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폴 블리스. Philip. P. Bliss (1838-1876).
19세기 미국의 찬송가 작사· 작곡자로 심심찮게 접하는 이름 중 하나이다.
이 사람은 바울과 빌립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복음전도자 겸 찬송가 싱어송라이터의 삶을 충실히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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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찌나 복음 선포와 혼의 구원에 진심이었으면.. 당대 기준으로는 파격적인 CCM을 만들었다.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초청)와 "하나님의 진리 등대"(선교)를 작사· 작곡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게 저 사람의 작품이다.

그리고 가사가 '성경'을 다루고 있는 독특한 곡..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과 "달고 오묘한 그 말씀"을 작사· 작곡했다(1874).
그렇잖아도 이 두 곡은 6/8박자에 가사와 멜로디가 좀 비슷해 보이지 않던가?
'성경'이라는 카테고리에 분류되는 곡이지만 여기 가사에도 구원과 복음 얘기는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그 뒤, 이 사람은 호레이시오 스패폴드가 지은 유명한 찬송시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평안, 1873)를 보고는.. 거기에다 우리가 지금 아는 그 멜로디를 작곡해서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1876).
이것 말고 "내 너를 위하여"(헌신)도 가사는 딴 사람 것이지만 곡은 저 사람 것이다.

그랬는데 이분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1876년 12월 29일, 오하이오 주에서 칙칙폭폭 열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미국판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당하면서 40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갔다.
강을 건너던 중이었는데 아래의 교량이 쇳덩어리 열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폭삭 무너진 것이다. 이름하여 애슈터뷸라 철교 붕괴 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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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랬던 교량이.. (열차가 정말 조그맣긴 하다.. 20세기가 아니라 19세기여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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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렇게 됐다.

열차는 20여 미터 아래로 떨어져서 박살이 났고, 저 사람 포함 90여 명의 승객이 목숨을 잃었다. 그 시절에 토목 건축 기술이 부족했거나 부실시공이 있었던 듯하다.
이때 열차의 동력원은 석유가 아니라 기껏해야 석탄이었지만.. 그래도 조명용 등불이 다 연료를 쓰고 있었고, 또 이 시절에 객차는 나무로 만들곤 했다. 그래서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사상자가 더 늘었다고 한다.

그랬는데.. 사고 현장에서 이분의 유품을 뒤지는 과정에서.. 그가 지은 새로운 찬송시가 적혀 있는 쪽지가 발견됐다. 조만간 이것도 출판사에 보내려 했는데 고인이 미처 못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발굴된 찬양이 바로... "속죄하신 구세주를 내가 찬양하리라"(1876)이었다!

이건 제임스 맥그라나한(McGranahan)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작곡가가 곡을 붙여서 1878년에 정식으로 발표됐다고 한다. 3박자이다가 후렴에서 4박자로 바뀌는 그 곡 말이다.
"속죄하신 구세주를"이 필립 블리스의 사후 유작, 마지막 찬송가가 됐다.

신기하고 경이롭지 않은가?
호레이시오 스패폴드는 선박 침몰 사고로 가족을 잃고서 찬송시를 썼는데, 거기에다 저 사람이 곡을 붙여 줬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사람이 교량 붕괴 사고로 소천하자, 그 사람이 지은 찬송시에다가 또 다른 사람이 곡을 붙인 것이다!

필립 블리스가 7, 80대 나이까지 더 오래 살았으면 20세기 초까지 찬송가가 얼마나 더 만들어졌을지 궁금해진다.
여담이지만 bliss는 옛날 Windows XP의 푸른 초원 배경그림의 작품 이름이기도 했다~!!! (극락, 최고의 행복, 축복.. 이런 뜻) 이것도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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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저 애슈터뷸라 참사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철도 교통사고이다. 뭐, 차량이 탈선하거나 신호가 꼬여서 정면충돌한 게 아니니, 순수하게 철도 쪽 사고는 아니지만 말이다.
조선은 1899년에야 그 쬐끄만 27km짜리 경인선이 전적으로 외국 기술과 자본으로 만들어진 게 최초이며, 교량은 이듬해에 간신히 완공한 한강철교가 최초였지 않던가?

그러나 미국에서는 수십 년 이상 훨씬 전부터 그 넓은 땅에 수천 km가 넘는 길이의 철도가 땅따먹기 하듯 자체 기술로 건설됐다는 게 참.. 대단하다. 그러다가 어쩌다 한번 저런 불행한 사고도 난 것이다.

그 시절 미국의 대륙 횡단 철도를 이용해서 미국의 동부(네브라스카)에서 서부 끝(캘리포니아)까지 가는 덴 1주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 지금이야 비행기로 4~5시간이면 가겠지만, 저 1주일만으로도 마차로 6개월 걸리던 것에 비하면 시공간 워프 수준으로 단축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러시아 대륙횡단 열차도 전 구간 완주하는 데 비슷하게 1주일 정도 걸린다. 이런 초장거리 열차가 등장하면서 경도별 시차라든가 범지구적인 시간대 동기화의 필요성도 최초로 제기되었다.

쟤들은 과학 기술이 저렇게 동시대 다른 나라들을 아득히 앞서 갔고, 한편으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패니 크로스비, 필립 블리스 등 아름다운 찬송가들이 발표돼 나왔다.
이것만 생각하면.. 서부 개척 시대의 끝물을 가던 19세기 미국은 bliss라는 단어의 뜻에 걸맞은 천조국이었던 것 같다. 통상적인 산업혁명기의 서유럽과도 분위기가 달라 보인다.

아 물론 인간 사는 곳은 어디든지 빛이 있으면 어둠도 응당 있었다.
저기는 시골 깡촌은 집집마다 샷건이 필수품이고, 부녀자들도 최소한의 총질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는 와일드 무법천지였다.

어지간한 남자들은 완전 술에 쩔어서 살았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난 이 정도 알코올에도 끄떡없는 진짜 싸나이" 허세 부리기 위해서였다;;; 이 짓 하다가 급성 알코올 중독 걸려서 골로 간 사람도 많았고, 정신줄 놔 버린 가장의 가정폭력 때문에 파탄 난 가정도 많았다!

그리고.. 링컨 덕분에 미국에서 흑인 노예 제도가 폐지되기는 했다만.. 그러자 저렴한 노동력은 노예 대신 외노자로부터 조달되기 시작했다. 중국(청나라) '쿨리'라고 들어 보셨나..?
미국의 저 찬란한 대륙 횡단 철도도 상당수가 이런 사람들을 현장에서 처참하게 갈아 넣으며 만들어졌다.

그들은 안전이고 인권이고 없던 정말 힘들고 위험한 현장에서 자국민 대비 정말 저렴한 임금 받으면서 일했는데.. 그 임금에서도 일자리 중개 수수료나 수송 비용, 송금 수수료 등 온갖 공제를 당하고 떼였다. 그들의 조국인 청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권익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비참하게 일해서 푼돈 건진 게.. 그들의 청나라 깡촌에서 가난한 소작농으로 있는 것보다는 덜 비참하고 더 나았다! 이런 합법 노예 계약은 서로 윈윈이었기 때문에 수요가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미국은 현대적인 개념의 대기업과 금융 경제 시스템이 그때 다 갖춰져 있었다. 철강 카네기, 석유 록펠러(로커펠러) 같은 사람도 다 이 시절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무한 시장경제 자유방임 초창기엔, 신흥 기업가 재벌 졸부들이 근로자 임금을 후려치고 각종 산업재해를 은폐하고, 경쟁 기업을 비열하게 말려 죽이면서 독점 담합.. 정말 정말 끔찍한 짓 추악한 짓도 많이 했다. 이 인간들은 워낙 악명이 높아서 '강도 귀족'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칼 든 전통적인 강도 하층민이 아니라, 칼 안 들고 더 무섭게 사람 잡는 강도 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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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브루주아들을 타도하자고 공산주의라는 괴물이 튀어나올 만도 하지.. 당대에 벌써부터 저런 만평이 만들어져 나올 정도였다.)

이 시절 창업주들은 젊은 시절에 진짜 미치광이처럼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가, 나중에 늙어서는 자괴감 느껴서 도의적으로 사회에 '기부'라도 왕창 많이 하면서 재산을 환원했다. 뭐 학교 세우고 병원 세우면서.. 병 주고 약 주고를 했다. 그런 기부로 과거의 흑역사를 다 덮을 수 있겠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이고~! 필립 블리스 얘기를 하다가 철도를 거쳐서 미국 역사 얘기가 나왔구나.;; 다시 찬송가 얘기로 돌아가 보자.
아무튼 저분도 미국이 한창 저렇던 시절에 복음 전도자로 살면서 저런 찬송시를 썼다! 이걸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미국에는 저렇게 엄청나게 선한 것도 있고, 엄청나게 악한 것도 존재해 왔다.

난 교회에서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속죄하신 구세주를' 요렇게 준비 찬송을 편성해 봤다. 그 밖에..

  • 가사에 ‘갈보리’라는 단어가 있는 곡들
  • 어딘가에 더 가까이 나간다고 말하는 곡들
  • 예수님이 나의 친구라고 말하는 곡들
    뭔가를 모른다고 말하는 곡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아 하나님의 은혜로 등~
  • 가족· 친지· 연인의 죽음을 계기로 만들어진 곡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그날 다가오네 등
  • 패니 크로스비 작사 + 윌리엄 도언 작곡인 곡들
  • 단조만: 현충일과 주일이 겹쳤을 때 ㅎㅎ
  • 분위기가 제일 힘찬 곡들: 무덤에 머물러, 마귀들과 싸울지라 등~

이렇게 비슷한 특성이 있고, 만들어진 계기가 비슷한 곡들을 한데 모으는 것도 의미 있어 보인다.

  • "놀라운 주의 은혜"(Haldor Lillenas) --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1910년대 곡
  • "주 하나님 큰일을 행하셨네" -- "살아계신 주"
  • "참 즐거운 노래를 늘 높이" -- "노래하는 순례자(하늘의 곡조 울리니)"

얘들은 전자는 클래식 찬송가 범주에 드는 반면, 후자는 더 캐주얼 리버럴한 곡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은 가사 내용은 서로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굳이 찬송가 vs 복음성가로 구분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찬송가, 더 나아가 기독교 음악 전반에 대한 더 유연하고 가사 지향적인 분류법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 추신

자, 원래는 본인이 여기까지만 글을 썼는데 말이다. '속죄하신 구세주를' 찬송가와 관련하여 긴급히 추가해야 할 관련 정보를 또 입수했다.
'속죄하신 구세주를'이라는 찬송시는 맥그라나한 말고 다른 사람이 이미 지은 옛날 멜로디가 붙기도 했었다. 마치 우리나라 애국가가 아주 옛날에는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 천부여 의지 없어서...' 그 스코틀랜드 민요 멜로디로 불리기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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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악보를 보시라~!
옛날 멜로디는 바로.. 우리말 찬송가에서는 '하늘 영광 버리시고 예수 강림하셔서'인 그 3/4박자 곡이다. 가사는 완전히 다른데.. 참 신기한 노릇이다.
하지만 저 찬송시를 매우 유명하게 만들어 준 멜로디는 아무래도 맥그라나한이 이 가사만을 위해 새로 만든 그 곡임이 틀림없다.

Posted by 사무엘

2025/07/20 08:19 2025/07/20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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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드로 서신

본인은 와이프와 함께 성경 통톡을 하면서 올해 초쯤엔 베드로전후서를 쭉 지나갔었다.
그런데, 와~ 이건 신약의 주류(!!)인 바울 서신이 아니라고, 특정 수신자가 존재하지 않는 일반서신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볼 게 절대 아니라는 걸 특별히 느꼈다.

그 짧은 분량에 몇 절 간격으로 주요 암송/유명 구절들이 빵빵 터져나온다. 후서보다도 전서가 더한 것 같다.
비킹에서 매우 치명적으로 변개된 구절 중 하나인 '말씀의 젖 먹고 자라라' 벧전 2:2도 그 중 하나.

