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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와 '감사하다'

영어의 '땡큐', 중국어의 '씨에 셰', 일본어의 '아리가토', 독일어의 '당케' 에 해당하는 한국어는 아쉽게도 딱 하나로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사과하는 표현으로 '미안'과 '죄송'이 공존하듯이 '고맙습니다'라는 순우리말과 '감사합니다'라는 한자어 계열이 공존하는데, 인간의 자연어라는 건 “그럼 이 둘을 마음대로 섞어 쓰면 된다는 뜻이에요?”를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은 미묘한 상황 차이에 따라 둘의 용법이 구분되게 마련인데, 그 원칙이라는 게 엿장수 마음대로 식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미치고 펄쩍 뛰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은 엄밀한 방법이 아니라 그냥 말뭉치 기반으로 수학으로 치면 numerical하게 해를 구할 수밖에 ㄲㄲㄲ

그럼 '고맙다'와 '감사하다'에 대해서 살펴보자.
'고맙다'는 be grateful/thankful에 가까운 형용사이다.
'감사하다'는 give thank, 또는 그냥 thank, 다시 말해 '고마워하다'에 해당하는 동사이다.
"네가 고마워서 난 네게 감사한다" 정도 된다.

다시 말해 둘은 일단 품사가 서로 다른 단어이다.
비록 관용구 감탄사에 가까운 Thank you에 대한 번역이야 둘 다 가능하다 할지라도, 각 단어가 원래 완전한 문장에서 무엇이 생략된 형태인지 정도는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보통 '감사합니다'는 '고맙습니다'보다는 문어적이고 격식 있는 말투로 통용되는 것 같다. 마치 영어로도 Thank you so much가 very much보다는 여성적이고 구어적인 것처럼 말이다.
뭐 이런 것도 '한국에 만연한 토박이말 천시 풍조'의 일례이고 '감사'는 일본식 한자어라고 열폭하는 분이 있는데, 그렇게까지 피해 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뉴스 끝날 때나 교통수단 내부에서의 각종 안내방송 멘트를 들어 보면, 요즘은 오히려 '고맙습니다'가 더 즐겨 쓰이는 듯하기도 하다.

교회 예배의 대표 기도에서 자주 듣는 표현으로 “고맙고 감사하신 하나님”이 있다. 이건 제아무리 한자어가 토박이말보다 품위-_- 있고 고상한 표현이라고 해도 어법에 어긋난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지, 하나님이 또 무슨 대상으로부터 은혜라도 입어서 거기에다 감사한단 말인가? '고맙다'와 '감사하다'는 뉘앙스의 차이에 앞서 근본적으로 품사가 다른 단어임을 잊지 말자. 그냥 '고마우신 하나님', '한량없이 고마우신 하나님'이라고만 하면 된다.

'고맙다'는 마치 '좋다', '밉다', '무섭다'처럼 일종의 심리형용사의 기능을 한다.
'좋은 사람'은 그 사람이 좋다는 뜻이지만, “나는 그 사람이 좋다/싫다”고 하면 그 사람의 실제 성품과는 무관하게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느끼는 심리를 표현하는 말이 된다.
심리형용사는 1인칭이라는 주어 선택 제약이 존재하며, 영어로 정확하게 번역되지도 않는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싫어한다”처럼 동사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마운 사람', '나는 그가 참 고맙다'도 그와 동일한 맥락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고맙다'는 골수 왕자병이 아닌 이상, 나 자신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 형용사이다. “세상에 나보다 더 겸손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_-;;; 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쓰임이 딱 정해져 있다 보니, 어법상으로는 남이 고마운 게 아니라 내가 고마운 존재가 되는 식으로 좀 어정쩡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고맙다/감사하다가 뒤섞여서 자연어에서 통용되어 온 것 같다.

요약: 아무쪼록, 배은망덕은 어느 문화권을 가더라도 인간말종 천하의 개쌍놈짓으로 취급받는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자. 성경에서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는 thank for everything이 아니라, thank in/under everything이다. 무슨 로봇이나 변태처럼 “앗싸, 불행을 내려 주셔서 ㄱㅅㄱㅅ!”가 아니요, “그래도 내가 북한이나 소말리아 애들보다는 처지가 낫지” 식으로 남과 비교하는 바리새인 버전 감사도 아니다. 내가 지금 당장은 나쁜 여건에 처했지만 그 나쁜 여건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고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고서 낙담하고 좌절할 필요가 없으며, 그분이 나의 모든 것이니 ㄱㅅ라는 정말 수준 높은 감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12/18 19:26 2010/12/1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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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높임법

높임법은 한국어의 주된 특징인 한편으로 쓰임이 까다롭고 외국인에게 배우기 몹시 어려우며, 심지어 자국민끼리도 그 용법이 차츰 문란해지고 있는 존재이다.
높임법의 적용 여부와 그 수준을 결정하는 변수는 크게 다음과 같다.

나이: 한국 사회는 나이가 깡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회생활에서 일단 한 살이라도 차이가 나면 존댓말과 반말이 갈린다.
계급이나 어떤 조직 내에서의 짬: 이것도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다만 나이와 계급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친밀도: 존댓말을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을 높인다는 의도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당신과는 가까워지지 않고 그냥 사무적으로만 정중하게 대하겠다는 뉘앙스도 있다. 사회에서 만나는 선후배와는 달리, 친형제 사이엔 나이 차이가 나더라도 반말로 일관하는 것 역시, 이 친밀도와 관련이 있다 하겠다.

그런데 이 세 변수를 모두 고려하여 가장 적절한 solution을 찾는 게 상당히 어렵다!
닥치고 계급이 짱인 군대에서도 나이와 계급이 엇갈려서 생기는 웃지 못할 사례가 있다.
갓 임관한 소위가, 아버지뻘 나이인 행보관에게 “자네가 행보관이구만.” 운운하며 반말을 찍찍 쳐 갈겼다는 루머. ㄲㄲㄲㄲㄲㄲ
이건 장교라 할지라도 꼴통으로 찍히게 만들고 자기 남은 군 생활에 애로사항을 꽃피우는 무모한 짓이다.

