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갔다 온 소감 (2009/7/8)

본인, 병특 만료한 지 그래도 1년이 경과했고, 예비군 1년차 동미참 훈련에 들어갔다. 첫 날 갔다 온 소감을 분야별로 옴니버스 형태로 정리해 본다.

  총평: 합법적으로 꽤 오래 회사 빠질 구실 생겼다고 그저 꿀빨고 좋아만 할 사항은 아니다. =_=;; 훈련 자체야 하나도 안 빡세며, 조교나 교관은 그냥 친절한 후배 내지 동네 아저씨인 거 맞다. 하지만 오지로 왔다 갔다 하면서 군화 군복 차림으로 장시간 땡볕에서 고생하고 평소에 안 하던 꽤 긴 거리 도보-_-를 하는 거.. 본인은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고생스러웠다. 갔다 오니 피곤해 죽겠다.

  훈련 교장의 접근성: 퇴소 명령이 떨어진 후 집까지 도착하는 데 1시간 반이 걸렸다.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고 전철+버스 연계가 괜찮으며 부대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부대 내부의 집결/퇴소 장소에서 정문까지 가는 게 걸어서 15분 ㅜㅜ! 자가용 내지 수송 버스(물론 있었으나, 비싸고 어차피 집 근처까지 바로 안 감)가 아쉬운 순간이었다.

  현역 훈련병과 예비군의 차이: 물론 군기가-_- 들어간 정도라든가 조교/교관들이 대하는 태도 같은 것도 천지 차이이지만, 내게 질문한다면 외형상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란 바로, “머리 길이와 담배”라고 요약하겠다. 이거 뭐 단순 80년대 장발 스타일을 넘어서, 뒤에서 보면 여자처럼 보일 정도로 치렁치렁 긴 머리를 묶은 예비군 아저씨도 있었으니 원! 현역 입대하는 훈련병이라면 상상도 못 한다.

  다른 아저씨들하고는: 말 한 마디도 안 했고 할 일도 없다. 서로 아는 사이인 예비역들은 같은 지방에서 자란 친구이기라도 한 걸까?
사실 근본적으로 나는 내 고향이 아닌 지역으로 부대 지정을 받았으니 이런 곳에서 아는 사람을 찾을 수도 없다. 차라리 2002년 신검 받을 때는 그때 중/고등학교 동기놈하고 얼굴 마주치기도 했는데 말이다.
작대기 네 개짜리 예비군 병장이 대부분이고, 가끔 해병대 출신 예비역도 보였는데 이들은 명찰이 빨간 배경 노란 글씨인 게 인상적이다. 나처럼 병특이나 공익 출신은 상의 주머니에 계급 작대기가 찍혀 있지 않다.

  담배: 우리나라의 내 또래 남자들의 평균 흡연율을 짐작케 할 정도였다. 현역 입대 훈련소라면 상상도 못 하겠지만, 일과 끝나고 조금만 틈만 생기면 예비군 아저씨들은 대부분 담배 뻑뻑 피워 댄다. 교관들도 “담배 피우는 분들은 건물 아래 말고 밖에서 피우세요” 이런 주의나 주는 정도이다.
예비군들이 머물렀던 훈련 교장 인근은 온통 담배꽁초 투성이가 되었다.

  손전화: 주위 아저씨들은 무지막지하게 들고 다닌다. 이건 반입을 원천 금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이니, 교관들도 사실상 묵인해 주고, 훈련 중에 대놓고 전화질만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수준이다. 사실 예비군 가 보면 기다리느라 보내는 시간 엄청 많은데, 심심하면 전화기라도 만지작거려야 직성이 풀리긴 한다. 하지만 나는 뭐 딱히 전화할 상대도 없고, 갖고 다니기가 거추장스러우니 앞으로도 손전화를 갖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점심 식사: 인터넷 상으로는 고작 4000원짜리 밥이 요 따위라니, 도대체 예비군 식사 납품 업체는 차익을 얼마나 챙기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악플이 엄청 많았지만 오늘 여기서 먹은 밥은 괜찮은 편이었다. 국은 육개장 내지 갈비탕 컨셉이었고, 더 달라고 하면 무료로 꽤 푸짐하게 많이 주기도 해서 잔반 하나 안 남기고 잘 먹었다. 밥에 관한 한은 나는 불만 없었다.

  총: 예비군한테는 이거 뭐 2차 세계 대전 내지 6 25 때나 쓰였다는 카빈 소총이 지급됐다는 루머-_-도 있었지만, 내가 간 교장에서는 오로지 M16 소총이었다. 논산 육군 훈련소에서도 만져 본 총이어서 친근했지만 사격 때는 정말 정신없었다. 물론, 폼으로만 들고 다니는 개인 소총으로 총 쏜 건 아니고, 사격은 사격장에 비치되어 있는 실제로 동작-_-하는 별도의 총으로 한다. ^^;;
물론 거기서 근무하는 현역들은 여전히 K2 소총 쓰더라.

