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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 번역: 킹 제임스 성경에만 나오는 가르침

(1) 마 28:19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마태복음의 결말부에 나오는 great commission은 흔히 make disciple(제자 삼다)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 용덕 작곡 "가서 제자 삼으라"(갈릴리 마을 그 숲속에서)라는 복음성가가 쌍팔년도 시절에 유명했다.

그러나 킹 제임스 성경은 그냥 간단하게 '가르치다' teach라고만 돼 있다. 이건 뭐 변개라기보다는 번역 표현의 차이인 것 같다. 제우스(그리스)냐 주피터(로마)냐 하는 차이점과 비슷한 건지도?
저 복음성가 역시 후렴 가사가 "가서 제자 삼으라, 나의 길을 가르치라"라고 그게 결국 그 말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2) 삿 8:16 "그 도시의 장로들을 붙잡은 뒤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가르치고"
이건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무슨 삽자루 선생이라든가 일제 시대 칼 찬 선생처럼 흉기를 폼으로만 들고 열혈 강의나 교육(...)을 한 게 아니다.;; 진짜로 흉기를 휘둘러서 처절한 피의 보복을 했다는 얘기이다. 7절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라고 경고 내지 예고한 걸 그대로 행한 것이다.

위급할 때 주변에 좀 도와 달라고 요청했는데 듣보잡 취급받고 인격 모독과 함께 무시 당하는 건 사람을 정말 최고로 빡돌게 만든다. 그 위기를 이 악물고 극복하고 나서는 당연히 그들에게 보복하고 싶어진다.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당한 거랑.. 나중에 다윗이 나발에게 당한 게 서로 거의 판박이인 것 같다. (삼상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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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KJV 외의 타 성경들은 저 구절을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을 '징벌했다, 응징했다' punish"라고 번역한 편이었다.
그러나 KJV는 저 행동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인생은 실전이야 존만아, ㅆㅂ 누구든지 작은 기드온을 건드리면 X되는 거예요" 시쳇말로 표현하자면 참교육인 것이다. 매우 흥미롭다. -_-;

성경은 체벌을 적극 지지하는 논조이고, 심지어 잠 26:3 "어리석은 자의 등에는 매가 약" 같은 말씀마저 있는 걸 생각하면 일면 수긍이 간다.
그나저나 말보회 한킹은 이 구절의 teach를 '일깨워 줬다'라고 꽤 특이하게 번역했다.

2. 성경 해석: 잠 25:12 숯불 쌓기

성경이 인간의 행실과 관련하여 요구하는 전반적인 논조는 "악을 악으로 되받아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 원수를 사랑하라, 남의 잘못을 용서하라"이다.
그러나 이는 죄에 대한 자각과 회개, 뉘우침이 없는 악인들한테 무한한 호의와 관용을 베풀면서 호구 취급받으라는 말이 절대 절대 아니다. 북괴한테 무한정 퍼 주라거나, 술주정뱅이 알코올 중독자한테 뜬금없이 현금 쥐어 주라는 말도 아니다.

내 가족을 죽인 흉악범이 죽이고 싶도록 밉고 보복하고 싶어하는 거.. 그 자체는 부당한 피해를 입은 인간이 충분히 가질 만한 심정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도피성이라는 걸 괜히 만드셨겠는가.
성경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 자체는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확하게 당한 만큼만 되돌려 줘라. 되로 받은 걸 말로 보복하지 마라"라고 권고할 뿐이다! 이 와중에 인간의 입장에서 용서니 사랑이니 아량이니는 보복을 대신 집행해 주시는 하나님을 근거로 삼아야만 할 수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잠 25:21-22를 보자. 그리고 이를 인용하고 있는 신약의 롬 12:19-21도 보자.
내용을 요약하자면 "니 원수가 곤경에 처하게 되면 물과 음식까지 주면서 선대해라. 그거야말로 원수의 머리 위에다 숯불을 얹는 것 같은 효과를 낼 것이다. 하나님이 대신 보복을 해 주실 것이다"이다. 아까 저 기드온과 다윗이 받았던 취급의 완전 정반대를 하라는 것이다.

"믿음으로 지금 당장 손해를 감수하면 하나님이 나중에 더(이자까지 쳐서??) 갚아 주신다~~" 이 패턴이야 구약 율법에서 이삭 줍기나 종 제도 등 곳곳에서 발견되니까 익숙할 것이다. 그게 원수· 보복과 관련해서도 적용된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많은 오해가 나도는 건 '원수의 머리 위에 숯불'이라는 표현이다. 이건 무슨 심상이며 무엇을 의미할까?
어려울 것 없다. 결론부터, 답부터 말하자면.. 이건 문자 그대로 아주 잔인하고 처참한 보복을 의미한다. 오죽했으면 휴버대 고문 소믈리에 에피소드 중에도 아주 적절한 묘사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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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에 숯불은 딱 이걸 의미한다. -_-;;;;
"죽이고 싶은 니 부모의 원수, 니 자녀의 원수가 마침 쫄딱 망해서 길거리에서 헐벗은 상태이네? 원수를 제일 완벽하게 압도하고 제일 가학적으로 보복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바로 그때 그 원수놈을 신앙의 힘에 의지해서 반대로 먹이고 입히고 도와 줘 봐라. 그러면 그놈은 머리에 숯불이 얹혀서 쪄 죽는 것 같은 급의 보복을 당할 것이다." 이런 말인 것이다. 아멘?

(1) 머리에다 숯불을 얹는 것은 원수가 "뜻하지 않은 선대를 받아서 부끄럽고 미안해서 얼굴이 후끈후끈 빨개지는 걸 의미한다" 이렇게 해석하고, 심지어 이 구절의 번역을 그런 쪽으로 한 역본이 있다. 휴~ 이건 인본주의적인 뇌피셜을 너무 발휘한 것 같다. 성경에는 죄인이 회개하는 건 있어도 그렇게 반응하는 모습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아니면.. (2) 이건 원수한테도 불씨를 빌려주는 선행을 의미한다..? 옛날옛적에 성냥이나 가스레인지가 없었고 아무리 불씨가 귀했다지만, 이 얘기도 전혀 아니다. 그리고 세상에 어느 고깃집에서 겁대가리 상실한 종업원이 불 붙은 조개탄이나 숯을 머리에 이고 다니던가? 그러다가 엎어지고 자빠지면 어쩌자고? =_=;;;

성경에서 단서를 전혀 찾을 수 없는 내용이라면 때로는 원어나 그 당시 역사 고증 따위를 참고해서 문제를 해결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창세기 6장 고펠나무의 정체 같은 거라면야..  하지만 이 숯불은 그렇지 않다.
이건 그냥 시 140:10에서 말하는 그 숯불이다. 유황불과 다를 바 없는 부정적인 심판 맥락이다. 이 숯불은 인간이 얹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보복 차원에서 얹는 불이다. 이 정도면 "머리 위 숯불 선행설"은 설 자리를 완전히 잃을 것이다.

요즘 어떤 성경 역본은 잠 25:22를 보니.. '조건문'을 만든 게 있었다. "니가 그의 머리에 불타는 숯을 쌓으면 주께서 보답해 주실 거다" ...;;; 안타깝지만 이건 영어· 원어에 충실한 번역도 아니고 숯불의 성경적인 심상도 모른 채 '숯불 선행설'을 전제로 깔고서 번역을 아주 잘못한 것 같다. 여기서 숯을 쌓는 건 비유적인 심상일 뿐이다. 하다못해 구닥다리 개역성경이 원래 의미에 더 근접하게 번역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4/02/23 19:36 2024/02/2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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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뒷북이긴 하다만.. 본인은 요 근래에 <건국전쟁>을 보면서 국뽕을 한 사발 잘~~ 흡입하고 왔다.
제목이 뭔가 낯익어 보이던데? 10여 년 전 옛날에 정반대 성향의 진영에서 만들었던 좌빨 다큐 영화는 <백년전쟁>이었구나. 그걸 의식해서 저 영화가 제목을 저렇게 지은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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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나라는 딴 게 국뽕이 아니라 리 승만 보유국이었다는 거, 초대 국부가 할배 같은 사람이었다는 게 너무 과분한 국뽕이었다.
SNS에서는 애국우파 네티즌들이 자기도 이 영화를 봤다면서 티켓 인증샷을 막 올리더라만.. 난 그런 릴레이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영화 내용 요약 내지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던 관련 생각을 올리련다. ㄲㄲㄲㄲㄲ

1. 패턴

  • 조선은 말기에 일본까지 끌어들여서 동학을 진압하고 나서는 그 일본한테 나라를 통째로 빼앗겼다.
  • 태평양 전쟁 말기에 미국은 소련까지 끌어들여서 일본을 항복시켰다. 그러나 이게 훗날 한반도 남북 분단의 화근이 됐다.

미국은 저 끈질긴 쪽발이 일본놈한테 학을 떼 버려서 진짜 될 대로 돼라~ 핵도 터뜨리고 "소련까지 끌어들여서" 어떻게든 전쟁을 끝내고 싶어했다. 제3자가 보기에 그 심정이 솔직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리 할배는 아무리 그래도 소련은 끌어들이지 말고 한반도에 미국이 단독 진출해야 한다고 그렇게도 당부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이것 때문에 미국도 두고두고 고생하게 됐다.
하긴, 미국은 일본이 쳐들어올 거라고 경고했던 할배의 선견지명도 업신여겼다가 된통 당했었다. ㄲㄲㄲㄲ

  • 박 정희는 기업을 육성하려고 민간 사채를 싸그리 정리하려다 보니(1972년 8 3 사채 동결 조치) 시간이 부족해서 유신 독재를 감행했다.
  • 그것처럼 리 승만은 재일 교포 북송을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일본으로 공작원도 보내고(1959년).. 이걸 결판 내려는 욕심이 이듬해에 무리해서까지 4선 출마를 강행하는 데 영향을 줬던 것으로 보인다.

오~~ 둘이 요렇게 연결된다니 신기하다.

2. 할배의 업적

  • 혁명적이었던 농촌 토지 개혁 -- 단군의 후손들을 단순히 나라 있는 백성으로만 만든 게 아니라, 자기 땅도 있는 백성으로 만들었다.
  • 그 가난하고 못살던 시절에도 교육에 투자하고 쓸데없이 민주주의 정신을 너무 많이 함양시킴
  • 반공 포로 석방과 한미 상호 방위 조약. 50여 년 전에 조선이 미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걸 겪었으니.. 울나라는 이젠 두 번 다시 미국에게 버림받지 않으려고 외교 역사상 최고의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약을 맺어 버렸다.

3. 누명

(1) 한강 다리 폭파 관련 거짓 날조 누명은 이제는 최초로 거짓말이 유포된 배후를 추적해서 학술적으로 다 까발려야 하지 않나 싶다.
건국전쟁 영화를 싫어하고 내용을 반박한 사람들 글을 검색해 보니 맹 사사오입 개헌이나 조 봉암, 최 능진.. 이런 사람들 사형 당한 것만 거론할 뿐, 이 런승만 날조의 반박에 대해 또 재반박을 하지는 않더라.

(2) 말단의 군경 간부라면 모를까, 우리나라 초대 내각은 친일파 반민족주의자 출신이 개뿔 절대 아니었다. 이 시영 가문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이고, 애산 이 인??
이 사람은 독립운동가 변호하고 한글학회에 재산 엄청 기부했던 애국자 법조인이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이런 식의 친일파 단죄는 비현실적이고 무리라고 생각해서 반민특위의 해체에도 앞장섰었다!

(3) 리 승만 할배는 4 19 시국을 뒤늦게 파악하고는 "내가 맞아야 했을 총을 우리 젊은 친구들이 맞았구나" 그러면서 4 19 시위 부상자들을 위문하러 갔다.
선뜻 하야하겠다고 그러자 오히려 시위대며 시민들도 도로 같이 울었고 "리 박사님, 만수무강하십시오" 그랬다. 세상에 참 이상한 바보같은 독재자다.
오히려 그 시절 언론 기레기들이 할배와 시민 사이를 마구 이간질했다. 그리고 전직 대통령의 짤막한 여행을 무슨 죄 짓고 도피 망명이라도 가는 양 부풀려서 조작 보도를 했다.

4. 어처구니없는 현실

(1) 김 구는 단순히 남북 분단을 반대하고 남북 간 오해를 풀러 북한을 방문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쏘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조만간 남조선에 쳐들어갈 거고, 그러면 쟤들은 꼼짝없이 함락당할 것이다" 그는 이런 소리까지 뻔히 들어서 아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남한에 돌아와서는 "북한은 절대 쳐들어오지 않습니다~ 미군 없어도 괜찮습니다" 이런 거짓말을 했다고?
이게 사실이라면 김 구는 우리가 아는 그 애국자 김 구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사람을 10만원 지폐 도안에 넣겠다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 주미 한국 대사관에는 할배가 아니라 서 재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딴 나라들은 간디 등 정상적인 자기 국부들 동상)

(3) 하와이에서 리 승만의 날 기념일을 제정하려고 했는데 본토 조선인들이 하도 분노하고 반발· 반대하는 바람에 시도가 무산됐다고.. 허 참 기가 막힌 일이 많았다.

건국전쟁은 정말 국뽕 충만하면서 울컥하면서 너무 훌륭하고 아름다운 다큐 영화였다.
영화가 다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오고 상영관 불이 켜지자..  누가 시작했는지 절로 박수가 터져나왔다. 기립이었는지 착석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만.. 곧장 상영관을 빠져나가는 사람이 없이 거의 5초~10초는 박수를 치고는 나갔다.
할배가 1953년인가 54년인가 미국 상원 연설을 해서 열혈 기립박수를 받은 것처럼 말이다.

나는 박수 정도가 아니라 중간 중간에 몇 번이나 “옳소!” “아멘!” 이럴 뻔했다. 말은 차마 못 하고 그냥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걸로 격한 공감을 대신 표현했다.

왜, "세상을 바꿔 놓은 책" 킹 제임스 성경 400주년 다큐와도 오버랩됐다.
그 위대한 성경의 번역을 지시한 왕은 정작 유해라고 해야 하나 정말 보잘것없이 어디 쳐박혀 있던데..
우리나라 국부도 저렇게 존재감 없는 취급을 받고 있구나..

