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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 쉬는 시간대

※ 공휴일

난 우리나라의 각종 제도와 상징에 마음에 안 드는 게 좀 있다고 견해를 피력했던 바 있다.

  • 국가는 너무 밋밋하고 앞부분 박자가 약간 이상해서
  • 지폐 도안은 온통 조선 시대 인물.. 그것도 실학이라도 좀 한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유학자밖에 없어서. 정 약용, 유 일한, 공 병우, 우 장춘.. 이런 사람이라도 좀 넣으라고..
  • 그리고 공휴일은.. 기독교와 불교라는 종교 공휴일을 두느니, 차라리 제헌절을 공휴일로 지정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가 무슨 국교가 있는 나라도 아닌데 말이다. 일본에서는 '헌법기념일'이 당당히 공휴일이다.

우리나라는 2010년대부터는 이제 대체 공휴일이라는 것까지 도입됐다.
맨 처음에는 논다는 성격이 가장 강한 설, 추석, 어린이날 3타에 시범 적용됐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신정, 현충일, 석가탄신일/성탄절 요 4일을 제외한 나머지 공휴일에 모두 확대 적용되기 시작했고, 2023년부터는 종교 공휴일마저 대체 공휴일 적용을 받게 됐다~!

기묘하게도 우리나라는 개천절-한글날이 6일 간격의 공휴일이고, 성탄절-신정 연휴가 1주일 간격의 공휴일이다. 그리고 그 사이 11월에는 공휴일이 전무하다.
그런데, 작년 2022년에는 전자는 앞뒤 모두 대체공휴일이 적용되는 반면, 후자는 앞뒤 모두 대체공휴일이 적용되지 않았었다.

먼 옛날, 우리나라에 야간 통금이 있던 시절에는 성탄절과 새해가 나란히 통금이 해제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거 영향으로 생일이 10월 초~중순인 사람이 더 많을 정도라고 하는데.. ㄲㄲㄲㄲㄲ

본인은 성탄절이 무슨 로마 제국 태양신 숭배와 기독교-이교도 동화 정책에서 유래된 명절이고 예수님의 실제 탄신일이 아니고 어쩌구저쩌구를 강하게 강조하는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부활을 기념하라고 명시했지, 탄생은 별로 말하지 않는다느니.. 크리스마스 트리는 렘 10:3-4나 다름없는 이교도 뻘짓이라느니.. 이런 말도 당연히 머리의 지식으로야 동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저런 지식적인 사실과 별개로 다양한 기독교파들이 생각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예수 탄신일을 기리고 있다. 성탄절이 하루가 아니라 기간인 곳도 있고, 성탄절이 아니라 '주현절'이라는 걸 지키는 곳도 있다.
이 와중에 교회가 아닌 세상에서 이맘때쯤에 이렇게라도 기독탄신일이라는 걸 챙기고 길거리에서 캐롤 틀어 주고 온갖 반짝반짝 색종이를 붙여 놓는 것 역시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즉, 이런 게 비성경적이기는 하지만 반성경적이라고 매도까지 할 필요는.. 글쎄다.
성경이나 교회와 아무 관계 없는 세상 정치인일 뿐이지만, 몇 년 전 천조국 도람뿌 성님이 “Happy holiday” 이딴 PC스러운 명칭 대신, 기존 관행대로 “Merry Christmas”를 지켜 주겠다고 하니까 내 개인적으로는 아주 마음에 들고 든든했다. 가재는 게 편이고 팔은 안으로 굽는 건가?

※ 시간

1.
은행에는 매일 시스템 점검 및 현금 정산 시간이 있다. 밤 11시 반~자정을 전후한 시간대에는 송금이 잠시 안 된다.
그런데.. 점검을 할 거면 사람이 가장 깊은 잠에 빠지는 보편적인 시간대라고 김 성모 화백도 인정한 새벽 2시 무렵에나 할 것이지, 애매하게 불편한 저런 시간대에 하는 이유는 뭘까..??
이자 계산이 0시 정각 당시의 금액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그런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 시스템 점검과 정산은 무슨 도로 보수 공사처럼 무작정 으슥한 새벽 시간대에 할 수는 없다. 날짜가 바뀌는 시간대 근처에 해야 한다.

2.
우리나라의 고속열차에는 심야열차 같은 게 없다. 우리나라는 고속철이 시속 300으로 5~6시간씩 달릴 정도로 땅이 넓지 못하기 때문이다.
느린 완행 일반열차는 밤새도록 달려서 이튿날 아침에 서울이나 부산에 도착하는 장거리 심야열차가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요즘은 줄어드는 추세이며, 우리나라는 정서적으로 침대차라는 게 생소한 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새벽 1~4시 심야에는 고속철이 운행되지 않는데.. 이때 말고도 아침 11시~정오 부근에 잠깐이나마 열차 운행이 멈추는 시간대가 있다.
아 물론 10시 반에 이미 멀쩡히 출발한 열차가 11시 정각에 무슨 현충일 묵념하듯이 멈춘다는 게 아니다. 저 시간대에는 새로운 열차를 출발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속철 하행 열차 시각표를 보시라. 저 시간대에는 경부 호남 전라 SRT 등 어느 노선을 봐도 서울 발 열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침 11시 20분 부산 행 KTX/SRT..?? 그런 거 없다.
상행도 비슷하게 아침 11~12시 이상과 미만 사이의 구간에는 부산이나 목포를 출발하는 열차가 없다. 고속버스와는 다른 특성이다.

새벽 심야 말고 이때도 잠깐 전차선을 일부 구간이나마 단전하고 선로를 점검한다고 들었다. 텔레비전으로 치면 정파 시간과 비슷한 셈이다.

중단 없이 24시간 운행되는 지하철은 전세계를 통틀어 뉴욕 지하철이 유일한 건지..?
얘들도 24시간 운행 중에도 선로 정비와 보수를 틈틈이 하느라 애로사항이 많으며, 또 적자 때문에 이 짓을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고 그런다.
코로나 시국 때는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딱 2시간만 쉬다가 첫 차를 바로 쏴 준 적은 있었다고 한다.

3.
우리나라는 원래는 혹한기(12월~2월)와 혹서기(7월)를 제외한 매월 15일 오후 2시가 국가적인 민방위 대피 훈련일이다. 약 20분 동안 공습경보가 울리고 대중교통들이 몽땅 멈추고 자동차들도 잠시 옆에 멈춰 서야 하는데.. 난 태어나서 이 나이 되도록 그런 제도가 있는 줄을 몰랐다. ㄲㄲㄲㄲㄲ 존재감이 전혀 없다.
참고로 요즘 부산의 영도대교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약 15분 동안 올라간다고 한다. ㅡ,.ㅡ;; 새벽 2시 말고 오후 2시는 잠이 아니라 평일 일과 때문에 길거리가 상대적으로 가장 한산(?)한 시간대로 취급되는가 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8/20 08:36 2023/08/2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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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진포 해수욕장 + 화진포 관광지

주말이 아니라 평일이어서 그런지.. 여기는 크고 유명한 해수욕장임에도 불구하고 해변은 예상 이상으로 사람이 없고 아주 조용하고 황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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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예상 밖의 애로사항으로는.. 이 달밤--이 당시 커다란 보름달이 떴음--에도 바닷가가 하나도 시원하지 않았다. 바다가 지척임에도 불구하고 바람도 전혀 불지 않고 그저 덥기만 했다.
텐트를 세팅하는 동안 땀을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바닷물에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 뒤에 모래와 바닷물을 털어내는 뒷감당이 부담스러운 지경이었기 때문에 못 했을 뿐이다.

새벽에도 이제 땀이나 안 나는 정도이지,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습도가 높았는지, 텐트가 밤에 비 대신 이슬 폭격을 맞아서 다 젖었을 뿐이었다. 기온이 별로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이슬이 이렇게 많이 맺힌 건 습도 탓이겠지..;
개인적으로는 이슬 물기라도 수건에다 적셔서 더위를 식히는 데 활용할 수 있었다.

그래도 모래밭은 잔디밭 이상으로 푹신하고, 파도 소리는 자장가처럼 들려서 좋았다. 이런 건 계곡이나 시냇가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다.
여기는 네임드 메이저 해수욕장이어서 그런지 모래밭에서도 공공 와이파이가 잡혔다. 내일은 벌써 연휴 마지막 날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라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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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쯤에 일어나서 날이 서서히 밝아지는 걸 지켜봤다. 그 뒤, 더 더워지기 전인 아침 7시쯤에 물놀이를 시작했다. 이미 6~7시쯤에 해가 뜨자마자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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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송지호 만만찮게 물이 맑고 얕고 정말 좋았다.
간밤에 너무 더워서 쌓였던 땀과 피로를 속 시원하게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이로써 어제부터 오늘까지 송지호, 명파, 화진포 이렇게 해수욕장 3개를 성공적으로 섭렵했다~~ ^^

8시 무렵이 되자 텐트를 흠뻑 적셨던 이슬은 순식간에 증발하고 없어졌다. 밤에도 별로 시원하지 않았는데 이젠 텐트 안에서 지내는 게 도저히 불가능해졌다.
1시간 남짓한 물놀이를 마친 뒤, 텐트를 철수하고 짐을 쌌다. 짐이 워낙 많아서 한번에 다 옮길 수 없기 때문에.. 침구류 같은 건 화장실에 다녀올 때 조금씩 차에다 미리 옮겨 놓기도 했다.

