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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사모하는 찬양

0.
교회에서 부르는 찬양 내지 영적 노래들의 상당수는 주제가 "거룩하신 하나님 찬양, 우리를 구원하신 주께 감사, 예수님의 보혈~~" 이렇게 하나님의 성품 아니면 그분이 베푸신 위대한 구원 쪽이다.
그런데 드물게 예수님의 재림 내지 내세, 종말을 염원하는 미래 지향적인 곡도 있다. "그 날은 오리라, 예수님 이 땅에 어서 오시옵소서".. 이것도 과거나 현실 지향적인 기존 교리들과 대등한 핵심 교리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건 은사주의 진영에서 "성령님이여 어서 뜨거운 불처럼 내 심령에 임하시옵소서" 이러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니 오해 마시기 바란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령이 당연히 임하니 걱정할 필요 없고, 뜨거운 체험을 하고 싶으면 그냥 사우나에 가면 된다.

그 이상으로 오순절 때 일회적으로 일어났던 표적, 혹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지금 일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건 교리적으로 무의미하고 맞지 않는다는 게 본인의 소신이다. 더 자세한 건 이 글의 주제와 벗어나는 얘기이므로 여기서 더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1992년에 발매되었던 주찬양 8집 "Hosanna! 이 땅을 고치소서" 앨범에서는 마지막 트랙이 이런 재림 염원과 관련된 짤막한 찬양곡들의 메들리였다. "누가 아는가 / 마라나타 / 고개 들어 주를 맞이해"인데.. "누가 아는가"는 송 명희 작사인 국산곡이고 뒤의 두 곡은 외국곡 번역이었다.

1.
그리고 본인도 옛날에 이런 구조를 염두에 두고 청년부 특송용 메들리를 만들어 봤었다. 2014년 10월이었으니 정말 옛날이구나~
바로 "나의 사랑 나의 생명 - 우리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 보라 그 날이 곧 다가오리라" 이다. 세 곡 다 국산 창작곡이다.

첫 곡은 시 18:1을 염두에 둔 어린이 찬송 스타일의 사랑 고백이다.
둘째 곡은 구 정민 목사가 작사· 작곡한 창작곡으로, 가사 내용은 열심과 헌신 결단이다. 단, 2절 가사가 '썩어져 죽는' 게 아니라 그냥 떨어져서 죽는다고만 묘사해도 될 것 같다(요 12:24).
그 뒤 마지막 곡이 종말과 재림 소망이다. 가사를 보면 예수님의 지상 재림뿐만 아니라 천년왕국과 영원(새 하늘과 새 땅) 얘기까지 종말 장면이 다 나온다.

세 곡은 가사 내용으로나 멜로디로나 이어서 부르기에 큰 무리가 없다.
또한 첫째 곡과 셋째 곡은 파트가 둘로 나뉘어서 서로 돌림노래 부르듯이 제각기 재잘거리는 효과가 있다. "영원토록 정성 다해 사랑합니다"도 그렇고, "보라 그 날이"는 더 심하게 서로 따로 논다.
이런 건 회중 찬송으로는 살려서 부르기 어려우니 특송으로 실제 효과를 구현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이렇게 메들리를 만들었던 노하우를 살려, 그로부터 3년 반 뒤인 2017년에는 "맑고 밝은 날 / 변찮는 주님의 귀한 약속 /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 메들리를 만들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가장 감미로운 곡들 조합이었다고 생각한다.
2014년작은 맨 첫 곡 "나의 사랑 나의 생명"이 사랑 고백이었는데, 2017년작은 마지막 곡 "사랑해요 목소리 높여"가 사랑 고백이었다.

2.
그 다음으로 본인 기억에 남는 특송 편성은 "그 날 다가오네"이다. 2018년 10월작. (☞ 링크)
이 곡은 우리 청년부 내부에서 꼭 불러 보고 싶다는 제안이 있었고, 또 이런 작은 교회 여건에서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리마스터링을 해서 부르기에 굉장히 적당한 곡이기도 했다. 그래서 곧장 잘 추진되었다.

이 곡은 가사부터가 "그 날 다가오네"로 시작하니, 히 10:25를 1초 만에 바로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그 날이 다가옴'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는 말씀 낭송을 전주 때 넣었다. 목소리 굵직한 형제를 통해서.. 전주는 원곡 첫 소절의 끝부분을 살짝 변형하는 형태로 본인이 만들어 넣었다.

처음엔 남녀 듀엣으로 시작한 뒤, "얼마나 기쁠까, 구주 예수 만날 때" 후렴에서 합창이 들어간다. 그리고 2절에서는 조를 G에서 A플랫으로 반음 올린다.

2절 뒷부분에서는 잠시 무반주 후렴 반복도 넣었다.
진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격스러운 장면을 생각하면서 목놓아 크게 외쳐 부르라고 친구들에게 주문했다.
그 뒤 맨 마지막 소절 "얼마나 영광스런 날일까"도 반복하다가 자매 솔로로 최종 마무리를 짓게 순서를 짰다.
별다른 고민을 안 해도 개조는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곡을 보자마자 곧바로 척 들었다.

예배 때 회중 찬송으로 큰 기복 없이 밋밋하게 부르던 곡을 분석해서 각종 파트, 순서 추가, 관련 성구 낭송, 관련곡 메들리로 가공 후 특송 형태로 부르는 것.. 개인적으로 굉장히 즐겁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꼭 너무 웅장하고 어렵고 화려하고 복잡한 별도의 특송용 곡을 찾을 필요 없이 말이다.

앞서 소개했던 "고개 들어"라든가 "보라 그 날이"는 엄격 진지 근엄 웅장한 분위기이다.
그러나 "그 날 다가오네"는 막 화려하고 웅장한 분위기가 아니며, 좀 삐딱하게 보면 슬프고 한풀이 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고 고달픈데 어서 주님 오셨으면 좋겠다~~ 같은 징징거림 말이다.
뭐, 하지만 이런 부류의 곡도 진짜로 슬프고 힘들 때 부르면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그 날 다가오네"는 Jim Hill (full name: James Vaughn Hill 1930-2018)이라는 사람이 1955년에 지은 곡이다. 실제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나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영감을 받아서 저 곡을 썼다고 한다.
그는 6 25 사변 때 참전한 적이 있고, 또 빌/글로리아 게이더와도 같이 찬양 사역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2018년 1월에 80대 후반의 나이로 소천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3/05/14 08:35 2023/05/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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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보호에 대해서

1. 다음은 아주 정상적이고 건전하고 바람직한 동물 보호 사례일 것이다.

  • 진짜 처벌하고 잡아내야 할 밀렵이나 잔인한 동물 학대 현장을 고발함
  • 길고양이 상습 살해범을 집요하게 추적해서 잡음
  • (우리나라 얘기는 아니지만) 다른 맹수들이 무차별 보복 학살당하는 걸 막기 위해, 소수의 알려진 식인 맹수 개체를 먼저 앞장서서 잡아 없앰

2. 다음은 좀 논란거리에 가깝다.

(1) 개고기 반대
내 개인적으로.. 개고기를 막 좋아하고 즐겨 먹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개 잡는 것만 특별히 더 잔인하다고 보는 건 역시 반대다. 돼지나 소도 생물학적으로 그 정도 감성과 지능은 다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이 개나 고양이를 인간과 더 친밀한 애완동물이라고 여기는 정서 그 자체가 잘못된 것 역시 아니다. 그건 나도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고기는 저 두 이념이 충돌해서 발생하는 논란거리이다.

다만, 오늘날 개고기는 특별히 반대 운동을 할 필요도 없이 더욱 수요가 줄고 사양 산업이 되고 도태하는 중이기도 하다.;; 다양한 먹거리가 넘쳐나는 오늘날, 굳이 이런 보신탕을 찾아 먹으면서 몸보신을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합법화나 규모의 경제의 혜택을 받지 못해서 막 저렴하지도 않으니, 가성비조차 별로 맞지 않다.

(2) 갑각류나 어류도 고통 없이 잡아야 된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물고기를 산 채로 바닥에 패대기쳐 잡는다거나, 낙지나 조개조차 산 채로 불에 올려서 먹는 건 비위에 거슬린다. 차라리 바로 단칼에 썰어서 즉사시키고 회를 만든다면 모를까..
그런데 저것들을 일체의 고통 없이 잡느라 맛이 떨어지거나 수산물 값이 왕창 오르게 된다면 그건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난 거기까지는 선뜻 공감이 되지 않는다.

3. 끝으로, 이건 동물 보호라고 볼 수 없으며, 공권력으로 물리 치료나 금융 치료, 아니면 아예 정신 감정을 시켜야 할 미친 짓일 것이다.

  • 개 물림 사고나 갑툭튀 교통사고를 유발해 놓고는 "우리 개는 안 물어요" 식으로 우기기
  • 아예 고깃집 앞에서 육식 반대 시위 (극단적인 채식주의)
  • 브리짓 바르도 아지매의 망언 (동물 보호도 아니고 그냥 인종 우월주의에 입각한 거의 정신병임-_-.. 개고기는 그냥 구실일 뿐)

이상.. 이 주제는 이렇게 등급이 딱 정리되지 않겠나 싶다. ㄲㄲㄲㄲㄲ
동물을 잡을 때 잡더라도 살아 있을 때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복지를 보장해 주고, 유흥 쾌락용으로 학대하지 말며, 식용이나 연구 목적으로 죽일 때는 단칼에 빨리 보내 주고, 동족이 보는 앞에서 죽이지 말라..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이다. 곤충 이상으로 빨간 피가 흐르는 고등한 동물 정도라면 말이다.

