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 관순: 나는 공산당.. 아니, 왜놈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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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관순 열사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 중에는..
"유 관순은 일제 강점기 당대에는 인지도가 전혀 없는 듣보잡이었다가 해방 이후에야 뒤늦게 발굴되고 부각됐다. 3· 1 시위에서 천안 나와바리의 행동대장이었을 뿐이지, 딴 지역에도 유 관순 정도의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친일 변절 지식인들에 의해 불순한 의도로 쟤만 혼자 '너무' 신격화된 경향이 있다" 이런 부류의 평가절하가 있다.

저게 유 관순 말고도 타 지역의 여러 열사들을 같이 골고루 기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라면 얼마든지 고려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고 유 관순이 진짜로 타 지역 시위 주동자 대비 단 1도, 추호도 다를 바 없다는 말은.. 이 역시 필터링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때 시위 가담자로서 체포되고 투옥돼서 몇 달, 또는 길어야 1~2년 옥살이를 하고 나온 사람이야 많다. 물론 그 행적만으로도 훗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겨우 여고생 신분으로 그렇게 고분고분 옥살이를 하지 않고, 서슬 퍼런 법정에서 "너희 왜놈들은 우리를 재판할 자격이 없다!"고 당당히 외쳤고, 심지어 재판정에서 의자를 던져서 가중 처벌을 받고, 형무소 안에서도 만세 시위를 추진하고.. 자기 신념에 따라 일본의 입장에서는 진짜 악바리 같이 개기다가 기어이 구타로 장살당한 사람은 정말 드문 케이스이지 않은가? 저 증언 자체가 몽땅 조작 구라가 아니라면 말이다.

당연히 그때 투옥됐던 사람들이 전부 다 유 관순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으며 그럴 수도 없다. 그때 잠깐 수모를 꾹 참고 옥살이 하고 나와서는.. 공부 더 하고 교육자, 사업가 등으로 크게 성장해서 일본을 실력으로 이기는 게 민족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더 이익"일 수도 있다. 하다못해 유 관순도 옥사하지 않고 살아 나왔으면 커서 무엇이 됐겠느냐 말이다.

그러나 저렇게.. 뭔가 이 승복 어린이나 신라의 관창 같은 기개를 보이면서 짧고 굵게 간 예외적인 사람도 의미가 있으며, 후세가 특별히 기억하고 기릴 가치는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 않은가? 이것만 생각해도 유 관순은 여러 3·1 운동 참가자 추진자 중의 하나 수준은 넘어서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2. 박 열 + 가네코 후미코: 독특한 아나키스트 계열 국제결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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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 2 마지막 금사회 에피소드를 보고 나서 영화 '박 열'을 봤더니..
무지개 운수가 의뢰를 받아서 타임머신 타고 100년 전의 일본으로 잠입하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주연 배우가 동일인물.. ㄲㄲㄲㄲㄲ)

아~ 저 시절이니까 도기가 택시가 아니라 인력거를 몰고 있는 거고,
이름이 doggy이니까 "나는 개XX로소이다"라는 시도 썼고..
가네코 후미코는 좀 똘끼어린 여성인 게 고은이하고 인상이 아주 비슷한 거 같고..;;

그렇잖아도 모범택시 2의 금사회 에피소드는 도기가 일부러 교도소로 들어가는 내용인데,
박 열도 대부분의 장면은 주인공이 감방에 갇힌 상태로 진행된다. 감방에서도 미친척 하고 똘끼 부리는 거 캐릭터가 비슷하다.
재판 1심 때 조선 예복 코스프레 한 거는.. 진짜 영락없이 부캐 분장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더라. ㅋㅋㅋ

일제 시대를 다룬 한국 영화가 과연 관동대지진을 다룰 일이 얼마나 되겠나? 이건 애초에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일이 아닌데. 더구나 일본 판 십볼렛 색출전(삿 12:6)을 영화로 보다니.. 나름 흥미진진한 소재를 고른 것 같다.
박 열은 1920년대부터 해방될 때까지.. 20대부터 40대까지 인생 황금기를 일본 감옥에서 무기수로 보냈지만 그래도 어째 살아서 나오기는 한 게 참 특이한 것 같다. (참고로, 조선총독부 본진에다 폭탄을 던졌던 김 익상 의사는 박 열과 비슷한 나이와 비슷한 시기대에 투옥됐지만, 일제 말기 때 결국 의문사했었다)

박 열 저 사람한테 가네코 후미코는.. 진짜 김 학준 선생에게 최 용신 같은 존재로 기억에 각인됐지 싶다(소설 상록수의 모티브를 제공한 실제 인물).
지진만 없었으면 저 두 사람 인생이 실제 역사와는 완전히 달라졌을 텐데.. 어찌 됐을지 참 궁금하다. 공교롭게도 박 열과 김 학준 모두 몰년은 1974년이었다.

* 가네코 후미코는 변호사 후세 다쓰지와 더불어, 대한민국 건국 훈장이 추서돼 있는 단 둘뿐인 일본인이다.;;;
사실, '소다 가이치'라고 조선에 정말 엄청난 온정을 베푼 일본인이 더 있긴 한데.. 이 사람은 법이나 정치, 군사 쪽으로 항일을 한 게 없어서 그런지 훈장까지는 못 받았다. 그 대신 이분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에 묻혀 있는 유일한 일본인이다.

