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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는... 하버드 나와서 겨우 교수나 변호사나 대기업 사원이나 쳐 하며 썩기에는 너무 똑똑하고 똘끼 넘치던 젊은 컴덕 악동 몇 명이 1975년에 설립한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이다.
마소는 처음에는 대기업 하드웨어에 같이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납품하며 근근이 먹고 살았다. 그러나 결국은 전세계 PC에서 운영체제와 오피스 소프트웨어를 평정해 버렸다. 자기 소프트웨어 단독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시절에 컴터 프로그래밍은 16비트 x86 어셈블리 프로그래밍이 필수였다. 어셈블리어를 읽을 뿐만 아니라 직접 짤 수도 있어야 했다~! 하드웨어를 직접 제어하고, 귀한 메모리를 1바이트라도 아끼고, CPU 클럭을 1사이클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설립자인 빌 게이츠 자신이 베이식 인터프리터.. 일종의 가상 머신을 어셈블리어로 처음부터 끝까지 몽땅 아니면 대부분을 직접 코딩했었다. 수식 파싱, 메모리 관리, 각종 기하와 수학 알고리즘까지 전공 서적 찾아가면서 직접..

그는 천재 괴짜에 엄청난 워커홀릭이었다. (뭐, 컴터 업계에 빌만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그래서 결혼도 나이 40이 다 돼서야 했다. 물론, 억만장자 갑부가 됐으니 나이 따위는 결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처지였다. 결혼식 때 호텔 하나를 통째로 전세 냈다.

그는 자기부터가 그런 기질이니, 초창기엔 부하 직원들도 왕창 쪼고 갈구고, 작업 결과물에 헛점이 보이면 고함 지르고 쌍욕 퍼부으면서 개X랄을 떨었던 걸로 악명 높았다. 경쟁사의 잡스만 성질이 더러운 게 아니었다.
그런 데다 빌은 회장 대표이사라면서 거의 말단 직원의 직속상사 급으로 부하들의 업무 디테일을 다 꿰뚫고 있는 괴수였다. 이 사람의 손바닥을 빠져나갈 방법은 전혀 없었다.

전직 마소 출신 직원이 지은 “조엘 온 소프트웨어”라는 책에 1990년대 초의 일화가 짤막하게 소개돼 있다.
직원들이 “이 양반.. 나이 30 중반이 되고 나니 그래도 갈굴 때 쌍욕(F***)이 좀 줄어들었네..”라고 회장 뒷담화를 한 것 말이다. ㄲㄲㄲㄲㄲ

Windows 3.0이 대성공을 거둬서 마소가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해지고 Windows NT에다 COM/OLE이라는 걸 처음 만들 때.. 더 나아가서 ActiveX라는 컴포넌트까지 만들던 90년대 초-중반이 마소의 입장에서는 기술적인 중흥기 리즈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빌 회장님의 애환이 깃든 Visual Basic 자체를 COM 기반으로 완전히 싹 다시 만들고(버전 4).. 얘는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토종 마소스러운 기술인 것 같다. 후대의 .NET이야 볼랜드 출신의 그 엔지니어의 입김이 많이 들어갔겠지만 말이다.

이렇듯, 빌 게이츠는 엔지니어와 사업가 자질이 둘 다 두루 탁월했던 사람이다. 그는 컴퓨터를 그냥 오덕질이나 자아실현, 그냥 극한 시험용으로 쓰는 게 아니라, 이걸 전세계 남녀노소의 모든 민간인들에게 팔아먹고 그 짓을 하기 위한 보편적인 소프트웨어를 만들 생각을 했다.
소수의 빠, 매니아 위주로 신비주의 마케팅을 했던 애플 진영과 대비되는 면모이다. 그렇기 때문에 빌은 잡스와 달리 그냥 장사꾼 같지, 무슨 ‘교주’ 같은 인상은 별로 없다. -_-

빌은 장사꾼으로서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고 오픈소스 진영과는 적대적이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스팸 메일을 특별히 싫어해서 이런 거 거르는 솔루션의 개발에 몸소 친히 관여하기도 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저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팸 메일을 왕창 많이 받습니다. 저보고 부자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느니, 대출 많이 쉽게 받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거예요. 웃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ㄲㄲㄲㄲㄲㄲㄲ

빌 휘하에서 마소는 생존과 성장을 위해 대기업 IBM을 통수 쳤고 애플과도 으르렁댔으며, 여러 경쟁업체들을 로비와 독점으로 비열하게 고사시킨 이력이 있다. -_-;; IE 브라우저 독점뿐만 아니라 도스 시절에 Stacker사 Double space 저작권 침해 사건을 기억하는 분이 있으면 완전 아재일 테고.. ^^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마소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근무 성적 하위 5%인 직원은 꾸준히 짤랐다고 전해진다. 빌뿐만 아니라 사장인 스티브 발머도 엘리트 출신에 완전 “오로지 1등”주의였다고 한다. 꽤 살벌한 기업이었다.

그래서 “마소 직원들은 애플이나 구글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사내 팀과 경쟁한다” 이런 말이 있었을 정도래나.. 이거 무슨 일본군 육군과 해군의 대립도 아니고.
안에서는 직원을 왕창 갈아넣고, 대외적으로는 저런 짓을 한 것이다. 그게 과거 마소의 놀라운 성장 비결이었다.

아~~ 그래서 그 시절에 Windows 9x와 NT 간에 API가 따로 놀기도 했었고, 한동안 오피스 팀이 파일 열기 대화상자를 Windows 것을 안 쓰고 따로 만들었고.. C 런타임 라이브러리도 Windows 팀과 Visual C++ 팀이 연계가 안 돼서 따로 놀고 그랬구나..!! 싶다.

그랬는데.. 마소는 2000년대 중반부터 성장이 멈추고 몰락의 기미가 보였다.
Windows XP에서 Vista 사이에 이례적으로 시간을 오래 끌었고.. 심지어 IE (브라우저) 팀을 없애고 Windows 팀으로 합치려고도 했다. 그렇게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얘들은 모바일에는 완전히 적응을 못 하고 주류에서 밀려났다.

사실, 빌 아저씨도 선견지명이 없는 건 아니었다. 1990년대에 이미 "미래로 가는 길, information at your fingertip" 이라는 비전을 제시했었다.
단지, 그걸 인터넷이 아니라 MSN이라는 독자 독점 프로토콜의 네트워크로 실현하려 했을 뿐이다. 그 시도는 실패했다.

그리고 2010년대에 와서는 뒤늦게 Windows Phone/Mobile을 보급하려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노키아를 뒤늦게 인수해서 구글과 애플에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주변의 자기 직원조차 아이폰을 쓰고 있는 걸 보자 스티브 발머가 노발대발했었던 건 유명한 일화이다.
이런 뒤숭숭한 와중에 출시된 Windows 8은 괴작으로 시장에서 크게 실패했다. 2000년대에 Windows ME가 실패했던 것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실패했다.

이런 시기에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같은 “싸우자 독점하자 이기자” 1세대 경영진이 마소에서 완전히 물러났으며, ‘사티아 나델라’라는 인도 출신의 완전히 새로운 피가 들어왔다. 이를 계기로 오늘날의 마소는 과거의 마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기업으로 변화했다.
돈 안 되는 모바일 사업부는 포기하고, 영원한 원수 같던 오픈소스 진영을 포용하고, 마소가 Windows와 Office만 만드는 회사라는 편견을 깨뜨리려 하는가 보다.

다들 아시다시피 github를 인수하고 한때 빌도 하려 했지만 결렬됐던 id 소프트웨어를 인수하고(정확히는 그 모회사), 심지어 블리자드까지 인수하고.. 각종 옛날 자기네 제품들의 소스를 공개하고. 가히 놀랄 노 짜이다.
앞으로 마소에서 만든 소프트웨어에서도 About 대화상자나 도움말 acknowledge 같은 걸 살펴보면.. 사용된 오픈소스 목록이 쭈루룩~ 나오고 "LPGL 라이선스에 의거해서 우리 제품에서 변경한 소스 부분을 공개합니다"
이런 문구를 보는 날이 올지...?? 내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하다. ^^

대외적으로는 그렇고 사내에서도 “직장 동료는 그저 경쟁하고 싸우는 대상이 아니라, 다같이 발전시켜야 할 대상이다.. 많이 아는 게 아니라 많이 배우는 게 좋은 거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남의 성공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뭔가 주토피아 Try everything스러운 사고방식을 회사 차원에서 전파하는 중이라고 한다. 과거의 악랄· 사악했던 이미지를 벗으려고 많이 노력하는가 보다. (그래서 MSDN도 LEARN.microsoft.com으로 바뀐 듯..^^)

일단은 이게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중이며, 마소의 주가도 10년 전에 비해 크게 올랐다.
솔직히 Explorer 브라우저가 독점하던 시절이랑, 이제는 마소에서 자체 Edge 브라우저조차 포기하고 그냥 크롬과 동일한 엔진으로 갈아탄 현 시국은..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너무 다르다. 당연히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배고프던 시절에 빌이나 발머 같은 1세대 경영자들이 마음 독하게 먹고 지저분한 짓, 욕 먹을 짓을 감행하면서 당장 마르지 않는 돈줄을 확보해 놨기 때문에 후대 경영자가 좋은 여건에서 저렇게 상생 운운하면서 다음 전략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는 것도 감안할 점이다. 단지, 언제까지나 1세대 사고방식만 고수하면서 살 수는 없을 뿐이다.

과거에 마소의 킬러 앱들도 1.0 시절부터 100% 순수 오리지널 창작이었던 것은 극히 드물었다. 엑셀 스프레드시트 정도나?
MS-DOS야 CP/M에서 시작됐고 Visual C++의 먼 전신인 MS C는 Lattice C의 소스에서 시작됐으며, IE야 모자이크 브라우저가 원조이다만.. 그것들을 원본보다 크게 발전시킨 것도 능력이다.

뭐, 빌도 인간이다 보니 모든 미래 예상이 적중하지는 않았으며 실패도 했다. 그래도 회사를 말아먹을 정도로 큰 손해를 끼치지는 않을 만큼만 실패했다. 이 역시 옛 경영진의 탁월한 능력이었음이 사실이다. (빌 아저씨는 너무 사용자 친화적인 마케팅 요소에만 집착하다 보니 1990년대 중후반엔 Bob이라든가 Office 길잡이처럼 너무 깜찍한 흑역사;;를 만들었던 적도 있다. ㅎㅎ)

이렇게 시대가 바뀌고 경영진이 바뀌긴 했는데.. 그 뒤부터는 이젠 PC와 Windows가 예전 정도로 중요한 밥줄이 아니어서 그런지..
마소 제품들에서 2, 30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나사 빠진 듯한 버그들이 종종 눈에 띄는 중이다. -_- 이게 좀 새로운 부작용인 것 같다. "일단 만들어서 배포부터 한 뒤에 문제가 발견되면 나중에 패치하면 되지..." 이런 군기 빠진 마인드가 마소라고 해서 예외가 아닌 건지도 모르겠다.

※ 여담

(1) 이렇듯, 마소의 운영체제 독식과 브라우저 독식을 종식시킨 것은 스마트폰 모바일 환경, 그리고 오픈소스 진영의 약진이지 싶다. 2004년 파이어폭스, 2008년 크롬은 그야말로 컴퓨팅 환경의 물줄기를 바꿔 놓았다.

(2) 은행 공공기관에서 IE가 완전히 필요 없는 세상은 도래하긴 한 건가? activeX의 대체제인 exe 프로그램은 기술적으로 나은 게 없다고 한때 논란이 많았는데 말이다. 난 여전히 edge+ie 모드에 의존 중이다.
이런 보안 분야는 여전히 웹 표준이 100% 감당이 안 되는가 보다. 오히려 스마트폰 은행 앱은 이 기기를 다른 사람이 쓸 일이 없다고 가정을 해서 그런지 돈 보내는 절차가 더 간단하다.