이들 책에서는 precious 보배로운, 귀중한 이라는 단어가 다른 어느 책보다도 자주 나온다.
왕가의 제사장과 특별한 백성, 남녀노소 주종 인간관계, 위의 권위에 순종, 목(회)자를 향한 권면, 시험과 인내, 올바른 행실과 선한 간증까지, 바울 서신 몇 권치 내용이 다 압축된 것 같다.

베드로전서가 특별히 강조하는 건 그냥 선한 행실을 하는 게 아니라 불신자 세상 사람들이 비방하고 악담을 하다가도 무안해져서 입을 다물게 될 정도의 어마어마한 행실이다. 그들에게 너희의 소망을 증언하고 답변할 걸 늘 예비하라고..
이런 논조는 기존 바울 서신서나 심지어 야고보서에서도 딱히 못 봤던 것 같다.

거기에다 행실만 얘기하면 섭섭하니 벧전에는 지옥에 떨어진 천사, 죽은 자에게 선포, 감옥에 있는 영에게 선포, 구원의 모형으로서 물침례처럼.. 경륜이나 영적 세계 관련 어려운 구절까지 슬쩍 들어가 있다.

벧후 3장 끝부분을 보면 베드로가 바울 서신을 언급하면서 일부 내용이 참 질기고 난해했다고 얘기하는데..
"님이 기록하신 서신도 똑같이 난해해요"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베드로가 어려운 구절을 슬쩍 집어넣은 스타일을 총체적으로 살펴보니, 벧후 3:6은 단순 노아의 홍수 얘기가 절대 아니겠다는 생각도 더욱 확실하게 들었다.

성경에서 element라는 단어는 갈라디아서 4장과 베드로후서 3장에서 각각 두 번씩만 등장한다.
전자는 유치한 '초등원리' 문맥인 반면, 후자는 온 우주가 불에 녹는 상황이다 보니 '원소'라고 번역되었는데..

사실 이것조차 1800년대 이후 돌턴의 원자설을 학교에서 배운 후대 사람의 선입견이 가미된 번역이 아닌가 싶다. 뭐, 만물이 분자건 원자건 미립자 근본 본질 차원에서 다 분해되고 포맷될 거라는 점은 변함없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베드로에 대해서 뭐 "쿠오바디스"라든가 물구나무서기 자세로 십자가형 당해서 순교~~ 이런 카더라 일화를 찾아보기 전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라고 말하는 서신을 통해 기억하는 게 먼저이지 않겠나 싶다. 그 사람이 직접 후대의 크리스천들이 읽으라고 글을 남겨 줬으니 말이다.

2. 자동차

성경은 자동차가 발명되기 한참 전에 만들어진 책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자동차를 대입해 넣어도 싱크로율이 굉장히 높겠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세 곳 정도 있다.

(1) 출 20:17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종이나.. 소나 나귀나 소유 중 아무것도 탐내지 말라"
소나 나귀 대신에 "남의 차를 탐내지 말라~~"라고 생각해 보면 이 계명이 오늘날 기준으로 뭘 의미하고 어떻게 적용하면 되겠는지 감이 바로 올 것이다.

(2) 삼상 8:5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우리에게 붕붕이를 주소서"라고 생각해 보아라.
단순히 남 앞에서 간지와 가오 내세우려고 왕을 선출하고 나면.. 이제 왕의 유지보수 비용 때문에 세금 부담이 왕창 늘고 니들 등골이 휠 것이다.

그때 와서 후회하더라도 하지만 한번 권력 맛을 봐 버린 왕이 호락호락 하야를 하겠는가? 아니, 단순히 권력욕 때문이 아니더라도 자기 목숨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왕은 하야를 못 한다. 호랑이 등 위에 앉아버린 거나 마찬가지니까.

붕붕이는 물론 정치 권력과는 관계가 없지만.. 얘도 한번 지르고 나면 단순 차값+기름값과는 차원이 다른 지출이 발생하고 사람 생활 패턴과 씀씀이가 달라져 버린다. 카푸어 되고 나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3) 막 11:2 등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베드로야, 저 마을 어귀를 가 보면 공장에서 갓 출고된 새끈한 스타크래프트 밴이 키가 꽂혀 있을 것이다. 그거 몰고 이리로 돌아와라. 누가 뭐라 하면 '주님이 필요로 하신다'라고 대답해라. 내가 차주하고는 미리 입을 맞춰 놨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예루살렘 입성 장면 때 카퍼레이드가 같이 떠오른다.
예수님 제자들 중에는 그 나이의 남자들답게 차덕 컴덕도 있을 것이고, 베드로는 가방끈은 짧아도 대형에 해기사 면허까지 보유하고 있고.. =_=;;; (훗날 저 베드로전서· 후서를 기록하게 될 바로 그 사람이!!)

솔로몬만 해도 살았던 시대가 시대이다 보니 그 머리로 차덕 총덕 컴덕 항덕이 아니라 자연덕 생물덕이었다는 게 흥미롭게 느껴진다.

3. 안티오크

나는 '안티오크/안디옥(Antioch)'이라는 지명을 난생 처음 접한 곳이 성경이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 스타크래프트였다. =_=;;;
프로토스 외계인들의 본거지 도시 중 하나가 안티오크이기 때문이다. 프로토스 캠페인을 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리고 프로토스의 영웅 중 한 명은 이름이 Fenix인데.. (질럿이다가 나중에 드라군으로..)
안디옥이 등장하는 성경 사도행전에는 벨릭스(Felix)라는 이름의 총독이 나온다. (행 23:24)

이에 대한 기억이 잠재의식 속에 깊이 박힌 관계로, 난 사도행전 후반부(=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이후)를 읽으면 지금도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기억이 머리에 같이 어른거린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Fenix는 아마 불사조 phoenix를 베낀 명칭이었을 것 같지만, 본인은 그것보다도 성경 인물 Felix가 먼저 떠오를 정도이다. ㅠ.ㅠ

4. 호환, 마마, 전쟁

"내가 네게 기근과 ‘악한 짐승’들을 보내서 니 자식을 앗아갈 거다.
다음으로는 ‘역병’과 피가 니들을 지나갈 거고
그 뒤엔 내가 너에게 ‘칼’을 보낼 것이다.
나 곧 주가 이렇게 말한 줄이나 알아라." (에스겔 5:17~ 임의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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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름 3권 분립(lawgiver, judge, king)이 나뉘어 언급되는 구절이 있듯이,
성경엔 나름 옛날 어린이들의 3대 재앙이었다는 호환, 마마, 전쟁이 나오기도 한다! ㄷㄷㄷㄷ
세계 보건 기구(WHO)는 요즘이야 이것저것 욕 많이 먹고 있지만 한때는 그래도 국제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해서 천연두를 지구상에서 박멸하는 데 성공한 적이 있다. 즉, 3대 재앙 중 ‘마마’를 없앴다.

전세계에서 천연두 감염 발병이 마지막으로 보고된 게 1977년 10년경이다.
참고로 인류 역사상 마지막으로 단두대에 의한 사형이 집행된 것도 1977년 9월이니 꽤 비슷하다.;;;

유엔이야.. 잘 알다시피 ‘전쟁’을 없애려고 만들어진 단체이지만~~ 그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하긴, 먼 옛날에 한번 연합군 진영이었다고 그 나라들이 언제까지나 영원히 우방 동맹인 건 아니니까 말이다.

5. 머신러닝

데이터 → 정보 → 지식 → 지혜의 관계를 피라미드 계층으로 묘사한 그림이 있다. 이거 무슨 과학 → 수학 → 철학 → 신학 같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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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머신러닝에서 다루는 개념이지만~~
성경 공부와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커 보인다.

성경이란 게 무슨 학술논문, 수학 교재처럼 막 수리논리적으로 ‘엄밀하게’ 쓰여진 책은 아니다.
용어와 개념 definition부터 시작해서 lemma, theory, proof.. 이런 게 나오지는 않는다. 그나마 로마서가 일부 구간에서 그런 형태를 흉내만 비스무리하게 냈을 뿐이다.

  • 죄라 함은 *****한 것을 말한다.
  • 이 교리의 적용 대상으로서 닝겐이란 이러이러한 특성을 가진 검은 머리 이족 직립보행 포유류를 말한다. 최초의 시조는 아담이다. 생물학적 분류는 호모 사피엔스이다.

성경 여기저기에 흩어진 내용들을 분야별 주제별로 한데 모으고 체계화하면 조직신학 교재가 된다.
그럼 성경이 처음부터 조직신학 교재처럼 쓰여졌으면 좋겠지만, 그런 식으로 저술해서는 성경이 그야말로 동서고금 보편적인 텍스트가 될 수 없어진다.
조직신학 자체도 당대 인간의 학문 패러다임이 반영되어 만들어진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패러다임보다 더 위에 있는 텍스트이지 않은가?

그야말로 일자무식 농경시대부터 지금 과학혁명 정보화 혁명까지 동서고금 남녀노소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읽을 수 있는 텍스트가 만들어질 수 없다. 인류가 언제부터 그런 엄밀함을 따지기 시작했다고 감히 그런 배부른 소리를 지껄이나.

그리고 뭐랄까, 후세에게 사이드이펙트/나비효과를 끼치지 않으면서 수백~수천 년 뒤를 내다본 예언을 정확하게 담을 수가 없다. 이 주제만으로도 할 말이 많지만.. 일단 이 글의 주제가 이건 아니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결국은 평범한 스토리 ‘데이터’들을 담으면서 거기에다가 하나님의 성품을 슬쩍 담아 넣고, 여러 시대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역사 패턴도 찔끔 담아 넣는 게 성경 기록자의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은 추상적인 데이터로 가득한 책이며, 독자들에게 데이터를 통한 학습과 패턴 추출.. 일종의 머신러닝을 요구한다. 이걸 신앙 용어로는 “성령님을 통한 조명”이라고 표현한다. ㄲㄲㄲㄲㄲ

머신러닝에 underfit과 overfit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동일한 오류 유형이 성경 공부도 존재한다.
6일이라든가 1천 년을 문자적으로 안 믿는 거, 개나 소나 영적 해석에 비유로 치부하는 건 underfit이다.

반대로 본질적이지 않은 디테일에만 너무 문자적으로 꽂혀서 난리를 치는 건 overfit이라 하겠다.
솔로몬의 재판을 읽고는 “요즘은 CCTV와 유전자 감식 기술이 발달했으니 괜찮아요! 아 그럼 나도 앞으로 남의 아기 몰래 뺏어서는 저 사람 주라고 연기하면 되겠네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overfit인 듯. ㅋ

성경이라는 데이터가 점들이 저렇게 콕콕콕 박혀 있는 걸 말한다면.. 하나님이 의도한 선형이 과연 무엇일까 판단하는 건 닝겐들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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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무엘

2025/05/23 08:35 2025/05/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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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향유의 가격

성경에서 오병이어 기적 장면을 보면.. 5000여 명의 군중들한테 한 끼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비용 견적이 200 데나리온 정도로 산출됐다. (요 6:7, 막 6:37)
그런데 예수님에게 어떤 여인이 쏟아부은 향유라고 해야 하나.. 그거 가격 견적은 300 데나리온이 나왔다! (요 12:5, 막 14:5) 이걸 비교하니 무슨 생각이 드시는지?

당시 로동자 평균 일당이 1데나리온이라는 거, 그리고 요즘 밥값 물가를 같이 생각하면 200~300데나리온은 아주 러프하게 어림잡아도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비용이다. 자동차 한 대는 너끈히 살 수 있는 돈이고 사회 초년생이나마 직장인 연봉에도 근접한다.

우와~ 저 여인은 정말 예수님을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느껴진다. 요즘으로 치면 가히 초호화 고가 브랜드 명품 화장품이나 로션, 향수를 통째로 예수님 머리인지 발인지에다 끼얹어 없앤 격이다.

