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메라 이야기

디지털 카메라는 20세기 말~21세기 이래로 세상의 문화 풍조를 바꿔 놓은 혁신적인 물건임이 틀림없다.
그 전까지는 컴퓨터 화면에서 사진이라는 걸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비디오 디스플레이 기술은 더 오래 전에 트루컬러급으로 발전했지만, 실사 사진을 얻는 방법은 TV 화면 수신이라든가 스캐너 정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 실사급의 그래픽을 자랑하는 게임이 상대적으로 더욱 신기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랬는데 지금은 정말 개나 소나 아무나 손쉽게 주변으로부터 사진을 얻을 수 있으며, 이를 혼자만 저장해 놓고 보는 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방방곡곡으로 알리고 퍼뜨릴 수 있게 됐다. 정지 사진으로도 모자라서 동영상까지 그 자그마한 기계로 가능하니 어지간한 소형 캠코더 역할까지 한다. 이로써 1인 미디어, UCC 같은 게 출현 가능해졌다. 그리고 필름 카메라와 카세트/VHS 같은 아날로그 시청각 매체는 급속히 퇴물로 전락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동영상은 용량이 크고 통신 트래픽이 방대한 관계로 인터넷 상에 올릴 데가 마땅찮았다. 그래서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동영상은 깨진 링크도 무진장 많았다. 그러나 유튜브 같은 전세계급 동영상 포털이 등장하면서 이마저도 옛말이 되었으니 참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하나 보려고 Media Player ActiveX 컨트롤을 까네 마네 하던 시절도 참 아련한 추억이 돼 간다. 플래시가 버전 7부터 flv 재생 기능이 추가된 것이 한 10여 년 남짓 전의 일인데, 이게 또 세상을 바꿔 놨다. 당장 유튜브가 이 기술을 기반으로 출현했으니 말이다.

본인이 최초로 사용해 본 디지털 카메라는 2002년인가 삼성 디지맥스라는 100만대 화소의 완전 초창기 골동품이다. 그때 이후로 디지털 카메라는 화소 수 증가 경쟁이 시작되었다. 수 년 뒤에 구입한 다음 카메라는 300만대의 화소에 간단한 무음 저품질 동영상 기능이 추가되었고, 그것 다음에 구입한 카메라는 이제 동영상까지도 그럭저럭 MPEG-2 급의 화질은 나오는 물건이 되었다.

이제는 어지간한 보급형 중저가 디카 급의 사진과 동영상은 카메라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이 스마트폰만으로도 척척 만들어 내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러니 종래의 디지털 카메라는 폰카로는 만들 수 없는 DSLR급의 고퀄 등급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사진 분야에는 워낙 전문가 매니아들이 많으며, 고성능과 저성능 장비의 퀄리티 차이도 충분히 크기 때문에 그 업계가 망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본인은 원래는 그런 분야에 전혀에 가깝게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철도 촬영 때문에 카메라와 사진 같은 쪽에 그래도 일말의 식견은 생겨 있다.
성능이 안 좋은 카메라는 다음과 같은 한계가 존재한다.

※ 시야

1. 아무래도 시야각이 사람 눈보다는 작은 관계로, 넓은 장면을 한번에 담기 어렵다. 본인은 미국 가서 그랜드 캐년을 보면서 이걸 절실히 느꼈다. 이래서 파노라마 사진이라는 테크닉이 존재하는구나!

2. 또한 사진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상이 둥글게 휜다. 본인은 철길을 촬영하면서 아래의 레일이 둥글게 휜 걸 보고 이런 현상을 느꼈는데, 초소형 몰래 카메라 같은 건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한 걸 볼 수 있다.
사진이라는 건 컴퓨터그래픽에서 다루는 것처럼 사물들이 딱 rotation, projection을 거쳐서 정확하게 2차원 평면에 그려지는 게 아니라 아무래도 0차원의 점에 속하는 렌즈가 빛을 모으는 형태이다 보니.. 중심에서 먼 곳일수록 휘는 게 불가피한 듯하다. 옛날에 브라운관 TV/모니터만 해도 평면을 만들어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 빛을 모으기

3. 카메라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빛을 모으는 기능은 기계가 사람의 눈보다는 확실히 부족하다.
그래서 야경, 밤하늘의 별 내지, 명암 윤곽까지 보이는 선명한 보름달을 찍으려면.. 어지간히 좋은 장비와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닐 것이다. 노이즈를 감수하고라도 노출 시간도 굉장히 길게 잡아야 한다.