이런 높임법과 관련하여 본인이 떠올리는 언어 현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게 있다.

1. “교장 선생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라는 멘트는 무려 중학교 국어 수업 시절부터 어법에 어긋난 표현이라고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그런데 요즘도 그런 잘못된 표현이 쓰이고 있나? 본인이 단언하건대 한국어에서 말씀이 ‘계실 수 있는’ 문맥은 요한복음 1:1 정도밖에 없다. ㅋㅋ

2. 그런데 요즘은 1번 정도는 약과. 각종 서비스 업종에서 직원들 교육을 대놓고 잘못 시키는 바람에, 더욱 듣기 민망한 잘못된 높임법이 범람하는 중이다.
“고객님, 지금 상담 요청 전화가 너무 많으시네요.”
“음악을 좋아한다는 건 아주 좋은 취미이십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제품이 고객보다 더 높다. 도대체 지금 누굴 높이고 있는 거야? ㄲㄲㄲㄲ ‘시’가 주체를 높이는 게 아니라 청자를 높이는 효과를 낼 거라고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저 불편한 멘트를 견디다 못해 본인의 학교 국문과의 모 학생은, 투철한 직업 정신을 발휘하여 고객 불만 사항에다가 잘못된 높임법을 신고까지 했다. ㄷㄷㄷ;; 그런데, 거기서 연락이 뭐라고 왔냐 하면, “고객님, 저희 직원이 실례를 범하셨다는 불만 사항이 잘 접수되셨습니다.” ㅠ.ㅠ
이 정도면 날 두 번 능멸한 거라고 그 친구는 쓴웃음을 지으며 회상하더라. ㅋㅋㅋㅋㅋ

3. 한국어 맞춤법의 복병은 단연 압존법이다.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는 할아버지가 아버지보다 더 높으므로 아버지를 반말로 표현하는 게 맞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또 문란해져서... 회사에서 대리가 “부장님, 김 과장은 외근 나갔습니다” 이러면 상사의 언어 감각에 따라서는 “넌 김 과장하고 친구 사이냐?” 이런 갈굼이 되돌아오기도 한다나? 본인은 병특 시절에 압존법을 적용 안 했다가 혼난 적은 있다(청자보다 낮은 직급인 사람을 언급하면서 높임법을 써서).

KBS 한국어 능력 시험 공부하면서도, 압존법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이거 정말 써도 문제이고 안 써도 문제이고..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난감한 경우인 것 같다.

4. 그나저나 본인은 아무런 높임도, 낮춤도 없이 간단하게 2인칭을 지칭할 수 있는 you가 한국어에 없는 것에 굉장한 불편을 느낀다. 그래서 특히 소프트웨어의 UI를 보면 you는 사용자, 회원님, 고객님으로 어정쩡하게 우회 번역되고, 바깥 사회에서는 선생님이나 사장님으로, 심지어 채팅 같은 곳에서는 그냥 ‘님’으로 바뀐다.

한자가 일본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만큼이나 본인은 저런 난잡한 용법도 한국어의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기계화와 정보화를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냥 간단하게 ‘당신’이라고 쓰자고 의식 전환 운동이라도 벌이면 안 될까? 웬 3인칭 ‘당신’은 잘 쓰지도 않는데 그냥 없애 버리고 말이다!
하나님까지 대놓고 you라고 일컫는 것까지는 무리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거야말로 번역투랍시고 대안도 없이 배척만 하지 말고 한국어가 받아들여야 할 면모가 아닐까 한다.

C++에서 전처리기, 다중 상속 같은 거 뚝뚝 떼어 내고, 가비지 컬렉터 넣고, CFG 문법 체계로 개편하여 더 세련된 D나 C# 같은 언어를 만들듯, 한국어도 그렇게 좀 개조를 하고 싶다.
혼잡한 언어를 숙청하려면 강력한 독재 권력이 필요함을 또 다시 느낀다. 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0/11/20 09:19 2010/11/2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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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썰렁 개그

1.
"Coffee or tea?"라는 질문에 고객이 대답한다. "OR!"
이건 최 불암 시리즈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일화이다.
OR도 커피나 차처럼 아이템 중의 하나라면, 단어를 발음하는 억양부터가 다를 텐데 최 불암이 그걸 인지하지 못한 건 아쉽다. ㅋㅋㅋㅋ

2.
"How would you like your steak, sir?" (고객님, 스테이크는 어떻게 해 드릴까요?)
요즘이야 한국에도 서양식 스테이크를 파는 패밀리 레스토랑 문화가 발달한지라, 이 질문이 Rare, medium, well-done 같은 익힘 등급을 묻는 것인 줄 다들 안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고, 문맥을 모르던 한국인이 아주 당당하게 "Large, please." (큰놈으로! / 많이 주셈)라고 응답하여 웨이터를 폭소하게 만들기도 했다.
본인도 익힘 등급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 영어 회화 학원에서 처음으로 배웠다.

3.
"도대체 Any라는 키가 어디 있지?" (Press any key -_-)는 영어권에서 정말 그럴싸한 개그인가 보다. 심지어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의 테란 캠페인 대사에도 등장한다.
한국어는 그럴 수가 없는 게, '를'이던 목적격 조사가 '나'로 바뀌는 덕분에 any가 Any라는 키가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아무 키'라는 뜻을 더욱 분명히 해 준다.

요즘은 응용 프로그램의 인터페이스가 바뀌어서 any key를 누를 일이 별로 없어진 것도 사실. GUI 환경에서 대화상자나 각종 에러 메시지 박스는 엔터나 ESC, space 같은 소수의 특정 키를 눌러야 없어지기 때문이다. Press any key는 다분이 도스 내지 command prompt 시절의 잔재이다.

4.
이건 영어 자체와 관련된 개그는 아니지만... 유명한 얘기이므로 소개한다.
1999년에 서강 대학교에서 있었던 실화라고 한다. 본인 역시 고등학교 시절에 PC 통신으로 처음으로 접했으니, 기억하는 분이 계실지도.