이러니 이건 성경에 기록되고 박제될 만도 한 사건이었겠다. 두 렙돈을 바친 과부 이야기는 “절대적인 양은 적으면서 진심”인 거고, 이 옥합 깨뜨린 여인 이야기는 “절대적인 양도 많으면서 마음도 진심”이랄까? 주님께 허비하는 건 허비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이 여인에 대해서 “아니 그 비싼 향유를 살 돈으로 차라리 가난한 사람 자선을 하지 무슨 저런 낭비를?” 이렇게 비아냥거린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진짜로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한 게 절대 아니라는 게 포인트다. 교회 가기 싫고 예수 믿기 싫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사고방식이다. 그냥 "으으~ 난 솔직히 저렇게까지 몽땅 다 바칠 자신은 없다~"라고만 말하고 마는 게 훨씬 더 정직하고 나았을 것이다.

사도행전 19장에 나오는 은 세공업자들이 바울 일행을 적대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다이아나 여신을 정말 진지하게 위대한 신, 자기의 절대자 구원자로 섬기는 게 아니었다. 그냥 자기들이 제조하는 다이아나 형상이 안 팔리게 되고 자기 밥줄이 끊기게 생겼으니 빡쳤을 뿐..
진짜 오로지 신념 이념에만 미쳐서 폭탄 들고서 "알라후 아크바르!!" 이러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 상당수의 우상 숭배는 그냥 돈이 얽혀 있다. 물론 요즘은 예수 믿고 교회 댕기는 것조차 그런 마인드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이지만 그건 별도로 생각할 사항이다.

2. 누가복음(눅)과 요한복음(요)의 관계

(1) 눅에는 “사람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기록)을 믿는다면 지옥에 대한 증언도 믿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눅 16:29-31)
요에서는 사람들이 모세를 제대로 믿었다면 예수님도 응당 믿었을 거라고 말한다. (요 5:46)

(2) 눅에는 죄인인 여인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무슨 죄인인지는 언급이 없다. (눅 7:37)
요에는 간음하다가 현행범으로 붙잡힌 여인이 나온다. (요 8:3)

(3) 눅에서는 침례인 요한이 회개의 열매를 촉구하면서 혈통상의 아브라함 후손 드립을 치지 말라고 말했다. (눅 3:8)
요에서는 예수님도 아브라함 같은 믿음이나 행실도 없는 주제에 아브라함의 후손 부심 따위 가질 자격 없다고 말씀하셨다. (요 8:39-40)

(4) 눅에는 사람들 가운데서 높이 평가받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럽다는 말이 있다. (눅 16:15)
요에서는 사람을 두려워해서 사람의 칭찬을 하나님의 칭찬보다 더 우선시했다는 진술이 있다. (요 12:43)

(5) 요에서 소경이 눈 뜨고 “주여, 내가 믿나이다!” (요 9:38)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왠지 눅에서 십자가에 매달렸던 강도가 “주여, 당신의 나라로 가실 때 부디 저도 기억해 주십쇼~!” (눅 23:42) 이러던 것과 심상이 아주 비슷해 보인다.
“그 참혹한 십자가에 주 달려 흘린 피”라는 찬송가는 2절에서 그 강도를 언급하는 한편으로, 후렴 가사는 “나 믿노라, 나 믿노라”라는 걸 생각해 보자.

3. 복음서의 기적과 사도행전의 기적

요한복음 9장에는 선천적인 소경이 나온다면, 사도행전 3장에는 선천적인 하반신마비 앉은뱅이가 나온다. 대충 이런 장면이다.

“이 불쌍한 장애인 거지에게 한푼 좀 줍쇼~~ 네에에? ㅠㅠㅠㅠ”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른다. 니가 뭘 원하는지는 얼추 알 거 같다만, 난 돈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내가 가진 건 아주 특출난 스킬이지. 예수 싸부님을 3년간 따르면서 습득된 스킬이야. 당신 같은 사람이 놀라서 까무러칠 스킬이지. (손 내밀며) 나사렛 예~쑤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을지어다!”

“아니 다 큰 어른이 장애인을 갖고 노나~ (손을 탁 뿌리치며) 아 돈 안 줄 거면 됐네 이 사람아..!!
어?? 어라? 뭐야, 다리에 힘이.. 일어서지네?? 엇 세상에 내가 걸을 수 있게 됐잖아!!”

이게 복음서에서 줄곧 등장하는 예수님의 기적과 차이점으로 내 눈에 와 닿는 건 두 가지이다.

(1) 이때가 그놈의 안식일은 아니어 보인다는 거. 안식일에 병 고친 거 갖고 예수님이 트집 잡힌 걸 생각하면 진짜 안식일 트라우마라도 생겼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오늘날로 치면 예수님을 무슨 무면허 의료행위 했다고 고소할 각이다. ㄲㄲㄲㄲㄲㄲㄲ 예수님은 그야말로 현대 의학을 아득히 뛰어넘는 일을 하셨는데도 말이다.
아니면 인공위성 우주발사체를 보고 영공통과료를 안 냈네, 비행계획 신고를 안 하고 멋대로 우리 머리 위를 날아다니네, 항공법 위반이네 어쩌구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2) 사두개 인이 본격적으로 악역으로 등장한다는 거. 복음서 시절에는 사두개 인은 그냥 “칠형제와 한 번씩 다 잤던 형수는 최후에 누구 아내가 되는 겁니까?” 잔머리 정도나 굴렸던 분파였다. 저 때 악역은 그냥 바리새 인, 서기관 정도였었는데..
하지만 사도행전의 타임라인은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하신 이후이다. 그러니 부활이란 걸 믿지 않는 사두개 사람들도 본격적으로 제자들을 고발하는 적대세력으로 등장하게 됐다.

하긴, 예수님뿐만 아니라 사도들도 무려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을 행하기도 했다.
사도행전 9장에서 ‘다비다’라는 여인, 그리고 20장에서 졸다가 건물 밖으로 추락사한 ‘유두고’. 하지만 이건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행한 기적보다 존재감이 훨씬 작고 사람 이름도 생소한 편이다. ㄲㄲㄲㄲ

4. 사도행전과 복음서의 추가적인 유사점과 차이점

(1) 사도행전은 저자의 특성상 아무래도 누가복음의 연장선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복음 전파 사명이 계승되는 부분을 생각하면 마태복음의 끝과 사도행전의 시작이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누가복음의 끝에 묘사되는 승천 장면과 사도행전 시작의 승천 장면은 살짝 다른 묘사도 있으니 말이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동안 변모도 하고 승천도 했다고 묘사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2) 타 복음서들은 바리새 인이나 서기관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적대시하고 배척했다고 묘사하는 편이지만 요한복음은 그냥 유대인들이 지위 막론하고 전반적으로 예수님을 배척했다고 묘사한다.
그것처럼 사도행전은 믿지 않는 ‘유대인’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자주 나온다. 이건 사도행전이 누가복음이 아니라 요한복음을 꽤 닮은 면모인 것 같다.

(3) 예수님은 체포되고 나서 온갖 황당한 거짓 고소 내용에 대해서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않아서 침묵하셨고, 오로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에만 집중하셨다. “니가 그리스도냐?” 이런 부류의 질문에만 짧게 핵심만 답변하셨을 뿐이다.

그 반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은 아무래도 예수님과는 처지가 다르니 거짓 고소에 대해서 예수님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하고 자기 권리를 챙긴 면모가 보인다. 자신이 골수 바리새 인 출신인 것과 한편으로 로마 시민권자인 것을 잘 활용했고, 심지어 적절한 타이밍 때 부활 드립을 쳐서 바리새 인과 사두개 인 사이의 내분 팀킬도 조장했다. 이런 건 뭔가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무해하라”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4) “저놈을 없애 버려라!!” Away with him, Away with this man도 뭔가 요한복음과 사도행전만의 공통분모라 하겠다. (요 19:15, 행 21:36, 행 22:22)

특히 fellow는 출 2:13이나 욘 1:7 같은 곳에서 친근한 동료, 동기라는 뜻이 있지만, 가끔씩은 그것보다 더 멸칭으로 놈, 작자, 새X라는 뜻도 얼마든지 들어간다.
아합이 미가야를 부를 때도, 그리고 베드로가 “이놈도 예수와 한 패였어요!”라고 정체를 폭로당하려 할 때도 다 fellow가 쓰였었다.

5. 나머지 미분류 얘깃거리들

(1) 성경에서 예수님이 분노하신 건 제자들의 불신, 성전 장사꾼들(두 번이나!!),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 악행 이렇게 얼추 세 갈래로 나뉜다. 나름 서로 다른 분야인데 이걸 조목조목 분석하고 세분화해서 “주님의 빡침” 같은 설교나 강해를 만들어도 될 것 같다.

(2) 예수님이 죽으심과 관련해서 사용하신 물건, 들렀던 장소들은 공교롭게도 전부 다 새거다. 당나귀, 다락방, 무덤.. 신기하지 않은가? 남이 썼던 중고는 전혀 없다.

(3) 성경에 나오는 현타의 대표적인 예는 탕자의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눅 15:17)

(4) 성경에서 뭔가 찢어진 게 좋게 등장하는 건 예수님의 죽으심 직후에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나머지는 암곰이 애들을 찢었다거나, 웃사가 천벌 받아 죽으면서 찢겼다거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얘기들이다.

(5) 성경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해서 저렇게 말하지만 한편으로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고(요 4:22),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졌다고도 말한다(롬 3:2).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잘못됐고 척결되고 없어져야 할 대상인 건 절대 아니다.

Posted by 사무엘

2025/02/15 13:35 2025/02/1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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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한번씩 했던 말들이긴 하지만 그걸 이런 식으로 나열하고 한데 대조· 비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주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니 이렇게 한번 더 개념을 정리하도록 하겠다.

1. 비킹: 예정 vs 자유의지

난 기회가 된다면 킹 제임스 진영의 밖에 있는 제도권/일반 교회 신자와 다음 주제들에 대해 언제든지 진지하게 토론해 보고 싶다.

  • 님 다니는 교회· 교파에서는 예정과 자유의지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
  •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
  • 선과 악을 분간 못 하는 어린 아기는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어찌 될까? 이런 의문에 대한 댁들의 생각은 어떤가..?

난 이 주제에 대해 극도로 단순화시켜서 비약해서 말하자면..
"십자가 이전에는 알미니안(자유의지), 그 이후부터는 칼빈(섭리, 예정, 영원한 구원)"설을 개인적으로 지지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뜻을 분간한다.

성경에는 당연히 절대자 하나님의 주권과 재량, 예정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마다 환경 처지가 제각각이고 신체· 지능 리소스도 제각각이다. 하루 종일 일한 품꾼이건 마감 1시간 전에 온 품꾼이건 동일한 일당을 받았다는 포도원 비유도 있다. 모태신앙 구원도 있고, 십자가 강도 같은 끝물 구원도 있다.

(1) 그러나 이건 개개인의 구원 여부가 엿장수 마음대.. 아니, 하나님 마음대로라는 얘기가 아니다.
미리 아심도 있고 구원받은 사람의 신분 변화가 '예정'된 건 있지만, 그게 로보트 마냥 개개인의 구원 여부를 말하는 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정을 수학 집합에다 비유하자면 원소나열법이 아니라 '조건제시법'이다. 울나라 법에다 비유하자면 특별사면이 아니라 일반사면을 말하는 거다.

"파라오의 마음을 더 강퍅하게 만들겠다" 이건 스스로 삐딱서니 타기 시작한 악인의 벡터의 크기 정도나 하나님이 더 키워 버리시겠다는 얘기이다, 아예 벡터의 방향을 마인드 컨트롤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시험이나 함정수사는 기회제공일 뿐, 아예 대놓고 죄 지으라고 꼬드기는 범의유발이 아니다.

어떤 경우건 "신이 누구누구는 처음부터 죄인 역할극을 하게 만들려고, 지옥불로 떨굴려고 창조했다", "하나님이 악도 필요해서 같이 창조했다" 같은 식의 결론은 난 절대절대 지지하지 않는다.

아 그래서 하나님이 악도 필요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독가스실도 냅두고, 북괴 정치범 수용소도 저렇게 냅두고 731 부대와 캄보디아 킬링필드도 다 묵인한 건가?
그러면 죄의 책임이 인간이 아니라 신에게 있는 꼴이 된다. 그런 하나님 믿으라고 불신자한테 복음을 참 잘도 전할 수 있겠다.