사실, 태양이나 목성, 토성 같은 천체의 사진은 실제로 사람이 우주 탐사선을 타고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당장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다. 태양의 경우 어마어마한 넘사벽급으로 광량을 줄여서 찍은 것이고, 반대로 외행성들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어마어마하게 빛을 모으고 또 모아서 보정하여 그런 이미지를 얻은 것이다.
광량을 그렇게 줄였기 때문에 태양이 그저 노랗게 보이고 흑점이 검게 보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행성 관측하듯이 똑같은 광량으로 보면 태양은 흑점이고 뭐고 없이 그저 똑같이 맹렬한 흰 빛으로 보일 뿐이다. 그리고 눈이나 카메라는 곧바로 상한다.

4. 사진을 많이 찍어 본 분들은 이미 충분히 경험하셨겠지만,
디카는 집이나 교통수단 안에서 “내부와 창밖 외부를 동시에 균형 잡힌 명도로 찍기”가 몹시 어렵다! 어느 쪽에 focus를 주느냐에 따라 창밖이 너무 밝아지거나 내부가 너무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디카만 그런지 필카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이것을 사진 용어로는 '명암차'라고 하며, 좋은 카메라는 그 명암차의 dynamic range도 크다고 한다.

※ 흔들림 보정

5. 예기치 않은 흔들림 때문에 사진을 망치는 일 자체는 어쩔 수 없다. 허나, 이게 흔들린 사진이라는 걸 디카의 조그마한 preview 화면만으로는 확대해서 봐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걸 애초에 알았으면 현장에서 촬영을 다시 했을 텐데, 출사를 다 끝내고 PC에서 사진을 큼직하게 확인한 뒤에야.. “에이 흔들렸잖아!” 이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blur된 이미지를 복원하고 카메라 차원에서 흔들림 보정 기술까지 등장해 있으니 이 역시 장비에 돈을 많이 투자하면 극복 가능한 장벽이긴 하다. 패턴인식 기술을 동원해서 “이건 흔들린 걸로 의심되는 사진입니다”를 감지하는 것도 어떠려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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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카메라의 특성을 알면, 사람의 눈이 얼마나 정교하고 대단한 신체 기관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바닥과 평행한 구도로 반듯하게 사진을 찍으려면 삼각대도 필요하고 이것저것 필요한 액세서리들도 추가된다.
또한, 정지 사진을 찍는 건 마치 사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셔터는 방아쇠이고, 격발 시 흔들림 현상이 없으려면 영점을 잘 잡아야 할 테니까.

Posted by 사무엘

2014/10/04 08:29 2014/10/0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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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재주 2014/10/06 04:34 # M/D Reply Permalink

    사람 눈도 구형이고 크기가 렌즈에 비해 작다고 할수 없는 만큼 상은 마찬가지로 휘어져서 비출 겁니다. 게다가 사람은 상이 맺히게 되는 부분마저도 휘어 있죠. 그럼에도 우리가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뇌의 보정 연산 때문일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선천적으로 앞을 못 보던 사람이 기계와 컴퓨터의 도움으로 앞을 보게 되었을 때 그가 보는 것이 우리 같은 비장애인이 보던 것과 동일하지는 않을 거에요.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1. 사무엘 2014/10/06 11:37 # M/D Permalink

      마지막 문단 말씀에 공감합니다. 실제로 사람의 시각에는 눈뿐만이 아니라 뇌의 후처리도 굉장히 큰 기여를 하지요. 당장 두 눈의 결과를 합성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닐 테고, 반대로 그런 후처리를 교란시키는 착시 현상도 많이 존재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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