이 조선? 한국이라는 나라는 중국처럼 쪽수 많은 대국도 아니고, 일본처럼 일찌감치 근대화 잘해서 열강 반열에 든 나라도 아니었다.
얼마든지 식민지가 되든 공산화가 되든 이상할 게 없었고,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같은 국력의 나라로 남는대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나 그 듣보잡 한구석에 미국을 너무 잘 알고 미국의 이념을 적극 따르는 지도자를 둔 ‘깨어 있는 나라’가 있으니 “미국 니들도 여기를 다시는 무시하거나 저버리지 마라~~ 니들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 나라도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될 거다”이걸 각인시켜 놓은 주역이 바로 그 할배다. 이 능력을 겨우 킬구 아재랑 비교하냐? 허 참~~~

이런 영화 보는 것엔 돈 아깝지 않다. 다들 보고 그냥 파일 소장해라. 누구든지 꼭 봐라 두 번 봐라.
그야말로 할배가 잘한 것을 논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고 불편해하는 거.. 진짜 정신병이다.
외국 나가서 교양과 상식 있는 사람들 앞에서 할배를 비하하고 부정하면 그냥 남한이라는 나라 품격 자체가 그냥 통째로 폄하되고 깎일 것이다.

크리스천인 가수 나얼이 이 영화 포스터를 개인 SNS에 올렸는데 그걸 갖고도 미친놈들이 욕하고 악플 달고 난리를 쳤었다. 기도 안 차서 원..
하지만 그 대신, 나얼이 누군지 모르고 기독교인도 아니던 사람들 중에서도 "나얼? 저 사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애국자군. 음반을 구매해야겠다" 이러는 사람이 생겼다. =_=;;; 팩트만 늘어놓은 다큐가 도대체 왜 정치색 논쟁이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건국전쟁 같은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할 게 아니라 공중파 방송국에서 매년 국경일에 틀어 줘야 한다.
실제로 옛날에(2015~2016년) KBS TV에서는 주 기철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일사각오' 다큐를 무려 전국구로 방영한 뒤에 이듬해에 증보판(?) 영화까지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영화에서는 '죽으면 죽으리라' 안 이숙 여사 얘기까지 추가해서 말이다.
난 그때 솔직히 놀랐다. 어떻게 KBS에서 CBS 같은 성향의 다큐를 저렇게 방영할 수 있었지?

아무리 일제에 의해 투옥과 고문을 당했다지만, 주 목사는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항일 독립운동이 아니라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것에 더 가깝다.
우리나라가 국교가 있는 나라가 아니거늘, 광고 없는 국· 공영방송 급이라면 솔직히 주 목사 얘기보다는 리 박사 할배 얘기를 더 우선적으로 방영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일사각오와 비슷한 시기에(2016) 울산 MBC에서는 '마지막 간수'라는 안 중근 다큐를 독자적으로 만들어서 방영한 적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방송사에서 마음만 먹으면 할배에 대한 진실을 전하는 애국 다큐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텐데. 방송사 관계자들의 마음과 의지가 아쉽다.

Posted by 사무엘

2024/02/21 08:35 2024/02/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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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언 또는 예언

'킹제임스 흠정역'은 prophe-로 시작하는 단어들(-sy, -cy, -t)을 한 치의 예외 없이 모두 '대언-'이라고 옮긴 것이 특징이다. 선지자, 예언(자) 대신 전부 '대언(자)'이다. 이건 우리말 성경 중에 안티오크 권위역에서 처음으로 시도했고 그게 오늘날 흠정역에까지 남아 있는 흔적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대신 전하기, 또는 그렇게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대언'이 틀린 말은 아니다. 출 7:1-2 같은 용례도 있다. (아론이 모세의 대언자)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한 속성은 미래 예언이다. 성경이 인간의 개똥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인 증거 중 하나도 바로 예언이 확률적으로 절대 불가능할 정도로 문자적으로 많이 적중했다는 것에 있다.

쉽게 말해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 말씀을 "대언"한 것이긴 한데, 그 대언 중에 미래 "예언"도 있다는 것이다. 관계가 이렇게 정리된다.
성경 중에서 요한계시록은 prophesy에 속하는 책이라고 분류되는데, 이건 당연히 예언을 말한다. 후자까지 몽땅 대언이라고 싸잡아 풀이해 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요한계시록이 성경 중에서도 어떤 특성을 갖는지를 알 수 없어진다.

흠정역이 아쉬운 점은 성경에서 예언이라는 키워드를 완전히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예언이라고 하면 자꾸 은사주의 점쟁이 예언 기도... 가령, "너는 몇 월 몇 일 몇 시에 무슨 일이 터질 것이고.. 이 번호의 로또를 사면 당첨될 것이다" 이런 걸 떠올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고린도전서 14장에다가 '예언'이라는 단어를 넣는 걸 너무 부담스러워한 것이다.

하지만 시한부 종말 갖고 뻘짓 하는 인간들이 있다고 해서 휴거나 종말이라는 개념 자체가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건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언 갖고 이상한 뻘짓 하는 인간들이 있다고 해서 성경에 예언이라는 개념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꼭 초자연적인 점쟁이급 예언이 아니더라도.. "너는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구원받지 못한 채 죄 가운데 죽는다면 지옥에 가게 된다" 같은 원론적인 얘기만으로도 이미 미래에 대한 예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 말씀을 대언한 것이다. 예언과 대언은 서로 대립하고 상충하는 관계가 아니다.

물론 같은 단어가 어디서는 예언에 더 가깝고 어디서는 그냥 대언에 더 가까운지를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원칙을 갖고 번역하더라도 호불호가 갈리고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예언을 단 하나도 없이 깡그리 없애 버린 건.. 마치 구약의 사자음어를 몽땅 LORD라고 번역하느라 '여호와'라는 단어를 아예 깡그리 없애 버린 것과 비슷한 면모로 보인다.

이건 흠정역을 사용하는 교회에서도 목사님들이 지적하며 아쉽게 생각하는 면모이다.
말씀 보존 학회에서는 흠정역을 20여 년째 아주 부정적으로 까내리고 비방하는 편인데.. "우리 한킹을 도둑질한 짝퉁" 같은 영양가 없는 저질 네거티브 말고 "예언이 없는 성경" 이런 식으로 흠정역의 진짜 약점에 대한 공략은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계 19:10 "... testimony of Jesus is the spirit of prophecy"의 경우, 옛날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대언'이었다가 나중에 나온 개역개정에서는 '예언'으로 바뀌었다~!
이는 킹 제임스 계열이 아닌 성경을 만드는 진영에서도 prophecy의 번역이 쉽지 않은 고민거리라는 걸 시사한다. "예수 믿는 증거는 말씀 선포/대언" vs "예수님이 하나님인 증거는 미래 예언 능력" 이렇게 뉘앙스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2. 회개, 축복

영어의 동사 중에는 repent나 bless처럼.. 사람과 하나님이 모두 주체가 될 수 있는데 동일하게 번역했다가는 난감해지는 단어가 있다.
기계적으로 한 단어로만 번역하면 하나님이 잘못을 저질러서 후회· 회개(!!)를 하고, 남에게 복을 빌게 될 수 있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돌이킨다, 슬퍼하신다 / 복을 '주신다')

prophesy도 이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사람의 입장에서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겠지만 하나님이 자기 말을 또 대언(?)하는 것일 리는 만무하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역시 예언이 되어야만 타당하겠다. 이 역시 생각할 점이다.

3. 전치사

(1) 예전에 한번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흠정역은 OF를 중의적으로 직역해서 갈 2:16 faith of Jesus Christ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옮긴 성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 11:9 knowledge of the LORD는 '{주}를 아는 지식'이라고 번역했다.
말보회 한킹은 그 반대다. 갈 2:16은 예수님 믿는 믿음이라고 풀이를 했지만 후자는 그냥 '{주}의 지식'이라고 옮겼다. 영어에서 of는 정말 독보적으로 중의적인 전치사임이 틀림없다.

(2) FOR에 대해서는 예전에 한번 얘기한 적이 있었지 싶다. '-를 위한'(목적)과 '-로 인한'(이유)의 의미가 모두 있다. for sinner, for sin이 모두 가능한데 우리말로는 번역 표현이 갈린다.
한킹은 for the remission of sins를 "죄사함을 위한"이 아니라 "죄사함으로 인한"이라고 따박따박 번역했다. 하지만 흠정역은 요일 2:2를 "죄로 인한 화목제(화해 헌물)"라고 옮겼다.

(3) IN은 기본적으로는 '-안'이라는 뜻이지만 rejoice in, believe in처럼 그냥 '-를'이라고 타동사처럼 보는 게 더 자연스러울 때가 있다. 하다못해 미국 지폐에 쓰여 있는 In god we trust도 말이다. ㄲㄲㄲㄲㄲ 생각보다 까다롭다.
요일 4:3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이라는 표현으로 번역한 최초의 역본은 안티오크 권위역이고, 그 뒤 흠정역도 이를 따르고 있다. 한킹은 그냥 '육체로..'이다.

4. 조동사

영어의 can, may, will, must 같은 조동사는 우리가 중학교 수준에서 배우는 아주 쉽고 기초적인 단어이다.
그런데 이 조동사들은 뭐랄까, 손에 잡으려 해도 잘 잡히지 않는 굉장히 므흣한 단어이기도 하다.
의미가 마치 to 부정사처럼 예정-의지-가정 속에서 막 유동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과거형은 단순히 시제만 과거인 게 아니라 뜻이 또 변하기도 한다. 과거형이 좀 더 완곡하고 공손한 표현이 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shall은.. 1인칭이 포함돼서 "이렇게 할까?"라는 제안으로 의미가 굳어져 버렸고, 과거형 should만이 과거가 아닌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킹 제임스 성경 영어에서 몇몇 조동사들이 쓰인 걸 보면 다음과 같은 패턴이 있다.

  • shall: 할 것이다(미래), 할지어다, 제안, 게다가 명령까지 붙어 있다. (thou shalt not kill) be 동사가 is, are 등으로 굴절되지 않고 뜬금없이 be 원형으로 등장한다면.. 그 문장은 십중팔구 should가 생략된 형태여서 그렇다.;

  • will/would: 역시 shall처럼 미래의 뜻이 있는데... shall과 달리 명령 뉘앙스가 아니라 want와 거의 같은 급으로 '원하다'라는 뜻이 덧붙어 있다. 딤전 2:4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will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용례 때문에 '유언'도 testament뿐만 아니라 요즘은 will이라고 표현한다.

  • want: 그럼.. 현대 영어에서 '원하다'라고 즐겨 쓰이는 이 녀석은 킹 제임스 영어에서는 lack/need와 비슷한 뜻의 자동사로 쓰인다. 시 23:1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가 I shall not want이다. 현대 영어로 I will not be in need 정도의 뜻이 저렇게 표현된 것이다.

군대의 야전교범이란 게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면 된다"라는 지침뿐만 아니라 "그때는 이렇게 하라"라는 명령도 된다. 그렇다면 이런 교보재의 문장은 옛날 같았으면 다 shall이라고 쓰면 됐을 것이다. ㄲㄲㄲㄲㄲ

5. wine

이것도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 싶은데, 흠정역은 우리말 성경 중에 wine을 최대한 알코올 없는 '포도즙'이라고 옮긴 역본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감히 술을 만드는 이적을 행하셨을 리는 없으니, 요한복음 가나의 혼인 잔치에 나오는 음료도 '포도즙'이다. 이건 의외로 권위역이 아닌 흠정역의 독자적인 관행이다.

그 정도면 괜찮지만.. 그래도 옆에 '독주'가 나란히 나오고 부정적인 문맥이 명백해 보이는 곳에서까지 무리하게 포도즙이라고 워딩 할 필요가 있나 싶은 구절도 있다.
"모조리 포도즙"도 "예언 대신에 몽땅 다 대언"와 비슷한 흠정역 번역 정책인 것 같다.

물론 창세기 9장에서 노아가 술 취해서 자빠진 장면, 잠언에서 술을 극딜하는 장면에서는 흠정역도 당연히 '포도주'이다. wine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용례가 술인 만큼, wine은 그 뒤로도 가능한 한 '포도주' 쪽으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6. virgin

끝으로.. 계 14:4의 '처녀'는 흠정역 마제스티판에서 고쳐졌나 모르겠다. "여자와 더불어 자기를 더럽히지 않은 처녀"라니.. =_=;;;
하필 공교롭게도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저 딱 한 구절.. 성경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virgin은 여자가 아니라 그냥 동정남을 가리킨다. 곧이곧대로 한 단어만으로 옮겨서는 안 되는 지뢰 같은 단어가 성경에 의외로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흠정역은.. 창 19:5의 man은 그냥 사람이 아니라 반드시 '남자'라고 옮겨야 된다는 지론을 초창기 거의 20년 전부터 고집하고 자랑해 왔다. 왜? 이건 소돔 놈들이 남색을 저지르는 문맥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건 흠정역만의 독특한 특징이며, 그건 번역 방침을 존중한다.

그런데, 그런 성별을 철저하게 챙겼으면서 계 14:4 virgin을 숫총각 동정이라고 안 하고 처녀...;;;
소돔만큼이나 남자라는 단서가 버젓이 붙어 있는데.. 이건 일관성이 심각하게 결여되는 아쉬운 조치로 보인다.

처녀 virgin를 그냥 젊은 여자(기혼 여부는...??)라고 의역 변개하면 예수님의 탄생의 특성이 희석돼 버린다.
그런데 어느 동네의 워딩처럼 동정녀...라고 하면.. 엄마가 평생 남편과의 자식을 안 낳았다는 뉘앙스가 들어가 버리니 문제인데..
계시록에서는 애초에 여자가 아닌 virgin이라는 게 함정이다.;;

7. kill

'죽이다'를 뜻하는 kill은 중학교 수준의 아주 쉬운 기초 단어로, 사람이건 동물이건 모두 목적으로 받을 수 있다. 한국어는 '죽이다' 말고 '살해하다'는 사람에게만 쓰고, '잡다'는 짐승에게만 쓴다.