씻고 옷 갈아입고 텐트와 매트에서 모래를 완전히 털어내는 것도 무척 신경 쓰이고 귀찮았다. ㅠㅠ
물에서 나온 직후에는 한동안 덥지 않고 시원하고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뒷정리를 하느라 땡볕 아래에서 오랫동안 있으니 그 보호막이 없어지고, 물놀이 전의 더운 상태로 몸이 되돌아갔다. ㅠㅠㅠㅠ

바다는 계곡에 비해 이런 뒷정리가 참 번거롭긴 하다. 이러니 모래밭 말고 풀밭에 나무 그늘 있는 별도의 바닷가 캠핑장이 장사가 되는 것 같다. 거기는 차와 화장실과 수돗물도 훨씬 더 가까이 있고, 돌아다닐 때 모래 털어낼 걱정도 안 해도 되니까.. 단지, 텐트에서 바다까지의 거리가 더 멀어진다.

아침 9시쯤에 화진포 해수욕장을 빠져나왔다.
본인이 들렀던 해수욕장들은 모두 주차비를 징수한다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차단기까지 동작하면서 주차비를 징수한 곳은 화진포 한 곳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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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호와 화진포는 육지 쪽에 호수가 있고 바닷가에 자그마한 바위섬이 있는 게 공통점이다.
그래서 화진포의 성(일명 김 일성 별장) 같은 곳에서 바닷가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고개만 돌리면 호수를 목격할 수 있다.
예로부터 돈과 권력 있는 사람들이 괜히 이 오지까지 찾아가서 별장을 만든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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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호수와 바다 사이의 캠핑장 구간에는 이렇게 숲길이 잘 꾸며져 있었다. 날씨가 더웠지만 이 기회에 여기 산책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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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후에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간 내란이 발생할 여지가 없게 해 달라
  • 한반도엔 소련이 개입하지 않고 미국이 단독 진입해야 된다.
  • 북괴는 저렇게 놔 두면 언젠가 반드시 침략해 올 거니까 남한 땅에 제발 일정 수준 이상의 군사력을 남겨놔야 된다. 일본군 무장 해제만이 장땡이 아니다.
  • 우리는 공산당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공산주의를 빙자한 반역 매국질을 반대하는 거다.
  • "아니, 백범 그 양반은 북한과 대화를 하려면 스탈린을 찾아가야지, 왜 김 일성을 찾아가는가?"

아아~ 건국 대통령 리 승만 할배는 저 정도로 선각자 초인이었다. 단지,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기 때문에 지상락원 유토피아까지는 못 만들고, 그냥 지지고 볶고 흑역사도 있는 현실 속의 최선, 아니면 끽해야 차선의 국가를 세웠을 뿐이다.
귀가를 앞두고 화진포 리 승만 대통령 별장을 오랜만에 다시 들러서 국뽕을 한 사발 충전했다.

미국이 할배의 말을 안 들어서 우리나라가 이 지경이 됐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도 얼마나 불필요하게 고생하고 삽질을 했나 모른다.
그런데 우리도 가난하고 아무 힘이 없어서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는 처지였으니, 마냥 미국 탓을 할 수는 없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고 한계였으니 말이다.

잠깐만 험악한 막말 좀 하겠다.
리 승만이 분단의 원흉이네, 전쟁 벌여 놓고 튀었네 이 X랄 하는 개새X들,
천안함 함장보고 경계에 실패한 패잔병 씨부리는 씨X놈들. (우리가 군한테 큰 권한을 준 적은 있었냐. 무조건 선빵 맞은 뒤에만 대응 가능하고, 예방 전쟁, 선제공격, 보복 한번 못 한 주제에.. 이건 뭐 군대가 아니라 자위대지..)

그래도 걔들도 인간이니까 먼저 갱생의 기회는 줘야지. 팩트와 정답을 친절히 알려줬는데도 산업화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다 대가리에 총 갈겨서 쏴 X여 버려야 된다.
리 승만 별장에 단체 관광으로 찾아온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서 좋았다. 이 기붕 별장, 화진포의 성, 화진포 생태 박물관도 다시 들르기는 했는데.. 물론 7년 전 대비 달라진 것도 있지만, 사진 소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이상이다.
서울로 돌아갈 때는 7번 국도를 따라 남쪽 속초와 양양까지 갔다. 하조대 해수욕장 구경까지 잠깐 한 뒤 서울-양양(60) 고속도로를 전구간 이용해서 귀가했다.
이 도로는 긴 터널이 정말 많았다. 중부나 외곽순환 같은 익숙한 고속도로를 전혀 경유하지 않고 서울 시내로 진입하니 느낌이 색달랐다.

강원도 북쪽 끝에서 서울까지 거리가 생각보다 길지 않아서 3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것 같았다. 홍천-춘천 사이에서 차가 많아져서 약간 막혔지만 이 정도는 견딜 만했다. 그러나 남양주에 도달한 서종-화도 사이에서 정말 미칠 것 같은 끔찍한 정체의 헬게이트가 시작됐다.

새로 들어오는 차량들, 공간을 차지하는 일부 고장 차량들, 차로가 줄어드는 구간 등의 요인이 겹쳐서 차들이 나아가질 못했다. 차가 제대로 달리지 못하니 에어컨도 찬바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운전이 더욱 괴로워졌다. 바깥 공기는 뜨거운 한증막 같아서 창문을 열 수도 없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여기는 도로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상습 정체 구간이랜다. 그런데 어차피 주변의 다른 국도들도 왕창 막히고 있기 때문에 딴 데로 우회할 수도 없고.. 도로가 확장이 어려운 고가· 터널 일색인 데다 민자 구간(경춘)도 섞여 있어서 뭘 어찌하기가 난감한 지경이라고 한다.

뭐 이렇게 휴가를 잘 마치고 돌아왔다. 올해 정도면 2018년 폭염보다 더한 걸까? 무더위가 어서 좀 식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후일담으로 일영· 장흥 계곡이나 안양 병목안 계곡도 가 보고 싶다. 그리고 올해 유일하게 폭염경보가 없었다는 평창 대관령 일대도.. 앞으로 여름에 계속 이렇게 더우면 그런 곳도 차차 개척해 볼 생각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8/17 19:35 2023/08/1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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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송지호, 명파 해수욕장

텐트 안에서 편안하게 잘 자고 일어났다.
여기도 전날 저녁에는 좀 더웠지만, 새벽이 되자 텐트 창문을 닫아도 될 정도로 시원해졌다. 여기는 저녁에는 뱅이골 공원보다 덜 더웠고, 그 대신 새벽에 시원한 것도 뱅이골 공원보다 덜했다. 온도 변화가 더 작은 것 같다.

아침 8시 무렵이 되자 어김없이 뙤약볕이 내리쬐면서 주변이 몹시 더워졌다. 이제 냇가에서 물놀이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한 뒤, 텐트를 철거하고 고성으로 길을 떠났다. 차창 밖에는 꼬불꼬불 산길과 들판, 개천이 차례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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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고성의 남쪽으로 가서 지금까지 말로만 들었던 송지호 해수욕장에 들렀다. 시간은 아침 9시 무렵..
지금까지 계곡과 냇물에서만 물놀이를 하다가 넓은 동해 바다를 접하니 정말 감격스러웠다.
전날 바닷가에서 야영을 했는지 모래밭엔 텐트 몇 개가 이미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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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수욕장이 인기가 많은 이유를 금세 눈치 챌 수 있었다.
모래밭이 왕창 넓으며, 반대로 동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물이 잔잔하고 얕았다. 거의 100미터 이상 들어가야 내 가슴과 목까지 물이 차더라.
쉽게 말해 황해의 얕음에다 동해의 맑고 시원함이 결합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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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시간 동안 시원한 바닷물 속을 거닐면서 무더위를 완전히 날려 버렸다.
너무 시원해져서 “이거 뭐 하나도 안 더운데? 피서 괜히 온 거 아냐?” 이런 배부른 생각까지 하다가..
물놀이를 마친 뒤에 열받아서 뜨겁게 달궈져 있는 핸드폰을 만지면서 현타를 체험하는 거.. 이게 개인적으로 최고로 치는 피서 경험이다.

