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위기: 판별법

성경의 레위기에는 구약 제물들의 종류, 신체의 부정(불결) 판정 기준, 나병(문둥병) 판정 기준 등 율법의 여러 규례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다리의 굽이 갈라졌지만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동물은 부정하다", "비늘 지느러미가 달린 통상적인 물고기가 아닌 수중 동물은 부정하다~~" 펠리컨은 어떻고 대머리독수리가 어떻고 등등등... 얘는 먹을 수 있고 저런 건 먹어서는 안 된다는 판정도 많다.

이 부분을 읽으니 개인적으로는 쓰레기 배출 기준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귤 껍질은 음쓰이고 바나나 껍질도 음쓰인데, 파뿌리는 뭐 어찌어찌 하지 않으므로 일쓰이다.
플라스틱은 딱딱하고 형태가 있지만 뭐가 묻은 건 재활용 불가능한 일쓰이다. 그렇지 않은 건 재활용 쓰레기..ㄲㄲㄲㄲㄲㄲㄲ

이렇듯, 옛날 사람들은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갈랐지만, 현대인들은 버릴 때.. 재활용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걸 가른다고나 할까..?? 양상이 비슷해 보인다.

대한민국은 쓰레기 분리 배출을 세계적으로 정말 엄격하고 빡세게 하는 나라이다. 페트병을 내용물을 싹 씻고 라벨까지 일일이 떼서 배출하는 나라가 여기 말고 또 있을까.;; 쓰레기 봉투를 일일이 검사해서는 귤껍질을 일쓰에다 버렸다고 과태료를 때리는 나라가 또 있을까?

물론 이건 우리나라가 땅이 매우 좁고 쓰레기를 무작정 매립 소각만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음이 반영된 결과이다. 이런 절박함 덕분에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쓰레기의 재활용 효율이 높으며, 관련 기술이 굉장히 발달했고 인프라도 잘 갖춰졌음이 사실이다. 얼마 전에 의성에 쌓여 있던 쓰레기산이 순식간에 싹 없어진 것도 생각해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음쓰와 일쓰의 경계에 있는 애매한 쓰레기에 대해서는 좀 유도리가 있었으면 좋겠고, 좀 더 명확하고 일관된 구분 기준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플라스틱의 경우도.. 힘들게 분리배출 해 봤자 재활용이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라며? 업체들이 수거해 가서는 도로 뒤섞는다는데.. 그래 놓고는 쓰레기 뒤처리를 소비자한테 전가하는 짓거리는 좀 멈췄으면 좋겠다.

2. 민수기: 밥 투정

민수기 11:5를 보면 말이다. 이집트를 떠나서 광야 생활 중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단으로 크게 불평과 투정을 늘어놓는다.
맨날 천날 보급 전투식량인 M-레이숀(manna)만 먹으니 맛없어 죽겠다고 징징대고, 반대로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시절에 뭘 얼마나 잘 얻어먹었었는지 추억 보정을 막 해댔다.

(1) 먼저 생선: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얘가 아무래도 소· 돼지· 양 같은 육상 동물 고기보다는 더 저렴했을 것이다.
(2) 오이와 참외(멜론): '박'과 식물이다.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이 아니라 열매 맺히는 덩굴채소라는 공통점이 있다.
막 비싸고 희귀하고 맛있는 식재료라기보다는 가성비 좋은 서민형 과채류가 아니었을지? 저 시절 저 때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쭈글쭈글 큼직한 호박 같은 것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3) 부추와 (양)파와 마늘: 요게 핵심인 것 같다. 이것들은 자극적인 맛이 나는 향신료 조미료 용도이다. 얘들은 심지어 불교에서 말하는 오신채에도 모두 포함돼 있다!

종합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그렇게 아주 거창하고 대단하게 잘 먹은 것도 아니었던 주제에 괜히 식재료 타령을 늘어놓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쟤들이 이집트에서 무슨 초호화 열대과일을 먹었겠는가? 생선이라고 하니 무슨 감성돔이나 가을 방어, 혼마구로라도 뜯었겠는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사람이 인생에서 먹는 즐거움도 절대 무시 못 할 경험이니 M-레이숀이 너무 질린다는 생각 자체는 누구든지 들 수 있다.
허나,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 간구를 정당한 절차대로 했어야 했다. 성경에는 슬로브핫의 딸을 비롯해서 사람들이 모세에게 이것저것 건의나 이의 제기를 하는 게 나오며, 이에 대한 주 하나님의 피드백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성경의 하나님은 '무조건 닥치고 까라면 까'가 아니었다.

