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지대 답사

독자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본인은 지독한 철도 덕후이다.
하지만 자가용이 있다면, 철도가 닿지 않는 오지를 다녀 보고 싶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런 곳이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행정구역상 분명 서울인데도 높은 빌딩과 아파트들은 온데간데없고, 푸른 들판과 비닐하우스와 화훼 단지, 단독주택들이 즐비한 흠좀무스러운 곳이 있다. 그린벨트라고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다.

본인은 대학 시절에 인터넷 신문에서 '지하철 타고 다니는 어느 농부'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이건 '소리 없는 아우성'만큼이나 얼마나 안 어울리는 조합인가? 화제의 인물은 집이 광명시에 있어서 7호선 역세권인데, 잘 알다시피 천왕 역 일대가 허허벌판이다 보니까 근처에서 농사를 짓고 산다고 한다. ㅎㄷㄷ;;
또한, 강서구의 마곡 역 일대는 아예 지하철역의 개통마저 10년이 넘게 무산시켰을 정도로 대표적인 미개발 지역이었다. 1990년대에 고 건 서울 시장이, 후세를 위해 택지 개발을 보류했기 때문.

천호대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 보면, 강동 역에서 서울 지하철 5호선은 상일동과 마천 방면으로 꺾어지지만, 가던 방향으로 하남시 쪽으로 계속 진행하면 드디어 시가지가 끝나고 별천지가 펼쳐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서울에서 강남만치 금싸라기 땅과(2, 3, 7, 9호선과 분당선 지하철!) 미개발 지역의 격차가 심한 곳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서초구 내곡동과 강남구 세곡동은 그린벨트로 묶여서 시간이 정지해 버린 시골 마을인데, 거기도 듣자하니 부자들이 많이 산다고 하더라. 굳이 미어 터지는 서울 도심에서 지지고 볶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으신 분들. =_=;;

그런데, 미국 LA에 가 보니까 일반 서민들이 다 그런 시골 마을에서 살던데... ㅠ.ㅠ
집집마다 차고가 있고 가족 구성원이 제각기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 아파트라고 해 봤자 달랑 2~3층짜리 공동 주택인데, 좀 빈민이나 아직 경제 기반이 부족한 신혼 부부들이나 사는 곳이고.. -_-;;; LA 시내는 땅값이 너무 비싸서 다들 베드타운 위성도시에서 사는데, 외곽에서 시내로 매일 서울-대전뻘 되는 거리를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게 일상사라고 한다. 이런 게 역시 잘 사는 대륙 국가의 기상이다. -_-
그냥 대륙도 아니고(중국은 뭐.. -_-), 그냥 잘 살기만 하는 나라(일본은 국가가 잘 사는 것만치 서민이 잘 사는 나라는 아님)도 아니고, 잘 사는 대륙 국가가 말이다.

뭐 어쨌거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홀연히 답사를 다녀왔다. 세곡동으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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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언제까지나 개발 제한 구역일지는 모르겠다. 서울에 녹지대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온다면..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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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한적한 골목. 내가 몰고 온 차도 저 차들 중에 있다. ^^;;
내 차 남 차를 떠나서, 공공장소에서 차 번호는 남의 초상권이나 주민 등록 번호만큼이나 유출하거나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므로 모자이크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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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그런데 주차 문제는 좀 심각할 듯.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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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성남시 내부이지만, 분당과는 달리 경부 고속도로 서쪽에 있는 성남시 고등동, 신촌동은 역시나 도시 분위기와는 거리가 너무나 먼 곳이다. 군사 시설인 서울 공항까지 있다 보니 더욱 개발 제한이 심할 것 같다. 이 크고 아름다운 도로는 널널하기 그지없어서 차들이 쌩쌩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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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항은, 청와대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민간 지도에 표시도 되어 있지 않은 군사 시설이다. 그래서 청와대처럼 청색 기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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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장을 지나서 양재 IC와 가까워지면서 시골이 아닌 서울 분위기가 나고, 차들이 급격히 늘어난다. 양재 IC 근처에는 현대와 기아 사옥이 나란히 들어서 있는데, 마치 대전 역 근처에 있는 코레일· 철도 시설 공단 쌍둥이 건물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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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항과 세곡동 일대의 한적한 도로와는 달리, 경부 고속도로는 평일 낮에도 차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들은 답이 없는 지경이다.
경부 고속도로는 딱 양재 IC 이남부터가 도로 공사 관할이고, 그 이북은 서울시 관할이다.

운전을 해 보니까 참 재미있다. 생업에 종사하기 위해 차를 매일 몰아야 한다면 스트레스 받고 피곤할 거고, 차량 유지하느라 돈도 딥다 많이 깨지겠지만, 1주일에 한 번 남짓 취미로 하는 거라면 이보다 즐거울 수 없을 것이다.
틈나는 대로 이런 그린벨트라든가 철도 중앙선 구간의 간이역을 자가용으로 답사해 보고 싶다. 내가 사는 곳이 그래도 동부이다 보니 하남, 구리, 양평 같은 곳에 관심이 간다. 서울은 동남부가 철도 인프라가 유난히 열악하기도 하니..

서쪽의 김포는 전형적인 도농 복합 도시인 것 같다.
양평은 한강 상수도를 보존해야 한다는 명목 때문에 강력한 개발 제한이 걸린 곳이다. 그래서 서울과 상당히 가까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휴양· 관광 도시 역할이나 하게 될 듯하다.

본인의 고향인 경주는 잘 알다시피 문화재 보존 떡밥 때문에 아파트나 상업용 건물의 층수 제한이 걸려 있었다. 좀 과장 보태자면, 건물 지으려고 땅만 팠다 하면 각종 유물이 줄줄이 출토될 지경이었으니 개발을 제대로 할 수 있었겠나? 그래서 소중한 문화재들이 정작 건설업자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고 한다.

박통 하면 흔히 오로지 경제 개발, 성장주의만 떠올리기 쉽지만, 그는 서울의 과포화와 지나친 팽창을 염려하고 경계도 했으며, 요즘 용어로 표현하자면 행정수도 이전도 구상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행정력을 동원해서 서울 같은 대도시의 어느 구역 이상부터는 개발을 금지하고 녹지로 남기는 그린벨트를 조성했다.

물론, 그린벨트 구역에 땅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게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며, 어떤 면에서는 그게 재산권을 침해하는 악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대단히 아이러니한 사실은, 주로 진보 진영에서(=박통을 욕하는 편인) 그린벨트 정책을 환영하고 박통의 업적이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보수 진영에서 그 정책을 비판한다고. 서로 보유하고 있는 재산의 형태라든가 처지가 달라서 그런 것 같다. -_-;;;

차를 굴리기 시작했으면, 여친 사귀어서 태우고 다니면서 근처 맛집이나 좋은 데이트 코스 답사를 하는 게 보통일 텐데 나는 드라이브도 완전 오덕스러운 스타일로 하는 거 같다. ㅠㅠㅠ Looking for you와 Oh Glory Korail 들으면서 차 운전하는 재미를 여러분들이 이해하시겠는가? -_-;;;

Posted by 사무엘

2011/05/09 08:54 2011/05/0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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