3. 김 마리아 외: 엘리트 신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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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 시리즈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다들 기억 하시려나 모르겠다. 시즌 1의 첫 에피소드에서 제일 먼저 등장한 피해자는 바로 '강 마리아'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마리아'는 마치 '에스더'처럼 성경의 인물을 그대로 딴 옛날 스타일 여자 이름이다. 가톨릭에서는 이런 이름을 세례명으로만 쓰겠지만, 개신교 쪽은 그런 개념이 없으니 본명을 그대로 저렇게 짓는 경우가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으로 전파됐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엔 지식인 신여성 중에 '마리아' 동명이인이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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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 마리아(1891-1944)는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인지도가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기까지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시절에 일본과 미국에서 대학원 급 공부를 한 고학력자였던 데다, 항일 운동 쪽으로도 도쿄 2· 8 독립 선언에다 3· 1 운동까지 할 거 다 했기 때문이다.
그때 붙잡혀 끌려가서 옥고를 치르고, 심문 과정에서 왜경으로부터 잔인한 고문을 당해서 몸이 비가역적으로 상했으며, 이 때문에 지병· 후유증을 평생 달고 살았다. 독신으로 살다가 1944년에 병으로 순국한 것도.. 그 지병이 악화됐기 때문이었다.

저분은 행적과 공로가 워낙 탁월하니 1962년에 진작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유 관순 열사도 요절하지 않았으면 아마 김 마리아와 가장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단.. 저분은 전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신학은 주전공과 별개로 따로 공부한 것 같은데 말이다. 설마 이공계는 아니고 문과 무언가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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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다음으로, 참 공교롭게도.. 저분과 띠동갑 후배인 동명이인 김 마리아(1903-1970)도 있다.
사진을 검색해 보면 1891년생 원조 김 마리아는 직모 단발머리의 젊은 얼굴인 반면, 1903년생 김 마리아는 더 나이든 파마머리 중년 모습이 주로 나온다.

이분은 이 범석 장군의 부인이었고 광복군 여군+공작원 커리어를 거쳤다. 사격의 귀재였다고 하니 한국의 애니 오클리 같은 느낌도 드는데..ㄷㄷㄷ 여러 모로 원조 김 마리아와는 활동 분야가 많이 달랐다. 업적의 발굴과 조명이 원조 김 마리아보다 훨씬 늦었기 때문에 1990년에야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3) 참고로, 더 늦게 태어난 박 마리아(1906-1960)도 미국 대학원 출신의 엘리트 신여성이었다. 이 사람은 세월이 흐른 덕분인지, 유 관순 같은 이화학당도 아니고 이화 전문학교를 나온지라, '이대 나온 여자'의 원조급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일제 말기 때 황국신민 내선일체 이딴 짓을 해서 친일 부역자라는 오점이 찍혔고, 해방 후에는 부통령 후보 이 기붕의 아내로서 권력욕을 뿜뿜하며 제대로 흑화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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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가 어땠는지는 다들 아시는 바와 같다. (이 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일가족 동반 ㅈㅅ).. 그러니 박 마리아는 김 마리아와 달리 전혀 영예롭지 못한 악녀로 역사에 남았다. 이름값을 제대로 못 했다.

이 '마리아'들과 비슷한 연배와 비슷한 커리어인 임 영신(1899-1977), 김 활란(1899-1970) 같은 인물에 대해서도 알아보면 재미있지만..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니 생략하겠다.

4. 윤 형숙: 일제와 공산당 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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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니라 호남 지방에서는 ‘윤 형숙’(1900-1950)이라는 여성 열사가 있었다. 이분은 3· 1 운동 당시에 광주에서 만세를 외치다가 일본 헌병의 칼을 맞아 왼팔이 잘리는 중상을 입었다.
이분은 체포된 뒤에도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열악한 곳에서 구금· 투옥돼 있다가 병으로 오른쪽 눈의 시력도 잃고 말았다.

아니, 군인이 전투 중에 부상을 당해서 팔과 눈을 하나씩 잃은 건 영국의 넬슨 제독이나, 독일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처럼 사례가 있는데.. 윤 열사의 사례는 정말 믿기 힘들다. 사진에 찍힌 모습 중에는 대놓고 저런 신체 장애가 묘사된 게 딱히 없는 것 같다만..
허나, 당대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 행적이 가히 전설적이었는지, 저분은 '윤 혈녀'라는 별명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저분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항일뿐만 아니라 반공에도 진심이었다. 해방 후, 6· 25 사변 중엔 손 양원 목사와 동일한 날짜에 동일한 장소에서 북괴 공산군에 의해 나란히 순교하여 주님 곁으로 가게 됐다.
1950년 9월 28일,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고 대한민국이 서울을 수복했던 날, 적들은 반동 민간인들을 모두 처형하고서 퇴각했기 때문이다. 호남 지방은 영남보다 위도가 더 낮았는데도, 영남과 달리 지역이 몽땅 다 북괴에게 점령 당했었다.;;;

윤 열사는 아까 3번의 마리아 정도의 고학력 유학파는 아니었지만, 살아 생전에 지방에서 지역 교회를 묵묵히 섬기면서 전도사와 교사로 헌신했었다. 세상에 이런 '여수의 유 관순' 같은 분도 있었다. ㅠㅠㅠ

Posted by 사무엘

2026/06/18 08:35 2026/06/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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