바다는 물의 행동 패턴이나 물놀이 하는 방법이 계곡· 냇물과는 완전히 다르다.
바다는 모래와 소금물 씻어내기라는 후처리가 필요해서 물놀이를 하는 게 다소 번거롭다. 그리고 물놀이를 하는 동안에는 그늘의 혜택을 전혀-_-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피부가 더 타기도 쉽다.
그래도 계곡하고는 비교할 수 없이 넓고, 물 속 바닥 지형이 더 부드러운 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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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소지품의 맨 위에다가 호박 쿠션을 올려 놓으니 멀리서도 눈에 잘 띄고 좋았다~~~ ㅋㅋㅋㅋㅋ
해수면과 모래밭이 이렇게 높이 차이가 나는 건 황해는 절대 해당사항이 없지. 동해 맞다.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는 근처의 카페(샌드스케치)에서 오전 내내 쉬었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옷을 말리고 인터넷을 확인하고, 노트북과 폰과 배터리를 잔뜩 충전하면서 보급을 넉넉히 받았다. 어제 진부령 캠핑장에서는 꽤 오랫동안 컴퓨터 작업을 하면서 배터리를 또 왕창 소모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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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국도 7을 타고 북쪽으로 한참을 달려서는.. 대한민국 최고위도 최북단에 있는 명파 해수욕장을 찾아갔다.
고성군은 서쪽이 몽땅 산이며 휴전선도 거의 수직으로 쫙 그어져 있다. 그래서 종축 간선 도로인 7번 국도의 좌우로 마을이나 해수욕장이 포도송이처럼 송송 매달려 있는 형태이다.

송지호에서 명파까지는 직선 거리로 25km가 넘었다. 도로는 쌩쌩 달리기 좋긴 하지만 조금 달릴 만하면 교차로 신호에 걸려서 서야 하는 게 애로사항이었다. 아무래도 고속도로가 아니니까.. =_=

송지호 해수욕장 주변은 제법 마을이 있고 으리으리한 호텔도 지어져 있었던 반면, 명파 주변은 자본주의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듯이 낙후한 시골 깡촌이었다. 7번 국도 구도로를 끼고 산길을 오르내리면서 접근하는 것도 훨씬 더 불편했다. 뭐, 여기는 통일 전망대 검문소가 지척에 있을 정도의 최북단 오지이니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다.

7년 전에도 여길 가 본 적이 있었는데 이 정도로 차이가 났었나? =_=;; 물론 그때는 해수욕장이 폐장 상태였기 때문에 명파는 해변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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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파는 모래밭과 해변의 크기도 송지호보다 더 작았다. 하지만 낮 시간이고, 또 전국 최북단이라는 인지도가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피서객이 많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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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여기서도 30분이 넘게 2차 물놀이를 하면서 또 시원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해수욕장이 규모가 작으니 주차장에서 모래밭까지, 모래밭에서 바닷물까지 거리가 짧고 금방 갈 수 있었다. 이게 의외로 편하고 좋았다. ^^

현장에 있던 당시에는 명파나 송지호나 수질은 비슷하고 명파가 좀 더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명파는 송지호보다 물이 덜 맑은 것처럼 찍혔다. 시간대와 광량, 카메라의 상태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로 그런 수질 차이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명파에서 물놀이를 마친 뒤에는 고성군에서 중심부에 속하는 간성읍에 갔다. 여기서 개인적인 쇼핑과 잉여질을 하고, 낮잠도 한숨 자면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보급을 받았다.
읍내의 도로에는 의외로 "30분 이상 주차 시 단속"이라는 페널티가 걸려 있었다. 해수욕장 때문인지 양구· 인제보다는 주차 조건이 더 빡빡했다. 그래서 차를 오래 세우려면 골목 같은 더 구석을 찾아 들어가야 했다.

해가 진 뒤, 이번 여행의 종지부를 찍은 곳은 화진포였다. 여기도 7년 전에 들러 보긴 했지만, 그래도 경치가 워낙 좋은 곳이니 또 들를 가치가 있어 보였다.
캠핑도 여기 모래밭에서 했다. 이로써 강가 캠핑과 바닷가 캠핑을 모두 달성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3/08/15 08:35 2023/08/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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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후 보급 + 진부령 유원지

이렇게 두타연과 첫 물놀이 미션을 마친 뒤엔 더 동쪽의 인제· 고성으로 향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게 됐는데..
전날 캠핑을 했던 장소인 뱅이골 공원에 다시 들러서 여기서 잠시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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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시각은 12시 반. 정말 살인적인 뙤약볕이 내리쬐었지만 이 그늘 아래의 벤치는 생각보다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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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원은 쉬거나 캠핑을 하는 장소로 정말 좋은 것 같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고 완전 한적하고 조용하고 자연의 정취가 느껴지고.. 이런 곳에서 최대한 오래 머물러 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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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서 인제로 갈 때는 국도 31을 타고 쭉 달렸다. 이 도로로 진입하기 위해서 어제 들렀던 파로호 부근까지 되돌아가야 했다.
이거 말고 다른 길은 지방도 453이 있더라. 얘는 양구 해안면 펀치볼을 경유하는 꼬불꼬불 산길인데.. 경치는 좋을 것 같지만 딱 봐도 경로가 국도 31보다 더 삽질스러워 보여서 그리고 가지 않았다.
하긴, 7년 전에는 제4 땅굴과 을지 전망대를 보러 해안면으로 갔으니 저 길을 지나갔지 싶다.

산을 하나 넘고 긴 터널을 지나니 행정구역이 인제로 바뀌었다. 가는 길에도 시냇물과 계곡을 몇 번이나 마주쳤으며, 거기에도 대낮부터 텐트 치고 캠핑하는 사람이 여럿 보였다.
본인은 인제군 원통리 읍내에서 그야말로 총체적인 보급을 받았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으며, 근처 카페에 들러서 약 2시간 동안 인터넷을 확인하고 노트북과 폰, 보조 배터리를 가득 충전했다. 여기가 정말 오아시스 같았다.

그 다음 인제에서 고성으로 가는 길(국도 46)도 아주 경치 좋은 산길이었으며, 산을 하나 넘으니 계곡을 나란히 따라갔다. 이런 길을 오랫동안 운전하니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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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과 진부령이 나뉘는 갈림길 부근에서는 온통 황태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던데.. 그뿐만 아니라 이런 명물이 있었다.
'매바위 인공 폭포'라고 높이 83미터짜리 폭포라고 한다. 그 많은 물을 어디서 어떻게 저 높은 곳까지 끌어올렸다가 떨어뜨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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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보라와 바람을 쐬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못해 쌀쌀할 정도였다. 여기도 정말 훌륭한 피서지였다.
그리고 저 맑은 물에 바로 뛰어들어서 몸으로 폭포수를 직접 맞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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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령 정상에 도달했다가 쭉 내려가는 도중엔 이렇게 졸음 쉼터가 잘 꾸며져 있었다. 지방도 460에 있던 그 해산 전망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제 날도 슬슬 저물고 있는데, 이런 풀밭에 텐트를 치고 자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하지만 여기는 물놀이를 할 곳이 없고 화장실도 없으니.. 원래 캠핑을 하기로 계획한 곳까지 그냥 갔다.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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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이다. 둘째 날 캠핑을 한 곳은 진부령 유원지이다. 이번에는 아무도 없는 오지가 아니라 정식 캠핑장을 찾아갔다.
어쩌다 보니 입장료 지출까지 하게 됐지만, 이게 나름 장점도 있었다. 시냇물이 바로 코앞에 있는 곳에다가 차를 대고 텐트를 칠 수 있었으며, 수돗물과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캠핑장에는 나 말고도 텐트를 친 팀이 3개 정도 더 있었다. 의외로 애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는 아니고 다들 중· 장년 아저씨들이었다. 그래도 캠핑장의 면적에 비해 이 정도면 아주 조용하고 한산하고 공간이 충분히 여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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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은 맑고 시원하고 양도 많았다. 얕아 보여도 깊은 곳은 나름 가슴까지 물이 찼다.
낮에 이어 저녁에도 온몸을 시냇물에 담그니 무더위가 완전히 날아가고 세상 근심 걱정까지 다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물놀이를 마친 뒤엔 텐트 안에 누워서 글과 코딩 작업을 했다.

이렇게 여행 둘째 날이 저물었다. 지금까지 산과 계곡을 즐기는 여행을 했다면, 다음 날부터는 바다를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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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3 08:35 2023/08/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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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타연 + 물놀이

새벽에 뭔가 싸늘한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떴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주변은 더워서 땀이 날 정도였는데 지금은 기온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뚝 떨어져 있었다. 텐트 창문을 닫고 심지어 텐트 커버를 덮어야 할 정도였다.