십계명 제6계명 Thou shalt not kill은 우리말로 '살인하지 말지니라'라고 적절하게 번역되어 있다. 이건 일체의 살생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영어권에서 이건 '살생'이 아니라 '살인'이니까 murder가 더 나은 워딩이 아니냐는 제안이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KJV 이후의 현대 역본들 중 일부는 murder로 말을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십계명의 주변 계명들을 보시라. 부모 공경, 간음, 도둑질... 오로지 신 아니면 인간만을 다루는 저 문맥에서 등장한 kill은 당연히 살인이지, 갑자기 동물 보호 따위가 튀어나올 여지는 전~~혀 없다. 혼동될 일이 없기 때문에 그냥 음절수 더 적고 간결한 단어를 쓰는 게 더 낫다.

ere - before / foe - enemy / list - desire / let - allow ... 이런 식으로..
KJV의 영어 단어를 살펴보면.. 옛날 고어 단어가 더 짤막하고 운율과 암송에 더 유리한 경우가 적지 않다.

참, kill 말고 slay - slew(과거) - slain(과거분사)도 kill과 거의 같은 뜻이지만 더 문어적인 느낌의 '죽이다'이다. 특별한 차이 없이 그냥 섞여 쓰인 게 아닌가 추측된다. see / behold와 비슷한 관계인 걸까..??
카인이 아벨을 죽였다는 창 4:8에서도 이 단어가 쓰였고.. 짐승을 잡아서 고기를 먹겠다는 얘기에서는 아예 목적어 없는 자동사로 slay가 창 43:16에 나온다.

사도행전에서는 베드로가 본 짐승 환상이라는 같은 장면에서 두 단어가 일부러 동시에 쓰이기도 했다. (행 10:13, 행 11:7) 표준역은 둘을 서로 달리 번역했다. (잡아먹으라, 도살하여 먹으라)

Posted by 사무엘

2024/02/18 08:35 2024/02/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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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이유로 죽은 사람들

1. 의료

- 장 바티스트 륄리(1687, 50 중반): 바로크 시대에 프랑스의 왕실 전속 음악가 겸 무용가로 명성이 자자한 아재였다.
이때는 지금 같은 지휘봉이 없어서 그는 끝이 뾰족한 지팡이로 땅을 쿵쿵 치면서 박자 지시를 했는데..
하루는 오페라를 열성적으로 지휘하던 중, 그 지팡이로 자기 발등을 콱 찍어서 피가 철철 날 정도로 크게 다쳤다.ㅠㅠㅠㅠㅠㅠㅠㅠ 아이고 지팡이 끝에 무슨 칼날이라도 달려 있었나.
상처가 세균에 감염돼서 독소가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는데.. 그는 발을 절단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버티다가 그대로 50일쯤 뒤에 목숨을 잃었다. 기본적인 소독이나 항생제 하나 없던 열악한 시절이었으니 사람이 이렇게 황당하게 훅 갈 수 있었다.

- 티코 브라헤(1601, 50 중반): 덴마크의 위대한 천문학자였다. 당대에 갈릴레이나 케플러 같은 다른 괴수들 때문에 존재감이 좀 묻혔지만..
이 사람은 어디 귀족들 행사에 초대받아 갔는데, 거기서 체면치레 하느라 오줌을 수 시간 이상 너무 오랫동안 참았다. 그러다 방광염에 걸려 버렸고, 그게 악화돼서 발병 11일 만에 목숨을 잃었다. ㅠㅠㅠㅠㅠㅠㅠ

- 앙리 2세(1559, 40세): 프랑스의 국왕이었는데 말 타고 갑옷 입고 창으로 기예를 겨루는 시합을 친히 벌이다가 다쳤다. 눈알 바로 위에 상대방('몽고메리'.. 스코틀랜드 귀족)의 창 파편이 박혀서 얼굴이 피칠갑이 됐고.. 상처가 감염돼서 거의 40일쯤 뒤에 목숨을 잃었다.

- 주 시경(1914, 37세): 젊은 나이에 급사· 돌연사해 버렸다. 정황상 급체나 심근경색이 의심된다. 천수를 누렸으면 국어학 발전에 훨씬 더 이바지할 수 있었을 텐데. 한국의 소쉬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동시대 사람).

- 이 상(1937, 27세), 김 유정(1937, 29세), 닐스 헨리크 아벨(1829, 27세): 다들 우리나라의 천재 문학가, 외국의 천재 수학자였는데..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영양실조와 결핵 때문에 요절했다.. >_<

- 최 용신(1935, 26세): 역시 스트레스로 영양실조로 인해 건강을 망쳐서 요절했다. 비타민 결핍증인 각기병을 앓았고, 결정적으로 장중첩증에 걸려 꽤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 방 정환(1931, 32세): 과로와 스트레스, 골수 흡연, 비만, 고혈압, 당뇨.. 정말 그 시절로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현대 성인병 돌연사의 선구자였다. 위의 다른 사람들처럼 단순히 항생제가 없어서, 소독을 못 받아서, 백신이 없어서, 잘 먹지를 못해서.. 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먼 옛날, 세종대왕도 이 사람과 비슷하게(비만 당뇨 고혈압 과로..) 승하했을 것이라고 추측은 되지만.. 저 두 사람은 신분과 처지가 서로 완전히 달랐다. ㅡ,.ㅡ;;

- 스티븐 포스터(1864, 37세): 초등 음악 감상 시간에 나오는 "스와니 강"과 "오 수재너(수잔나)"의 작곡자를 기억하시는가? 옛날 일본 만화영화 "금발의 제니"가 이 사람의 생애를 다룬 거다.
"오 수재너"는 "엘리제를 위하여"와 더불어 초인종 BGM으로 많이 쓰이기도 했다. ㄲㄲㄲㄲㄲ 다들 제목에 여자 이름이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군.
아무튼.. 이 사람은 30대 후반의 나이로 호텔 방에서 침대에서 떨어졌는지 어찌 됐는지 세면대에 머리를 너무 세게 부딪혀서 죽었다. ㅠㅠㅠㅠ 세면대 파편이 머리에 박히고 과다출혈로.. 지금 의술로는 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안타까운 일이다.

2. 교통사고

- 피에르 퀴리(1906, 47세): 퀴리 부인의 남편인 물리학자 겸 대학 교수. 비 내리는 날 아침에 연구실로 출근하던 중, 음주 마부가 몰던 마차에 치이고 차량 아래에 깔려서 현장에서 즉사했다. 단, 위험한 방사선 피폭 때문에, 그리 빠르지 않게 달려오는 마차를 피하지 못할 정도로 당사자의 체력도 노인 수준으로 약해진 상태였다고는 한다.

-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1935, 47세): "아라비아의 로렌스" 저자인데 오토바이를 맨몸으로 몰고 달리다가 사고로 사망했다. 이 유명인사의 죽음을 계기로 단순히 두건을 넘어 두툼한 오토바이 전용 헬멧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개발됐다고 한다.

- 이사도라 덩컨(1927):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에 제일 근접하는 말을 유언처럼 남긴 사람이다. 저 시절에 스카프가 자동차 뒷바퀴에 말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해서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었을까..?? =_=;

- 조지 패튼(1945), 월튼 워커(1950): 미군 육군 장성이었던 이 두 사람 모두, 교통사고로 차 밖으로 튕겨나가고 목이 부러져서 목숨을 잃었다. 뚜껑 온전히 달린 일반 승용차는 아니고, 뚜껑 없는 군용 찦차 타다가 말이다.
이 사고를 계기로 차량용 안전벨트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개발되었다.

- 조 문정(1994), 석 광렬(1994): 20대 중반의 국내 배우였는데.. 둘 다 자기 차를 몰다가 단독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내가 보기엔 둘 다 운전자가 사망할 정도의 사고까지는 절대 아니어 보여서 안타깝다. 차가 ABS가 없어서 더 잘 미끄러졌고, 다들 안전벨트를 안 맸던 것 같다.

- 지난 2018년 12월에는 화천에 있는 군부대로 아들의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던 일행 차량이 꼬불꼬불 산길(지방도 460)에서 옆길로 구르는 단독 사고가 났었다. 이때 운전자인 부친을 제외하고 동승자는 모친, 누나 둘, 그리고 당사자의 여친까지 모두 여성이었는데.. 이 4명이 단 한 명도 생존하지 못하고 모조리 차 밖으로 튕겨 나가서 사망해 버렸다.

일가족 몰살이나 다름없는 이 참극에 그 당시 국방부 장관과 육군 참모총장이 직접 조문을 왔고, 군 복무 당사자는 그야말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0순위 초특급 관심병사로 등극했다. 장례를 치르라고 12일 위로 휴가를 받았다가 복귀 후에는 얼마 못 가 결국 의가사 제대 처리됐다(2019년 2월경).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겠냐마는, 이 안타까운 사고 당시에도 탑승자들이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던 것 같다.

3. 투철한 실험 정신

- 게오르크 빌헬름 리히만(1753): 천둥 번개의 물리적 특성을 연구하려고 밖에 나갔다가 벼락을 정통으로 맞고 목숨을 잃었다. 욕이나 저주가 아니라 문자적으로 벼락 맞아 죽는 바람에 시신은 핏자국과 화상 자국으로 가득해서 온전한 형체를 유지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남극 탐험에다 비유하자면 프랭클린은 아문센이고 이 사람은 스콧..??? ㅠㅠㅠ 이 사람은 과학계의 순교자라고 대대적으로 언급되는 인물이다. 한낱 물방울 덩어리인 구름에서 천둥 번개가 어떻게 가능한지는 21세기 현대 과학으로도 완전히 규명돼 있지 못하다.

- 프란시스 베이컨(1626): "아는 것이 힘이다"와 귀납법으로 유명한 그 사람 맞다. 한겨울 눈 속에서 새파랗게 자라 있는 식물을 보고는 "눈을 사용해서 식품을 싱싱하게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한겨울에 추운 데서 너무 오랫동안 벌벌 떨면서 실험 장치를 세팅했는데.. 이 때문에 면역력이 확 떨어졌는지, 폐렴을 동반한 감기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_=;;

- 칼 패터슨 슈미트(1957): 독일의 파충류학자였는데.. '붐슬랭'이라고 신경독이 아닌 희소한 출혈독을 가진 독사에 물리자 일부러 해독 치료를 거부하고 버텼다. 이런 뱀에 물렸을 때 인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마루타를 자처하며 기록으로 남기다가... 결국은 골든타임을 놓치고 목숨을 잃었다.

일본의 노구치 히데요(1928)도 황열병을 연구하다가 자기가 그 병에 걸려서 죽기는 했지만.. 뭔가 숭고하고 안타깝다는 임팩트가 좀 떨어지는 편이다.
기자 중에서 종군기자가 가장 위험하게 알하는 사람이라면, 과학자 중에서 자기 목숨을 걸고 연구한다는 임패트가 강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저렇게 질병 내지.. 화산(!!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1994년엔 이례적으로 옛날 역사 인물에 대해서 다윈 상이 추서(!)된 적이 있었는데, 장 바티스트 륄리, 티코 브라헤, 그리고 프란시스 베이컨 세 명이 나란히 수상자의 명단에 올랐다. =_=;;

4. 불사신의 어처구니없는 최후

- 그리고리 라스푸틴 (1916): 고려 ‘신 돈’의 러시아 버전뻘 되는 제정 러시아 말기의 그 유명한, 전설적인 괴승이다. 청산가리가 들어간 음식을 먹고 총을 여러 발 맞았는데도 안 죽고.. 끝내는 강물에 던져져서 익사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두고 혹자는 과연 일산화이수소는 불사신 라스푸틴도 쳐잡은 독극물이라고 드립을 쳤었다. ㄲㄲㄲㄲㄲ

- 미린다요 (1948): 네덜란드에서 활동했던 엄청난 영매? 차력사였다. 깨진 유리조각이나 면도날, 바늘을 잔뜩 먹어도 내장이 상하지 않고, 칼이나 창으로 자기 몸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찔러 관통시켰는데도 시뻘건 피가 나지 않고 죽지도 않았다.
그는 여느 사기꾼과는 달리, 웃통 까고 세계 각지의 의사들 앞에서 X선 촬영을 받고 검증에도 흔쾌히 임했다. 하지만 그 당시 의학 지식을 다 동원해도 신체에서 어떤 트릭도 발견되지 못해서 정말 불사신으로 인증받았다!!
그런데 하루는 먹었던 쇠붙이를 제거하는 수술을 마취 없이 받아야 하는데 담당 의사가 임의로 마취를 해 버렸고, 미린다요는 “너는 명령을 어긴 벌로 곧 죽게 될 것임” 이러는 내면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 뒤 그는 겨우 30대 중반의 나이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이 사람은 굉장히 대단하긴 했지만, 최소한 마가복음 16장이 말하는 사도의 표적을 구사한 사람은 아니고.. 오히려 뭔가 라엘리안 끼가 풀풀 난다. 주변에서는 이 사람이 차력쑈로 돈을 버는 것만 허용하고, 자기 메시지가 담긴 연설이나 강연을 하는 건 허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2/15 08:35 2024/02/1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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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종 교육 제도와 교육 시설

(1) 문과/인문계의 반의어는 무엇일까? 문맥에 따라 실업계, 이공계, 무과로 제법 다양하게 나뉘는 것 같다.

(2) 의대가 대학병원을 부설하듯이 사범대· 교육대가 자기네 임상실습(?) 명목으로 초· 중등학교를 만들면 그건 '부설 초· 중등학교'라고 불린다.
그런데 초등학교에서는 유치원을 '병설'할 수도 있다. 이건 유아교육 전공자가 설립한 여느 사립 유치원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린이집은 뭐고 영어 유치원은 뭔지.. 제도가 어찌 되는지 궁금하다.

(3) 교육대학교는 초등 교사를 양성하는 곳이지만, 교육대학원은 교직 이수를 통해 중등 교사 자격증을 주는 곳이다.

