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 본인은 1박 2일 강원도 종합 여행을 추진했다. 이게 기대 이상으로 쏠쏠하고 아주 좋았다.

  • 갈 때는 새벽에 널널한 고속도로에서 원없이 밟으며 쾌속 주행
  • 동해 바다에서 해수욕
  • 회 코스 요리로 혼밥
  • 바다를 즐긴 뒤에는 꼬불꼬불 산 타는 국도를 달리며 경치 감상
  • 내륙의 강과 계곡에서 물놀이

본인은 더위에 약하고 바다에 대한 로망이 크다.
언제 어디서나 눈만 감으면 정말 잘 자고 불면이라고는 도무지 모르고 지내는 타입이지만.. 이것도 무더위 앞에서는 답이 없다.
알람 안 맞춰 놓고도 새벽 2~3시에 저절로 깨는 게 가능하구나. 잠 자는 것조차도 중간에 시동이 꺼져 버린다. 지금은 "이게 나라냐?" 할 때가 아니고.. "이게 날씨냐?"가 목구멍 위로 올라오곤 했다.

하도 답답해서 하루는 냅다 컴퓨터를 켰다. 그러자 "서울에서 제일 가까운 해수욕장"이 머리보다 먼저 손가락이 움직이며 검색란에 쳐졌다. 모든 일과를 중단하고 그냥 영종도든 강화도든 차 끌고 달려가서 바닷물에 반신욕 한 채로 잠들고 싶을 정도였다.

김 성모 만화를 보면 "벼.. 병원에 가면 돼. 아무리 심하게 다쳐도 병원에 가면 금방 회복될 수 있지"라고 굉장한 현대의학 병원 만능주의가 담긴 대사가 있는데.. 나는 "바.. 바다로 가면 돼. 아무리 습하고 더워서 땀이 쩔어도 바닷물에만 들어가면 금방 회복될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본인은 그때 돌아온 직후부터 내년 여름을 기약했으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여름에 강원도를 비슷한 방식으로 다녀왔다.
단, 작년에는 영동 고속도로 이북으로 '안보 관광'이 테마였던 반면, 올해는 영동 고속도로 이남으로 '철도 답사'를 테마로 삼았다. 덕분에 공통 테마인 자연 경치 감상 말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여행 분위기가 작년과는 사뭇 달라졌다. 올해는 반공 이데올로기 자가주입 이벤트는 없었다.

미리 결론부터 누설하자면, 이번 여행에서는 삼척선(동해 관광 열차), 정선선(아리랑 관광 열차), 그리고 함백선(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화물용 지선) 이렇게 정규 여객 열차로 가기 힘든 마이너한 철도들의 모든 역과 주변 지역을 차로 직접 답사함으로써 개인 철덕력을 강화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

또한 작년 말에 개통한 광주-원주 고속도로(52. 일명 '제2 영동')의 혜택도 바로 입을 수 있었다. 중간에 나들목이나 분기점 따위가 없는 제2중부(37) 고속도로에도 저기를 드나드는 분기점이 하나 생겼다. 올해 여름부터는 주말에 영동 고속도로도 경기도 구간에는 버스 전용 차선이 시행된다고 그러던데, 강원도를 가는 게 목적이라면 그걸 볼 일은 더 없어졌다.

이번 여행에서 딱 하나 아쉬웠던 건 날씨였다. 동해 바닷가에 도착하던 당시에 강원도 전역에는 그냥 비를 넘어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뭐, 그래도 바닷물은 어지간해서는 따뜻한 편이고(나는 10월에도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물놀이 잘만 했음..) 나 같은 사람은 얼마든지 입수할 수는 있다. 파도가 강하면 멀리 나가지만 않으면 되니까.

그래도 땡볕이 내리쬘 때에 비해서야 해수욕으로부터 얻는 쾌감과 성취감, 가성비가 감소하는 건 어쩔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해변의 바닷물이 온통 흙탕물로 변하고, 고체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건 좀 문제였다.
이 때문에 황해보다 맑다는 동해 바닷물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해수욕은 그냥 하반신 정도만 잠시 담그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맑은 날씨에 맑은 바다를 구경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나머지는 다 좋은 편이었다.
긍정적인 점을 떠올리자면, 이 더운 8월에 밖이 쌀쌀하고 차가 따뜻한 곳에 가서 빗소리 들으면서 차 안에서 쉰 것도 피서라면 피서이다. 밖이 더웠으면 차 안에서는 도저히 지낼 수 없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해가 안 난 덕분에 피부가 탈 일이 없었던 것도 좋은 점이다. 예전에 맑은 날씨에 해수욕을 했을 때는 심지어 맨 밑바닥의 발등조차도 슬리퍼에 가려진 부분은 흰데 발가락 같은 노출 부위는 새까매지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물은 온도만 낮춰 줄 뿐, 자외선은 전혀 차단하지 않고 수심 1m를 넘게도 그대로 투과시켜 주는가 보다. 그 정도 수심이면 이미 총에 맞을 걱정조차도 거의 할 필요 없어지는데도 말이다.