유일한 애로사항이던 무더위가 해소되니 여기는 진정한 지상락원 무릉도원으로 거듭났다. ^^ 먼 길을 달려 피서를 떠난 보람이 있었다. 이 상태로 아침 8시 무렵까지 있으면서 푹 잘 쉬었다.
(스포일을 미리 하자면.. 이게 이번 강원도 여행 전체를 통틀어서 경험했던 가장 시원한 밤이었다. ㄲ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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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벌써부터 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텐트가 나무 그늘 아래에 있었던 덕분에 아직까지는 별로 덥지 않았다. 이제 여기서 북쪽으로 몇 km 남짓 더 가서 두타연 관광을 떠났다.

두타연~~!! 평화의 댐 근처에 이런 게 있다고 얘기는 어렴풋이 들어 왔지만, 민통선 안에 있다고 그래서 지금까지 범접하지 못했다. 지금은 1회당 최대 100명씩 하루에 3번만(아침 10, 오후 1, 오후 3) 군인들의 통제 하에서 입장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나야 제일 이른 아침 10시를 선택했다.

저기는 민통선 안이기 때문에 들어가려면 마치 국제선 비행기를 타는 것 같은 보안 검색을 거쳐야 했다. 차 뒷좌석과 트렁크를 군인에게 형식적으로나마 보여줘야 했을 정도이니..
그 뒤 수십 명의 인원이 자기 차를 몰고 일렬로 늘어서서 한꺼번에 입장하고 퇴장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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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민통선 입구(안내소)에서부터 두타연 바로 근처의 내부 주차장까지도 수 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그 찻길은 몽땅 비포장이더라. 한번 주행하고 나면 차가 흙먼지를 왕창 뒤집어쓰기 때문에 세차를 해 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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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편한 절차를 감내하고 결국은 두타연 계곡을 보게 되었다. 강물이 한데 고였다가 흐르는 커다란 계곡? 물웅덩이 내지 폭포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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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경치는 듣던 대로 정말 아름답고 한편으로 웅장했다. 하지만 힘들게 찾아갔는데 여기서 물놀이나 캠핑을 할 수 없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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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의 자유도는 단체 패키지 관광보다 약간 나은 정도였다. 그냥 서너 팀 정도로만 갈라져서 군인이 지켜보는 상태로 1시간 남짓 머무르는 게 전부였다. 가이드만 따라다닐 수도 있고, 가이드의 페이스가 답답하면 몇몇 무리에 껴서 이탈할 수 있었다.
(원래는 이 정도까지 통제는 안 했댄다. 허나, 최근의 그 미군 월북 사건을 계기로 보안이 더 강화됐다고.. =_= 아놔 그거랑 이게 뭔 상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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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아래에서 한 컷.. 이런 몇몇 지점에서 계곡 물에 손발을 잠깐 담그는 것까지만 가능하다. 이런 곳에서 제대로  쉬지를 못하고 그냥 눈요기만 하고서 허겁지겁 돌아와야 하다니. ㅠㅠㅠ
모든 관광객들은 목걸이를 받는데, 거기에 GPS가 달려 있다고.. 돌발행동이 감지되면 군인들이 바로 출동한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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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연 소개는 이 정도까지 하련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는 민통선 이북 특유의 자연 경치 하나는 정말 죽여 준다.
그러나 나 정도로 안보 관광에 관심이 있거나 자연 계곡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런 보안 불편을 감수하고까지 꼭~~ 갈 만한 곳이라고는 말을 못 하겠다. 물놀이 텐트질을 할 거면 그냥 여기보다 더 서쪽의 천미 계곡을 한번 더 가는 게 나을 테니까.
여기는 특별한 곳에 한번 와서 이런 비경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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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연 입장 안내소로부터 1.5km 남짓 남쪽에는 다리 아래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는 두타연과 달리 입장에 아무 제약이 없다. 그러니 본인은 여기서 물놀이를 하면서 더위를 식혔다. 시원한 냇물에 온몸을 적시니 낮 기온 35도에 달하는 폭염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오전 시간을 이렇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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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0 19:36 2023/08/1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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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하순부터 두 주 가까이 우리나라엔 살인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 아주 가끔씩 국지적인 소나기 정도나 찔끔 내린 것 같지만.. 무더위의 해소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되었다(서울· 수도권 기준). =_=;;
그나마 그 직전에 워낙 비가 많이 내려서 그런지, 이 와중에 가뭄 걱정이 없는 건 다행이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에어컨을 그렇게 많이 틀어댔을 텐데 전기 공급에 트러블이 딱히 없는 것도 다행..

본인은 지난 현충일 연휴로부터 거의 두 달 뒤인 7월 말과 8월 초에 걸쳐서 강원도 동북부에 여행을 다녀왔다. 날씨가 저 지경이니 하계휴가로서는 이때가 정말 최적의 시기였다.
현충일 때 철원과 화천에 갔다면, 이번에는 더 멀리 동쪽까지 가서 양구와 고성을 찍고 바다에 도달했다. 3박 3일 동안 계곡과 바다를 모두 구경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번 여행은 7년 전, 2016년에 다녀왔던 여행과 일부 겹치는 구간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워낙 옛날이기도 하고, 또 그때는 해수욕장이 폐장한 9월 초에 간 것이었기 때문에 피서 효과가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또한, 지난 6월 여행 때는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강원도 북부를 다녔기 때문에 고속도로는 포천-구리(29)밖에 이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춘천까지 서울-양양(60) 고속도로를 타고 순식간에 이동했다. 강원도에 가는데 영동(50) 고속도로를 전혀 이용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강촌 IC를 앞두고 홍천강을 건널 때, 다리 아래의 풍경이 아주 인상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거기 강변엔 유원지와 캠핑장이 있어서 차량과 텐트들이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이 늘어선 상태였기 때문이다. 오~ 저기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 보고 싶다.

철도와 잠시 비교를 해 보자면.. 영월과 태백을 찍고 강릉으로 올라가는 기존 태백선과 영동선 철도는 고속도로로 치면 40과 비슷할 정도로 너무 남쪽으로 우회한다.
그나마 50과 대등한 강릉 방면 준고속선 철도가 2010년대 말에 평창 동계 올림픽 덕분에 만들어지긴 했다. 그러나 그 무렵엔 고속도로는 50보다 더 올라가는 60이 만들어지면서 격차가 다시 벌어지게 됐다. 과연 60에 대응하는 철도가 만들어지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1. 파로호, 뱅이골 공원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뒤, 춘천 동부 외곽에서 양구까지는 46번 국도를 따라 이동했다. 길은 대체로 2차로이지만, 터널이 많고 곧고 길게 잘 뚫려 있었다. 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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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외국어 고등학교, 양구 선사 박물관, 양구 역사 체험관을 거쳐서 파로호 한반도섬 부근에 도달했다. 토요일 오후에 좀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이때는 이미 저녁 6~7시가 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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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뭔가 팔당호에 있는 팔당 물안개 공원 내지 두물머리 공원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는 꼭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1시간 남짓 산책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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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 그늘은 한낮에도 생각보다 시원할 것 같다. 밤에 혼자 이런 곳에 텐트 치고 있어도 무척 아늑하고 시원할 것 같긴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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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은 다들 이렇게 생겼던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렇게 자그마한 갈대밭 위로 목재 데크 산책로만 있는 지역은 진짜 한반도섬이 아니었다. 저기서도 다리를 건너서 건너편으로 한참을 더 가야 한반도섬이 나왔다.
진짜 한반도섬은 자동차까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정말 큰 육지이고, 안에 온갖 건물과 조형물까지 있더라만.. =_=;;

나는 그냥 넓은 주차장 공터가 있고 한반도섬 이정표가 있는 강변에서 막연히 산책을 시작했는데, 거기는 한반도섬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안내가 거기엔 충분히 돼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난 한반도섬 근처의 갈대밭 습지만 산책하다가 돌아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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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아무 배경지식 없이 갔다가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 뭐냐 하면..
파로호라는 것 자체가 ‘화천 파로호’와 ‘양구 파로호’로 나뉘어 있고, 둘은 사실상 별개의 호수라고 봐야 할 정도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7년 전에 화천댐과 함께 전망대, 안보 전시관을 끼고 있던 파로호는 북한강을 낀 전자이다.
그러나 한반도섬이 있는 이 파로호는 양구 서천을 낀 후자이다. 이런~
철원 마현리와 화천 마현리는 그래도 인접해 있기라도 하지만 화천 파호로와 양구 파로호는 그렇지도 않다. 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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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를 떠나서 더 북쪽으로 가니 국도 31을 벗어나 꼬불꼬불한 산길인 지방도 460이 나왔다. 이 길가에 '뱅이골 공원'이라는 게 있어서 본인은 여기 풀밭에다 텐트를 치고 드러누웠다. 이때쯤 되니 시간도 밤 8시를 넘어가고 날이 저물었다. (위의 사진은 이튿날 아침에 찍은 것임 =_=)

여기는 정말 환상적인 장소였다.
푹신한 잔디밭이 넓게 깔려 있으면서 은폐성 좋고 적막하고 주변에 아무도 없고, 주차 공간 넉넉하고 차와 아주 가까이에서 캠핑 가능하고..
정말 지상락원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여기는 다른 벌레가 돌아다닐지언정, 모기도 없는 것 같았다.