어느 영어 회화 수업에서 교수가 깜짝 테스트를 실시하면서, 상황 설정에 따른 영어 회화 실력으로 점수를 주고 그걸로 중간고사를 대체한다고 급선언.
"다음... 김 군하고 최 군이 나와서, 미국에서 있을 법한 상황에 대해 나름대로의 실력을 발휘해 보게. 김 군은 미국에 관광차 찾아간 한국인, 그리고 최 군은 미국에 사는 현지인. 자, 시작해 볼까? 제한 시간은 3분."

최 군과 김 군의 등은 이미 무너진 제방이었고, 머릿속에선 현기증마저 느낄 때, 김 군이 재치를 발휘했다.

김 군(한국인 관광객): Excuse me, can you speak Korean?
최 군(미국 현지인): Yes, I can.
김 군: 아 한국 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다....자유의 여신상 가려면 어떡해요?
최 군: 네, 저기서 녹색 버스 타구 4정거장 가서 내리세요...
김 군: 감사합니다.
최 군: 별 말씀을 ... 타국에서 모국인에게 그정도는 해야죠..안녕히 가세요.

교수: -.-;;; 미국에서 있을 수 있는 상황으로 인정한다.

강의실은 뒤집어졌고...
교수님은 앞으로 저 방식을 패러디하는 학생은 F에 처한다는 저작권 보호성 경고까지 덧붙였다.

그후, 최 군과 김 군은 A와 A+를 받았다는데...
성적이 다른 이유는 현지인의 한국어 실력이 이민자치고는 너무 능숙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함. ㄲㄲㄲㄲㄲㄲ

Posted by 사무엘

2010/11/01 13:29 2010/11/0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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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면서 든 생각

국어학이란 게 어떤 학문인지, 말뭉치(코퍼스) 연구라는 게 어떤 건지 슬슬 적응이 돼 간다. 또 여기가 사전 연구 전문이다 보니, 평소에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국어사전이라는 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심지어 예문은 어떻게 뽑고 예문에 들어가는 철수, 영희 같은 명칭은 어떤 원칙으로 뽑는지 같은 것도 세부 사항을 그쪽 일을 하는 친구들에게서 들으니 재미있다.
코퍼스는 한글 사용 빈도 파악과 글자판 연구에도 사용 가능할 듯?

1.
본인이 생각하는 사전 표제어 기록 (이의 제기 환영)

백과사전에서 풀이가 가장 긴 단어: 대한민국 (우리나라의 역사, 지리, 분야별 현황 등이 죄다 좌르륵~)
혹은 United States (위와 비슷한 이유로), human (인간의 모든 것 ㅋㅋㅋ)

한영사전이나 국어사전에서 풀이가 가장 긴 단어: 보다 (see, seem 등~~)
영한사전에서 풀이가 가장 긴 단어: have

2.
영어에 '모르다'를 뜻하는 한 단어짜리 동사가 없다는 건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다.
'-에 무지한' 정도에 해당하는 형용사는 있지만, "어서 불어 / 난 모른다!"를 깔끔하게 표현할 수 있는 한 단어는 없다. 기껏해야 do not know.
아마 영어는, 뭔가를 모른다는 건 마치 뭔가가 '없는 것'처럼 상태일 뿐이지 '알다'처럼 정식으로 동사가 될 자격은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다못해 forget도 아니고.. 한자에서도 '모를 X' 같은 글자는 본 기억이 없다.

사실, 영어에는 '없다'라는 깔끔한 단어도 없다. 그냥 없는 주체 앞에다가 no를 붙여서 There is no X 또는 No X exists 정도로 표현되는 게 고작. 그런데 반대로 한국어는 nothing이나 void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추상적인 명사 단어가 없다. 無는 접사에 더 가깝다.

3.
한국어에서 '뛰다'가 어째서 run도 의미하고 jump도 의미하는지는 오랫동안 본인의 의문점이었다.
마치 '푸르다'가 어째서 blue도 의미하고 green도 의미하는지 의아했던 것처럼 말이다.

단군의 후손들은 파랑과 초록도 구분 못 하는 색맹이었단 말인가? 어떻게 들판도 푸르고 하늘과 바다도 동시에 푸를 수가 있을까?
'푸르다'는 관용적으로 blue와 green을 싸잡아 일컬을 수 있게 놔 둔다 치더라도, '파랗다'는 blue로 완전히 굳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움직여도 되는 신호등 색깔은 파란불이 아니라 초록불이나 차라리 푸른불로 표현을 바꿔야 하지 않나 싶다.

어쨌든 '뛰다'도 그렇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단어이다. 물론, 달릴 때는 걸을 때와는 달리 두 다리가 동시에 공중에 떠 있는 타이밍이 있다. 그 점에서는 run이 jump와도 공통점을 지닌다.
이것도 '뛰다'는 무조건 jump로, run은 '달리다'로만 강제로 구별을 시켜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혼자 해 봤는데, 쉽지 않은 문제이다.
마치 '손뼉을 치다'와 '박수를 치다'는 뉘앙스가 서로 완전히 다른 단어인 것처럼, '달리다'가 어울리는 상황과 '뛰다'가 어울리는 상황이 좀 구분이 되는 것 같아서이다.

4.
결정적으로는,
"한 대 맞고 두 대 친다"
"햇볕도 안 들고 양지바른 곳"
"서양 갑옷이 묘하게 존재감 있는 이런 요가 교실은 싫어"

같은 명문장들에 대해서도 이건 부사어, 이건 관형어, 이건 서술절 등 문법 구조와 parse tree가 그려진다. 저런 대사가 예문으로 잔뜩 수록되어 있는 문법 책이 있다면, 저런 대사 패러디가 수록되어 있는 성경 만화만큼이나 행복할 것 같다. ㅋㅋㅋㅋㅋ

5.
우리말에서 '저지르다'는 뭔가 나쁜 일을 벌이고 사고를 친다는 뜻의 타동사이다. 저지른 대상을 목적으로 받는다.
영어로는 주로 commit에 대응한다. 다만, commit 자체는 '저지르다'보다 뜻이 훨씬 더 넓은 말이기 때문에 위임하는 것도 commit이고, 소스 코드를 저장소에다 반영하는 동작도 commit이라고 한다.

