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바라캇 Dreamers

스티브 바라캇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캐나다 출신의 작곡자/연주자이다. 방송이나 각종 행사 때 나오는 배경 음악으로 이 사람 곡을 은근히 많이 들을 수 있다.

비슷한 분야의 음악가 중에는 본인의 부모님보다도 나이가 많은 지긋한 노년 신사도 있지만 이 사람은 30대 중반의 아직 꽤 젊은 나이이고, 얼굴도 상당한 미남인 데다 연주뿐만 아니라 노래도 굉장히 잘 부른다. 이미 세계적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앞날이 창창한 음악가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가장 유명한 곡은 단연 <Rainbow Bridge>와 <Whistler's Song>이 아닐까 싶다. 들어만 보면 “아 그 곡!” 하고 무릎을 칠 분이 많을 것이다.

한국 철도의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역시 이 사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사람의 곡 <Dreamers>가 지금도 일반열차(전동차 말고)에서 종착역 도착 후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곡은 비록 재생 이벤트와 대상 열차가 바뀌었을지언정, 무려 2004년부터 지금까지 상당히 장수하고 있다.

그러니까 안내 방송 중에 깔려 나오는 배경 음악이 아니라, 열차의 운행 시작이나 종료 직전/직후에 음악만 별도로 쫙 틀어 주던 열차는 KTX 개통 이전엔 잘 알다시피 새마을호밖에 없었다. 그 관행은 아마 2000년, 영상 서비스와 함께 시작된 걸로 추정한다. 그때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담당은 코모넷이라는 회사가 담당했으며, 운행 전과 종료 후에 둘 다 너무나도 유명한 Looking for You가 흘러나왔다. 본인이 이 곡을 몇 번 들은 뒤 철도에 눈이 완전히 뒤집히고 미쳐 버리게 된 건 여기 오는 분들도 이미 잘 알 것이다.

그러다가 2004년에 와서 이 트렌드가 좀 바뀌었다. KTX 개통 직후에도 아주 잠깐은 L-L(시작과 끝 모두 룩킹포유) 체제가 그대로 유지됐다. 그런데 루머에 따르면 비슷한 시기에, 룩킹포유가 아침에 첫 새마을호를 타는 사람에게는 곡이 조용하지가 못하고 너무 방방 뛰어서 잠 깬다는 민원이 들어왔던 모양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민원 때문에 2004년 여름, 새마을호의 출발 전 음악은 스티브 바라캇의 <Dreamers>라는 곡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종착 후 음악은 다행히 룩킹포유가 계속 유지됐다.

이것이 한국 철도의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스티브 바라캇의 음악이 최초로 도입된 사례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여전히 코모넷 시절이고, 심지어 철도청조차 아직 정부 기관으로 있던 시절의 일이다.
게다가 당시 새마을호는 시발역을 출발하고 잠시 후엔 역별 정차역과 도착 시각이 화면으로 나왔는데, 이때 이어폰을 꽂고 있으면 스티브 바라캇의 또 다른 명곡인 <Flying>이 흘러나왔었다.

KTX가 개통한 후 2004~05년간은 새마을호에 그 외의 UI상의 변화는 없었다. 다만, 정차역 안내 방송이 두 번 나오던 특이한 시기이기도 했다. “잠시 후 우리 열차는 XXX 역에 도착하겠습니다” 그 후, “여기는 XXX 역입니다.” 그것도 4개 국어로. 듣기에 굉장히 지루했다.

그 후 2006년은 새마을호의 앞날에 망조가 본격적으로 드리워진 해였다. 코모넷이 망하고 연합뉴스가 영상 서비스를 대신 떠맡았다. Flying이 사라지고 안내 방송도 중국어와 일본어가 삭제됐다. 평일에 중련 편성 새마을호 편성 수가 감소하고, 그 해 여름엔 기내지 레일로드가 폐간했다. 그 해 가을엔 중앙· 영동· 태백선 새마을호가 폐지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Dreamers - Looking for You 구도는 변함없었다. 본인은 이게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하여, 이때를 놓치지 않고 룩킹포유 재생 화면을 세 차례에 걸쳐 카메라에 동영상으로 성공적으로 담았다.

2007년, 드디어 기내지에 이어 새마을호에서 영상 서비스가 거의 7년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거 뭐, 2005~06년 사이엔 영상 서비스 모니터를 와이드 화면으로 교체하더니만 1년이 채 안 되어 그걸 도로 철거해 버린 것이다! Looking for You는 이미 사라진 걸 확인했지만 Dreamers는 영상 서비스가 없어진 와중에도 운행 전에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후 2008년. 새마을호의 UI는 크게 바뀌었다. 모니터가 다시 생기긴 했지만, 객실당 4개이던 게 2개로 감소하고, 영상 서비스는 없어졌다. 주행 중엔 그냥 정지 사진만 여러 컷 돌아가면서 나오고 정차역 도착 자막만 뜬다.

제일 충격적인 변화는 음악. 출발 전 음악은 Dreamers이던 것이 가야금 퓨전 국악으로 바뀌고, 대신 종착 후 음악이 Dreamers로 옮겨졌다. 나라에서 국악을 정책적으로 밀어붙이기라도 하는지, KTX는 이미 초창기부터 정차역/종착역 도착 안내 배경 음악으로 국악을 써 왔고, 2008년경엔 서울 메트로도 환승역 진입 음향으로 꽤 오래 사용해 오던 차임벨을 버리고 퓨전 국악을 채택했다.

게다가 지금은 KTX, 새마을호, 무궁화호가 공통으로 시작 전엔 가야금 Let It Be, 종착 후에는 KTX 미니 만화 주제가-_- 다음으로 Dreamers가 유지되고 있다. 원래는 음악이 새마을호밖에 안 나오다가 나중에 KTX와 무궁화호에도 확대된 것이다. 한 2007년 말 내지 2008년부터 그렇게 됐다.

새마을호에서 출발 전에나 듣던 곡을 이제는 사실상 모든 열차에서 도착 후에 들으니 느낌이 이색적이다. Dreamers가 2004년에 첫 도입되자 그 당시 철도 매니아들은 며칠 안으로 금세 곡의 정체를 파악해 내서 mp3 올리고 야단법석이었다. 처음 들었을 땐 뭔가 몽환적이고 잔잔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과연 그러하다. 이 곡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철도계에서 쓰일지 궁금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0/02/27 16:26 2010/02/2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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