전화를 끊다: 학원을 그만두다
- 승차권을 끊다: 학원에 등록하다
뭐 어쩌라고.. -_-

진돗개 1호가 풀렸다
- 5만원권이 전국에 풀렸다: 경보가 내려지다
- 통금이 풀렸다: 경보가 해제되다
release와 비슷한 의미의 중의성을 지닌 듯.

1977년의 테네리페 여객기 참사의 원인 중 하나도, 교신 중에 이런 식으로 중의적인 표현이 조종사와 관제탑 사이에 오해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구제역 / 해충 구제 / 빈민 구제
물론 한자는 서로 완전히 다 다르지만, 어째 어감이 이상하다. “구제역 병균을 구제해서 불쌍한 소들을 구제해야지”라고 써도 될 것 같다.. ㄲㄲㄲㄲ

5. 부사를 겸하는 명사

‘오늘’, ‘내일’ 같은 시간이 명사도 되고 ‘부사’도 되는 건 한국어나 영어나 똑같다.
“나 내일/오늘 집에 가”라고 영어로 말할 때 today나 tomorrow 앞에 전치사를 붙이질 않으며, 한국어로도 ‘내일에, 오늘에’ 같은 식으로 조사를 붙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는 그런 게 더 발달해서 home이나 downtown 같은 장소를 가리키는 명사도 부사로 통용되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6. 흠좀무스러운 발음

아래의 두 단어 쌍은 영어 발음이 완전히 동일하다!

Colonel (육군 대령) / kernel (커널)
Pilate (성경에 나오는 본디오 빌라도-_-) / pilot (파일럿)

'컬라널'이 아니었군.. ㅜ.ㅜ 영어가 워낙 다양한 어원에서 유래된 단어가 많아서 어쩔 수 없다. 그 중 gh가 제일 판타지 같은 음운이라는 건 알 만한 분들은 알 것이다.
만약 한글이 세계 문자가 된다면, 같은 한글 단어도 중국어를 표기한 단어에서는 ㅐ를 ‘ㅏㅣ’로 풀어서 읽는다거나 하는 그런 예외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김밥, 비빔밥, 볶음밥, 자장밥에서 ‘밥’과 ‘빱’ 소리가 갈리는 원칙을 설명할 수 있으신 분??
‘김빱’이 아니라 ‘김밥’이라고 그대로 소리내는 게 맞다고 말은 하는데 왜 그렇게 되는지 난 모르겠다. 아무 원칙이 없이 랜덤이라면 본인은 아까 조어와 마찬가지로 무슨 발음이든 다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김밥, 효과를 다 김빱, 효꽈라고 발음한다.

해님도 ‘햇님’이라고 자꾸 쓰기 쉬운데, 원래 ㅅ을 붙일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한다. 사잇소리는 정말 너무 어렵다.

7. 영어 번역투

영어는 A must be followed by B 같은 표현조차 가능한 언어이다. 수동태와 피동형 남발은 민간 차원에서도 하도 많이 까여 왔고, 좀 각성하자는 움직임도 적지 않은데.. 본인은 전형적인 영어 번역투로 그 외에도 아래의 사항도 지적한다.

- 명사형 관형어로 죽어라고 ‘-는 것’만 너무 남발하는 것 (to 부정사와 동명사의 번역. -음, -기 도 때때로 좀 써 주세요!)
- ‘가지다’를 너무 남발하는 것 (have 번역. 품다, 지니다 등도 좀 쓰세요!)
- 영문법 책에서 본 듯한 뭔가 장황하고 최적화(optimized)되지 않은 문장. 한국어 표현을 추적해 보면 원래 영어 원문이 무엇이었을지 디스어셈블리(?) 가능한 문장.

한국어는 단· 복수나 성별 구분은 거의 안 하는데 주체가 인격체냐 그렇지 않냐는 꽤 엄격하게 구분한다. 비인격체가 주어로 오는 걸 싫어하는데, 영어는 오히려 그걸 전혀 따지지 않으니 그게 문제이다.
“이 열쇠가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같은 식.

세상에 영어로 유입되는 지식과 정보가 너무 많다 보니, 영어가 한국어에 끼치는 영향도 방대하다. 영어를 무작정 배척할 수는 없으나,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지킬 건 지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영한사전이 제대로 돼야 국어가 산다는 지론을 오래 전부터 펴 왔다.

본인의 모국어인 한국어는 대명사가 극악인 언어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영어의 간결한 대명사 체계에 대해서는 가끔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영어도 2인칭이 단· 복수 구분이 없다는 기괴한 약점이 있기는 마찬가지. 차라리 킹 제임스 영어는 그 구분이 있는데 말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1/01/12 07:43 2011/01/12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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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의사신 2011/01/12 09:00 # M/D Reply Permalink

    1. 하나님은 하나 + 님이고, 하느님은 하늘 + 님에서 ㄹ이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에 떨어진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 가지 말이 많다 보니, 이 두 표현의 역사(...)를 연구했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하나님이 제일 먼저 나왔다라는 기록이 있더군요.

    실제로 초창기에 어떤 선교사가 만든 영한 사전을 보면 atheist를 하나님없난줄아난이(여기서 난은 옛한글에서 아래 아자로 되어 있는 것)이라고 써 놔서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2. 게임 아이디를 "하나" 또는 "하느"라고 짓는 사람들은 어떻게 불러줘야 하나 난감합니다. 생각해 보니 하나라는 이름도 있긴 하네요...

    3. 그림씨, 움직씨 등등의 단어를 들으면서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는데, 위 글의 2번과 같은 이유가 있었군요.

    4. 형태소 분석기가 어려워하는 단어 중에 "가시리"가 있더군요. "가실 것이다"인지, "가시(thorn)일 것이다"인지 어디서 끊어야 하나 난감하다고 합니다.

    5. 6번의 '밥' 발음과 비슷한 성경의 현상이 율법이 아닐까 합니다. "율법"이 맞을까요? "율뻡"이 맞는 걸까요? 사실 율뻡이라고 발음해야 할 이유가 딱히 없으니, 율법이 맞을 것 같기는 한데, 반반인듯 합니다.

    6. 디스어셈블리 가능한 문장이라 해서 기억이 나는 문장을 생각해 보면,

    "차를 몰고, 주유소에 가스를 충전하러 갔다."

    영어에서 Gasoline을 Gas라고 줄여서 얘기하죠. 주유소에서 LPG를 넣어 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홈페이지의 애플릿을 방문하세요"

    "방문하세요"보다는 "실행시켜 보세요"가 더 한국어적인 것 같습니다.

    7. 수학 용어 중에 번역이 특이한 것을 하나 꼽자면, 아마 "우함수", "기함수"가 될 것입니다. 각각 짝함수, 짝수함수, 홀함수, 홀수함수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 같은데, 그냥 일본식 한자를 생각없이 받아 적어서 생긴 일 같습니다. 일본에서 짝수를 우수, 홀수를 기수라고 하거든요....

    8. 영한사전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면 "영한사전 비판"이라는 책을 보시기 바랍니다. 영한 사전의 역사부터 고쳐야 할 점까지 많은 것을 나열해 놨습니다.

    1. 사무엘 2011/01/12 16:20 # M/D Permalink

      의견 잘 읽었습니다. ^^
      1. 하나님, 하느님 문제는 아래아의 표기와도 관련이 있다고 하죠.

      2. 그런데 아이디를 '하나(느)'라고... ㄷㄷㄷ;; 이래서 명칭과 님 사이는 띄어 줘야 하나 봅니다. ^^;;;

      4. 그런 예가 한글에는 굉장히 많아요. '네'.. four or your 같은 것도 있고.. 개인적으로 한글에다가 모호성이 없이 형태소 분석이 가능하게 meta정보를 추가한 notation 같은 걸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고유명사 표기도 거기에 포함되는 정보가 되겠죠.