  정신 교육: 앞으로 현역들의 복무 기간이 더 짧아지고 저출산 때문에 인구 갈수록 적어지면 예비군의 중요성이 더 커지게 되며, 여러분들이 국가 안보의 초석이라고 띄워 주는 멘트는 꽤 많더라. 그 외엔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며 과거에 이렇게 나쁜짓 많이 저지르고도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식의 레퍼토리임. ㄱㅅ 그나저나 입소식 때, 현역 조교들도 앞으로 제대 후 우리처럼 될 애들인데, 걔네들 보기에 부끄러움이 없게 훈련에 임해 달라고 말한 연대장의 훈화가 좀 마음에 와 닿았다. =_=;;
참고로 정신 교육 때는 사람들 진짜 거의 다 잔다.

여기까지는 좀 평범한 내용이었고, 지금부터가 좀 썅소리 나오는 내용.. -_-

  날씨: 정말 증오로 죽이고 싶었다. ㅜㅜ 별로 덥지도 않았고 섭씨 20도 후반 정도의 평범한 흐린 날 같았는데 땀이 왜 이렇게 분수처럼 솟구치는지! 이미 오전이 채 가기 전에 온몸이 땀으로 샤워를 했다. 땀으로 젖은 손은 끈적끈적. 한번 어디 걷고 나면 몸의 기력이 싹 빠지는 느낌이었고, 강당에서 엎드려서 눈 좀 붙였다간 땀이 눈으로까지 들어갈 정도로 흘렀다.
햇볕은 별로 나지도 않은 거 같았는데 결국 팔뚝은 약간 벌겋게 타서, 손목시계를 찬 부위와 나머지 부위가 색깔이 다르게 보일 정도가 됐다. 어쨌든 날씨에 관한 한 최악이었다. 참을 수 없는 찝찝함!

  갈증과 피로: 훈련 자체는 예비군 특유의 정말 얼렁뚱땅 야메였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도착하자 녹초가 됐다. 술 좀 마셔서 알코올 독기가 몸에 퍼진 상태도 아닌데, 다리가 이렇게 저리고 쑤신 건 참 오랜만에 겪어 본다. 2년 전 훈련소에서 행군하고 나서도 저랬나? =_= 내가 체력이 꽝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고 멍하고 짜증만 날 지경.
그리고 갈증. 내일 갈 때는 손수건(땀 닦으러)하고 사제 물병으로 물을 최소한 1리터는 꼭 챙겨 가야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을 정도로 제대로 고생했다. 너무 목이 말라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물, 우유 등으로 거의 2리터 가까이를 비웠다. (음료수 사 먹고 싶지는 않아서. -_-)
그나마 집에서 싹 샤워하고 속옷 다 갈아입고 에어컨 바람 쐬면서 쉴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동원(2박 3일 외박)이었으면 정말 자살했겠다. =_=;;

  증오로 죽이고 싶은 전투화: 내 발 상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그 널널한 예비군 훈련을 극기 훈련으로 바꾼 일등공신이었다. 도대체 재질이 궁금하게 느껴질 정도로 까끌까끌 배긴다고 해야 하나? 결국 고무링이 닿는 발목에는 긁힌 흔적이 남았고, 양발 모두 발뒷꿈치는 완전히 까져 버렸다. ㅆㅂ~  사람 피부 껍질을 벗긴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체험했다. 발이 그렇게 아프니 뛰지도 못하고 오르막이나 내리막 걷는 것도 힘들고 엉거주춤 걸어야 했다.
이거 때문에 샤워도 제대로 못 했다. 가죽이 벗겨진 발뒷꿈치로  물이 흘러들어가자 “Oh no~” ㅠ.ㅠ
발도 발이지만 양말도 굉장히 무리를 많이 받았을 텐데, 이렇게 한두 번 신은 양말은 곧 발가락이나 뒤꿈치 쪽에 얼마 못 가 펑크가 날 것 같다. 이거 군화 뒷부분에다가 솜이나 휴지 같은 거라도 잔뜩 집어넣어야겠다.

이 짓을 금요일까지, 그리고 월요일에도 해야 한다. 발도 그렇고 팔뚝, 그리고 총을 메었던 오른쪽 어깨까지 벌건 자국이 생겨 있다.. 벌써 side effect가 꽤 크다.. ㅜ.ㅜ
빌어먹을 전투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손을 좀 봐야 되는데 막막하구나.

동미참 교육은 금요일이 끝이지만, 월요일엔 지난번에 경조사 때문에 못 간 전반기 향방 작계 보충 교육을 받게 된다. -_-;;
집에는 회사 다닐 때보다야 일찍 들어왔지만, 무척 피곤하고 자기도 일찍 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그렇게 많이는 못 난다. 그래도 동원보다는 동미참이 낫다. ㄱ- 부하 직원이 예비군인 회사의 생각은 이와 좀 다르겠지만.

Posted by 사무엘

2010/01/11 10:07 2010/01/1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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