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국기 이야기

* 오래 전에 썼던 글을 내용을 보충하여 리메이크 한 것이다.

1. 예배당에도 성조기

본인은 유학이나 외국 취업 경험이 없는 남한 토박이이다.
하지만 사진이나 잠시 외국 여행을 통해 접한 미국 현지의 모습 중에 인상적이었던 면모 중 하나는.. 교회 예배당 안에도 왼쪽 구석에 성조기가 꼬박꼬박 깃대에 꽂혀 있는 것이었다. (뭐, 모든 미국 교회가 그런 건 물론 아니겠지만)

아마 미국의 학교 교실도 그런 걸로 기억한다. 우리나라는 교실이라고 해 봐야 국기가 액자처럼 칠판 위의 벽면에 걸린 게 고작인데, 깃대에 그렇게 꽂힌 모습은... 글쎄다. 국내에서 태극기 깃대가 곁들어진 사무실 배경 사진이라고는 군 장성들의--사관학교 교장 같은-- 프로필 사진 같은 것밖에 본 기억이 없다.
더구나 교회까지... 한국에서 내부에 태극기가 걸려 있는 예배당을 보신 기억이 있는가?

하긴, 미국은 성조기 텍스처-_-를 입힌 수영복 내지 팬티까지 입는다고 하니, 국기를 보는 인식이 우리와는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Quake 3 Arena에 나오는 Patriot 캐릭터가 생각난다. 성조기 무늬를 한 두건을 두르고 있었지 않던가.

우리나라는 국기에다 조국에 대한 상징성을 많이 부여하고서 품위와 예절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외국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한번 게양한 국기는 해 떨어지면 반드시 하강해야 한다. 그리고 압권인 규정이 있다. 심하게 해어지거나 훼손된 국기는 일반 쓰레기로 폐기하거나 걸레· 헝겊 같은 다른 용도로 절대로 쓰지 말고, 깔끔하게 "소각"해서 아예 없애야 한다. 구약 성경에서 헌물의 남은 부위를 불로 싹 태워 없애듯이. 국기는 그야말로 돈만큼이나 훼손에 대한 규정이 따로 존재하는 물건인 것이다.

태극기와 다른나라 국기와의 병행 게양은 --원칙대로라면-- 우리나라와 수교한 국가, 그리고 독립 국가로서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인정한 국가하고만 할 수 있다. 올림픽 공원이나 기타 등등 공원에 진열되어 있는 외국 국기들 역시 UN 회원국이기만 하면 어중이떠중이 아무나 다 모은 게 아니다. 88 올림픽 참가국 또는 6 25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나라들처럼 다 명분이 있는 나라만 모은 것이다.

2. 태극기의 외형

우리나라의 국기는 태극기이다. 태극기는 세계 어느 나라 국기와 견줘 봐도 독창적이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잘 만든 디자인이라는 것이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삼색이나 원 하나만 달랑 그리면 끝일 정도로 쉽고 단순하지는 않으며 괘의 배치 순서도 은근히 헷갈리기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랍 글자나 비트맵, 그러데이션-_-처럼 인간이 도저히 그릴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것도 아니니.. 이 정도면 적당히 괜찮은 난이도인 것 같다.

기하학적인 복잡도를 문자와 비교하자면 당장 자기 고유 문자인 한글과 비슷한 구조이다. 한글도 직선과 원으로만 이뤄졌고 막 꼬부랑스럽거나 한자만치 복잡하지는 않으니까.

지난 2007년에 국기에 대한 맹세가 일부 수정된 바 있다. 그것처럼 태극기 자체도 남한 건국 이래로 시종일관 변함없이 유지된 건 아니며, 옛날에 잠수함 패치가 한번 가해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수정된 건 1997년 9월의 일로, 태극 무늬의 청홍 색조가 좀 더 채도가 높아지고 상큼(?) 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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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빨강은 자주색에 좀 더 가까워졌고, 파랑은 남색? 군청색?에 좀 더 가까워졌다. Windows의 고전 테마에서 98의 시퍼런 프로그램 제목 표시줄이 2000/ME에서는 남색에 좀 더 가까워졌는데, 그런 식의 변화를 생각하면 된다.

사실은 일본의 일장기도 한국보다 약간 늦은 1999년에 잠수함 패치가 가해져서 빨간 원의 색조가 비슷하게 더 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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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이런 국기에 비해 우리나라의 국가는 개인적으로 좀 2% 부족한 게 느껴진다. 가사가 좀 진취적인 느낌이 없이 너무 흐물흐물하고, 특히 첫 소절 박자도 완전 엉망이고.. 가사와 곡에 모두 명백한 defect가 있다.
정치색이나 이념을 배제하고 생각하자면 오히려 북괴의 애국가가 더 고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나중에 우리나라가 북괴를 몰아내고 통일을 이루면 화폐 단위 고치고 헌법 고친 뒤에 애국가 정도는 이 기회에 다시 제정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작사자는 정확하게 누군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데 좀 고치면 어떻겠는가?

3. 세계 국기들의 종횡비

지구에는 200여 개의 나라가 있고 나라에는 나라의 상징인 국기가 있다. 그런데 국기의 도안뿐만 아니라 화면의 가로 세로 종횡비도 생각보다 제각각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종횡비는 3:2이다. 태극기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국기도 이와 동일하다.
그 다음으로 흔한 건 2:1로, 당장 북한 인공기부터가 공식적으로는 저 비율이다.

이것들 말고 마이너한 종횡비로는..
4:3이 있고 완전 정사각형 1:1도 있다. 심지어 토고의 국기는 이런 데에서까지 쓸데없이 수학적인 걸 추구했는지 종횡비가 황금비(1.618..)이다..;; 지갑 속 신용카드의 종횡비와 같다는 뜻이다.
네팔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기 모양이 사각형 자체가 아니며, 세로가 가로보다 더 길기까지 하다.

다만, A4 용지라든가(루트2 :1) 와이드 화면 16:9 종횡비인 국기는 내가 들어 보지 못했다. A4의 경우, 잘 알다시피 반으로 접어도 종횡비가 동일하게 유지되라는 실용적인 취지에서 비율이 1.414이다.

이런 국기 종횡비를 보고도 철도가 떠오르는 게 있다. 마치 국가별 철도 궤간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3:2가 이 바닥의 표준궤 1435mm와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국기의 종횡비쯤이야 철도 궤간이나 통행 방향, 전압처럼 산업 차원에서의 표준화가 필요한 분야는 전혀 아니니, 뭐 제각각 따로 놀아도 할 말은 없다. 자국 내에서 자기 국기만 게양할 때에야 자기 마음대로 아무 비율과 도안으로 게양하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여러 나라 국기들을 획일적인 종횡비로 한데 진열할 때도 있다.
그러니 보편적인 3:2나 2:1 정도의 종횡비에다 공간을 맞출 때는 내부 도안을 이런 식으로 보정· 재배치한다는 식의 통일 규격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19 19:38 2018/10/1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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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ws에서 돌아가는 GUI 프로그램은 커다란 자기 창을 띄우며, 그러면 작업 표시줄(task bar)에서도 그 창이 있다는 걸 표시해 준다.
그런데 작업 표시줄은 어떤 프로세스가 생성하는 여러 창들을 어떤 기준으로 선별하여 표시하는 걸까? 화면에만 표시되고 작업 표시줄에는 나타나지 않는 일명 '스텔스 윈도우'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심지어 이 작업 표시줄에 등재된 창 목록은 Alt+tab을 눌렀을 때 나타나는 task 목록과도 완전히 일대일 대응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일단, 작업 표시줄은 (1) child가 아니고(overlapped 또는 popup) owner(parent)가 NULL인 모든 윈도우를 자기 목록에 등재해서 표시해 준다. 대화상자건, 응용 프로그램이 클래스를 따로 등록한 윈도우건 모두 상관없다. 이건 대부분의 상황에서 충분히 합리적인 조치이다.