      5. 저는 한 치의 예외 없이 '율뻡'이라고 발음해 왔습니다. 사실 '효꽈'도 일부러 '효과'라고 하니까 너무 어색해요.

      7. 그런 예의 압권은 단연 '유리수'입니다. rational의 번역을 제대로 하려면 차라리 '유비수'가 더 맞다고 하죠.

  2. 김재주 2011/01/12 09:41 # M/D Reply Permalink

    저 table이랑 몇몇 동사 때문에 2차세계대전 때에 미국과 영국 의회가 같이 회의하면서 처음엔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웠다는 후문이...

    1. 사무엘 2011/01/12 16:21 # M/D Permalink

      table 얘기는 그렇잖아도 님에게서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사전 풀이도 저렇게 대놓고 정반대로 돼 있는 걸 보고서 깜놀했죠.

  3. 맑아릿다 2011/02/01 20:04 # M/D Reply Permalink

    휴 밀린 거 다 읽었다ㅠ

    1. 사무엘 2011/02/01 22:41 # M/D Permalink

      무사 귀환하신 걸 환영. ㅋㅋㅋ
      내일 밤엔 또 우리말 관련 글이 올라올 겁니다.

  4. 깨몽 2011/02/21 10:43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십니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요즘 새로 우리말(한자말, 일본말, 번역투를 버리고)을 새로(?)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저 역시 이른바 신세대식 말 만드는 법에 조금 더 너그러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그것은 일반 뭇사람들을 두고 그리 하는 것이고 한글을 다듬자는 사람들 스스로는 좀 더 엄격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쪽입니다.
    보기를 들었던 '먹거리', '먹을거리' 같은 경우도, 저도 얼마전까지는 '먹을거리'가 말 만드는 법에 맞다는 쪽이었으나 우리말이 된 꼴(나쁜 뜻 아님^^)을 보자면 '먹+거리'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 맞느냐 하는 것보다도(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말법을 두고 원칙을 바로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요즘도 종종 겪는 일입니다만, 뭇사람들이 비슷한 뜻을 가진 여러가지 말을 쓰다가 어느 하라로 굳어진다면 그것이 조금 말법에서 어긋나더라도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봅니다만(그것이 사람들 입에 맞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말을 만드는 사람이 말법에 어긋나게 말을 만드는 것은 말글살이를 어지럽히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먹거리', '먹을거리'가 바로 새로 만든 말 보기에 맞을 것입니다.)

    아울러 요즘, 흔히 쓰는 말을 우리말과 견줘 모으고 있습니다.
    한번 보시고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http://2dreamy.tumblr.com/post/3397557766

    1. 사무엘 2011/02/21 21:37 # M/D Permalink

      반갑습니다.
      저는 쓸데없이 외래어, 한자어를 남발하는 건 싫어하지만,
      우리말의 한계상 필요한 외래어· 한자어나 번역투를 다 배척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저만의 지론에 대해서만 글을 써도 블로그 포스트가 완성되겠지만, 이 댓글로 다 말씀드리기는 곤란하고요.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하는 것도 맞습니다. 그게 안 서 있으니까 우리말에 관심 있다는 사람들의 언어관과 문자관이 서로 거의 종교관 수준으로 찢어지고 뿔뿔이 흩어져 있죠.

      좋은 의견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사이트는 꽤 최근에 만드신 것 같군요?
      운영하시는 분이 누군지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으면 이 사이트가 그냥 아무렇게나 만든 게 아니라 좀 더 권위가 느껴질 것 같습니다. ^^

  5. 겨울하늘 2011/04/01 15:03 # M/D Reply Permalink

    이번달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월말이 끝난 첫날에 김 용묵 님 글 몰아서 한 번 보고 있습니다.^^
    잘 지내시죠?
    하나님이 수사+님이기 때문에 어법에 어긋난다는 주장에는 저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본래 교회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어느나라에서나 그렇듯 영어의 God나 히브리어의 El 처럼
    유일신이라는 뜻에서 그 언어에서 신을 뜻하는 보통명사를 취하여 썼기 때문에
    하나님의 어원이 하느님과 같이 하늘+님인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다만 댓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한글에서 아래아가 폐기되면서 두 가지 표기가 분화되어 하나님이란 표기에 '하나(1)'라는 의미가 사후부여된 것으로 압니다.
    마치 '서울'이라는 고유명사가 '서라벌'에서 유래하였다는 정설 외에
    '설(雪)'+'울'에서 나왔다는 소박한 민담이 존재하는 것처럼요.
    말레이시아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단어로 '알라'를 쓴다더군요^^

    1. 사무엘 2011/04/02 09:51 # M/D Permalink

      와, 겨울하늘 님,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학교와 회사 병행하느라 좀 힘든 것만 빼면 잘 지내고 있고, 날개셋 새 버전도 개발도 원활하게 진행 중입니다.
      얼마나 오랜만이면 이 옛날 글까지 거슬러 올라가셨군요. ㅋㅋㅋㅋㅋ
      앞으로도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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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와 '감사하다'

영어의 '땡큐', 중국어의 '씨에 셰', 일본어의 '아리가토', 독일어의 '당케' 에 해당하는 한국어는 아쉽게도 딱 하나로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사과하는 표현으로 '미안'과 '죄송'이 공존하듯이 '고맙습니다'라는 순우리말과 '감사합니다'라는 한자어 계열이 공존하는데, 인간의 자연어라는 건 “그럼 이 둘을 마음대로 섞어 쓰면 된다는 뜻이에요?”를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은 미묘한 상황 차이에 따라 둘의 용법이 구분되게 마련인데, 그 원칙이라는 게 엿장수 마음대로 식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미치고 펄쩍 뛰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은 엄밀한 방법이 아니라 그냥 말뭉치 기반으로 수학으로 치면 numerical하게 해를 구할 수밖에 ㄲㄲㄲ

그럼 '고맙다'와 '감사하다'에 대해서 살펴보자.
'고맙다'는 be grateful/thankful에 가까운 형용사이다.
'감사하다'는 give thank, 또는 그냥 thank, 다시 말해 '고마워하다'에 해당하는 동사이다.
"네가 고마워서 난 네게 감사한다" 정도 된다.

다시 말해 둘은 일단 품사가 서로 다른 단어이다.
비록 관용구 감탄사에 가까운 Thank you에 대한 번역이야 둘 다 가능하다 할지라도, 각 단어가 원래 완전한 문장에서 무엇이 생략된 형태인지 정도는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보통 '감사합니다'는 '고맙습니다'보다는 문어적이고 격식 있는 말투로 통용되는 것 같다. 마치 영어로도 Thank you so much가 very much보다는 여성적이고 구어적인 것처럼 말이다.
뭐 이런 것도 '한국에 만연한 토박이말 천시 풍조'의 일례이고 '감사'는 일본식 한자어라고 열폭하는 분이 있는데, 그렇게까지 피해 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뉴스 끝날 때나 교통수단 내부에서의 각종 안내방송 멘트를 들어 보면, 요즘은 오히려 '고맙습니다'가 더 즐겨 쓰이는 듯하기도 하다.

