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프랑스의 군주였던 루이 15세는.. 태양왕이라고 불렸던 선대 14세나, 대혁명 때 참수를 당한 후대 16세에 비해 존재감이 작다. 성경에서 아브라함과 야곱 사이에 낀 이삭 같은 느낌이랄까?
저 사람에 대해서도 인간성은 좋지만 군주로서는 무능하고 우유부단이 너무 심했다는 비판이 많다. 허나, 이 사람 시절에 다음과 같이 분야별로 여러 일들이 있기도 했다.
1. 민생 치안, 미스터리: 제보당의 괴수
1764년부터 1767년 사이에 프랑스에서는 '제보당'이라는 지역에 늑대처럼 생겼지만 늑대는 아닌 괴물이 출현해서 사람을 습격하고 뚝배기를 깨뜨려 죽이고 잡아먹었다. 소문은 나라 밖으로까지 퍼졌고 "프랑스 너네는 들짐승 하나 처리도 제대로 못 하냐? ㅋㅋㅋ"라는 이런 비아냥이 외교계에 나돌았다.

이 소식을 들은 루이 15세는 노발대발해서 육군 병력이라도 동원해서 저놈 당장 잡으라고 분부를 내렸는데..
사건의 비교적 초창기이던 1765년 초엔 남녀 어린이들이 6명(혹은 기록에 따르면 7명)이나 같이 숲길을 걷다가 공터에서 저 괴물 괴수와 마주쳤다고 한다.
이 애들은 처신을 잘못하면 몰살 당하고 1991년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의 18세기 프랑스 판을 찍게 될 수도 있었다.
허나 이때 그들은 침착하게 서로 손잡고 한꺼번에 1오 횡대로 늘어서서 괴수를 야렸다.
사람 쪽의 덩치를 아주 크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제대로 통했다. 괴수는 그 애들을 한참을 노려보다가 물러났으며, 그 애들 일행은 정말 다행히도 무사히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퍼져서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루이 15세는 이 장한 애들을 왕궁에 불러서 용기와 기지를 치하하고, 상금 300리브르를 줬다고 한다. 리더격 애한테 혼자 300, 그리고 나머지 애들한테 또 300을 줘서 나눠 갖게 했다.
(요즘 평범한 직장인 연봉에 필적하는 액수라고 한다. 1리브르는 성경의 1데나리온과 비슷한 환율인 듯..)
제보당의 괴수는 딱 한 놈만 있지는 않았던 걸로 추정된다. 그래도 몇 년간 의심 개체를 사살한 뒤에는 발견이나 피해 신고가 더 들어오지 않고 사건이 종결됐다. 오늘날로서는 증언이나 그림 말고 박제물이 전해지지 않는 게 아쉬울 따름..
2. 국방, 과학 기술: 증기 자동차의 발명
원시적이나마 세계 최초의 자동차라고 일컬어지는 물건이 이 시절인 1770년에 발명됐다. 육군 공병 장교 출신의 발명가인 퀴뇨가 만든 '삼륜 증기 자동차' 말이다.
이 물건은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하게 스스로 굴러가면서 수 톤에 달하는 무거운 대포를 견인해 줬다. 사람이나 마소의 도움 없이 스스로 말이다.