(3) 1990년대 후반부터 Windows 9x가 완전히 명줄을 다하고 16비트/도스 시절이 완전히 종식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은.. 바로 RAM이다. 메모리가 엄청 용량이 늘고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win95 나오던 시절에만 해도 램 8~16MB 갖고 빌빌대던 게.. 겨우 98 때 갑자기 64~128MB로 뻥튀기 된 건 정말 경이로운 현상이다. PC의 발전사에서 클럭 속도뿐만 아니라 메모리의 증가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인텔뿐만 아니라 삼성 전자도 이 시기에 큰 혁신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4) 과거에 공룡 기업 IBM은 메인프레임 장사가 너무 잘 돼서 그런지 현실에 안주하는 편이었고, PC라고 불리는 개인용 컴터 시장에 대처를 제대로 못 했다. 덕분에 이쪽 주도권을 마소에게 빼앗겨 버렸다.
그런데 그로부터 20년쯤 뒤엔 공룡 기업 마소가 PC의 Windows와 Office에만 안주하다가 스마트폰 모바일 시장에 대처를 제대로 못 했다. 덕분에 그거 주도권은 안드로이드와 iOS 진영에게 완전히 빼앗겨 버렸다.
굉장히 비슷한 패턴의 역사가 반복된 것 같다.

(5) 그러고 보니 2010년대에 애플도 잡스가 죽으면서 최고 경영자가 바뀌었고, 야후에서는 잠시 새로운 여성 CEO가 들어왔다가 나가기도 했다. 그 뒤로 아이폰과 갤럭시 폰은 갈수록 서로 비슷해지며 수렴 진화 중이고, 야후는 여전히 비주류로 밀려난 듯하다.
마리사 메이어는 먹튀 논란이 있긴 했지만.. 그 당시 야후는 어떤 CEO가 들어가더라도 수습이 안 될 정도로 상태가 너무 안 좋기도 했다. 야후 코리아가 없어진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구나~!

Posted by 사무엘

2023/06/06 08:35 2023/06/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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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격세지감

요즘은 컴퓨팅 환경에서 웹과 모바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지다 보니..
맨날 컴퓨터를 끼고 살면서도 통상적인 드라이브 - 디렉터리 - 파일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고 그런다. 내 컴 하드의 Program Files 디렉터리 밑에다가 프로그램을 복사해 넣는다는 개념을 알지 못한다.

요즘 꼬마들이 전화기 픽토그램(☎)을 보고 이게 뭔지 이해를 못 한다거나, 플로피디스크를 보고는 저장 아이콘 3D 프린팅이라고 생각한다는데.. 그건 약과다.
얼라들이 아니라 이공계 석박사급 대학원생조차 그런 경우가 있다고 말이다. 물론 전공이 컴공이 아니고, 그저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모를 뿐이다. 머리는 다 갖춰져 있으니 조금 가르쳐 주면 금세 깨우친다.

지난 1980년대부터 컴퓨터라는 게 그저 정부 기관과 기업, 연구소에서나 사용하는 비싸고 귀한 물건에 머물지 않고, 개인별로 구비 가능한 업무 도구 내지 장난감 수준으로 대중화됐다.
8비트 시절엔 얘는 그냥 베이식 프로그래밍 환경 아니면 혼자 하는 게임기였다. 그러다가 16비트 시절엔 게임에 덧붙여 워드(아래아한글) 내지 PC 통신 단말기가 됐다.

이제는 인터넷 단말기 내지 온라인 게임기로 변모한 것 같다. 그 역할도 단순히 유튜브 보거나 음악 듣고 위키 읽고 은행 돈거래 하는 정도는 폰이 흡수해 버렸고, PC는 복잡한 키 조작이 필요한 업무나 게임 전담이다.
이런 와중에 파일 시스템이라는 걸 모르고 정보 저장 매체 실물이란 걸 모르는 세대도 등장했다는 게 참 흥미롭다. ㄲㄲㄲㄲ

2. 스마트폰이 PC와 다른 점

  • 노트북 PC보다 더 고도화된 첨단 배터리, 디스플레이, CPU 기술이 모두 융합한 덕분에야 탄생한 물건이다.
  • 1년 365일 24시간 내내 켜져 있고 사용자가 늘 갖고 다닌다. 카카오톡 메신저에 PC용 메신저처럼 이 사용자는 "오프라인, 바쁨, 부재" 이렇게 상태를 표시하는 기능이 없다는 걸 생각해 보자.
  • 냉각팬이 없다. PC와 완전 동급의 범용적인 컴퓨팅은 못 한다. 이 때문에 동영상 같은 것도 하드웨어 차원에서 특화된 전용 포맷만을 원활하게 재생할 수 있다.
  • 마우스 포인터 hovering이라는 인터페이스가 없다. PC에서는 아주 흔한 툴팁이라는 UI 요소가 있을 수 없다.
  • 프린터나 유선 랜과의 접점이 없다. 하물며 물리적인 보조 기억장치와는 더욱..
  • USIM이라고 붙박이 사용자 정보가 있다. 이거 덕분에 사용자 인증 절차가 PC에 비해 더 단순해질 수 있고, 모바일 뱅킹이 PC 인터넷 뱅킹보다는 덜 번거롭다.
  • 프로그래밍 세계가 PC보다는 지저분한 레거시가 훨씬 없고 깔끔하다. 8비트/16비트 같은 건 경험한 적 없다. 그건 모바일이 아니라 아예 임베디드겠지.

3. 무선 인터넷의 통신 모드 전환

요즘 전화기로 인터넷을 할 때는.. 와이파이를 쏴 주는 친숙한 장소에서는 그 와이파이에 붙어서 교신을 하고, 그렇지 않은 임의의 장소에서는 자기가 가입한 요금제대로 데이터를 까서 교신을 하는 게 보통이다. 후자는 LTE니 5G니 하는 기술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화기 역시 등록된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에서는 거기에 자동으로 접속한다. 하지만 주인님이 밖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거기 신호가 너무 약해지고 가망이 없어지면 자기 데이터를 깐다. 그러다가 다시 와이파이가 잡히면 모드가 거기로 바뀐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와이파이에서 데이터로 넘어가는 민감도가 너무 낮은 게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 10초~20초 이상은 인터넷이 먹통이 된 뒤에야 뒤늦게 "모바일 데이터에 접속합니다" 이러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기본적으로 와이파이를 쓰되, 와이파이가 조금이라도 헬렐레 거리면 바로 데이터 써라~~"
"최대한 데이터 요금을 아껴라~ 한 30초는 기다렸다가 정말 연결이 구리는 게 확실시될 때만 데이터 써라~~"
이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수 있다. 뭔가 설정을 통해 customize 가능했으면 좋겠다..

이건 자동차 운전으로 치면 자동 변속기의 변속 타이밍/알고리즘과 비슷한 것 같다.
"낮은 rpm에서도 고단으로 최대한 빨리 변속해라. 도저히 가속이 안 되고 차가 못 버틸 때만 불가피하게 저단으로 내려가라. 나는 연비가 중요하다"
"ㄴㄴ~ 밟았을 때 차가 빨리빨리 잘 튀어나가고 잘 가속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회전수를 3000rpm 이상은 올라갔을 때에나 고단으로 변속해라."

이런 것처럼 말이다.

4. 기타

  • 각종 쇼핑몰들은 웹사이트가 있긴 하지만.. 거길 폰으로 접속할 경우, 꼭 자기 전용 앱을 깔아서 보라고 권유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게 PC로 치면 ActiveX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정확히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이건 귀찮다. -_-;;

  • 꼬불꼬불 유선전화기는 가정용으로는 퇴출됐지만 인터폰이나 회사 사내 전화기로는 유효하다.
    비슷하게 사용자 상태가 표시되는 PC용 메신저도 가정용으로는 스마트폰 메신저에 밀려 퇴출됐다. (away, offline 상태 표시 없음) 하지만 사내 업무용 메신저는 전통적인 형태가 여전히 유효하다.

  • 웹페이지를 열어 놓고 딴 앱을 쓰다가 한참 뒤에 그 브라우저로 돌아왔을 때.. 쓸데없이 reload를 좀 안 해으면 좋겠다. 그냥 예전에 표시해 놨던 페이지를 다시 보여줄 수 없나?
  • 스마트폰의 메모장 같은 텍스트 편집 UI에는 undo 기능이 없는지 궁금하다.;;

  • 로그인 기능이 있는 각종 웹사이트들은 id가 틀렸는지 비번이 틀렸는지 따로 정확하게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ID 또는 비번이 잘못됐습니다" 이러지 말고. =_=;; id를 입력하자마자 바로 튕기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저런다고 특별히 보안이 위험할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 텔레비전과 유튜브의 화질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향상되고 있는 와중에, 전화기의 음성 통화는 예나 지금이나 음성에만 특화된 8000hz급의 초저화질이다. 뭐, 전화 통화하면서 주변 음악을 들려줄 일이 딱히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의외의 면모인 것 같다.

  • 은행 사이트들은 언제쯤 IE 외의 브라우저에서도 접속이 가능해질까? 차라리 폰이 나은 지경이 되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3/04/29 08:35 2023/04/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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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날 자동차와 컴퓨터의 성능 수동 조절 버튼

요즘으로서는 실감이 안 가지만 30여 년 전 엄청 옛날 1990년대에 286이나 386급 컴퓨터에는 자신의 클럭 속도를 저/고로 조절하는 버튼이 본체에 있었다. 일명 '터보' 버튼..
그래서 컴퓨터 본체에 달린 버튼이 전원, 리셋, 터보.. 요렇게 3개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옛날 컴터는 본체에 저렇게 현재의 클럭 속도가 숫자로 표시되어 나오기도 했고,
하드디스크 동작 램프도 저렇게 있었다.. 완전 까먹고 있었다!! ㄲㄲㄲㄲㄲ 하드 동작 램프는 SSD 시대가 되면서 완전히 구시대 유물로 전락한 듯하다.)

단, 터보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터보를 켰을 때 컴터가 무슨 애프터버너.. 아니, 오버클럭 모드로 진입해서 평소보다 더 빠르게 동작하는 게 아니었다. 정반대..
터보를 끄면 리미터가 걸려서 제 성능보다 느리게 돌아가고, 터보를 켰을 때 원래 속도대로 동작했다.

그리고 이런 저속 모드가 존재했던 이유는 무슨 발열이나 전력 소모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느린 컴터를 기준으로 돌아가는 기존 프로그램과의 '호환성'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일례로, 프레임 수 조절을 정교하게 안 하는 일부 옛날 게임은 클럭이 빠른 컴퓨터에서는 너무 빠르게 돌아갈 수 있었다. 매번 현재 시각을 측정하면서 컴터 클럭과 무관하게 프레임 수 조절을 정교하게 하는 것도 "1클럭이 아까운 CPU 자원을 소모하는 번거로운 '일' "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작업을 생략했던 것이다.;;

겨우 이런 호환성 유지를 위해 꼴랑 16MHz짜리 286 컴퓨터를 도로 8이나 12MHz 클럭으로 동작하게 하고, 56MHz짜리 386 컴퓨터를 33MHz로 너프 시켰다니.. 옛날은 참 암울하던 시절이었다.

그에 비해 요즘은 노트북 컴퓨터가 배터리만으로 동작할 때 화면 밝기와 CPU 속도를 살짝 낮추는 옵션이 있는 정도이다. 절전을 위해서..
요즘 자동차가 연비를 굉장히 신경 써서 만들어지는 것만큼이나 요즘 컴퓨터는 고성능에다 전력 소모와 발열을 굉장히 신경 써서 만들어진다.