단지,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일체의 살생을 하지 말라느니, 아예 동물을 인간과 동급으로 취급해서 단위조차 '마리'가 아니라 '명'이라고 하라느니.. 그건 미친 정신병임이 틀림없다. -_-;;;
난 그냥 애완동물이지, 반려동물이라는 말도 개인적으로 좀 거북하게 느낀다. 동물이 무슨 배우자 반려자와 같은 급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 나머지 얘기들

1.
맹인 안내견 같은 동물은 애완용이 전혀 아니며, 얘야말로 진짜로 반려동물에 가까운 필수품이다.
얘는 자동차로 치면 긴급자동차나 장애인 탑승 차량과 같으며, 생명 직결 개인 의료기기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다. 법적으로 온갖 특례를 받기 때문에 어지간한 동물이 못 들어가는 공공장소나 대중교통에 다 들어갈 수 있다.
고양이나 돼지를 이런 식으로 훈련시킬 수는 없고, 개의 특정 품종만이 이렇게 육성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런 안내견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공공장소에 들여보내는 것은 운전 연습 도로 연수 중인 차량만큼이나 배려와 보호를 받아야 할 것이다.

2.
매스컴 타고 형사 처벌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동물 학대를 저질러서 처벌받는 사람들의 범행 동기는 대체로 다음 중 하나로 정리되는 것 같다.

  • 감정형: 지 기분 꼴리는 대로. 마침 앞에 연약한 강아지나 고양이가 있으니까 때리고 밟고 던지고 죽이면서 화풀이
  • 경제형: 위의 경우와 달리, 딱히 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동물을 처리하는 시간· 비용을 줄이기 위해 비인도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주로 농촌 얘기이다.
  • 신념형: 캣맘 같은 동물 보호 운동하는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서 경고하려고..

경제적인 이유를 뺀 나머지 이유는 진짜 그냥 싸이코패스이다. 동물한테 그런 짓을 할 정도이면 사람도 그렇게 해칠 수 있기 때문에 동물을 상대로 흉악한 범죄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다. "어떤 사회의 선진화 척도를 보려면 최상이 아니라 최하가 어느 수준인지를 확인해 봐라. 화장실 위생을 살펴보고, 동물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보아라" 부류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다만, 나치 독일이 히틀러 총통의 주도 하에 세계에서 거의 최초로 현대적인 동물 보호법을 제정했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동물을 보호하면서 인간은 가스실로 보낸 건 특별하게 비뚤어진 신념이 작용했기 때문에 벌어진 좀 예외적인 사례에 가깝다.

3.
동물은 자기 한 끼를 해결할 만큼만 다른 동물을 죽이고는 그치는 반면, 인간은 먹지도 않을 거면서 전쟁을 벌여 수많은 동족을 잔인하게 죽인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식량을 저장· 축적할 줄을 알고 또 식욕보다 더 고차원적인 욕심도 잔뜩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보다 더 크게 살륙을 저지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은 전쟁을 벌일 때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이나 항복한 포로, 어린아이는 어지간해서는 죽이지 않고 보호한다. 사냥꾼도 최소한의 윤리 의식이 있다면 새끼 밴 암놈은 도의적으로 잡지 않는다.

반대로 야생동물의 세계에서는 그런 배려 따위 없다. 오히려 연약하고 사냥하기 더 쉬운 새끼를 더 집중적으로 잡아먹는다. 임신한 암놈이 잡아먹히면 안의 태아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 보너스이다.;;;
물론 짐승이야 오로지 본능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것이니, 여기에 무슨 가치 판단을 하고 선악을 따지는 건 아무 의미 없는 짓이다.. 오히려 인간도 너무 굶주리면 천륜이고 인륜이고 뭐고 다 저버리고 생존을 위해 닥치는 대로 잡아먹게 되는데, 야생동물의 저런 행동은 딱 그런 유형임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동물 보호 이념이 이런 생태에 개입할 필요는 없으며 그럴 수도 없다.

4.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담긴 성경이야 사람과 짐승은 다르며 육식도 당연히 적극 인정하는 논조이다. 구약 시대에는 심지어 식용이 아니라 속죄제 명목으로 어린양을 잔뜩 잡아서 피를 뽑아내고 고기를 불태우게 했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 성전의 뒷마당에 어린양들을 기리는 위령비 같은 거 만들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그런 어린양이 불쌍하면 진짜 어린양이신 예수님 믿고 죄나 짓지 않고 살면 된다.

동물에 대해서 필요 이상의 동정심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성경에도 어느 정도 동물에 대한 복지와 배려는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소가 구덩이에 빠져서 못 나온다면 안식일에라도 즉시 사람을 동원해서 건져내야 할 것이고(눅 14:5), 어미의 젖으로 새끼 염소를 삶지 말며(출 23:19, 34:26; 신 14:21).. 곡식 밟는 일을 하는 소의 입에다 마개를 씌우지 말라는 명령도 있다. (신 25:4)

곡식을 마음껏 먹으면서 일하게 할 정도이면 다른 분야에 대한 배려가 어느 정도일지도 인간의 지능으로 유추가 가능할 것이다. 심지어 이 명령은 이례적으로 신약 성경에서 말씀 사역자· 목회자가 받는 보수를 논할 때도 비유로 인용돼 있을 정도이다. (고전 9:9, 딤전 5:18)

Posted by 사무엘

2023/05/11 19:35 2023/05/11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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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토가 분단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철도의 변화

우리나라 인서울에서 일반열차를 취급하는 거대한 시종착역은? 서울, 용산, 청량리이다.
영등포는 저런 역들에 밀려서 고속열차(KTX, SRT)는 취급하지 않게 됐다. '대구' 역이 동대구에 밀려서 KTX를 취급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노량진은 한때는 소수의 일반열차를 취급했지만 2000년대 초부터 이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일반열차를 취급하지 않지만 굉장히 큰 부지를 갖추고 있는 역으로는 경의선 방면의 수색, 경원선 방면의 광운대(구 성북), 그리고 중앙선 방면의 망우 정도가 있다. 수색과 망우는 애매하게 가까운 곳에 환승역이 또 놓여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DMC, 상봉).

만약 우리나라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망우는 몰라도 수색과 광운대 역은 뭔가 강북의 영등포처럼 일반열차가 다니는 큰 역이 됐지 싶다. 경의선과 경원선은 일제 시대의 복선이 그대로 유지되고, 서울 부근은 아예 2복선도 됐을 것이다.
아울러, 경의선 개성과 경원선 철원은 수원이나 춘천 같은 아주 중요한 역이 됐을 것이다. 특히 철원은 금강산선이 분기하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상상만 해도 흥미롭지 않은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로부터 춘천 사람, 정확히는 춘천의 지주· 유지들이 한 근성 했다.
경춘선은 일제 말기에 만들어진 사철인데..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 자본으로 만들어졌다~!
교통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일제가 강원도청을 춘천에서 철원으로 옮기려 하자 춘천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사재를 털어서 서울에서 춘천으로 가는 철도를 뚝딱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이것이 경춘선의 유래이다.
난 강원도청은 원주에 있다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춘천이 뺏어 버린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2. 1988년

지난 쌍팔년도 1988년은.. 서울 올림픽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철도나 안보 관광과 관련해서도 흥미로운 변화가 제법 있었던 해이다.

(1) 경북 청도에는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주민들이 1967년에 직접 건립했던 '신거'라는 이름의 간이역이 있었다. 하지만 수요 저조로 인해 1988년경에 비록 완전 폐역은 아니지만 역 건물이 헐렸다. (날짜 불명)
그런데 공교롭게도, 경북 봉화에서 주민들이 직접 건립하고 철도청에다 열차 좀 세워 달라고 민원을 때렸던 영동선 '양원' 역이 이 해 4월 1일에 정식 개업했다~!
오지에 사는 주민들이 직접 세운 간이역이 비슷한 시기에 하나는 없어지고 하나는 새로 생긴 셈이다.

(2) 1974년 11월경엔 연천 고랑포에서 북괴의 남침 땅굴이 최초로(제1) 발견됐는데.. 얘는 1976년부터 한동안 일반인에게 공개돼 오다가 1988년부터 비공개로 바뀌었다고 한다. 다른 땅굴들과 달리 너무 얕고 전방과 가깝고, 단면적이 너무 작아서 다니기 힘든 점이 감안된 듯하다.
지금까지 발견된 남침 땅굴 4개 중에 1호인 얘만 유일하게 비공개이다. 그런데.. 1988년에 정확하게 언제부터 비공개로 바뀌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나 신문· 방송 보도 자료를 전혀 못 찾겠다.

(3) 아울러, 1988년에는 철원에서 안보 관광지를 크게 정비했다.
우리가 아는 그 월정리 역 건물을 처음으로 만들고 구 철원 역 터에다가 승강장을 꽂은 때가 이때라고 한다.
이것도 1988년의 정확히 언제 있었던 일인지 자료를 못 찾겠다. 올림픽 때문에 정신 없었을 하반기는 아니고 정황상 상반기에 있었던 일 같다.
이 철원의 이벤트와 제1땅굴의 봉인이 서로 연계해서 같이 발생한 사건인지는 잘 모르겠다.