그러나 최초의 발명답게 제대로 운용하기에는 불편하고 번거로운 점, 미흡한 점도 너무 많았다. 이 자동차는 현업에서 당장 정식으로 채용되지는 못했으며, 결과만 따지면 일단은 실패에 가깝게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 15세는 이 사람의 아이디어와 노고를 극찬했다. 1772년부터 왕이 그에게 직접 연금을 600리브르씩 매년 지급해 줬다고 전해진다.
퀴뇨의 삼륜차(대포 수송), 에니악 컴퓨터(탄도 계산), 오늘날 인터넷의 전신인 ARPAnet.. 다들 처음엔 군사 목적으로 개발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3. 개인사, 정치: 암살 위기
루이 15세는 1757년 초에 암살당할 뻔했던 적이 있었다.
외출 이동 중에 '로베르프랑수아 다미앵'이라는 이름의 괴한으로부터 칼빵을 맞았다. 하지만 때는 1월 한겨울이라 왕이 옷을 워낙 두껍게 입고 있었던 덕분에 대미지는 경상에 그쳤다. 옛날의 그 두껍고 무겁고 질긴 외투가 일종의 방탄조끼 역할을 한 것 같다.
저 암살미수범은 전근대 시절에 역적죄를 지었으니.. 곱게 죽지 못했다. 바로 잡혀가서 공범· 배후를 캐내기 위한 처참한 고문부터 2개월 가까이 당했다. 그야말로 만신창이 폐인이 됐다.
결국 단독 범행이 인정되기는 했는데, 재판 결과도 "주문: 피고 다미앵을 사형에 처한다" 이렇게 깔끔하고 자비롭게 나오지 않았다.
"피고 다미앵을 먼저 팔, 가슴, 허벅지를 불에 달군 쇠집게로 지진다. 그 뒤 국왕을 살해하려 했던 그 단도를 오른손에 쥐게 하고 그 손을 유황불로 태워 버린다. 다음으로 지졌던 부위에다 끓는 납을 붓고, 사지를 말 네 마리로 끌어당겨 거열하고 시체를 불태운다"...;; 판결문이 이렇게 쓸데없이 디테일하게 나왔다.

이 꼴을 보며 루이 15세 당사자는 "짐이 진짜로 죽은 것도 아닌데 너무 잔혹하게 처벌하지는 말게나" 선처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는 "아니 되옵니다 폐하. 왕을 시해하려 든 자에게는 후대를 생각해서라도 무관용 일벌백계를 내려야 하옵니다."라는 항변과 함께 거절됐다.
그래도, 프랑스는 잔혹하던 구체제 시절에도 연좌제는 별로 없었던 듯하다.
저 범인의 직계가족은 국외 추방, 그리고 형제자매들은 성을 갈고 신분세탁만 하는 선에서 뒤끝이 마무리됐다. 오히려 루이 15세는 그 범인 유족들에게 개인적으로 연금을 하사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게 배려해 줬다고 한다.
훗날 조선 고종 치하의 서 재필이나 김 옥균 등이 당했던 일을 생각해 보면 매우 비교된다.
한편으로, "왕을 시해하려 든 자에게는 무관용 일벌백계" 이러던 왕조가 겨우 35년 뒤에 완전히 붕괴해 버리고, 왕이 반대로 시민의 손으로 재판 받고 단두대에서 목이 짤리는 날이 찾아왔다. (1792) 이것도 참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참고로..
(1) 월트 디즈니 '미녀와 야수'에서는 저 괴물 짐승도 나오고, 벨의 아버지가 발명한 삼륜 자동차도 나온다. 저 시절 프랑스의 모습을 잘 반영한 것 같다.
(2) 루이 15세 이전, 1600년대 초에 잉글랜드에서는 가이 포크스에 의한 국왕 암살 미수 시도가 있었고(1604, 국회의사당 화약 음모), 프랑스에서는 앙리 4세가 괴한에게 암살 당했었다(1610). 둘 다 예수회인지 뭔지 가톨릭 광신자의 소행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자는 성공회 대비 가톨릭을 홀대하는 것에 불만, 후자는 가톨릭 텃밭에서 쓸데없이(?) 개신교까지 포용하는 것에 불만..
그에 비해 루이 15세 암살 미수는 종교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느 경우건 유럽 사회에서는 이런 역적 흉악범에 대해서도 당사자만 끔살일 뿐, 조선처럼 '삼족을 멸하는' 정도의 연좌제는 적용되지 않았다.
(3) 이 시절 프랑스 국왕들은 허벅지 각선미의 묘사에 진심이었던 것 같다. 특히 14세가 말이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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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14세이고, 아래는 각각 15, 16세...
14세만이 가발이 검으며, 허벅지를 양쪽 모두 제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Posted by 사무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