교회 예배의 대표 기도에서 자주 듣는 표현으로 “고맙고 감사하신 하나님”이 있다. 이건 제아무리 한자어가 토박이말보다 품위-_- 있고 고상한 표현이라고 해도 어법에 어긋난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지, 하나님이 또 무슨 대상으로부터 은혜라도 입어서 거기에다 감사한단 말인가? '고맙다'와 '감사하다'는 뉘앙스의 차이에 앞서 근본적으로 품사가 다른 단어임을 잊지 말자. 그냥 '고마우신 하나님', '한량없이 고마우신 하나님'이라고만 하면 된다.

'고맙다'는 마치 '좋다', '밉다', '무섭다'처럼 일종의 심리형용사의 기능을 한다.
'좋은 사람'은 그 사람이 좋다는 뜻이지만, “나는 그 사람이 좋다/싫다”고 하면 그 사람의 실제 성품과는 무관하게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느끼는 심리를 표현하는 말이 된다.
심리형용사는 1인칭이라는 주어 선택 제약이 존재하며, 영어로 정확하게 번역되지도 않는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싫어한다”처럼 동사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마운 사람', '나는 그가 참 고맙다'도 그와 동일한 맥락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고맙다'는 골수 왕자병이 아닌 이상, 나 자신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 형용사이다. “세상에 나보다 더 겸손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_-;;; 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쓰임이 딱 정해져 있다 보니, 어법상으로는 남이 고마운 게 아니라 내가 고마운 존재가 되는 식으로 좀 어정쩡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고맙다/감사하다가 뒤섞여서 자연어에서 통용되어 온 것 같다.

요약: 아무쪼록, 배은망덕은 어느 문화권을 가더라도 인간말종 천하의 개쌍놈짓으로 취급받는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자. 성경에서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는 thank for everything이 아니라, thank in/under everything이다. 무슨 로봇이나 변태처럼 “앗싸, 불행을 내려 주셔서 ㄱㅅㄱㅅ!”가 아니요, “그래도 내가 북한이나 소말리아 애들보다는 처지가 낫지” 식으로 남과 비교하는 바리새인 버전 감사도 아니다. 내가 지금 당장은 나쁜 여건에 처했지만 그 나쁜 여건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고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고서 낙담하고 좌절할 필요가 없으며, 그분이 나의 모든 것이니 ㄱㅅ라는 정말 수준 높은 감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12/18 19:26 2010/12/1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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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각형 2010/12/20 22:52 # M/D Reply Permalink

    감사를 표하는 말로는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도가 생각나는데.

    사전에 감사하다가 고마운 마음이 있다라고 되어 있네요. 고맙다로 가보면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 따위에 대하여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라고 되어 있고요. 결국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는 같은 말이라는 결과가 나오는거죠. 수고하셨습니다는 구분이 잘 되고요.

    감사합니다는 일반적으로, 모든 어떤 정당한 서비스를 받고 인사할 때 사용하고, 고맙습니다는 뜻하지 않은 호의를 입었을 때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서비스)

    수고하셨습니다는 정당한 정신적, 육체적 노동에 사용되고요. 육체 노동이라도 정당하지 않을 때는 고맙습니다를 쓰는 듯 합니다.

    아랫사람에게 '수고했어', '고마워'는 되지만 '감사해'는 좀 아니죠. 그런 면에서 감사하다는 고맙다의 더 강한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어채 쪽으로 많이 쓰이는것 같고요.

    1. 사무엘 2010/12/19 14:36 # M/D Permalink

      '수고하셨습니다'는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 good job이나 well done, thank you for your trouble. 정도에 대응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감탄사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는 쓰는데, '고마워'와는 달리 '감사해'는 또 통용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도 문어가 아닌 구어에서는 극도의 격식체로만 쓰이며 비격식체를 허용하지 않네요.
      저의 직업병으로는 감탄사는 헷갈릴 일 없이 그냥 '고맙습니다' 하나만 쓰게 규정을 확 바꿔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발동합니다. ^^

  2. 맑아릿다 2010/12/19 23:14 # M/D Reply Permalink

    [감사하다]는 동사이기만 한 게 아니라 동사와 형용사의 품사통용입니다. 따라서 형용사로도 쓰일 수 있어요. 접미사 '-하다' 때문에 동사 같은 느낌이 들긴 하는데, 신실하다, 화려하다 등도 '-하다' 꼴이지만 형용사잖아요?

    [무례를 용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거 동사 같지만 사실 아래와 같은 구조의 문장.

    [여기 전구를 달면 참 화려하겠습니다.]

    이론적으로만 따지자면 [(당신이) (나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면 (내가) (당신에게) 감사하겠습니다]와 같이 생략된 성분을 복원하고 '감사하다'를 동사로 볼 수도 있습니다만, 그럼 용서를 비는 주제에 상황의 주도권은 지가 잡고 있겠다는 게 되니까요;; '감사하겠습니다'가 '감사할 의도가 있습니다'와 같은 의미로 판단하는 건 부적절할 듯하고, '발화자가 고마운 마음을 가지도록 베풂'의 권한은 상대에게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경우, '감사하다'는 형용사. 그러니 '고맙고 감사하신 하느님'은 (어감상 익숙지 않은 문장이지만) 문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어요.

    아무튼 '감사하다'와 '고맙다'는 그 구조상의 차이 때문에 활용에서도 다소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의 경우는 [안녕하세요]처럼 굳어진 채로 관습화되어서 그냥 인사로 쓰입니다. 정당한 서비스와 뜻하지 않은 호의의 차이라는 건 특이한 의견이지만 저는 찬동하기 어렵네요:)

    +) 미용실에서 난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있었는데도 나더러 수고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수고는 그쪽이 하신 거 아니오? 라고 하진 않았지(..)

    1. 사무엘 2010/12/20 01:53 # M/D Permalink

      좋은 의견에 감사합니다(흠 이 말도 조심해서..-_-). 저도 이 글 써 놓고 혹시나 해서 사전 찾아봤는데 표준 국어 대사전은 '감사하다'에 형용사 풀이가 들어있더군요. 으악..;; 하지만 영 어색하고 적응이 안 돼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감사하다'가 형용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고맙고 감사하신'은 '이 제품은 참 좋으십니다'만큼이나 듣기 거북했더랬습니다.
      '감사하다' 말고 다른 용언 중에 품사 통용의 예가 있는가요? 아, '웃기다'도 그런 예인가?? 또 그거 말고는..?

      저의 국어 감각으로는,

      1. 참 감사한 말씀이지만 사양하겠습니다. ==> 틀림. '고마운 말씀'으로 고침. ㄲㄲㄲ
      2. 나는 그의 후의가 무척 감사했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 무척 고마웠지만 / 조사 '가'를 '에'로 고침
      3. 무례를 용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감사하겠습니다 / 고맙겠습니다 모두 허용. (제가 감사하겠습니다) or (당신이 고맙겠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용서를 비는 주제에 무슨 건방지게 조건부 감사냐' 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I will be appreciated if ... 를 떠올리게 하는 전형적인 번역투라고, 그래서 이런 표현 자체를 어감상 안 쓰는 게 좋겠다고 주장하는 우리말 연구가도 있지요. 저 역시 차라리 안 쓰고 말겠어요. ㅎㅎ 그냥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로...

      역시 문법이라는 건 그냥 정하기 나름인 것인가..;;

      미용실 고객은 꼼짝 않고 가만히 있는 게 힘든 일이니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하는 걸까요? 그런 맥락에서는 교통수단 이용 승객한테도 운행 종료 후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해야 할 판. ㅋㅋ

    2. 맑아릿다 2010/12/20 03:33 # M/D Permalink

      품사 통용의 예는 여럿 있습니다.