하긴, 486은 아키텍처야 386과 동일하지만 그래도 캐시 메모리라는 게 처음으로 도입되고 부동소수점 코프로세서가(80387) 옵션 액세서리가 아니라 완전히 포함돼 들어갔고, 저런 터보 나부랭이도 완전히 없어졌다. 아마 냉각팬도 이때쯤 들어갔나?
생각해 보니 단순히 클럭만 빨라진 게 아니었고 386 대비 바뀐 게 생각보다 많았다.

이렇듯.. 옛날 컴퓨터에 터보 버튼이 있었다면, 동시기의 자동 변속기 초창기 차량에는 파워/이코노미, 오버드라이브 따위의 버튼들이 있었다.
이때는 자동 변속기가 꼴랑 4단까지밖에 지원되지 않았고, 변속 알고리즘이 지금만치 똑똑하고 효율적이지 못했다. 킥다운이나 락업 클러치, 스포츠 모드 같은 기능의 구현도 미숙했다.

그래서 이때는 파워 버튼을 눌러서 차가 평소보다 높은 rpm까지 저단을 더 오래 유지하다가 고단으로 넘어가라고 동작 방식을 강제로 바꿀 수 있었다. 당연히.. 앞차를 추월할 때, 노란불 켜진 교차로를 필사적으로 통과해야 할 때 등, 수동 몰듯이 저단에서 일부러 확 밟아야 할 때 쓰는 용도였다.
옛날 자동차, 옛날 컴퓨터에만 있었던 추억의 '모드 전환' 버튼이 문득 떠올라서 회상을 늘어놓아 보았다.

2. 쌍팔년도 PC의 그래픽 카드

- IBM에서는 CGA (320*200 4색), EGA (640*350 16색), VGA (640*480 16색, 320*200 256색)의 순으로 표준 그래픽 카드를 내놓았다.
그러나 한글· 한자 때문에 글자 높이가 최하 16픽셀급이 돼야 하는 한중일에서는 모노크롬 허큘리스 다음으로 곧장 컬러 VGA로 갈아탔다. 허큘리스는 3rd파티 싸제 규격이었다.

- 하긴, 8비트 컴퓨터는 비디오 쪽 성능이 많이 딸려서 저런 고해상도 그래픽을 표현하기가 난감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 차원에서 컴퓨터들을 교통정리를 할 때 8비트를 일찌감치 배제하고 최하 16비트부터 선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16비트가 지금까지 사용되는 PC의 외형 근간을 완성했다면, 32비트는 넉넉한 주소 공간과 보호 모드 지원 덕분에 멀티태스킹/멀티스레딩/가상 메모리를 최초로 구현 가능하게 했다. 64비트는 32비트 구조에서 4G 한계만 극복한 것이고..

- CGA EGA VGA 하면 개인적으로 늘 같이 떠오르는 게.. 레코드의 규격 SP EP LP이다..;;;

- 각 그래픽 카드별로 뭔가 비공식 변조 모드가 있었다.
CGA는 해상도를 무려 160*100이라는 극악으로 떨어뜨린 16색 그래픽 모드를 지원했는가 보다.
VGA는.. mode X라고 해서 320*240, 400*300 같은 해상도를 지원했다. 마이클 압래시라는 사람이 이런 걸 발견하고, 도스용 퀘이크에서 이걸 적용해서 많이 알려졌다.

- VGA는 그 이전의 CGA,EGA와 달리.. 그래픽 카드와 모니터를 연결하는 단자가 D-sub라고 원래 아날로그 기반이었다. 그 시절의 기술로 그 해상도와 색상, 주사 횟수를 구현하려다 보니 디지털로는 버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후대에는 DVI나 HDMI 단자가 등장하면서 다시 디지털로 돌아왔다.
그 시절에 주류였던 두툼한 브라운관 모니터도 아날로그 신호와 더 친했지 싶다. 브라운관은 아무 해상도에나 픽셀 뭉개짐 없이 유동적으로 대응 가능한 유일한 디스플레이 기술이다.

- 각 그래픽 모드를 소프트웨어적으로 흉내 내어 주는 램 상주 프로그램이 있었다. simcga라든가, msherc 따위.. 단, simvga는 공식 프로그램이 아니라 낚시 악성코드였다.;;

- 1988년에 출시됐던 Splash! (Spinnaker software)라는 그래픽 에디터는 최신 VGA 저해상도 256색 그래픽을 채용한 거의 초창기 프로그램이었다. VGA는 1987년에 출시됐고, 그때는 아주 값비싼 최신식 그래픽 카드였으니까..
참고로 87~88년이면.. C++을 C로 전처리 거치지 않고 직통으로 번역하는 컴파일러가 업계 선구자에 의해 거의 최초로 등장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업계에서는 C++은 아직 듣보잡이었으며, C와 어셈블리가 당연시됐었다.

- 퀵베이식에서는 SCREEN 13 한 줄만으로 VGA 256색 모드로 바로 진입 가능한 반면, 그 당시 볼랜드의 개발툴(Turbo C/Pascal)이나 파워베이식은 그 당시 게임 프로그래밍에서 필수였던 이 mode 13h에 대한 지원이 유난히 인색했다. 그 이유를 난 아직도 모르겠다.

- 이 VGA 이후로 800*600 16색이라든가, 640*480 256색, 1024*768, 심지어 트루컬러 같은 발전된 모드는 IBM에서 더 중재를 하지 않고 업계 재량으로 넘어갔다. 사실, IBM은 XT/AT 이후에 80386부터는 표준 PC에도 더 관여하지 않고 손을 놨고, 운영체제 역시 OS/2가 Windows에 밀리면서 PC 시장과는 점차 인연이 멀어지게 됐다.

3. 전통적인 컴퓨터의 명가

  • 크레이: 슈퍼컴
  • IBM: 메인프레임
  • : 워크스테이션??
  • HP: 서버

이들과 달리, PC는 뭔가 독보적으로 접수하고 있는 업체가 없다. 마소와 인텔?? 얘들은 물론 컴퓨터 완제품이 아니라 CPU와 운영체제 제조사이니 위의 예들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이제는 슈퍼컴이나 워크스테이션 같은 컴퓨터의 영역이 PC에 많이 흡수되기도 했고..

4. 하드웨어의 발전

(1) 마우스 포인터: 그림이 계속 그려지고 있는 곳에 마우스 포인터를 가져가도 포인터가 깜빡거리지 않게 됐다.
이건 뭐 30년 전 Windows 3.x 시절부터도 비디오 드라이버를 적절하게 잡으면 실현됐던 사항이다. 그 시절의 그래픽 카드도 마우스 포인터 정도의 스프라이트를 하드웨어 차원에서 직통 처리하는 기능은 제공했기 때문이다.
Windows 2000부터는 그래픽 카드를 잡지 않은 VGA 16색 안전 모드에서도 마우스 포인터가 깜빡거리지 않기 시작했다. 9x는 그렇지 않았다.

(2) 사운드: Windows 98쯤부터 여러 프로그램에서 사운드를 동시에 재생할 수 있게 됐다. 그 전에는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사운드도 무슨 파일처럼 한 프로그램에서 열면 다른 프로그램에서 접근할 수 없는 리소스였다.;; 멀티웨이브 믹싱이 지원되지 않았던 것이다.

(3) 화면: print screen 키를 눌러서 동영상 재생 화면도 캡처가 가능해졌고, 일반 그래픽과 아무 차이가 없어졌다. 이건 나름 Windows Vista에서부터 실현된 기술 발전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1/14 19:35 2023/01/1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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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oom의 그래픽: 복셀 mod

Doom은 고전 FPS 게임의 교과서적인 명작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소스가 공개된 이래로(1997) 전세계 양덕후 해커, 너드, 구루들에 의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그래픽 강화 마개조 리마스터링이 행해졌다.

  • 256색 컬러 제약 없애고
  • 스프라이트를 확대할 때 선형보간법 기반의 안티앨리어싱 적용은 기본. 더 나아가..
  • 각종 텍스처와 스프라이트를 수작업으로 HD급 고화질로 업글..;; (☞ 보기)
  • 무기와 게임 진행 방식을 엄청 고도화한 모드 제작.. (대표적으로 Brutal Doom.. 듀크 nukem 3D와 비슷하게? ☞ 보기)
  • 그래픽 엔진을 더 고도화해서 요즘 게임처럼 ray tracing까지 적용 (☞ 보기)
  • 심지어 각종 오브젝트들을 3D 폴리곤화 (☞ 보기)

별의별 게 다 만들어져서 플레이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그런데 그 중에서 제일이요 끝판왕.. "튜닝의 끝이 순정"임을 보여주는 건..
딴 게 아니라 복셀 mod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 보기1 / 보기2)

겉으로는 그래픽이 원판 이래로 하나도 안 바뀐 것 같고 이질감이 전혀 없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체의 모양과 각도를 보시라~!! ㄷㄷㄷㄷ)

고개를 돌리고 이리저리 둘러보면.. 그때서야 "오오!! 장난이 아니군!!" 소리가 나온다.
와, Doom에서 몬스터 시체의 모양을 모든 각도에서 둘러볼 수 있다니~!! 이런 게 정말 수준 높은 리마스터링이 아니겠는가?
소실점의 위치만 옮기는 엉성한 상하 시점이 아니라, 실제로 삼각함수 회전 변환을 수행하는 정확한 상하 시점까지 지원되는 건 물론이다.

1980년대 TRON처럼 CG 티가 대놓고 나는 어설픈 CG가 아니라.. 영락없는 쑤제 재래식 셀 애니메이션 같은데 3D 구현이 완벽하고 알고 보니 사람 손맛을 그대로 재현한 CG여서 놀라운 것.. 이런 느낌이다. 아니면..

  • 비트맵 형태로만 존재하는 폰트를 그대로~~ 교묘하게 윤곽선 폰트로도 옮겨서 글자를 확대해도 깨지지 않고 인쇄용으로도 쓸 수 있게 함
  • Windows의 굴림이나 궁서 폰트에 드디어 한자 글립이 들어감 (바탕, 돋움에 의존하지 않고)
  • 화면이 해상도나 색상은 그대로인데, 주사율이 확 올라가서 애니메이션이나 마우스 포인터 이동이 아주 부드러움..

핵심은.. 원래 있던 질감과 UX를 전혀 바꾸지 않으면서 정보량만 아무 단절감 없이 늘리고 확장하는 것이다.
복셀.. 이건 도트 노가다의 3D 버전이니 작업량이 장난이 아닐 텐데.. 이걸 근성으로 해낸 덕후들이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죽는 모습과 시체는 스프라이트가 한 방향 것밖에 없으니 상상과 창작도 많이 해야 했을 텐데 말이다. ㄷㄷㄷㄷ

2. Quake의 음악

Doom까지만 해도 게임 배경 음악은 그냥 미디 기반이었다. 그러나 퀘이크부터는 저장 매체가 CD로 바뀌고 용량이 커진 덕분에(디스켓에 비해서야..ㄲㄲㄲㄲ) 쌩음원이 그대로 수록됐다.

특히 퀘이크 1은 1990년대 중반에 잠깐 유행했던 "오디오 CD 겸 데이터 CD-ROM"이라는 굉장히 참신한 과도기적 형태로 만들어졌었다.
프로그램의 용량은 50~60MB (이것도 15~20MB가량이던 Doom 2에 비해 3배 이상 커진 용량)밖에 안 하니 CD-ROM 전체 용량의 10%밖에 되지 않을 것이고, 나머지는 다 오디오 CD로 편성해도 곡을 40분 이상은 넣을 수 있는 거다. 그 정도면 게임 BGM을 다 집어넣기에도 충분하고..