(4) 국방대학교나 국가정보대학원은 학위..;; 라기보다는 그 직종에 일단 들어간 직원들의 직무 재교육 성격이 강한 곳이다. 법조계에는 사법연수원이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이런 곳들은 일반인에게 점차 문호를 개방하거나, 아니면 별 필요가 없어져서 다른 수단으로 대체되는 추세이다.

2. 초등학교 시절 추억

내 기억이 맞다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라는 건 중학교에서부터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 대신 초등 시절에는 시학력고사와 도학력고사라는 게 있었다. 요즘도 있나?
중등부터는 다른 형태의 모의고사나 학력평가가 있겠지만, 어쨌든 시· 도학력고사라는 명칭은 더 등장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차이점이 있었군.

초등 시절에는 산수/수학 시간에 곱셈· 나눗셈 연산자와 정수 나눗셈 나머지라는 걸 볼 수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과서의 글자 크기가 작아지고 글이 빽빽해지고, 말이 반말로 바뀌는 게 개인적으로 위압감이 느껴졌다. ^^ 심지어 중학교 이후부터 교과서에 컬러가 없어지고 흑백으로 바뀌기까지 하니 그것도 싫었었다.

3. 대학 이상의 고등 교육

(1) 신학 석사 vs 목회학 석사,
전문의(임상) vs 의학 석박사(기초의학),
법학 전문석사 vs 법학 석사
처럼 일부 특수한 전문 분야는 학문 연구 위주로 받는 학위와, 해당 실무와 관련된 전문성을 인정받아 받는 학위나 자격이 나뉘어 있는 것 같다. (전문학위 vs 학술학위) 마치 교사와 교육학자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대학 학부 이후에 대학원 석· 박사 가방끈의 세계도 계열이 생각보다 매우 다양하다. 꼭 논문을 쓰지 않아도 되는 코스도 있다.

(2) 명예박사는.. 실제 박사학위가 있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명예교수는.. 실제 학위에 실제 교수까지 했던 사람이 은퇴하고 나서 얻는 자리이므로 지위가 완전히 다르다. 겸임교수나 외래교수 같은 게 '명예박사'의 교수 버전에 더 가까울 것이다.

4. 의대와 로스쿨, 통번역 대학원

몇 년 전에 어떤 초딩 꼬마애가 머리가 좋아서 대학교 미적분 문제를 술술 푼다거나, 여러 외국어를 구사한다거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쓱쓱 한다거나, 어른들 이상으로 바다 낚시 입질의 천재이다거나.. 이런 게 아니라
의학 서적 암기가 취미인 게 어느 TV 프로에서 소개된 적이 있었다.

인체의 세부 부위들의 의학 명칭을 줄줄 외울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증상을 들으면 정확한 병명을 읊으면서 진단도 한다. 현직 의사들이 그거 보고 깜놀 하더라~~ 뭐 그런 내용이었다.

그 아이가 지금은 어찌 됐을지 모르겠다만, 그 의학 지식이 실제로 의대를 진학하는 데 도움이 될까..?? 아니다.
어떻게든 의대를 들어가서 본과 공부를 시작한 뒤부터는 그런 사전지식들이 약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의대 입시를 치르는 데는 의학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비슷한 맥락으로, 로스쿨도 당장 LEET를 응시하기 위해 법학이나 판례 지식이 필요하지는 않다.

의대나 로스쿨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냥 이전 학교에서의 왕창 우수한 성적을 통해서 "이 학생이 머리가 좋아서 아무 공부든지 닥치는 대로 잘 흡입한다, 빽빽한 텍스트를 빨랑빨랑 잘 읽는다. 그러니 앞으로 그 빡센 의학· 법학 지식도 왕창 흡입할 역량이 된다"는 것만 입증해 보이면 된다.

학창 시절에 수학· 과학· 정보 등의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려면 정규 교육과정 밖의 대학교 전공 서적 선수학습이 필수이다. 가령, 수올의 핵심인 정수론 같은 건 교육과정의 심화판 정도가 아니라 정규 교육과정에 아예 포함돼 있질 않다.
그런 거 입상 실적이 자연· 이공계 대학의 진학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의대· 로스쿨의 입시가 지향하는 건 그런 쪽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원 중에서 입시가 의· 법 계열과 정반대인 곳은 아마 통· 번역 대학원이지 싶다.
학부 간판이나 성적, 자기 소개, 창의적인 학업 계획서 그딴 거 전혀에 가깝게 보지 않고, 오로지 자체적으로 치르는 통· 번역 외국어 시험 성적순으로 커트를 하기 때문이다.
닥치고 오로지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에 얼마나 가까이 많이 꽂혔는지만 측정해서 국대를 뽑는 양궁과 좀 비슷하달까? =_=;;

통번역 대학원은 입학을 위해 당장 그 어학 실력이 어느 정도 필요하고, 입학 후엔 그걸 더 강화해야 된다. 출발어뿐만 아니라, 아니 그것보다도 도착어 내지 자기 모국어 어휘력도 왕창 뛰어나야 된다.
저기는 명색이 대학원인데 입시가 고등학교나 대학교 학부 입시와 비슷하다. 왜일까?

그만큼 모국어와 다른 언어를 새로 습득하는 건 정말 어렵고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국제기구 회의 같은 데서 활동하는 통번역 전문가를 양성하는 걸 백지 상태에서 대학원에서부터 시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의학 법학 공부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빡세고 힘들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5. 제약

요즘 몇몇 엘리트 교육기관엔 일면 이해는 되지만 굉장히 인위적이고 억지스러워 보이는 제약이 걸려 있는 게 있다. 다음과 같은 딱 둘이다.

  • 과학고 다니는 애가 의대를 가려 하면 지원받은 학비를 토해내야 하고, 교사가 공식적으로 진학 지원을 끊는 등의 페널티/불이익이 부과됨.
  • 로스쿨은 졸업하고 나서 5년 안에 변호사 시험을 5번만 응시할 수 있음. 이 안에 합격 못 하면 그 사람은 앞으로 평생 영원히 그 시험에 다시 응시할 수 없으며 변호사 면허도 절대로 딸 수 없음. 이 기간은 군 복무를 제외하면 그 어떤 개인사 가정사(질병, 결혼, 출산..)로도 유예 불가능함.

예전에 수능이라는 시험을 첫 설계했던 대학 교수가 회고하기를, 자기는 이 시험이 대학교 전공 공부를 소화할 지능이 되는지를 진단하는 최소한의 자격 시험, 가벼운 IQ 테스트에 가깝게 되는 걸 의도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몽땅 달달 암기해서 하루 원큐에 결판을 내는 미친 시험이 돼 버린 건 취지가 변질된 거라고 말하던데..

하지만 저건 저 사람이 현실을 잘못 파악한 감이 있었지 않나 싶다. 오늘날 수능이 기여하는 가장 큰 역할은 고등학교마다 인플레가 너무 심한 내신, 그리고 대학교마다 편차가 너무 크고 부정의 가능성도 있는 대학별 본고사 따위를 대체하여 객관적인 국가 공인 학력 지수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니 수능은 어쩔 수 없이 과거의 본고사/학력고사의 역할도 해야 하고 상위권 애들을 변별도 해야 한다. 옛날만큼은 아니어도 배배 꼰 함정 문제, 분야 통합 문제도 내야 한다.
뭐, 그래도 중학교나 고등학교 입시와 달리, 수능은 고득점을 위해서 대놓고 대학교 내용의 선수 학습까지 할 필요는 없다.

대학교 선수 학습은 수학/과학 올림피아드 하는 애들한테나 필요하다. 그런데 이게 영재 발굴 이상으로 사교육 조장 부작용이 커서 교육의 ‘평등’ 이념과 안 맞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수능 다음으로 변호사 시험도 마찬가지다. 이 시험을 첫 설계한 교수가 말하기를, 이건 합격률 90%대의 최소한의 자격 시험을 의도한 거랜다. 그래서 이런 시험조차 5년 안에 합격을 못 할 정도이면 진짜로 법학 적성이 안 맞는 사람이니까 더 인생 낭비하지 말고 딴 2군 진로를 찾으라는 취지에서 이런 제약을 넣은 거라고 한다.

실제로 제1회 변시의 합격률은 90%대에 달했다. 하지만 그 뒤로 재수생 삼수생이 누적돼서 지금처럼 합격률이 50%대까지 뚝 떨어지게 될 것을 저 사람은 예상을 정말 못 한 것일까..?
이거 마치 하사· 소위와의 형평성을 생각은 좀 하고서 병들 월급을 팍 올린 건가, 정말 이래도 괜찮나 의문이 드는 것과 완전히 같은 느낌이다.

지금은 로스쿨 나오고도 이렇게 변호사 기회가 완전히 박탈된 ‘오탈자’가 매스컴 타고 당당히 유튜브까지 하는 세상이 됐다. ㅡ,.ㅡ;;
절대평가도 아니고 경쟁률 2:1에 가까운 상대평가에서 아주 근소한 점수 차이로 걸러진 사람들인데.. 무슨 범죄자도 아닌데 오로지 이 시험에만 영구적으로 응시 자격을 박탈하는 조치가 있는 게 좀 부자연스러워 보이긴 한다.

이런 사람은 판사 검사 변호사 정도로 소송을 직접 다루지는 않으면서 자잘하게 복잡한 생활법들만 취급하는 법무사 세무사 행정사 등의 2군 진로를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로스쿨에 들인 돈과 시간과 노력에 비해서는 가성비 안 맞는 보상일 것이다. 마치 육사 들어갔다가 퇴교한 병· 부사관과 비슷한 처지이다.

사법시험 시절처럼 8번, 9번, 10여 번 재응시를 해서 간신히 합격한 사람이 나오는 게 좋은지, 아니면 그런 사회적 낭비 인생 낭비를 원천차단하는 게 좋은지.. 나는 딱 잘라 가치 판단을 못 하겠다.
하지만 갈수록 이럴 거면 그냥 예전처럼 사법시험 체제를 유지할 것이지, 로스쿨이라는 제도가 예전 제도보다 특별히 더 낫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끝으로 의대..
저런 무식한 제약을 억지로 부과해야만 이공계 영재를 의대로 뺏기지 않을 수 있다면 이젠 뭐 과학고의 운영 자체가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세월이 흐르니 과학고니 외고니, 경찰대니 등 뭔가 특수 목적 학교들이 전반적으로 인기와 존재감이 예전 같지 않다.
민항사로 우수수 빠져나가는 공군 파일럿은 어떡할 것이며, 밋딧릿으로 빠지는 공대 졸업생은 어떻게 붙잡을 참인가?

의대 진학을 막을 게 아니라 의학과 연계된 연구를 하는 과학자를 양성하는 쪽으로 뭔가 변화를 해야 하지 않겠는지.. 이런 생각도 든다.

Posted by 사무엘

2024/02/12 08:35 2024/02/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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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에 계층간 갈등이라는 게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게 과거보다 훨씬 더 조직적이고 과격한 형태로 표출된 건 아무래도 산업 혁명 이후 19세기에 공산주의라는 게 생긴 뒤부터인 것 같다. 구호부터가 “만국의 로동자여 단결하라~~ 기존 체제를 다 뒤집어엎고 브루주아들을 다 타도하고 혁명 과업 완수하자” 이랬으니 말이다.

과거에는 왕부터 시작해서 귀족, 지주/영주 같은 계급만 떵떵거리며 살았다. 나머지 대다수 평민들은 농업 같은 1차 산업에 종사하면서 비슷하게 평등하게 못 살았다. 자기 신분과 출신이 원래 그렇고, 이웃들도 처지가 대동소이하니까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여지가 별로 없었다.

농사가 풍년이어도 세금이나 소작료 명목으로 소출의 대부분을 삥뜯기는 게 참 뼈아팠다. 옛날에 노동력이 부족하고 백성들의 진짜 소득을 정확하게 측정할 행정력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 머릿수에만 비례해서 너무 단순무식하게 세금이 부과된다면 어떨까? 출산이 진정한 재앙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게 싫다고 인간이 법과 공권력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무법지대에 혼자 떠나서 모든 걸 자급자족 하면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게 진정한 딜레마였다.

사실, 중앙 정부에서 법으로 정한 세금 자체는 그렇게까지 살인적인 수준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론과 이상은 그러하지만 물자를 수송하는 과정에서 날리고 잃는 걸 감안해서 여분으로 더 걷는 것, 그리고 세리 같은 중간 관리들이 횡령· 착복하는 게 장난이 아니니 최하위 납세자들의 고통이 극심해졌다. 하청에 하청을 거치면서 실제 작업자에게 지급되는 보수가 급격히 쪼그라드는 것과 완전히 같은 이치이다.

물론 세금 착취가 너무 심해서 도저히 못 버틸 지경이 되면 죽창 들고 민란이 발생하고 '의적'이라는 게 나타나기도 했다. 로빈 후드, 임 꺽정, 홍 길동, 윌리엄 텔.. 이런 거 말이다.
그래도 이건 국가 체제 전복을 의도하는 건 아니었으며 그럴 재량도 없었다. 단순히 탐관오리를 벌하는 것까지가 끝이었다.

그랬는데.. 산업 혁명 물류 혁명이 일어난 뒤부터는 상황이 약간 달라졌다.
기계와 인간의 생산성 격차가 아득히 벌어졌고, 또 브루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격차도 정말 아득히 벌어졌다. 이거 덕분에 2차와 3차 산업이라는 것도 본격적으로 생겨나고 농산물과 공산품이 싸게 많이 보급되면서 인간의 ‘평균적인’ 삶은 크게 올라가긴 했지만.. 이건 다른 방면에서 큰 부작용도 야기했다.

산업화 초기에 영국 같은 나라에서 공장 근로자들의 근무 환경과 조건이 얼마나 열악하고 복지가 참혹했는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흑인 노예도 아니고 나름 자국민이었는데도 말이다.
시골에서 농업 대부분에 가내수공업 약간이나 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공장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단순노동자로 처지가 바뀌었는데.. 삶의 질이 크게 좋아질 리가 없었다.