3. 우주 개발과 각종 토목 건설

철덕과 우주덕이 결합하면.. 취소된 아폴로 18, 19, 20호 얘기를 읽으면서 취소된 구 서울 3기 지하철 10, 11, 12호선 계획이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흠, 미국의 우주 탐사 계획에 제동을 건 게 베트남 전쟁이었다면, 한국의 3기 지하철 계획에 제동을 건 것은 IMF였구나.;;

그리고 역덕/밀덕과 우주덕이 결합하면.. 아폴로 8호와 함께 미드웨이 해전 정도가 떠오를 수 있을 듯하다.
미드웨이 해전은 2차 대전의 딱 중반이던 1942년 6월에, 미국이 기가 막힌 첩보를 통해 일본의 대형 항공모함 4척을 몽땅 격침시키고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일본을 역전하는 첫 계기를 마련한 전투이다.

그것처럼 아폴로 8호는 1968년 말, 유인 달 착륙 경쟁의 중반쯤 되던 시기에, 미국이 소련을 역전하는 첫 계기를 마련한 미션이다. 시간에 너무 쫓긴 나머지, 처음 시도하는 여러 위험한 실험들을 한꺼번에 과감하게 추진했는데, 그게 다행히 전부 멋지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구 대기권뿐만 아니라 지구 중력까지 벗어난 우주에 역사상 처음으로 나가 본 것, 일부 윤곽이 아니라 완전히 동그란 지구의 전체 모습을 최초로 목격한 게 아폴로 8호 때이다~!

그리고 요즘은 고속도로나 지하철 모두, 국가가 주도해서 국비만으로 주요 굵직한 간선을 건설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젠 여기저기 자잘한 지선이나 경전철을 만들고 있고, ‘민자’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것처럼 오늘날은 우주 개발도 옛날 냉전 시절처럼 국가가 육성하고 체제 우월성 경쟁을 위해 인간을 달에 보내려고 미친 돈지랄을 하는 형태는 진작에 끝났다.
이제는 철저히 민간 기업 위주로, 실용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1세계와 2세계가 경쟁하는 게 아니라, 여러 나라들이 힘을 합치고 협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북한이 남한보다 1년 더 먼저, 1973년에 평양 지하철 천리마선을 개통한 것에도 체제 경쟁 입김이 분명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엔 운동 경기 기록은 말할 것도 없고, 뭐든지 먼저 만들고 건물도 더 크게 올리고, 깃대를 올려도 더 높게 올려야 직성이 풀리던 정말 오글거리고 유치한 시절이었다.

남한과 북한은 겨우 대성동 기정동 깃대라든가 63빌딩 VS 류경호텔을 갖고 경쟁했지만, 미국과 소련은 우주를 갖고 경쟁했다는 스케일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남한은 그때 이후로 그야말로 눈부신 서울· 수도권 지하철과 광역전철망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반면, 북한 평양은 저 때 이후로 시간이 정지해 버렸다는 차이가 있을 뿐..

Posted by 사무엘

2023/05/09 08:35 2023/05/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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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우한 폐렴 방역이 풀리고 일상이 사실상 다 회복된 것 같다. 버스· 지하철을 탈 때 귀찮은 마스크를 챙기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한지..? 요즘은 외국 여행 떠나는 비행기 표도 없어서 못 구하는 지경이라고 한다.
내년의 프랑스 파리 올림픽은 정상적으로 치러질 수 있을 것 같다. 하필 도쿄 하계와 베이징 동계 올림픽 때만 타이밍이 더러워서 관중을 못 받아들이고 제대로 쪽박을 찼다. =_=;;

본인은 근로자의 날을 낀 지난번 연휴 때 서울 근교의 성남-광주-양평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자연을 즐겼다. 완전히 새로운 곳을 찾아간 건 아니고 수 년 전(거의 4~5년쯤??)에 등산이나 다른 여행을 통해 찔끔찔끔 개척했던 곳들을 한데 몰아서 답사했다. 이때 마침 봄비가 내리고 있어서 옛날과는 사뭇 다른 경치가 펼쳐졌으며, 여행이 더욱 즐거워졌다.

처음에는 분당이나 경부 고속도로 서쪽의 오지를 생각했지만, 최종적으로는 거기보다 더 동쪽으로 가게 됐다.
남한산성은 여행 경로에서 아주 가까이 있는 장소이긴 하지만, 이번 여행 때 들르지 않았다. 거기 근처와 주변만 돌아다녔다.

1. 성남 사기막골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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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목적지는 여기였다. 직장에서 퇴근한 뒤에 곧장 여행을 시작했기 때문에 여기엔 깜깜한 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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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막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장독대가 많이 전시돼 있고, 사기그릇 굽는 가마를 재현해 놓은 모형도 있었다. 자그마한 민속촌 한옥 마을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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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기대 이상으로 아주 대박이었다.
비 내리는 밤이다 보니 이 넓고 황량한 공원에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고, 주차 걱정 없이 차를 공원 안까지 몰고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정자가 있어서 이렇게 혼자 비를 피하며 유흥을 즐길 수 있었다. 무료 와이파이도 아주 빵빵하게 잘 터졌다.
주변에 다른 풀밭과 공터도 많았지만 이때는 정자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서 3시간 정도 머물고 잠깐 눈도 붙였다가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2. 이배재 고개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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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의 의왕-성남 사이에 하오 고개가 있다면, 동쪽의 성남-광주 사이에는 이 고갯길이 있다.
한때는 이배재 고개의 정상에 시내버스 정류장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요 몇 년 전에 근처에 산을 곧게 관통하는 터널이 뚫렸기 때문에 현재는 대중교통이 사라졌으며, 여기를 이런 험한 산길로 일부러 다니는 차가 거의 없다. 그러니 여기도 혼자 캠핑을 하기에 환상적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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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에 비는 그치는 듯하면서도 그치지 않고 꾸준히 많이 내렸다. 특히 여기 있는 동안에 비의 출력이 가장 강했다.
벤치와 평상이 있긴 했지만 천장이 있지는 않아서 아쉬웠다.
평상 위에다 텐트를 쳐 봤는데 바닥이 아니라 텐트의 입구에서 빗물이 많이 새어 들어와서 오래 있지는 못했다.
차 안에서 한숨 자다가 아침을 맞이했다. 간밤에는 자연을 즐기면서 밤을 다 새우다시피했다.

3. 팔당 물안개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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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진짜 관광은 광주시에 시작됐다. 경안천을 건너서 퇴촌면· 남종면의 '광주섬'에 오랜만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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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아침에 팔당 물안개 공원의 풍경은 그야말로 화선지에 그려진 수묵화처럼 운치 있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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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정말 넓고 조용하고 적막했다. 천장과 탁자가 있는 벤치가 있어서 거기서 비를 피하면서 컴퓨터 작업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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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m가 넘게 걸으면서 공원 전체를 한 바퀴 돌았다. 시간이 흐르자 나 말고도 이 날씨에도 여길 찾아와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더 눈에 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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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남종면은 서울에서 가기가 몹시 힘들지만.. 간 만큼의 경치 풍경 보상이 있었다.
물안개 공원을 나와서는 강 따라 광주섬을 쭉 돌았다. 여기도 몇 년 만에 오지만 지리가 별로 낯설지 않았다. 좁고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산길 운전이 나름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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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호 주변은 그 이름도 유명한 상수원 보호 구역이다. 언어유희를 하자면 수도권의 수돗물을 책임지는 곳이다. 그래서 여기는 하천법이 아니라 수도법이 적용되는 극악의 개발 제한 구역이다.
글쎄, 군사 시설 보호 구역이라는 것도 있고 대도시 외곽의 단순 그린벨트도 있고, 경주 시내엔 문화재 보호 때문에 개발 제한이 걸려 있기도 하다. 하지만 상수원 보호에는 이들과 급을 달리하는 정말 어마어마한 규제가 걸린댄다.

그러니 상업 시설이 전혀 없고 주택이나 농산물 직판장밖에 없었다. 그나마 딱 하나 '갤러리 추광'이라는 카페가 있어서 들어가서 잠시 쉬면서 폰과 노트북을 잔뜩 충전했다. 사막을 횡단하다가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았다.

카페 주인과 잠시 말을 섞었는데.. 여기에 카페를 정말 힘들게 어렵게 간신히 허가 받아서 만들었다고 하더라. 수질오염과 아무 관계도 없는 별 희한한 규제 때문에 여기 주민들은 세차도 마음대로 못 하고 집 앞 문짝도 마음대로 못 단다고..
이제 여기도 엄연히 하수도 인프라가 깔려서 분뇨나 생활 하수가 팔당호로 흘러들지도 않는데 법이 도대체 언제적 기준으로 만들어진 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광주 이 동네는 한강뿐만 아니라 경안천도 팔당호와 합류하는 하류 구간이 상수원 보호 구역이다. 그래서 광주섬이 만년 미개발 오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쪼기 남양주 조안면과 양평 양수리는 똑같이 팔당호 주변이고 거리도 가까운데.. 남양주는 완전 시골 자연 오지인 반면, 양평 쪼기는 카페가 넘쳐나는 관광지인 것 같다.
그리고 남양주는 한강이나 팔당호하고는 아무 관계 없는 첩첩산중까지 상수원 보호가 너무 넓게 묶여 있는 것 같다.