20~30년 전만 해도 게임 하나의 용량이 이렇게 작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CPU의 성능이 펜티엄이니 펜티엄 프로니 어쩌구 하던 시절에는 그 빡센 3D 그래픽 게임을 돌리면서 쌩음원까지 같이 하는 건 몹시 버거웠다.
내 기억으로 그 정도 컴에서 winamp로 128kbps짜리 mp3 하나만 틀어도 CPU 사용률이 10% 가까이 올랐다. 요즘 같으면 무식한 whlie(true); 돌려서 코어 하나를 다 잡아먹어야 나올 만한 사용률이겠지만.. 그렇다고 압축하지 않은 쌩 wav는 I/O 대역폭 소모가 너무 크고..

그때는 오디오 CD 플레이어가 컴터하고는 사실상 따로 놀았기 때문에 오디오 CD 재생은 CPU를 잡아먹지도 않았었다.
그러니 게임을 위한 CD 오디오 트랙 활용은 게임의 용량, 음악의 분량, 미디어의 용량 배분, CPU 부하 절약이 모두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덕분에 가능한.. 지금 생각하면 정말 뽀록에 가까운 꼼수였다.

이런 이유로 인해 퀘이크 1은 원본 CD 없는 불법복제 립버전으로는 배경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참고로 스타크래프트도 초창기 불법복제 립버전은 음악이 안 나오긴 했다. 하지만 이건 그냥 용량을 줄이기 위해 BGM 음원 파일을 mpq 패키지에서 빼 버렸기 때문이다. BGM이 오디오 CD 트랙에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렇듯, 퀘이크 1은 그래픽만 full 폴리곤 3D를 시도한 게 아니라 컴파일러도 왓콤 대신 무려 djgpp로 바꾸고, VGA mode X라든가 초창기 그래픽 가속 카드를 지원하고, 저장 매체에서도 저런 시도를 하는 등..
정말 신기술 실험으로 가득했던 명작이었다. 플랫폼만 구닥다리 도스일 뿐,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시도는 몽땅 다 했다. 그러니 전작 Doom의 아성도 뛰어넘는 또 다른 명작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1990년대엔 팝송 가사로 영어 공부하는..;; 컨텐츠가 잠시 유행이었는데, 오 성식뿐만 아니라 "곽 영일 Pops academy"라는 씨디 타이틀도 저렇게 데이터+오디오 짬뽕으로 만들어졌었다.

3. Quake 3 Arena 음악

Doom까지만 해도 게임 음악이 블루스도 있고 뭐랄까 평범했는데.. 미디 대신 쌩음원으로 바뀐 Quake에서는 BGM의 장르가 메탈? 락? 쪽으로 확 기울었다.
퀘이크 3 Arena 게임에서 나오던 BGM들 중 개인적으로 제일 흥겹고(!!) 마음에 드는 곡은 이거다. (☞ 듣기)

쿵 따라라라라라 쿵땅~ 땅~~ (특히 41초 이후부터)
리듬이 뭔가 민요가 떠오를 정도로 흥겹지 않은가? 일렉 기타와 드럼 대신에 꽹과리와 장구 사물놀이 세션으로도 비슷한 리듬을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

요 BGM이 흘러나오던 투기장 중 하나는 tier 6에 속하는 Bouncy map이었다.
이런 부류의 BGM과 함께 게임 투기장에서는 푱~~ 푱~~ 레일건 광선이 번쩍거리고 로켓 탄두가 쉴 새 없이 날아다니고, 누구는 거기에 쳐맞아서 작살이 나고 "You fragged 홍 길동" 어쩌구저쩌구 방송이 나가곤 했다. -_-;;;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 그러고 보니 비슷하다면 비슷한 예가 있다.
영화 '악녀'(2017)에서 말이다.. 좁은 건물 복도에서 주인공 악녀(숙희)가 혼자서 수십 명의 건달들을 칼빵 놓으며 학살하고 화면이 무려 1인칭 시점으로 마치 게임 하듯이 흘러나올 때..
이때 BGM이 쿵 따라라라라라 하면서 실제로 꽹과리 소리가 나온다. (☞ 보기, 1분 40초 이후부터)
이것도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 나름 게임 BGM으로 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심지어 이 꽹과리 BGM이 이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에서도 또 흘러나오더라~~ ㄲㄲㄲ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난 퀘이크 3 음악은 100% Sonic meyhem이라는 뮤지션 그룹에서 만든 건줄 알았는데.. 아니네.
얘를 포함해 몇 곡은 "Front Line Assembly"라는 다른 그룹에서 만들었다.
쌍팔년도 시절에 Xenon 2 megablast라는 종형 스크롤 슈팅게임이 있었는데 그거 개발사는 영국의 the "Assembly Line"이라는 곳.. 같은 단어인데 배열 순서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게다가 저 게임도 main OST가 묘하게 경쾌하고 락인지 메탈스러운 장르이다!! (☞ 듣기)

Posted by 사무엘

2022/11/25 19:35 2022/11/25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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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니, 봉고, 엑셀

국산차 중 현대 포니는 동급 배기량 중에서는 전무후무 유일하게 후륜구동이었던 승용차이다.
기아 봉고는 뒷바퀴가 트럭처럼 복륜 형태였던 유일한 소형 승합차이다.

봉고는 한때는 승합차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트럭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엑셀은 한때는 승용차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의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ㄲㄲㄲㄲㄲ
워드퍼펙, 로터스 1-2-3, dBASE 같은 업무용 프로그램들은 Windows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고 사라졌다.;;

2. 위험한 데이브

우한 괴질 덕분에 30여 년 전 초딩 시절에 했던 ‘위험한 데이브’ 게임에 새겨져 있던 이 알파벳 이니셜을 다시 주목하게 되는구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터넷 좀 뒤져 보니, 저건 PC Arcade를 의도한 거였다고 한다.;;)

저 시절에(1990년경) PC용 게임들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그래픽 모드를 CGA (4색), EGA (16색), VGA (256색) 중 하나 선택하는 게 관행이었다. 한번 선택한 뒤에는 변경할 수 없었고, 딱히 변경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저 데이브는 굉장히 이례적이게도, 게임 진행 중에 그래픽 모드를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었다. 하던 게임을 중단하지 않고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임 중에 F2를 누르면 언제든지 나타나는 환경설정 화면. 어라? 이미 PC-arcade라는 단어가 있었구나~!!)

그게 가능한 게임은 내가 아는 도스용 수백여 종의 게임 중에 진짜 쟤가 유일한 것 같다~! 신기하지 않은가?
비슷한 시기의 Windows 3.x만 해도 그래픽 모드, 색상, 해상도 따위를 변경한 뒤에는 운영체제를 재시작해야 했는데 말이다. 지정도 제어판이 아니라 설치 관리자를 통해서 해야 했다.

3. 메신저

과거의 icq, msn (훗날 WLM), 스카이프, 그리고 요즘 카카오톡에 이르기까지..
기업에서 만들면서 무료로 뿌리는 메신저 프로그램은 세월이 흐를수록 엄청나게, 불필요하게 덩치 커지고 무거워지는 게 필연적인 수순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채팅 기능만 제공해서는 수익이 나질 않으니 어떤 형태로든 부가적인 서비스를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카카오톡은 기존 대화 데이터들이 쌓이고 프로그램 자체도 버전업을 거듭하다 보니 예전에 비해 뜨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정말 눈에 띄게 길어졌다. 뭐, 본인은 수 년 이상 묵은 굉장한 구닥다리 전화기를 사용한다는 것도 감안할 점이긴 하지만.. 거의 20~30초씩 걸린다.
PC용 프로그램이었다면 일개 메신저가 스플래시 화면이라도 좀 있어야 할 것 같다.;;

더구나 과거엔 공공장소 입장용 QR 코드를 생성하거나 백신 접종 정보를 불러오는 데도 비슷하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이것도 불만 사항이었다. 지금이야 백신패스는 아련한 옛날 이야기가 됐지만.. 그래도 프로그램이 최적화와 관련해서 좀 아쉬운 면모가 있다.

4. 블리자드

블리자드가 2018년 이래로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빠른 속도로 망조 들고 몰락하고 있는 것이 놀랍다.
무려 2000년경, "환상의 테란"이라는 PC통신(!!) 소설에서는 "서기 2020년, 블리자드는 스타라는 걸작 게임만을 남긴 채 망해 버렸고 게임의 소스 코드는 공개되지 않았으며, 사장은 어느 열받은 테란 플레이어에게 살해 당했다"라는 정말 비현실적인 설정을 제시했었다.

디아블로, 스타, 워크래프트라는 불멸의 명작 대작을 내놓으며 승승장구하던 게임 개발사가 망할 거라고는 그 시절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 뒤로도 WoW에, 오버워치 이러면서 2010년대까지도 잘 나가지 않았던가?
그랬는데 지금이야 뭐.. 회사 창립자인 사장이 살해...;;까지는 아니지만 물러났고, 스타를 만들었던 핵심 개발진들이 죄다 퇴사하고 회사를 따로 차리는 지경이 됐다. 기존 스타크래프트는 1(리마스터)이고 2고 간에 유지 보수가 도저히 안 되는 막장 상황이 된 건 확실해 보인다.

우와, 그 명작인 스타크가 개발사로부터 버림받는 지경이 됐다니.. 하긴, 유명한 것 대비 회사 입장에서의 수익성이 너무 없어지긴 한 것 같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고 국내의 온라인 게임 개발사들은 처음에 돈독 올랐다고 욕 먹는 한이 있어도 정액제니 부분 유료화니 하면서 사용자에게서 지속적으로 돈을 걷는 체계를 만든 것 같다. 한 번만 돈 내고 끝인 패키지가 아니라 말이다.

그랬는데 블리자드가 2022년 초에 마소에 인수됐다. 마소는 게임 제작사들의 재량을 존중해 주는 관대한 기업이니 블리자드의 옛 명성을 되찾아 줄 것을 기대해 본다.
하긴, 왕년에 Doom과 Quake를 개발했던 id조차도 마소에 인수돼서 그쪽 계열사가 된 지 오래다. id를 인수하고 싶어했던 빌 게이츠의 오랜 소원은 빌이 은퇴한 뒤에야 결과적으로 성취됐다.

그 마소에서도 알다시피.. 2010년대에 경영진이 싹 바뀌고 컴퓨팅 시장의 판도가 많이 바뀌었던 시절에 Windows 8과 관련해서 삽질이 유난히 잦았다. Windows 10은 초창기에 예전의 마소답지 않은 온갖 버그들이 난무했었다.
MFC처럼 수십 년 묵은 고인물 썩은물은 마소 내부에서도 안 쓸 뿐만 아니라, 코드 구조를 다 꿰뚫고 유지 보수 가능한 사람이 거의 안 남았다나 어쨌다나.. MFC가 그러한데 하물며 딱히 작업할 것도 없고 10년 넘게 변화가 없는 한글 IME 코드의 관리 인력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이지 싶다.

소프트웨어 개발사는 핵심 프로그래머가 교체되더라도 제품 코드에 대한 노하우가 단절 없이 전수되고 코드의 유지 보수가 가능하도록 정말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일례로 각종 주석과 문서 작성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남이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스파게티 코드, 난독화 코드를 잔뜩 짜 놓고는 "이 코드는 나 말고는 아무도 의미를 알 수 없어~" 이렇게 버티는 건.. 반칙이며 알박기나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_=;;

Posted by 사무엘

2022/06/30 08:36 2022/06/3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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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soft Office는 Windows와 더불어 지금까지도 마소를 먹여 살리고 있는 주요 밥줄이다. 출시된 지 어언 30년이 돼 가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2000년을 전후한 97부터 XP 사이의 시기에 유독 자연어 처리 기술이 들어간 기능이 많이 도입됐었다. 그게 그 시절에 잠시 유행이었던 것 같다.