옛날에 대략 Windows XP 정도까지 쓰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디스플레이/키보드/마우스 같은 제어판 애플릿들은 분명 rundll32라는 독립된 프로세스로부터 구동된 대화상자임에도 불구하고 작업 표시줄에는 제목이 뜨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제어판 애플릿은 제어판 셸로부터 주어진 보이지 않는 부모 윈도우를 owner로 삼고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윈도우를 생성하여 owner로 잡으면 대화상자뿐만 아니라 크기 조절 가능한 멀쩡한 overlapped 윈도우라도 작업 표시줄에 표시되지 않는 '스텔스' 형태로 만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그런 건 만들 필요가 없고 그게 UI 디자인 상으로 권장되는 짓도 아니니 안 할 뿐이다.
그리고 저런 모델은 응용 프로그램의 입장에서는 자기 창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존재하는 셈이므로 창을 관리하는 게 약간 더 귀찮아진다.

한편, 위의 (1) 다음으로 몇 가지 단서가 있다. (2) WS_EX_TOOLWINDOW는 owner가 NULL이더라도 이 창이 무조건 작업 표시줄에 등록되지 않게 하고 심지어 Alt+tab 작업 목록에도 나타나지 않게 한다.
얘는 덤으로 제목 표시줄도 더 얇게 찍히게 한다(WS_CAPTION이 명시된 경우). 그래픽 에디터의 도구 팔레트처럼 작고 키보드 포커스도 안 받고, 화면에 언제나 표시되어 있는 그런 창을 찍으라고 있는 스타일인 것이다.

이 스타일 한 방이면 스텔스 윈도우를 아주 쉽게 만들 수 있다. 단지 제목 표시줄이 꼭 필요하고 그걸 다른 평범한 윈도우처럼 두껍게 만들고 싶을 때에만 owner 편법을 쓰면 될 듯하다.

그리고 다음으로.. WS_EX_TOOLWINDOW와 상극인 WS_EX_APPWINDOW 스타일이 있다. (3) 얘는 자기가 owner가 지정되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작업 표시줄에 표시되게 한다.
Windows Vista인가 7부터는 디자인이 바뀌었는지 제어판 애플릿이 작업 표시줄에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다. 얘들은 여전히 owner 윈도우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스타일이 지정되었기 때문에 작업 표시줄에도 보인다. 중간에 뭔가 디자인 정책이 바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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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표시하는 대화상자나 창이 작업 표시줄을 건드리지 않고 조용히 떴다가 없어질지, 아니면 독립된 응용 프로그램처럼 뜰지 결정하는 것은 개발자의 재량이다. 다만, 작업 표시줄에다가도 나타나게 할 거면 창에다가 적절한 아이콘도 넣어 주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owner가 NULL인 것만으로도 작업 표시줄에 창이 자동으로 등록되니 이 스타일이 굳이 따로 쓰일 일은 내 경험상 별로 없다.
WS_OVERLAPPEDWINDOW나 WS_POPUPWINDOW는 여러 기존 스타일들의 조합이지만 WS_EX_*WINDOW는 그렇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값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살펴볼 게 있다.

MS Office Excel의 경우, 워크시트 문서창이 응용 프로그램 창의 내부에 소속된 child이다. 단독의 popup 윈도우 같은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프로그램에서 여러 파일을 열면 그 문서창들이 작업 표시줄에 제각각 나타난다. 이게 먼 옛날 Office 2000쯤부터 그렇게 되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신기하지 않으신가?

이건 윈도우 스타일 조작만으로 가능한 동작이 아니고 별도의 API를 사용해서 구현한다.
셸 API들, 특히 작업 표시줄 근처에 있는 트레이(notification) 아이콘을 조작하는 API는 다 SH_*로 시작하는 고전적인 C 함수인 반면, 작업 표시줄을 조작하는 API는 ITaskbarList라는 COM 인터페이스 형태이다.

ITaskbarList를 얻어 온 뒤 HrInit를 호출해서 초기화하고, MDI 문서 창이 생성되면 자기 자신에 대해 AddTab + ActivateTab을 호출한다(ActiveTab도 반드시 해 줘야 됐음). 그리고 문서 창이 닫힐 때는 DeleteTab를 하면 된다. 이렇게만 하면 당장 날개셋 편집기조차도 얼추 Excel처럼 문서 창을 작업 표시줄에서 곧장 접근 가능하게 수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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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일이 마냥 간단하지만은 않다. 문서 창뿐만 아니라 기존 날개셋 편집기 자체의 창이 등록된 것도 같이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서 창이 없거나 하나밖에 없으면 그냥 프로그램 자체의 창 하나만 유지하고 있고, 문서 창이 2개 이상이 되면 그때부터 프로그램 창은 날리고 문서 창들이 작업 표시줄에 나타나게 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자동화가 돼 있지 않아 귀찮다. 마치 클립보드 viewer chain을 관리하는 것처럼 말이다.

요컨대, owner 윈도우, WS_EX_TOOL/APPWINDOW 스타일, 그리고 ITaskBarList 인터페이스만 기억하고 있으면 창과 작업 표시줄의 연계는 다 마스터했다고 볼 수 있겠다.
참고로 ITaskBarList는 초창기에는 이렇게 탭을 수동으로 등록하고 삭제하는 원시적인 기능만 있었다. 아마 IE 4나 5 시기쯤, 웹 브라우저와 운영체제 셸이 얽혀서 마개조되고 DLL hell 현상이 악명을 떨치던 20여년 전에 첫 등장했다.

그러다가 얘가 온갖 기능이 추가되어 ITaskBarList3으로 발전한 게 2000년대 말의 Windows 7 타이밍이다. 작업 표시줄에다가 응용 프로그램의 고유한 썸네일을 표시하고, 백그라운드 작업 진행률을 나타내고, 재생기의 경우 간단한 재생/멈춤 같은 버튼까지 갖다박는 UI 요소가 그때 추가됐기 때문이다. 그런 기능들을 바로 저 API를 통해 사용할 수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17 08:34 2018/10/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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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어지간한 인터넷 웹사이트들은 폭이 참 꾀죄죄하고 입구나 메뉴가 플래시로 만들어졌으며, "IE 6 브라우저와 1024*768 해상도에서 가장 잘 표시됩니다" 이런 거 적는 게 유행이었다. 커뮤니티 게시판은 제로보드 4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리적인 프레임 구분이 있는 웹사이트도 있었다. "이 페이지를 보려면 프레임을 지원하는 브라우저가 필요합니다" 에러 문구도 있고 말이다.

지금 저런 사이트를 보면 유지 보수되고 있지 않은 옛날 구닥다리 골동품 냄새가 풀풀 느껴질 것이다. 게시판은 온통 스팸 광고글로 넘쳐나고 있지 않은지가 걱정될 지경이고 말이다.

요즘 스타일의 웹사이트라면 큰 폭에 유연히 대처할 뿐만 아니라 플래시 없이 JavaScript만으로 모든 인터랙티브한 UI를 구현해야 한다. 특히 화면이 아래로 스크롤 됐을 때 메뉴 같은 게 쏙 줄어들어서 화면 한구석으로 밀려나는 거라든가.. 목록의 끝을 열람했을 때 다음 목록이 뒤에 실시간으로 추가되는 기능 같은 게 요즘 유행인 것 같다. css만 바꿔서 모바일 최적화 페이지도 제공하고 말이다.

사실, 본인조차도 HTML 지식은 거의 2000년대 초반 이래로 정지-_-해 있어서 최신 스타일의 홈페이지를 만드는 법을 잘 모른다. 그래도 옛날보다는 지금이 웹 기술들의 파편화가 훨씬 줄어들고 웹 개발자들이 일하기 편리해지긴 했다.
지나간 옛날 이야기이다만 싸이월드의 사이트 개편도 그런 변화를 따라가기 위한 명분과 당위성이 충분한 개편이었다. 구형 싸이월드는 시대에 너무 뒤쳐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편을 매끄럽게 제대로 못 하고 개악에 가까운 수준으로 해 버리는 바람에 사용자들이 대거 이탈하고 망하게 됐다.