단, 날씨가 날씨이다 보니 해가 진 뒤에도 텐트 창문을 열고 물을 적시면서 버텨야 한다는 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었다.
비탈 아래에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긴 했다. 하지만 수풀이 너무 무성해서 지금 차림으로는 더 내려가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이것만으로도 환상적인 캠핑을 즐기다가 곧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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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8 08:35 2023/08/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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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호박 농사

본인은 올해는 지난 4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약 3개월 동안 호박을 두 곳에서 키웠다.
한 곳은 집 옥상의 화분,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집 근처 강변의 아지트. 후자는 일종의 무단경작이다.

옥상 화분은 뿌리 내릴 공간이 부족해서 그런지, 아니면 작년부터 지금까지 연작을 해서 지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퇴비와 비료, 영양제를 막 넣어 줘도 애들이 자라는 게 영 시원스럽지 않고 작년보다 못한 것 같았다. 잎이 잘 시들어 떨어지고, 씨방이 생기던 것도 암꽃이 피지 못하고 떨어졌다. 다음에 농사 지을 때는 흙을 전면 교체해야 할 것 같다.

얘들보다는 강변의 진짜 땅에서 키우는 호박이 관리를 덜 해 줘도 훨씬 더 크게 잘 자랐다. 그러니 무단경작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상한 쓰레기 전혀 없고 농약 안 쓰고, 주변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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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름답고 탐스럽지 않은가? (마지막 사진은 새벽 5시 반쯤에 찍은 것이어서 좀 어둡다 ㄲㄲㄲㄲ)
내 기억이 맞다면 얘들은 6월 초쯤부터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그 무렵부터 이제 수직이 아니라 수평으로 덩굴을 길게 뻗기 시작했다. 줄기가 길어지고 굵어지고 거의 괴물처럼 덩치가 커지기 시작했다. 잎 한 장 길이가 30~40cm에 육박하기 시작했다. 싹이 난 지 거의 45~50일 만에 영양 생장에 완전 재미를 붙인 듯하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안 했는데 호박들이 차지하는 공간이 상상을 초월하게 커졌다. 너무 비좁아져서 내가 지나가지도 못할 정도가 됐다. 아이고, 안 그래도 하천변에 불법 무단경작인데, 꼬리가 너무 길어지면 밟히는걸?? 호박이 너무 잘 자라도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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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이 덩치가 워낙 커졌으니 잎을 10여 장 정도 따도 티가 안 날 정도였다. 지난 6~7월 동안 본인은 호박잎을 거의 150~200장 가까이 따서 먹었다. 고기나 젓갈과 함께 쌈 싸서 먹기도 하고, 라면이나 매운탕에다가 넣어서 먹기도 했다. 교회 사람들에게도 두 차례에 걸쳐 40~50장 정도 나눠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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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꽃이 수십 송이 핀 뒤, 지난 6월 중순쯤에 한 덩굴에서 드디어 첫 암꽃이 폈다. 수분해 준 것은 성공해서 부풀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탐스러운 단호박이었다.
암꽃 열매가 4~5개 정도 맺힌 뒤, 7월 초순까지는 암꽃이 좀체 피지 않고 수꽃만 계속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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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작고 색깔 짙은 아이(A, 왼쪽 위)가 바로 내가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가 꽃가루를 직접 묻혀 주고 수분 성공까지 확인한 최초의 단호박 열매이다.
그 반면, 다른 하나(B, 오른쪽 위)는 꿀벌이 수분해 줬다. 저 구석탱이에 쳐박혀서 지금까지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발견했다.
덩굴 줄기를 밟는 걸 감수하고라도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보물찾기 하듯 덩굴을 수색하다가 발견하게 됐다.

단자의 모양을 보아하니 다들 일반호박이 아니고 어여쁜 단호박이었다.
하지만 둘 다... 땅에 닿은 바닥 부위가 물러지고 상하고 있어서 결국 못 먹고 버리게 됐다. ㅠㅠㅠ
어쩐지 A는 표면 색깔이 저렇게 짙어지고 줄무늬까지 선명하게 생긴 와중에 크기가 너무 커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낙과하는 조짐도 전혀 없고, 윗부분은 눌러 봐도 아무 이상이 없어서 그냥 놔 두고 있었는데..
들어올려서 밑바닥 부위를 보고는 기겁했다. 벌레까지 꼬이면서 난장판이 돼 있었다.

B는 표면을 함 보소~ 단호박도 아니고 일반호박도 아니고 참 특이하게 생겼으나~ 발견 자체가 너무 늦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역시 바닥 부위는 난장판.
최대 길이가 12cm에 달할 정도로 잘 자랐고 안에 씨도 형성돼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물렁물렁한 게 식용 불가 판정이 내려졌다.

수분 성공한 뒤에도, 식물 본체로부터 낙과 당하지 않더라도 열매가 의외의 방식으로 낙오할 수가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ㅠㅠㅠ
난 이렇게 유산된 아이는 여느 쓰레기로 취급하여 버리지 않는다. 특별히 해로운 병충해를 당한 게 아니면, 원래 자라던 텃밭에다 도로 묻어 주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다른 열매 하나는 정말 믿어지지 않지만 도난 당하기도 했다. 누군가가 잎을 뜯어 가면서 얘까지 건드렸는지, 어느 샌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제대로 자란 커다란 열매도 아니고 이런 걸 누가 따 가나 모르겠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아래의 C 하나만이 남았다. 일단 모든 부위에 이상이 없는 걸 확인했고, 얘는 바닥 부위가 썩지 말라고 흙에 닿지 않게 비닐 씌우고 바닥에 다른 깨끗한 받침대까지 깔았다.

그랬는데....
이 호박밭은 지난 7월 14일, 물의 넘침으로 말미암아 멸망했다. ㅠㅠㅠ (벧후 3:6)

서울 시내에 딱 한 번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서 주요 하천들에 둑이 범람했을 때..
한 6~7시간 정도 흙탕물 속에 잠겼더니 호박이 그걸 못 버티고 싸그리 전멸해 버렸다. 줄기가 다 쓰러졌고 다시 소생하지 못했다. 새순이 돋지 않고, 잎과 줄기는 물렁물렁해지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드가 됐다.

내가 그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강 코앞에서 텐트 치고 지켜보다가 호박들의 마지막 순간을 최대한 근처에서 지켜보고 함께하는 것이 전부였다.
농경지 침수 피해를 입은 농민 심정을 약간이나마 알 것 같았다.
옥상 화분에서 키우는 거 말고, 강변에서 무단경작 하고 있던 아이들과는 이렇게 이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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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디딜 틈조차 없이 무성하던 호박 덩굴은 모조리 죽어 없어졌는데.. 거기서 호박과 경쟁하며 같이 자라던 잡초들은 불과 며칠 만에 시퍼런 잎을 또 내면서 자라고 있더라. 똑같이 물에 잠겼는데도! 아~~ 이래서 과육 위주로 자라는 식물이랑, 단순히 성장과 번식만 하는 잡초는 서로 차원이 다르구나 싶었다.
환삼덩굴. 얘는 가시박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강변을 접수하고 있는 생태계 교란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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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됐던 강변 호박 잔해를 뒤져서 그나마 아까 그 열매 C만을 건져 와서 쪄서 먹었다. 지름 13cm 남짓한 튼실한 단호박이었다. 혹시 이것 말고 다른 열매가 몰래 맺힌 게 없는지 잔해를 최대한 샅샅이 뒤져 봤지만 일단은 없었다.
잔해 수색을 마치고 복귀하기 전엔 호박밭에다 거수경례를 했다. 지난 3개월간 너희 덕분에 내가 행복했다. ^^

시장에서 파는 단호박은 표면에 아무 냄새도 안 나던데.. 이렇게 직접 키워서 딴 호박은 표면에서 호박 내부 특유의 비누 냄새가 진동을 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니 비누 냄새는 향내가 아니라 뭔가 고약한 지린내에 더 가까워졌다.
이건 도저히 오래 놔 둘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 하루만 놔 뒀다가 바로 먹게 됐다. 두 끼 정도 분량이 나왔다. 물에 잠겨서 보존성이 더 나빠진 건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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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가 전혀 없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딱 한 군데.. 그나마 물에서 상대적으로 먼 곳에 심겼던 줄기 한 곳에서 싱싱한 새순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거라도 애지중지 잘 키워야겠다.

