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지난 5월 이후로 오랜만에 본인의 반려식물 얘기를 좀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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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은 싹이 트면 처음에는 이렇게 동그란 떡잎 두 장부터 나온 뒤, 그 가운데에서 좀 더 예리한(?) 속잎이 나오고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한다.

어린 아기한테 성인용의 음식을 갑자기 먹일 수 없듯..
이런 연약한 싹 내지 모종한테도 갑자기 강한 햇볕을 오래 쬐거나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못 버티고 죽는다고 한다.
옮겨 심는 것도 어류에게 어항 물갈이와 마찬가지로 식물에게 스트레스를 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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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은 잎에 허연 힘줄 같은 게 많이 그려져 있는 일반(?) 호박, 그렇지 않고 잎 표면이 반들반들한 단호박 두 종류로 크게 나뉘는 것 같다.
싹이 난 호박은 처음에는 그냥 평범하게 위로만 솟으며 잎을 낼 것 같지만..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미친 듯이, 감당을 못 할 정도로 덩굴을 길게 뻗으며 주변을 뒤덮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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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덩굴은 길게 꼬불꼬불 뻗는 게 마치 뱀 똬리 같다. 경이롭지 않은가? =_=;;
우주발사체에다 비유하면 이렇다. 이게 지표면에서는 저속으로 수직 상승을 하는 것만 보이지만, 시야에서 사라진 아득한 고고도에서부터는 옆으로 누워서 수평 이동을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초고속으로 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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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컨디션이 좋은 호박은 영양성장 최적화 모드가 돼서 줄기가 확 굵어지고 잎 크기가 왕창 커진다. 이 파릇파릇한 잎들을 보소.. 벽이나 줄을 타고 올라가지 않고 땅 위에 퍼지면 잎이 우산 같은 역할을 하면서 아래의 어지간한 잡초들을 다 가리면서(햇볕 차단..) 쳐발라 버린다.

호박들도 홀로 있는 것보다는 곁에 같은 패거리가 여럿 있으면 시너지를 일으켜서 더 잘 자라는 건가 모르겠다.
주변에 높고 큼직한 타 식물이나 잡초가 많아서 호박이 세력이 약하면.. 반대로 쟤들이 retard돼서 풀이 죽고 시름시름 못 자라기도 하더라. 성경의 씨 뿌리는 자 비유에서 못 자라고 죽는 식물의 예시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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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호박은 잘 자라다가 때가 되면 덩굴에서 펜촉 같은 게 생기고 노~란 꽃이 한두 송이씩 피기 시작한다. 노란색 오각형이 꼭 별 같다.
꽃이 일찍 많이 피는 것과 자기 덩굴의 덩치가 크고 굵어지는 것은 별개의 현상이다. (영양성장, 생식성장) 그렇기 때문에 덩치가 비리비리하고 작은 놈, 척박한 환경에서 제대로 못 큰 놈이 번식이라도 하려고 꽃을 더 적극적으로 일찍 많이 피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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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호박은 잎뿐만 아니라 꽃잎도 이렇게 더 둥글둥글한 놈, 오각이 뾰족뾰족한 놈 두 종류로 나뉘는 것 같은데..
일반 호박과 단호박의 차이인지 잘 모르겠다.
내 느낌상으로는 단호박이 더 둥글둥글, 일반 호박은 뾰족뾰족인 것 같다. ㄲ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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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여러 송이가 한꺼번에 활짝 피어 있으면 보는 나까지 완전 황홀해진다.
덩굴이 영양이 풍부해서 큼직하게 잘 자랐으면 꽃도 아주 큼직하고 수술에 꽃가루가 흠뻑 넘치도록 묻어 있는 편이더라. 주변에 암꽃이 좀 있어서 이 꽃가루가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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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봉오리가 제대로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꿀벌이 두 마리나 비집고 들어가서 꽃가루를 잔뜩 묻혀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 당시 시각은 새벽 5시 반쯤이었고, 비가 내리다 그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꽃가루 냄새를 맡고 날아오는 걸까..?? 꿀벌도 개미 만만찮게 부지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가뭄에다 꿀벌 전멸 같은 흉흉한 소식이 적지 않았는데.. 단비와 꿀벌 모두 반가운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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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덩굴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암꽃이 그것도 둘이나 폈다.
내가 많이 봐 온 씨방은 그냥 구슬처럼 동글동글한 형태였다. 단호박은 아무 무늬가 없는 초록색 단색이고, 일반 호박은 좀 얼룩덜룩 무늬가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런데 얘는 씨방 모양부터가 납작한 게, 진짜 납작하고 쭈글쭈글한 그 늙은 호박으로 자랄 녀석처럼 보였다. 이런 씨방은 처음 봤다.
한 덩굴에서 암꽃과 수꽃이 같이 피면.. 수꽃이 먼저 활짝 피고 암꽃 봉오리는 더 늦게 펴지는 편이었다. 아무래도 암꽃이 수꽃보다 피우기 더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아울러.. 이렇게 암꽃이 가까이서 여럿 피면.. 서로 팀킬을 벌이기도 하는 것 같다.
한 덩굴/줄기에서 두세 개의 씨방이 생기고 암꽃이 폈는데, 하나가 수분이 되면 그거 하나만 살고 나머지 암꽃들은 급속히 시들고 쪼그라든다.
평범하게 꽃가루를 못 받은 암꽃은 좀 더 오래 있다가 씨방이 떨어지는데, 얘들은 더 빨리 떨어지는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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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여곡절을 거쳐서 위의 암꽃도 둘 중 하나만 수분이 성공해서 딱 저 단계까지 잘 갔다.
꽃까지 얘기가 나왔는데 글이 이미 많이 길어졌다. 열매 얘기는 다음에 계속하도록 하겠다.