웹사이트의 현대화를 나타내는 지표는 단순히 저렇게 외형적인 것에만 있는 게 아니다.
웹 문서들의 인코딩은 국제 표준으로 등극한 UTF-8로 통일하도록 하고, 서버의 각종 URL에도 오로지 영문· 숫자만 쓰거나 아니면 최소한 UTF-8방식으로 인식하게 설정해야 한다.
1990년대 말에 한글로 된 파일을 첨부한 것이 인식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IE에서 "URL을 언제나 UTF-8 방식으로 보냄" 옵션을 끄는 게 팁으로 통용되었던 건.. 마치 Windows Vista에서 UAC 옵션을 끄는 팁만큼이나 뭔가 미개한 관행이었다.

그리고 요즘 무시할 수 없는 대세가 바로.. HTTPS이다. 이건 웹사이트계의 디지털 서명이나 마찬가지이다.
사용자가 서버로 뭔가를 입력하고 보내는 게 전혀 없이 오로지 일방적으로 조회하고 표시하는 기능밖에 없는 사이트라면 모를까, 로그인을 하고 최소한의 interaction이 있는 사이트라면 내가 이 사이트를 믿고 내 개인 정보를 제공해 줘도 되겠는지에 대한 보증이 필요하다.

요즘 최신 브라우저들은 HTTPS가 아닌 구닥다리 HTTP를 쓰면서 폼 입력 기능이 있는 웹사이트에 대해, 갈수록 더 적극적으로 "이 사이트는 위험함, 정보 전송을 권장하지 않음"이라고 경고하는 추세이다.
그러니 사이트 운영자들은 깔끔한 UX를 방문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HTTPS를 도입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인증서를 발급받아야 하고 암호 해독 때문에 서버의 트래픽과 오버헤드가 더 증가하는 것도 감수해야 하고.. 귀찮다.

내 홈페이지는 언제쯤 HTTPS를 도입하게 될지 모르겠다. 웹사이트가 아니라 당장 날개셋 한글 입력기 바이너리조차도 디지털 서명을 안(못) 하고 배째라 쌩으로 배포하고 있거늘..;;

이렇듯, Windows 기준으로 응용 프로그램의 현대화 지표가 유니코드 API, 고해상도 DPI 지원, 공용 컨트롤 6 매니페스트 같은 거라면, 웹사이트의 현대화 지표는 UTF-8, 無플래시, 최신 HTML/CSS 요소, 모바일 페이지, HTTPS 같은 것들이라 하겠다.

그나저나, HTML5 웹표준의 지원 수준 척도로 여겨지고 있는 ACID3 테스트 말이다.
마소에서 만든 IE11과 Edge도 ACID3을 100점 만점으로 통과하고 있고 Google 크롬 역시 예전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 버전은 97점에서 멈추고 있다. 내 자리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또 뭐가 바뀌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한편으로 크롬은 과거에는 APNG(png 기반 애니메이션)를 웹 비표준이라는 이유로 지원하지 않다가 요즘은 지원하기 시작했다.
크롬도 나온 지 벌써 10년이나 됐다(since 2008). 정말 엄청난 속도로 버전업을 하고 있고 지금도 프로그램 내부가 쉴 새 없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서 옛날처럼 마소와 오픈소스 진영이 브라우저 전쟁을 하는 게 아니며, Visual Studio로 어설픈 Windows Phone 앱 대신 무려 안드로이드 앱을 만드는 지경이 됐다. 옛날에다 비유하자면 컴퓨터 세계에서 미국· 소련간의 냉전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삼성 갤럭시와 애플 아이폰도 갈수록 서로 비슷해져 가고 있다. (배터리 일체형은 삼성이 따라하고, 큼직한 화면은 애플이 따라하는 식)

IT 업계가 전반적으로 분리와 파편화가 아니라 통합과 상생이 대세인 듯하다.
마소의 경우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같은 초창기 원로들이 경영진에서 물러나고 사티아 나델라가 집권한 뒤부터 경영 방침과 회사 분위기가 굉장히 크게 바뀐 게 느껴진다. 제아무리 천하의 마소라 해도 영원무궁토록 Windows와 Office만 갖고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언제까지나 오픈소스 진영과 척지고 살 수는 없으며 인제 와서 Windows Phone이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을 이긴다는 건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뭐, 경쟁자들을 적대시하여 어떻게든 독과점으로 말려 죽이려 했던 옛날 마소 경영자들의 전략도 그 시절에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긴 했을지 모른다. 천하의 삼성 전자도 과거에는 일본의 아류 짝퉁이나 만드는 영세 전자 기기 제조사였던 적이 있으며, 마소도 처음에는 그냥 공룡 하드웨어 제조사에다가 소프트웨어를 납품해서 먹고 사는 을의 처지로 시작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여유로운 잣대로 옛날을 함부로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15 08:32 2018/10/1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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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대선이 치러지는 절차: 우리나라 같은 단순무식한 직접 선거가 아니고 뭐가 그리 복잡하냐.. 잘 알다시피 땅이 너무 넓어서 그냥 선거인만으로 간접 선거를 하는데, 선거인단을 뽑는 절차와 조건, 그리고 표를 취합해서 당선자를 가리는 방식도 그냥 직관적인 다수결이 아니다. 미국 내부에서도 현행 선거 방식이 너무 복잡하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2) 야구 룰: 득점 조건이 정확하게 무엇이고, 경기를 이기려면 각 선수들이 무엇을 잘해야 하는지.. 투수가 던진 공을 타수가 빠따로 친 뒤, 그 다음부터 벌어지는 일의 내막을 전~혀 모른다.
전산학 용어로 표현하면, 야구 경기라는 프로그램의 내부 상태 전이 그래프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이 없다.

(3) FIFA 월드컵에서 토너먼트가 진행되는 절차: 이 경기에서 몇 점 이상으로 이기면 상대방 국가에도 어떤 영향을 주고, 저쪽 나라가 이기면 우리도 16강 가고, 반대로 우리가 이 경기를 이기면 다른 무슨 나라가 탈락하고 이렇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그 조건과 원리.. 모름.

물론 요즘 세상에 10~20분만 투자해서 검색해서 공부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본인이 원리를 잘 모르는 분야가 또 있는데, 바로 달력이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는 세계 공통인 서기 연호에다가 그레고리 태양력을 사용한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여전히 음력 날짜가 쓰이며, 설이나 추석 같은 주요 명절은 음력으로 계산된다. 그렇기 때문에 달력에는 음력 날짜도 병기돼 있다.

철도에서 디젤 기관차가 더 정확하게는 디젤-전기 기관차인 경우가 대부분이듯, 한국에서 음력이라고 불리고 쓰이는 달력은 더 정확하게는 태음 태양력이다. 윤달을 넣어서 음력을 양력 달력에다가 절충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음력 달력은 딱 하나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라는데 중국· 일본에서는 음력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떤 방식을 쓰는지 모르겠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이런 음력 달력을 써 왔는지도 궁금하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단기 대신 서기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박 정희 3공 때라고 하는데, 음력 대신 양력 달력을 쓰기 시작한 것은 훨씬 더 옛날인 구한말 을미개혁 때부터라고 한다(1896년).

그리고 더 궁금한 것은 양력과 이 음력 달력은 공식 계산만으로 날짜의 상호 변환이 가능하느냐는 것이다.
그때 그때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천문 데이터가 필요하기라도 한지, 음력 변환은 임의의 연도로 아무렇게나 가능하지 않고 수십 년 정도의 가까운 미래나 과거까지만 제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 궁금하면 한국 천문 연구원에 문의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개인 취향상 생일을 음력으로 지키는 걸 고집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과거의 음력 관행을 우리나라보다 더 철저하게 없앤 것으로 본인은 기억한다. 성명을 로마자로 표기할 때도 우리나라처럼 성-이름 따위 고집하지 않고 깔끔하게 이름-성 서양 스타일을 받아들였는데..