1. Office 길잡이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엔 워드나 엑셀 같은 제품을 다루다 보면, 이런 강아지 내지 클립 귀요미들을 볼 수 있었다.
바로, MS Office 97에서 처음 도입돼서 2000과 XP 시절까지 명맥을 유지했던 Office 길잡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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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소에서는 진작부터 HCI (사람-컴퓨터 간 인터페이스)에 굉장한 관심을 갖고 있었고, 컴퓨터를 어린이와 노인까지 누구나 겁먹지 않고 쉽게 다룰 수 있는 '친숙한' 물건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그래야 자기들 장사도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의 성능이나 기능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금을 들여서 강아지나 클립 등의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들어간 Office 길잡이라는 걸 만들고 집어넣었다.

얘들은 귀요미 애니메이션만 있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 사용 중에 잘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을 직접 입력하세요"라는 파격적인 기능까지 제공했다. 이게 일종의 자연어 처리 기능인 셈이다.
워드에서 Dear XXX, 이라고 첫 줄을 입력하면 길잡이가 "편지를 쓰시는 것 같네요. 뭐 좀 도와드릴까요?" 이러기도 했던 건 유명한 일화이다.

1990년대 중반에 마소에서 Microsoft Bob이라든가 저런 Clippy 길잡이 같은 물건을 만들었던 걸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 빌 아저씨는 컴퓨터를 대중화시키기 위해서 귀요미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들인 노력에 비해 이런 UI들에 대한 사용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괜히 문서 화면을 차지하고 걸기적거리면서 컴터의 성능과 메모리만 잡아먹고, 결정적으로 자연어 처리 AI가 그리 똑똑하지 못해서 사람 말귀를 잘 알아들으면서 도움을 잘 주는 것도 아니었다. 색인 기반으로 도움말 본문 검색 정도에나 적합한 엔진이 무슨 사람의 질문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니 Office 길잡이는 2003에서는 기본적으로 설치되지 않는 물건이 됐다가 2007에서부터 완전히 삭제됐다. 메뉴에서 일부 항목이 생략되던 2000년대 초의 personalized menu와 비슷한 격으로 한때의 반짝 유행으로 끝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그 열악하던 옛날에 마소의 Office 제품이 '챗봇' 비슷한 걸 시도한 적이 있었다는 건 AI 역사의 관점에서는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던 것 같다~!

2. Word에 자동 요약(Auto Summarize)

0부터 100까지 백분율을 지정하면, 이 문서에서 분량 대비 중요도가 상위 그 비율에 든다고 여겨지는 문장을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따로 강조해서 표시해 주는 대단히 획기적인 기능이다.
길고 빽빽한 문서를 빨리 읽을 일이 있을 때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Word에 이런 기능도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 분이 계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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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90년대 겨우 펜티엄 급의 PC에다 1990년대의 NLP 기술만으로 문서 자동 요약이 정말로 똑똑하게 정확하게 수행되는 건 아니었다. 그저 표면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단어만을 고려해서 밑줄을 칠 뿐, 글의 의미를 실제로 파악하고서 핵심 요점을 추려내지는 못했다.

이 기능은 한번 도입된 뒤에 이렇다 할 성능 개선이 없이 잉여로 전락했다. 그래서 Word 2007에서는 리본의 아무 탭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누락됐다. 즉, 리본을 통해서 접근할 수 없고, Undo나 Save 같은 기능만 있는 quick access 툴바에다가 버튼을 추가하는 수고를 해야만 이 명령을 실행할 수 있다.
그러다 2010부터는 이 기능이 완전히 삭제되어 버리고 없어졌다. 그러니 지금도 구글에서 Microsoft Word Auto Summarize라고 검색해 보면 XP 내지 2003, 2007 시절의 스크린샷밖에 없다.

다음은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의 퇴역 연설문을 25%로 자동 요약시킨 결과 화면의 일부이다.
"저는 이제 52년 만에 군문을 떠납니다"라는 문장은 분량 비율을 10%로 줄여도 계속해서 포함된다. 이건 글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한 것 같다. 하지만 곁의 "노병은 죽지 않고 그저 사라질 뿐입니다"는 비율을 35% 정도로 올려야 포함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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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의 얘기이다 보니 북괴 얘기도 나오고 중공 얘기도 나오는데.. 문장들이 많이 수집된 곳과 듬성듬성 수집된 곳의 차이를 난 잘 모르겠다. 이런 요약은 그냥 없는 것보다 나은 정도의 참고용으로만 사용하면 될 듯하다.

3. 필기· 음성 인식 기능

2001년 말에는 Windows와 Office 모두 XP라는 브랜드를 달고 새 버전이 출시됐다.
IE 웹브라우저가 세기말(1997)에 버전 4~5이던 시절엔 운영체제 셸을 멋대로 마개조 했었는데.. 신세기(2001)에 출시됐던 Office XP는 운영체제의 IME 계층을 마개조 해서 TSF라는 문자 입력 인터페이스를 도입했다.

이건 정말 파격적인 새로운 기능이었다. 한중일은 문자의 구조가 복잡해서 처음부터 별도의 입력기가 필요하지만, 영문도 키보드가 아닌 필기· 음성 인식 방식으로 입력하기 위해서는 보조 도구 명목으로 IME 비스무리한 서비스가 필요하다.
거기에다 마침 자국어가 아닌 임의의 외국어 다국어를 입력하기 위해 Global IME니 하는 중간 과도기 제품이 돌아다니기도 했었으니.. TSF는 이 모든 것들을 기술적으로 통합하는 솔루션 역할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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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ows XP에다 Office XP 영문판의 모든 기능을 설치하면 영문의 필기· 음성 인식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한글· 한자는 한 글자씩 인식을 하지만 영문은 단어 단위로 획을 끊지 않고 한붓그리기 필기체를 날려 쓰면 아주 잘 인식된다. 사실, 영문 필기체는 압도적인 수요 덕분에 세계에서 제일 많이 연구됐고 제일 기막히게 잘 인식되는 글자이기도 하다..;; 한자 따위와는 급이 다르다.

게다가 태블릿 PC를 의식해서인지, 비좁은 사각형 안이 아니라 화면 전체에다가 글자를 쓱쓱 그려서 인식시켜 넣을 수도 있다. Write anywhere를 고르면 된다. 아래의 드로잉쯤은 당연히 kill이라고 바로 인식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음성도 본문에다가 받아쓰기를 할지, 명령 수행을 시킬지 선택할 수 있으며, 정확도 향상을 위해 미리 정해진 예문을 쭉 읽으면서 나름 학습을 시키는 절차도 있다. 학습을 시킬 때 단어들을 어색하게 딱딱 끊지 말고 반드시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서 읽으라고 부탁하는 메시지가 뜬다.

무려 20여 년 전의 Office 제품에 벌써 이런 기능이 있었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그랬는데 후대 버전의 Windows와 Office는 영문판을 찾아봐도 그런 필기· 음성 인식 기능이 오히려 없어진 것 같다. 성능이 시원찮고 시대에 뒤떨어지니 도로 없앤 건가 싶다.
고급 필기 인식 기능은 IME보다는 메모 전문 앱인 OneNote에 몰빵돼 들어갔다. 처음엔 Office 2003의 제품군 소속으로 개발됐었지만 지금은 독립한 물건이다.

Office 제품들은 운영체제의 공용 대화상자들을 생까고 자체 구현한 대화상자로 문서 열기/저장 기능을 제공해 왔는데, 지난 2007 버전부터는 그 전통을 깨고 운영체제 대화상자로 돌아왔다.

운영체제의 IME와 Office의 IME가 따로 놀던 관행도 2007? 2010?쯤부터 없어져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입력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기능이다만, Word의 경우 한국어로 텍스트를 입력하다 보면 인명 고유명사를 얼추 인식해서 파란 점선을 쳐 주고 주소록에 추가한다거나 다른 부가작업을 선택하는 게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smart tag라는 기능인데, 이게 최초로 추가된 것도 XP였다. 허나, 이 역시 오히려 후대 버전에서는 이게 없어지거나 기본적으로 꺼진 것 같다.

NLP 기능이 과거에 있었다가 나중에 도로 없어진 건.. 마치 21세기에 초음속 여객기나 우주왕복선이 오히려 없어진 것과 비슷한 맥락의 현상으로 느껴진다.
컴퓨팅 성능과 AI 기술이 훨씬 더 향상된 2020년대엔 오피스 제품에 더 똑똑해진 필기· 음성 인식과 문서 자동 요약과 번역, 도움말 안내 기능이 다시 부활해 들어가지 않으려나 기대를 해 본다.

Posted by 사무엘

2022/06/19 08:35 2022/06/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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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재를 부정 당하고 있는 IE 브라우저

지난 2010년대 초는 IE6을 작정하고 퇴출시키려던 시기였다. 그 뒤, 2020년대 초는 IE를 통째로 퇴출시키려는 시기가 됐다. 그 전에 플래시와 ActiveX부터 먼저 퇴출됐고 말이다.
그럼 지금은 키보드 보안이나 특수한 암호화 같은 게 필요하면 DLL 형태인 ActiveX 대신, EXE 실행 파일로 다 바뀐 건지? 그럼 요즘은 크롬에서도 인터넷 뱅킹이 가능한 건지?? 잘 모르겠다. 내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뭔가 잘 안 돼서 PC에서 금융 거래를 할 때는 아직 "Edge + IE 모드"에 의존한다.

Media Player는 더 업데이트를 하지 않는 레거시로 남았을지언정 일부러 없애지는 않는 물건이다. 그러나 IE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웹 프로그래밍 플랫폼이며 보안에 민감한 놈이다. 그래서 마소에서도 매우 적극적으로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없애려는 중이다.

그래서 작년 하반기쯤이었나? Windows 10의 어느 버전인가 업데이트를 설치한 뒤부터는 이제 Internet Explorer가 대놓고 실행되지 않게 됐다. 그냥 꺼져 버리고 Edge가 대신 뜬다.
과거 Windows Me가 여전히 도스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9x 커널 기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만 도스로 부팅하거나 도스로 돌아가는 기능을 없애 버린 것과 비슷한 조치 같다.

그러나 IE라는 껍데기 말고, IE가 사용하는 그 트라이던트 웹 렌더링 엔진과 윈도우 컨트롤은 사실상 Windows 운영체제의 일부나 마찬가지이다. 얘에 의존해서 돌아가는 기존 프로그램도 있기 때문에 그걸 통째로 없앨 수는 없다.
마치 Visual Basic 6처럼 말이다. 얘는 마소에서 21세기 이래로 줄기차게 없애고 .NET으로 대체하려 애썼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게다가 Office 제품군의 매크로 언어인 VBA가 여전히 재래식 VB 기반이니.. 이것 때문에라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IE 엔진이 여전히 쓰이는 대표적인 분야는 도움말이지 싶다. 특히 HTML 도움말(*.chm) 말이다. 얘는 이미 10년 이상 전부터 추가적인 개발과 지원이 끊겼으며, 마소로부터 사실상 완전히 버려진 자식 신세이다.
그런데 마소에서 지난 2010년대부터는 '로컬 오프라인 환경에서 열람하는 도움말/문서'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송두리째 폐기한 것 같다. IE나 HTML 도움말만 없앤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제 메모장을 띄웠을 때 F1을 누르면.. '메모장 도움말'을 Bing에서 검색한 결과가 뜬다.;;; 이렇게 무심할 데가..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현재의 Windows 10/11은 로컬 도움말이란 게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이젠 Windows\help 디렉터리가 거의 텅 비어 있다. 거기 그나마 들어가 있는 건 뭐 nvidia 제어판이나 개발 관련 듣보잡 문서이지, Windows 자체에 대한 일반 사용자용 도움말이 아니다.