      -방 안이 밝다 (형용사)
      -날이 밝는다 (동사)

      -돈이 있다 (형용사)
      -우린 여기에 있자 (동사)

      외에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만 일단 이거 두 개밖에 기억나지 않네요ㅠㅠ
      표준국어문법론의 색인에서 품사통용을 찾아보시면 좋을 듯합니다ㅠㅠ

    3. 사무엘 2010/12/20 05:25 # M/D Permalink

      '있다'는 통사론 수업 때 들은 적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밝다'는 굉장히 특이하네요. '어둡다'는 안 그런데 왜 반의어만...;;
      제가 국어를 보는 안목이 지금까지 얼마나 좁았는지 차차 느끼는 중입니다. ^^

  3. 다물 2010/12/20 14:27 # M/D Reply Permalink

    국립국어원 누리집에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찾아보면 서로 같은 뜻인데 감사합니다는 한자이고 고맙습니다는 고유어니 가급적이면 고맙습니다를 쓰라고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방송에 보면 거의 감사합니다로 나와서 이런거 바꿔야 한다고 지난 주말에도 다른곳에 가서 얘기하고 왔는데. 전 감사합니다 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결 퍼오는게 막혀있는 구조라서 온라인 가나다에 적힌 글 중 하나 복사해서 아래에 붙입니다.(질문과 답변 모두 적었습니다.)


    '고맙습니다'와 '감사합니다'가 쓰이는 경우의 차이 등록일 2010.11.23.
    첨부
    작성자 한태윤 조회수 46
    '고맙습니다'보다 '감사합니다'가 더 상대를 높이는거잖아요?

    그런데, 지하철이나 여러 공공장소에서는 '고맙습니다'를 쓰더라구요.

    감사합니다말고 고맙습니다를 쓰는 특별한 이유가있나요
    답변 제목: 고맙다, 감사하다
    작성자 온라인가나다 답변일자 2010.11.24.
    안녕하십니까?
    ‘고맙다’와 ‘감사하다’는 뜻이나 쓰이는 맥락에 별 차이가 없습니다. ‘고맙다’는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 따위에 대하여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의 뜻을 나타내고 ‘나는 무엇보다 자네의 그 따뜻한 배려가 고맙네./그녀는 그가 자기를 위해 그렇게 애써 주는 게 무척이나 고마웠다.’와 같이 쓰이고, ‘감사하다’는 ‘고맙게 여기다./고마운 마음이 있다.’라는 뜻을 나타내고 ‘나는 그가 이곳을 직접 방문해 준 것에 무척 감사하고 있습니다./당신의 작은 배려가 대단히 감사합니다.’와 같이 쓰입니다. 다만 ‘고맙다’가 순우리말이고, 쓰여 온 역사가 깊으므로, ‘감사하다’보다는 ‘고맙다’를 쓰는 것이 좋고, 이러한 이유로 ‘고맙다’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 사무엘 2010/12/21 08:19 # M/D Permalink

      형용사고 동사고 다 집어치우고 그냥 동의어처럼 설명했다는 얘기네요.
      저는 단순히 순우리말과 한자어의 차이라고 논하기에는 두 단어의 쓰임이 다른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 왔더랬습니다.
      음, 그런데 저는 방송에서 ‘고맙습니다’를 더 많이 들은 것 같은데, 의외군요. ^^
      (덧. MRU: most recently used)

  4. 맑아릿다 2010/12/21 07:43 # M/D Reply Permalink

    모바일 페이지에서는 방명록에 어떻게 접근하나요ㅠㅠ 나만 모르는 건가ㅠㅠㅠ

    1. 사무엘 2010/12/21 08:19 # M/D Permalink

      아, 모바일 페이지에서 방명록이 안 보인다는 의견이 이미 있었습니다.
      음, 하지만 제가 모바일 사용자가 아니고 블로그 엔진 내지 스킨 구조를 몰라서 당장 조치를 취하긴 곤ㅋ란ㅋ
      이건 기본 스킨인데, 동일 엔진과 스킨 쓰는 모든 블로그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인 걸까요..;;

  5. 1 2011/03/20 14:59 # M/D Reply Permalink

    '고맙습니다'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보다 '고맙습니다'가 상대방을 더 높이는 말입니다. 또 '죄송합니다'보다는 '미안합니다'가 상대방을 높이는 말입니다. 한자어와 순수우리말이 같은 뜻일때 순수우리말을 쓰는게 상대방을 더 높이는 말이라는게 국어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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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높임법

높임법은 한국어의 주된 특징인 한편으로 쓰임이 까다롭고 외국인에게 배우기 몹시 어려우며, 심지어 자국민끼리도 그 용법이 차츰 문란해지고 있는 존재이다.
높임법의 적용 여부와 그 수준을 결정하는 변수는 크게 다음과 같다.

나이: 한국 사회는 나이가 깡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회생활에서 일단 한 살이라도 차이가 나면 존댓말과 반말이 갈린다.
계급이나 어떤 조직 내에서의 짬: 이것도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다만 나이와 계급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친밀도: 존댓말을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을 높인다는 의도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당신과는 가까워지지 않고 그냥 사무적으로만 정중하게 대하겠다는 뉘앙스도 있다. 사회에서 만나는 선후배와는 달리, 친형제 사이엔 나이 차이가 나더라도 반말로 일관하는 것 역시, 이 친밀도와 관련이 있다 하겠다.

그런데 이 세 변수를 모두 고려하여 가장 적절한 solution을 찾는 게 상당히 어렵다!
닥치고 계급이 짱인 군대에서도 나이와 계급이 엇갈려서 생기는 웃지 못할 사례가 있다.
갓 임관한 소위가, 아버지뻘 나이인 행보관에게 “자네가 행보관이구만.” 운운하며 반말을 찍찍 쳐 갈겼다는 루머. ㄲㄲㄲㄲㄲㄲ
이건 장교라 할지라도 꼴통으로 찍히게 만들고 자기 남은 군 생활에 애로사항을 꽃피우는 무모한 짓이다.

이런 높임법과 관련하여 본인이 떠올리는 언어 현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게 있다.

1. “교장 선생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라는 멘트는 무려 중학교 국어 수업 시절부터 어법에 어긋난 표현이라고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그런데 요즘도 그런 잘못된 표현이 쓰이고 있나? 본인이 단언하건대 한국어에서 말씀이 ‘계실 수 있는’ 문맥은 요한복음 1:1 정도밖에 없다. ㅋㅋ

2. 그런데 요즘은 1번 정도는 약과. 각종 서비스 업종에서 직원들 교육을 대놓고 잘못 시키는 바람에, 더욱 듣기 민망한 잘못된 높임법이 범람하는 중이다.
“고객님, 지금 상담 요청 전화가 너무 많으시네요.”
“음악을 좋아한다는 건 아주 좋은 취미이십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제품이 고객보다 더 높다. 도대체 지금 누굴 높이고 있는 거야? ㄲㄲㄲㄲ ‘시’가 주체를 높이는 게 아니라 청자를 높이는 효과를 낼 거라고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저 불편한 멘트를 견디다 못해 본인의 학교 국문과의 모 학생은, 투철한 직업 정신을 발휘하여 고객 불만 사항에다가 잘못된 높임법을 신고까지 했다. ㄷㄷㄷ;; 그런데, 거기서 연락이 뭐라고 왔냐 하면, “고객님, 저희 직원이 실례를 범하셨다는 불만 사항이 잘 접수되셨습니다.” ㅠ.ㅠ
이 정도면 날 두 번 능멸한 거라고 그 친구는 쓴웃음을 지으며 회상하더라. ㅋㅋㅋㅋㅋ

3. 한국어 맞춤법의 복병은 단연 압존법이다.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는 할아버지가 아버지보다 더 높으므로 아버지를 반말로 표현하는 게 맞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또 문란해져서... 회사에서 대리가 “부장님, 김 과장은 외근 나갔습니다” 이러면 상사의 언어 감각에 따라서는 “넌 김 과장하고 친구 사이냐?” 이런 갈굼이 되돌아오기도 한다나? 본인은 병특 시절에 압존법을 적용 안 했다가 혼난 적은 있다(청자보다 낮은 직급인 사람을 언급하면서 높임법을 써서).

