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엔 '말씀 보존 학회'(말보회), 그리고 '창조 과학회'(창조회)라는 기독교 단체가 있다.
둘 다 특정 분야에 대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무식하게 고지식(?)하게 밀어붙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호불호가 크게 갈리면서 열성 지지자와 골수 안티를 모두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말보회는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주장하면서 기성 교계와 신학계를 몽땅 적으로 만들었다.
창조회는 젊은 지구/우주를 주장하면서 기성 고생물학, 지질학, 천문학계와 몽땅 대립하고 있다.
물론 이들 단체에는 명백하게 옳은 것· 건전한 것, 선한 것이 많이 있다. 먼저 말보회의 경우, 독특한 성경관만 주장하는 게 아니다.
- 교회 교파로서의 노선은 평범한 침례교의 완벽한 상위 호환이다. 유아세례 부정, 주의 만찬과 침례, 스스로 자기 믿음 고백 후 물침례는 본인이 보기에 성경적으로 100% 아멘이고 옳다.
- 창조회와 마찬가지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6일 창조(창세기)와 1000년 통치(계시록)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나 타협이 없다.
- 피터 럭크만 스타일로 성경을 성경으로 나누어 풀이하는 세대주의. 일곱 부활, 일곱 침례 등등~
- 성경의 문자적 해석도 잡고 세상 과학과도 충돌하지 않는 솔루션인 간극 재창조
- "당신은 지금 죽는다면 바로 하늘나라로 갈 확신이 있습니까?" 칼같이 단호한 신약 은혜의 복음 교리. 거리 설교
- 구원의 영원한 보장, 전천년주의 환란 전 휴거
- 예수님의 문자적인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 이스라엘의 문자적인 회복. 교회와 유대인의 구분
- 아기· 어린이의 특례 구원 (죽으면 무조건 다 하늘로 간다~! 그러니 유아세례 같은 거 필요하지 않다는 거다. 옳소! 아멘~!)
- 칼빈주의도, 알미니안주의도 아님. 섭리와 자유의지 사이의 균형.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뜻의 구분. '미리 아심'이 곧 답정너 예정은 아님.
- 비성경적인 이상한 은사주의 거부, 이상한 종교 통합 거부
- 본질적이지 않은 불필요한 각종 절기나 예배 절차 폐지
우와, 써 놓고 보니 아이템이 적지 않다. 말보회의 이런 교리 노선은.. 성경에도 논리와 체계라는 게 있다는 걸 내게 알려 줬다. 이런 걸 한국에 처음으로 알리고 이슈화하고 퍼뜨린 공로는 응당 말보회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런 체계가 있으니 교회가 일부 인간들의 병신같은 짓 때문에 욕 먹더라도 내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온· 오프라인으로 기독교를 소개하고 예수님을 전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으로 창조회에 대해서는 내가 길게 얘기하지 않겠다. 내가 이 진영에 대해서 유익하게 생각하는 것은.. 역시 말보회하고는 분야와 방식이 다르지만 어쨌든 자기 분야에서 성경을 설화나 비유 짬뽕이 아니라 문자적으로 있는 그대로 믿으려 한다는 것, 성경이 레알 사실임을 입증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정작 이 두 진영은 창조 연대기에 대해서는 관점이 별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신론적 진화 따위를 믿지 않고 24시간 6일 창조를 믿는 건 동일하지만, 말보회는 그보다 위에 더 오래된 이전 세상이 있었다는 걸 믿는다. 창조회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를 믿으면서 말보회나 럭크만은 싫어하는 사람, 간극 재창조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창조회도 지지하는 편이다.
자, 좋은 점 얘기를 이 정도로 했으니 그 다음으로는 내가 말보회와 창조회에 대해서 안타깝고 아쉽게 생각하는 것, 동의하지 않는 성향에 대해서 털어놓도록 하겠다.
내가 쟤들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일단 내가 보기에 저 두 진영은 공통으로..
발전이 없이 너무 정체돼 있다...!!! 이게 제일 큰 문제이다.
뭔가 마이너한 걸 주장하고 자기 반대편을 비판하고 공격하긴 하는데.. 반대편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해서 알지도 못하고 너무 무식한 방식으로, 케케묵은 쌍팔년도 방식과 저질 음모론을 고수하며 공격한다. 그러니 털리고 비웃음만 당한다.
까놓고 말해 럭크만과 같은 실력은(원어 원문 및 KJV 변증..) 없으면서 럭크만의 싸움닭 기질만 잔뜩 배워 왔다.
