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는 말: 들짐승과 집짐승

자연에는 여러 동물들이 존재하는데, 어떤 종류는 인간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이용할 가치가 있다.

(1) 일을 시켜서 부려먹기: 개, 소(농사), 말(교통수단).. 넓게 보면 서커스 묘기도 이 범주에 들겠다.
(2) 산 채로 얻는 부산물: 꿀, 알, 젖, 털 같은.. 이거 덕분에 꿀벌은 일개 곤충일 뿐이지만 축산법 상으로는 엄연히 가축이다.
(3) 죽여서 얻는 부산물: 고기와 가죽. 소, 돼지, 닭, 오리 등.. 오늘날 닭은 이 분야의 끝판왕이다.

노동력 (1)에 대해서 더 살펴보자면..
오늘날이야 자동차와 농기계 덕분에 말이나 소의 노동력이 필요할 일은 거의 없어졌다. 소는 이제 식용으로만 키운다.
그 반면, 개는 차분하고 충직한 성격 덕분에 품종에 따라 사냥개나 군견, 맹인 안내견, 마약 탐지견 같은 고도의 특수 임무까지 수행 가능한 유일한 동물이다.

냄새 맡는 능력만 따지자면 도야지가 개보다 더 뛰어나면 뛰어나지, 절대 못하지 않다. 그 커다란 콧구멍을 폼으로 달고 다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능도 개나 도야지나 다 피장파장이다.
하지만 도야지는 고집 세고 인간의 훈련을 잘 따르지 않고 깩깩거리는 그 성깔이 걸려서 저런 일을 못 시키는 거다. 인간과 호흡을 맞추면서 자신의 그 능력을 인간을 위해 기꺼이 바치려는 의지가 개보다 훨씬 뒤떨어진다.

한편, 꿀벌은 (2) 꿀뿐만 아니라 충매화 기반 농작물들의 수분을 도와준다는 (1) 노동력 공로도 엄청나다고 볼 수 있다. 이걸 인간 수작업이나 기계 "따위"로 일일이 하면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농작물의 가격이 지금보다 몇 배는 뛰게 될 터.. 꿀벌의 효율과 가성비 따위는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인간에게 유익한 동물이 인간과 함께 지내게 되면 '가축'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
인간을 공격하지 않고 인간의 통제에 잘 따르면서 이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 번식도 하고, 저런 (1)~(3)을 더 잘하는 쪽으로 품종 개량이 진행된다.

늑대가 들개를 거쳐 우리가 아는 그런 개로 바뀌고, 멧돼지가 털 없고 엄니 없고 더 뚱뚱한 집돼지로 바뀐다. 이런 동물들은 이제 돌봐 주는 인간 없이 홀로 야생에 던져지면 제대로 못 살게 된다.
내 경험상 성경도 육상 동물을 분류할 때 포유류 양서류 같은 구분은 안 한다. 그냥 가축(cattle) 아니면 일반 야생 짐승이냐(beast) 정도로만 분류한 편이다.

산업화 이후 현대에 와서는 아래의 (4)와 (5)도 동물의 용도에 추가된 듯하다. 1차 산업이 아닌 업종에서도 동물을 필요로 하는 예외적인 사례라 하겠다.

(4) 귀여워서 정서적 교감: 집안에 들여다 놓고 키우는 애완동물..
(5) 임상실험: 제약회사 실험쥐 내지 우주 개발 초창기에 인간보다 먼저 우주로..;;

(5)는 그렇다 친다만.. (4)는 인간들이 등 따시고 배 부르고 삶에 여유가 생기면서 등장한 카테고리에 가깝다.
이와 관련해서는 개가 정말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 (3) 도사견인지 뭔지 멍멍탕으로 쓰이는 품종, (1) 셰퍼드, 포인터 같은 품종, 거기에다 (4) 포메라니안, 푸들 같은 애완견 품종이 다 있으니 말이다.

(4)와 (5)는 가축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거시기해 보인다.
그럼 이 시점에서 이 글의 주제를 꺼내도록 하겠다. 고양이, 꼬냉이는 어느 범주에 속하는 동물인 걸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양이는 먹이사슬 서열에서는 엄연히 사나운 육식동물이다. 허나, 덩치가 엄청 작으며 외형과 울음 소리가 기막히게 귀여운 요물이다.

꼬냉이는 개와 달리 (1) 노동력이나 (2) 부산물은 해당되지 않겠다. 아, 쥐 잡는 것 정도나 (1)에 약간 들어가려나?
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언정 (3) 개고기를 먹기도 한다. 하지만 꼬냉이는 일부 문화권의 극소수 마이너 괴식인 나비탕 말고는 일단은 식용으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그 마이너한 개고기보다도 훨씬 더 마이너하다.