저걸 믿을 바에야 차라리 진화론이 낫다!! 진화론은 "서로 죽고 죽이고 속고 속이고 중독시키고 말려 죽이는 자연의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신이 만든 게 아니라면 오랫동안 스스로 진화해서 저리 된 거다"라고 이렇게 변명하는 거라도 있다! 알겠는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죄악까지 전부 하나님이 의도한 빅픽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건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착각하는 거다.

(2) 이와 같은 맥락으로.. 아기· 영유아가 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가 도대체 신학적으로 왜 논란이고 논쟁거리인지 난 이해되지 않는다.
예수님 탄생 당시에 헤롯 왕에게 학살당했던 2살 이하 아기들이 다 원죄 때문에 지옥 갔다면.. 나는 정말 기독교 안 믿었을 거다. 나부터가 부끄러워서라도 그런 신 믿으라고 주변에 못 전한다.

성경에 따르면 그 어떤 흉악범죄자라도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당 갈 수 있다. 반대로 예수 안 믿고 자기 죄 가운데 죽었다면 그 범죄자를 체포한 경찰이나 사형 판결을 내린 판사 검사, 심지어 그 범죄자에게 희생당한 피해자라 해도 지옥 간다.
이건 불신자 입장에서는 선뜻 동의나 납득이 안 될 수 있지만, 이게 기독교 교리이다. 허나, 이런 기독교조차도 예수님을 선택하거나 거절할 능력조차 아직 없는 아기까지 몽땅 지옥으로 보내는 미친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3) 내가 간극 재창조를 적극 지지하는 이유도 겨우 젊은 지구 오래된 우주 같은 과학 연대기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6천 년 전 6일 창조가 전부라면 사탄 마귀는 도대체 언제 창조됐고 언제 타락했는데? 인간은 죄를 짓는 바람에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후손들이 대대로 고생하게 됐구만, 그럼 저놈은 언제 어디서 반역해서 무슨 처분을 받았는데? 최소한 인간보다는 훨씬 더 큰 스케일의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는가?
이게 이전 세상의 멸망과 간극 없이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러니 성경에는 하나님의 주권 예정도 있고, 인간 쪽의 자유의지도 있다. 가중치가 반반이고 상호 보완적이다. 마치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세 분과 한 분..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 거의 그런 급이다. 서로 자기만 옳다고 피터지게 싸울 주제는 아니어 보인다.

이것 말고도 킹 진영과 비킹 진영 간에는 교회와 이스라엘(유대인)의 관계, 전천년주의 vs 무천년주의 같은 관점도 차이가 있다. 더 깊게 들어가면 세대주의도 나온다만, 이 이슈는 이 글에서는 일단 논외로 하련다. 벌써 글이 너무 길어졌으니 말이다.

2. 킹: 영어 vs 원어

자, 킹 제임스 진영은 한킹이고 흠정역이고 표킹이고 어느 역본 진영을 가건, 위에서 논했던 저런 교리 문제는 그럭저럭 다 일치한다. 이견이 없고 교통정리가 돼 있다. (적어도 난 그런 걸로 알고 있음) 나는 저 관점이 매우 합리적이고 건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좁디좁은 진영을 지지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킹 제임스 진영들이 시급하게 필요한 게 뭐냐 하면.. 원문과 원어, 원어와 영어 사이의 개념정리 교통정리이지 싶다.
이게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자체적으로 승패가 가려지질 않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작은 킹 진영들이 더 쪼개지고 분열되는 거다. 그러면서 자기 역본이 제일 짱이네 하면서 도토리 키 재기 대립이 끊이질 않는다. 이거 심각한 지경이다.

일단, 원문 레벨은.. 정말 더 말이 필요하지 않다.
루터고 칼빈이고 옛날 종교개혁자 대선배들은 마 5:22가 "누구든지 자기 형제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화내는 자"라고 적혀 있는 바른 본문 계열의 성경을 봤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오늘날의 비킹들은 그렇지 않다. 그냥 무조건 화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다.

요일 5:7 요한의 콤마 삼위일체 구절도 마찬가지. 비킹이 삭제한 게 아니라 오히려 킹이 후대에 첨가한 거라고 반박하는 분도 있다. 근데.. 이때는 킹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아예 가톨릭 예수회의 두에 랭스 성서조차도 이 구절이 들어가 있었다. 빼면 뺐지 도대체 누가 언제 왜 뇌피셜을 펼쳐서 첨가를 했다는 말인지..??

킹 유일주의를 반대하고 반박하는 그 어떤 목사, 신학자도 벧전 2:2가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영적으로 자라려면"이 틀렸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려면"이 사본학적으로(?) 맞다고 자신의 학자적 양심과 손모가지를 걸고 맹세하는 사람..? 난 못 봤다.

이런 것들 말이다. 이건 번역 오역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원문 내용이 변개되고 달라진 사항이다. 다시 말하지만 옛날 칼빈이나 루터나 에라스무스 이런 사람이 번역했거나 봤던 성경이랑, 지금 현대인들 대다수가 보는 성경이 이런 건 서로 같지 않다.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나는 킹 쪽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말씀 보존 학회가 다른 행실이나 언변에서 제아무리 깽판을 쳤어도 걔네들이 이 주제에 관해서 말하는 건 절대적으로 맞다. 나는 저쪽을 지지한다.

자 여기까지는 한킹 흠정 표킹 어느 진영들도 일치한다. 그러나 그 뒤에 번역을 함에 있어서 영어와 원어의 비중을 서로 어떻게 둘 것인가 하는 것에서 또 예송 논쟁 노론 소론, 탕수육 부먹 찍먹 같은 당파싸움이 벌어져 있다.

내가 예전에도 말했지만, 이 바닥 대안 성경 1호라 할 수 있는 말보회 한킹은 영어 킹을 그대로 곧이곧대로 중역한 성경이 아니라, 영킹과 동일한 원어 대본을 번역하고 영킹을 일부 참고만 한 성경이다. 그래서 여기에 만족하지 못해서 원어 누룩(?)을 좀 뺀 게 흠정역이고, 흠정역보다도 더 과격하게 영어 직역을 추구한 역본이 표준역.. (심지어 도량형까지 마일, 파운드 그대로 썼을 정도로. =_=)

예를 들자면 "영어로 같은 단어이면 우리말로도 (가능한 한 어지간해서는 몽땅) 다 같은 단어로 번역돼야 한다", "it came to pass도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 "God forbid는 하나님이 금하신다라는 뜻을 넣어서 번역해야 한다" 이런 거 말이다. 영어 KJV는 영어권 화자에게만 최종 권위인가, 아니면 원어 원문과 대등한 전세계의 최종 권위인가???

사실 성경 원어 원문은 우리 생각 이상으로 꽤 함축적이고 모호성이 많다. 뜬금없이 나오는 it he 대명사가 뭘 가리키는지 애매한 게 많고, 시제가 과거 미래 중 뭔지, 대화 인용이 어디까지이며 어디부터가 내레이터인지.. 알쏭달쏭한 게 많다.
이런 부분에서 한킹은 영킹과 자잘하게 미묘하게 일치하지 않는 게 있다. 그러니까 오역 변개는 분명 아닌데 어쨌든 영킹과는 미묘하게 다른 이게 오로지 영킹 최종 권위 순수주의(!!!) 성향인 분들한테는 성이 안 차는 거다. =_=;;

그럼 원어가 헷갈릴 때는 무조건 영킹대로 번역만 하면 되느냐? 그런데 영어는 또 영어만의 중의성이 있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자면 전치사. for을 '위하여'라고 할지, '인하여'라고 할지?? of나 in은 또 얼마나 뜻이 다양한가?
제아무리 교리적인 편견 없이 기계적으로 곧이곧대로 번역만 했다고 한들, 교리와 해석을 전혀 가미하지 않고 번역을 옳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킹 제임스 영어는 현대 영어와는 뜻이 달라진 것도 여럿 있고, 이럴 때도 번역자의 해석과 취사선택이 필요하다.
제아무리 영킹이 단어 뜻을 스스로 정의하는 내장사전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대로 엄밀한 뜻 구분 없이 단순히 운율이나 패러프레이징 차원에서 비슷한 단어를 일부러 다르게 늘어놓은 것도 있다. slay와 kill, create / form / make 같은 거.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고 이 블로그는 킹이나 비킹, 심지어 불신자까지 다 보는 공간이니 내가 내막을 자세하게 다 늘어놓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거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앗싸리 오로지 영킹 그대로 번역만 할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진작에 해결됐을 텐데 그것도 아니니 참 문제다.;;

그러니 이 동네에서는 아까처럼 예정이냐 자유의지냐 이런 거 논쟁은 할 필요 없고, 그 대신 비킹 입장에서는 정말 상상도 못 할 희한한 주제를 갖고 논쟁을 벌이는 지경이다.

아 끝으로.. 영킹에 하나님 영감이 또 짠~~ 임했건, 자필원문에 임했던 영감이 번역과 필사 과정에서도 쭉 내려오고 '보존'되어 왔건.. 결과물은 어쨌든 지금 우리말 성경도 영감으로 주어져 있다는 얘기 아니냐?
이거 갖고도 너무 쓸데없이 머리 쥐어뜯고 싸우지는 말자구우~~ 아멘!

Posted by 사무엘

2024/10/30 08:35 2024/10/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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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편

성경의 시편은..

  • 하나님 쪽은 내가 죄 때문에 너무 더러워서 차마 나아가기가 민망하고
  • 인간 쪽은 당장 악인 원수들로부터의 해코지가 두렵고..

이렇게 양측으로부터 샌드위치 신세가 된 사람의 처절한 고뇌가 많이 담겨 있다.

물론 시온이 어떻고 땅 상속이 어떻고 하는 건 구약 관점의 보상 얘기이다.
원수에 대한 저주나 보복이 종종 언급되는 건 하나님 관점 내지 재림 관점에서이다. 신약 크리스천의 행실 교리로 참고할 사항은 아니다.

허나, 신약 크리스천도 정규분포 안에 드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적 전쟁을 치른다면.. 저렇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낀 시편 기자의 심정을 거의 똑같이 경험하게 되는 게 정상이다. 시편 얘기가 지금이라고 해서 별개가 절대 아니다.

죄에 대해서 "그래서 뭐 어쨌다고? 어차피 남들도 다 똑같이 하는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잖아? 니 혼자 도도하게 굴어 봤자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이렇게 치부하는 게 아니라~~~
"이런 죄를 하나님이 싫어하시는구나~! 이런 죄를 지은 대가가 누군가의 피흘림과 죽음이구나! 이런 더러운 마음 상태로 어찌 주 앞에 나아갈 수 있으리요?"

이렇게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같이 싫어하는 거.
"세상에서 부귀영화 누리면서 1천 일보다, 주와 함께 초막에서 단 하루가 더 낫다~~ 금은보화보다 더 낫다"
이러는 그 심정, 그 영성을 시편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이건 정말 평범한 상태로 기록할 수 있는 시가 아니다.

복음서 이후 신약 성경의 상당수를 바울이 기록했다면, 시편 대부분은 다윗이 기록했다.
왜 하나님이 다윗을 사용하셨는지(한때 간음 살인이라는 흉악한 죄를 지었는데도), 반대로 사울이 인간적인 평가 대비 하나님이 왜 학을 떼 버리셨는지?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다.
이래서 성경은 겨우 인간의 생각대로 막연하게 “그냥 우리끼리 차카게 살자” 스타일로 써 갈긴 책일 수가 없는 것이다.

2. 찬송가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들 중에는 작사자가 주변 가족, 친지, 연인을 질병이나 사고로 잃고 나서 극심한 슬픔과 고난 가운데 가사를 지은 것이 여럿 있다.

(1)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 내 영혼 평안해 (호레이쇼 스패포드)
작사자의 4살짜리 아들이 병으로 죽고, 나머지 네 딸들을 여객선 충돌 사고로 모조리 익사.. (19세기 말. 인제 증기기관 여객선이란 게 처음으로 등장했던 시절임)

(2)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조세프 스크리븐)
작사자의 약혼녀가 결혼식 바로 전날에 강물에 빠져 익사함. 그 뒤 모친이 중병에 걸려서 위독하다는 소식까지..