그런데 일본은 책이나 신문에서 세로쓰기 정서법은 의외로 보수적으로 꿋꿋이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주변의 한국과 중국에서는 세로쓰기가 거의 다 사라졌는데 말이다.
중국은 일본처럼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것보다는, 공산당 시절의 적폐 청산 개혁을 거치면서 글자가 간체자로 바뀌고 가로쓰기가 시행되어 있다.

여름에 마케팅 차원에서 어김없이 따지는 복날도 음력 달력과 관계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아마 아닌 듯). 지금은 상식으로 다 알려져 있는 천제의 움직임과 절기, 달력 같은 것도 먼 옛날에 관찰만으로 최초로 알아낸 사람들은 당대 최고의 엘리트 지식인이었을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13 08:37 2018/10/1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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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섬은 한국으로 치면 울릉도뻘 되는 일본의 시골 오지이다. 인구도 35000명에 불과하니 1억이 넘는 일본 전체 인구에 비하면 극소수이다.
제주도에 중국 애들이 많다면, 쓰시마 섬엔 한국 애들이 엄청 많이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상점과 공공장소에는 곳곳에 한국어로도 안내가 다 돼 있었다.

쓰시마 섬은 넓이가 거제도의 두 배 정도이고 제주도의 38% 정도여서 막 작지는 않다. 하지만 땅 대부분이 산이어서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얼마 없으며 길도 전반적으로 좁고 꼬불꼬불한 산길뿐이었다.
4차선 이상 도로를 거의 못 본 걸로 기억한다. 평소에 교통량이 적어서 그런지, 삼거리 교차로에서도 건너편 좌우 횡단보도와 차량 신호가 동시에 파란불이 되면서 비보호 좌우 회전을 하는 곳이 많았다. 그리고 길이 좁은 것치고는 시가지나 골목에서 일방통행인 곳도 없었다.

여기는 철도는 없다. 한국이나 일본 본토와 연결이라도 하지 않는 한, 내부에 단독으로 철도 같은 게 생길 일은 없다. 공항은 있지만 일본 국내선 전용이다.
한편, 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 여기 휘발유 값은 리터 당 154엔이었으니, 한국보다 가격이 약간 더 저렴했다.

일본 정도는 요즘 개나 소나 아무나 다녀오는 세상인데 혼자 설명충 행세를 너무 오랫동안 많이 한 것 같다. =_=;; 이제부터는 슬슬 주요 풍경 사진들을 투척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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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카츠 항에 도착한 뒤에 곧장 들른 첫 목적지는 미우다 해수욕장이었다. 아담한 크기인데 경치가 정말 아름다웠다. 이런 곳은 한여름에 직접 찾아가서 시간 제약 없이 물놀이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요 몇 년 전부터 바다에 꽂혀 버려서 말이다.
친구들끼리 놀러 오기라도 했는지, 비슷한 옷 코스프레를 한 처자들 일행이 모래밭 여기저기서 셀카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웃통 벗고 과감하게 입수해서 물놀이를 하는 젊은 남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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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한국 전망대(일본 명칭은 한국 전망 '소'所)에 도달했다.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요즘 일각에서는  평평한 지구 논쟁이 불거져(ㅠㅠ) 있다. 특히 신자들 중에 "성경을 보니 지구 모양은 원반형 평면이래!"라고 NASA 음모론까지 결부지어서 진지하게 믿기 시작하신 분이 몇몇 있다. 올해 지난 3월에는 한국에서 평평한 지구 국제 컨퍼런스까지 열렸었다. (...)

본인은 관련 자료를 찾아 보다가 쓰시마 섬의 한국 전망대에서 보는 부산 시내와 광안대교의 모습을 주목하게 되었다. 지구의 둥근 곡률로 인해 배는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면서 사라지고, 50km 남짓 떨어진 부산 시내는 이렇게 높은 곳에서 봐야 밑동이 짤린 채로 간신히 보이는 것 말이다.

그 한국 전망대를 실제로 가 보게 됐다. 하지만 본인이 방문하던 당시에는 아쉽지만 하늘이 흐려서 부산 시내를 제대로 보기는 어려웠다.
차라리 밤에 갔으면 광안대교를 자체 조명을 통해 윤곽을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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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가 있는 곳은 아래가 이런 모양으로 보일 정도로 제법 고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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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망대의 바로 옆에는 옛날에 일본을 방문하던 어느 조선 통신사 일행의 위령비가 있었다. 일본을 방문하던 중에 폭풍 때문에 배가 파선하여 몽땅 불귀의 객이 됐다고 한다.
한국어로 적힌 설명문도 있었지만 한문 혼용체여서 제대로 읽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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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보시타케 전망대. 쓰시마 섬에 이런 곳이 있다고 어렴풋이 듣긴 했던 것 같은데 역시 실물을 보게 됐다.
높이 수십 m 남짓한 언덕을 운동 삼아 오르고 나면 이런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다.
베트남 하롱 베이를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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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일본의 신사도 처음으로 실물을 봤다. 쓰시마 섬 관광 때 꼭 들르는 곳은 '와타즈미 신사'라고 바다의 신을 모셔 놓았다는 곳이다.
일본 영토 전역에 있는 신사의 수는 공식적으로 등록된 곳만 무려 8만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신사에는 이런 고유한 모양을 한 입구가 놓여 있다.

우리나라도 조상신이니 무당이니 하는 토속 샤머니즘 종교가 있어서 불교· 유교와 교묘히 짬뽕 되긴 했다만, 일본의 토속 종교라 불리는 일명 '신토'는 더 특이한 것 같다.

굳이 조상신에만 국한되지 않고 무슨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별별 것에다가 신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건 범신론 같다. 뭔가 유일신 절대자를 믿고, 현생에서 바르게 살아서 내세에서 보상을 받는다는 통상적인 종교 패러다임 자체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 거기에다 과거 군국주의 시절에는 이런 신토에다가 덴노(천황) 숭배가 이상하게 끼어 들어가기도 했었다. 그 체계를 알 수가 없다..;;

바가지를 들고 양손을 번갈아 가며 손을 씻고 입도 헹군다. 신사에서 씻는 용도로 흘러나오는 물은 마시는 용도가 아니라고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설명이 친절하게 돼 있더라.
'신사 참배'라고 하길래 본인은 오랫동안 무슨 형상 앞에서 큰절이라도 하는 걸 떠올렸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손뼉도 짝짝 두 번 치고.. 절차가 더 특이했다.
본인이 관광 가 있던 동안 일본인 아주머니가 진지하게 FM대로 신사 참배를 하는 걸 보기도 했다.

일제 시대 때는 저런 신사가 당연히 한국 땅에도, 당장 서울 남산에도 잔뜩 만들어졌다.
일본이 옛날에 뻘짓을 저지르지만 않았으면 신사가 지금까지도 그냥 특이한 외국 토속 종교 정도의 인상으로만 남았을 텐데, 그걸 다른 민족에게도 강요하고 안 따르는 사람들을 가두고 괴롭히고 죽인 적도 있으니 신사에 대한 불편한 기억도 사람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그 많던 신사들은 일본인들이 알아서 스스로 싹 해체하고 철거했다.

아, 일본도 신사 말고 불교 사찰이 전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 비해서는 인구나 면적 대비 개수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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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유래는 기억이 안 난다만, 옛날 '에도 막부' 시절에 쓰였던 항구 부두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작은 배들을 세워 두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중요한 곳 관광은 사실 첫째 날에 모두 했다. 다음 날은 오전에 시내 도보 관광과, 오후에 다시 히타카츠 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몇몇 숲길 산책 위주만 진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관광을 했던 첫째 날은 하늘이 잔뜩 흐렸고, 정작 그 다음 날이 하늘이 푸르고 맑았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관광 일정을 마친 뒤엔 숙소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주변에서 면세 쇼핑을 잔뜩 했다.