얘는 도대체 어느 덩굴 출신인지 출신을 추적하기가 참 난감했다. 그걸 찾아내야 이 더운 날에 물을 제대로 줄 수 있는데..
뿌리로 추정되는 부위를 발견하긴 했다. 하지만 거기 일대는 이미 다 물러지고 연해져 있던걸? 거기를 통해서 본체에 물과 영양이 공급된다고는 영 믿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얘는 놀랍게도 줄기 한두 군데에서 뿌리가 새로 내려가서 땅 속에 박혀 있었다.
줄기를 딴 방향으로 옮겨서 정리하려고 들어 봤는데 뭔가에 걸려서 반응이 없었다. 이게 단순히 다른 장애물 때문이 아니라 새 뿌리 때문이었다.

스타크에다 비유하자면 본진이 바뀐 거나 마찬가지이다. 원래 심겨졌던 뿌리 부위가 빗물에 몇 시간째 잠겨 질식사했기 때문에 호박이 살려고 저런 몸부림까지 쳤던 듯하다. 이런 광경은 개인적으로 처음 봤다.

이상이다.
직접 키운 호박을 더 구경할 수 없어서 몹시 아쉽지만, 그래도 이제 벌써 8월이다. 앞으로 3~4주쯤 뒤면 갓 수확된 늙은 호박을 돈 주고 살 수라도 있을 테니 기대된다.
동네 반찬· 채소 가게에서도 구경하려면 9~10월은 돼야겠지만, 인터넷이나 도매상 레벨에서는 이미 올라올 테니 말이다.

옛날에 남궁 억 선생이 무궁화 심기 운동을 벌였다고 하는데.. 난 호박 심기 운동을 벌이고 싶다. 전국 방방곡곡의 노는 땅에 호박 덩굴이 가득하기를..
외부인의 침입 걱정 없고 침수 걱정 없는 시골에서 내 손으로 5kg짜리 누런 늙은호박을 직접 키워서 따고 싶은데 말이다.. ^^ 죽어서도 호박밭에 묻히고 싶다.

Posted by 사무엘

2023/08/05 08:36 2023/08/0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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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생

예수 믿는 신자는.. 동물들 도축되는 게 불쌍하다고 개고기 안 먹는다거나, 심지어 채식을 하는 쪽으로 몰두하지는 않아도 된다.
살생을 안 하겠답시고 개미 한 마리 부주의하게 밟아 죽이지 않으려고 조심할 필요.. 없다.
심지어 살인을 안 하겠답시고 군 복무 집총을 거부한다거나 사형 제도를 반대?? 이건 뻘짓을 넘어서 반기독교 반성경적으로, 마귀적으로 아주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살인을 하고 싶지 않으면 저런 부류가 아니라 요일 3:15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 이런 거나 유의해야 한다!! 이런 게 자기 사고방식을 성경에 맞춰 바꿔 나가는 것이다. 아멘???

교회의 주변 지체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서 시샘하고 질투하고 죽이고 싶도록 밉다면.. 당신은 창세기 4장의 카인보다 나을 게 없고, 제아무리 개고기 안 먹고 다른 친환경 친생명(??) 운동을 한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 말짱 도루묵인 거다.
니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이런 심보나 다스리고 예수님의 성품, 그리스도의 마음을 구해야 한다.

2. 우상

또 다른 예로.. 돌부처나 차례상, 돼지머리 앞에서만 절 안 한다고 해서 우상 숭배를 안 하는 게 아니며, 장땡이 절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어설프게 기드온 코스프레 한답시고 단군상이고 소녀상이고 때려부시면.. 그냥 재물손괴죄밖에 추가되지 않는다. 뻘짓 바보짓이다.

지 마음 속에 있는 탐욕과 돈신 우상이나 때려부숴야지..!! 성경에 나와 있다. "탐욕이 우상숭배"라고.. 엡 5:5, 골 3:5
지금 자라나는 주일학교 아이들한테.. 온갖 황금만능주의와 안목의 정욕에 상대 비교 부추기는 세상 매체가 신앙에 더 해로울까, 아니면 저런 무능한 형상들이 더 해로울까?
그래서 만약 답이 전자라면 이젠 TV나 유튜브를 다 때려부숴야 하겠는가? 그러니 이렇게 혈과 육을 동원하는 방법론은 문제를 결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탐욕은 그 어떤 물리적인 행동도 필요하지 않고, 하다못해 주둥이 뻥긋조차 필요하지 않고 마음만으로 지을 수 있는 죄다.
로마서를 보니, 사도 바울이 "나 이 정도면 십계명이고 율법이고 다 지킨 거 같은데?" 이러다가 "하지만 탐욕이 출동하면 어떨까? 탐! 욕!"에 고꾸라지고 솔직하게 GG를 쳤다. 이게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다.

3. 중도

  • 성경에는 지나치게 의로운 자, 지나치게 지혜로운 자가 되지 말라는 권고가 있다(전 7:16). 어정쩡하게 "니 말도 옳다" 내지 적당히 유도리 타협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며, "주여, 시험과 박해를 좀 내려 주시옵소서" 이딴 짓을 하지 말라는 얘기에 가깝다.

  •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우리의 적이 아니면 다 친구"(막 9:40 / 눅 9:50)라는 논리도 있고, "우리의 친구가 아니면 다 적"(마 12:30 / 눅 11:23)이라는 논리도 있다. 평시냐 전시(박해)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 성경에는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도 있고, 바로 다음에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라"도 있다(잠 26:4-5). 대꾸할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잘 분별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4. 심판의 도구

사람의 적은 사람이고, 사람을 제일 많이 죽인 것도 사람이다. 사람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심판하고 징계하는 건 하나님의 주된 역사 방식 중 하나이다.
굳이 개인 단위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 단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한 뒤부터 신약 교회 기간의 대부분 동안 극심한 핍박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한다고 해서, 우리 크리스천이 남에 대한 심판의 도구 악역을 '자처'해서 나서는 일은 없어야 한다.

너 말고도 세상의 다른 불신자들 중에 심판으로 사용할 사람은 쌔고 널렸다. 구약 성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일시적으로 괴롭히고 징벌했던 타 민족들은 그 뒤에 자기들도 거의 다 몰락하고 망했다.
심판의 도구 주제에 자기들이 잘난 줄 알고 도 넘게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며 깝쳤던 인간들은 자기들도 더 큰 벌과 심판을 받았다. 크리스천이 반유대주의에 동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약 성경에 '예후'라는 인상적인 인물이 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보다는 그냥 아합 집안을 파괴하고 죽이는 것 자체밖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다. (왕하 9~10)
아합과 이세벨 집안을 완전히 씨를 말려 버리고 나봇의 원수를 갚기는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왕이 되긴 했지만 어차피 바른 신앙이 전수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예후처럼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5. 분별

  • 여호수아는 낡은 복장만 보고는 기브온 거주민들에게 낚여서 호구 언약을 맺어 버렸다. (수9)
  • 다윗은 다급한 피난 와중에 '시바'의 이간질에 살짝 낚여서 얼렁뚱땅 판단 착오를 저질렀다. (삼하16, 19:29)

이렇듯, 세상에는 선의· 호의만 베풀어서는 안 되는 일이 좀 있다. 요즘으로 치면 종점의 기적이나 기독교 앵벌이 같은 것 말이다. 지혜와 분별이 필요하다.

Posted by 사무엘

2023/08/03 08:35 2023/08/0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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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한테 이토 히로부미야 뭐.. 을사조약을 밀어붙인 민족의 침략자 원쑤이며 악당이다.
원 태우 의사가 암살하려다 실패했지만, 나중에 안 중근 의사가 쏜 권총에 맞아 골로 갔다. 죽어서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걸로 인과응보를 받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놈은 “남자는 배꼽 아래부터는 인격이 없다”라는 명언을 남겼으며, 뒤지는 순간에도 女짜 포즈를 그리며 쓰러졌다는 풍자가 나돌 정도의 호색한이었다.
과연 악당 캐릭터에 걸맞은 성품이다. 울나라에서는 이 정도의 이미지가 전부이다. 코 옆에 점이나 있는 사악한 흰 수염 꼰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반면, 이 사람을 암살한 안 중근 의사는 울나라에서 뭐.. 그야말로 초딩용 위인전에도 수록돼 있는 애국자에 민족의 영웅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항일 독립운동 업계에서 개인 테러 분야의 원조 ‘알파’이다. 피날레 ‘오메가’는 윤 봉길 의사이고. ㄲㄲㄲㄲㄲ

인생이 워낙 드라마틱하니 관련 영상물도 당연히 여럿 만들어져 나왔다.
바로 떠오르는 건 "도마 안 중근"... 아 이건 좀 작품성이나 감독의 자질에 논란이 많고..
검색을 해 보니 애시당초 해방되자마자 1946년에 바로 "의사 안 중근"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져 나왔다. 하지만 얘는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필름이 소실되어 현재 전해지지 않으며, 1972년에 동일한 제목으로 리메이크된 영화가 그나마 더 유명하다.