실수부터 시작해 살인, 간음, 반역, 폭력, -질, -짓, -죄, -악, 비리, 불효, 과오, 만행 등 거의 모든 나쁜 짓이 '저지르다'의 목적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자살'을 저질렀다고는 안 한다. 그냥 '자살'을 한다고만 하지. 정작 영어로는 정확하게 commit suicide라고 하는데도 한국어에는 그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표현이 없으니, 이는 특이한 면모가 아닐 수 없다. (뭐, 영어로도 suicide 자체만으로 '자살하다'라는 자동사가 될 수도 있긴 함)

내가 짐작하건대 한국어의 '저지르다'에는 "나쁜 짓을 하고도 당사자가 그 행위의 영향을 받지 않고 멀쩡하게 남아 있는 경우"라는 뉘앙스가 내포된 것 같다. 자살은 분명 나쁜 짓이지만, 당사자가 죽어 버린다는 점에서 다른 악행과는 차이가 있다.

6.
이 외에도, 한국어로는 컴퓨터 내지 인터넷에다가 바로 '하다'를 붙이지만, 영어는 do가 아닌 use가 쓰인다.
그러고 보니 한국어에는 운동 경기에다가도 '하다'를 붙이기 때문에 영어 직역투로 '축구를 논다' 이렇게 말하면 전형적인 번역투 비문이 된다. 실제로 한국어 배우는 영어권 사람이 초창기에 자주 저지르는 실수라고 함.
영어로는 산은 높다(high)고 표현하지만 건물은 마치 사람의 키처럼 tall이라고 표현한다.
open/close(열다, 닾다, 펴다, 덮다, 다물다, 감다...)라든가 wear(입다, 쓰다, 끼다, 신다...)의 표현 차이는 그야말로 판타지 수준.

같은 의미를 전달하더라도 단어와 단어가 결합하는 선호도는 언어에 따라 편차가 꽤 큼을 알 수 있다.
학부 시절엔 이런 생각은 혼자 머릿속에서나 해야 했는데, 여기 와서는 언어 현상에 대한 생각을 과 친구들이나 교수님과 마음껏 주고받을 수 있어서 참 좋다.
학부를 전산학 전공한 것도 후회 없고, 대학원으로 지금 과에 간 것도 잘 갔다.

Posted by 사무엘

2010/10/28 08:52 2010/10/2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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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문맥 의존성

1.
- 나는 네가 좋다.
- 라면은 삼양이 맛있다.

2.
- 나는 학생이다.
- 나는 자장면이다. (너는?)
- 물은 셀프이다. -_-;;

3.
- 영수는 철수도 못 이긴다.
- 철수는 영희도 못 이긴다. (누가 누구보다 힘이 세다는 건지?)

이런 예를 통해 알 수 있듯, 한국어는 정말로 문맥 의존적인 언어이다.
보조사 '는/은'은 주격 조사처럼도 쓰이고 목적격 조사처럼도 쓰인다. 그래서 3번 같은 모호성도 발생하게 된다.
보어도 주어와 동일한 '이/가' 주격 조사를 받는다는 것과, '와/과'가 and뿐만이 아니라 with로도 해석된다는 것도 난해한 점.

국어 문법 수업을 들으면, 국어 문법에 대해서 용법을 칼같이 정확하게 알게 되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증명을.. 듣는 게 아니라,
이런 건 학계에서도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고 답이 없고 100% 떨어지지 않는다는 식의 말만 주로 듣게 된다. ㅜ.ㅜ

결국 한국어는 형태론이나 통사론을 넘어서 화용론까지 가서 각 단어의 의미와 문맥을 파악하지 않으면
제대로 구문을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기계적인 형태소 분석으로는 대략 GG.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는 C/C++이 문맥 자유 문법이 아니라 문맥 의존 문법이어서 구문을 분석하기 다소 난해한 언어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AA bb(cc); 가 각 토큰의 의미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함수 선언도 되고 객체 선언도 되며, (A)+B에서 A가 typecasting도 되고 피연산자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영어로 치면 and, with, to 같은 전치사의 의미가 뒤에 받는 단어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의미가 뒤죽박죽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헐..
한글은 배우기 쉽고 기계화에 용이한 문자이다. 그러나 한국어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꽤 배우기 어렵고 의미를 분석하기 난해한 언어일 것 같다.

영어는 전에도 언급했듯이, 음운 체계와 어순이 완전 이질적인 것과 언문 일치가 막장이어서 처음에 철자법이 좀 까다로운 것만 빼면, 언어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언어가 아니다. 굴절도 다른 유럽 언어들만치 대책 없는 수준이 아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영어는 어떤 경우에도 모호성이 없고 만능이냐 하면 그런 것도 물론 아니지만..!
(영어의 전치사 용법도 요즘은 많이 문란해져 있긴 하다)

한국어의 문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영어 문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말:

1.
- 나는 철수를 만났다 / 나는 철수와 만났다
하나는 그냥 우연히 마주쳤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의도적으로 볼일이 있어서 약속을 잡고 만났다는 뉘앙스를 더 풍기게 되지만, 용법이 100%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다.

- 나는 연세대를 갔다 / 나는 연세대에 갔다
하나는 그냥 그 장소로 이동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이 학교에 입학했다는 뉘앙스를 더 풍기는 것 같다.

2.
"물은 셀프"를 콩글리시가 아닌 실제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하는지 아시는 분? ㄲㄲㄲㄲ
하긴, 미국은 사람이 서비스를 하는 업종을 이용할 땐 팁을 주는 게 당연시되고 있고 그게 아니면 주유조차도 운전자 자율 주유가 보편화해 있는 나라이다 보니, 저런 표현 자체가 문화 특성상 별로 필요하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리나라의 아파트나 고속도로와 100% 정확하게 대응하는 영어 표현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아울러 저런 문화적 차이 때문에, 미국은 긴 시간 동안 꼼꼼한 사람의 일대일 서비스가 필요한 이발/미용업의 이용료가 굉장히 비싸다고 들었다. 듣기로 성인 남자 기본컷이 20$가 넘는다고..;;

Posted by 사무엘

2010/10/05 10:59 2010/10/0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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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어와 영어가 서로 정반대인 관념 중에 대표적인 예로는 부정문에 대한 응답 방법이 있다.