뭐 영국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도 산업화 초기엔 그랬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빈부격차는.. 과거의 통상적인 왕족 귀족과 평민 사이의 빈부격차와는 성격이 좀 다른 부류였다.
그리고 이런 초창기의 경제 시스템은 그야말로 '신자유주의' 시장 만능 방임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극치였다. 오늘날과 같은 인권 관념이라든가 취약 계층 복지 같은 건 없었다. 돌아가는 방식이 얼마나 살벌했겠는지 더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쪼기 서양은 문화 배경이 배경이다 보니, 돈 많은 상류층들 중에도 교회 댕기는 신자가 대다수 주류였다. 그러나 이때 유럽의 기독교회들은 뭐 해외로 선교를 하기도 했지만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도 많이 했다. 그리고 자국 사회에서 하나님 사랑 다음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제대로 충실하지 못했다. 보다못해 영국에서 자선 냄비 이러면서 "구세군"이라는 교파가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그래서 19세기 중후반과 20세기 초 사이의 문학 작품들을 보면 이런 인간성 상실 동심파괴 시대상이 적지 않게 반영돼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 작가는 기억이 안 난다만 <플랜더스의 개> 말이다.
스크루지 꼰대가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롤>은 뭔가 옹고집전의 외국판 같기도 하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명작 소설도 이런 시국에서 교회가 사회에서 빛과 소금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성에서 만들어졌다. 저 때 자기 생일과 크리스마스를 극혐한 빈곤층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니 결국은 참다못해 마음 독하게 먹고 악한 쪽으로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탐욕스러운 자본가 부자는 한없이 자기 배만 불리면서 더 부자가 되고, 로동자들은 평생 뼈빠지게 일해도 가난을 절대로 탈출하지 못하면서 부자들의 노예로 대대로 비참하게 살다 갈 거라고 말이다.

이런 현실은 로동자들끼리 단결해서 악에는 악으로 대응하고 싸우고 투쟁해야 바꿀 수 있댄다. 그래서 노조에 파업, 사보타주, 붉은 머리띠, 꽹과리 등 살벌한 구호와 방법론이 등장했다. 그러면서 “자본가들을 타도해서 부를 다같이 강제 분배하자, 사람이 먼저이고 로동자가 주인인 세상을 만들자, 능력만큼 벌고 필요한 만큼 쓰는 체제를 만들자” 같은 구호를 외쳤다.

공산주의 사상에 입각해서 저런 걸 부추기고 추진하는 정치 단체를 흔히 '공산당'이라고 한다.
인간 사회의 근본 모순과 고뇌에 대해서는 기원전 500년에 가까운 옛날에 기록된 성경의 전도서에도 나와 있고, 비슷한 시기에 불교의 창시자인 싯다르타도 똑같이 고민했었다. 싯다르타는 번뇌를 떨치고 혼자 열심히 수련해서 해탈이라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반면, 공산주의자는 계급 투쟁과 혁명을 통해 좀 더 현실적인(?) 돌파구를 뚫은 듯하다.

마르크스인지 레닌인지 이런 아저씨들이 이 바닥으로 열심히 연구해서 이론적 근간(?)을 마련했다. 19세기 중후반에 이미 인터내셔널가라는 노래가 만들어지고 공산당 선언이라는 것도 만들어졌다.
현실 역사에서야 공산 혁명이 성공한 구소련과 그 주변 중국과 동유럽이 공산 진영으로 여겨지지만, 더 과거인 1871년엔 프랑스에서도 단 70일 남짓이지만 공산 혁명 정부가 집권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가 뭔가 혁명, 저항 이런 쪽으로 영국· 독일보다 더 쎈 정서가 있기 때문에 그렇지 싶다.;;

이 사람들은 모든 게 과격했다. 자본가 프롤레타리아들이 고수하던 삶의 방식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적폐로 몰아 척결하고 뜯어고치고 지워 버리려 했다.
종교색은 말할 것도 없고.. (종교는 인민의 아편!!) 심지어 1주일의 길이도 7일은 종교색이 느껴진다면서 바꿔 버렸다. 파리 코뮌은 10진법을 존중해서 한 주의 길이를 아예 10일로 바꿨고, 나중에 소련은 약수가 더 많은 8일로 바꾸려 했던 걸로 기억한다. =_=;; 이런 반골 기질이 있으니 나중에 중공은 그 보수적인 정서법을 다 뜯어고치고 간체자와 한어병음을 과감히 도입했다.

일본은 나라가 잘 살고 철저하게 자유 진영을 롤모델로 삼으면서 서구화 근대화를 잘 해서 그런지, 대놓고 공산화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반사회 혁명분자야 당연히 있었고, 그건 심지어 한반도니 만주니 하는 식민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최 서해의 단편 소설 <탈출기>(1925)가 딱 그런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공산주의 진영은 2차 세계 대전의 종전 이후, 거의 반세기 가까이 리즈 시절을 찍었다.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이라는 악역이 패망해서 고꾸라졌고, 소련은 엄연히 전승국으로 예우받으며 국제 위상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해방 직후에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헝가리· 불가리아· 체코 같은 소련 주변의 동유럽 국가들도 많이 공산화됐다.

그리고 소련의 반대편에서는 어쩌다 보니 미국.. 20세기에 서유럽을 제치고 승전국에다 세계 최강국으로 등극한 이 나라가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게 됐다. 2차 대전 추축국을 상대로는 총 쏘고 포 쏘면서 대놓고 싸웠는데, 공산 진영과는 대놓고 싸우지는 않는 대신 고삐 풀린 듯이 군비 경쟁 우주 개발 전쟁만 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두고 '냉전'이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 붙였다.

아프리카라든가, 오세아니아, 남아메리카 같은 남반구 지역은 너무 멀어서 그런지 공산주의와의 직접적인 접점은 없는 것 같다. 이런 곳을 제3세계라고 부르나??
하지만 쿠바가 무슨 계기가 있는지 골수 반미 국가였고(카스트로??), 그 아래 중남미도 몇몇 친미 노선 국가를 제외하면 '체 게바라'가 어떻고 해방신학에 종속 이론이 어떻고 하는 게 반미는 물론이고 공산혁명 냄새가 좀 난다. 그쪽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그렇게 느껴진다.

아 물론 미국이 다 잘했다는 말은 아니다. 걔들도 분명 자기 국익대로 몰래 비열한 짓 삽질 X신짓을 한 게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남아메리카가 그 넓은 땅에 그 많은 농산물에 풍부한 자원이라는 잠재성 대비 그다지 잘살지 못하는 건.. 모든 걸 미국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어 보인다. 뭔가 통치 체제나 이념, 개인의 가치관 세계관에 문제가 있긴 했다.

체 게바라는 골수 반미 반자본주의 혁명가였다. 하지만 그는 사후에 자본주의자들에 의해 공산주의 슈퍼스타처럼 이미지가 조작됐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엄청난 고인드립이 아닐 수 없다. =_=;; 마치 니콜라 테슬라가 아주 뛰어난 과학자 공학자였지만 훗날 음모론 오컬트계의 교주뻘 인물로 이미지가 조작된 것처럼 말이다.;;
저 장사꾼들은 돈만 된다면 정말 뭐든지 만들어 팔긴 하는가 보다. 하긴, 반미 시위 때 불태우는 용도의 성조기 내지, 성조기가 그려진 속옷· 걸레조차 다 미국에서 만들어서 판다고 하지 않는가? =_=;

우리나라, 남한, 대한민국이야 처음부터 할배의 영도력 덕분에 골수 미국 편에 붙어서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삼았다. 그 반면, 우리나라를 대적하고 무너뜨리려 한 저 악의 무리들이 처음에 소련 편 공산주의를 밀었으니..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서 뼛속까지 반공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미국이나 일본에서 과격 좌익 시위를 단속하는 정도하고는 레벨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상이다. 세계사나 인문학 따위 알못인 본인이 그냥 주워 들은 기억만 주섬주섬 늘어놓아 보았다. =_=;;
글쎄, 계급 갈등 투쟁 덕분에 진짜 적폐를 청산하고, 근로자의 인권과 복지가 크게 향상된 긍정적인 결과물도 없지는 않았다. 그 이념이 '수정 자본주의'에 많이 반영되어 들어갔다. 이게 양심적인 업주나 기독교회를 통해서 이뤄진 게 아니라 투쟁을 통해 이뤄졌다는 건 그쪽 편에 선 사람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성경에는 “종들은 주인에게 복종하라”뿐만 아니라 야고보서에 “착취되고 빼돌려진 근로자 인건비가 울부짖는다, 부자들에게 화 있을지어다”도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기능은 약간 조금이 끝이었다. 이 혁명가 운동꾼들은 오로지 광기와 선동만 있을 뿐, 이성이 없었다. 본질적으로 그저 음해하고 까내리고 부수고 죽이고 파괴할 줄만 알지, 어려운 걸 만들고 창조하고 설계하는 건 몰랐다.
걸핏하면 자기들끼리도 비판하고 '총괄'하고 '타도'하고.. 어제의 동지도 바로 스파이로 몰아서 고발하고 죽여 버리고..;; 총체적인 무질서와 팀킬에 빠졌다. 한 구악을 청산했다고는 하지만 그에 대한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똑같은 짓을 하거나, 예전만도 못한 더 큰 신악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저런 사고방식의 열매가 바로 소련의 대숙청, 중공 문화대혁명 홍위병과 대약진운동, 캄보디아 킬링필드 같은 것들이다.
쟤들은 옛날 문화재도 엄청 많이 때려부수고 박살내 버렸다. 중국의 경우, 오히려 장 제스가 타이완으로 도망가면서 싹싹 긁어간 문화재들이 문혁의 피바람을 피해서 살아남았을 정도이다. 인류가 20세기의 이런 참극으로부터 뭔가 교훈을 얻고, 다시는 저런 짓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도 운동권 내부에서 추잡한 성추행이라든가 프락치 오인 린치 같은 사건이 당연히 있었다. 보고 배우고 하는 짓이 저런 것밖에 없는 애들이 도덕적으로 자신들의 타도 대상보다 우월할 리는 절대 만무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건 내로남불 위선이다. 남에게는 땀흘려 일해야 노동의 가치를 안다느니 헛소리를 지껄였지만, 공산당 고위 간부들은 절~~대로 자기 부를 남에게 분배하면서 자기 이념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인은 '공산주의 사상'과 '공산주의자의 수법'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소신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다.
가령,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것처럼 초대 교회 때 교인들이 모든 재산을 공유했던 것은 결과만 보자면 공산주의대로 행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체제 전복 선동을 한 건 아니었다.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공산주의자들이 동원하는 수법은 초대 교회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온통 비인간적이고 비열하고 추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자들이 빨갱이 소리를 들어 온 주 이유이다.

물론, 공산주의자들만 그런 수법을 사용하는 건 아니다. 군국주의 1당 독재, 통치자 우상화, 전체주의, 닥치고 숙청 같은 건 공산주의와 무관했던 구 일본 제국이나 나치 독일도 동원했었다. 프랑스 혁명 공포 정치도 통치자 1인 우상화만 없을 뿐, 조금 저런 분위기였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저런 군국주의 전체주의는 없어지고 최소한 주류에서는 완전히 밀려났으니 이제 저런 공산혁명 어쩌구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저런 짓을 하지 않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1990년대 이후엔 북괴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공산권 국가들이 무너지거나 최소한 경제만은 개방했다. 세계는 다시는 저런 미친 혁명 실험을 하지 않고, 그냥 지금 같은 시장 경제에다가 세금으로 복지 보정만 하는 체제로 다들 수렴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를 개방했고 민주주의를 흉내만 낼 뿐, 중국과 러시아 같은 나라는 한국·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도.. 저런 숨막히는 나라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20세기까지만 해도 과거의 상명하복 똥군기 문화의 여파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여전히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게 많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미국은 단순히 크고 땅 넓고 자원만 많은 나라가 아니라, 세계에 정교분리, 삼권분립, 자유 민주주의와 현대적인 인권 이념을 퍼뜨린 정말 위대한 나라인 것 같다. 캐나다나 호주 같은 평범한 영연방 국가로 그치지 않고, 덕분에 인구도 그런 나라보다 훨~씬 더 많아져 있다.

아무쪼록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고, 경제나 정치 쪽은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감각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산업혁명 초기에야 진짜로 근로자들의 처지가 너무 가혹했지만, 지금은 진짜 내로남불 귀족 노조를 더 비판해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부와 세금에는 똑같이 낙수효과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멀쩡한 역할 분담을 쓸데없는 계급 갈등으로 비화하는 이간질과 반기업 프레임 따위에 속지 말고.. 옛날에 실패가 진작에 입증된 실험을 또 하겠다고 덤비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오징어 게임 '혁명적인 개X끼'가 얼마나 끔찍한 욕설인지가  얼추 이해가 될 것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2/09 08:35 2024/02/0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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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사

성경에 따르면 천사라는 존재가 있으며, 그 중 이름이 알려진 특정 천사로는 가브리엘과 미카엘이 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서 9장이라든가 누가복음 1장의 예를 볼 때, 진짜로 소식통 심부름꾼 역할인 듯하다. 그 반면, 미카엘은 유다서라든가 계시록 12장을 보아하니 전투를 하는 것 같다.
아~ 성경에도 동그라미 진행요원과 세모 진행요원이 구분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모는..?? 모르겠다. ^^

히 1:14에 따르면 천사는 인간을 섬기고 써빙하는 게 주 임무이다. 당연히 구원받은 인간 한정으로.
물론 시 8:5에 따르면 인간이 피지컬이나 스킬은 천사보다 약간 낮게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남녀 성별이 나뉘어 있고 번식 능력도 있는 반면.. 그건 천사에게는 없는 특성으로 보인다.
뭐, 그렇다고 해서 천사가 중성이나 아기, 소년인 건 아니다. 걔들은 그냥 젊은 청년, 남자 장정 형태이다.

  짐승 인간 천사
암수구분, 번식 O O (훗날 X로) X
각 개체의 불멸 X O O
구원 대상 X O X

근데 시편 8:5 인간이 천사보다 조금 낮게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이 구절에 히브리어 원어가 원래는 하나님과 동일한 '엘로힘'이라고 한다. 헐.. 엘로힘은 신도 되고 하나님도 되고 심지어 천사도 되는 귀걸이 코걸이 같은 단어였단 말인가? 히브리어는 참 알 수 없는 언어인 것 같다.