KBS 한국어 능력 시험 공부하면서도, 압존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이거 정말 써도 문제이고 안 써도 문제이고..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난감한 경우인 것 같다.

4. 그나저나 본인은 아무런 높임도, 낮춤도 없이 간단하게 2인칭을 지칭할 수 있는 you가 한국어에 없는 것에 굉장한 불편을 느낀다. 그래서 특히 소프트웨어의 UI를 보면 you는 사용자, 회원님, 고객님으로 어정쩡하게 우회 번역되고, 바깥 사회에서는 선생님이나 사장님으로, 심지어 채팅 같은 곳에서는 그냥 ‘님’으로 바뀐다.

한자가 일본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만큼이나 본인은 저런 난잡한 용법도 한국어의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기계화와 정보화를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냥 간단하게 ‘당신’이라고 쓰자고 의식 전환 운동이라도 벌이면 안 될까? 웬 3인칭 ‘당신’은 잘 쓰지도 않는데 그냥 없애 버리고 말이다!
하나님까지 대놓고 you라고 일컫는 것까지는 무리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거야말로 번역투랍시고 대안도 없이 배척만 하지 말고 한국어가 받아들여야 할 면모가 아닐까 한다.

C++에서 전처리기, 다중 상속 같은 거 뚝뚝 떼어 내고, 가비지 컬렉터 넣고, CFG 문법 체계로 개편하여 더 세련된 D나 C# 같은 언어를 만들듯, 한국어도 그렇게 좀 개조를 하고 싶다.
혼잡한 언어를 숙청하려면 강력한 독재 권력이 필요함을 또 다시 느낀다. 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0/11/20 09:19 2010/11/2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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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기윤 2010/11/20 11:08 # M/D Reply Permalink

    4. 를 읽다가 생각난건데, 폴라리스 랩소디라는 소설 중에 등장하는 "데스필드" 는 자신 이외의 누군가를 지칭할때 무조건 "당신" 이라 합니다. 다시 말해서, 1인칭 외의 2인칭이나 3인칭은 무조건 "당신" 으로 통일. 신기한건 주의해서 읽으면 여기 쓰인 "당신" 이 몇인칭의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었죠.. (다만 한번에 알아듣기는 역시..)

    http://www.angelhalowiki.com/r1/wiki.php/%EB%8D%B0%EC%8A%A4%ED%95%84%EB%93%9C

    수정) 폴라리스 랩소디 맞습니다. 관련 페이지 링크

  2. 푸른·가람 2010/11/20 12:18 # M/D Reply Permalink

    그래서 아는 분은 부하 직원들을 부를 때 '그대'라고 부르시더군요.
    저 경우에 당신이 쓰이기는 힘들 것 같은게, 당신이 요즘 쓰이는 제일 대표적인 경우가 서로 멱살잡을때라서(.. )

  3. 사무엘 2010/11/20 19:56 # M/D Reply Permalink

    김기윤: 2인칭과 3인칭 대명사가 겹치는 게 제가 알기로는 독일어도 Sie/sie 같은 경우도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동사의 굴절을 통해 중의성이 형태 차원에서 해소는 됐을 겁니다. 하지만 그저 문맥과 의미로밖에 판별을 할 수 없다면 대략 낭패.

    푸른·가람: 아 그렇군요. ㅠㅠ "당신이 내 라이터 가져갔잖아!"(영화 <라이터를 켜라> 중)처럼.
    한국어는 높여 주지 않으면 아예 싸잡아 낮추는 표현이 되고, 뭔가 중립적인 문체가 부족한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4. 맑아릿다 2010/11/22 21:50 # M/D Reply Permalink

    저..저는 3인칭 당신을 많이 쓰는데ㅠㅁㅠ 없애면 안된다능요ㅠㅠㅠㅠㅠ
    2인칭은 주격조사와 '-이'와만 결합하고 3인칭은 '-께서'와만 결합하니
    적어도 주격일 때는 중의성이 없어요(<-)

    물론 목적격일 땐........ 몰ㅋ라ㅋ

    저 송구스러운 일로 이메일을 보내 민폐를 끼쳤습니다.
    ...도와주세요 (운다)

    1. 사무엘 2010/11/22 23:27 # M/D Permalink

      헉, 3인칭 당신을 실제로 구어로 구사하는 사람이 있군요. =_=;;;
      공돌이 출신은 언어 감각도 그냥 단순 무식하고 기계 친화적이죠. ㅋㅋㅋㅋㅋ

      그런데, 위의 댓글에도 언급돼 있듯이, 멱살 잡으면서 "당신 때문에 망했잖아!"하는 것과 "당신께서는 정말 훌륭한 학자이셨습니다"... 가 공존한다는 게 너무 어색하지 않나요? 판타지 수준인 듯..
      메일은 봤습니다. 어이쿠, 저도 기말 과제 고민해야 하는데 ㅠㅠ...;;; 곧 연락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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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면서 든 생각

국어학이란 게 어떤 학문인지, 말뭉치(코퍼스) 연구라는 게 어떤 건지 슬슬 적응이 돼 간다. 또 여기가 사전 연구 전문이다 보니, 평소에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국어사전이라는 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심지어 예문은 어떻게 뽑고 예문에 들어가는 철수, 영희 같은 명칭은 어떤 원칙으로 뽑는지 같은 것도 세부 사항을 그쪽 일을 하는 친구들에게서 들으니 재미있다.
코퍼스는 한글 사용 빈도 파악과 글자판 연구에도 사용 가능할 듯?

1.
본인이 생각하는 사전 표제어 기록 (이의 제기 환영)

백과사전에서 풀이가 가장 긴 단어: 대한민국 (우리나라의 역사, 지리, 분야별 현황 등이 죄다 좌르륵~)
혹은 United States (위와 비슷한 이유로), human (인간의 모든 것 ㅋㅋㅋ)

한영사전이나 국어사전에서 풀이가 가장 긴 단어: 보다 (see, seem 등~~)
영한사전에서 풀이가 가장 긴 단어: have

2.
영어에 '모르다'를 뜻하는 한 단어짜리 동사가 없다는 건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다.
'-에 무지한' 정도에 해당하는 형용사는 있지만, "어서 불어 / 난 모른다!"를 깔끔하게 표현할 수 있는 한 단어는 없다. 기껏해야 do not know.
아마 영어는, 뭔가를 모른다는 건 마치 뭔가가 '없는 것'처럼 상태일 뿐이지 '알다'처럼 정식으로 동사가 될 자격은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다못해 forget도 아니고.. 한자에서도 '모를 X' 같은 글자는 본 기억이 없다.

사실, 영어에는 '없다'라는 깔끔한 단어도 없다. 그냥 없는 주체 앞에다가 no를 붙여서 There is no X 또는 No X exists 정도로 표현되는 게 고작. 그런데 반대로 한국어는 nothing이나 void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추상적인 명사 단어가 없다. 無는 접사에 더 가깝다.

3.
한국어에서 '뛰다'가 어째서 run도 의미하고 jump도 의미하는지는 오랫동안 본인의 의문점이었다.
마치 '푸르다'가 어째서 blue도 의미하고 green도 의미하는지 의아했던 것처럼 말이다.