단지, "에구에구 나 죽네~~ 난 그냥 이집트로 돌아갈래~~ 이 빌어먹을 광야 생활 때려칠 거야!" 식으로 반역에 가까운 불평을 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이건 애가 부모한테 "왜 이런 망할 집구석에서 날 태어나게 만들었어?" 이렇게 대드는 급이나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민수기 11장을 읽어보면 이건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호소한 게 아니었다. 일부 불순분자들이 꼬드기고 선동하고 물 흐리면서 불평 불만이 터진 거라고 나온다.
그러니, 쟤들은 밥을 돼지갈비 소갈비로 먹었다 하더라도 그러면 또 다른 걸 갖고 얼마든지 불평 불만 X랄을 떨었을 가능성이 99.9%라는 것이다. M-레이숀 일괄 급식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었다.

3. 신명기: 특별 담화

신명기 내용은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모세 령도자가 퇴임 회고 연설을 하는 것 같다!! 맥아더 장군이 퇴역 연설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여정을 거쳐서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이런이런 성읍들을 정복했고 바산 왕 옥도 처치했었습니다. 놈은 침대의 길이만 소형 승용차 길이와 맞먹는 4.5미터에 달했었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그 과정에서 이런이런 비극도 겪었고 이런 부끄러운 흑역사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 여러분의 하나님을 여러분의 온 역량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십시오. 그 길만이 살 길입니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단지 사라질 뿐이지요." 대신에
"사람은 빵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꼭 명심하십시오." (신 8:3)가 있는 셈이다.

신명기 원고가 라이브로 낭독 중계됐던 날은 "최고 령도자님의 특별 담화 방송" 명목으로 모든 사람들이 자기 텐트에서 텔레비전 켜 놓고 채널 고정했을 것이다.

아니면 무슨 대한뉴스 같은 프로파간다 뉴스 영화가 단체 상영됐을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에서 테란 캠페인을 다 마치면 나오던 뉴스 영화 동영상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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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는 이런 식으로 뽀대나게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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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힛 족속 여부스 족속, 누구누구들 다 쳐부쉈다는 이야기는 이렇게 그래픽까지 동원해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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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불평하다가 벌받아 죽었을 대, 금송아지 만들어서 누구 몰살 당한 장면은 이런 식으로 녹화 영상 보여주고..

뭐 그렇다.
모세오경에서 마르고 닳도록 반복되어 나오는 말이 바로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펼치신 팔로 니들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왔다(해방시켰다)"이다.

우리 민족의 경우 일제가 무려 원자폭탄을 두 방이나 쳐맞은 덕분에 패망하고 그래서 해방됐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어지간한 태풍이나 지진,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만 돼도 그 위력은 TNT 몇만~수십만 톤급인 인간의 핵무기 몇 방으로 감당 가능한 수준이 아니다.
하물며 육중한 홍해 바닷물을 그 엄청난 시간 동안 양쪽으로 붙들기 위해 필요한 힘.. 내지 댐의 건설 비용은 얼마나 될까? 이게 바로 '강한 손과 펼치신 팔'의 의미이다.

그리고 성경은 이집트로부터 해방됐다고, 한 작은 악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혹은 구원받았다고 끝이 아니라고 말하는 책이다.
세상의 게임이나 영화, 문학에서는 주인공이 빌런을 해치우고 공주님을 구출하는 걸로 끝이다. 결혼하는 걸로 끝이고, 나치 독일이나 일본 제국이나 북괴 김 돼지를 없애는 걸로 끝이다.
그러나 그 뒤 주인공이 공주님과 평생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가? 탈북자는 대한민국 땅에 와서 잘 정착하고 살고 있는가? 구원받은 영적 아기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 잘 자라고 있는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끄집어낸 이유 역시 그 뒤의 big picture가 있기 때문이다. 성막을 만들고, 매주 꼬박꼬박 안식일 지키라고, 수많은 가축을 잡으면서 저 다양한 희생제물들을 바치면서 하나님께 경배 드리라고, 주변의 이방 민족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특이한 민족 행세를 하며 살라고 끄집어낸 것이다.

