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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1 병특 시절 by 사무엘 (3)

병특 시절

본인은 올해로 예비군 2년차이고 전반기 향방 작계도 받았다. 이 달 말이면 군필자가 된 지 드디어 만 2년이 된다.
본인이 그럴 때 전투복 상의 안에 늘 즐겨 입는 옷은 병특 회사에서 받은 체육 대회 참가용 티셔츠(물론 회사 로고가 새겨진)이다. 이제 그 회사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니, 가끔 집안에서 입거나 아니면 이런 용도로나 쓴다.

향방 작계 가서 하는 건 동네 산책, 심폐 소생술, 8자 매듭 포박 정도뿐이다. 이번에 가니까, 전투모는 아예 따로 제출했다가 퇴소 때 돌려받는 시스템이 추가되어 있었다. 전투모는 무조건 지참해야 하는 예비군 복장이면서 정작 훈련 때는 전혀 쓰이지 않는 정말 아이러니한 물건이다. ^^;;; (훈련 중엔 거기서 지급하는 헬멧? 철모? 화이바만 쓰므로)

우리나라에서 남자로 태어나서 군대라는 산을 넘고 나니까, 그 전과 후에 인생을 보는 느낌이 확 달라져 보인다. 정말 대학 입시에 이은 제 2의 큰 관문이 맞다.

이제 다 지난 일이니까 슬슬 털어 놓는 얘기이다. 뭐, 내막을 이미 아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본인은 윈도우용 온라인 게임 개발 회사 두 곳을 거치면서 병특으로 병역 의무를 수행했다.
전직을 한 번 했다는 얘기인데, 의무 근무 기간인 1년만 딱 채우고 나서 대우가 더 나은 곳으로 냅다 튄 게 아니라, 순수하게 회사가 망해서 전직한 것이었다. 그래도 첫 직장은 내게 생명 같은 병특 TO를 준 곳인데 내가 무슨 달다 쓰다 말을 할 자격이 있으리요?

그 회사에서 만든 게임은, 비록 아주 유명한 대박은 아니지만 매니아 계층들로부터는 아주 사랑 받던 게임이었다. 망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다시 하고 싶다고 그리워하는 사용자의 블로그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나중에 간 곳은 회사 자체는 아주 튼튼하고 유능한 게임 개발자들이 꼭 가고 싶어하는 곳이었다. 벤처 기업으로 시작했으나 이제 큰 건물의 여러 층을 차지하고 어느 정도 중견 기업 수준으로 성장한 규모였다. 송년회나 체육 대회도, 꾀죄죄한 작은 회사 다닐 때는 경험할 수 없는 으리으리한 스케일로 치렀었다.
게다가 이 직장은 본인이 지금까지 서울에서 다닌 직장 중 집에서도 가장 가까웠던지라, 마음만 먹으면 자전거 출퇴근조차 가능한 곳이었다.

여러 모로 좋았으나... 내가 근본적으로 게이머나 게임 개발 적성이 전혀 아니니 그곳 역시 본인의 생업이 될 수는 없는 분야였다. 게다가 거기는, 회사 자체야 건재하지만 내가 소속되어 있던 스튜디오가 내가 병특이 끝난 후 2년이 채 안 지나서 망했다. 프로젝트가 접혔다.

사실 내가 입사하던 당시부터도 그 스튜디오는 이미 만들어 놨던 게임을 고치고 또 고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출시가 꽤 심하게 지연된 상태였다. 그 후에 행해진 작업은 온라인 게임을 전혀 안 하는 내가 보기에도 시스템을 WOW와 굉장히 비슷하게 고치고 있다는 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서비스도 못 해 보고 경영진으로부터 돈과 시간 먹는 하마라고 낙인 찍힌 채, 더는 돈과 시간을 못 주겠다고 접게 된 것이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백수십억 원대의 자금이 투입된 프로젝트가 말이다.

첫 직장에서 만들던 게임은 Direct3D SDK만 갖고서 밑바닥에서 완전 쌩으로 모든 걸 만들어 놓고 있었다. 후덜덜..;;
다음 직장의 게임은 게임브리오 기반이었다. 나름 상업용 게임들이 비주얼 C++을 써서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개발 중이던 게임을 테스트한답시고 바닷가, 숲 속, 중세 도시, 창공, 던젼 등 여러 맵들을 돌아다니면서 마치 여기가 내 집인 것 같은 아늑함(?)을 경험하기도 했었는데... 모든 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 셈.

어지간한 게임 개발 회사에서는 남이 짜 놓은 코드를 고치고 덧대는 잔업이나 한다.
자기가 진지하게 따로 시간을 투자하여 코드를 공부하지 않는 한 3D 그래픽 이론이라든가 게임 엔진 구현 원리 같은 근본 테크닉을 배울 기회는 없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직장에서 괜히 당신에게 돈까지 주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회사들을 거치면서 내가 만난 '직속 상사'들의 컴퓨터 실력은 제각기 정말 대단했다. 그들 역시 대학 졸업 후 처음엔 말단 사원으로 시작해서 그 바닥에 최소한 10년이 넘게 구르다가 관리자의 자리에 오른 사례일 것이다. 나는 언제쯤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아니, 근본적으로 저 길이 내게 맞는 적성이라 할 수 있을까?

미래에 나의 소속이 또 바뀌면 지금 다니던 직장에 대한 추억도 블로그에 언젠가 올라올 것이다.
그나저나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직장인에게 일정 예측이란 분야를 막론하고 정말 영원히 해결 불가능한 스트레스로 남을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10/06/11 08:42 2010/06/1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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