이런 저런 부동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비는 오전 내내 내리다가 오후 2시쯤부터 완전히 그치고 하늘이 맑아졌다. 지금까지 봄 가뭄이 심했는데 이거 나름 고마운 단비인 것 같았다.

4. 엄미리 계곡 마을

여기도 지금까지 두어 번 정도 들른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캠핑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전에 여기서 오후 시간을 보내면서 쉬었으며, 저녁을 먹고 찻집에 들러서 폰과 노트북도 충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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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비가 내리고 나니 엄미천엔 물이 콸콸 잘 흐르고 있었다. 여기는 경치가 특별한 건 없으니 사진을 많이 남기지 않았다.
밤에는 얇은 점퍼와 침낭만으로 버티기에는 좀 추워서 역시 텐트 대신 차에 들어가서 잤다.

5. 양평 양수리 - 서종면

지금까지 한강 이남을 돌아다녔으니 이튿날 아침에는 당일치기로 한강 이북을 탐방했다.
하남 IC - 팔당대교 이후 국도 6의 구도로(다산로)를 타고 남양주 조안면과 양평 양수리를 찍었다.
그 뒤 북한강의 동쪽 북한강로(지방도 352)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서종 IC에서 고속도로 60을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구리 시내를 찍고 강변북로를 이용했다.

이때는 날씨가 아주 맑아서 며칠 전과 아주 대조적이었다. 사진은 생략한다.
이렇게 좀 달리고 나니까 좀 살 것 같다. ㄲㄲㄲㄲㄲㄲ 팔당 물안개 공원 말고는 사진이 많지 않으니 글도 둘로 나누지 않고 그냥 하나에다 몰아서 작성했다.

오는 현충일과 7~8월 여름에는 더 멀리 강원도 전방이나 동해안 바닷가에 또 갈 계획이다. 지난 우한 폐렴 시국 동안에는 이런 장거리 여행을 못 했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5/06 08:35 2023/05/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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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지난 수 년 동안 죄, 회개, 믿음 등의 주요 성경 용어에 대해서 글을 많이 써 왔다. 그런데 이런 면모에 대해서 다뤘던 적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퀴즈: 성경에서 엉뚱한 데에다 갖다붙여서 사람 겁 주기 딱 좋은 죄 투톱은?
답: 짐승의 표 666(계시록)이랑 성령모독/훼방죄(복음서)이지 싶다.

아, 하나 더 추가하자면 요일 5:16의 사망에 이르는 죄도 있겠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기도하라고 말하지 아니하노라!! ㄷㄷㄷㄷ”
와, 이것만 모아서 설교나 강해를 해도 될 거 같다. 내가 아는 답만 최대한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짐승의 표 666은 아직 정체가 뭔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은 이런 걸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으며, 이 죄는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는 죄이다. 현재로서는 해당사항 아직 전무하니 제일 짧게 패스한다.

(2) 666이 미래를 다룬다면, 성령 모독은 과거에 있었던 특이한 죄이다. 막 3:29-30에 나와 있듯이, 직접적으로는 예수님이 성육신해 있던 당시에나 지을 수 있던 죄이고, 지금은 복음을 거부하고 안 믿는 죄와 다를 바 없다. 이쪽으로 흡수돼 있다.
무슨 “감히 이 ‘주의 종’의 설교에 토를 달다니, 이건 성령 모독죄라구! 니가 무사할 것 같냐” 이딴 소리나 하라고 있는 개념이 아니다. 특히 비성경적인 은사주의가 잘못됐다고 팩트폭격을 가하는 건 성령 모독이 더욱 절대 전혀 아니다. -_-;;

(3) 마지막 ‘사망에 이르는 죄’도.. 무슨 구원을 잃고 지옥 가는 죄인 것처럼 확대해석 하는 분이 많다. 난 요한일서에서 갑자기 뜬금없이 그런 개념이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살인을 저질렀으면 세상 법에 의해 사형 당해야 되고, 사형수 구명을 위해서 기도하고 난리법석 칠 필요 없다는 평범한 의미로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힘든가..?? 행 25:11에 기록된 바울의 말이 딱 정확한 예시이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 ‘욕심-죄-사망’(약 1:15).. 이건 사람의 구원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문자적으로 죽는다는 뜻이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계속 죄 지으면 육신의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구원이 다~ 지옥으로부터 건짐받는 구원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처럼 구원받지 못하고 죽으면 지옥을 가는 것일 뿐, 사망이 곧 반드시 지옥/불못을 의미하지 않는다. 계시록이 지옥/불못을 ‘둘째 사망’이라고 분명하게 구분한다는 걸 생각해 보자.

이와 같은 맥락으로,

(1) 난 구약에서 “뭘 어기는 혼은 끊어지리라”도 개인의 사후세계 구원 여부와 관계 있는 말이 아니라고 본다. 신약의 아나니야와 삽비라건, 구약의 사울이나 웃사건.. 그렇게 하나님의 벌을 받아 죽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개인의 구원 여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이라는 건 죄사함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쪽(의식법) 한정이지, 규범 율법(도덕법)을 평소에 한 치의 오차 없이 다 지켰다는 걸 얘기하지 않는다고 본다.

(2) 예전에도 한번 말했지만.. 자살했다고 구원을 잃는 것도 절대 아니다. 자살도 정말 문자 그대로 사망에 이르는 죄 중 하나에 해당되겠지만, 그 이상으로 특별히 더 심각한 죄가 아니다. 남을 여러 명 죽인 흉악 살인범도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데 자기 자신을 죽인다고 구원을 잃는다는 건 좀.. -_-;;
죽어서 이 땅에서의 생명이 끝나 버렸으니 그 누구의 기도도 통하지 않겠지만, 이 역시 사람의 구원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다. 구원받지 못한 채 자살하면 지옥에 갈 뿐이다.

이상이다.
구원받은 사람도 계속 죄를 지으면 구원 자체 말고 다른 잃을 게 엄청나게 많다. 간증, 보상, 하나님과의 관계, 상속, 건강, 생명 등..
가령, 세상에서도 아부지에게 심하게 밉보이면 법적인 부모 자식 관계는 유지될지 몰라도, 당장 재산을 한 푼도 상속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자식들 간에 상속 문제 때문에 연 끊고 살인까지 나는 게 비일비재하다. 과연 저게 사소한 문제일까?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다.
성경 신자에게 "죄의 정의란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보통은 "믿음에서 나지 않은 것은 죄", "어리석은 생각은 죄", "기도하기를 쉬는 것이 죄"처럼 로마서 구절, 잠언 구절이 줄줄이 떠오르는 게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신학 공부를 열심히 하면 죄라는 것의 정의도 웨슬리의 정의가 어떻고 칼빈의 정의가 어떻고 하는 걸 먼저 떠올리게 되나 보다.
이거 무슨 화학에서 Acid에 대한 아레니우스의 정의, 루이스의 정의 이런 거 공부하듯이 말이다.;;

옛날의 똑똑한 신학자들이 방대한 성경 텍스트를 정리하고 체계화해서 후학 신자들에게 도움이 될 자료를 많이 만들고 각종 짤막한 용어들도 만들어 놨을 것이다. 그리고 언뜻 보기에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시기와 장소에 따라 분간해서 받아들이는 방법론도 개발해 놓았다. 아까 저런 특이한 죄들도 그런 원리에 근거하여 분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다 성경으로부터 파생돼야 하며, 우리 일반인이라도 시간만 충분하면 그런 것들을 스스로 재연 reproduce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신학이 성경보다 먼저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3/05/04 08:35 2023/05/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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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자

1.
교회는 신앙, 헌신, 하늘에서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무료 섬김이라는 게 아무래도 세상 직장 조직에 비해서는 더 많이 행해지고 허용되고 권장되는 바닥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누구로부터 누구에게든, 물건이건 남의 시간이건 “계속되는 호의를 당연한 권리로 여기지는 말자!!”

무료인 게 진짜로 값어치가 전무한 싸구려여서 무료인 게 아니다~! 비록 절대값에 넘사벽급 차이는 있을지언정, 저 말은 예수님의 보혈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곡식 밟는 소의 입에 마개 씌우지 마라”(신 25:4) 같은 뜬금없는 구절이 신약에서 왜 거듭 인용되었겠는지를 생각해 보라.
주의 일을 한다는 사람이 교회 안팎에서 “주인님은 엄한 사람이어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재능기부 신앙페이 착취하는..”(마 25:24, 눅 19:21) 이런 평판이 나도는 일이 절대적으로 없어야 한다.

2.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해서 다른 분야도 전문가일 거라고 생각하지 말자!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고 했지, 성경이 과학 자체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거 아니다. 심지어 창조과학이라도 거짓으로 과학이라 불리는 면모가 있을 수 있다.
신앙, 믿음이란 게 개나 소나 반지성주의를 조장하라는 말이 아니다.

3.
개인적인 체험, 간증을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교리라고 확대해석 하지 말자!
누구는 기도 응답으로 기적적으로 병이 나았지만 병 고침 기도가 거절로 응답된 사람도 많다. 그건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의 표적이 전~혀 아니다.