"너 숙제 안 했지?"에 대한 대답이 한국어는 "아냐, 했단 말이야."인 반면, 영어로는 "Yes, I did"로 긍정 의문에 대한 대답과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관점에서는 거 참 희한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어에도 무조건 상대방의 말 자체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뜻하는 감탄사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Then Sarah denied, saying, I laughed not; for she was afraid. And he said, Nay; but thou didst laugh. (창 18:15) 안 웃었는데요. / 아냐, 너 아까 방금 분명히 웃었어.

킹 제임스 성경은 yes/no보다 yea/nay(예이/네이)가 훨씬 더 많이 쓰인다. 마 5:37의 "오직 너희 의사 표시는,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라."에서도 yea/nay이다.

2.
이에 덧붙여 또 중요한 차이로 '가다'와 '오다'가 있다.

"너 빨리 이리 와 봐."에 대한 대답으로 한국어는 "지금 가는 중이야"인 반면, 영어로는 "I'm coming"이다.
영어는 남이 내게 come이라고 지시를 내렸으니, 나는 거기에 순응하여 그에게 come한다고 기계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한국어의 '오다'는 오로지 나에게, 화자에게 상대방이 움직여 가까이 간다는 뜻이다. '오다'의 주체가 '나'가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come이 성경 번역에서도 굉장히 어려운 요인 중 하나가 된다. 문자 그대로 죄다 '오다'라고 번역하면 우리말 어법에 어긋나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같은 영어 성경 중에서도 킹 제임스 성경은 come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걸 go나 enter로 바꿔 버린 경우가 적지 않다.

3.
이렇게 단어 자체에 '나'라는 객체가 수반된 비슷한 예로는 불완전 동사인 '달다'가 있다.
sweet나 equip 말고 give이다. '다오', '달라', '도(사투리-_-)'로만 활용되는 그 이상한 단어 말이다.
불완전 동사가 '가로다', '더불다', '달다', '데리다' 말고 또 뭐가 있더라?
이 '달다'는 '주다'와 의미상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남으로 하여금 특별히 '나에게' 뭔가를 주기를 원한다는 아주 이기적인 뉘앙스로 쓰인다. '주다'라고만 하면 내가 남에게 베푸는 뉘앙스가 풍기지 않는가?

"저 사람에게 빵을 다오"라고 하면 뭔가 이상하고 어색하다. "저 사람에게 빵을 주게/주시오/주세요"라고 하거나 아니면 "내게 빵을 다오", "우리에게 빵을 달라"라고 해야 말이 된다.

흔히 한국어는 압존법이란 게 있을 정도로 최대한 청자 위주로 언어가 구성돼 있다고들 한다..
내가 언급하는 사람이 나보다 높더라도, 청자보다는 낮은 사람이라면 반말이 허용된다.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오십니다"가 아니라, "할아버지, 아버지가 옵니다"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오다-가다'의 관계를 살펴보면, 한국어도 청자가 아닌 나 위주, 화자 위주의 사고방식이 배인 것도 분명 있다. 그래서 '달다' 같은 단어도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친분 사이가 아닌 공식 석상에서는 압존법이 꼭 적용되는 것도 아니라는데? KBS 한국어 능력 시험 공부하면서 교재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있다. 가령, 할아버지/아버지가 아니라 사장/과장이라거나(자기는 대리-_-) 할 때 말이다. 이래서 한국어는 어렵다. -_-;;

끝으로, 성경 번역에서 유명한 토착화 표현을 덧붙이며 글을 맺는다.

(1) "누가 너를 데리고 오 리를 끌고 가면 십 리를 가 주어라"(마 5:41)가 영어로 원래 무엇인지가 아는가? 1 mile과 2 miles이다. 5리(약 2km)가 1 마일(약 1.6km)보다는 약간 더 긴 거리이다. ^^;;
(2) "장가 가고 시집 가기"는 영어로는 "결혼하거나 혼인 당하거나"(marry / be given in marriage / be married to)가 된다. -_-;; 성경에서 여자가 시집 가는 건 언제나 marry의 수동태로 표현되어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10/08/10 08:37 2010/08/1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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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의 발음

본인은 ‘효과’(effect)를 ‘효꽈’가 아닌 글자 그대로 발음하는 것을 반대한다. TV에서 방송인들이 애써 ‘효과적으로’--아나운서랍시고 교육을 그렇게 받았을 테니--라고 말하는 걸 듣노라면 너무 어색하다.

마치 ‘김밥’하고 비슷한 예인 것 같다.
저걸 글자 그대로 발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부 한결같이 ‘김빱’이라고 읽는다.
왜냐고 물으면 답이 없다. ‘비빔밥’, ‘볶음밥’, ‘곰국’, ‘짜장밥’ 같은 비슷한 예와 비교해 봐도 본인의 국어 실력으로는 원칙 내지 알고리즘을 못 찾겠다.

원칙을 못 찾겠다는 말은, “이렇게 발음해야 한다”라든가 “저렇게 발음해서는 안 된다”는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는 뜻. 이렇게 그냥 정하기 나름인 규칙에 대해서는 그냥 둘 다 허용하거나, 많이 쓰이는 편을 들어 주는 게 맞다. 마치 ‘짜장면’처럼 말이다.