일제의 탄압이 얼마나 천추의 한이었으면 1940년대 말에는 열차 이름도 '해방자'호였으며, 유 관순이고 윤 봉길이고 안 중근이고 항일 독립운동가 전기 영화부터 먼저 잔뜩 만들어졌었다. 그나마 "검사와 여선생"이 그 시절에 비정치 순수 픽션 분야에서 흥행 성공한 얼마 안 되는 신파 영화였다고도 예전에 언급한 바 있다.

유 관순 영화와 마찬가지로 안 중근 영화도 1959년에 "고종 황제와 의사 안 중근"이 하나 더 나왔고..
심지어 북한에서도 "안 중근, 이등 박문을 쏘다"(1979)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었다. 유 관순은 북한에서는 듣보잡 취급을 받는 반면, 안 중근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알고 보니 지난 2016년에는 "마지막 간수"라고 울산 MBC에서 다큐 반, 영화 반쯤 되는 성격의 TV 프로를 방영했었다. (☞ 보기)
마치 "조피 숄의 최후의 날"처럼 안 중근이 거사 이후 체포되고 취조받는 장면만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공교롭게도 KBS에서 주 기철 목사 다큐 겸 전기 영화인 "일사각오"를 만든 때와 시기가 아주 비슷하다. 그런데 저거는 중앙도 아닌 지방 방송에서 전기 드라마를 자체적으로 만든 거라니 무척 흥미롭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2022년 말에는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또 21세기 안 중근 전기 영화가 만들어져 있다. ㄲㄲㄲㄲ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안 중근과 이토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그래도 일본에서는 안 중근을 위인으로서 흠모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일부 있는 반면, 한국에서 이토를 그냥 외국 정치인으로서 흠모하고 존경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다만, 이토는 그 당시 일본의 진짜 제국주의 정한론 침략자들에 비해서는 '온건한' 편이었고, 조선을 일본의 '보호국'으로만 두면서 둘이 평화로운 공존을 바라고 있었다면서 이토에게 최소한의 실드를 치는 시각은 국내에도 일부 있다. 이 영상에서는 그런 얘기가 많이 나오는구나. (☞ 보기)

  • “조선 정도의 전통과 규모가 있는 나라를 일본이 완전히 합병해 버리는 건 일본의 입장에서도 매우 힘든 일입니다. 대한제국이 자치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 “독자적인 문화를 1천 년 이상 가진 민족을 식민지로 병합한다면 일본으로서는 큰 후환을 만들게 됩니다”

  • “일본인 교사는 여가 시간에 틈틈이 한국어를 공부하십시오” (참고로, 이토 본인은 영국 유학파였고 영어를 아주 잘한 사람이었음)
  • “종교는 조선인들 자유에 속하는 문제이니 이렇다 저렇다 평론하지 마십시오”

근현대에 일본은 어느 때건 온건파와 강경파가 늘 대립했던 것 같다.
한국 식민지화에 대한 생각도 그렇고, 나중에는 천황에 대한 생각(황도파 vs 통제파), 더 나중엔 태평양 전쟁 때 미국에 대한 생각에서도 말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개인적으로야 살아 생전에 한복 코스프레 즐기고 조선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저 정도이기까지 했는지는 모르겠다. 이토가 진짜로 저런 생각을 갖고 저렇게 말했는데 울나라 국사에서 일부러 누락시키고 안 가르친 것인가?

이토가 한국의 잠재성을 믿었다느니 하는 말은 아무래도 오바 같다.
을사조약의 제5항에 “일본국 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의 유지를 보증한다”라고 적혀는 있다. 나무위키에서는 여기에 밑줄 치고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로 링크가 걸려 있다. -_-

그는 조선을 보호국으로 먼저 만들고 나서 천천히.. 그래도 영국이나 로마 제국을 흉내라도 내면서 조선을 온건하게 일본과 동화시키려 했던 것 같다. 영국 유학파답게..
이렇게 비유를 해 보니 이토한테서 뭔가 야마모토 이소로쿠 같은 인상이 느껴진다. 후자는 미국 유학파이군..

그러니 고종이 헤이그 밀사를 몰래 보내면서 허튼수작 부린 것에 대해서는 이토도 강제 퇴위로 대응하면서 칼같이 응징했다.
그 시절에 고종은 아무리 봐도 러시아와 청, 일본 사이에서.. 그리고 친일과 항일 사이에서 오락가락 여기저기 양다리 걸치다가 죽도 밥도 못 쑨 것 같다. ㄲㄲㄲㄲ

안 중근 의사는 이토가 한국을 배신하고 동양 평화를 깨뜨렸다는 이유를 들면서 그를 사살해 버렸다. 그러면서 이토의 구체적인 죄목 15가지를 법정에서 주장했다. 아무리 온건파니 뭐니 해도 조선인 사이에서는 이토가 완전 죽일놈이라는 공감대가 전국적으로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시일야방성대곡'만 봐도 "이토 히로부미가 우리 편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을사조약 결과를 보니 전혀 아니었구나~ 저놈이 우릴 낚았구나!! 아이고 우리 어이할꼬"라는 내용이 전부이지 않던가..?

물론 역사적으로 볼 때 안 중근이 주장한 아이템들이 100% 다 팩트이고 맞는 얘기는 아니었던 걸로 난 알고 있다. 집필 중이던 "동양 평화론"이 완성되지 못해서 그의 생각을 다 알 수 없게 된 것이 일면 안타깝다.

안 의사는 체포된 뒤에는 자기를 적장을 사살하고 잡힌 군 장성급 포로로 대우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총살이 아닌 교수형을 당한 건지도 모르겠다. 정작 윤 봉길 의사는 그런 요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본토로까지 압송돼서는 군 교도소에서 총살형을 당했는데 말이다.

이 정도면 이토와 안 중근에 대해 어지간한 얘기는 다 나온 것 같다.
객관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1) 이토는 일본 자국에서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존경스러운 인물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안 중근이 존경받는 것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다.
단순히 조선을 침략한 것 같은 유치한 행적 때문이 아니다. 그는 일본 자체를 개조하고 근대화시킨 아버지 정도로 추앙받는다. 거의 울나라의 박 정희 수준? 괜히 지폐에까지 들어간 게 아니다.

그리고 하나 더. 김 옥균 암살과 효수(시즌 1), 거기에다 이토 히로부미 암살은(시즌 2)..
일본으로 하여금 조선에 대한 더 부정적인 인식을 심고, (2) 조선을 더 강하게 병탄하고 더 험악하게 취급하도록 하는 데 기여한 건 분명하다고 하겠다. 쉽게 말해 통감부가 총독부로 바뀌는 시기를 크게 앞당겼다.

대만의 일제 통치에 비해 한반도의 일제 통치가 더 가혹했던 것, 처음부터 무단 통치에 헌병이고 고문이고가 횡행했던 것에 이런 사건이 직· 간접적으로 기여했지 싶다.
해방 이후에 김 구가 갑자기 암살 당하는 바람에 1940년대 말에 서로 눈치만 보던 남북 관계가 더 싸늘해지고, 6 25 같은 전쟁이 더 빨리 벌어지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이 사람의 다른 행적에 대한 가치 판단은 차치하고라도)

물론 을미사변이라든가(시즌 1) 의병에 대한 무자비한 토벌(시즌 2) 때문에 조선 쪽에서도 감정이 빡돈 게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애초에 조선이 일본을 완전히 몰아낼 군사력 국력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국지적인 저항과 도발만 하는 건 그냥 일본을 빡돌게만 할 뿐, "곱게 식민지 될래, 맞고 식민지 될래"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뒤집을 수 없었다.;;

마치 진주만 공격이 그때 당시에는 일본의 대승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천조국을 빡돌게 해서 그 뒤로...!!@#@!#@! 됐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은 그로부터 10년쯤 뒤, 3· 1 운동이 비폭력을 지향하면서 크게 벌어지니 그제서야 일제도 발톱을 쓱 감추고 좀 고삐를 풀어 주고 문화 통치를 하게 됐다.