참고로.. 위의 사진들만 보면 본인이 올해 호박 농사가 이미 대풍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밝힌다.
실내와 실외 여기저기 자투리 땅에 호박씨를 많이 뿌려 봤는데, 올해는 수난=_=이 좀 많았다. 저 사진에 찍힌 호박들이 상당수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밖에서는 잘 자라고 있던 덩굴을 누군가가 그냥 뽑아 없애 버리기도 했으며, 결정적으로 강둑 모처에다 잔뜩 심었던 아이들은 지난 6월 말에 엄청난 폭우 때문에 회복 불능의 침수 피해를 입었다. ㅠㅠㅠ 몽땅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 가거나 진흙을 뒤집어쓴 채 쓰러진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진흙이 말라붙은 건 물만 뿌려 준다고 해서 호락호락 씻겨 없어지지도 않았다.;;

작년에는 재작년이나 올해와 달리 둑이 한 번도 침수되지 않았다. 덕분에 그때는 올해 정도로 호박을 꼼꼼히 관찰하고 관리하지 않았고, 인공수분 따위도 전혀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물찾기 하듯이 수십 개에 달하는 호박 열매를 딸 수 있었다.
둑의 호박들이 잘 자라고 있으면 지금쯤 열매도 많이 맺히고 있을 텐데 안타까운 노릇이다. 올해가 운이 안 좋은 게 아니라 작년이 이례적으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 여담

(1) 호박은 박과의 덩굴식물이어서 그런지 내 경험상 다른 식물에 비해 생체 반응이랄까 피드백이랄까 그게 더 활발하게 온다. 한 마디로 말해 '다이나믹'하다는 점에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선인장 같은 여느 관상용 식물과는 다르다.

덩굴이 돋는 속도도 장난이 아니고, 금세 축 늘어졌다가 물 주면 금세 살아나고..
뿌리로부터 단절되거나 뿌리가 통째로 뽑히면 정말 순식간에 잎이고 뭐고 다 쪼그라들고 시들고 말라 비틀어져 죽는다. 물고기가 물에서 나오면 헐떡거리다가 죽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꽃 안 피고 가만히만 있는 것 같아도 현상유지만으로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뜻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렇게 오랫동안 가만히 있다가 어느 순간부터 또 새순이 뻗고 잎이 돋고 꽃도 피고.. 그러더라. 이놈의 식물 성장 알고리즘이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2) 물난리 후에 무려 7월이 돼서야 호박을 또 심은 것도 있다. 하지만 얘는 실질적으로 키울 수 있는 기간이 2~3개월밖에 안 되는 시한부 인생이니 큰 열매는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다.;; 지금 착과가 돼야 그때쯤 늙은 호박을 구경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다시 집으로 들여다놓을 수 없을까?
난 더운 여름을 싫어하는 사람인데, 이걸 생각하면 여름이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이다.

(3) 호박이 깔끔히 삭제 당하고 온갖 식물 잔해와 쓰레기로 뒤덮였던 강둑은 그로부터 두세 주가 채 지나기 전에 또 시퍼런 잡초들로 점령당했다.
얘들은 홍수 이후에 생겨난 것들인데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된 건지 그저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같은 식물이어도 세심하게 관리를 해야 하는 농작물과, 아무렇게나 잘 자라는 잡초는 생태 특성이 달라도 서로 너무 다르다. -_-;;

(4) 호박이나 수박뿐만 아니라 오이도 '박과'이다. 오이는 덩굴 모양은 호박을 닮았지만, 잎은 깻잎을 더 닮은 것 같다.
그리고 참외는 '참 오이'라는 뜻으로, 역시 오이의 친척뻘인 박과 채소이다.;;;

(5) 호박을 최대한 오랫동안 키우기 위해서 새싹과 모종은 아직 추운 3~4월에 실내에서 미리 키우다가 나중에 밖으로 내놓는 기법이 쓰인다.
이건 스타크의 저그 진영에서 익스트랙터 짓다가 취소하는 식으로 드론을 하나 더 늘리는 기법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22/07/23 08:35 2022/07/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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