가게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합계 5천 엔 이상을 구매하면 점원이 면세로 구입할 것인지 알아서 묻는다. 관광객이 동의하면 이것들은 8%가량 가격이 할인되는 대신, 면세품 전용 봉투에 밀봉된다. (저기서 5천 엔은 물론 면세 전 원래 가격 기준) 그리고 일본을 떠나기 전에는 이 봉투를 뜯어서 물건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제약이 붙는다. 미리 뜯어 버린 것이 세관에서 발견되면 면제되었던 세금이 재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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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섬은 바다와 자연스럽게 연결된 형태로 수로 내지 호수가 꾸며져 있는 게 경치가 좋았다.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 하치만궁 신사에도 들르긴 했는데 사진은 생략하고 넘어가겠다.

본인은 주로 풍경 사진만 찍었지만 가족 사진을 찍는 건 본인의 누나가 전담했다.
원래는 셀카봉을 펼친 상태에서 가까운 셀카봉의 버튼만으로 폰에다가 사진 찍기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셀카봉이 고장이 나는 바람에 누나가 폰을 눌러서 타이머를 발동시킨 뒤, 그 사이에 재빨리 셀카봉을 펼치고 자세를 잡고 사진을 찍어야 했다. 즉, 사진을 찍는 게 매우 불편해졌다.

이게 총기로 비유하면 후장식 총기이던 것이 일일이 총구에다가 총알을 집어넣어야 하는 전장식 총기로 후퇴한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준과 연사가 얼마나 불편한가? 반대로 후장식이 총기의 역사에서 얼마나 획기적인 발명인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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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섬의 중앙에다 뱃길을 낸 만제키 운하이다. 군함을 더 수월하게 통과시켜서 일본의 반도+대륙 진출을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해 취한 조치이다.
이 사진은 그 위에 놓인 '만관교'라는 다리 위에서 찍은 것이다. 참고로 다리 위로 바닷바람이 굉장히 강하게 불었다.

귀국 거의 직전에 산책했던 휴양림(?) 숲길은 모처럼 바닷물이 아닌 산에서 흘러내린 민물이 졸졸 흐르고 경치가 무척 아름답긴 했는데, 이 역시 사진은 생략하겠다.
이 정도로 1박 2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10 08:36 2018/10/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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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국 여행 이력

올해 본인은 지난 추석 때 가족과 함께 쓰시마 섬 패키지 관광을 하고 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본을 가 봤으며, 한반도를 통틀어서 가장 가까운 외국을 다녀오게 됐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 대신 배를 타고 외국으로 나가기도 했으니, 본인의 여행 이력과 관련해 여러 분야에서 신기록이 세워졌다.

그런데 본인은 외국 여행을 갈 때마다 뭔가 아귀가 공교롭게 안 맞아서 필요 이상의 손해와 삽질을 감수하곤 했다.
10년 전에 군필 기념으로 미국 여행을 갔을 때는 국내의 휘발유 1리터 가격이 지금과 비슷한 1600원 초중반이었는데, 1$의 환율은 1400원을 훌쩍 넘어 있었다. 그때 이후로 달러 환율은 현재까지 다시는 그만치 오른 적이 없었고 말이다.

게다가 거의 130$ 가까이 주고 비자 신청 인터뷰까지 또 해야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안 가 2009년쯤부터는 단기 관광 비자가 면제되었다. 그러니 2008년 가을에 미국 다녀온 건 최악의 바가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제주도보다도 가까운 곳을 다녀 오지만 그래도 외국이니까 여권이 필요한데.. 병특 만료 기념으로 10년 전에 만들었던 여권은 딱 올해 추석 연휴 기간에 맞춰서 기한 만료 예정이었다. 뭐, 유효 기간이 6개월 이내로 줄어든 여권은 신규 출국용으로는 사실상 못 쓰는 여권이긴 하다만..

이것만 아니면 본인은 앞으로 수 년간 외국 나갈 일이 없을 사람이다. 여권이 무슨 면허 갱신도 아니고 몇 년간 여권 없이 살아도 되는 처지인데 결국은 단절 기간 없이 또 새 여권을 만들게 됐다.
요즘은 출입국 때 일일이 도장을 찍지도 않고 사증란이 소모될 일이 더욱 없으니, 본인은 면수가 절반인 알뜰 여권을 신청했다. 다만, 그래 봤자 할인되는 금액은 3000원 남짓으로, 5만 원에 가까운 전체 발급 수수료에 비해서 그렇게 많이 저렴해지는 건 아니었다.

2. 고속도로

외국 여행을 가는데 인천 공항이 아니라 반대편의 부산항으로 가는 게 무척 이색적이었다. 부산에도 서울로 치면 내부순환로 같은 고가 형태의 시내 고속화도로가 응당 있다. 그러니 부산 중에서도 최남단인 부산항까지 가는 게 생각만치 오래 걸리지 않았으며, 거기를 달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또한, 본인은 서울-부산을 왕복하는 동안 차의 성능 테스트도 같이 진행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50~160km씩은 흔히 밟았으며, 차 없고 탁 트인 곳에서는 잠시나마 180~185까지도 밟는 데 성공함으로써 과속의 신기록을 수립했다. 원쑤의 심장을 겨누는 심정으로 방아쇠를 당긴... 건 아니고,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끝까지 꽉~ 밟았다.

내 경험상 속도가 100~110을 넘어가면 계기판의 초록색 경제 운전 ECO 표시등이 꺼졌다. 이 이상 속도부터는 차도 점점 힘이 부치고 연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120~140 정도의 속도는 페달을 약간만 밟아도 어렵지 않게 나오는데.. 150 이상이 자동차의 내부 상태가 확 달라지는 경계인 것 같았다.

여기서부터는 가속 페달을 이전보다 훨씬 더 세게 밟아야 했다. 차가 힘들어하는 게 느껴지고 가속이 눈에 띄게 잘 안 되기 시작했다. 이게 100마일의 장벽이기라도 한지 모르겠다.
그래도 1년에 많아야 두세 번 장거리 고속도로를 뛸 때가 아니면 저 페달을 자전거 페달 밟듯이 힘 줘서 밟을 일이 언제 있겠으며, 엔진 회전수 타코미터가 4~5000까지 치솟는 걸 언제 보겠는가? KTX는 200을 넘어서 300도 가는데, 승용차로 이 정도는 밟아 봐야지..

뭐, 본인 역시 추월을 하기만 한 게 아니라 추월을 당하기도 했다. 나 같으면 어지간해서는 저기서 이 좁은 틈으로 끼어들지는 않았을 텐데, 나보다 더 위험한 칼치기를 감행하며 추월하는 간 큰 차들도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치기를 하는 차보다는 엄연히 추월 차로인 1차로에서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저속으로 세월아 네월아, 그것도 2차로의 차와 거의 나란히 가고 있는 차들이 훨씬 더 민폐라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그리고 앞에 장애물이 없다시피하고 지금 속도로도 얼마든지 커브를 틀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브레이크를 밟는 것도 뒷차 운전자를 긴장시키고 유령 정체를 유발하는 주범이다. 애써 얻은 속도를 헛되이 허공으로 날리는 짓이니 차의 연비에 안 좋은 건 두 말할 나위도 없다.

3. 부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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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타고 외국으로 가는 건 아무래도 인천항에서 황해를 횡단하여 중국으로 가는 게 개인적으로 더 쉽게 떠오른다. <아저씨>, <공모자들> 같은 범죄 영화를 너무 강렬하게 봐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인천뿐만 아니라 부산도 항구 도시로서 아주 중요하며, 일본은 대륙 진출을 위해 무려 110년 전부터 경부선 열차와(부산 역) 부산항이 서로 딱 연계되게 만들어 놨다.

