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프레임

내가 기독교 신앙, 특히 이단과 관련해서 굉장히 답답하게 생각하는 사고방식의 예를 좀 들면 다음과 같다.

(1) 창세기의 간극 얘기를 들으면 뭔 듣도 보도 못한 김 기동이니 귀신이니 아담 이전 인류(?) 이런 거 떠올리지 말고, “왜 둘째 날에는 ‘보기 좋았더라’가 없을까? 그러게, 물과 땅은 언제 창조됐고 루시퍼는 언제 타락했을까? 예레미야서에도 without form and void가 나오는구나!”를 좀 생각해 보자.

(2) 구원의 영원한 보장 얘기가 나오면 뭔 구원파 생각 좀 하지 말고, 바울 서신서가 실제로 뭘 말하며, 모순되는 듯한 히브리서 야고보서가 뭘 말하는 것이겠는지 생각하는 시늉이라도 해 보라.

(3) 왕국 얘기가 나오면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 따위 생각하지 말고, 성경 용어가 kingdom이고 예수님이 왕 중 왕이며 통치 형태가 왕국이라는 걸 좀 생각하자.

(4) 휴거 얘기가 나오면 다미선교회니 뭐니부터 생각하지 말고, 살전 4:16-17을 제발 좀 먼저 떠올려 보자~!

하.. 이런 분들은 정말 오로지 이단 소리 안 듣는 것에만 목숨을 거는 것 같다.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ㅡ,.ㅡ;;; 세상으로부터의 편견이 그렇게도 두렵나?
이런 사고방식이니까 요한계시록을 읽는 게 통째로 금기시되고, 교회들이 대문 앞에다가 “신천지 출입금지”라고 써 붙이는 것 같다.

이단들이 “우리도 성경 믿어요, 성경 공부해요~!” 이러면 이분들은 아예 성경 읽고 공부하는 걸 그만두지 싶다. =_=;;
거리설교를 이상하게 보고, 구원 확인 질문을 불쾌히 여기는 것도 이런 사고방식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아니, 예수 믿어서 은혜로 구원이 없으면 그건 기독교라고 부를 수 없잖아..!!!

그리고.. 신천지 추수꾼이 교회에 쳐들어와서 집기를 부수고 폭력을 쓰고 난동을 부리면서 예배를 방해한다면야 그러면 경찰에 신고하고 세상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건 좀..;; 성경의 비유를 이상하게 갖다붙여서 이단 교리 펴는 것까지도 경찰에다 신고해서 강제로 찍어누르고 금지시킬 생각인가?? ㅡ,.ㅡ;;
무슨 무한리필 부페 식당 입구에 “운동부 회식 금지”라고 써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좀 민망하다.;;

그래서 본인은 제안한다.
“나는 저 이단들과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 이렇게 쪼잔하게 지내지 말고,
이렇게 단순하고 상식적으로 건전하게 성경대로 믿는 게 이단이면 난 그냥 이단 소리 듣고 말겠다” 같은 대인배 마인드를 가져 보면 어떨까? 자기가 믿는 것, 자기가 가는 신앙 노선에 대한 확신을 좀 가져 보시라.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그 길을 따라 내 조상들의 하나님께 그렇게 경배하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나이다.” (행 24:14)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고, 가슴 펴고 통 크게 살아 보시라~!!

난 자동차, 철도, 컴퓨터, 호박, 멧돼지, 군사, 역사 등 이것저것 온갖 잡학에 관심이 많은 편이긴 한데..
저런 미주알고주알 진짜 이단(?)들 교리는 거의 모른다. 정답만 알면 되지 오답을 일부러 공부할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
정답의 일부가 오답이랑 비슷해 보이는 건 정답의 잘못/탓이 전혀 아니다.;; 그리고 비슷해 보여도 실상은 전혀 같지 않은데 같은 줄로 착각하는 건 당사자의 잘못일 뿐이다.;;

※ 보너스: 후대 드립

내 경험상,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교리나 학설을 반박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그 theory의 내용 본질을 저격하는 게 아니라 출처· 기원· 계보를 따지고 트집 잡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 요일 5:7 삼위일체 요한의 콤마는 원래 성경 본문에 없었고 후대에 추가된 것이다.
  • 젊은 지구 창조론은 웬 안식교에서 만들어낸 산물이다.
  • 반대로 간극 이론은 토머스 캘머와 넬슨 다비 같은 19세기 최근 사람들이 세대주의에 입각해서 진화론에 대항하려고 따로 만들어 낸 것이다.
  • 또 간극 얘기인데, replenish는 처음에 ‘다시’라는 뜻이 절대 절대 없었다. 후대에 진화론에 대항하려고 이런 의미가 재조명되고 추가됐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도 교리를 직접 파고드는 게 아니라 진영논리 이단 프레임에 입각한 좀 비합리 비논리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안식교가 주장하건 몰몬 교가 주장하건, 성경이 6일이라고 말한 것을 6일이라고 그대로 믿고, 1천 년이라고 말한 것을 1천 년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올바르고 잘하는 것이지 않는가?

더구나 그렇게 기원· 출처를 따진 것이 정확하게 맞는 팩트조차도 아닌 경우가 왕왕 있다.
요한의 콤마는 피터 럭크만 박사의 반박 자료에 따르면, 이미 고대 로마 제국 교부 시절부터 멀쩡하게 있어서 삼위일체 교리를 방어하는 데 잘만 쓰였다.

간극 역시 19세기보다야 훨씬 전부터 사람들이 간파했다. 사탄 마귀의 타락과 이전 세상의 멸망이라는 개념 자체를 깨우치기 위해서 무슨 대단한 지성이나 과학 발견이 필요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토머스 캘머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의 출간보다 수십 년 이상 먼저 간극을 주장했었다.

replenish는.. 더 말을 하지 않겠다. 멀쩡히 중세부터 쓰였던 단어이고 더 강조해서 반복해서 채우고, 소모되어서 없어진 것을 다시 보충한다는 뜻이다. 애초부터 단순 fill과 동일한 단어가 아니었는데 이것도 무슨 재창조 교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의미가 왜곡된 거라는 소설은 어쩌다가 튀어나왔나 모르겠다.

Posted by 사무엘

2022/10/04 08:35 2022/10/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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