성경은 그런 책이다. 인생이라는 장기전 마라톤을 다루는 책이다.
구원받고 나서 그 뒤의 삶이 중요하고, 이집트에서 나온 뒤의 삶이 중요하고, 여자와 결혼에 성공하고 그 뒤의 삶이 중요한 그런 책이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기 12~14장 유월절과 홍해 사건 이후의 모세오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닌가 싶다.

※ 보너스

뭐, 모세오경보다는 한참 뒤의 일이지만,
사무엘상 5장 당시에.. 블레셋(필리스티아)의 다곤 신전 안에 CCTV가 있었다면 밤새 뭐가 녹화돼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이건 아마 심야괴담회의 소재도 될 수 있지 않겠냐?
블레셋의 신전 관리인이 얼굴 흐리게 처리하고 출연해서는..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CCTV 녹화 영상에는 제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던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주변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다곤 신이 저절로 자빠지고 엎어지고 팔다리가 끊어졌던 것입니다." 이럴 텐데 말이다.

그리고 다음 6장의 '블레셋 식 언약궤 귀환 차량'은 비록 내연기관이 아니라 소이긴 하지만 자율주행 기술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새끼를 갓 출산해서 젖이 나오는 암소가 지 새끼들을 버려두고 뭐에 홀린 듯이 똑바로 방향을 잡고 어디론가 유도를 받아서 간다니 이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아~ 성경 읽는데 자동차, 드론, 용형, 심야괴담회 같은 마구니들이 마구마구 떠오르니 매우 재미있다~~ ㅋ

Posted by 사무엘

2026/02/25 08:35 2026/02/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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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한번씩 이전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던 것 같지만..
우리나라의 경제· 금융 내지 통화 정책 쪽의 굵직한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하다.

1.
가장 먼저 화폐 자체부터..
우리나라는 6· 25 전쟁 때문에 화폐 단위를 여러 번 초기화 리셋을 했다. 돈 찍는 기계와 지폐 도안 원본을 적에게 송두리째 빼앗겼으니 그 돈은 당장 무효화시켜야 했다.

이때는 일본의 도움까지 받아서 도안을 새로 만들고 돈을 부랴부랴 다시 찍었던 일화가 유명하다. 일본은 한국이 예뻐서가 아니라 한국의 빽인 미국한테 잘 보이고 이쁨 받아야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한국을 돕게 됐다. 물론 일본은 한국의 전쟁 특수로 돈을 많이 벌었으니, 저게 오로지 일본만 일방적으로 삥 뜯기고 자선행위 하는 건 아니었다.

그 뒤 우리나라는 전쟁이 끝나 가던 1953년엔 화폐 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1950년대는 지폐에 지금처럼 조선 시대 사람이 아니라 당대 생존 중인 대한민국 사람 얼굴이 있었던 유일한 시절이었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뭐... ^^

그러다가 1962년, 박 정희 정권 때 또 화폐개혁이 행해졌으며, 단위 명칭도 환에서 원으로 도로 '환원'됐다. -_- 이게 2025년 현재까지 대한민국 최후의 화폐개혁이다. 현재까지 통용되는 화폐단위가 이때 완전히 정립됐다.
이렇게 단위가 리셋됐던 직후에는 짜장면 한 그릇이 30원이었으며, 두툼한 사전 같은 책 한 권이 300원 남짓 했었다. 지금 물가는 그 시절에 비해 0이 2개쯤 더 붙었다.

2.
그 다음으로 10년쯤 뒤, 1972년 8월에는 사채 동결이라는 전무후무한 조치가 취해졌다. 제도권 은행을 육성하고 저축을 장려하려고. 그래서 기업들 돈 빌려주고 살리려고 꽤 강압적인 조치가 취해졌었다.

오늘날이야 사채는 밑바닥 인생을 위한 제3금융권으로나 취급되지만, 저 때는 우리나라에 제도권 금융이 그닥 탄탄하지 못했다. 금성사나 삼성전자조차도 직원들 월급 줄 걱정을 하는 평범한 중소· 중견기업에 불과했으며, 부자 개인한테서 사채를 썼다가 기한 내에 못 갚고 망하는 기업도 있을 정도였다.