비행기가 아니라 배이니 캐리어를 따로 부치지 않아도 되고 무게 제약이 없는 건 약간 좋았다. 물론 망망대해로 나가는 만큼 기본적인 짐 검사를 하지만, 비행기처럼 액체 반입까지 제한할 정도로 빡세게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여객기는 출발 후 활주로로 갈 때는 견인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반면, 배는 비행기보다 훨씬 커도 자력 택싱이 가능할 것이다.

기체 내지 선체의 왼쪽에서 탑승하는 건 비행기와 배가 공통인 것 같다. 비행기가 배의 관행을 물려받았겠지..
하지만 각각의 교통수단에 '-호'라는 고유한 명칭이 붙어 있는 건 비행기에는 없는 선박만의 관행이다. 비행기는 그냥 운행편 번호가 있고, 똑같이 찍어 낸 기체 자체의 모델명(보잉 747, 에어버스 380..)만이 있을 뿐이다.

장거리를 좀 오랫동안 가는 여객선이라면 선실이 반쯤 호텔 방처럼 꾸며져 있고 승객이 누울 곳도 있다. 하지만 쓰시마 섬을 오가는 배는 운행에 한두 시간밖에 안 걸리고 주행 속도도 제법 빠른(시속 6~70km!) 고속정이다 보니, 내부가 좀 더 버스나 비행기에 가깝게 꾸며져 있었다. 승객은 고정된 자기 좌석에만 앉아 있어야 하며, 항해 중엔 바깥 갑판으로 나갈 수도 없다. 좌석엔 심지어 안전벨트까지 있었다.

옆에 시모노세키로 가는 성희호 여객선을 보니 크기도 우리 배(니나호)보다 더 크고 뭔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주거성을 갖춘 배처럼 보였다. 더 장거리를 다녀서 그런 듯한데, 저런 큰 배를 굴릴 정도로 수요가 나오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런 여러 차이점들을 생각하며 일본을 다녀왔다. 갈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돌아올 때는 2m가 넘는 높은 대한 해협의 파도로 인해 평생 겪어 보지 못한 배멀미를 경험하게 됐다.
배가 그야말로 사방으로 들썩이며 요동쳤으며, 파도를 타고 내려갈 때는 쿵쿵 진동까지 느껴졌다. 그냥 놀이기구 탄 듯이 들썩거리는 걸 즐기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어느 샌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은 온통 식은땀으로 흠뻑 젖고, 평소에 그렇게도 뜨끈뜨끈하던 손발은 힘과 열기가 쫙 빠졌으며, 얼굴이 노래지고 속이 어지러워졌다. 이 와중에도 남을 챙기기까지 해야 하는 승무원은 어떻게 배에서 근무를 할 수 있나 대단하게 느껴졌다.

부산항에서 쓰시마 섬 히타카츠(히타카쓰) 항까지 갈 때는 80분 남짓 걸렸지만, 돌아올 때는 파도 때문에 2시간이 훌쩍 넘게 걸렸다. 자동차로 치면 고속도로에서 비포장 오프로드로 바뀐 거나 마찬가지다.
선박은 고속버스와 마찬가지로 탑승권에 도착 예정 시각이 공식적으로 기재되지 않는 교통수단이라는 걸 알게 됐다. 도로 사정이 아니라 바다 사정의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항해를 절반이나 2/3 정도 한 뒤에야 선장이 예상 도착 시각을 방송으로 얘기했다.

4. 일본 - 작다!

과연 일본은 (거의) 모든 게 작고 아기자기하고 아담하더라. 이 말부터 해야겠다. 좋게 말하면 알뜰 검소하고 실속 있고, 나쁘게 말하면 답답하고 짠돌이스럽다.

(1) 먼저 음식 얘기부터.. 음식값이 환율을 감안해도 한국과 비슷해 보이길래.. 그리 비싸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국 같은 양과 서비스로 그 가격인 건 아니다. ㄲㄲ 양이 뭐 이렇게 적은지? 음식물 쓰레기가 나올 수가 없다. 과일과 생선회를 이렇게 작은 덩어리로 썰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한국 음식은 한없이 기름진 중국 음식보다는 일본 음식에 더 가까운지라 전반적인 입맛은 한일 양국이 서로 비슷하다. 하지만 일본 음식에 한국 같은 벌건 김치가 곁들여 나오지는 않는다. 또한 회는 언제나 고추냉이 넣은 간장에 찍어 먹지, 한국 같은 고추장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한국 같은 소금과 참기름에 구운 김도 일본에는 없다.

(2) 다음으로 숙소를 살펴보면.. 우리가 그리 비싼 호텔에서 투숙하지 않은 건 감안하더라도.. 한국이라면 지방의 그냥 허름한 여관에도 있을 법한 냉장고와 침대가 없더라. 객실 화장실 세면대와 변기는 어찌나 아담한지 건물 화장실이 아니라 유아용 내지 교통수단 안의 화장실 같았다.

(3) 일본의 서민들은 살아서도 이렇게 작게 사는데, 하물며 죽은 뒤에는 더 얄짤없다. 황족 말고는 누구든 매장 자체를 못 하며, 무조건 화장 후 납골당 행이라고 한다. 하긴, 후손들이 일일이 다 관리하지도 못하는 묘지만 자꾸 늘어 가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고 모든 시신을 저렇게 처리하는 건 일면 합리적이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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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끝으로, 일본 하면 역시 경차다. 미국은 깡촌 시골에 온통 SUV급의 커다란 다용도 픽업 트럭이 다닌다지만 일본은 차들이 온통 작다. 베트남 같은 나라이면 얄짤없이 툭툭이 삼륜차였을 텐데, 그래도 일본 정도의 기술 있고 잘 사는 나라이니까 경차인 것이다.

5. 일본 - 차량과 교통

(1) 그래도 택시까지 경차는 아니더라. 그 대신, 딱 1990년대 디자인의 옛날 차들이 많이 다녔다. 일본이 아무리 자동차를 튼튼하게 잘 만든다 해도, 자가용도 아닌 영업용 자동차를 내구연한 없이 설마 20년이 넘게 굴릴 정도로 지독한 구두쇠인가 궁금했는데.. 그건 아니다. '도요타 크라운'의 택시 전용 모델이 1995년부터 2017년까지 외형 변경 없이 그대로 생산된 거라고 한다.

국내 현대차의 경우, YF 쏘나타가 생산되던 동안에도 직전의 NF 쏘나타가 택시용으로는 생산됐다. (LF가 나오면서 단종) NF가 워낙 인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쏘나타의 전신인 1980년대의 완전 옛날 중형차인 스텔라도 택시는 무려 1997년까지 생산됐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저 도요타 크라운 택시는 정말 오래된 것 같다. 과거의 살아 있는 화석이던 미쓰비시 데보네어 초기형(1960~1980년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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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 일행이 패키지 관광을 다니면서 탑승한 차량은 요런 25인승 크기의 마이크로버스였다. 한국이라면 그런 버스는 현대 카운티 같은 "전방 엔진+중간문" 형태만 있을 텐데, 크기가 저렇게 작으면서 대형 버스처럼 "후방 엔진+앞문"인 물건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신기했다.