자, 말이 길어져서 지겨우실 테니 이제부터는 사진을 투척하도록 하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속도로를 달려서 강릉· 정동진을 열차가 아닌 자가용으로 난생 처음으로 찾아갔다. 게다가 해수욕장 개장 기간 끝물에 맞춰 간신히 찾아갔는데 입구부터가 벌써 물난리가 나 있었다. 안습..

하긴, 비 소식 자체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미리 알고 있던 것이었다. 강릉과 가까워질수록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다.
하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복병은 해변뿐만 아니라 도로에도 있었다. 바다를 따라 꼬불꼬불 달리는 도로들은 자연히 해발 고도가 낮은 편이고, 곳곳이 침수되어 흙탕물 웅덩이가 생겨 있곤 했다. 차로 지나가다가 몇 번 아슬아슬한 상황을 겪었으며, 급기야 망상 해수욕장 이남의 길은 진입 통제까지 걸린 상태였다. 이런 건 다음부터 바다에 갈 일 있으면 참고해야 할 변수이고 시행착오였다.

뭐, 강릉은 고속도로의 경로 때문에 그냥 잠시 들른 것이고, 본인의 진짜 목적지는 삼척이었다. 여기 상황을 이렇게 확인한 뒤, 본인은 거기로 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삼척선은 영동선의 지선으로 취급되며, 무궁화호 같은 정규 여객 열차가 아니라 동해 바다열차라는 관광 열차만이 다닌다. 영동선의 정동진처럼 열차 안과 승강장에서 해변이 곧장 보이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요 구간이 해수욕장과 충분히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추암 역은 지붕도 없고 높은 곳에 놓인 선로 옆에 철제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임시 승강장' 형태였다. 그런데 역 진입 계단의 바로 아래에는 공교롭게도 쓰레기장(...)이 있어서 미관상 별로 안 좋은 관계로.. 진입로의 사진은 생략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근처의 추암 해수욕장의 모습이다.

2017년 현재 우리나라에 동해선은 참 묘하게도 고속도로와 철도 모두 남쪽과 북쪽 구간이 서로 끊어지고 단절돼 있다. 얼추 포항-삼척 사이가 말이다.
일제는 1940년대에 태평양 전쟁 때문에 물자가 부족해서 한반도에서 이미 놓여 있던 철도의 선로를 막 뜯어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동해북부선은 어째 새로 건설 중이었다는 게 아이러니이다. 물론 거기도 그 당시에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는 못했겠지만 말이다.

동해 고속도로(65)와 철도 동해선이 전구간 완공되어서 삼척선이 간선으로 승격되고, 삼척에도 정규 여객 열차가 다녔으면 좋겠다. 서쪽의 황해에서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쯤 전엔 군산선과 장항선이 다리로 연결되면서 지선이 본선으로 승격된 적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추암 다음으로 '삼척해변'이라는 역에도 이렇게 땅밟기를 했다.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바다열차가 도착하고 관광객들이 탑승하는 걸 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삼척 해수욕장 부근에 차를 세우고 자리를 잡았다. 바다는 뭐.. 이런 상태였다. 하지만 물이 보기만치 심하게 더럽거나 차갑거나 파도가 살인적으로 강한 건 아니어서 마음만 먹으면 해수욕을 할 수는 있었다. 내 경험상 한여름에 바다는 계곡에 비하면 오히려 더 따뜻한 편이다.

하지만 이 날씨에 옷을 다 적시면서 해수욕을 했다가 전신 샤워를 하기에는 귀찮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는 30분 남짓 하반신만 담그는 걸로 만족하고 나왔다.
바다 코앞에 저렇게 테이블과 의자, 파라솔이 있으니 좋았다. 그리고 빗줄기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빗물을 잔뜩 뒤집어쓴 내 애마는 상부 한정으로 아주 깨끗해졌다. 비를 어설프게 맞거나 비 자체가 흙먼지가 섞여서 지저분하면.. 잘 알다시피 흙먼지 얼룩이 빗방울 모양으로 생기면서 차 표면이 아주 더러워지는데.. 비 맞고 나서 차가 더 깨끗해지는지 혹은 더러워지는지는 좀 케바케인 것 같다. 어떤 경우든 세차를 한 다음날에 비가 오는 건 차주의 입장에서는 머피의 법칙 같은 악재임이 틀림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변에서 한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는 역시 횟집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본인은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반찬까지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비웠으며, 다음에 나온 매운탕도 혼자 다 먹어치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뒤 해변을 나서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삼척선의 종점인 삼척 역도 입구와 승강장 선로 사진을 남겼다. 이 역은 영업 중이었으며, 바다열차를 타려는 승객들이 안에 좀 있었다. (계속)

Posted by 사무엘

2017/08/22 19:23 2017/08/22 19:23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oogi.new21.org/tc/rss/response/1396

Trackback URL : http://moogi.new21.org/tc/trackback/1396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951 : 952 : 953 : 954 : 955 : 956 : 957 : 958 : 959 : ... 2204 : Next »

블로그 이미지

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 사무엘

Archives

Authors

  1. 사무엘

Calendar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2993654
Today:
391
Yesterday:
2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