오늘날 꼬냉이는 천상 (4) 얼굴마담 역할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얘는 우리나라 축산법상 가축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개, 돼지는 물론이고 꿀벌조차도 법적으로는 가축이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1. 유비쿼터스 고양이

꼬냉이는 행정· 관리 측면에서 개, 돼지 같은 여느 동물과는 굉장히 다른 특성이 있다.
주인 없는 개체가 사람 사는 마을에 버젓이 돌아다님에도 불구하고.. 나랏님이 포획하지 않고 인간과의 공존을 묵인하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

즉, 꼬냉이는 법적으로 유해조수로 취급되지 않는다. 가축도 아니고 유해조수도 아니라는 것이다.
개는 들개뿐만 아니라 애완용 댕댕이라도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애가 있다고 119 신고가 접수되면 나랏님이 출동해서 걔를 잡을 것이다.
멧돼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개는 꼭 죽이지 않고 최소한 보호소에라도 보내겠지만 멧돼지는 그냥 사살이다.
그 반면, 꼬냉이는 잡아서 기껏해야 TNR밖에 하지 않는다. 잡아서 중성화만 시킨 뒤, 현장에 도로 놔 준다.

이렇게 조치가 관대한 이유는.. 꼬냉이는 저렇게 놔둬도 사람에게 물리적인 위험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꼬냉이를 목줄과 입마개 채우고 산책 시킨다는 말은 아무도 못 들어 봤을 것이다. 그리고 길고양이 앞에서 사람이 등을 보이고 달아난다 해도 쟤가 쫓아온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반대로 고양이가 사람을 경계하고 도망칠 뿐이지..
꼬냉이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사람을 앞발 발톱으로 할퀼 수는 있다. 하지만 멧돼지처럼 체중을 실어서 들이받는다거나(..), 개처럼 입으로 물어뜯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꼬냉이는 본능적으로 사나운 맹수 기질이 있다. 배고프지 않아도 그냥 괜히 사냥을 하고, 사냥감을 갖고 놀기까지 한다. 단지, 그 사냥 대상이 자기보다도 더 작은 새, 개구리, 쥐, 벌레 등으로 국한될 뿐인 거지.
'종' 전체 차원에서 인간과의 공존이 용인되는 동물 중에서 제일 크고 지능 높고 귀엽다고 여겨지는 아이가 바로 꼬냉이인 듯하다. 개는 모든 종이 인간에게 무해한 건 아니니까.

그래서 그런지 꼬냉이는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는 지경이 됐다.
어지간한 공원이라든가 옛날 스타일 단독주택 골목들엔 다 있고.. 의외로 아파트 단지에도 서식한다.
꼬냉이들이 지구 정복 음모라도 꾸미고 있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얼마 전엔 5월 연휴를 맞이해서 부모님도 뵐 겸 고향 경주를 찾아갔는데..
황성 공원의 소나무숲엔 원래 청설모들이 있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은 거기도 청설모는 안 보이고 꼬냉이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_=;;

강아지를 키우려면 아무래도 펫샵이나 유기견 보호소를 찾아가서 애완견을 정식으로 분양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꼬냉이의 경우, 운 좋으면 그냥 길냥이 중에서도 상태 좋고 귀여운 아이를 '냥줍'하거나 심지어 그쪽으로부터 먼저 간택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본인이 작년 여름-가을 사이에 '앨리'라는 아이와 잠깐 있었던 시절은 꼬냉이의 이런 특성에 대해 개인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
길고양이는 완전한 야생동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애완동물도 아닌 참 애매한 위치에 있다. 그들은 완전히 산 속도 아니고 건물과 공터 곳곳에서 야금야금 몰래 살아간다. 이거 뭐 자전거도 자동차도 아닌 오토바이와 비슷한 처지인 건가?

일부 몰지각한 캣맘이 남의 집이나 차 근처에다가 꼬냉이들 먹이를 놔둬서 갈등을 빚는다. 캣맘이 그 꼬냉이들을 자기 집까지 데리고 와서 전적으로 책임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주인 없는 골칫거리니까, 또 어차피 오만 데 발이 채일 정도로 흔하다는 이유로 꼬냉이들을 죄의식 없이 잡아다가 학대하고 잔인하게 죽이는 일부 사람들도 문제다. 고양이는 세상에 이런 논란의 중심에 앉아 있는 특이한 존재라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주인 없는 개의 멸칭이 '똥개'인 반면, 주인 없이 굴러다니는 고양이의 멸칭은 '도둑고양이'였다. 그게 요즘은 '길고양이'로 많이 대체됐다.
글이 많이 길어졌으니 다음엔 꼬냉이의 생태에 대해서 더 썰을 풀도록 하겠다.
아이고 이거 진작에 올라왔어야 할 글인데 요즘 정말 모든 스케줄이 질질 늘어지고 틀어지고 있다.ㅠㅠㅠㅠㅠ

Posted by 사무엘

2025/05/08 08:35 2025/05/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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