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은 어떻게 건설되는가

지하철이 건설되는 방식에 대해서 본인은 꽤 오래 전에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랬는데 오늘은 그 내용을 좀 더 보충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본격 토목 공학 탐방.

앞서 쓴 글에서 언급되어 있듯, 지하철은 크게 개착식 아니면 터널식으로 건설된다. 처음 건설되는 지하철은 대체로 큰길· 간선 따라 먼저 건설되고, 또 그리 깊지도 않기 때문에 응당 도로를 파헤치는 개착식으로 건설된다. 이게 도로 틀어막느라 민폐는 많이 끼치지만, 건설비가 더 저렴하니까.

그러나 나중에 건설되는 지하철은 좀 더 외진 곳으로, 지상에 길이 없는 곳을 만들면서 가기도 할 확률이 높으며, 기존 지하철보다 더 아래로 지나가기도 하기 때문에 터널식으로 건설되는 경향이 있다.

광산에서 갱도를 파내려가는 작업을 생각해 보자.
암반을 뚫고 길을 내려면 곡괭이나 비슷한 레벨의 연장으로 굴착을 하든가, 아니면 작은 구멍만 뚫은 뒤 거기에다 다이너마이트를 꽂고 폭파를 한다. 그리고 기껏 뚫은 구멍이 자칫 무너지지 않게 굴착면을 보호도 잘 해야 한다. 폭파를 잘못 해서 굴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시ㅋ망ㅋ.

이게 전통적인 방법이다. 경부 고속철 공사를 할 때만 해도 산을 뚫는 폭파음 때문에 주변의 가축들이 놀라서 유산을 하네 마네 하면서 민원이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랬는데, 이를 약간 더 개선한 공법이 1950년대 중반에 등장했다. 이름하여 나틈(NATM) 공법인데, 전산학계에 헝가리안 메소드가 있다면, 토목학계에는 오스트리안 메소드가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니셜의 의미가 딱 저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NATM은 폭약을 써서 터널을 뚫는 건 마찬가지이나, 빨리 굳어지는 급결제를 섞은 시멘트를 압축공기로 밀어내 굴착한 표면을 재빨리 콘크리트화하는 방식이다. 그 이상의 디테일은 본인도 잘...;; 여러 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별도의 지지대를 마련해야 하는 수고를 덜게 되어 예전의 공법에 비해 건설 비용을 절감한 것이 장점이지만, 속도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수준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유럽에서는 당장 해저 터널을 뚫을 때 이 공법이 동원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철 건설 역사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여의나루 사이의 하저 터널이 이 공법으로 건설되었다. 한강 밑바닥보다 거의 10~20m 밑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저 대단할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5호선은 마포-여의나루뿐만 아니라 광나루-천호 사이도 똑같이 한강을 건너는 하저 터널이긴 한데, 마포-여의나루 버전보다는 존재감이 훨씬 덜한 것 같다. 또한 전자와는 달리 후자는 터널 전후의 역이 모두 섬식이 아닌 상대식 승강장인 것도 특이한 점이다. 하저 터널은 섬식 승강장에 더 유리한 단선 쌍굴 형태로 지어져 있을 텐데 말이다.

사람 눈에 보이는 교량과는 달리, 지하철이 지나는 이런 하저 터널은 일반인들 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정식 이름도 없다. 아쉬운 점임. 마포 철교/터널 이런 이름이라도 있어야 할 듯하다.

NATM 공법에 이어 터널 뚫는 데 쓰이는 공법은 TBM 공법이 있다. 쉴드 공법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건 지름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하고 둥근 드릴을 빙글빙글 밀어넣어서, 애벌레가 먹이를 파먹듯 지반을 뚫는다. 본인과 비슷한 연배의 전산학도라면 1997년도 IOI의 이숑고로로 문제를 떠올릴 법도 하겠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공법은 굉장히 비싼 첨단 기계를 동원하여, 폭파를 하지 않고 둥그런 터널을 만들어 낸다. 주변 지반에 끼치는 영향이 적어서 안전하고, 터널 뚫는 속도가 비교적 빠르다는 장점까지 있다고 한다. 뭐, 빨라 봤자 하루에 1~5m 남짓이지만.

다만, 폭파를 안 하고 단단한 바위를 뚫는다는 게 쉬울 리가 없잖아..;; 장비가 정말 억소리 나게 비싸며, 터널 뚫는 과정에서 드릴의 표면이 닳고 손상되고 망가지는 일도 빈번하기 때문에(유지비), 쉽게 말해 비용이 많이 든다. 그리고 터널 뚫는 도중에 갑자기 지반 구조가 다른 곳이 발견되었을 때의 대처도 어렵다는 게 흠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개통되지 않은 분당선 한강 횡단 하저 터널이 TBM 공법으로 건설되었다. 터널이 완전히 뚫린 지 벌써 4년도 더 됐는데 아직도 노선의 개통은 오리무중..

http://blog.naver.com/ianhan/120122003473

그리고 서울 지하철 7호선의 부천 연장 구간도 일부는 시가지 아래로 TBM 공법으로 건설되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터널식 지하철은 NATM과 TBM 공법이 병행되어 건설된다고 보면 정확하다.
공항 철도는 그 깊은 서울 시내 구간이 당연히 터널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이고, 역시 저런 비슷한 공법이 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곳 홈페이지의 '서울 지하철 상식 -- 5호선 편'을 보면 사진이 나와 있지만, 본인은 5호선 을지로4가 역이 방화 방면으로는 둥그런 터널이고 왕십리 방면으로는 네모 터널인 것을 주목한 적이 있었다. 아마 이 역의 양 옆으로 터널의 건설 공법이 달라진 것 같다. 놀라운 발견이지 않은지? 드디어 서울 시내로 들어가니까 개착식이 아닌 터널식으로 굴을 판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지금은 스크린도어 때문에 저런 사진은 찍고 싶어도 못 찍는다.

터널은 한쪽 끝과 다른 쪽 끝에서 동시에 건설을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드디어 중앙에서 양 방향이 한데 만나면 건설이 끝나며, 그때 '관통식'을 하면서 샴페인을 터뜨린다.
그런데 개미들은 굴을 파다가 어쩌다 상대방 부족의 굴과 관통이 되어 버리면 헬게이트의 시작. 어느 한 부족이 전멸할 때까지 전쟁이 벌어진다고 한다.;;;

끝으로, 지하철을 건설하는 데 땅을 파헤치는 개착식이 있듯이, 해저 터널을 파는 데도 이와 비슷한 침매 공법이라는 게 있다. 육지에서 터널 구조물을 건설한 뒤, 바다 밑바닥을 파서 구조물을 얹고, 그걸 다시 흙으로 파묻는다고..;; 내가 보기엔 그것도 터널식 만만찮게 힘들 것 같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에 개통한 거가대교의 가덕도-대죽도 사이 구간이 최초로 이 공법으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 공법은 수압 때문에 너무 깊은 바다에서는 쓸 수 없다.

철도를 공부하면서 연결되는 지식의 분야는 참으로 넓다. ^^;;

Posted by 사무엘

2011/04/26 19:44 2011/04/2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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