가령, 로마 가톨릭이 화체설, 교황, 마리아 평생 동정, 연옥 등 비성경적인 교리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걸 비판하는 거랑.. 아예 교황이 예수회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세계의 기독교/개신교회를 말살시키고 세계를 정복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선동하는 건 별개의 문제이지 않은가..? 그런 주장을 하려면 근거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가져와야 된다.
그리고 쟤들은 흠정역이 자기네 한킹을 도둑질 해서 만든 짝퉁 성경이라는 욕과 비방을 도대체 언제까지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려나 모르겠다. 흠정역은 지난 20여 년의 노력 끝에 무려 6판이 나왔고, 맞춤법과 각종 표현이 정말 많이 정제되었다. 번역 스타일이나 신념 때문에 자기 마음에 드는 표현이 들어가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예배용 성경으로서 영어 KJV를 있는 그대로 번역한 한국어 역본 중에서는 흠정역의 완성도를 따라갈 물건이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까지 한킹을 도둑질한 거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쟤들은 1세대 설립자도 소천했는데.. 맨날 네거티브만 할 게 아니라 자기네 한킹이 더 나은 번역이라는 걸 팩트와 데이터로 입증해야 한다. 그럴려면 공부를 해야 된다.
이미 다 늙은 1세대 목회자들이야 어쩔 수 없다 치지만.. 말보회의 후계자뻘 되는 젊은 목회자들..? 거기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은 흠정역 진영과 교류(!!!)도 하면서 태도를 바꾸고 새로운 팩트와 데이터를 흡수하고, 국내의 킹진영이 다같이 살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창조회는 말이다.. 설마 아직도 1990년대의 긴가민가한 노아의 방주 항해 실험이나 1970년대에 바다에서 공룡(사경룡) 사체 끌어올린 사진을 우려먹고 있는 걸까..?? 아직도 “진화론에서는 인류의 먼 조상이 원숭이라고 주장한대~ ㅋㅋㅋㅋㅋ” 이러는 걸까?
세상 학계는 1990년대 "생명 영원한 신비" 다큐의 내용조차도 일부는 부정되고 수정돼서 지금과 맞지 않는다고 고개를 젓는다. 제발 "이게 다 창조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세상 학계의 텃새 음모" 핑계 따위 대지 말길..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젊다는 건 하나님 운운하지 않아도 철저하게 과학만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쟤들은 과학 쪽으로 무리수를 둘 게 아니라 지질 시대가 이전 세상의 흔적이라는 것만 알면 연구 방향이 훨씬 더 깔끔해질 텐데 아쉽다.
요컨대 말보회나 창조회가 잘하는 것도 있고 병크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병크가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옳은 방향까지 다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참고로 내 노선은 말보회와 90~95% 정도는 싱크로가 되는 것 같다. 차이점은 얼추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 한킹보다는 흠정역을 더 선호
- 세대주의와 재창조 간극까지는 믿지만 말보회만치 무조건 "마태복음 히브리서는 신약 교회용이 아님~!!"을 너무 강박관념적으로 따지지 않음
- 구약 유대인들이 율법 지키는 행위로 구원받았다고 단정은 짓지 않음
- 기성 교단을 쟤들만치 무작정 다 적대시하지는 않음. 하나님이 기성 교회들도 사용하고 역사하고 계시는 것 인정.
말씀 보존 학회, 그리고 여기뿐만 아니라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에 세대주의니 럭크만이니 하는 물을 먹은 진영은 딤후 2:15가 말하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공부하라"의 덕후· 신봉자이다. 여기서 '나누다'라는 말은 공유 share이 아니라 분별· 구분· 분할한다는 뜻인 divide이다. 성경이 자기 자신을 공부하는 방법론을 스스로 이렇게 정의해 놓은 셈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성경 용어들을 기존 일반 교단들보다 더 세부적으로 나누는 걸 좋아한다. 대표적으로 영과 혼을 구분하고(영혼몸 삼분법), 하나님의 왕국과 하늘의 왕국을 구분한다. 교회와 유대인을 구분한다. 말씀에 대해 시대와 적용 대상을 구분한다.
침례도 다 같은 침례가 아니어서 일곱 종류나 있고, 부활도 여러 종류가 있다. 복음조차 왕국 복음과 은혜의 복음으로 나뉜다.
본인도 기본적으로 이런 성경 공부 방식에 동의하면서 그 유익을 인정한다. 이 패러다임 덕분에 여러 성경 난제들이 풀렸고 불신자에게 복음 변증이 가능해졌고 황당한 이단 교리들을 명쾌하게 걸러내게 됐다.