(3) Near to the Heart of God (Cleland B. McAfee)
작사자의 어린 조카딸 2명이 디프테리아에 걸려서 죽음 (19세기 말, 이런 후진국형 전염병이 아직 현역이던 시절)

(4) 그 날 다가오네 - 얼마나 영광스러운 날일까 (제임스 힐)
작사자의 장모가 갑자기 근육마비에 걸리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남

이것 말고도 다른 예들이 또 있겠지.
본인은 교회에서 집회 전 준비찬송을 인도할 때 가사 내용이 서로 비슷한 거, 조나 박자가 비슷한 것, 단조로만 이뤄진 것, 혹은 뒤에 이어질 설교 및 강의 주제와 관련 있는 것, 후렴에 ‘주여’가 나오는 거, 같은 작사-작곡자 쌍인 것 이런 것들을 묶어서 편성해 봤다.

그랬는데 한번은 "작사자가 가족· 친지를 잃고서 지은 곡들"만 골라 보니 저렇게 아주 그럴싸한 조합이 나왔다. 심지어 카테고리도 기도와 간구, 위로와 평안, 천국과 재림 이렇게 다양하다.
물론, 그 특성상 즐겁고 경쾌한 곡은 별로 없고 장송곡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저런 찬송가를 굳이 장례식장에서만 불러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3. 여담

- 성경에 주석 성경이 있다면 찬송가에는 해설 찬송가가 있다. 원래 영어가사라든가 이 곡이 만들어진 계기와 배경과 사연, 작사자와 작곡자에 대한 신상 정보 같은 것들을 알면 그 곡에 대한 애착이 더 생길 수 있다.
물론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검색으로 저런 것들을 대번에 다 찾아볼 수도 있지만 말이다.

- 요즘 사람들은 아예 19~20세기 클래식 찬송가가 아니면 마커스니 어쩌구 하는 2010년대 이후 CCM이다.
그 사이에 낑겨 있는 1980~90년대 초창기 CCM/복음성가는 차차 잊혀지고 못 들어 본 세대가 늘어나는 것 같다. =_=;;

- 성경에 따르면 철저하게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하라", "하나님 사랑" 그 다음에 "이웃 사랑"이다. 비싼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 자선을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 발에다가 향유를 끼얹어 버린 것은 허비 낭비가 절대로 아니었다. 정반대.. 주님이 귀하게 받으시는 경배로 인정됐다~!!

- 사도행전에 기록된 베스도와 아그립바(행 26:24,28)의 반응은.. 오늘날에도 복음을 거부하는 불신자들의 전형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정말 동일한 패턴이다.

- 성경에 기록된 기도들 예시만 갖고도 설교나 강해를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다니엘서 9장이나 사도행전 4장은 고난이 깃든 가운데 정말 기도를 예쁘게 잘한 것이다. 왕상 8 솔로몬의 기도도 이런 범주에 들까?
그에 비해 삼손이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기도는.. 그냥 안습하고 처절한 기도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9/13 08:35 2024/09/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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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관련 개드립들

1. 세상 학문과의 관계 #1

- 성경 수비학의 관점에서는 3이나.. 특히 7이 완전한 수라고 간주된다.
그러나 수학에서 말하는 perfect number 완전수는 6, 28 같은 수이다. (자신을 제외한 약수들의 합이 자신과 같은 수)

- 성경에서 말하는 tree of life는 에덴 동산에 있었던 생명나무.. 그야말로 환상의 아이템이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에서 말하는 tree of life는 생물들의 진화 계통을 나타낸 트리 네트워크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세상 역사에서 말하는 그리스 아테네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수학· 기하학이 발달하고 헬라 문화가 태동하고 민주주의가 발생했던 곳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리스(헬라)나 알렉산드리아의 평판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급이다.

2. 세상 학문과의 관계 #2

계 7:1 땅의 네 모퉁이를 보고는 “성경에 따르면 지구는 평평하다”라고 어거지 부리는 건..
대하 4:2 같은 구절을 근거로 “성경에 따르면 원주율은 3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과 아주 비슷해 보인다. =_=
(거대한 원형 놋쇠 대야--솔로몬의 바다--가 지름은 10큐빗인데 둘레가 30큐빗이라고 나와 있음)

나는 성경에 수학· 과학적으로 고증오류가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전혀 아니다.
성경은 수학· 과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책이 아니며, 과학 저널 논문 문체가 아니라는 거.
오히려 수학· 과학의 영역 밖의 초월적인 주제를.. 문과 이꽈 불문하고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용어와 문체로 다뤘다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과학과 접점이 있는 주제를 언급한다면 그건 절대로 오류가 없이 맞다는 거. (예: 흐르는 물에다 손 씻으라는 권면 하나만으로도 엄청 시대를 앞서갔었음)

이렇게만 알면 된다.

3. 난폭운전

오~~ 성경에도 난폭운전이란 게 있구나!! 완전 마음에 든다. ^^

"저 사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병거를 모는 폼이 님시의 아들 예후 같습니다. 그 친구는 평소에 병거를 미친 듯이 격렬 난폭하게 몰잖아요." -- 왕하 9:20

심지어 영어로는 furiously이다...!!!
분노의 질주 fast and furious 할 때의 그 단어이다. 내 차에다 인쇄해서 붙여 놓을까 보다.
주변 옆 차로는 씽씽 잘 가는데 내 차로만 못 가고 멈춰 있는 걸 차마 눈 뜨고 못 봐 주는 것.
바로 이것이 모든 과속 난폭운전의 기본 발상이다.

4. 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왓~~ 문구가 대박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도대체 어디서 만들었냐??
이제 전도서 3장을 읽다 보면 이태리타올이 생각날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5. 색깔

사용자 삽입 이미지

blue, purple, scarlet.
어쩌다 보니 집에 진열돼 있는 수건들의 색깔 순서가 출애굽기 성막을 떠올리게 한다..!!
성경 덕후는 별의 별 현상이나 패턴을 보고도 성경과 연관시킬 수 있다. ㅋㅋㅋㅋㅋ

Posted by 사무엘

2024/09/05 08:35 2024/09/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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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남녀 질서

* 이런 고리타분하고 기초적인 주제에 대해서 지난 10여 년 동안 내가 이 블로그에 글을 쓴 적이 없었던가 보다. 지금 생각날 때 써서 올린다~!! ^^

...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 (고전 14:34)
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 (딤전 2:12)

이거는 다른 가장들(기혼 남자)까지 한데 모여 있는 교회 내부 집회에서 그 회중을 대표하고 인도하는 활동이 여성에게 일단 불허라는 뜻이다. 설교는 말할 것도 없고 대표기도 같은 것도 말이다. (딤전 2:8)

그러나 여자는 성인 남자가 아니라 어린애들을 가르치는 건 당연히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주일학교 교사..!!
애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가 찬 미혼 자매들에게 훈수 놓는 것도 할 수 있다. 여자는 일체의 권위를 절대 행세하지 못하고 닥치고 입 다물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글쎄, 음대 나온 자매가 성가대에서 성인 남자들까지 가르치는 거는? 조금 수위가 높아지지만 그것까지는 괜찮다고 본다.
성가대 연습은 공개적으로 행해지는 게 아니고, 찬양 중에도 지휘자가 혼자 드러나고 주목받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예 불신자 남성을 초청해서 지휘할 바에야 믿는 자매가 훨씬 낫다.

그리고 이것도 내 뇌피셜이다만.. 남자고 여자고 성인 청년이지만 다들 미혼인 파라처치/선교단체의 예배라면 찬양인도나 대표기도 정도는 자매도 못 하란 법 없다고 본다.
어차피 다들 미혼이고 인원부터가 성경이 상정하는 일반적인 정규분포 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애매한 상태이다. 뭐 그런 식이면 요즘처럼 이렇게 결혼을 안 하거나 너무 늦게 하는 풍조도 총체적으로 다 비정상이긴 하지만..;;

성경에서 인간의 위계질서를 논하면서 남자를 여자보다 더 우선시하는 건 기혼이 전제됐을 때의 얘기이다.
남자여서 예우받는 게 아니라 가장이어서 예우받는 거다. 그 가장 역할을 남자가 맡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남자가 예우받는 듯이 보인다. 내가 알기로 논리가 그렇다.

끝으로..
교회 안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자기를 드러내고 복음 전하는 것에는 당연히 남녀노소 구분이니 위계질서니 없다! 누구나 해야 한다.

나는 세상 법에서 이거랑 비슷한 법리가 적용되는 게 요거라고 생각한다.
"현행범인은 누구든지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212조)
우리나라의 법은 사적제재를 절대 금지하고 정의 실현은 오로지 경찰과 사법에다가만 위임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장 음주운전 차량을 세우고 차키 뺏고 운전자를 팔 꺾어서 제압하는 것 정도는 사법 수사권이 없는 그 누구에게라도 허용해 준다.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허용해 준다. 당연히 진짜 경찰이 올 때까지 일시적으로만 말이다.

  • 당장 사람을 해치려 하는 중범죄 현행범은 그 누구라도 제압이 허용되듯이, (그 뒤 신속히 경찰에게 인계)
  • 의사나 정식 구급대원이 환자를 완전히 인계하기 전까지는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이라도 CPR을 잠시라도 중단하지 말아야 하듯이,

여자라도 교회 강단에서 설교를 안 할 뿐이지, 세상을 향한 복음 선포는 저것과 동급으로 시급하게 해야 한다.
이거는 "여자는 잠잠하라"가 적용되는 상황이 전혀 아니다. 애초에 교회 안이 전혀 아닌걸..

개인적으로 여자 목사는 바람직하지 않고 교리적으로 잘못됐다는 소신이다. 물론 그 여성도 신학 공부 많이 했고 성경 많이 알고 어지간한 남성들보다 훨씬 더 똑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녀는 강단에 서는 목회 말고 다른 방식으로 주의 일을 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허나, 이와 별개로.. 자기는 남자로서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다하지도 않는 주제에 다른 바람직한 자매를 보고 "어디 여자 주제에 나댄다" 이런 미친 소리를 함부로 하는 것 역시 본인은 완전 극혐한다.

※ 여담

(1)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와 더불어 성경이 남녀 차별적이라고 비판(?)받게 만드는 양대 구절은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이다. 이거는 교회에서 잠잠 버전보다도 더 쉽게 논파할 수 있다.
성경에는 그 구절 바로 다음엔 "남편은 자기 아내를 목숨 바쳐 사랑해 줘라~ 모질게 대하지 마라"도 있는데?
남자 쪽 조건은 싹 무시하면서 여자 쪽 조건만 들이대는 건 그 사람의 논리가 잘못된 거다. 성경은 결코 편파적이지 않다. 가정에서 역할의 차이는 우열 차이 내지 계급 차이가 아니다.

(2)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뵈베를 신약 교회 최초의 '여자 집사'로 만들고 싶어서 저 사람이 deacon이었다고, 헬라어 원어로는 집사라는 뜻도 된다는 얘기가 종종 나돈다. 심지어 요즘 성경들은 번역 자체가 그렇게 되는 편이다.
남자 집사는 스테판이고 여자 집사는 뵈베인 거냐? 뭐, 성경 번역에 대한 최종 권위가 있는 사람에게는 이건 그다지 영양가 있는 낭설이 아니다. 뵈베는 지역 교회를 섬기는 주님의 종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3) 바울 서신서에 나오는 "형제들아"가 요즘 성경에서는 "형제 자매 여러분"으로 바뀌는 추세이다. 우리말 성경은 무려 30여 년 전의 표준새번역에서 이런 양성평등 시도가 행해졌다.
저 brethren 형제는 마치 '청년'이나 영어 man처럼 기본적으로 남자사람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여자까지 포함하는 그런 사람 집단을 말한다. 말을 꼭 그렇게 바꿀 필요가 있는지?