자기가 갑자기 깨달아지고 복음이 믿어진 건 좋은 일이긴 한데, 남한테까지 저절로 믿어져야 구원이네 어쩌구 하는 건 선을 심하게 넘은 짓이다. 이건 그 말을 퍼뜨리는 당사자보다도, 교리 오류를 바로잡지 않고 용납하고 자꾸 마이크를 건네주는 교회 쪽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내 경험상 이 세 가지만 좀 지키면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온갖 혼란과 무질서, 분쟁, 다툼이 상당수 정화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스스로 유지되지 못하고 내부 분열 때문에 무너지는 조직은 정상적인 조직이 아니다. (눅 11:17-18) 세부적인 성경 해석· 신학 노선· 교리 교파를 떠나서 어디든지 말이다.

* 하자

4.
상대 비교와 탐욕의 해악을 절대 만만하게 보지 말고 경계하자.
물리적인 행위가 동반되는 살인, 간음, 도둑질에 비해 만만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 위대한 바울마저도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 탐욕 앞에서는 GG 쳤다. (롬 7:7)

자기는 지금까지 어지간한 기독교인들보다 의롭고 선하게 살았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며 예수 따윈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탐욕이 출동하면 어떨까?
이 역시 온갖 귀신 잡신을 섬기고 돌· 금속 형상에다 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우상숭배이다(골 3:5).

자본주의의 온갖 병폐를 만든 것이 탐욕이지만,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필망하게 만드는 것 역시 탐욕이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딤전 6:10)라고 말하고,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한다. (마 6:24, 눅 16:13) 상금 아니면 훈장이지, 훈장에다가 훈장의 제조 원가만 제외한 나머지 상금 같은 건 없다.;;

성경대로만 행하면 당장 교회도 현실의 교회들보다 사람 수도 적고 훨씬 꼬질꼬질하고 인기도 없고, 남보다 ‘간지’가 안 나고 비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세상 시스템이 탐욕을 자꾸 조장하는 구조인 건 부인할 수 없다. 신세 비관, 남과 비교, 오지랖, ‘엄친아 엄친딸’... TV 드라마와 인터넷 광고들이 온~통 이걸 조장하고 있다. 괜히 악한 현 세상인 게 아니다.

  • “누구누구는 강남에 번듯한 아파트 장만했는데 우리는 아직도 월세야” (출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 “누구누구는 30대 나이에 벌써 그랜저 뽑았는데 우리는 아직도 마티즈야”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소유)

그런데 요런 불만을 위선, 허세 같은 방법으로 해소, 은폐하다 보면, 교회는 팀웍과 간증과 순수성을 잃고 급속도로 타락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진리, 하나님의 역설을 논할 자격을 상실할 것이다!
하나님이 아나니야와 삽비라를 시범 케이스로 괜히 죽여 버리신 게 아니다. 초대 교회 때 이미 그런 누룩이 침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암적 요인은 정말 0순위로 척결해야 한다.

5.
아까 1번의 연장선상에 있는 말인데.. 교회는 목욕탕, 병원 같은 곳임을 기억하자.
깨끗한 사람은 굳이 또 목욕할 필요가 없고(요 13:10)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눅 5:31). 내가 교회에 무슨 대접을 받으러 온 고객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자.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에서 ‘국가’를 ‘교회’로 바꿔서 생각하라.

완벽한 성도만으로 구성된 교회가 있으면 너님이 거기 가입하는 순간부터 그 교회의 완벽성이 깨질 거다.
내 자아/자존심을 방어하기 위해서 교회 지체에 대해 악하게 추측하거나 남에게 상처 주지 말라.

교리가 달라져서, 죄에 대한 회개가 없어서 교제를 끊는 거라면 모를까.
처음에는 간이라도 내 줄 것처럼 ‘형제님 사랑합니다’ 이러다가, 단순 감정 상하는 일 때문에 둘도 없는 원수지간이 되고 교회 떠나거나 옮기는 일이 생기지는 않게 하자.
성경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분명히 말한다! (요 13:35)

6.
그리고 이건 정말 아무에게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긴 한데.. 영적 대미지 컨트롤 능력을 키우도록 하자.

일이 너무 안 풀리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답이 없다 싶을 때,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의구심이 드는 상황일 때,
일단은 기도하고 믿고 기다려라. 기도 응답 자체가 “기다려라”인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렇다고 될 대로 돼라 자포자기 포기하지도 마라.

하나님은 “딴 건 다 괜찮은데 이것만은 좀..” 하필 그 약점만 골라서 뒤흔들 수 있다. 여러분의 속을 박박 긁어서 본성이 튀어나오는 상황을 허락하시는 것 자체를 갖고 하나님을 야박하다고 탓하거나 그분 성품을 의심하지 말자.
나도 인내, 기다림 같은 거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인데.. 이게 신앙생활의 본질이라는 건 머리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ㅠㅠ

마귀가 인간을 죄로 유혹하는 압도 다수의 패턴은 “남들이 다 하는데 너만 안 하면 너만 바보 되고 손해 보고 뒤쳐질 걸?”이다. 근데 그걸 이기는 게 당신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다.

영적 성장에는 영재· 천재가 없다.
한 자릿수 나이 때 미적분을 술술 풀고 성경 100구절 이상을 암송하고 토플 만점을 받는 애는 있어도,
한 자릿수 나이 때 부모님의 마음을 다 이해하고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때리면서 훈계할 필요가 없어서 잠 22:15의 예외에 해당하는 애는 없다~!

신앙 생활은 마라톤이고 지구력이 중요하다. 우직하게 꾸준히.. 잔꾀 안 부리고 일관되게 성실/신실하게 살아라.
크리스천이 아니고서야 요즘 시대에 ‘환경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천한 자리와 고귀한 자리를 모두 만드신 분이다. (롬 9:21) 궂은 자리, 남 안 보는 자리에서 성실하면 하나님께서 갚으시고 더 크고 높은 직책을 주신다.
세상 추세하고는 좀 반대로 미친 척 하고 살아라. 하나님의 느긋하고 일면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사고방식에 적응하기 바란다.;;

Posted by 사무엘

2023/05/01 08:35 2023/05/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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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격세지감

요즘은 컴퓨팅 환경에서 웹과 모바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지다 보니..
맨날 컴퓨터를 끼고 살면서도 통상적인 드라이브 - 디렉터리 - 파일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고 그런다. 내 컴 하드의 Program Files 디렉터리 밑에다가 프로그램을 복사해 넣는다는 개념을 알지 못한다.

요즘 꼬마들이 전화기 픽토그램(☎)을 보고 이게 뭔지 이해를 못 한다거나, 플로피디스크를 보고는 저장 아이콘 3D 프린팅이라고 생각한다는데.. 그건 약과다.
얼라들이 아니라 이공계 석박사급 대학원생조차 그런 경우가 있다고 말이다. 물론 전공이 컴공이 아니고, 그저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모를 뿐이다. 머리는 다 갖춰져 있으니 조금 가르쳐 주면 금세 깨우친다.

지난 1980년대부터 컴퓨터라는 게 그저 정부 기관과 기업, 연구소에서나 사용하는 비싸고 귀한 물건에 머물지 않고, 개인별로 구비 가능한 업무 도구 내지 장난감 수준으로 대중화됐다.
8비트 시절엔 얘는 그냥 베이식 프로그래밍 환경 아니면 혼자 하는 게임기였다. 그러다가 16비트 시절엔 게임에 덧붙여 워드(아래아한글) 내지 PC 통신 단말기가 됐다.

이제는 인터넷 단말기 내지 온라인 게임기로 변모한 것 같다. 그 역할도 단순히 유튜브 보거나 음악 듣고 위키 읽고 은행 돈거래 하는 정도는 폰이 흡수해 버렸고, PC는 복잡한 키 조작이 필요한 업무나 게임 전담이다.
이런 와중에 파일 시스템이라는 걸 모르고 정보 저장 매체 실물이란 걸 모르는 세대도 등장했다는 게 참 흥미롭다. ㄲㄲㄲㄲ

2. 스마트폰이 PC와 다른 점

  • 노트북 PC보다 더 고도화된 첨단 배터리, 디스플레이, CPU 기술이 모두 융합한 덕분에야 탄생한 물건이다.
  • 1년 365일 24시간 내내 켜져 있고 사용자가 늘 갖고 다닌다. 카카오톡 메신저에 PC용 메신저처럼 이 사용자는 "오프라인, 바쁨, 부재" 이렇게 상태를 표시하는 기능이 없다는 걸 생각해 보자.
  • 냉각팬이 없다. PC와 완전 동급의 범용적인 컴퓨팅은 못 한다. 이 때문에 동영상 같은 것도 하드웨어 차원에서 특화된 전용 포맷만을 원활하게 재생할 수 있다.
  • 마우스 포인터 hovering이라는 인터페이스가 없다. PC에서는 아주 흔한 툴팁이라는 UI 요소가 있을 수 없다.
  • 프린터나 유선 랜과의 접점이 없다. 하물며 물리적인 보조 기억장치와는 더욱..
  • USIM이라고 붙박이 사용자 정보가 있다. 이거 덕분에 사용자 인증 절차가 PC에 비해 더 단순해질 수 있고, 모바일 뱅킹이 PC 인터넷 뱅킹보다는 덜 번거롭다.
  • 프로그래밍 세계가 PC보다는 지저분한 레거시가 훨씬 없고 깔끔하다. 8비트/16비트 같은 건 경험한 적 없다. 그건 모바일이 아니라 아예 임베디드겠지.

