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나들이 2

특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그냥 본인의 일상· 근황에 가까운 가벼운 나들이를 요 근래에 했던 것들을 또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솔직히 말해 요즘 개인 연구건 직장일이건 잘 안 풀리고 있다. ㅠㅠ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가는데 답이 딱 안 나오고 개발 방향이 갈팡질팡이고 버그는 안 잡힌다. 올여름 중으로 날개셋 9.5 최종판과 후속 논문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이 와중에 날씨가 점점 더 더워지는것도 개인적으로는 악재다.

이럴 때일수록 좀 쉬고 머릿속을 초기화한 뒤, 완전히 새로워진 관점에서 문제를 다시 접근하면 해결책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1. 노숙

내가 이런 걸 왜 지금까지 몰랐나 싶다.
비 내리는 날 새벽과 아침에 숲 속 나무 정자 아래에서 빗소리 듣고 풀 냄새 맡으며 뒹굴거리는 건.. 가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중독성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이런 걸 가리키는 '한뎃잠'이라는 훌륭한 순우리말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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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안 올 때는 그냥 집 근처 공원의 벤치에 누워서 자 보기도 했다.
이런 짓 하지 말라고 벤치의 중간에 일부러 칸막이나 손잡이를 만들어 넣는 것 같다만, 그래도 그게 없어서 한 사람이 쭉 누울 수 있는 벤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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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뎃잠을 여러 번 자 보면서 느낀 건데.. 사람이 자는 동안에는 (1) 체온이 생각보다 많이 떨어지고 중간에 잘 깨긴 하더라. 어지간히 더운 곳이 아닌 이상, 잘 때 덮는 이불이 괜히 필요한 게 아니다.
또한, 찬 공기뿐만 아니라 (2) 차가운 바닥으로 열을 빼앗기는 것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푹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온을 위해서 밑에 까는 이불이 필요하다.

본인은 몸에 열이 많고 더위를 많이 탄다. 여름보다 겨울을 더 좋아하고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취향이다.
또한 불면증이라는 걸 전혀 모르는 체질이다. 피곤하면 어디서나 눈만 감으면 곧장 잠들며, 5~6시간이 워프된 후에 개운한 상태로 일어난다.
일부러 물을 1리터쯤 마시고 잠든 게 아니라면, 밤중에 오줌 마려워서 깨는 것조차도 거의 없다. 그 대신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부터 가지만..

그래서 본인은 나름 야영· 노숙에 최적화된 체질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런데도 보온을 충분히 하지 않은 생태로 밖에서 잠들면 기대했던 것보다 이른 서너 시간 남짓 후에 깨 버리더라. 충분히 못 자고 수면 리듬이 깨졌으니 그 뒤로는 편안한 하루가 보장되지 못한다. 그래도 그대로 코나 목이 가 버리고 감기에 걸린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새벽 1~2시에 잠드는 순간까지도 밖이 춥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데, 5~6시 무렵에 눈을 뜨면 밖이 상당히 춥다. 그래서 다른 부위보다도 얼굴을 잘 감싸서 호흡할 때 찬 공기가 코로 대놓고 들어가지 않게 조치를 취해야 했다.

물론 이것도 늦어도 5월 초 정도까지의 이야기이고, 계절이 여름으로 바뀐 뒤부터는 해당되지 않는다. 집에서 자듯이 대충 이불 덮고 자도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그 대신, 이제부터는 모기 때문에 밖에서 제대로 자기 어렵다. 모기를 피해서 몸을 감싸고 덮어 버리면 밖이 시원하다는 장점이 사라지니까..
방수· 방충이 되는 1인용 텐트를 장만해서 적극 활용하고 싶어진다.

2. 남한강 이남-남한산성-서울 동남부 깜짝 드라이빙

팔당 댐에서 동쪽으로 더 가면 강북은 국도 6호선을 따라 양평으로 가는데, 강남의 광주 방면으로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오래 전부터 궁금했다. 그래서 하루는 머리를 식히고 분위기를 전환할 겸 달려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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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더 경치 좋고 쉬기 좋은 곳만 찾자면 북한강(가평 방면)이나 남한강 이북(양평 방면) 쪽으로 가는 게 더 낫지만, 더 남쪽으로는 갈 일이 잘 없으니 희소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개발되지 않은 오지 탐험은 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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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으로의 합류가 얼마 남지 않은 경안천의 모습이다.

그리고 남한산성을 도보 등산과 시내버스(성남)에 이어, 동남쪽의 광주시 구간을 통해 드디어 자가용으로도 가 보게 됐다. 전에 서울 남산을 도보 등산과 케이블카에 이어 시내버스로도 간 것처럼 말이다.

서쪽 성남시 구간의 도로는 경사가 굉장히 급한 반면, 동쪽 광주시 구간의 도로는 길고 경사가 완만해 보였다. 꼭대기 근처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산을 타고 오른다는 느낌 자체가 별로 안 들 정도였다.