저 때는 경제 성장률이 높고 금리가 아주 높았기 때문에 개나 소나 사채를 했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안 믿기지만 사채가 일종의 주식· 비트코인 같은 재테크 수단이기도 했다. 그래서 민간인 개미 중에도 영끌해서 고리대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랬는데 갑작스러운 저 조치로 인해 돈을 빌렸던 기업들은 숨통이 트고, 반대로 돈을 빌려줬던 사채업자들이 낭패를 봤다. 종잣돈을 어떻게 확보했는지 출처를 추궁당하고,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이자가 팍 줄고, 빌려준 돈의 상환 기한도 확 완화됐으니..

그러니 사채 동결은 민생과 나라 경제를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송두리째 바꿔 놓은 급진적인 조치였다. 나쁘게 말하면 오로지 그 시절이니까 가능했던 반민주적인 폭거였다.
허나, 그로부터 몇 달 뒤엔 아예 10월 유신이 시작되면서 나라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쪽까지 더 경직되는 쪽으로 바뀌었다.

3.
그런 일이 있고 나서 20여 년 뒤, 1993년 김 영삼 시절에는 금융실명제가 시행됐다. 이건 2025년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내려진 대통령 긴급명령이다.

옛날 박 정희 시절엔 누구든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은행에 돈을 맡기게 만들어야 했으니 예금주가 누군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중에 좀 먹고 살 만해진 뒤에는 검은 돈 범죄자금 지하경제를 척결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에 금융실명제가 시행됐다. 거의 출산 관련 정책이 1990년대 이후부터 정반대로 유턴 했던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런 굵직한 변화 말고 은행과 관련해서는..
1980년대에 ATM과 초보적인 수준의 신용카드 도입, 1990년대에 은행 창구에 대기 번호표 도입, 2000년대에 인터넷 뱅킹 도입, 2010년대부터 모바일 뱅킹 도입, 종이 없는 전자문서 시스템 도입..;;
이러면서 금융이 물류 교통에서 암호화 통신의 영역으로 많이 바뀐 것을 짚을 필요가 있다.

수십 년 전, 금융이 통신이 아니라 물류이던 시절에는.. 직딩들은 월급도 현금 봉투로 받았다.
국제선 여객기 조종사들은 조종실에다 현금 돈가방을 싣고 날아갔다.;; 도착지 공항에서 그 현찰을 써서 주기료와 유류비를 결제했었다.;;
게다가 신용카드도.. 가게 점주들은 카드 전표 종이쪼가리들을 카드사로 직접 보내고, 그로부터 현찰을 답장으로 받는 형태로 돌아갔다! 정말 엄청나지 않은가?

저런 현물 거래가 통신으로 대체될 수 있게 된 건..
공개 키 비대칭 암호화라는 정교한 알고리즘이란 게 개발되고, 그걸 민간인들 PC와 스마트폰에서도 돌릴 수 있을 정도로 컴퓨팅 성능이 발전한 덕분이다.

돈이 오가는데 무슨 게임 세이브 파일 조작하듯이 변조가 가해져서는 절대 안 되니 암호화를 하는데.. 그게 군대에서 암구호 전파하듯이 암호키를 배포하는 식으로는 근본적인 보안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각종 값비싼 소프트웨어들에 대해서 씨디키라든가 시리얼 번호 생성기, 불법복제 방지 장치를 무력화시키는 크랙이 등장했던 이유는? 역공학을 통해 보안 쪽 알고리즘이 유출됐기 때문이다.

그럼 돈이 오가는 건?? 공격자가 금전 거래 패킷을 낚아챘더라도, 암호화 알고리즘을 다 알고 있더라도, 심지어 한쪽의 암호화 키를 알고 있더라도.. 이걸 변조할 수 없게 해야 한다. 그러니 암호화의 패러다임, 차원이 완전히 다른 암호화가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뭐 그 구체적인 과정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니 생략하고 넘어가겠다. 이건 통상적인 대칭 키 암호화보다 계산량이 차원이 다르게 훨씬 더 많고 복잡하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인터넷 뱅킹을 넘어 모바일 뱅킹 덕분에 계좌이체가 야외에서 거의 현금처럼 통용되게 됐다. 계좌이체는 카드 긁은 내역보다는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결제 내역이 기록으로 남는 건 변함없다.
금융 실명에 이어서 금융 전산화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범죄를 예방하고, 특히 탈세의 여지를 차단했는지를 생각하면 그 혜택은 이루 형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전산 금융은 언제 갑자기 훅 가고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한 번 정도는 은행들이 지금까지 오갔던 돈들의 차액을 현금으로 정산하기는 한다고 한다.