3. 무선 인터넷의 통신 모드 전환

요즘 전화기로 인터넷을 할 때는.. 와이파이를 쏴 주는 친숙한 장소에서는 그 와이파이에 붙어서 교신을 하고, 그렇지 않은 임의의 장소에서는 자기가 가입한 요금제대로 데이터를 까서 교신을 하는 게 보통이다. 후자는 LTE니 5G니 하는 기술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화기 역시 등록된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에서는 거기에 자동으로 접속한다. 하지만 주인님이 밖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거기 신호가 너무 약해지고 가망이 없어지면 자기 데이터를 깐다. 그러다가 다시 와이파이가 잡히면 모드가 거기로 바뀐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와이파이에서 데이터로 넘어가는 민감도가 너무 낮은 게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 10초~20초 이상은 인터넷이 먹통이 된 뒤에야 뒤늦게 "모바일 데이터에 접속합니다" 이러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기본적으로 와이파이를 쓰되, 와이파이가 조금이라도 헬렐레 거리면 바로 데이터 써라~~"
"최대한 데이터 요금을 아껴라~ 한 30초는 기다렸다가 정말 연결이 구리는 게 확실시될 때만 데이터 써라~~"
이게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수 있다. 뭔가 설정을 통해 customize 가능했으면 좋겠다..

이건 자동차 운전으로 치면 자동 변속기의 변속 타이밍/알고리즘과 비슷한 것 같다.
"낮은 rpm에서도 고단으로 최대한 빨리 변속해라. 도저히 가속이 안 되고 차가 못 버틸 때만 불가피하게 저단으로 내려가라. 나는 연비가 중요하다"
"ㄴㄴ~ 밟았을 때 차가 빨리빨리 잘 튀어나가고 잘 가속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회전수를 3000rpm 이상은 올라갔을 때에나 고단으로 변속해라."

이런 것처럼 말이다.

4. 기타

  • 각종 쇼핑몰들은 웹사이트가 있긴 하지만.. 거길 폰으로 접속할 경우, 꼭 자기 전용 앱을 깔아서 보라고 권유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게 PC로 치면 ActiveX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정확히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이건 귀찮다. -_-;;

  • 꼬불꼬불 유선전화기는 가정용으로는 퇴출됐지만 인터폰이나 회사 사내 전화기로는 유효하다.
    비슷하게 사용자 상태가 표시되는 PC용 메신저도 가정용으로는 스마트폰 메신저에 밀려 퇴출됐다. (away, offline 상태 표시 없음) 하지만 사내 업무용 메신저는 전통적인 형태가 여전히 유효하다.

  • 웹페이지를 열어 놓고 딴 앱을 쓰다가 한참 뒤에 그 브라우저로 돌아왔을 때.. 쓸데없이 reload를 좀 안 해으면 좋겠다. 그냥 예전에 표시해 놨던 페이지를 다시 보여줄 수 없나?
  • 스마트폰의 메모장 같은 텍스트 편집 UI에는 undo 기능이 없는지 궁금하다.;;

  • 로그인 기능이 있는 각종 웹사이트들은 id가 틀렸는지 비번이 틀렸는지 따로 정확하게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ID 또는 비번이 잘못됐습니다" 이러지 말고. =_=;; id를 입력하자마자 바로 튕기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저런다고 특별히 보안이 위험할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 텔레비전과 유튜브의 화질이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향상되고 있는 와중에, 전화기의 음성 통화는 예나 지금이나 음성에만 특화된 8000hz급의 초저화질이다. 뭐, 전화 통화하면서 주변 음악을 들려줄 일이 딱히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의외의 면모인 것 같다.

  • 은행 사이트들은 언제쯤 IE 외의 브라우저에서도 접속이 가능해질까? 차라리 폰이 나은 지경이 되고 있다.

Posted by 사무엘

2023/04/29 08:35 2023/04/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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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멧돼지를 새끼 때부터 데려 와서 키우고 있다는 사람을 취재한 방송은 어지간한 건 다 유튜브를 통해서 봤다.
허약하다고 새끼들 사이에서 낙오된 새끼를 우연히 주운 거, 또는 어미가 포획되어서 남은 새끼.. 보통은 이 두 범주를 벗어나지 않더라.

국내에서 제일 오래되고 유명한 사례로는 부산에서 멧돼지를 타고 길거리를 돌아다니기까지 한 그 할아버지(2005년 KBS2 주주클럽 보도)일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멧돼지를 무려 세 마리를 데려 와서 같이 썰매 끌고 밭도 갈게 한 사람이 있었다.

이런 사례가 더 있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 봤는데, 놀랍게도 2010년 9월에 보도된 게 있었다. 단, 유튜브에 올라온 지는 몇 달 밖에 안 돼서 본인이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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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 지점. 아이고 꿀꿀이 귀여워라~ㅠㅠㅠㅠ^^
방영 당시에 나이가 이미 7살에 달했고 무게는 300kg이나 됐다고 한다. 지금까지 사료값이 꽤 들었을 듯.. ^^
고기용으로 대규모로 사육되고 도축되는 돼지들이 거의 반 년밖에 못 산다는 걸 생각하면 쟤는 꽤 팔자 좋게 잘 살았다..;;

보다시피 쟤는 털이 시커멓게 북슬북슬 났지만 멧돼지보다는 집돼지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 이유를 정확하게 집어서 말은 못 하겠지만 왠지 그렇다. 측면을 볼 때는 멧돼지 같은 반면, 얼굴 정면은 집돼지 같다.

이런 잡종 도야지를 가리키는 비공식 명칭으로 ‘집멧돼지’라는 말도 있다고 그런다. 농장에서 키우는 멧돼지일수록 더욱 그런 경향이 있는 듯..
멧돼지가 털이 북실북실하면 양(!!!)처럼 보이기도 하고.. 쟤는 얼굴이 뭔가 하마 같기도 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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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박 먹방.
저 유튜브 영상은 돼지에다가 호박까지 같이 나오니 내가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
주인이 밭에서 호박도 키우는 것 같더라. 동그란 애호박을 하나 따서 주자 도야지는 그걸 한입에 바로 씹어 먹어 버렸다.

그나저나 주인 양반이 이 도야지의 이름을 ‘누렁이’라고 지었나 보다. 엥, 도대체 왜?? 누렁이는 진짜로 털색이 누런 삽살개나 도사견의 이름으로 많이 쓰이지만 쟤는 색깔이 누런 것 같지는 않은데? 호박도 아니고..? 저 작명 이유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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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쉴 새 없이 먹어댄다. 그런데 귀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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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이 도야지가 좀 사고를 쳐서 혼나고 삐쳤는지, 호박밭 한구석에 들어가서 짱박혀 버린다. 아이고 포즈 한번 보소.. ㅋㅋㅋㅋ 어째 이런 대박 자태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을까?
도야지에 대한 애정이 솟아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걸 생각하면.. 개 잡아먹는 것만 특별히 더, 돼지 잡아먹는 것보다 더 잔인하고 야만적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내친 김에 한번은 인터넷 서점에서 멧돼지와 관련된 문학 작품들을 찾아봤다. 다음 7개인데..

1. 유아용 그림책
멧돼지 남매가 보내는 편지(2011, 30p)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2016, 40p)
배고픈 멧돼지(2022, 40p)

2. 초딩 저학년용 동화
멧돼지가 쿵쿵, 호박이 둥둥(2015, 92p)
심쿵! 송추골 멧돼지 5남매(2018, 52p)

3. 초딩 고학년: 대장 멧돼지 곳니(2020, 176p)
4. 청소년 소설: 멧돼지가 살던 별(2022, 184p)

보다시피, 대상 독자와 분량, 난이도의 차이가 있다.
지면 대부분이 그림이고 글은 별로 없는 유아용 그림책부터 시작해서..
멧돼지가 포획돼서 죽는 것도 나오고 인간과 멧돼지의 공존 가능성을 고민하는 길고 어려운 소설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관점의 차이가 있다.
"멧돼지가 쿵쿵.."은 유일하게 멧돼지가 배은망덕한 악역으로 묘사된다. "팥죽과 할머니"라는 전래동화에서 팥죽이 호박죽으로, 악역인 호랑이가 멧돼지로 바뀐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멧돼지를 완전히 죽이지는 않으며, 혼쭐 내고 쫓아내기만 하는 걸로 끝난다. 그리고 주인공인 애들이 큼직한 늙은 호박을 타고 날아가는 판타지스러운 장면도 나온다.. ^^