2.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

성경엔 이름 차원에서 특별히 '하나님+사랑'이라는 의미가 들어간 사람이 좀 있다. 우리말로 치면 '신애'.. 좀 여자 이름처럼 되네?

  • 여디디야(삼하 12:25): 솔로몬 왕의 별칭으로, '여호와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랜다.
  • 데오빌로(눅 1:3, 행 1:1): '누가'가 기록한 저 두 책의 서신자이다. theo+필레오..이니 어원을 분석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저 사람이 누군지, 실존하긴 했던 인물인지 참 의아하다.

그 밖에, 창세기 5장에서는 에녹이 갑자기 뜬금없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게 나오고..
역대기상에서는 4:9-10의 뜬금없는 구절로 인해 '야베스의 축복'이라는 게 기독교계의 유행어처럼 등극했다.
야곱의 축복도 아니고 야베스는 무슨 인물이었는지, 성경에서는 무슨 의도로 그 사건이 기록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지난 10여 년 동안 본인은 교회에서 이와 관련된 설교나 강해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3. 성경에 나오는 목재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처럼 열매가 아니라 목재 내지 나무 그 자체 관점에서 성경에서 등장하는 나무로는 본인은 이런 걸 기억하고 있다.

  • 고펠나무: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데 쓰였다는 나무인데.. 거기서 딱 한 번만 등장하고 끝이다. 정확한 정체가 무엇인지 다른 단서가 없다.
  • 시팀나무: 출애굽기의 성막과 언약궤를 만들 때 쓰였다고 거듭 등장한다.
  • 레바논의 백향목: 얘가 그렇게도 품질 좋은 나무라고 명성이 자자했다. 솔로몬의 성전을 지을 때 쓰였다.
  • 로뎀나무: 엘리야가 이세벨에게 쫓겨서 도피할 때 묵었던 황야의 나무이다. 이 명칭은 히브리어 명칭이고, KJV 영어를 직역하면 향나무(juniper)이다. 비킹 계열에서는 싸리나무(broom)라고 옮겨져 있는 편이다.

4. 나는 곧 나예요

출 3:14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I am that I am이라는 계시를 내리신 것이 기록돼 있다. 함축적이고 번역하기 난해한 표현이다 보니 우리말 성경은 킹 계열도(흠정역) 개역성경의 "스스로 있는 자"라는 번역을 그대로 따르는 편이었고, 말보회 한킹이 그나마 "나는 곧 나, 나이신 분"이라는 번역을 새로 시도한 것 같다.
저기서 I AM이 그대로 명사로 쓰인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도 "내가 있느니라"라는 뜻으로 I am이 쓰였다. 그러니 이게 성경에서 아주 의미심장한 표현인데..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허언 망상 사기꾼 범죄자의 “I am 신뢰예요” 개드립이 유행어로 나돌았다. 이에 대해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예수님의 칭호 I am을 사칭· 참칭했다면서 고까워하곤 했다.
I am은 예수님 칭호 참칭이고, I will은 사탄 마귀 루시퍼(사 14:12-14)의 결의와 연결된다는 게 흥미롭다. I가 들어가는 게 그다지 좋은 심상이 아니다.

5. 의인 시편

시편 37편은 그야말로 뼛속까지 권선징악 심상인 의인장이다. 악당들이 당장 잘나가는 걸 보고 시기하고 초조해하지 말라고 한다.
“하나님이 선한 사람의 걸음을 정하고 그의 길을 기뻐해 주신다. 그런 사람은 넘어져도 완전히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평생을 지켜봤는데 의인의 자녀가 거지꼴로 사는 걸 본 적이 없다” 이런 얘기들로 가득하다.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잔뜩 보고 나서는 이 시편을 다시 보면서 머리속을 정화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37에서 숫자 배치를 뒤바꾼 시편 73편은 악인의 번영을 보고 너무 마음이 불편해지고 시험 들 뻔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73:2에서 “내 발은 거의 실족할 뻔했고 걸음이 미끄러질 뻔했다”는 말은 37:23-24 “의인의 걸음을 정한다, 그가 넘어져도 쓰러지지 않는다”와 딱 대응하는 것 같다. 37편과 73편이 개념적으로 상호 보완적이다.

6.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기적이 많이 기록돼 있다는 특성상, 요즘 시쳇말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에 해당하는 사건이 많이 들어있다. 특히 그 중에서 웃픈 사례가 뭐냐 하면.. 자기가 열씸히 기도해 놓고는 그 기도가 진짜로 덥석 응답된 걸 당사자가 파악하거나 믿지 못한 상황이다.

누가복음 1장 사가랴는 이것 때문에 일시적으로나마 말을 못 하게 되는 경징계(?)를 받았다. 사도행전 12장에서는 교회가 베드로를 위해서 열씸히 기도하고 있었는데 정작 “우와! 베드로 형제님 목소리예요!”라는 말에는 “너 미쳤구나”라고 반응했다.;;; 물론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우리라고 해서 그때 그 사람들의 믿음을 섣불리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지는 않다.

7. 우상 숭배와 탐욕의 관계

구약 성경에서는 사무엘이 불순종 똥고집이 우상 숭배+마법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삼상 15:23). 거기에다 신약에서는 탐욕이 우상 숭배라는 말도 있다(골 3:5).

유일신 사상이 가득한 성경의 관점에서 우상 숭배라는 건 아주 부정적인 심상이며 나쁜짓으로 간주된다는 것이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그래도 탐욕이랑 우상 숭배가 영역 자체가 같지는 않아 보인다. 당장 십계명을 봐도 전자는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에 속하는 반면, 후자는 정반대 첫째나 둘째에 해당되니까 말이다.

허나, 그렇다고 탐욕과 우상 숭배가 완전 별개이냐 하면 또 그렇지만은 않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이방 우상 숭배자들을 보시라. 그들은 정말 진지하게 그리스/로마의 제우스/주피터를 일편단심으로 섬기고 그런 신을 예수 믿듯이 흠모하고 경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행 16:16 점 치는 소녀를 이용해서 돈 많이 벌던 아재들.
행 19:24 우상 형상을 팔아서 돈을 많이 벌던 은 세공업자.
이 사람들이 바울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던 건 자기 밥줄이 끊겼기 때문이지, 딱히 자기 종교 신앙이 부정당했기 때문이 아니다. 쟤들은 굳이 다이아나 상이 아니어도 예수 상이건 마리아 상이건.. 돈만 되면 뭐든지 만들었을 사람들이다.

즉, 그들의 진정한 신은 주피터 제우스 다이아나 따위가 아니라 그냥 돈이었다는 거다. 이는 동성애 게이들이 평생 한 남자하고만 사는 사람이 절대 아닌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동성과의 아름다운 사랑은 무슨 개뿔..
물론 유대교 이슬람 골수 중에는 진짜로 돈이 아니라 특정 이념이나 종교에만 목숨 건 광신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세속적인 사람들에게는 탐욕이 우상 숭배인 게 아니라 역으로 우상 숭배도 얼마든지 탐욕과 접점이 있을 수 있어 보인다.

이는 신앙 생활 관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딤전 6:5가 말하는 이익이랑 경건(godliness) 사이의 관계가 헷갈려서는 더욱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8. 잘못된 양쪽 극단

요일 2:27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 없다 (기름 부음이 너희를 가르칠 꺼니까)"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목사 무용론, 성경 교사 무용론 같은 황당한 낭설의 근거로 악용되는 구절이다. 그 말이 아니라니까.. -_-;;
그런데 반대로 목사 편에서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마 10:19 "현장에서 무슨 말을 할지 염려하지 말라~ 내가 그때 실시간으로 알려 주겠다" 라는 구절이 악용되는가 보다.

진지하게 성경 연구와 설교 준비를 하지 않고 강단에 올라가서 의식의 흐름대로 제멋대로 지껄여도 하나님 말씀이 선포된다고 말이다. 그 구절은 그 용도가 아니라는 거 알 만한 분이 왜 이러시나.. -_-;;
신자 쪽이나 목사 쪽이나 다 방종을 조장하는 잘못된 양 극단이 있다는 게 흥미롭다.

그나저나 또 하나 생각나는 거. "놀아도 교회에서 노는 게 아예 나이트/빠에 가서 노는 게 낫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있다.
지나친 형식주의 율법주의 교조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취지를 잊어버린 채 형식 지키는 것에만 목숨 거는..)
갈 곳 없이 방황하는 다음 세대 젊은이들의 눈높이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요지인 건 알겠다.

완전 100% 나쁘고 악한 생각은 아니라는 것에 동감한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오남용되기도 아주 쉬우니, 매우 주의해서 신중하게 적용해야 할 것 같다. 저렇다고 해서 교회를 나이트/빠 같은 곳으로 만들어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_=

9. 열정 있는 마음

눅 24:18-24에서 소개된 "예루살렘 사람 중에 이거 모르는 놈은 간첩" 소식통은 말이다. 무슨 관공서 보고서나 뉴스 자료, 가십거리 신문 기사로는 정말 손색이 없다. 단 한 치의 거짓이나 왜곡이 없이 사건 팩트를 있는 그대로, 육하원칙대로 잘 정리했지 않은가?
하지만 바로 다음 25절, 주님으로부터 돌아온 반응은 꽤 심한 갈굼이었다. 왜 그랬을까? 예수님은 무슨 신문사 편집장이나 뉴스 보도국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난 니가 그 사건을 얼마나 잘 요약 정리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어.
'이제 3일째가 됐는데 과연 어찌 될지..'라니? 말 하는 태도가 그게 뭐냐?
예수님의 부활을 왜 너와 무관한 남의 일인 것처럼 쓸데없이 객관적으로 이웃집 불구경 하듯이 서술하고 자빠졌냐? 성경 말씀에 대한 니 믿음은 도대체 어디 갔냐?"

이게 25와 26절에 담긴 주님의 심정이었지 싶다. 종의 병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백부장과는 반대 상황인 거다.

예수님이 부활 후에 엠마호 행 제자들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신 게.. 요셉이 이집트 총리가 되고 나서 한참을 형들 눈물 콧물 다 빼고 나서 자신을 드러낸 것과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우리는 정욕 때문에 불타는 게 아니라(고전 7:9) 말씀 읽는 감격으로 인해 마음이 뜨겁게 불타올랐으면 좋겠다. (눅 24:32)

Posted by 사무엘

2024/02/06 08:36 2024/02/0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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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관련이 없는 아이템들이긴 하지만, 그냥 한 글에다 한데 엮었다. ㄲㄲㄲㄲㄲㄲ

1. 사다리

성경의 창 28:12에 나오는 야곱의 꿈 말이다. 하늘에서 아래로 사다리가 하나 내려와서 천사들이 그걸 딛고 하늘과 땅 사이를 오르내렸다고 한다. 그걸 묘사한 성화도 역사적으로 아주 많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과거에서 현대로 갈수록 “사다리가 아니고 계단이지 않을까?”로 바뀌어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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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490년경에 프랑스에서 그려졌다는 이 옛날 그림을 보자. 천사들이 손까지 기둥을 붙잡아야 할 정도로 (1) 직각에 가까운 경사의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진짜 문자적인 사다리.. 무슨 성벽 타는 공성전을 치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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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중에는 손까지 붙잡지는 않고, 다락방 계단 같이 아주 가파른 (2) 계단 반 사다리 반이 등장한다.
더 나중에는 보다시피.. (3) 아예 희고 단단하고 경사도 훨씬 더 완만한 돌계단으로 바뀐다.
야곱이 꿈 속에서 실제로 본 장면은 (1)~(3) 중 어디에 가장 근접해 있을까?

이건.. 흔히 말하는 본문 계보에 따른 변개 이슈가 아니다. 그냥 옛날 성경과 현대 성경의 차이일 뿐이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개역성경이고 킹 제임스고 뭐고 다 똑같이 사다리였기 때문이다. 20세기 중후반부터 창 28:12의 번역이 대놓고 ‘계단’이라고 바뀌기 시작했다.
ladder는 성경에서 저기 딱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구절의 용례를 비교해 볼 수 없다. 고펠나무가 노아의 홍수에서 딱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말에서는 사닥다리와 사다리 모두 표준어이다. 특히 개역성경이 이 구절에서 ‘사닥다리’를 썼고 개역개정에서도 같은 워딩을 유지하고 있다.
개역성경은 이것만 사닥다리이고, 에스겔서 등에서 운제(공정전용 이동형 사다리), 보루 같은 건 사다리라고 나름 구분을 해 놨다.

그나저나 저 1490년 그림은 사다리 주변에 아무 후광이 비치는 게 없어서 별로 간지도 안 나고, 결정적으로 사다리 꼭대기가 너무 낮다.. ㅡ,.ㅡ;; 그림을 너무 대충 그린 것 같다. ㅠㅠㅠㅠ
그래도 히브리어 원어로도 설마 계단과 사다리가 같은 단어는 아니겠지.. 계단이 아니니 처음에 옛날 번역도 사다리로 시작했던 게 아닐까 싶다.

야곱은 밤에 딱딱한 땅바닥에서 돌을 베고 자연 속 노숙을 했다. 나도 야곱처럼 살고 싶다~!!
이 창세기 28장의 야곱 이야기가 가사에 담겨 있는 드문 찬송가 중 하나가 바로..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다..! 1절이 아니라 2절과 그 이후의 가사이기 때문에 존재감이 좀 덜 느껴질 것이다. ^^

2. 물이 와인으로 변환된 기적

요한복음 2장에 기록된 ‘가나의 혼인 잔치’ 사건, 혹은 예수님이 물을 와인으로 변환하신 기적 말이다.
그때 기적적으로 자동 생성된 와인의 양은 얼마 정도였을까?

6절을 보면, KJV에 따르면 2~3 firkin 분량인 항아리가 6개가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
firkin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여기서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 생소한 단어인데.. 1 firkin은 10갤런에 대응한댄다. 그래서 KJV 이후의 통상적인 영어 성경들은 20~30 갤런짜리 항아리 6개라고 표현하였다.