성경도 필요할 때는 일부러 남자와 여자를 콕콕 찝어서 저격하기도 했다. 약 4:4 "너희 간음남과 간음녀들아" 말이다. 시쳇말 좀 쓰자면 "이 간음하는 연놈들아" 같은 뉘앙스다.
그런데 여기서는 킹 외의 변개된 역본들은 남자를 빼고 간음녀만 들어있다! 아니면 성중립 차원에서 "간음하는 사람들아"가 고작이다. 마치 요한복음 8장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 이야기에서 남자는 없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28 19:35 2024/08/2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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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은 참 공교롭게도 국내의 여러 킹 제임스 진영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찬송가를 제각각 편찬해 냈던 해였다.

(1) 영광을 주께 2판 (초판은 2002년쯤에) -- 말씀 보존 학회
(2) 마제스티 찬송가 -- 사랑 침례교회
(3) 복음 찬송가 2판 (초판은 2009년쯤에) -- 타 독립 침례교회 진영에서. 2022년인가 23년쯤엔 3판도 나왔음.

이렇게 찬송가를 따로 만드는 이유는.. 기존 통일찬송가/새찬송가 가사가 교리적으로 만족스럽지 않거나 심지어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려고, 주요 신학 용어 구분을 더 엄밀히 하려고, (영 vs 혼, 천국 vs 하나님 왕국 등등) 성경 구절 인용 가사를 자기네 역본에 더 맞추려고~~ 등의 명분 때문이다.

'교리적으로 만족스럽지 않거나 심지어 잘못된 부분'이 뭔지를 물으신다면..
구원의 상실 암시라든가 단순 신세 한탄(...), 직통계시 은사주의라든가 후천년주의 종말론 뉘앙스가 느껴지는 것 말이다.
당연히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라든가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이런 가사는 교리적으로 문제될 게 단 1도 없다. 하지만 찬송가에 그렇게 명확한 가사만 있는 건 아니어서 문제다.

그리고 이런 독립 침례교 쪽 찬송가는 성탄절을 안 지킨다는 특성상, '탄생' 카테고리의 곡이 아주 적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교리적으로 별 영양가가 없으니 저 찬송가들엔 어디에도 실려 있지 않고..
기껏해야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 찬송이 울리던 그 날' 정도만 살아남았다. 그나마도 예배 때 불릴 일은 없다시피하다.

마제스티는 기억이 안 난다만, (1)은 '침례교 찬송가'가 베이스이고, (3)은 기존 통일찬송가(후대에 개정된 새찬송가가 아님)를 베이스로 삼았다. 무엇을 베이스로 삼느냐에 따라 '참 즐거운 노래를'의 조가 Eb 장조 또는 F장조로 달라지고, '그 참혹한 십자가에'가 G장초 또는 Ab 장조로 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퀄리티는 (3) 복음찬송가가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클래식 찬송가뿐만 아니라 20세기 중후반의 복음성가 내지 올드 스타일 CCM까지 다 수록해서 곡이 제일 많다. 나머지 두 찬송가는 4~500곡 수준인 반면, 얘만 1200곡에 달한다. 그리고 그리고 거의 모든 악보에 반주 코드가 꼼꼼히 적혀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공식 홈페이지가 있어서 악보 조회와 가사 검색이 가능하고, 주요 교회들로부터 수집한 음원까지 제공된다.

왜, 기존 통일찬송가 / 새찬송가만 해도 생존해 있는 편찬위원의 창작곡이 몇 곡 수록돼서 호불호가 갈리곤 한다.
그것처럼 킹 진영 찬송가들도 각 진영별로 자기 진영 목사가 작사· 작곡한 창작곡이 수록된 경우가 있는데..
이런 쪽의 저변도 (3)이 가장 넓다. 유 진선, 구 정민, 임 동선, 박 노찬(대체로 번역)..

(1)은 초판에서는 김 기준, 2판에서는 조 동화(작사만)를 볼 수 있다. 조 동화는 '나 하나 꽃 피어'라는 시로 세상에서도 유명한 그 시인· 교사 겸 목사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현재는 저 두 분이 모두 말보회를 떠나 있다는 거. 미래에 영광을 주께 3판이 나온다면 거기서는 조 동화 작사 찬송가까지도 아마 없어져 있을 것이다. 저 동네는 일을 처리하는 게 대체로 저런 식이어서.. -_-;;

(2) 마제스티 찬송가는 자기 진영 창작곡이 수록된 건 딱히 없는 걸로 나는 알고 있다. 그 교회 덩치와 인재풀이면 가까운 미래의 2판, 3판에서는 자체 창작곡이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단, (2)에는.. '킹 제임스 바이블 쏭'이라는 노래가 끝에 번역 수록돼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내게 읽어 주신 책~~" 이렇게 시작하는 가사 말이다.

참고로, 본인의 여친의 동성 절친..이 저 마제스티 찬송가의 교열에 참여했었다. 음악 계열 전공자인 관계로.. 그래서 머리말/감사의 글에 이름이 실려 있다. ㅎㅎ

만약 우리나라 킹 제임스 진영이 서로 에큐메니컬 운동(!!!!)을 한다면.. 이렇게 창작곡 찬송가 교류부터 하는 게 제일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한킹 쓰는 교회에서 상대방 구 정민, 유 진선 곡을 부른다거나, 흠정역 쓰던 교회에서 김 기준· 조 동화 곡을 부른다거나. 교리나 번역 때문에 싸울 일 없고 그것도 음악을 매체로 교류하니까 제일 거부감 없지 않겠는가.

아 물론 이마저도 당장 실현 가능성은 없다.. ^^
시간과 여건, 재정이 된다면 아마 표준역 쓰는 진영에서도 자체 찬송가를 만들 판이고, 말보회에서 기록말살된 목사님들도 자체적으로 찬송가를 만들려 한다. 아주 그냥 춘추전국시대가 따로 없다. ㅠㅠㅠ

* 여담: 찬송가 오마주를 넣은 CCM

한때 우리나라 CCM계에 송 명희와 최 덕신 콤비가 있었고,
19세기 말 미국에 패니 크로스비와 윌리엄 도언 콤비가 있었던 것처럼..
비교적 최근인 20세기 말에는 미국에 Nancy Price와 Don Besig이라는 CCM 작사 작곡자 남녀 콤비가 있었다.

이쪽은 작곡 스타일이 뭔가 진취적이고 웅장하고 감동적이다. 마지막 절에서는 조가 반음 올라가기도 한다.
이분들의 아주 대표적인 작품이 뭐냐 하면 “여기에 모인 우리 -- 이 믿음 더욱 굳세라”이다. 더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따끈한 1990년도 곡이지만 워낙 고퀄이니 개신교 새찬송가에 수록도 됐다. (620장)

저 콤비의 작품 중에 “주님께 감사 기도 드릴 때 / We are yours, Lord”가 있다.
국내에 많이 알려진 것 같지는 않지만.. 이것도 곡과 가사가 아주 훌륭하다.
언제적 작품인지는 인터넷을 도저히 뒤져도 안 나오는데.. 최소한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형제
When we pray, we will pray with thankful hearts.
When we sing, we will sing with joyful voices.
When we serve, we will serve with willing hands.
For we are Yours, Lord. For we are Yours, Lord.

자매
When we speak, we will speak with loving care.
When we act, we will act with firm conviction
When we give, we will give with boundless joy
For we are Yours, Lord. For we are Yours, Lord. (☞ 음원 링크)


형제 파트는 경배의 태도이고 자매 파트는 행실의 태도인 걸 주목해 보라.
그런데 이렇게 한 파트가 끝나고 나서는 갑자기 분위기가 싹 조용하게 바뀌고 심지어 반주도 잠시 꺼지면서 아카펠라가 나온다. 저 영상에서 1분 45초 이후 지점부터이다.
Within this calm and peaceful place, near to Your heart, O Lord...

근데 얘는.. 알고 보니 Near to the heart of God이라는 1901년인지 1903년도 클래식 찬송가의 오마주이더라~! (☞ 음원 링크)
There is a place of comfort sweet, near to the heart of God
우리나라 개신교 찬송가에는 딱히 소개되지 않은 것 같다. 작사 작곡자는 Cleland B. McAfee라는 사람인데.. 나로서는 일단은 듣보잡(ㅠㅠㅠ)이다.;;

이게 참 신기한 게..
내가 이전에 다녔던 교회의 찬송가(복음찬송가 2판)에서는 We are yours, Lord만 수록돼 있고, 지금 다니는 교회의 찬송가(영광을 주께 1판)에는 Near to the heart of God만 있다.

처음 보는 찬송가 책의 악보를 읽고 있었는데.. 어 이거 낯설지 않고 어디서 봤던 멜로디이다.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전자가 중간에 후자를 오마주해서 넣었다는 걸 알게 됐다. 참 신기하다~! 예전에는 그게 그런 관계인 줄 알지 못했다.

Posted by 사무엘

2024/08/26 08:35 2024/08/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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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보회 한킹

말씀 보존 학회는 우리나라에서 바른 본문에서 번역된 성경이라는 걸 최초로, 가장 먼저 개척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킹이라는 성경도 면류관, 천국, 예수님 대신 예수, 길 대신 도(사도행전) 등 옛날 성경 용어가 남아 있어 좀 정겨운(?) 느낌이 든다.

얘들은 한킹을 다른 교회· 교단들에다가 전파하는 것보다는 독자적인 교회· 교단을 개척하려는 성향이 더 강했다.
모바일 생태계에다 비유하자면 애플의 맥이나 아이폰이 완전히 자기네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일체형인 걸 생각해 보시라. 이 송오 목사는..

  • 성경침례교라는 아이폰을 만들었고,
  • 그 하드웨어에서 돌릴 한킹이라는 iOS의 개발을 주도했다.
  • 그 뒤 그는 말씀 보존 학회라는 앱스토어를 만들었고,
  • 이를 토대로 세대적 진리, 럭크만 주석서 같은 다양한 앱을 출시했다.
  • 이런 조직과 교회, 성경, 서적을 통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라는 여러 앱등이들을 양성했다.

이런 식이다.
스티브 잡스는 사업가로서는 혁신적이었지만 사석에서나 직장 상사로서는 X나 X랄맞은 인성과 싸가지를 자랑했다고 한다. 이 송오 목사도 이런 쪽으로 아주 악명높았었다.

쟤들은 자기 조직, 자기 교리 노선, 성경, 교회를 완전히 통합 일체형으로 본다. 사고방식이랄까 포교 전략이 저렇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저렇게도 독단적으로 구는 거다.

그래서 심지어 30여 년 전엔 자기들(만)이 대한민국 최초의 진정한 성경적인 신약 교회라는 드립을 쳤던 건 유명한 일화이고, 반대급부로 자기 교회에 있다가 나간 사람을 배교자라고 그렇게도 욕을 해댔다.
진짜로 순수하게 진리를 전하다가 부당한 박해와 배척 받는 거랑 그냥 혈기 깽판 부리다가 간증 잃고 욕 쳐먹는 걸 구분을 못 하고.. 심지어 탈퇴자한테는 자기네 성경을 쓰지 말라는 어이 안드로메다 급의 미친 소리까지 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게 진짜 중요한 사항인데..
한킹은 킹 제임스라는 영어 성경을 중역했기 때문에 '킹'이라는 명칭이 붙은 게 아니다.

400년 전 잉글랜드 사람들이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할 때 쓰였던 그 바른 원어 원문(TR 공인 본문, 정통 맛소라)을 갖고,
마치 영킹을 만들듯이 우리말 성경을 만들었다..!! 도착어만 다르지 출발 원문이 영킹의 그것과 같다는 뜻에서 '한킹'인 것이다. ㄲㄲㄲㄲㄲㄲ

어, 써 놓고 보니 약간 진화론 얘기 같네..??
현대 진화론에서는 인간(한킹)이 원숭이(영킹)로부터 진화(번역)한 게 아니라..
인간과 원숭이가 같은 공통조상(히브리 헬라 원어)으로부터 진화했다고 말하니까 말이다! 딱 그 모양새이다!!!