그 반면, 나머지 책들은 멧돼지를 마냥 적대시하지 않는다.
얘들도 환경 파괴로 인해 집과 먹이를 잃은 피해자라는 거, 악의적으로 사람들 사는 곳에 가는 게 아니라는 거..
얘들도 기본적으로 사람을 두려워하며, 날뛰는 건 진짜 굶주리고 패닉에 빠져서 이판사판 날뛰는 거라는 거.. =_=;;
멧돼지의 현실적인 관점에서 얘기를 풀어 나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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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남매가 보내는 편지"는 제목만 봐도 저런 뉘앙스가 노골적으로 느껴진다. 그림체가 전원적이고 멧돼지가 뭔가 순둥순둥한 곰처럼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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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멧돼지.. 지침서"는 멧돼지 입장에서의 생존 요령 가이드이다. "너무 무리하지 말 것", "집이 없어졌으면 당황하지 말고 새 집을 찾아 나설 것" 이런 식.. =_=;;; 해학괘 재치가 느껴지지만 약간 웃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러 그림책들 중에서 멧돼지가 제일 귀엽게 그려진 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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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배고픈 멧돼지"는 뭔가 "멧돼지가 쿵쿵.." 같은 산골 마을 분위기인데, 그래도 . 그림체는 꽤 단순투박해 보인다. 나름 제일 최근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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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추골 멧돼지 5남매"는 국립공원 관리공단에 재직 중인 연구원으로부터 자문까지 구하면서 멧돼지의 실제 생태, 그리고 현장에서 만났을 때의 바람직한 대처 요령도 깨알같이 수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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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멧돼지 곳니"는 멧돼지들 내부에서의 서열 싸움이라든가, 자기들의 적인 사냥개와 다투는 얘기까지 나오는 듯하다.
그리고 끝으로 "멧돼지가 살던 별"이 내가 찾아본 책들 중에서는 제일 고난이도이다. 난개발로 인해 집을 잃는 가난한 세입자들, 그리고 가정폭력까지..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집과 새끼를 몽땅 잃은 멧돼지의 비극에다 투영시켜서 묘사했다. 리뷰나 줄거리가 아니라 실제 본문을 읽어 보고 싶어진다.;;

이상이다.
옛날에 "은비까비" 만화영화에서 "은혜 갚은 산돼지"야말로 역대 창작물들 중에서 멧돼지를 제일 좋게 묘사했지 싶다.
김 우진의 1920년대 희곡 "산돼지"도 있고.. 이때는 멧돼지가 아니라 산돼지라는 명칭도 종종 쓰였었다.

우리나라가 무슨 아프리카 사바나도 아니고, 소의 야생 버전인 들소 따위가 산에 우글거리지는 않는다.
애완동물인 개· 고양이의 야생 버전인 늑대· 이리, 살쾡이가 야생에서 심각하게 불어나서 해를 끼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돼지만은 가축과 별개로 이런 야생 버전들이 늘어나서 인서울에서까지 날뛴다니 참 신기한 노릇이다.

우리 도야지들.. 어디에 있든 꿋꿋하게 잘 살아남아서 다산하고 번성하고, 인간한테 잡히면 맛있는 돼지고기로라도 기여를 했으면 좋겠다.
인간들은 다른 건 몰라도 제발 산에서 도토리까지 다 쓸어 가는 짓은 좀 하지 말자.
그나저나 돼지열병(ASF)은 좀 가라앉았나 모르겠다. 이게 걱정이네.. ^^

Posted by 사무엘

2023/04/26 08:35 2023/04/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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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게 미쳐 보자

예수 믿고 교회 댕기고 성경 읽는다는 사람들, 소위 교인들은..
솔직히 말해서 예수님에게 제대로 좀 미쳐 봐야 된다. 평생 24시간 365일 그러지는 못하더라도 한번쯤은 말이다.

특히 외모와 체력과 능력이 제일 뛰어나고.. 어쩌면 갓 취업한 사회 초년생이어서 돈도 그럭저럭 벌면서 아직 처자식도 없는 청년 시절..
그럴 때 확~ 꽂혀서 예수님을 위해서 미친 척 뭔가 내 재능, 시간, 물질 등을 통 크게 허비(???)해 봐야 된다. (비싼 향유 부은 여인)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성경을 밤새워서 몽땅 독파해 버린다거나,
  • 교회에 큰 변고가 생겼거나 무슨 선교사가 어려움을 당했다거나 할 때.. 평소 내는 주일 헌금보다 10배 이상의 액수로 사비를 쾌척해서 후원한다거나..
  • 지원자가 없는 예배당 청소나 교회 주차 안내, 주일학교 교사를 하거나..
  • 의식의 흐름을 따라 찬송시를 쓰거나 선교 편지, 신앙 서적 번역을 해 보거나..
  • 길거리에서 거리 설교나 전도지 배부를 하거나..
  • 가끔은 구원받지 못한 가족 친지, 종교 문제로 갈등하던 사람이 미운 게 아니라 안타깝고 불쌍하게 보이고.. 남을 위해서 뭔가 눈물 흘리면서 기도해 보고, 알량한 내 자존심을 다 깨뜨리면서 펑펑 울어 보고..

이런 경험이 아무리 못해도 20대 시절에 한 번은 있어야 되지 않겠냐..??
성경적으로 정상적으로 정당하게 살면서 광신자 소리 좀 들어 봐야 된다.
20대 시절에 무슨 유럽 여행을 가 보고 강남 클럽을 가 보고 별의별 걸 다 해 보겠다는데, 예수 믿는 청년은 저런 경험을 좀 해 봐야 된다. 이건 내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 "으이그 저 돈지랄을 하느니 불우이웃이나 아프리카 기아들이나 돕지?
  • 진짜 제대로 믿는 사람들은 겉으로 지가 예수 믿는다는 티 안 낸다"
  • "네가 제정신이 아니니 많은 학식이 너를 미치게 하는도다~~" (행 26:24)

이런 부류의 빈정거림은 성경적으로 매우 "정상"이고 예상 가능한 피드백이니까 걱정 마시라. 마 26:8-9, 막 14:4-5, 요 12:5 따위. 당연히 매우 잘못된 소리라는 점에서 말이다.
또한, 십중팔구 평소에는 불우이웃 어려운 이웃 따위는 쥐뿔도 관심 없던 인간들이 꼭 이런 상황에서나 이웃 핑계 대는 법이다. -_-;;

예수에 미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를 안다면.. "실컷 내 마음대로 죄 펑펑 지으면서 살다가 죽기 직전에만 샥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되겠네"
이런 생각은 너무 졸렬하고 민망해서 누구든지 꺼낼 엄두를 못 내게 된다.

마 12:41-42를 보면.. 예수님께서 "심판의 날 때 니느웨 사람들이 너희를 책망할 것이고, 스바의 여왕이 너희를 디스할 것"이라고 예시를 들며 그 당시의 세대를 신랄하게 비판하셨다.

  • 우리는 요나의 선포를 듣고도 데꿀멍 하고 회개를 했는데.. 니들은 요나보다 더 큰 분 바로 옆에서도 꼼짝도 안 했냐? 이것들이 간이 배 밖에 나왔냐?
  • 나는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수행원 챙겨서 억만 리 원정을 힘들게 떠났었는데.. 니들은 솔로몬보다 더 큰 분을 바로 옆에 두고도 못 알아봤냐? 이 ㅂㅅ아?

그런 것처럼.. 죽기 몇 시간 전에 십자가에서 겨우 구원받았던 강도가 저런 부류의 사람들을 맹렬히 책망하게 될 거라고 난 생각한다.
"너희들은 구원받고 나서 겨우 몇 시간밖에 못 살았던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여건에 있었으면서 뭐가 어쩌고 저째..???"
그는 자기는 역대급 먹튀 뽀록 구원을 달성한 운 좋은 케이스라고 자랑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출애굽기에서도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게으르다"고.. "뱃대지가 부르고 살 만하니까 종교에나 심취"하는 거라고 아주 세속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진단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목이 뻣뻣하다 (완악하고 고집 세고 믿음이 없다)"라고 진단하셨을 뿐이다.
어느 게 진짜 새겨 들어야 할 경고인지를 생각해 보자.

내가 예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예수 믿고 성령님이 거주하는 신앙 생활이 뭔가 재미없고 따분하고 손해 보고 불편하고 꾹 참아야 하고 억압과 제약 핸디캡이 가득한 인생일 거라는 그 편견, 프레임에 속지 말길 바란다.
세상에는 온통 이상한 이단에 맛이 간 광신자에 대한 묘사가 가득하다. (오징어 게임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 길은 성경적인 좋은 광신자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뻘건 조끼에 뻘건 십자가 들고 무슨 좀비처럼 전도하는 사람을 묘사하지, 죄와 심판과 의에 대해서 제대로 선포하는 복음 전파자를 묘사하지 않는다.
광신자 프레임이 두려워서 자기는 구원받고 나서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그럼 그건 달란트를 받고도 주인을 믿지 못하고 뭐가 두려워서 그 돈을 땅에만 파묻어 둔 게으르고 악한 종의 사고방식과 다를 게 없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없고 개인의 구원 여부를 X선 찍듯이 척 들여다볼 수 없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성령님이 거한다는 증거는 보이는 언행의 변화로 드러난다.
사람이 그렇게 되는 건 생각보다 천천히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허나, 교회들이 그런 양육을 안 시키고 당장 겉으로 빨리 드러나 보이는 결과물인 종교적인 열심만 강요하고 다그치면.. 이상한 광신자 아니면 아예 영적 성장이 정지한 환자들만 잔뜩 양성하면서 큰 폐해가 야기될 것이다.

아무쪼록, 구원받은 신자, 기독인이라면 예수님에게 제대로 미쳐 보자.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찬송가 가사대로 실행해 보라는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4/24 08:35 2023/04/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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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결 차량

삼륜차가 아닌 오늘날의 일반적인 자동차들은 바퀴가 4개 이상 달렸고,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다들 사각형 상자 형태이다.
그러나 덩치 큰 버스 중에 굴절버스는 길이 대비 회전반경을 줄이기 위해 회전 중에 차량의 앞뒤가 살짝 꺾일 수 있다. 그리고 트레일러나 캠핑카(캐러밴? 카라반?)는 꺾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서로 다른 차량이 견인되는 형태이다.

