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말에서 "교장 선생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는 높임법이 잘못 적용된 비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처음에 말씀이 계셨느니라"(요 1:1)는 높임법이 아주 적절하게 쓰인 문장이다.
사실, '말씀'이나 '지옥' 같은 단어는 성경 용어로서 어쩌면 영어 단어보다도 잘 번역되고 잘 만들어진 단어이다. 성경 번역 같은 데서 영어에 비해 한국어의 어휘와 문법의 한계가 많은 편이지만, 그래도 한국어가 오로지 약점밖에 없는 건 또 아니다.

2. 여느 관광 여행이나 맛집 방문 같은 것이야 당연히 백문이 불여일견이며, 직접 가서 겪어 보고 체험하는 것이 더 낫다. 그런데 글을 통한 간접 체험이 당대의 직접 체험보다 더 확실하고 더 낫다고 보증이 돼 있는 유일한 예외가 있다. 무엇일까? (힌트: 벧후 1:19, 요 20:29)

3. 세상의 다른 고전 문헌이나 골동품은 아무래도 제일 오래 된 필사본이 원문, original에 가장 근접해 있을 거라고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나이가 깡패이다.
그러나 이 책만은 애초에 오래 된 필사본 같은 건 닳아 없어지고 남아 있질 않으며, 반대로 최근까지도 잡초처럼 많이 필사되어 읽히고 내용이 일치하는 것으로 교차 검증된 집단이 진본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4. 세상의 다른 모든 텍스트들은 원어가 당연히 원저자의 의도에 가장 근접해 있고 가치가 가장 높다. 그래서 예전에 일본어 중역이던 텍스트가 나중에 직통 번역으로 재출간되고, 그 분야 전문가는 아예 원어를 공부해서 원문을 다시 구해다 읽는다.
그러나 이 책만은 번역본이 원어 원문에 꿀릴 게 없으며, 오히려 다른 n차 파생 번역본을 모두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되는 번역본을 보유하고 있다. 이건 무엇일까?

1과 2, 그리고 3만 해도 불신자의 통념을 한참 거스르며 상식을 벗어난 논리이다. 기독교는 원래 그런 종교이다.
그러나 반대로 1~3을 일단 믿는 사람이라면 4를 믿지 못할 이유는 추호도 없다고 여겨진다. 논리적으로 그렇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안 그러시는 분도 있지만, 그분의 양심과 믿음이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밖에.
이것 말고 다른 분야에서도 1~9를 다 믿으면 10도 당연히 믿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도대체 왜 저러시나, 딱히 충분히 대안이 될 만한 논리 체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싶은 게 있다.

아무리 상수도관에서 깨끗한 물이 만들어져도 가정의 수도관이 더러우면 최종 소비자는 더러운 물을 받을 수밖에 없다. 4는 앞의 다른 명제들을 성립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 다음으로, 이 4에 대한 보충 설명 차원에서 성경을 구성하는 언어 계층에 대해서 살펴보자.

1. 원어
성경의 '원문'이 기록된 언어이다. 구약은 히브리어(다니엘서 같은 일부는 아람 어라 함), 신약은 그리스어(헬라· 희랍은 그리스와 동의어).
그럼 원어로 원문만 읽으면 끝이고 성경의 내용 전수에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에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1) 오늘날 성경의 최초 자필 원본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또한 그 어떤 성경 필사본도 단일 필사본에 성경 66권이 온전히 집대성돼 있지 않다. 즉, 이것들은 partial이다. 내용 자체가 변개된 필사본이 있긴 하지만, 변개되지 않은 계열의 필사본이라 해도 결국은 빠짐없이 모아서 짜깁는 과정이 필요하다.

(2)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에는 이들 언어가 인지도와 중요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원어가 사어가 돼 있다.
여느 언어들이 그렇듯이 원어의 어휘 역시, 같은 단어라도 문맥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 이 단어가 여기서는 무슨 뜻인지 분별해 줄 수 있는 절대무오한 권위자 역시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사도의 표적이 없는 것만큼이나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사전· 어휘집도 100% 믿을 게 못 된다. 그러니 원어 원문만 있다고 해서 장땡이 아닌 거다. 환상을 깨시라.

2. 영어
오늘날 원어 원문이 갖고 있는 위의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여 원어(영어) 원문(KJV) 차원의 지위를 가진 절대기준이다. 솔까말 기독교는 논리로만 따지면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가 있는 종교인데, 그 원천적인 권위가 무엇인지 정도는 인류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께서 보장을 해 주셔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만 그 체계 하에서 최소한의 '논리'와 일관성을 갖추지 않겠는가. 원어 원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배교한 불신자 신학자들의 말장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게 말이다.