개나 소나 다 비유로 영해하는 게 아니라 "특정 시대 특정 대상에게는 문자적인 건데 지금 우리에게는 영적 교훈만 적용되는 것이다" 이게 훨씬 더 논리적이고 깔끔하고 합리적이지 않냐 말이다.
다만, 한편으로는 성경이 무슨 과학 교재나 논문 같은 스타일로 100% 딱딱 분석 가능한 책이 아니라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성경의 어떤 곳에서는 혼이나 영이나 그렇게까지 다른 개념이 아니고 심지어 ‘혼=그냥 사람’, ‘영=그냥 마음’처럼 쓰이기도 했다.
마 19:23-24 같은 구절에서는 예수님조차 대놓고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을 별 구분 없이 섞어 쓰셨다. 제아무리 마태복음이 유대인의 왕 예수님이니 왕국 복음이니 하지만, 바로 그 책의 중반부에서 웬 뜬금없이 신약 교회에 대한 예언과 지침이 나오기도 한다.
또, 워딩으로 가면.. 그렇게도 단어 단위로 성경을 보면서 우리말 KJV 번역본들은 it came to pass는 왜 번역을 안/못 했을까? word와 oracle의 차이는 무엇일까? damnation과 condemnation의 차이는?
그러니 구분할 건 구분하더라도 거기에만 묻혀서 시야를 너무 좁히지 말고, 성경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 대해서 열린 시각은 갖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 자체가 잘못된 비정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이 그렇게도 칼같이 딱딱 맞아떨어지고 분석 가능했으면 이미 수백 년 전에 분석이 다 끝났고, 기독교계에 이렇게 다양하게 찢어진 교파가 존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 여담
1.
난 먼 옛날, 컴퓨터 프로그래밍 초보였던 시절에 베이직 다음으로 파스칼 언어를 잠시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파스칼은 베이직과 C 사이의 완충재 역할을 하면서 C를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그것처럼 본인은 KJV를 모르던 시절에 NIV를 읽었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도움이 됐다. 그때는 제네시스, 엑소더스, 리비티쿠스 등, 성경의 각종 영어 명칭과 atonement, passover 같은 신학 용어들부터 전혀 까맣게 모르던 시절이었으니..
게다가 NIV의 변개(!!) 구절들이 내 신앙에 대놓고 부정적인 영향을 줄 정도로 내가 성경을 깊고 긴밀하게 많이 알던 상태도 아니었다. 그러니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이 더 컸을 수밖에 없다.
2.
나는 한글 입력기의 개발자이다 보니 세벌식 자판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로부터 390과 최종 중 무엇을 고르면 좋겠냐는 문의를 종종 받는다.
그런데 이와 마찬가지로.. 킹 제임스 진영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로부터 한킹과 흠정역 중 무엇을 고르면 좋겠냐는 문의도 받는다. 아유~ 이런 것도 통합이 좀 됐으면 좋겠는데..
세벌식 글쇠배열이야 이미 둘을 절충한 3-2012 같은 솔루션이 있으니.. 세벌식 사용자들의 공감을 얻어서 적당한 것을 채택만 하면 된다. 하지만 한킹과 흠정역은.. 이건 종교 쪽이어서 통합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한킹은 다른 어휘나 표현을 떠나서.. TR을 번역했지 영어 KJV를 번역하지 않은 표현을 도대체 언제까지 그냥 놔 두려나 궁금하다.
3.
말보회 한킹은 '환난'과 '환란'을 자의로 구분해서 번역했구나. 굉장히 신기하다.
이 바닥에서는 저런 식으로 비공식적인 용어 구분이 나도는 게 있다. 가령, '성경'과 '성서'.
"그러나 킹 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나머지 성서들에서는 이 구절이 '(구원부터 받은 뒤에) 말씀의 젖 먹으면서 자라라'가 아니라 '신령한 젖 먹고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라고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개되었습니다." 같은 식이다.
사실 벧전 2:2 같은 경우는 애초에 번역의 차이가 아니지..
번역의 차이를 논하기에 앞서 아예 원문 오리진, 쏘스가 다르고, 둘 다 옳을 수 없다는 걸 먼저 논해야 된다.
행 12:4 '이스터/유월절' 이런 게 동일한 그리스어 '파스카'에 대한 번역의 차이이고 '원어'를 논할 일이다. 그 반면, 벧전 2:2는 '원문'의 차이이다.
4.
일본은 뭔가 학술적인 건 어지간한 건 다 한국보다 앞선 나라이다. 그런데 쟤네들 내부에서는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 이슈가 거론된 적이 없는지? 일본의 말보회 같은 단체는 없는지?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일본어 역본이 민간 차원에서 혹시 존재하는지 굉장히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
Posted by 사무엘