안 중근이 1910년대 국제 정세를 얼마나 크게 바꿔 놓았는지는 반대로 안 중근의 거사가 실패했다고 가정하고 쓰여진 대체역사 소설 "비명을 찾아서" 같은 걸 읽어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일본이 저렇게 무식하게 가혹하게 통치를 했으니 반일 항일 감정도 강해지고 강한 독립 열망이 형성되고 그게 실제로 이뤄지기도 한 것이다. 이토 같은 사람이 오래 살아서 조선을 반발심 없이 교묘하게 잘 다스렸으면.. 한국이 진짜로 일본과 동화돼 버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나머지 관련 잡학들

  •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성이 이름 급으로 엄청 다양하고 많은데, '이토'는 그래도 그나마 흔한 축에 드는 성씨라고 한다.
  • 휴먼버그 대학교에 고정 출연하는 주인공 중에 불사신의 직장인 ‘사타케 히로부미(박문!!)’가 있다. 이 사람 이름도 좀 다시 보게 되겠다. ㄲㄲㄲㄲㄲㄲㄲㄲㄲ

  • 안 중근 의사가 거사를 벌이던 당시에는 하얼삔 역에 일본군보다는 러시아군이 훨씬 더 많았다. 안 의사도 러시아 헌병들에게 제압 당하고 체포됐다.

  • 이토가 마지막으로 "나를 쏜 자가 누군가? 조센징이라고? 이런 빠가야로.." 이런 말을 남겼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고 후손의 증언에 의해 부정된 바 있다. 또한, 이토를 쏜 사람이 러시아 저격수라고 따로 있다는 황당한 낭설이 있는데, 이 역시 그냥 주작이다.

  • 우리나라는 35년에 달하는 일제 식민지 트라우마로 인해, 훗날 UN이 제안하는 신탁통치조차도 극렬 반대하고 차라리 이대로 미군정-소련군정을 거쳐 분단을 선택한 것에 가깝다.;; 신탁통치 오보 같은 황당한 사건도 울나라의 미래에 영원한 쐐기를 박아 버렸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31 08:35 2023/07/3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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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알고리즘 문제 중에는.. "N개의 원소로 구성된 목록에서 majority.. 과반/다수파라는 게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무엇인가?"를 구하는 문제가 있다.
목록에서 과반의 원소가 다 같은 값이면 그게 바로 majority라고 정의된다. 원소들은 꼭 대소 관계가 성립할 필요가 없고 그냥 동등성 판단만 가능하면 된다. 그러니 꼭 정수가 아니어도 된다.

또한, 반반이 아니라 과반이라는 특성상, majority는 존재하지 않거나, 유일하게 존재.. 언제나 둘 중 하나이다. 공동 1위 같은 것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

이 문제는 뭐랄까.. 단순하면서도 참 므흣하다.
일단, "목록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원소--등장 빈도수가 가장 큰 원소를 구하시오"라고 접근하지 않는 게 핵심이다.
각 원소들의 빈도수를 일일이 관리하자면 알고리즘의 시간 복잡도가 기본이 O(n^2)에서 시작할 것이고, 균형 잡는 tree 기반의 컨테이너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O(n log n)이 한계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일을 그렇게 크게 벌일 필요가 없다.
각 원소의 빈도수가 아니라.. "이 목록은 과반의 원소가 그냥 동일한 값인가?"라고 접근하는 게 좋다.

수학인지 논리학인지 거기에는 "비둘기집의 원리"라는 게 있다. N+1개의 물건을 N개의 상자에다 다 집어넣는다면, 적어도 한 상자에는 그 물건이 2개 이상 들어가 있다. 뭔가 미적분에서 말하는 중간값 정리처럼.. 너무 당연한 말 같은데 말이다.
그것처럼 어떤 목록에 같은 원소가 "과반"이라면 그 목록은 다음 둘 중 한 특성을 반드시 갖게 된다.

  • 과반의 원소가 아무리 고르게 분산되어 분포한다 하더라도, 그 원소가 연달아 두 번 이상 등장하는 구간이 반드시 하나 이상 존재한다~! 1 1 2 1 특히 원소의 전체 개수가 짝수라면 이건 뭐.. 무조건 빼박이다.
  •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냥 맨 마지막 원소가 다수파이다.

어, 정말 저렇게 단정할 수 있나 의아할 텐데.. 이런 과감한 주장은 다수파의 정의가 절반의 '초과', '과반'이기 때문에 성립 가능하다.
절반을 포함하는 '이상'이기만 해도 위의 조건들은 당연히 성립하지 못하게 된다. "1 2 1 2" 같은 것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이렇듯, 다수파가 존재할 때 가질 수밖에 없는 목록 전체의 특성을 생각하면.. 다수파를 굉장히 단순한 절차만으로도 정확하게 구할 수 있다.

  • 최초엔 맨 첫째 원소가 다수파라고 가정하고 후보로 지정한다. 연속 등장 횟수(이하 점수)도 1을 부여한다.
  • 그 다음 원소가 후보 원소와 동일하면 점수를 1 증가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점수를 1 감소시킨다.
  • 단, 이미 현재 점수가 0이 된 상태여서 더 감소시킬 것이 없으면 후보 자체를 지금의 새 원소로 교체한다. 그리고 점수를 1로 다시 부여한다.
  • 이 과정을 모든 원소들에 대해 수행한 뒤, 현재 지정되어 있는 후보를 결과값으로 되돌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키백과에는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시각적으로 잘 묘사한 그림이 있더라.
정말 허무할 정도로 단순하다. 이 알고리즘은 고안자의 이름을 따서 Boyer-Moore majority vote algorithm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1981년에 학계에 처음으로 발표됐다고 하는데.. 동작하는 방식을 보니 후보, vote 이란 워딩이 적절해 보인다.

Boyer-Moore 이거 혹시 "문자열 검색 알고리즘에도 나오는 이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텐데.. 정확하다. 동일한 명칭이다. ㄲㄲㄲㄲ

단, 위의 알고리즘은 목록에 다수파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언제나 후보를 갖고 있다가 되돌린다. 그러니 목록에 다수파가 존재한다면 정확한 답을 되돌리지만, 애초에 다수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뭔가 임의의 엉뚱한 후보를 되돌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알고리즘에는 2nd-pass, 즉 후처리라는 게 필요하다. 앞의 1st-pass를 통해 구해진 후보가 진짜로 다수파가 맞는지, 얘만 개수를 처음부터 다시 세어 보는 것이다.
1st-pass 때 쓰였던 점수 변수는 증가했다가 감소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정확한 개수가 담겨 있지 않다.
이거 무슨 분수· 무리방정식을 풀고 나서 검산을 해서 무연근을 제거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자, 두 pass 모두 시간 복잡도는 O(n)이고, 공간 복잡도는 지역변수 꼴랑 한두 개.. O(1)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얘는 알고리즘 자체는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정말 이렇게만 해도 언제나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이 구해지는지 correctness를 이해하는 게 좀 빡셀 수 있는 문제이다.

알고리즘이라 하면 복잡한 기법을 동원해서 무식하게 풀었을 때 O(n^2)짜리인 것을 O(n log n)으로 낮춘다거나, 팩토리얼/지수함수 급인 것을 O(n^2)나 O(n^3)으로 낮추는 형태인 게 많다.
그러나 최적화를 통해서 이렇게 O(n)을 만들 수 있는 문제는 흔치 않아 보인다.

이 다수파 구하기와 성격이 아주 비슷한 문제는 N개의 숫자 목록 내부에서 "합이 가장 큰 연속된 구간을 찾기"인 것 같다. 당연히 양수와 음수가 뒤죽박죽 섞여 있는 목록에서 말이다.

정답이 (x~y) 구간은 그야말로 1<=x<=y<=N 아무렇게나 가능하기 때문에 이것도 언뜻 보기에는 시간 복잡도가 O(n^2)이나 최하 O(n log n)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얘도 아주 간단한 검사만 하면서 시간 복잡도 O(n)과 공간 복잡도 O(1) 만으로 아주 빠르게 풀 수 있다.

  • 정답 구간이 맨 첫 원소에서 시작된다고 가정하고 각 원소들을 쭉쭉 더해 본다. 그 합이 지금까지 구한 max보다 더 크면 최대값을 갱신하고 정답 구간도 업데이트 한다.
  • 그런데 그러다가 합이 음수가 돼 버리면... 그러면 지금까지 살펴봤던 구간은 "더 살펴볼 필요가 없고" 그냥 통째로, 아무 미련 없이 버리면 된다. 그 다음에 양수가 나오는 구간부터 시작점을 새로 설정하고 동일한 과정을 반복한다.

더 살펴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간 복잡도 O(n)이 가능한 것이다. 이게 아까 다수파 문제에서 점수가 음수가 돼 버린 시점에서 후보를 깔끔하게 바꿔 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왜 이렇게 해도 되는지를 생각하는 게 이 문제의 관건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3/07/29 08:35 2023/07/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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