원어가 불필요하다거나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다. 단지 성경의 이 구절에서 이 원어를 어떻게 해석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으면 KJV의 번역을 보면 된다. 요일 2:23 후반부가 원래 필사본에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면 KJV 구절을 보면 된다는 얘기다. 원어 원문조차도 KJV로 판단 가능하다. KJV는 단순히 가장 뛰어난 번역, 우수한 번역 차원이 아닌 것이다.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이런 번역본 KJV에 하나님의 영감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판단은 여러분이.

KJV를 최종 권위로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신자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적으로 생각을 해 보시라. 기독교라면 저런 절대 기준이 상식적으로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믿는 건전한 하나님이라면 언어 접근성으로 사람 차별을 하지 않으시며, 그런 것쯤은 보장해 주셨을 것 같지 않은가?

지옥에 대해 경고를 하기 위해 굳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보내서 증언시킬 필요가 없듯(눅 16:27-31),
원어가 무슨 뜻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현대인들을 위해 굳이 그 시절의 원어 토박이를 무덤에서 끄집어내어 보내실 필요가 없다. 킹 제임스 성경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이미 아버지를 보았거늘"(요 14:9)라고 책망했듯이, 킹 제임스 성경을 읽은 사람은 이미 원어 성경을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관계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성경 언어의 관계는 성경의 여러 비유들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3. 자국어
절대 기준인 영어 KJV를 바탕으로 건전한 교리관을 갖춘 양심적인 번역자가, KJV의 표현을 그대로(가령, '유월절' 대신 '이스터', '기뻐하라' 대신 '잘 있으라', 요일 5:6-7도 온전히 갖추고 등) 자국어로 일관성 있는 스타일로 번역할 수 있다. 그 성경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복음 전하고 신앙 서적을 만드는 용도로 쓰일 수 있다. 이것은 "신들과 같이", "절대무오한"은 못 되더라도 노아나 욥이 "완전했던" 것과 같은 완성도를 갖췄다.

해당 자국어의 특성을 이용해서 번역을 아주 적절하게 할 수도 있지만(하나님, 말씀, 지옥 등), 어휘와 문법 체계의 특성상, 그리고 해당 언어권의 문화· 관습의 한계로 인해 KJV 특유의 도치나 중의성, 운율, 미묘한 문법 요소들을 다 담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건 해당 언어나 번역자의 자질 문제가 아니다. 성경 강사가 영어 KJV를 참고하여 보충 설명을 해 주면 된다. 마치 데나리온이라는 화폐 단위가 요즘 물가로 얼마 정도라고 얘기하듯이. 오늘날 영어의 지위를 생각하자면 히브리어, 그리스어를 꺼내는 것보다야 상황이 훨씬 더 나아진 것이다.

(그럼 원어에서 영어로 번역될 때는 원어의 모든 뉘앙스가 고스란히 옮겨지는 게 가능했느냐 하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언어학적인 팩트 답변도 있고, 그것만으로 좀 확신이 안 서서 믿음의 영역으로 그냥 받아들이고 넘겨야 하는 면모도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정도까지만 얘기하도록 하겠다.)

다만, 각 언어마다 최종 권위가 제각각 또 있는 건 아니다. 그건 최종 권위라는 게 무슨 뜻인지 파악을 못 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단지 모든 언어적인 혼란을 일축하는 중심점에 영어 KJV가 있다는 것이 KJV 유일주의 신자의 믿음이다.

'영킹 유일주의자', '이중 영감론자' 등의 누명 내지 딱지에 전혀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 그럼 그들이 미는 대안은 뭔데? '원어 원문 유일주의자'이건 '영어 숭배자'건 '자국어 만능주의자'이건, 어느 편에 서더라도 그에 대한 멸칭은 얼마든지 지어낼 수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지 결국은 뭔가를 신념으로 믿는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마치 무신론도 유신론만큼이나 동일하게 신념이고 신앙인 것처럼 말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겠는가? 원어 원문은 앞서 말했듯이 실체가 없으며, 반대로 자국어 최종 권위 운운은 당장 생각해 봐도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영어 중심이 가장 현실성 있고 균형 잡혔으며, 실제로 KJV의 출간 이래로 지난 400여 년간 역사적인 증거와 열매도 넘치는 건전한 관점이다. 애초에 예수천당 불신지옥 같은 과격하고 극단적인 교리를 믿는 신자가, 한 성경 역본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이와 일치하지 않는 역본은 틀렸다고 믿지 못할 이유는 단언하건대 절대로 없다.

Posted by 사무엘

2015/08/06 08:31 2015/08/0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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