개발툴도 예외가 아니어서 Visual Studio 2010/2012를 즈음해서는 1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msdn Document Explorer가 없어졌고.. 이제 내장 도움말 컨텐츠 다운로드 같은 것도 없어졌다.
이런 게 완전히 없어지기 전에는 chm이 아니어도 자기들만 쓰는 html + IE 엔진 기반의 개발 문서 조회 시스템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걍 단순 정보 조회는 구글로, 문제 해결 정보는 Stack overflow를 뒤지라는 뜻인 듯..

안 그랬으면 HTML 도움말을 IE 대신 크로뮴 엔진 기반으로 다시 만드는 지원이라도 할 텐데 그런 것조차 없다.
근데 현실적으로는 다른 대안이 있나? Windows용 앱 내부에서 뭐 최신 반응형 웹 따위 바라지도 않고, 간단히 html 렌더링해서 표시하고 싶은데 IE ActiveX 컨트롤보다 더 간편한 방법이 있을까? 그건 의문이 든다.
아무리 웹이 기존 앱의 영역을 많이 잠식하긴 했어도, 그래도 앱 내부에서 웹페이지를 표시할 일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할 점은 웹페이지의 인쇄이다.
내 경험상.. 당장 이 블로그 웹페이지를 같은 pdf 드라이버로 인쇄해 보면 IE는 그럭저럭 최적화된 형태의 pdf가 만들어진다. 그 반면, 크롬은 훨씬 더 bloat된 이상한 형태로 pdf가 생성되며, 인쇄하는 데 시간도 더 오래 걸린다.
무작정 IE를 없애 버리기에는 제대로 된 대안· 대체제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2. 이상하게 바뀐 메모장

올해 초쯤에 Windows 11의 업데이트를 설치하고 나자.. 프로그램 창의 ‘최대화’ 버튼의 동작이 살짝 달라졌다. 마우스로 얘를 가리키면 고전적인 전체 최대화 외에, 좌우 1:1:1 등 어느 레이아웃으로 최대화할지 고르는 타일 메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Windows 7에서 창을 마우스로 화면 좌우상하 구석으로 끌었을 때 그렇게 배치하는 기능이 처음 추가되긴 했는데, 그게 13년쯤 뒤에 저렇게 강화됐다. 요건 뭐.. 나쁘지 않아 보이네.

그런데 그것 말고도 마소가 꽤 큰 사고를 쳤더라. 세상에.. 메모장이 메트로 UI 형태로 다시 만들어졌다.
본문이 운영체제 기본 에디트 컨트롤이 아니라.. 워드패드와 동일한 리치 에디트 기반으로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이거 완전 비호감이더라. 메모장은 단순한 앱의 상징 마지노 선으로 봉인 좀 시켜 놓지, 왜 저런 짓을 했나 모르겠다. 사람들이 메모장이 기능이 많아서 애용하는 줄 아는가??

그런 주제에 UTF-16랑 KS X 1001 인코딩의 파일이 열리지 않고, 우클릭 컨텍스트 메뉴에 알파벳 단축키가 먹히지 않는다. 예전에 되던 것이 안 되니 새 버전을 사용하기가 매우 꺼려지게 된다.
저런 쓸데없는 걸 건드리지 말고, sihost.exe가 CPU 다 쳐먹으면서 폭주하는 버그나 좀 고칠 것이지.. 그 문제는 여전한 걸 보고는 더 좌절했다.

난 지금까지도 솔직히 Win10이랑 11의 차이를 모르겠다. 업데이트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10에서는 작업 표시줄을 우클릭해서 바로 작업 관리자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11에서는 못 하고..
정말 필요한 기능이 아니라 그냥 괜히 바꾸기 위해서 바꾼 게 많다. 이럴 거면 걍 10의 업데이트나 낼 것이지 왜 11이라고 차별화를 한 걸까?

난 멀쩡히 잘 돌아가는 기능들에다가 쓸데없이 자꾸 메트로 UI를 도입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마음에 안 든다. 현실에서 멀쩡한 길거리 인도 보도블럭을 쓸데없이 교체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아 그래, 25년쯤 전에 마소에서 Windows UI 셸을 전부 IE4 Active desktop으로 도배하려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2/06/11 08:36 2022/06/1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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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기 기관과 컴퓨터

20세기 중반에 전자식 컴퓨터나 그 전신뻘의 물건이 최초로 개발되어서 수행했던 임무는 탄도 계산이나 암호 해독 같은 군사 관련 일이었다. 게임이나 무슨 수학자 덕질 같은 용도가 아니었다. 인터넷도 맨 처음엔 생각보다 굉장히 군사· 안보 상의 목적과 필요 때문에 개발되었다는 것을 알 만한 분은 아실 것이다.

그리고 옛날에 증기 기관이란 게 최초로 개발되어서 투입된 용도는.. 기억하시는가? 무슨 군사나 교통수단이나 면직물 가공 기계가 아니라, 탄광 내부에 찬 지하수를 빼내는 펌프의 가동이었다. 즉, 자신이 석탄을 소모하면서 역으로 석탄을 캐는 일을 도와줬던 것이다. (물론 자기가 소모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석탄을 캐는 걸..)
그렇게 태동했던 기계가 하나는 산업 혁명을 견인했고 다른 하나는 정보화 시대라는 걸 만들었다니 참 격세지감이다.

2. 도트 프린터와 비트맵 폰트

21세기, 2020년대를 찍고 있는 요즘은 자그마한 종이 쪼가리에 찍혀 나오는 영수증이나 카드 명세서, 승차권/탑승권, 주문 번호표, 관공서 차례 대기 번호표조차도 다 열전사 같은 비충격식 프린터로 인쇄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쌍팔년도의 잔재인 찌익~ 찍 도트 프린터의 출력 결과물을 아직까지 생생히 볼 수 있는 곳은 단연 은행이라 하겠다. 독보적이고 유일하다. 이게 개인적으로 매우 매우 흥미롭고 신기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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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의 책장을 넘겨가며 거래 내용을 인쇄한다거나, 혹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은행 특유의 각종 양식 문서의 일부란에 문자와 숫자를 찍는 용도로는 재래식 도트 프린터가 여전히 유용한가 보다. 물론 전자 통장, 전자 문서 때문에 예전에 비해서 필요성이나 활용 빈도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트 프린터가 독특한 이유는 찍혀 나온 글자의 자형, 즉 폰트부터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이런 도트 프린터는 해상도가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겨우 본문용 크기에서 산돌이니 윤디자인이니 하는 상업용 폰트를 보기 좋은 퀄리티로 찍을 수 없다. 그 대신 그 저해상도에서 그럭저럭 보기 좋게 특화된 전용 비트맵 명조/고딕 같은 폰트가 쓰인다.

지금 Windows의 굴림/바탕/돋움 같은 폰트만 봐도, 대략 19포인트까지는 이런 비트맵 버전이 쓰이다가 20포인트부터는 일반적인 윤곽선 버전이 투입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게 저해상도 프린터에서는 인쇄용으로도 쓰인다는 것이다.

저해상도 비트맵 폰트를 종이 인쇄를 통해 볼 수 있는 곳은 은행이고, 화면 형태로 볼 수 있는 곳은 단연 각종 LED 전광판일 것이다. 하지만, 이 분야도 해상도와 색상이 증가하면서 윤곽선 폰트(= 출판물용 고퀄 폰트)로 대체돼 가고 있다.

아날로그 숫자 카운터가 원래 주유소 주유기, 테이프 재생기의 구간, 자동차 계기판의 거리계 등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가 지금은 싹 다 사라지고 수도· 전기· 가스 검침기에서나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현상 같다.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완전히 멸종 급으로 자취를 감춘 건 아니라는 것이다. 공중 전화처럼 말이다.

나 역시 비트맵 폰트의 끝물 마지노 선을 지키는 프로그램을(날개셋 편집기..) 보유하고 있는 관계로.. 이런 비트맵 폰트를 주위에서 보면 괜히 반갑다. 컴퓨터라는 게 처음 등장하던 시절에 쓰였던 투박한 추억의 폰트들을 최대한 복원해서 내 프로그램에서 재생해 보고 싶다.

그나저나, 요즘은 민증이나 면허증 같은 신분증들도 온통 전산화됐기 때문에 실물의 필요성이 많이 없어졌다. 잃어버렸을 때의 타격도 많이 덜하다.
하지만 현물 실물의 중요성이 여전히 가장 크고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개인 증서는 아무래도 여권이지 싶다. 당연히 외국 나가 있는 중에 말이다. 신원 조회라는 게 전국구 급으로는 수월하게 되지만 그게 세계구 급으로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가 무슨 음모론자들의 주장처럼 세계 단일 정부로 가는 건 말처럼 호락호락 쉽게 가능하지 않다.;;

여권도 카드가 아니라 통장 같은 수첩 형태이고, 도트 프린터로 찍은 기록들이 덕지덕지 추가될 것 같은데 그래도 얘는 통장보다는 인쇄 스타일이 옛날식이 아닌 것 같다.

3. 일반인 소비자가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

(1) 증기 같은 외연 기관은 교통수단의 동력원으로는 진작에 퇴출됐다. 허나, 외연 기관 자체는 증기 터빈의 형태로 지금까지도 엄연히 현역이다. 지금 세계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압도다수는 증기 터빈 발전기를 돌려서 생산된 것이다. 화력이든, 원자력이든.

(2) 선박은 비행기에 밀려서 대륙 간 장거리 여객 교통수단으로는 완전히 퇴출됐다. 그러나 화물을 살펴보면?? 선박이 없이는 세계 물류가 돌아갈 수 없다. 운하가 하나 틀어막히기만 해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우리는 얼마 전에 목격한 바 있다.

(3) 인터넷을 통해 지구 반대편으로 정보 전송이 가능한 것은 압도다수가 인공위성이 아니라 해저 케이블 덕분이다.

(4) 8비트 CPU는 성능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다루는 PC나 게임기용으로는 수십 년 전에 진작에 퇴출됐다. 그러나 그 정도로 높은 성능이 필요하지 않고 최소한의 제어만 하면 되는 기기들.. 밥솥, 자판기, 전광판 이런 데서는 저렴한 가격에 낮은 전력 소모 등 유용한 구석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임베디드용으로 세계에서 여전히 수십억 개씩 생산되고 있다~! 다른 분야에다 비유해 보면 거의 척추동물(PC)과 무척추동물(임베디드..)의 개체수 차이와 비슷할 정도이다.;;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니고 어중간한 16비트가 콩라인이 됐을 뿐..

(5) 오늘날 카세트 테이프는 컴퓨터에서나 오디오에서나 모두 한물 가고 퇴출됐다. 그러나 테라/페타바이트 급의 초 거대 용량의 백업 보관용으로 가장 우월한 저장 매체는 여전히 자기 테이프이다. 물론 이런 건 일반인이 가정에서 취급하는 급의 물건은 아니다.

(6) 컴퓨터의 통신 수단으로서 구닥다리 전화선과 모뎀은 진작에 퇴출되었다. 하지만 서류를 주고 받는 용도로 전화선 기반의 팩시밀리는 여전히 건재하다.
디지털이나 인터넷과 동떨어져 있지만 고유한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가게가 지금 영업을 하는 중인지 알아보는 제일 쉽고 확실한 방법은 카톡이고 이메일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이, 그냥 전화를 걸어 보는 것이듯이 말이다.;;
복사기, 스캐너, 팩스, 프린터는 종이를 다루는 복합기로 싹 통합해 버리기에 딱 좋아 보인다.

4. 저렴해지는 것, 비싸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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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3~4천만 원대인 걸 아시는가..??
배기량과 가격만 비슷하지 엔진 성능이나 효율, 편의 시설은 30년 전과 지금이 쨉이 안 될 것이고, 물가 상승도 쨉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지내냐고 누가 물었을 때 그랜저로 답하기가 지금이 훨씬 더 쉬워진 셈이다. 물론 그 대신, 그랜저보다 더 비싼 고급차가 나오기도 했고 말이다.