(3) 차들이 좌측통행인 것이야 익히 들었고, 지구상에 좌측통행 우핸들인 나라가 일본만 있는 게 아니니 그리 어색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중앙선이 흰색 실선으로 그어져 있는 것이 개인적으로 더 신기했다. 그리고 일부 구간은 황색 실선 중앙선도 있긴 하던데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6. 일본 - 그 밖에

  • 일본은 한국과 시간대가 동일한 드문 외국 중 하나이다. 시차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게 은근히 좋았다.
  • 생뚱맞은 오지에 공중전화도 아니고 음료수 자판기가 눈에 자주 띄었다. 지진 같은 재난에 대비해서 일정 간격으로 의무적으로 배치한 것이며, 불가피한 비상 상황일 때는 자판기를 부수고 물품을 털어서(!) 연명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한다. 한편, 한국에도 별별 물건을 파는 자판기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스크림 자판기까지는 일본에서밖에 못 봤다.
  • 전압이 110볼트이고 옛날 스타일 플러그가 필요하다는 점은 의외로 미국과 비슷한 면모이다.
  • 일본이 집과 차는 작고 음식은 적지만, 지폐는 한국 지폐보다 세로가 약간 더 크다. 1000엔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노구치 히데요가 그려져 있는 걸 봤다. 우리나라 지폐에는 아직까지도 먼 옛날 조선 시대 사람밖에 없는데 나름 근현대의 인물, 그것도 정치인이 아닌 자국의 과학자가 그려져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비록 노구치 히데요 자체는 행적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말이다.
  • 쓰레기 분리 배출/수거를 한국만치 꼼꼼하게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트에서 물건을 산 뒤에 봉지를 1~2엔 가격에 따로 판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이런 쪽으로는 한국보다 미묘하게 더 관대하고 후하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07 08:37 2018/10/0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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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철도 근황

2018년 하반기 현재, 우리나라의 고속철 운행 동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먼저, 호남(2015)에 이어 평창과 강릉까지도 전용선(경강선) 노선이 개통했다. 덕분에 청량리, 양평, 원주도 KTX가 서는 역이 되었다. 경강선은 기존의 영동· 태백선과 달리 무궁화-새마을 같은 일반열차가 아예 다니지 않는다. 느린 열차가 달리기에는 아까운 선로이니..

그 반면, 인천 공항까지 직통으로 가던 KTX는 폐지됐다. 올림픽도 끝난 와중에 수요가 전무하니 말이다. 더구나 일관되게 동-서 횡축 이동인 강원도라면 모를까, 남부 지방에서 이용하기에는 서울 역 경유 공항 행은 동선이 너무 안 좋다. 누차 말하지만 광명 역에서 인천대교와 비슷한 선형으로 공항을 갈 수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때 공항 철도 검암 역이던가 거기에 KTX 정차 대비를 위해서 저상홈도 만들고 작업을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필요 없어졌다. 앞으로 공항 철도는 KTX가 아니라 서울 지하철 9호선과의 직통 운행 대비나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서울 1기 지하철 이래로 직-교류 겸용 전동차가 또 등장하게 되겠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고속철 노선은 강원도 노선을 제외하면 얼추 X자 모양을 하고 있다. 하부의 V자는 각각 영남 방면과 호남 방면이다. 영남은 부산뿐만 아니라 포항 방면으로도 나뉘고, 호남은 목포와 여수로 또 나뉘긴 하지만 그건 일단 논외로 한다.

그리고 상부의 V자는 각각 서울 방면과 수서 방면이다.
수서 고속철(SRT)이 개통하기 전에는 전국의 모든 고속철 열차들이 대전 이북부터는 한데 몰렸다. X가 아니라 뒤집힌 Y자 모양이었던 셈.
그 상태로 금천구청 이북부터는 고속철이 일반열차들과도 합류하기 때문에 저기는 최악의 선로 용량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사실, (1) SRT가 개통하기 1년 남짓 전에 고속철의 운행에 숨통을 먼저 터 준 것은 (2) 대전· 대구 시내 잔여 구간의 개통이었다.
이 과업까지 완수된 뒤에야 경부 고속철은 운행 계통이 일체의 병목 구간 없이 기존 경부선과 완전히 분리되었으며, 말단뿐만 아니라 중간에서도 일반열차와 스레드 동기화 보조를 맞출 필요 없이 원활히 운행을 할 수 있게 됐다. 더 곧은 길에서 더 빠르게 달려서 운행 시간이 몇 분 단축된 건 덤이다.

그래서 오늘날 KTX는 위의 두 조치 덕분에 일반열차와 부대끼는 걱정은 별로 할 필요가 없다. 이제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의 모든 KTX가 한데 몰리는 유일한 구간은 오송-평택 사이이다.
요즘 고속철은 전반적으로 승객 많고 장사가 잘 되고 있다. 선로 용량이 부족해서 열차를 더 투입하지 못하고, 자리가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다. 그러니 저 병목 구간도 2복선으로 확장했어야 했다는 의견이 있다.

느린 일반열차와의 분리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유사 구간을 달리는 고속철의 운행 계통까지 완전히 이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이런 변수도 있다. (1) SRT 전용선인 지하 고속선은 훗날 고심도 광역 급행 전철(GTX)도 사용할 예정이라 한다.

(2) 그리고 SRT 고속선과 기존 경부 고속선이 합류하는 지제 인근에는 심지어 경부선 기존선과 경부 고속선을 연결하는 선로까지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래서 수원 역을 경유한 KTX가 대전까지 계속해서 느린 기존선으로 가는 게 아니라, 거기서부터 곧장 고속선으로 합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훗날 수인선에도 KTX가 들어갈 예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꼭 필요한 조치라 하겠다.
전국의 광역시들 중 대전은 유일하게 공항이 없고(대전 대신 청주..), 울산은 유일하게 지하철이 없으며, 인천은 유일하게 KTX가 없다. 공항 가는 KTX가 없어지는 대신 미래에는 수인선 구간으로 인천을 경유하는 KTX가 부활할 것으로 보인다.

떼제베 KTX로 달랑 서울-부산만, 그것도 대구-부산은 아직 통째로 기존선으로 오가던 1단계 개통이 엊그제 같은데..
2010년대부터는 2단계 구간 개통 이후로 마산, 포항, 여수(엑스포 때문) 등 온갖 노선들이 많이 생겼다. 굵직한 고속선이 새로 생긴 것도 호남, 수서, 경강 이렇게 3개이며, 포항까지 치면 4개이다.

또한 차량과 내부 시스템도 굉장히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 KTX라는 명칭은 차급(무궁화/새마을 대비), 차종(떼제베, 산천 등), 운영사(코레일 vs 수서 SR) 등 다양한 맥락에서 무엇을 식별하는 명칭인지를 꼼꼼히 따져야 하게 됐다. 이렇게 한국 철도는 오늘도 변모하고 있다.

지금은 완전히 퇴역한 지 5년이 훌쩍 넘었지만, 새마을호 전후동력형 동차(일명 DHC)는 처음 도입되었던 당시부터 이미 떼제베의 외형을 참고하여 만들어졌다는 게 흥미롭게 느껴진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와 관련된 대우 중공업 관계자의 내부 증언이 전해지는 게 있다. 물론 이건 1990년대에 고속철 차량이 떼제베로 결정된 것과는 무관하고 시기적으로 앞선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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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18/10/05 08:34 2018/10/0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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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196, 70년대에 인간을 달에 보내기 위해서 폰 브라운의 영도력으로 새턴 V라는 왕창 크고 아름다운 로켓을 만들었던 동안, 소련에서는 세르게이 코룔로프의 휘하에서 N1이라는 이름의 로켓을 만들었다.
그랬는데 1969년에 미국에서 아폴로 11호 미션을 먼저 성공시키자, 소련에서는 2등은 별 의미가 없다면서 유인 달 착륙 계획을 취소했다. 패배를 깔끔히 인정했다.

사실, 그 당시 소련은 그렇잖아도 미국과는 달리 로켓 엔진의 고출력 대형화를 달성하지 못해서 기술적으로 매우 고전하던 중이었다. 자동차로 치면 휘발유 엔진은 디젤 엔진만치 실린더 하나의 배기량을 무한히 키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작정 공간을 크게 만들어서 무식하게 연료를 한꺼번에 많이 폭발시킨다고 장땡이 아니다. 그럴수록 연소 효율이나 폭발 압력 관리 같은 난관이 커진다.