단군의 후손들은 파랑과 초록도 구분 못 하는 색맹이었단 말인가? 어떻게 들판도 푸르고 하늘과 바다도 동시에 푸를 수가 있을까?
'푸르다'는 관용적으로 blue와 green을 싸잡아 일컬을 수 있게 놔 둔다 치더라도, '파랗다'는 blue로 완전히 굳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움직여도 되는 신호등 색깔은 파란불이 아니라 초록불이나 차라리 푸른불로 표현을 바꿔야 하지 않나 싶다.

어쨌든 '뛰다'도 그렇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단어이다. 물론, 달릴 때는 걸을 때와는 달리 두 다리가 동시에 공중에 떠 있는 타이밍이 있다. 그 점에서는 run이 jump와도 공통점을 지닌다.
이것도 '뛰다'는 무조건 jump로, run은 '달리다'로만 강제로 구별을 시켜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혼자 해 봤는데, 쉽지 않은 문제이다.
마치 '손뼉을 치다'와 '박수를 치다'는 뉘앙스가 서로 완전히 다른 단어인 것처럼, '달리다'가 어울리는 상황과 '뛰다'가 어울리는 상황이 좀 구분이 되는 것 같아서이다.

4.
결정적으로는,
"한 대 맞고 두 대 친다"
"햇볕도 안 들고 양지바른 곳"
"서양 갑옷이 묘하게 존재감 있는 이런 요가 교실은 싫어"

같은 명문장들에 대해서도 이건 부사어, 이건 관형어, 이건 서술절 등 문법 구조와 parse tree가 그려진다. 저런 대사가 예문으로 잔뜩 수록되어 있는 문법 책이 있다면, 저런 대사 패러디가 수록되어 있는 성경 만화만큼이나 행복할 것 같다. ㅋㅋㅋㅋㅋ

5.
우리말에서 '저지르다'는 뭔가 나쁜 일을 벌이고 사고를 친다는 뜻의 타동사이다. 저지른 대상을 목적으로 받는다.
영어로는 주로 commit에 대응한다. 다만, commit 자체는 '저지르다'보다 뜻이 훨씬 더 넓은 말이기 때문에 위임하는 것도 commit이고, 소스 코드를 저장소에다 반영하는 동작도 commit이라고 한다.

실수부터 시작해 살인, 간음, 반역, 폭력, -질, -짓, -죄, -악, 비리, 불효, 과오, 만행 등 거의 모든 나쁜 짓이 '저지르다'의 목적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자살'을 저질렀다고는 안 한다. 그냥 '자살'을 한다고만 하지. 정작 영어로는 정확하게 commit suicide라고 하는데도 한국어에는 그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표현이 없으니, 이는 특이한 면모가 아닐 수 없다. (뭐, 영어로도 suicide 자체만으로 '자살하다'라는 자동사가 될 수도 있긴 함)

내가 짐작하건대 한국어의 '저지르다'에는 "나쁜 짓을 하고도 당사자가 그 행위의 영향을 받지 않고 멀쩡하게 남아 있는 경우"라는 뉘앙스가 내포된 것 같다. 자살은 분명 나쁜 짓이지만, 당사자가 죽어 버린다는 점에서 다른 악행과는 차이가 있다.

6.
이 외에도, 한국어로는 컴퓨터 내지 인터넷에다가 바로 '하다'를 붙이지만, 영어는 do가 아닌 use가 쓰인다.
그러고 보니 한국어에는 운동 경기에다가도 '하다'를 붙이기 때문에 영어 직역투로 '축구를 논다' 이렇게 말하면 전형적인 번역투 비문이 된다. 실제로 한국어 배우는 영어권 사람이 초창기에 자주 저지르는 실수라고 함.
영어로는 산은 높다(high)고 표현하지만 건물은 마치 사람의 키처럼 tall이라고 표현한다.
open/close(열다, 닾다, 펴다, 덮다, 다물다, 감다...)라든가 wear(입다, 쓰다, 끼다, 신다...)의 표현 차이는 그야말로 판타지 수준.

같은 의미를 전달하더라도 단어와 단어가 결합하는 선호도는 언어에 따라 편차가 꽤 큼을 알 수 있다.
학부 시절엔 이런 생각은 혼자 머릿속에서나 해야 했는데, 여기 와서는 언어 현상에 대한 생각을 과 친구들이나 교수님과 마음껏 주고받을 수 있어서 참 좋다.
학부를 전산학 전공한 것도 후회 없고, 대학원으로 지금 과에 간 것도 잘 갔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28 08:52 2010/10/2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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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재주 2010/10/28 09:54 # M/D Reply Permalink

    김 기윤님 // 컴퓨터에게 인간의 말을 context적 측면을 포함시켜 완벽하게 이해시킬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에 따라 언어간 번역기도 완벽해질 겁니다.


    달리 말해 그런 날은 최소한 근시일내에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죠

  2. 주의사신 2010/10/28 10:14 # M/D Reply Permalink

    1. 영어권 사람이 한국어 발음 할 적에 자주 실수하는 것 중 하나는 '엄마'를 '어마'로 발음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발음을 굳이 2번 안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착안해 볼 때, '섬머'보다는 '서머'가 더 영어 발음스러운 느낌이 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중국어에서 모른다는 '不知道'라고 씁니다. "뿌쯔따오"정도로 발음이 나는데, 생각해 보니 중국어에도 딱히 모른다를 한 단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위 단어를 우리 식대로 읽어 보면 뭔가 철학적인 느낌이 납니다.


    3. 철수, 영희, 홍길동이 왜 수능 문제나 교과서 등에서 쓸만한 이름 없으면 그냥 등장하는 이름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아시나요?

  3. 사무엘 2010/10/28 16:30 # M/D Reply Permalink

    김 기윤, 김재주: 전세계 언어의 공통적인 면모만 쏙 뽑아서 기계가 판독 가능한 intermediate(중간) 언어를 만들려는 시도를 그 똑똑한 전산학자, 언어학자들이 한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호락호락 잘 되고 있지 않죠. 그만치 언어라는 건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주의사신: 오홋, '모르다'가 존재하는 언어가 그리 흔치는 않은가 보군요.
    철수, 홍길동 같은 만만한 이름이라는 개념은 어느 언어에서나 편의를 위해 어느 정도 존재하지 않나 싶습니다. 영어만 해도 Jack, John 등 굉장히 발달해 있죠. ㅎㅎ 그래도 국어사전에 철수, 영희가 기재돼 있지는 않은데, 영한사전은 아예 well-known 이름들이 사전 등재까지 돼 있으니까요.

  4. 푸른·가람 2010/10/28 17:43 # M/D Reply Permalink

    푸르다 같은 경우, 사실 인지과학적으로 접근했을 때 이유가 보였던 걸로 알고있습니다. 서구권하고 동아시아권에 색을 구분하는 기준(?)이 달랐었거든요. 이 쪽에 대해서 관심이 가시면 뒤져보면 좋을겁니다. (라고 쓰고 까먹었습니다라고 읽으면...) 그게 몸에 있는 색을 구분하는 세포 등등하고도 관계가 꽤 깊었던걸로 기억하거든요.
    대강 서양의 언어에서는 파란색하고 초록색을 잘 구분 가능한 대신, xx색하고 yy색을 구분을 잘 못한다. 동양에서는 파란색하고 초록색을 잘 구분하지 않는 대신, xx색하고 yy색을 잘 구분한다. 그건 고대에 각각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두 색을 잘 구분할 필요가 없었고, 그것이 언어 습관에 남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설명을 들으면서 배웠었거든요. 카이스트에서 인지과학 수업 들은 후배가 있으면 잡고 흔들면 기억하는 사람 있지 싶습니다.