1 firkin, 10갤런은 38리터에 달하는 용량이다. 생수 담는 그 말통의 두 배가량인데..
한글 개역성경은 거리의 단위 mile은 5리라고 토착화 단위를 붙였으면서 저기서는 4~6말이라고 토착화를 하지 않은 것 같다. 마 5:41의 mile도 성경에서 단 한 번밖에 안 나오는데 말이다.

요 2:6에서는 firkin을 물통에다 대응시켰는지, ‘두세 통’이라고 번역했고 이걸 후대의 우리말 성경들이 별 생각 없이 따른 것 같다. ‘통’을 단위로 보고, “2~3통짜리 항아리 6개”라고 번역하는 게 관행이 됐다.

말보회의 한글 킹 제임스는 의외로 이 관행을 깨고.. firkin의 원어를 밝혔다. “2~3메트레타짜리 물통 6개.” 즉, ‘통’은 원래 뜻인 용기, 그릇으로 사용했다. 국내의 우리말 성경 중에 요 2:6을 저렇게 번역한 성경은 한킹이 유일하다.
furlong을 ‘스타디온’이라고 원어를 밝혀 번역한 것과 동일한 정책을 취한 것이다. (계 21:16 등~) 흠정역은 furlong은 스타디온이지만 firkin은 원어를 밝히지 않았다.

요즘 말 많고 논란도 많은 표준역은?? 그쪽은 워낙 영어 직역만 고집했기 때문에 펄킨, 펄롱에다 파운드, 마일까지 몽땅 영어 도량형을 그대로 썼다. ㄲㄲㄲㄲㄲㄲ 제일 파격적이고 과격하다.

뭐, 한국어 토착화든 영어든 그리스 원어든.. 저 계산에 따르면, 가나의 혼인 잔치에 나오는 저 석재 물항아리 하나의 용량은 거의 100리터에 달한다.
예수님은 그 항아리 6개에 가득 담겼던 물을 몽땅 와인으로 변환하셨다.

600리터를.. 생각보다 양이 많다! 겨우 와인잔이나 유리병 몇 개 수준이 아니다!! 도대체 하객을 몇 명이나 초청해서 잔치를 얼마 동안이나 진행한 걸까? 오병이어처럼 수천 명은 아니더라도 100수십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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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서양 해적 영화에 나오는 허리 불룩한 나무 배럴이 용량이 개당 150~160리터였다고 한다. 그거 4개 분량이다.
그리고 요즘 석유 담는 용도로 쓰이는 철제 드럼통 용량이 개당 200리터에 가깝다고 한다. 그거 3개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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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의 혼인 잔치를 묘사한 옛 성화들 중에는 항아리가 너무 작게 묘사된 게 여럿 눈에 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고증을 무시한 결과물인 것 같다. =_=;;
오히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끝부분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이 어째 구겨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항아리를 생각해야 하지 싶다.

  • 가나의 혼인 잔치 기적은 인간이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받는다는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요 2:5)
  • 그러고 보니 배럴(barrel)도 처음에는 150~160리터짜리 나무 술통이라는 뜻이었는데.. 지금은 200리터짜리 드럼통의 단위 명칭으로 슬며시 바뀌었다. (석유 10만 배럴..) 우리말 성경 요 2:6에 나오는 '통'도 그런 의미 확장을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다. ^^

3. 동방박사

마태복음에 따르면, 먼 옛날 예수님이 탄생하던 당시에 일명 '동방박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별을 보고는 예수님이 태어난 곳을 찾아왔다고 한다.
성경에는 그 동방박사의 인원수나 이름 같은 건 전혀 안 나온다. 오히려 10수 명 이상 무리를 지어서 왔을 가능성이 높은데 굳이 3명에 이름까지 거론된 건 아무래도 다른 종교적인 전통이나 설화가 첨가됐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동방박사들이 바친 예물이 세 종류이긴 했다. 그것 때문에 인원수까지 3이었을 거라는 편견이 생긴 것이지 싶다.

그리고.. 우리말 성경이 ‘박사’라고 해 놓으니 본문을 읽는 독자들은 저 사람들이 꼭.. 무슨 학위를 소지한 학자 글쟁이였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건 아니고.. 저기서는 지식보다는 지혜.. wise men 지혜자가 더 정확한 뉘앙스이다.
시쳇말 ‘현타’라고 할 때 떠올리는 그 ‘현자’.. 딱 그걸 생각하면 된다. 현자타임!!!
나중에 예수님이 어린 시절에 회당에서 진짜 율법 ‘박사’들과 논쟁하고 키배를 떴었다. 눅 2:46을 같이 보시길 바란다. ㅋ

Posted by 사무엘

2024/02/03 19:35 2024/02/0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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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1. 볼링 기계

이 사진은 1910년 4월경에 뉴욕 모처의 한 볼링장의 내부 모습이다. 제법 유명한 장면이기 때문에 조금만 검색하면 금세 잔뜩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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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울나라가 일제 식민지가 되던 타이밍 때 볼링장이란 게 있었던 나라도 흔치 않기는 하다. 그런데 그땐 볼링장에서 핀을 다시 세워 놓는 걸.. 알바생들이 했다.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와 진짜 쌈박하다 ㄷㄷㄷㄷㄷ 시내버스 안내양은 저리 가라이군..
이 알바생들은 볼보이도, 비보이도 아니고 핀 보이라고 불렸다. 딱 봐도 얼굴이 앳돼 보이네 ㅠㅠㅠㅠㅠ

공 회수와 핀 세팅을 다 자동으로 해 주는 첨단 기계는 1950년대가 돼서야 발명됐다고 한다.
요즘 기계처럼 넘어진 핀 개수를 세고 점수 계산까지 다 해 주는 장치는 아마 더 나중에 발명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음악계에서 넘순이 넘돌이(page turner)와 비슷한 처지인 것 같다. 악보 넘겨 주는 사람.
그런데 이건 아무나 할 수 있지 않고.. 악보를 어느 정도 읽으면서 언제쯤 페이지를 넘겨야 할지 알아야 할 수 있다. 그러니 넘돌(순)이들도 음악 전공자에 심지어 연주자의 후배, 부사수, 심지어 제자인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전자 악보의 등장 덕분에 넘돌(순)이의 필요가 많이 없어졌다.

2. 2020년대에도 현역인 현대 올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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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2021년 설 때 고향에서, 그리고 2022년 10월경에 서울 시내에서 목격한 포니 2 픽업트럭이다.
포니는 후륜구동에, 카뷰레터 밥통에다 초크 밸브까지 달려 있는 완전 옛날 석기 시대 차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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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에 서울 시내에서 목격한 엑셀 1세대 GLSi (뉴 엑셀이 아니라~!! ㄷㄷㄷ)
그런데 이런 올드카에 어떻게 초보운전 딱지가 붙어 있을 수 있는지 더욱 의문이다. 자녀가 부모 차량을 물려받는 상황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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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2022년 10월 초에 강변북로에서 목격한 각그랜저 V6 3000cc.. 차주가 나름 애착을 갖고 차를 잘 관리했는가 보다.
5~6년쯤 전이었나? SBS 모닝와이드 블랙박스로 본 세상이었는지.. 각그랜저가 교차로에서 다른 차와 충돌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각그랜저는 잘못 없고 피해자로 말이다.

이제는 수리 받기도 극도로 힘든 희귀한 올드카가 됐을 텐데 각그랜저 차주가 당시에 굉장히 억울했을 것 같다.
그라나다를 아직 끌고 다니는 차주도 있다고 TV에 나왔었는데.. 그 사람은 각그랜저보다도 더한 고인물이다.

지금이야 평범한 공돌이 직장인인 내가 끌고 다니는 국산 양산차가..
1990년대 금수저의 상징이었을 각그랜저 V6 순정보다 엔진 출력 더 강하고, 더 효율 좋고, 더 친환경적이고, 편의 시설이 더 많다.

그 시절에야 그랜저에다 창작하던 모토롤라 카폰이 완전 부자용 돈지랄 사치품 그 자체였겠지만.. 그래 봤자 한낱 카폰이 갤럭시 S2x니 아이폰 1x보다 더 뛰어난 물건이겠는가?
어찌 보면 지금 서민들이 옛날에 문자적으로 금수저를 갖고 놀았던 솔로몬 왕도 못 가졌던 것들을 당연하게 갖고 누리는 셈이다.

3. 페르시아, 이집트

1990년대 초(1990~92)엔 매체에서 ‘고대 페르시아’가 떴었다. (혹은 그에 준하는 아랍/이슬람 문화권)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 그리고 월트 디즈니 알라딘.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저 게임과 만화영화 말고 술탄이나 쟈파 같은 이름을 접한 곳이 없었다. 전자에서는 쟈파를 Jaffar이라고 표기했는데, 후자에서는 F가 하나 생략돼서 Jafar가 됐을 뿐.

알라딘은 아라비안 나이트에 있는 얘기이긴 하지만 원래 의외로 중국이 배경이다!! 그렇게도 국뽕에 쩔어서 뭐든지 중국산으로 둔갑시키질 좋아하는 그 나라에서 알라딘에 대해서는 뭐라 할 생각을 안 했나 모르겠다.
디즈니의 제작자들은 알라딘을 만들면서 세계관을 쿨하게 통째로 아랍권으로 바꿨다.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 영향을 받아서 그랬던 건지 궁금해진다.

그 다음으로 1990년대 말(98~2000), 세기말엔 매체에서 ‘고대 이집트’ 코드가 이례적으로 떴었다.
툼 레이더 4 게임, 영화 미이라 시리즈, 만화영화 이집트의 왕자, 심지어 국내 가수 중에서도 이 정현 2집 ‘너’
내가 그 당시 학창 시절에 이런 트렌드를 느꼈을 정도였다. 흥미롭지 않은가?

물론 이건 이슬람이라는 게 없던 시절, 한참 옛날 이집트이다. 바빌론에다가 비유하자면 이집트는 고대 바빌론이고, 페르시아는 후기 바빌론 정도에 대응할 것이다.
성경에서 페르시아는 유대인들의 바빌론 포로기 때 에스라, 에스더, 느헤미야, 다니엘.. 이런 책에서나 언급된다.
그러나 이집트는 그야말로 창세기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두루 언급된다. 출애굽기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예수님의 아기 시절 피신 장소도 이집트이다.

아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저것들보다 훨씬 전.. 무려 1953~54년경에 ‘페르샤 왕자’라는 트로트 노래가 있었다~!!! ㄷㄷㄷㄷㄷ “별을 보고 점을 치는 페르샤 왕자 ... 아라비아 공주는 꿈속의 공주” =_=;;; 시대를 얼마를 앞선 거냐..
저 동네를 배경으로 저런 로맨스가 완전 생소한 개념은 아니었던 것 같다.

4. 마이클 잭슨 음반

나 중딩 시절.. Windows 3.1에서 95로 넘어가고 컴퓨터에 씨디롬이라는 게 장착되어서 2배속 4배속 이러던 시절 말이다.
그때 컴퓨터의 씨디롬 드라이브라는 건 컴퓨터와 완전 별개로 돌아가는 CD player의 상위 호환이었다.

드라이브에는 eject뿐만 아니라 play 버튼도 있었다. 오디오 씨디를 넣고 재생 버튼을 누르면.. 지금 컴퓨터의 CPU나 I/O와는 완전히 별개로 오디오 씨디가 재생되어 흘러나왔다.
그 시절엔 CD 한 장에다가 프로그램은 거의 70~100MB 용량만 넣고, 나머지 40분 남짓한 공간에다가는 오디오 CD 트랙을 넣은 하이브리드 매체도 있었다. 게임이라면 자기네 게임 BGM을 그렇게 넣곤 했다.

참 재미있던 나날이었는데..
그때 내가 선물을 받았는지 누가 언제 어디서 득템했는지는 알 수는 없다만.. 집에 웬 마이클 잭슨 best of best 컬렉션 음반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거기 있던 노래들이 1980년대에 세계를 뒤흔들었던 그렇게도 명곡들이었구만. 그때 들었던 곡을 거의 25년 만에 다시 들어 봤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 thriller는 마이클 잭슨 판 "오페라의 유령"인 거 같고.. ㅋㅋㅋㅋㅋ
  • the girl is mine은.. 맨날 '똥꼬 똥꼬' 하던 게 doggone이었구나. 우리말 '씨X'에 가까운 어감으로 그닥 품위 있는 어휘는 아니다. -_-;; bullshit이나 goddamn은 영화에서 많이 봤지만 doggone은 저 노래 이외에서는 한 번도 접한 적 없다.
  • beat it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얼추 let it go에 필적하는 어감의 떠나라, 때려쳐라, 잊어버려라 이런 뜻인 거 같다.
  • 중간에 "if they say why? why?"가 반복되던 이상한 노래는 제목이 human nature이었다.

내가 we are the world라고 생각하고 있던 노래는 heal the world이었구나.
여러 가수들이 한꺼번에 출현해서 인류화합 건전가요 풍의 노래를 한 소절씩 부르는 게 we are the world가 원조였다고 한다. 부라보콘 쌍팔년도 CF 중에도 딱 저 컨셉인 게 있었다~!!

그런 리즈 시절이 지나고.. 마이클 잭슨은 무리해서 얼굴 피부색을 허옇게 바꾸느라 후유증을 겪은 거 같기도 하고, 막 좋은 소식이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2009년 6월경,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용인 고속도로와 서울 지하철 9호선이 뚫리던 시절에 그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내가 대중음악 쪽은 거의 알못인 관계로 저 사람이 록커였는지.. 문워크는 무슨 퍼포먼스인지, 저 사람이 개척한 장르가 정확하게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2020년대의 관점에서 생각해 봐도 저 사람은 말년에 자기 관리 못 해서 몰락한 사람이 아니라 위대한 사람, 좋은 사람이었다고 평가되는 것 같다.