우리나라의 법--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에서는 단일 차체 자동차의 최대 길이는 13m, 그리고 트레일러는 최대 16.7m까지 가능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이보다 더 큰 차량은 일반적인 차량이 아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공도를 주행하려면 해당 지역의 수장으로부터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짐을 가득 싣는 대형 트레일러는 바퀴가 뒤쪽 끝에 몰려 있는 반면, 캠핑카는 바퀴가 차체의 정중앙에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실리는 payload의 무게, 바퀴의 크기 같은 특성을 고려해서 이런 차이가 생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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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공차 중량이 750kg 이하인 소형 트레일러 내지 캠핑카는 일반 승용차 운전 면허만으로 견인 운전이 가능하다. 이보다 더 큰 차를 끌고 다니려면 별도의 면허(특수)를 취득해야 한다.
검색을 해 보니 요 정도 크기의 캐러밴이 무게가 730kg여서 특수 면허 없이 견인 가능한 상한인 듯하다. 4~5인 가족이 넉넉하게 지낼 만한 크기는 아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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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1종 '보통' 면허를 따고 나서 1년 뒤에 '대형' 내지 '특수'로 면허 테크트리를 추가로 올릴 수 있다. 대형이야 버스나 축 3개 이상짜리 거대한 트럭을 몰기 위해 필요하지만, 특수는 다른 차량을 견인하는 차를 몰기 위해 필요한 면허로, 얘 내부적으로 또 '대형, 소형, 구난'이라는 세부 등급이 나뉜다.

'특수-소형'은 750kg 초과 3t 이하짜리 차량을 견인할 수 있기 때문에 대형 캠핑카 정도에 대응한다.
수출용 컨테이너나 강철 코일, 심지어 자동차 따위를 잔뜩 실은 그 거대한 트레일러는 당연히 '특수-대형'이다. 옛날 일본식 발음 용어로는 '츄레라'..;;
원래는 츄레라 면허 하나만 있었으나, 캠핑 인구의 증가로 인해 2016년쯤부터인가 '특수-소형'으로 기존 면허의 간소화 축소 에디션이 따로 추가됐다.

이렇게 동력 없이 처음부터 피견인용으로 만들어진 차량 말고 다른 멀쩡한 고장· 사고 차량을 견인하려면 '특수-구난' 면허가 있어야 한다. 영역이 살짝 다르다. 사다리차가 이사용과 소방용이 용도가 다르듯이 말이다. 도로 위의 양아치로 악명 높은 사설 견인차 기사는 나름 '특수-구난' 면허 소지자인 것이다.
요건 옛날 일본식 발음 용어로는 '렉카 면허'였다.

일반 승용차야 캠핑카를 끌고 있지 않으면 상관없지만, 대형 트랙터는 트레일러를 견인하는 형태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상황이 좀 다르다. 트레일러의 연결 없이 트랙터만 단독으로 운전할 때라도 운전자에게는 특수 면허가 있어야 한다.
이는 대형 버스에 아무도 타지 않았더라도(15인 초과..) 버스를 운전하려면 대형 면허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람이 적게 타는 트럭은 무려 11.5톤짜리까지도 1종 보통 면허만으로 운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담이지만, 교통 관련 법규들을 찾아보면.. 이렇게 일정 규모 이하까지는 간단한 편이다가 그 한계를 넘어갈 때부터 절차가 급격히 복잡해지는 선이란 게 있는 편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 드론(무인기)은 연료 제외 기체의 무게가 12kg 이내까지가 커트라인이다. 이보다 작은 드론은 비행 신고나 조종자· 장비 증명 같은 절차가 훨씬 더 간편하지만, 그 이상부터는 까다로워진다.
  • 이륜차는 배기량 125cc 이하까지는 도로교통법상 원동기장치 자전거이고, 이거 초과부터는 이륜자동차로 분류된다. 운전을 위해 필요한 면허의 종류가 얘를 경계로 살짝 달라진다.

2. 굴절 차량

연결 차량과 관련하여 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뒤에 끌려다니는 트레일러나 캠핑카 카라반은 앞의 트랙터나 승용차와 별개인 독립된 차량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단독으로 등록을 해야 하며, 자신만의 번호판을 부여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차는 앞쪽(견인차) 번호판과 뒤쪽(피견인차) 번호판의 번호가 서로 다르다. 다른 게 정상이다~!! 오.. 처음 알게 됐다.

그 반면, (1) 굴절버스는.. 앞뒤의 번호판이 동일한 단일 차량이며, 애초에 앞뒤 파트의 분리가 가능하지 않다. 이런 차는 운전을 위해 특수 면허도 전혀 필요하지 않으며, 그냥 대형 면허만 있으면 된다.
그래도 이런 차도 주차를 위해 후진할 때 트레일러를 몰고 후진하는 것과 비슷한 운전 테크닉이 필요하기는 할 것 같다.

(2) 개인적으로 몰랐던 사실 하나 더..
시내를 다니는 대형 굴절버스는 길이가 16.7m조차 넘어서 거의 18m에 달한다고 한다.
현행법으로는 굴절버스를 포용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저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무려 114조에 가서야 특례가 추가되었다.
동법 1항의 별첨 31에 따르면 굴절버스는 최대 길이가 19m까지 허용된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인터넷 상으로 찾기도 굉장히 어렵다.;;

(3) 그러고 보니 굴절 버스는 "앞바퀴 - 중간바퀴 - (관절) - 뒷바퀴"인 편인데.. 엔진과 구동축은 어디에 장착되는 걸까..??
버스는 맨 처음에 트럭과 같은 FR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RR이 정착했다. 굴절 버스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는 이 RR의 뒤에다가 관절과 차축만 그대로 추가한 형태인 "중간 엔진, 중간 바퀴 MM(??)"이 쓰였다. 이게 더 직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객 탑승 공간이 있어야 할 곳에 엔진이 들어가는 건 보기 좋지 않고 정비성도 열악했다. 그래서 오늘날의 굴절버스들은 관절까지 넘어서 여느 버스들과 마찬가지로 닥치고 맨 뒤에 엔진과 구동축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건 다 좋지만 관절보다도 뒤에 무거운 엔진과 구동축이 실리니.. 가속 중에 관절 앞뒤가 꺾여 버리는 잭나이프 현상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사실은, 엔진 차원에서 그걸 제어하는 기술도 다 개발됐다고 한다.

3. 트레일러 버스

지금이야 대형 버스는 엔진이 뒤에 장착되는 게 국룰이며, 사람이 타고 내리기 편하라고 바닥을 최대한 낮게 만든다. 이는 트럭과는 완전히 다른 특성이다.
하지만 옛날, 20세기 초중반에는 대형 버스도 엔진이 앞에 장착됐고, 트럭과 동일한 프레임에다 뒤쪽만 살짝 바꿔서 버스를 만들곤 했다. 그렇게 하는 게 간단하고 쉬우니까.. 버스와 트럭 사이에 구조적인 차이가 더 적었고 서로 비슷했다.

이와 관련하여 ‘트레일러 버스’라는 게 있었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놀랐다.
우와, 참신한데? 트랙터에다가 이런 객차를 연결하면 버스가 되고, 여느 화물칸을 연결하면 트럭이 되겠다. 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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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제조 기술이 부족하고 자동차가 아주 비싸고 귀하던 시절에는 이런 식의 운용이 의미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건 이내 구닥다리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차체가 수송 가능 인원에 비해 불필요하게 길어지고, 운전사와 차장이 반드시 따로 필요하며, 코너링이나 후진 같은 운전이 대단히 어렵고 사고의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레일러 버스는 20세기 중반의 과도기 유물로 전락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날 굴절버스는 트레일러 버스의 후신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근데, 쿠바 같은 일부 나라에서는 트레일러 버스가 아직도 현역인가 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4. 이륜차 등 소형차

(1) 그러고 보니 시골의 딸딸 경운기도 뒤의 짐받이 부분은 엄밀히 말하면 아주 자그마한 트레일러이다. 하지만 이런 농기계는 번호판 등록이 필요한 차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2) 오토바이에다가도 사이드카나 트레일러를 연결해서 사실상 삼륜차로 개조하는 경우가 있다. 오토바이는 전통적으로 번호판이 뒤에만 장착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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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요즘 오토바이는 배기량 50cc짜리 초소형이라도 다 환경을 위해 4행정 엔진을 쓰고, 운행을 위해 번호판 등록과 면허를 요구하니 자동차의 특성과 갈수록 비슷해지고 있다. 즉,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작고 단순한 쪽은 전동 킥보드나 전기 자전거처럼 배터리 기반의 퍼스널 모빌리티로 넘어가고 있다.

(4) 자동차라는 게 발명되기 전, 소가 끄는 달구지야 한반도에서도 오래 전부터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느다란 고무 타이어에 철제 프레임이 달린 현대적인 형태의 리어카가 최초로 등장한 곳은 1920년대의 일본이라고 한다. 소가 아니라 사람이 끄는 것에 최적화된 수레.. 역시 인력거를 발명한 나라에 걸맞은 발상인 것 같다.

(5) 서양에서는 마차가 발달했지만 동양? 혹은 조선 한정은 가마라는 게 있었다. 오히려 죄인을 호송하는 수레를 소가 끌고 가곤 했었다.;;
그 뒤 오늘날은 사람이 끄는 수레는 공항이나 마트에서의 쇼핑카트, 그리고 바퀴 달린 여행 가방으로 형태가 바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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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3/04/21 08:35 2023/04/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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