모바일· 인터넷 뱅킹도 밤에 1시간 정도는 중단되곤 한다. 이건 단순히 시스템 정비 차원을 넘어서 정산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시간이다. 이 시간대를 무작정 새벽 3~4시로 옮긴다거나, 예비 서버를 돌려서 무슨 뉴욕 지하철처럼 24시간 끊김 없는 뱅킹을 구현할 수는 없다고 한다. 정산은 날짜가 바뀌기 전에 꼭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화폐라는 걸 만들어 낸 뒤, 처음에는 그 기준 매개물질?물체로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갖고 싶어하고 귀중하다고 여기고, 거기에다 변질도 잘 되지 않는 금· 은 같은 귀금속을 사용했다. 중국이나 한국은 여러 사정상 그것보다 더 저렴한 구리를 사용했지만 말이다(엽전 동전..).

하지만 오늘날은 인간들이 생산하는 경제 가치 내지 경제 규모가 지구상의 모든 금을 채굴해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렸고 또 전산화도 됐다. 현금 거래의 비중이 아주 줄어들었다.
이거 덕분에 화폐 개혁도 어지간하면 할 필요가 없어졌다. 자동차 한 대 가격이 무슨 64비트 정수로도 감당 못 할 정도로 커졌다거나 하지 않은 한;;
우리나라는 남한과 북한이 합쳐지는 급의 격변이 생겼을 때 헌법 고치면서 그때쯤에나 화폐개혁도 같이 하면 될 것 같다.

비슷하게 현물 수송이 아니라 통신의 영역으로 바뀔 만도 한 것은 투표이다.
투표 용지 실물이 아니라 누구누구한테 N표 정보만 개인 전자 서명으로 암호화해서 중앙 서버로 보내면 끝.. 선거 비용도 지금보다 훨씬 더 줄어들고 얼마나 수월하겠나?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허나, 이건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인 불신풍조와 오· 남용 악용, 조작 가능성 때문에 쉽지 않아 보인다.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몽땅 전자투표로만 뽑겠다고 하면 선뜻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뭐 그렇다. 완전 자율주행 자동차가 등장하는 것만큼이나 요원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것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IT 기술을 몇 가지 더 열거하고 글을 맺도록 하겠다. ㄲㄲㄲ

1.
PC로 인터넷 뱅킹을 하려면 잘 알다시피 여러 보안 프로그램 설치, 공인 인증서 등록과 갱신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핸드폰 모바일 뱅킹은 간편 로그인 하나만으로 간단히 시작할 수 있다.
그 이유는? PC는 여러 사람이 한 기기를 익명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위험한 기기인 반면, 핸드폰은 처음부터 주인 1인만 사용하게 돼 있고 기본적인 인증과 보안은 폰의 운영체제에서 자체적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쎄, 생각해 보니 이런 식으로 비슷한 쌍이 하나 더 있다. 내비게이션.
요즘은 폰 내비 앱도 정말 기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맨 처음에 지금 이 차량이 어디에 있고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건 차의 붙박이 순정 내비가 폰보다 월등히 더 뛰어나다. 터널 안에서 안정적으로 위치를 파악하는 것도 폰은 순정 내비의 적수가 못 된다.

왜? 순정 내비는 GPS 신호뿐만 아니라 지금 차량의 핸들 방향과 바퀴 회전수를 통해서도 차의 위치와 속도를 어렴풋이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단서라도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낫다.
또한 차량 내비는 대부분의 경우, 이전의 차량 위치/방향과 지금 차량 위치/방향이 고정불변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차량을 그대로 탁송이라도 하지 않는 한). 그 반면 핸드폰은 그런 보장이 전혀 없으니 처음에 자기 위치와 방향을 파악할 때 한참 동안 삽질할 수밖에 없다.