딱 1980년대에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마이콜'이 저 아저씨를 모티브로 딴 캐릭터였을 테고, 둘리한테 호이 호이 초능력 설정이 들어간 건 딱 그 시절 유행하던 '유리 겔라' 아저씨 영향을 받은 걸 테고.. 1980년대 감성 돋는다.. ^^

Posted by 사무엘

2024/02/01 08:35 2024/02/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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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이한 시내버스

(1)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어떤 시내버스 노선은.. 한번 다니면서 같은 지점으로 돌아오거나 심지어 같은 길을 같은 방향으로 또 경유하는 경우가 있다. 한 노선 갖고 여기저기 들쑤시는 굴곡 노선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버스는 같은 번호이더라도 A 방향, B 방향을 잘 구분하면서 타야 된다.
서울에서는 동대문구 쪽에 2233과 2112, 그리고 성남 57 말이다.;; 지도 그림만 봐서는 저 노선의 필순을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지하철 노선을 이해하는 식으로 시내버스 노선을 이해하려 해서는 곤란한다.

(2) 2022년 이후, 서울에 노란 순환 버스는 01 딱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원래 버스 개편 당시엔 강남이나 여의도, 중구 도심 같은 곳을 짤막하게 도는 마을버스처럼 계획됐지만.. 그건 진짜 마을버스들의 역할로 넘어가고 색깔은 그냥 학원 학교 버스한테 넘어가면서 정체성이 너무 애매해졌다.
현재 유일한 순환버스 01은 그래도 남산 꼭대기와 청와대를 연결하는 굉장히 독특한 순환 노선이다.

서울 시내버스들 중에서는 파란색 110이 거의 유일하게 서울 강북을 ‘순환’하는 형태이다. 용산구 한남동에서 평창동, 정릉까지 간다.
노랑뿐만 아니라 빨강도 굉장히 보기 힘들다. 경기도 소속의 광역버스나 아예 중앙 정부 소속의 M 좌석버스가 있을 뿐, 서울 소속의 광역버스가 많을 리 없기 때문이다.

(3) 버스를 비교해 보면 아무래도 좌석형 시외/고속버스가 덩치가 제일 크고(길이 12m 이상), 입석형 시내버스는 그보다 약간 더 작다(11m급 에어로시티). 마을버스에서는 더 작은 8.5~9m급 차량이 투입되기도 하며, 아예 카운티 같은 중형 버스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성북 05는 현재까지 서울에서 아예 스타렉스 승합차가 투입되어 다니는 유일한 마을버스 노선이다. 노선 길이는 겨우 2.1km이고 차량 딱 한 대가 20분 간격으로 다닌다.
도대체 이런 애들 장난 같은 노선이 왜 필요한가 싶지만.. 저기 일대가 북한산 기슭이어서 골목길의 경사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셔틀버스에 가까운 마을 버스의 혜택을 입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굴린다.

2. 마을버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마을버스는 버스라는 대중교통 중에서 스케일이 제일 작은 시스템이다. (시외 > 광역 > 도시형 시내 > 마을..)
그래서 그런지 기본요금도 도시형 시내(초록색 지선, 파란색 간선 포함)버스보다 싸고, 운영 시스템이 그런 시내버스와는 따로 노는 감이 좀 있다. 이런 자잘하고 영세한 버스들까지 몽땅 다 환승 할인이 되고 버스 위치 조회가 되게 하고, 준공영제에 끌어들인 건 정말 대단한 조치였던 것 같다.

마을버스는 대도시의 깊숙한 구석 주택 골목을 꼼꼼히 돌면서 승객을 모아서는.. 인근의 대로변과 지하철역을 연계한다. 얘 한 번만 타서 어디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얘는 스케일이 더 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걸 돕는 역할을 한다.
마을버스의 유사품으로 이런 게 있다.

(1) 도심순환: 서울 버스 개편 때 '노랑 버스'로 계획했던 물건이다. 대도시 내부의 단거리 셔틀이라는 점은 마을버스와 비슷하지만, 주거 지역이 아니라 상업 업무 지역만을 돌아다닌다.
앞서 얘기했듯이, 지금은 남산-청와대 셔틀 말고는 이 버스가 모조리 사라지고 사문화돼 있어서 아쉽다. 사실, 노랑 버스는 햇병아리 어린애들을 태우는 학원· 학교 버스 이미지로 굳어졌기 때문에 색깔도 좀 논란의 여지가 있다.

(2) 농어촌버스: 운행 거리가 길고 관할 지역이 왕창 넓지만.. 여기는 인구와 수요가 너무 적기 때문에 영세하다. 시골 마을 어귀 곳곳을 돌면서 승객을 태워서 시장, 철도역, 시외버스 터미널, 관청 따위가 있는 중심부를 연결한다.
대도시와 비교해 보면.. 시골에는 마을버스 같은 세심한 물건 따위는 없으며, 농어촌버스가 간선버스 내지 지하철 역할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정작 농어촌버스는 몇 시간에 한 대, 심지어 하루에 n번꼴로 운행되니 거의 시외버스 급의 배차이다.

이러니 시골은 대중교통이 열악하고 자가용이 필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마을버스? 대도시에서도 적자가 심해서 난리인데 그런 게 시골에 있을 수가 없다. ㄲㄲㄲㄲㄲ
7, 80대 노인들이 교통사고를 많이 낸다면서 면허 반납을 유도한다 해도, 시골에서는 그게 현실적으로 매우 난감하다.

3. 서울 지하철역

(1) 대청 역은 서울 지하철 3호선과 분당선이 정확하게 수직으로 교차하는 곳이다. 하지만 주변에 이미 역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인해, 여기는 분당선은 역이 아예 만들어지지 않고 3호선 역만 있다.
둘 이상의 전철 노선이 환승 없이 지나치는 경우는 있지만, 역이 아예 대놓고 하나만 만들어진 경우는 좀 드문 것 같다. 아, 5호선 마장-답십리 사이에 2호선 신답이 환승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사례일까?

대청 역 주변에는 탄천 물재생센터가 있다. 장한평 주변에 중랑 물재생센터가 있는 것과 비슷한 관계이다.
저기도 분당선 역을 3개씩이나 만들지 말고 2개로 줄이고(구룡-개포동-대모산), 그 대신 대청을 환승역으로 만들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다.

(2) 서울 지하철들은 지상 철교로 한강을 건넌 뒤에는 다시 터널로 들어가면서 아래로 내려간다. 아직 지상 구간인데 일부러 주변이 가려져 있지는 않는 편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주변이 방음벽으로 가려져 있는 곳은 2호선 당산 철교를 지난 직후인 합정 역 근처가 거의 유일한 것 같다. 이 방음벽 때문에 선로 바로 옆에 있는 절두산 가톨릭 순교 성지는 거의 제대로 못 본다.

한편,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한강 철교를 건너서 강북에 진입한 거의 직후엔 차창 밖으로 거대한 기와집을 하나 보게 된다. 이거 정체도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새남터 순교지. 이것도 가톨릭과 관계 있는 건물이었다.
하긴, 한강 철교 남단은 노량진이고 거기 근처엔 사육신묘가 있다. 어떤 형태로든 죽은 사람을 기리는 시설이 있다는 게 흥미롭다. 옛날에는 이렇게 한강 도성 바깥의 한강 근처까지만 가도 이미 서울을 벗어난 교외 깡촌이긴 했다. 사형장이 있고 무덤이 있었을 정도니까..

(3) 2호선에서 신설동은 서울 지하철 최초의 환승역인 데다 지하 유령 승강장의 존재 때문에 많이 유명하다.
걔 말고 역삼 역은 역사 내부에 최초로 에스컬레이터라는 게 설치된 역(!!)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안 그럴 것 같지만 역세권에 나름 민간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보안 시설이 들어서 있다. 물론 군부대나 교도소 같은 곳은 아니고, 한국 은행과 금융결제원이 1번 출구 바로 옆에 있다.

4. 고속도로 나들목과 철도역의 위상

각종 지방도나 국도의 이정표에서 무슨 시· 군까지 남은 거리(km 수)는.. 통상적으로 해당 지역의 시청· 군청까지의 거리라고 알려져 있다. 관청이 있는 곳이 해당 지역의 중심부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고속도로의 이정표에서 그 지역까지 남은 거리수는 당연히 그 지역 관청과는 아무 관계 없고 그냥 그 지역 이름을 딴 나들목까지의 거리일 뿐이다. 고속도로라는 건 그 지역의 중심부를 대놓고 관통하지도 않는다.

반세기 전에 경부 고속도로라는 걸 처음 만들던 시절엔 지역 공무원들도 이런 관념이 없었으니 "고속도로가 뭐야? 먹는 거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들목을 닥치고 우리 시내 중심부로 유치해야겠네!!" 이랬었다고 한다.
하긴, 철도역은 과거에는 저렇게 지역 중심부를 대놓고 지났지만 요즘은 다들 선로와 역사가 외곽으로 이설되면서 뭔가 고속도로 진출입로 같은 존재로 슬슬 바뀌어 가고 있다.

5. 길의 선형과 유래

(1) 지금 제1 수도권 순환 고속도로(100)라고 명명된 그 ‘외곽순환 고속도로’는 맨 처음에는 1991년 10월 31일, 동남부의 구리-판교 고속도로라는 명칭과 구간으로 시작했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 맨 처음 개통된 구간은 동남부의 신설동-종합운동장이었다(1980년 10월 31일).
서울 지하철 5호선이 맨 처음 개통된 구간은 역시 동부 말단의 왕십리-상일동이었다(1995년 11월 15일).
모두들 뭔가 동질감이 느껴진다. 날짜도 비슷하고..!!

(2)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에서 중앙 버스 전용 차로가 시행된 건 경부 고속도로 신탄진-양재, 쉽게 말해 대전-서울 사이 구간이 최초이다. 1994년엔 명절에 시범 시행됐다가 1995년부터 전면 시행되었고 이때 파란 차선이라는 것도 처음 등장했다.
한편, 서울 시내에서 대중교통을 위한 중앙(측면이 아닌) 버스 전용 차로가 시행된 건 1996년 2월, 천호대로 신설동-광나루 구간이 최초이다. 해당 구간에 서울 지하철 5호선이 개통된 뒤, 파헤쳤던 길을 복구하면서 그 위에다 곧바로 중앙 버스 전용 차로를 아주 수월하게 만들었다.

(3) 전국의 고속도로 중에 단위 거리 당 건설비가 제일 높은 축에 드는 도로는 저 외곽순환 고속도로이다. 땅값이 너무 비싸서 토지 보상 비용이 많이 들고, 고가와 터널도 많이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처럼 서울 시내의 간선 도로 중에서 건설비가 제일 높았던 도로는 내부순환로이다. 기존 도로나 지형과의 접점이 없이 온통 고가도로로 때우고, 북악산을 뚫기까지 하면서 서울 북부에다가 정말 힘들게 길을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곳은 고육지책으로 하천 위로 그대로 고가도로를 만들기도 했다.

물론 2010년대 이후엔 강남순환로라고 관악산을 몽땅 지하 터널로 통과하는 더 무시무시한 길이 생겼다. 고속도로에도 제2경인 고속도로의 동쪽 연장 구간이 청계산이고 관악산이고 몽땅 다 지하로 관통해 버리니, 비슷한 수준의 강적이 등장했다.

(4) 대구는 ‘동대구’ 역이 대구 역보다 더 크다는 것, 2010년대 이전에는 복합 버스 터미널이 없었다는 것, 그냥 평범하게 ‘대구’라는 이름이 붙은 고속도로 나들목이나 분기점이 없다는 것이 무척 특이하다.
철도 쪽이야 대구 역이 경부선 창립 멤버로 있었으니까 ‘동대구’라는 이름이 나중에 추가로 붙었겠지만, 근처의 고속도로 나들목도 ‘동’자가 붙은 이유는 뭘까? 아마 1969년, 경부 고속도로 대구-부산 구간이 한창 건설 중일 때 동대구 역도 같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똑같이 ‘동’자가 붙은 것 같다.
실제로 동대구 역은 1969년 7월에 완공됐고, 고속도로는 그 해 말에 완공됐다.

(5) 우리나라 고속도로 중에서 대놓고 ‘지선’이라는 말이 붙은 도로로 내게 개인적으로 익숙한 것은.. 호남 고속도로 지선 251, 그리고 중부내륙 고속도로 지선 451이다.
이것 말고 중앙 고속도로 지선 551, 서해안 고속도로 지선인 151도 있고.. 남해 고속도로는 짤막한 지선이 여러 개 있어서 번호를 102부터 104까지 차지하고 있다.
251은 대전에서 호남 고속도로로 가는 게 철도 대전선의 도로 버전인 것 같다. 451은 북쪽의 대구에서는 45가 아니라 근처의 중앙 고속도로 55와 훨씬 더 가까이 있는데.. 남쪽 기점에서는 실제로 45와 연결되고 있기 때문에 저런 번호가 붙었다.

고속도로 노선 번호가 정착된 지도 20년이 넘었는데 이제는 이 번호 체계도 너무 복잡해져 있다. 하지만 이름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된 것도 사실이니, 번호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고속도로도 그냥 국도처럼 아주 흔해 빠진 존재라고 생각해야 한다.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의 구분을 없애고 시스템을 다 통합하고.. 유인 톨게이트도 없애고, 통행료를 걷을 거면 그냥 다 하이패스 기반으로 바꾸고 말이다.

(6) 같은 도로에 상행과 하행이 멀찍이 떨어져 있고 심지어 고저 차이도 있다거나.. 반대로 같은 길의 복제판이(= 상· 하행 모두) 근처에 따로 있는 것.
둘 다 흔한 경우는 아닐 것이다. 둘 다 도로의 확장과 관련된 사연이 있어서 저렇게 됐다.
전자의 경우는 경부 고속도로 청주-남이 사이가 대표적이다. 수원 요금소는 상행과 하행이 분리되어 따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도로뿐만 아니라 경부선 철도도 일부 구간--특히 대구-부산 사이--은 상· 하행이 뚝 떨어진 경우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제2 버전이 나란히 지나는 중부 고속도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인천 공항 고속도로도 상· 하행 복층 구간이 짤막하게나마 존재한다..!

Posted by 사무엘

2024/01/29 08:35 2024/01/2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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