한킹은 신약은 TR 원어 원문 기반(시민권)에다가 영킹 용어(이스터, 순교자 등)를 참고해서 만들어졌고,
오히려 구약이 영킹 중역(로뎀나무가 아니라 향나무)에다가 맛소라 히브리어 본문 용어(음부, 아세라)를 참고해서 만들어졌다.
후대의 그 어떤 성경도 채택하지 않은 특이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_=;;

일각에서 모함하는 것처럼 "한킹은 킹 제임스 성경이 아예 아니다"는 당연히 아니다. 단지, 성서 초등학교 애들을 도롱뇽 소년이 아니라 개구리 소년이라고 불러도 문제 없는 거, 구치소 얘기이지만 교도소 일기라고 웹툰 제목을 붙인 거,
그리고 복음 전할 때 예수 안 믿으면 불못이 아니라 지옥 간다고 말하는 거(정작 영원히 있게 되는 곳은 불못인데)..

이런 관계일 뿐이다. 별개가 아니고 어차피 그게 그것인 관계이기 때문에 좀 더 인지도 높고 대중적인 명칭을 썼을 뿐이다. 차이라고 해 봐야 영킹이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을 묘사했다면, 한킹은 그게 결국 이런 뜻이라는 식으로 표현한 정도가 대부분이다. (자유-생활방식 → 시민권, 긴장하다 → 거르다, 작은숲 → 아세라)

1980년대에 이 송오 목사가 TR을 기반으로 코리언 성경 번역을 시작했다는 건 그 당시 미국의 KJV 옹호 진영에서도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피터 럭크만 같은 강성 영킹 유일주의자도 그에 대해서 "당신 왜 영킹에서 성경을 번역하지 않아?" 같은 문제 제기는 하지 않았다.
말보회 교회를 직접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자기 교회 조직이나 성경책에 대해서 이렇게 애플에, 진화론에, 개구리 소년 비유까지 동원하면서 진지하게 깊이 고찰해 본 적은 아마 없을 것이다. -_-;;;;;

2. 표준역

표준역은 2020년대에 정말 젊은(나보다도 어린..!) 신학도가 과감한 영킹 중역을 표방하면서 편찬한 성경 역본이다.
우선 칭찬부터 하고 시작하자. 몇몇 일부 단어나 표현은 참신한 시도이거나 잘 번역한 것 있다.

- (가령, seek와 find를 찾다/발견하다 라고 구분해 준 것, win을 쟁취라고 시도한 것,
행 5:30을 단순히 "나무에 매달아 죽인"이 아니라 "죽여서 나무에 매단"이라고 옮긴 것.. 이런 건 잘한 거다.)
기존 타킹 쓰는 진영에서는 표킹의 이런 면모까지 다 무시하면서 밟아버리려는 듯이 감정적으로 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 영킹 직역이라지만 일부 표현은 말보회 한킹의 번역을 따른 게 있다. grave, walk 등.. 단지 원어를 참조한 게 아니라 영어에도 그런 뜻 있다고 웹스터 사전을 들이댈 뿐.

- 그러나 몇몇 접속사나 관사 복수형을 일일이 다 살려서 넣은 건 무리수이다. 영어의 모든 관사가 정확하게 수효를 한정짓는 용도로 쓰이는 게 아니다. 그냥 다음에 오는 단어가 형용사나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라는 것만 명시하는 용도로 습관적으로 붙는 것도 있으며, 그런 건 한국어로 옮길 때 굳이 번역하지 않는 게 정상적인 번역이다!
저런 번역 스타일만으로도 논란이 되는데 하물며 그렇게 하지 않은 타 역본을 변개 삭제라고 까는 거는.. 무리수를 넘어 누워서 침 뱉는 자충수이다.

- 같은 뜻인데 단순히 영문학상 패러프레이징 하느라 유의어를 동원한 것을 굳이 우리말로 무리해서 다 다르게 쓸 필요는 없어 보인다. (가령 행10의 kill '잡아먹다'과 11의 slay '도살하여 먹다')

- '비둘기 그녀, 지혜 그녀'는 좀 다시 생각했으면..? 영킹은 솔로몬의 재판에 나오는 아기도 it이라고 가리키는 부분이 있다. 표킹도 아기를 '그것'이라고 옮기지는 않았더구만? 영어 대명사랑 우리말 직역이 어차피 대응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 마케팅 방식이 적절치 못했다. 그렇게도 영킹 직역 성경을 내고 싶었으면 차이점만 나열하고 자기 것이 뭐가 좋은지만 얘기를 하면 됐는데 무슨 타킹들이 변개하고 삭제했다는 소리는 그 뒤로 욕을 십자포화로 얻어먹어도 실드를 칠 수 없다.
누가 정말 순수한 의도로 정당하게 성경 번역 새로 해도 기득권들로부터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욕 먹고 비방 당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저거는 부당한 욕이 아니라 욕먹어도 싼 짓을 해서 욕먹는 거다.

- 영어 본문을 갖고 검증되지 않은 이상한 썰을 풀면서 어그로 끌었던 것도 이 바닥의 금도의 도를 어긴 거다. 일부 목사님들로부터 미운털 단단히 박힌 꼴이 됐다.

그러니 표킹에 대한 내 생각을 세 줄로 요약하면

  • 일부 영킹대로 잘 캐치하고 잘 번역한 표현
  • 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번역 스타일
  • 적절하지 못했던 마케팅

정도다.
참조용으로 고려할 만은 하다. 나도 처음엔 '다시 채우라'와 '하나님이 자신을 어린양으로', '예언'이 모두 살아 있고 it came to pass를 다 번역했다고 해서 아주 긍정적으로 봤으나..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면도 아직은 무시 못 할 지경인 것 같다. 일부 장점이 아니라 성경의 전반적인 번역 퀄리티나 저 진영의 인성의 퀄리티가 아직 검증이 덜 된 것 같다. 더 지켜봐야지.

"이제야 우리 민족에게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다 앗싸!" 이렇게 샴페인을 터뜨릴 수 있을지는.. 글쎄? 표킹 쓰고 싶거들랑, 한참 더 교열 보고 다듬는 일에 동참할 의향이 있는 사람만 그 진영으로 가는 게 좋을 거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성경으로 예배드리고 싶거들랑 혼자 조용히 교회 옮기면 된다. 기존 교회 목사를 비방하고 딴 초신자들 꼬드겨서 우르르 나가고 분탕질 치지는 마시라. 그건 무식하고 덕이 되지 않는 짓일 것이다.

3. 흠정역 (+ 근본역)

그리고 그 이름도 유명한 '흠정역'은 한킹의 뒤를 이은 2인자로 시작했지만.. 말보회의 삽질 뻘짓으로 인한 반사 이익을 받으면서 지난 20년 동안 점유율을 꾸준히 올려 왔다. 안티오크 권위역의 용어와 번역 이념을 많이 계승한 한편으로, 영킹의 표현을 말보회 한킹보다 더 많이 반영했다.

말보회가 애플이면 흠정역은 기기의 제조사가 다양한 안드로이드 진영이기라도 한 걸까? 흠정역 진영은 성향도 더 개방적이었다. 교리 노선이 번역자와 다른 기성 개신교회나 독립 교회들에게 자기 성경을 널리 보급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그 대신 흠정역 쓰는 교회들은 영어와 원어 사이의 관념부터 시작해서 세부 교리의 파편화가 말보회 계열보다 더 큰 편이다.

그래서 흠정역 진영이 한킹 진영을 완전히 대체했느냐 하면.. 안타깝게도 그리 되지 못했다. 이쪽도 단점과 한계가 있고, 공과 과가 모두 생겼다.
세월이 흐르고 세력이 커지면서 성경 번역자 개인이 분별력이 흐려지고 흑화하는 건 이쪽이나 저쪽이나 방식만 다를 뿐 절대값은 별 차이 없었다. 허나, 말보회 쪽은 교리 노선이 확고하고 탄탄해서 성경과 성경 번역자를 완벽하게 분리해서 판단할 수 있는 반면, 흠정역 쪽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흠정역은 번역자의 독특 내지 이상한 신념이 들어가서 성경에 예언이라는 단어가 전혀 없다. 그리고 창조과학회 영향을 받아서 세대적 진리에서 간극 재창조는 별 이상한 근거를 들면서 거부하는 등 교리 노선이 예전부터 많이 삐그덕거렸다.
10년 전에는 "원어로 너스레 떠는 목사 격퇴하기" 하면서 영킹을 강조하다가 지금은 원어 의존도가 훨씬 늘었다.
10년 전에는 "바른 성경을 믿어서 이단 소리 들으니 얼마나 영광입니까?" 하다가 지금은 "우리는 이단 아니다. 성경 선택권을 보장하라"...;;;

차라리 한 교리 노선에 일관되게 단호박이면서 탈퇴자 뒷담화만 거하게 하던 원래 동네가 더 나아 보일 지경이다.
이 와중에 최신 마제스티판은 딤전 6:5 '이익이 경건'을 이상하게 고쳐서 이전 판보다 개악되었고, 이것 때문에 학을 떼는 사람과 이것도 별 상관없다고 실드 치는 사람이 갈라져서 싸우는 촌극이 벌어졌다.

말보회에서는 지금도 흠정역이 짝퉁 가짜 성서라면서 비방 험담하느라 여념이 없다. 근데 쟤들은 상대방의 동태에 대해 공부를 하긴 할까? 욕할 거면 진짜로 물어뜯기 좋은 이런 아이템을 갖고 물고 늘어져야지, 책 제목 같은 별 쓰잘데기없는 걸 갖고 참 수준 낮게 트집 잡고 제 얼굴에 침 뱉더라.

그 와중에.. 2020년대에 근본역이라는 게 성서 침례교회 진영에서 만들어져 나왔다. 이건 예언 같은 몇몇 단어만 빼면 흠정역과 아주 비슷하다.
다만 판이 올라갈 때마다 정오표를 만들어서 수정 내역을 정직하게 공개해 주고(!!!!), 개인이 아니라 위원회 명목으로 판권 없이 오픈소스 정신을 반영해서 출간하고.. 딱 3판까지만 만들고 영원히 관두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번역보다는 번역 방식 면에서 참신한 시도를 한 것 같다.

이상이다.
이 2020년대 대한민국 땅의 킹 제임스 성경 진영은.. 왕짜가 들어간 성경을 쓴다면서 정작 왕이 없는 판관기(사사기) 말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어느 한 진영이 다른 진영을 완전히 압도하고 대체· 흡수하지 못하고 전부 찢어져서 각자도생 중이다. 다양한 번역본들이 서로 장점을 합쳐서 하나로 수렴을 못 하고 혼란만 더 커지고 있다.

생각 같아서는 각 진영의 번역자들을 골방에다 몇 달 가둬 놓고 한킹의 교리 체계에다가 흠정역 정도의 문장 구성, 거기에다 표준역의 일부 잘 캐치한 표현들을 집어넣어서 단일 역본을 좀 만들었으면 좋겠다만.. 그런 기적적인 통합이 성사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없다. -_-;; 애초에 정교분리 세속 국가에 제임스 왕 같은 중재자도 있을 리 없으니까.

어느 거 하나도 선뜻 못 고르겠으니 "역시 영킹을 직접 보는 수밖에 없군.." 이것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아주 짧고 단순한 구절이야 영어가 임팩트 있을 수 있겠지만, 당신은 엄청 길고 복잡하고 꼬인 영킹 구절도 술술 읽고 암기할 수 있겠는가? =_=;;

이 와중에 "이거는 이 번역이 맞고, 저거는 저 번역이 맞는 거 같다" 식으로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입맛대로 판단하는 교만이나 지적사기는 정말 위험한 짓이다. 내가 저런 짓을 하기 싫어서 킹 진영으로 왔는데, 한국어 한정으로는 그 진영 안에서도 똑같은 짓을 하게 됐구나. -_-;;

본인은 오랫동안 흠정역을 쓰는 교회를 다니다가 모종의 이유로 인해 교회를 옮길 일이 생겼다. 이 참에 예언이 있고 "하나님 자신을 어린양으로"(창 22:8)가 있는 성경을 쓰고 싶어서 진영을 옮겨 봤다. 유의미한 단점이란 게 "영어가 아닌 TR 번역이다"밖에 없다면.. 그게 뭐 어때서? 영어와 TR의 차이점에 대해서 판단을 보류하고 공부 중이다.
이래저래 우리나라는 대한 성서공회만이 성경 번역을 독점하는 동네가 결코 아니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20년, 30년 뒤엔 3rd-party 성경의 점유율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참 궁금해진다.