그럼, ‘효과’라는 단어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말에서 ‘과’가 ‘꽈’로 변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 소리나는 경우는 가장 먼저 and를 뜻하는 조사일 때이다. 이때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절대로 경음화하지 않는다. 무성음 받침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일어나는 경음화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리고 한자어의 경우, 먹는 음식을 뜻하는 果 내지 菓(과자)일 때도 변하지 않는다. 수정과, 한과, 유과 등.
그 반면, 부서나 학문 단위를 뜻하는 科나 課는 반드시 변한다. 심지어 단독으로 등장할 때도 경음화한다. 대학교 용어인 ‘과대’(과 대표), ‘과사’(학과 사무실)에서 과는 100% 꽈로 바뀐단 말이다.

또한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라 일의 결과를 뜻하는 비유적 의미의 果도 경음화하는 경향이 있다. 비록 결과라는 단어 자체는 ‘결꽈’가 되지 않지만 성과는 ‘성꽈’로 바뀐다. 본인은 효과가 ‘효꽈’로 바뀌는 것도 성과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며, 동음이의어 식별을 위해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무리하게 글자 그대로 읽는 걸 반대한다.

본인이 논리 전개 과정에서 넘겨 짚은 게 있으면, 국어 고수들로부터 지적를 환영하는 바이다.

Posted by 사무엘

2010/07/12 17:53 2010/07/1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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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낚시 영단어

- infinite
수학에서 유한, 무한 같은 건 서로 중요하게 구분되는 개념이다.
본인의 대학 시절엔 infinite를 일일이 '인 파이나이트'라고 읽으시던 이산수학 교수님 강의를 재미있게 들은 기억이 있다. 일본식 발음 같은 느낌이 들었다. energy -> 에네르기, berserk ->  베르세르크처럼. ^^;;;
finite(유한한)는 '파이나이트'이다. 하지만 반의어인 infinite(무한한)는 '인피니트'이다. 접두사 in-의 영향을 받아 장모음 i(아이)가 단모음 i(이)로 축약되기 때문이다.
 
- anxiety
마치 Y가 반자음도 되고 일반 모음도 되는 것처럼, 영어 알파벳에서 X는 카멜레온 같은 면모가 있는 글자이다.
대부분, 특히 음절의 끝에서는 box처럼 [ks](크쓰)로 소리나는 반면
아주 제한적으로 [z] 소리가 나는 경우가 있다. xylophone 처럼 이런 예는 굉장히 드물다.
 
그래서 아주 웃긴 단어가 있다. anxious(불안해하는)는 '앵크셔스'[ks]이다. 그러나 명사형인 anxiety는 '앵자이어티'[z]가 된다!
본인의 고등학교 시절에, 영어 시간에 실수를 한번 저질러서 "환상의 본토 발음 앵크셔티"가 별명이 되어 버린 친구가 있었다.
 
- sword
옛날에 영화 제목으로 '스워드'가 당당하게 진열된 적이 있었다.
비슷한 철자인 sworm은 '스웜'이다. 그러나 sword는 '스워드'가 전혀 아니며, '소오드'에 가깝다. W는 전혀 발음되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무시하고 sord를 읽듯이 읽어야 한다.
 
그러나 어찌하리, 한글로 표기하면 '소드'보다 '스워드'가 훨씬 더 간지(?)가 나 보이는 것을!
게다가 우리는 영어 발음을 한글로 적을 때 장모음 내지 모음 R(혀 굴리는) 표기도 귀찮아서 다 생략하고 지내기 때문에, '소드'라고만 적으면 꼭 sod 같은 단모음 단어처럼 뉘앙스가 아주 가벼워 보이게 된다.
 
이 외에, 같은 단어가 명사일 때와 동사일 때 발음과 심지어 강세 위치가 싹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 present 프"레"즌트, 프리"젠"
- object "아"브직트, 오브"젝"
 
이건 마치 한국어에서 이런 경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type
- 타입: 유형, 스타일
- 타이프: 인쇄 활자 관련 (타이프라이터)
 
dot
- 도트: 말 그대로 점 내지 픽셀. (도트 프린터, 도트 노가다)
- 닷: 인터넷 관련-_-;; (닷넷, 닷컴기업)
 
그러고 보니..
do, come, go, have
영어의 근간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필수 기초 동사들이... 3인칭 단수 변형이나 과거/과거분사가 다 제각기 굉장히 불규칙스럽다는 것도 꽤 흥미로운 사실이다.
 
do는 O 주제에 O 소리가 전혀 나지 않고, does, done 같은 변형에서만 O 소리가 실현된다. do에서 유래된 유닉스 명령어인 sudo는 영락없이 '수도'처럼 보인다.
have는 '헤이브'가 아니며, come도 철자로부터 느껴지는 뉘앙스와는 전혀 다른 단모음 소리 때문에, 본인은 어렸을 때 현재진행형을 comming으로 자주 잘못 적기도 했다. 현재형과 과거분사가 일치하는 A-B-A형 불규칙.
 
현대 영어의 3인칭 단수형인 comes는 '컴즈'이고 음절이 추가되지 않는 반면, 킹 제임스 성경의 3인칭 단수형인 cometh는 '커메쓰'라고 음절이 추가되어 발음된다.
do는 더욱 흥미로워서 킹 제임스 성경에는 doth와 doeth가 모두 존재한다. 전자의 발음은 '더쓰'이지만, 후자는 모음이 추가되어 '두이쓰'가 된다. 즉, 현대 영어의 does  '더즈'와 더 비슷하게 발음되는 단어는 doeth가 아닌 doth인 것이다.