뱅킹은 보안과 관련이 있으니 모바일이 PC보다 더 간편하고 유리한 반면, 내비의 동작은 자동차의 그 static한 특성이 모바일보다 더 유리한 구석이 있다. 이 점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2.
인간의 경제 생활에서 현금이 이렇게 많이 없어진 만큼, 종이 통장도 예전보다 훨씬 더 보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완전히 퇴출되고 사라진 건 아니니 위상이 애매한 듯..

이렇게 통장에다가 거래 내역을 찍어 주는 용도로는 이 2020년대까지도 구닥다리 도트 프린터가 현역이다. 도트가 이 분야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수단이다.
통장의 빈 여백에다가 incremental하게 줄 단위로 찌익찌익 뭔가를 추가로 찍어 주는 일을.. 무슨 잉크젯이나 레이저 프린터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는 영수증이나 명세표를 출력하는 걸 여전히 도트 프린터가 담당했었다. 하지만 가게 POS기에서 영수증이 '찌익찌익' 소리 내면서 출력되는 걸 마지막으로 본 게 다들 언제이신가? 깜빡거리며 켜지는 형광등과 비슷한 시기에 다들 퇴출됐지 싶다.

군대에서 울퉁불퉁 흔들리는 전차 안에서 뭔가를 인쇄해야 할 때 러기드 장비로서 충격식 도트 프린터가 쓰인다고는 하는데.. 그 정도로 특수한 거 말고 일반인이 도트 프린터와 그 특유의 180dpi 저해상도 한글 폰트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마지노 선은 정말 은행 통장뿐인 것 같다.

3.
오늘날 현대인들이 누리는 전자 금융을 가능하게 한 주역은.. 지금도 수많은 암호화 트랜잭션들을 거뜬히 소화하고 계시는 메인프레임 컴퓨터들이다.
메인프레임은 입출력 대역폭이 매우 크며, 수많은 작은 작업들을 동시에, 중단 없이 처리하는 것에 최적화돼 있다. 렌더링이나 시뮬레이션을 위해 오로지 대용량 병렬 연산에만 최적화돼 있는 슈퍼컴퓨터하고는 설계 이념이 미묘하게 다르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IBM이라는 공룡 기업이 있는데도 과거엔 CRAY처럼 슈퍼컴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기업이 또 존재했던 것이다. (IBM System/360  vs CDC 3600처럼)

메인프레임은 모바일은 말할 것도 없고 PC나 슈퍼컴과도 다른 수요가 있는 시장이다. 예나 지금이나 IBM이 전용 아키텍처 설계하고 칩 만들고 전용 컴퓨터에 전용 운영체제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즉, 일반 유저들이 실감을 못 할 뿐, 저 분야에서는 IBM이 일종의 애플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랬는데 IBM은 PC를 과소평가 했다가 마소와 인텔에게 자리를 빼앗겼고, 쟤들은 또 모바일을 과소평가 했다가 구글· 애플이나 ARM에게 자리를 빼앗겨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저런 메인프레임은 구닥다리 COBOL 프로그램들이 현역으로 돌아가는 주 무대이기도 하다. ㄲㄲㄲ 반세기 전에 Y2K 문제를 일으키면 어쩌나 제일 우려의 대상이었던 분야가 바로 이런 쪽이었다.

COBOL은 코드가 영어 문장과 비슷하게 돼 있고, 인라인 어셈블리나 포인터 따위 없는 아주 쌈박한 고급 언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얘는 인터프리터나 가상머신 바이트코드 언어는 아니고, 네이티브 코드로 컴파일되는 언어이다.

오늘날 COBOL 같은 언어가 새로 개발됐다면 당연히 저런 식으로 구현됐겠지만 COBOL은 가상머신 바이트코드 같은 개념이 아직은 너무 사치스럽고 급진적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옛날 언어이다. 그래서 저렇게 됐다. 비슷한 시대의 레거시 언어인 FORTRAN도 비슷한 처지와 위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6/02/10 08:35 2026/02/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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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이제 애호박, 단호박, 늙은호박 이 셋은 항상 있으나, 그 중에 제일은 늙은호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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