1990년대 초엔 486 컴터 한 대가 3백~5백만 원이었다. 당연히 그 시절 물가 기준으로. -_-
버스비, 우유· 라면처럼 원래부터 소액이던 것은 가격이 몇 배로 무섭게 뛰었지만, 옛날에 왕창 비쌌던 고급 기계는 가격이 놀라울 정도로 변하지 않거나 더 싸졌다.

컴퓨터는 CPU뿐만 아니라 메모리도 Windows 95가 처음 나왔던 시절에 4MB를 추가로 장착하는 데 십몇만 원 이랬었다.
이러니 PC 환경에서 16비트 도스를 좀체 졸업할 수 없었다. 가상 메모리를 구현하고 현대적인 32비트 운영체제를 돌리려면 메모리를 관리하는 데 드는 메모리도 필요하고 도스보다 훨씬 고사양의 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x86이 구닥다리 비효율을 감수하고라도 조밀조밀 CISC 방식으로 만들어진 건 메모리를 조금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사이에 메모리가 갑자기 64, 128, 256MB 이렇게 순식간에 뻥튀기 되기 시작했다. CPU 클럭 속도만 뻥튀기 된 게 아니었던 거다. 이렇게 메모리가 값싸고 풍족해진 덕분에 그 당시 Windows 9x 계열의 퇴출이 더욱 앞당겨지고 2000/XP 같은 NT 계열이 대세가 될 수 있었다!
메모리 반도체의 본좌인 삼성 전자에서 그 당시에 갑자기 외계인 고문과 공밀레를 열나게 시전해서 기술 혁신을 이뤄낸 건지는 잘 모르겠다. 무어의 법칙뿐만 아니라 황의 법칙도 거론될 정도였으니까..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동안 외모처럼, 어떤 분야엔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격이라는 것도 있는가 보다. 이런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쯤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5. 멀티미디어 기능

옛날에 PC가 성능이 뛰어나지 못했을 때는.. 텍스트 모드에서 한글· 한자를 찍기 위해서(!!!), 부동소수점 연산을 더 빠르게 하기 위해서, '삑삑'이 아닌 레알 사운드를 듣기 위해서 별도의 카드를 꽂고 애드온을 컴퓨터에다 장착해야 했다. 뭐, 상당수는 쌍팔년도 얘기이지만 1990년대 초중까지만 해도 동영상 재생 정도는 별도의 MPEG 카드를 꽂아서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 그래픽과 사운드는 기본적인 수준이야 CPU 메인보드에 이미 다 기본 내장됐다. 저 분야에서도 SoundMAX인지 인텔 비디오인지 하면서 Intel이라는 단어가 슬금슬금 보이기 시작했다.
  • 이제는 동영상 재생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을 실시간으로 부드럽게 녹화할 때에나 캡처보드 같은 별도의 카드가 필요한 듯하다. 물론, 평범하게 컴터를 다루는 모습이 아니라 복잡한 게임 장면을 녹화하는 것 말이다.
  • 아니면 GPU까지 빡빡 혹사시키는 high-end급 온라인 게임을 할 때, 머신러닝을 시킬 때..

  • TV 수신 카드는 요즘도 수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 모니터와 텔레비전이 모두 디지털에 LCD 기반으로 바뀌다 보니, 오랫만에 켰을 때 과거의 브라운관 수상기처럼 화면이 서서히 밝아지고 상이 커지는 모습도 볼 일이 없어져 있다. 이런 모션은 이제 프로젝터를 켤 때에나 가끔 보는 것 같다.

Posted by 사무엘

2022/06/08 08:35 2022/06/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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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와 황금도끼는 1989년에 처음으로 출시됐고 그 이듬해에 PC용도 나온 유명한 아케이드/액션 게임이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됐고 본인도 30여 년 전의 초딩 시절에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다.

전자는 미국산이지만 후자는 일본산이다.
전자는 뭔가 아크로바틱한 파쿠르 퍼즐 액션에다가 칼싸움이 보조로 가미된 정도이지만, 후자는 지형은 단순하면서 그냥 적들을 다양한 공격 기술로 죽여 없애는 전투 위주이다.

둘 다 굉장히 다양한 플랫폼으로 이식됐으며, 2편 같은 속편도 출시됐다.
그 당시의 흔한 관행이었겠지만, 둘 다 영화에서 리소스를 따 온 장면도 있다. (로빈 후드 칼싸움 / 악당들이 죽는 소리)
오늘은 이 두 게임을 나란히 비교해 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1. 원작 제작자

(1) 페르시아의 왕자: 잘 알다시피 Jordan Mechner라는 미국 뉴요커이다(1964년생). 어느 엄친아 영화학도가 갑자기 컴퓨터에 꽂혀서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모티브를 따 이런 게임을 혼자 뚝딱 만든 것이다. 그리고 제품의 유통사를 찾다 보니 브로더번드 소프트웨어와 계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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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주인공의 동작 모션을 자기 남동생한테 연기시킨 뒤, 그걸 촬영해서 한땀 한땀 도트 노가다로 입력했다는 것,
그리고 음악 작곡은 심리학자이던 아버지가 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이다. 그야말로 가족이 게임 개발에 참여한 셈이다.

(2) 황금도끼: SEGA에서 게임 개발자로 정식으로 근무하던 Uchida Makoto (마코토 우치다, 1955년생)라는 일본인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대여섯 명 남짓한 팀을 이끌며 개발한 게임이다. 세계관이 '코난 더 바바리안'(1982)이라는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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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현재까지도 SEGA의 중역으로 근무하고 있는 모양이다. 닛산 자동차의 CEO라 하는 1966년생 동명이인과 혼동하지 말 것.

2. 원작의 개발 플랫폼

(1) 페르시아의 왕자: 잘 알다시피 8비트 Apple II였다. 열악한 8비트 컴터에서 뭘 바라겠는가..? 화면 해상도는 320*200이 채 되지 않았고, 색깔도 끽해야 최대 4색이었다. 1980년대 말이라는 당대 기준으로도 하드웨어 환경이 후져 있었다.
그러니 얘는 원판이 아니라 후대의 이식작에서 그래픽이 훨씬 더 개선되면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2) 황금도끼: 페르시아의 왕자는 태생이 PC인 반면, 황금도끼는 태생이 오락실 오락기였다. SEGA System 16이라는 1985년작 오락기 전용 16비트 CPU를 기준으로 개발됐다.
8비트 대비 16비트라는 우월한 체급에다, 아마추어 프로그래머가 아닌 전문 개발자가 만들었지, 오락기 CPU는 PC보다 그래픽도 더 특화돼 있다 보니 황금도끼는 모든 여건이 페르시아..를 능가했다. 원작부터가 PC의 VGA를 능가하는 수백~수천 컬러 그래픽을 지원했다. 이식작들은 원판에 비하면 그래픽이 퇴보하면 퇴보했지, 더 나아진 경우는 별로 없었다.

페르시아의 왕자를 오락실에서 동전 넣고 플레이 했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ㅎㅎ
그게 오락실용이었으면 마릿수 잔기와 컨티뉴가 존재해서 죽을 때마다 press key to continue가 아니라 insert coin to continue가 됐을 것이고.. 애초에 "1시간 동안 무한대 잔기" 같은 시스템 자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동전을 넣을 때마다 시간이 10분 더 추가된다거나..;;

3. PC (MS-DOS) 버전 포팅

(1) 페르시아의 왕자: Lance Groody라는 미국인 프로그래머가 작업했다. PC의 화려한 256색 VGA 그래픽은 게임의 가치를 한층 끌어올려 줬다.
타 플랫폼 중에서 SNES용은 게임 스케일이 리메이크· 마개조에 가깝게 커졌으며.. 매킨토시용은 색깔뿐만 아니라 그래픽의 해상도도 크게 향상되었다.

(2) 황금도끼: John & Ken Sanderson라는 미국인 친형제 프로그래머 2인이 작업했다. 하지만 그래픽이 단조로워진 건 그렇다 쳐도, 각종 공격 동작도 많이 삭제되고 단순화되어서 오락실 원판에 비해서 게임성과 재미가 많이 깎였다.
얘는 오락기 지향적이어서 그런지, 매킨토시용으로 포팅되지는 않았다.

한편, 저 사람들 모두 1980년대 8비트 어셈블리어 시절부터 현재의 모바일 시대에 이르기까지 3~40년째 컴터 프로그래머로 쌩쌩히 현역을 뛰고 있는 걸출한 엔지니어인 것 같다. 검색해서 사진을 보니 서로 좀 비슷하게 생겼다..;;

도스용 페르시아의 왕자는 실행 파일이 C 컴파일러로 만들어진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황금도끼는 내 기억이 맞다면 딱히 그런 정황이 없고 여전히 근성의 어셈블리어가 사용된 것 같다.
저 때는 16비트 컴만 해도 엄청 비싼 고급 기종이고 C 컴파일러조차 사치였으며, 메모리를 겨우 몇천~몇만 바이트를 할당하는 것에도 실패할 가능성을 따지면서 전전긍긍해야 했던 시절임을 기억하도록 하자.;;

4. 후속작

(1) 페르시아의 왕자: 2편이 나왔다. 원판 특유의 그 2D 방 기반의 진행 시스템은 2편이 마지막이었으며, 그 뒤부터는 3D로 바뀐 후속편이 더 만들어져 나왔다.

(2) 황금도끼: 2편과 3편이 나오고 3D 리메이크 및 대전 액션 에디션(duel)도 나왔다. 하지만 후속작들은 원판에 비해 그리 좋은 평을 못 들었다. 얘들은 PC와도 연을 끊었기 때문에 컴터로 즐기려면 MAME를 돌리는 수밖에 없다.

5. 여담: 페르시아의 왕자 제작자의 주변 인물들

조던 메크너가 이 게임을 만들던 당시에 그와 오랫동안 동업하면서 그에게 많은 영감을 준 지인 중 하나로는 Tomi Pierce (1953~2010)라는 일본계 미국인도 있었다. 여자이고, 조던 메크너보다 나이도 띠동갑에 가깝게 더 많았던 사람인데..
일례로, 이 누님이 그 당시 개발 중이던 페르시아의 왕자를 찬찬히 뜯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게임은 퍼즐만 있어서는 안 될 거 같아. 더 재미있어지려면 전투가 꼭 있어야겠다. 네가 예전에 만들었던 가라테카처럼 말이야.”
“헐?? 난 그 정도로 폭력적인 건 좀.. 게다가 이제 그런 기능을 집어넣기에는 애플2에 메모리도 얼마 안 남았는걸..”
“아 됐고, 꼭 명심해~ combat, combat, combat!! ^^

조던 메크너의 회고에 따르면, 토미 누님은 그야말로 combat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얼굴 마주칠 때마다 전투를 꼭 넣으라고 압박을 넣었다고 한다. (☞ 관련 동영상 링크 10분 45초 ~ 11분 사이 지점)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다. 칼싸움은 원래 계획에 없다가 뒤늦게 추가된 것이었다. 이때는 동생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모션 촬영을 할 수 없었던지라, 로빈 후드 영화에 나오는 칼싸움 장면을 따서 스프라이트를 만들었다.
이런 일화가 있었고, 나중에 1996년경인가, 조던 메크너가 Last Express라는 대작 게임을 만들 때는 아예 저 누님과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그랬는데 Tomi Pierce 누님은 지병이 있었는지 어쨌는지.. 2010년, 50대 중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던 메크너의 개인 블로그를 보니.. 그 당시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억누르며 정말 엄청난 장문의 추모글을 올렸었다. (☞ 링크)

고인은 그야말로 어린 시절부터 천재 엄친딸이었고 SAT 만점에 아이비리그 자유이용권을 끊었었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자유분방하게 살았고, 비록 문과 출신이지만 컴퓨터 게임 사업에 눈독을 들였고 어쩌구저쩌구..
투병 중에도 늘 쾌활하고 긍정적이고 유머와 위트와 센스가 넘쳤고, 나도 살아 생전에 이분과 더 오래 있으면서 지혜를 나눠 받지 못해서 아쉽다고.. 구구절절 애도의 글을 써 놨더라.