그래도 영어 정도의 불규칙과 굴절은 다른 유럽 언어에 비하면 양반이라 함. 프랑스나 독일어는...;; 그나마 영어가 세계 국제어가 된 것에 감사해야 할 판이다. 영어는 국제어로서 손색이 없는 풍부한 어휘, 그리고 매우 작은 문자 집합(A~Z까지 겨우 26자)가 큰 장점이다. 영어의 지위는, 20세기가 다 돼서야 주시경 같은 학자에 의해서 맞춤법이 정립되고 국어사전이란 게 최초로 출간된 지 한 세기도 안 된 한국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어는 언문일치에 관한 한은 답이 없는 언어이다. 알파벳이 나름 소리글자라지만 모음이 너무 부족하고, 또 알파벳만 쓸 뿐 표기가 제각각인 언어로부터 어휘가 워낙 많이 유입되다 보니, 철자하고 발음과의 일치는 애시당초 글러먹고 언문일치는 안드로메다로 갔다. 그렇게 언문 불일치로 인한 연상 거부가 너무 심해서 난독증이라는 일종의 지적 장애 환자까지 있다고 들었다. (독해력이 딸리는 인터넷 전투종족인 게시판 트롤의 난독증과는 다른 개념 ^^;;)

Posted by 사무엘

2010/07/12 08:21 2010/07/1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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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의 언어

http://blog.naver.com/tjddodudn/40091601772

"나의 샤아카짱은 이렇지 않다능! 나의 샤아카짱은 남편이 오면 상냥하게 웃으며 맞이해 주더라는!"
현 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일본에게 물질적· 정치적으로 지배 당하던 20세기 김 첨지가
일본에게 문화· 정신적으로 지배 당하는 21세기 오타쿠로 변모한 순간이다.
좀 오래 된 만화이긴 하지만 작가의 기발함에 정말 빵터졌다. ㅋㅋㅋㅋㅋ

'축제'는 일본식 한자어이고 불필요하게 '의'(の) 남발하는 것도 일본어 번역투이고..
본인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지식을 적지 않게 접해 왔지만, '오타쿠 말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전혀 듣지 못했다.
개나 소나 '-군', '-짱' 붙이고 "-하더라는!"이라고 끝나는 말투는 도대체 어디서 유래된 걸까? 이거 완전 오타쿠의 상징이 된 문체인데, 일본어에 저런 표현이 있나? =_=;;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본인은 그게 무척 궁금하다.

그런데, 아동 문학가이자 국어 순화 운동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특히 일본어 번역투 추방의 최전방에 계셨던 어떤 어르신의 성함이 '이 오덕'이었으니! ㅎㄷㄷㄷㄷㄷㄷ ㅠ.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은지? (2003년에 고인이 되신 분이다.)
자기 주장을 워낙 많은 곳에다 뿌렸었기 때문에 본인은 어렸을 때부터 저분 글을 중학교 방학책에서도 보고, 새마을호 기내지 레일로드에서도 보고 지냈다.

본인에게 오타쿠라고 하면, 뚱하고 못생긴 외모에 일본어만 겁나게 잘 하고, 주변의 이성으로부터는 전혀 감흥을 못 느끼는 반면 맨날 자그마한 모바일 기기로 일본 망가(manga)에 나오는 미소녀-_-들 보면서 하악하악 모에 하는 폐인이 바로 떠오른다. -_-;; 거기서 좀더 중증으로 도지면 미소녀 인형에다 코스프레까지 구해 입고...
그런데 우리나라에 실제로 저 정도인 친구가 있나? 오타쿠에 대해서도 이미지가 상당수는 희화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TV 드라마에서 사투리 쓰는 사람은 꼭 흑인만큼이나 못 배운 하류층 이미지로 설정되는 것처럼 말이다.

차라리 철도 덕후야 실존한다.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이 블로그의 주인장부터가 자타가 공인하는 골수 철도 덕후 말기이다. 하지만 일본 문물에는 별 관심이 없다. 딱 하나 개그만화만 빼면 말이다. ㅋㅋㅋㅋ
처음에는 1기 4화 종말편을 보면서 "뭐야 완전 또라이 아냐 역시 쪽바리들 문화는 저질이야" 그렇게 넘어갔는데.. 자꾸 또 보게 되고.. 중독성 하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O<-<

끝으로, 이건 오타쿠 언어라기보다는 오역이나 초월 번역에 가까운 표현이다만, '크고 아름다운', '충공깽' 같은 표현도 배짼다. 요즘 철도역 플랫폼 상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크고 무거운 짐"이 있는 승객은 에스컬레이터 대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는 방송이 주기적으로 흘러나온다. 그런데 이게 환청처럼 "크고 아름다운 짐"으로 들릴 정도.. 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10/06/05 08:39 2010/06/0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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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지간하면 이제 좀 ‘짜장면’을 표준어로 삼자

‘짜장면’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근거가 뭔지 본인은 잘 알고 있다. ‘짜장’은 원래 중국어에서 유래된 외래어이고 우리말 맞춤법은 외래어 표기를 할 때 극히 일부 듣보잡 언어를 제외하면 된소리를 쓰지 않고 있는데, 된소리로 발음된다고 다 된소리를 써 버리면 버스도 뻐스로, 게임도 께임으로 바꿔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짜장이 버스나 게임 같은 급의 생소한 외래어라고 생각하는가? 짜장이 외래이어이면 빵, 가방, 담배, 구두 같은 단어도 몽땅 외래어이다.
물론 순우리말 ‘짜장’이라는 단어는 부사로, ‘참, 과연’.. 즉 영어로 치면 yea나 indeed 같은 뜻이 별도로 있긴 하다. 쉽게 말해서 창 3:1의 Yeah, hath God said를 “하나님께서 짜장 그렇게 말씀하시더냐?” 처럼 옮겨도 된다!
하지만 이제 그 짜장과 저 짜장은 한국어에서 동음이의어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이고 오히려 후자의 뜻이 훨씬 더 영향력이 있다. 게다가 짬짜면 같은 응용(?)까지 있다.

이제 와서 너무나 비현실적인 단어로 전락한 ‘자장면’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자장면에다가 외래어 표기법을 갖다 붙이는 건, ‘먹거리’라는 말이 조어법에 어긋난다거나 셈씨(數詞) 뒤에다가 님 붙인 형태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틀렸고 ‘하느님’이 맞다는 식의 비약인 것 같다. 고유명사를 만드는 건데 부르기 쉽고 최소한의 어원적 근거만 있으면 됐지, 그런 것 따질 필요까지는 없다.
(사실, 고유명사 중에 쌍용도 틀린 말이다. 청룡, 황룡 할 때처럼 쌍룡이 맞다. ^^ 하지만 고유명사인데 뭔들 어떠하겠는가. 오뚝이인들 어떻고 오뚜기인들 어떠하리?)