    사실 어원을 따라 올라가면 푸르다의 어원은 풀이고, 파랗다의 어원은 바다라고 합니다. 저는 아마 이 두 단어가 별도의 색을 구분하기 위해서 먼저 나왔었는데, 바다나 풀 중 하나밖에 없는 내륙지방에서 두 색을 구분할 필요가 딱히 없어서 표현이 섞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사무엘 2010/10/29 01:27 # M/D Permalink

      이 블로그에서는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
      말씀하셨듯이 우리말의 색깔 체계가 아무 이유 없이 지금처럼 된 건 아닐 겁니다.
      우리말은 순수하게 색만을 나타내는 표현이 딱 3원색과 Black & White로만 구성되어 있는 게 인상적인데요,

      희다 / 하얗다
      검다 / 까맣다
      붉다 / 빨갛다
      누르다(press 아님) / 노랗다

      같은 바리에이션 쌍이 있습니다.
      푸르다 / 파랗다
      도 그런 맥락인 것 같습니다.

  5. 정 용태 2010/10/29 02:36 # M/D Reply Permalink

    그러고보니.. 일본어에도 단어자체로 "모르다"를 나타낸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네요..
    시루는 보고 듣고 배우거나 해서 알다,<-> 모르다(시라나이知らない)
    와카루는 이해하다, 이것도 바꿔보면 (와까라나이分からない)

    아.. 그리고 이런 주제의 글을 보니 길이만,시정곤,최숙희 저 "인간, 컴퓨터, 언어" 책을 아주 감명깊게 읽은 기억이 나네요 ^^

    1. 사무엘 2010/10/29 08:11 # M/D Permalink

      일본어까지 한 표 추가. ㄳㄳ
      시 정곤 교수는 카이스트에서 이 분야 선구자 중 한 분이죠.

  6. 다물 2010/10/29 14:42 # M/D Reply Permalink

    3번 신호등은 초록이라고 요즘 애들은 배운다고 들었습니다. 파란색이랑 초록색은 구분을 하는게 맞겠죠.

    1. 푸른·가람 2010/10/29 22:16 # M/D Permalink

      전 구분 안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ㅜㅜ
      꿈이 없어요.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푸른 숲에서 푸른 숲만 초록 숲으로…… 이런 느낌이거든요. 만약 꼭 바꿔야 한다 싶었다면, 초록불이 아니라 푸른불 같은 식으로 했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사전에서 綠을 찾아봐도 푸를 록이고요.

    2. 사무엘 2010/10/30 19:03 # M/D Permalink

      제 지론은 '푸르다'는 either green or blue. 아예 없앨 수는 없죠. 우리말과 우리 민족의 정서상 그건 남겨둘 필요가 있지만,
      '파랗다'만이라도 blue only로. 그 정도 구분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국립 국어원장이 된다면.. 언어 정책 쪽으로 굉장한 독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ㄲㄲㄲㄲㄲ

  7. 다물 2010/10/31 22:01 # M/D Reply Permalink

    국어원장으로 그러려면 짤리지 않을까 생각이. 그냥 꼭대기로 올라가세요. 대통령은 임기 보장이니.

    1. 사무엘 2010/11/01 12:49 # M/D Permalink

      본격 정치계 데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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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문맥 의존성

1.
- 나는 네가 좋다.
- 라면은 삼양이 맛있다.

2.
- 나는 학생이다.
- 나는 자장면이다. (너는?)
- 물은 셀프이다. -_-;;

3.
- 영수는 철수도 못 이긴다.
- 철수는 영희도 못 이긴다. (누가 누구보다 힘이 세다는 건지?)

이런 예를 통해 알 수 있듯, 한국어는 정말로 문맥 의존적인 언어이다.
보조사 '는/은'은 주격 조사처럼도 쓰이고 목적격 조사처럼도 쓰인다. 그래서 3번 같은 모호성도 발생하게 된다.
보어도 주어와 동일한 '이/가' 주격 조사를 받는다는 것과, '와/과'가 and뿐만이 아니라 with로도 해석된다는 것도 난해한 점.

국어 문법 수업을 들으면, 국어 문법에 대해서 용법을 칼같이 정확하게 알게 되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증명을.. 듣는 게 아니라,
이런 건 학계에서도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고 답이 없고 100% 떨어지지 않는다는 식의 말만 주로 듣게 된다. ㅜ.ㅜ

결국 한국어는 형태론이나 통사론을 넘어서 화용론까지 가서 각 단어의 의미와 문맥을 파악하지 않으면
제대로 구문을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기계적인 형태소 분석으로는 대략 GG.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는 C/C++이 문맥 자유 문법이 아니라 문맥 의존 문법이어서 구문을 분석하기 다소 난해한 언어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AA bb(cc); 가 각 토큰의 의미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함수 선언도 되고 객체 선언도 되며, (A)+B에서 A가 typecasting도 되고 피연산자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영어로 치면 and, with, to 같은 전치사의 의미가 뒤에 받는 단어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의미가 뒤죽박죽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헐..
한글은 배우기 쉽고 기계화에 용이한 문자이다. 그러나 한국어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꽤 배우기 어렵고 의미를 분석하기 난해한 언어일 것 같다.

영어는 전에도 언급했듯이, 음운 체계와 어순이 완전 이질적인 것과 언문 일치가 막장이어서 처음에 철자법이 좀 까다로운 것만 빼면, 언어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언어가 아니다. 굴절도 다른 유럽 언어들만치 대책 없는 수준이 아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영어는 어떤 경우에도 모호성이 없고 만능이냐 하면 그런 것도 물론 아니지만..!
(영어의 전치사 용법도 요즘은 많이 문란해져 있긴 하다)

한국어의 문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영어 문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말:

1.
- 나는 철수를 만났다 / 나는 철수와 만났다
하나는 그냥 우연히 마주쳤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의도적으로 볼일이 있어서 약속을 잡고 만났다는 뉘앙스를 더 풍기게 되지만, 용법이 100%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다.

- 나는 연세대를 갔다 / 나는 연세대에 갔다
하나는 그냥 그 장소로 이동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이 학교에 입학했다는 뉘앙스를 더 풍기는 것 같다.

2.
"물은 셀프"를 콩글리시가 아닌 실제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하는지 아시는 분? ㄲㄲㄲㄲ
하긴, 미국은 사람이 서비스를 하는 업종을 이용할 땐 팁을 주는 게 당연시되고 있고 그게 아니면 주유조차도 운전자 자율 주유가 보편화해 있는 나라이다 보니, 저런 표현 자체가 문화 특성상 별로 필요하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리나라의 아파트나 고속도로와 100% 정확하게 대응하는 영어 표현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아울러 저런 문화적 차이 때문에, 미국은 긴 시간 동안 꼼꼼한 사람의 일대일 서비스가 필요한 이발/미용업의 이용료가 굉장히 비싸다고 들었다. 듣기로 성인 남자 기본컷이 20$가 넘는다고..;;

Posted by 사무엘

2010/10/05 10:59 2010/10/0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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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각형 2010/10/05 11:40 # M/D Reply Permalink

    한글은 모호성이 거의 없는(ㅐ와ㅔ의 모호성은 사람들이 발음을 잘못해서 그런거고) 문자이지만, 한국어는 그렇게 까지 아니더군요. 무슨 인공어 아닌 이상 그런 면은 조금씩 있는거고요.

    문법이라는 거 자체가 언중들이 쓰는 말의 형식을 말로 정리한 것이지 수학 같이 학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닌지라 '증명'하기 힘든 감이 있죠.