게다가 더 찾아보니 Tomi Pierce는 브로더번드 소프트웨어의 창립자인 더글러스 칼스턴(Douglas C. Carlston 1947~)이라는 사람과 결혼까지 한 사람이었다.

더글러스는 하버드 학부 출신에 모교의 로스쿨도 졸업한 수재였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 중퇴이지만 저 사람은 하버드 졸업생.. 그리고 조던 메크너는 예일대 졸업생..ㄷㄷㄷㄷ
그랬는데 컴퓨터라는 기계에 꽂혀서 안정된 진로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고.. 혼자만 한 게 아니라 자기 남동생 Gary Carlston 및 여동생까지 끌어들여서 삼남매가 나란히 동업을 했다. 그래서 회사 이름도 band of brothers을 살짝 바꿔서 broderbund라고 지은 것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 이런 식으로 연결되는구나.
참고로 Tomi Pierce의 여동생은 Naomi Pierce (1954~)인데.. 이 사람은 하버드 대학교의 동물학과 교수가 돼 있다.
우리나라의 옛날 석 주명 박사처럼 나비 연구 쪽으로 세계구급 전문가라고 한다.
그리고 Tomi건 Naomi건 저분들은 딱 정확하게 본인의 부모님 연배이다.. ㅎㅎ

이렇게 Tomi가 세상을 떠난 뒤, 조던 메크너는 2011인가 2012년쯤에 페르시아의 왕자 애플 2 소스를 공개했었다. 휴~
그 반면, 황금도끼는 개인이 아닌 상업용 게임 개발사의 프로젝트로 처음부터 진행돼서 그런지.. 이런 정도의 재미있는 개발 에피소드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소스가 공개된 적도 물론 없었다. 아케이드 원판의 롬 파일이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듯..

그래도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을 만든 조던 메크너의 동생 데이비드 메크너.. 황금도끼의 도스판을 이식한 존과 켄 샌더슨.. 그리고 브로더번드 소프트웨어를 창립한 더글러스와 개리 칼스턴.
형제지간인 사람이 이 글에서 세 쌍이나 언급된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

Posted by 사무엘

2022/04/21 08:35 2022/04/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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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지털 카메라

요즘은 아시다시피 스마트폰에 카메라 렌즈도 하나로 모자라서 둘 이상이 달리며, 이걸로 사람 눈과 뇌가 하는 것처럼 원근감까지 기계가 인지하는 지경에 도달했다.
하긴, 모니터와 TV는 종횡비가 진작에 다 와이드로 바뀌었는데 카메라로 찍는 사진의 종횡비는 여전히 4:3이 기본인 게 좀 답답하게 느껴진다. 카메라 렌즈의 화각이 커지고 렌즈가 여러 개 달리기까지 한다면 한번에 더 넓은 풍경을 길쭉하게 사진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화소 수나 후보정 기능뿐만 아니라 본인이 정말 신기하게 생각하는 기능은.. 사진의 흔들리는 걸 걱정할 일이 예전에 비해 매우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건 소프트웨어적인 흔들림 보정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옛날에 덜 스마트하던 디카는 사진이 흔들려서 망치는 일이 흔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그마한 화면으로는 찍었던 사진이 흔들렸다는 걸 인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사진을 찍은 현장에서 흔들림을 감지했으면 곧장 다시 찍기라도 했을 텐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사진을 PC로 옮겨서 큰 모니터 화면으로 본 뒤에야 흔들리는 걸 알게 됐다면 허탈함 그 자체이다. 위조지폐를 현장에서 바로 적발하지 못하고 은행에 입금할 때에야 뒤늦게 알아챈 것과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나마 재래식 디카가 스마트폰보다 나은 점은 배터리 용량이 더 많고, 안 쓸 때는 꺼 놨다가 나중에 켤 때 부팅이 필요 없이 즉시 켜져서 ready 상태가 된다는 점, 비슷한 체급일 때 zoom 성능이 더 뛰어나다는 점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앞으로 영상뿐만 아니라 음성도.. PC에서 마이크 꽂아서 2채널 스테레오 음향을 한번에 입력해 넣는 방법은 생길 기미가 없는지 궁금하다.

2. 휴대전화

라떼는 말이야..

  • 체크카드: 신용카드 = 피처폰: 스마트폰 과 비슷한 관계인 것 같다. 특히 둘 다 왼쪽에 비해 오른쪽(신용, 스마트..)은 영업사원들이 기를 쓰고 팔려고 안달 나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 인류 역사상 전화기가 크기가 가장 작던 때는 폴더폰 시절일 것이다. 그러다가 요즘 스마트폰은 화면과 배터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좀 커져 있다.
  • 폴더폰 시절에는 전화기를 통째로 거치대에 꽂아서 배터리 충전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ㄷㄷㄷ 기억하시는가? 그리고 2000년대엔 충전 단자를 통일한답시고 한때 24핀짜리 표준 단자가 제정되기도 했었다.
  • 그렇게 전화기가 자그맣고 별 기능이 없던 시절에는 배터리를 한번 충전해서 2~3일은 기본으로 썼다. 통화를 안 하고 있으면 무려 1주일 가까이 가는 물건도 있었다.

먼 옛날에 사람들이 뭔가 자원이 남은 비율 퍼센티지를 신경 쓰던 것이 30여 년 전엔 Windows 3.x/9x의 시스템 리소스 퍼센티지였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는 폰의 배터리 퍼센티지일 것이다.;;
그 밖에..

(1) 전화기에서 스피커폰은 귀를 송수화기에다 대지 않아도 통화를 들을 수 있게 하는 무척 편리한 기능이다. 하지만 이때 기기에서 내는 수신음이 또 마이크를 통해서 송신되고, 그게 또 수신되어 스피커폰으로 들리는 현상이 무한 반복되면서 소리가 울리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건 통신 기기에서 굉장히 고전적으로 유명한 문제이다. 자기가 받은 소리가 중복 송신되어서 울리지 않게 하는 건 echo 제거(echo cancelling) 기술이라고 따로 있다. 보통은 받는 쪽에서 echo 제거를 적용해야 보내는 쪽에서 echo를 듣지 않게된다.
뭔가.. 헬리콥터에서 로터가 돌면서 동체까지 돌아가는 현상을 상쇄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꼬리날개, 반대 방향 로터 등..)

(2) 내가 말하지 않고 듣고 있을 때는 내 쪽의 불필요한 소음이 상대방에게 전혀 송신되지 않게 하는 일종의 mute(마이크 끄기)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 내 쪽에도 상대방에게 들리기를 원하지 않는 배경 소리 같은 게 있기 때문이다. 뭔가 전화기를 무전기에 가깝게 사용하게 되는 듯하네..

(3) 자동차 번호판이 공간이 부족해서 자릿수가 하나 확장됐고, 인터넷 주소도 공간이 부족해서 IPv6가 등장했는데.. 휴대전화 번호도 마찬가지다. 010 다음의 8자리는 좀 간당간당해 보이는데 이건 어째 공간을 확장한다는 말이 없는 것 같다.

(4) 스마트폰은 앞서 언급했던 디지털 카메라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휴대용 전자기기들의 역할을 흡수하고 대체했다. mp3 플레이어, 전자 사전, 계산기 따위는 얄짤없지만, 그나마 독자적인 역할이 있어서 완전한 상위 호환 대체가 어려운 건 손목시계이다.
스마트폰은 이것저것 기능이 많아지다 보니 보다시피 옛날 폴더폰이나 어설픈 피처폰 시절에 비해 덩치가 꽤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얘는 과거의 회중시계의 대체제이지, 이대로 손목시계를 대체하기는 난감하다. 그 분야는 스마트워치라는 물건이 따로 만들어져 나오게 됐다.

3. 소프트웨어

  • 지난 2009년은 코드소프트와 티맥스 윈도우,
    2016년은 서든어택 2 (온라인 게임), 그리고 갤럭시 노트 7 (스마트폰)이 업계 최악의 굴욕 흑역사로 기록됐다.
  • 2021년은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완전히 접고 철수한 해, 인텔에서 비운의 IA64 프로세서를 드디어 20여 년 만에 완전히 단종시킨 해, 그리고 30여 년을 존속했던 경상용차 다마스와 라보가 단종된 해가 되었다.
  • 또한, 2020년대가 되니 애플에서는 PowerPC, x86에 이어 CPU 이주를 또 시도하고 있고.. Windows와 macOS 모두 메이저 버전이 10에서 11로 올라갔다.;;

2010년대 중후반에 컴터 소프트웨어 세계에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인상깊게 느낀 변화는 다음과 같다.

  1. 플래시가 순식간에 웹에서 싹 퇴출되고 사라짐. 브라우저들에서 지원도 끊김.
  2. 왕년에 스타와 워3, 디아블로를 만들었던 그 천하무적 제작사가 정말 급속히 몰락하고 망조가 듦.
  3.  IE 브라우저가 이제 완전 퇴출 직전임. 얘 없어진 뒤에도 공인인증서 로그인과 은행 돈거래가 가능하려나..??

(1) 플래시 액션스크립트는 전부 천하무적 html5 자바스크립트로 바뀌어서 오늘날까지 건재한다. 이젠 웹브라우저가 그 자체만으로 가상 머신에 반쯤 운영체제처럼 돼 버렸다.
플래시에서 원래 주전공이던 벡터 애니메이션 대신 웬 동영상(flv)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유튜브가 플래시 없이 html5 기반으로 바뀐 것, 인터넷 지도와 구글 어쓰가 아무런 플러그인 없이 브라우저에서 바로 구동되기 시작한 것.. 모두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플래시는 vb6에 대응하고, html5는 vb.net에 대응하는 것 같다.

(2) 게임 업계는 정말 영원한 강자란 없는 것 같다. 이드 소프트, 세가의 스즈키 유, 오리진의 울티마 만들었던 그 우주먹튀 뭐시기.. (아! 리처드 개리엇) 등등.. 한때의 스타 개발자가 언제까지나 계속 스타이지는 못한 것 같다.
지금은 FPS고 RTS고 나올 거 다 나오고 나서 새로운 게 뭐가 있을까? 이젠 현질 아이템 장사 말고 다른 돈 버는 방법이 남아 있을까..?? 궁금하다.
뭐 몇 년 전에 리니지 M은 돈을 빗자루로 긁어모으면서 그렇게도 성공했다고는 하더라;;

(3) 20여 년 전엔 마소 IE의 독점 불공정 끼워넣기 때문에.. 수장인 빌 아저씨는 평생 먹을 욕을 이 시기에 다 쳐먹었다. 카피레프트 안티 마소 진영으로부터는 완전 뿔 달린 악마 취급까지 받았다.
사실 더 옛날에, 1994~95년경엔 빌 아저씨가 msn으로 세계를 정복할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어림없는 얘기. 인터넷의 물결을 막을 수 없으니 다음으로 브라우저 독점을 생각했었으나 그 계획은 2004년 파이어폭스 0.8, 2008년 크롬과 함께 완전히 물 건너갔다. 넷스케이프가 이루지 못한 일을 쟤들이 대신 해냈다.

그리고 지금이야.. 웹브라우저 점유율을 제일 많이 떼어간 건 모바일이다. 마소가 범접하지 못한 완전히 다른 플랫폼..

Posted by 사무엘

2021/12/03 08:34 2021/12/0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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