Posted by 사무엘

2024/07/30 08:35 2024/07/30 08:35

바람직한 신앙관, 세계관

1. 희망과 절망

마귀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 너는 충분히 선하고 의롭기 때문에 굳이 예수 믿을 필요 없고 구원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근자감을 불어넣거나 (희망)
  • 반대로 너는 너무 악한 인간쓰레기이기 때문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까스라이팅을 한다. (절망)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바는 이와 다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비참한 죄인이란 것까지만 절망이고, 그 뒤에 예수님 보혈 의지해서 그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복음이 희망이다!

예수님이 선한 도덕 선생이라느니 훌륭한 사상가, 언행의 모범 본보기 등등등.. 이런 건 구원받은 사람에게나 필요한 면모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예수님이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구원자부터 돼야 한다. 무조건 반드시~

2. 정당한 불가지론과 나쁜 불가지론

(1) 예수 믿는 신앙생활의 관점에서 이런 건 정말 알 수 없는 불가지론이고 불확실한 게 맞다.

  • 예수님은 언제 다시 재림할까? 휴거는 언제쯤 일어날까?
  • 난 과연 살아서 주님 다시 볼까? 난 언제 죽게 될까?
  •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까?
  • 지금 갑자기 무슨 병에 걸렸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앞날 창창한 사랑하는 가족 친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거.. 여기에 도대체 무슨 주님 뜻이 있을까?

애초에 증명돼 있지 않는 걸 지지하는 것이니 그걸 '믿음'이라고 하는 거다.
기독교가 뻘짓 동원해서 미래 앞날 일을 예측하려 하는 수작을 왜 그렇게도 금지하고 부정적으로 보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시라. (점, 운세.. 단순히 수학 과학 방법론으로 예측하고 대비하는 거 말고)

(2) 그러나 이런 건 불가지론의 영역이 전혀 절대 결단코 아니다.

  • 신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가?
  • 나 구원받은 거 맞나? 지금 죽어도 당장 하늘나라 가는 거 확실하나?
  • 이 정도면 대환란 겪지 않고 바로 휴거될 수 있을까?
  • 지금 우리에게 자필원본과 동급으로 온전히 보존된 성경 말씀이 존재하는가? 신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가?
이걸 확신하고 굳게 믿는 건 무슨 교만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안 믿는 게 잘못된 불신이다!

(2)에서 말하는 성경, 구원이 확실하게 보장돼 있기 때문에 (1)에 대해서도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거다. (2)의 확실함이 (1)의 불확실함에 대한 원동력이다!! 그래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고 노래를 부를 수가 있다.
구원 하나 제대로 못 받아서 "글쎄, 죽어 봐야 알겠지"인 주제에 (1)을 버티라고? 내가 보기엔 그건 그냥 종교적인 기만이고 야바위질이다. 열정페이처럼 신앙페이 착취이다.

내가 비록 지식 면에서 신학교 졸업생 급으로 히브리어 헬라어를 통달했거나 성경 지리, 고고학 등을 다 줄줄 꿰는 게 아니고, 영성 면에서 맨날 길거리에서 복음 전하고 말 끝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찬송시를 쓰는 것도 아닌 일개 쪼랩 예수쟁이긴 하다.
그러나.. 그래도 성경 전반에 담긴 법리, 집필 관점이라든가 신앙생활 원리 쪽은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쪽 변증은 나름 강하다고 자신한다.

3. YOLO

YOLO라고..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인생인데 후회 없이 니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즐기며 짧고 굵게 자유롭게 살아~!! 이런 말이 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메시지가 될 수도 있고, 무슨 히피 같은 허랑방탕을 조장하는 불건전한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글쎄, 성경은 히 9:27을 보아하니 live once보다는 die once를 더 강조하는 것 같다. YODO인 건가. ㄲㄲㄲㄲㄲ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환생이나 윤회(∞), 소멸(0)하지는 않는다는 맥락에서 die once인 거다(1). 자유롭게 사는 건 좋지만 죄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한다.

수 년 전엔 구내염약 알보칠에서 You only Pain once라는 약 빤 CF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YOPO ㄷㄷㄷㄷ
요들쏭 부르듯이 요뽀요뽀 이러면서 진짜 강렬하고 병맛 넘쳤다.
알보칠 바를 때 겁나게 아프다는 거는 부인하지 않는다. ㅋㅋㅋㅋ "그래도 아픈 건 잠깐일 뿐이야~~~ 고통을 짧고 굵게 끝내고 구내염이 빨랑 낫는 게 중요하지?"

그런 논리로 롬 8:18이나 베드로전서 내용을 담으면 You only Suffer once 요쏘~~~도 가능할 것 같다. ㄲㄲㄲㄲㄲ
그리고 머신러닝 업계에서는 이미지에서 각종 사람이나 사물을 인식해서 추출하는 인공신경망 중에 YOLO...;;;라는 이름이 붙은 물건이 출시되기도 했다. 여기서는 You only Look once이다.

4. 세계관

예수 믿고 교회 댕기기는 하는데 신앙 수준이 너무 단편적인 사람이나 교회 말이다.
그들은 예수 믿는 기독교 국가들이 잘 살고 부강하고 세계를 석권했다는 식으로 얘기를 한다.

이런 사람들이 꼭~~ 어디 자연재해 참사가 터진 곳은 우상숭배 해서 심판 받고 벌받은 거라고 경솔하게 발언해서 어그로를 끌곤 한다.
그리고 일본은 어떻고? 기독교 배경 전혀 없지만 그냥 자기들이 노력하고 근대화 잘해서 잘 살고 노벨 상 수상자도 저렇게 많이 배출했을 뿐이다.

이렇게 수준 낮고 허점투성이에 털릴 게 많은 발언은 좀 그만 해라.
예수쟁이라면 기독교 배경· 성경적 세계관이 있는 나라들이 뭐가 진짜로 더 선진적이고 더 좋은지를 제대로 고찰해야 한다.

  • 사농공상 ㅆ선비 꼰대질 짓거리가 없이(최소한 동양 유교 문화권보다는 덜한..) 노동 근로가 존중받는 거,
  • 위선 체면 떨고는 뒤에서 추잡한 짓 하는 게 아니라, 돈이나 성에 대해서 차라리 면전에서 처음부터 더 솔직한 거,
  • 거짓말, 위증, 기본적인 비윤리 부정행위를 훨씬 더 금기시하고 엄하게 처벌하는 거
  • 사심 없이 인심이 후하고 기부, 기증, 입양이 많은 거
  • 잘못을 인정하면 개 호구 바보 되는 게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걸 믿고 인정하는 거 (이거..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의 기본 근간 전제조건이다)
  • 반대로 쓸데없이 가오 내세우면서 "죽어서 속죄"를 남발하지 않고, 차라리 살아 돌아와서 사죄하고 평생 책임지는 걸 더 높게 치는 거,
개인 구원과 관계없이, 나라의 단순 군사력 경제력과 무관하게 이런 의식 수준의 차이를 더 진지하게 고찰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러면 교통사고가 하나 나더라도 그때 가해자 피해자의 처신이 달라지고 사회의 치안 비용, 복지 비용에서 차이가 날 거다. 이건 단순히 문화적 상대성 차원이 아니다.

난 일본이 물질과 과학기술 면에서는 서양을 따라했지만 바로 저런 면모에서 진짜 서양보다 크게 뒤쳐졌기 때문에 국민들이 죽어나가고 개고생했으며, 태평양 전쟁 때 저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서양 유럽이 언제부터 학문과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동양을 앞질렀는지를 묻는다면 예수쟁이들은 종교개혁을 떠올리지만, 일반 세상에서는 그냥 계몽주의나 르네상스 같은 걸 떠올린다. 이것도 생각할 점이다.

5. 참가만으로도 대단하긴 하지만, 일부러 참가에만 안주하지는 말아야 함

“올림픽은 승리가 아니라 참가에 의미가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아 물론 무슨 취지로 하는 말인지는 이해가 된다.
뭔가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시하고, 무언가에 일관되고 꾸준한 것을 좋게 보고, 학교에서 개근상을 다른 어지간한 성적 우수 만만찮게 좋게 보던 사고방식 말이다. 이건 절대로 잘못된 생각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저 말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저 말이 불성실과 나태를 합리화하는 말로 악용되지 말아야 한다.
기왕 싸움을 시작했으면 이길 생각을 해야 하고, 기왕 경쟁 내지 경기를 시작했으면 우승할 생각을 해야 한다.

물론 지금 울나라가 쌍팔년도 시절처럼 엘리트 체육에 목숨 걸면서 선수 한두 명이 메달 딴 거 갖고 국위를 선양하네 열등감을 극복하네 마네 연연하는 지경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비도 아니고 세금으로 육성된 국대 선수라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물도 나오기는 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올림픽이 아니라 월드컵이긴 하다만, “월드컵은 뭘 배우는 게 아니라 이미 배운 걸 입증해 보이는 자리입니다.” 이런 말도 있었다. (이 영표 해설자가 2014년 월드컵의 졸전 때 빡쳐서.. -_-)

신앙 생활에서도 같은 적용을 할 수 있다. 당연히.. 예수 믿은 사람은 지옥 형벌에서 구원받고 천당이 보장됐으니 신분이 넘사벽으로 달라졌다. 영적 전투 아레나에 참가 선수로 등록된 것만으로도 올림픽 국대 선발 이상으로 얼마나 감지덕지인가?

하지만 0에서 무려 1을 만들었으면 1을 10, 100으로 불릴 생각도 해야 된다. 구원을 받았으면 그 다음에는 자기의 구원자 예수님으로부터 이쁨 받고 상 받을 생각을 해야지.
“저는 그런 상 같은 것엔 연연하지 않아요. 그냥 예수님만 있으면 돼요”는... 미안하지만 무소유 겸손이 절대로 아니다! 그건 매우 높은 확률로 또 다른 무지와 불신이다. 어쩌면 교만까지 추가돼 있고.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해라. 세상 셀럽들이 누리는 부귀영화라든가(서울 강남 아파트나 고급 외제차나 명품빽, 최신 스마트폰=_=), 노벨 상, 필즈 상, 무궁화 대훈장, 금은동탑 산업훈장, 태극 무공훈장, 연예계의 무슨 아카데미 상에 비해..
성경에 약속된 여러 왕관(면류관)들은 실감이 안 가거나 믿기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거다. 최악의 경우는 아예 그런 게 있다는 것도 모르거나.

그리고 예수님께 이쁨 받고 나중에 상 받는 방법은 세상의 각종 분야별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하고는 접근 방식이 좀 다르다. 애초에 자기 육신의 능력을 보이는 게 아니니까.. 저 바닥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과정 지향 사고방식과 결과 지향 사고방식이 모순되지 않는다. 이런 보상은 아무리 욕심 내도 당신의 영적 건강에 전혀 해롭지 않다!

세상에서 기계를 만들 때 전력 소모 줄이고 공기 저항 줄이려고 최적화에 목숨 건다. 운동 선수들도 체중이나 복장을 얼마나 미치도록 튜닝을 하는데?
본질적인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쓸데없는 dead weight 낭비 요소들을 털어내는 것이 신앙생활에도 필요하다. 이것이 히 12:1이 말하는 바이다.

다시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당연히 주님 주시는 보상을 "바라고," 어쩌면 적극적으로 추구도 해야 한다. 그래야 부당한 손해나 핍박도 감수하고 세상 추세를 역행하는 삶을 살 원동력이 생기고 '동기부여'가 된다.
신앙생활에서 신자와 하나님이 서로 주고 받는 딜이 뭔지, 신자의 십자가가 뭔지를 잘 모르니까 보상도 바랄 필요 없다느니, 대환란을 자기가 겪으면서 연단되겠다느니 하는 당치도 않은 헛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을 무슨 신앙페이 열정페이 착취하는 엄한 금욕주의 갑질 업주로만 알거나 말이다(게으르고 악한 종).

Posted by 사무엘

2024/05/31 08:35 2024/05/3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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