3. 북악산 한양도성 구간 산책

본인은 지금까지 북악산을 세 번 정도 서로 다른 등산로로 종단· 횡단을 해 봤는데.. 나름 남쪽으로 청와대를 가장 가까이 지나고(직접 볼 수는 없지만) 산의 정상을 지나고, 유일하게 신분증을 까고 출입 신고를 해야 입장할 수 있는 한양도성 구간을 최근에 한번 더 답사했다. 재작년 봄에 최초로 답사한 뒤 2년 만의 일이다. 사실, 여기가 제일 북악산다운 곳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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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 근처에 있는 최 규식 경무관 동상이 대대적으로 때 빼고 광 내서 밝은 구리색으로 싹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1· 21 사태 당시에 같이 순직했던 정 종수 경사에 대해서도.. 참 늦은 감이 있지만 흉상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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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덥긴 해도, 산은 잎이 초록색일 때 올라야 제일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위의 사진은 정상에서 청운대를 내려다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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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엔 정상 표지석만 찍었고 이렇게 내가 나온 모습을 촬영하지는 않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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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의 한양도성 등산로(혹은 산책로? 탐방로?)는 성 바깥쪽이 온통 철조망으로 둘러져 있다. 북악산의 다른 영역과 한양도성 등산로를 완전히 분리· 단절하여, 여기로 오려면 반드시 안내소를 거쳐서 번호표 목걸이를 받아야 하게 말이다.

이 등산로보다 더 안쪽으로 청와대를 둘러싸는 철조망도 당연히 있으며, 이건 등산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등산로를 이탈하여 풀숲을 헤치며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볼 수 있겠지만, 그런 시도를 했다가는 당사자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는 단순한 동네 뒷산이나 공원이 아니라 무슨 전방 같은 군사 시설 주변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독특한 분위기가 조선 시대 유물과 한데 어우러졌다는 것이 북악산 등산의 묘미이다.

대부분의 산책로는 한양도성 안쪽으로 성을 따라 나 있지만, 잠깐 성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기도 한다.

4. 용마-망우산 구간 재답사

본인이 지금까지 아차· 용마· 망우산 일대를 올랐던 내력은 다음과 같다.

  • 가장 먼저 서쪽 중곡 역 방면에서 용마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정상을 찍었다. 다음으로 능선 겸 서울 둘레길을 따라서 북상하다가, 더 동쪽의 망우산 중심부로 이탈하여 망우산 정상 표지도 봤다. 하산은 북쪽의 시립 묘지(일명 망우리 공동묘지) 방면으로 했다. 당시 산에서 비를 철철 맞았던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 2차 답사 때는 동쪽의 아차산 입구에서 산을 올라서 산 정상을 찍었다. 그 뒤 용마산 쪽으로 자리를 옮겨서 북상하다가 구리 아치울 마을 방면으로 하산했다. 날씨는 아주 좋았다.
  • 3차로는 아예 차를 가져가서 시립 묘지에서 들어갔다가 그리로 나왔다. 차도를 따라 시민 묘지만 한 바퀴 돌면서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각종 옛날 유명인사들의 묘소도 구경할 수 있었다. 답사 당일은 아주 흐렸으며 산에 안개가 자욱했다.

그리고 이번 4차 답사 때는..
이들 산의 종축 중앙이고, 용마 터널 근처이기도 한 사가정 공원에서 용마산을 올랐다. 여기서 용마산 능선에 도달하고 나니, 망우산 방면과 아치울 마을 방면이 갈리는 교차로도 거의 곧장 나왔다.

본인은 거기서 계속 북쪽으로 가서 예전처럼 시립 묘지 구간으로 들어갔다. 다만, 계속 길만 따라 간 건 아니며, 도중에 동쪽으로 진로를 바꿔서 백교(한다리) 마을에 도달함으로써 산의 횡단을 마쳤다. 이 정도면 여기 산들도 안 간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등산로를 밟아 보게 됐다.

'사가정'이란 이 일대에서 살았던 '서 거정'(1420-1488)이라는 조선 시대 문신의 호라고 한다. 개드립을 좀 치자면, 기왕 저렇게 호를 지을 거면 왜 '사가장'이라고 지을 생각은 안 했나 모르겠다.
사가정 공원은 생각보다 이른 2005년에야 생겼다. 일자산 근처에 온통 둔촌 둔촌 하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옛날에 이 산의 기슭에 살았던 유명한 학자 내지 관료를 홍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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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등산로가 시작되다 보니 처음에는 길이 돌계단처럼 나 있고 곳곳에 벤치와 오두막, 운동 기구가 있었다.
숲이 울창한 덕분에 온통 짙은 그늘이 져 있어서 직사광선 노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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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용마산 남북 능선에 진입했다. 아치울 마을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나서 북쪽으로 쭉 가면, 망우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도 나온다. 거기도 지나치면 길이 포장된 도로로 바뀌고 망우산 묘지 구간으로 진입한다.
본인은 묘지 구간을 좀 지나다가 동원천 약수터 방면으로 이탈하여 숲 속을 방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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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방황하던 끝에 용마-망우산을 횡단하는 덴 성공했다. 그리고 딱 한 번 하늘이 트인 공터가 나왔다. 누군가의 묘지..
여기만 나무 베어내고 숲을 잔디밭으로 바꿔 놓아 있었다. 망우산의 항공 사진을 보면, 이렇게 혼자 외딴 곳에 자리잡은 묘지가 몇 군데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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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다 그친 뒤에 산을 오르니 날씨 맑고 하늘 푸르고, 5월이어서 잎도 온통 짙은 초록색인 데다.. 계곡마다 물이 졸졸 흐르고 있어서 정말 좋았다. 서울 방면과 구리 방면 어느 쪽으로든 말이다. 어떤 곳은 물이 등산로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기도 했다.
비록 산 아래의 경치는 거의 보지 못했지만 산 속의 경치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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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길을 따라 내려가니 이내 차도와 함께 저수지와 마을이 나왔다. 아치울보다 더 북쪽에는 백교/한다리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다.
늘 산기슭의 한적한 전원마을을 구경하면서 산행을 마치는 건 내 스타일 등산의 뻔한 클리셰가 돼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8/06/04 08:29 2018/06/0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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