    그런 면에서 보면 영어 쪽에서도 as나 to 같은 이런 것들은 막장 급으로 '알아서 잘~' 해석해야 하는걸요.(사전 뜻만해도 수십개) 그런걸 분명하지 않게 영어 시험에서 문법 문제로 냈다가는 엄청난 논란이 일어나겠죠.

    1. 사무엘 2010/10/05 23:21 # M/D Permalink

      언어의 특징에 대해 이미 다 통달하셨네요.
      하긴, 한글도 한국어의 특성상 '민주주의의 의의' 같은 모호성도 있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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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어와 영어가 서로 정반대인 관념 중에 대표적인 예로는 부정문에 대한 응답 방법이 있다.

"너 숙제 안 했지?"에 대한 대답이 한국어는 "아냐, 했단 말이야."인 반면, 영어로는 "Yes, I did"로 긍정 의문에 대한 대답과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관점에서는 거 참 희한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어에도 무조건 상대방의 말 자체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뜻하는 감탄사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Then Sarah denied, saying, I laughed not; for she was afraid. And he said, Nay; but thou didst laugh. (창 18:15) 안 웃었는데요. / 아냐, 너 아까 방금 분명히 웃었어.

킹 제임스 성경은 yes/no보다 yea/nay(예이/네이)가 훨씬 더 많이 쓰인다. 마 5:37의 "오직 너희 의사 표시는,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라."에서도 yea/nay이다.

2.
이에 덧붙여 또 중요한 차이로 '가다'와 '오다'가 있다.

"너 빨리 이리 와 봐."에 대한 대답으로 한국어는 "지금 가는 중이야"인 반면, 영어로는 "I'm coming"이다.
영어는 남이 내게 come이라고 지시를 내렸으니, 나는 거기에 순응하여 그에게 come한다고 기계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한국어의 '오다'는 오로지 나에게, 화자에게 상대방이 움직여 가까이 간다는 뜻이다. '오다'의 주체가 '나'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come이 성경 번역에서도 굉장히 어려운 요인 중 하나가 된다. 문자 그대로 죄다 '오다'라고 번역하면 우리말 어법에 어긋나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같은 영어 성경 중에서도 킹 제임스 성경은 come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걸 go나 enter로 바꿔 버린 경우가 적지 않다.

3.
이렇게 단어 자체에 '나'라는 객체가 수반된 비슷한 예로는 불완전 동사인 '달다'가 있다.
sweet나 equip 말고 give이다. '다오', '달라', '도(사투리-_-)'로만 활용되는 그 이상한 단어 말이다.
불완전 동사가 '가로다', '더불다', '달다', '데리다' 말고 또 뭐가 있더라?
이 '달다'는 '주다'와 의미상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남으로 하여금 특별히 '나에게' 뭔가를 주기를 원한다는 아주 이기적인 뉘앙스로 쓰인다. '주다'라고만 하면 내가 남에게 베푸는 뉘앙스가 풍기지 않는가?

"저 사람에게 빵을 다오"라고 하면 뭔가 이상하고 어색하다. "저 사람에게 빵을 주게/주시오/주세요"라고 하거나 아니면 "내게 빵을 다오", "우리에게 빵을 달라"라고 해야 말이 된다.

흔히 한국어는 압존법이란 게 있을 정도로 최대한 청자 위주로 언어가 구성돼 있다고들 한다..
내가 언급하는 사람이 나보다 높더라도, 청자보다는 낮은 사람이라면 반말이 허용된다.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오십니다"가 아니라, "할아버지, 아버지가 옵니다"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오다-가다'의 관계를 살펴보면, 한국어도 청자가 아닌 나 위주, 화자 위주의 사고방식이 배인 것도 분명 있다. 그래서 '달다' 같은 단어도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친분 사이가 아닌 공식 석상에서는 압존법이 꼭 적용되는 것도 아니라는데? KBS 한국어 능력 시험 공부하면서 교재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있다. 가령, 할아버지/아버지가 아니라 사장/과장이라거나(자기는 대리-_-) 할 때 말이다. 이래서 한국어는 어렵다. -_-;;

끝으로, 성경 번역에서 유명한 토착화 표현을 덧붙이며 글을 맺는다.

(1) "누가 너를 데리고 오 리를 끌고 가면 십 리를 가 주어라"(마 5:41)가 영어로 원래 무엇인지가 아는가? 1 mile과 2 miles이다. 5리(약 2km)가 1 마일(약 1.6km)보다는 약간 더 긴 거리이다. ^^;;
(2) "장가 가고 시집 가기"는 영어로는 "결혼하거나 혼인 당하거나"(marry / be given in marriage / be married to)가 된다. -_-;; 성경에서 여자가 시집 가는 건 언제나 marry의 수동태로 표현되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8/10 08:37 2010/08/1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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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재주 2010/07/27 00:43 # M/D Reply Permalink

    예. 영어는 '자기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거면' go, '남이 불러서 가는 거면' come을 쓰더군요. 의미에 차이가 있다기보단 분위기와 컨텍스트의 차이를 가져오는 정도 같아요.

    그리고 원래 marry는 그 집안의 아버지가 딸을 시집'보내다'라는 의미라고 하더군요. 고대인지 중세인지 암튼 옛 영어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답니다. 그래서 be married with가 아니라 to를 쓰는 거라네요. 누구에게 보낼 것인지는 아버지의 결정에 달려 있으니..

    1. 사무엘 2010/08/10 13:26 # M/D Permalink

      마치 C와 파스칼, C++과 자바, 자바와 C# 사이에서 문법 비교하는 것처럼
      자연어에도 이런 식의 특성 차이를 비교하는 게 참 재미있습니다.
      7월 27일자 댓글이죠. 이 글보다 먼저 올려 놓은 글들이 다 올라온 뒤에, 이 글도 드디어 올라왔습니다. ㅋㅋㅋ

  2. 주의사신 2010/08/10 09:19 # M/D Reply Permalink

    영어에서 뭐가 제일 어렵냐라고 저에게 질문한다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처음에는 시제 등등의 문법을 정확히 쓰기,

    그 다음에는 You(모든 사람이 평등해지는 순간이라 참 어색합니다. 나이 든 사람에게 이름 불러도 된다는 사실까지...),

    마지막으로는 yes, no랑 전치사인것 같다.

    yes, no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속도로 답변이 나오는데, 남이 not으로 물어보면 으레 한국어식으로 yes, no가 나가서 참 힘듭니다.

    1. 사무엘 2010/08/10 13:26 # M/D Permalink

      영어 문화권에서 You만큼이나 충격적인 건...
      대여섯 살짜리 꼬마애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바로 대놓고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성경에서 하나님에게도 곧바로 You인데 더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처음 보는 사람하고도, 통성명만 한 뒤부터는 나이 전혀 불문하고 곧바로 이름 아니면 you가 인물 식별자로 통용됩니다. 이름조차도 길고 특이한 이름은 주고받기 불편하니까 애칭이라는 개념까지 만들어 쓰고요.

      나이부터 한 살 단위로 까고 호칭 복잡하게 따져야 하는 한국어(한국 문화권)에 비해서 그게 사실 정말 편하긴 해요. 수평적이고 민주적이고 나발이고 같은 이념이나 가치를 떠나, 저게 단순하고 배우기 쉽고 편하죠. 옛날에 우리 조상들은 그런 언어 체계에서 어떻게 살았는지가 궁금해집니다.
      한국어는.. 번거로울 정도로 높여 주는 표현, 아니면 아주 얕잡고 깔보고 무시하는 표현이 되는 딜레마를 좀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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