2. ‘석/서/세’, ‘넉/너/네’ 구분하지 말고 그냥 ‘세’, ‘네’로 통일하자

‘종이 세 장’이라는 표현은 틀렸다는 걸 아는가? ‘석 장’이라고 해야 맞다.
정말 아무 쓰잘데기 없고 의미 없는 구분이다. 괜히 사람 헷갈리게 만들고 한국어를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다. ‘서너’(3 or 4) 같은 예외만 인정하고, 뒤에 단위(말, 개, 장 등등)에 따라 숫자의 표현이 바뀌는 일이 없게 하는 게 더 낫겠다.

3. ‘째’와 ‘번째’ 좀 구분해서 쓰자

‘째’는 영어로 치면 정확하게 n-th(순위, 서열)에 대응하며 (첫째, 둘째, ..., 열한째, 열두째),
‘번째’는 n-th time(반복되는 일의 횟수)에 대응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즉, 쓰임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 이 선수가 둘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2등)
- 이 선수가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두 바퀴째)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쓰임이 굉장히 문란해져서 둘 다 무조건 ‘번째’가 쓰이며, 순위인지 횟수인지는 그냥 문맥으로 대충 구분되는 중이다. ^^;;;; '째'는 명사형으로 "첫째(아이)를 낳았다" 정도에서나 쓰는 것 같다.

4. ‘기존’을 제발 오· 남용하지 말자

이 단어의 쓰임을 완전히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은 곳은 본인이 보기에 IT계이다. 하도 새로운 기술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다 보니 자꾸 옛날 것과 비교를 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기존’은 말 그대로 ‘이미 존재하는’이란 뜻이다. ‘현존’이나 ‘실존’처럼 ‘하다’를 붙여 용언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기존이 ‘이전’, ‘예전’ 같은 뜻으로 막 남발되고 있고, 오히려 ‘기존하다’라고 용언으로는 거의 안 쓴다. “기존에 있던 것은 버리세요” ㅋㅋㅋㅋ 기존이 무슨 뜻인지 안다면 저 문장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 수 있다.

5. ‘커녕’은 조사(토씨)이다

커녕은 ‘도’, ‘조차’와 동일한 조사이다. “사람커녕 쥐새끼 한 마리 없다”라고 해도 원래 맞다. 커녕을 강조하기 위해서 쓰이는 표현이 ‘는(은)커녕’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사람은 커녕 쥐새끼 한 마리 없다”라고 커녕을 거의 부사처럼 띄어서 써 주고 있다. ^^;;

6. ‘다르다’와 ‘틀리다’를 제발 구분해서 쓰자

“ ‘다르다’는 ‘틀리다’와는 의미와 쓰임이 다른 단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르다’라고 써야 할 곳에 ‘틀리다’라고 쓰는 것은 틀립니다/틀렸습니다.”

‘틀리다’는 보통 ‘틀렸습니다’라고 과거형으로 많이 쓰이다 보니, 현재형에다가 ‘다르다’라는 의미가 자꾸 들어가려는 모양이다.

7.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은 ‘더 이상’도 ‘덜 이하’가 잘못된 것만큼이나 아주 잘못된 표현이다. 김 화백의 유명한 만화 대사이기 때문에 원문 그대로 인용할 뿐, 본인 역시 내가 직접 쓰는 글에는 ‘더 이상’이라는 말을 절대 쓰지 않는다. ‘더는’, ‘더’, 또는 하다못해 ‘그 이상’라고 써야 맞다.

8. ‘김밥’의 표준 발음은 ‘김빱’이 아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할 것이다. 본인도 지금까지 김밥을 ‘김밥’이라고 그대로 발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곰국, 비빔밥은 다 국과 밥이 된소리로 변하는 반면 짜장밥, 보리밥, 볶음밥은 예사소리 그대로이다. 곰국이 곰고기로 만든 음식이 아니듯이, 재료가 아니라 조리 방법을 나타내는 단어는 된소리이고 단순 재료 합성일 때는 예사소리인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비빔밥과 볶음밥의 관계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볶음밥은 단순히 둘째 음절이 '끔' 된소리여서 셋째 음절이 예사소리로 유지된 것일 뿐이다.

즉, 된소리로 바뀌는 건 거의 랜덤인 듯하다. 이러면 사람들에게 왜 굳이 김빱이 아니라 김밥이라고 발음해야만 하는지를 설득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하나 덧붙이자면 햇님도 잘못된 말이고 해님이 맞다. 우리말에서 사이시옷은 정말 울트라 캡숑 어려운 개념이며, 단어 구분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주범이다.

9. ‘쩜’과 ‘짜’

이미 국어에서 별도의 변별 요소로 널리 쓰이고 있는 ‘짜’(특정 글자를 강조하는 접미사)와 ‘쩜’(소수점의 명칭)이 별도의 표기로 필요하다고 생각함. ‘자’는 단어의 끝에 등장하면 字보다는 者의 의미로 훨씬 더 강하게 쓰이며, ‘점’은 point보다는 score의 의미로 더 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서 님짜는 존칭을 나타내는 접미사라기보다는 완전한 단어의 일부입니다.”
“저희 어머니의 성함은 김 순짜 애짜입니다.”
“저 선수의 점수는 이십오쩜 오점입니다.”

10. ‘여덟’

8을 뜻하는 ‘여덟’은 먼 미래엔 아예 ‘여덜’로 철자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열에 여덟은” 할 때 ‘여덜븐’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있는가? 비슷한 예로 ‘돐’이라는 단어가 맞춤법이 바뀌는 과정에서 아예 ‘돌’로 퇴화가 확정된 적이 과거에 있었다.

북한에서 인명의 ‘희’를 아예 ‘히’로 바꿔 버렸듯이 말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의’를 제외하면 ㅢ를 ㅡ+ㅣ로 발음하는 경우 자체가 사실상 사라졌다. ‘띄어쓰기’만 해도 그렇다.

Posted by 사무엘

2010/05/18 07:25 2010/05/18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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