미국의 새턴 V는 맨 아래에 가장 큰 출력을 내야 하는 1단 로켓이 저렇게 딱 5개의 큼직한 엔진으로 구성돼 있었다. 분출구 크기와 주변의 사람 크기를 비교해 보라. 각각의 엔진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알 수 있다. 저게 평범한 기술로 구현 가능한 게 아니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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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소련의 N1은 자그마한 엔진이 무려 30개나 다발로 달려 있었다. 단수도 새턴은 3단이지만 N1은 4단으로 한 단계 더 많았다. 밑바닥이 무슨 자동차 휠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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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턴 V는 가장자리에 엔진이 4개 있고 중앙에 하나가 더 있는 형태인데, N1은 가장자리에 엔진이 24개 있고 중앙에 엔진이 추가로 정육각형 꼭지점 모양으로 달려 있으니.. 공교롭게도 딱 6배수 관계이다.

그런데 같은 동력을 공급하는 용도로 힘의 원천이 지나치게 많으면 제어가 너무 힘들어진다. 10기통을 훌쩍 넘어가는 스포츠카 엔진이라든가, 1km 이상의 긴 열차에서 3대 이상의 기관차가 동시에 가속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하물며 로켓 엔진은 자동차나 비행기 엔진보다 더 많은 연료를 더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태워 없애야 한다. 그만큼 더 위험하다. 연료와 공기를 그 많은 엔진에다가 균등하게 공급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엔진들 중 한 곳에라도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뒷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N1 로켓은 1969년부터 시작해서 수 년에 걸쳐 네 번이나 발사 시도를 했지만, 모두 폭발 사고가 나고 실패로 끝났다. 이건 나로 호 같은 자그마한 로켓도 아니고, 인간을 달에 보내는 수준의 초대형 로켓이다. 그러니 한번 실패할 때마다 등유와 액체 수소 등등 연료만 생각해도.. 허공에 날리는 비용과 손해가 장난이 아니었다. 발사대까지 불바다에 휘말려 다 날려먹었을 정도였다.

그에 반해 새턴 V는 발사 실패가 전무하고 언제나 100% 성공이었으니.. 참 대조적이다. 저 로켓의 1단 밑바닥 모양이 마치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의 운명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물론 세르게이 코룔로프도 천재였으며, 미국 같은 자금빨과 지원이 있어서 기술을 꾸준히 개선했으면 새턴 V에 필적하는 로켓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달 착륙용 로켓 이후로 1980년대의 우주왕복선 계열로 와서는 후속작 에네르기아 로켓이 과거 N1 로켓의 한계를 모두 극복하였으며, 소유스 로켓은 100% 무사고 성공 기록을 자랑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옛날에 달 착륙 경쟁을 하던 시절에는 소련이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우주로 날아가는 로켓은 수평으로 달리거나 굴러가면서 내기도 어려운 엄청난 고속 가속을... 중력을 정면으로 180도 거스른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구현한다는 게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그러니 수백~수천 톤에 달하는 연료를 겨우 몇 분 만에 다 태워 없애 버린다.

수 톤 남짓한 payload를 지구 저궤도에 띄우고 우주로 보내기 위해서 이만한 연료가 필요한데, 그 연료 자체의 무게 때문에 또 엄청난 양의 연료가 추가되고.. 이런 걸 다 감안하며 계산해 보니 결국 저 거대한 로켓이 필요해진 것이다. 나라에서 세금을 걷으려면 원래 필요하던 돈뿐만 아니라 세금을 걷는 데 드는 비용까지 다 감안해서 세금을 걷어야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저런 난관을 해결하고 대형 고출력 엔진만 만든다고 해서 일이 다 끝나는 것도 아니다.
로켓은 총알처럼 강선을 타고 고속으로 뱅글뱅글 돌면서 날아가는 게 아니고, 무슨 비행기 같은 조향 장치(rudder)가 있지도 않은데.. 진행 방향이 어긋나기가 정말 쉬워 보이지 않는가? 그거 방향이 어긋나면.. 비행기가 실속에 빠지듯이 로켓은 최악의 경우 땅으로 꼬라박아 버릴 수도 있다.

이런 거 저런 거 다 따져 보면.. 지금 같은 컴퓨터도 없던 반세기 전에 천체 운동 궤도를 계산하고 로켓의 모든 내부 구조를 설계한 우주 개발 공돌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천재들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또한 우주왕복선은 탐사선을 등에 업은 기형적인 자세로도 수직-수평으로 방향을 잡고 제대로 날아가는 게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에는 베르너 폰 브라운(1912-1977), 소련에는 세르게이 코롤료프(1906-1966)가 있었고.. 중국에는 첸쉐썬(1911-2009) 같은 사람이 있었다. 천재 한 명이 나라의 항공 우주 기술을 다 이끌다시피했다. 우리나라...는 몰라도 일본에도 또 그런 엘리트가 분명 있을 텐데 싶다.

참고로 브라운의 경우, 정말 진성 우주덕으로서 인간을 달도 모자라서 화성에까지 보내고 싶어했는데.. 아폴로 17호 이후로 우주 개발 관련 예산이 모조리 짤리는 바람에 몹시 상심하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뭐, 천조국도 예산이 무한정 있는 건 아니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화성까지 가는 건 현재 기술도 편도로만 최하 반 년이 넘게 걸리는데.. 거기에 사람을 보내면 그 동안 뭐 먹고 어떻게 살며 귀환은 어떻게 할지 문제가 너무 어렵긴 하겠다..;;

* 보너스: 영화 옥토버 스카이

마침 10월이 되기도 했으니 저런 로켓과 관련하여 본인이 감명깊게 접한 옛날 영화가 하나 떠오른다. 바로 옥토버 스카이.. October Sky (1999)이다.
이건 Homer Hickam(1943~)이라는 미국의 실존 인물과 그의 친구들의 학창 시절 행적을 다룬 영화로, 아폴로 13과 더불어 본인의 favorite 투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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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냥 탄광촌 깡촌에서 그저 그런 아이로 살고 있었는데..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 소식을 계기로 로켓에 완전히 미치고 꽂혀 버려서 로버트 고다드의 후예처럼 살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와 주변 사람들의 만류, 미친놈 취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철주야 로켓 연구만 하다가..
1960년,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지금 인텔 ISEF의 전신인 전미 과학 전람회(NSF)에 자기 로켓을 출품했다. 그리고 추진체 분야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본인도 먼 옛날에 ISEF의 허접 참가자였다. 그러니 저 장면에서 더욱 콧등 찡함이 느껴진다. (1960년은 인텔 사는 아직 없던 시절..)
그리고 저 소년이 쏘아올린 작은 로켓은 훗날 우주왕복선으로 바뀐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영화 결말부를 한번 보시라.

Homer Hickam은 그 대회 입상실적 덕분에 버지니아 공대를 특채로 들어갔다. 대학 졸업 후에는 장교로 임관하여 월남전에 참전했으며, 전역 후에는 NASA에 들어가서 각종 연구 개발과 우주왕복선 승무원 양성에 관여했다고 한다.
일본 최초의 우주인이며 옛날에 <생명 그 영원한 신비> 다큐 진행자로 잘 알려진 모리 마모루도 그때 저 사람을 만났었다는 얘기다!

저런 괴짜들, 덕후들이 자기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진정한 저력이다. ㅜㅜ
1960년대에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라 하면.. 난 지금까지 실비아 라이컨스 아동 학대치사 범죄 사건(An American Crime 영화) 정도밖에 몰랐는데, 저 때 과학 전람회가 열린 곳도 인디애나폴리스이다. 시간과 공간 배경이 비슷하다.

그런데 왜 영화 제목이 뜬금없이 '10월 하늘'이냐 하면.. Rocket Boys의 단어 anagram을 의도했기 때문이다.
나도 Looking for you가 아니었으면 항공우주덕으로 기울었을 텐데.. 음악 때문에 철덕으로 방향이 고정돼 버렸다.;;

Posted by 사무엘

2018/10/02 08:30 2018/10/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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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명절 때에나 떠오르는 4대 교통수단 중 하나로만 아는 것은, 예수님을 사대성인· 성인군자 중 하나로만 아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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